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6장
==2장에서, <장자권/후계자를 의미하는 갑절!!>, 그 갑절의 영감을 구함으로써, 엘리야의 뒤를 이어받은 선지학교 이끌 리더로 제자들로부터 인정 받은후 **여리고의 물근원을 고쳐 생명 산출 가능케 했으며-**벧엘(꼬마들의 야유-조롱 사건..Q 말씀으로 물리침) 거쳐 **갈멜산에 이르렀다가 **사마리아로 돌아와서 머물렀고, ==3장에서, ((비밀스레)) 여호람-여호사밧-에돔 연합군의 <에돔 우회로를 택한> 모압 원정 전쟁 ((비밀))종군으로 [주님의 물 공급하심을 통해] 군대를 구원한 사건 후에는 갈멜산-사마리아를 왕래하며 주로 머무르고 있던것으로 보임. ==.4장에서 두 아들 거느린 한 선지자의 과부의 딱한 사정 듣고 남아 있던 한 병의 기름...그 기름을 통해서 <가능한한 최대로 빌려온바> 비어 있는 그릇들을 다 채워 공급함 통해 부채와 생계문제를 해결케 해주고 있었으며, <하라드>의 대명사 수넴여인에게는 아들 산출-소생 사건으로 그녀의 YHWH 믿음을 확고-견실함에 이르도록 회복시켜주고 있었다. ==그후 길갈에서 머무르고 있는동안 7년 흉년 기간을 지나면서 일어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독 식물을 넣어만든 국을 먹을 수 있게 해독하여 먹게 하고 바알 살리사 사람이 드린 첫 수확물로 만든 보리떡과 채소를 공급받아 그것으로는 선지학교 생도들을 20명 정도 먹일 수 있는 양이지만 그 5배 사람들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이어서 5장에서는,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의 나병치유 사건이 등장하고(탐심 인해 옮겨간 바 나아만 대신 나병 발생한 게하시... 그 대신 다른이가 사환으로 수하에 있게 됨), ...[이 시점에서는 7년훙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8장 기록>수넴여인에게 고지하여 블레셋으로 이사하게 하고 있음] ==6장에서는, 엘리사와 선지학교는 그 거처인 길갈학교가 비좁을 정도가 되어서 요단 근처에 또 다른 거처/학교 마련하는데, 이때 요단강가 벌목하는 도중에 손에서 빠져나가 강에 빠져버린 쇠도끼를 나뭇가지를 던져 떠오르게 하여 찾은 사건이 기록되고 있으며, ==((사마리아-이스르엘 중간지점))도단에 머물고 있을 무렵 <번번이 변경 침범 시도가 그때마다 무위로 돌아가자> 아람 벤하닷왕이 그를 체포하려고 보낸 병거와 기병 갖춘 군대를 눈 멀게 하시기를 기도하여 사마리아까지 인도하여 배부르게 먹인후에 아람으로 되돌려보낸다.(이제, 벤하닷2세는 소규모의 부대로는 안될 것을 알고, 온 군대를 다 모아서 사마리아를 에워싸 전면적 포위공성전에 임하고 있다.) ==한편, 7장에서는, 포위된 사마리아 성내 굶주림이 심해지자 엘리사를 체포하려고 여호람 왕이 수하 장관 한 사람과 군사들을 보냈을 때, 엘리사는 만 하루만에 분명히 아람이 패전하고 황급히 물러나 쫓겨가게 됨을, 피흘림 없이 승전 거둠을 말하고 그대로 그의 말은 실현되고 있다. ==8장에서는, (7년 흉년기간 동안 엘리사가 일러준 그대로, 수넴을 떠나 가족 전체가 블레셋에 우거하고 있다가 흉년이 지나자 돌아온 수넴 여인은 자기 집과 전토 회복을 위해 여호람 왕에게 나아가고, 그동안 나병에서 나음 받은 게하시가 <마침 엘리사의 행적에 관해 알기 원하는 왕의 부름 받아 왕과 담화하고 있던 도중에 이 소식 접하고는> 이 요청이 지극히 당연하고 옳음을 증언해 줌으로써 되돌려 받고 있다) ===아람 벤하닷 2세는 나아만의 나병 치유 후에도 북이스라엘 침범 의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사마리아 원정에 더 이상 나아만을 군대장관으로 기용하지는 않고 있었다...(사마리아 포위 공성전 패전하고 돌아온 이후에는 그 자리를 하사엘이 맡은 듯하다...) 그 사이에 6장에서 보듯이, 엘리사와 선지학교는 길갈 학교가 비좁을 정도가 되어서 요단 근처에 또 다른 학교 마련했고.... 그 후 7년 흉년 기간(-사마리아 포위 공격전도 무위로 끝나고) 지난후 벤하닷이 중병 들었을 때는<어느정도 긴장관계가 완화된듯, 엘리사가 다메섹에 잠깐 머무르고 있는데> 그가 낫겠는지를 엘리사에게 하사엘을 사자로 보내 정중하게 묻도록 하는데, 그가 낫겠지만 그는 <너 하사엘의 손에>죽으리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어, 왕하9:1-4절에서는 제자중 하나를 불러 <길르앗 라못 되찾기 위한 남유다 요람-북 이스라엘 여호람와의 연합군을 지휘중이었던> 길르앗 라못에 파견-주둔 중이었던 북이스라엘 군대장관 예후를 찾아가서 골방에서 비밀리에 이스라엘 왕 삼는 기름부음을 대행하게 하고 있었다.
===쇠도끼를 찾다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1-7]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당시 이스라엘은 제2철기시대 전개되고 있었으니.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요11:28...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아노키(알렙-눈-카프-요드) 하-테쿠마(헤이, 테이트-코프-바브(중심점)-멤-헤이...::: 쿰=부활/일어남) 베-하-하임(바브, 헤이, 헤이트-요드-요드-멤....하임=생명) ]]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영으로 인해 믿는 우리도 또한 진실로 그러함.. .....영의 세계와 물질계, 곧 모든 차원과 영역, 우주만물-만유, 가시적-비가시적 영역을 다 지으시고 손수 운영하시는 역사의 주관자, 창조주시라...내주하시는그리스도 예수, 나의 주-나의 하나님이여!!, 머리이신 목자 임마누엘로서 동행하시며 이처럼 늘 함께 계셔서 친히 내 안에서 오늘-매순간마다 영생 살도록!! 말씀하시며 당신 이름의 영광 위해 친히 우리와 하나되어 계심으로써 넘치는 그 기름부음으로써 사역하시옵소서..오늘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하옵니다...아멘!! ===아람 군대를 물리치다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299. 하나님 사랑은] 8. ○그 때에 [배은망덕!!..나아만의 나병치유사건을 부러 잊고 싶었던 것일까]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10.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1.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혹시..나아만!?)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12.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13.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사마리아와 이스르엘 중간지점)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9.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20.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21.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22.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23.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소규모부대 변경 침범 그만둠) ===에워싸인 사마리아가 굶주리다 ...[300. 내 맘이 낙심되며] ..6:23-7:2 24.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커스 사이 이격거리 250km :: 예루살렘--(74)--사마리아-(146)--다마스커스@@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 26.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외쳐 이르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27.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28. 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31.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32. 그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33. 무리와 말을 할 때에 그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 [NASB]제6장 1. Now the sons of the prophets said to Elisha, "Behold now, the place before you where we are living is too limited for us. 2. "Please let us go to the Jordan, and each of us take from there a beam, and let us make a place there for ourselves where we may live." So he said, "Go." 3. Then one said, "Please be willing to go with your servants." And he answered, "I shall go." 4. So he went with them; and when they came to the Jordan, they cut down trees. 5. But as one was felling a beam, the axe head fell into the water; and he cried out and said, "Alas, my master! For it was borrowed." 6. Then the man of God said, "Where did it fall?" And when he showed him the place, he cut off a stick, and threw [it] in there, and made the iron float. 7. And he said, "Take it up for yourself." So he put out his hand and took it. 8. Now the king of Aram was warring against Israel; and he counseled with his servants saying, "In such and such a place shall be my camp." 9. And the man of God sent [word] to the king of Israel saying, "Beware that you do not pass this place, for the Arameans are coming down there." 10. And the king of Israel sent to the place about which the man of God had told him; thus he warned him, so that he guarded himself there, more than once or twice. 11. Now the heart of the king of Aram was enraged over this thing; and he called his servants and said to them, "Will you tell me which of us is for the king of Israel?" 12. And one of his servants said, "No, my lord, O king; but Elisha, the prophet who is in Israel, tells the king of Israel the words that you speak in your bedroom." 13. So he said, "Go and see where he is, that I may send and take him." And it was told him, saying," Behold, he is in Dothan. " 14. And he sent horses and chariots and a great army there, and they came by night and surrounded the city. 15. Now when the attendant of the man of God had risen early and gone out, behold, an army with horses and chariots was circling the city. And his servant said to him, "Alas, my master! What shall we do?" 16. So he answered, "Do not fear, for those who are with us are more than those who are with them." 17. Then Elisha prayed and said, "O LORD, I pray, open his eyes that he may see." And the LORD opened the servant's eyes, and he saw; and behold, the mountain was full of horses and chariots of fire all around Elisha. 18. And when they came down to him, Elisha prayed to the LORD and said, "Strike this people with blindness, I pray." So He struck them with blindness according to the word of Elisha. 19. Then Elisha said to them, "This is not the way, nor is this the city; follow me and I will bring you to the man whom you seek." And he brought them to Samaria. 20. And it came about when they had come into Samaria, that Elisha said, "O LORD, open the eyes of these [men,] that they may see." So the LORD opened their eyes, and they saw; and behold, they were in the midst of Samaria. 21. Then the king of Israel when he saw them, said to Elisha, "My father, shall I kill them? Shall I kill them?" 22. And he answered, "You shall not kill [them.] Would you kill those you have taken captive with your sword and with your bow? Set bread and water before them, that they may eat and drink and go to their master." 23. So he prepared a great feast for them; and when they had eaten and drunk he sent them away, and they went to their master. And the marauding bands of Arameans did not come again into the land of Israel. 24. Now it came about after this, that Ben-hadad king of Aram gathered all his army and went up and besieged Samaria. 25. And there was a great famine in Samaria; and behold, they besieged it, until a donkey's head was sold for eighty [shekels] of silver, and a fourth of a kab of dove's dung for five [shekels] of silver. 26. And as the king of Israel was passing by on the wall a woman cried out to him, saying, "Help, my lord, O king!" 27. And he said, "If the LORD does not help you, from where shall I help you? From the threshing floor, or from the wine press?" 28. And the king said to her, "What is the matter with you?" And she answered, "This woman said to me, 'Give your son that we may eat him today, and we will eat my son tomorrow.' 29. "So we boiled my son and ate him; and I said to her on the next day, 'Give your son, that we may eat him'; but she has hidden her son." 30. And it came about when the king heard the words of the woman, that he tore his clothes-- now he was passing by on the wall-- and the people looked, and behold, he had sackcloth beneath on his body. 31. Then he said, "May God do so to me and more also, if the head of Elisha the son of Shaphat remains on him today." 32. Now Elisha was sitting in his house, and the elders were sitting with him. And [the king] sent a man from his presence; but before the messenger came to him, he said to the elders, "Do you see how this son of a murderer has sent to take away my head? Look, when the messenger comes, shut the door and hold the door shut against him. Is not the sound of his master's feet behind him?" 33. And while he was still talking with them, behold, the messenger came down to him, and he said, "Behold, this evil is from the LORD; why should I wait for the LORD any longer?" ===== ..열왕기하 6장 (개요) 본 장의 내용은 이러하다. 1. 엘리사의 기적 사건을 계속 이야기한다. (1) 도끼가 물 위에 떠오르게 됨(1-7). (2) 아람 왕의 비밀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함(8-12). (3) 엘리사가 자기를 잡으러 온 무리들의 손에서 스스로 탈출함(13-23). 2.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를 포위하니, 사마리아는 큰 위기에 처한다(24-33). 이 사마리아 성을 구출한 것은 엘리사가 행한 또 하나의 기적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장에 가서 나온다. 엘리사는 여전히 교회와 국가, 선지자들의 생도들과 그의 임금에게 모두 큰 축복의 역할을 한다. ---------- 물 위에 떠오른 도끼(왕하 6:1-7) 본문에서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관찰해 볼 수 있다. Ⅰ. 선지자들의 생도들과 그들이 처한 형편. 여기서 말하는 학교는 길갈에 있는 학교를 말하는 듯하다. 엘리사가 이전에 거기에 있었고(4:38), 또 길갈은 요단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아마 엘리사가 어디에 주재하든, 그가 있는 곳에는 그의 교훈과 고견과 기도 때문에 많은 생도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누구나 엘리사와 함께, 또는 가까이 지내고 싶어했을 것이다. 선생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남들이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처지로 자신을 내어 놓아야 한다. 1. 생도들의 수가 늘어났다. 결국 그들이 기거할 방이 없게 되었다. “보소서, 거한 곳이 우리에게 너무 좁습니다”(1절). 이것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잘 들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필경 엘리사의 기적이 사람을 많이 끌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많아지고 게하시는 면직되었으므로, 누군가 정직한 사람이 게하시를 대신하여 그들의 식생활을 돌보았을 것이다(4:43의 예로 보면). 게하시가 자기 주인의 후박함을 투정한 것이 나아만 때의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 그랬을 것이다. 2. 그들은 겸손한 사람들이라서, 화려하고 웅대한 집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방이 모자라게 되었을 때, 그들은 백향목 대리석과 공교한 공예 기술자들을 구하러 사람을 보내자고 말하지 않았다. 단지 각자 목재 하나씩을 가져와서 평범한 오두막을 짓자고 했다. 선지자의 생도들은 모두 이 세상의 비천함에도 만족히 여기면서 저 세상의 귀중한 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그런 자들이었다. 3. 그들은 가난했다. 그들은 요직에 앉은 자들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것은 요람이 왕이었고 이세벨도 여전히 통치권을 쥐고 있었다는 것, 혹은 선지자들의 생도들은 방이 비좁게 되면 자기들끼리 집을 확장하려고 논의하며 단지 정부에다 건의를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말해 주는 한 표적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세상에서 총애를 받는 일이 드물다. 오히려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여 일꾼을 고용할 능력이 없었으며(그래서 일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중단해야 했다) 연장을 살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이웃집에 가서 연장을 빌려와야 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가난이란 것이 예언하는 일에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4. 그들은 근면하여 스스로 수고하려 했다. 그들은 게으른 수펄처럼(게으른 “수도사”라 부르면 좋으리라) 남의 수고로 살아가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 일할 자유를 허락해 달라고 빌었다. 선지자들의 생도들이 너무나 묵상에만 전념하여 행동하기에 부적합한 사람들로 변할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되듯이, 일하기 싫어할 정도로 안일에 탐닉되어서도 안 된다. 먹어야 할 자는 일을 해야 되며, 일을 하지 않으려면 굶어 죽어야 한다(살후 3:8, 10). 그 누구도 정직한 노동을 짐스럽게 생각하거나 부끄러운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5. 그들은 엘리사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자들이었다. 그들도 선지자였지만, 그들은 그에게 지극한 존경심을 보냈다. (1) 그들은 그의 허락 없이는 도무지 집을 지으려 하지 않았다(2절). 우리 생각에는 아무리 온당하더라도, 우리의 판단을 한번 검토해 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리하여 보다 지혜롭고 경험이 많은 자들의 충고를 들어보는 것이 좋은 일이다. 특히 그 선지자들이 자기들의 아버지(스승)를 함께 모시고 가려 했으며, 모든 행동을 그의 지시에 따라 하려 했다는 사실은 특히 자랑스러운 태도다. 그들은 “연장자들의 허락을 얻어”(permissu superiorum) 일을 하려 했다. (2) 그들은 엘리사가 같이 가지 않으면 재목을 자르려 하지 않았다.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3절). 위급한 경우에 조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이의 질서를 지키며, 감독을 해 주시사 각자가 훌륭히 일을 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훌륭한 생도들은 항상 훌륭한 규율 밑에 있기를 바란다. 6. 그들은 정직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제2철기 시대 중간이다.. 그러나 쇠도끼를 흔하게 볼 수 있는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것을 돌리려고 한 자들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도끼질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불행히도 그 도끼를 물속에 빠뜨려 버렸을 때(일을 잘 안 하던 사람들은 흔히 과열하기 쉽다), 그는 “이건 우연한 실수다. 도와줄 자 없는가? 도끼 자루 탓이로다. 도끼 주인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크게 걱정하며 소리를 쳤다. “오, 주여! 그 도끼는 빌려 온 것입니다”(5절). 만일 도끼가 본인의 것이었다면, 자기 동료들과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 것만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걱정 외에도, 정당하게 대하고 감사를 드려야 할 그 도끼 임자에게 부당한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을 걱정했다. 빌려 온 물건에 대해서도 내 것처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웃을 우리 자신같이 사랑해야 하며,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 선지자 생도는 가난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도끼도 살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 도끼를 잃어버린 것이 남달리 큰 걱정거리가 된 것이다. 정직한 마음씨를 가진 자들에게는, 그 가난이 수치스럽다기보다는 남에게 갚아야 할 빚을 갚을 수 없게 되는 것이 가난이 주는 가장 큰 슬픔이다. Ⅱ. 선지자들의 아버지 엘리사에 관한 기록. 1. 그는 지극히 겸손하고 동정심이 많은 자였다. 그는 생도들이 원하자, 그들과 함께 삼림으로 갔다(3절). 누구든지, 특히 사역자들은 자기들은 너무나 위대하여 자신을 낮출 수 없다거나 자선을 베풀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직 모든 사람에게 다정히 대해야 한다. 2. 그는 위대한 권능을 지닌 자였다. 자연의 법칙과는 반대로, 도끼가 물 위에 뜨도록 할 수도 있었다(6절). 자연을 지은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도끼 자루마저 집어던져 버리지 않고, 새로 나뭇가지를 잘라서 물 위에 내밀었다. 우리는 그 나뭇가지가 가라앉아서 도끼를 올려놨다고 생각하여 그 기적을 배로 과장할 필요는 없다. 나뭇가지는 도끼에게 떠오르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선포하는 한 신호로 보면 족하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총은 이 세상의 진흙탕에 깊이 침륜된 돌 같은 영혼들을 떠오르게 하셔서, 그들의 이 세상적 욕망을 위에 있는 거룩한 것들에게 향하도록 하실 수 있다. -------- 아람 왕의 번뇌(왕하 6:8-12) 예언의 영을 가진 엘리사가, 전에는 선지자들의 생도들을 도와주었듯이, 여기서는 왕에게 협력한 사실을 읽게 된다. 모든 은사가 다 그렇지만, 예언의 은사는 그것을 유용하게 쓸 줄 아는 자들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든 자기에게 선을 행할 만한 능력이 있는 자는, 그 능력으로 현명한 자와 그렇지 못한 모든 자들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 Ⅰ.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적국 아람 왕의 의도와 거동을 모두 왕에게 알려 주었으니, 그야말로 가장 힘센 장수나 신실한 첩자들보다도 더 유용한 일을 한 것이다. 아람 왕이 전쟁 비밀 회합을 열고, 이스라엘 변방의 어느 지역에 매복해 있기로 결정하고 나서, 이 계획이야말로 실로 놀랄 만한 일이요, 이스라엘군은 아무 저항도 못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의 군대가 아직 명령을 받기도 전에 먼저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에게서 그러한 정보를 듣고 미리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일어났다(8-10절). 여기서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적들은 교묘히 궁리하며 끊임없이 공격을 시도했다.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들에게 들어가 저들을 살육하리라”(느 4:11). 2. 그들의 모든 궁리가 하나님께 알려졌으며, 그들의 은밀한 것까지 알려졌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아시며, 그것을 분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책을 가지고 계신다. 3. 미리 위험이 경고되면, 그것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사전에 방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역할은 우리에게 경고를 주는 것이다. 우리가 경고를 받았는데도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피가 우리의 머리 위에 쏟아지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의 계획으로 인한 자기의 위험을 엘리사가 경고해 주자 그것을 중히 여겼다. 그러나 죄로 인한 그의 위험을 경고해 주었을 때는 그 경고를 중히 여기려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죽음의 위험을 피할 수는 있을지언정, 지옥은 피할 수 없게 된다. Ⅱ. 아람 왕은 이 일로 대단히 분개했다. 그는 자기의 중진 신하들 중에 첩자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참모 회의 내용이 누설된다고 본 것이다(11절). 그러나 그 신하들 중 한 사람―나아만과 다른 신하들에게서 들었을 것이다―이 엘리사의 기적 역사를 알고서는, 이스라엘 왕에게 이 정보를 제공하는 자는 틀림없이 엘리사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12절). 게하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던 자가 무엇인들 모르랴? 그리하여 아람 사람들은, 이전에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을, 이번에는 그의 무한한 지식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식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 아람의 정탐꾼들(왕하 6:13-23) Ⅰ.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아 오라고 많은 군대를 파견했다. 그는 엘리사가 도단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는데(13절), 도단은 사마리아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왕은 그리로 많은 군사를 보내어, 밤중에 그를 공격하여, 잡아 오든지 체포해 오라고 했다(14절). 아마 아람 왕은, 예전에 엘리야를 잡으려고 오십부장 한 사람과 그의 부하들만 갔다가 실패하고 만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군사”를 보내어 엘리사를 잡아 오게 했다. 마치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더라도 50명쯤이야 쉽겠지만 5만 명 정도면 쉽게 불살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어떤 요새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호위병을 거느리고 있지도 않으며, 또 그 백성들과 그렇게 큰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백성들에게서 일어나는 소요를 무서워하지도 않는다는 따위의 사실을 왕에게 일러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큰 군대를 필요로 했겠는가? 그러나 아람 왕은 완전하게 대비하기를, 특히 돌연한 기습에 대해 그렇게 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엘리사가 그의 비밀 회담 내용까지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할 수 있었다는 것을 도대체 그는 못 믿었다는 것인가? 못 믿었다면 왜 그와 시비를 거는가? 믿었다면, 엘리사가 자신을 해치려는 계획을 적발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그렇게 빈약한 상상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인가? 더욱이 엘리사가 하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러한 계획을 발견해 낼 수 있다면, 또한 그 계획을 물리칠 만한 권세 또한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쯤 생각할 수 없었단 말인가?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선지자들과 더불어 싸우려는 자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하는 것이다. Ⅱ. 아람군이 도단 성읍을 포위한 것을 알았을 때, 선지자 엘리사의 종은 크게 걱정하며 놀라움에 빠졌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를 진정시키고 공포를 제거해 줄 수 있는 유효 적절한 방도를 강구했다. 엘리사는 자기 종을 일찍 일어나게 하여, 그 날 결재하고 해야 할 일들을 알아보게 하는 관습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종이 일어났을 때, 군대의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내다보니, 자기 성읍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군대가 있었던 것 같다(15절). 그리고 그는 그들의 공격이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즉시 저들의 수중에 들어간 이 난경을 선지자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 종은 지극히 당황했다. 곧장 엘리사에게 달려가서 보고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우리는 이제 죽었습니다. 도망갈 수도 없고 날아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손에 처분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다윗의 시편―이것은 당시에도 있었다―을 공부했더라면, 일만 명의 사람이 와도 “두렵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시 3:6). 또한 “군사가 그를 치려고 에워쌌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시 27:3). 2. 그가 자기는 자기의 주인과 함께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고, 또 그 주인을 통해서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이미 해냈으며 지금도 그가 “무할례자들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그 주인은 이미 다른 사람들을 구원해 낸 적이 있으므로 분명코 그 자신을 구원해 낼 것이라는 점들을 생각해 보았더라면, 그가 이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단지 “내가 어찌할꼬?” 하고만 말했더라면 다소 변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치 “주여, 우리를 구하소서. 죽게 되었나이다”라고 말했던 제자들과 같은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주인까지도 지금 곤경에 처해 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 필요는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는 따위의 말을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3. 그의 주인은 그를 어떻게 진정시켰는지 보자. (1) 말씀으로 진정시켰다. 엘리사가 종에게 한 말(16절)은 하나님의 모든 신실한 종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밖에 놀라움, 안에 걱정이 있더라도”, “두려워 말라. 우리를 보호하려고 우리와 함께하는 자들이 우리를 멸하려고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보다 많으니라―천사들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하나님은 무한히 위대한 권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니라.” 우리에게 큰 두려움이 닥쳤을 때는,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명백하고, 위대하고, 숭고한 생각으로 우리 자신을 진정시킬 줄 알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그 결과가 어찌될지 우리는 안다(롬 8:31). (2) 환상을 보여 주어 진정시켰다(17절). ① 엘리사는 자기 종이 만족을 찾게 되기를 크게 고심한 것 같다. 선한 사람들은 자신의 평안만이 아니라 자기 주변의 사람들도 평안하기를 소망한다. 엘리사는 오랫동안 데리고 있던 자기의 옛 종을 얼마 전에 내어 보냈다. 그래서 새 종을 데려온 것이다. 이 종은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엘리사는 자기와 함께 역사하고 있는, 그래서 결국 그 종과도 관계가 되는 그 전능하신 권능을 믿을 수 있는 다른 한 증거를 종에게 보여 주고자 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약하여 겁이 많은 사람들을 친절히 돌봐 주고 동정해야 하며, 그들의 손을 힘있게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② 엘리사는 자신의 안전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단지 자기 종도 자기가 본 것을, 곧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천사들의 호위를 보게 해 주고자 했을 따름이다. 엘리사의 스승을 천국 문으로 데려다 주었던 바로 그 호위병들이 또한 엘리사를 지옥 문에 가지 않도록 막아 주는 보호병이 되었던 것이다. 곧 그 호위병들은 “불수레와 불말”이었다. 불은 무서운 것이기도 하거니와, 태워 없애 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엘리사의 호위를 맡은 바로 그 능력이 저 침략자들을 공포에 떨게 할 수도 있고 불살라 없앨 수도 있었던 것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의 병사요 군사이며(창 32:2), 그의 군단이요 연대(병력)다(마 26:53).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복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③ 그 종을 확신케 하기 위해서는 단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 엘리사는 “그것”을 기도하여 얻었다. “여호와여, 그의 눈을 뜨게 하사 보게 하소서.” 물론 그 종의 신체적 눈은 열려 있었지만, 그 눈으로는 그의 위험을 보았을 뿐이다. “여호와여, 그의 믿음의 눈을 뜨게 하사, 우리가 안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보게 하소서”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명심하자. 첫째, 공포에 떠는 겁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베풀 수 있는 우리의 최대의 친절은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하는 것이다. 둘째, 눈의 열림은 두려움을 침묵시킬 것이다. 어두운 때에 우리는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을 보다 분명히 보면 볼수록 우리는 이 세상의 재난에 대해서 그만큼 적게 두려워할 수 있다. Ⅲ. 엘리사는 자기를 사로잡으러 온 아람 군사들을 깨끗이 물리쳤다. 그들은 이제 엘리사를 잡아가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는 그들을 완벽하게 희롱해 버렸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들 때문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1. 엘리사는 하나님께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래서 그들은 즉시 장님이 되었지만, 완전 장님이 아니라 자기들이 장님이라는 것도 모를 정도로만 장님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빛을 식별할 수 있었으나, 단지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잘 알아보던 사람과 지형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시각적 판단력만 바뀌었기 때문이다(18절). 그들은 너무나 혼란을 당하여, 자기들이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지, 지금 거기가 도단이라는 것도, 그 사람이 엘리사라는 것조차 전혀 모르면서, “낮에도 황혼 때와 같이 넘어졌다”(사 59:10; 욥 12:24, 25). 기억력이 사라졌고, 분별력도 없어졌다. 사람의 정신과 오성에 두 가지로 모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라. 하나님은 엘리사의 친구의 눈을 열어 주셨고, 그의 대적의 눈을 어둡게 하시사,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사 6:9). 그리스도께서도 이 세상에 심판하러 오셨다고 했으니, 곧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 함이라”(요 9:39). 그래서 어떤 자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고, 또 어떤 자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된다. 2. 이처럼 그들이 방황하게 되고 혼란을 당하자, 엘리사는 그들을 사마리아로 인도해 갔다(19절). 그들이 찾으러 가고자 하는 데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는 그렇게 했다. “여기는 그 길이 아니요, 그 성읍도 아니라”고 말한 것은 엘리사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그 성읍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엘리사를 만나기를 원한다면, 엘리사가 인도하고자 하는 다른 성읍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그 선지자들과 더불어 싸우는 자들은 스스로를 속이게 되고, 망상에 굴복하게 되고 만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3. 엘리사는 그들을 사마리아까지 인도하고 나서는, 다시 그들의 눈이 열리게 되고 기억력이 회복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들의 있는 처소를 분별하게 되자(20절), 큰 공포에 떨면서 “그들이 사마리아 성읍의 한가운데 와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마 사마리아에는 그들을 모두 처형할 만한 상비군이 있었을 것이요, 그들을 모두 전쟁 포로로 만들어 버릴 힘도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신, 사탄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며 그들을 멸망으로 매혹시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시면, 그들은 자신들이 적군의 중앙에, 사탄의 포로가 되어 있으며 곧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도 그들은 자기들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과 교회의 원수들은, 자기들이 한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에, 자기들이 곧 정복되고 참패를 당하고 말게 되는 꼴을 보게 될 것이다. 4. 엘리사가 그들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되자,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권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도 감화를 받고 있는 자임을 보여 주었다. (1) 그는 그가 그들에게 준 공포에서 그들을 구해 내고, 자기가 그들에게 무슨 일을 행할 수 있는지 그것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자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천사의 칼이나 또는 자기가 원하면 명령을 내릴 수 있는(21절) 이스라엘 왕의 칼을 휘두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왕은 엘리사를 지극히 존경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요, 곧 엘리사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내 아버지여, 내가 그들을 치리이까?” 하고 왕이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마치 폭력을 동경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내가 그들을 치리이까?” 하고 물었다. 아마 왕은 자기의 아버지가, 이전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죽여 버려야 했던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않은” 연고로 하나님이 몹시 분노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와 비슷한 방식의 죄를 범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왕은 이 선지자의 허락이 없이는 결코 한 사람도 치지 않을 만큼, 그 선지자를 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선지자는 왕에게 조금도 이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을 이 곳까지 끌어 온 것은 그들로 하여금 최대의 수치를 얻게 하려 함이지 죽이려는 목적에서였던 것은 아니다(22절). 만일 그들이 왕의 죄수들이요, 그가 칼과 활로 잡아 온 포로들이라면, 그들이 살려 달라고 했더라도 잔인하게 거부되었을 것이다. 또 살려 주겠다고 했다면, 그들을 해치려는 다른 어떤 의도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요, 그것은 포로들을 냉정히 죽이는 군법에도 저촉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왕의 죄수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죄수들이요 그 선지자의 죄수들이었다. 따라서 왕은 이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가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겸손히 복종하는 자들이 자신들을 위해서도 가장 안전한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2) 엘리사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조치했다. 엘리사는 그들을 정중히 대접하여 평안히 보내라고 왕에게 명령했고, 왕은 그대로 했다(23절). ① 왕이 자기의 마음을 억누르고, 또 자기에게 유리해 보이는 것도 물리치고서 선지자에게 그토록 순종했다는 것은 정말로 칭찬할 만한 일이다(삼상 24:19). 더구나 왕은 엘리사를 지극히 공경했다. 곧 엘리사는 단지 그들에게 “떡과 물”을 주라(이것도 포로들에게는 큰 자비이다)고만 했는데, 왕은 그들을 위해, 그리고 자기의 궁정과 나라와 엘리사의 위신을 생각하여 “큰 식량을 베풀었다.” ② 선지자 엘리사가 자기의 원수들에게 그토록 후한 마음씨로 대했다는 것은 또한 칭찬할 만한 일이다. 실상 그 원수들은 그를 잡으러 왔다가 그에게 탄복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엘리사야말로 그들이 이제껏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권능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저 위대한 의무는 구약성경(잠 25:21, 22.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라.” 출 23:4, 5)에 명령되어 있고, 또한 본문 중의 엘리사처럼 실행해야 하는 사실이다. 엘리사의 선배들은, 자기들을 박해하던 자들을 불살라 죽이는 불길을 요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정의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의 박해자들의 머리에 숯불을 놓아 그들을 변화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비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하자. Ⅳ. 이 사건은 잠시 동안 아람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않았다”(23절)고 했다. 즉 엘리사를 잡을 목적으로는 침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해 봐야 헛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 자기들 중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위대하고 선량한 사람을 죽이려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을 가장 멋있게 이기는 승리는 그들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 포위된 사마리아 성(왕하 6:24-33) 본문은 본 장의 결말이 되었지만, 사실상은 다음 장의 첫머리가 되어야 옳은 일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고, 그 이야기는 계속되어 다음 장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Ⅰ. 아람 왕이 사마리아를 포위했다. 그리하여 그 성읍은 큰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아람 사람들은 얼마 전에 저들이 사마리아에서 대접받은 그 친절을 잊어버렸으며, 어떤 명백한 구실도 없는 것 같은데, 배은망덕하게도 사마리아 성읍을 파멸시키려 했다(24절). 은혜를 모르는 비천한 인간들도 세상에는 있다. 아마 수도가 극한 상황으로까지 사정이 악화되었을 때는(25절), 그 나라 전체가 약탈을 당하고, 황폐해졌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얼마 전 그 땅에는 기근이 있었고, 아마 그 기근으로 인해 저들의 창고는 바닥이 나게 되었을 것이며, 갑자기 포위를 당했기 때문에 식량을 비축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밖에서는 칼이 죽음을 휘두르는 동안, 안에서는 기근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애 4:9). 아람 사람들이 그 성읍을 일시에 몰락시키지 않고 굶어 죽도록 꾀했기 때문이다. 실로 기근은 굉장했다. 살도 별로 붙어 있지 않으며 맛이나 영양도 별로 좋지 못하고 그네들의 의식법상 정결하지도 못한 나귀 머리통 하나가 은 80세겔(5파운드)이나 나갔으며, 본문에서는 “비둘기 똥”(한글 개역에는 “합분태”라고 되어 있음)이라 불리는 족제비나 편두 또는 어떤 조야한 곡물의 소량이―달걀 6개의 분량 정도도 못 되었다―은 다섯 세겔(약 18-20실링)에 팔렸다. 풍요를 귀중히 여기며 감사할 줄 알아야겠다. 기근 때문에 돈의 값어치가 얼마나 무시되는가를 보라. 먹을 수 있는 것을 위해서라면 돈쯤이야 얼마든지 쓰게 되는 것이다. Ⅱ. 한 가난한 여인이 기근의 극한 상황에서 당한 슬픈 사연을 왕에게 알려 왔다. 왕이 파수병을 돌아보며 궁수들의 배열과 무너진 곳을 보수하게 하는 일 따위를 위해 명령을 내리려고 “성 위로 통과하고” 있을 때에 그 성읍의 한 여인이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하고 소리쳤다(26절). 어려움을 당한 백성들이 직무상 자기들의 권리의 보호자요 억울한 일을 풀어 주는 자인 임금에게 나아가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서 도움을 구하랴? 왕은 돌아보았으나, 불쾌한 답변을 했다(27절).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않으시면, 내가 어쩌랴?”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이 “시비를 건 것”이라고 본다. 곧 그가 화를 냈다고 보는 것이다. 즉 “하나님까지도 우리를 못살게 구는 이런 때에, 도대체 너는 내게서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하는 뜻으로 본다. 왕은 타작마당이나 포도주 틀을 이용하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 여인을 도와줄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려 하지 않았다. 우리도 고통을 주는 섭리에 의해 수난을 당하지 않을까 삼가 조심해야 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말은 위안하여 “진정시키는” 말로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가 우리를 도울 때까지는 참으면서 현재의 고통을 잘 이용하도록 노력하자. 나는 너를 도울 수 없노라”는 뜻으로 말이다. 1. 왕은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이 비어 있는 것을 슬퍼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그들의 형편과는 달랐고, 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군대를 대접하기 위해 왕이 쓰도록 명령한 큰 식량에 관해 읽었다(23절). 그러나 지금은 가난한 여인 한 사람도 구제할 식량이 왕에게는 없었다. 큰 풍요 뒤에 큰 궁핍이 오는 수가 종종 있다.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는 확신은 결코 금물이다(사 65:12; 시 30:6). 2. 왕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돕지 않는다면,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자인했다. 피조물이란 하나님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대로요, 오직 그대로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은 자기가 그 여인을 도와줄 수는 없었지만, 그 여인의 말을 기꺼이 들으려 했다(28절). “무슨 일이냐? 네게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느냐, 아니면 네 이웃보다 더 어려운 점이 있느냐?” 정말로 그러했다. 그녀와 이웃집 여인 한 사람이 비극적인 계약을 맺었다. 즉 식량이 모조리 떨어졌으므로, 그녀의 아들을 먼저 잡아먹은 다음, 그 이웃집 여인의 아들을 잡아먹자고 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녀의 아들을 잡아먹었다(무서워서 어찌 생각이나 하랴?). 그런데 그 이웃 여인은 자기 아들을 숨겨 버렸다(28, 29절). 육이 영을 지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실례를 보라. 그 때에는 정신의 가장 자연스러운(본능적인) 애정마저도 몸의 본능적 욕망 때문에 무참히 정복되고 마는 법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된 것을 보라.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그들에게 경고한 하나님의 심판 중에는 이런 것이 들어 있다(신 28:53-57). 즉 그들이 자식을 잡아먹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감히 누가 믿었으랴? 그러나 사실화되었다. Ⅲ. 왕은 이 일로 인해 엘리사에게 분노했다. 그는 그 재난을 애통해하면서, “자기 옷을 찢고, 속에 굵은 베옷을 입었다”(30절). 그가 이 백성의 비극을 진심으로 걱정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을 도울 만한 힘이 자기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의 불의를 통애하지는 않았다. 또 그 백성의 불의를 통애하지도 않았다. 실은 그 불의가 이 참상을 불러들인 원인이었다. 그는 이것을 몰랐다. 자기의 “길과 행실이 이 일들을 부르게 하셨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까지 이르리라”(렘 4:18).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의 길을 굽게 하고” 나서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느니라”(잠 19:3). 그리하여 그는 단과 벧엘에 있는 송아지상을 헐어 버리겠다거나 바알의 선지자들과 아스다롯상에게 율법을 시행하겠다는 맹세를 하지 않고, 그 대신 “엘리사를 죽이기로” 맹세했다(31절). 왜, 무엇 때문인가? 엘리사가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인가? 그의 머리야말로 모든 이스라엘인 중에서도 가장 순결하고 값있는 것이었으며, 신앙심이 깊은 자임이 틀림없었으나, 그가 파문을 받았다. 이와 같이 핍박을 일삼는 황제들의 시대에는 제국 전체가 비상한 참변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그러고서도 그들은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전가시켰고, 마침내 기독교인들은 파멸의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을 사자들에게로 데려가라”(Christianos ad leones). 아마 여호람이 이렇게 엘리사에게 분노한 이유는, 그가 이 사실을 예고했기 때문이든가 또는 아람에게 투항하지 말고 버티라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엘리사가 기도를 통하여 포위를 풀어 그 성읍을 구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는 엘리사가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가르쳐 놓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이 회개하고 개심하며, 구원받을 준비를 하기까지는, 그 선지자가 자기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리라는 기대는 가질 수 없었다. Ⅳ. 엘리사는 왕이 자기를 해치려 한다는 것을 예견했다(32절). 그는 자기 집안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마 장로들이 분명히 그와 함께 태연히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왕은 그물에 걸린 들소 같았고, 조용할 수 없어서 노호하는 바다와도 같았다. 엘리사는 자기의 목을 자르도록 왕이 보낸 한 관리가 있다는 사실을 장로들에게 이야기했다. 오거든 문간에 세워 두고 들여보내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 관리의 주인인 왕이 그를 뒤쫓아 와서 그의 명령을 취소할 것이었기 때문이다(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엘리사에게 멀리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준 그 예언의 영이 또한 왕을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권위를 주었다. 그러한 특별한 사명을 띠지 않는 이상, 우리가 그러한 말씨를 모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코 우리로 하여금 주권자를 경멸하고 존귀한 자를 악평하라고 쓰여진 말이 아니다. 엘리사는 자기가 왕의 손에 의해 그런 화를 받아야 되겠는지 생각해 보라고 장로들에게 말했다. “이 왕이야말로 살인자의 아들이 아닌가 생각해 보라.” “엘리사가 무슨 악을 행했다는 것인가?” 그는 “재앙의 날을 갈망하지 않았다”(렘 7:16). Ⅴ. 왕은 엘리사를 죽이라는 칙령의 시행을 막기 위해서, 엘리사에게 와서는 아주 다정하게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자기의 양심의 자책과 죄악성 속에서 갈등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할 말을 몰랐다. 그러나 사태는 절망의 끝까지 나아갔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 자신도 구원받지 못할 것으로 포기해 버렸다. “이 재앙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말했다(33절). 사실 이것은 옳은 말이었다. 모든 괴로운 재앙은 제1원인이신 여호와 곧 절대 심판주에게 속한 것이라는 점(암 3:6)은 일반적인 진리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그러한 사실의 구체적인 실례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당하는 모든 재앙은 무엇이든지―그러므로 이 재앙까지도―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을 하는 도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리에서 연역해 낸 왕의 추론은 어리석고 악한 것이었다. “내가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하고 말했다. 엘리, 다윗, 욥은 “그것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로다”라고 말하고서도, 마지막까지 인내했다. 그러나 이 악한 인간은 거기에다가 무례함을 더 범했다. “이제는 사태가 더 악화될 수도, 더 호전될 수도 없으니, 나는 선악 간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리라. 우리는 모두 망했다. 구제책이 없도다”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을 기다리다가 지치는 일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는 심판의 하나님이시며, 그를 기다리는 모든 자들의 축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 ..열왕기하 6장 1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ㅇ1-7절까지의 기사는 4장과 마찬가지로 연대를 추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이 익명의 선지자의 생도들로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 기사를 4:38-44절과 연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K.W.Bahr). ㅇ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 이 기사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관해서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는 것 같다. 카일(Keil)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이 장소를 2:1에 나오는 길갈이라고 주장(Thenius)하는데 그것은 요단 강 근처의 길갈을 잘못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카일은 요단 강과 가까운 여리고가 이 기사의 배경이라고 주장한다(Keil & Delitzsch, Vol. ,p.323:Pulpit Commentary). 한편 본절의 '좁으니'란 말은 히브리어 '차르'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꺾쇠로 죄다', '고통을 겪다'는 뜻의 '차라르'에서 온 용어다. 이러한 어원적인 의미로 살펴볼 때 그 장소가 매우 비좁고 불편했던 처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그곳에 우리의 거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가라 ㅇ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 요단 강변에는 숲과 나무들이 울창하여 버드 나무, 포플라 나무, 석류 나무등 건축물의 목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D. Baly, The Geograply of the Bible, p.92-95;렘 49:19;50:44;슥 11:3). ㅇ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 이 구절은 선지자의 생도들 모두가 사역에 동참하여 협력해서 금방 선지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한편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성도들의 협동 정신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된다(갈6:10). ㅇ엘리사가 가로되 가라 - 이 말은 배움의 장소를 옮기는데 있어서 먼저 스승의 승인이 있어야 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엘리사는 생도들의 요구가 타당한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승락한 것이다. 3 그 하나가 가로되 청컨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가리라 하고 ㅇ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 '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벧'은 '노예', '신복'으로 번역된다. 이처럼 선지 생도들이 엘리사 앞에서 자신들을 '노예'와 같은 뜻의 단어로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선지자의 무리 가운데서 엘리사의 위치와 권위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생도들이 제목을 구하기 위해 요단 강으로 가면서 엘리사에게 동행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1) 그들은 자신들이 벌목을 하는 중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엘리사가 자기들과 동행함으로써 그들은 안심놓고 벌목 작업에 착수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행 20:34). 실제로 그들이 엘리사와 동행했으므로 하나님의 이적으로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다(5-7절). (2)엘리사가 자기들과 동행함으로써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요청은 매사에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한 사실에서 기인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적용된다. 즉 성도들은 어떤 일을 착수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서 그일을 이루어 주는 분이심을 믿고(잠 16:1) 그 일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시 56:4). 이것이 곧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길을 지도해 주실 것이다(잠 3:6). ㅇ내가 가리라 하고 - 생도들의 요청을 간단히 응낙한 엘리사의 대답을 통해 그의 성격을 간파할 수 있다. 즉 그는 말과 행동이 신속하고, 동일했을 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직선적이었던 면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Pulpit Commentary). 4 드디어 저희와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벧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가로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 ㅇ나무를 베더니...나무를 벨 때에 -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앞뒤 절이 동일하게 '나무를 베다'로 번역되었으나 히브리어 원문상으로는 서로 다르다. 즉 4절의 '나무'는 원어로 '에침'으로서 '일반적인 나무'를 가리키는 반면 5절의 '나무'는 '코라'로서 '들보', '서까래'를 가리킨다. 이에 따라 공동 번역과 RSV에서는 이를 '나무'와 '들보감'(log)으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한편 선지 생도 중 한 사람이 나무를 찍다 도끼를 물에 빠뜨린 것은 큰 나무를 무리하게 찍다가 생긴 일로 생각된다. ㅇ도끼가 - 문자적으로는 '그 쇠가'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애굽으로부터 쇠를 제련하고 용구를 만드는 법을 배워 왔기 때문에 일찍이 모세 때부터 쇠로 도끼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신 19:5). ㅇ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 - 이 비판의 외침은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Keil & Delitzsch). 그리고 여기서 '빌어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울'은 '애걸하여 빌리다', '구걸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도끼를 물에 빠뜨린 생도는 너무 가난하여 도끼를 살 수 없어 이웃에게 구걸하다시피 애걸하면서 도끼를 빌어온 것이다(Wycliffe). 한편 율법에 따르면 이웃에게 빌어온 것을 상하게 하거나 잃어버리면 그에 대한 대가로 적절한 배상을 하게 되어 있었다(출 22:14). 그런데 이렇게 도끼 하나도 살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는 생도가 그 도끼 주인에게 배상을 해야하니 얼마나 암담하였겠는가! 6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무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르게 하고 7 가로되 너는 취하라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취하니라 ㅇ본절에 기록된 이적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자연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째, 엘리사는 자기 눈으로 물에 있는 도끼날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도끼날 밑에 나무조각을 끼워 수면으로 끌어 올렸다(Von Gerlach)는 것과 둘째, 나무가지를 갖고 도끼날 구멍에 끼워 건져냈다는 것이다(Thenius). 그러나 '떠오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체프'는 '넘쳐흐르다', '덮다', '수영하다'라는 뜻의 동사 '추프'의 허필형(Hihpil:사역형 능동)으로서 쇠도끼를 직접 물 위에 떠오르게 만들었다는 뜻이다(신 11:4). 그래서 선지자의 생도는 떠오른 도끼를 물에서 집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Keil). 한편 엘리사가 행한 이 이적은 예수가 고기의 입에서 금화를 꺼낸 이적(마 17:27)이나 오병 이어의 이적(눅 9:12-17)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의 현세적인 필요들을 채워 주시는 분이심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 뿐만 아니라 본절은 단순하고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 주고 있다.(Wycliffe). 8 때에 아람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ㅇ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 본절은 이 사건에 대해서 정확한 연대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열왕기서 기자가 연대기 순으로 본서를 기록하지 않고 비슷한 주제들 끼리 묶어 기록하기를 좋아 했다는 증거가 된다(T.R.Hobbs).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이 전쟁을 여호람과 벤하닷의 전쟁이라고 한다(Antipuities of the Jesus, , p.51-78). 그러나 23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아람보다 국력이 강한 때임을 암시하고 있어서 요세푸스의 견해는 옳지 않은 것 같다. 더욱이 13:3, 14-19,22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람의 손에 붙이셨다고 하여 본 기사와 대조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레이(Gray)는 이기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는 다른 면모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시기인 B.C.797년에 일어난 것이며 아람 왕 하사엘 때의 전투라고 한다. 그러나 여호람의 통치 시기에도 이스라엘의 정국이 항상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그레이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따라서 요세푸스의 주장처럼 본절을 여호람 왕과 벤하닷의 전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Lange Commentary). 한편 나아만 사건이 있은지(5:5,6) 얼마되지 않아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이런 조그만 전쟁이 잦았음을 감안해 볼 때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G.Rawlinson). 그리고 본절에서 언급한 '진을 치리라'는 말은 9절의 말씀을 의거해 볼 때 '복병을 두리라'(Ewald, Wycliffe)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않다', '진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하나'에서 파생한 '테하노트'이기 때문에 본 번역이 타당한 것으로 이해된다(K.W.Bahr, Keil & Delitzsch).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ㅇ당시에 여호람 왕이 하나님 앞에서 악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3:2) 엘리사는 민족의 재난을 방관하지 않고 여호람 왕을 도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고 있음을 이와 같이 보임으로 인해 왕이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Pulpit Commentary). ㅇ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 어떤 학자는 아람의 전략에 대한 엘리사의 지식이 스파이 정보에 의존한 것처럼 말하나, 그런 것은 엘리사의 이적을 기록한 저자의 동기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특별히 2:19-6:22에 엘리사의 여러 가지 이적을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그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본절의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라는 말은 '이곳을 소홀히 하지 마소서'(Keil & Delitzsch, Clericus), 즉 '이곳을 점령당하지 마소서'라고 해석 할 수도 있고 적군이 매복하고 있으니 '함부로 다니지 마소서'라고도 해석 할 수 있다(K.W.Bahr, Pulpit Commentary, Thenius, Wycliffe). 10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 두번이 아닌지라 ㅇ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 아람 군사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하여 진을 치고 숨어 있는 곳을 미리 알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경고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아람의 공격은 무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그 기회를 틈타 오히려 기습을 가하여 아람을 패주(敗走) 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있어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아람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11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이 된 것을 내게 고하지 아니하느냐 ㅇ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 여기서 '번뇌하여'라는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잇사에르'는 '용기를 잃다', '태풍으로 바닷물이 출렁이다'(욘 1:11), '역경으로 마음이 흔들리다'라는 뜻의 '싸아르'에서 파생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몹시 당황하여 안절 부절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따라서 이것은 엘리사로 인하여 아람 왕이 얼마나 곤혹스러워 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래서 급기야는 내부의 간첩을 색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엘리사의 명성을 듣지 못한 아람왕의 우매함은 패배를 자초할 수 밖에 없었다. 즉 그는 엘리사의 선지(先知)를 근동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단순한 점술사의 점괘로 알았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12 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ㅇ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 엘리사의 명성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 아람에서도 자자하게 되었다. 이것은 아마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나 그밖의 다른 이적적인 사건들이 아람에 전하여졌기 때문일 것이다(G.Rawlinson). 그리고 원문을 보면 '선지자'앞에 정관사 '헤'가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전쟁에서 이상한 연유로 자주 패할 뿐만 아니라 엘리사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특별한 선지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Pulpit Commentary). 13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ㅇ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 도단은 '두 우물'이란 뜻으로 오늘날 '텔 도단'(Tell Dothan)으로 알려지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사마리아에서 동북쪽으로 약 18km정도 떨어진 도단 계곡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Word Biblical Commentary). 또한 이곳은 세겜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창 37:14)으로서 요셉이 자기 형들에 의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렸던 장소이기도 하다(창 37:17). 한편 본절에서 아람 왕이 도단에 있는 엘리사를 잡으려고 한것은 바로 자신들의 비밀 계획이 엘리사에 의해서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K.W.Bahr, G.Rawlinson). 한편 다음 지도는 도단의 위치를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ㅇ많은 군사 -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하일 카베드'는 그 의미가 대단히 모호하다. 왜냐하면 18:17에서는 '보통 군대의 규모'를 가리키고, 왕상 10:2에서는 '많은 수의 수행원'을 ,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큰 군대', 혹은 '강한 군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후 문맥과 23절의 내용을 살펴보아 '일반적인 대규모의 군대'로 이해함이 좋을 것 같다(T.R.Hobbs). ㅇ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 아람 왕은 단지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 위하여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다 에워살 만큼 많은 군사들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군대를 동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을 힘으로 잡으려는 것은 무력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사40:17). 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ㅇ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 여기서 '수종드는 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메솨레트'는 '예배를 돕는 자'나 '수행원'을 가리키는 단어이다(Davidson). 따라서 게하시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엘리사와 동행한 선지자 생도들 중의 한 명으로 추측된다(K.W. Bahr). 그러나 본절에서 수종드는 자가 꼭 게하시가 아니라는 그 어떤 증거도 찾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 단어는 엘리사가 보다 어릴 때 엘리야를 수종드는 자로 있을 때 사용되었으며(왕상 19:21), 또한 성전에 있던 어린 사무엘을 지칭할 때도 쓰였던 단어이기도 하다(삼상 2:11). ㅇ성을 에워쌌는지라 - 도단 성은 계곡 위의 넓은 평지에 있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기가 아주 쉬웠다. ㅇ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 엘리사의 사환은 군사들이 왜 성을 포위하고 있는지를 잘 몰랐기 때문에 크게 놀란다. 더욱이 그는 믿음의 눈이 열려있지 않아 눈 앞에 닥친 상황에 대하여 지나치게 겁을 먹은 것이다. 이와 유사한 예로 베드로도 믿음의 눈이 닫혀 주와 함께 물 위를 걷다가 덮쳐오는 파도에 놀라 그만 물에 빠져 가면서 소리 질러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마 14:30)라고 외쳤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이 적음을 꾸짖으셨던 것이다(마 14:31). 이와 같이 모든 일을 인간적인 눈으로 판단하면 낭패를 당하거나 실망하기 쉬우나 하나님 편에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두려울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Wycliffe).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ㅇ본절의 전(前)반부는 신 20:1-4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쟁에 참여할때 취해야 하는 마음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즉 믿음의 눈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언제나 함께하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난국을 주의 은혜로 타개해 갈 수 있는 것이다(시 3:6;27:3;대하 32:7). 한편 앞절(15절)과 본절에는 두 가지 사실이 뚜렷이 대조되어 있다. (1) 사환의 눈"사환은 도단 성을 에워싸고 있는 아람 군대만 보고 놀랐다.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눈을 가지지 못한 모든 사람은 인간적인 눈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려 함으로써 큰 낭패를 당한다(마 16:21-23). (2) 엘리사의 눈: 엘리사는 아람군대보다 수효가 더 많은 하늘 군대를 보고 있었으므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당당함, 이는 쓰러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에 찬 신앙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출 14:1-14).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려움을 당할때 어려움 그 자체를 보지 말고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도록 해야하겠다. 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ㅇ눈을 여시매 - '눈이 열려진다'는 것은 소경이 눈을 뜬다는 의미가 아니라 '육신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을 영혼이 보는', 즉 투시의 황홀한 상태가 됨을 말한다(Keil & Delitzsch, Vol. , p.325-326). ㅇ불말과 불병거 - 이것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창 32:2). 따라서 불말과 불병거가 이 땅에 임재해 있다는 것은 지상의 어떠한 무력이라도 천상(天上)의 군대를 능히 물리칠 수 없음을 가리킨다. 이처럼 엘리사와 같이 주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만이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힘입어 믿음 안에서 더욱 강건해 질 수 있는 것이다(살전 5:17;벧전 1:4). 더 자세한 내용은 2:11을 참조하라.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ㅇ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 도단 성은 계곡 위의 넓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람 군대는 밑에서 성을 에워싸고 있었다(K.W.Bahr). 따라서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로 내려 왔다는 표현(Keil & Delitzsch)보다는 엘리사의 일행이 아람 군대에게로 내려왔다고 이해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F.Meyer, G.Rawlinson,K.W.Bahr, Thenius 등). ㅇ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 여기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싼웨림'으로서 '맹목', '현혹'(dazzle)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창 19:11에서 사용된 바와 같이 눈 앞이 가리워져 못보게 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면서도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나 처지를 전혀 모르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도단에서 약20km 정도나 떨어진 곳에 있는 사마리아까지 엘리사를 따라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19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ㅇ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 아람 군대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이 구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곡의 언덕 위에 있는 도단 성을 에워싸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에 엘리사가 있다는 정보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의 말에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단에서 사마리아까지는 급경사가 굉장히 많고 바람이 많이 불어 험난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길인데(T.R.Hobbs)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이 길을 잘못 들어 섰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엘리사의 인도대로 이끌려 간 것이다. 한편 혹자는 엘리사의 이러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엘리사의 집이 사마리아에 있었고 '너희를 찾는 사람'이 '그의 집'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Thenius). 그러나 도단 성에 엘리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온 아람 군대(15절)가 이러한 말을 믿었다는 생각은 의심을 품게 만든다. 또한 왜 도단 성에서 아람 군대를 물리치지 않고 사마리아까지 그들을 끌고 갔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이 간다. 그러나 이것은 도단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Wycliffe). 그리고 이것은 역설적으로 영적 눈이 어두워져 사단이 유혹하는 대로 따라 가는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에 비유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불을 좋아하는 나방이 불만 보고 날아가다가 불에 타죽는 것과도 일반이다.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소경이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사망의 길로 인도했다(마23:16,26;요9:39-41). 이와 반대로 다윗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삼고 그를 의지했다(시 23:1-6).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공의로 다스릴 수 있었다(삼하 8:15).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2;롬 12:2) 20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저희의 눈을 여시매 저희가 보니 자기가 사마리아 가운데 있더라 ㅇ이 무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 여기서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마리아 한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이 도단성을 에워쌌던 처음 상황과는 (14절)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도리어 이스라엘 군에게 포로가 되어 죽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아람(시리아) 군인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가 다시 시력을 회복시켜 준것은 그들의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Keil &Delitzsch). 그래서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매우 관대하게 대했던 것이다(22절). 21 이스라엘 왕이 저희를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ㅇ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 여기서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향하여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 것은 어떤 부자간의 관계를 전제로 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존경과 경의의 표현(13:14)으로 볼 수 있다(G.Rawlinson).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엘리사가 엘리야를 향하여 그렇게 불렀듯이(2:12) 선지자의 우두머리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볼 수도 있다(K.W.Bahr). 그러나 지금까지 이스라엘 왕 즉, 여호람과 엘리사 선지자와의 관계가 냉담하고 소원(疏遠)했던 것으로 미루어(3:11-14;5:8) 볼 때 여기에서 사용한 이 호칭은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던 특별한 호칭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호칭을 사용한 것은 여호람 왕이 엘리사가 행한 일에 탄복하여 경의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본절의 '내가 치리이까'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포로에게 행하던 관례 즉, 적군이 포로로 잡히거나 항복해서 잡힌 경우를 막론하고 죽였던 당시의 관례에 따라 죽일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민 31:7;삼상 15:8;대상 20:3). 그리고 여호람 왕이 관례대로 포로를 죽이지 않고 엘리사에게 물은 것은 상황이 예외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22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ㅇ치지 마소서... 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 엘리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아람 사람들을 죽이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을 사마리아에까지 유인해 온 것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승리를 안겨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참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5:8)이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Vol.,p.326-327). 만일 엘리사가 그들을 전쟁 포로로 간주해 이스라엘 왕에게 넘겨 주었다면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이지 아람 군대와 하늘 군대와의 전쟁은 아닐 것이다(16절). 애초에 아람은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관대하게 대해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하나님의 권능을 인식케 한 것이다. 한편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이 엘리사가 보인 모범의 행위처럼 원수를 먹이고 마시우게 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일을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음에 대해 핑계치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심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기 때문이다(롬 12:20;잠 25:21,22). 23 왕이 위하여 식물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ㅇ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 원수를 굴복시키는 길은 칼과 무력이 아니라 마음을 사로잡는 자비와 사랑이다(요일 3:16;고후 5:14). 그래서 엘리사가 나타낸 이적과 더불어 그가 보여준 사랑으로 인해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던 아람의 침입(5:2)이 멈추고 평화가 회복될 수 있었다. 한편 아람 군대가 잠시 동안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않은것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침공해 보았자 오히려 자신들이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K.W.Bahr), 둘째,아람 군대에 대한 여호람의 호의와 석방에 대한 결과 때문 (G.Rawlinson)이다. 24 이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ㅇ이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 여기서 벤하닷 왕은 아합을 공격했던 바로 그 왕(Benhadad II)이다(8:7;왕상 20:1). 이것은 요세푸스의 주장에 근거한 것인데 다른 신학자들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K.W.Bahr, T.R.Hobbs, Wycliffe). 따라서 23절 이전의 사건이 있고 난 이후 수 년의 세월이 지나간 때(K.W.Bahr), 그러니까 엘리사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이후 앞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잊었을 즈음에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G.Rawlinson). 그러나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재차 침입한 것(6:24-7:20)은 앞에 언급된 8-23절의 사건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31절에서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즉, 앞사건에서 아람 군대를 놓아준 것 때문일 것이다.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 이라 ㅇ성중이 크게 주려서 - 사마리아 성이 당한 고통은 두 가지였다. 즉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므로 성 내외(內外)의 교통이 두절되어 물자의 반입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또 사마리아에 닥친 기근으로 인해 성 안에서도 먹을 식량이 극히 부족했던 것이다. ㅇ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 레 11:4에 의하면 나귀는 부정한 동물이기때문에 절대로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머리는 다른 모든 부위보다도 먹기에 제일 나쁜 부분이라서 가장 값이 싼 고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한 나귀의 머리가 은 80세겔에 거래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기근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편 은 1세겔(Shekel)은 일반 노동자 4일의 품삯이기 때문에(출30:24;삼하 24:24) 은 80세겔은 영국 화폐로 5파운드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G.Rawlinson) 일반 노동자의 320일, 즉 거의 1년치의 품삯에 해당되는 값어치이다. ㅇ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 여기서 합분태는 히브리어로 '히르이요님'으로서 '비둘기 똥'이나 여물지 않은 콩과 같이 '영양가가 거의 없는 음식물 찌꺼기'(Berleb), 혹은 '작은 곡식'(Wycliffe)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브'의 정확한 용량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요세푸스는 이것을 '제스테', 즉 라틴어로 6분의1(sextarius)로 번역했다. 그리고 그의 '유대 고대사' 8장에 57페이지에 보면 보다 정확한 용량을 제시하고 있는데 2/7제스테는 1밧(Bath)과 같고, 1밧은 6/30리터라고 한다. 따라서 1 제스테는 1/2리터 정도이다. 그리고 요세푸스는 이와 같이 성이 포위되고 기근이 극에 달했을 때는 동물이나 사람의 배설물까지 먹었다고 더불어서 전한다. 한편 이와 같은 일은 세계 제 2차 대전 말기에도 있었는데 독일이 유럽을 포위하자 유럽 사람들은 먹을 식량이 없어서 개와 고양이, 심지어 해충까지도 잡아먹었다는 것이다(T.R.Hobbs). 이러한 곤경과 환란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셔서 이같은 고충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레 26:23-26). 26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주 왕이여 도우소서 ㅇ성 위로 통과할 때에 - 대부분의 고대성들은 요새화된 성벽으로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사륜 마차가 지나다닐 정도로 폭이 넓었다(G.Rawlinson). 또한 그곳은 매우 높아서 적의 이동을 관찰하기가 매우 용이했다. 그리고 그곳은 보초의 경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 고관들이 자주 왕래하던 곳이다(Lange Commentary, Pulpit Commintary). ㅇ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 성 안에 있는 집들 중에는 성벽에 붙어 있는 집들도 있었기 때문에(수 2:15;삼상 19:12) 성이 적의 공격으로 인하여 위기를 맞을 때는 여자도 성을 방어하는 일에 동참했다(삿 9:53). 그래서 왕이 성벽 위를 통과하는 동안 여인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27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ㅇ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 여기서 왕이 말한 여호와의 이름은 마음 중심에서 나온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31-33절) 왕 자신의 탄식을 강조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5:20).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왕의 표현은 사마리아성 안에 기근이 심하여서 누구든지, 심지어는 왕조차도 백성을 도울 수 없다는 당시의 한계 상황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ㅇ타작 마당...포도주 틀 - 본절에는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이 나란히 언급되어 있는데 이러한 특수한 표현의 구문에 대하여 해석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1)이것은 생산의 원천인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을 언급한 것이다(민 18:27,30;신 14:14;16:13). 왕이 이와 같은 단순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당시에 굶주린 백성들의 아사(餓死)를 막을 수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그래서 호 9:1,2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이 내린 심판의 표시라고 보고 있다. 한편 당시 사마리아의 타작 마당은 성문 앞에 있었는데(왕상 22:10) 아람 군이 이곳을 포위하여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2)이것은 후기 예언서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왕이 타작마당을 심판의 장소로 언급한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호 13:3;미 4:12;렘 51:33). 3)이것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막막한 상태를 나타내는 숙어적 표현이다. 즉 왕은 여인의 간절한 외침을 듣고 그 여인의 어려움 또한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왕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대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Word BlblicalCommentary, Vol. 13, p.79-80). 28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ㅇ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 문자적으로 '너의 불평거리는 무엇이냐'라는 의미이다. 27절에서 왕이 여인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 없는 대답을 하자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여인은 자신의 질문에 대하여 어떤 보충의 설명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혹자의 해석처럼 여인은 아마 자신이 왕에게 음식을 구한 것이 아니라 어떤 판결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을 것이다(K.W.Bahr). 그렇기 때문에 왕은 그 여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다시 질문한 것이다. 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ㅇ본절의 사건은 이미 성경에서 예언 하였던 바 그대로 성취되었다(레 26:29;신28:56,57). 그리고 이러한 기록은 그 당시 사마리아 성이 당한 기근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말해준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이 같은 예언의 성취를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예루살렘이 1)느부갓네살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애 4:10)와, 2)디도(Titus)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Josephus)였다. 그리고 죽은 아들에 대해서 전혀 비애하지 않고 그 시신(屍身)을 먹는 본절의 기사를 통해 한계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죄악된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극도에까지 다다른 상황에서도 인간은 결코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음부에 있는 부자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눅 16:31)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ㅇ왕이...자기 옷을 찢으니 - 이처럼 여호람 왕이 자기 옷을 찢는 몸짓을 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5:7). 그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현실의 참혹한 상황에 경악하여 백성의 지도자로서 느끼는 비통을 외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왕의 이러한 분노는 자기 백성의 참상에 대한 책임을 엘리사에게 전가시키는 심히 악한 격분이었다. ㅇ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 '굵은 베'는 회개, 슬픔을 표시할 때 입는 거친옷이다(19:1;창 37:34;삼하 3:31;대상 21:16;에 4:1;욥 16:15;사 15:3;단 9:3;욘 3:8;마 11:21;계11:3).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이 공식적인 왕복(王服)속에 이 굵은 베옷을 걸쳐 입었다는 것은 사마리아 성에 닥친 재난으로 인해 회개하는 행동인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여 겸손해진 행위라기보다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경문(經文)을 넓게 하여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던 것과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재난의 원인을 엘리사에게로 돌리면서 그를 죽이려고 했기때문이다(31절). 그리고 혹자가 말한 것처럼 왕은 이런 형식적인 옷차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켜 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Bahr). 그러나 진실된 회개의 신앙이 없이 슬픔과 회개의 표시로만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외식적으로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딤전 4:7).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외식을 회개하지 않아 외식하는 자가 받는 율(律)에 처해짐 같이(막 7:1-27), 여호람 왕도 결국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외식하는 자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모든 자에게도 해당된다(마5:20). 31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ㅇ여기서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은 8-23절의 사건과 24절에서 벤하닷이 재 침입한 사건을 서로 연관시켜서 이해할 때 보다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나 카일(Keil)이나 기타 다른 신학자들(Bahr,Rawlinson)은 이 두 기사를 서로 연관시키지 않고 해석하기 때문에 약간의 억지스런 추측을 했다. 즉 그들은 엘리사가 왕에게 항복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지할 것을 묵시적으로 권고했기 때문에 왕이 엘리사를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하닷은 엘리사에게 당한 굴욕을 잊지 못해서 사마리아를 다시 공격했고 이스라엘 왕은 그때 아람 군대를 죽이지않고(22절) 놓아 보내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T.R. Hobbs). 그래서 여호람 왕은 엘리사를 저주한 것이다. 또한 왕이 엘리사에게 저주를 한 직접적인 이유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일언 반구(一言半句)도 없이 여호와의 도움을 구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8-23절의 사건과 24절의 사건을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왕이 엘리사의 목을 치겠다고 한 것은 율법의 어느 곳에도 그러한 행위를 용납한 곳은 없으나(Pulpit Commentary) 애굽과 바벨론과 앗수르 등의 이방에서는 흔히 행하던 참형(斬刑)이다. 32 그때에 엘리사가 그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사자가 이르기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안에 들이지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아니하냐? ㅇ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 엘리사의 거처에 대해서는 여러 곳이 언급되었지만 여기서는 사마리아에 있는 본래의 집으로 추측된다. ㅇ장로들이 - 이들은 성의 관리들(Lange Commentary)이라기 보다는 사마리아 성에 있는 백성들의 대표자들이다. 한편 그레이(Gray)처럼 여기에 언급된 모임을 정규적인 또는 습관적인 모임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사마리아 성이 직면해 있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백성의 대표자들과 상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Hobbs). ㅇ사람들 보내었더니 - 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신하 중 한 사람(왕상 10:8;단 1:4,5)을 여호람은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ㅇ살인한 자의 자식 - 이것은 물론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의 나쁜 의도를 파악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그래서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표현이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호람이야말로 혈통적으로나 기질면에서나 광폭한 살인자 아합의 친아들이었기 때문이다(왕상 21:19). 그러나 본문의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말은 족보상의 어떤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기 보다는 '살인자와 같은 인간', '포악한 인간'등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삼상 20:30). 비근한 예로 예수당시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이때 예수께서 그들에 대하여 '마귀' 즉, '살인한 자의 자식'이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셨다(요 8:44). ㅇ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 사자를 보낸 성급한 행위를 후회하고 즉시 사자를 뒤따라 왔다고 본다(G.Rawlinson, Keil & Delitzsch, Wycliffe). 그래서 엘리사는 문을 닫게 하고 왕이 도착할 때까지 사자들을 들이지 말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33절에 기록된 말을 왕이 직접 언급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한글 개역 성경도 왕의 말로 번역했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의 학자는 이것을 왕이 뒤따라 온 것이 아니라 왕이 보낸 사자의 발소리라고 한다(T.R.Hobbs). 33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ㅇ왕이 가로되 - 원문에는 '와요메르'로서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즉 그것은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왕의 사자가 말한 것(T.R.Hobbs)이 아니라 '왕자신'이 와서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역 성경 RSV와 NEB는 말하는 주어를 왕으로 간주해서 번역한 것이다. 한편 KJV는 그 주체를 왕의 사자로 번역해서 그 뜻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ㅇ어찌 더...기다리리요 - 이 모든 재앙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시인하는 여호람 왕은 이제 여호와께만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태도를 갖는다. 그가 왜 이처럼 갑자기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으나 왕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바른 길로 돌아왔던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p.329-330; Wycliffe). 한편 7장 1절부터는 여호와의 재앙이 끝나고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