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아8.23summe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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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8장....[405.주의친절한팔에] [406.곤한내영혼편히쉴곳과] [408.구주와함께나죽었으니] [408.나어느곳에있든지] [410.내맘에한노래있어] [411..아내맘속에] [412.내영혼의그윽히깊은데서] [415.십자가그늘아래] [419.주날개밑내가평안히]....너의쓴잔을.. 내갈급함..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녀는 자신에게 여전히 육체가 있다는 것 외에는 구주와 모든 면에서 똑 같을 정도로 생명 안에서 성숙했음을 자각하는데...이제 육체로 인해 야기되는 모든 문제와 한계들을 절절하게 새삼스레 깨닫는 바, 구주께서 그녀와 동일하게 은혜(그녀의 어머니, 갈4:26)로 부터 태어난, 그녀의 육신의 형제가 되실 수 있기를 원함, 즉 그분께서 그녀와 육체 안에서 동일하게 되시기를 원하고 있음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아8:2-4에서는 육체때문에 탄식하는데서 구원받기를 소망함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몸의 구속을 통해 휴거되기를 소망하는 것을 가리킴(롬8:23, 고후5:1-8, 엡4::30하)


1.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이제 <그 누구도 오해하는 일 없도록> 구주와 스스럼 없는 친밀한 동행/교제/하나됨의 거함에 대한 그 어떠한 비난/업신 여김의 가능성을 넘어서기를 원함..즉, 육체적 제한 벗기를 하여 그녀의 몸이 변형/휴거됨 통해(빌3:21) 주님과 같아지기를 바라고 있음

2.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에서의 어린양 혼인잔치, 곧 은혜(어머니의 집, 갈4:26)로 온전하게되는 곳에서 만나는 그 때를 소망함..휴거 전에그녀를 구주께서 감싸 안으시고(아2:6) 만족하셨듯이 항상 <영원히> 만족하실 수 있도록, 사랑하는 분께 자신이 풍성하게 체험하고 누린 신성한 생명(그녀의 <충만한 속생명>석류즙으로 만든 향기로운 술) 누리실 길 제공해드리며 그 근원이신 분께 직접 교통하며 교훈 받기를 소망하는 바]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3.  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주 품에 품으소서,

4.  [구주-성령 말씀하심][참견하기 좋아하는 믿는이들인]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그녀가 휴거되어 깨어나서 그분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볼 때 까지는, 휴거에 대한 합당한 소망으로부터]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542.구주예수 의지함이] ---##성령-예루살렘 여자들-하늘의 천사들의 공동 찬탄(사랑하는 연인이신 구주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구주 빼어 닮아 영광스러운 이 여자는 누구인가) ---##구주의 말씀(이 여자는 ..내 사랑이라, ..내 사랑아. 사과나무 아래에서, 곧 부활 생명 안에서 내가 내 사랑, 너를 깨워 휴거되게 하였단다.)---##그녀의 사랑 고백(, 내가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분이시여, 주 품에 영원무궁히 품으소서)---##구주의 확약(그리하리라, 너는 내게 있어,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 지닌 존재란다.)-----<죽음보다 잔인한 스올보다도 더 강력한 여호와의 불길인 바, 그 어떤 창파/홍수로도 끌 수 없는, 그 어떤 것으로도 소멸시킬 수 없는, 주님의 사랑... 나를 절대적으로 위하시는 절대적 그 사랑으로 나를 또한 충만케 하시어 바로 그 사랑으로 절대적으로 주께 반응함 이루소서>

5.[542.구주예수의지함이]  ○[성령 말씀하심-예루살렘 딸들의 찬탄][예전에는 영적 광야인 세상으로부터 혼자 올라왔으나(아3:6), 지금은 사랑하는 분께 기댄 채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그분을 맞으러, 그분과 함께 나가고 있는>, 육체에 속한 광야(땅에 속한 영역)에서 올라오는,]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그녀를 손수 깨우신 구주 말씀하심...그녀는 회개한 죄인으로서, 생명의 공급자<사과나무, 아2:3>이신 구주 안에서 거듭남<출생> 통해, 은혜(그녀의 어머니, 갈4:26, 엡2:8상)로 구원받은 죄인임을 밝히고 계심...즉, 어찌 보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완결 지점이랄 수 있는 바로 여기, 이 시점에서 구주는그분의 연인에게 심지어 그녀가 아무것도 아니며 단지 생명말씀이신 분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일깨워 주심으로써 구주의 십자가 대속 은혜로 구원 받은 = 생명나무에 참여를 허락 받은  죄인에 불과함을 상기시키고 계심]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6.  ○[그녀의 고백..."네, 진실로 그러합니다." 오직 휴거되기 전에는 그녀 혼자서는 사랑하는 분 안에 설 수도 살 수도 없음을 인정하고 있음...오직, 구주께 부탁드리는 바 육체 안에, 옛 창조물 안에 있는 동안 자신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기 원하며, 오직 사랑하는 분께 맡겨드리는 바 그분의 사랑(마음)과 그분의 힘(팔)으로 자신을 감싸 안고 지켜달라, 그 어떤 것도 무너뜨릴 수 없는 그녀를 향한 일편단심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질투로 그녀 마음에 인치심 통해 주님의 사랑과 질투의 선하심의 영원불멸의 전능성, 바로 그러하심에까지 이르게 하사, 바로 그렇게 상호 하나됨 이루시기를 부탁드리고 있음]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부탁드리는 그 까닭은!!]사랑[그분의, 요동치 않는 사랑]은 죽음 같이[=죽음만큼이나] 강하고 [그분의]질투는 [정복 불가능한]스올 같이 잔인하며 [부정적인 모든 것을 불살라 태워 버리시는, 질투하시는 여호와의]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7.  [세상의 그 어떤 시련의]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세상의 그 어떤 박해의]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가진 바 그 어떤 재물로도 바꿀 수 없기에...아8:7, 롬8:35-39, 고전13:1-3]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8. [408.나어느곳에 있든지]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이제, 연인이 구주를 추구하는 가운데 구주에 대한 체험이 궁극적으로 완결되어 생명이 성숙하였다..이제 그녀는 휴거되기 전에 구주와 함께 구주를 사랑함 안으로 들어선, 그러나 전심으로 혼약을 받아들이지는 못한 어린 신자들 곧 믿음과 사랑(유방, 딤전1:14)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바, 어떻게 어린 사람들을 온전하게 함 통해서 그들도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함에 참여하도록, 곧  생명이 성숙하게 도울 것인지, 또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부 됨에 이르도록 사랑 안에서 그분과 약혼하기까지 그리스도를 사랑하도록 도울 것인지를 관심하고 있음(고후11:2, 갈4:19) 

9.  그가 [세상으로부터 부르심 받아서 분별-거룩함의 결단으로 사는 작은 누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몸의 건축에 참여한 지체로서 그녀의 부르심이]성벽이라면 우리는 [구속의 온전함 늘 새롭게 함의]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구주의 하늘에 속한 <참 생명의>인성<마26:64, 행3:13>과 그분의 하늘에 속한 인간 생활<백향목, 빌2:7-8>의 온전함으로] 두르리라

10. [410.내맘에한노래있어] ○나는 [늘 새로운, 전진하는 사랑과 믿음, 생명 충만 + 성별/보호/방어의 분별력 충만한..딤전1:14]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사랑하는 분 구주께서]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살전5:23, 사26;1-4..견고한 신뢰<절대기쁨-절대긍정-절대신뢰>와 아가페로 하나됨의 성령따라 동행함  인해 누리는 평강 + 구주 빼어닮음 + 구주를 공급하며 반사/반영함!!

11.  솔로몬이 바알하몬[=모든 것의 주님이라는 의미]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포도원지기]들에게 맡겨 두고[=빌려주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세겔]을 바치게 하였구나....일차적 의미가 중요하다!!..사7:23에서는 <열매 맺는> 포도나무 1그루마다 은 1개의 가치가 있음을 말하는 바, 바로 <성령따라 사랑 안에서 주님 살기의...곧 성벽-망대-풍성한 유방 가진 자로서 성령따라 행함 안에서 저절로 이루실 것인데> 그 가치를 다함 통해 은 일천 개를 산출하도록 만드신 바, 즉 <각자의 부르심에 대한 책임으로서> 합당한 생명 열매 충만함과 생명 낳는 영적 부모의 표현인 은 일천개를 드릴 책임이 있는 <위임 받은 청지기> 포도원지기들인 것을 시사한다!!...주님과 하나된 믿는이 각자가 또한 포도 열매 맺는 포도나무임, 교회는 포도원,,,..여기에서 소극적 의미에서는, <엔게디 포도원이 아니라>바알하몬 포도원을 소유한 솔로몬을 (세상-사탄적 가치따라 행하는) 통치자의 표상으로 보려 하는 이들도 있음을 기억! 

12.  솔로몬 너는 천을 얻겠고 열매를 지키는 자[=포도원지기]도 이백을 [포도원 지킴/돌봄의 보상으로]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엔게디>은 내 앞에 있구나...따라서, 주님이 마땅히 받기 원하시는 그 이상으로(원금에 이윤까지 얹어서 돌려드려야 주께 받을 바 의의 보상이 있게됨..마25:26-27, 딤후 4:8) 열심을 내어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여야 하는데, 이는 주님의 <그분의 모든 소유에 거저 참여하는> 은혜가 아니라 <드려야 할 것을 드리는, (그러나 의무감에서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이 아니라, 연인되신 그분을 위해 자원-헌신함의 사랑 안에서 신실하게 수고하는) 사랑의 일인 바..갈5:13>그분의 의에 따른 보상임을 알고 명심해야 함..

....[[엔게디의 포도원과 솔로몬의 바알하몬 포도원]]

<엔게디는 희망과 생명의 오아시스이다>

솔로몬의 포도원은 바알하몬에 있는데, 그 포도원의 이름이 바알하몬이다. 그러나,  아비삭이 사랑하고 갈망하는  포도원은 엔게디 포도원이었다. 술람미가 사랑하는 <엔게디> 목동의 참 사랑의 진실함, 이와 대비되는 바  <바알하몬>의 솔로몬, 사탄적 세상 사랑의 미혹됨을 구분하기 위해 아가서에 바알하몬 포도원을 등장시키고 계신 것이 아닐까...

<엔게디 포도원의 사랑, 사랑-믿음-충만한 생명 향기>

엔게디는 사해 옆 사막지대에 오아시스로  종려나무와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고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한 곳이고 이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을 살려 준 곳이기도 하다(삼상23/29-24/1)

사막가운데 풍부한 물과 그늘 그리고 동굴과 폭포가 있어 진정 사막가운데의 파라다이스, 이 엔게디 포도원에는  아름다운 천리향을 내는 향기를 내는 고벨화가 피어 있다.(아 1/14). 엔게디는 사망과 절망의 땅 가운데 있는 생명과 희망의 땅인 것이다. 

이곳은 아가서의 목동과 아비삭이 구주 대속의 참 생명과 참 사랑을 비유한 단어인 것이다. 이 엔게디의 사랑은 아비삭이 꿈꾸는 참 사랑이며 이 포도원에 피는 고별화는 사랑의 꽃이다.

<바알하몬은  절망과  좌절의, 착취-눈물 어린 땅이다>

솔로몬이 바알 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소작인에게 세를 놓아 은화 일천세겔씩을 받아 들인다(아8/11) 

바알하몬의 의미, 바알 + 하몬(카르타고 페니키아어: lbʻl ḥmn)은 하늘과 농경의 신으로, 꼬인 염소 뿔을 가진 수염이 있는​ 노인으로 묘사되며 바알 함몬의 배우자는 타니트Tanit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바알 함몬 종교는 ​카르타고의 페니키아계 식민지에서 성행했었고, 카르타고 신들 사이에서 그의 최고신으로서의 패권은 기원전 5세기부터 숭앙되었는데,  페니키아인들이 히메라 전투에서 패하고, 카르타고의 본국 페니키아의 '티레'와 카르타고의 관계가 끊어진 이후부터이다. 현대 학자들은 바알 함몬 종교를 북서 셈족의 신 '엘 El'과 '다곤 Dagon'의 한 분파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솔로몬의 포도원의 이름이 바알하몬이라 칭하는 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곳은 아비삭의 고향인 수넴지방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그 이름이 불행히도 우상 숭배의 표본인 바알하몬이요, 그 의미상 거기에서는 <착취 당하는> 소작인들의 눈물, 절망과 좌절이 있다.

엔게디의 포도원에는 고벨화가 피고 그 향기가 천리를 가나 바알하몬의 포도원에는 심한 노동과 착취와 고통과 좌절과 절망이 있다.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엔게디의 포도원인가? 솔로몬의 바알하몬인가?  그 선택은 우리의 믿음이 어떠함따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유의할 바는, 영적 분별케 하시는 성령을따라야 한다는 것....이 땅의 수 많고 많은 교회에 매어 있으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볼 때 주님이 아니라 세상신 바알에게> 빌고 바치면서도 하늘에 도달하려고 발버둥 치는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바로 솔로몬의 바알하몬의 소작인은 아닐런지 생각해 볼 일이다!!..

13.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마라나타!!]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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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8장 [현대인의성경] 

1. 여자: 만일 당신이 우리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오빠라면 내가 길거리에서 당신을 만나 입을 맞추어도 나를 비웃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2. 내가 당신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당신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요. 나는 당신에게 석류즙으로 만든 향기로운 술을 갖다드리고

3. 당신은 나를 왼팔에 눕혀 오른손으로 껴안아 준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4.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는 제발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아다오.

5. 예루살렘 여자들: 사랑하는 님의 팔을 끼고 사막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남자: 그대의 어머니가 산통을 겪으며 그대를 해산한 그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그대를 깨웠노라.

6. 여자: 당신은 나를 인장 반지처럼 당신의 마음에 간직하고 도장처럼 당신의 팔에 새기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며 질투는 무덤처럼 잔인하여 맹렬한 불처럼 타오릅니다.

7. 많은 물도 사랑의 불을 끌 수 없고 홍수라도 그것을 소멸할 수 없으니 사람이 자기 재산을 다 주고 사랑을 사려고 해도 오히려 비웃음만 살 것입니다.

8. 여자의 오빠들: 우리 어린 누이동생은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동생이 청혼을 받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9. 만일 동생이 성벽이라면 우리는 동생에게 은망대를 세워 줄 것이며 만일 동생이 문이라면 우리가 백향목 판자를 둘러 주리라.

10. 여자: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와 같으므로 내가 님의 보기에 평안을 얻은 사람처럼 되었구나.

11. 바알-하몬이라는 곳에 포도원이 있어서 솔로몬이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내어주고 한 사람 앞에 은화 1,000개씩 바치게 하였네.

12. 그러나 내 포도원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솔로몬 당신은 은화 1,000개를 가질 것이며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에게는 내가 은화 200개를 주리라.

13. 남자: 동산에 앉아 있는 사랑하는 님이여, 그대의 음성을 들려 주시오. 내 친구들이 그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기다리고 있다오. 

14. 여자: 나의 사랑하는 님이시여, 노루처럼 달려오세요. 향기로운 산의 어린 사슴처럼 속히 달려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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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vers Speak

1 “Oh, that you were like a brother to me,  Who nursed at the breasts of my mother.  If I found you out of doors, I would kiss you;  No one would blame me or despise me, either.

2 “I would lead you and bring you  Into the house of my mother, who used to instruct me;  I would give you spiced wine to drink from the juice of my pomegranates.

3 “Let his left hand be under my head  And his right hand embrace me.”

(The Bridegroom)

4 “I command you to take an oath, O daughters of Jerusalem,  That you do not rouse nor awaken my love  Until she pleases.”

(The Chorus)

5 “Who is this coming up from the wilderness  Leaning upon her beloved?”

(The Shulammite Bride)

“Under the apple tree I awakened you [to my love];  There your mother was in labor with you,  There she was in labor and gave you birth.

6 “Put me like a seal on your heart,  Like a seal on your arm;  For love is as strong as death,  Jealousy is as severe and cruel as Sheol (the place of the dead).  Its flashes are flashes of fire,  [A most vehement flame] the very flame of the [a]Lord!

7 “Many waters cannot quench love,  Nor can rivers drown it.  If a man would offer all the riches of his house for love,  It would be utterly scorned and despised.”

(The Chorus)

8 “We have a little sister  And she has no breasts.  What shall we do for our sister  On the day when she is spoken for [in marriage]?

9 “If she is a wall (discreet, womanly),  We will build on her a turret (dowry) of silver;  But if she is a door (bold, flirtatious),  We will enclose her with planks of cedar.”

(The Shulammite Bride)

10 “I was a wall, and my breasts were like the towers.  Then I became in the king’s eyes  As one [to be respected and allowed] to find peace.

11 “Solomon had a vineyard at Baal-hamon;  He entrusted the vineyard to caretakers;  Each one was to bring him a thousand shekels of silver for its fruit.

12 “My very own vineyard is at my disposal;  The thousand [shekels of silver] are for you, O Solomon, And two hundred are for those who tend the fruit.”

(The Bridegroom)

13 “O you who sit in the gardens,  My companions are listening for your voice—Let me hear it.”

(The Shulammite Bride)

14 “Hurry, my beloved and come quickly,  Like a gazelle or a young stag [taking me home] On the mountains of spices.”

==Footnotes 

Song of Solomon 8:6 Heb YHWH (Yahw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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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8장 (개요)

본장은 본 아가서의 결론이 되는 장으로서 그리스도와 자기 신부 사이의 애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고 활력있게 나타나있다.

1. 신부는 계속해서 보다 친밀한 그와의 교제와 교분을 간곡히 조른다(1-3).

2. 그녀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와 맺는 교제를 방해하지 말도록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부탁한다(4). 

그리고 예루살렘 여인들은 이 일로 그에게 대한 그녀의 의존심에 감탄하고 있다(5).

4. 그녀는 자기의 기도로써 불러낸 그에게(5) 그가 그녀와 그와의 복된 결합을 그의 은총으로써 공고히 해 주기를 애원한다(6, 7).

5. 그녀는 타인들을 위해서도 보살펴 주시도록 중재하며(8, 9),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기 자신의 권익과 자신에게 대한 그의 사랑을 생각하고 즐거워한다(10).

6. 그녀는 자기가 바알 하몬에 있는 그의 포도원 소작인임을 자인하고 있다(11, 12).

7. 이 노래는 고별하는 마당에서 서로가 바라는 것을 주고 받음으로써 막을 내린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신부에게 종종 소식을 듣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13) 이 여인은 그에게 그녀에게로 빨리 돌아와 주실 것을 당부한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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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을 갈망하는 교회(아 8:1-4)

Ⅰ. 신부는 주 예수님과의 항구적인 친교와 자유로움을 소원하고 있다. 

그녀는 이미 그와 혼약을 맺었다. 그러나 혼례식은 아직 거행되지 않았으며 공표되지도 않았기에(어린양의 아내가 되는 신부는 그의 재림시까지는 완전한 차림이 되어 있지 못할 것이므로) 수줍어하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은 자기가 그의 누이로 오인되었다면 차라리 좋겠다고 바라는데 그도 앞에서 그녀를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5:1). 

이 여인은 누이와 오라비의 사이처럼 정숙하고 순결한 친교를 갖고자 원하였던 것이다. 

그가 자기와 한 "어미의 젖을 먹은" 친오라버니였더라면 요셉이 자기 형제 베냐민을 돌보듯 자기를 심히 귀여워해 주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의 성육하심을 갈급하던 구약 성도들의 기도라고도 해석한다. 그들은 그리함으로써 교회가 그를 보다 친숙히 알려고 하였다고 본다.

"자녀란 것은 혈육을 함께 나누는 자들이기에" 그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부분을 나누어 가져야 하며 저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심도 당연했다. 

이 말씀은 오히려 그와 보다 친밀한 교제를 가지려는 모든 신자들의 소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을 받을 수"있고 그리스도는 저희 형제처럼 저희는 그의 형제같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이 은혜로 말미암아 신적 속성을 나누어 가지게 될 때라야 그들은 그의 형제같이 되는 것이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 다 한 하나님께로부터 났다"(히 2:11 이하). 

동일한 부모의 자녀이고 한 젖가슴에서 양육된 형제 자매가 서로 매우 사랑하며 돌보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배우자가 원하는 사람은 바로 그러한 사랑이다. 

자기와 자기의 사랑하는 자 사이에 바로 이 남매 간과 같은 사랑이 이루어져서 그를 오라버니로 부를 수 있기를 원하였다.

Ⅱ. 그러고 나자 이 여인은 그와의 관계를 고백하는 데 있어서 현재보다 더욱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그 곳이 어디든, 심지어 공중 앞에서라도 나는 누이가 자기 오라버니에게 하듯, 특히 지금 그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꼬마 동생에게 하듯 네 입을 맞추리라."(이렇게 이해하는 자도 있다.)"나는 흉하지 않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모든 자유를 당신께 행사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여성의 정숙에 어울리지 않는 짓이라도 하는 듯이 업신 여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하심 이래로 교회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를 그토록 사랑한다고 하여 조소를 받던 때보다 그를 더 잘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형제처럼 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어디서 만나든 우리는 그와의 관계와 그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도록 하자. 

그것으로 인해 멸시받을까봐 두려워하지도 말며 다윗이 법궤 앞에서 춤출 때 그랬던 것처럼 남의 손가락질도 유의하지 말자. 

"내가 이 일로 천하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더욱 미천하게 되겠노라." 

우리는 혹자의 생각만큼 그렇게 업신여김을 많이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자.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어디서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밖일 수도 있고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일 수도 있다. 

비록 그런 곳에서 우리가 그의 모습을 발견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사랑해야 하며 그 사랑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우리는 그러더라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을"것이며 오히려 포용력 있는 자비심 때문에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Ⅲ. 이 여인은 그와의 교분을 바라다가 얻게 되는 기회를 포착하겠다고 약속한다(2절). 

"나는 너를 이끌리라. 나는 당신을 나의 오라비처럼 팔을 잡고 이끌며 당신께 매달리기도 하렵니다. 나는 내집의 모든 보배로운 것들을 다 보여 드리겠고 당신을 내 어미의 집에 이끌어 들이겠습니다. 당신을 교회로, 거룩한 집회 안으로(3:4), 나의 밀실로(성도가 그리스도와 극히 친밀한 교제를 갖는 곳은 골방이기 때문에), 불러 들이렵니다. 당신은 거기서 제게 교훈을 주고자 원하십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해석한다.) 가르침을 받으려고 원하는 누이들에게 알려 주는 오빠처럼 거기서 그는 저들에게 교훈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은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서 교훈을 받기 위해 그와의 교제를 원한다. 그는 우리에게 이해력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또 본문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때에 내 어미는 나를 훈계하였으리라." 

말씀과 성례를 교회의 자녀들에게 유익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자기 교회 안에, 자기 교회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이며, 그 때에 그 모든 자녀는 하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Ⅳ. 이 여인은 자기가 가진 최선의 것에 그를 기꺼이 초대하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녀는 그가 "향기로운 술과 석류즙"을 마시게 하리라고 약속한다. 그녀는 그의 보다 나은 행복을 위해서 그를 이렇게 환대하고자 하였다. 

은혜의 활동과 의무의 수행은 주 예수님께 있어서 향기로운 술과 같고 그가 매우 기뻐 받으시는 것이며, 그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정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자들은 그에게 즐거움을 드릴 수 있도록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그들은 그를 기쁘게 만들기가 어렵지 않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충심으로 하는 환영을 가장 좋은 대접으로 여기신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는 환대를 받으신다면 그는 자기의 대접도 함께 가지고 다니실 것이다.

Ⅴ. 이 여인은 자기에게 대한 그의 친절하신 보살핌과 애정을 경험하게 됨을 믿어 마지 않는다(3절). 

즉 이 여인은 자기가 그의 힘에 의해 부지되며 가장 힘든 봉사와 수난 속에서 기력이 쇠하지 않도록 해주실 것("그의 왼 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할 것이고")과 그의 사랑으로 자기가 위로받으리라는 것("즉 오른손으로 나를 안았었으리라")을 의심치 않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이 바야흐로 죽게 되었을 때 자기 오른손을 그에게 놓으셨었다(계 1:17; 단 10:10, 18 참조). 

이 말씀은 2장 6절 말씀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와 같이 읽을 수 있다. 원문은 같으나 여기서는 시제가 다르다.

 따라서 이 말씀은 그 여인의 기도에 대한 즉각적 응답을 표현한다. 이 여인은 "자기 영혼 속의 강한 힘"으로 응답을 받았다(시 138:3). 

우리가 그리스도를 가까이 따라가는 동안 그의 "오른손은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시 63:8). "그 아래에는 영원하신 팔이 있다."

Ⅵ. 이 여인은 자기의 즐거운 교제에 방해가 될 만한 일을 행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있다(4절). 

이런 부탁은 앞에서도 하였다. 그가 나타나심으로써 자기를 힘있게 하시고 위로하셨을 때 이와 같은 부탁을 하였던 것이다(2:7).

"오! 너희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너희에게 타이른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 왜 너희가 그를 흔들며 어째서 그를 깨우느냐?" 

우리의 공동 어머니 되는 교회는 자기의 모든 자녀들에게 그리스도를 노엽게 하여 물러가시게 할만한 어떤 일도 결코 행하지 말도록 부탁하는데, 우리는 흔히 이런 짓을 저지르기가 쉬운 것이다. 왜 너희들은 그리스도께 그런 모욕을 가하는가? 왜 너희는 스스로를 그토록 적대하는가? 

우리가 성령을 탄식하게 할 만한 일을 저지르도록 유혹받을 때 이와 같이 스스로 자문자답하여 설득해야 한다.

"무엇이! 내가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에 싫증을 낸다고? 내가 그에게 모욕을 가하여서 그를 노엽게 하고 내게서 떠나가시게 한다고? 내가 왜 그분이 그토록 박정하게 생각하실 일을 행하며, 어째서 내가 확실히 후회하고야 말 일을 행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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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거대한 사랑(아 8:5-7)

Ⅰ. 이 신부는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칭송을 듣는다. 

이 부분은 상업적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이 안에는 이 신비로운 노래 중 어느 부분에 못지 않게 복음의 은혜가 분명히 잠복해 있으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어떤 자들은 이 말씀을 신랑이 신부가 자기에게 의지하고 자기의 인도하는 대로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여 표현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오히려 이 여인이 말을 걸었던(4절) 예루살렘 여자들의 말인 것 같다. 그들은 이 여인을 보며 이 여인은 복되다고 한다. 

하늘의 천사들과 땅 위에 있는 이 여인의 모든 친구들은 이 여인의 행복을 기쁘고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이다. 

유대 교회는 신의 능력과 은총으로 부축을 받으면서 광야로부터 올라왔었다(신 32:10, 11), 

또한 기독교회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해 낮고 황량한 처지에서 일으켜 세워졌다(갈 4:26).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도들이 은혜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신뢰와 만족으로써 "그들의 사랑하는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 오게 될 때, 그들은 사랑스러우며 존경할 만하고 그들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경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다음 세 가지 경우에 있어서 영혼의 아름다움과 신적 은혜의 경이로움을 말해 준다.

1. 죄인의 전향에 있어서. 죄스러운 상태는 "거친 들"과 같다. 

거기는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불모지이며 메마른 땅이므로 그곳에는 진정한 위로라고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상태는 방황하고 부족한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는 이런 거친 들로부터 탈출하여 "올라오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와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시는 힘으로써만 가능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그분을 의지하고 그의 팔에 안기워서 이 광야로부터 올라오도록 해야 한다.

2. 성도의 위안에서. 죄를 확실히 깨닫고 그 때문에 참으로 겸비하게 된 영혼은 어쩔 줄 모르는 가운데 "거친 들"에 있게 된다. 

이런 경우에 이 "광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길은 믿음으로써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 자신의 총명에 의지" 하거나 우리 자신의 외로움이나 힘을 우리에게 충분한 것으로서 신뢰해서는 안 된다. 

그 길은 여호와 하나님의 강한 힘 가운데에서 그의 의로움을, 오직 그의 의로움만을 외치며 계속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는 "우리의 의로우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께 속하는 자들의 구원에서 우리는 하늘과 교제를 가지면서 이 세상의 광야로부터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죽으면 우리는 그리로 이주하여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대한 믿음으로 살고 죽어야 한다. "내게는 산다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어서 얻는 것도 그리스도이다.

Ⅱ. 이 여인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에게 말하고 있다.

1. 이 여인은 자기 및 딴 사람들이 그에게 전심하여서 위로와 성공을 경험했던 과거 사실에 대해 그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1) 그녀 자신의 입장에서. 

"내가 그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를 깨웠노라. 즉 내가 기도로 주와 씨름하여 이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과수원으로 물러가 사과나무(그리스도는 바로 이 나무에 비유되셨다. 2:3) 아래에서 혼자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무화과 나무 밑에 있던 나다나엘처럼(요 1:48) 신앙의 행위를 하고 있었을 때 나는, 나를 도우시고 위로해 주시도록 당신을 깨웠나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폭풍우 속에서 그리스도를 깨우며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주께서 돌아 보지 않으시나이까?" 하고 말한 것과(막 4:38), 교회가 "깨소서! 어찌하여 주는 주무시나이까?"(시 44:23)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믿음과 기도로 간곡히 조를 때 그리스도께서는 기꺼이 항복하신다. 

그리스도의 그런 즉각적인 응답에 대한 우리의 체험으로 우리는 용기를 얻고, 그에게 직접 여쭙는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며, 약해지지 않고 한층 열심히 애쓰게 되는 것이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그가 내게 응답하셨도다"(시 34:4).

(2) 타인들 또한 다음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에게서 유사한 위로를 경험하였다. 

"저희도 나와 마찬가지로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나이다(시 34:5)." 

거기서 "네 어미가 너를 낳았으니" 그것은 곧 세계 교회, 혹은 믿는 영혼으로서 이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갈 4:19). 

그들은 당신에게서 얻을 유익의 위로를 위하여 고통 중에 있었고 "큰 슬픔"으로 "해산의 고통"을 당하였습니다(여기의 말씀은 그런 의미이다).

그러나 그들은 "당신을 낳았습니다." 

고통은 항상 계속되지 않는 법이다. 확신 속에서 "신고"하던 자들은 드디어 위로를 "낳는다." 구주 탄생의 기쁨 때문에 "고통은 잊혀졌던 것"이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바로 이 비유로써 한 때의 슬픈 이별 후 그가 돌아오셨을 때에 얻을 그의 제자들의 기쁨을 나타내신다(요 16:21, 22). 

회개의 쓰라린 아픔 뒤에 복된 위로의 탄생을 얻은 자는 부지기수이다. 그렇다면 나라고 해서 못 얻을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2. 이 여인은 그와의 결합이 공고해지고 그와의 교제가 지속되며 한층 친밀하게 되도록 그에게 요구한다(6절).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1) "나로 하여금 당신의 마음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며 당신의 사랑 속에서 한 몫을 갖게 해 주소서." 

이것은 자신의 행복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를 아는 자들이면 누구나가 다 가장 바라는 일이다.

(2) "내가 당신의 가슴 속에 차지하고 있는 나의 방을 결코 상실하지 않도록 해 주시옵소서. 날인된 문서가 취소될 수 없고 봉인된 장농이 도둑에게 털리지 않는 것같이 제게 대한 당신의 사랑도 확실하게 해 주옵소서. 그 어떤 것도 나를 당신의 사랑으로부터 격리시키거나, 그 사랑의 고통을 방해하여 당신의 사랑을 의식하고 얻는 위안을 박탈하지 못하게 하소서."

(3) "나로 하여금 언제나 당신에게 소중하고 가까운 자가 되게 하사, 주의 오른손에 끼시고 결코 빼지 않는 인장반지(렘 22:24)같게 하시며 주의 손바닥에 새긴 자(사 49:16) 같게 하시고 특수한 사랑을 받는 자가 되게 하소서."

(4) "당신은 내 대제사장이 되소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이름이 흡사 인장에 각인하듯 아론의 흉패 위의 열 두 보석에 새겨지고, 또 에봇의 두 견대나 팔 위의 두 보석에 새겨졌던 것처럼(출 28:11, 12, 21) 내 이름이 당신의 흉패에, 당신의 심장 가까이에 기록되게 하소서."

(5)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로서 당신의 권능이 나를 위해 행사되도록 하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당신의 마음에 인장이 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팔에 인장이 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영원히 당신 품에 안겨 있게 하시며 그것을 알게 하사 나로 위안이 되게 하소서." 

어떤 이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자기 신부에게 내리시는 명령, 즉 "너는 언제나 나를 마음에 두고 네게 대한 나의 사랑을 잊지 말라"라는 명령으로 해석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마음에 인처럼 품어 주시기를 원하고 기대한다면 정녕 우리도 그를 우리 마음에 인장같이 품지 않을 수 없다.

3. 이런 청원을 주장하기 위해 그녀는 사랑의 힘 곧 그에게 대한 자기 사랑의 힘을 호소한다. 

이러한 사랑의 힘은 그녀로 하여금 그에게 그의 사랑의 증거를 요구하게 한다.

(1) 사랑은 격렬하고 세찬 정열이다.

1)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 

사랑을 잃는 자의 고통은 죽음의 고통과 같다. 아니, 사랑하는 대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죽음의 고통은 보잘 것 없는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셨다." 그의 사랑은 사망 그 자체를 이겨내셨던 것이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주셨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자의 참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 참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사랑 이외의 모든 일에 죽도록 만드는 까닭이다. 

그 사랑은 심지어 영혼이 경건한 애정의 날개를 타고 하늘을 향해 위로 솟구쳐 오르는 동안 영혼과 육체를 헤어지게까지 하며 아직까지는 육신의 옷을 입고 있으며 육의 신을 신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이 황홀한 사랑에 사로잡혔던 사도 바울은 자기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신자는 이 세상에 대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2)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다." 음부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그로부터 끌어가려는 것이면 무엇이나 질투하며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 투기한다. 

이는 그를 노엽게 하여 물러가게 할 어떤 일도 행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렇게 되느니 보다는 차라리 "오른쪽 눈을 빼버리고 오른손을 찍어버릴 것이다." 

이보다 잔혹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약하고 겁이 많은 성도들은 자기들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그를 투기한다. 

그들은 바로 그런 질투가 무덤같이 자기들에게 덮쳐서 먹이로 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투기보다 심령을 더 피폐케 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대한 투기는 그에게 대한 저희 사랑의 강도를 증명하는 것이다.

3) "거기서 나온 숯"(우리 성경에는 없음)과 그을음, 그리고 그 불길과 광선은 매우 강하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맹렬함과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힘으로 타오른다. 

그래서 그것은 "격렬한 불길이 나오는 숯불"같으며 번갯불처럼 강력히 꿰뚫는 불길 곧 "여호와의 불"과 같다(시 29:7). 

거룩한 사랑은 영혼 안에 격렬한 열을 발생하게 하는 불이다. 

그 불은 영혼 속에 있는 찌꺼기와 겨를 태워버리고, 그 영혼을 밀납처럼 녹여서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하늘을 향한 불꽃과 같이 위로 날려 보낸다.

(2) 사랑은 용감하고 승리하는 열정이다. 

거룩한 사랑도 그러하다. 영혼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꾸준하며 굳세어서 정당한 방법이나 부정한 수단에 의해서든, "생명"이나 "사망"에 의해서든 그 사랑을 그로부터 물러가게 할 수가 없다(롬 8:38).

1) 죽음과 그 모든 공포도 신자를 놀라게 하여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에서 물러나게 하지는 못한다. 

"많은 물이" 불을 끌 수 있을 것이지만 "이 사랑은 꺼치지 못하고 홍수라도 이 사랑을 엄몰하지는 못한다"(7절). 

이 물의 요란한 소리도 신자의 사랑에는 아무런 공포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무서움을 주려고 아무리 악을 써보았자 그리스도는 여전히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분일 것이다. 

이런 하수의 넘침도 이 사랑에는 한 방울의 물도 묻히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환란 중에서 기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나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사랑할 것이며 "그를 신뢰하리라." 

우리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하수도 끌 수 없으며 어떤 홍수도 그것을 엄몰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장 심한 어려움도 건느셨으며 심지어 피의 바다조차도 건너가셨다. 사랑은 홍수에게도 군림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일로라도 그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을 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생명과 그 모든 위안물도 신자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못하게 꾀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어" 신자를 고용하고 그리스도께로부터 그의 사랑을 뺏어다가 세상과 육신에 다시 두려고 하더라도 그 신자는 최대의 경멸로써 그 제안을 거절해 버릴 것이다. 이것은 사탄이 그리스도를 그 사업으로부터 손 떼시도록 매수하기 위해 이 세상 왕국과 그 모든 영화를 주겠다는 제의를 하였을 때 그가 "사탄아! 물러가라" 하신 것과 같다. 

그런 제안은 전적으로 무시될 것이었다. 그런 것은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나 제의하라.

사랑은 세상의 찡그림으로부터 오는 유혹 못지 아니하게 세상의 미소로부터 오는 시험에 대해서도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격퇴하고 승리하게 해 줄 것이다.

어떤 자는 그 말씀에다 이런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이 만일" 사랑 대신 그에 상당하는 것으로서 그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의 모든 가산"을 그리스도께 "드리고자 한다"면 그것은 멸시를 받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의 것을 구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를 구하시며 재물을 찾으시는 게 아니라 심령을 찾으시는 것이다. 

"내가 가난한 자를 먹이기 위하여 내 모든 재화를 나누어 준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고전 13:1). 

이와 같이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다. 그의 섭리가 주시는 여러 가지 은사들도 그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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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특권과 의무(아 8:8-12)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는 상호 간의 사랑을 충분히 확인하였고 쌍방의 사랑이 "죽음처럼 강하며" 깨뜨려질 수 없다는 것에 일치를 보았다. 

그러므로 이제 본문에서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처럼 그들의 일에 대해 상의하며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심사숙고하고 있다. 

가슴을 함께 맞댄 부부(yoke - fellow:멍에를 같이 메는 자, 동역자,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그들의 친족과 재산에 대해 궁리를 한다.  

따라서 이 행복한 한 쌍은 여기에서 한 누이와 포도원에 관해 서로 조언을 하고 있다.

Ⅰ. 그들은 여기서 그들의 누이 곧 그들의 작은 누이에 대해 상의를 하며 그를 출가시키는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1. 이 신부는 동정적 관심을 갖고 그 누이의 경우를 화제에 올린다(8절).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그 누이는 아직 성숙할 만큼 다 자라지 않았다). 이 작은 누이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녀에게 잘 해 줄 수 있도록 하려면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꼬?"

(1) 이것은 유대 교회가 이방 세계에 대하여 한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유대인들의 교회와 혼인을 하셔서 그들은 풍부한 재산을 받았지만 "잉태치 못하고 생산치 못하는 홀로된" 여인, 곧 저 불쌍한 이방인은 어떻게 될 것인가?(사 54:1) 

그들의 처지(경건한 유대인은 이렇게 말한다)는 매우 비통하며 고독하다. 

그들은 같은 조상, 곧 하나님과 아담의 자손들이므로 "누이들" 이긴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지식으로 고귀하게 되지 못하였으므로 "작은" 누이들이다. 

그들에게는 "유방이 없다." 즉 그들에게는 신적 계시도, 성서도, 사역자도 없으며 빨아먹을 수 있는 위로의 유방도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약속의 언약에 대해 외인"이며 그들 자신의 자녀에게 물려서 양육할 수 있는 교훈의 유방도 없다(벧전 2:2).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꼬?"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주여, 당신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시렵니까? 

솔로몬 당시의 성도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 자비를 쌓아 두고 계신다는 것을 다윗의 시로부터 알 수 있었기에 그의 자비가 빨리 자기들에게 오도록 간구하였다. 

이제 형세는 역전되었다.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와 혼약을 맺었으므로 한 때는 유방이 있었으나 이제는 하나도 없는 가장 큰 누이, 유대인들의 재 영입을 위해 동등한 관심(유대 교회가 이방인을 위해 지녔던 것과)을 가지고 친절히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만약 우리가 이런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 경건한 유대인들의 불신앙적 후손은 저희 조상들의 이런 기도에 배치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이방인들이 "말씀의 청혼"을 받아 그리스도께 구혼되는 날이 오자 불신 유대인들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궁리하기는커녕 그들을 반대할 수 있는 온갖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이것은 저희 죄의 말(斗)을 가득히 채우는 결과가 되었다(살전 2:16).

(2) 혹은 이 말씀은 은혜의 선택에 들기는 했으나 아직 부르심을 받지는 못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멀리서 그리스도 및 그의 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에게는 누이들이며, "이 우리에 들지 않는 다른 양들"이다(요 10:16; 행 18:10). 

그들은 "유방이 없으며" 아직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다(겔 16:7 참조).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에 대한 애정도, 은혜의 원리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청혼함을 받는 날"은 올 것이다. 신랑의 친구되는 사역자들로 말미암아 택한 자들이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와 혼인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은 복된 날이 될 것이요 해방일이 될 것이다. 바로 그 날에 그 한쌍의 결합을 촉진시키고, 그들의 수줍음을 와해시키며 그들을 설득하여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정결한 처녀로서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도록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심을 받은 자들은 어떻게 하면 타인들을 그에게 나오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의 복음의 위대하신 계획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복음의 청사진은 영혼을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것이며 그리스도로부터 떠나간 죄인들을 그에게로 회심시키는 것이다.

2. 이 경우에서 그리스도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곧 결정을 내리며 신부는 그 단안에 동의한다(9절). 

"만일 그녀가 성벽이라면, 즉 선한 사업이 부르심을 받기로 된 영혼들인 이방인들에게 시작된다면, 또 복음으로 말미암아 청혼함을 받을 때에 만약 작은 누이가 말씀을 받아들여서 집을 이루기 위하여 벽을 세우듯 그리스도 위에 스스로 기초를 세우고 여호와께 돌이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은망대를 그녀 뒤에 세울 것이요, 그녀를 그와 같이 훌륭한 망대가 되게 세우리라. 우리는 시작된 선한 역사를 계속하여 성벽이 궁전(우리 성경에는 망대)으로 되기까지, 돌로 된 성벽이 은으로 된 궁전이 될 때까지 하겠노라." 

가이사 아구스도(Augustus Caesay)는 자기가 본 벽돌을 대리석으로 바꾸어 놓았노라고 자랑하였으나 위와 같은 말은 그의 자만을 무색케 한다. 

이 "작은 누이"는 일단 주님께 연결된 이상 "거룩한 성전을 이루어" 가게 될 것이며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될 것이다(엡 2:21, 22). 

"만약 그녀가 문일진대," 즉 성벽에 문짝을 다는 일은 맨 나중에 하는 일로써 이 궁전이 완성되고 이 성벽에 문을 세울 때가 되면(느 7:1)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로다." 

우리는 그녀가 어떤 손상도 입지 않도록 그녀를 세심하게 효과적으로 보호하리라. "우리는" 그 일을 "하겠노라."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다 합치하셔서 그 복되신 작업을 고안하시고 수행하셔서 때가 되면 유종의 미를 장식하실 것이다. 

무엇이 부족하든지 간에 그것은 정돈될 것이며 신앙의 작업은 본능으로 성취될 것이다. 

은혜의 시작은 비록 사소하더라도 그 결말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교회는 아직까지 부르심을 입지 않은 자들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나 혼자 하는 대로 내버려두라. 그들에게 필요한 일은 내가 모두 행하겠다. 그 일은 내게 맡겨라"고 말씀하신다.

3. 이 신부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에게 대한 그의 친절하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한다(10절). 

그녀는 "작은 누이"를 아주 기꺼이 그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이는 그녀 자신도 그의 은혜를 크게 경험한 적이 있었고 그녀로서는 자기의 모든 것이 그의 덕인 까닭이다.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같다." 이 여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 작은 누이가 유방이 없다고 힐난하는게 아니라 그 자신을 들어 작은 누이를 위로하려는 것이다. 

지금의 그녀를 만드셨고 자기 위에 그녀를 건립하시고 자라게 하여 성숙시켰던 바로 그분은 그 마음에 이 일을 의지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그녀에게 해 주신 것과 꼭 같은 친절을 베풀어 주실 수 있고 또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혹은 총애)을 얻은 자 같구나."

여기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예수 그리스도 보시기에 총애를 얻은 이 여인은 그러한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총을 얻고 그에게 용납되는 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자들이며 영원히 복된 자들이다.

(2) 이 여인은 자기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그녀는 그것이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 때문이라고 그에게 치하를 돌린다. 

"그가 나를 성벽으로 만드셨고 내 유방을 망대같이 만드셨다. 딴 어떤 일보다도 바로 이 사례에서 나는 내게 대한 그의 사랑을 경험하였노라." 

"크게 은혜를 입은 자여! 기뻐하라." 이는 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있음이니라.

(3) 하나님께서는 자기 손수 하시는 일을 얼마나 즐거워하시는가! 

우리가 "성벽"이나 "놋 성벽"같이 되어 (렘 1:18) "포학자의 폭풍"(사 25:4)에도 견고히 서 있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사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 주신다.

(4)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큰 기쁨과 자랑을 가지고 말해야 하며, "우리가 그의 보시기에 은총(화평)을 얻은자" 같았던 특별한 시기와 때를 만족스럽게 여기며 되돌아 보아야 한다! 

이러한 날들은 결코 잊을 수가 없는 날들인 것이다.

Ⅱ. 그들은 여기서 그들이 시골에 가지고 있는 "한 포도원"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땅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포도원"이란 개념으로 고려된다(11, 12). 

"솔로몬은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었고," 군중을 소유하는 왕국이 있었으며 무수한 백성을 소유하였다(바알하몬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린 주인이란 뜻임. 역주).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상징이듯 그의 포도원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상징이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감사할 줄 모르는 농부에게 세 준 포도원 비유(마 21:33) 속에서 본문 말씀의 해답을 제시해 주셨다. 

그 계약은 포도 넝쿨 일천 주를 심을 수 있는 만큼의 포도원을 각 소작인들에게 할당하고 각 소작인더러 매년 "은 일천 개"씩을 소작료로 바치라는 것이었다. 

이런 추정의 근거는 비옥한 토양이라면 "은 일천 개"의 가치가 "포도나무 일천 주"에 해당한다는 데에 있다(사 7:23).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1.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의 포도원이요 즐겁고도 특유한 장소로서 많은 존귀로움으로 특권이 주어진다. 

그는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서 하는 것처럼 그 안을 즐겨 거니시며 그 열매를 즐거워하신다.

2. 그는 그 포도원을 "지키는 자"로서 우리 각자에게 자기 포도원을 위탁해 주셨다. 

교회의 특전은 그가 우리에게 맡기신 선한 일을 신성한 신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다. 교회에 봉사하는 일은 우리의 능력대로 할 수 있는, 바로 우리의 일이다. 

"내 아들아, 오늘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결백하던 때의 아담은 "동산을 가꾸고 그것을 지키기"로 되어 있었다.

3. 그는 자기 포도원에 고용하여 그 포도원을 맡긴 자들에게서 소작료를 기대하신다. 

"그는 오셔서 열매를 구하시며," 복음의 특권을 누리는 모든 자들에게 복음의 의무를 요구하신다. 

지위와 신분을 가릴 것 없이 포도원의 특권을 나누어 가진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야 한다. 

또한 그들이 즐기는 이익과 은혜가 얼마나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의 그의 나라의 세력 신장을 위해 조금이라도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비록 그리스도께서 "자기 포도원을 그 지키는 자들에게 세주셨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여전히 그의 것이어서 그는 영원토록 언제나 그 포도원을 지켜 보신다. 

왜냐하면 그가 만일 "주야"로 그것을 감시하지 않으신다면(사 27:3)그가 세를 주신 "파수군들"이 그것을 지킨다고 해도 그 수고가 "헛될" 뿐이기 때문이다(시 27:1).

혹자는 12절 말씀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해석한다. "내게 속한 나의 포도원이 내 앞에 있구나." 

그리고 그들은 그가 자기 재산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관찰한다. 이것은 "내 포도원이라. 내게 속한 것이로구나." 

그에게는 자기 교회가 너무나 소중한 것이어서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그 자신의 소유"(요 13:1)이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교회를 자기 보호 하에 두실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소유이기에 그는 그것을 돌보아 주실 것이다.

5. 포도원의 특권을 즐기는 교회는 그것을 항상 자기 앞에 두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포도원을 맡은 자들에게는 끊임없는 관심과 근면이 요구된다. 이 말씀은 오히려 신부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내게 속한 나의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이 여인은 그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자기의 과오와 어리석음을 슬퍼하였었지만(1:6) 이제는 그 잘못을 고치리라고 작정한다. 

우리의 심령은 우리의 포도원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주 부지런히" 그것을 "지켜야"한다. 즉 우리는 항상 감시와 질투의 눈길을 그 포도밭에 보내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6. 우리의 큰 관심은 그리스도의 포도원에 대해 물어야 할 소작료의 지불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불을 밀리지나 않는가, 그가 "실과를 받기 위해" 보내시는 사자들을 실망시키지는 않는가(마 21:34), 주의를 기울여 살펴 보아야 한다. 

"솔로몬 너는 일천을 얻겠고" 또 얻을 것이다. 이익의 주요 부분은 그리스도께 속한다. 우리의 모든 열매는 그에게 바쳐야 하며 그를 찬미하는 일에 헌납되어야 한다.

7. 우리가 만일 우리 교회의 특권에 대한 찬미를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도 그 일로 말미암아 위로와 은택을 입게 될 것이다. 

만일 그 포도원의 주인이 자기 세금을 받는다면 그 포도원 지기들도 그들의 관리와 수고에 대해 충분한 댓가를 지불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백을 얻을 것이다. 이 액수는 틀림없이 넉넉한 액수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는 셈이며 그로 인해 말로 다할 수 없는 흑자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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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재림(아 8:13-14)

그리스도와 그의 배우자는 여기에서 잠시 이별을 고한다. 

그녀는 땅 위에 있는 "동산"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그 동산에는 그녀가 그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하늘에 있는 "향기로운 산들"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곳에는 그가 해야할 일이 있으니 곧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그녀를 돌보아 주는 일이다. 

그들이 이제 어떤 사랑을 상호간에 품고서 이별하는지 살펴보자.

Ⅰ. 그는 이 여인에게서 자주 소식 듣게 되기를 원한다. 

이 여인은 즉각 펜을 들고 쓸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어야 하며 그에게 글을 꼭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여인은 어디로 써야 할지도 알고 있다(13절). 

"아래의 동산에서 위에 있는 낙원으로 이사올 때까지 당분간은 동산을 손질하며 돌보고 있는 너 동산에 거하는 여자야! 오! 너 믿는 자야! (네가 누구이든 간에 신자이기만 하다면) 엄숙한 성례의 동산에 거하는 너, 교회의 교제와 친교의 동산에 거하는 너 믿는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행복해 하니 나도 듣게 하려무나."

1. 그리스도의 친구들은 서로 연락을 잘하고 있어야 하며 친한 동무들처럼 서로 자주 말을 건네야 하고(말 3:16) 서로의 음성을 경청해야 한다. 

그들은 서로 훈계하고 용기를 주며 존경해야 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왕국과 인내하심 안에서는 서로 동무들이다. 

그러므로 여행의 길동무처럼 상호간의 자유를 유지하면서도, 수줍어하거나 피차 남남인 듯 행세해서는 아니 된다. 

"성도의 교제"는 우리 신앙 고백의 한 조문일 뿐만 아니라 "날마다 서로 권면"하며 피차 훈계받기를 기뻐하라는 우리 언약의 한 조목이다. 

교회의 소리가 그리스도의 음성과 일치하는 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의 동무들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2. 우리는 성도들 상호 간의 교제 때문에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태만히 해서는 안 되며 그 교제 중에서도 그로 하여금 우리의 얼굴을 보게 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시게 해야 한다. 그는 여기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다.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구나. 그것은 저들에게 즐거움이 된다. 

"나로 그것을 듣게 하려무나. 너는 네게 억울한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네 불평을 얘기한다. 왜 너는 그런 일을 내게 가져오지 않으며 어찌하여 나로 듣게 하지 않느냐? 너는 그들과는 자유롭다. 그와 같이 내게도 흉허물 없이 대하도록 하여라. 네 마음을 내게 쏟아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어떤 경우에나 자기에게로 연락해 주도록 명령하셨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의 기도를 기뻐 받으시며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요구하시기까지 하신다. 

그는 그것을 부담으로 여기시는 게 아니라 영예요 "기쁨"이라고 간주하신다(잠 15:8). 

우리는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기도로 씨름하고 애 쓸 때에도 "그로" 우리 기도를 "듣게 함"이 된다.

억지로 졸라대는 것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예의가 아니라 여겨지더라도!! 그는 강요반 애걸반의 요구를 [진실로!!] 듣고 싶어 한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나로 하여금 들리게 해다오"라는 뜻으로 해독한다. 

"너는 네 동무들에게 얘기할 기회가 자주 있다. 그리고 네 친구들은 네 얘기에 귀를 기울이더구나. 그들에게 내 얘기도 좀 해다오. 내 이름이 그들 중에서 들리게 해 다오. 내가 너희의 담화 속에서 화제가 되게 해 주려므나."(대주교 Usher가 늘 말하던 대로) "너희는 헤어지기 전에 그리스도에 관한 한 마디씩 말씀을 나누어라." 

이보다 더 어울리고 더 즐겁게 하는 얘기도 없는 것이다.

Ⅱ. 이 여인은 그의 신속한 귀환을 소원하고 있다(14절).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서둘러 다시 오셔서 나를 당신께로 받아 들이시라. 너는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 동산은 살기에 즐거운 곳입니다마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이곳을 떠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그것은 내가 바라고 기다리며 동경하는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주 예수여! 오소서 속히 오시옵소서!"

1.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물러가 계시지만 다시금 돌아 오실 것이다. 

"즐거움의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그는" 더 높고 "향기로운 산들" 곧 하늘 나라에 "계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때에는 올 것이며 "그 때에는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신비를 완성시키시고 그 신비로운 몸을 다 이루신 뒤, 보다 더 훌륭한 상계의 모든 권세와 화려함으로 나타나시는 그를 모든 사람은 보게 될 것이다.

2. 진정한 신자들은 "주의 날"이 이르기를 기다릴 뿐만 아니라 재촉하기까지 하는데, 이는 주께서 한시 바삐 서둘러 오시도록 하고자 하는 뜻에서가 아니라 중간 계획이 전부다 성취될 수 있도록 하고 그 뒤에 즉 조만간에 종말이 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자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가 "자기 약속에 대해 더딘 줄"로 생각하여 이토록 그와 오심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다림을 통해 그에게 대한 그들의 애정의 강도를 표현하는 것이요 그가 다시 오실 때에 그들이 기대하는 바가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3. 그리스도를 저희의 "사랑하는 자, 가장 사랑하는 자"라고 전심으로 부를 수 있는 자들만이 충분한 근거 아래 그가 빨리 재림해 주시도록 간절히 사모할 수 있다. 

그 마음이 세상을 믿고 따르며, 그 애정을 세상 것에 두는 자들로서는 그의 나타나심을 사랑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들은 그의 출현을 두려워해야만 된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땅과, 저희가 저희 몫으로 택한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불살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그의 재림을 동경한다. 그 날에는 그의 영광과 저희 행복이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우리는 때로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은혜로 말미암아 위로와 만족을 얻는다. 

이를 맛본 우리는 영광의 나라에서 그를 직접 바라보고 그를 완전히 향유하기를 더욱 간절히 원하게 된다. 

자기의 사랑하는 자와 정다운 담화를 마친 뒤 이 여인은 헤어져야 할 순간이 다가온 것을 깨닫고는 이런 행복이 미래에 완성되며 영속화하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이 광야에서 만나게 되는 포도송이는 우리로 하여금 가나안에서 수확하게 될 풍요로운 포도 추수를 동경하게 만든다. 

그의 뜰에서의 하루가 그토록 달콤하다면 너울 속에 있는 영원은 어떠한 것이겠는가! 천국이 이러한 것이라면 내가 거기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 우리는 다시 나타날 영광을 기쁘게 기대하고 그를 향해 거룩하고도 겸손한 호흡을 하면서 우리 기도를 마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다는 전망만 갖고 헤어져서는 안된다. 

매 번의 안식일을 보내면서 영원한 안식일, 곧 그날 끝에 밤이 없고 그 날이 지나도 평일이 오지 않는 영원한 안식일을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성찬식을 끝낼 때마다 영원한 잔치, 곧 우리가 그의 나라의 식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며 거기 있는 새술을 마시게 될 잔치를 생각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시간과 날이 없어지는 "장자(長子)의 교회의 총회" 가 모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면서 매 경건한 집회를 끝내는 것이 좋은 것이다. 

복되신 예수님께서 저 복된 날을 앞당기시게 하소서! 

"그의 수레바퀴는 어찌 그리 오래도록 오고 있는가?" "그 수레들의 바퀴는 어찌하여 지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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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사랑은 죽음같이 강함
##1-7절, 사랑은 죽음같이 강함
[1절] 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라는 표현은 어릴 때부터 한 가정에서 같은 부모 밑에서 정상적으로 자란 형제 관계를 말한다. 그런 관계의 형제는 가족의 정이 깊고 두터울 것이다. 술람미 여자가 솔로몬과 그런 관계였다면, 그가 밖에서 그를 만나 입을 맞추어도 그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다. 신부가 신랑에 대해 그렇게 표현한 것은 신랑과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사모하는 그의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술람미 여자는 시골 처녀였고, 솔로몬은 한 나라의 왕이었다. 술람미 여자가 감히 왕인 솔로몬에게 접근하여 입을 맞추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그를 자기 처지와 분수를 모르는 자라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며, 그가 사랑하는 자에게 자유로이 접근하고 교제할 수 있기를 사모하는 것이다.
우리의 처지도 비슷하다. 주 예수께서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광의 주님이시며, 우리는 비천한 인생이요 죄인이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주님과 교제하며 주의 사랑을 입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께서는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며 우리와 친근히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요 20:17; 롬 8:29; 히 2:11).
[2절]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 
본절 전반부는 영어성경들처럼 “내가 너를 이끌어 나를 교훈한 내 어미 집에 들였으리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KJV, NASB, NIV).
‘나를 교훈한 내 어미 집’은 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 갈라디아서 4:26, “위에 있는 예루살렘[신약교회]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교회는 성도들의 어머니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출산하며 교훈하며 양육한다. 신부는 신랑을 이끌어 그를 교훈한 어머니의 집과 같은 교회 안으로 가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교회에 있다. 세상에 복잡한 많은 일들이 있어도, 주님의 마음과 눈길은 그 무엇보다 교회의 일들에 있다. 그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섬김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신부는 그의 어미의 집에서 석류즙으로 만든 향기로운 술로 신랑에게 마시울 것이라고 말한다. ‘석류즙으로 만든 향기로운 술’은 그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음료수를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신랑을 위한 신부의 최선의 봉사와 섬김을 가리킬 것이다.
신명기 6:5는 우리에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좋은 것으로 섬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그가 어떤 분이시며 그가 죄인인 우리에게 어떤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깨닫는 자마다 그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리려 할 것이다.
주님의 귀하신 인격과 사랑을 깨달은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그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었다(요 12:3). 그가 부은 향유는 가격이 300데나리온 즉 오늘날 우리 돈으로 약 3천만원의 가치이었다.
[3-4절] 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아가 2:6-7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손’은 주의 사랑과 배려와 보호를 가리킬 것이다. 보통 ‘왼손’은 약한 손, ‘오른손’은 힘있는 손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은밀하게 섭리하기도 하시고 드러나게 섭리하기도 하신다. 성도들은 주의 사랑과 섭리의 손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보호함을 받는다.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라고 증거했고(신 33:27),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23:4).
주 예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 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고 (요 10:28),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말하였고(롬 8:35), 또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하실지어다”라고 말하였다(살후 3:16).
4절은, 본서의 앞부분의 구절들에서와 같이(2:7; 3:5), 신랑의 말이라고 보인다(NASB). 신랑은 친구들에게 잠든 신부를 흔들거나 깨우지 말라고 말한다. 신랑은 신부의 사랑스러운 잠든 모습이 유지되도록, 신부가 혹시 잠에서 깨면 싫증이나 화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5절]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辛苦)한[해산의 고통을 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신부는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로 묘사된다. 거친 들은 나무 그늘이나 샘이 없고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가 있고 사나운 짐승들이 있는 곳이다. 그것은 고난의 세상을 상징한 듯하다. 이 세상에는 악한 자들이 많고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세상에서 ‘그 사랑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구원을 얻었고 지금도 그를 의지하며 산다.
본절 후반부는 신랑의 말(NASB, Poole)이라기보다 신부의 말(NIV,JFB)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네 어미,’ ‘너를 낳은,’ ‘너를 깨웠노라’는 말들의 ‘네’ 혹은 ‘너’라는 말이 원문에서 남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부가 신랑에 대해 하는 말이라고 본다.
본문은 사과나무 아래서 그의 어미가 그를 낳기 위해 해산의 고통을 하였다고 묘사한다. 여기의 ‘그의 어미’는 구약교회를 가리킬 것이다. 사과나무는 아가 2:3에서 신랑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구약교회는 에덴 동산에서부터 약속된(창 3:15) 메시아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사모하여 왔고 마침내 때가 되어 그가 오셨다(요 1:14). 구약교회는 큰 고통 중에 약속된 메시야를 낳은 것과 같았다.
신부는 그 사과나무 아래에서 신랑을 깨웠다고 말한다. 그는 신랑과의 교제를 사과나무 열매를 먹는 것으로 비유하였었다(2:3). 그가 신랑을 깨웠다는 말은 기도로 그의 위로와 도움을 구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주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큰 풍랑을 만났던 제자들처럼(막 4:38), 성도는 주께 기도하며 그의 도움과 위로를 구한다.
[6-7절] 너는 나를 인(印)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圖章)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무덤]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家産)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이것은 신부의 소원과 고백이다. 도장은 사람에게 귀중한 것이다. 신부는 신랑이 자신을 도장같이 마음에 혹은 팔 혹은 손가락에 가장 귀중하게 간직하라고 말한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음이 부자도 권세자도 지혜자도 다 이기듯이, 사랑은 그렇게 강하다. ‘투기’는 뜨거운 사랑을 가리킨다. 사랑은 성격상 소유욕을 가지며 질투는 그것의 한 단면이다. 뜨거운 사랑은 무덤같이 모든 것을 삼키며 불같이 모든 것을 태우며 모든 것을 이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고전 13:7).
신부는 사랑의 강인함과 가치에 대해 계속 말한다.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고 홍수라도 엄몰치 못한다고 말한다. 많은 물과 홍수는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들을 가리킬 것이다. 또 그 사랑은 온 가산(家産)을 주고도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 사랑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또 그 사랑을 깨닫고 응답하는 성도들의 사랑이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환난이나 핍박이나 굶주림이나 헐벗음이나 죽음까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5).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고(고후5:15),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빌 3:8).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주께서 우리를 형제같이 여기심을 감사하며 우리는 담대히 그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히 4:16).
둘째로, 우리는 주께서 능력과 사랑의 손으로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품으시며 때마다 일마다 평안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고 확신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거친 들 같은 이 세상에서 구주 예수님만 의지하고, 또 많은 고난 중에서도 구주 예수님의 도움과 위로를 구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특히 주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그는 우리를 인같이 마음에 품으셨고 도장같이 팔에 두셨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이제 우리는 그의 사랑을 본받아 그를 사랑하며 그를 따라가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정성과 사랑을 다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일에 힘써야 한다.
##8-14절, 포도원 같은 교회
[8절]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본절은 친구들의 말이라고 본다.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오래된 신자들이 볼 때 초신자이거나, 유대인들의 교회에서 볼 때 장차 교회에 편입될 이방인들의 교회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그는 어리며 결혼할 만큼 성숙되지 못하다. 그는 자녀를 출산하거나 양육할 만하지 못하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전도자들을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초청받을 때 오래된 신자들 혹은 유대인들의 교회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로 나오는 것을 원망하고 불평하였다(눅15:1-2). 유대인들의 교회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원망하고 불평할 것인가? 오래된 신자들은 불신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 올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그들은 그에 대해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말고 도리어 그를 기뻐하고 사랑하고 영접하고 그를 위로 격려하며 그의 약한 믿음을 북돋우어 주어야 할 것이다.
[9절] 그가 성벽일진대 우리는 은 망대(티라 )[흉벽=톱니자국 난간)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진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초신자가 굳게 믿었다 할지라도 마귀의 시험과 공격이 예상되므로 성벽에 은 망대를 세우듯이 그를 영적으로 더욱 견고케 해야 할 것이며 마귀와 악한 자들이 그의 마음 속으로 침입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의 마음 문을 백향목 판자로 튼튼하고 견고하게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이 먼저 믿은 자들, 오래된 신자들이 힘써야 할 의무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히3:13)고 말하고, 또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교훈하였다(살전 5:14).
[10절]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솰롬 )[평안]을 얻은 자 같구나.
본절은 신부의 말이라고 본다. 신부는 교회를 상징할 것이다. 신부는 자신을 성벽이라고 표현한다. 성벽은 도시를 원수의 침공으로부터 방어하는 벽이다. 옛날의 도시들 중에는 성벽 있는 도시도 있고 성벽 없는 도시도 있었다. 성벽으로 묘사된 교회는 견고한 교회이다. 그것은 확실한 지식과 굳센 믿음과 견고한 소망을 가진 교회이다.
신부는 또 그의 유방이 망대 같다고 표현한다. 신부의 유방은 교회의 말씀의 봉사자들, 즉 어린 신자들을 교훈하고 양육하는 목사들과 전도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신부의 우뚝솟은 유방은 망대에 비유되었다. 망대는 적의 동태를 살피고 분별하여 대처하는 용도로 쓰이는 곳이다. 이와 같이, 교회의 목사들은 굳건한 믿음과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양들을 교훈하며 지키며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신부는 이제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평안을 얻은 자와 같구나”라고 고백한다. 주께서는 그를 진실히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평안을 풍성히 주신다. 이사야 26:1-3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신실함]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다(요 14:27).
[11절]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1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신부는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큰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맡기고 그들로 그 실과를 인해 은 1천을 바치게 한다고 말한다. 이사야 7:23은 포도나무 1주에 은 1개씩의 가치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그의 포도원은 포도나무가 1천 주나 되는 포도원일 것이다. 그의 포도원은 크고 거기서 일하는 농부들도 많았을 것이다.
솔로몬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본다. 교회는 큰 포도원과 같고 우리는 주인 되신 하나님께 풍성한 실과를 바쳐야 한다.
[12절] 솔로몬 너는 1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2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신부는 솔로몬이 1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들이 2백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과 지키는 자들 혹은 포도원 농부들은 교회의 목사들과 전도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풍성한 선한 열매들을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은 1천 개로 표현된다.
그러나 포도원의 농부들에게도 은 2백이 돌아간다고 표현된다. 그것은 교회의 일꾼된 주의 종들에게 주어질 상을 가리킨 것 같다. 사도바울은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말했다(고전 3:8).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라는 말은 신랑의 말일 것이다(매튜 풀, 매튜 헨리, 박윤선). 교회는 주 예수께서 친히 피흘려 사신 그의 특별한 소유이며 영원토록 그러하고(행 20:28; 요 10:28) 밤낮 또 세상 끝날까지 그의 보호와 돌보심을 얻을 것이다(사 27:3; 마 28:20). 주 예수께서는 오른손으로 일곱 별[교회의 목사들]을 붙잡으시고 일곱 금 촛대[교회들] 사이로 다니신다(계 2:1).
[13절] 너 동산(간님 )[동산들]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
본문은 신랑의 말이다. 신랑은 신부를 ‘동산들에 거한 자’라고 표현한다. 신부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가리킨다. 성도는 세상의 황량한 들판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고 이 세상에서 구원함을 얻은 자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5:19). 그러므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곳,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지키시고 돌보시는 곳, 즉 하나님의 동산과 같다. 교회들은 하나님의 포도원 동산들과 같다. ‘동산들’이라는 복수명사는 많은 개체 교회들, 즉 각 지역의 회중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세계의 여러 지역에는 하나님의 동산들이 많이 있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이 있다.
신랑은 친구들이 신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말한다. 친구들은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성경은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라고 말하고(시 34:7) 또 모든 천사들은 봉사하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해 섬기라고 보내신 자들이라고 말한다(히 1:14). 그들은 성도들이 주께 올리는 찬송과 기도의 소리들을 듣고 기뻐한다.
이제 신랑은 신부의 목소리를 듣기 원한다고 말한다. 주님은 우리의 진심의 예배를 원하신다(요 4:23). 그는 우리의 찬송을 원하신다(히 13:15). 그는 우리의 신앙고백과 기도의 목소리, 복음 전파의 목소리를 기뻐하신다. 그는 우리의 회개의 기도를 원하신다(시 51:17).
[14절]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본문은 신부의 말이다. 신랑은 신부의 ‘사랑하는 자’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주 예수께서는 그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고 세 번이나 그 질문을 반복하셨고, 베드로는 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였다(요 21:15-17).
신부는 사랑하는 신랑이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 어린 사슴같이 빨리 달려오기를 원한다. 아가 2:17에서 신부는 베데르 산을 말했었는데, 그것은 고난의 세상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아가 4:6에서 신랑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겠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본문에서 말한 향기로운 산들과 같이 성령의 은혜와 하나님께 올리는 성도들의 예배와 기도와 선한 행실들의 향기로운 제물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신약교회를 상징한다고 본다.
신부는 사랑스런 신랑을 노루와 어린 사슴에 비유한다. 아가 2:9,17에서도 같은 표현이 나온다. 노루와 어린 사슴은 그 짐승들의 예민하고 민첩함과 순진함을 나타낸다고 본다. 신랑은 온순한 인격자이시며 민첩하게 오실 수 있는 자로 묘사된다.
신부는 신랑이 빨리 달려오기를 원한다. 신랑은 지금 신부를 떠나있으며 신부는 그를 만나기를 갈망하고 있다. 마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 교회를 떠나 계시며 교회가 그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며 갈망하는 것과 같다. 성도는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이다(딤후 4:8). 주께서는 “내가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고(계 22:7, 12, 20) 우리는 그의 신실한 약속을 믿고 소망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먼저 믿은 자들은 처음 믿는 자들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그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성벽같이 믿음과 소망을 굳게 갖고 원수 마귀의 궤계와 악한 일들을 분별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려야 한다.
셋째로, 교회는 주 예수께서 친히 소유하시고 보호하시고 관리하시는 포도원과 같고, 우리는 그와 그의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동산에서 음성으로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께 회개와 신앙고백, 찬송과 기도, 전도의 목소리를 올려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고전 15:22; 롬 14:7-8) 또 그의 재림을 사모해야 한다. “내가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신 대로, 그는 진실로 다시 오실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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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summer.M1.하나님의 경륜의 궁극적인 목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시고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심 (성경: 엡 1:4-5, 5:26-27, 히 2:10-11, 살전 5:23)
Ⅰ. 성경이라는 ‘상자’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는 ‘하나님의 경륜’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시고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신다는 계시이다.
A.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사람이 하나님이 됨(현재의 진리)
B.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 신성한 속성들을 인간 미덕들 안에서 표현함-딤전 1:3-4
C.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하나님을 접촉하고 받아들이는 영을 가진 사람을 창조함
 -창 1:26, 2:7, 슥 12:1
D.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재생산하여 새로운 종류를 산출함
 1. 하나님의 종류도 아니고 인류도 아님 ‘하나님-사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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