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상16.다윗의 길(주님애통의마음눈물앎=분수령적회개+매일회개하는택자의 길--보지못하는것바라며참음으로기다리며행함_롬8:25), 여로보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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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6장 [290.우리는주님을늘배반하나]

:: ###Q을 모른채!! 여로보암의 길로[(남유다)말씀 따른 질서와 [회개/애통]순종의 행함, 곧 유기적 생명 공동체를 떠나간, (북이스라엘)약육강식/스펙쌓기/끼리끼리의 패권적 힘의 논리로 움직이며 잡아먹는 벨리알 공동체] 행하는 지도자에게 부화뇌동하여 따름은 결국 함께 망하는 결말에 도달함을 명심하라!!

....((여로보암을 따라 르호보암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반역에 가담하였던[=이는 결국 여호와 떠남이었다] 자의 자손 또한 함께 그 반역자의 무리에 포함될 수 밖에 없으니... "자신에게 닥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그  연원을 따라 조상들에게까지 올라가서 분수령적 회개로 주께 돌이켜야 한다!!))###

:: 산당제사 = 기복  ..

@@여로보암의 길....[[케네디 가문 :: 19세기 후반에 메사추세츠로 이주해 온, 아일랜드 노동자 집안 :: 금주법 어기고 (밀주 생산 유통으로 부를 형성한 )검은 마피아단이 그 배경///케네디 집안 인물들-- 가톨릭 바탕이라 하지만 속내는 무신론!! : 20세기-21세기에 이르러 미국 교육계에 악영향 끼침..창조론 멸시/주기도문 폐지+진화론 교육 강제 조장]]---이혼/재혼-삼혼==>외모/스펙이야말로 세상 최고 가치라 옹호 조장@@ 미 북동부지역의 메사추세츠는 (영국 성공회와의 갈등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주한) 1620-1630년대 청교도들[메이플라워호 탑승 이민자 102명중 35명만이 청교도들이었지만 예수믿음 하나로살기 선택한 택자들이었음]의 최초 정착지....한편, 20세기에 들어와서 크게 부각된, 창조주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인본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바탕한 교육을 강조함으로써 유명(악명)해진바, 아이러니하게도 (밀주 제조로 유명한 블랙마피아와 깊이 연관된!!) 아일랜드 가톨릭 배경을 가지고 있는 (흡사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아합-이세벨 모델의) 현대식 재탕같은, 케네디 일가의 고향이기도 함..

**다윗의 길 : 여호와 신앙의 순전성 ::: 먼저 Q!!, 곧 YHWH 나라와 그분의 의 추구하기!![말씀 경청/순종]통회-자복-온전한 순종(구속사적 계보 유지 확장증대--그리스도의 교회 도래)

**여로보암의 길(죄악..[그 바탕엔 자행자지함: 지레짐작-짐짓추정-섣부른 결정에 이르는, 염려-근심-두려움에 자신을 방치함으로써, 주께 묻고 듣는, 디윗의 길을 떠남이었으니!!, 결국!! 철저히 불순종/여호와 대적) = *금송아지 우상 숭배 --*따로 예배장소 지정 --*아무나 제사장 삼음 :::세인 모두가 가고싶어하는 (로망)길이로되, 그 자신과 후손 모두 멸망당하는 길(예-김일성 가계, 케네디 재클린 오나시스)

1.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이르시되

......선견자 하나니의 아들 예후...선견자 하나니는 [여호와께 묻지 않고!! 자의적으로 행하여] 아사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 보물을 벤하닷에게 주어 [예루살렘 북방6km지점의 라마 성읍 건축 시도--예루살렘 왕래 차단 목적으로] 이스라엘왕 바아사와의 조약을 깨고 더 나아가 바아사의 뒤를 공격해 달라 (= 갈릴리-잇사갈 지역..왕의 대로 인근...벤하닷이 탐내고 있었다!!) 한 결정에 대해 크게 꾸짖고 회개하기를 바랬으나,ㅡ 오히려 유다왕 아사는 그를 투옥하고 말았다....이제, 그의 아들 선지자 예후에게 Q 말씀이 임한바, 바아사를 꾸짖고 계셨다

.....아사초기10년(1차 개혁 진행)==>100만대군 동원한 구스 침략전쟁 승리후10년간, 제2차 개혁 진행(제25-35년) ::: 이 때까지 평안...그후 북이스라엘 바아사의 라마 건축 위해 남유다를 도발 -->(주께 묻지 않음으로써!!, 벤하닷에게 왕궁과 성전내의 은금을 보내어 계략으로 떠나게 함 (바아사가 라마 건축하려 가져간 물품으로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전쟁이 잦았음을 의미...[대하16:7-10...전쟁이 여호와의 징계로 야기됨...*7.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8.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9.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10.아사가 노하여 선견자(하나니)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11.아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12.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13.아사가 왕위에 있은 지 사십일 년 후에 죽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14.다윗 성에 자기를 위하여 파 두었던 묘실에 무리가 장사하되 그의 시체를 법대로 만든 각양 향 재료를 가득히 채운 상에 두고 또 그것을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더라]....아쉽게도 마지막6년간은 교만해져서 자행자지하였던바, 아람의 벤하닷에게 북이스라엘 바아사 공격을 의뢰함=(그것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하나니를 투옥함)

......한편, 하나니의 아들 예후는 일전에 주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왕 바아사를 꾸짖은바 있지만, 그 후 여호사밧 왕이 아합과 함께 한 길르앗 라못 참전에 대해서 꾸짖고 있다..[대하19:2,3......*2.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3.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은 예후를 그대로 두고 있다!!

2.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감히 , 자의적으로 행하는바, 라마 건축 통해 백성들이 주께 경배하러 예루살렘 찾음을 막고자함으로써]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3.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4.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그에게 속한 자가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

5.  ○바아사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6.  바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디르사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엘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7.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선지자 예후에게도 임하사 바아사와 그의 집을 꾸짖으심은 그가 여로보암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며 그의 손의 행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음이며 또 그의 집을 쳤음이더라


[458.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때] [370.주 안에 있는 나에게] [405.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406. 곤한 내영혼 편히 쉴 곳과]


===이스라엘 왕 엘라

8.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그 왕위에 있으니라

9.  엘라가 디르사에 있어 왕궁 맡은 자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 그 신하 곧 병거 절반을 통솔한 지휘관 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

10.  시므리가 들어가서 그를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이라

11.  시므리가 왕이 되어 왕위에 오를 때에 바아사의 온 집안 사람들을 죽이되 남자는 그의 친족이든지 그의 친구든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12.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선지자 예후를 통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여호와의 말씀 같이 되었으니

13.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의 아들 엘라의 죄 때문이라 그들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14.  엘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왕 시므리

15.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 일 동안 왕이 되니라 그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16.  진 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엘라]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깁브돈에 출전-대치 중이던]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매

17.  [왕으로서]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 쌌더라

18.  시므리가 성읍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에서 죽었으니

19.  이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니라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20.  시므리의 남은 행위와 그가 반역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왕 오므리

21.  ○그 때에[--시므리의 자살시점]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고 그 절반은 [부친 이름이나 모친 이름 없음]오므리를 [왕 삼고]따랐더니

22.  오므리를 따른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른 백성을 이긴지라(만4년간 내란 전쟁 지속됨)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23.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십이 년 동안 왕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24.  그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권세 악용- 저가로 강탈 + "이스라엘 땅, 백성간 사적 매매 금지"의  Q 명령 정면 도전!!))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읍 이름을 그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26.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27.  오므리가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8.  오므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스라엘 왕 아합(그야말로 머리 역할 포기한, "아내만 따르는 바보" 됨!!)

::: 부친 오므리는 정책적으로 바알 숭배를 장려하였고!!, 아합은 더 나아가 왕가의 공식 제의 마저 바알 숭배 제의로 대치함--북이스라엘 전체에!! [세상적 기복신앙 오염 확산의] 바알 숭배 공공연하게 퍼뜨림!! + 이세벨의, 여호와의 선지자 박해와 선지학교 잔멸 시도 용인!!- 그 시작은,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은것!!(((불신결혼, 그 자체!!--서로!! 금슬은 너무 좋다)))

29.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이세벨의 꾐 따라!! 우상 숭배를 더 적극 권장, "권력욕에 집착한바, <내겐, 불가능 없다>며 절대권력의 화신" 이세벨은 그 자신 스스로를 (창조주 Q 부정 + 기복주의적 인본주의 추구 = 오늘날 무신론족 포스트모더니즘의 극단/정점), 곧 사명 받은  바알-아세라 선교사로 여겼다]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열렬한 바알 제사장]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아내 이세벨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바알-아세라 숭배자가 된바]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  [사마리아에 바알신전 건축하고]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상을 [허용+]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34.  그 시대에 [요단 동편 취하려는 아합의 명따라]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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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6장


1.  Now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Jehu the son of Hanani against Baasha, saying,

2.  "Inasmuch as I exalted you from the dust and made you leader over My people Israel, and you have walked in the way of Jeroboam and have made My people Israel sin, provoking Me to anger with their sins,

3.  behold, I will consume Baasha and his house, and I will make your house like the house of Jeroboam the son of Nebat.

4.  "Anyone of Baasha who dies in the city the dogs shall eat, and anyone of his who dies in the field the birds of the heavens will eat."

5.  Now the rest of the acts of Baasha and what he did and his might,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

6.  And Baasha slept with his fathers and was buried in Tirzah, and Elah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7.  Moreover, the word of the LORD through the prophet Jehu the son of Hanani also came against Baasha and his household, both because of all the evil which he did in the sight of the LORD, provoking Him to anger with the work of his hands, in being like the house of Jeroboam, and because he struck it.

8.  In the twenty-sixth year of Asa king of Judah, Elah the son of Baasha became king over Israel at Tirzah, [and reigned] two years.

9.  And his servant Zimri, commander of half his chariots, conspired against him. Now he [was] at Tirzah drinking himself drunk in the house of Arza, who [was] over the household at Tirzah.

10.  Then Zimri went in and struck him and put him to death, in the twenty-seventh year of Asa king of Judah, and became king in his place.

11.  And it came about, when he became king, as soon as he sat on his throne, that he killed all the household of Baasha; he did not leave a single male, neither of his relatives nor of his friends.

12.  Thus Zimri destroyed all the household of Baasha,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spoke against Baasha through Jehu the prophet,

13.  for all the sins of Baasha and the sins of Elah his son, which they sinned and which they made Israel sin, provoking the LORD God of Israel to anger with their idols.

14.  Now the rest of the acts of Elah and all that he di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

15.  In the twenty-seventh year of Asa king of Judah, Zimri reigned seven days at Tirzah. Now the people were camped against Gibbethon, which belonged to the Philistines.

16.  And the people who were camped heard it said, "Zimri has conspired and has also struck down the king." Therefore all Israel made Omri, the commander of the army, king over Israel that day in the camp.

17.  Then Omri and all Israel with him went up from Gibbethon, and they besieged Tirzah.

18.  And it came about, when Zimri saw that the city was taken, that he went into the citadel of the king's house and burned the king's house over him with fire, and died,

19.  because of his sins which he sinned, doing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walking in the way of Jeroboam, and in his sin which he did, making Israel sin.

20.  Now the rest of the acts of Zimri and his conspiracy which he carried out,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

21.  Then the people of Israel were divided into two parts: half of the people followed Tibni the son of Ginath, to make him king; the [other] half followed Omri.

22.  But the people who followed Omri prevailed over the people who followed Tibni the son of Ginath. And Tibni died and Omri became king.

23.  In the thirty-first year of Asa king of Judah, Omri became king over Israel, [and reigned] twelve years; he reigned six years at Tirzah.

24.  And he bought the hill Samaria from Shemer for two talents of silver; and he built on the hill, and named the city which he built Samaria, after the name of Shemer, the owner of the hill.

25.  And Omri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acted more wickedly than all who [were] before him.

26.  For he walked in all the way of Jeroboam the son of Nebat and in his sins which he made Israel sin, provoking the LORD God of Israel with their idols.

27.  Now the rest of the acts of Omri which he did and his might which he showe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

28.  So Omri slept with his fathers, and was buried in Samaria; and Ahab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29.  Now Ahab the son of Omri became king over Israel in the thirty-eighth year of Asa king of Judah, and Ahab the son of Omri reigned over Israel in Samaria twenty-two years.

30.  And Ahab the son of Omri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more than all who were before him.

31.  And it came about, as though it had been a trivial thing for him to walk in the sins of Jeroboam the son of Nebat, that he married Jezebel the daughter of Ethbaal king of the Sidonians, and went to serve Baal and worshiped him.

32.  So he erected an altar for Baal in the house of Baal, which he built in Samaria.

33.  And Ahab also made the Asherah. Thus Ahab did more to provoke the LORD God of Israel than all the kings of Israel who were before him. 

34.  In his days Hiel the Bethelite built Jericho; he laid its foundations with the [loss of] Abiram his first-born, and set up its gates with the [loss of] his youngest son Segub,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spoke by Joshua the son of N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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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6장 (개요)

본 장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왕국과 그 혁명사―단기간에 많은 혁명이 반복되었다―의 서술에 할당되고 있다. 24년간 왕가였다가 멸족당한 여로보암 가문의 기사를 우리는 앞 장에서 읽었는데, 본 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게 된다.

1. 26년간을 왕가로 내려온 뒤 파멸될 것이라는 바아사 가문에 대한 예언이 한 선지자의 입을 통해 나오고(1-7), 그 예언은 그의 대장 중 하나였던 시므리에 의해 성취된다(8-14).

2. 시므리의 칠 일 천하와 그의 급격한 패망(15-20).

3. 오므리와 디브니 간의 투쟁, 그리고 오므리의 우세와 그의 집권(21-28).

4. 아합의 통치의 시작. 아합에 대해서는 우리가 나중에 많이 읽게 될 것이다(29-33).

5. 여리고의 재건(34).

이스라엘이 혼란의 와중에서 이렇게 요동하는 동안 유다에서는 만사가 잘 되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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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아사 가문의 멸망에 대한 예고(왕상 16:1-14)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Ⅰ. 바아사 가문의 멸망에 대한 예고. 그는 자기 가문을 일으켜 든든히 세우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가능성을 가진 자였다. 즉 민첩하고 도략이 있으며 대담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우상 숭배자였다. 이로 인해 그는 자기 가족을 파멸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람을 보내셔서 그 점을 경고해 주셨다.

(1) 이것은 그가 감동되어 뉘우치고 개심하면 파멸을 막아 주려고 하신 조치였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는 분으로서, 위협적 경고를 통해 치지 않을 수 있으시면 치지 않게 되기를 목적으로 하시기 때문이다.

(2) 그것은 그가 회개치 않을 경우 파멸이 올 때, 누가 그 도구가 되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행위이며 죄에 대한 형벌이라는 것을 나타내도록 하시기 위한 조처였다.

2. 경고는 “하나니의 아들 예후”를 통해 전달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동시대의 선견자 또는 선지자로서(대하 16:7) 유다 왕 아사에게 파송되었다. 그러나 아들은 젊고 보다 활동적이었으므로 이스라엘 왕 바아사에게 보내진 것이다. 이것은 보다 길고 보다 위험한 길이었다. “수고와 모험은 청년을 위한 것이다”(juniores ad labores). 이 예후는 선지자였고 선지자의 아들이었다. 예언도 이처럼 복되게 상속되면 그만큼 더 많은 명예를 받을 만했다. 이 예후는 계속하여 오래도록 그 유용성을 과시한다. 우리는 4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예후가 여호사밧을 책망하고(대하 19:2) 또 그 왕의 연대기를 기록한다(대하 20:34)는 사실에 눈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 선지자가 바아사에게 전달한 말의 내용은 아히야가 여로보암의 처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전한 말씀과 대동소이했다.

(1) 예후는 바아사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베푸신 큰 일을 상기시킨다(2절).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영광의 보좌에까지 올렸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권세에 대한 큰 본보기다(삼상 2:8). 바아사는 자신의 반역과 잔인성에 의해 스스로 입신양명한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그 일 가운데에는 여로보암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착착 이루어 가는 섭리의 손길이 작용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아사의 출세를 하나님 자신의 행위로 인정하셨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의 야욕과 반역을 후원하신 것은 결단코 아니다. 악인의 손에 권력을 쥐어 주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악인이 권력을 악용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선하신 목적에 충당되도록 하시기 위해서다. “내가 너를 내 백성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다.” 이스라엘이 비참하리 만치 타락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기 백성이라고 부르시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할례의 언약을 보유했고, 개중에는 선한 백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지 않아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라―라고 불리게 된다(호 1:9).

(2) 예후는 큰 범죄와 비행을 들어 바아사를 책망한다.

① 그 책망은 바아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고”, 충순한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여 하나님께만 바쳐야 마땅할 충성을 거름더미 잡신들에게 바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고”(2절), “그의 집과 같았다”는 것을 꾸짖고 있다(7절).

② 바아사 자신도 “그 손의 소위로”, 즉 “사람의 손이 만든 것”인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하나님의 노를 격동케 했다”는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이 만들었을 테지만, 그는 그것들을 섬겼고 또 그 제조를 승인했기 때문에, “그 손의 소위”라고 칭하고 있다.

③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집을 멸했다는 것이다. 그가 여로보암의 아들과 그에게 속한 모든 자를 죽였기 때문에(한글 개역에는 “그 집을 쳤음이더라”로 되어 있음) 이 같은 책망이 나오는 것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과 그의 뜻과 영광을 주목하고, 여로보암과 그 집의 죄악에 대한 거룩한 분개심에서 이와 같이 무참한 짓을 했다면, 하나님의 정의의 사자로서 용납되고 박수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일을 자행할 때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자기 욕망의 노예에 불과했다. 그의 모든 행위 가운데서 그를 지배하고 충동질한 것은 악의와 야욕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어떤 면으로든지 하나님의 공의를 선언하거나 행사하는 일에 기용된 자들은 선한 원리와 경건한 방법으로 그 일을 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일이 자기들의 죄가 되지 아니하며, 그들 자신이 그 일로 미운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3) 바아사는 여로보암 일족을 멸하는 데 기용되었지만, 예후는 여기서 그와 똑같은 멸망이 바아사 일족에게 임하리라는 예언을 하고 있다(3, 4절). 죄에 있어 남과 흡사한 자들은 그 천벌도 남과 방불하리라고 각오해야 한다. 남이 짓는 죄에 대해 스스로 빠져들 만큼 열심인 자들은 특히 그러하다. 아합 집의 피에 대해 예후 집은 갚음을 당했던 것이다(호 1:4).

Ⅱ. 집행 유예가 얼마 동안 허락되었다. 그 기간은 상당히 길어서 바아사는 평화로운 가운데 임종하고 자신의 왕성에서 명예롭게 매장되었다(6절). 그는 개와 새의 밥이 되지는 않았는데, 실은 이 위협적 경고의 대상은 그의 집이었던 것이다(4절). 회개치 않는 죄인이 직접 고난을 당하게 되고 이 세상에서와는 달리 그나마 자주 모면할 수가 없는 미래적 상황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바아사는 경고된 형벌을 생전에 보거나 느끼지 못했으나, 그 자신이 바로 최대의 태만자였던 것이다. 바아사는 외견상 나타난 어떤 일로 하나님의 가시적 복수의 일격을 받아 죽은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욥이 말하는 대로, “그의 죄악을 쌓아 두셨다가 그 자손에게 갚으셨던” 것이다(욥 21:19).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죄를 벌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 관찰할 것은 바아사가 사후이긴 하나 자녀의 멸망에 의해 벌을 받았다는 것과 그의 자녀들도 사후 시체의 학대로써 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 경고를 구체화시켜 표현한 유일의 사례는 개와 공중의 새가 그들을 먹으리라는 것이다(4절). 여기에는 죽음이 제 할 일을 다하고 난 뒤에도 형벌이 있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시사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같이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극히 쓰라린 형벌이 될 것이며 극히 두려워해야 할 형벌인 것이다. 신체와 후손에게 내리는 이 심판은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눅 12:5) 분이 몸에서 분리된 영혼에 대해 내리시는 심판을 의미했다.

Ⅲ. 마침내 형은 집행되었다. 바아사의 아들 엘라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과 마찬가지로 2년 동안 통치하다가 자기 부하였던 시므리에게 피살되었으니 이 또한 나답이 바아사에게 주륙당한 것과 똑같았다. 그의 집은 경고받은 대로 여로보암의 집 운명을 이어받았던 것이다(3절). 그의 우상 숭배 역시 나답의 우상 숭배와 같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답과 다투시게 된 죄 중의 하나였다. 그 죄는 여로보암 일족의 멸망의 빌미가 되었다. 그의 멸망이 나답의 멸망과 흡사하면 할수록 죄와 벌은, 얼굴이 거울 속의 얼굴과 일치하듯, 더욱 비슷하게 되었던 것이다.

1. 그 때와 마찬가지로 이제도 왕이 맨 먼저 살해되었다. 그러나 엘라는 나답보다 한층 불명예스럽게 죽었다. 나답이 피살된 곳은 전장이었고 그것은 명예로운 장소였다. 나답과 그의 군대는 그 때 깁브돈을 공략하고 있는 중이었다(15:27). 그러나 이 재난으로 포위 공격은 중단되고 이 성읍은 여전히 블레셋인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이제 이스라엘군은 공격 재개를 시도하고 있다. 엘라는 이 때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총사령관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는 명예나 의무나 공익보다 자기 편안과 안전을 더 사랑했다. 그러므로 그는 후방에 있으면서 즐기고 있었다. 엘라가 “자기 신복의 집에서 마시고 취해” 있을 때 시므리가 그를 쳐 죽였던 것이다(9, 10절). 술을 즐기는 자들, 특히 일부러 취하려고 마시는 자들은 이것을 경종으로 삼아야 한다. 술 취한 상태에서는 죽음이 언제 기습할지 모르는 까닭이다.

(1) 술 취한 자에게는 죽음이 쉽사리 임한다. 사람들이 폭음으로 말미암아 만성질환에 걸려 한창 시절에 꺾어지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것말고도 취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원수에게 쉽사리 당하게 된다. 암논은 술에 취했다가 압살롬에게 해를 입었던 것이다. 취객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하므로 흉한 사고를 당하기 쉽다.

(2) 술 취한 자에게는 죽음이 격렬하게 임한다. 그들이 죄악의 행위 속에 있으면서 신앙의 행위에는 무력하게 되는 때에는, 뜻밖에 그 날이 도적같이 “그들에게 임한다”(눅 21:34).

2. 그 때처럼 이제도 전 가족이 멸절되고 뿌리째 뽑혔다. 역적이 신왕이 되었다. 지각없는 백성은 어느 왕이든 매한가지라는 듯이 순순히 복종했고 반역자를 왕으로 삼았다. 시므리가 맨 먼저 착수한 일은 “바아사의 온 집을 죽이는” 일이었다. 이와 같이 그는 반역에 의해 획득한 것을 잔인함으로써 지켰다. 그의 잔인성은 바아사가 여로보암 집에 대해 나타낸 것을 능가한 듯이 보인다. 그는 “엘라의 족속이든지 그 친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11절). 그는 “그의 복수자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원뜻은 그러하다). 엘라의 죽음에 대해 복수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은 씨도 남기지 않고 다 처치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얼마 가지 않아 너무나도 괄목할 만한 복수를 성취하셨기 때문에, “주인을 죽인 시므리가 평안하였던가?” 하는 속담이 그뒤 오래도록 유행했던 것이다(왕하 9:31).

이 일로 살필 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었다(12절).

(2) 바아사와 엘라의 죄는 셈을 치르게 되었다. 그들이 “그 헛된 것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발했던” 것이다(13절). 그들의 우상이 “그 헛된 것”이라고 칭해지는 까닭은 그 우상은 유익도,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헛된 것을 신으로 삼고 있는 자들은 불행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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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리의 죽음(왕상 16:15-28)

솔로몬은 “나라에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이스라엘이 그러했음) 명철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동시대 아사 치하의 유다가 그랬다)”고 관찰하고 있다(잠 28:2).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게 되면 안정과 확립은 멀리 도망가 버린다. 시므리와 디브니와 오므리는 여기에서 왕위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교만하고 야망에 찬 자들은 서로를 멸망시키며 타인을 파멸에 끌어들인다. 이 혼란은 오므리의 정착으로 끝이 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 문단 끝까지 오므리의 기사를 취급하지 않을 수 없다.

Ⅰ. 그는 어떻게 선출되었는가? 그는 로마 황제들이 왕왕 그랬던 것처럼 깁브돈 앞에 포진하고 있던 야전 군대에 의해 왕으로 피택되었다. 시므리가 왕을 시해하고 왕성인 디르사에서 왕을 참칭했다는 소식이 곧 그리로 전해지자, 그들은 진영에서 오므리를 왕으로 세웠다. 이는 그들이 시므리에게 엘라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지체 없이 하기 위함이었다. 엘라는 게으르고 절제 없는 위인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들의 왕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왕을 살해한 자에게 순순히 복종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반역죄를 응징하지 않고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나답이 죽었을 때 그들은 바아사에게 복수하려고 꾀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 바아사가(家)가 여로보암가(家)보다 관대한 통치를 했기 때문이리라. 시므리는 격분한 군대의 적개심 때문에 경을 치게 되었다. 그들은 깁브돈 포위는 풀어 버리고(이스라엘인이 분쟁하게 되면 블레셋은 십중팔구 득을 보게 된다) 시므리를 추적하기 위해 말머리를 돌리게 했다.

Ⅱ. 그는 시므리를 어떻게 정복했는가? 시므리는 7일간 통치했다고 했다(15절). 그것은 오므리가 왕으로 추대되고 시므리 자신이 반역자로 규정되기 오래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므리가 죽기까지는 보다 긴 시간이 경과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여로보암의 길에 기울어진 것을 나타내고 우상 숭배를 후원함으로써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미움을 사고도 남을 만큼 오래 존속했기 때문이다(19절). 디르사는 아름다운 도성이었으나 요새가 아니었으므로 오므리는 곧 그 곳을 장악했고(17절) 시므리를 왕궁으로 몰아부쳤다. 시므리는 왕궁을 방어할 수도 없고 항복할 생각도 없었으므로 불을 놓아 그 자신도 타죽고 말았다(18절). 자기의 상대가 그 화려한 왕궁을 향유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그는 그것을 불태워 버렸다. 그는 자기가 산 채로든 죽은 채로든 군대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면 굴욕적인 취급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두려워하여 분신 자살했던 것이다. 악은 왕왕 인간을 얼마나 절망적 행위로 몰아넣으며 그들의 멸망을 얼마나 재촉하는지 살피자. 스스로 불꽃 속에서 멸망할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왕궁과 나라를 불태우는 방화자의 기질을 눈여겨보자.

Ⅲ. 그는 디브니와 어떻게 투쟁했으며 마지막에 가서 그를 어떻게 제거했는가? “백성의 절반은 이 디브니를 좇았다”(21절). 아마 이들은 시므리의 편에 있던 자들일 것이다. 또 병영에서 뽑은 왕이 아니라(무단 정치를 할까 봐서) 국가 대회에서 선출한 왕을 바라는 다른 사람들이 이들과 합세했을 것이다. 이 양자간의 경쟁은 수 년 동안 계속되었고 양편이 다 많은 피를 흘렸던 것 같다. 오므리가 처음 왕에 추대된 것은 아사 왕 27년이었고(15절), 그의 12년간의 통치는 그 때부터 기산(起算)된다. 그러나 그가 경쟁자 없이 단독으로 통치를 시작한 것은 아사 왕 31년이 되어서였다. 디브니가 죽으매(전장에서 죽었을 것이다) “오므리가 왕이 되었다”(22절).

월터 랠레이 경(Sir Walter Raleigh)은 그의 『세계사』(2.19.6)에서 이스라엘 왕국이 이런 온갖 혼란과 혁명을 겪으면서도 다윗가로 복귀하며 유다와 연합하는 일은 어째서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추궁하는데, 그것은 “현재보다 과거가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는 유다 왕이 이스라엘 왕보다 절대적이고도 전제적인 권력을 행사한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처음에 다윗가를 배반하면서 불평한 것은 멍에가 무겁다는 것이었다. 그 멍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은 그후 줄곧 다윗가에 대한 혐오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자기들의 왕에게 복속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왕들도 법과 제한된 군주 정치의 규칙에 의해 지배하는 수가 많아졌다.

Ⅳ. 그는 결국 왕좌에 정착하고 난 뒤 어떻게 다스렸는가?

1. 그는 사마리아를 건축함으로써 유명하게 되었다. 사마리아는 그뒤 이스라엘의 왕성이 되었고(디르사에 있던 왕궁이 소실되었으므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가나안의 중앙부(북방의 갈릴리와 남쪽의 유다 사이에 위치한)와 그 거민이 사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괄목할 정도의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는 그 땅을 “은 두 달란트”에 샀는데, 700파운드 약간 넘는 액수였다. 한 달란트는 353파운드 11실링 10.5펜스였던 것이다. 그 땅을 매각한 세멜은 아마 그 성이 자기 이름으로 명명될 것을 조건으로 하여 아주 더 싸게 넘겨주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성읍에는 사들인 사람의 이름이 붙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땅은 전 소유주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 또는 세메렌(히브리어로는 그러함)으로 불렸다(24절). 이스라엘 제왕들은 왕도를 수 차례에 걸쳐 옮겼는데, 처음은 세겜이었고, 다음은 디르사였으며, 이제는 사마리아가 천도한 곳이었다. 그러나 유다 왕들은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시종일관하여 수도로 삼았다. 여호와께 집착하는 자들은 요동치 않으나 그를 떠나는 자들은 늘 방황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그는 자기의 악함으로 악명 높게 되었다. 오므리는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했다”(25절). 그는 천신만고 끝에 왕좌에 오르게 되었고, 그가 등극하기까지에는 섭리의 은총이 눈에 띌 정도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로보암가나 바아사가의 누구보다 더 참람했고 미신을 좋아했으며, 크게 박해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앞사람들보다 한층 더 지나치게 “불법을 법으로써 든든히 세우며”, 죄중에서 행하는 자기와 동조하도록 백성에게 강요했다. 우리는 오므리의 율례가 있었으며 그것을 지킴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황무케” 된다는 말씀을 읽게 된다(미 6:16).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것은 유혹과 본보기와 시험에 의해서였으나, 오므리는 강제에 의하여 범죄케 했던 것이다.

Ⅴ. 그는 어떻게 자기 통치를 마무리했는가?(27, 28절) 그는 강력한 힘을 과시했고, 그로써 다소 명성을 떨쳤다. 악인이 강한 힘을 소유하는 경우는 이제까지 많이 있었다. 오므리는 여로보암이나 바아사처럼 자기 침상에서 임종했다. 그러나 그 역시 자기 불의의 한도를 채워 그 셈을 치르는 일은 그의 자손에게 넘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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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의 통치(왕상 16:29-34)

우리는 여기에서 아합의 통치에 접하게 되는데, 성경에는 이스라엘 역대 임금 중 어느 누구보다 아합에 대한 세밀한 기록이 많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모든 왕들 중 가장 악했다고 하는 일반적 견해만 피력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가 이로써도 그 세부적인 사항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22년 동안 통치했는데, 그것은 아주 많은 악을 자행하고도 남을 만큼 긴 세월이었다.

Ⅰ. 그는 악에 있어서 자기의 모든 전임자를 능가했고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악을 더욱 행했다”(30절). 마치 하나님과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적의를 품고 하나님을 모욕하며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행이라도 한 양 “저는 그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고”, 결과적으로 그 땅에 심판을 내리게 했다고 일컫고 있다(33절). 계승하는 왕마다 앞사람보다 더 악하다 할 때, 그 백성에게는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합은 다른 악한 왕들과 그 가문의 파멸을 목격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각심을 높이기는커녕 하나님께 대해 마음을 더욱 강퍅케 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겼다”(31절).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제2계명을 범하는 것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른 잡신들을 도입함으로써 제1계명조차 팽개쳐 버리고자 했다. 그의 새끼손가락은 여로보암의 허리보다 무겁게 하나님의 율례를 내리눌렀다. 보다 작은 죄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보다 큰 죄에 대한 문호개방이 된다. 다른 사람의 죄를 경감시키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자신의 죄만 가중시키게 될 뿐이다.

Ⅱ. 그는 악한 여인과 혼인했다. 아합은 이세벨이 바알 숭배를 도입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목적으로 이세벨과 결혼한 듯이 보였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이 가벼운 일이기라도 하듯 그는 이세벨로 아내를 삼았다”(원뜻은 그러함. 31절). 이세벨은 열렬한 우상 숭배자였고, 지극히 방자했으며, 그 천성이 사악했다. 또 그 여인은 술수와 음행에 탐닉했으며(왕하 9:22), 어느 모로 보나 부도덕한 여자였다. 계시록에서는 거짓된 여선지를 논하면서 이세벨이라고 칭하는데(계 2:20), 이는 악한 여인을 칭할 때 이세벨이란 이름보다 더 악하게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세벨이 어떤 악을 행했으며 마지막에 가서 어떤 화가 그에게 임했는지(왕하 9:33)는 다음에 나올 것이다. 솔로몬의 모든 이방 아내보다 이 한 명의 이방 여인이 이스라엘을 더 많이 타락시켰다.

Ⅲ. 그는 바알 숭배를 확립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버리고 시돈인의 신을 섬기며 여호와 대신 주피터를, 태양을, 베니게(phoenicia)의 영웅을 신격화하여 숭배했다. 그는 금송아지에 식상(食傷)했고 그 정도면 충분히 오래도록 섬겼다고 생각했다. 그 송아지 우상은 극히 헛된 것이었다. 극히 좋아하던 자들도 결국에 가서는 싫증이 나서 마치 간음하는 자들처럼 변화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헛된 것이었다. “바알” 곧 “주인”이라고 부르던 이 가짜 신을 영화롭게 하고 또 그에 대한 숭배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아합은 다음과 같은 조처를 취했다.

1. 그는 왕성인 사마리아에 사당을 건축했다. 남왕국의 도성인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수도에 바알 신전을 세웠던 것이다. 그는 바알 신전을 보다 빈번히 참배하고 보다 잘 보호하며 더 존귀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기 가까이에 두고자 했다.

2. 그는 그 사당 안에 단을 쌓았다. 그 제단은 바알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한 것이었고, 바알에게 대한 자기들의 의존을 확인하고 그의 은총을 구하는 것도 이 제단을 통해서였다. 우상 숭배자들의 우둔함을 보라! 그들이 신으로 삼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그들 자신이 선택해야 할 자를 친구로 삼는 데 엄청난 비용을 들이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3. 그는 사당 주변에 숲을 만들었다(한글 개역에는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로 되어 있음). 그늘지는 나무를 심음으로써 자연적인 숲을 조성했거나, 아니면 수목의 성장 기간이 너무 길다면 자연의 숲을 모방하여 인공적인 숲을 만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숲을 심었다고 하지 않고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바알 숭배에는 가증스러운 음란 행위가 연출되었다. 이를 옹호하고 방조하기 위한 목적에 부응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은폐술이었던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는 빛을 싫어한다”(Lucus lucendo, quia non lucet).

Ⅳ. 그의 주제넘음을 모방하려던 한 백성은 여호수아가 오래전에 선포한 저주를 무시하고 여리고를 감히 재건하려고 했다(34절). 이것은 인간의 불경건이 얼마나 높이 도달했는가에 대한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 벧엘은 그처럼 악이 관영하던 곳으로서 금송아지 중 하나가 그 곳에 있었다. 이 대담한 죄인은 바로 벧엘 출신이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그 죄인은 매우 몹쓸 짓을 저질렀다. 그는 아간처럼 저주받을 일에 관여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납된 것을 자신의 용도로 변경시켰다. 그는 이스라엘에서는 모를 자가 없을 정도로 알려진 저주를 무시한 채 여리고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저주를 헛소리 정도로 우습게 생각했거나 그 저주가 공포된 지 500년 이상이 경과했기 때문에 그 효력이 없어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수 6:26 참조). 그는 저주가 부분적으로 실시됐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축을 계속했다. 그가 건축을 시작할 때 장남이 죽었는데도, 그는 하나님과 그의 진노하심을 업신여기고 축성을 계속 진행시키려고 했다. 장남의 상실은 그의 불경건을 치는 하늘로부터의 계시였던 것이다.

2. 그의 팔자는 매우 기박했다. 그는 자식들을 위해 건축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무자했다고 기록하신 것이다. 그가 공사를 시작했을 때 맏아들이 죽었고 공사를 완료했을 때는 막내둥이가 죽었으니, 그 나머지 자식은 그 중간에 죽었을 것이다. 하나님께 저주받는 자들은 참으로 저주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 대해 자기 마음을 강퍅케 하고 잘된 사람은 아직껏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람된 죄로부터 물러나게 하신다. 그것은 큰 허물이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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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열왕기상 16장

1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가라사대

ㅇ하나니의 아들 예후.---- “예후”란 이름은 “그는 여호와이시다”란 뜻이다. 그런데 본절의 예후(Jehu)는 오므리 왕조에 반란을 일으킨 북이스라엘의 10대 왕 예후와는 同名異人)이다(왕하 9:2). 한편 예후의 아버지 하나니(Hanani) 는 유다 왕 아사의 실책을 경고하다 옥에 갇힌 인물이다(대하 16:7-10). 그리고 그의 아들인 예후는 본장에서처럼 바아사를 책망했을 뿐 아니라 여호사밧 왕을 아합왕과 연합한 일로 책망한 자이다(대하 19:2).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예후 부자(父子)가 모두 하나님의 신실되고도 용맹스러운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

ㅇ바아사를 꾸짖어 가라사대.---- 유다의 선자자인 예후가 이처럼 이스라엘 왕 바아사(Baasha, 15:28-34)를 책망한 것은 당시 정세(15:32)로 보건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당시 예후의 예언 속에는 당신의 언약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끝없는 관심과 배려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 남북 왕국으로 분단되기는 했으나 남유다뿐 아니라 북이스라엘 또한 동일하게 하나님의 언약 속에 포함된 백성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남왕국의 선지자 예후를 통해 북왕국에 대한 예언을 선포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만든 어떠한 인위적 방벽이 굳건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렘 3:12).

2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저희 죄로 나의 노를 격동하였은즉

ㅇ내가 너를 진초에서 들어 ---되게 하였거늘 ---- “진토”는 “회색이 되다”/ “빻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누자적으로는 “티끌”, “흙”의 뜻이겠으나 여기서는 사회적으로 “비천한 신분”을 의미한다. 14:7의 여로보암에 대한 언급이 “백성 중에서 들어 주권자가 되게하고”인 것과 비교하면 이는 훨씬 비하(卑下)적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아무튼 본절은 바아사의 출신 신분이 매우 비천하엿음과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상기시켜 준다. 즉 바아사는 왕통을 이은 자도 아니었으며 큰 지파 출신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의 집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14:14) 왕이 되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역사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이 같은 손길(마 10:29-31)을 발견하였더라면 배은 망덕한 여로보암의 전철을 되풀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H. Austsl).

ㅇ주권자 ---- 이에 해당하는 “나기드”는 “어떤 것을 사람 앞에 눈에 띄도록 높이 두다”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즉 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탁월한 인물을 가리킨다. 한편 바아사가 비천한 계급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된 것은 물론 그의 용맹이 탁월했기 때문이기도 하나 그 용맹은 궁국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좇아 바아사에게 주신 것이다.

ㅇ격동하였은즉---- 15:30 주석 참조.

3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ㅇ쓸어 버려 --- 이에 해당하는 “바아르”는 본래 “불태우다”, “소멸하다”는 뜻이다. 특히 이는 “불태워 완전히 연소시키는 것”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단어는 사악한 자를 징벌하는 하나님의 격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한편 이후에도 선지자들은 반역한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징벌을 묘사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 예가 있다(사 30:27 ; 렘 7 :20 등).

ㅇ여로보암의 집같이 되게 하리니 ---- 앞서 2절이 바아사의 죄를 우상 숭배 곧 하나님께 대한 배은 망덕으로 규정하고 있음에 비해 본절은 이제 그에 상응 하는 하나님의 징벌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바아사의 가문을 “여로보암의 집같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 내용은 다음 4절에서 언급되고 있으니 참조하라.

4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

ㅇ죽은즉 개가 먹고.---- 이는 여로보암 가문을 향한 저주로 사용했던 말(14:11)과 동일한 문구로써, 비참한 말로는 물론 사후에도 치욕을 면치 못할 바아사의 운명에 대한 예언이다. 그런데 바아사가 여로보암이 지은 것과 같은 동일한 죄(14:9)에 빠진 이상(2절) 이처럼 여로보암이 받은 형벌과 똑같은 형벌을 받게 됨은 지극히 마땅하다. 한편 이렇듯 엄정하고 단호한 공의의 심판은 오늘날 일시적 탐욕이나 영달에 눈이 어두워 불의와 영합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잠시 오욕의 낙을 누리기 보다는 영원한 진리를 위해 영예로운 고난을 택하는 것이 마땅하다(히 11:25).

5 바아사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바아사의 ----권세. ---여기서 “권세”는 강력한 왕권(王權)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를 바아사가 용감하고 전투적인 인물임을 나타내는 단어로 이해하기도 한다(Ewald). 그러나 앞서 유다 왕 아사에게도 같은 단어가 적용되었음을 볼때 이는 본래대로 통치에 있어서 강력하고 힘이 있었음을 지적하는 단어로 봄이 타당하다(Keil & Delitzsch).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5:23 주석을 참조하라.

ㅇ이스라엘왕 역대 지략.--- 14:19주석 참조.

6 바아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디르사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엘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디르사. --- 세겜(Shechem, 12:25)에 이어 두 번째로 북이스라엘의 수도(首都)가 된 왕도(王都)이다. 세겜 북동쪽 11km지점에 위치 하였는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14:17 주석 참조.

ㅇ그 아들 엘라. -- “엘라”는 상수리나무 비슷한 어떤 나무의 명칭이면서(Guthrie, Jr), 또한 과거 다윗과 골리앗이 싸운 계곡의 지명이기도 하다(삼상 17:2, 19). 이곳은 깁브돈 부근의 인접 지역인데 깁브돈은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자신의 왕조를 창건한 곳이다(15:27,28). 이로 볼 때 아마도 바아사는 그 지역에 대한 애착 때문에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엘라(Elah)로 지은 것 같다(Hammond).

7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선지자 예후에게 임하사 바아사와 그 집을 꾸짖으심은 저가 여로보암의 집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며 그 손의 소위로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며 또 그 집을 쳤음이더라

ㅇ본절은 1, 2절이 별 의미없이 반복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본절은 2절에서 생길지도 모를 오해를 막으려고 추가된 해설적 성격의 절이다(Bahr, Hammond, Keil). 이때 오해란 바아사가 하나님깨ㅔ로부터 소명(召命)을 받아 여로보암의 집을 멸하였다고 생각하는 오해이다. 그러나 본절에 분명히 나타나듯 바아사는 단지 이기적 동기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즉 본절은 바아사가 우상 숭배 죄악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 여로보암 일족을 살해한 일도 고발하고 있다(“또 그 집을 쳤음이더라”). 다시 말해 바아사가 여로보암 왕조를 전복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야심과 정권욕(政權慾)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바아사를 도구로 삼아 패역한 여로보암 가문을 징계한 것일 뿐이다.(15:25-30).

ㅇ소위(所爲). ---- 이에 해당하는 “마아쉐”는 “행하다”, “만들다”에서 온 말이다. 이는 물건을 만드는 것과 관련해서는 “기량”, “솜씨”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외에는 윤리적 행위를 지칭 하는데 대개 부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출 23:24 ;스 9:13 등). 여기서도 바아사가 저지른 부당한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8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륙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위에 있으니라

ㅇ유다 왕 아사 제 이십 륙 년에. --- 아사의 즉위를 B,C.910년경으로 볼 때 이때는 곧 B.C.886년경이다.

ㅇ엘라가 ---이년을 위에 있으니라. -- 엘라는 아사 제 27년째에 자신의 군대 장관 시므리에게 살해당하고 만다(9,10). 따라서 엘라는 만 2년도 채 통치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앞서 나답이 당한 것과 똑같은 재난이라 할 수 있다(15:28).

9 엘라가 디르사에 있어 궁내 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 그 신복 곧 병거 절반을 통솔한 장관 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

ㅇ마시고 취할 때에. --- 15절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이때는 북왕국의 군대가 깁브돈에 출정하여 공략 중에 있었던 때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점에 왕이 대신의 집에서 연회(宴會)를 열고 있었다는 것은 뭔가 방탕한 인상을 준다. 더구나 당시 신하의 향응(響應)를 받았다는 품위에 어긋난 행위라는 지적도 있다.(Rawlinson).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엘라의 인품상 어떤 결점을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 신복 시므리의 역심(逆心)도 어느 정도 어린 면에서 기인했을 수 있다. 즉 그는 내심 엘라를 왕으로서는 모자라는 인물로 비웃었을 수 있다.

ㅇ신복---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 ---- 성경에서 시브리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이름도 출신 지파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제 본절에 의하면 그는 오므리(Omri)와 함께 군부 내의 실력자인 점을 알 수 있다. 즉 이제 시므리는 북왕국 병거대의 절반을 이끄는 군대 장관인 것이다. 그런데 본서 기자가 이러한 시므리를 언급함에 있어 굳이 “심복”이란 단어를 덧붙이고 있는 의도는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즉 솔로몬의 신복이던 여로보암이 반역해 세운 북이스라엘 왕국이 줄곧 신복의 하극상으로 인해 오욕(汚辱)의 역사를 되풀이하였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Hammond). 한편 시므리는 또한 사람의 군대 장관인 오므리가 깁브돈 출정 중에 있을 때 왕궁 수비를 맡고 있었던 것 같다(15-17절). 그리고 그때 왕이 술에 취하자 정권 탈취라는 야심적 기회를 포착하였을 것이다.

10 들어가서 저를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년이라

ㅇ쳐죽이고. -- 이 단어가 연상시켜 주는 잔혹성은 3절의 심판 예언 중 “쓸어 버려”가 주는 참담한 이미지에 상응한다. 즉 엘라가 당한 수치스럽고 비참한 죽음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선고와 그림처럼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ㅇ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 년.--- 이때는 곧 엘라 즉위 이듬해인 B.C. 885년경이다. 8절 주석 참조. 그런데 이처럼 무력으로 왕위를 빼앗은 자의 아들이 통치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피살되는 사례는 엘라에 이어 북왕국 역사에서 두 번이나 더 발생된다(왕하 15:13,14, 23-26).

11 시므리가 왕이 되어 그 위에 오를 때에 바아사의 온 집을 죽이되 남자는 그 족속이든지 그 친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ㅇ남자. --- 이에 해당하는 “솨탄”은 “벽을 향해 소변보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사실 서서 소변보는 것은 여자와 구별되는 남자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ㅇ그 족속이든지 그 친구든지--- 남기지 아니하고. --- 반역으로 차지한 왕권을 굳히기 위해서 시므리가 한 첫조치는 이처럼 앞서 바아사가 행한 것(15:29)보다 더 광범위한 학살이었다. 즉 시므리는 엘라의 일족 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들까지도 몰살시켜 버린 것이다. 물론 본절에서 가리키는 “족속”은 엄밀히 (1) 유산 상 속의 권리 및 (2) 피의 복수 의무를 지닌 친족들을 가리킨다(Hammond, 레 25:26 ; 민 35:19 ; 룻2:12,13 등), 따라서 이들은 언제든지 후환이 될 가능성이 짙은 대상이다. 그러나 시므리는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수 가능성을 철저히 봉쇄하려고 엘라의 친구들까지도 학살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정당치 못한 권력 찬탈은 항상 그에 따른 불안감을 갖게 되고 따라서 온갖 자구책(自救策)을 강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 시므리는 누구보다도 단명한 7일 천하의 찰나를 누렸을 뿐이다. 따라서 이는 곧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시 127:1)는 진리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일례이다.

12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후로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말씀 같이 되었으니

ㅇ멸하였는데. --- 이에 해당하는 “솨마드”는 “파괴하다”, “진멸시키다”는 뜻이다. 이는 곧 전쟁이나 대량 학살과 같은, 갑작스러운 큰 재난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대개 복수나 하나님의 심판을 내용으로 하는 문맥에서 사용된다. 본절에서도 시므리가 바아사 왕가를 멸절시킨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 그대로 실현된 경우이다. 즉 이는 불로 태워 재로 만들 듯이 바아사 일족에게 심판을 내리시갰다는 예언이 성취된 것이자. 이처럼 하나님의 입에서 한 번 발하여진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고야 만다(사 55:10,11).

13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 아들 엘라의 죄를 인함이라 저희가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로 범죄케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ㅇ그 헛된 것. -- “헛된 것”에 해당하는 “하벨”은 “무가치한 것”을 뜻한다. 이는 본래 “공연한 헛수고”나 “무의미한 것”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우상(偶像)을 가리키고자 사용 되었다(전 2:11 ; 6:7 ; 8:10 ; 사 49:4). 즉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섬길 수밖에 없는 “거짓 신”들을 지칭한다. 그런데 실상 거짓 신들을 섬기는 일이란 참된 신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채 미망(迷妄)을 헤매는 “헛된 것”이 아닐 수 없다.

ㅇ격동하였더라. ---- 이는 이미 앞서 2절에서 언급된 단어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단어와 관련, 열왕기에서 “우상 숭배=하나님의 노를 격동케 하는 죄”라는 공식(公式)을 계속해서 찾아 볼 수 있다(15:30 ; 21:22 ; 22:53 ; 왕하 17:11 ; 23:26) 에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5:30 주석을 참조하라.

14 엘라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남은 사적. -- “사적”에 해당하는 “다마르”는 일명 “행적”으로도 번역되는 단어이다(14:19). 그런데 본서 기자가 엘라의 여타 행위들에 대하여서 일절 침묵하고 있음을 상대적으로 엘라의 죄악(13절)을 보다 두드러지게 고발해 주는 효과를 띤다.

15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일 동안 왕이 되니라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ㅇ칠 일 동안 왕이 되이라. --- 본문 후반을 참고하면, 시므리가 1주일 동안이라도 재위(在位)할 수 있었던 것은 기실 깁브돈 출정군이 디르사로 회군(回軍)하는 데 1주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회군한 군대는 마침내 시므리의 왕 행세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시므리의 7일 천하는 3일 천하로 끝난 과거 우리나라의 갑신 정변(1884년)을 생각게 해준다. 그런데 시므리가 엘라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이처럼 단명(短命)한 것은 백성들이 그의 반란에 동조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16-18절).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시므리가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데 아마도 그 까닭은 시므리가 매우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11절).

ㅇ때에 백성들이.... 있더니. ---- 수도 디르사의 왕궁에서 왕관뺏기 게임이 벌어지는 시점에서 백성들은 전쟁터에 나가 있었다. 이처럼 백성이 전쟁터에 있는 동안 향연을 벌인 엘라의 모습이 무책임하고 경박한 왕권을 상징하듯(9절), 백성 부재의 현장에서 벌어진 왕위 쟁탈전은 백성과 무관한, 백성을 소외시킨 정통ㅇ성 결여의 권력 다툼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ㅇ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 이스라엘은 일찍이 나답 왕 때에도 깁브돈을 공격한 바 있는데 그때 나답은 바아사에 의해 살해 되었다(15:27). 그런데 그때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은 또다시 깁브돈을 공략 중이며 이 기간 동안 시므리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18절).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느끼게 된다. (1) 동일한 범죄에 대한 동일한 심판이 동일한 장소와 관련하여 일어났다는 것(13절 ; 15:25-30)은 하나님의 심판의 오의(奧義)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2) 그리고 이스라엘의 내란은 불레셋에게 유익을 주었다는 점이다. 한편 솔로몬 당시, 블레셋 지경(地境)은 이스라엘의 판도 내에 있었다(4:21). 그러나 솔로몬 사후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통치권에서 이탈하였다. 그러기에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실지(失地)를 회복하려 안간힘을 썼는데 블레셋 공략을 위한 전초 기지인 깁브돈을 주요 공격 목표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16 진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장관 오므리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매

ㅇ진중(陣中) 백성들. ---- 이는 본절 하반부와 다음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무리”와 같은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여기서 진중 백성들이란 깁브돈 출정군을 가리키니 “이스라엘 무리”라는 호칭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본서 기자가 이들을 “이스라엘 무리”로 호칭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까닭이 있을 것이다. (1) 오므리가 비교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범위한 추종을 얻은 인물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 실제로 이스라엘의 차기 주권자가 된 인물 역시 오므리임(23절)을 강조하기 위함이다(Montgomery).

ㅇ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시므리의 왕위 찬탈 소식에 접한 백성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엘라가 통치 기간 중 민심(民心)을 샀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시므리 및 그의 즉위 과정이 백성의 수긍을 받지 못하였음은 분명하다. 아마도 이는 시므리의 왕위 찬탈 자체가 대역무도한 불법이었을 뿐 아니라 엘라 가문과 그친척, 친구들에 대한 시므리의 난폭하고 잔혹한 살해 행위(11절) 또한 백성들의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ㅇ진에서... 왕을 삼으매. - --- 오므리(Omri)는 로마사에서 자주 보듯 전쟁터에서 군대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다(Mattew Henry). 따라서 그가 명실 공히 북왕국 전체의 왕으로 군림하기까지는 좀더 많은 세월이 필요 하였다. 즉 오므리는 시므리를 제거하고 난 뒤에도(17,18절) 디브니(Tibni)라는 경쟁자와 약 5년(B.C. 885-881년)간 의 내전을 치뤄야 했던 것이다(21-23절).

17 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쌌더라

ㅇ이에...에워쌌더라. --- 16절과 본절에 의거할 때 우리는 시므리의 7일간 재위 기간(15절) 동안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즉 (1) 시므리의 모반 소식이 깁브돈 출정군에게 전달됨, (2) 진중에서 백성들이 오므리로 왕을 삼은 후 디르사로 회군함. (3) 오므리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궁에서 농성하는 시므리군을 격파함 등이다. 이상에서 보듯 오므리의 행동은 매우 민첩하고 신속했다. 그리하여 시므리는 미처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들이닥친 오므리군을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이로보아 오므리는 군사적으로 유능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비록 열왕기 본문은 그런 사실들을 무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모압 비문(Moabite stone)에 나타나 있듯 실상 오므리는 재위 기간 중 모압을 정복하는 등 많은 군사적 성공을 거둔 것이다(Maclean).

18 시므리가 성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위소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었으니

ㅇ왕궁 위소. --- “위소”는 “높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이는 왕궁 내에서도 특별히 높은 곳에 있는, 최후의 요새와 같은 처소일 것으로 보인다.

ㅇ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었으니. -- 수리아역(Peshitta)은 본절과 관련, 오므리군이 공격차 왕궁 위소에 불을 놓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은 명백히 시므리의 자살을 말하는 것이다. 즉 디르사 성이 함락되자 시므리는 최후의 도피처인 왕궁 위소로 도피했으나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오므리 군대를 목도하고서는 절망끝에 그만 불을 놓아 자살하고 만 것이다. 사실 시므리는 자신이 잔혹한 유혈극을 벌였던 인물이었으니(9-11절) 왕권 쟁탈전에서의 자비란 기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처럼 자살로 최후를 마친 시므리에게서 우리는 철두철미 자의성(恣意性)으로 일관한 그의 생애를 본다. 즉 그가 추구한 왕권은 스스로의 권력욕에서 기인했을 뿐 하나님께로부터 봉사의 직분을 받았다는 자각의 흔적이 전혀 없다. 15절 주석 참조. 따라서 신정 정치의 이상을 품은 열왕기 사가(史家)가 그런 시므리에게 조금치의 정통성도 인정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시므리와 오십보 백 보의 인물들이 들락날락 했던 북왕국 왕권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음은 당연하다.

19 이는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함을 인함이라 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하였더라

ㅇ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 혹자는 본절을 시므리가 7일 천하(15절) 동안 우상 숭배를 행했음을 비난하는 절이라 단정한다(Bahr). 그러나 “여로보암의 길”이라는 범주에는 우상 숭배와 함께 주인을 배반한 죄가 포함된다(12:19). 그러므로 본절에서 시므리에게 적용된 “여로보암의 길”은 하극상(下剋上)의 범죄에 보다 강조가 있다 하겠다. 훗날 이세벨도 요람 왕을 죽인 예후에게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는 말을 하고 있다(왕ㅇ하 9:31). 이처럼 당시 시므리는 “주인을 죽인 자”라는 고착된 이미지로 보통 명사화될 정도였다. 그러므로 본절 역시 시므리의 그런 범죄를 지적한 경우로 보는 것이 옳다.

20 시므리의 남은 행위와 그 모반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시므리의 남은 행위......기록되지 아니 하였느냐. ----- 본절은 이스라엘 열왕의 결말 공식(5,6,14,27,28절 ; 14:19, 20 ; 15:31)에맞추어 시므리의 결국을 마무리하려 애쓴 흔적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ㅔ는 “남은 사적” , “무릇 행한 일”, “열조와 함께 자매” 등의 상투적 어구가 결여되어 있고,. 그 대신에 “그 모반한 일”이란 문구가 삽입되어 있다. 이는 이미 19절에서 언급하였듯 시므리의 행적이 모반자로 규정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왕조 실록은 이러한 시므리의 역모(逆謀)나 7일 천하의 행적에 대하여 본서보다 더 상세히 기록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1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에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아 저로 왕을 삼으려 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좇았더니

ㅇ기낫의 아들 디브니. --- 본문을 제외 하고는 디브니(Tibni)에 대한 성경상의 기록이 없다. 그런데 깁브돈 출정군을 이끌고 돌아와 시므리를 격파한 오므리(15-18절)와 경쟁하는 일은 어는 정도 군사력에 자신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자들은 대개 디브니를 당시 엘라*8,9절)의 세 군대 장관(시므리, 오므리, 디브니) 중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Ward). 한편 디브니의 경우 생략되어 있다(16,17,22,23절). 이 점에 착안하여 디브니는 이스라엘 명문가의 후손이나 오므리는 정통 이스라엘의 혈통이 아닐 것으로 추정하는 자도 있다(Maclean).

22 오므리를 좇은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은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ㅇ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본절이 강조하는 바는 이제 북왕국이 약육강식의 무대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즉 이제 누구든지 힘만 있으면 왕이 되는 판국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신정 정치의 이상으로써 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제사장적 승인, 국민의 동의(1:38,39) 등이 일절 무시 되고 대신에 무력에 의한 패권적 힘- 제일주의가 횡행하게 된 것이다. 과거 여로보암이 형식적이긴 해도 자신의 왕권을 여호와 종교와 접목시키려 한 것(12:25-33)에 비하면, 이러한 현상은 불법의 노골화로써 일종의 위헌(違憲)적 현상이다. 한편 깁브돈에서 선포한 오므리의 왕권(16절)은 햇수로 5년(아사 27년-아사 31년)간의 내전을 거친 뒤에야 비로서 확정되었다(23절).

23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년동안 치리하니라

ㅇ본절의 연대 문제는 얼핏 매우 흔란스럽다. 자체내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본절은 오므리의 즉위 연대를 아사 31년(B.C. 880년경)으로 말하면서도 재위 기간은 12년(아사 27년0아사 38년)으로 말한다. 이것은 오므리의 공식 즉위 연대를 그가 디브니를 격파한 시점부터 잡은 반면(22절) 재위 기간은 깁브돈에서의 옹립 시점(16절)부터 잡은 탓이다. 여하튼 깁브돈을 기점으로 오므리 왕조가 출범하였는데 오므리에서 여호람에 이르기까지 오므리 왕조의 총 통치 기간은 44년간(B.c.885-841)이다.

24 저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 되었던 세멜의 이름을 좇아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ㅇ은 두 달란트로......사마리아 산을 사고. ----- 1 딸란트(Talent)를 대략 34kg으로 봄으로 은 두 달란트는 68kg 정도이다. 그런데 당시 은의 주가가 아무리 높았다 하더라도 금보다는 낮았을 터이니 오므리가 사마리아 산을 구입함에 있어 비싼 가격을 치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점은 오므리가 이 산을 매입한 것이 율법에 위반되는 행위였다는 점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토지는 하나님께 속한 것인 동시에 각 백성들이 영원한 기업으로 후손에게 물려주도록 정해진 것이었다. 따라서 율법은 토지를 영구적으로 매매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였다(레25:23-28). 물론 다윗이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을 산 경우가 있기는 하나(삼하 24:21), 오므리의 경우와는 그 성격이 달랐다. 즉 아리우나는 이방 족속인 여부스 사람이었으며, 그의 타작 마당을 다윗이 구입한 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종교적 목적에서 그리하였다. 한편 오므리의 불법적 토지 매입은 드의 아들 아합에게도 영향을 준듯하다. 아합은 기업으로 물려 받은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취하였다(21:1-16).

ㅇ사마리아. ---- 사마리아(Samaria)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67km. 지중해 동쪽으로 약 40km 가량 떨어진 팔레스타인 중앙 산맥의 한 언덕에 위치한 성읍이다(Beek). 이곳은 북왕국의 전(前) 수도였던 세겜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가량 떨어진 곳이다.

ㅇ그 산위에 성을 건축하고. --- 당시는 오므리가 디브니를 물리치고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른지 2년 째 되던 해엿다. 그때에는 정국(政局)이 어느 정도 수습되었으므로 오므리는 새로운 왕궁 건축과 수도 정비 사업에 온 신경을 쏟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마리아성 건축 원인은 대략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1) 여로보암에 의해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은 시므리에 의해 불타 버렸고(18절), 수도 디르사 또한 그 동안의 극렬한 전투로 말미암아 형편없이 파괴되었을 것이기 때문(17,22), (2) 새로운 왕조에 걸맞는 새 도읍을 정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3) 사마리아의 지형학적 우수성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후대에 북왕국을 공격한 여러 나라의 군대가 끝내 사마리아는 점령하지 못했고, 강대국 앗수르조차도 장기적인 포위 공격 끝에야 함락시킬 수 있었던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20:1-30 ; 왕하 6:24 ; 18:9,10).

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ㅇ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 26절로 미루어 보아 오므리의 죄악은 무엇보다도 여로보암의 경우와 같이 우상 숭배의 죄악인듯하다(12:28-30). 그런데 본절에서 보듯 오므리는 이전 누구보다 더욱 악하게 행했다고 고발당한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합이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고 우상 숭배에 열을 올린 것(29-33)을 보면, 이미 오므리 시대에 이방과의 교류 및 우상 숭배의 정책적 장려가 있었지 않았나 추측해 볼 수 있다.

26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ㅇ헛된 것. --- 13절 주석 참조.

ㅇ격발케 하였더라. --- 또는 “격동시키다”로도 번역되는 원어 “카아스”는 특히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 분노와 흥분 상태에 이르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5:30 주석을 참조하라.

27 오므리의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 베푼 권세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오므리의....그 베푼 권세. ----- 비록 열왕기는 오므리를 종교적 관점에서 악한 왕으로 간단히 치부하지만(25,26절) 으므리는 실로 강력하고 유능한 통치자였다. 즉 (1) 오므리가 모압을 정복했다고 기록된 모압 비문(Moabite stone)의 발굴, (2) 앗수르 왕 살만에셀 2세(Sharmaneser Ⅱ)의 기록에 이스라엘을 언제나 오므리의 집으로 칭한 사실, (3) 이 시기에 유다와의 효과적인 외교로 내전이 없었다는 점 등에서 오므리의 진면목은 충분히 발견된다(Maclean 등). 그런 까닭에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생략되어도 “오므리의 ...베푼 군세”라는 어구가 첨가되고 있는 것이다.

28 오므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사마리아에 장사되고. ---- 왕들이 수도(首都)에 자기 묘실이 있어 죽고난 후 그곳에 매장되는 것은 관례이다(Hammond). 그러나 앞서 유혈 쿠테타와 내전 등으로 인해 빈번히 정권이 교체된 북왕국의 험난한 역사를 고려할 때 이는 매우 평안한 죽음이다. 한편 여기서 “장사되고”는 “묻다”, “매장하다”는 뜻이다. 이로 보아 오므리의 매장은 굴이 아닌, 땅에 묻는 형태로 이루어진 듯하다.

29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ㅇ아사 제 삼십 팔 년에. ---- 이때는 곧 B.C. 874년경이다.

ㅇ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 “아합”이란 이름은 “아버지의 형”이라는 뜻으로 추정된다(Maclean). 그런데 혹자는 이 이름의 뜻을 “아버지의 형제”로 풀어 아합은 부친 오므리와 마찬가지로 불경한 인물임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Hammond). 만일 이 이름이 부친에 대한 존경 때문에 부친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이름이라면, 오므리가 거둔 성공적 업적을 본받고자 한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아합도 부친 못지않게 군사, 외교면에서 유능한 통치자였던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열왕기의 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아합은 부친 오므리보다 더 심각한 반신앙적 인물이었을 따름이다(30절).

ㅇ이십 이 년을....다스리니라. --- 아합의 재위 기간은 B.C 874-853경이다. 이 무렵 북왕국 주면 정세는 오므리 당시의 기본 구도와 큰 차이가 없다. 즉 아람(Aram)의 위협에 대해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시돈(베니게)과 동맹하여 대립하는 한편, 유브라데 동편의 앗수르의 증가하는 압력에 대해서는 일단 대립을 지양하고 관망하는 양상을 띤다. 따라서 이러한 일시적 안정 정세의 추이(推移)는 북왕국의 종교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곧 아합 이하 모든 백성들이 영적으로 나태하여 쉽게 우상 숭배 죄에 물들고 만 것이다(31-33절 ; 18:21).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ㅇ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악을 더욱 행하여. ---- 이처럼 아합은 이전의 열왕보다 더한 극도의 혹평을 받는다. 그 이유는 이전의 왕들이 우상 숭배를 사사로이 행했을지라도 아합처럼 공식 제사에 이방 종교를 끌어들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합이 타락하게 된 데에는 시돈 왕녀 이세벨과의 결혼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다(31-33절).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ㅇ가볍게 여기며. -- 원문 “와예히 하나켈”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 “시시하게 보며”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합 왕은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 정도는 죄로 생각지도 않을 정도로 완악한 심령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온갖 극악한 범행을 저지르고서도 하등 죄책을 느끼지 않는 화인(火印) 맞은 양심의 소유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한 나름대로 설정해 놓은 몇몇 윤리적 계율을 어기지만 않으면 하등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인 양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인류를 뒤덮고 있는 죄악의 실체와 그 치명적 심각성에 대해 밝히 지적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해방되게끔 하는 유일한 해결책 또한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롬 3:9-18 ; 6:18 ; 엡 2:1 ; 골 1:14).

ㅇ시돈 사람의 왕. ---- 두로와 시돈은 페니키아(Phoenicia)의 두 도시 국가였으나, 시돈이 더 오랜 항도(港都)였기 때문에 페니키아 전체의 대명사로도 불리운다. 즉 두로 왕이 시돈까지 지배하게 되는 경우에도 그를 “시돈 왕”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기에 두로 왕 히람 2세도 “시돈 왕”이라 불리운 적이 있다. 한편, 오므리는 아합을 페니키아 왕의 딸 이세벨(Jezebel)과 결혼시켰다. 이스라엘과 페니키아 사이에 맺어진 이러한 관계는 비록 정치적으로는 편리했지만 결국 그것은 이스라엘 속에 바알 숭배를 들여 놓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는 영적으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두로 또는 페리키아 신은 바알 멜가트(Ball Mrlgart)라 불리우는데 이 신은 가나안의 더 오래된 신인 바알과도 일치한다.

ㅇ엣 바알. --- “엣 바알”은 “바알이 그와 함께 있다”는 뜻이다. 엣바알(Ethball) 은 원래 아스다롯 신전의 제사장이었는데 펠레스(Phe;es) 왕 (히람의 후손)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였다(Comey,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Ⅲ, p.228).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32년간 통치 하다가 68세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이세벨의 극성스럽고 잔인한 성품(19:2)은 이러한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ㅇ이세벨. -- 이 이름의 정확한 뜻은 모르나 우가릿 본문(Ugarit text)을 참조할 때 바알을 가리키는 “즈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엣바알의 딸 이세벨은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 인물이다. 즉 전제 군주적 권력욕이 대단함과 동시에 바알 숭배에 극성스러우리만치 충성했다는 점이다(Harver).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유다 왕 여호람과 혼인하여 훗날 남왕국의 여왕이 된 이세벨의 딸 아달랴(Athaliah)에게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왕하 8:18).

ㅇ아내를 삼고,---- 이는 곧 시돈과 이스라엘의 동맹 관계를 위한 정략적 결혼이다. 그런데 이 동맹은 정통적 우호 관계나 상업적 이익 외에도 당시 벤하닷(Benhadad)이 이끄는 아람 세력(20장)에 공동 대처키 위한 것이다(Maclean). 29절 주석 참조. 한편 이세벨은 마치 열정적 선교사처럼 이스라엘의 신을 바알로 대치하려 한 듯하다. 아합이 사마이아에 바알 신당을 세우게 된 것도 이러한 이세벨의 극성 탓인 것으로 여겨진다.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ㅇ사마리아에..쌓으며.------ 이로써 이제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가 바알 숭배의 중심지가 된 셈이다(Gates). 이 점을 여호와의 성전이 서 있는 예루살렘과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한편 “사마리아에 건축된 바알의 산당”은 아직까지 그 흔적조차 발굴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산당은 아합의 궁전의 일부에 속한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 발굴자의 보고에 따르면 아합 궁전은 팔레스틴에서 발굴된 어느 건축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고 한다.

33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ㅇ아세라 목상. --- 아세라(Asherah)는 고대 근동의 여러 지방에서 숭배된 풍요의 여신이다. 초기에는 아세라와 아스다롯(Ashtaroth)이 동일한 신으로 오해되었으나 후대의 연구 결과 서로 다른 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14:15주석을 참조하라.

ㅇ심히...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 ---- 여기서 “심히”에 해당하는 원어는 “야사프”라는 동사이다. 이는 “더하다”, “증가시키다”는 뜻이다. 즉 아합의 행위는 이전 왕들이 하나님을 분노케 한 것보다 더욱 분노를 증가시키는 행위였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처럼 여호와 앞에 범죄하여 그분의 노를 격발시킨 결과 아합과 이세벨의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22:25). 즉 선지자 엘리야의 예언대로(21:23,24) 아함의 피는 개들의 먹이가 되었으며(22:38), 이세벨은 예후의 창에 찔려 머리와 손, 발을 제외하고 전부 개들의 먹이가 되었던 것이다(왕하 9:33-37). 이렇듯 이들의 참혹한 죽음은 자업 자득(自業自得)이었음과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의 결과였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마지막 심판의 날에 패역하고 완고한 무리들에게 임하게 될 영원한 형벌은 이보다 더욱 비참할 것이다(막 9:48,49).

34 그 시대에 벧엘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ㅇ그 시대에. ---- 이에 해당하는 “베아마유”는 “그의 날들에”(in his days)란 뜻이다. 그런데 이는 문맥상 “그의 시대에”로 번역됨이 더 타당하다. 따라서 KJV와RSV(“그의 시대에”), NIV(“아합의 때에”), Living Bible(“그의 통치 동안”), 공동 번역(“아합의 다스리는 동안”) 등의 번역도 비교적 적절함을 알 수 있다.

ㅇ히엘....스굽을 잃었으니. --- 여리고(Jericho)는 본래 베냐민 지파에 배당되었던 땅이다(수 18:21). 그런데 10지파의 반란(12:16-20)으로 이스라엘 왕국에 속하게 되었으며 이후 북왕국의 국경 성읍이 되었다. 아마도 아합(Ahab)은 이 여리고 성읍을 재건함으로 요단강을 가로지르는 길목을 장악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히엘(Hiel)은 이 건축 사역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엘은 여리고를 재건하는 도중 두 아들을 잃고 만다. 이는 곧 일찍이 여호수아가 발(發)한 경고(수 6:26)를 무시한 탓인데 당시의 예언이 약 50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문자 그대로 성취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겨기서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 일획도 어김없이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사상(삼상 15:29 ; 마 5:18)을 재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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