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하19.구속사의 사랑 = 부성애의 사랑...[용서-용납-일절 오래참음]왕적 제사장으로 사는 공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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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19장

[[다윗 약력]]

베들레헴에서 출생 (이새의 8형제중 막내, 두 누이 BC1041 년경 삼하5:4

목동(하프연주와 작곡이 뛰어남 삼하16:11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음15세쯤 BC1026년경 삼상16:6~13

사울왕의 궁중 악사가 됨 삼상16:16~23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임20세쯤 BC1021년경 삼상17:41~54

요나단과 친구가 됨〃 삼상18:1~4

사울왕의 천부장이 됨〃 삼상18:13~16

사울와의 딸 미갈과 결혼〃 삼상18:17~29

사울와의 추적으로 도망다님20~26세쯤 BC1021~1016년쯤 삼상19:9~26:25

사울왕을 두번 살려줌 삼상24:4~22; 26:6~12.

아비가일, 아히노암과 결혼23세 BC1018년경 삼상25:40~43

그일라, 십황무지,가드 헤브론 등에 도피 1016~1011년경 삼상23:1~삼하2:1

헤브론에서 유다 왕이됨 30세 BC1011년경 삼하2:1~4

왕이 된 후 통일 왕국의 왕이 됨 35세 BC1006년경 삼하5:1~10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김 37세 BC1004년경 삼하6:1~23 1차, 2차 정복전쟁 삼하8:1~10:14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함 49세 BC992년경 삼하11:1~27

압살롬의 반란,피신 그리고 귀환 61세 BC980년경 삼하13~19장

인구조사 67세 BC974년경 삼하24:1~25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줌 왕상1:32~53 

다윗이 죽어 장사됨 70세 BC971년경 왕상2:10,11


@@하나님만이 두려움 해결사이시다!!...365번 나오는 "두려워말라"@@ 부모가 구속사의 사랑을 모르면 자녀들은 두려워 한다....[내 아들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압살롬아...내가 대신 죽었더면".....논리로 설명불가한, (기다리고 염려하며 성문에 서성이는) 초월적 사랑이야말로 구속사 아는 부모의 참사랑..."이 세상에서 나를, 또 저놈을 누가 사랑하겠나???..."저놈은 바로 나일진대, 어찌 포기하란말인가", 부부사이라면 "너는 내 반쪽, 나는 네 반쪽인데" 하시는... 주님 음성 들어보라.." 낙심하는 마음 들 때...이 찬양을 불러보라!!


((아버지사랑 내가 노래해)) 

1.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2.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사랑

후렴>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너는내아들이라]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자국난 그 손길 눈물 닦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시네

너는 내 아들 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 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자국난 그 손길 눈물 닦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시네

너는 내 아들 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 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으니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사41:10-20....*10.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13.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15.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16.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17.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8.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19.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20.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사12:1-6...*1.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요압이 다윗에게 항의하다...[212. 겸손히 주를 섬길때][527 어서돌아오오]..주님과함께하는이고요한시간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주 앞에서 주님 마음 여쭈며 - 누군가의 임종시 - 각 인생의 무게(예비해 두신바 합당한 영광) 인식, 안타까움 중에 나의 마땅한 드나베누생사 나눔 결핍 회개하며 돌아볼 필요!!)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민심 동향을 옳게 파악한 "왕명 친히 거스른!!" 요압의 위협이자 진언....필요악역 담당자로서 요압은 끝까지 동행하며(그 처리를 주께 맡겨드리며 견디는 다윗), 다윗보다 더 오래살지만 결국 솔로몬에 의해 처단 받는다 ::: 모든 난관마다  Q이 능히 해결해 주실 수 있음에도!! 요압이 스스로 악역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주 바라봄으로써 살아계신 주님 의지하며 인정하라!!]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느낌 그대로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이것은 주제넘은!! 너무 교만한 말이었다] (요압 그 자신을 포함한)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적어도 만백성 앞에서 공과 사 구분하시고 합당하게 논공행상을 분명히-- 공로를 가려서 표창해 주셔야지 않겠습니까...공사 구분이 이렇게 불확실해서야 누가 자원해서 따르려 하겠습니까..라는 뜻))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조롱 + 비아냥거림!!)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요압, .마치!! 자신이 구원한 것 아닌데도 교만으로(마치 아브넬이 이스보셋에게 폭언 퍼부었듯이!!) 자지 자랑으로 가득 차 있다!! 

.....,[삼하3:26-39...*이에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전령들을 보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나병 환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떨어진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그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도하라 하니라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가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왕이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우니라   *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이르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차꼬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매 온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여 우니라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이르되 만일 내가 해 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모든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   *왕이 그의 신복에게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큰 인물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고전10:12, 13...*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선 줄로 아는자, 넘어질까 조심하라!!"...바울은  주와 동행함 안에 있는 바나바에 의해 발탁된 바 자신의 직분에 대해 돌아볼 때, [마가로 인해 심기가 상했다 하더라도 결코 그런 식으로 바나바와 나뉘어져 결별해서는 안되었음을 (( 절실하게 후회하고 있음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었다] 

---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I affirm, brethren, by the boasting in you which I have in Christ Jesus our Lord, I die daily.]...날마다 (주 앞에 나아가 경배함 통해 죽음-부활생명 공급받음) + 신진대사 통해 자긍심/교만/자존심, 즉 자기 주장-자기 의-자기 자랑이 사그러져감과 동시에 유기적 생명 공동체의 연합한 하나됨 이룸 위해 깎여져야-깎여 나감 감수하기를 배워야 함...오늘 살아낸 그리스도를 드리라!!

......[삼하3:6-11...*6.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7.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였느냐 하니  *8.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하게 여겨 이르되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오늘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9.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10.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의 왕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  *11.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니라]

.......마치 손아래사람에게 꾸짖듯!! 덤벼들며 꾸짖듯이 "정신차리라"고 왕이자 외삼촌에게 발언하고 있는 요압을 볼 수 있다!!...관계가 가까울 수록 "깊이 상처가 남는 법이니!!" 정중함의 예의를 지켜야하리라....특히 아비 된 이들은 정말 [마음과 입 다스림으로써] 조심해야 한다!!

===다윗의 귀환 준비 [549.내주여뜻대로][380.나의생명되신주]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왕의 환궁 추진 테마에 대해 왈가왈부)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뵐 면목이 서지 않는다고)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1.  ○ (언뜻 보기에 분명히 다윗은 사랑과 화해의 너그러움으로 "먼저 유다지파"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듯 보이며 방향은 옳아보인다/세밀한 배려가 부족함--이러한 환궁 추진의 여론이 조성되고 있음을 듣고서, 그래도 그대는 언제-무엇을 어떻게 하기 원하시는지를 먼저 주께 여쭈고 주 앞에서 그 지혜따라 지시해야 한다!!--비록 슬며시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이 있더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가 ::: 늦어지고, 답답하고, 매끄럽지 못하고, 현명하지 못하다 느껴진다 해도...자기 생각-의-주장, 자기 유익 생각함따라 짐짓 추정-행함 아니라)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유다 지파 전체의 마음 얻기 위해서 계륵 같은 요압을 대신해서 압살롬의 군장 아마사를 자기의 군장으로 품고 있음)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  (이렇게)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2% 부족?? 끝까지!! 주님 신뢰하며 주님 말씀 따라 순종하여 행함이 중요하다....화평케 하시는 주님이시다!!..시간 걸려도 온 이스라엘 장로소집이 마땅했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JC는 하나님의 "예수"이시다 =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본체, 화평케 하시는 분 :: 거듭난 믿는 우리로 화평케 하는 자 되게 하고 계신다!!...바로 다윗이 그 선례를 보이고 있었다!!]압살롬이 죽고난 직후의 이스라엘의 객관적 상황은, 본래 (헤브론 중심의) 유다지파의 압살롬 지지-기름부음의 반역으로부터 시작되어 다윗을 반대하는 세력확장이 이스라엘 전역으로 퍼져나간 것이었기에, 상식적으로 볼 때 유다지파가 먼저 감히 다윗에게 화해의 손 내밀기는 어려워 보였고, 그 사이에 요셉의 온 족속(이스라엘 지파)은 먼저 능동적으로 다윗에게 손 내밀어 복위시키자는 토론과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이는 복위시킨 자로서의 주도권을 주장하여 다윗 왕권을 좌지우지할 위험성이 높음을 예측 가능케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이러한 여론 동향을 제보 받은 다윗은( 세상 권력자들이 흔히 하듯이 유다지파중 제거할 인물들의 블랙리스트 작성-처치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유다지파를 설득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복위를 주도케 해 달라, 즉 블랙리스트 작성-해당자 색출 제게 수순으로 나아감이 아니라 먼저 유다지파를 다윗이 용서하고 너그러이 품었으니 "형제와 골육인" 유다지파가 복위의 선두에 서 주도록 설득해 달라 하고 있었다....또 세상의 일반적 상식과는 달리 아마사(또 다른 이복누이 아비갈이 낳은 외조카로서 압살롬의 군장이었다)를 요압을 대신하여 다윗이 죽을 그 때까지 군장((총사령관))으로 삼겠다고 맹세함으로써 품어 주고 있었다(반란군 전체의 마음도 얻고 있었다...물론 요압은 얼마 안되어 세바의 반란 평정 진행 중에 아마사를 살해하게 되지만)....이로써 유다지파 전체의 하나된 마음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주 앞에서만 듣고 택할 수 있는 너무나도 놀라운 지혜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요셉 온족속은 이일로도 반감 품게 된다..


===다윗과 시므이 = 용서(허물을 들추어 내지 않다 = 사하여 덮어줌...사과하는자 더 추궁하지 않다) + 용납(그의 전 존재를 만들어가시는 분이 주님임을 자각하고 그냥 오래 참고-견디며-버티고 수용하고 횟수 상관없이 그냥 품어 받아주다....분별 처결은 주 오실 그때까지 주께 맡겨라) [272.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베냐민 족속 시므이와 사울 집안의 종 시바 및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특별한 사정을 이해해줌과 동시에!!] 계속 용서하고 계속 선대하고 있다......궁극적 선인-악인 구별 처리는 전지전능하신 주께 맡겨드리고  주님 제자 그대는 사과-용서 구하는 자마다에게 선선히 용서하라!!...용서하고 오히려 선대함!!!, 거기에 왕적 제사장에로의 회복 있음이다!!

16.  ○[베냐민 사람들 품음, 그 대표격--시므이, 시바, 므비보셋]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시므이의 세력 과시!!)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서둘러 단 걸음에)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바로 그)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온 이스라엘 족속 중 대표로 내가 --유다족속과 요셉족속으로 나뉜 구도-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왕국으로 나뉠 전조 드러냄)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대적자, 사탄)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내가 Q의 종, 이스라엘 왕으로서!!, 왕의 자각 없었기에 함부로 밧세바 범한 죄 저질렀으나, 오늘 주께서 알게 하신 바, 왕의 너그러움 발휘할 것!! ---그리스도인이 됨은 진실로 기적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들과 다름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오히려 더 큰 기적이다 :: 그들과 달라야 한다 : 사사로움으로 살아가지 않고 JC께서 사신 삶이 "공생애"라 하듯이 공인으로서 "사람 살리는 삶" 사는 것임))

23.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비록 새롭게 되기 원하지만, 시므이 자신이 정말 변하든 말든 상관없음!!)....왕상2:8, 9..다윗은 그의 임종 때까지는 "그리하리라"는 자기 맹세 지켰으나, 끝까지 용서+용납함은 아니었다??(그러므로 마음-입술을 지켜 아예 시므이가 일으키듯 문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라!!)...결국, Q이 내주하셔야만 영원완전한 용서+용납 가능하다고 깨달음 주고 계신다...이를 위해 오늘날!! 십자가 구속거쳐 부활 생명의 HS 오셔서 거듭난 믿는이 안에 내주하여 살아계심으로써 입술-마음의 열매 이루어주고 계신다!! :: 그러므로 매일 죽고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로 살아야 함!!

.......[벧전2:9-12..*그러나 너희는 (땅에 속한 대제사장보다 더 위대한 자인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다윗과 (은혜 입은 자 됨 참되게 깨달았기에 은혜의 사람으로서 살고 있는)므비보셋...너그러이 용서+용납하는 마음 공유하다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거지행색 그자체였다)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왕의 은혜만 있을뿐) 내게 아직 무슨 공의(공로-염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29.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래 정말 고맙다..그렇게 나를 정말 잘 알고 있었구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나를 알기에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그냥 잠잠히 있을 수 있지??, 우리 둘 다 주님의 긍휼 입은 자이니, 시바가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고  시바의 마음과 사정을 그냥 이해해주고 그냥 용서해주자...밉게 보이더라도 시바를 선대하여 살려주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그래 다 안다, 그러나 기왕이라면, 너그러이 긍휼 베품의 대의를 위해 [이 일을 꾸며낸] 시바까지도 품어주고 네 유익을 포기할 수 있겠니? -- 분명히 "땅=기업"의 영구적인 소유 변경을 의미하는 것 아님, 땅의 소유권은 므비보셋에게 여전히 있으니, "희년" 지나면 도로 회복될 것) 하니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넵!! 왕 자신과, 오직 왕과 더불어, 함께 하고 계시는 여호와면 충분합니다....아기를 놓고 싸우는 재판하던 중,솔로몬이  "아이를 둘로 나눠주라" 내린  판결에 참 생모가 아이를 그냥 양보함으로써 아니를 살린 사건과 동일한 의미이다) 하니라...rule over law라야 함(법 있다고 마구잡이로 적용하는 것은 결코 안된다!!)...사사로운 감정을 넘어서라!!...[잠15:1,2...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신실하게진실하게..

===[길르앗 품음] 다윗과 바르실래(=뜻:강철 심장 +부요 + 지혜 두루 갖춤...대범하고 너그러워, Q께서 -드나베누섬의- 선행 위해 거부 되게 하셨다  )..[384.나의갈길다가도록]..마길이 살던 로데발은 갈릴리호수 바로 아래 동편 지역, 로글림은 이보다 더 동남쪽에 있

.......@@들어오는만큼 내보내는 갈릴리 호수 = 살아있다.....사해처럼 받기만헤서는 죽음만 남게 된다.@@.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바르실래의 아들...솔로몬 때 왕국에 크게 기여한다]김함이 여기 있사오니(수한이 얼마남지 않은 자기에게 아들 김함은 지금 가장 긴요한 사람이지만.. 가장 귀한 선물로 다윗에게 내어주고 있었다...왕상2:7)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남북의 분쟁  [459.누가주를따라섬기려는가] [410.내맘에한노레있어] [335.크고놀라운평화가내게있네]

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42.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정 그렇다면!!.. 이치를 따져 가면서 한번 드잡이 하고자 하는 태도!!, ::: 마음의 생각이 말로 표현되는 바, 마음 눈 높이 같이하여 경청하며 온유-친절-지혜의 신중하고도 배려하는 부드러운 말로 생명 고양하도록 함의 중요성!!).....(= 혹시 떡고물 부스러기 생각하는 거냐? 우린 사울 때 베냐민지파와는 달리 떡고물조차도 얻어먹은 적 없다는 말)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유다와 베냐민 외에]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왜 우리를 멸시하여 빼놓고 왕따시키느냐 ::: 여기서 얻는 교훈 = 하나됨의 공동체성 유지에 있어서는 주 안에서!!, 주 임재 앞에서!! 상호 존중과 배려가 매우 중요하다 ::: 다수결로 해야할 때가 있으나 만장일치가 때로는 더 중요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함...주님 신뢰하라!! 결코!! 자기 몫 주장하려 말라!!) ....이런 불평불만의 말들이 무성하게 있더라도 바로 그 변덕 심한 사람들을 위해 주님 인도따라 "자기 목숨 내어줌으로 사는" 것이 바로 공생애 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시1편을 묵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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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마지막 날로서 JC,바로 그분 인해 살고 있는 왕같은 제사장!!...Q나라에 합한 왕의 태도는(헤브론에서 유다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으나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 받기까지 무려 7년6개원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배운 교훈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기 느낌따라 섣부르게 나서지 않고] 주님이 원하시고 계획하신 그 때를 신뢰하며 (주님이 친히 행하실 바 제반 여건 조성하여 무르익기까지) 기다림에 있어야 한다..그 자신의 명예보다 더 중요했던 바 [사랑의 십자가 대속의 그 영 안에서 행하며 성령따라 나아감으로써]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함 그 안에서 행하기를 배웠던 다윗은 그 시점임을 깨닫고!! 행한다(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유다장로들에게)(아마사에게) 용서-용납 통한 하나됨 위해 [친절함과 부드러운 완곡한 요청으로] 품고 있었다. -- 요압은(아비새도) 전혀 이해불가!!하다.....@@죄책감-자기합리화-수치심/열등감이 배반자/대적자-사기꾼(거짓말)의 근저에 있음 : 어찌하든, [내가 잘못했습니다] 사과하는 자에 대한 합당한 자세는 [주께 처결 맡기고!!], 더 이상 꼼꼼이 캐묻지 말고 덮어줌으로써 용서-용납함이다!!

---다윗의 목회 = (방법론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룸!!) 너그러이 용서-용납하여 품는 세가지 부류의 베냐민 사람..(시므이+1000, 시바+15/20, 므비보셋)

......시므이(기회주의자) : 저주할 때는 번번이 Q 언급--용서 구할 때는 Q께 대한 회개 언급 없음

......므비보셋(진심으로 시공 초월하여 함께 하는 동반자) :: 오히려, (시바에게 밭을 나누어 줌으로써)손해 보는것 같아보이나, 더 큰 상급=다윗 자신을 줌

......시바(자기 유익 위해 행하는자) : 압살롬에게 가지 않고 다윗에게로 와서 부하들을 공궤했다는 공로가 있음..

.....(세상 가치따르는 이들에게 "행복"이란 "돈-권력-명예"뿐이로되, 거듭난 믿는이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으니!!) 자기자신이야말로 주님 앞에서 "사함 받은" 절대적 죄인임을 자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호 긍휼히 여기는 이들 사이에서만 이심전심 인정되는 진리란, [그렇다고 적극 권장하는 것은 아니로되]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예외없이!! 그러한  환경-처지-형편에서는 "내적-외적 범죄라는 분명한 인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숨 보전, 곧 생존을 위해서는 그리 할 수 밖에 없었기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음을 이해-인정함"이다

......어디로ㅡ 어디까지 가든지 가장 좋은 길이란 "좋은 동반자와 함께-같이 가는 길", 곧 동반자의 어떠함에 달려있음을 알고 합당한 동반자를 선택함이다.. ##참된 화평이란 싸움이 전혀 없음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임을 , ##성화란 원함과 행함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는 것임을 명심하라....##예수님의 리더십의 핵심은 아버지와의 관계였다...#오늘이 마지막 날임을 인식하고 신앙 = 참되게 주님 믿고 붙들어 하나되어 매 순간 주 앙망-동행함으로 살아가라!!

....바르실래(신선한 공기같은 사람 = 생색내지 않고 아낌없이 내어주며, 속 후련케 함...아들 맡김)


[NASB]제19장


1.  Then it was told Joab, "Behold, the king is weeping and mourns for Absalom."

2.  And the victory that day was turned to mourning for all the people, for the people heard [it] said that day, "The king is grieved for his son."

3.  So the people went by stealth into the city that day, as people who are humiliated steal away when they flee in battle.

4.  And the king covered his face and cried out with a loud voice, "O my son Absalom, O Absalom, my son, my son!"

5.  Then Joab came into the house to the king and said, "Today you have covered with shame the faces of all your servants, who today have saved your life and the lives of your sons and daughters, the lives of your wives, and the lives of your concubines,

6.  by loving those who hate you, and by hating those who love you. For you have shown today that princes and servants are nothing to you; for I know this day that if Absalom were alive and all of us were dead today, then you would be pleased.

7.  "Now therefore arise, go out and speak kindly to your servants, for I swear by the LORD, if you do not go out, surely not a man will pass the night with you, and this will be worse for you than all the evil that has come upon you from your youth until now."

8.  So the king arose and sat in the gate. When they told all the people, saying, "Behold, the king is sitting in the gate," then all the people came before the king. Now Israel had fled, each to his tent.

9.  And all the people were quarreling throughout all the tribes of Israel, saying, "The king delivered us from the hand of our enemies and saved us from the hand of the Philistines, but now he has fled out of the land from Absalom.

10.  "However, Absalom, whom we anointed over us, has died in battle. Now then, why are you silent about bringing the king back?"

11.  Then King David sent to Zadok and Abiathar the priests, saying, " Speak to the elders of Judah, saying, 'Why are you the last to bring the king back to his house, since the word of all Israel has come to the king, [ even] to his house?

12.  'You are my brothers; you are my bone and my flesh. Why then should you be the last to bring back the king?'

13.  "And say to Amasa, 'Are you not my bone and my flesh? May God do so to me, and more also, if you will not be commander of the army before me continually in place of Joab.'"

14.  Thus he turned the hearts of all the men of Judah as one man, so that they sent [word] to the king, [saying], "Return, you and all your servants."

15.  The king then returned and came as far as the Jordan. And Judah came to Gilgal in order to go to meet the king, to bring the king across the Jordan.

16.  Then Shimei the son of Gera, the Benjamite who was from Bahurim, hurried and came down with the men of Judah to meet King David.

17.  And there were a thousand men of Benjamin with him, with Ziba the servant of the house of Saul, and his fifteen sons and his twenty servants with him; and they rushed to the Jordan before the king.

18.  Then they kept crossing the ford to bring over the king's household, and to do what was good in his sight. And Shimei the son of Gera fell down before the king as he was about to cross the Jordan.

19.  So he said to the king, "Let not my lord consider me guilty, nor remember what your servant did wrong on the day when my lord the king came out from Jerusalem, so that the king should take [it] to heart.

20.  "For your servant knows that I have sinned; therefore behold, I have come today, the first of all the house of Joseph to go down to meet my lord the king."

21.  But Abishai the son of Zeruiah answered and said, "Should not Shimei be put to death for this, because he cursed the Lord's anointed?"

22.  David then said, "What have I to do with you, O sons of Zeruiah, that you should this day be an adversary to me? Should any man be put to death in Israel today? For do I not know that I am king over Israel today?"

23.  And the king said to Shimei, "You shall not die." Thus the king swore to him.

24.  Then Mephibosheth the son of Saul came down to meet the king; and he had neither cared for his feet, nor trimmed his mustache, nor washed his clothes, from the day the king departed until the day he came [home] in peace.

25.  And it was when he came from Jerusalem to meet the king, that the king said to him, "Why did you not go with me, Mephibosheth?"

26.  So he answered, "O my lord, the king, my servant deceived me; for your servant said, 'I will saddle a donkey for myself that I may ride on it and go with the king,' because your servant is lame.

27.  "Moreover, he has slandered your servant to my lord the king; but my lord the king is like the angel of God, therefore do what is good in your sight.

28.  "For all my father's household was nothing but dead men before my lord the king; yet you set your servant among those who ate at your own table. What right do I have yet that I should complain anymore to the king?"

29.  So the king said to him, "Why do you still speak of your affairs? I have decided, 'You and Ziba shall divide the land.'"

30.  And Mephibosheth said to the king, "Let him even take it all, since my lord the king has come safely to his own house."

31.  Now Barzillai the Gileadite had come down from Rogelim; and he went on to the Jordan with the king to escort him over the Jordan.

32.  Now Barzillai was very old, being eighty years old; and he had sustained the king while he stayed at Mahanaim, for he was a very great man.

33.  And the king said to Barzillai, "You cross over with me and I will sustain you in Jerusalem with me."

34.  But Barzillai said to the king, "How long have I yet to live, that I should go up with the king to Jerusalem?

35.  "I am now eighty years old. Can I distinguish between good and bad? Or can your servant taste what I eat or what I drink? Or can I hear anymore the voice of singing men and women? Why then should your servant be an added burden to my lord the king?

36.  "Your servant would merely cross over the Jordan with the king. Why should the king compensate me [with] this reward?

37.  "Please let your servant return, that I may die in my own city near the grave of my father and my mother. However, here is your servant Chimham, let him cross over with my lord the king, and do for him what is good in your sight."

38.  And the king answered, "Chimham shall cross over with me, and I will do for him what is good in your sight; and whatever you require of me, I will do for you."

39.  All the people crossed over the Jordan and the king crossed too. The king then kissed Barzillai and blessed him, and he returned to his place.

40.  Now the king went on to Gilgal, and Chimham went on with him; and all the people of Judah and also half the people of Israel accompanied the king.

41.  And behold, all the men of Israel came to the king and said to the king, "Why had our brothers the men of Judah stolen you away, and brought the king and his household and all David's men with him over the Jordan?"

42.  Then all the men of Judah answered the men of Israel, "Because the king is a close relative to us. Why then are you angry about this matter? Have we eaten at all at the king's [expense], or has anything been taken for us?"

43.  But the men of Israel answered the men of Judah and said, "We have ten parts in the king, therefore we also have more [claim] on David than you. Why then did you treat us with contempt? Was it not our advice first to bring back our king?" Yet the words of the men of Judah were harsher than the words of the men of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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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9장 (개요)

다윗의 군대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다윗은 슬픔 중에 있다.

1. 요압의 권유로 다윗이 회복됨(1-8).

2. 망명생활로부터 다윗의 환궁.

   (1) 이스라엘인이 왕을 도로 모시기를 원함(9,10).

   (2) 유대인들이 다윗의 신복들로 이 일을 수행케 하고(11-14), 그리고 이를 이룸(15).

3. 요단강 건너던 왕에게 반역한 시므이를 용서함(16-23). 므비보셋 실패의 변명(24-30). 바실래의 친절과 그 아들에 대한 보상(31-39).

4. 유대인과 이스라엘인의 다툼(40-43). 왕위회복 예식에 초대하지 않은 이유로 새로운 반란이 남. 이에 관하여는 다음 장에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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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 대한 요압의 비난(삼하 19:1-8)

전령들이 마하나임 궁정에 압살롬의 패배와 죽음의 소식을 전하자 요압과 승리한 군대가 왕의 승리를 찬양하고 그의 명령을 받으려고 따라왔다. 여기서 우리가 탐구할 바는 다음과 같다.

Ⅰ. 요압의 병사들이 압살롬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왕을 보았을 때 얼마나 실망이 컸을까? 이는 요압 군대들의 훌륭한 업적에 대해서 다윗 왕이 기쁨과 감사로 맞이해 주리라 기대했으나 오히려 그들의 행한 일에 대해서 불쾌한 감정의 표시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 사실이 요압에게 전해졌다(1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슬퍼한다는 소식이 군대 안에 퍼졌다. 백성들은 그의 지도자들이 말하고 행하는 바에 특별한 유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주시하는 눈이 많고 우리의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말과 행동을 더욱 지혜롭게 하고 우리의 감정을 더욱 엄격히 통제함이 필요하다. 그들이 성에 이르렀을 때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크게 슬퍼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4절). 그는 얼굴을 가리우고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으며 장군들이 그에게 왔으나 보지도 아니했다.

1. 다윗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불합리한 감정의 폭군에 끌려 그의 용기에 대한 평판이 흐려진다는 사실과 국민들의 관심을 생각했더라면 숨겨야만 했던 격정을 어찌 폭로했는가? 하는 것을 그들이 알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그의 슬픔은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다. 큰 소리로 부르되 오! 나의 아들 압살롬아! 나의 종들은 평안히 돌아왔건만 나의 아들은 어디 있는가. 그는 죄로 인해 죽었도다. 영원히 내 아들을 잃었도다. 내 영혼은 이런 죄인들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없으니 나는 어찌할까 오! 압살롬 내 아들 내 아들아!

2.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군대가 그에게 올 때까지 복받치는 감정을 어떻게 제어하고 있었는가? 한 두 시간의 격정은 돌출구를 열어놓아 해결할 수 있으나 마치 야곱이 요셉처럼 선한 아들을 위해 울었던 것같이 불량한 아들 압살롬을 위해 크게 슬퍼하며 승리의 기쁨을 손상시키는 일은 대단히 슬기롭지 못하며 무가치한 것이었다. 왕이 행하는 모든 일은 백성을 기쁘게 하는 것이므로 그들은 왕을 비난하기는 원하지 않았으나(3:36) 왕이 슬퍼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크나큰 모욕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승리는 슬픔이 되었다(2절). 그들은 부끄러운 사람처럼 몰래 성으로 들어갔다(3절). 그들의 군왕을 찬양하는 일에 있어서 왕이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을 안 무리들은 기뻐할 수 없었으며 그들의 기쁨을 숨겨야만 하는 일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이와 같은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Ⅱ. 요압은 이러한 심각한 위기 가운데서 무분별하게 처신하는 다윗을 얼마나 명백하고도 통렬하게 비난했는가? 다윗에게 지금보다 부하들의 충정이 필요한 때는 없다. 그들의 충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는 것이 지금보다 더 필요한 때가 없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윗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일이요, 그에게 가까이 하는 친구들에게 가장 나쁜 인상을 주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요압은 다윗 왕을 비난했으나(5-7절) 그는 많은 이유를 들어 다윗 왕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왕에게 마땅히 지녀야 할 존경과 복종심으로 하지 아니했다. 이는 “당신은 악한 자요”라고 왕에게 말한 정도의 의미가 된다. 이런 경우는 우리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확히 해당되는 것으로 그들이 행한 과오에 대해 질책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무례와 오만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 다윗 왕은 진실로 경계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요압은 다윗을 질책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 윗사람이 어리석은 일을 행했을 경우 그것을 이상히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이 사실을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더라도 언짢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1. 요압은 다윗의 군인들의 업적을 과장했다. “이날에 그들이 당신의 생명을 구원했으니 마땅히 그들의 공로를 인정할 만하며 만일 그렇지 못할 때에 마땅히 이에 대한 항변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윗의 눈물 때문에 영광 받는 압살롬, 지금도 다윗이 눈물 때문에 그를 보호하려는 이들과 그를 사랑하는 자들로 멸시받고 그의 눈물 때문에 자신이 망하고 가정이 망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큰 악이 좋은 장점이 되어 왕을 모욕으로부터 일어나게 했다.

2. 요압은 의기소침한 다윗을 더욱 악화시켰다. “당신은 충신들을 부끄럽게 하셨나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생명만 귀하고 저희들의 생명은 천한 것처럼 행하셨나이다. 그리고 당신은 버릇 없고 나라와 조국을 배신한 잘 죽어버린 배도자를 당신의 지혜있는 모사들과 용감한 장군들과 충신들 앞에서 사랑하셨나이다. 당신의 원수는 사랑하고 당신의 친구를 미워함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라고 말했다.

3. 요압은 다윗이 참모회에 곧 참여하여 그들을 웃게 하고 그들의 승리를 축하하고 그들의 수고에 대해 감사하라고 권유했다. 할 일을 잘 완수했을 때는 지휘관이라도 감사하다는 말 듣기를 원하는 법이다.

4. 요압은 다윗에게 만일 일러 준 대로 행치 아니하면 제 2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은혜를 모르는 왕을 섬기느니보다는 차라리 그를 떠나 반란군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낫다고 암시했다(이런 고백은 백성에게 관심이 있는 요압 자신의 고백이다). “당신 한 사람을 위해 지체할 수 없다. 내가 가면 그들 모두 떠날 것이다. 지금은 당신이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집한다면 내가 당신에게 슬퍼해야 할 정말로 더 쓰라린 눈물을 흘러야 할 것을 제공하겠다”(요세푸스의 말).

Ⅲ. 신중하고 온화하게 다윗을 설득시켰다. 다윗은 사람들 앞에 슬퍼보이지 않게 하려고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슬픈 기색없이 성문 앞 대중 앞에 나타났다. 백성들이 그에게 나와 그와 온 국민의 안전을 축하했다. 손아래 사람에 의하여 충고를 받을 때 볼상사납기는 하지만 잘못을 깨닫거든 무조건 수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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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로 돌아온 다윗(삼하 19:9-15)

다윗이 압살롬의 패잔병들이 수도권 회복을 위하여 급히 예루살렘으로 행진하는 것을 보고 폭도들의 혼란을 일으켜 재결합을 하지 못하도록 곧 처리해 버리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무슨 이유로 그가 거기에 왔는지? 길르앗에 그와 함께 있는 개선군과는 함께 돌아올 수 없었는지? 물론 있었다. ① 그는 물론 정복자로서가 아니라 온 국민의 환영을 받으며 왕으로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백성들의 자유를 회복시켰다. 백성을 강압으로 수탈하거나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 ② 그가 환궁하는 데는 반대자도 없고 어떤 장애도 없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가 출발하기 전에 백성들이 그에게 감화를 준 것은 더욱 그를 기쁘게 했을 것이다. ③ 그는 도의상 야인으로 가고저 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군대의 지휘관으로서가 아니라 일반 예속된 군인으로서 돌아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백성들의 총애를 받을 만큼 선하고 지혜로운 왕이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공포를 주는 강한 왕이라는 것보다는 더 위대하고 훌륭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자기 가정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거기서 축하식을 가지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협정을 볼 수 있다.

Ⅰ. 이스라엘 10지파의 모든 백성들이 변론했다(9, 10절). 다윗 왕을 데려오는 일에 대해서 백성들은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반대하기를 “그를 혼자만 오게 하든지 그가 지금 있는 곳에 머물게 하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이에 대해 이유를 들어 열광적인 계획을 보이기도 했다.

1. 다윗은 자기들을 도와 적과 싸워 적을 물리쳤으며 자기들을 위해 봉사했으므로 이렇게 큰 은혜를 끼친 백성들로부터 추방생활을 계속하게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공익을 위한 선행은 잠시 동안은 잊혀질 수 있어도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잡히면 다시 기억될 것이다.

2. 압살롬은 그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우리는 어리석게 우리를 다스릴 사람으로 병든 삼목의 가지를 택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압살롬이라면 질색이다. 그는 사라졌다. 우리도 함께 그와 같이 죽을 자리를 간신히 모면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왕을 모셔다가 전과 같이 충성을 다하자.” 아마 이 말은 왕을 모셔오자 혹은 말자는 것이 논쟁의 초점이 아니라 그를 모셔오지 않은 것이 누구의 잘못이냐는 것이 모두 그들의 논쟁거리였다. 이런 경우는 언제나 있는 것처럼 사람은 모두 자기를 의롭게 생각하고 남을 비난하는 법이다. 백성들은 장로들에게 잘못이 있다 하고 장로들은 백성들에게, 이 지파는 저 지파에게 전가했다. 자극적인 선행을 서로 찬양하고 그렇지 못하면 비난을 서로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적인 봉사는 언제나 무지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듣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관습을 뜯어 고치거나 상처를 싸매는 등등의 일보다는 책망하기를 더 좋아한다.

Ⅱ. 유다 사람들이 다윗의 계획대로 먼저 왕을 영접했다. 오히려 다윗이 속한 지파 사람들이 그를 영접하는 데 서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다윗은 항상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다 지파 외에 다른 지파들은 자기를 선대한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가장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가장 불친절한 위험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지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낼 때까지는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다. 유다 지파는 그의 입법자였다(시 60:7 참조). 그의 귀향 길은 더욱 뚜렸해졌다.

1. 다윗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을 유다 족속의 장로로 대우하고 그들로 왕을 자기 집으로 초빙할 것을 암시했다. 

그것은 그 지파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11, 12절). 이런 일을 수행함에는 백성들에게 큰 영향력도 있고 신중성이 있고 다윗의 뜻을 잘 따르는 이 두 제사장들보다 더 적당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유다 족속들은 부주의하고 무기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일을 시키는 이도 없고 하는 이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한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들이 말없이 나태하게 계속 머물러 있다는 것이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이 압살롬과 관계를 가짐으로 다윗에게 큰 자극을 주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그의 은혜를 배신한 것을 앎으로 그의 왕위 환궁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들로부터 확실한 보증을 요구했다.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정열적으로 자기를 불러 주지 않는가를 물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데 유다 족속은 어째서 가만히 있는가? 라고 책망을 했다. 어느 지파가 충성이 있고 용감한가 생각해 보자. 충성의 정도는 신분에 따라 다르고 혈통이나 친분에 따라 다른 것이다. 지위가 높은 자라고 의무에도 첫째가 되는 것은 아니다.

2. 다윗은 압살롬의 장군이었던 아미사에게 특별히 환심을 얻으려고 했다. 

그는 요압과 마찬가지로 그의 조카벌 되는 사람이었다(13절). 만약 그가 다윗을 위해 뜻을 비치기만 한다면 요압을 대신하여 그의 군대 장군으로 삼을 것을 약속했다. 그는 그를 친척으로 인정하고 그를 매우 좋아했다. 적이었던 사람과 친교해서 손해보는 일은 별로 없다. 아미사에게 다윗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위기에 대처해서 매우 좋은 처사였다. 그러나 다윗이 건방진 요압을 참을 수 없어 그 자리에 아미사를 지명했다. 아미사는 다윗의 계획을 방해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윗의 이러한 처사를 현명한 처사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이 일로 인해 아미사는 요압의 손에 죽었기 때문이다(20:10 참조).

3. 여기서 그는 목적을 달성했다. 

그는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했다(14절). 투표 결과 이의없이 만장일치로 유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나님의 섭리는 제사장들의 설득과 아마사의 관심을 통해 그들에게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 다윗은 이러한 환영을 받을 때까지 움직이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요단(그들이 거기서 만남)으로 돌아왔다(1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의 왕좌에 그를 영접하고 모시는 사람들을 다스리신다. 주님을 먼저 마음으로 경배하고 그의 권능의 날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원수 중에서 다스리신다(시 10:2, 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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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이를 용서함(삼하 19:16-23)

여호수아 영도하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넌 이후 지금까지 엄청난 사건들이 이 강을 건널 때마다 일어났다. 고통스러운 전투 중에서 다윗은 특별히 요단 땅에 왔을 때 하나님을 기억했다. “오직 저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 62:6). 그는 환궁의 영광을 안고 이 강을 또 건너게 되었다. 다윗의 군인들이 이 강을 건너기 위해 숙박소를 마련했고 왕의 가족을 건네기 위하여 나룻배를 마련했다(18절). 나룻배를 어떤 이는 구조선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함선의 다리라고도 한다. 나룻배는 그에게 봉사하기에 편리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다. 그가 싸울 때 야비하게 그를 학대했던 두 사람을 요단 뚝에서 만났다.

Ⅰ. 시바를 만났다. 

그는 정중한 말로 왕을 악이용 했다. 시바는 왕에게 그의 주인을 비난함으로 그의 재산을 할례받았다(16:4). 그는 고지식한 왕을 속여서 왕의 친구 요나단의 아들에게 매정하게 하도록 유도한 것은 다윗에게는 이보다 더 큰 악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왕을 만나려고 지금 그의 종들과 아들들을 수행하고 찾아왔다(17절). 그가 찾아 온 것은 왕의 총애를 받으려고였다. 또한 므비보셋이 자기의 오점을 드러냈으면 이를 벗어버리기 위해서였다(26절).

Ⅱ. 시므이를 만났다. 

그는 불쾌한 말로 그를 학대하고 비난하고 저주했다(16:5). 만약 다윗이 패배했더라면 그는 계속 그를 무시했을 것이며, 그가 행한 것이 찬양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윗이 지금 개선하여 왕좌에 회복되는 것을 알고 그와 평화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윗의 아들 예수를 지금 멸시하고 악용하는 자들은 그가 영광 중에 오실 때 그들이 화해하려고 할 것이나 이미 그 때는 늦을 것이다. 시므이는 왕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1. 그는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도움이 될 만한 좋은 동료들을 데리고 왔다.

2. 그는 베냐민 족속 중에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다. 

그들 중에는 왕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총사령관과 지도자들이 1,000여명이나 되었다. 왕을 만나려는 관심 때문에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는 유다 지파를 제하고는 이러한 존경을 왕에게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친절했다.

3. 그는 서둘러서 기회를 잃지 않았다. 당신이 노중에 있을 때 속히 적과 손 잡으라.

(1) 죄인의 복종(18-20절). 

그는 왕 앞에 참회자로서 애원자로서 엎드렸다. 그는 이로써 겸허를 나타내려 했다. 다윗의 모든 신하들 앞에 베냐민 지파인 그의 친구들 앞에 수 천명 자기 수하 사람 앞에 엎드렸다. 많은 사람 앞에서 저지른 죄이므로 많은 사람 앞에서 복종했다. 그는 그의 죄를 인정했다. “당신의 종인 내가 지은 죄를 아나이다.” 이것으로 그는 괴로워했다. 그는 왕의 용서를 간청했다. 내가 심술궂게 행하였나이다. 당신의 종의 패역을 기억지 마소서. 그는 자기의 생명이 다윗 왕의 관대한 마음에 달렸음을 암시했다. 그는 요셉 지파(다윗의 치정초기에 이스보셋을 추종하여 유다 지파로부터 분리되었던 이스라엘 지파 중 하나임. 2:10 참조) 모든 사람들보다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그의 충성심의 표현이었다. 그는 의무의 본보기로서 다른 사람들을 권유하고 왕의 온화한 성품을 대해 본 경험에 의하여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따르게 하려고 제일 먼저 왔다.

(2) 그에게 불리한 제안(21절).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한가?” 많은 사람 가운데 그를 본보기로 삼으라고 했다. 이러한 제안은 그가 저주했을 때 시므이를 죽이자고 했던 아비새의 제안이었다(16:9 참조). 다윗은 이런 일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의 사법권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이런 저주를 묵인하는가? 아비새는 그의 진실한 관심보다 다윗의 감정을 생각하고 이런 제안을 했다. 왕은 이런 시련에 대비해서 자신을 무장할 필요가 있었다.

(3) 왕의 명으로 면제됨(22, 23절). 

다윗은 불쾌하게 아비새의 동의를 거절했다.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복수심으로 분노하거나 난폭하고 거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는 그의 상대로서 이런 기소자들을 방관했다. 그들은 친분이 있는 것처럼 했지만 그의 명예에 대한 의협심도 있었다. 옳지 않은 것으로 우리에게 충고하는 자들은 사실 사탄들이요 적수인 것이다.

① 그들은 그의 온화한 성품의 방해자들이었다. 

그는 이 날이 바로 그의 왕국이 재건되고 이스라엘의 왕위가 회복되는 날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의 영광의 날에 그를 용서해 주었다. 항복자를 용서하는 것은 왕의 특권이다. 먹이를 놓아두는 것은 사자를 배불리는 것이다(Satis est prostrass leioni). 그의 기쁨은 그를 용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찌푸둥한 일에 돌입하는 것을 막는 일은 매우 좋은 일이다. 기쁨의 날은 용서의 날일 것이다. 그의 죄 때문에 당했던 망명 생활에서 그의 왕국이 다시 회복 된 것은 하나님의 궁휼에 의해서다. 그래서 그는 시므이에게 긍휼을 베풀려고 했다. 암몬 사람들로 악행하게 한 자들을 혹독히 보복했다(12:31 참조).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당한 악행에는 묵인했다. 전자는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모욕이요 왕국과 왕관에 대한 침해였다. 그러나 후자는 단순한 자기 개인에 대한 모욕이었으므로 선한 사람들의 호의에 따라 그들을 쉽게 용서할 수 있었다.

② 그들은 그의 관심사에 방해자들이었다. 

만일 그가 그를 저주했던 시므이를 죽였다면 그에 대해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고 무장하고 나섰던 자들도 같은 운명에 처해졌을 것이다. 가혹한 행위는 정책을 수반하지 않는다. 왕위는 긍휼로 인하여 성취되었다. 이에 있어서 시므이가 사면되었고 맹세가 확정되었다. 그의 선한 행위는 적중되었지만 만일 그가 후에도 부정한 짓을 한다면 그는 박해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신중하고 온화함으로써 국가 정의 실현의 기념비를 위하여, 후일을 위하여 예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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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므비보셋을 만남(삼하 19:24-30)

다윗이 돌아오던 날은 추억의 날이었다. 그가 패주하던 일을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날이다. 많은 이야기 가운데 시므이 사건과 므비보셋의 요청하던 일들이 그 자신에게 떠올랐다.

Ⅰ. 그가 무리 가운데 내려와서 왕을 만났다(24절). 

그는 왕의 궁을 기뻐하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왕의 망명 생활을 얼마나 슬퍼하며 지냈는가를 여기서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위업이 떠났을 때 므비보셋은 이 우울한 날 동안을 매우 침울하게 지냈다. 그는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고 오직 나라의 재난과 왕의 고통을 생각하고 슬픔에 젖어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재난시에는 기쁨의 감정을 억제해야만 한다. 하나님이 슬퍼하시면 우리는 웃어야 할 때도 슬퍼할 때다.

Ⅱ. 좀처럼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므비보셋은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자 그 앞에 알현했다(25절). 

어찌 한 가족으로서 망명길에 함께 하지 않고 뒤에 남아 있었느냐고 왕이 물었을 때 그는 왕에게 충분한 그의 입장을 설명했다.

1. 그는 그의 종 시바 때문이었다고 불평을 한다. 

그는 종을 친구처럼 대했으나 복선을 가진 적이었다. 첫째로 그는 왕을 따라가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그는 나귀에 안장을 준비하라는 주인의 명을 거스렸다(26절). 그는 자신이 절름발이이므로 도움없이는 스스로 할 수 없었다. 둘째로 그는 왕에게 자기가 정권을 약탈하려는 음모자라고 참소했다(27절). 선한 주인에 대한 얼마나 야비하고 악한 종의 폭력인가!

2. 그는 그가 아버지 (요나단) 때부터 받은 왕의 은혜를 고맙게 생각했다(28절). 

그가 모반자로 몰렸을 때 왕은 그를 아들처럼 친구로서 대해 주었다. 당신은 한 식탁에서 먹는 사람 중에 당신의 종을 두지 않았는가. 시바의 언급은 참말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므비보셋은 언제 그렇게 평안하게 또 그런 일을 할만큼 행복하게 살아 본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높은 벼슬을 탐할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친절을 다해 준 다윗에게 손해를 끼칠 음모자처럼 그렇게 표리가 부동할 수 있었겠는가?

3. 그는 왕에게 기쁨을 제공했다. 

나와 나의 재산에 대하여 당신의 좋은 대로 행하소서라고 자신의 선악의 분별력도 왕의 지혜만 의존했다. 그의 모든 주장을 포기하고 나의 주 왕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로소이다라고 했다. 내가 받은 분에 넘치는 친절을 생각할 때 더 이상 무엇을 왕께 구할 것인가? 왕이 고난 중에 있을 때 어째서 내가 그에게 불평을 했던가? 이러한 친절을 받으면서 왜 그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했을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죽은 자들처럼 있었다. 그러면 그는 우리를 그의 식탁에 앉게 할 뿐만 아니라 먹을 것도 나누어 주신다. 우리가 고통 중에 빠지면 얼마나 불평을 했으며 또 하나님이 하신 일의 모든 것이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되겠는가?

Ⅲ. 다윗은 므비보셋의 재산을 압류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의 간교에 속아서 이를 책망하고 전에 거주하던 정착지를 주라고 했다.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29절). 내가 먼저 명한 대로 하라(9:10). 재산권은 네게 주지만 시바가 차지할 것인즉 그가 땅을 경작하고 그를 공궤할 것이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그가 있던 곳에 있고 시바는 그 주인에 대하여 거짓되고 악한 소식을 전한 것으로 책벌을 당하지 않았다.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신 19:18, 19). 

다윗은 이 율법에 따라 그를 많이 의심도 했고 사랑도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 용서해 주고 문제를 풀어 주었다.

Ⅳ. 므비보셋은 왕이 돌아온 것이 너무 기뻐서 그의 재산에 대한 모든 관심은 잊어버렸다(30절).

“왕께서 궁에 평안히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왕의 총애를 받으며 그와 함께 살면 그 모든 것이 다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선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평화와 다윗의 아들의 왕위가 완성되고 찬양받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자신의 손실과 낭패를 충분히 견딜 수 있다. 다윗이 평화 중에 있으니 므비보셋은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기쁘기 한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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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래에게 보상함(삼하 19:31-39)

다윗은 이미 은혜를 입어서 그가 입었던 상처들이 관대한 사면으로 복귀하는데 승리를 거두었다. 그에게 보여 준 친절에 대한 다소의 보상을 얻는 것을 볼 수 있다. 

길르앗 사람 바실래는 마하나임에서 가까운 로글림에 사는 귀족이다. 그 성읍의 상류층 귀족계급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고난 중에 있는 다윗에게 극진한 공궤를 다했다. 

만일 압살롬이 승리했더라면 그의 충성심 때문에 고난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모든 것은 압살롬이 좌절됨으로써 아무 일도 없게 되었다.

Ⅰ. 바실래가 다윗을 가장 존경한 것은 그가 선한 사람이어서 뿐만 아니라 의로운 주권자이므로 존경을 했다. “왕이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32절). 

그는 매우 대범한 사람이라 하나님이 그에게 큰 부자가 되게 하셨다. 

그 재산으로 선행을 하도록 큰 마음을 주었다. 큰 재산을 주신 것은 선을 행하라고 주신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이 또 있는가? 

우리 마음에서 관대함을 격하시키거나 선량한 동정심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할 능력으로 친절을 베풀도록 하라고 주신 것이다. 

바실래는 다윗이 자신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조금도 그것을 염려하지 않고 그를 요단까지 안내해 주었다(31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7).

Ⅱ. 다윗이 바실래를 왕궁으로 초대했다. “너는 나와 함께 건너 가자” (33절)라고 그를 초대했다.

1. 그는 그와 동행해 주고 은혜를 입은 사람과 기쁨을 나누려고 그를 초대했다. 

바실래는 매우 지혜롭고 선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큰 부자였다. 

여기서 그는 위대한 사람으로 불리어지지는 않았으나 다윗에게 제공한 그의 공로는 그의 가진 것 전부였고 그의 인격 전체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2. 그는 그의 친절에 대한 보답을 하려고 그를 초대했다. 

거룩한 성 수도 예루살렘에서 네가 나를 공궤한 것처럼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다윗은 바실래가 자기에게 베푼 은혜를 그대로 삼켜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기 좋은대로 함부로 행하는 어떤 왕들 같은 사람이 아니였다. 

바실래가 베푸는 성의를 받고 사람으로 보답하려고 했다. 어려움 중에 있을 때 도와 준 사람들에게 특히 친구들에게 은혜를 보답하는 법을 언제나 배워야 한다.

Ⅲ. 그의 초대에 대한 바실래의 답변.

1. 그는 과분한 왕의 관대함에 감탄하여 자기의 공로는 감추고 왕의 업적을 확대했다. “왕께서 어찌하여 이 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36절). 

종이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어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어떤 봉사도 왕의 영광을 위하여 했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하늘 나라가 상속될 때 이 세상에서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행한 대로 갚으신다. 봉사한 것과 상급이 엄청난 차이에 놀랄 것이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 주의 주되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마 25:37),

2. 그는 초대를 사절했다. 

그는 이처럼 후박한 초대를 사양하는 심정을 왕이 이해해 주기를 원했다. 그는 왕과 함께 있는 것을 행복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늙었으므로 특히 왕궁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다.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34절).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으니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가 너무 늙었기 때문에 왕궁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전혀 멋을 모르는 사람에게 잘못 주는 것이요, 버리는 것이다. 모세 때도 있었고 바실래 때도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그렇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10).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 식욕을 잃으면 진수성찬도 맛이 없다. 노인의 귀에 음악을 들려 주는 것은 수심이 있는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러므로 어떻게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바실래의 기쁜 감정을 배워야 한다. 필요한 일만 하는 예절을 배우라. 나이 많은 바실래는 왕에게 도움은커녕 오히려 누를 끼칠까봐 염려했다. 선한 사람은 남에게 폐가 될 만한 곳에는 가지 않는 법이다.

(2) 노쇄기의 바실래는 긴 일생의 나그네 여행길을 회상하면서 세상을 떠날 것을 생각했다(37절). 

노인이 되면 특별히 죽음에 관해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청컨대 종을 돌려 보내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라고 바실래가 말했다. 나의 무덤은 준비되어 있으니 나의 안식처에 가서 쉬게 하소서라고 했다.

3. 그는 그의 아들 김함에게 가까이 대해 줄 것을 왕께 요청했다. 

그를 데리고 가서 왕의 처분대로 해 주기를 바랬다. 김함에게 베푼 왕의 총애는 바실래에게 베푼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노인들은 자기가 젊었을 때 즐기던 것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싫어해선 안 된다. 은퇴할 때까지 그들을 제한해서도 안 된다. 바실래는 자기만 돌아가고 김함은 왕을 따라 가기를 원했다. 

그것은 자기의 불행을 김함에게 물려 주고 싶지 않았으며 그를 크게 성장시키고 더욱 발전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Ⅳ. 다윗이 바실래에게 작별 인사를 하다.

1. 다윗은 바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위하여 복을 빈 후 그를 자기 성으로 돌려 보냈다(39절). 

그는 바실래의 친절에 대해 보답하는 뜻에서 그를 늘 사모할 것과 그를 위해서 늘 기도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네가 내게 요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38절)라고 약속하고 작별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2. 다윗은 김함을 데리고 떠난다. “내가 너에게 좋아하는 대로 저에게 베풀겠고”라고 약속하고 떠났다. 

경험 많고 호인인 은퇴자 바실래는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살기보다는 예루살렘 가까운 촌에 안주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곳이 오랜 후에 우리가 읽기는 다윗성 베들레헴 가까운 곳이였다고 알려졌다. 

그곳은 김함의 거주지로 불려졌고 그곳은 왕실 소유지였으나 그에게 분배되었거나 혹은 그의 소유가 몰수되었던 것이 아니라 다윗의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토지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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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와 이스라엘의 충돌(삼하 19:40-43)

다윗이 유다 백성들에 의해서만 호행(扈行)을 받으며 요단강을 건너왔다. 그러나 길갈까지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장로들과 귀족들) 왕을 영접하러 와서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 그가 돌아옴을 환영했다. 그러나 그들이 늦게 왔기 때문에 왕의 입성을 성대하게 환영할 우선권을 뺐겼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그들의 충돌의 동기가 되었다. 그것이 그날의 감격을 깨뜨렸고 불운촉발의 시초가 되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 앞에서 유다 백성에 대한 불평을 말했다(41절). 왕을 초빙하는 일에 무관심하던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였는가. 왕이 요단을 건너도록 일을 성취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인데 하고 불평했다. 이런 감정은 유다 사람들에게 반영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왕을 생각하고 왕의 복귀를 기다렸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왕 자신도 유다 사람들이 이 일을 생각하기 전에 말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11절 참조). 그가 돌아왔을 때 마치 그의 찾던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왕의 총애를 독점이나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질투와 교만에서 오는 행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보라.

2. 유다 백성들의 답변(42절).

(1) “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왕을 모시는 일에 우선권을 가질 만하다고 그들은 입증했다. 그가 온 곳은 자기 나라인데 누가 그를 모시기에 적합하겠는가.

(2) 유다 사람들은 자기 본위로 환심을 얻으려는 자들을 그들이 행한 일로 반박했다. “우리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것이 있느냐?” 다만 우리는 의무를 이행했을 뿐이다. 그의 복귀를 이루기 위해 독점한 일도 없다라고 반박했다. 

3. 유다 사람들의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변증. “우리는 왕에 대하여 10분을 가졌으니 다윗에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43절). 유다 사람은 시므온 지파 뿐이지만 대부분의 지파가 모두 이스라엘에 속해 있었다. 다수파를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에 대해 얼마나 미진한가를 생각해 보라. 그들이 얼마전 왕을 추방하는 데 앞장서더니 이제는 왕을 경배하고 모셔오는 일에 앞장서려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선한 사람의 길은 언제나 신임을 받게 마련이다. 비록 당분간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지만은 곧 회복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싸움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모욕감에서 오는 초조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대부분이 등한심 때문인 것이다. 유다 사람들이 만약 자기들의 골육 친척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잘되었을 것을,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우리가 한 일이 아닐지라도 결과가 좋거든 잘된 것이다. 불평도 말고 무시하지도 말라.4. 성경은 불평의 방법으로 자기 감정을 주장하는 이들을 경고한다.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43절). 비록 우리가 옳고 우리편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만일 강경하게 우리 감정을 표현한다면 하나님은 경고하시고 이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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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삼하19:29)....그는 다윗이 도망가는 경황이 없는 가운데 다윗의 미래와 안위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그 틈새시장(?)을 이용하여 그의 주인 므비보셋을 참소한 자다. 그렇게 했는데, 다윗이 돌아오면 모든 것이 들통 날 것 같으니까 아들과 종을 대동하고 와서는 이실직고하는 뜻에서 머리를 조아린다....삼하 16:1-4에서 시바가 하는 말을 들으면 므비보셋에게 허물이 있는 것 같아보인다.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모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을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과 건포도 일백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뇨 시바가 가로되 나귀는 왕의 권속들로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소년들로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곤비한 자들로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시바가 가로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삼하16:1-4)...시바가 가지고온 물품들과 그가 하는 말을 들고 다윗은 그가 자기를 무척 염려하는 애국자처럼 보였다. 그래서 다윗은 시바의 말만 믿고 므비보셋의 재산을 몰수하여 시바에게 준다고 선언해 버렸다.....그런데 다리를 절어 걷는 것이 온전치 못했던 므비모셋은 다윗을 맞으러 나아오지 못하고 다윗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에야 알현을 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저에게 물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 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엿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종 나를 내 주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삼하19:25-28)...왕의 복권으로 시바의 거짓은 들통이 났으며 므비보셋의 억울함과 누명은 벗겨지는 장면이다....“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 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12“19)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잠18:17) 라는 잠언이 증명되는 장면.... . ...그런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러한 므비보셋의 변증을 듣고 취한 다윗의 행동이다. ..므비보셋은 모함을 당하고, 전 재산을 시바에게 빼앗겼다. 그러면 므비보셋을 모함하고 속인 시바를 요절내고 그의 모든 재산을 압수해서 다시 므비보셋에게 주는 것이 합당해 보이는데 다윗은 시바와 ‘밭을 나누라’ 라는 다소 엉뚱한 결정을 해 주고 있다...“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삼하19:29)...다윗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지금 이스라엘의 왕으로 서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의 시초와 결말을 보고서야 자신의 성급한 결정이 경솔했음을 보면서 불완전한 자신을 본 것이다. 아마 므비보셋이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 같으시니” 라고 말을 할 때는 왕의 사자 같이 하지 못한 - 므비보셋에게 사실을 확인해 본 뒤에 시바에게 전 재산을 주라고 해도 늦지 않는데 -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불완전한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듯이 도망가는 다윗이 경황이 없어하는 그 와중에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 참소한 시바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윗이 안 것이니,. 만약 여기서 다윗이 심판을 칼 같이 하여 시바. 만약 여기서 다윗이 심판을 칼 같이 하여 시바의 모든 것을 빼앗아 므비보셋에게 주라고 했으면 므비모셋은 좋을지 모르지만 시바는 이 세상 어디 더 갈 곳이 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 시바가 한 행동이 옳아서가 아니라 시바도 자비와 긍휼이 필요한 사람임을 다윗이 안 것,. 그래서 므비보셋 보고 ‘시바와 밭을 나누라’고 한 것이다. 다윗이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무슨 사건을 통해서? 바로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이다.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무너진 자신을 보고 알았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30:18)

==호크마==

..사무엘하 19장

1 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ㅇ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 이는 성내에 있던 한 사람이 이제 막 전쟁터로부터 회군(回軍)하는 요압에게 달려가 다윗 왕의 동정(動靜)을 보고한 사실을 의미한다. 

이처럼 요압에게 달려가 왕의 슬픔을 알린 이유는 개선하는 군사들을 맞이하는 대대적인 환영식(歡迎式)이 없는 데 대하여 요압과 군사 들의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Lange).

ㅇ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 여기서 `울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카'는 `애곡하다',`호곡하다'는 뜻으로 곧 `소리내어 크게 우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13:36; 창 45:14; 신 21:13; 스 10:1; 왕하 20:3;22:19;애1:2).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ㅇ그 날에 백성들 에게 들리매 - 압살롬의 군대를 쳐부수고 돌아오는 그 날 요압에게 보고된 사실이 개선(凱旋)하는 군사들에게 소문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말이다.

ㅇ그 날의 이김이...슬픔이 된지라 - 이는 승전(勝戰)한 다윗의 군사들이 매우 처량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 한사람의 절제되지 못한 감정 처리가 공동체에 심각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이김'에 해당하는 `테슈아'란 말은 어떤 고통이나 속박 또는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구원' 또는 `구출'을 가리키는 전쟁 용어이다.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ㅇ부끄러워...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 이는 승전한 군사들이 마치 패잔병(敗殘兵)들처럼 슬며시 입성(入城)하는 모습을 묘사한것이다. 특히 여기서 `부끄러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칼람'은 더러운 죄를 범한 사람이 자기의 죄를 부끄러워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겔 16:27, 61; 43:11; 사45:16).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의 군사들이 승전한 군사들의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크게 죄를 지은 자들과 같이 초라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입성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구절에서 우리는 개선하는 군사들을 맞이하는 대대적인 입성식 또는 환영식이 전혀 없었뿐만 아니라 군사들 조차도 대오(隊伍)를 맞추어 의기 양양하게 입성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뿔뿔이 흩어져 입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Lange, The Interpreter's Bible).

4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ㅇ왕이 엎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 이는 승전의 소식(18:28-32)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압살롬의 죽음만을 생각하는 다윗 왕의 비통한 심경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Wycliffe Bible Commentary). 즉 여기서 얼굴을 가리운 것은 왕의 극한 슬픔을 나타내는 표시였으며(사 53:3). 또한 큰 소리로 부르짖은 것은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자신의 슬픈 감정을 터뜨린 행위였다.

ㅇ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 성경 문학상 감정을 점층적으로 고양시키는 반복법적(反復法的) 표현 으로, 다윗의 호곡(號哭)이 지금도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이토록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 절규한 이유는 자신의 양심에 저리도록 사무치는 회한(悔恨)이 있기 때문이다. 즉 다윗의 처절한 애곡 속에는 단순히 아비로서 아들의 죽음에 대한 혈육의 정 뿐만 아니라 과거 자신이 지은 죄악의 보응이라는 심한 자책감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5 요압이 집에 들어 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ㅇ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 업무를 전폐하고 압살롬의 죽음만을 비퉁해 하는 다왹의 행동에 대해 정치적 불안을 느낀 요압은 민심(民心)의 동요를 우려하여 백성들의 대변인(vox populi)으로 자처하였던 것이다(Hertzberg). 비록 요압이 다윗의 깊은 심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약간 무례하고 강경한 어조로 항변한 것은 사실이지만(Smith), 당시 요압의 이러한 행동은 다윗 왕으로 하여금 그의 걷 잡을수 없었던 감정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던 적절한 직언(直言)이었다고 할 수 있다.

ㅇ왕의 생명과...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함 - 여기서 요압은 이번 건쟁의 승리로 말미암아 왕과 그 전 가족의 생명이 구출되었다고 말하고있다. 그런데 이와같은 요압의 말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압살롬이 이번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더라면, 그는 고대 근동 지방의 관습에 따라 선왕(先王)과 선왕의 전 가족들을 몰살시키고야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Smith, Lange). 

ㅇ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 이는 아낌없는 칭찬과 대대적인 환영을 받아야 될 모든 군사들에게 오히려 수치를 안겨 준 다윗 왕의 처사를 책망하는 요압의 말이다. 즉, 여기서 요압은 승전한 군사들을 기쁘게 영접하고 칭찬하는 것이 왕의 중요한 임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감정에 매여 오히려 군사들의 사기만 저하시킨 왕의 무책임한 처사를 날카롭게 지적하였던 것이다.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뻔하였나이다

ㅇ미워하는 자 - 곧 다윗 왕을 거스려 반역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을 가리킨다.

ㅇ사랑하는 자 - 곧 다윗 왕을 위하여 목슴 걸고 싸워 압살롬의 군대를 쳐부순 `다윗왕의 신하들'을 가리킨다.

ㅇ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 이 구절에 대한 보다 정확한 해석은 `오늘 당신은 당신에게 장관들과 신복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하셨나이다'이다(F.R Fay). 즉 장관들과 신복들은 마치 존재하지도않는 자들처럼, 다윗 왕은 그들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는 말이다.

만일 압살롬이 살고.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 요압의 말대로 만일 압살롬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왕과 그 가족 모두는 압살롬의 손에 죽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다윗 왕이 이와 같은 결과를 참으로 바라고 있었던 양 표현한 요압의 이 말은 너무나도 무정한 말이었다(R. Payne Smith). 먼저 요압은 여기서 다윗의 슬퍼하는 심정을 올바로 이해함이 없이 거침없이 말하였다. 즉 다윗의 슬픈 감정은 단지 압살롬의 죽음 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뼈저린 뉘우침이기도 하였는데, 요압은 이러한 다윗의 속사정을 몰라주고 거침없이 말하였던것이다.

ㅇ또한 요압은 슬퍼하는 다윗의 감정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다윗 왕은 비록 지금은 슬퍼하고 있지만 이번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숭리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말 속에서 요압의 거칠고 사나운 기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요압의 사나운 비난은 오히려 다윗 왕으로 하여 금 자기의 임무를 다시금 깨닫게 한 좋은 자극제(刺戟劑)가 되었다. 이는 요압이 비록 무정한 사람이긴 했지만, 백성들의 소리를 그대로 대변했기 때문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찌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ㅇ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 이 구절의 원문을 직역하면,` 신복들의  마음에 말씀하소서'가 된다. 이는 곧 신복들의 불평을 달래면서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라는 권면이다.

ㅇ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모든 화보다 더욱심하리이다 - 혹자들(Josephus,Matthew Henry)의 주장처럼, 이는 요압이 자신의 반역 의사를 내비친 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요압은 여기서 다윗왕이 계속해서 자기의 슬픈 감정에만 휘말려있으면, 자연적으로 민심이 동요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다시금 왕위를 노리는 반란이 이어지게 될 것이고, 이제 또다시 반란이 일어나게 되면 사태는 것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도 높게 경고한 것이다.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ㅇ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 고대 사회에서 성문(城門)은 매매, 행정, 집회 등의 주무대였다(룻4:1,2 삼상 9:18 ;욥29:7 ;암 5:10, 12). 아울러 성문은 왕이 백성들과 만나는 장소였으며 왕의 재판(裁判) 장소였다(15:2). 따라서 다윗 왕이 이곳(마하나임의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자신의 임무를 다시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여기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사들을 치하 격려하고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 왕의 올바른 깨우침을 볼수 있다. 즉 요압의 권고가 비륵 거칠고 무정한 점은 있었으나, 다윗 왕은 그 말의 옳음을 인정하고 요압의 권면을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Keil). 그러나 결국 다윗의 이 같은 결단이 있기까지에는 강권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위로가있었을 것이다(시 40:17; 56:13). 실로 인간의 사정을 그 당사자보다 더 깊이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야 말로 진정 근심과 슬픔과 절망에 짖눌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대상 28:9; 잠 16:2,3).

ㅇ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 이 말은 왕 앞에서 군대의 개선 행진이 있었으며, 또한 승리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왕과 백성들 간에 즐거운 대면이 있었음을 암시해 주는 말이다(Keil, Smith).

ㅇ이스라엘은...도망하였더라 - 여기서 `이스라엘'은 압살롬의 반역에 참가했던 무리들을 일컫는 말이다. 압살롬의 죽음으로 이들은 더 이상 저항할 명분과 기력을 상실하고 각자 뿔뿔이 후어져 자기 장막(처소)으로 도피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나라는 평화를 되찾고, 새로운 상황으로 접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ㅇ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 여기서 '이스라엘의 모든지파'는 유다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변론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둔'은 `다투다', `정죄하다'는 뜻이다(창 15:14; 욥 36:31; 시110:6; 전 6:10). 따라서 이 구절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사람들이 다윗 왕 복권의 지체(遲滯)에 대하여 서로를 책망하였다는 내용의 말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난 것은 지난날 압살롬을 지지했던 자기들의 행동이 크게 잘못된 것이었음을 스스로 자각했기 때문이었다(Keil).

ㅇ우리를 원수의 손에서...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후 백성들이, 과거 다윗 왕이 자기들을 위해 세운 큰 공적을 회상하는 말이다.

즉, 다윗 왕의 순간적인 실수에 대한 반발과 압살롬의 수려한 외모에 반하여 압살롬의 반란에 참여했던 백성들이, 이제 상황이 달라지자 다윗 왕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평가했던 것이다.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ㅇ무리가 기름을 부어...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 우리는 이 구절에서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는 공식적인 행사, 곧 기름 부음 받는 의식(儀式)이 분명히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식이 분명히 `이스라엘 온 무리'라 일컬었고, 다윗의 군사들을 `백성들'이라 일컬었던 것으로 추측된다(Pulpit Commentary). 또한 `다윗 왕이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다'고 한 9절의 표현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무튼 압살롬의 공식적인 즉위식(卽位式)은 다윗 왕의 복권(復權)에 다소 장애가 되는 것이었다. 다시말해서 다윗 왕이 복권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 선언이 그에게 또다시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윗 왕은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예루살렘으로 곧 돌아가지 아니하고, 마하나임 성에 그대로 남아 백성들의 대대적인 지지선언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왕의 복권 이유로 압살롬의 전사(戰死)를 들고 있다. 즉, 그들이 지지했던 압살롬이 이제는 죽고 없으니, 다윗 왕을 복권시키자는 논리였다. 우리는 여기서 만일 압살롬이 살았더라면 그들이 압살롬을 계속 지지했을 것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R. Payne Smith). 따라서 다윗 왕을 복권시키자는 그들의 소리는 다분히 이해 타산적이며 현실적인 것이었다(Herzberg). 우리는 이와 같은 움직임 속에서 당시 백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즉, 한편에서는 지난날 압살롬을 지지했던 자기들의 과오를 인정함과 동시에 다윗 왕을 다시금 존경하면서 그의 복권을 주장하는 참신한 무리들이 있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껏 압살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만 그가 죽었으므로 나라의 안정을 위해 다윗 왕의 복권을 주장한 현실주의자(現實主義者)들도 있었으며, 또는 이미 대세(大勢)가 다윗 왕에게로 기운것을 파악하고 재빨리 친(親) 다윗계로 처신하는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들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와같은 당시의 상황 속에서 다윗 왕에 대한 또 하나의 반란을 예상할 수 있다(20:1-26).

11 다윗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 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ㅇ다윗 왕이...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 이는 다윗 왕이 유다 지파와의 교섭을 위해 당시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두 제사장, 곧 사독과 아비아달을 교섭의 실무자(實務者)로 임명하는 장면이다. 다윗 왕이 이처럼 유다 지파와의 교섭을 시도하게 된 동기는 다른 이스라엘 지파내에서 일어났던 다윗 왕의 복권 추진 움직임 때문이었다(9, 10절). 즉 만일 이스라엘 지파들만이 다윗 왕을 지지하는 가운데 그가 꼭 복권된다면, 다윗 왕과 유다 지파 사이는 대단히 소원(疏遠)한 관계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유다 지파가 다윗 왕을 지지하지않을 경우, 다윗 왕을 복권시키겠다고 나선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은 그들의 왕을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 다시 말해서 자기들의 성읍 으로 모실 위험성까지 있었던 것이다(Wycliffe Bible Commentary). 또한 다윗 왕은 자기가 이스라엘 지파들에 의해서만 복권될 경우,자기의 통치력이 심히 약화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Hertzberg). 왜하면 다윗 왕은 유다 지파출신으로서, 만일 타 지파에서 반란을 일으킬경우 그를 지지할 지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윗 왕은 자신이 복권하는데 유다 지파도 적극 참여시킴으로써, 과거 압살롬의 반역을 주도했던 유다 지파의 죄를 용서하고 온 나라의 총화 단결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이다(Leon Wood).

ㅇ유다 장로들 - 이들은 유다지파를 다윗 왕에게로 돌릴 수 있는 실제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침묵을 지킨 것은, 이들이 압살롬의 반란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들 다윗 왕이 복권된 후 자기들에게 미칠 후환(後患)을 우려하여 잠가코 있었던 것이다(R. Payne Smith).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ㅇ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 여기서 다윗 왕은 자기가 유다 지파 출신이므로 유다 지파 바로 그들이 자기의 복권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와 갈은 다윗 왕의 말은 자기를 반역한 유다 지파에 대해 유화정책적(宥和政策的) 발언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다윗 왕의 제안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분열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다윗 왕의 제안을 받아들인 유다 지파 다윗 왕의 복권에 적극 앞장서게 되었으며, 이에 대해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이 불평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40-43절).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스라엘은 세바(Sheba)의 난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골육'(骨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쳄 우바사르'를 직역하면, `뼈와 살'(bone and flesh)이란 뜻이다. 이는 곧 피를 나눈 친척이나, 또는 자기 신체의 일부라 할 정도로 가까운 인간관계를 멎고 있는 자에게 사용되는 히브리 문학의 한 표현이다.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ㅇ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 압살롬의 군장(軍長)이었던 아마사(Amasa)는 실제로 다윗 왕의 조카였으며, 요압과는 사촌지간이었다(1717:25; 대상22:16,17).

ㅇ요압을 대신하여...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 여기서 다윗 왕은 요압(Joab)을 축출하고 새로이 아마사를 자기의 군장으로 삼으려 한다. 이처럼 다윗 왕이 요압을 축출하려 한 이유는 요압에 대한 그의 좋지 못한 인상 때문이었다. 즉 요압은 다윗 왕이 죽이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 압살롬을 죽인 장본인이었으며(18:14), 또한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하여 다윗 왕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사납고 거친 비난을 서슴치않았던 자였고(5-7절; Hertzberg), 그리고 요압은 다윗 왕의 집권 초기에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부당하게 죽인 난폭자였다(3:27, 39). 그러나 이러한 요압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 외에 또 다른 측면에서 다윗 왕은 아마사와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즉 다윗 왕은 당시 반란군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반대 세력들을 모두 규합(糾合)하려고 하였던 것이다(The Interpreter's Bible, The Wycliffe BibleCommentary).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이유로서, 다윗 왕은 아마사를 자기의 군장으로 삼음으로써 자기를 반역했던 모든 압살롬의 추종자들에게 자기는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자 했던것이다(Payne).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아마사 등용 정책은 불공평하고 현명치 못한 처사였다(Smith). 즉 다윗은 화합이라는 대 전제 아래 무모한 관용과 앞뒤를 가늠하지 않은 결단함으로써 재난의 불씨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20:10). 특히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살해한 요압(4:14, 15)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있었다 하더라도 요압은 반란군 진압의 공헌자였다. 그런데 그러한 요압을 제쳐놓고 반역의 최일선에 섰던 자를 군대의 통솔자로 삼은 것은 다윗의 실수로 밖에 볼 수 없다. 즉 그때 다윗은 공의로운 통치 원리보다 인간의 이해를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거나 실수를 범하게 마련이다(마 26:69-75). 결국 이러한 다윗의 처사에 앙심을 품은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한 점(20:8-13)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의 다윗의 처사는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고 판단된다(Keil, Wycliffe Bible Commentary).

14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ㅇ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 여기서 `돌리게 하매'의 주체는 아마사나 대제사장들 (사독과콰 아비아달)이 아니라 바로 다윗 왕이다. 즉, 본 구절에서 저자는 유다 지파에 대한 다윗 왕의 지혜로운 정책(11,12절)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음을 묘사하고있다(Keil, Lange).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네려 하여 길갈로 오니라

ㅇ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 압살롬의 추격을 피해 급히 요단 강을 건널 때(17:22)와는 정반대의 상황 속에서, 다윗은 자신의 권속과 승전한 군대를 거느리고 위풍 당당하게 요단 강에 이르렀다(F.R fay).

ㅇ요단을 건 네려하여 - 이는 `다윗 왕을 호위하여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도록 하기 위하여'란 뜻이다(Keil).

ㅇ길갈 - 엘리사의 길갈(왕하 2:1-4), 갈릴리에 있는 길갈(수12:23), 유다의 경계 지역에 있는 길갈(수 15:7), 에발 산 근처에 있는 길갈(신 11:30) 등이 있으나, 여기의 길갈은 여리고 근처, 곧 요단강가의 길갈을 의미 한다. 이곳은 여호수아가 요단을 긴넌 후 진을 치고 12지파의 기념비를 세운 곳이다(수 4:19, 20절). 한편 이곳은 바로 요단 강가에 위치했으므로, 유다의 장로들이 다윗 왕을 맞 이하는 이 편리한 곳이었다(R.Payne. Smith).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왕을 맞으려 내려올 때에

ㅇ바후림 -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16:5).

ㅇ게라의 아들 시므이 - 시므이는(Shimei)는 베냐민 사람이며, 자기 지파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자이다. 또한 그는 지난번 다윗 왕이 압살롬 난을 피하여 도망갈 때 왕에게 돌던지며 혹독하게 저주했던 사람이다. 16:5-8부분의 주석 참조.

17 베냐민 사람 일천명이 저와 함께하고 사울의 사환 시바도 그 아들 열 다섯과 종 스무명으로 더불어 저와 함께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ㅇ베냐민 사람 일천 명이 저와 함께하고-.`길갈'은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 있는 지역이었다(수 4:19). 그리고 예루살렘 성(城)또한 이 지파의 경계에 위치했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유다 지파와 더불어 왕을 영접하기 위해 성의를 보였던 것이다(Hertzbrg). 그러나 다윗 왕을 마중나온 일천 명의 사람들은 시므이가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데리고 온 자들이었다(Schmid, Payne). 즉, 지난번의 큰 과오(16:5-8)를 용서해 달라는 표시로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왕의 환궁(還宮)을 환영함으로써 왕에게 아첨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베냐민 지파 내에서의 시므이의 실권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즉.시므이는 일천 명의 사람들을 능히 동원할 수있는 지파 내의 실력자였던 것이다(Smith).

ㅇ시바도 그 아들 열 다섯과 종 스무 명으로 더불어 - 시바(Ziba)는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의 종으로서, 사울의 유산을 관리하던 자였다. 그는 지난번 다윗 왕이 난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자기의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하여 므비보셋의 재산을 착복한 자였다(16:3, 4). 그런데 이제 다윗 왕이 복권하여 다시 돌아오자.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다윗 왕의 환심을 사려는 목적으로 마중나온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시바가 자기의 여러 식솔들을 데리고 온 것은 다윗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첨의 행동이었다.

ㅇ요단 강을 밟고 건너 - 여기서 `밟고 건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찰레아흐'는 여호와의 신이 임하듯 `급히 임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삼상10:6; 삿 14:19; 15:14). 따라서 이 말은 시므이와 시바가 요단 강을 급히 건너 요단동편에 있는 왕 앞에 당도한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Lange). 이처럼 저들이 다윗 왕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자 애쓴 까닭은 왕에 대한 충성심을 보임으로써, 지난 날의 과오에 대한 형벌을 면해보고자 함이었다(Hertzberg). 여기서 우리는 시대의 조류에 재빠르게 편승하는 기회주의적인 두 인물을 본다. 즉 이들은 이제 정국이 다시 다윗의 시대로 복귀되자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지극히 겸손한 가세로 다윗을 맞으러 발벗고 나섰던 것이다.

18 왕의 가족을 건네려 하며 왕의 선히 여기는대로 쓰게 하려하여 나룻배가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려

ㅇ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려 - 여기서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베아브로 바야르덴'을 직역하면 `그가 요단을 건넜을 때에'(as he crossed the Jordan)이란 뜻으로, 사실상 주어가 구체적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 구절의 주어를 다윗왕으로 본다(Keil, Bunsen). 그리하여 `다윗 왕이 건넜을 때에'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시므이와 시바일행이 황급히 요단 강을 건넜다고 한 17절의 기록과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의 주어는 시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Lang,Pulpit Commentary, Hertzberg). 왜냐하면 본 구절에서는 황급히 다윗 왕에게 사과하는 시므이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시므이가 요단을 거너자마자 곧(as soon as) 왕의 앞에 엎드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구절에서 우리는 다윗 왕이 아직 요단 동편에 있을 때에 시므이가 황급히 요단 강을 건넜고, 또한 요단 강을 건넘과 동시에 왕 앞에 무릎 꿇는 시므이의 즉각적(卽刻的)인 행동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므이가 왕 앞에서 즉각적인 굴복과 사죄의 행동을 취한 것은 지난날 그가 다윗 왕에게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던 큰 과오(16:5-8) 때문이었다.

19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ㅇ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마음에 두 지 마옵소서 - 이는 시므이가 구차하게 자기의 지난 날의 과오를 변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다. 아울러 용서를 구하는 시기도 매우 시의(時宜) 적절했다. 그러나 시므이는 자기의 죄를 참으로 회개한 것은 아니었으며, 다만 자신이 무사하기만을 위해 빌었던 것이다(Keil, Fay).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줄 아옵는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ㅇ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 와서 - 여기서 `요셉의 온 족속'은 다윗이 속해있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를 가리킨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요셉족속의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를 의미한다(삿 1:22, 35; 시78:67). 즉 에브라임 지파는 넓은 땅과 많은 인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 지파에 대한 지배권(支配權)을 갖고 있던 가장 강력한 지파였기 때문에, 흔히 `에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온 지파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결국 여기서도 요셉의 온 족속이란 말은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총칭하는 말이다(왕상 11:28; 대상 5:1,2; 암 5:6). 이렇게 볼 때 베냐민 지파 소속인(4절) 시므이의 이와 같은 말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 자기가 제일 먼저 요단 강을 건너 왕을 영접한다는 아부의 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기서 이스라엘 온 지파의 `첫 사람'(Thefirst Israelite)이라고 자처하면서 왕 앞에 절함으로써, 이제 온 이스라엘이 왕의 지배권 하에 있게 됐음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시므이는 이스라엘이 다시금 다윗 왕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된 최초의 순간에 사죄함으로써 왕의 무서운 형벌을 피할수 있으리라 생각했던것이다(Hertzberg). 이와 같은 시므이의 처신은 비록 교활하고 가증스럽기는 했으나, 또 한편 으로는 매우 대담하면서도 지혜로운 처신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므이의 이러한 처신속에는 진실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왕상 2:46).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ㅇ아비새가...가로되...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 일찍이 아비새는 시므이가 피난중의 다윗 왕을 저주할 당시에도 의분을 터뜨리고 그를 죽이려 했었다(16:9). 지금 아비새는 그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다시금 시므이를 죽일 것을 주장한다. 사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저주한 자는 마땅히 처형시켜야 한다는 아비새의 말은 옳다(출22:28). 그리고 다윗도 아비새의 말에 감정적으로는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피난의 긴 여정을 마감하고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했다. 따라서 다윗은 아비새의 진언을 거절하고 시므이의 사면(辭免)을 허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즉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16:5-13)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도전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기름 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의 대권을 위임받은 자라는 인식에 근거, 삼상 26:9-11)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비록 현실적인 문제(민심 수습)로 그를 당장에 처단하지는 않았지만 끝내는 처형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왕상 2:8,9). 인간이 범하는 실수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과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 주권적 사역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22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ㅇ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 여기서 `대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탄'은 본래 '사단', 또는 '대적'을 의미한다(대상 21:1; 욥 1:6-9; 2:1; 시109:6).그러나 여기서는 `중간에서 길을 막는 방해자(妨害者)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민 22:22). 즉 다윗 왕은 지금 왕위(王位)를 회복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으며, 온 나라는 새로운 태평시대를 앞두고 있었다. 이러한 마당에 선왕(先王) 사울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실권자 시므이를 죽이는 처사는 아직껏 사울 왕가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베냐민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일로서, 곧 나라의 평화를 깨뜨리고 마는 치명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다윗 왕은 시므이를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비새를 나라의 평화를 방해하는 방해자로 규정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을 초월하여 나라의 안정을 내다보는 다윗 왕의 폭넓은 지도력을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다윗왕이 아비새를 가리켜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복수(plural)로 칭한 것에 대해 반드시 아비새의 형 요압이 아비새의 주장에 협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Smith), 다만 아비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리 경고를 주기 위하여 스루야의 아들들로 통칭 표현하며 책망할 듯하다. 한편, 본절에서 시므이의 사면을 허락하는 다윗의 말 속에 `오늘'이라는 말이 세번씩이나 반복 언급되는 것은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사면에 `모든 지파의 화합'이라는 당시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깃들어 있음을 은연중 시사한다(F.R. Fay).

23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ㅇ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 다윗 왕이 시므이를 사면(赦免)해 준 것은 주로 정치적인 의도에서였다. 즉 다윗은 반대파인 시므이를 사면해 줌으로써. 이스라엘지파 특히 베냐민 지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아니하고 온 지파의 화합을 도모하려 했던 것이다. 즉 이러한 차원에서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한 다윗의 맹세는 온 나라의 화합을 추진하는 왕의 의도를 백성들에게 자연히 보여주는 일종의 제스쳐였다.

그러나 후일 다윗 왕은 그의 임종시에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벌하도록 명하였다(왕상2:8, 9). 그리고 솔로몬은 부친의 명을 좇아 결국 시므이를 처형시켰다(왕상 2:46).

그런데 여기에 대하여 두 가지의 견해가있다. 다윗은 결국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않은 셈이다(Keil). 즉 다윗은 자신의 인간적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복수를 하고 만것이다.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해야 한다'(시 15:4)고 읊은 사람은 바로 누구였던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시므이롤 처벌하라고 부탁한 것은 자신의 맹세와 모순되지 아니한다(Lange). 즉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사면 맹세는 자신의 집권 당대에만 유효한 것일 뿐, 이후의 왕에 대해서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다윗은 솔로몬 치세 때의 번영과 안정을 위하여 암적 존재요 상습적 모반자인 시므이를 경계. 처벌토록 부탁했던 것으로, 오히려 현명한 조처라고 볼 수 있다.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저에게 물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ㅇ예루살렘에서 와서 - 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Dathe, Thenius)란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석할 경우 24절의 `내려와서'(야라드)란 말과 중복되기 때문 이다. 또한 이는 `예루살렘에 왔을 때'(LXX, Luther, Michaelis, Maurer)란 뜻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므비보셋이 이미 예루살롑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16:3의 내용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예루살렘이 왔을 때'(키 바 예루솰람)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거민의 대표자들, 또는 그 주민들을 의미하는 말이다(Keil, Lange). 즉 므비보셋은 다윗 왕을 맞이하도록 파견된 예루살렘 주민 대표단 가운데 끼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다윗 왕과 므비보셋의 만남은 요단 강변에서 있었다 (Leil andDelizsch, Vol. 2-2. pp.447-448).

ㅇ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 이는 다윗 왕의 책망조의 질문이다. 이처럼 다윗이 모처럼 만난 므비보셋에게 책망조로 말한 것은 다윗 왕이 기왕에 므비보셋을 모함한 시바의 말(16:3)을 염두에 둔 까닭이었다.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ㅇ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 실제로 절뚝발이는 나귀에 안장을 지을 수 없다. 따라서 본 구절의 실제의 뜻은 므비보셋이 그의 종 시바에게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고 명령한 것을 의미한다(Keil, Smith, Fay). 이처럼 자기가 직접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자신이 한 것처럼 기록하는 것은 성경기록의 문학적 특징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창22:3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ㅇ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 여기서 `속이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마'는 우연한 거짓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빼앗기 위해 고의적으로 속이는 악한 행동'을 묘사하는 말이다(창 29:25; 수 9:22; 삼상 19:17; 28:12; 잠 26:19; 애1:19). 따라서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사실로 보아 므비보셋은 여기서 시바를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므비보셋이 다윗 왕앞에서 시바를 거리낌 없이 정죄할 수 있었던 요인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시바는 주인을 태우고 가야할 나귀에, 대신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예물을 가지고 혼자 갔다(16:4). 즉 시바는 주인을 버리고 혼자서 다윗 왕을 만난 것이다(Fay). 그리고 시바는 주인 집 으로 돌아온 직후 곧 바로 다윗 왕의 명령대로(16:4) 므비보셋의 재산을 가로챘던 것이다(Keil).

27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ㅇ참소하였나이다 - 기본동사 `라갈'은 '험담하다', '물어뜯다', '비방하다',란 뜻으로, 곧 자신의 유익 또는 어떤 목적을 노리고 상대방을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중상하고 모략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사단의 대표적인 속성이요, 악인의 가장 큰 특징이다(계 12:10).

ㅇ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 여기서'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일을 수종드는 천사를 가리키는 말이다(14:17). 그러므로 여기서 므비보셋이 다윗 왕의 공정한 심판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을 신뢰하고 있음을 고백한것이다. 즉 다윗 왕은 신적 권위를 가진 공의로우신 분으로서, 그가 내리는 판단은 반드시 공정할 것이라고 므비보셋은 믿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 왕의 인격을 절대 신뢰하는 므비보셋의 충성심을 볼 수 있다. 이는 일찍이 부친 요나단이 다윗에 대해 가졌던 신뢰와 사랑과 충정을 연상케 한다(삼상 18:1,3; 19:1;20:42).

ㅇ처분대로 하옵소서 - 처음 다윗은 므비보셋을 의심했다(25절). 이에 므비보셋은 자신의 불편한 몸과 시바의 죄악에 관해 언급하고, 오직 다윗의 공의로운 판단에 맡길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므비보셋은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로 다윗의 인격을 인정하고 그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고자 했던 것이다.

28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ㅇ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 여기서 므비보셋은 자기가 사울 가(家)의 사람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당시의 관례 대로라면 사울의 직계 혈통인 므비보셋은 새로운 왕 다윗에게 죽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다윗 왕으로부터 어떠한 처분을 받더라도, 그저 지금까지 받은 은혜에 감사할 뿐 그외 다른 어떤 소원도 전혀 없음을 겸손히 말하고 있는것이다.

29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ㅇ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 사울 왕가의 므비보셋에게 자신이 베푼 은혜를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다윗의 말이다.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다윗 왕은 므비보셋의 재산중 절반만을 그에게 다시 환수시킨다. 이처럼 다윗이 절반만을 므비보셋에게 환수시킨 것은 분명히 므비보셋에 대해 불공평한 처사였다. 즉 다윗은 마땅히 므비보셋에게 모든 재산을 되돌려주어야만 공평했다(9:7-11). 그러나 다윗이 시바의 참소와 므비보셋의 결백성(潔白性)을 확인하고서도 이같이 행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다윗은 아마도 전 재산을 므비보셋에게 되돌려 줄 경우 16:4에서 내린 그의 결정이 경솔한 것으로 판명되므로, 자기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했을 것이다(Lange). 같은 맥락에서, 또한 다윗은 어쨌든 피난 시절에 시바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에 따라 시바와 일단 약속한 내용(16:1-4)을 완전히 저버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Payne).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다윗이 이러한 판정을 내릴 수 밖에 없도록 작용한 것은 당시 다윗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통치 원리(統治 原理)이다. 즉, 이스라엘 왕위에 복권하는 마당에 있어서 다윗은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보복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Payne). 곧 원만한 탕평(蕩平) 정책을 실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더욱이 므비보셋이나 시바는 모두 사울가와 관련된 인물로서, 이들 중 어느 누구에게 일방적로 불이익이 돌아감으로써 사울가와 관련된 무리들 가운데 불만의 원인이 싹트는 것을 다윗은 원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30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ㅇ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 혹자는 이러한 므비보셋의 말이 왕의 처분에 어떠한 불만을 은연 중 표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다윗의 인격을 진심으로 존경한 므비보셋의 언행(24,27,28절)을 살펴볼 때, 그가 이러한 처분에 대하여 다윗 왕에게 불만을 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절을 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므비보셋의 이와같은 말은 재산 때문에 다윗 왕과의 관계가 소원(疏遠)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말이었다(Lange, The Interpreter's Bible). 즉 이번 일은 재산 때문에 벌어진 일로서, 이것으로 인해 므비보셋은 다윗 왕에게 오해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기는 오직 다윗 왕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 곧 왕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것이며, 그러므로 재산은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므비보셋은 재물보다 다윗과의 관계 정상화를 더 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다윗과의 관계정상화는(그의 식탁에서 먹음, 9:6-13) 므비보셋의 필요를 모두 채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마치 우리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부요하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한 삶을 살게 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롬 10:12; 고후6:10; 계 2:9).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을 보내어 요단을 건네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함께 요단에 이르니

ㅇ길르앗 사람 바실래 - '길르앗'(Gilead)은 요단강 동북쪽이며, '바실래'(Barzillai)는 이곳의 대부호(大富濠)였다(17:27). 그는 다윗 왕이 압살롬에게 쫓겨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소비와 마길과 더불어 다윗 왕을 후원한 사람이었다(17:27-29).

ㅇ함께 요단에 이르니 - 여기서 '이르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르'는 '건너다', '통과하다'란 뜻이다(18:9; 창 15:17; 32:10; 민 32:21; 신 29:16; 욥17:11; 잠 24:30; 렘 48:32). 따라서 본 구절은 바실래가 다윗 왕을 전송하는 과정에서,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넜음을 미리 보여주는 말이다(36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 팔십세라 저는 거부인고로 왕이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ㅇ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 여기서 '공궤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쿨'은 `떠받치다', `유지하다','제공하다' 등의 뜻으로, 특별히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해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이는 길르앗의 거부 바실래가 다윗 왕이 마하나임에 피신해 있는 동안 내내 왕과 그의 일행들을 공궤하였다는 말이다.

ㅇ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 그동안 자기를 공궤해 준 바실래에게 보답하겠다는 다윗 왕의 말이다.

34 바르실래가 왕께 고하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ㅇ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올라가리이까 - 이는 노령(老齡)을 이유로 다윗의 보은(報恩)을 겸손히 사양하는 바실래의 대답이다.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겸손하며, 결코 모남이 없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는 나이에 구애됨 없이 그 삶이 향기롭다. 특히 여기 등장한 바실래는 부자들이 흔히 범하는 교만(삼상25:9-38)과 무관한자로서, 곤경에 처해 있던 다윗을 위문한 일이있다(17:27-29). 더욱이 그때의 선행은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단지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도운 순수한 행위였다(전 11:1). 한편 바실래의 거절을 통해 우리는 늙음과 죽음이 가져다 주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배우게 된다. 인간의 생명에는 그 연한이 있으며(시90:10), 기력은 반드시 쇠할 수 밖에 없다(전12:3-8).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며 온전한 인격을 지닌 자의 늙음과 죽음은 결코 추하지 않다(욥 12:12; 시 92:14,15; 잠 16:31;20:29)

35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오히려 누를 끼치리이까

ㅇ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 이는 선악(善惡) 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이다(왕상 3:9; 겔 44:23; 사 59:2; 욘4:11). 즉, 여기서 바실래는 자기는 이미 노령으로 판단력을 상실해 버렸기때문에, 다윗 왕의 유능한 모사(謨士)가 될 수없는 처지임을 말씀드린 것이다(Lange).

ㅇ음식의 맛을...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 여기서 바실래는 화려한 궁중 생활이 육체적감각이 둔한 늙은이인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36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어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ㅇ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어늘 - 바실래는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넌 목적에 대하여 분명히 밝힌다. 즉, 그 목적은 왕의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을 배웅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바실래나 이러한 그의 목적을 `작은 일'(메아트)이라고 표현하였다(한글 개역 성경에는 그 뜻이 명확하게 번역되지 아니하였다). 한편 후자들은 바실래가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지 않고 요단동편에서 왕과 헤어졌다고 주장하나(Hertzberg, Pulpit Commentary), 이러한 주장은 본 구절의 내용과 상반되므로 지지할 수 없다(Lange).

37 청컨대 종을 돌려 보내옵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컨대 저로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옵시고 왕의 처분대로 저에게 베푸소서

ㅇ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 즉 고향에서 여생을 살다가, 가족의 장지(葬地)에 묻히고 싶다는 노거부(老巨富)의 바램이다. 이처럼 히브리인들은 특히 열조의 묘를 중시했다(창 49:29-31;50:25). 즉 히브리인들은 조상의 묘 곁에 함께 묻힘으로써, 사후에도 조상들과 연관 되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바실래도 자신의 최후 안식처가 부모의 묘 곁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ㅇ김함 - 본 구절에서는 `김함'(Chimham)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왕상2:7로 추추컨대 아마도 그는 다윗 왕을 전송하기 위해 부친 바실래와 함께 내려온 바실래의 아들인 듯하다(Josephus, 70인역). 그렇다면 여기서 바실래는 다윗 왕의 호의에 감사하여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나갈 아들 `김함'을 대신 다윗 왕에게 부탁함으로써, 다윗의 따뜻한 배려를 받아들인 것이다.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내가 너의 좋아하는대로 저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ㅇ내가 너의 좋아하는대로 저에게 베풀겠고 - 다윗 왕은 다른 왕자들에게 하듯이, 바실래의 호의(17:27-20)를 생각하여 김함에게도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토지를 선사하였던 것 같다(Smith). 한편 렘 41:17을 보면, 베들레헴 근처에 `게롯김함', 곧 '김함의 숙소'가 있었는데, 이곳은 애굽으로 가는 여행객이나 또는 대상(隊商)들이 잠시 묵고 가는 여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그리고 후일 바로 이러한 여관에 요셉과 마리아가 일시 지냈다고 한다(눅2:7; Stanley, Jewish church, 2.201). 이외에도 다윗 왕은 임종시에 김함의 안전을 특별히 솔로몬에게 부탁함으로써, 바실래의 호의에 대한 보답을 끝까지 잊지 않았다(왕상 2:7).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바르실래의 입을 맞추고 위하여 복을 비니 저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ㅇ입을 맞추고 - 이는 다윗 왕과 바실래가 아쉬운 석별(惜別)의 정을 나누었음을 보여 준다(룻 1:9).

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호행하니라

ㅇ길갈로 건너오고 -'길갈'(Gilgal)은 여리고 근처이며 요단 강변에 위치했다(19:15). 이곳은 역사적 유적지일 뿐만 아니라, 강변이었으므로 많은 무리의 집합이 가능하였다(수 4:19; 5:10-12;9:6;10:6; 14:6; 삼상 7:16;11:14,1513:7-9).

ㅇ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 - 여기서 유다 백성은 모두 모인 반면 이스라엘 백성은 절반 밖에 모이지 못한 까닭은, 유다 백성이 다윗 왕의 예루살렘 귀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윗 왕이 요단 건널 때에 그 황궁 행사의 주도권은 유다 지파가 행사하였다. 반면,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는 단지 그 주변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모일수 있었던 것이다(Pulpit Commentary,Lange).

ㅇ왕을 호행하니라 - 여기서 `호행하니라'는 말은 `건너다', `통과하다'란 뜻의 동사`아바르'이다. 따라서 이 말은 온 유대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 왕을 호위하여 요단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다.(물론 여기서 `백성'이란 표현은 `백성의 대표자들'을 가리킨다).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서 고하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여 왕과 왕의 권속과 왕을 좇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네었나이까 하매

ㅇ온 이스라엘 사람 - 이는 뒤늦게 왕의 귀환 소식을 듣고, 급히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과 합류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Clericus).

ㅇ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여 - 뒤늦게 길갈에 도착한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은 유다 지파 단독으로 왕의 귀환을 주도했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유다 지파의 단독적인 행사가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왜냐하면 왕의 환궁(還宮) 문제는 온 나라의 협의하에 이루어져야 했으며. 이미 이스라엘 각 지파는 이 문제를 놓고 의논하고 있는중이었기 때문에(9, 10절), 유다 지파는 그 결정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의 불평은 유다 지파와의 경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지파는 사사 시대 때부터 주도권을 장악했던 지파로서, 다윗 시대에 나라의 주도권이 유다 지파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삿8:1;12:1). 또한 이들이 유다 지파소속인 다윗 왕 앞에서 유다지파를 정면으로 불평한 것으로 보아, 유다 지파를 특별히 배려 하고 있는(11-15절) 다윗 왕에 대한 불만도 가진듯하다(The Interpreter's Bible). 결국 이러한 이스라엘 지파의 불평은 수그러들지 아니하고, 곧 세바의 반란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20:1,2).

ㅇ왕을 좇는 모든사람 - 이는 다윗 왕이 압살롬에게 쫓기어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갈때, 왕과 함께 동행했던 무리들을 의미한다(15:17,18).

42 유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내느냐 우리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 주신 것이 있느냐

ㅇ유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 여기서 `대답하되'란 말은 유다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단순히 답변한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말에는 `대적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알'이 첨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 이 구절은 유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적하는 감정 섞인 말투로 그들에게 답변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우리는 양 지파간의 갈등이 심각한 정도로 발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실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연합된 공동체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안에 존재한다. 즉 공동체의 연합을 깨뜨리고 결국에 모든 인격들을 함몰시키는 질투심과 불건전한 경쟁심 및 이기심은 외부에서 도전해오는 악한 세력보다 더 위험하다(고전 1:10-17; 갈 5:20). 이스라엘은 이러한 내부의 적에 의해 또 한번의 분열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왕의 환궁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공동으로 추진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도권을 유다가 가지고 이 일을 진행한 것에 불만을 품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유다를 공박함으로 분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 환궁에 관련된 사건은 드러난 이유에 불과하며, 분규의 근본원인은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 계속적으로 팽배해 있던 시기심과 경쟁심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장은 솔로몬 사후(死後) 남 북이 분열하게 된 주요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했다.

ㅇ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 여기서`지친'(至親)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로브'는 `가까운', 또는 `같은 혈족인'이란뜻이다. 즉, 이 말은 다윗 왕이 자기들과 같은유다 지파에 소속해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러한 유다 지파 사람들의 말은 사실이지만, 당시로서는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의 지역 감정을 촉발시키는 촉진제(促進劑) 역할만을 할 뿐이었다.

ㅇ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 이는 유다 지파가 다윗 왕으로부터 아무런 특혜(特惠)도 받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말이다. 이와같은 유다 지파 사람들의 말은 아마도 이전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베냐민 지파 출신의 사울왕으로부터 어떤 특혜를 입은 사실을 간접적로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삼상 22:7; Keil, The Interpreter'sBible).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ㅇ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 다윗 왕이 자기 지파 소속이라고 주장한 유다지파의 말(42절)을 반박하기 위해 이스라엘지파 사람들은 자기 지파의 숫자의 우월성(優越性)을 강조한다. 즉, 다윗 왕은 다른 모든 왕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의 왕이며 어떤 특정한 지파의 왕이 아니므로, 다윗왕은 유다 지파보다 훨씬 많은 열 지파나 되는 자기들과 더욱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Lange). 따라서 자신들은 다윗 왕의 귀환 계획에 마땅히 참여했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것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은 자기들이 열 지파라고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들로부터 두 지파를 제외시켰다. 이에대해 혹자는 이 두 지파가 유다 지파와 레위지파라고 주장한다(The Interpreter's Bible, Keil). 그러나 본 문맥의 내용상 레위 지파가 유다 지파와 더불어 이스라엘 열 지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을 만한아무런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주장은 애매하다. 혹자는 이 두 지파가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라고 주장한다(Smith). 그 이유로서 스미드 박사는 시므온 지파의 미미한 영향력과 유다 지파에 복속된 그 지파의 지역적 특수성을 든다. 그러나 다윗 왕의 귀환문제 라는 첨예한 문제를 놓고 혈연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유다 지파에 대해 숫적 우위성의 공동전선을 펴야 할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기서 구태여 약한 지파라고 해서 시므온 지파를 제외시킬 리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지파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라고 보아야 한다(Lange, Thenius). 왜냐하면 이스라엘 열 한지파 중 유일하게 베냐민 지파가 유다 지파의 단독적인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즉, 베냐민 지파의 실력자인 시므이는 일천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제일 먼저 왕 앞에 배알(拜謁)했던것이다(16-20절). 따라서 이러한 베냐민 지파의 움직임은 분명히 다른 열 지파에게 불쾌감을 주었을 것이다. 결국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왕국이 여로보암에 의해 돌로 쪼개질 때 유다왕국에 속하게 된다(왕상 12:21).

ㅇ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 이스라옐 열 지파는 다윗 왕의 귀환계획에 자신들이 참여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ㅇ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 여기서 `강경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솨'는 `완강하다', `거칠다'. `격렬하다'. `날카롭다',`쓰리다', `고집이 세다'는 뜻이다(창 49:7; 출 13:15;32:9;33:3). 따라서 이 구절은 유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욱 큰 목소리로 감정을 섞어 격렬하게 말하였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지파들에 의해 저질러질 새로운 반역의 조짐을 느낄 수 있다(Hertz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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