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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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16장 [322.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73.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 [74. 오 만세 반석이신]

===유다 왕 아하스  @@아하스 אָחָ֥ז ..알렙-헤이트-자인  [영생의 Q 그가 붙잡으심]

1.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2.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요담과 공동통치 4년..20세..단독통치는, 요담 사후, 24세부터 16년간..수리아역-70인역 참조)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3.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4.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6.  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8.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아람 멸망)

10.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진실한증인이라야함]우리야((빛, 여호와..아하스때 대제사장) = 우르/오르<알렙-바브-레이시> + 야흐 

.....*스가랴(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히스기야의 외조부) =자카르<자인-카프-레이시>+야흐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15.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17.  ○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그것을 두며

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19.  아하스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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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  עמנו אל׃...<아인-멤-눈-바브(중) , 알렙-라멛>....[사8:9-22..  9.  너희 민족들아, 까불어 보라! 그래도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 귀 기울이라! 멀리 있는 모든 나라들아, 허리를 동여 보라! 그래도 부서질 것이다. 허리를 동여 보라! 그래도 부서질 것이다.    10.  전략을 세워 보라! 그래도 소용없을 것이다. 말을 지껄여 보라! 그래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11.  여호와께서 그분의 손으로 나를 강하게 붙잡고 이 백성들의 길을 따르지 마라고 경고하며 말씀하셨다.   12.  “이 백성이 음모라고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음모라고 말하지 마라.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떨지도 마라.   13.  너희는 만군의 여호와 그분을 거룩하다고 여겨야 한다. 너희가 두려워하고 떨어야 할 분은 다름 아닌 그분이다.   14.  그분은 성소도 되시지만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리는 돌도 되시고 부딪히는 바위도 되시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가미도 되신다.   15.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걸려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깨지며 덫에 걸리고 잡힐 것이다.”   16.  나는 증거 문서를 묶어 매고 내 제자들과 함께 이 가르침을 봉인하고는   17.  여호와를 기다릴 것이다. 그분이 야곱의 집에게 얼굴을 숨기시고 계시지만 나는 그분을 기다리겠다.   18.  여기에 여호와께서 주신 자녀들과 나를 보아라. 우리는 시온 산에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표적과 상징이다.   19.  그런데 사람들은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속살거리고 중얼거리는 마법사와 무당을 찾아가십시오. 어느 백성이든 자기 신에게 찾아가지 않습니까? 살아 있는 사람 대신 죽은 사람에게 찾아가지 않습니까?”   20.  율법과 증거에 따르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기필코 동트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21.  그들은 고생하며 배고파하며 이 땅을 헤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굶주리면 화가 나서 위를 쳐다보고 그들의 왕, 그들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다.   22.  그러고는 땅을 굽어보겠지만 고통과 어둠과 괴로운 암흑밖에 없고 마침내 그 짙은 어둠 속으로 내쫓길 것이다.]

-((아하스왕 당시 주변의 침략))**르신 침입 -->수다한 백성 포로됨. 아람(본래 아람에게 속한 식민지였었으나 요담-웃시야때 점령했던바<에시온게벨 건너편>: 엘랏..회복) .....**베가>12만명 살육, 20만명 포로-->, ::오뎃(너희는 범죄함 없느냐) -그외 에브라임 자손 5인 -아사랴, 베레갸, 여히스기야, 아마샤-들의 저지. 여리고성에서 귀환시킴 **에돔 침략-포로 잡음,  **블레셋 (벧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과 소고),  **[도움 청한] 앗수르가 공격...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은금 제공 ==>방백들의 집에서 은금 탈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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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6장


1.  In the seventeenth year of Pekah the son of Remaliah, Ahaz the son of Jotham, king of Judah, became king.

2.  Ahaz [was] twenty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sixteen years in Jerusalem; and he did not do what was right in the sight of the LORD his God, as his father David [had done.]

3.  But he walked in the way of the kings of Israel, and even made his son pass through the fire, according to the abominations of the nations whom the LORD had driven out from before the sons of Israel.

4.  And he sacrificed and burned incense on the high places and on the hills and under every green tree.

5.  Then Rezin king of Aram and Pekah son of Remaliah, king of Israel, came up to Jerusalem to [wage] war; and they besieged Ahaz, but could not overcome him.

6.  At that time Rezin king of Aram recovered Elath for Aram, and cleared the Judeans out of Elath entirely; and the Arameans came to Elath, and have lived there to this day.

7.  So Ahaz sent messengers to Tiglath-pileser king of Assyria, saying, "I am your servant and your son; come up and deliver me from the hand of the king of Aram, and from the hand of the king of Israel, who are rising up against me."

8.  And Ahaz took the silver and gold that was found in the house of the LORD and in the treasuries of the king's house, and sent a present to the king of Assyria.

9.  So the king of Assyria listened to him; and the king of Assyria went up against Damascus and captured it, and carried [the people of] it away into exile to Kir, and put Rezin to death.

10.  Now King Ahaz went to Damascus to meet Tiglath-pileser king of Assyria, and saw the altar which [was] at Damascus; and King Ahaz sent to Urijah the priest the pattern of the altar and its model, according to all its workmanship.

11.  So Urijah the priest built an altar; according to all that King Ahaz had sent from Damascus, thus Urijah the priest made [it,] before the coming of King Ahaz from Damascus.

12.  And when the king came from Damascus, the king saw the altar; then the king approached the altar and went up to it,

13.  and burned his burnt offering and his meal offering, and poured his libation and sprinkled the blood of his peace offerings on the altar.

14.  And the bronze altar, which [was] before the LORD, he brought from the front of the house, from between [his] altar and the house of the LORD, and he put it on the north side of [his] altar.

15.  Then King Ahaz commanded Urijah the priest, saying, "Upon the great altar burn the morning burnt offering and the evening meal offering and the king's burnt offering and his meal offering, with the burnt offering of all the people of the land and their meal offering and their libations; and sprinkle on it all the blood of the burnt offering and all the blood of the sacrifice. But the bronze altar shall be for me to inquire [ by.]"

16.  So Urijah the priest did according to all that King Ahaz commanded.

17.  Then King Ahaz cut off the borders of the stands, and removed the laver from them; he also took down the sea from the bronze oxen which were under it, and put it on a pavement of stone.

18.  And the covered way for the sabbath which they had built in the house, and the outer entry of the king, he removed from the house of the LORD because of the king of Assyria.

19.  Now the rest of the acts of Ahaz which he di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Judah? 

20.  So Ahaz slept with his fathers, and was buried with his fathers in the city of David; and his son Hezekiah reigned in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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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6장 (개요)
본장은 전부가 아하스의 통치 이야기이다. 그의 통치는 별로 훌륭한 것도 아닌데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훌륭한 부친과 보다 더 훌륭한 아들을 가졌으나, 자신은 유다 열왕 중 가장 악한 왕의 한 사람이었다.
1. 그는 유명한 우상 숭배자였다(1-4).
2. 그는 자신의 것은 물론 성전의 보물을 주고 앗수르의 왕을 고용하여 아람과 이스라엘을 침입했다(5-9).
3. 그는 다메섹에 있는 우상의 제단에서 모형을 취하여 성전에 새로운 제단을 설치했다(10-16).
4. 그는 성전의 비품을 남용하고 착복했다(17-18). 그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난다(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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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의 통치(1)(왕하 16:1-4)
우리는 여기에서 아하스 통치의 일반적 성격을 보게 된다. 그의 연한은 짧았고 악했다. 즉 그는 36세에 죽었기 때문에 그 날이 짧았다. 또 그의 날들이 악했음에 대해서 여기에서 보게 된다.
Ⅰ.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였다”는 사실이다(2절). 
다윗은 하나님 경외와 정해진 대로 드린 예배 때문에 칭송을 받았으나, 아하스는 그런 일에 애착과 관심을 전혀 갖지 않았다. 그는 성전을 사랑하지 않았다. 
또 하나님께 대한 의무감도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중히 여기지도 않았다. 이 점에서 그는 다윗과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다윗의 혈통과 집에 속했다는 것은 하나의 영예였다. 그가 왕좌에 앉은 것은, 하나님이 예전에 다윗과 맺었던 언약 때문이다. 이 왕좌는 오히려 그의 죄를 더욱 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 명예로운 이름과 가문에 치욕거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그에게도 치욕이었다(훌륭한 혈통은 거기에서 타락해 나간 자에게는 불명예이다―Degeneranti genus opprobrium). 그리고 그가 비록 다윗의 신앙의 은덕을 입었다 할지라도 다윗의 신앙의 길로 가지는 않았다.
Ⅱ. 그는 송아지 우상을 섬겼던 “이스라엘 열왕의 모든 길로 갔다”(3절). 
여로보암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과 결연했을 때와 같이, 그는 그들과 인척관계는 없었으나, “아무런 교사(敎唆)가 없이도”(ex mero motu) 그들의 길로 갔다. 
이스라엘의 열왕은 정책적으로 우상숭배를 해 나갔고 거기에 대한 구실이 있었으나, 아하스에게는 그러한 구실이 전혀 없었다. 즉 아하스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도 없는 가장 부당하고 불경한 것이 우상숭배였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그의 적이었다. 그리고 우상숭배 때문에 그들은 또한 그들 자신에게도 원수였다는 것이 입증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하스는 그들의 길로 갔다.
Ⅲ. 그의 쓰레기더미 같은 신들을 위해, 그는 “자기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는 자기 아들을 태워 죽였다. 그것은 역대하 28장 3절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그는 어떤 아들은 불에 태우고, 어떤 아들은 두 불 사이를 통과하게 했거나 우상에 대한 헌납의 표시로서 불꽃을 통과케 했다(히스기야도 그보다 악한 왕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을 했다).
Ⅳ. 그는 “여호와께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행했다. 
그가 자기 눈으로 직접 그들이 멸망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에게 종교적 지도를 받으려 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따랐다는 것은 그의 커다란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노라고 선포했던 바로 그런 관습들을 그가 따르려 했고, 하나님이 쫓아내었던 자들의 본을 따르려고 애썼으며, 그리하여 결국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반대되는 길로 간 것은 그의 커다란 불경이다.
Ⅴ. 그가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이다(4절). 
만일 그의 아버지가 산당을 제거할 만한 열정을 가졌더라면, 그 자식들의 타락은 방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를 묵과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자기들의 뒤에 오는 자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덫을 놓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버렸다. 그의 아버지 시대에는 여호와 앞에 종종 참예했으나, 이제는 그곳에 싫증이 났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보다 좋게 여기던 산당이나, 그가 보다 더 즐거운 그늘을 즐길 수 있었던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렸다. 그것은 무가치한 종교이며, 신앙이 아니라 공상에 이끌리는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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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의 통치(2)(왕하 16:5-9)
Ⅰ. 여기에서 아하스의 동맹국 아람과 이스라엘 왕들이 아하스를 공략한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루살렘의 주인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곳에다 자기들의 궁정을 두려고 했다(사 7:6). 이 기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아람의 왕은 엘랏을 회복하였는데, 엘랏은 홍해에 위치한 중요한 항구이며 아마샤 왕이 아람에서 빼앗은 도시이다(14:22). 
자기들의 신앙을 상실한 자들이 무엇인들 보존할 수 있을까? 신앙을 잃은 자들은 자기들의 길이 계속 손해보는 데로 달려갈 것을 각오해야 한다.
Ⅱ. 아하스는 그들과의 대결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나자, 적들을 대항할 용기도 힘도 그에게는 없었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앗수르 왕의 비위를 맞추어서, 자기를 구원하러 오게 했다.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들은 환난 날이 되면 하나님께로 가기보다는 그밖의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그가 앗수르에 도움을 청하러 보낸 것은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가 이렇게 부러진 갈대에 의지해야 했다는 것은 영원한 반석이 사라진 때문인가? 죄 자체가 벌이 된다. 왜냐하면 [앗수르 왕이 아하스의 말을 듣고, 그의 요구대로 다메섹으로 내려와서, 아람 왕에게 강력한 견제공격(牽制攻擊)을 가하여(9절) 아람 왕으로 하여금 아하스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리고 아모스가 분명히 예언했던 것처럼(암 1:5) 아람 거민들을 길로 사로잡아 갔다는 점에서] 아하스가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그는 손해보는 흥정을 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1. 자기 자신이 노예가 되었다(7절). 즉 “나는 왕의 신복(臣僕)이요 왕의 아들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나에게 친절히 하면, 내가 상전이나 아버지에게 대하듯 당신에게 충성하고 순복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가 하나님께 자기를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였더라면, 그는 보다 용이한 조건으로 받았을 것이다. 즉 돈은 필요 없었을 것이고 단지 자신이 죄에서 떠나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버리면, 곧 보다 악한 주인의 종이 되는 법이다(눅 15:15)
2. 그는 가난하게 되었다. 그가 성전 곳간과 나라의 곳간에 쌓인 금 은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기 때문이다(8절). 교회와 국가는 모두 자기들의 새로운 후원자요 보호자인 앗수르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재산을 털어야 했고 바닥이 나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도대체 그가 공공재산을 그런 식으로 처분할 무슨 권리라도 가졌는지 알지 못하겠다. 그러나 죄로 인해 곤궁에 빠진 자들이 또 하나의 죄를 통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나님과 멀어진 자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자기의 권리를 쉽게 포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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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의 통치(3)(왕하 16:10-16)
아하스가 스스로 산당에서, 언덕에서,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4절) 희생제사를 드렸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제단도 그때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왕의 번제와 소제”(15절)는 하나님의 제단에 시중드는 제사장에 의하여 하나님의 제단 위에 드려졌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제단은 아하스에 의해서 제거되고, 그대신 다른 제단 즉 우상의 제단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열왕들 중에서도 지금까지의 가장 대담한 공격이 종교에 가해졌다. 이제 그것을 살펴보자.
Ⅰ. 왕이 직접 다메섹에 있는 한 제단에서 새로운 제단의 모형을 가져왔다(10절). 아하스는 앗수르 왕이 다메섹을 탈취하자 그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거기까지 갔다. 그가 원정으로서 자기에게 베푼 친절에 대해 감사를 드리기 위해 갔으며, 그의 신복이요 아들로서 명령을 받으러 갔다. 만일 아하스가 하나님을 신뢰했더라면 외세(外勢)에 그렇게 비참하게 굴종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다메섹에서 진귀한 물건들을 보는 동안, 혹은 그들의 제사에 참여하는 동안(그가 거기 있을 때는, 그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결코 해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의 제단을 보았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좋아 보였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예루살렘에서 참예했던 그런 평범하고 낡은 모양의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각인(刻印)된 것이었다. 아마 거기에는 우상의 모양을 딴 공예품이 장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 제단 주위에는 많은 예쁜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그에게는 의미가 있고, 놀랍고, 매우 매력적이고, 신앙심을 북돋을 수 있게끔 계획된 것으로 보였다. 그의 생각에는, 이 제단을 만든 독창적인 예술가와 비교해볼 때, 솔로몬은 우둔한 생각을 가진 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이와 똑같은 제단을 하나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그 모형을 본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그 모형을 먼저 급히 보내면서 제사장 우리야에게 이 모형에 의해서 정확하게 제단을 만들어, 자기가 돌아올 때쯤에는 준비해 두라는 명령을 했다. 하나님이 산에서 모세에게 혹은 성령으로 다윗에게 보여주었던 모형은 다메섹에 있던 모형과는 비교될 수 없었다. 우상 숭배자들의 마음은 자기들의 안목을 좇아 걷게 되는데, 그들의 안목은 결국 “저들의 우상을 섬긴다”라고 했다. 그러나 참된 예배자들은 신앙으로 참 하나님을 예배한다.
Ⅱ.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들었다(11절). 이 우리야는 아마도 대제사장이었을 것이며, 이때에 성전의 일에 집무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하스가 우리야에게 내린 명령의 내용을 분명히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아하스는 우리야에게 자기가 고안한 모조품을 보내어 그 모형대로 제단을 만들려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어떤 논박이나 반대도 하지 않고, 우리야는 곧 그것을 손에 넣었다. 아마 우리야도 왕처럼 그 모형을 좋아했을 것이며, 최소한 왕의 비위를 맞추어 그의 총애를 얻고자 몹시 애썼을 것이다. 아마 여기에서 그가 왕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한 일에는 이러한 구실을 붙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이런 방법을 쓰면 왕을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게 할 수 있으므로, 산당들과 숲에서 제사하는 것 때문에 성전을 완전히 황폐케 하는 것만은 막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야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하여 그에게 호의를 베풀자. 그러면 그는 그의 모든 희생제물을 우리에게로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 덕분에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어떠한 구실은 붙이든지, 이런 이유로 제사장이며 대제사장인 그가 우상숭배를 하는 군주의 명령에 따라 우상의 제단을 만든 것은 지극히 비속하고 악한 일이었다.
1. 그는 인간들의 정욕의 종이 됨으로써 자기의 권위를 악용하였고, 자기의 제사장직의 명예를 더럽혔다. 이와 같이 악한 요구를 추종하는 것은 가장 큰 불명예가 된다.
2. 그는 신뢰를 저버렸다. 제사장으로서 그는 하나님의 제도들을 유지하고 수호하며, 일체의 새로운 고안을 반대하고 거부할 의무가 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이 지정해 놓은 제단과 대립되는 제단을 세우는 일로 왕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은, 그를 모든 후손들에게 악명 높은 자로 몰아세워도 좋을 만큼 배신적이요 불신앙적인 행위였다. 그가 그런 일을 묵과하기만 했더라면―또는 협박에 못 이겨 그렇게 했더라면― 그가 왕을 설득시켜서 그 일을 못하도록 노력했다든가 혹은 왕이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을 연기하였더라면(왕이 돌아오면 제일 먼저 그와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까지 나쁜 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그가 왕을 만족시킬 기회를 기뻐 찾았다는 듯 그렇게 즐겨 그의 명령을 좇는 것은, 그가 섬겼던 하나님께 대해서는 전혀 변명될 수 없는 모욕이었다.
Ⅲ. 그 제단이 봉헌되었다. 우리야는 왕이 그 제단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서, 그가 돌아오기 전에 완성해 두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제단은 성전의 놋제단 가까이에 두었으나, 성전의 문에서는 다소 멀리 그리고 다소 더 낮은 곳에 두었다. 왕은 그것을 보고 심히 기뻐했다.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다가가서, 그 위에다 자기의 번제를 드렸다(12-13절 이하). 그의 희생제물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메섹의 신에게 드려졌다(대하 28:23 참조). 아람의 제단을 빌어올 때, 그들의 신도 빌어왔다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아람 사람 나아만은 제단을 만들기 위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흙을 취할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Ⅳ. 그 제단을 둘 자리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제단을 제거했다. 우리야는 대단히 조심성이 있어서, 그 제단을 성전 뜰의 비교적 낮은 구석에다 두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제단은 제자리에 두었다. 곧 “새 단과 여호와의 전 사이”에 두었다(14절). 그러나 그것은 아하스 왕을 만족하게 해 주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제단을 성전 뜰 북쪽의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몰아내고 자기의 제단을 그 자리 곧 지성소 앞에다 두었다. 그는 자기의 새 단이 훨씬 더 장엄하고 훨씬 더 보기에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단은 업신여기며 모독했다. 그러므로 “기분 좋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는 그릇 같은 하나님의 제단을 치워버리라”고 한 것이다. 그의 미신적인 창안품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와 다투더니, 결국에는 아주 밀어내 버렸다. 하나님을 자기의 전부로 삼지 않으려는 자는 조만간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마련임을 명심하자. 아하스는 (백성들을 두려워하므로) 감히 놋제단을 산산이 부수어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희생제물은 이 새 제단에 드리라고 명령하는 반면에(15절), “놋제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고 말한다. 제단을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이것은 그 위에 바쳐진 제물들을 거룩하게 한다―하지 않으면서, 그는 자기가 그 제도를 더욱 발전시킨 것처럼 착각한다. 그런 일은 미신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제단은 결코 신탁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닌데도, 아하스는 여전히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가톨릭 교회는 외견상 그리스도의 만찬을 찬미하지만, 실상은 엄청나게 타락시킨다.
그러나 혹자는 아하스의 의도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즉 “놋단에 관해서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처치할까를 생각해 보고 나서 명령을 주겠다”는 뜻으로 본다. 이후에 그는 “아하스의 일영표”(20:11)라고 하는 그 유명한 일영표를 그 제단의 놋으로 만들었다고 유대인들은 말한다. 불건전한 정신의 소유자인 왕의 외람된 찬탈에 천하게 맹종하는 겁 많은 제사장이 다시 한번 언급된다(16절).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 요직에 있는 자들의 죄에 대해 꾸짖어야 할 자들이 오히려 그들의 죄를 조장하고 도와준다면, 그것은 요직에 있는 자들에게도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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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 왕의 최후(왕하 16:17-20)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있다.
Ⅰ. 아하스는 성전을 남용했다. 즉 건물 자체가 아니라 성전의 비품 일부를 남용했다.
1. 그는 놋대야가 놓였던 받침들을 파손시켰다(왕상 7:28-29). 그리고 놋바다를 내려놓았다(17절). 이것들은 제사장들이 손을 씻기 위해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들에 대해 특별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여호와의 종인 제사장들을 정결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신앙에 대한 최대의 침해 중의 하나이다.
2. 그는 “안식일에 쓰기 위해 성전에 건축한 낭실”을 제거했다. 이것은 안식일을 기념하기 위해, 혹은 안식일날 제사장들의 편의를 위해 세워졌던 것이다. 안식일에는 제사장들이 평일보다 더 많은 제식(祭式)을 진행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제거한 것은 그가 안식일을 경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불경건한 태도가 들어올 수 있는 넓은 입구를 개방해 놓은 셈이다.
3. 왕이 드나드는 왕실은 왕가의 편의를 위한 것인데, 여호와의 전에 연결되어 있었다(아마 그것은 솔로몬이 만들었을 것이며, 스바 여왕도 칭송했던 것일 것이다. 왕상 10:5). 그러나 그는 이 입구를 다른 데로 돌렸는데, 이것은 그가 더이상 여호와의 집에 드나들지 않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앗수르 왕을 위해서 한 행위이다. 아하스는 그를 고맙게 여겼고, 그는 답례로 아하스를 예방하고는, 이 입구가 그의 궁전의 치욕이 되고 불편하다고 흠잡았을 것이다. 여호와의 전에 이르는 통로를 이미 가지고 있던 자들이, 이웃 친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다른 길로 그 길을 돌린다면, 그들은 급히 멸망으로 향하는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 셈이다.
Ⅱ. 아하스는 한창 나이 곧 36세 때에 그의 삶을 중단했다. 그리고 그의 왕국은 보다 훌륭한 사람, 곧 그의 아들 히스기야에게 남겨졌다. 히스기야는, 아하스가 성전에 대해 원수였던 것만큼, 성전에 대해 친구가 되어주었던 자이다. 아마 아하스는 바로 이 아들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여 몰록에게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총으로 불길 가운데서 타다 남은 그루터기와 같이 그를 구해내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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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열왕기하 16장
1 르말랴의 아들 베가 십 칠년에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ㅇ베가 십 칠 년에 - 몇몇 주석가들은 루시니아 중세 사본(Septuagint ; Lucianic recension)을 근거로 해서 본절의 17년을 19년으로 수정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또 다른 주석가(McHugh)는 이것을 단 7년으로 계산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전체 연대기에 맞추어 계산한 것으로 보여 흥미롭긴 하지만 역시 본문 기록의 당위성을 생각해 볼때 긍정적인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18:9 주석 참고). 한편 이러한 연대기적인 난제는 14장 주제 강해 '왕하 13-15장의 연대기'와 15장에서 다루어진 '열왕기하 15장의 연대기에 대한 추가 설명'을 보다 참조하라.<15:32 주석 참조>.
ㅇ아하스가 왕이 되니 - '아하스'가 디글랏 빌레셀의 연대표에 보면 '야우하지'(Yauhazi)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아하스'라는 히브리어 이름을 앗수르 식으로 표현해서 그런 것 같다(Luckenbill). 한편 유다의 모든 왕들에 대한 사적을 소개할 때는 반드시 모친의 이름이 소개되는데 반해 본절의 아하스와 여호람(8:16, 17)만이 모친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특이하게 보인다<12:1 주석 참고>.
2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ㅇ이십 세라...십 육 년을 치리하였으나 - 단순히 본절을 이해할 때 아하스가 20세에 왕이 되어 16년을 치리하였기 때문에 그가 죽었을 때의 나이는 36세가 된다. 그런데 18:2에 보면 그의 후계자 히스기야(B.C. 728-687)가 아버지를 이어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가 25세였다. 그렇다면 아하스는 11세에 자기 아들 히스기야를 낳았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본절에 나타난 연대기적인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보는 견해가 있다. (1) 아하스의 통치 연대를 B.C. 735년부터 716년까지 약 20년 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J. Bright, Albright). 이같이 보는 이유는 히스기야 14년인 B.C. 701년에 산헤드립이 유다를 쳐들어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아하스는 B.C. 716년에 죽은 셈이 되고 그때 나이가 40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하스(B.C. 735-716)가 15세에 히스기야를 낳은 셈이 되어 어느 정도는 가능한 것이다. 한편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서 단시 근동에서 유행했던 조혼(早婚)제도를 들 수 있다. 즉 당시의 동양에서는 남자가 12, 13세, 여자가 10, 11세에 결혼하는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는 유다 왕국에서는 전혀 그런 예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를 부정한다(Keil & Delitzsch, Vol. III, P. 398-399). (2) 아하스와 그의 아버지 요담이 섭정을 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Thiele, Gray, Meer, Hobbs). 즉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이 유다를 침공한 B.C. 733년부터 두 사람이 섭정을 했는데 이때의 나이가 20세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섭정이 4년정도 계속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아하스가 단독으로 통치하기 시작한 것은 24세였고 그떼부터 16년간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러한 섭정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한편 70인역(LXX), 수리아역(Syrica), 아람역(Arab.) 등에서는 아하스의 나이를 20세 대신에 25세로 기록하고 있어서 어느정도 위의 견해에 긍정함을 나타내고 있다.
ㅇ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 이와같이 왕의 서적을 다윗과 비교하는 것은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 간에 그리 흔하지는 않는 일이다.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B.C. 913-910)은 부정적으로(왕상 11:4 ; 15:3), 아사와 요시야는 긍정적으로(왕상15:11 ; 왕하 22:1, 2) 다윗의 행적에 비교되었다. 그리고 아마샤는 (14:1-5) 다윗과 같지는 않았으나 그에 상당하는 칭찬을 받았다. 한편 열왕들의 사적을 다윗과 비교하는 것은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과 그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다(왕상 11:34). 물론 다윗도 이전에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 범죄한 적이 있었다(삼하 11:1-27 ; 24:1-9). 그러나 그는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회개를 함으로(삼하 12:13 ; 24:10 ; 시 51편) 하나님께 그 죄과를 용서받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성왕(聖王)의 대표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일 열왕들을 평가하는 기준 근거가 된 것이다.
3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ㅇ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 이와 유사한 평을 받은 유다 왕은 여호람이다(8:18). 여기서 아하스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였다는 말이다. 특히 대하 28:2을 보면 그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라고 되어 있어 이러한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그 뿐만 아니라 역대기에서는 '부어 만들고'라는 표현을 첨가시킴으로 인해 그들이 숭배한 우상이 금송아지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혹자는 이 우상이 바로 그들이 고안해 만든 '송아지 우상'이라고 밝힌다(Keil & Delitzsch). 그러나 혹자는 이를 송아지 숭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히 아하스가 아합과 아하시야와 같은 악한 행위를 했을 뿐이며 베니게인들의 우상을 재도입했다고 주장한다(Rawlinson, Bahi).
ㅇ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역대 왕들 가운데서 이와같이 이방 종교와 섞인 혼합주의(syncretism)를 처음으로 제창한 왕은 아합이다(왕상 16:30-33). 그런데 아하스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이방의 우상 숭배법을 혼합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14, 18절).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하스가 행한 우상 숭배는 금송아지를 우상화한 것 뿐만 아니라 이방 종교를 영입한 듯하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우상 숭배 행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에 그곳에서 유행했던 풍습인 듯하다(M. Cogan).
ㅇ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 본절은 분명히 아하스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한 것 중에서 그 한 예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이스라엘의 열왕이 이방인의 이런 풍습을 따랐다는 기록을 없다.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아하스가 예루살렘에 세워진 제단 위에서 자기 자식을 희생 번제물로 바쳤다고 기술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다(Antiquities of the Jews, Vol. IX,p. 243). 한편 성경에서는 몰록에게 자식을 바치는 일을 경고한 곳(레 18:21 ;20:1-5)이 있는데 이것은 인신제사가 우상 숭배의 행위에서 벌어지는 예식의 일부분 뿐만 아니라 풍조이기 때문에 엄정하게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신 18:10에서 또 한번 이를 경고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해야 할 자세를 엄하게 강조한다. 그런데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한다"는 표현이 정확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 있어 예식이 벌어지는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알 수 있게 한다.   (1) 이것은 신명기적 입장에서 본 왕의 배교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라는 견해가 있다(Hobbs). 그러나 미 6:7 ; 렘 7:31 ; 19:5 ; 32:35 등에서는 분명히 아들을 불 속에서 태우는 것을 언급하고 있어 그것이 단지 상징적이라는 견해는 타당치 못한 것 같다.  더욱이 미가 선지자(B.C. 735-716)를 전후로 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므로 그들의  말은 당시에 이런 행위가 직접적으로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후의 예레미야 선지자(B.C. 627-580)나 이스라엘 선지자(B.C. 593-570)도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증언한 것이다(겔 16:21). (2) 이것은 직접 아이를 죽여 불로 태웠음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Keil, Bahr, Eusebius, Wycliffe). 이 견해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긍정하는 것으로 오늘까지도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단지 불로만 통과케 하고 죽이지는 않는다는 의식적인 해석은 부정케 된다. 왜냐하면 의식적인 측면에서 이 사실을 보는 견해는 이 행위가 정결케 하는 불세례를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에 본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편 이러한 인신 제사는 아하스 뿐만 아니라 므낫세(21:6)도 범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인신 제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것은 본장 주제 강해 '몰록 종교의 인신 제사'를 참조하라.
4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ㅇ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 이런 표현은 신명기서와 본서 뿐만 아니라(신 12:2 ; 왕상 14:23) 예레미야서(렘 2:20 ; 3:6)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이렇게 근동의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의 예배 대상인 우상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산에서 종교 의식을 거행했다. 또한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고 의식에 엄숙함과 신비함을 부여하기 위해서 무성한 나무 숲 아래서 제사를 드렸다(신 12:2). 아하스는 이러한 산당에서의 종교적 행위를 허용(왕상 3:2 ; 14:23; 15:14 등)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왕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그 행위를 장려했다. 그래서 그는 통치 말기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예루살렘 성전을 폐쇄하기까지 했던 것이다(대하 28:24). 호 4:13에서는 이런 장소에서 행음(行淫)이 이루어졌다고 밝혀 당시의 사회상과 타락상을 고발하고 있다. '산당'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것은 본장 주제 강해 '산당 예배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5 이 때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이기지 못하니라
ㅇ북 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에 대해서는 사 7장과 대하 28장, 그리고 본서 15:37의 주석을 참조하라.
6 당시에 아람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ㅇ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 '엘랏'=에시온게벨은 본서가 기록될 당시까지는 유다나 에돔의 소유였었다(왕상 9:26 ; 22:48 ; 왕하 14:22). 그러므로 한번도 소유한 적이 없는 '엘랏'을 아람 왕 르신이 회복되었다는 말은 그 주장에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학자들 간에는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누어져있다. (1) '아람'을 '에돔'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Hobbs, Gray, Myers). 그리고 70인역(LXX)과 벌게이트(Vulgate)역에도 이를 '에돔'으로 번역하고 있어서 위의 견해를 뒷받침해 준다. 그렇다면 아람이 엘랏을 정복하여 '에돔'에게 돌려주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본절의 '회복'이란 용어는 적절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2) '회복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헤쉬브'를 단순히 '정복하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Keil,Bahr). 그래서 카일(Keil)은 아람 왕 르신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이전에 먼저 엘랏 지역을 '정복하였다'고 한다(Keil & Delitzsch, Vol. III, p. 401-405). 그러나 오늘날 밝혀진 고고학의 자료에 의하면 '엘랏'은 분명히 에돔의 소유였다(J.M.Myers, Albright Festschrift, p. 377-392 ; Y. Hoffmann, The Bible and Jewish History, p.76-89). 그리고 엘랏은 다메섹에서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람의 르신이 이곳을 먼저 정복한 뒤에 예루살렘을 공격했다는 것은(Keil)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그래서 대하 28:17에서는 분명히 에돔인의 침략으로 유다 백성이 사로잡혀 갔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위에 언급된 아람을 에돔으로 고치는 것은 당연히 수정이다(Rawlinson). 그리고 엘랏을 회복하는 일에 아람 왕 르신의 공로가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당시에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엘랏 항구를 상실한 일은 유다에게 있어서 매우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하스는 앗시리아(앗수르)의 도움을 긴박하게 요청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7절). 그리고 '엘랏'의 위치와 그 성읍의 기능 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것은 14:22의 주석을 참조하라.
ㅇ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 본서가 기록되던 당시에 엘랏은 분명히 에돔의 소유였다(Rawlinson).
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
ㅇ선지자 이사야는 그때 유다 왕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진짜 적은 인근의 작은 나라들의 왕이 아니라 앗시리아임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사 7:3-17). 이사야의 말은 앗시리아가 근동 전지역을 가공할 만한 전쟁 상태로 몰아감으로써 사실로 드러났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의 죄를 벌하시기 위하여 다시 에돔과 블레셋을 통해 유다를 치도록 하셨다. 이에 이하스는 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앗시리아 왕의 군사 원조를 청하였다. 실로 아하스는 먼저 에돔과 블레셋의 침략을 막기 위한 목적도 가졌으나 동시에 아람과 이스라엘의 침략자마 막으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이사야의 권면을 듣지 않고 여호와를 배반하고 취한 망령된 행동이다. 정녕 이사야가 이하스 왕에게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두려워 말라'(사 7:3-9 ; 8:5-8)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앗시리아를 의존한 것이다. 그의 이런 처사는 결국 남유다에 대한 앗시리아의 압제를 초래하고 말았다.
ㅇ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 아사야 선지자는 왕에게 앗수르왕과 동맹 맺는 것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었다(사 7:4). 왜냐하면 강대국 즉, 앗수와의 동맹은 강대국에 대한 약소국(남유다)의 종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때부터 유다는 정치적으로, 또 한 군사적으로 앗수르에 예속되기 시작한 것이다.
ㅇ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 이렇게 유다의 아하스는 자신을 굴욕적으로 비하(卑下)하면서까지 앗수르를 의지하여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잘못된 동기, 즉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들어 유다를 벌하시려는 것을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막아 보려는데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결국 스스로 재난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최근의 역사에서도 나타나듯이 자국의 생존을 위해 외세에 의존하는 정책은 결코 이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8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더니
ㅇ본절에 나타난 아하스의 이런 행위는 15:20에 기록된 므나헴의 악한 행위와 비슷하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뇌물받는 것을 엄금하고 있으며 사무엘의 아들들이 바로 뇌물때문에 책망을 받은 장본인이다(삼상 8:3). 또한 신명기서의 기자는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한다'고 함으로 뇌물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주는 것까지도 엄중히 경고하였다(신 10:17 ; 27:25). 이런 의미에서 볼때 아하스가 앗수르 왕에게 뇌물을 바치는 행위는 결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특히 본절에서 '여호와의 전'에 있던 보물로 뇌물을 삼은 행위(12:18 ; 18:15 ; 왕상 15:18)는 극심한 배교 행위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1) '여호와의 전'에 있는 은금은 (까) 왕들이 주변 국가를 정복한 후 승전의 기념으롤 하나님께 바쳤던 헌물과(삼하 8:11, 12) (다)백성들이 낸 헌물이었기 때문이다(12:4). (2)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은 주로 백성들의 세금을 거둬들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하스는 이처럼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과 백성의 세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에 사용했다. 이러한 행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에서 비롯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은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잘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아하스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데에 돈을 사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ㅇ본절에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아람을 친 것이 마치 앗수르가 유다의 구원 요청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도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앗수르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그러한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Hobbs). 이에 대한 보충 자료로서 대하 28:20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오히려 유다를 포위하고 공격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당시에 앗수르는 이미 서방으로의 진출 정책을 실현하고 있던 중이라 유다의 요청을 구실로 삼아 쉽게 다메섹과 사마리아를 공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연대는 정확치 않지만 대개 사마리아를 공격하기 한 해 전인 B.C. 733년에 닷무르(Tadmor)를 선두로 한 공격으로 보고 있다(Cogan). 그 뿐만 아니라 아하스가 앗수르에게 원군 요청을 할 때 이미 디글랏 빌레셀은 게셀(Gezer)의 포로들과 함께 예루살렘 가까이에까지 와 있었다(W. hallo). 그러니까 앗수르는 이때 2차 원정 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접근은 다메섹 정복과 함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게도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앗수르의 1차 원정은 15:29, 30에서 이미 다루었다. 그리고 그들의 3차 원정은 17:3-5(호세아 5년)에 나타난다.
ㅇ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 앗수르의 편에서 볼 때 사마리아보다도 다메섹이 가깝기 때문에 이곳을 먼저 침공한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는 경제적으로 부요했고, 군사적인 면에서 볼 때도 사마리아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먼저 침략을 당한 것 같다(Rawlinson). 한편 본절에서 언급된 '쳐서 취하여'라는 말은 히브리어 '이트페세하'를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손으로 다루다', '압도하다', '장악하다'란 의미의 '타파스'에서 온 용어이기 때문에 '완전히 정복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수리아(아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역사 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B.C.732).
ㅇ길로 옮기고 - 길(kir)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레이(Gray)는 암 1:5을 근거로 들면서 '길'(키르)은 고유 명사가 아니라 '도시'라는 뜻의 일반 명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니드웨'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에 대한 그 어떤 분명한 증거도 없다. 한편 암 9:7에는 '길'(kir)이 아람인들의 본래 고향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카일(Keil)은 본절의 '길'을 쿠르(kur) 강가의 한 지방으로 보고 있다.
10 아하스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단을 보고 드디어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ㅇ아하스 왕이...다메섹에 갔다가 - 아하스는 디글랏 빌레셀이 자기의 요청대로 응해준 것을 감사하기 위하여, 그리고 디글랏 빌레셀이 유다로 침공해 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Thenius) 그를 찾아 다메섹으로 갔다. 그런데 당시 앗수르 왕들은 이웃의 왕들로부터 뇌물을 받기 위하여 따로 접견실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Rawlinson). 그래서 아하스는 그곳에서 앗수르 왕을 만났던 것으로 추측된다.
ㅇ거기 있는 단을 보고 - 구약 성경에서는 '보는 것'(Seeing)으로 말미암아 범죄에 이르게 되는 경우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창 3:6 ; 6:2 ; 12:15 ; 34:2 ; 38:2 ; 삼하11:2). 아하스도 그에 대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앗수르 왕들은 자기 제단을 따로 가지고 다녀서 쉽게 옮겨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은 흔히 그들의 진영에 두는 습관이 있었다(Rawlinson). 그렇기 때문에 디글랏 빌레셀을 방문하러 갔던 아하스는 그 단을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아하스가 앗수르의 제단을 보고 그대로 똑같이 만들게 한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그레이(Gray)는 이것을 아하스가 앗수르에 대한 전적인 복종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대하 28:23에서는 그 단을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드리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어 제단을 본떠서 만든 이유를 더욱 불분명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스가 앗수르의 제단을 본떠 만든 것이 앗수르 왕에게 아부하기 위해 자원해서 그렇게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Pulpit Commentary).
ㅇ제사장 우리야 - '여호와의 빛이시다'라는 의미는 '우리야'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우리' 또는 '우리야'로 나타난다. 사 8:2에서 이사야는 그를 '진실한 증인'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본장에서 그의 역할을 볼 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그는 왕의 배교적인 명령에 대해 제사장으로서의 권위로 한 마디의 비판도 없이 그대로 고분고분하게 순종하였기 때문이다(11, 16절).
11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단을 만든지라
ㅇ본절에서는 아하스가 무슨 목적으로 그 단을 만들게 했는지 분명히 알 수가 없다.  아하스가 이 단을 만들라고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했을 때 우리야는 제사장으로서 이 일에 대하여 아무런 칭찬도 정죄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하스가 여호와 숭배를 디글랏 빌레셀처럼 개인적인 안위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 우리야는 이 일에 대한 평을 회피한 것 같다. 그러나 온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규례의 법도를 지키도록 교육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제사장이 특정한 왕에게만 복속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죄범하는 것을 수수 방관했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단을 보고 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ㅇ단을 보고 - 아하스는 다메섹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또 다시 눈으로 단을 보자 곧장 충동에 이끌려 제사를 드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본다'라는 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라아'로서 단순히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즐기다', '준비하다', '나타나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는 아하스가 단을 보고 마음으로 흡족히여겨 제사를 준비해서 행동으로 나타냈음을 시사한다.
ㅇ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야알 알라이우'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학자들의 견해는 매우 다양하다. (1) NEB는 '그 계단 위에 올라갔다'(mounted the steps)로 번역한다(Luther, De Wette, Bahr). (2) KJV은 '그것을 위하여 드렸다'(on its behalf)로 번역한다. 즉 이 말은 새 단의 건축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식을 올렸다는 뜻이다(Gray). 그러나 '오르다'를 뜻하는 '알라'는 전형적인 '번제'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음을 고려해 볼때 (Davidson) 이는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그래서 본절은 앗수르의 제더가을 본뜬 단을 아하스가 개인용으로 삼아 제사드렸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13 자기의 번제와 소제를 불사르고 또 전제를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단에 뿌리고
ㅇ불사르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크테르'는 '불태우다'라는 동사 '카타르'의 히필형(Hihpil ; 사역형 능동)이다. 그런데 이 동사가 하필형으로 사용될 때는 '제물을 태우는 것'을 나타내고, 피엘형(Piel : 강조형 능동)으로 사용될 때는 '분향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본절에서는 '제물을 불에 태우는 것'을 말한다. 한편 본절에 표현된 ㅇ'자기의 번제와 소제' - 에서 3인칭 단수 소유격 형태인 '자기의'(히, 3인칭 단수접미어)는 일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는 다른 왕 자신을 위한 제사임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솔로몬과 같이(왕상 8:63) 왕이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의미로 이해해서 '자기의'라는 말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Gray). 한편 본절에 나와 있는 제사에 대해서는 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를 참조하라.
ㅇ수은제 - 성경에서는 화목제 혹은 수은제로 나와 있는데 이 제사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감사제(thank - offering), 서원제(vow - offering), 자원제(free - will offering)가 그것인데 '감사제'는 '지나간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서원제'는 '장차 받을 축복의 조건 제사'로 '자원제'는 축복에 대한 조건이라기보다는 '기도에 대한 보조 제사' 형식으로 드렸다. 그리고 제물은 가축 중에서 암수를 가릴 것 없이 흠없는 것으로 드렸는데 기름 바른 무교병을 같이 드렸다. 제사 드리는 순서로는 제물에 안수한 후 잡아서 제단에 피를 뿌리고 다음과 같은 3부로 나누어 드렸다.  즉 (1) 내장에 덮인 기름, 콩팥, 간에 덮힌 꺼풀과 꼬리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2) 오른쪽 어깨와 가슴은 제사장에게 주고, (3) 남은 것은 제주(濟州)가 먹되 감사 제물은 그날에, 자원제물이거나 서원 제물이면 다음 날까지 다 먹되 남은 것은 진영 밖에서 불살랐다(레 3:1-17 ; 7:11-21, 28-34 ; 9:18-21). 한편 '수은제'만을 지칭할 때는 '손을 펼친다'란 뜻의 히브리어 '야다'와 '토다'가 쓰여진 듯 하다(암 4:5). 그러나 '수은제'는 일반적으로 '감사제'와 같은 의미로 혼용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대부분 감사제를 나타내는 즉 '쉐람'을 사용했다. 그런데 본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에는 '쉐람'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감사제'로 하지 않고 왜 '수은제'라고 번역했는지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감사제'와 '수은제'라는 표현을 혼용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레 7:12 ; 22:29). 한편 본제사에 대해 KJV, LB, RSV의 영역판에서는 '화목제'(peace offerings)로 번역되어 있고 NIV 영역판에서는 '친교제'(fellowship offerings)로 되어 있다.
14 또 여호와의 앞 곧 전 앞에 있던 놋단을 옮기되 새 단과 여호와 의 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단 북편에 두니라
ㅇ놋단 - 이에 대해서는 겔 9:2을 참조하라. 70인역(LXX)에는 '놋'에 해당하는 적절한 단어가 없다. 그래서 혹자는 맛소라 학자들이 아하스의 새 단과 구별하기 위해 이 전에 있던 단, 즉 솔로몬이 만든 단 앞에다 '놋'이라는 단어를 적절하게 삽입해 넣은 것이라고 본다(Burney). 그러나 15절 후반부에 나오는 '놋단'이라는 단어와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70인역(LXX)에서 '놋'이라는 단어를 생략했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버니(Burney)의 제안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제단은 제사를 위해(창 8:20) 분향하는(출 30:1, 7, 8 ; 눅 1:10, 11)기구이다. 그런데 조각목으로 만든 후 놋으로 쌌기 때문에(출 27:2) 일명 '놋단'이라고 불리는 것이다(출 39:39 ; 왕상 8:64).
ㅇ그 단북편에 두리니 - 즉 다시 말하면 아하스의 명령에 의해 만든 새 단은 성소의 정면 중앙에 위치 하도록 하고 옛 솔로몬이 만든 놋단은 한쪽 구석에 치워져 버렸다는 뜻이다.
15 아하스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아침 번제와 저녁 소제와 왕의 번제와 그 소제와 모든 국민의 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를 다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고 오직 놋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하매
ㅇ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 - 여기서 말하는 '큰 단'이라는 것은 왕상 8:64에서 솔로몬의 놋단이 작았다는 기록과 대조가 된다. 그러나 본절의 '큰단'은 솔로몬의 단보다 규모가 커서 그렇게 불리워진 것은 아니었다(Rawlinson). 그렇게 큰 단이라고 불리워진 것은 아마도 아하스의 새 단이 현관과 성전 바로 정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아하스의 단이 솔로몬의 단보다 컸기 때문에 '큰 단'이라고 불렀다고 생각한다(Keil & Delitzsch, Vol. II, P. 406). 한편 어떤 주석가는 솔로몬의 단이 작아서 그로 인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 단을 교체했다고 주장하나(Hobbs) 그것은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아부하기 위해 단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10절) 그 단이 보기에 좋아서 새 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하스가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했던 각종 제사는 겔 46:13-15에 기록된 것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율법적으로도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출 29:38-42 ; 민 28:2-8). 그렇다고 해서 그가 행한 제사가 배교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Hobbs)은 무리다.   왜냐하면 새 단은 앗수르의 양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데 적합한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는데 알맞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ㅇ나의 물을 일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리비케르'의 해석에 관해서 학자들 간에는 견가 매우 다양하다. (1) 혹자는 이것을 '나의 생각해 볼일'로 해석한다(Keil, Rawlinson). 즉 다시 말하면 '내가 그것에 관해서는 좀더 생각을 해서 앞으로 조치하도록 하겠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2) 혹자는 '비케르'가 '구하다'또는 '묻다'라는 뜻이 아니라 '주의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Bahr). (3) 또한 다른 학자들은 '비케르'가 '구하다' 또는 '기도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Thenius, Hobbs). 한편 이 '비케르'라는 단어가 레 13:27, 33에서는 병든 사람의 피부를 '살핀다'라는 뜻으로, 시 27:4에서는 '기도'라는 의미로, 잠 20:25에서는 물건을 '주의깊게 살핀다'는 뜻으로, 그리고 겔 34:11, 12에서는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구하다', '기도하다'라는 용어로도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하스가 한 말은 '내가 그것을 다시 배치 하겠다'이다(Wycliffe). 왜냐하면 본절과 평행구절인 대하 28:23에는 아하스가 '다메섹의 신들에게 제사했다'라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하스가 아람 왕들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 그 신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새 단'은 번제단으로 사용하고 '놋단'은 기도 제단으로 사용했다는 주장(Hobbs)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새 단'은 번제단으로 사용했을지라도 놋단은 결국 치워버렸기 때문이다(14절, Rawlinson). 한편 본서에서는 '하나님께 구한다'는 말을 '비케쉬'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비케르'의 동의어로 볼 수 있다(Hobbs, Thenius).
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왕의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
ㅇ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 - 비록 제사장 우리야가 하나님 앞에 진실된 증인이었다 할지라도(사 8:2) 뚜렷이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는 아하스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한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겔 33:6). 반면에 세례 요한은 헤롯의 잘못을 과감하게 꾸짖었으며(막 6:18), 예수께서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율법사와 서기관들과 같은 자들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책망하셨다(마 23:1-36).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도 매일의 삶 가운데서 종교적인 개혁은 물론 정치적인 개혁까지 신경을 써서 사회가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굳게 설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다.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야 처럼 잠잠하면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서 죽은 자들의 피값을 말씀을 맡은 지도자들에게서 찾으실 것이다(겔 33:6).
17 아하스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며
ㅇ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 내고 - '물두멍'(대야)은 물을 담기 위해 만든 뚜껑없는 원형 물통을 말한다. 이것은 바퀴 달린 받침 위에 놓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으며, 또한 받침과 분리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 용도는 제사장들의 손발과 희생 제물을 씻는 데 사용되었다. 모든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제단에 나아가서 그들의 공식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반드시 손발을 씻어야만 했던 것이다(출 30:19-21). 이 물두멍의 용량은 40밧(1밧은 22L로 계산하면 880L), 크기는 직경이 4규빗(약 1.82m)이었다. 그리고 성전에서 그것의 위치는 제사장의 뜰(안뜰) 좌우편에 각각 5개씩 두었다.   한편 성막에서는 그것을 성막과 제단 사이에 두었는데(출 40:30), 성전에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편리를 고려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더욱 자세한 물두멍의 구조에 대해서는 왕상 7:27-39을 참조하라. 한편 아하스가 이와같이 성전의 구조를 훼손시킨 목적은 분명치 않다. 혹자는 '앗수르 왕에게 선물로 보내기 위해' 그렇게 했다(Ewald, Thenius)고 하나 전혀 근거가 없다. 그리고 혹자는 아마도 아하스가 성전 운영우가 효과적으로, 또는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옮겼다고 하나(Hobbs)이에 대한 근거 또한 찾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하스가 이같이 행한 것을 '우상이 있는 신전이나 왕궁 같은 곳에 옮겨 붙이기 위한 것(Keil & Delitzsch, Vol. III, P. 407)으로, 혹은 단순히 제단이 바뀐 것과 때를 같이하여 여호와 신앙에 대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성전 안의 구조를 '파괴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Rawlinson). 한편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Tiglath - pileser)을 두려워하여, 그가 예루살렘에 올 것을 대비해 그의 탐욕을 자극할 만한 것을 제거했다는 혹자의 주장(Wycliffe)에 대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면 물두멍에 붙어 있는 옆 판 뿐만 아니라 물두멍과 받침 전체를 없앴어야 하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인하여 여호와의 전에 옮겨 세웠더라
ㅇ낭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싸크'는 '물건을 덮다', '어떤 장소를 덮다'라는 뜻의 동사 '싸카크'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에 대한 영역본을 살펴보면 NEB는 '구조물'(structure)로, RSV는 '덮은 길'(covered way)로, KJV는 '밀실'(covert)로 서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만족스런 번역은 없는 듯하다. 한편 본 낭실은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인데 이는 바닥에 '무엇을 깔아 놓은 곳'으로서 왕의 성전을 방문했을 때 자리 잡던 장소였을 것이다(Keil & Delitzsch).   
ㅇ들어가는 낭실 - 이것은 위에서 언급된 '낭실'과는 다른 것으로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마보', 즉 '입구'라는 뜻이다. 이것은 솔로몬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서(왕상 10:5) '왕이 성전으로 들어갈 때 거치는 계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동 번역에서는 '바깥 대문'으로 번역하였고, 대부분의 영역본에서는 '입구'(entry)로 번역하였다.
ㅇ앗수르 왕을 인하여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것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 하여'로 번역한다(Keil, Rawlinson). 왜냐하면 아하스는 앗수르 왕 때문에 이 두 낭실을 여호와의 전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주석가는 이것을 '앗수르 왕 앞에서'로 번역하는데 이것은 대하 28:20, 21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하스는 앗수르 왕이 올 것을 대비하여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앗수르 왕이 그것을 보고 달라고 요구할까 걱정해서이기도 하지만(Bahr) 속국의 왕으로서의 태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Hobbs).
19 아하스의 그 남은 사적은 유다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역대기서는 열왕기서에서 발견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첨가해 아하스의 치적에 대한 바른 평가를 할 수 있게 한다. 즉(1) 남유다의 아하스가 북이스라엘의 베가에 완전한 패배를 당함(대하 28:5). (2) 아람에게 패함(대하 28:5). (3) 에돔에게 패배함(대하 28:17). (4) 통치 기간 중 남쪽의 많은 지역을 블레셋에게 빼앗김(대하 28:18). (5) 다메섹의 우상을 숭배했으며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망한 사실(대하28:23). (6) 그의 통치 말기의 성전 폐쇄(대하 28:24), 낭실 문을 닫음(대하 29:7), 등불을 끈 것(대하 29:7),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드리지 않고 분향을 하지 아니한 것(대하 29:7). (7) 마지막으로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지어 우상 숭배를 조장한 것(대하 28:25)등이 있다.
20 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대하 28:27에 나타난 바와 같이 역대서의 기자는 아하스가 다윗의 성에는 장사 되었으나 열왕들의 묘실에는 안치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본서의 기자보다 역대서의 기자가 매우 아하스에 대해 비평적임을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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