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가 4장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숨겨]있는 네 눈이 비둘기[=순전-일심-통찰력] 같고 네 머리털은[=순종/복종의 미덕]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십자가로 처리됨+그 영의 씻음 통해 정결함 입은]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두 배로 강화/균형 잡힌]를 낳은 양 같구나 3. [구주의 구속과 그분의 권위에 걸맞는 언사.수2:21]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생명 충만] 한 쪽 같구나 4.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구주께 복종하는 의지..사3:16] 곧 [방어 능력 풍부한 의지를 표상]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 :::순수하게 신뢰하는 생활 환경, 즉 백합화 가운데서, 기쁨과 겸손으로(갈5:6, 딤전1:14) 구주께 양육 받는 연인의 사랑과 믿음의 아름다움. 6.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이제 교회시대인 바, 날은 저물어 밤이 되었고 새벽의 동 터오고 어둠 그림자가 사라지기까지..곧 구주 재림의 그때까지는] 내가 [구주 연인이 체험한 바]몰약[=구주의 달콤한 죽음] 산과 유향[=구주의 향기로운 부활]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구주의 죽음-부활-승천 안세서 오사 내주하시는 변형된 그 영은 구주 자신이시기에..롬6:3, 요11:25, 엡2:6, 롬8:9-10...<구주 바라심 바로 그대로> 그 안에 살아 생동하는 사랑과 믿음으로 머물러 구주의 일부가 아니라, 그분 자신을 통째로 체험하고 누리리라] 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고후5:17 8. 내 신부야[이제, 구주의 사랑인 연인은 신부라 불리고있음!!] 너는 레바논[=승천, 곧 주님 보좌 있는 3층천의 하늘의 시온산]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임재, 현존 안에 머무름)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동행) 아마나[=진리...완전한 구속하심으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구주의 실재, 복합되시며 생명되시는 7배나 강화된 영의 실재를 의미]와 스닐[=잘 준비된, 부드러운 갑옷...언제든지 이김의 전쟁 수행 가능]과 헤르몬[=승리 통한 멸절]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원수들의 처소, 하늘 영역에서]에서 내려오너라[=내려다 보라]...구주의 죽음-부활-승천-영 안에, 진리-승리 안에 사는 이들마다 <더욱 깨어> 주의할지니, 바로 그 밑에 또한 원수/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처소가 있음을 유의해야 하며, 그러므로 주와 하나되어 끝까지 <한편으로는 구주 안에 감추인 생명 존재로서 3층천의 승천 안에 있어서 내려다 보아 주님 시선으로 살펴 보고, 땅의 현실 삶 안에서 걷는 걸음에 있어서, 날마다 구주와 부부로서>동행할 필요가 있음...이 때에야 비로소, Q이 주신 완전한 전투장비로 깨어 싸워 이김(엡6:12-20) 통해 구주의 몸 건축과 복음 확장 위해 항상 영 안에서 기도함으로써 이김을 실행가능하다.. 9. 내 누이[=거룩한 본성에 참여함 통해 하나된 자라 여겨, 누이라 부르고 계심],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전존재 열어/전심 기울인 완전한 신뢰의 응시, 그 무언의 응답]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일심으로 주께 복종함]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10.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관유]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힘을 돋우는..삼상14:24-29]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미숙한 이들을 먹여 자라게 하는,고전3:1-2, 벧전2:2]이 있고 네 의복[=합당한 신부의 행실]의 향기는 레바논[=하늘의 시온산]의 향기 같구나 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헤나]와 나도풀[=나드]과 14. 나도와 번홍화[=샤프란]와 창포[=칼라무스]와 계수[=시나몬]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15. 너는 [친히 그러하신 구주께서 신부/누이로부터, 친히 개인적으로 체험하며 누리며 감상/음미하시는 바, (내밀하고-감추어지고-봉해지고-덮여진)살며-낳으며-살리는 독특한/매력적인 생명 기쁨]동산[=하늘 낙원 =잠긴(잠근) 동산..파라다이스]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16. ○북풍[=어려운 환경]아 일어나라 남풍[=즐거운 환경]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 아가 4장 [현대인의성경] 1. 남자: 나의 사랑, 그대는 정말 아름답구려. 베일에 가리어진 그대의 눈은 비둘기 같고 그대의 머리털은 길르앗산에서 뛰어내려오는 염소떼 같소이다. 2. 그대의 이는 이제 막털을 깎고 목욕을 한 양의 털처럼 희고 하나도 빠진 것 없이 가지런하며 3. 앵두 같은 그대의 입술은 정말 아름답구려. 베일에 가리어진 그대의 뺨은 쪼개 놓은 석류 같으며 4. 그대의 목은 군인들의 방패 1,000개가 달린 다윗의 우아한 망대 같고 5. 그대의 젖가슴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새끼 같소이다. 6. 날이 새고 어두움이 사라질 때까지 내가 유향 산과 몰약 산으로 가오리다. 7. 나의 사랑, 그대는 정말 아름답고 흠 하나 없구려. 8. 나의 신부여, 레바논을 떠나 나와 함께 갑시다. 아마나산과 스닐산과 헤르몬산에서 내려오시오. 거기는 사자와 표범이 살고 있소. 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가 내 마음을 빼앗아갔소이다. 그대가 한 번의 눈짓과 목걸이의 보석 하나로 내 마음을 훔쳐 가고 말았소. 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의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그대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달콤하고 그대의 향기는 그 어떤 향수보다 낫답니다. 11. 나의 신부여, 그대의 입술에서는 꿀이 떨어지고 그대의 혀 밑에도 꿀과 우유가 있으며 그대의 옷에서는 레바논의 향기가 풍기는구려. 12.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는 공개되지 않은 동산이며 나혼자만이 마실 수 있는 우물이요 샘이라오. 13. 그대는 석류와 같은 14. 각종 아름다운 과일-헤너, 나아드, 사프란, 창포와 계피, 온갖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 가장 좋은 모든 향품과도 같소이다. 15. 그대는 정원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며 레바논 산에서 흐르는 시내랍니다. 16. 여자: 북풍아, 일어라. 남풍아, 오너라. 내 동산에 불어와서 향기를 날려라. 내 님이 자기 동산에 들어가서 제일 좋은 과일을 먹게 해다오. ====== Solomon’s Love Expressed (The Bridegroom) 1 “How fair and beautiful you are, my darling, How very beautiful! Your eyes behind your veil are like those of a dove; Your hair is like [the shimmering black fleece of] a flock of [Arabian] goats That have descended from Mount Gilead [beyond the Jordan]. 2 “Your teeth are like a flock of newly shorn ewes Which have come up from washing, All of which bear twins, And not one among them has lost her young. 3 “Your lips are like a ribbon of scarlet, And your mouth is lovely. Your temples are like a slice of the pomegranate Behind your veil. 4 “Your neck is like the tower of David, Built with rows of [glistening] stones, Whereon hang a thousand shields, All of them shields of warriors. 5 “Your two breasts are like two fawns, Twins of a gazelle Which feed among the lilies. 6 “Until the day breaks And the shadows flee away, [In my thoughts] I will go my way to the mountain of myrrh And to the hill of frankincense. 7 “O my love, you are altogether beautiful and fair. There is no flaw nor blemish in you! 8 “Come away with me from Lebanon, my [promised] bride, May you come with me from Lebanon. Journey down from the top of Amana, From the summit of Senir and Hermon, From the dens of lions, From the mountains of leopards. 9 “You have ravished my heart and given me courage, my sister, my [promised] bride; You have ravished my heart and given me courage with a single glance of your eyes, With one jewel of your necklace. 10 “How beautiful is your love, my sister, my [promised] bride! How much better is your love than wine, And the fragrance of your oils Than all kinds of balsam and spices. 11 “Your lips, my [promised] bride, drip honey [as the honeycomb]; Honey and milk are under your tongue, And the fragrance of your garments is like the fragrance of Lebanon. 12 “A garden enclosed is my sister, my [promised] bride— A rock garden locked, a spring sealed up. 13 “Your shoots are an orchard of pomegranates, [A paradise] with precious fruits, henna with fragrant plants, 14 Fragrant plants and saffron, calamus and cinnamon, With all trees of frankincense, Myrrh and aloes, along with all the finest spices. 15 “You are a fountain in a garden, A well of fresh and living water, And streams flowing from Lebanon.” (The Shulammite Bride) 16 “Awake, O north wind, And come, south wind [blow softly upon my garden]; Make my garden breathe out fragrance, [for the one in whom my soul delights], Let its spices flow forth. Let my beloved come into his garden And eat its choicest fruits.” ======== 아가 4장 (개요) 본장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기 교회와 결혼하시고 나서(3:11), 여러 가지 표현으로 그 아름다움을 크게 칭찬하시고 교회를 아름답다고, 모든 교회의 모든 점을 아름답다고 힘주어 말씀하신다(1-5, 7). 2. 그는 공포의 산으로부터 기쁨의 산으로 물러가시면서 자기와 함께 가도록 교회를 초대하신다(6). 3. 그는 교회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시며 자기에게 대한 교회의 애정을 기뻐하신다고 고백하신다(9-14). 4. 교회는 자기가 가진 모든 귀중한 것을 그에게 돌리며, 더욱 더 그에게 열납될 수 있도록 그의 은혜의 계속적인 영향력에 의존하고 있다(15, 16). ======= 교회의 아름다움(아 4:1-7) Ⅰ. 교회와 은혜로운 영혼의 아름다움에 관해 전체적이면서 세부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새로워지게 하는 것들이며 거룩함의 미(美)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는 아름다움을 판정할 수 있는 유능한 심사관이시며, 그의 "판단은 진리를 따른 것"이 확실하므로 모든 사람은 그가 내리시는 심판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분이 "보라! 너는 어여쁘구나"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여인은 그를 찬미하였고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의 영광을 주시하도록 촉구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그의 마음에 들게 되고 그의 총애를 얻는다. 또한 그는 자기에게 대한 이 여인의 경의에 답하여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이 여인의 우아함을 주목하라고 촉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존귀하게 하는 자들을 존귀케 하실 것이다(삼상 2:30). 1. 그는 이 여인에게 아첨하지 않으며, 아첨함으로써 그녀가 자만심을 갖게 하거나 그를 찬양하도록 유도할 의도도 갖지 않는다. 그녀를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것은 현재 풀이 죽어있는 그녀를 격려하기 위함이다. 딴 사람들은 이 여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자기의 눈에는 이 여인이 사랑스러웠다. (2) 이것은 이 여인에게 무엇을 귀중한 것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즉 외면적인 잇점은 어떤 것도 귀하게 여기지 말고(그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며 설령 그런게 결여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훌륭한 것은 하나도 박탈되지 않는다) 그가 그녀에게 입히신 은혜의 아름다움만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3) 이것은 딴 사람들도 이 여인에 대해 좋게 생각하며 그들도 친히 이 여인과 연합하도록 초대하기 위함이다. "너는 내 사랑이라. 너는 나를 사랑하고 또 내게서 사랑을 받는다. 그러므로 너는 어여쁘다." 성도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리스도께로부터 유래한다. 그들은 그의 빛을 받아 반사함으로써 빛난다. "우리에게 임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아름다움"(혹은 은총)이다(시 90:17). 이 여인은 그에게 시집을 갔고 이것이 그녀를 아름답게 만들었다. Uxor fulget radiis mariti─즉 "신부는 그 남편의 빛으로 반짝인다." 이 말씀은 반복되고 있다.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이것은 그 사실의 확실성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 사실을 말하는 가운데 느끼는 그의 즐거움을 뜻하기도 한다. 2. 교회의 아름다움에 대해 여기서 묘사된 것을 보면, 이미지(image)는 매우 밝은 반면 음영(陰影)은 강하고 비유는 대담하여 어떤 외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에는 실제적으로 타당하지가 않다. 그 이유는 이들이 그런 것을 그리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것은 곧 "거룩함의 아름다움," "새사람," "썩지 아니할 것으로 마음에 숨기운 속 사람" 등이다. 일곱가지 세부 사항이 다음에 상술되고 있다. 일곱은 교회가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에 의하여 다중적(多重的)인 은혜로 부유하게 되는 것처럼(계 1:4; 고전 1:5, 7)완전의 수이다. (1) 이 여인의 "눈." 아름다운 눈은 미인이 되는 데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그 눈은 깨끗하고 정순(貞純)하며 자주 하늘을 쳐다보는 눈이다. 이것은 태양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독수리의 눈이 아니라 겸손하며 정숙하고 슬퍼하는 "비둘기의 눈"이다. 그러한 것이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며 칭찬하시는 자들의 눈이다. 목회자들은 교회의 눈이다(주의 파수꾼들은 눈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사 52:8). 그들의 눈은 "비둘기의 눈"처럼 무해하고 악의가 없어야 하며(마 10:16) "소박함과 경건한 성실성으로 세상에서 교제"하여야 한다. 지혜와 지식은 새 사람의 눈이다. 그 눈은 맑아야 하며 거만해서는 안 되고 "우리에게 너무 높은 일들을 바라 봐서도 아니 된다." 우리의 의도와 목적이 진지하고 정직할 때 우리는 "비둘기 눈"을 갖는 것이며, 우리가 "우상"을 바라 보지 않고(겔 18:6) "우리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하고 있을 때(시 25:15) 우리 눈은 비둘기 같다. "비둘기의 눈은 너울 속에" 있으므로 그 너울은 그들에게 차양과 같은 것이 된다. 1) 따라서 그들은 완전히 볼 수 없다. 우리가 여기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부분적으로 밖에 알지 못한다." 우리 눈에는 한 가닥 머리카락이 늘어뜨러져 있는 까닭이다. "어두움 때문에 우리는 우리 말을 꺼낼 수도 없다." 죽음이 이러한 머리 타래를 짧게 짤라 줄 것이며 그 때에 우리는 만사를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2) 또한 그 눈들도 완전하게 보이지 않으며 엷은 구름을 통해 보이는 별처럼 희미하게 보인다. 혹자는 이것을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이 여인은 자기 눈을 방황하지 않도록 하고 너울로 그 시야를 제한하고 있다. (2) 이 여인의 "머리털." 그녀의 머리털은 "한 무리의 염소"에 비유되고 있다. 염소 때는 희게 보이고 산꼭대기에 있을 때는 훌륭한 머리털 같이 보인다. 그 모습은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준다. 염소는 그 수염으로 인해 근엄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그 걸음은 위풍이 있기"(잠 30:29) 때문이다. 그러나 염소가 그 소유주에게 모든 것 중 가장 즐거움이 됨은 염소 떼가 그의 큰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타인들이 자기들 머리털과 같이 하찮게 여기는 교회와 신도들에게 귀한 가치를 부여하신다. 그는 자기 제자들에게 마치 사람들이 자기 가축 무리를 세심하게 헤아리듯 "그들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으니"(마 10:30), "저들의 머리털 한 오라기도 상치 아니 하리라"고 하셨다(눅 21:18). 혹자는 여기에 나오는 머리털을 신자의 외면적인 언행이라고 해석한다. 신자의 언행은 아름답고 점잖아야 하며 마음의 거룩함에 어울리는 것이어야 한다. 사도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게 합당한 착한 행실을, "머리 땋는 일"과 대비(對比)시키고 있다(딤전 2:9, 10). 막달라 마리아가 자기 머릿털로 그리스도의 발을 씻겼 때 그녀의 머리털은 아름다왔다. (3) 이 여인의 "이"(2절). 목회자들은 교회의 치아이다. 그들은 유아를 돌보는 여인들처럼 그리스도의 어린 애기들을 위해 음식을 씹어 준다. 갈데아 주석은 이것을 백성의 대표로서 희생 제물을 먹고 살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에다 적용시킨다. 우리는 믿음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먹고 살며, 명상에 의하여 말씀을 반추하고 우리가 귀로 들은 것을 소화시키기 위해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과 묵상은 새로운 인간의 치아이다. 이러한 치아는 본문에서 "양떼"에 비유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제자들과 사역자들을 "작은 양떼"라고 부르셨다. 이것은 이에 대한 찬사이다. 이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양과 같이" 고르고 희며 깨끗하게 보존되는 것이다. 또 그 이는 굳세며 잇몸에 잘 박혀 있어서 새끼를 조산하는 양과 같이 약하지 않다. 우리가 "새끼 없다"고 번역하는 단어는 그와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목회자에게 대한 찬사이다. 그들은 상호 사랑과 일치에 있어서 한결같고, 모든 도덕적 오염으로부터 순수하고 깨끗하며,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결실하고 어린 양들을 양육함으로써 열매를 많이 맺는 자들이다. (4) 이 여인의 "입술." 이 여인의 입술은 "홍색 실"에 비유되고 있다(3절). 빨간 입술은 아름다우며 창백한 입술이 심약함과 약함을 나타내듯이 빨간 입술은 건강을 상징한다. 이 여인의 "입술"은 "주홍색"이었으나 그 얇다란 입술은 "홍색실과 같았다." 그 다음 말이 이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네 입(혹은 말)은 아름다우니" 언제나 은혜로우며 "유익"하고 "교훈에 유용"하다. 이것은 크리스챤의 아름다움에 크게 이바지한다. 우리가 "우리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입"으로 그를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은 "홍색실"과 같다. 우리의 모든 착한 행실과 선한 말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져서" "홍색실"처럼 염색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후에라야 그들은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 갈대아 주석은 이것을 대제사장 및 속죄일에 백성을 위해 드리는 대제사장의 기도에다 비하고 있다. (5) 이 여인의 "관자놀이" 혹은 "뺨." 이 여인의 빰은 본문에서 "한 쪽의 석류"에 비유되고 있는데 이 석류란 과일을 두 쪽으로 쪼개보면 그 안에는 핏줄 같은 것과 작은 알맹이가 많이 들어있다. 그것은 흡사 얼굴의 홍조와 같다. 우리 얼굴을 하나님 앞에 쳐들고 낯을 붉히며 우리 죄를 기억하고 낯을 붉히고, 우리에게 입히신 명예를 받기에는 너무나 우리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임을 자각하여 낯을 붉히는 겸손과 정숙은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우리를 매우 아름답게 하는 점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부끄러워 낯을 붉히는 것은 "그녀의 너울 속"에서 이다. 이것은 [더람(Durham)선생이 말하듯이] 이 여인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부끄러워하며, 하나님과 자기 양심 이외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점 때문에 낯을 붉힌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이 여인은 자신의 겸손을 광고하려 들지 않고 그것을 겸손히 숨기려한다는 것을 암시 하기도 한다. 그럼데도 불구하고 겸손과 수줍음의 모든 증표는(겸손과 수줍음) 사뿐 걸음으로 나타나며, 그러한 그것들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6) 이 여인의 "목." 이 여인의 목은 "다윗의 망대"에 비유되고 있다(4절). 이것은 일반적으로 믿음의 은총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은 목을 통하여 머리와 연결되듯이 우리는 믿음이란 은총에 의하여 그리스도께 연합된다. 이것은 "다윗의 망대 같이" 우리에게 전쟁무기를 공급해 주며, 특히 군병들이 그 망대로부터 공급받았던 것처럼 온갖 방패를 제공해 준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의 "방패"인 까닭이다(엡 6:16). 믿음을 소유하는 자들은 "방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방패로써 하듯 은혜로써" 그들을 감싸시는 때문이다. 이 "목이 망대처럼" 똑 바르며 당당하고 강할 때, 크리스챤은 자기 길을 진행하며 용기와 도량을 가지고 활약하고, 믿음이 약해질 때처럼 고개를 떨구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용사들의 방패가" "다윗의 망대"에 달려 있다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이것을 이 방패가 다윗 휘하의 용맹한 인사들의 기념물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의 방패가 보조된 것은 그 방패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영웅적인 행위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성도들의 전 역사를 살펴 봄으로써 우리는 큰 고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성도들은 믿음에 의해서 무척이나 위대한 일들을 이룩하였고 획득하여 왔다. 우리는 머리를 쳐들어 우리의 선배 성도들이 성취한 위대한 행적을 바라보고 또 그로써 크나큰 용기를 얻을 수 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우리는 달려 있는 "용사의 방패"와 신도들의 공적, 그리고 승리의 전리품을 볼 수 있다. (7) 이 여인의 "유방." 이 여인의 젖가슴은 "쌍태 노루 새끼 같다"(5절). 교회의 젖가슴은 장식용인 동시에(겔 16:7) 유용한 것이기도 하다. 그 젖가슴은 열왕의 유방을 빨겠다고 한 그대로(사 60:16) "그녀의 위로의 젖가슴"이다(사 6:11). 혹자는 이것을 신 구약 성서 두 가지에 비하는가 하면 또 딴 이들은 은혜의 언약을 표시하는 두 가지 성찬에다 빗대기도 한다. 또 이 구절이 목회자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적인 양육자가 된다. 그들은 "말씀의 신령한 젖"을 나눠 주어 "이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자라나게" 하며 이를 행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꼴을 먹여 주시는 "백합화 가운데서"(2:16) 그들 스스로도 "꼴을 먹는다." 그리하여 교회의 젖 먹는 애기들에게 풍만한 젖이 되는 것이다. 또 신도들의 젖가슴은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사랑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인자한 남편이 자기 아내의 애정을 기뻐하듯 신도들의 사랑을 즐거워하신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이 그리스도께 "사랑스러운 암 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 노루 같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그 가슴이 항상 그를 만족시켜 주는 까닭이다"(잠 5:19). 이것은 또한 크리스챤이 타인들에게 교훈을 주며 은혜를 전달시켜 준다는 사실도 내포되며 이런 행위는 기독교인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Ⅱ. "몰약의 산"으로 몰려가 거기서 자기 거처를 잡겠다고 하는 신랑의 결심이 나타나 있다(6절). 이 "몰약산"은 모리야 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모리야 산 위에는 성전이 지어져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매일 분향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교회의 아름다움을 매우 기뻐하시어 교회를 자기의 영원한 안식처로 택하셨다. 그는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물러갈 때까지" 거기에 거하실 것이다. 교회의 대표가 되는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고별 약속은 이 말씀과 부합된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라도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노라." 하나님의 거룩한 의식이 올바르게 베풀어지는 곳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실 것이며 우리는 그 교회의 문에서 그를 만나뵙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신부의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여인이 이러한 말을 하게 된 동기를 두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자기에게 던져진 찬사를 겸손하게도 부끄러워하여 칭찬의 말이 들리는 곳까지 빠져 나가려고 이런 발언을 했거나, 아니면 온갖 어려움 속에 있었기 때문에 성산(聖山)으로 항진(恒進)하기를 염원하였을지도 모른다. 즉 그 곳에 이르면 자신의 모든 곤경에 대한 적절한 구조와 충분한 구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서 그 곳에 닻을 내리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정해진 시각에 "날이 새고 그림자가 물러 갈" 날만을 바라리라고 다짐했을 것이다. 성산은(어떤 이들이 관찰하는 대로) 본문에서 맛이 쓴 "몰약의 산"과 달콤한 맛의 "유향의 작은 산"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이렇게 대조되는 두 가지 표현은 우리가 슬퍼해야 하는 경우와 기뻐해야 할 경우를 다 가지기 때문이다. 회개는 쓰고도 달콤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는 몰약은 없고 모두가 유향뿐일 것이다. 기도는 향에 비유되며 그리스도께서는 기도하는 자기 백성을 만나셔서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Ⅲ. 그는 자기 신부의 아름다움에 대한 칭찬을 반복하고 있다(7절).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쁘구나." 그는 1절에서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한층 더 나아가 세부적으로 검토하면서 그는 창조시에 한 말씀처럼 "모든 것이 매우 선하다"란 선언을 한다. "내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쁘다. 너는 온몸이 다 아름답고. 네게는 그릇된 것이 없으며, 너는 네 안에 모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너는 모든 면에서 전체가 다 성별되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고후 5:17). 새 얼굴과 새 이름이 생기게 될 뿐만 아니라 새 인간, 새 본성이 존재하게 된다. 네가 새로워지는 한 네게는 아무 흠이 없다." 영적 제사는 흠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하나님의 자녀라는 점(點)이 박혀 있는 것 외에는 "아무 흠(점)이 없으며" 표범의 반점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자기에게 나아오게 하실 것이며, 그렇게 될 때 교회는 전혀 "흠이 없고 주름도 없게" 될 것이다(엡 5:27). ----------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찬미와 사랑(아 4:8-14) 이 말씀도 여전히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그는 교회에게 대한 자기의 큰 존중심과 애정를 나타내고 있다. 교회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에 대한 그의 견해가 나오는가 하면 교회의 담화와 모임에 대한 그의 원망(願望)이나 기쁨도 나온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며 교회가 비록 약점투성이일 때도 마치 흠도 없고 잘못도 없는 것처럼 그 교회를 기꺼워하신다. 이제 다음 사실을 살펴 보기로 하자. Ⅰ. 그가 이 여인을 부르는 데 사용하는 사랑스런 명칭과 칭호. 이들 칭호들은 그녀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나타내고 그녀에게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며, 그녀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하게 하고 또 그 사랑을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는 본문에서 두 번씩이나 그녀를 "나의 신부"라고 부르며(8, 11절)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고 부르는 것은 세 번이나 된다(9, 10, 12). "그의 혼인일"에 대한 언급은 3장 11절에 나오는데 그런 언급이 있은 뒤에야 이 여인은 그의 "신부"라고 불리우며 그 이전에는 그런 칭호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그리스도와 모든 참 신자 간에는 결혼의 언약이 맺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기 교회를 자기의 "신부"라고 부르시며 그가 그렇게 부르심으로써 교회는 그의 신부가 된다. "나는 너를 나의 영원한 아내로 삼았으니,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듯 네 하나님도 너를 기뻐하리라." 그는 이런 부부의 관계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시지 않고 인정하신다. 마치 친절하고 자상한 남편처럼 그는 그녀에게 자애롭게 말하시며 교회를 자기 "신부"라고 부르신다. 따라서 교회도 그리스도께 신실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인간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단 한가지 관계만으로는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하기가 충분치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외에도 이 모든 것은 영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는 인간 사회에서는 양립하지 못할 두 가지 관계, 즉 "나의 누이, 나의 신부"로 이 여인을 인정하신다. 아브라함이 사라에 대해 "그 여인은 내 누이라"고 한 말은 사라를 자기 아내가 아니라고 부인한 말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는 마태복음 12장 50절에서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신 것처럼" 교회가 "누이"이며 "신부"이다. 그가 그 여인을 "누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자신의 성육하심으로 친히 우리의 본성을 입으셨다는 사실과 우리로 하여금 성별을 받음으로써 그의 본성의 분담자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그는 그 자신을 "육신의 몸"으로 옷 입히시고(히 2:14), 신도들을 자기 "영"으로 옷입히신다(고전 6:17). 따라서 신도들은 그의 "누이"가 된다. 그들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고후 6:18) 그리스도의 "자매"가 된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분에게서 낳았다(히 2:11).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자기 누이로 인정하시고 사랑하신다. Ⅱ. 충실한 신부로서 자기와 함께 가자고 하는 그의 은혜로운 부르심. 신실한 신부라면 자기 가족과 자기 아버지 집을 잊어야 하며 그에게 집착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upi tu caius, ibi ergo Caia─즉 "네가 가이오인 한 나는 가이야가 되겠노라."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8절). 1. 이것은 권고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어나서 함께 가자"(2:10, 11)고 하신 말씀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받아들인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나 그에게 성스런 복종을 하고 그를 따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에게 연합되었으므로 함께 걸어가야 한다. "나의 신부야! 나와 함께 가자"고 하시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일 들려 주시는 그의 명령이다.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나와 같이 가자. 나와 함께 앞으로, 하늘쪽으로 나아가자. 나와 함께 전진하자. 나와 함께 위로 올라가자. 레바논에서부터, 아마나 꼭대기로부터, 사자굴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이 산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1) 외견상의 즐거운 장소로서. 레바논은 아름다운 산이라고 불리운다(신 3:25). 우리는 성서에서 "레바논의 영광"(사 35:2)과 레바논의 좋은 향기(호 14:6)에 대해 읽으며, "헤르몬"의 즐거운 "이슬"(시 133:3)과 "헤르몬의 기쁨"(시 89:12)에 대해서도 읽는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 나오는 다른 산들도 즐거운 곳일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기 신부를 오라고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소리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의 모든 산물과 그 모든 쾌락으로부터 나오라고 하는 부르심이며 모든 감각적 즐거움에 무관심하라는 소명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가고자 하는 자들은 누구나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현존하는 모든 사물에 대한 애착심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그들이 "아마나 꼭대기"와 "스닐 꼭대기"에, 즉 이 세상의 최고 지점에 자리잡고 있거나 피조물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만족을 즐기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 모든 것에서 "떠나" 지상의 최고봉보다 더 높은 곳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에 그들은 "하늘에서 그들의 교제"를 가질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산 곧 "몰약의 산"으로 가기 위해(6절) 그 산들로부터 내려오라. 우리가 비록 이들 높은 곳에 거주하고 있는 동안에라도 우리는 이 산에서 내다보지 않으면 안 되며 그 산너머 위를 쳐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우리 눈을 들어 산을 쳐다 보리이까?" 아닙니다. 우리의 도움은 여호와께로부터 오나이다(시 121:1, 2). 우리는 이들 산너머의 (이 산들은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 곧 "영원한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비스가산처럼 요단 저 편에 있는 "세일과 헤르몬산 꼭대기로부터"도 가나안 복지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 몸담고 있지만 보다나은 땅을 바라보고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실제로는 위험스러운 장소로서. 이 산들은 참으로 즐거운 곳이긴 하지만 그 안에는 "사자들의 굴"이 있다. 이 산들은 비록 "영화롭고 훌륭하게" 보이지만(시 76:4) 실은 "표범의 산"이요 약탈의 산이다. 저 "우는 사자" 같은 사탄은 "이 세상의 지배자"이다. 그는 이 세상 일 속에 잠복해 있으면서 삼킬 때를 기다린다. 이들 산 꼭대기에는 그 곳을 주거지로 삼고 있는 자들에 대한 위험스런 유혹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로부터 "나와서 나와 함께 가자." 우리 마음을 이 세상에 두지 말자. 그렇게 하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아무 해도 끼칠 수 없을 것이다. 우상 숭배자들의 신전과 악한 자들의 모임(어떤 분들은 그렇게 이해한다)으로부터 "나와서 나와 함께 가자." "그들로부터 나오너라. 그리하여 너희는 별개로 구별되어라." 네 욕망의 지배로부터 "뛰쳐 나오너라," 정욕은 "사자"나 "표범" 처럼 우리에게 사납게 덮치어 우리를 흉포하게 만들려 한다. 2. 이것은 하나의 약속으로 간주할 수 있다.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사자굴로부터 나와 같이 가게 될 것이다. 즉 나는 네가 나와 함께 가도록 하겠다." (1) "모든 지점으로부터, 곧 북쪽의 레바논과 서쪽의 아마나와 동쪽의 헤르몬과 남쪽의 세일로부터, 모든 지역으로부터 많은 자들이 교회의 산 식구로서 나에게로 돌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앉게 될 것이다"(마 8:11; 사 49:11, 12 참조). 산 "꼭대기로부터" 온 일부 사람들, 곧 이 세상의 위대한 자들은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것이다. (2) 교회는 적당한 시기가 되면 박해자들에게서 해방될 것이다. 비록 현재는 "사자들 사이에서 기거"하고 있지만(시 57:4)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자 소굴에서 구출하여 데려 가실 것이다. Ⅲ. 그리스도가 자기 교회와 그의 모든 신자들에게서 얻는 큰 즐거움. 1.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기뻐하는 것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크게 사모하는"(시 45:11) 남편이 "자기를 위해 단장하고 있는"(계 21:2) 보기 좋은 신부를 기뻐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랑의 표현도 여기에 나오는 말씀보다 더 정열적일 수는 없다. 이러한 표현으로 그리스도는 자기 교회에 대한 그 애정을 나타내고 계시다. 그러나 그의 사랑에 대한 저 큰 증거 곧 그가 자기 앞에 영광스런 교회를 세우시려고 그 교회를 위해 죽으신 것은 이 모든 표현으로써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것이다. 그토록 값비싸게 지불하고 사신 신부이기에 교회는 지극한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교회를 위해 지불하신 값만큼 교회에게는 높은 가치가 부여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양자가 다 우리를 놀라게 함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지식을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높고 깊으시며 길고 넓으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사랑은 바로 그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고" 우리에게 자기를 내어 주신 사랑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 보자. (1) 그는 자기 신부에게 얼마나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가!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이 빼앗는다는 단어는 오직 여기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너는 내 마음을 황홀하게 만들었구나," 혹은 "너는 내 마음을 무력하게 만들었구나"를 뜻한다. 자기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사랑은 표현할 길이 없다. 이 표현 불가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 진 것이다. 인간은 사랑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잊고 한 가지에 마음을 빼앗기는 약한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 속에 있는 약한 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강한 사랑이 설명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이 있기 전에, "그의 기쁨이 인자들에게 있을" 때에(잠 8:30, 31) 택함받은 남은 무리에게 대해 품으셨던 사랑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처음 사랑은 그로 하여금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시도록 만들었고, 그토록 큰 비용을 지출하시면서 그들을 "찾으시며 구원하시게" 하였다. 그뿐 아니라 이 표현에는 그가 저들을 자기에게로 데려오셨을 때에 그들에게 대해 품었던 만족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자기 교회에 있으며, 그것은 항상 그렇게 나타났었다. 그의 보화도 교회에 있다. 교회는 그의 "특유한 보물"이다(출 19:5). 그러므로 그의 마음도 거기에 있다. 레놀드 감독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비길 사랑이 어디에 있을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영광 중에 있는 자신을 비우시고 모든 수치와 고통을 당하셨으니 그의 사랑은 그로 하여금 자기 자신까지도 마음에 두지 않도록 만드셨던 것이다. 우리를 향한 사랑의 상처는 그가 내세로부터 자신 안에 품고 계셨던 것이기에, 그는 십자가의 모든 상처와 치욕을 가볍게 보실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그를 사랑하도록 하자. (2) 이처럼 그의 사랑을 기쁨으로 승화시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1) 이 여인이 그에게 대해 품는 존경. "너는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으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그 눈은 "비둘기 눈"이요 맑고 정숙한 눈이다(이것은 1절에서 던진 찬사이다). 그녀는 이런 눈으로 한 번 쳐다 보았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놀라우리만치 즐거워하시는 자들은 자기들의 구주로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들이며, 신앙의 눈을 통하여 저희 애정을 어떤 적수가 아닌 그에게로 던져 보내는 자들이고 "그 눈을 항상 그에게로 향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는 자기께로 향하는 한 영혼의 첫 눈길을 단 번에 알아채시고 자기 은총으로써 그를 맞아 주신다. 2) 이 여인이 그에게서 받은 장식물. 즉 그것은 이 여인이 그에게 표하는 복종심이다. 그것은 "그 목의 구슬 한 꿰미"요, 사슬이 고리로 연결되듯 연결된 교회의 영혼을 부유하게 하는 은혜이다. 교회의 언어 행실은 그 자신뿐 아니라 교회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도(금 사슬이 상류 인사들에게 장식물이 되듯) 아름답게 단장시켜 주는 데 이것은 여러 은혜가 역사하여 이루는 일련의 구슬 꿰미이다. 동시에 그의 법이 명령하는 힘과 그의 사랑이 견제하는 힘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도 교회의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우리 목의 줄"로 이 세상에 매어 있었다. 이 줄을 풀어 버리고(사 52:2) "우리 죄의 멍에"를 벗어버려야만 우리는 "금사슬" 같은 "사랑의 밧줄"로써 예수 그리스도께 매이게 된다. 우리 목은 즐겁고도 편안한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권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의 설명대로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목의 금사슬"이 되는 참 지혜이기 때문이다(잠 1:9). 3) 이 여인이 그에 대해 품는 애정.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모든 열매와 산물, 마음 속에서의 활동과 삶 속에서 이루어 내는 일까지도 모두 아름답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은 신자에게 어찌 그리 어울리며 그리스도는 그 일로 얼마나 즐거움을 느끼시는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마음에 들도록 하는 데에는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낫고" 제주에서 여호와께 부어드린 모든 포도주보다도 훨씬 더 낫다. 따라서 포도에서 내는 열매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한다"(삿 9:13). 이 여인은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1:2)라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였는데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그 여인의 사랑에 대해 같은 말씀을 하신다. 그리스도를 칭찬함으로써 해가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는 친절함에 있어서 자기 친구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4) 이 여인이 뿌린 기름과 그로 인해 풍기는 향기. 즉 성령의 은사들과 은혜로 인한 그녀의 착한 행실은 "아름다운 냄새가 나는 향기요," "기뻐 받으실 만한 재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빌 4:18).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즉 시바 여왕이 약대에 싣고 와서 솔로몬에게 선사한 각종 향품(왕상 10:2)이나 황금 제단 위에서 매일 분향하기 위한 그 거룩한 향의 배합에 쓰이는 모든 향료보다 그녀의 기름의 향기는 더 낫다. 하나님께 대한 복종, 사랑은 제물이나 향료보다 그리스도를 한층 즐겁게 하는 것이 된다. "이 여인의 의복의 향기"는 곧 교회가 사람들 앞에서 신앙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하여 행하는 가시적(可視的)고백이다. 이 일로 교회는 세상에 자기 존재를 드러내며,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께 있어서 "레바논의 향기"같이 매우 즐거운 일이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신부에게 그 자신의 의로움과 "성도들의 의로움"인 "흰 옷"을 입히시며(계 3:18; 19:8)여기에다 거룩한 기쁨과 위로로 향수를 뿌리시고 그 옷을 매우 기뻐하신다. 5)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기도에 있어서나 인간들과의 대화에 있어서 이 여인이 하는 말(11절).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방울이 떨어지는구나." 네 입술에서는 달디 단 것이 떨어지며 그것도 자유롭고 풍부하게 떨어지는 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것이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다면"(시 19:10)우리가 기도와 찬미로 그에게 드리는 말씀도 역시 그를 즐거우시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 네 목소리가 달구나." 만일 우리가 "마음" 속에 있는 "좋은 곳간에서 좋은 물건들을 꺼낸다"면, 만약 우리의 "언사가 언제나 은혜롭고" 우리의 "입술이 지식을 올바로 사용"하여 "지식을 발산"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꿀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을 것이다. "네 혀 밑에는 꿀과 젖(가나안의 두 가지 주산물임)이 있다." 즉 네 마음 속에는 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용을 위해서도 달콤한 음식을 마련해 두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달고도 유익한 자양물이 있으니 어린 애기들을 위한 우유와 성인들을 위한 꿀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가득찬 이들을 매우 기뻐하신다. 2. 즐거운 동산에서와 같이 기뻐하신다. 매우 큰 즐거움이 화원에서 얻는 기쁨에 비유되는 것은 당연하다. 순결하던 때의 아담이 누리던 행복은 그를 동산 즉 즐거움의 낙원(樂園)에 두신 것으로써 표현되고 있다. 이 비유는 12절부터 14절까지 계속된다. 교회가 "동산"에 적절히 비유된다. 이 동산은 다른 동산과 같이 그 안에 "샘"을 가지고 있다. 솔로몬이 친히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었을 때 그는 "못"을 팠었다(전 5, 6). 이 수도 사업으로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기분 전환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을 뿐만 아니라 "동산에 물주는" 데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에덴은 물이 잘 공급되던 곳이었다(창 2:10; 13:10). 이 동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이 동산의 독특성. 이 동산은 "잠근 동산"이요 일반 땅으로부터 격리된 낙원이다. 그 곳은 하나님께만 전용되는 곳이다. 그는 "그것을 자신을 위해 따로 떼놓으셨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몫이요 그가 유업으로 받으시는 분깃이다. 그 곳은 비밀리에 잠겨 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숨기운 자들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들을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자기 동산에서 거니신다. 그 동산은 안전을 위해 잠겨 있다. 보호의 울타리가 그 주위를 두르고 있어서 모든 흑암의 권세가 발견할 수도 없고 틈을 뚫을 수도 없다. 하나님의 포도원에는 "망대가 세워져" 있다(사 5:2). 그 동산 주위에는 담이 있으니 그것은 곧 불의 담이다. 그 곳에는 우물과 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다. 그 우물은 "밖으로" 넘쳐서 흐르면서도(잠 5:16) 그 자체는 어떤 해로운 손길에 의하여 혼탁해지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물쇠로 주의 깊게 채워져 있다. 신도의 영혼은 "잠근 동산"과 같다. 그들 안에 있는 은혜는 "마음에 숨기운 속 사람"에 있는 "덮은 우물"과 같다. 거기서 그리스도가 주시는 물은 "생명수의 샘물"이다(요 4:14; 7:38). 구약 교회는 의식 율법이란 간막이 벽으로 "잠긴 동산"이었다. 그 때의 성서는 "덮은 우물"이었고 "봉한 샘"이었다. 그것은 한 민족, 한 국가에 한정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분단의 벽이 허물어졌다.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헬라인도 없고 유대인도 없게 되었다." (2) 이 동산의 산물. 이 동산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모든 나무를 자라나게 하셨던" 에덴 동산(창 2:9)과 같다. "네 식물" 혹은 농원은 "여러 아름다운 과일과 함께 석류가 열리는 과수원이다(13절)." 그 과원은 "가시와 엉겅퀴만 잔뜩 자라는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 같지 아니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열매들" 곧 "아름다운 열매들과 각종 유향목, 온갖 귀한 향품"이 나온다(14절). 이 과원에는 과일들이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게 산출되어 부족한 것이 없다. 이들은 그 동산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며, 그 위대하신 소유주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거나 그에게 유용하도록 한다. 이 곳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종류 중 최상품이다. 그 동산의 "귀한 향품"은 모든 꽃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보다 그 향기가 더 오래 계속되므로 한층 더 귀중하였다. 솔로몬은 다른 여러 가지 자연 과학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식물학에도 일가견을 이룬 대가였다. 그는 초목 일반에 대해 논하였었는데(왕상 4:33) 아마 여기에 구체적으로 나온 여러 실과의 특수 성질은 언급한 것처럼 보인다. 이로 인해 그것들은 그가 암시하는 목적에 매우 부합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반적으로 관찰하고 만족을 얻어야 할 것은 교회 안의 성도들과 성도들 안의 은혜를 바로 이 "과수원"들과 "향품"에 비유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것들은 심은 것이지 저절로 자라난 것이 아니다. "의로움의 나무"는 "여호와께서 심으신 것"이다(사 61:3). 은혜는 썩지 않는 씨앗에서 움터 나온다. 2) 그것들은 귀중하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온의 귀한 아들들"과 그들의 "귀한 믿음"과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명성의 식물"이다. 3) 그것들은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다 즐거움을 주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그들은 강한 향료처럼 향기를 발산한다. 4) 그것들은 유익하며 매우 쓸모가 있다. 성도들은 이 땅의 축복이며 그들의 은혜는 그들의 재물이다. 그들은 향료를 가지고 장사하는 동방의 상인들처럼 은혜를 팔러 다닌다. 5) 그것들은 영구적이며, 꽃들은 시들어서 아무런 유익이 없을 때에도 그것들은 유익한 목적을 위해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은혜는 익어서 영광에 이르게 되고 영영토록 존속할 것이다. ---------- 그리스도의 찬미에 대한 교회의 응답(아 4:15-16) 이 말씀은 신부의 말인 듯이 보인다. 신랑되신 그리스도는 교회에 대하여 아름답고 열매 많은 동산이라고 칭찬하셨는데 신부인 교회는 이 칭찬에 응답하고 있다. 교회는 과연 동산인가? Ⅰ. 교회는 이 동산에 열매가 많이 맺히게 해 주시는 그리스도께 대해 의존하고 있음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교회는 "동산의 샘"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주목한다(15절). 그는 저들을 심으시고 존재하도록 하신 창건자일 뿐만 아니라 저들의 샘이 되기도 하신다. 그는 저들에게 물을 대주시고 그들은 그분 덕에 존속하며 행복하게 산다. 그들은 그의 꾸준한 급수만 없다면 곧 메마르고 황무한 광야로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므로 이 여인은 자기가 많은 열매를 맺게 된 데 대한 영광을 모두 그에게 드린다. "동산의 샘이여! 모든 선의 근원이요 모든 은혜의 샘이신 그대여! 나를 저버리지 마소서." 신자는 "오! 시온이여!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도다"(시 87:7)고 말하는가? 교회는 그리스도께 찬미를 드리며 이르기를 "나의 모든 근원은 당신께 있나이다"고 한다. 그는 "생수의 근원"(렘 2:13)이요 그 샘으로부터 "레바논의 시냇물"이 흘러나오며 레바논 산 기슭에서 발원하는 요단 강도 흘러나온다. 그는 또한 "전의 문지방 밑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지성소의 물이시다(겔 47:1). 그리스도께 동산된 자들은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샘 근원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그로부터 충만한 것을 받으며 그들의 심령이 "물댄 동산"(렘 31:12) 같음은 그의 덕분이다.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은 이 샘에서 흘러나오는 "강"으로 인하여 "기뻐하게" 된다(시 46:4).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오는 순수한 생명수의 강"이 있다(계 22:1). Ⅱ. 이 여인은 복되신 성령께서 이 동산을 향기롭게 해 주시기를 탄원하고 있다(16절). "북풍아! 일어나라. 너 남풍아! 오라." 1. 이것은 전체 교회를 위한 기도이다. 교회가 번영의 상태를 구가할 수 있도록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이다. 목회자들의 여러 가지 은사는 "향품"이다. 성령이 쏟아질 때 이러한 것들이 분출되며 그럴 때에는 "황무지가 열매 많이 맺는 밭으로 된다"(사 32:15). 이 기도는 "오순절"에(행 2:1) "강한 바람"과 함께 성령이 쏟아져 내린 일로 응답을 얻었다(행 2:1). 그러자 이전에는 모여 있던 사도들이 흘러 나가게 되었고, 이는 하나님께 아름다운 향기가 되었다(고후 2:15). 2. 또한 개개의 신자들을 위한 기도이다. (1) 거룩하게 구별된 영혼은 동산과 같으며 주 여호와의 동산과 같아서 그를 위해 잠겨 있다. (2) 영혼 속에서 역사하는 은혜는 이들 동산 안의 향품과 같아서 그들 안에서 가치있고 유용한 것이 된다. (3) 은혜의 향기가 경건하고 독실한 사랑과 거룩하고도 은혜로운 행동으로 날리어서 그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존귀케 하며 우리 신앙을 단장하고 선한 사람들에게 감사할 만한 일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4) 영혼에게 역사하시는 복되신 성령은 "불고 싶은 대로 불며" 여러 방향으로부터 불어 오는 "북풍이나 남풍"과 같다(요 3:8). 확신의 북풍이 있는가 하면 위로의 남풍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바람처럼 "하나님의 곳간에서" 나와서 "그의 말씀을 성취시킨다." (5) 은혜의 향기가 날리는 것은 성령의 강풍에 달려 있다. 성령께서는 선한 애정을 일깨우며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선한 것을 바라도록 하시고 그것을 행하도록 하신다. 우리를 통하여 그의 지식의 향기를 밝히 나타내도록 하는 분도 바로 그이시다. (6)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영이 그의 소생케 하시는 영향력을 행사해 주시도록 기다려야 하며 그런 일들을 위해 기도드려야 하고 우리의 영혼을 그 밑에 종속시켜야 마땅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영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이에 대해 우리가 찾고 탐구하기를 바라신다. Ⅲ. 이 여인(교회)은 그 동산이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향연으로 그리스도를 초대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의 동산에 들어가서 그의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그가 이 동산이 산출하는 모든 산물의 영예를 소유하게 하며(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이들을 기꺼이 받으시는 데서 내가 위로를 얻게 해 주소서. 왜냐하면 이것은 그러한 것들이 이용될 수 있는 것 중에 최상의 것이되는 까닭입니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이 여인은 그것을 "그의" 동산이라 칭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 시집간 자들은 아무 것도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부르지 아니하며, 단지 자기들이 그에게 바친 것이 그를 위해 사용되어지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의 동산이라고 부르기 알맞은 때는 곧 향기가 날리는 때이며, 그때까지는 그의 동산이라고 칭할 수 없다. 이 동산의 과일은 그의 아름다운 실과이다. 이 과수들을 심고 물주며 풍작하게 하신 이가 바로 그분이신 까닭이다. 이미 그리스도 자신의 소유인 동산에 그를 초대하면서 그의 손에서 우리가 무슨 상을 받으려 하겠는가? 2. 이 여인은 그가 이 동산을 방문하고 거기서 산출된 것을 열납(悅納)해 주시도록 간청하고 있다. 신자는 자기 영혼이 사랑하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와 주시지 않으시고 그 동산에 맺힌 열매의 기쁨을 누리시지도 아니 하신다면 그 동산에서 아무런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만약 그들이 이모저모로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바지하지도 않고 또 그리스도께서도 자기가 그들에게 부여하신 모든 것을 잘 하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실 때는 그들이 이 동산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거의 없는 것이다. === === @@고벨화, 헤나...##신이 주신 선물! ‘헤나’ 식물//‘고대에는 치료제…이젠 모발관리 화려하게 부활...고대부터 ‘피부병 방부제 화장품’ 약재로 애용//덥고 건조한 기후…최고품질 인도북서부 지역//구약성경 아가서 고벨화…밤에 잔뜩 향기발산 ▲ 헤나 잎은 인도의 전통적 자연치유체계인 ‘아유르베다’(ayurveda)에 의해 고대부터 살균과 체온 하강 등의 약효가 있어 피부병의 예방, 지혈, 부스럼(종기), 화상, 타박상, 방부제의 약재로 널리 애용되었고, 혈압을 내리는 치료에도 사용되었다. ▲ 헤나 잎은 인도의 전통적 자연치유체계인 ‘아유르베다’(ayurveda)에 의해 고대부터 살균과 체온 하강 등의 약효가 있어 피부병의 예방, 지혈, 부스럼(종기), 화상, 타박상, 방부제의 약재로 널리 애용되었고, 혈압을 내리는 치료에도 사용되었다. ● 다용도 헤나! ‘신이 주신 자연의 선물’ 부처꽃과의 열대성 관목인 ‘헤나’(Henna)는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 2~5m의 키로 자라는 작은 나무로 1년에 3~4번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번식력이 빠르다. 헤나의 학명은 열대성 관목 식물인 ‘로소니아 이너미스’(Lawsonia Inermis)이다. ‘신이 주신 자연의 선물’이라고 불릴 만큼 그 효능이 뛰어난 ‘헤나 잎’은 타원형이고 연한 녹색이며 매끄럽다. 꽃잎은 4개, 꽃은 흰색 또는 황색이고 향기가 좋다. 열매는 지름이 0.5~0.7cm로서 세모꼴의 작은 씨앗 100여개가 들어 있다. 꽃이 지면 완두콩 크기 정도의 열매를 맺는다. 이 식물의 잎을 따서 말린 다음 가루로 만든 것이 바로 천연 100%의 헤나이다. 헤나 잎은 인도의 전통적 자연치유체계인 ‘아유르베다’(ayurveda)에 의해 고대부터 살균과 체온 하강 등의 약효가 있어 피부병의 예방, 지혈, 부스럼(종기), 화상, 타박상, 방부제의 약재로 널리 애용되었고, 혈압을 내리는 치료에도 사용되었다. 헤나의 본고장은 인도이며 인도말로는 ‘멘디’(Mehndi)라고 부른다. 헤나의 주요 생산지는 최고의 품질로 꼽히는 인도북서부 지역 외에도 북아프리카, 중국 남부의 열대지방, 네팔, 스리랑카, 동남아시아의 파키스탄과 이란이지만 북부 호주의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성장한다. ▲ 부처꽃과의 열대성 관목인 ‘헤나’(Henna)는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 2~5m의 키로 자라는 작은 나무로 1년에 3~4번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번식력이 빠르다. 헤나의 학명은 열대성 관목 식물인 ‘로소니아 이너미스’(Lawsonia Inermis)이다. ● 구약성경 ‘아가서’에서 ‘고벨화’로 언급 헤나는 오래전 구약성경의 ‘아가서’에서 이미 ‘고벨화’로 언급되었다. 히브리명은 ‘코페르’이다. 헤나가 사랑을 받은 까닭은 무엇보다 진동하듯이 멀리 퍼지는 아름다운 향기에 있다. 헤나의 꽃에는 흡사 장미꽃 향기와 비슷한 향기로운 휘발성 정유가 함유돼 있다. 사람들은 이 향기로운 기름을 증류해 종교적 축제에 향료로 사용했다. 그래서 솔로몬은 아가서에서 헤나 꽃향기를 사랑하는 이에 비유했던 것이다. 계절적으로는 6~7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꽃이 피기 시작하는 헤나(고벨화)는 장미향과 프리지어 향을 닮았으며, 은은하게 퍼지므로 2km 떨어진 곳에서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낮보다 밤에 더 많은 향기를 내는 신비스런 식물이다. ‘NIV 성경’은 고벨화를 헤나로 정확하게 명기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My lover is to me a cluster of henna blossoms from the vineyards of En Gedi.)<아가 1장 14절> ‘엔 게디’는 사해 해변에 위치한 지역이다.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Your plants are an orchard of pomegranates with choice fruits, with henna and nard)<아가 4장 13절> 이렇듯 오래전부터 헤나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에티오피아의 시바 여왕 등 왕실과 귀족들이 아름다움과 치료 등의 목적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솔로몬 왕의 턱수염을 헤나로 염색했다는 기록도 있다. ▲ 헤나의 본고장은 인도이며 인도말로는 ‘멘디’(Mehndi)라고 부른다. 헤나의 주요 생산지는 최고의 품질로 꼽히는 인도북서부 지역 외에도 북아프리카, 중국 남부의 열대지방, 네팔, 스리랑카, 동남아시아의 파키스탄과 이란이지만 북부 호주의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성장한다. 이집트에서 헤나 잎사귀를 가루 내어 손톱과 발톱에 바른 것에서 ‘매니큐어’가, 클레오파트라가 헤나 잎에서 추출한 붉은 물감을 입술에 칠한 것에서 ‘립스틱’의 유래가 매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헤나 가루에 물을 부어 묽은 풀처럼 만들어서 화장품으로 이용했다. 손톱이나 발톱, 머리카락 염색, 문신 재료로도 사용했다. 의류를 염색할 때 안료로도 쓰인다. 심지어 고고학자들은 미라에서도 헤나가 그러진 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 등의 중동 아시아지역으로 전파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을 띄게 되었고, 귀족문화에서 일반인들까지 결혼식 때 신부를 치장시키는 용도 등으로 변화해 왔다. ● ‘힌두교와 이슬람’ 의례! 핵심 위치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헤나에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디자인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름다운 문양, 신기한 화초, 혹은 영험한 동물들. 곱고 정교하게 그려진 헤나는 그대로 신체 예술이 된다. 손등에는 방어와 보호의 상징을 새기었다. 헤나의 섬세하며 기하학적인 패턴을 다산과 에너지를 촉진하고 악마를 물리치는 상징으로 간주했다. 몸에 그려진 문양과 상징이 피부에 축복을 내려 부와 행복을 가져다줄 것으로 여긴 것이다. 헤나 꽃은 종교 의식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인도나 네팔에서 헤나 꽃은 사원에 바쳐지는 향기로운 제물의 하나다. 힌두교 신자나 이슬람교 신자들은 결혼 전날 헤나를 그려서 순결과 사랑을 표현하곤 한다. 이들 문화권에서 치러지는 대부분의 결혼 파티는 신부의 손과 발에 헤나 디자인을 그리는 행사다. 신부는 여러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서 헤나 문신을 새기고 있고 가족과 친구들은 파티를 즐긴다. 또한 목욕물에 헤나 꽃다발을 담그고 그 향기로 몸을 단장하여 남편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결혼 풍습도 있었다. 중동 일부지방에서는 헤나로 만든 꽃다발을 친구가 주는 최상의 결혼선물로 여긴다고 한다. 이들에게 헤나는 문화이자 생활양식이며 또한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하였다. ▲ 힌두교 신자나 이슬람교 신자들은 결혼 전날 헤나를 그려서 순결과 사랑을 표현하곤 한다. 이들 문화권에서 치러지는 대부분의 결혼 파티는 신부의 손과 발에 헤나 디자인을 그리는 행사다. 이렇듯, 결혼식이나 잔칫날 장식으로 몸에 그림을 그려 넣거나 모발 염색용으로 이용되던 것이 현대에 들어서 대중적이며 일시적이고 고통이 없는 신체 예술로 자리 잡게 됐다. 화학 염색제에 대한 부작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헤나 잎의 붉은 오렌지 염료 분자는 안전하게 단백질 분자와 쉽게 결합하여 머리와 피부를 물들인다. 이제는 염색과 함께 ‘보디 페인팅, 네일 케어’ 등에 널리 쓰이는 편이다. 이 식물의 헤나를 종종 '헤나문신'이라 불리지만 문신과는 엄연히 다르다. 문신은 바늘을 이용해 염료를 피부 아래층으로 집어넣어 만드는 영구적인 장식이지만, 헤나는 피부의 겉을 물들이는 것으로 혈관이 있는 피부 층까지 가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피부를 뚫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며, 아프지도 않다. 현대에는 천연문신등 대중적 신체예술로 각광//건강 부작용이 전혀없는 천연염색제로 재조명//손상된 모발 살리고 ‘윤기있게 굵고 튼튼하게’ ▲ 결혼식이나 잔칫날 장식으로 몸에 그림을 그려 넣거나 모발 염색용으로 이용되던 것이 현대에 들어서 대중적이며 일시적이고 고통이 없는 신체 예술로 자리 잡게 됐다. ● 이제는 천연염색제로 널리 각광 헤나는 원래 염색의 목적이 아닌 각종 피부질환의 약재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헤나가 헤어트리트먼트로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로소니아(Lawsonia)’ 라는 주성분이 모발의 케라틴(keratin)이라는 단백질과 성분에 잘 융합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헤나 잎의 로소니아는 두피와 모낭의 표면을 강화시켜 주어줘 두피관리와 비듬해소에 도움을 준다. 머리카락 표면을 감싸듯 코팅되므로 염색·광택 및 모발의 영양공급을 치유해주고, 항균·살균작용으로 두피의 노폐물을 배출시켜 두피질환을 개선하는 모발 케어작용에 매우 탁월하다. ▲ 헤나의 ‘로소니아(Lawsonia)’라는 주성분은 모발의 케라틴(keratin)이라는 단백질과 성분에 잘 융합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수분과 단백질이 감소된 모발에 헤나가 부착되면서 유·수분 밸런스를 공급하고, 두피와 모공을 깨끗이 하여 가늘고 힘없는 모발을 윤기 있고 굵게, 건강한 모발로 가꾸어 준다. 또한 멜라닌 색소를 빼지 않고도 모발에 코팅을 하듯 색을 입히는 것이어서 모발이나 두피에 손상이 가지 않는 장점이 있다. 생기 없는 모발, 푸석하고 건조한 모발 표면에 천연 코팅 막을 형성하여 자주 반복해서 사용할수록 모발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헤나 염색은 손상된 모발에 헤나의 케라틴 성분이 더해져 모발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사실 모발이 적당히 손상되어 있어야 파마가 잘 받는 경향이 있는데, 헤나로 염색을 하면 모발이 두꺼워져서 파마가 잘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헤나는 밝은 컬러보다는 어두운 컬러를 표현하는 데 강해 흰머리나 새치 커버용으로도 좋지만 옐로 계통의 밝은 색은 표현이 잘 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헤나는 화학 염모제처럼 가려움증을 유발하지 않으며, 항균·살균작용으로 두피의 노폐물을 밖으로 배출시켜 두피질환(두피 피지분비 조절, 가려움증, 비듬)을 개선하며, 피부에 닿았을 때 서늘하게 하는 효과(Cooling effect)가 있으므로 현대를 살아가는 상열하한증이 있는 고객의 두피 열을 내리는데 효과가 있다. 헤나는 인체에 무해한 천연재료로서 염색시 두피의 화끈거림이나 자극이 없다. 머리카락에 건강한 몸과 힘을 남기며, 얇고 쉽게 손상받는 머리카락에 훌륭한 대안제품이 된다. ▽ 잦은 파머와 염색으로 머리 결이 상한 사람 ▽ 탈모해소·증모 촉진을 원하는 사람 ▽ 머릿결에 탄력이 없고 윤기가 없는 사람 ▽ 머릿결이 힘이 없고, 머리숱이 적고 빠지는 사람 ▽ 비듬·가려움 등 두피 트러블이 있는 사람 ▽ 코팅·트리트먼트 효과로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원하는 사람 ▽ 새치머리나 흰머리가 신경이 쓰이는 사람 ▽ 아토피 · 민감성 두피로서 화학염색에 부작용이 많은 사람 등에 매우 탁월한 효과가 담보된다. ▲ 헤나는 생기 없는 모발, 푸석하고 건조한 모발 표면에 천연 코팅 막을 형성하여 자주 반복해서 사용할수록 모발을 건강하게 만든다. ● 화학 염색약의 부작용을 건너뛰다. 헤어숍에서 시술 받는 일반적인 염색은 화학 염모제를 사용한다. 화학 염모제는 모발 내의 멜라닌 색소를 파괴해 모발을 탈색시킨 후 화학 성분에 의해 염색되는 산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통해 모발이 손상되어 끝이 갈라지거나 푸석푸석해지기 쉽다. 또한 두피에서 체내로 침투될 경우 간장 장애, 신장 장애 등을 일으키며, 눈에 들어갈 경우 자칫 실명까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헤나 염색제가 주목을 받는 것은 ‘NO 암모니아, NO 과산화수소수’라는 점이다. 머리카락을 손상시키고 과다 사용시 다음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두 화학 물질인, 과산화수소와 암모니아를 함유한 시중 염색약의 손상 효과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염색제에 포함된 이들 화학 성분 대신 헤나의 주 성분인 로소니아가 모발 속 케라틴 단백질과 결합해 탈색을 하지 않고도 염색이 용이하다. 그러나 헤나를 성분중 하나로 가지고 있는 제품들이 많이 있지만, 이것들이 전부 천연 제품은 아니다. 제품이 순수한 헤나 분말을 사용하는지, 혹은 단순히 헤나를 함유하고만 있는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둘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헤나는 암모니아 냄새 대신 풀 향기가 난다. 마른 식물 혹은 잔디와 같은 냄새가 난다. 보라색 혹은 검은색의 헤나, 그리고 화학적인 냄새가 나는 헤나는 구매하지 않도록 하자. ● 효과 극대화하는 ‘헤나의 트리트먼트’ 헤나는 밤에 준비해놓고 다음날 아침에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헤나는 물들 때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처음 사용하면 모발이 뻣뻣하거나, 엉킨다고 느낄 수 있다. 염색 색상에도 제약이 있다.? 헤나 트리트먼트는 아래 사항을 염두에 두면 매우 효과적이다. 머리카락에 염색약이 골고루 묻어나도록 균등하게 발라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머리카락의 끝과 머리선 주변의 두피 부분에 특히 더 잘 발라준다. 그리고 조금 더 많이 발라주는 편이 더 좋다. 헤나 염색약을 발라두고 있는 시간이 길수록 더 효과가 극대화된다. 더 큰 효과를 원한다면, 더 오랜 시간 동안 염색약을 발라둔 채로 있어보자. 다 바르고 나면, 머리를 비닐로 감싸고 수건으로 덮는다. 린스를 사용하지 말고, 수건으로 말린다. 덧붙이면, 드라이 기기를 쓰지 않고 자연건조 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후 24-48시간 동안 머리를 감지 말고, 머리에 물에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헤나는 처음 체험하고 3일 이내에 꼭! 다시 헤나 염색을 해야 한다. 5회를 기본으로 헤나 염색을 해야 모발도 굵고 튼튼해지며, 모발의 색감도 풍미가 더해져 깊어진다. 지난 6개월 동안 화학 염색을 한 경험이 있다면 헤나 염색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마찬가지로 헤나 염색을 했다면 염색한 시점으로부터 6개월간은 화학 염색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나도화, 나드(나도, 나르드, 나르도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 발에 부은 비싼 향유 - 학명 : Nardostachys jatamansii (Wall.) DC. (마타릿과 : Valerianaceae) 영명 : Spikenard, Indian Nard 히브리명 : נרד(네르드) 헬라명 : ναρδος(나르도스) 원산지 : 히말라야, 부탄, 네팔, 티베트, 인도 동부 개화기 : 6~7월 성경 : 아 1:12, 4:13~14, 막 14:3~9, 눅 7:37~50, 요 12:3~8 ===주요 성경구절 1)〔아가 1장 12절〕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נרד 네르드) 향기를 토하였구나 2)〔아가 4장 13~14절〕네게서 나는 것은 ... 나도초와 나도(עם-נרדם נרד 임 네라딤 네르드)와 ... 모든 귀한 향품이요 3)〔마가복음 14장 3절〕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나르도스 ναρδος)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누가복음 7장 37~46절〕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5)〔요한복음 12장 3절〕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나르도스 ναρδος)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식물 해설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는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와 예수의 발(또는 머리)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씻었다. 이 향유는 매우 비싼 것이며, 예수의 장례를 준비하는 의미가 있다. 예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던 막달라 마리아의 행동과도 일맥상통한다. 나드(Nard)는 영어식 표현이며, 히브리어로는 네르드(Nerd)로서 산스크리트어 Nalada(향기를 뿜다)라는 말이 변형된 것이다. 아로마테라피 중에서 강력한 신경진정제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신경안정제로 이용되었으며, 따뜻한 목욕물에 몇 방울 떨어뜨리면 긴장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 나드는 해발 3,000~4,000m의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라는 마타릿과의 다년생 초본으로서 야생 뿌리를 건류(乾溜)하여 향유를 얻는다. 나드 향유가 비싼 이유는 원천적으로 야생 나드초가 희귀한 데다 딱딱한 뿌리 한 아름을 쪄야 한 두 방울 얻을 수 있는 분량(1~2%), 고산지대라는 여건, 흙을 씻고 쪄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 팔레스타인까지의 대상(隊商) 운반비와 국경세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출토된 옥합의 용량은 보통 100g 정도인데 비해 나드 가격은 300데나리온, 즉 노동자의 일 년치 품삯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나드 향유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나드초의 뿌리 영양상태가 좋은 10~12월 사이에, 자연 상태로 자란 야생 뿌리를 채취하여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새로운 향유산업에 밀려 상업적인 채취가 중단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따라서 나이가 많은 티베트 원주민에게 개별적으로 주문하여야 소량의 나드향유를 구할 수 있다. 캐낸 뿌리는 바로 증류하여야 하며, 얻어진 기름은 방향성 향료, 방부처리제, 향료 등으로 사용되고 특히 인도에서는 머릿기름으로 인기가 좋았다. 옥합(玉盒)은 앨러바스터(Alabaster)의 속을 파내어 만든 병으로서, 박카스 병보다 작다. 앨러바스터란 일종의 석고(石膏)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약간 투명한 대리석처럼 보이고 불빛이 희미하게 통과된다. 팔레스타인에서 사용된 것은 이집트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나드는 워낙 비싼데다 휘발성이 강하므로 튼튼한 옥합에 넣은 후 밀봉하여야 인도에서부터 팔레스타인까지 운반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향유를 사용할 때는 밀랍 등으로 밀봉된 것을 뜯어야 했는데, 성경에서는 이 과정을 ‘옥합을 깨뜨리고’로 표현하였다. 병과 뚜껑이 한 덩어리가 될 정도로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드초는 마타릿과에 속하며 키가 15~30cm 정도로 곧게 자란다. 잎은 마주나며(對生) 장타원형(長卵形) 또는 주걱형으로 좁고 길다. 그리고 거치(鋸齒)가 없이 매끈하고 반들반들하다. 6~7월경 곧게 선 줄기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와 연분홍 꽃 1~3개를 피운다. 통모양의 잔 꽃이 뭉쳐서 작은 이삭모양으로 피며, 9~10월에 열매를 맺는다. 향유를 채취하는 뿌리줄기(根莖)는 굵으며 윗부분에 털이 나 있다. 뿌리에서 향유를 추출하므로 향기가 깊고 은은하며 몸에 뿌리면 3일 정도 지속되는 특성이 있다. 사람들은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향유사건 당시 자극적인 향기가 온 집안에 넘쳐났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오히려 나무냄새, 흙냄새, 건초냄새와 비슷한 사향(麝香)류의 그윽한 향기가 집안에 깔렸을 것이다. 이 향유는 남성에게 잘 어울리며, 성경에서도 남성들에게 사용되었다. ===나드 한 근’에 담긴 한 여인의 삶의 냄새와 향기는 어떠했을까? ▲ 예수님의 발 위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헌신에 주목한다. 그러나 그 향유는 그냥 귀한 것 자체가 아니라 이 여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의 이야기였음에 주목한다. (James Tissot : 1886-1894, Brooklyn Museum) 성경을 읽으면서 냄새가 궁금한 적이 있는지요? 성경 이야기를 들으면서 냄새가 다가온 적이 있는지요? 대부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감각적인 깨달음(?)보다 마음에 꽂히는 어떤 단어를 감정적으로 집착하거나 지적인 새로운 깨달음 또는 이미 알고 있던 지식 재확인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장실 냄새, 향수 냄새, 음식 냄새, 술 냄새, 담배 냄새, 고린내 .. 우리 일상은 이렇게 다양한 냄새와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냄새? 어떤 냄새는 아주 강하고 멀리, 그리고 오래갑니다. 어떤 경우는 바람결에 그냥 사라지기도 합니다. 한 여인이 다가와 예수에게 향유를 붓는 이야기는 사복음서 모두에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작은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이야기와 발에 부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손님을 환대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고, 거룩한 입맞춤으로 묘사된 어깨와 목을 어긋맞겨 포옹하여 맞이하고, 발을 씻겨주기도 했습니다. 달라 보이는 이야기의 주제는 그런 점에서 어우러져 있습니다. 실제 그렇게 환영받지 않았을지라도, 환대받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그림 언어가 이와 같았던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 속에 담긴 냄새와 소품(나드 향유, 옥합 등)을 중심으로 낯설게 다가가 봅니다. ▲ 박물관, 미슬관에 전시된 많은 것들은, 평범한 이들의 삶의 흔적이 아니다. 그 삶의 자취도 남겨지지 않은 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이들, 그곳에도 하나님의 마음이 같이했다. (김동문, 이집트박물관) ===성경 속으로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 발에 부은 이 이야기, 오늘 본문을 대하기도 전에 우리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에 이미 너무 익숙합니다. ”마리아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이 너무도 고마워 “주님께 지은 사랑의 빚, 은혜의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 제일 소중한 것, 자신의 전 재산에 해당하는 옥합을 가지고 왔습니다. 깨뜨렸습니다. 옥합에 들어 있던 나드 향유를, 몽땅 주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옥합을 깨다? 향유가 담긴 그릇은 옥합으로 나옵니다. 옥합은 앨러배스터로 만든, 뚜껑이 있는 그릇을 뜻합니다. 이 옥합은, 밀봉된 뚜껑을 열어야 기름을 붓거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향유를 담은 용기(그릇)도 물론 수입품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특산품이기도 했습니다. 로마 문명권에서는 유리나 토기로 된 그릇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옥합에 담긴 나드 한 근‘은 그야말로 귀하고 귀한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깨뜨려'라는 표현은 봉인한 뚜껑을 열었다는 뜻입니다. 밀봉한 것을 뜯는 것, 여는 것 이런 것도 ’깨뜨리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유리를 깨뜨리듯이 옥합을 '부숴뜨렸다', '깨뜨렸다'라고 상상을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향유를 머리에 붓다? 여유 있는 집에서 손님을 맞이할 때, 머리에 감람유(올리브기름)을 발라주곤 했습니다. 그것은 환대의 의미도 있고, 상대를 귀한 자로 인증하는 성격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기름부음’이 넘치는 풍경이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의 한 여인이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장면은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인도 하지 않은 예수님에 대한 '환대', '존귀한 자로 선언함'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향유를 발에 붓다? 향유를 발에 붓는 표현은 더욱 극적입니다.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가장 높은 존재를 알현할 때의 몸짓이었습니다. 정복한 정복자 앞에 점령당한 자가 최대한 자신을 낮추는 장면도 떠오릅니다. ▲ 옥합, 앨러배스터로 만든, 뚜껑이 있는 그릇은, 로마 문명권에서도 귀한 것이었다. 나드 한 근도 무척이나 값비싼 것이었다. 그 귀한 것도 한 여인의 삶의 가치에 비할 것이 없었다.(김동문, 이스라엘 박물관) 나드? 이 자리에서 한 여인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정규적 노동자의 일 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값에 해당하는, 남성용 고급 향유 나드 한 병(그릇)의 향유를 발에 부었습니다. 나드 한 옥합, 한 근? 이 향유의 양은, 적게는 350밀리리터부터 많게는 800밀리리터 이상의 양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한두 방울도 아니고, 350-850밀리리터 가운데 적지 않은 양을 쏟아부었습니다. 다 쏟아부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남은) 향유를 자신의 장례를 위하여 간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발 위에 부은 그 나드 향유의 냄새는 얼마나 진동했을까요? 얼마 동안이나 계속되었을까요? 밖에서 움직일 때에도 그 주변 멀리까지 바람 따라 그 냄새가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아주 작은 양의 향수를 스프레이 식으로 뿌려도 그 냄새가 반나절, 한나절 이상 유지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나드 한 근‘에 담긴 이 여인의 삶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예수 시대, 그 옛날에 돈을 보관하는 방법은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버거웠던 서민들에게 여윳돈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런데 혹여 여유를 낼 수 있었다면, 값나가는 것, 귀한 것으로 저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이 여인에게는 ’나드‘였던 듯합니다. 나에게는 이 여인의 나드와 같은 그 무엇이 있는지요? 무엇이 그것인지요? ▲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우리가 예루살렘 성안에 주목할 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성밖에 살고 있었다. 예수님의 눈길과 발걸음은 그곳을 향하셨다.(김동문, 이스라엘박물관) ===다시 생각하기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여의치 않았던 그 옛날, 이 여인은 어떻게 하여 이 많은 양의 나드를 갖고 있었을까요? 어떻게 모은 것이었을까요? 이 여인의 땀과 눈물, 지난 시간의 모든 것이 이 ’나드‘에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왜 모았을까요? 그것은 그 여인의 미래에 대한 꿈의 밑천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지신의 모든 것, 지난날의 아픔과 기쁨, 즐거움과 괴로움은 물론, 미래를 향한 실낱같은 꿈조차도 모두 예수님에게 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드 한 근을 예수님을 위해 아끼지 않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크고 작은 성취와 아픔을 보면서, 그 흔적과 열매에 담긴 그의 지난 날의 이야기, 삶에 주목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울까요? 성경 속 인물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떤 행동, 성공의 이야기에 시선이 갇히지 않고, 그 이면에, 그 삶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여유는 부려볼 수 없는 것일까요? ===나드 향유의 냄새는 얼마나 강했을까?//[중동의 눈으로 성경읽기]-2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한복음 12:3) 예루살렘 근교 베다니는, 이스라엘의 정결법에 따라, 사회에서 격리되는, 출교 조치 혐의가 있는 이들이 성전 제사장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던 장소였다. 또한 출교 당했던 이들의 출교 사유가 해소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재심을 기다리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랬던 까닭에, 그곳은 온갖 병을 앓는 이들, 앓았던 이들, 그들의 가족들이 살던 곳이기도 했다. 예루살렘 주변 서민 가정의 집안 구조는 단촐했다. (학자마다 의견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15평 정도였다고 생각해도 무난할 것 같다. 돌과 흙, 풀을 이용해 지은 집이었다. 방은 두 칸 아니면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햇볕 들어오는 창이 지붕과 벽 사이의 틈새를 통해 들어오는 정도였기에, 낮에도 실내는 어두웠다.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낮에도 때를 따라 등불을 밝혔을 것이다.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이라는 주인의 이력이 특별해보인다. 베다니라는 특별 지역 출신이라는 차별적 호칭이 붙었다. 베다니는, 마치 음성 나환자촌 같은 차별과 격리의 공간 이상이었을 것이다, 나병환자라는 표현도 종교적, 사회적으로 격리의 대상, 천병, 여호와의 진노를 입은 자 등의 부정적인 개념이 가득한 표현이다. 그 집에서 식사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여인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정규적 노동자의 일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값에 해당하는, 남성용 고급 향유 나드 한 병(그릇)의 향유를 발에 부었다. 그 나드 향유의 냄새의 지속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향유를 담은 용기(그릇)도 수입산이었다. 옥합(알라바스터)이었다. 그 봉인한 뚜껑을 열어 그 기름을 쏟아 부었다. 이 향유의 양은, 적게는 350미리리터부터 많게는 800미리리터 이상의 양이었다. 요즘, 인공 향수 30미리리터, 50미리리터의 아주 작은 양의 향수를 스프레이 식으로 뿌려도 그 냄새가 반나절, 한 나절 이상 유지된다. 그런데 향수에 비해 향유는 향기나는 원액의 기름이다. 한 두 방울도 아니고, 350-850미리리터의 양을 쏟아 부었다. 만약 오일 마사지 용도로 그 기름을 사용했다면, 아마도 수 백명이 온 몸에 나드 기름을 바를 정도의 넉넉한 분량이었을 것이다. 이 엄청난 양의 나드 향유가 뿜어주던 냄새는, 얼마나 강했을까? 그 냄새의 지속 시간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밖에서 움직일 때에도 그 주변 멀리까지 바람따라 그 냄새가 퍼져나갔을 것이다. ====== @@번홍화 : 사프란(saffron, 페르시아어: زَعْفَرَان)은 붓꽃과에 속하는 식물인 사프란 크로커스(saffron crocus, 학명: Crocus sativus) 꽃의 암술대를 건조시켜 만든 향신료이다. 암술대는 3개이며 이 부분을 말려서, 요리할 때 조미료로 쓰거나 염료로 쓴다. 지난 수십 년간 무게로 따졌을 때 가장 비싼 향신료였던 사프란은 서남아시아가 원산지다. 사프란은 쓴맛, 그리고 요오드포름 또는 건초와 비슷한 향기가 특색인데, 이는 피크로크로신(picrocrocin)과 사프라날(safranal)이라는 화학 물질 때문이다. 또한 사프란은 카로테노이드(carotenoid) 색소와 크로신(crocin)이라는 화학 물질 때문에, 음식에 넣었을 때 풍부한 황금빛 내지는 노란 색조를 띠게 된다. 이러한 특색 때문에 사프란은 전 세계적으로 음식 재료로 수요가 많다. 사프란은 또한 의학적 용도도 갖고 있다. 영어의 saffron이란 단어는, 라틴어 단어 safranum에서 온 12세기 고대 프랑스어 용어인 safran에서 비롯되었다. 라틴어 Safranum은 이탈리아어 zafferano와 스페인어 azafrán과도 관련이 있다. Safranum은 페르시아어 za'farān (زَعْفَرَان)을 경유해 "노랗다"는 뜻을 가진 아랍어 aṣfar (أَصْفَر)로부터 비롯되었다. ==거래와 효용 사프란은 스페인 발렌시아의 요리인 빠에야의 3대 재료 중 하나이며, 노란 색을 띠게 한다 감정가들에 따르면 사프란의 향은 풀 또는 건초의 향취가 있는 금속성 꿀 향기를 연상시킨다고 하며, 그 맛은 건초와 같은, 약간 쓴 맛이라고 한다. 사프란은 또한 음식에 첨가하여, 보기에 아름다운 노란색이나 오렌지 색을 내는 데 쓰인다. 사프란은 이란 요리, 아랍 요리, 중앙아시아 요리, 유럽 요리, 인도 요리, 터키 요리, 모로코 요리 등에 널리 사용되며, 과자와 술에 들어가기도 한다. 의학적으로도 사프란은 오랫동안 민간 요법의 한 부분으로 이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현대 의학에서도 항암 작용이나 항산화 작용 따위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사프란은 또한 중국과 인도를 위시한 여러 나라에서 직물 염색제로 쓰여왔고, 또 향료로도 쓰였다. ==세계의 사프란 재배 현황 사프란은 서쪽으로 지중해에서 동쪽으로 카슈미르에 이르는 지대에서 대부분 생산된다. 연간 전 세계적으로 약 300톤이 생산된다. 그 중에서도 이란이 전 세계 생산량의 94%를 독점한다. 그 외의 주요 생산국으로는 스페인, 인도, 그리스, 아제르바이잔, 모로코, 이탈리아 등이 있다. 건조된 사프란 1파운드를 만드는 데 5만~7만 5천 송이의 꽃이 필요하며, 이만큼의 꽃을 재배하려면 축구장 넓이의 땅이 필요하다. 15만 송이의 꽃을 따는 데 40시간 가량의 노동이 요구된다. 사프란 추출시, 암술대는 신속하게 건조되고 밀폐된 용기에 담긴다. 사프란의 가격대는 파운드당 미화 500달러에서 5000달러까지 형성되는데, 서양에서 평균 소매 가격은 파운드당 1000달러 가량이다. 사프란 1파운드는 7만~20만개의 암술대로 이루어진다. @@창포, 칼라무스 Infobox plantae.png창포...창포 (Acorus calamus)창포 (Acorus calamus) ==학명 Acorus calamus L. Linnaeus 창포(菖蒲, calamus)는 창포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며 가로로 뻗는 굵은 땅속줄기가 있다. 잎은 땅속줄기 끝에 뭉쳐 곧게 자라는데, 길이는 50~90 cm 정도로 딱딱하며, 선과 같이 가늘고 긴 모양을 하고 있다. 꽃줄기는 높이 25~40 cm 정도로 잎과 비슷하게 편평하다. 불염포는 녹색으로 잎과 같이 길다. 녹색 육수꽃차례는 원기등 모양으로, 길이가 5~10 cm 정도인데, 양성화인 꽃이 빽빽하게 달려 있다. 꽃덮이조각은 넓은 선 모양으로 6개가 있다. 한편 수술도 6개가 있는데, 수술대는 희며 길이는 약 2mm 정도이다. 씨방은 상위이며, 3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열매는 액과인데, 적색을 띠며 그 안에는 몇 개의 씨가 만들어진다. 일본·중국, 한국의 제주·경기·황해·평북·함남북 등지에 주로 분포한다. 주로 연못, 도랑주변에서 자란다. 색은 흰색이나 연한 홍색 마디가 많고 독특한 향기가 난다.단오날엔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다. ==효용 단오날 창포를 넣어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는 풍습이 있다. 거담(祛痰·去痰), 건위(健胃) , 진경(鎭痙) 등에 효능이 있다 하여 한방에서 약재로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특히 설사, 기관지염, 소화불량 등에는 창포의 뿌리를 사용한다. 또한 뿌리줄기는 방향성 건위제로 사용한다. 경신(輕身) · 연년(延年) · 불로(不老)한다. 뿌리를 뜨물에 담가서 하룻밤을 재운 뒤 뜨거운 햇볕에 말려서 가루로 하여 찹쌀 죽에 백밀(白蜜)을 조금 넣고 오동 열매 크기의 환을 지어 온주(溫酒)로 아침에는 30알, 저녁에는 20알을 복용한다.[1] ==『본초강목』에서는 창포가 동지 다음 57일 만에 자라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창포가 나온 다음부터 농사를 시작하였으므로, 창양(昌陽)이란 이러한 뜻에서 쓰기 시작한 것 같다고 보고 있다.한방에서는 뿌리를 약재로 사용하고 있다. 보통 8∼10월경에 채취하여 털뿌리를 제거하고 잘 씻어서 햇볕에 말렸다가 사용한다. 건위(健胃)·진정(鎭靜)·진경(鎭痙)·거담(袪痰)·이습(利濕)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하며, 소화불량·설사·습체비창(濕滯痞脹)·전간(癲癇)·경계(驚悸)·건망(健忘)·정신불안·풍습비통(風濕痺痛)·해수(咳嗽)·기관지염·옹종(癰腫)·개창(疥瘡) 등의 증상에 쓰이고 있다. 또, 근경에는 방향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목욕시 물에 넣어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단오절에는 창포 뿌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뿌리를 깎아서 비녀를 만들어 꽂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도 뿌리에서 좋은 향기가 나기 때문에 시작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러한 행사로써 머리가 더욱 검어지고 악귀를 물리칠 수 있다는 속신이 전해져 더욱 성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창포는 연못가와 도랑가에서 흔히 자라고 있었으나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창포와 비슷하지만 잎이 보다 좁고 너비 1㎝ 미만이며 길이도 짧고 뿌리가 가는 것을 석창포라고 하는데 창포보다 희귀하다.석창포는 산골짜기 맑은 냇가에서 자란다. 한방에서 가장 상품가치가 높은 것으로 치는 창포의 뿌리는 1치 길이에 마디가 9개 있는 것인데 이것은 석창포의 뿌리를 가리키는 것 같다. 따라서, 약용적 가치는 석창포가 창포보다 높게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