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하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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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24장    [455.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459. 누가 주를 따라] [460. 뜻 없이 무릎 꿇는]


**여고냐 ( : יְכָנְיָת ...<요드_카프-눈_요드-헤이>..여호와께서 친히 조성하여 세우심, 그대로 받아들여 참믿음으로 사는 실존) = **여호야긴..(: יְהֹויָכִין..요드-헤이-바브(상)_요드-카프-요드-눈>: 여호와, 그분께서 조성하심 그대로 믿고 삶, 그 확장.. 

**맛다니야(: מתניה...멤-타브-눈_요드-헤이>..진리로 온전케 됨, 그 실존, 여호와) = **시드기야 (: צִדְקִיָּהוּ...체데-달렛-코프_요드-헤이-바브(중)>..체드키아...여호와는 의로우시다)


#(묵상)..시1

***[보냄 받은자, 곧 택자의 받을바, 고난의 두 방면] 

#JC의 고난/죽음 = 영-생명 Q, 곧 JC의 그영, 부활생명의 그영이시자 "베레시트"그대로 이루는 실제의 그영 = 사람의 영과 하나 이루심=, 그분을 공급하심 위함(체휼-자원함..미트하트=죽어야 다시삶) -->#택자-중생 성도의 고난/죽음 : 진정한 의미에서, "베레시트"와, "에셰르"를 알고 JC의 그영,곧 영-생명 Q 얻고 그 가운데 발견됨 (됨-삶) 위한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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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임<쉰(우)-멤-요드-멤>...샤<쉰(우)> = Q의 형상 + 마임<멤-요드-멤> = 진리, 곧 Q의 형상 =진리 = 성령..결국, 샤마임 = 하늘 = 진리의 성령, Q의 본체의 형상JC, 성육신 하여 이땅에 계셨다가 Q뜻 다 이루시고 부활생명의 그영이 되사, 승천하셨으니. 곧 샤마임은 그분의 거처...그런 의미에서, 중생성도의 영 안으로의 승천이기도 함!!

....@@아레츠<알렙-레이시-체데>= 땅  = Q의 영(알렙) + 사람의 영(레이시) + 결합-연합한 하나(체데) ...땅, 그자체에서 난것은 [Q의 연합되심이 없기에] 천연적인것(타고난것)에 불과함.. ..Q은 샤마임과 아레츠를 "에하드"로 만드셨다고 하셨으니, 이는 거듭난 존재, 곧 샤레츠... 바로 이렇게 만드셨기에!! 거듭난다는 것은 아레츠가 샤마임을, 샤마임의 그 내용은 절대진리이신 TUQ] 취하여 하나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때 땅은 비로소 싹이 나고 순이 돋고 꽃 피고 열매맺게 됨.....이를 위해서는 샤마임의 진리, 곧 샤마임 그 실제이신 분 JC!!, 동시에 그분 JC께서 임마누엘로서 이 땅에 오셨음(결국, JC는 천상-천하의 물의 하나된바(=절대진리, 하_마임) 그 자체를 살고 계신분이시라, 하늘이자 땅이심 ...이분의 실체가 우리에게 도달하여 친히 살아가시려면  완전한 Q으로서 참인성을 가지신분, Q의 생명을 공급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심(=땅을 딛고 살아가는 실존으로서, 오직 진리=형상-성령을 친히 살아내심+참인성의 그릇으로 살아가시며 그분의 영으로 온전히 살 수 있도록 그분의 영=성령(루하/루아흐 - 하카도쉬)=<레이시-바브(중)-헤이트, 헤이_코프-달렛-쉰(우)> 곧, "베레시트"이루시는 실제의 그영이자, 부활생명의 그영을 주시기 위함).. 한편, 중생 성도-택자의 고난 받음은 참되게 Q 생명의 그영을 접촉함으로써 그분의 실제 그 자체를 받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붙들어야 함.... JC이름으로 세례받음[=육체 끝냄]-->옛남편(<율법 : 생명의 가장 낮은 단계.....*토라<타브-바브(상)-레이시-헤이>..도덕-윤리가 그 위에 있음 ..그 위에 [살리는] 영의 생명-인격이 있는것....율법이나 도덕-윤리 준수 행위로는 결코 구원 이룰수 없음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속사람 관점으로는 적극 동의한다..)인바 "혼적 실제로서" 문자 그대로 행위 통한 실행을 불식함-->오직 Q의 참생명-인격이신 [성령과 하나인바] 택자의 그 영을 통해 성경을 보라 하심이니!!...토라가 저절로 이루도록 하셨음... ["그렇게 여기라"하심 그대로, 발휘할바 절대적 참 믿음으로 "아멘"의 믿음으로] 취함/거함 이루는바 그영과 하나라, 그 자체가 됨(젹심-점유-충만-운행-신진대사적 선순환 변화-넘쳐남/인침 이룸) = 지고지선-최상의 진복 리게 됨-->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대한 주님의 마음....(그럼에도불구하고!!...나, 너를 참되게 알고 있고, 그러하기에!! 너를 껴안으며 체휼/공감/용납/기다려줌의 동심합치로 네곁에 말없이 머무르련다.....이미 네게 말한 그대로 닭이 드디어 세번 울었구나!!...다만, 오직 [네게 부탁한바] 긍정의 말만 기억하거라!!)..(.너의 천연적인 말을 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네 입과 마음에 넣어주는바, 생명 주는 영의 말씀, 바로 그말을 그영의 말하게 하심따라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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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고지선의 진복이로다...길/진리-불/빛-영/생명 그 자체, 곧 Q말씀(기름부음이신 Q, 그분의 모든 것 담아 호흡해내신바 그 기름부음-생기가 담겨있음이라)을 그대로 받아 (그대로 그영과 하나되어) 사는 바로 그 사람이여.. -엘로힘-샤마임-아레츠, 곧 Q께서 창조하신바(바라, 베이트-레이시-알렙)-만드신바(아싸..아인-신(좌))-지으신바(예체르, 요드-제데-레이시) 나타난, 바로 그 Q-사람이라!! 

...친히 목양하심으로써 그분의 판박이 참제자 만드시는 Q이시니.... 소망-교통하시며 바로 Q-참인성의 사람을 살아가는 실존, 그 참사람을 만드심이라, 친히 말씀 호흡해내심으로 산출-목양된 참제자를 만드사 동행하는 하나, 그분의 현존 나타나게 하시나니...'베레시트" 그대로 이루심인바 생명나무와 결합-연합-상호교통으로 사는바 (실제의) 그영의 기름부음으로 산출된 그대로 사는 생명가지요, 그영을 머리삼고 채움받아 사는자,  그분의 거처 삼으신 생명가지, 바로 그대로 산출하시도다..

... 동심합치로 말씀안에 거하는바, 말씀의 그영과 결힙한 하나(그영-막힘없는 상호교통의, 으뜸/머리시요 생명 원천되심이라, 구별-분별-성별하시는 분)인 그 현존 이루나니, 곧 부활생명의 영, 그 넘쳐흐름이 그에게 도달한바 참지혜이신 Q의 거처 나타남이라...

...Q 임재 안에-동시에 그 앞에 서 있는 (진리의 증인이요, 그 안에 진리의 기름부음의 참생명-인격께서 거함된바) 기둥이요, 목양하심으로써 동심합치로 동행-동거-동주하는바 그분의 그릇이니, 그분께서 기릅부으신바 모든 것이 그 안에 거함이라 바로 그분께서 그안에 살아계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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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복자 됨이란... Q의 그릇/거처/담지자, 곧 말씀과 하나됨 안에 거함으로써, "베레시트-Q의 창조하신 뜻"그대로 온전케 되고 온전히 이룸 됨이라, 곧 Q의 참생명-인격에로 변화/대치되게 하시는바 , 그영께서 그 과정을 주도하사 온전히 되게 하며 이뤄지게 하심이니..., 말씀이신 그분은 바로 여호와시라 그분 자신, 곧 부활생명의 그영을 열어 부어주시는바 , 곧 그분과 결합-연합한 하나로서 참생명-관계적인격을 기꺼이(기쁨으로 자원하여 껴안고 그 자체로) 능히 살 수 있게 하시는바, (동심합치로, 기꺼이 자신을 맡겨드리는 자마다에게 )말씀안에 거하시는 그영 그대로 살아가는자 됨 이루시도다...그는  여호와께서 호흡해내신바 그 말씀안의 그영(성령)을 들이마심으로 ("하가"...Q 말씀을, 말씀 열어주시는 주님을 앙망-바라보며 깨닫게 하시는바를 고백하며 그 말씀을 아뢰고 기도하며 암송함으로써 마음에 새겨지기까지 읊조리는바, 노래!!가 되신 그분의 노래가 되어) 사는자라.. 말씀이신 여호와(참생명-인격을 공급하심)의 진리, 그 거처 됨. 곧 [그분의 진리 말씀으로 적셔진바]영과 혼이 진정한 하나됨 이룬 샤레츠로서, 오직 그분만 나타내는바, 그분을 참되게 배워 살아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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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흡해내시며 행하시는 분의 실제  곧 (동심합치의 참 믿음 발휘하여 겸손히 자신을 열어-비워-내어드림으로써 맡겨드리는 제자마다) 친히 빚어 다루시고 기름 부어 적심/점유/충만-운행/선순환/변화/대치됨 온전히 이루시고 당신으로 채우신바 참생명나무의 어떠함 온전히 이루시나니.. 분배말씀, 곧 자신을 열어주사 목양/양육해내신바 성령을, 곧 말씀 진리(하_마임)를 사는자 됨이라, 지고지선의 진복이로다.. 그 맺게 하신바 열매란 바로 그영, 말씀이신 여호와라...."베레시트"의 완결, 그 생생한 확장이니, 발아된 가지마다 "베레시트"그대로 참생명-인격 넘치며, 동심합치로 친히 이루신바 분배말씀의 실존됨이라....그분은 목양하시는 Q이시로다, 말씀 사역하심으로 Q의 참생명-인격으로 대치된바 말씀의 제자 만드시나니 바로 그 제자 만드시도다. 진복이로다, 친히 사역하심으로 산출-발아하시고 기름부으신 바 그대로 육화 온전히 이룬 실존 만드심이라.. 친히 사역하여 산출하사 결합-연합-교통함으로 살게 하신바 그 제자는 (참된 의미의 형통함  , 그 지고지선을 누리는바) 부활생명의 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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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공급말씀으로 목양하시는 Q, 그분께서 친히 호흡해 내심으로써 조성-확장하여 세우심이라 그영의 형상 부으심으로 산출하신바 그 생명나무가지를, 그분의 거처 삼으심이라.... 곧 하나님의 거처요, 조성하신바 생명나무임이라 ...진복이로다 ....친히 온전케하신바, 그분자신을 열어 부어주사 막힘없는 상호교통-결합-연합-공급하심으로 분별/구별된바, 동심합치로 성령을 붙좇아 하나됨을 사는 존재, 그 확장됨 이루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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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배말씀으로 산출-발아-양육해내신바 참제자마다, 곧 친히 조성하여 세우신바 그분의 확장이니, 공급말씀으로 목양/양육하심으로써 참제자 만드시는 Q, (말씀 수용/적용-새로이 조성/변화 이루시려는) 그분의 소망-교통하심 그대로 기꺼이 껴안아 감수하는바 머리/으뜸이신 기름부음이신 그영, 그분의 형상 부으심으로 산출-발아된 자요, 그분의 거처됨이라 "베레시트" 그대로 실제의 그영을 머리삼은바 그분자신을 열어주사 말하게 하심따라 부활생명의 그영으로 살아가나니, 사람에게 찾아와 도달하신, 부활생명의 넘쳐흐름인바 참지혜 Q. 그분의 거처됨이요, 바로 그분을 투명하게 나타내도다. 시종일관 "베레시트" 그대로 살아낸바 참된 증인이니, 곧 그분과 참생명의 결합-연합-상호교통으로 구별된 하나라... Q의 소망-교통하심 그대로 기꺼이 다 받아들여 사는자요, 그분의 거처로서, (주 보시기에) 진정한 의로움 그대로 살아가도다..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4.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5.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6.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7.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점령하였음이더라

===유다 왕 여호야긴

8.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9.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10.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11.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12.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4.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15.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6.  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유다 왕 시드기야

18.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19.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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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24장


1.  In his days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came up, and Jehoiakim became his servant [for] three years; then he turned and rebelled against him.

2.  And the LORD sent against him bands of Chaldeans, bands of Arameans, bands of Moabites, and bands of Ammonites. So He sent them against Judah to destroy it,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had spoken through His servants the prophets.

3.  Surely at the command of the LORD it came upon Judah, to remove [ them] from His sight because of the sins of Manasseh, according to all that he had done,

4.  and also for the innocent blood which he shed, for he filled Jerusalem with innocent blood; and the LORD would not forgive.

5.  Now the rest of the acts of Jehoiakim and all that he di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Judah?

6.  So Jehoiakim slept with his fathers, and Jehoiachin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7.  And the king of Egypt did not come out of his land again, for the king of Babylon had taken all that belonged to the king of Egypt from the brook of Egypt to the river Euphrates.

8.  Jehoiachin was eighteen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three months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Nehushta the daughter of Elnathan of Jerusalem.

9.  And he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ccording to all that his father had done.

10.  At that time the servants of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went up to Jerusalem, and the city came under siege.

11.  And Nebuchadnezzar the king of Babylon came to the city, while his servants were besieging it.

12.  And Jehoiachin the king of Judah went out to the king of Babylon, he and his mother and his servants and his captains and his officials. So the king of Babylon took him captive in the eighth year of his reign.

13.  And he carried out from there all the treasures of the house of the LORD, and the treasures of the king's house, and cut in pieces all the vessels of gold which Solomon king of Israel had made in the temple of the LORD, just as the LORD had said.

14.  Then he led away into exile all Jerusalem and all the captains and all the mighty men of valor, ten thousand captives, and all the craftsmen and the smiths. None remained except the poorest people of the land.

15.  So he led Jehoiachin away into exile to Babylon; also the king's mother and the king's wives and his officials and the leading men of the land, he led away into exile from Jerusalem to Babylon.

16.  And all the men of valor, seven thousand, and the craftsmen and the smiths, one thousand, all strong and fit for war, and these the king of Babylon brought into exile to Babylon.

17.  Then the king of Babylon made his uncle Mattaniah, king in his place, and changed his name to Zedekiah.

18.  Zedekiah was twenty-on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eleven years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Hamutal the daughter of Jeremiah of Libnah.

19.  And he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ccording to all that Jehoiakim had done. 

20.  For through the anger of the LORD [this] came about in Jerusalem and Judah until He cast them out from His presence. And Zedekiah rebelled against the king of Baby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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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4장 (개요)

모든 사건들이 무르익어 예루살렘의 철저한 파괴를 재촉하고 있었다. 여호야김이 애굽 왕에 의해서 왕위에 오른 사실은 이미 살펴보았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1. 여호야김 정권은 곤경에 빠진다. 그가 어떻게 바벨론 왕에게 예속되었으며, 또한 그가 어떻게 그 예속을 벗어나려고 했다가 큰 징벌을 당하는가를 보게 된다(1-6).

2. 그의 아들의 정권의 붕괴를 볼 수 있다. 그는 겨우 세 달을 통치했다. 그후에 그와 그의 모든 대신들은 강제로 무조건 항복하게 되어,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8-16).

3. 예루살렘의 완전 멸망을 대비한 그 다음 통치자(최후의 통치자)의 준비가 있다. 그리고 그 멸망에 관한 기사는 다음 장에 가면 보게 될 것이다(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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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가 된 여호야김 왕(왕하 24:1-7)

우리는 구약 성경의 역사와 예언에 있어서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한 인물의 이름을 여기서 처음으로 대하게 된다. 그 이름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다(1절). 그 이름은 황금의 머리라는 뜻이다. 그는 세력 있는 왕이었고,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의 땅에는 큰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만약에 그가 예루살렘 멸망과 유대인의 포로 사건에 개입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이름이 성서에 기록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Ⅰ. 그는 여호야김에게 공물을 받았고, 3년 간 속국 상태로 붙들어두었다(1절).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의 재위 제4년 때 통치하기 시작했다. 여호야김 재위 8년에는 느브갓네살이 여호야김을 포로로 잡아갔지만,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약속하고 그에게 자유를 회복시켜 주었다. 3년 간은 그 약속이 지켜졌으나, 그 다음에는 아마 애굽 왕의 도움을 받을 희망으로 느부갓네살을 배반했다. 만약에 그가 자기 하나님을 그토록 섬겼더라면, 그는 바벨론 왕의 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일과 “열방들의 왕을 섬기는 일”과의 차이점을 알려 주셨다(대하 12:8). 만약 여호야김이 자기의 노예적인 위치에 만족하고 자기가 한 약속을 지켰더라면, 그의 처지가 그토록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 왕에게 반역함으로써 그는 스스로 더 어려운 곤경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Ⅱ. 여호야김이 반역하자, 느부갓네살 왕은 그를 대적해서 그 나라를 멸하기 위해 자기의 군대를 보냈다. 즉 갈대아 부대와 아람 부대, 모압 부대, 그리고 암몬 자손의 부대 등인데, 이 나라들도 모두 바벨론 왕을 섬기며 그에게 공물을 바쳐 왔다(2절). 이들은 모두 동시에 기용되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자기들의 오랜 적개심을 발로한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그들이 바벨론 왕의 파송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왕 중의 왕이신 분의 명령을 받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여호와께서 그(여호야김)를 대적하여” 이 모든 부대를 “보내셨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 바”(3절)라고 했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었더라면, 느부갓네살의 명령만으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다를 괴롭혀서 고통을 당하게 하는 데는 두 가지 의도가 있었다.

1. 므낫세의 죄악을 벌하시려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의 죄를 “삼사 대에서” 벌하시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혹시 회개하는지를 알아보시기 위해서, 그들을 벌하기 전에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 왕이 그들을 개혁하려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조금도 뉘우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옛날로 돌아가 과거의 우상숭배를 다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옛 습관으로 옷을 갈아입게 되었으니, 옛 심판을 다시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쌓아두시고”, “그의 곳간에다 봉인하셨던” 바를 다시 꺼내 놓으신 것이다(신 32:34; 욥 14:17). 또한 그것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은 유다를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셨고, 온 세상에 “시간이 죄악의 형벌을 없어지게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집행 유예는 결코 용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므낫세가 행한 모든 악행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그가 흘렸던 무죄한 자들의 피”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중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증인들과 예배자들의 피”였을 것이다. “여호와는” 그런 죄를 “용서하실 수 없다.” 그렇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다만 성령을 거역하는 불경죄 외에도 또 있다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용서란 현세적 형벌에 대한 용서를 뜻한다. 므낫세는 회개했다. 그러므로 그가 범죄한 종교적 박해나 살인죄는 당연히 용서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닥쳐 올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제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죄들은 민족적인 죄악들이었으므로, 그 나라가 책임을 져야 하며, 민족적 심판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마 당시에 생존해 있는 자들 중에는 그 같은 범행에 협력했던 자도 있었을 것이다. 예레미야 22장 7절에 나타난 바대로, 당시의 왕도 또한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는 죄악을 범했던 것이다. 살인죄란 하나님을 얼마나 분노케 하는 죄악이며, 얼마나 큰 소리로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 복수를) 울부짖는 죄악인가를 깨닫자. 민족들이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인해 형벌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선조들의 죄악을 얼마나 애통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알자.

이로써 하나님은 예언의 성취를 의도하셨다. 이러한 사건은 바로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신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서” 된 일이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땅에 떨어지기보다는, 유다가 “하나님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되고”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더욱 쉬운 일이다. 죄인들이 회개하여 막지 않는다면, 경고도 약속처럼 확실히 실현되고 말 것이다.

Ⅲ. 애굽 왕도 역시 바벨론 왕에게 정복당했다. 

바벨론 왕이 그 나라의 대부분을 점령해 버렸다(7절). 아주 근래에 바로는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었다(23:33). 그러나 이제는 그 자신이 몰락하여, 자기가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거나 동맹국을 원조하기 위해서 아무런 조처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감히 “자기 나라에서 나올 수도” 없었다. 그후 그는 시드기야 왕에게 어떤 구조를 베풀려고 시도했었으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렘 37:7).

Ⅳ. 여호야김은 자기의 나라가 황폐하게 되고, 자기 자신도 이제 적의 수중에 떨어지게 됨을 알고는, 괴로워하던 나머지(아마 그런 것 같다) 한창 나이에 죽었다(6절). 그래서 “여호야김은 그의 열조와 함께 잠들었다.” 그러나 그가 “그들과 함께 장사되었다” 하는 말은 없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분명히 성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그가 그의 아버지 때처럼 애곡을 받지도 못할 것이요,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여”(렘 22:18-19), 그의 시체는 버림을 받으리라고 했었다(렘 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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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가 된 여호야긴 왕(왕하 24:8-20)

본문은 여호야긴 왕의 “통치” 역사다. 그러나 슬프다! 그것은 여호야긴 왕의 “유배”의 역사에 불과했도다(겔 1:2 참조). 

그는 왕관으로 나아갔으나, 그것을 머리에 쓰는 명예를 갖지 못하고, 그것을 잃어버리는 수치만을 당했다. “그는 단지 퇴장을 위해 들어왔다”(Ideo tantum venerat, ut exiret)

Ⅰ. 그의 통치는 짧았고, 고려할 가치도 없었다. 그는 불과 3개월을 통치하고는 제거되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다. 

아마 그의 아버지도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런 일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호야긴처럼, 무너지고 있는 집, 몰락하고 있는 왕좌로 나아가는 젊은 왕은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그 낳은 아들을 자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의 어리석음의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게 하며, 자신의 비참 이외에는 자기 자식에게 아무것도 남겨 주지 못하는 아버지는 얼마나 비정한 사람인가!

그러나 이 젊은 왕은 자기가 자기의 열조의 죄로 인해 정당한 징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입증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도록 살았다. 그 이유는, 그가 열조의 전철을 밟았기 때문이다(9절). 그 열조가 행했던 바와 같이,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했다. 즉 그는 그 저주의 상속을 중단시키거나 왕관에게 붙어 내려온 짐(transit cum onere―짐은 왕관과 함께 물려진다)을 덜기 위한 조처를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열조들의 죄악도 바로 그의 죄악으로 치부되고 만 것이다.

Ⅱ. 여호야긴이 정권을 잡은 바로 그때부터 그와 그의 족속과 그리고 그 백성에게 재난이 내렸는데, 그것도 매우 가혹한 재난이었다.

1. 예루살렘이 바벨론 왕에 의해서 포위되었다(10-11절). 바벨론 왕은 유다를 파괴하려고 자기의 군대를 보낸 적이 있다(2절).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직접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한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신 28:49). 즉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너를 치러 한 민족을 오게 하시리니, 그 용모가 흉악하며, (먼저는) 네 토지의 소산을 먹고 (다음에는) 전국(全國)에서 너를 에워쌀 것이다” 하는 말씀이다.

2. 여호야긴은 즉시 무조건 항복을 했다. 

바벨론 왕이 몸소 그 성을 치러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당시 그의 이름은 이미 매우 무서운 공포를 주었다─ 여호야긴은 담판을 제의하고 그에게로 갔다(12절). 여호야긴이 만일 하나님과 화해를 구하고, 이와 비슷한 경우에 히스기야가 행했던 그 방법을 취했더라면, 바벨론 왕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나아가 용감하고 영예롭게 저항하여 마침내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한 사람이 천 명을 능히 징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신앙과 경건심이 없었으므로, 역시 인간다운, 군인다운, 그리고 왕다운 결단력도 없었던 것이다. 그와 왕족들, 그의 어머니와 아내들, 그의 종들과 방백들은 전쟁 포로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그들이 죄의 종이 된 결말이었다.

3. 느부갓네살은 교회와 국가의 내탕고를 약탈했다. 즉 두 곳의 금은을 가져갔다(13절). 그리하여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20:17). 즉 “너의 집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리라”는 말씀이다. 느부갓네살은, 솔로몬이 만들어서, 낡은 그릇이 못쓰게 되면 쓰려고 보관해 두었던 성전 그릇들까지도 산산조각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본 후, 그 그릇들을 자기가 사용하려고 보관했었다. 벨사살 왕이 성전 그릇으로 술을 먹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단 5:2-3)

4. 그는 예루살렘을 약화시키려고, 그 대부분의 주민들을 데려갔다. 그것은 자기의 지배권을 실제로 확고히 하며, 그들의 반란을 방지하며, 자기의 재산을 늘이고 일손을 덜기 위한 조처이기도 했다. 이보다 8년 전, 즉 느부갓네살 재위 제1년이며 여호야김 재위 제3년에도 유배되어간 자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이 있었다(단 1:1, 6 참조). 그들을 포로로 잡아간 것이 결국 잘한 일이라는 것이 판명되자, 이 교활한 왕은 욕심이 생겼다.

(1) 그래서 그는 그 젊은 왕은 물론이요,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갔다(15절). 그 왕은 37년 동안 죄수 노릇을 한 사실을 볼 수 있다(25:27-29).

(2) 그리고 여호야긴 왕의 중요 자리에 있던 자들도 끌고 갔다. 즉 관리들이었는데, “그들은 재물을 지켰으나 그것이 자기에게 해가 된” 자들이요(전 5:13), 그 원수들에게 그들을 먼저 먹으려는 유혹을 준 자들이 되었다.

(3) 모든 군인들을 끌고 갔다. 즉 “힘센 용사들”(14절)과 “나라의 권세 있는 자들”(15절)과 그리고 “싸움에 능하고 강한 모든 용사들”을 잡아갔다(16절). 이들도 자기 자신들을 방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복자는 그들에게 자기들의 나라를 방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그들을 데려다가 그의 일을 시켰던 것이다.

(4) 전쟁 무기를 만들던 모든 기술자들과 대장장이들이 끌려갔다.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데려감으로써, 사실상은 블레셋 사람들의 정략대로(삼상 13:19), 예루살렘을 무장 해제시켰다.

이렇게 끌려간 포로들 중에는 에스겔 선지자(겔 1:1-2)와 모르드개(에 2:6)가 있었다. 그리고 이 여호야긴 왕은 또한 “여고냐”(대상 3:16)라고도 불렸는데, (그의 포로가 예언되었던 예레미야 22장 24절에서는) 경멸조로 “고냐”라고 불렸다.

Ⅲ.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의 대리로 그 후계자를 지명했다. 하나님은 그가 무자(無子)하다고 기록했다(렘 22:30). 그러므로 그의 삼촌이 그 정부를 위임받게 된다. 바벨론 왕은 요시야의 아들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았다. 그리고는 그가 바벨론 왕 자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본인과 온 세상에 알게 하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바꾸어서 “시드기야”라고 불렀다(17절). 때때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저희가 왕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다”고 책망하셨었다(호 8:4). 그리고 그것을 벌하기 위해 바벨론 왕이 그들의 왕을 세우게 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사용하고 주장하던 그 자유를 상실하고 말았다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다. 바벨론 왕이 그에게 주었던 그 이름은 “여호와의 정의”를 뜻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멸망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의가 영화롭게 되리라는 한 조짐이었다.

1. 이 시드기야가 얼마나 불경건했는지를 보라. 그의 직계 선왕 3명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밟지 않아야겠다는 경고를 받았어야 옳았겠지만, 그도 다른 왕들처럼 “악한 일을 행했다”(19절).

2. 그가 얼마나 우둔했는지를 보라. 신앙을 잃게 되자, 그의 선왕이 용기를 잃었듯이, 그는 지혜를 잃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조공을 바치던 “바벨론 왕을 배반했기” 때문이다(20절). 그리하여 그는 전혀 대항할 수 없는 자를 격노케 했다. 만일 그가 계속해서 바벨론 왕에게 충성했더라면, 자신을 잘 보호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할 수 있었던 최대의 어리석은 일이었고, 그의 나라의 멸망을 재촉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유다)을 당신 앞에서 쫓아내시게 된” 그 진노에서 연유된 일이었다. 한 민족의 정책을 맡은 자가 어리석게 행동하여 그 나라의 참된 이익에 거슬러 행한다면, 우리는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진노의 표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나님이 신실한 자의 말을 제하시며, 노인들의 총명을 제거하시고, “또한 공공의 평화에 속한 것들을 그들의 눈에서 감추시는” 것은 바로 그 백성의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멸망하시려는 자들을 우선 바보가 되게 하신다.


====호크마===

..열왕기하 24장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ㅇ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 '느부갓네살' 이란 이름은 바벨론의 신 '느보'(Nebo)의 이름과 결합된 것으로서 '느보여 나의 지계석(地界石)을 지켜주소서'라는 뜻이다(A.van Selms). 한편 여기서 바벨론의 역대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B.C. 609년경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Nabopolassar)은 서진(西進) 정책을 세우고 메소포타미아 북부 성읍 하란(Haran)을 공격하였는데 애굽의 바로느고가 이 지역을 막고 있어서 하란을 탈취하지 못하고 서쪽 영토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뒤 B.C. 605년 경에 나보폴라살의 아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과 애굽의 느고가 유브라데스의 갈그미스에서 전투를 했다. 이때 애굽의 느고(Neco)가 참패하여 물러나고 느부갓네살은 자기 부친 나보폴라살이 원했던 아람과 팔레스틴 전 지역을 차지하고 계속해서 유다의 여호야김과 주변의 다른 왕들을 위협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단 1 : 1-7)도 바로 이때인데 이것이 곧 바벨론의 제1차 유다 침입이다.   또한 느부갓네살이 블레셋 땅 아스글론을 차지한 것(렘 47 : 5-7)은 그로부터 한해 뒤인 B.C. 604년경의 일이다(A. Malamat). 그리고 B.C. 602년경 느부갓네살은 애굽 쪽으로 이동하여 그 경계 지역에서 느고와 다시 격전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두 나라는 크게 손실을 보았고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ㅇ여호야김이 삼 년을 섬기다가...배반하였더니 - 바벨론 1차 침입(B.C. 602년경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으로 돌아가자 여호야김은 주권 회복의 호기(好機)로 생각, 반바벨론 정책을 펼쳤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연합군을 편성, 유다를 정치하였는데 곧 2절의 일이다(H. Aus-tel).

2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ㅇ본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여호야김이 처음 바벨론을 배반했을 때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아람, 모압, 암몬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부대를 유다에 보내어 반란을 평정 하려고 했다(렘 35 : 11).

ㅇ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을 배반한 탓에 갈대아 연합군의 침입을 당한 것은 유다 멸망의 전조(前兆)였다. 그런데 유다가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리라는 사실은 이미 이사야, 미가, 하박국, 예레미야, 스바냐, 훌다등과 같은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던 바이다(20 : 16-18 ; 22 : 16, 17 ; 렘 21 : 8-10; 미 4 : 9, 10 ; 합 1 : 5-11 ;습 1 : 1-18). 그래서 본서 기자는 그 같은 예언에 의거, 당시의 정황을 하나님의 심판의 도래(到來)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ㅇ갈대아의 부대와...암몬 자손의 부대 - 갈대아(Chaldea)는 본래 남부 바벨론에 있는 한 지방의 이름이다. 그런데 후에 이는 신바벨론을 다스렸던 왕국을 통칭(通稱)하게 되었다. 한편 여기서 '부대'레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두딤'은 조직화된 군대가 아니라 기습했다가 달아나는 유격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아람이나 모압, 암몬은 유다보다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유다와 정면 대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도 당시까지는 큰 군대를 유다에 보낼 만한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아람, 모압, 암몬인들로 구성되 유격대를 파견, 유다를 괴롭혔던 것이다. 한편 바벨론이 다시금 팔레스틴에 전면적인 공격을 시도한 것은 여호야김이 죽은 지 1년이 지난 후인 B.C.597년 3월로서 그때는 여호야김의 18살 난 아들 여호야긴(Jehoiachin)이 왕위에 있던 때이다(5-17절). 바로 이것이 바벨론의 제 2차 유다 침입인데 마지막 제 3차 침입에서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사건은 다음 25장에 기록되어 있다.

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바로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함이며

ㅇ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 여기서 '레하스르'는 '돌아서다', '옮기다', '제거하다'라는 뜻의 동사 '수르'의 히필형(hiphil : 사역형 능동) 부정사이다. 따라서 이단어에는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버리시겠다는 강한 의지가 표명되어 있다(17 : 23 ; 23 : 27).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바로 '므낫세의 지은 모든죄'때문이었다(21 : 1-15 ; 23 : 26, 27).

4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ㅇ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 이에 대해서는 21 : 16 주석을 참조 하라. 여기서 므낫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다는 것은 몰록(Moloch)에게 드린 희생 제사(21 : 6), 계속된 의로운 자에 대한 박해(21 :16), 선지자 이사야 살해 등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ㅇ그 피로...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 성경은 피흘림에 대하여 매우 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창 4 : 10에서는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했고, 창 9 : 5에서는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라고 했다.  이와같이 의로운 자의 신원(伸寃) 과 피흘림에 대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보수(報 )하신다는 것이 곧 성경의 가르침이다(사 61 : 1,2; 렘 22 : 16 ; 계 6 : 10, 11 ; 18 :20; 19 : 2).

5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 되지 아니하였느냐

ㅇ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 - 대하 36 : 5-8에는 여호야김의 말년에 대하여 보다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거기에 따르면 여호야김은 바벨론으로 잡혀가 그곳에서 마지막 나날들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구체적인 악행에 대해서는 예레미야서(26 : 23 ; 36 : 20-23, 26)와 에스겔서(19 : 9)에 잘기록되가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23 : 35, 37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6 여호야김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여호야김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 역대기 기자는 여호야김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쇠사슬로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잡혀 갔다고 기록할 뿐(대하 36 : 5-8)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않다. 그리고 렘 22 : 19에서는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그 열조와 함께 자매'라는 말은 여호야김이 예루살렘에 있는 묘실에 장사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Ho-bbs). 더욱이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에는 여호야김이 '웃사의 동산' 에 장사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렘 22 : 19 ; 36 : 30).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들로 볼 때 여호야김은 어떤 식을든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되끌려와 죽임당한 후 예루살렘 묘실에 장사된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한편 렘 36 : 30에서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여호야김의 시신이 영구히 그대로 버리워진 채로 방치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얼마 동안 그렇게 버리워져 있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ㅇ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렘 36 : 30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야김에 대하여 "그에게 다윗의 위에 않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라고 예언하였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서로 모순이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호야긴은 즉위한지 3개월 만에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대신 여호야김의 동생, 즉 그의 삼촌이 왕위에 올랐으니(15, 17절) 실상 여호야긴은 왕위에 올랐다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7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취하였음이더라

ㅇ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 애굽 왕 느고는 두 번에 걸쳐 하란 남쪽에 위치한 갈그미스(Carchemish) 지역으로 원정을 했었다. 첫번째 원정시에는 성공하여 팔레스틴을 장악할 수 있었으나(23 : 29-34)두번째 원정에서는 이미 강력한 제국을 형성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대파당하여(렘 46 : 2-12) 팔레스틴 지역에 대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졌다. 따라서 애굽왕 느고는 느부갓네살이 생존한 동안에는 더이상 팔레스틴 지역으로 원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ㅇ애굽 하수 - 이는 애굽을 상징하는 강인 나일 강(the river of Nile)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는 바란 광야에서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애굽 시내(the brook of Egypt)를 가리킨다. 민 34 : 5 주석 참조.

8 여호야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느후스다라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ㅇ여호야긴...나이 십 팔세라 - '여호야긴'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일명 여고냐(Jeconiah,대상 3 : 16)또는 고니야(Coniah)로도 불리웠다(렘 22 : 24). 한편 병행 구절인 대하 36 : 9에서는 여호야긴이 위(位)에 나아갈 때에 단지 8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본문 훼손의 문제 때문인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1 8세밖에 안 된 여호야긴이 집권 3개월 만에 포로로 잡혀갔을리는 만무하며 2 15절에서 그의 아내들이 언급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렘 22 : 28에서는그의 자손까지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대기의 기록은 '10'을 나타내는알파벱 '요드'가 지워져 버림으로 인해 생긴 본문 훼손상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장 8-20절 강해, '병행 본문의 상이한 기록'을 참조하라.

ㅇ그 모친의 이름은 느후스다라 - '느후스다'(Nehushta)라는 이름의 뜻은 '동'(銅)이다.이와 관련하여 우리 18 : 4에서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자손의 구리뱀을 가리켜 '느후스단'(Nehushtan)이라 칭한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

ㅇ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 '엘라단'(Elnathan)은 여호야김 통치때에 있던 예루살렘 방백들 중의 한사람이다(렘 26 : 22 ; 36 : 12, 25). 한편 렘 22 : 26과 29 :2에 따르면 여호야긴의 모친 느후스다도 11장의 아달랴와 같이 아들의 짧은 통치 기간 동안에 정권을 좌지우지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9 여호야긴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ㅇ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 본서 기자는 아주 간략하게 여호야긴이 부친 여호야김과 같이(23 : 37)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행악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를 가리켜 '천한 파기(破器)'와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렘 22 :28)이라고도 표현했다. 아마도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던 여호야긴의 무익성을 강조한 말인 듯하다.

10 그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ㅇ그때에 - 즉 여호야긴이 유다의 왕이되었을 때를 가리킨다. 대하 36 : 10에는 '세초(歲初)에'로 되어 있는데 곧 B.C. 597년 3월이다. 이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제2차 유다 침입을 시도하였다.

ㅇ그 성을 에워싸니라 - 처음에 예루살렘을 에워싼 것은 느부갓네살의 신복(臣僕)들 이었고 느부갓네살 왕은 한참 후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11절). 한편 처음에 여호야긴은 애굽의 지원을 기대하면서 완강하게 저항하였으나 애굽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고 느부갓네살이 추가 병력을 이끌고 도착하자 곧 항복하기로 한것같다(12절).

11 그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ㅇ본절은 느부갓네살이 추가 병력을 이끌고 신복들을 뒤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했음을 보여준다

ㅇ에워쌀 때에 - 과거 앗수르 왕 산 헤립도 이와같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했다(18 : 17-37). 그런데 어떤 성이 이렇게 포위 공격을 당할 때는 제일 먼저 식량과 식수 문제로 인해 곤욕을 치루기 마련이다(6 : 24-30). 여호야긴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느부갓네살에게 이내 항복한 이유 중의 하나도 아마 이와 같은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12 유다 왕 여호야긴이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 왕 팔년이라

ㅇ여호야긴이 그 모친과...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 여호야긴이 이렇게 빨리 항복하기로 결정한 또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 예레미야나 다른 선지자들의 예언 때문이었을 것이다(렘 22 : 24-30). 아무튼 여호야긴은 바벨론 왕의 선처(善處)를 바라면서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을 모두 데리고 항복하러 나아갔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그의 부친 여호야김에게 했던 대로(대하 36 : 5-8) 여호야긴에게도 어떠한 혜택도 베풀지 않고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들 모두를 포로로 잡아가고 말았다(렘 22: 24-30).

ㅇ때는 바벨론 왕 팔 년이라 - 여기 제시된 연대는 바벨론 역대기의 통치 연대와 거의 일치한다. 이로 보아 본서 기자는 느부갓네살의 즉위 연대와 바벨론 통치 연대를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Hobbs). 한편 느부갓네살은 B.C. 605년에 즉위했기 때문에 그의 8년은 B.C. 597년이된다.그런데 렘52 : 28에는 느부갓네살이 처음으로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 그의 통치 7년부터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그것은 바벨론 왕의 즉위 연대를 잘못 계산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Hobbs).

13 저가 여호와의 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전의 금 기명을 다 훼파 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ㅇ예루살렘 성을 몰락시킨 후 바벨론은 맨 먼저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들을 탈취해 갔다. 이방 나라의 침략에는 항상 이와 같은 노략 사건이 뒤따르기 마련이나 여기서는 20 : 16-19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라는 점에서 특이성이 있다

ㅇ솔로몬이 만든 것 곧...금기명 - 이들 기명에 대해서는 왕상 7 : 48-51을 보라.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면서도 성전 기구들과 금기명(金器皿)들을 제작하였다. 한편 몽고메리(Montgomery)와 그레이(Gray)는 본절이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고한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르호보암 당시 이미 애굽 왕 시삭(Shishak)이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를 다 빼앗아간 사건을 든다(왕상 14 : 25, 26) 그러나 본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전에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은 솔로몬 시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 시대에 이웃 나라의 사절단이 가져온 것들이다(20 : 12 ; 대하 32 : 23). 그리고 본절에서 '솔로몬이 만든 것'이란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들을 가리킨다.그런데 왕상 24 : 26에는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는 탈취당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금기명에 대한 언급은 없다.

ㅇ다 훼파하였으니 - 여기서 '훼파하였으니'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카차츠'는 16 : 17에서 '떼어내라', 18 : 16에서 '벗기다' 로 번역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이단어는 금을 탈취하기 위하여 각종 기명들에 두텁게 입혀져 있는 금들을 벗겨낸 것을 가리킨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을 다 훼파했다고 했지만 25: 15이나 렘 27 : 19-22에 따르면 놋 기명들과 약간의 금물(金物)들이 시드기야 때까지 남아 있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바벨론이 여호야긴 대신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정치적, 경제적 명맥을 당분간이나마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것(17절)으로 보아도 그러한 기명들을 약간이나마 남겨 두었음이 분명하다(Hobbs).

14 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일만명과 모든 공장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ㅇ본절의 내용과 병행하는 바벧론 왕들의 역대기를 보면 이때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방대한 공물(貢物)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공물들 가운데는 본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ㅇ모든 방백과 - 여기서 '방백'이 '용사 합 일만명'과 나란히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단순히 예루살렘의 귀인(貴人)들이나 상류층 남자들이기보다 군대의 두령들인 것으로 추정된다(Hobbs).

ㅇ모든 용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보레 하하일'의 문자적인 의미는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다. 혹자는 이것을 '부유한 자들'로도 해석하나(Bahr,Gray) 이것은 '모든 훈련받은 무리'(Hobbs,Ewald)를 의미함이 분명하다. 한편 여기서 '합 일만명'이라는 수치는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 그리고 모든 용사를 합친 수치인 것 같다. 따라서 이는 16절의 용사를 칠천이라는 수치와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렘52 : 28에 따르면 B.C. 597년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의 숫자는 3,023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본절의 기록과 모순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이와같이 양자간의 수치가 다른 것은 포로들을 구분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온 것이아닌가 추측된다(Hobbs).

ㅇ모든 공장과 대장장이 - 여기서 '공장'(하라쉬)은 '돌이나 금속 또는 나무들을 자유 자재로 다루는 모든 기술자들'을 뜻한다(출 28 : 11 ; 왕상 7 : 14 ; 사 44: 12). 그리고 '대장장이'(함미쓰게로)는 '가두는 사람', '잠그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Hebrew and Engli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각종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들을 가리킨다(Bahr).

ㅇ빈천한 자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 여기서 '빈천한 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달란트'는 보다 광의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민들을 가리킨다. 즉 이는 단순히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만을 가리키기 보다는 힘이 없는 천민들도 포함한다. 한편 렘 38 : 4, 7, 25, 27 ; 40 : 7 ; 52 : 7을 참조해 볼때, 시드기야 치하의 예루살렘에는 방백들과 군대 장관들 그리고 많지 않은 군사들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본절의 내용과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  그것은 수사법상의 차이로 설명될 수 밖에 없다. 즉 본절은 바벨론의 2차 침공으로 유다가 거의 전멸되다시피 한 상황을 표현한 반면, 예레미야서는 유다의 행정을 유지하기 위해 남겨진 최소한의 인원을 사실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본서의 저자는 약간의 과장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당시 상황의 암울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사실 당시 남겨진 백성들은 대다수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로서 더이상 바벨론에 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수효였다.

15 저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ㅇ저가 여호야긴을...바벨론으로 사로 잡아 가고 - 본절은 이처럼 여호야긴 및 그의 측근들과 왕궁에서 그를 받들던 요직(要職)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음을 보여준다. 한편 혹자는 본절과 16절이 14절을 다시 한번 자세하게 풀어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Mo-ntgomery). 그러나 본절과 16절과 14절은 그 내용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다. 즉 본절과 16절은 보다 광범위하게 포로들을 분류해서 설명한 것이나 14절은 특별히 군대와 관련있는 사람들에 관해 설명한 것이다. 한편 이 포로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잡혀갔는데 여기서 바벧론'은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바벨론의 수도였던 바벨론 성읍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정복 왕들은 포로를 자기 수도로 이끌고 가서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16 또 용사 칠천과 공장과 대장장이 일천 곧 다 강장하여 싸움에 능한 자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고

ㅇ다 강장하여 싸움에 능한 자들 - 느부갓네살은 직접적인 전투를 수행하는 칠천 명의 용사와 성을 부수고 또 성을 세울 때에 필요한 기술자들인 공장과 대장장이 천 명을 바벧으로 잡아갔다. 따라서 느부갓네살은 실상 강장(强壯)하고 싸움에 능한 자들을 다 잡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분명 그렇게 함으로써 바벨론은 유다로 하여금 더이상 어떠한 군사적인 모반이라도 꾀하지 못하게 하려 했을 것이다.

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아자비 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ㅇ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 요시야(Josiah)의 아들은 모두 네 명으로서 요하난, 여호야김(엘리야김), 맛다니야(시드기야), 여호아하스(살롬)이다(대상3: 15).  이중에 맛다니야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로서 여호야긴에게는 '아자비', 즉 삼촌(uncle)이 된다. 한편 느부갓네살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맛다니야(Mattaniah)는 자신의 마음에 꼭 맞았다고 한다(Hobbs). 그런데 아이러니(irony)하게도 '맛다니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선물'이다. 그리고 고친 이름인 '시드기야'의 뜻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이다. 이와 관련 혹자는 맛다니야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 (렘 23 : 5, 6)을 염두에 두고 '시드기야'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고 본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여호와가 의로써 유다를 통치 하시기를 바라는 의로운 자들의 소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Rawlinson).

18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일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ㅇ시드기야가...십 일 년을 치리하니라 - 시드기야의 통치 11년은 B.C. 597년 까지이다. 그는 유다 왕조의 최후 통치자로서 예루살렘 함락을 목도한 비극의 인물이다.

ㅇ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 시드기야는 여호아하스의 동복(同腹) 형제이다(대상 3 : 15). 따라서 그 어미가 같을 수 밖에 없다. 한편 하무달(Hamutal)이란 이름의 뜻은 '안개의 사촌'인 것으로 추정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3 : 31 주석 참조하라.

19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ㅇ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 요시야의 아들들은 하나같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였다. 그중에서도 시드기야의 악행에 대해서는 대하 36 : 12-16, 렘 27-39장에 상세히 나와 있으니 참조하라. 그 기록들에 따르면 시드기야는 매우 허약하고, 우유부단하며, 환경에 잘 휩쓸리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슛아 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ㅇ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 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 이는 곧 때가 차면 홀연히 여호와의 심판이 임하듯(슥 14장) 이제 패역한 유다 백성을 징계할 바벨론의 마지막3차 침입이 있으리라는 말이다.

ㅇ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 본절을 다시 말하면,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그 앞에서 쫓아내시기 위하여 진노하셨기때문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레미야의 예언들 속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데(렘21 : 1-10 ; 34 : 1-3 ; 37 : 6-10 ; 38 : 17-23)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함으로 인해 온 유다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계속해서 충고했다. 한편 이와 관련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게 된 외적인 동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 유다의 반바벨론 정책을 주장하던 무리들은 시드기야에게 적극적으로 친애굽 정책을 주장했다. 심지어 이 무리들은 우유 부단한 시드기야를 설득시켜 바벨론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하고 애굽의 지원을 요청했다(렘 27 : 1-22). 이때 거짓 선지자들도 이 정책을 지지하느 거짓 예언을 했다(렘 28 : 2-4).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가 애굽과 동맹을 맺고 그를 의지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의 예언을 했다(렘37 : 6-8). 이처럼 들을 귀가 없고 볼 눈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들을수 없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바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므로 화를 자초하게 된다. 그 일례로 참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버리고 거짓 선지자를 좇아 아람 왕과 싸우다가 전사한 아합 왕을 들수 있다(대하 18 : 33, 34). 아무튼 이상의 결과 시드기야는 유다의 가장 비참하고 굴욕적인 왕이 되었다(25 : 4-7).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벨론에 복종했으면 유다가 멸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며 자신도 비참한 상황에 처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사는 자들은 신명기적 축복과 저주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신 28 : 1-68). 우리는 이러한 원칙이 신약 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됨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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