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신34.모세의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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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4장  [330.어둔밤쉬되리니] [582.어둔밤 마음에잠겨][360.행군나팔소리에]


.....[[잃어버린 자녀를 향한]] 열려 있는, 불타오르는 사랑 :: 이미 십자가로 이루신 바, 영원한 영생복락, < 용서-용납-기다림-절대 긍정-오래 참으심>


===모세의 죽음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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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34장

1.  And Moses went up from the plains of Moab unto the mountain of Nebo, to the top of Pisgah, that is over against Jericho. And the LORD showed him all the land of Gilead, unto Dan,

2.  And all Naphtali, and the land of Ephraim, and Manasseh, and all the land of Judah, unto the utmost sea,

3.  And the south, and the plain of the valley of Jericho, the city of palm trees, unto Zoar.

4.  And the LORD said unto him, This is the land which I sware unto Abraham, unto Isaac, and unto Jacob, saying, I will give it unto thy seed: I have caused thee to see it with thine eyes, but thou shalt not go over thither.

5.  So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died there in the land of Moab,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6.  And he buried him in a valley in the land of Moab, over against Bethpeor: but no man knoweth of his sepulchre unto this day.

7.  And Moses was an hundred and twenty years old when he died: his eye was not dim, nor his natural force abated.

8.  And the children of Israel wept for Moses in the plains of Moab thirty days: so the days of weeping and mourning for Moses were ended.

9.  And Joshua the son of Nun was full of the spirit of wisdom; for Moses had laid his hands upon him: and the children of Israel hearkened unto him, and did as the LORD commanded Moses.

10.  And there arose not a prophet since in Israel like unto Moses, whom the LORD knew face to face,

11.  In all the signs and the wonders, which the LORD sent him to do in the land of Egypt to Pharaoh, and to all his servants, and to all his land,

12.  And in all that mighty hand, and in all the great terror which Moses showed in the sight of all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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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eronomy 34 .Amplified Bible

===The Death of Moses

1 [a]Now Moses went up from the plains of Moab to Mount Nebo, to the top of Pisgah, that is opposite Jericho. And the Lord showed him all the land, from Gilead to Dan, 2 and all Naphtali and the land of Ephraim and Manasseh, and all the land of Judah to the western sea (Mediterranean Sea), 3 and the Negev (South country) and the plain in the Valley of Jericho, the city of palm trees, as far as Zoar. 4 Then the Lord said to him, “This is the land which I swore to Abraham, Isaac, and Jacob, saying, ‘I will give it to your descendants.’ I have let you see it with your eyes, but you shall not go over there.” 5 So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died there in the land of Moab,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6 And He buried him in the valley in the land of Moab, opposite Beth-peor; but no man knows where his burial place is to this day. 7 Although Moses was a hundred and twenty years old when he died, his eyesight was not dim, nor his natural strength abated. 8 So the sons of Israel wept for Moses in the plains of Moab for thirty days; then the days of weeping and mourning for Moses were ended.

9 Now Joshua the son of Nun was filled with the spirit of wisdom, for Moses had laid his hands on him; so the sons of Israel listened to him and did as the Lord commanded Moses. 10 Since that time no prophet has risen in Israel like Moses, whom the Lord knew face to face, 11 [none equal to him] in all the signs and wonders which the Lord sent him to perform in the land of Egypt against Pharaoh, all his servants, and all his land, 12 and in all the mighty power and all the great and terrible deeds which Moses performed in the sight of all Israel.

===Footnotes

Deuteronomy 34:1 The author of this final section regarding the death of Moses is uncer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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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4장 (개요)

우리는 모세가 어떻게 자기의 유언을 마쳤는가를 살펴보았다. 

본 장에서는 어떻게 모세가 자기의 생을 마감했는가를 읽을 수 있다. 본 장은 모세 자신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나 엘르아살에 의해 추가되었을 것이다. 

혹은 패트릭 주교가 추측한 대로, 선지자 사무엘이 여호수아의 기록이나 그 후계인들인 사사들의 기록에서 발견한 바를 신적 권위로 기록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모세의 유언에 관한 기사를 읽었고, 여기서는 죽음에 임해서 한 그의 행적을 대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불원간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잘 처리할 필요가 있는 일이다.

1. 모세가 죽기 직전 가나안 땅에 대해 본 전경(1-4).

2. 그의 죽음과 매장(5, 6).

3. 그의 나이(7).

4.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애곡(8).

5. 그의 후계자(9).

6. 모세의 인물됨(10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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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가 산상의 모세(신 34:1-4)

Ⅰ. 모세는 하늘을 향하여 위로 올라갔다. 곧 죽으려고 비스가 산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곳이 정해진 장소였던 연고다(32:49, 50). 

이스라엘은 모압 평야에 있는 평탄한 지면에 포진하고 있었는데, 모세는 거기서 명령에 따라 느보 산에 올라가 비스가라 불리는 그 산의 봉우리 곧 정상에 이른다(1절). 

비스가는 그런 탁월한 것을 일컫는 총칭이다. 모세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비스가 산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그의 생명의 마지막 날에도 그의 기력이 쇠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것이다. 

한때는 자기 손들이 무거워 부축하는 사람들을 두었지만(출 17:12), 이제는 그런 부축자가 없이, 아무도 “동반하지 않고 홀로” 그 고산의 정점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마치고 그는 여호수아와 엘르아살 및 자기의 모든 친구에게 엄숙하게 작별을 고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 이들은 산기슭까지 모세를 모시고 갔으리라. 

이 때에 모세는 아브라함이 모리아 땅 한 산기슭에서 자기 하인들에게 명령한 것과 같이 저들에게 지시했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라. 나는 저 곳으로 가서 죽으리라.” 

그들은 모세가 죽는 것을 목격해서는 안 되었다. 그 이유는 저희가 그의 무덤을 알아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과 관계없이, 그는 비스가 산정으로 올라갔는데, 그의 이 행동은 두 가지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1. 그가 기꺼이 죽으려 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자기의 죽을 곳을 알았을 때, 그는 죽음을 피하기는커녕 그 곳에 다다르기 위해 가파른 산길을 즐겁게 올라갔다. 

은혜로 말미암아 저 세상을 잘 알게 되고 그 세상과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내온 자는 이 세상과 하직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가 죽음을 자기의 승천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사람의 영혼 곧 착한 자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 “위로 올라가는데”(전 3:21), 이 영혼의 운동에 맞춰서 모세의 몸도 갈 수 있는 한도까지 위로, 멀리 그 영혼과 동행해서 올라가고자 했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 세상을 떠나라는 부르심을 입을 때는, “올라가서 죽으라”는 소환장을 받는 셈이다.

Ⅱ. 모세는 다시금 이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즉 자기는 결코 들어갈 수 없었던 이 세상의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믿음의 눈으로 자기가 이제 곧 들어가게 될 하늘의 가나안 복지를 기대하며 바라보았다. 

하나님은 그가 결코 가나안을 소유하지 못하리라고 경고하셨으며, 그 경고가 성취되고 있다. 

하나님은 또 모세가 그 복지의 전망은 바라볼 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이 여기서 실행되고 있다. 

그 좋은 땅 전체를 “여호와께서 보이셨다”(1절).

1. 그가 비스가 산 꼭대기에 혼자 올라갔다고는 하나, 그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요 16:32). 

사람은 자기가 죽게 될 때, 친구가 있을 경우에는, 그들을 자기 주위에 불러 놓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거나 혹은 친구들이 인자하지 않아서, 우리가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우리에게는 전능하시고 선하신 목자가 함께하시니, “해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시 23:4).

2. 그의 시력이 매우 좋고, 또 고지의 장점을 이용하면 전 가나안의 조망을 열망할 수 있을 정도이기는 했더라도, 만약 그의 시력이 기적적인 도움을 입어 확대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가나안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전경(추산해서 세로로 약 160마일)을 어떻게 다 볼 수 있으며,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횡으로 50-60마일로 추산)를 어떻게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이셨다”고 하는 말씀이 나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더 좋은 하늘나라에 대해서 기대하는 모든 아름다운 전망은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의 덕분임을 잊지 말자. 

계시의 영과 아울러 지혜의 영을 주시는 이도 그 분이시고, 목적물과 아울러 그것을 볼 눈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마귀는 아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전경을 보이신 이 일을 모방하고자 꾀하면서 자기가 더 나은 체했을 것이다. 

즉 마귀는 공중의 환상을 통해 모세처럼 우리 구주를 “지극히 높은 산 위”로 모시고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드렸는데, 여기에서처럼 한 나라를 먼저 보이고 그 다음에 또 한 나라를 보이는 식의 점차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한순간에 보여 주었던 것이다.

3. 모세는 가나안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구약의 성도들은 꼭 그와 같이 메시아 왕국의 경치를 바라보았으니, 저희는 그것을 “멀리서 보았다.” 

아브라함도 이 일보다 오래 전에 그리스도의 날을 보았으며, 그것을 완전하게 믿어 약속 중에서 환영했고, 성취 속에서 그 날을 맞이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 두었다(히 11:13).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인들은 은혜를 통해 자기들의 미래상이 지니는 더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현재 속에서 바라본다. 

모세와 비스가 산과의 관계는 말씀과 제 의식이 신앙인들과 맺는 관계와 같다. 그 말씀과 의식으로부터 저들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대한 안락한 전망을 바라보고 그것을 소망 중에 기뻐한다.

4. 모세는 가나안을 보기만 했을 뿐 결코 차지하지는 못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자기 백성을 장차 닥쳐올 재앙으로부터 데려가 버리시듯이, 또 때로는 저희를 곧 일어날 좋은 일로부터 데려가시는 때도 있다. 

즉 그 좋은 일이란 현세의 교회가 누리는 기쁨이다. 영광된 일들이란 후일의 그리스도의 나라를 말해 주며, 그리스도의 나라의 발전과 확대와 번영상을 나타낸다. 

우리는 미리 그것을 내다보기는 하나 그 나라를 목격할 수 있을 때까지 살 것 같지는 않다. 우리 후손들이 그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우리 자신들의 시체가 이 광야 같은 세상에 잠들게 될 때에 우리에게 주는 위로다(왕하 7:2 참조).

5. 모세는 이 모든 것을 죽기 직전에 보았다. 

하나님은 종종 자기의 은혜롭고도 가장 훌륭한 광경을 유보시켰다가 저들이 죽는 최후 순간에 힘이 되도록 하신다. 

가나안은 “임마누엘의 땅”이어서(사 8:8), 그 곳을 바라볼 때에 모세는 우리가 그리스도께로부터 얻어 누리는 축복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 곳은 하늘나라의 모형이었으며(11:16), 믿음은 그것의 실상이요 증거다. 그리스도를 믿으며,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저희 눈으로 가나안을 보는 자들은 아주 기쁘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으므로 “주재여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눅 2:29) 하고 말하는 것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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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죽음(신 34:5-8)

Ⅰ. 모세의 사망(5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었다.” 

하나님은 그가 결단코 요단 강을 건너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모세는 당초에 하나님의 그 같은 판결을 번복해 주시도록 간절하게 기도했으나, 이제 자기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그는 만족하고 “이 일로 다시 말하지 않았다”(신 3:26).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복되신 구주께서도 잔이 자기에게서 지나가도록 기도하셨으나,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할 것이기에, “아버지여!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조용히 따르셨다. 

모세는 이 세상에 잠시 더 오래 살고 싶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오래 산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조상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였다”(창 47:9). 

그의 아버지 아므람은 137세까지 살았고, 그의 조부 고핫은 133세, 그의 증조부 레위는 137세까지 살았다(출 6:16-20). 

그런데 모세는 그 생애가 자기 조상 그 누구보다 더 유용했는데, 왜 120세에 죽어야 하는가? 그는 노령으로 인한 노쇠도 느끼지 않았기에 여전하게 하나님의 사역에 적합하지 않았던가? 

이스라엘은 그 어려운 시기에 그를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의 지도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가나안 정복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저희에게는 여호수아의 담대함과 함께 큰 복이었다. 

또 그가 광야의 모든 노고를 치르고도 가나안의 즐거움은 누리지 못하게 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은 모세 자신에게도 힘겨운 괴로움이었다. 

그 광야의 날에 무거운 짐과 신고를 다 짊어지고서도 대업을 성취할 영예는 타인에게 사양해야 했을 때, 더욱이나 자기의 노역에 참여할 자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 그 종이었을 때는 참기 힘든 괴로움이었다. 우리가 혈육으로 생각할 때는, 이런 일이 달갑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승하더라”(민 12:3).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그렇게 행하고자 하시매 그는 즐겨 순종한다.

1. 본문에 보면 그는 “여호와의 종”이라 칭함을 받았다. 

이것은 그가 선량한 사람으로서뿐만 아니라(모든 성도는 다 하나님의 종이다) 유용한 인재로, 혁혁하게 유용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섬겨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고 광야를 통과하여 저들을 인도해 낸 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여호와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여수룬의 <대리> 왕 노릇 하는 것보다 더한 영광이었다.

2. 그런데도 그는 죽는다. 그의 경건이나 유용성도 죽음의 손길을 면하게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종들은 자기의 노역으로부터의 안식을 얻으며, 그 보상을 받고, 또 다른 자들에게 자리를 물려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죽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종들이 옮기워서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들은 “그의 성전에서 밤낮”(계 7:15)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즉 하나님을 더 잘 섬기러 가는 셈이다.

3. 그는 가나안 조금 못 미처 있는 모압 땅에서 죽는다. 

그러나 아직 모세와 그의 백성은 미정착 상태에 있으며 저들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때였다. 하늘의 가나안에는 더 이상 죽음이 없을 것이다.

4. 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는다.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여호와의 입에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의 입맞춤으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가 아주 편안하게 죽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그것은 euthannasia ―즐거운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에는 굴레가 없었다. 그는 자기 죽음에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주 기쁘게 만끽했다. 

그러나 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었다는 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여 죽었음을 뜻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은 자기들의 다른 모든 일을 마쳤을 때는 주님께 순종하여 마침내는 죽어야 하며, 주님이 자기들을 부르러 보내실 때는 언제든 기꺼이 본향으로 돌아가기를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Ⅱ. 그의 장사(6절). 

모세가 엘리야처럼 하늘로 들려 옮겨졌다는 것은 일부 유대인들이 조작한 근거 없는 상상이다. 그는 “죽어 장사되었다”고 여기에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 모세는 그리스도의 변화산상의 장엄함을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부활하여 엘리야를 만났을 것이다.

1. 하나님이 친히 그를 매장하셨으니, 곧 천사들의 수고를 통해 아주 은밀하게, 그러나 아주 훌륭하게 이 장례를 치르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종들의 시체까지도 돌보신다는 것을 유의하자. 

저희 죽음이 귀하듯이, 저희의 티끌 즉 주검도 귀해서 한 알의 티끌도 없어져서는 안 되며, 주검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도 기억되어야 한다.

모세가 죽었을 때는 하나님이 그를 묻어 주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는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다. 

모세의 율법은 끝이 있으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율법에 대해 죽은 바 되었으니, 이는 저들이 다른 분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와 혼인을 맺기 위함이다(롬 7:4). 

미가엘 천사장 곧 그리스도(혹자가 생각하듯이)께서 모세의 매장을 담당하신 것 같은데, 이것은 모세 율법이 그리스도에 의해 폐한 바 되며 길에서 거치지 않게 치워져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 분의 무덤에 매장되었기 때문이다(골 2:14).

2. 그는 “벧브올 맞은편” 계곡에 장사되었다. 

그를 장사 지낸 천사들이 그를 요단 강 건너로 운반해 가지고 족장들과 함께 막벨라 굴에 장사 지내기란 얼마나 용이한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장지에 대해 과도하게 염려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여기서 배워야 한다. 

만약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고 있다면, 우리의 몸이 어디에 잠들어 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시리아역 성경의 주석가 중 한 사람은, “그가 벧브올 맞은편에 장사되었다는 것은 바알브올이 자기에게 연합한 이스라엘인들을 자랑할 때마다 바알브올의 신전 건너편에 있는 모세의 무덤이 바알브올에게 방해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3. 구체적 지명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것은 우상 숭배를 그토록 잘하는 성미의 이스라엘 자손이 저희 국가의 위대한 창시자요 은인인 모세의 시체를 봉안하여 경배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우리는 저들이 저지른 우상 숭배의 본보기 중에서 저희가 유골 숭배를 한 적이 있다는 기록은 읽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 저희가 이처럼 모세 숭배를 금지당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자를 예배한다는 것은 수치로 생각한 탓이리라. 

어떤 유대 학자는 “모세의 시체는 감추어졌으므로, 죽은 자와 문답하는 강신술사가, 엔돌의 신접한 여인이 사무엘을 불렀던 것처럼, 그를 불러 올려서 시끄럽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 종 모세의 이름과 기억이 이토록 학대받게 버려두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많은 자들이 생각하기로는, 유다서 9절에 언급된 대로, 모세의 시체에 대해 미가엘과 마귀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마귀는 그 장소를 알리고자 했으니, 이는 그로 백성의 올무가 되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미가엘은 마귀가 알리는 것을 못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타계한 성도들의 유골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부여하는 일에 찬성하는 자들은 우리의 왕 되신 미가엘을 거스르고 마귀를 편드는 셈이다.

Ⅲ. 그의 나이(7절).

1. 그의 수명은 노령에 이르도록 연장되었다. 

그는 120세였으니 비록 족장들의 연한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자기 동시대인의 대다수보다는 그 햇수를 훨씬 초과했던 것이다. 

인간의 보통 수명은 당시에 와서 칠십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시 90:10). 모세의 생애는 그 햇수가 40의 세 갑절이었다. 

그 첫 사십 년은 조정의 신하로 바로의 궁정에서 안락하고도 영화스럽게 살았던 때였다. 

두 번째 사십 년은 그가 미디안 땅에서 가난하고 고독한 목자로 산 때이다. 

세 번째 사십 년은 그가 여수룬의 왕이 되어 영광과 권세로 산 때이나 많은 걱정과 수고를 가졌던 때다. 

그와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 변덕스러워서 온갖 혼합물로 합금된 것이지만, 우리의 앞에 있는 세계는 잡된 것이 혼합되지 아니한 세계요 불변의 세계다.

2. 그의 생명은 아주 늙도록 연장되었으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이삭의 눈이나 야곱의 눈은 그러했다. 창 27:1; 48:10),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 

그의 신체의 기력이나 정신의 원기와 활기도 쇠함이 없어서, 그는 여전하게 말할 수 있었으며 늘 하던 대로 글을 쓰고 걷는 데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의 이해력이나 기억력도 전과 같이 명석하고 뚜렷했다. 

어떤 유대 학자는 “그의 용모에는 주름도 잡히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그의 이는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유대 학자들 중 다수가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 것에 대해(출 34:30) 그 현상이 끝까지 계속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이 그가 봉사한 일의 대가였으며, 그것은 그가 비상하게 겸손했던 결과였다. 

그가 “허리에 힘이 있고 골수가 윤택”했던(잠 3:8, KJV)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큰 은혜였다. 

모세가 준 도덕법에 관해서는, 비록 진정한 신앙인에게는 그 정죄하는 힘이 백지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계명들만은 여전하게 구속력이 있으며, 세상 끝까지 효력을 발생할 것이다. 

도덕적 계명들의 눈은 흐리게 되지 않으니, 그것들이 마음의 생각들과 뜻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또 계명의 기력과 의무는 쇠퇴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여전하게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고전 9:21) 있기 때문이다.

Ⅳ. 모세를 위한 이스라엘의 엄숙한 애곡(8절). 

고인이 된 명사들을 사랑하고 아꼈던 자라면 그들을 잃은 슬픔을 느끼며, 또 그들을 빼앗기게 한 우리의 죄악에 대해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눈물로 그들을 전송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마지막 존경의 예표이다. 참회의 눈물은 이런 일에 매우 잘 어울리는 법이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애곡자들은 누구였는가? “이스라엘 자손”이었다. 그들 전체가, 그 의식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 의식에 순응했다. 

비록 그들 중 일부는 아마 모세의 통치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자들이며 거짓 애곡을 했을 것이다. 

아마 그런 자들 중에는 그 전에 모세 및 그의 각료들과 분쟁했던 자들도 있었으리라. 또 아마 그들은 모세를 돌로 쳐 죽이자고 이야기했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들조차, 비록 모세가 생존했을 때는 그를 어떻게 소중하게 존중해야 할지 알지 못했으나, 이제 그를 여읜 이 마당에는 그를 상실한 느낌이 절실하여 애도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리하여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사 29:24). 

선량한 사람들, 좋은 통치자를 잃어버렸을 때에는 크게 슬퍼하게 되고 그 슬픔이 마음 깊게 새겨진다. 그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자는 미련한 자들이다.

2. 저들이 애곡한 기한은 30일 동안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장례 예식이 계속되었다. 

애곡을 더 오래도록 계속한 자들도 상당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위한 “애곡과 추모의 날들이 끝났다”는 사실은 우리의 손실이 아무리 크다 한들 자포자기하여 끊임없이 비탄에 잠겨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적어도 시간이 지나서 그 상처가 치료될 때까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가 기뻐하며 하늘나라에 가기를 소망한다면 무엇 때문에 굳이 애곡하면서 묘지를 향한단 말인가? 모세의 의식법은 죽어 그리스도의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직까지도 율법에 대한 애곡을 끝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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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인품(신 34:9-12)

우리는 이 부분에서 모세와 여호수아에 대한 대단히 명예스러운 찬사를 보게 된다. 저들은 각각 자기에 대한 찬사를 받으며, 또 받아야 마땅하다. 

우리가 살아 있는 친지들의 찬양에 급급한 나머지 고인이 된 분들의 공적을 완전하게 잊어버림은 배은망덕한 짓이며, 그 분들의 생전 공덕을 기리는 것은 저희 명예에 대해 치러야 할 우리의 의무다. 떠오르는 태양에만 모든 경의가 다 표해져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 세상을 떠난 자의 공덕만 칭찬하는 나머지, 살아 남아서 그 고인들을 계승한 자들이 우리에게 베푸는 그 은혜를 경멸하는 것도 공정하지 못한 처사다. 

이 두 가지 일에서 다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리로다.

Ⅰ. 여호수아는 그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아주 훌륭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고 찬양받고 있다(9절). 

모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접경까지 인도해 오고서야 죽어 저희 곁을 떠났는데, 이것은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 한” 것을 의미한다(히 7:19). 

율법은 사람들을 회개의 광야로 인도해 가지만, 안식과 정착된 평강의 가나안 땅에는 인도해 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여호수아를 위해 예비된 영예였으니(여호수아는 우리 주님 예수의 예표였다), 곧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행하여 주는 일이다(롬 8:3). 

그 분을 통해 우리는 안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곧 양심이 누리는 영적 안식과 하늘 본향에서의 영원한 안식이다. 

세 가지 일이 이 중대한 사업에 대한 여호수아의 소명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동시에 일어났다.

1.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이 대업에 적합하게 하셨다.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했다.” 

그토록 괴퍅한 백성을 다스려야 하고, 그렇게나 책략 있는 백성을 정복해야 할 그에게는 그런 지혜가 있어야 마땅했던 것이다. 

지도력은 장군에게 있어서는 용기만큼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도 여호수아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으니,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의 보물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2.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여호수아에게 그 직책을 위임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자기 후계자로 삼고 자기가 소명 받았던 노역을 여호수아가 감당하기에 적합하도록 자격을 그에게 부여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고 이 기도는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그에게 보통 이상으로 지혜의 영을 부어 주신 이유는, 여호수아를 통치자로 임명한 일이 하나님 자신의 행위였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임용하시는 자들이 그 일에 적합하도록 해 주실 것이다). 또 모세가 그에게 안수했을 때 여호수아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한 바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 위의 교회로부터 자기의 육체적 현존이 떠나시게 되었을 때, 성부께 또 다른 위로자를 보내 주시도록 간구하셨고, 그 빌었던 바를 얻으셨던 것이다.

3. 백성들은 즐거이 그를 인정하고 그에게 순종했다. 백성의 애호를 받는 것은 아주 유리한 일이며, 어떤 종류의 공직이든 간에 부름을 받은 자에게는 큰 격려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또한 모세가 죽었을 때도 저희가 목자 잃은 양떼처럼 되지 않고 저희가 만장일치로 인정하며, 게다가 가장 만족하게 여겨 잠자코 따를 수 있는 한 사람을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은 백성들에 대한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Ⅱ. 모세는 칭송을 받았다(10-12절). 거기에는 충분하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1. 그는 참으로 위대한 위인이었으니,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하다.

(1)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친밀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하나님도 그가 대면하여 알았던 분이다(민 12:8 참조). 그는 어떤 자보다도 더(적어도 구약 성도들 중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본 자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이, 그리고 빈번하게 하나님께 접근했던 자였고, 하나님은 꿈속에서나 환상 속에서나 그가 침상 위에서 깊이 잠든 때 그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깨어서 스랍들 앞에 있을 때에 말씀하셨다.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고하실 때 공포에 질렸지만(단 10:7),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했다.

(2) 이 세상 나라에서의 그의 세력과 권세. 

그가 애굽의 바로 왕 면전에서 행한 심판의 기적들과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베푼 자비의 이적들은, 그가 하늘의 총애를 받는 자였으며 그가 이 땅 위에서 행한 바대로 비상대권을 위임받는 자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족하다. 이스라엘에게는 모세보다 더 사랑해야 할 만한 자 없었으며,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는 그보다 더 두려워할 자가 없었다. 

이 본문을 기록한 역사가는 모세가 행한 기적을 가리켜 “큰 권능과 위엄”으로 “이적과 기사(寄事)”를 행했다고 했다. 이것은 시내 산의 두려움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모세의 직임을 완전하게 인준하시고, 그것이 명백하게 신성한 것임을 실증하셨다. 게다가 그것은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나타났다. 

2. 그는 구약의 다른 모든 선지자들보다 위대한 자였다. 

비록 구약의 선지자들도 하늘에서는 큰 권세를 가진 자요 땅 위에서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였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 위대한 자와는 비교될 수 없었다. 

저들 중 아무도 모세처럼 하늘로부터 받은 직임을 입증하거나 행사한 자가 없었다. 여기에 나오는 모세를 찬양하는 이 찬사는 그의 사후 오랜 뒤에 기록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모세와 같은” 어떤 선지자가 등장하지 않았고, 그 때로부터 “이상과 예언이 응할”(단 9:24) 기간에도 그런 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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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34:1

느보 산에 올라...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매 - 이 구절은 일견 모세가 느보 산(Mt. Nebo)에 오른 다음 비스가 산(Mt. Pisgah) 꼭대기에 이른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느보 산이나 비스가 산은 모두 아바림 산맥(32:49)에 있는고봉(高峯)들이다. 한편 히브리어 성경 원문은 느보 산을 비스가 산의 꼭대기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모세가 느보 산을 경유하여 비스가 산에 오른 것처럼 번역한 개역성경의 번역은 합당치 않다. 영역본 KJV는 원문에 충실하게 "모세가...느보 산, 곧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랐다"(Moses went up...unto the mountain of Nebo. to the topof Pisgah)라고 번역하였다. 한편 이 비스가 산 정상은 가나안 땅을 조망(眺望)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다(32:49). 본장 1-8절 강해, '신명기와 산' 참조.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 '길르앗 땅'은 사해 위, 얍복 강 유역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유향(balm)의 산지로 유명하다(렘 8:22). 이곳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에게 분배되었다(3:12-17;수 13:24-31). 그런데 여기서 '단'(Dan)은 정확히 어느곳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만일 이곳이 단 지파가 차지한 가나안 최북단 헤르몬산 기슭의 단(수 19:47;삿 20:1)을 가리킨다면, 본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즉 비스가 산에서 헤르몬 부근의 단까지는 거리가 무려 160km 정도나 된다. 따라서 모세가 아무리 시력이 좋고, 또 서 있는 곳이 높다고 할지라도 정상적으로는 그곳까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일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모세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셈이 된다(Matthew Henry).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기서가리키는 '단'을 헤르몬 부근의 단으로 보지 아니한다. 대신 길르앗 부근에 위치하였던 어느 한 성읍이나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Lange, Keil, PulpitCommentary). 만일 본절이 모세가 일반적인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지역을 가리킨다고 할 것 같으면, 이들의 견해는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셈이 된다. 그러나 모세의 임종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약속에 근거한 가나안 전경(全景)을 보이시고자 하셨다면, 전자의 견해 역시 상당한 설득력이 있게 된다.

===34:2

또 온 납달리와...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 - 이제 모세는 그의 시선을 서서히 서쪽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하여 요단 서편 땅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가 바라보고 있는 땅들의 순서는 아브라함의 가나안 초기 여정(旅程)과 일치한다(창 12:1-9).한편 여기서 '서해'(西海)란 가나안 서편에 위치한 바다인 '지중해'(the Mediterrane-an Sea)를 가리킨다.

===34:3

남방 - 가나안의 남쪽 사막 지역인 '네게브'(Negeb)를 가리킨다<창 12:9>.

종려의 성읍 여리고...소알까지 보이시고 - 여리고는 예루살렘 동편, 요단 골짜기 남단에 있던 큰 성읍이다(수 18:21). 그런데 이곳을 '종려의 성읍'(the city ofpalms)이라 부른 까닭은 그곳이 종려나무의 산지로 유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알(Zoar)은 '벨라'(창 14:2)로도 불리웠던 사해 남단, 요단 평지에 위치한 고대 가나안 성읍을 가리킨다(창 13:10;19:20-23).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해 서부의 연안 지대'를 보이셨다는 뜻이 된다.

===34:4

이는...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창 12:7;13:15;17:8;29:13;35:12)은 아브라함 때로부터 지금까지 약 600년간 약속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약속이 바로 눈앞에서 성취되려는 순간에 와 있는 것이다.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 출애굽의 영웅이자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도자인 모세는 누구보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그의 간절한 간구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입성(入城)이 끝내 허락되지 않았다<3:23-29>. 그 일차적 이유는 물론 므리바 물 사건(민 20:12) 때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온전히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31:2;32:51>. 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들에게보다 깊은 교훈을 던져 준다. (1)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는 자였던 바, 이는 율법이 결코 인간을 하늘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이지 못함을 보여 준다. (2) 천국은 결코 인간의공로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보여 준다.

===34:5

여호와의 종(* , 에베드 예호와) - 이 말은 모세의 신실성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즉 그는 애굽의 왕자로서 세상의 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었으나, 오히려 하나님의 종이 되어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했었다(히 11:24, 25).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 '여호와의 말씀대로'에 해당하는 '알 피 예호와'(* )는 직역하면 '여호와의 입을 따라'란 뜻이다. 이 말은 모세가 '여호와의 종'이라는 사실에 매우 걸맞는 표현이다. 즉 그는 죽음에 있어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자진하여 거룩한 땅의 경계 밖인 '모압 땅'에서 죽은 것이다.

===34:6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 - '벧브올'(Beth-peor)은 모압의 신(神) 브올을 예배하던 산인데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다. 한때 이스라엘도 이곳에 거한 적이 있었으며(3:29;4:46), 후에는 르우벤 지파의 소유가 되었다(수 13:20). 많은 학자들은 모세가 장사된 모압 땅의 골짜기가 느보 산(비스가 산) 근처의 어느 한 골짜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Hengstenberg, 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를 장사하였기때문일 것이다. 유 1:9은 이러한 사실의 근거가 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어 모세의 시신(屍身)을 인간이 알지 못하는 곳에 장사하도록 명하셨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무덤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을지도 모를 위험성 때문이었을 것이다(Calvin, Stanley). 한편 혹자는 모세가 엘리야와 더불어 변화산상에 나타난 사실(마 17:3;막 9:4;눅 9:30)에 의거하여 모세가 부활, 에녹과 엘리야처럼 승천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Matthew Henry).

===34:7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 - 이때는 B.C. 1407년 11월 말경으로 추정된다<1:3>. 그런데 그가 120세를 향유했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왜냐하면 모세 자신의 관찰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70세였고 강건해야 80세였기 때문이다(시 90:10). 따라서 모세는 보통 사람들이 흙으로 돌아갈 나이인 80세에 하나님께 부름받아 40년 동안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서 봉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행7:23, 30, 36).

그 눈이...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 이삭은 말년에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였고(창 27:1), 야곱도 또한 마찬가지였다(창 48:10). 그러나 모세가 다른 사람에 비하여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막중한 책임을 떠맡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앙망함으로 새 힘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사40:31).

===34:8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 히브리인들의 장례 풍습에 의하면, 대개 죽은 자를 위한 애도(哀悼) 기간은 7일이었다(삼상 31:13). 그러나 아론과 모세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30일간을 애곡하였는데(민 20:29), 이는 초대 이스라엘 대제사장과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예우(禮遇)로서였다.

===34:9

모세가...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 자신의 죽음을 고지(告知)한후 모세는 후계자를 세워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한 결과 '여호수아'를 하나님께 응답받았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에게 안수함으로써 자신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삼았다(31:14, 15;민 27:15-23). 따라서 모압 평지에서 베푼 모세의 안수(按手) 예식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지금까지 모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지도자적 권한을 후임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모두 넘긴다는 의미를 지닌 공식적인 위임(委任) 의식이었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여호수아의 등장은 신명기와 여호수아서를 자연스럽게 이어 줄 뿐 아니라, 가나안 정복 전쟁에 임할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시사한다.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 '지혜의 신'이란 '지혜의 영'(the sprit of wisdom)으로번역될 수 있는 말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덧입혀 주신 '참된 지혜' 곧 '호크마'(* )를 가리킨다<32:29>. 따라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할 때 그에게 이러한 지혜가 충만히 임하였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친히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인정하셨음을 의미한다.

===34:10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 실로 모세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면에 있어서 특별한 선지자이자, 이스라엘 모든 선지자 중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다. (1)하나님과 가까이 지냄에 있어서(10절) : 이것은 미리암의 문둥병 사건(민 12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즉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모세에게는 '마치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하듯' 가까이 대면하여 말씀하셨으며(출33:11), 자신의 영광스런 임재도 목격하게 하셨다(출 33:18-23). 또한 하나님께서는시내 산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모세와 단 둘이서 오랜시간 지냈다. 따라서 모세는 실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보았고 직접 체험한 자였다. (2)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나타냄에 있어서(11, 12절) : 하늘의 비상 대권을 위임받은 자 모세는 출애굽시 바로와의 대결에서 여호와의 10대 재앙을 이스라엘 목전에서 애굽에 베푼 자였다(출 7:14-11:10). "실로 모세는 위대한 선지자로서 율법의 창시자요 중재자였다. 이 율법이 지속되는 한 이스라엘 중에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 일어나지않을 것이다. 오직 한 사람 모세보다 더 큰 영광과 명예를 누릴 자가 있으니 곧 모세를 그 충실한 종으로 두고 있는 하나님 집의 장자(長子)로서(히 3:2-6), 우리의 대사도요 대제사장이시며 영원한 새 언약의 창시자 및 중보자가 되시는 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Keil & Delitzsch, Vol. I-iii. the Pentateuch, p. 517).

대면하여 아시던 - 여기서 '알다'에 해당하는 '야다'(* )는 단지 지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닌, 깊고 오랜 교제를 통해 인격적, 경험적, 영적으로 아는 것을 가리킨다(고전 8:3).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주 친밀하게 지내신 것을 의미한다.

===34:11,12

모든 이적와 기사...큰 권능과 위엄 - 하나님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베푸셨던 각종재앙과 이적, 그리고 놀라운 역사를 가리키는 중언법적 표현이다<29:3>. 출 12:29-36강해, '여호와의 10대 재앙'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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