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상6.성전>예배 = 말씀 순종하는 네 마음의 순전함 -- Q이름(임재) 영광이 일상생활에 임마누엘-동행으로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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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6장 [214.나주의도움받고자] [420.너성결키위해]


@@영혼의 고갈/메마름/기갈 = [임마누엘 하나님 영광의 임재-생명의 다정다감한 하나로서 생동감 넘치는 교통=사랑희락화평만족, 그 충만 느낌과 누림 상실한 영혼의 비참한 참 실상 파악] --->전존재 돌아보고 근본적 뿌리, 영적 참 회개에서 시작((내가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내가 진정 다시!! 생명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음 인정 고백함에서부터 시작!! --->가난함+애통함!!으로 주이름 불러 전존재의 새롭게 하시는 그분의 그 십자가에 함께 못박힘-장사됨-거듭남과 날마다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순환되는 그 보혈로 씻김 필요함을 고백@@


@@성전건축의 시작과 끝은 주님 자신임!! 무엇보다도 내적 성전 건축에 합당한 보혈 의지하여 주 이름 부르며 회개함으로 나아가 끝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림의!!, 포기함 없이 추구하여 마침내 찾아 발견하여 누림-기뻐함으로 영광 돌림의 경배이자 예배로 하나됨에로 올인하는...거듭난 참 믿음의 추구하는 마음 자세와 실지로 매일-날마다 주님 추구(찾아냄+누림-닮아감)실행이야말로!! 우리의 Devine Destiny와 Original Design 그대로 이루어짐 보게 하실 것 믿으라!!...성막의 크기에 비해 2배 규모의 솔로몬 성전(다윗에게 보여주신 식양 따랐음)..시기 받는자의 아픔은 시기하는 자의 아픔과 동일한 크기임..모든 스트레스마다 회개할 꺼리임... *1)각 사람의 마음 그 자체가 주님 그리스도의 거하시는 집이 되며 동시에 하늘의 새예루살렘의 지체와 구성요소들....*2)이 땅을 걷는 동안 그 마음(영혼)의 생명-본성-성품의 어떠함의 성장 성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 변화되어감에로 이끌고 계시니, 구약에서 보이는 그림은 [실재했지만 사라져 없는] 광야 성막 규모에서 솔로몬 성전 거쳐서 [사라짐 없는 바 참 내적 성전인] 에스겔 성전 규모로 넓히심에 이르려면... *3)확고-견고한 신뢰 바탕의 중도 포기 없는 일천번의 참 회개(자기죽음의 번제)의 임마누엘 인도-동행 안에서 걷기의 고난 통하여야....곧 하나의 성전 건축에 있어서 (채석장의 반석에서 돌을 떠내거나 쓰임새에 합당한 나무를 베어내어 자르고 운반하여, 합당한 크기로 깎아 모양 만들고 다듬고 새김)의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남은 고난을 거쳐서 유일무이한 참된 성전 건축자 주님 손에 쓰일 바 비로소 진정한 하나의 성전 건축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라... *4)이를 위해서, 주님은 임마누엘로 오셔서 날마다 유한한 [차원-영역-시공간]을 넘어섬의 동행을 연습함, 그리하여 [주님과의 가시적-비가시적 임재로 삶]에서 임재 찾기에서 늘 이기는 법을[주님 찾아내기를] 날마다 연습함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채움(시기질투미움받음 감수--박해자와 박해받는이의 고통 크기는 동일함)으로써 [점점 더 능숙하고, 더 즐겁게, 오직 절대 긍정-절대 신뢰-절대 기쁨-절대 감사-절대 감격의 발휘하는 생생한, 생동함의 산 믿음으로 --이는 진정 성육신하여 이땅에 오사 친히  걸으셨고, 십자가 상에서 온 인류 위한 고난, 대속의 죽음 거쳐 부활 승천하시 이제는 거듭난 믿는이(참 제자)안에 내주하시는 JC 주님이 연습하시고 늘 찾아내셔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바였다-- 주님이 미리 마련하신 상급인 은혜와 진리 찾아내고, 은혜 위에 은혜이신 주님을!!, 그대의 사랑-기쁨-화평으로 누림이자 오직 유일무이한 즐거움으로 여기며 궁구하자고 초청하고 계심을 깰 때마다 기억하자!!

[고전10: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NASB : No temptation has overtaken you but such as is common to man; and God is faithful, who will not allow you to be tempted beyond what you are able, but with the temptation will provide the way of escape also, so that you will be able to endure it.] ....JC는 The Way이시며, Way-Maker이심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다

.......명심하고 기억하라......2200km(1만2천스타디온)의 장광고 가진, 계시록의 새예루살렘은 유기적 생명 공동체-도성이자 지성소(그 핵심은 언약궤이신 TUQ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어린양의 아내)의 충만 확장 완전임을!!

........신자의 그 어떤 "드림" "희생" 행위의(자원함으로든 강요함으로든 상관없이)  많고 적음따라 "형통"여부가 달라진다 여기고 있었다면 그것은 일종의 거래에 지나지 않는바, 전적으로 하나님을 오해한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기복"이요 종교일뿐, 참되고 진정한 신앙, 곧 "사랑-기쁨-평강"이신 분을 신뢰함의 참 신앙이 아님에 주의하라.. ... "건물이 큰 교회, 신도 수 많은 교회" 선호 경향도 어쩌면 동일선상에 있는 것 아닌지, 그대 자신이 주 앞에서 친히!! 곰곰이 숙고해 봐야 하리라.....살아계신 하나님!! 스스로를 전적으로 내어주시며  희생하시지만, 우리에게는 자신과 동일한 희생을 원하심이 아니라!!, 오직 참된 신뢰-의지-맡기며-교통함의, Q 알고 사랑하며 완전히 순복하고 따라 동행함의 참된 관계 통해 [주님 말씀을 사랑하기에 순종함 통해!!] 전 존재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변화됨 통해 올바른 관계 안으로 들어와 참되게 누리기를 바라심....그렇지 못하다면 솔로몬성전 건물까지도 버리시는 하나님이심!!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다

----[마땅히 주께, 주님 거소인] 성전,그 건축시점을-누구와 함께 짓기 원하시는지를, 즉 두로왕과 함께 성전 짓는 것이 합당한지 여쭈지 않고 있다,  그 무슨 주제로 모였든지 담화하기 직전에 그대는 반드시 주님 이름 불러 말씀 안에 머무르고 주께서 대화 전체를 주도해 주시도록 주 앙망하면서 주가 말씀하시도록 마음을 주께 열어드리라, 모세가 장막 지을때는  그토록 빈번한"여호와께서 이르시되"가 있었지만 왕상6장에는 오직 단 한번 11절에 기록되어 있을뿐이다--진정 아쉬워 하시는 주님의 서운해 하시는, 그 섭섭해 하시는  마음 느낌을 그대 영 안에서도 공감되며 느낄 수 있는가----성전 짓는자인 거듭난 참신자의 진정한 영적 봉사에는 모름지기  타락한 사람들의 (망치, 정, 철연장 부딪히는 소리 등) 시끄러운 잡음이 들려서는 안됨도 기억하라, 오직 온유와 겸손, 긍휼과 자비의 그리스도 구현과 체현, 표현됨만이 있어야 하리라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출애굽[BC1446.]:광야40--여호수아정복전쟁32--사사시대331--사울30--다윗40--솔로몬4[BC966]

.......[대하3:1,2..*1.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2.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지 넷째 해 둘째 달 둘째 날 건축을 시작하였더라]

2.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성전은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며

3.  성전의 성소 앞 주랑(현관)의 길이는 성전의 너비와 같이 이십 규빗이요 그 너비는 성전 앞에서부터 십 규빗이며

4.  성전을 위하여 창틀 있는 붙박이 창문을 내고(세상 형편 이해와 중보를 위한 통로 --세째층 다락 그 위에 위치 : 성소 부분)

5.  또 성전의 벽 곧 성소와 지성소의 벽에 연접하여 돌아가며 다락들을 건축하되 다락마다 돌아가며 골방들을 만들었으니

6.  하층 다락의 너비는 다섯 규빗이요 중층 다락의 너비는 여섯 규빗이요 셋째 층 다락의 너비는 일곱 규빗이라 성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성전의 벽에 박히지 아니하게 하였으며 ---보이지 않는/생색내지 않는 기도와 봉사가 중요 :: 교회질서를 어지럽혀서는 안됨.

7.  (자기 소리가 나서는 안됨 : 여리고성 정복에는 200만이 침묵 가운데서 6일간 행군하다가, 7일째 일곱번 돈 후엔 외치라 할 때 외쳤음!!)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8.  중층 골방의 문은 성전 오른쪽에 [기도와 봉사 위해 올라가는 골방 출입문은 성전 남쪽에 따로 내었다--결코 생색내거나 자랑하지 말라] 있는데 나사 모양 층계로 말미암아 하층에서 중층에 오르고 중층에서 셋째 층에 오르게 하였더라

9.  성전의 [건물 골조]건축을 마치니라 그 성전은 [항상 은은하고도 정신 쾌청-명료하게 하는, 순전한 천연향 내음 가득하도록]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10.  또 온 성전으로 돌아가며 높이가 다섯 규빗 되는 다락방을 건축하되 백향목 들보로 성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11.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예배 위한 성전 건축 그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를 향한, 너의 경외함과 순종으로 예배하는 마음의 일편단심이니, 오직 순결하고 순전한 네 마음을 내게 다오!! ---주님 이름(임재) 안에, 그분 말씀 준행[규례-법도-명령, 즉 법도-율례-계명, 그 본질] 그분 앞에서, 코람데오의  사랑과 순종으로 오늘 새로이 나아와 만나주시는 주님 그분과 하나되어 그분으로 살며 동행하며 공급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깨우심 ==예배/경배 위한 성전을 짓고 있는 네 마음의 근본동기, 그것은 진실로 기복 위함이 아니라 (나는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제자도의 삶인)팔복이어야 한다=말씀하고 계심)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13.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성전 내부 장식 ::성전 건물 내-외부 구조 및 장식

14.  ○솔로몬이 성전 [건물]건축하기를 마치고

15.  백향목 널판으로 성전의 안벽 곧 성전 마루에서 천장까지의 벽에 입히고 또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고

16.  또 성전 뒤쪽에서부터 이십 규빗 되는 곳에 마루에서 천장까지 백향목 널판으로 가로막아 성전의 내소 곧 지성소를 만들었으며

17.  내소 앞에 있는 외소 곧 성소의 길이가 사십 규빗이며

18.  성전 안에 입힌 백향목에는 [낙원 상징하는]박과 핀 꽃을 아로새겼고 모두 백향목이라 돌이 보이지 아니하며

19.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 위하여 성전 안에 내소를 마련하였는데

20.  그 내소의 안은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백향목 제단에도 입혔더라

21.  솔로몬이 정금으로 외소 안에 입히고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지르고 내소를 금으로 입히고

22.  온 성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내소에 속한 제단의 전부를 금으로 입혔더라

23.  ○내소 안에 감람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각각 십 규빗이라

24.  한 그룹의 이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요 저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쪽 날개 끝으로부터 저쪽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

25.  다른 그룹도 십 규빗이니 그 두 그룹은 같은 크기와 같은 모양이요

26.  이 그룹의 높이가 십 규빗이요 저 그룹도 같았더라

27.  솔로몬이 내소 가운데에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퍼져 있는데 이쪽 그룹의 날개는 이쪽 벽에 닿았고 저쪽 그룹의 날개는 저쪽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성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

28.  그가 금으로 그룹을 입혔더라

29.  ○내 외소 사방 벽에는 모두 [낙원 상징하는]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고

30.  내외 성전 마루에는 금으로 입혔으며

31.  내소에 들어가는 곳에는 감람나무을 만들었는데 그 문인방과 문설주는 벽의 오분의 일이요

32.  감람나무로 만든 그 두 문짝에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곧 그룹들과 종려에 금으로 입혔더라

33.  또 외소의 문을 위하여 감람나무문설주를 만들었으니 곧 벽의 사분의 일이며

34.  그 두 문짝잣나무라 이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고 저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

35.  그 문짝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그 새긴 데에 맞게 하였고

36.  또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안뜰을 만들었더라

37.  ○넷째 해 시브월에 여호와의 성전 기초를 쌓았고

38.  열한째 해 불월 곧 여덟째 달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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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다시 세우실 주님-----

[암9:11, 12...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1.  "그 날이 오면,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고, 그 터진 울타리를 고치면서 그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집을 옛날과 같이 다시 지어 놓겠다.  12.  그래서 에돔 족속 가운데서 남은 자들과, 나에게 속해 있던 모든 족속을,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하게 하겠다." 이것은 이 일을 이루실 주의 말씀이다. //NKJV)  11 “On that day I will raise up  The [i]tabernacle of David, which has fallen down,  And [j]repair its damages;  I will raise up its ruins,  And rebuild it as in the days of old;  12 That they may possess the remnant of Edom,[k]  And all the Gentiles who are called by My name,”  Says the Lord who does this thing.]........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겠다!!”라고  아모스 말씀을 통하여서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의 장막"이 "예배"이고, "다윗의 장막의 회복"이 "예배의 회복"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말세에 살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이 "예배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누구이며, 다윗의 장막이란 무엇인지, 다윗의 장막의 특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행 13:22)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를 좇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결심은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그의 열정에 대한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이 오랜 세월 후에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난 후,  가장 신경을 써서 추진했던 사업은 “언약궤 찾아오기 프로젝트”였습니다.

언약궤를 찾아오는 과정에서 한 번의 실패를 맛본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시 한번 언약궤를 찾아오게 됩니다.  여러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오벧에돔의 집은  예루살렘 성에서부터 11km 내지 22km 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거리를 16km라고 가정해 본다면, 우리는 이 제사의 행렬이  예루살렘까지 올라가는데 어떤 그림이었을지 상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행진이 시작되기 시작할 무렵 레위인들은 살찐 소와 송아지를 죽여 제사를 지낸 후  여섯 걸음을 떼는 식으로 행진을 계속해 나갔습니다....다윗은, 주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옮겼을 때에, 행렬을 멈추게 하고, 소와 살진 양을 제물로 잡아서 바쳤다.  When those who were carrying the ark of the LORD had taken six steps, he sacrificed a bull and a fattened calf. (삼하 6:13)

만약에 다윗과 행렬에 참여한 사람들이 여섯 걸음마다 희생제사를 드렸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가지고 오기까지 엄청난 수고와 대가를 지불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언약궤를 가져왔다고 생각을 하면  적어도 수개월 동안의 행렬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섯걸음 걷고서 [언약궤 운반 허락 감사의 ] 희생 제물 드린 그 다음에는 예루살렘 성내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극도로 조심스럽기만한!! 긴 여정의 시간을(!!) 마치고 마침내 다윗과 레위인들, 제사장들 그리고 예배자들이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할 때에, 특히 지엄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은 펄펄 뛰며 춤을 추었습니다. 행렬에 참여한 일부 사람들이 살아남은 것이 감사했기 때문에 환호를 지르고 기뻐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예언의 영이 충만하여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하여 태어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배, 휘장이 없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하는 우리들까지를 바라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가운데 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임재와 영광, 그 우주적인 영광을 영으로 바라보고 경축하기에 그에게 춤을 추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실 다윗에게는 교회의 영광을 기뻐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신적인 기쁨이 폭발적으로 임한 것입니다. --- 광야에서 양을 치던 다윗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가장 추구하는 자였고, 그에게 하나님의 영은 임한 것입니다.  (한편 다윗 왕의 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는  다윗 왕이 단지 언약궤가 들어오는 것이 기뻤기 때문에 춤을 췄을까? 생각했지만, 그보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보니까  에봇이 흘러내리면서까지 췄던 다윗의 춤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기름 부음을 이스라엘 전체에 풀어놓는  예언적인 춤이 아니었을까 라는 것을 조심스레 추측해 보았습니다.)  성도들이 전심을 다하여서 추는 춤에는 성령님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다. 

반면에 다윗의 아내 미갈은 다윗의 춤을 보고 무척이나 부끄러워하는 엉뚱한 짓을 했습니다. 그 결과 미갈은 어떻게 되었나요? 미갈은 평생 태의 열매를 갖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언약궤가 도착한 즉시로 레위인들을 모집, 선발하여서 대규모 찬양단과 관현악단을 조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24시간 365일 끊임없이 찬양의 제사를 올려드리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온 산에 마련된 임시처소, "다윗의 장막"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장막"의 특징은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다윗의 장막의 특징은 "허름한 장막"이었습니다.

임시처소였던 "다윗의 장막"은  언약궤와 성물들을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저 기둥 좀 세우고 그 위에다가 방수천 하나 덮은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다윗의 장막"을 재건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중심이나 본질이 아니라 외적인 부분들이라면... 인간이 드려야하는 경배의 형태가 180도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장막"보다도 화려함의 극치였던  "솔로몬의 성전"을 회복시키시겠다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다윗의 장막은 비록 천막이었지만 하나님께선 다윗의 장막을 사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다윗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볼품 없었던 다윗의 장막일지라도 우리 하나님께는 너무나도 소중했던 것입니다.

예배의 형식이나 외적인 부분보다  예배의 본질이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두 번째 특징은 다윗의 장막에는 휘장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토미 테니가 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 다윗의 장막”  앞부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모세의 장막, 다윗의 장막, 그리고 솔로몬 성전이 나온다, ... "세 곳에 모두 등장하는 기구는 언약궤다. ... "언약궤에는 시온좌가 있고,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러 있었다. ... "셋 중에 하나님이 가장 선호하신 지상의 집은 다윗의 장막이었을 것이다. ... "왜냐면 휘장이 걷히고 궤가 눈에 보이고 영광이 명확히 드러나고  ... "예배자들이 밤낮으로 경배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장막은 모세의 성막과는 달리 휘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장막 안에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언약궤가 노출되었다는 것은 장막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의 성막에서는 일년에 단 한 차례, 그것도 오직 대제사장 단 한사람만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까이 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언약궤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의 영광(쉐카이나 글로리)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장막에서는 장막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의 장막에는 휘장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휘장이 없는 장막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더욱 더 강력하게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장막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모든 사람들 앞에 다 노출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장막에서는 휘장이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더욱 더 친밀한 관계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분리와 막힘"이라는 의미의 휘장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인간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에덴동산에 휘장도 성막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담과의 친말함은 최고였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막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죄의 벽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죄라는 것을 해결하고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인간은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늘 그리워하셨습니다.   다윗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알았던 것 같습니다.   휘장이 없는 장막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신선하고 획기적인 시도였지만,  그러나 다윗에게 있어서 그러한 시도는 목숨을 건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용감한 행동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장막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휘장을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이 성소의 휘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성소와 지성소의 막힘이 뚫리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그 지성소에 들어와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있게 됨을 의미하며,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과 같이  막혔던 것의 뚫림이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비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길을 “새롭게 산 길”이라 표현하며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다”고 외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대제사장이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서야 이 휘장을 지날 수 있듯이,  우리도 반드시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야만  하나님의 영광이 계시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윗의 장막이 휘장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다윗의 장막은 “피를 드리는 제사” 대신에 “찬양의 제사”가  하나님께 올려졌습니다.

다윗은 신약이 시작되기 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짐승 제사가 아니라 찬미의 제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또 찬미의 제사가 결국은 "신약의 경배"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 15)

다윗은 이 진리를 이미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깨달은 진리대로  신약적 의미의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모세의 성막에서는 소나 양과 같은 동물의 희생이 엄청났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장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잡아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성막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이 밤낮으로 해야 했던 것이  동물을 잡아서 죽이고, 각을 뜨고, 태우고, 피를 쏟아내는 등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장막에는 동물의 피 대신에 찬양과 경배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도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예배를 위하여 대규모의 찬양단과 관현악단을 조직하였습니다.   다윗은 레위인들을 모집하여 38,000명을 선발, 제사를 돕는 제사장들로 삼았으며, 이들은 전적으로 찬양분야를 담당하였고, 찬양을 인도하는 등의 직무를 맡았습니다. 다윗은 또한 레위사람의 어른들에게 명하여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들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역상 15:16) 그들 중에서 악기를 사용하여 찬송하는 음악 연주가들은 4,000명이나 되었으며  이들은 "기쁜 소리들을 높이기 위하여 현악기들과 수금들과 타악기들과 같은  악기들을 연주해야 했던 직분자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연주자들은 함께 모여서 여러 가지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때로부터 조직적인 찬양이 히브리 예배에 영구적 특색이 되었습니다.  이렇듯이 다윗의 장막에서는 동물의 피가 아닌 찬미의 제사가 흘러 넘쳤습니다. 

((다윗에게 나단을 통해 주신 바 다윗의 아들에 의한 성전 건축 + 다윗에 대한 축복 말씀- 삼하7장-, 그 말씀을 전해듣고 다윗은 시온산 다윗장막 언약궤 곧 여호와 앞에 나아가 꿇어앉아 감사하며 기도하고 있음)) ((솔로몬의 경우에서는, 기브온산당의 일천번제 드리기를 마친 그날 밤 꿈에, 여호와께서 물으심에 대해 백성들을 올바른 선악분별 판단으로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 듣는 마음 달라 구하였을 때, 주신 바 축복과 권고 말씀을 듣고는 시온산 다윗 장막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제물드림의 잔치를 배설하였음..왕상3장))

넷째로 다윗의 장막은 연중무휴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단 1분도 끊이지 않았던 것이 바로 다윗의 장막의 예배였습니다.  다윗의 장막에서는 24시간 365일 끊임없이 찬양의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늘의 예배의 모형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하늘나라는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찬양과 경배가  성도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다윗의 장막의 특징은 "중보기도"였습니다.   

다윗의 장막에서는 찬양과 경배의 제사와 더불어 중보기도의 향도 같이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주의 율법에 기록된 그대로,  번제단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계속하여 주님께 번제를 드렸다 (역상 16:37~ 40)  이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찬양하는 자들을 세워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또 번제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번제는 [살아낸 그리스도를 드림의] 기도를 가리킵니다.  다윗의 장막은 하늘나라의 모델 하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보면 하늘나라의 예배가 나옵니다.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5:8)

24 장로들 양손에는 거문고와 금대접이 있습니다. 금대접에는 향이 가득합니다.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이 장면은 찬양과 경배 그리고 중보기도가 같이 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 거문고는 ‘하프’를 뜻하는 것으로서 찬양을 가리키고 금대접은 성도들의 기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윗의 장막에서는 하나님께 경배가 드려졌고, 번제가 드려졌다고 했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태워서 연기로 하나님께 예배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장막은 요한계시록의 하늘나라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를  모델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과 경배와 기도가 같이 드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하나님의 백성들, 남은 자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다 합하여 하나님의 전에서 기도하게 하실 것 (사 56:8절)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장막에서 이와 같이 찬양과 경배와 번제를  하나님께 24시간 드렸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인데, 찬양과 경배와 기도가 같이 갔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보좌에서 지금, 하늘나라에 예배 가운데  찬양과 경배와 기도가 같이 가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거문고, 한 손에는 금대접, 이것이 같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세에 다윗의 장막이 세워질텐데,  다윗의 장막은 다른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교회는 다윗의 장막처럼 하나님 백성들이 수시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중보기도 하는 곳으로  이곳을 가리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곳,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주님의 영광을 구하는 곳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다윗의 장막의 특징은 “성령의 기름 부음과 신령한 노래”들로  가득 찼습니다.

다윗의 자손 중 3대 음악가는 아삽, 헤만 및 여두둔이었습니다. 그들은 찬양하고 예언했습니다.

역대상 25장 1절, 2절에 “신령한 노래" 가 나옵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나바’라는 말로써 “노래로 예언하다”는 뜻입니다.  

또 영어성경에서는 “for the ministry of prophesying”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예언의 사역을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신령한 노래는 예언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들은 예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신령한 노래를 불렀다는 말입니다. 여기 구절들에서 찬양하는 자들이 다 예언하는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장막의 예배는 찬양하는 사람들이 예언의 영이 임하도록  성령의 기름 부음에 상당히 개방적인 예배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곱 번째, 다윗의 장막은 전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장막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맛본 우리는 다윗의 장막 안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만 영적인 황홀경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죽어가는 영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맛본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담대히 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몰고 다니는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줘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다시 돌아오게끔 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말세 중에 말세입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는 것을 수많은 영적지도자들이 주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독립했다는 것은 정말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의 문턱에 서 계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정말 급박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여기저기서 이상기온이 발생하고 또 강력한 태풍과 지진 그밖에 수많은 자연 재해들이 발생합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기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10년 전만해도 미전도 종족이 12,000여 개 있었지만  지금은 6,000종족밖에는 안 남았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15년도 채 안돼서 모든 종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예수님의 재림이 30년에서 50년 정도 남았다고 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지만 암튼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에 정말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본다면 지금 저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정말 말세 중에 말세인 것 같습니다.

아모스서 9장 11절은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예배에 대한 회복이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저희로 에돔의 남은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을 기업으로 얻게하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장막”을 회복시키시면서  또한 전무후무한 대추수를 거두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신약의 성도들은 모두 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경배 드리며 예언하며  다윗의 계시로 받았던, 하나님께서 받으실 예배를 회복하였으며 이 회복의 불길은 더 거세어져 24시간 중보와 찬양으로  결국은 이방의 대추수를 몰고 올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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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4 : 10-26]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 [믿는 이가 그리스도의 이름-주님!!-을 전존재의 중심으로 부르며, 영을 사용하여, 영으로 그리스도를 접촉할 때] 주님은 친히 선물[=곧, 영생, 영원하도록 솟아나는 샘의 물]이시요, 그 영생수를 주시는 분이요, 그 선물을 받는 길이심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지금 샘물 내는 기적을 손수 일으키렵니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이 우물물...늘 새로운 참생명 샘물 아닌, 종교 유업-일시적, 옛것))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다시는!!]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참되게 믿는자마다 참 생명샘된 내게 받아마시는 물마다!! - 항상 새롭게]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미 선물 생명수, 선물 주시는 분, 선물 받는 길이심을 재 강조:::말씀을 참되게 믿고(=즉,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을 사용하여 영으로 접촉함)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영접한 마음은, 곧 자신의 영의 보좌에 성령께서 내주하게 되심으로써 그 자체로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샘을 가지게 됨을 의미함 ::: 날마다 경험 통해 새로이 체득할 바 영생구원 생명샘이신 주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충만한 참생명 넘쳐남으로 충만히 새겨져야 함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네 남편과 바꾸자..공짜로는 곤란하다!!..대가 지불해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일리 있다...솔직한 오픈-나눔 참 고맙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어찌 보면 남편중독!!, 진정한 참생명 교통 누림 없으니, 만족이 없구나]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습관적 무기인 선악지식으로 돌아가고 있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사랑하는 자여, 영을 사용하라, 영으로 하나님께 돌이키라!!] 내 말을 믿으라[=생명나무 취함,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것은 대가 지불의 첫걸음이요 마지막이다...네 존재를 네 모든 문제와 함께 온통 내게 맡겨라, 참진리인 내 말을 영으로 들으라, 영을 사용하라, 그 말씀하시는 바 하나님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아람어 메쉬하..히브리어 마쉬아흐...기름부음 받은자)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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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자((=성경은 모든 거듭난 이로 구성된 단체적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여성성 지닌,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로 보고 있음을 기억하라.....돕는 배필인 아내는, 남편이 느끼는 바 아내가 필요하다 느끼는 정도보다 연약함-무력함-결핍을 더 크게 느끼며, 참 만족으로서의 남편에 대한 동경과 갈망을 더 크고 깊은 정도로 가지게 하셨다))의 만족 그리스도/그리스도<유일한 남성성 지닌 분>의 만족은 참된 새 사람((신부인 새예루살렘))...참사람 얻기를 갈망하시는 그리스도/남편, 참 만족에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을 보라..

**그리스도의 반쪽, 너는 내게 오라.. 너의 모든 문제들, 모든 필요와 갈망의 참된 해결은 바로 나, 그리스도이니... 너의 목마름<만족없음>은 곧 나의 목마름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너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나를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 지금의 네 남편<네게 만족준다고 여기고 있는 바, 육체적 또는 종교적, 전통적, 물질적 남편들>을 내게로 가져와서 내가 주는 [유일한 만족을 주는] 생명수와 바꾸는 것은 어떨까 **변론하는 네 말도 옳다<반쪽만 그렇긴 하다만>, 지금 있는 남편들은 그 어떤 것도 너의 참된 만족이 아니구나 **영을 사용해서, 영으로 그리스도를 접촉, 그래야 영이신 하나님, 곧 생명수이신 분을 참되게 먹고 마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상호간에 영을 사용하고 영으로 접촉할 때, 바로 그 때에야 진정 하나가 됨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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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6장

1.  Now it came about in the four hundred and eightieth year after the sons of Israel came out of the land of Egypt, in the fourth year of Solomon's reign over Israel, in the month of Ziv which is the second month, that he began to build the house of the LORD.

2.  As for the house which King Solomon built for the LORD, its length [was] sixty cubits and its width twenty [cubits] and its height thirty cubits.

3.  And the porch in front of the nave of the house [was] twenty cubits in length, corresponding to the width of the house, [and] its depth along the front of the house [was] ten cubits.

4.  Also for the house he made windows with [artistic] frames.

5.  And against the wall of the house he built stories encompassing the walls of the house around both the nave and the inner sanctuary; thus he made side chambers all around.

6.  The lowest story [was] five cubits wide, and the middle [was] six cubits wide, and the third [was] seven cubits wide; for on the outside he made offsets [in the wall] of the house all around in order that [the beams] should not be inserted in the walls of the house.

7.  And the house, while it was being built, was built of stone prepared at the quarry, and there was neither hammer nor axe nor any iron tool heard in the house while it was being built.

8.  The doorway for the lowest side chamber [was] on the right side of the house; and they would go up by winding stairs to the middle [story,] and from the middle to the third.

9.  So he built the house and finished it; and he covered the house with beams and planks of cedar.

10.  He also built the stories against the whole house, each five cubits high; and they were fastened to the house with timbers of cedar.

11.  Now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Solomon saying,

12.  "[Concerning] this house which you are building, if you will walk in My statutes and execute My ordinances and keep all My commandments by walking in them, then I will carry out My word with you which I spoke to David your father.

13.  "And I will dwell among the sons of Israel, and will not forsake My people Israel."

14.  So Solomon built the house and finished it.

15.  Then he built the walls of the house on the inside with boards of cedar; from the floor of the house to the ceiling he overlaid [the walls] on the inside with wood, and he overlaid the floor of the house with boards of cypress.

16.  And he built twenty cubits on the rear part of the house with boards of cedar from the floor to the ceiling; he built [them] for it on the inside as an inner sanctuary, [even] as the most holy place.

17.  And the house, that is, the nave in front of [the inner sanctuary,] was forty cubits [long.]

18.  And there was cedar on the house within, carved [in the shape] of gourds and open flowers; all was cedar, there was no stone seen.

19.  Then he prepared an inner sanctuary within the house in order to place there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20.  And the inner sanctuary [was] twenty cubits in length, twenty cubits in width, and twenty cubits in height, and he overlaid it with pure gold. He also overlaid the altar with cedar.

21.  So Solomon overlaid the inside of the house with pure gold. And he drew chains of gold across the front of the inner sanctuary; and he overlaid it with gold.

22.  And he overlaid the whole house with gold, until all the house was finished. Also the whole altar which was by the inner sanctuary he overlaid with gold.

23.  Also in the inner sanctuary he made two cherubim of olive wood, each ten cubits high.

24.  And five cubits [was] the one wing of the cherub and five cubits the other wing of the cherub; from the end of one wing to the end of the other wing [were] ten cubits.

25.  And the other cherub [was] ten cubits; both the cherubim were of the same measure and the same form.

26.  The height of the one cherub [was] ten cubits, and so [was] the other cherub.

27.  And he placed the cherubim in the midst of the inner house, and the wings of the cherubim were spread out, so that the wing of the one was touching the [one] wall, and the wing of the other cherub was touching the other wall. So their wings were touching each other in the center of the house.

28.  He also overlaid the cherubim with gold.

29.  Then he carved all the walls of the house round about with carved engravings of cherubim, palm trees, and open flowers, inner and outer [sanctuaries.]

30.  And he overlaid the floor of the house with gold, inner and outer [ sanctuaries.]

31.  And for the entrance of the inner sanctuary he made doors of olive wood, the lintel [and] five-sided doorposts.

32.  So [he made] two doors of olive wood, and he carved on them carvings of cherubim, palm trees, and open flowers, and overlaid them with gold; and he spread the gold on the cherubim and on the palm trees.

33.  So also he made for the entrance of the nave four-sided doorposts of olive wood

34.  and two doors of cypress wood; the two leaves of the one door turned on pivots, and the two leaves of the other door turned on pivots.

35.  And he carved [on it] cherubim, palm trees, and open flowers; and he overlaid [them] with gold evenly applied on the engraved work.

36.  And he built the inner court with three rows of cut stone and a row of cedar beams.

37.  In the fourth year the foundation of the house of the LORD was laid, in the month of Ziv.

38.  And in the eleventh year, in the month of Bul, which is the eighth month, the house was finished throughout all its parts and according to all its plans. So he was seven years in build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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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6장 (개요)

성전 건축을 위한 위대하고도 장구한 준비를 다하고 난 뒤에, 마침내 성전 건축에 관한 기록이 나오게 되었다. 

그 성전은 걸작품이었고, 이 세상의 경이 중의 하나이며, 교회의 영광 중의 하나로서 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 성전 건축 시기와(1) 건축 연한(37, 38).

2. 고요하게 건축됨(7).

3. 성전 규모(2, 3).

4. 건축 중 솔로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11-13).

5. 건축 내역. 창(4), 다락방(5, 6, 8-10), 벽과 마루(15-18), 언약궤(19-22), 그룹(23-30), 문(31-35), 그리고 안뜰(36).

많은 학자들은, 건축의 법칙에 따라서, 이 성전에 대한 설명을 해설해 보려고 수고할 것이 당연하다. 자기들이 발견한 난점을 해결해 보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에 있어서는 별로 새롭고 신기한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 장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해설을 통해서 이 영광스러운 건축물을 볼 때 가장 잘 이해되고, 또 모든 사람의 눈에도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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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 공사 (1)(왕상 6:1-10)

Ⅰ. 여기에 보면 성전을 “여호와의 전”(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까닭은,

1. 여호와에 의해 계획되고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무한한 지혜자가 건축가이시다. 그 분은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다윗에게 그 계획과 모형을 주셨는데, 그것은 설계할 때보다 확실하고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상 28:11, 12). 이는 마치 여호와께서 산에서 모세에게 유대인의 장막(회막) 설계도를 주신 것과 똑같았다.

2. 여호와께 봉헌되고, 그의 영광을 위해 있고, 그의 일에 쓰일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집은 다른 어떤 집과도 다르다. 그의 집에는 그러한 경륜에 알맞도록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을 (다른 어느 집과는 달리) 나타내셨다. 육적인 규례가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기 때문이다(히 9:1, 10).

그 집이 “여호와의 집”이라는 사실이 그 집에 “성전의 아름다움”을 주며, 그 아름다움은 모든 아름다움보다 뛰어나다.

Ⅱ. 성전 건축을 정확히 착수해야 할 시간.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지 꼭 480년이 되는 해였다. 모세에게 40년, 여호수아에게 17년, 사사들에게 299년, 엘리에게 40년, 사무엘과 사울에게 40년, 다윗에게 40년, 그리고 솔로몬이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4년을 허락하신 것으로 보면, 꼭 480년이라고 계산할 수 있다.

거룩한 집이 건축되기 그렇게 오래전에 이미 거룩한 나라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그 성전은 그후 430년도 못 되어 느부갓네살에 의해 소실되어 버렸다. 

이 성전이 늦어진 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치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 자신이 자기의 사업이 겉으로 화려하고 장엄하게 꾸며지는 것을 얼마나 낮게 평가하시는가를 보여 주시고자 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성전을 위해 서두르지 않으셨던 것이다.

다윗의 장막은 정결하고도 간편했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위엄 있거나 사치스럽지는 않았어도, 거룩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전”(삼하 12:20)이라 불렸고,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큰 재산을 주실 때, 솔로몬에게 이 일을 꼭 수행할 마음을 주시어, 솔로몬을 은혜스럽게 받아들이신 것이다. 

이것은 주로 장차 올 좋은 것의 그림자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히 9:9).

2. 때는 솔로몬이 위에 있은 지 4년이 되는 해였으며, 그의 초기 3년은 그의 왕국의 국사를 안정시키는 데 소요되었고, 이는 성전 건축 사업시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일정 기간 마음을 가다듬는 것과 우리로 하여금 꼬이게 하거나 뒤틀리게 하는 모든 것의 해결점을 찾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솔로몬은 그의 부친이 이미 준비하고 있던 것 외에 돌을 뜨고 재목을 켜는 등 모든 준비를 하여 성전 건축이 늦어진 데 대한 비방을 받지 않도록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준비하고 그 사업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일이 곧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Ⅲ. 모든 재료가 준비되어 적재 적소에 놓여 있었다(7절). 그러므로 “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 소리가 건축하는 동안에 들리지 않았다”(7절). 

솔로몬은 모든 건축을 하는 동안에도 “밭일을 준비하고, 그 후에 집을 세우는” 신중책을 법칙으로 삼으라고 명하고 있다(잠 24:27). 

그러나 여기서 보면, 모든 준비가 보통 이상으로 완벽하고 정확하게 되어 있어서, 모든 부분이 저마다 한데 이어지고 불량한 곳이 하나도 없이 되어, 고칠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평화의 하나님의 전이 될 집이었기 때문에, 쇠로 만든 연장 소리가 그 안에서 들려서는 안 되었다. 정숙과 고요함은 신앙의 실행과 잘 어울리는 것이며, 잘 조화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은 깊은 사려와 조용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성전은 도끼와 철추로 헐렸다. 

성전을 헐어 버린 자들은 회중에서 훤화했으나(시 74:4, 6), 건축은 고요하게 진행되었다. 소요와 폭동은 때로는 하나님 사업을 저해시킬 뿐, 그것을 잘 진행시키지 못한다.

Ⅳ. 각 치수가 비율에 맞게 정해졌다(2, 3절). 성전의 장과 광이 회막의 꼭 두 배가 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자들도 있다. 

이제는 이스라엘 사람의 수가 퍽 많아졌으므로, 그들의 회의 장소도 커져야 할 필요가 있었고(사 54:1, 2), 그들이 더 부유하게 되었으니, 그것을 더 확장시킬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많이 뿌리신 곳에서는 그만큼 많이 거두실 것을 기대하신다.

Ⅴ. 창에 관한 설명(4절). 창들은 “안은 넓고 밖은 좁고 교창(交窓)”이었다. 우리의 마음의 눈도 이와 같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 자신을 가까이서 반성하여, 우리의 안을 많이 성찰하여 자신을 판단해야 하고, 바깥은 내다보지 말고 우리 형제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빛의 입구가 협소했다는 사실은, 복음의 시대와 비교해 볼 때, 당시의 시대(경륜)의 암흑성을 암시한다.

Ⅵ. 다락방에 대한 설명(5, 6절). 다락방은 성물 안치소로 쓰였으며, 성전 기구들이 안치되어 있었고, 또 제사장들이 옷을 입거나 벗어 두는 곳이다. 아마도 이 다락방 중의 어느 방에다 거룩한 물건들을 두었을 것이다. 솔로몬은 성전의 장엄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그것은 다만 모든 것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들보가 성전 벽에 박혀 있어서 벽을 약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6절). 미화한다거나 편의를 도모한다는 미명 아래 교회의 힘이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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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중에 들린 말씀(왕상 6:11-14)

Ⅰ.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말씀.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하셨다. “네가 지금 전을 건축하고 있느니라”(12절).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눈이 그들을 향하신다. “나는 너의 일을 아나니, 너의 선한 일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만일 율법을 따라 행하고 순종함으로써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일을 지켜 참되이 예배하면, 하나님의 살아 계신 자비가 그와 그의 나라(“나는 나의 말을 너에게 지키리라”)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확약하셨다. 즉 “이스라엘은 이전처럼 나의 백성으로 인정될 것이요, 나는 그들과 함께 거하며,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이 말씀은 아마도 선지자를 통해 주신 것일 것이다.

1. 솔로몬이 그의 사업으로 격려와 위안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아마도 이 커다란 걱정과 비용과 수고 때문에, 그는 이 일을 착수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마음먹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로 하여금 그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도움을 주고, 그의 가족과 그의 나라의 확립에 대한 약속은 그의 모든 수고에 풍성한 보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약속을 바라보는 눈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일을 즐겁게 감당하게 해 줄 것이다. 

또 공공의 복지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그 복지에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이 확실하게 영속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도 아까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2. 그는 조건부로, 지금 성전을 그 어느 것보다 공고하게 건축하지만, 만약에 솔로몬과 그의 백성이 계속 “하나님의 법도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은 곧 떠날 것임을 중히 여기라는 깨우침을 받았다. 하나님은 솔로몬과 그의 백성들이 이러한 부담을 지고 있지만, 성전을 건축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해야 할 그들의 책임을 면제해 주거나 불복종의 경우 심판을 피할 은신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주셨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교회를 건축하는 것보다 훨씬 선한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Ⅱ.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해 한 사업. “그는 그 전을 건축했다”(14절). 솔로몬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메시지에 힘을 얻어서, 그리고 그가 만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전을 취하실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으므로, “주여, 주의 법도를 굳게 지켜 나갈 결심을 품고 이 모든 조건을 이행하겠나이다” 라고 했다.

하나님의 통치는 엄격해서, 선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박차를 가하도록 유도한다. 솔로몬은 건축을 착수하고 완료했다. 그는 계속 그 일과 같이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일이 완공될 때까지 그와 함께 계셨다.

여기에 나온 말씀은 하나님과 그를 찬양하는 말이었다. 솔로몬은 이 사업에 조금도 싫증을 내지 않았고, 어떤 방해에 부닥친 일도 없었다(에스라처럼. 스 4:24). 그리고 그의 재산을 반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성전 건축에 착수했을 때, 그는 능히 마칠 능력도 있었고 마치려는 마음도 있었다. 그는 지혜로운 건축자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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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 공사 (2)(왕상 6:15-38)

Ⅰ. 성전 건축에 대한 자세한 설명.

1. 성전 벽 판자. 성전 벽 판자는 백향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튼튼하고 질겼으며, 냄새도 퍽 향기로웠다(15절). 벽의 판자는 (달걀이나 사과처럼 생긴) 박과 꽃으로 교묘하게 수를 놓았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당시의 유행이었을 것이다(18절).

2. 금으로 입힘. 이는 오늘날처럼 금을 엷게 바르는 것이 아니고 “온 집”을, 곧 성전 내부(22절)뿐만 아니라 마루까지도(30절) “금으로 입히고”, 지성소는 “정금”으로 입혔다(21절). 솔로몬은 그 집을 모든 점에서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성전 안에서 그래야 하듯, 거기서는 금이 발 밑에 밟혔다. 금이 너무 풍성하면 가치가 떨어진다.

3. 신탁, 혹은 “말하는 곳”(이것이 문자적 의미다). “지성소”를 그렇게 불렀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모세와 또는 대제사장들에게 말씀하신 곳이 그 곳이기 때문이다. 그 때 대제사장은 판결의 흉패로 신탁을 물었을 것이다. 이 곳에는 “언약궤가 놓여 있어야 했다”(19절). 솔로몬은 모든 것을 새롭게 전보다 더 장엄하게 만들었으나 언약궤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언약궤는 모세가 만든 그대로의 것이었고, 거기에는 속죄소와 그룹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였으며, 그의 백성들이 장막에서 모이든 성전에서 모이든 상관이 없었고, 그들의 처지에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4. 그룹. 궤의 뚜껑인 속죄소의 끝에 있는 그룹들 외에,

(1) 솔로몬은 두 개의 그룹을 더 세웠다. 그것은 대단히 크고, 감람나무로 만든, 날개가 달린 젊은 사람의 모양이었다. 거기에 모두 금을 입혔다(23절).

이 지성소는 회막에 있던 것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만약에 언약궤가 그렇게 장식되지 않았더라면 그 안에서 잘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창문도 없는 그 벽은 보이지도 않을 뻔했다.

(2) 그는 성전의 사면 벽에다 그룹을 새겼다(29절). 이방인들은 그들의 신들의 형상을 만들어 거기에다 절을 하지만, 이 그룹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종들과 수종자들, 곧 거룩한 천사를 나타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 이들에게 절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배드릴 분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5. 문. 지성소에 들어가는 문설주들은 벽의 5분의 1에 불과했고(31절),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설주는 4분의 1이었다(33절). 그리고 어느 문에나 그룹을 아름답게 아로새겨 놓았다(32, 35절).

6. 제사장이 집전하는 놋 제단이 있는 안뜰. 이 뜰은 다듬은 돌 세 켜와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려 있어서, 일반인들이 있는 뜰과는 낮은 벽으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고, 또 제사장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구약 시대에도 백성들은 어둠 속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완전히 갇혀 있지는 않았다.

7. 성전 건축에 소요된 시간. 성전 건축 착공에서 준공까지는 7년 반에 불과했다(38절). 성전의 규모와 우아성, 그리고 성전이 쓸모 있게 설립되기에 필요한 많은 부속물 등을 고려해 볼 때, 이 성전 건축은 빨리 이룩된 것이다. 솔로몬은 이 일에 열심을 내었고, 또 돈도 충분했으며, 이 일 이외에 다른 일에 눈길을 돌리지도 않아서, 많은 기술자들의 손이 이 일을 신속히 끝마쳤다. 그는 이에 필요한 물자와 식량을 가지고 성전을 완공했다. 그는 성전 장소를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업도 촉진시켰던 것이다.

Ⅱ. 이 성전이 상징하는 원형.

1. 그리스도야말로 참된 성전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자기의 몸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요 2:21). 하나님이 친히 그에게 그의 몸을 마련해 주셨다(히 10:5). 성전 안에 쉐키나(하나님의 엄위)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온전함이 있다.”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영적 이스라엘이 만난다. 그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에게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모든 천사, 곧 그 축복된 그룹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책임을 지고 있다.

2. 믿는 자는 누구나 살아 있는 성전이므로, 성령이 그 안에 계신다(고전 3:16). 모든 몸은 그 영혼과 연합함으로써 그렇게 된다(고전 6:19).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놀랍게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날로 새롭게 된다. 이 살아 있는 성전은 그리스도 위에 기초를 잡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온전하게 될 것이다.

3. 복음의 교회는 신비로운 성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며(엡 2:21), 솔로몬의 성전이 금과 보석으로 꾸며진 것처럼 성령의 은사와 은혜로 풍요하게 되며 아름다워진다.

회막은 유대인들끼리 거했으나, 성전 건축에는 이방인들이 가담했다. 나그네와 외인들도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다(엡 2:19, 22).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그리고 성전 뜰은 내소와 외소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언약궤로 들어가는 문보다 더 넓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는 이르지 못하는 고백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 성전은 반석 위에 공고히 세워져 있기 때문에, 구약성경의 장막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성전이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드디어 완공되었다. 복음의 교회의 머릿돌은 드디어 환호성과 더불어 나타날 것인데, 그 성전 건축에 도끼 소리와 망치 소리가 요란하다면 유감천만이다. 천사들은 교회 사면과 교인들을 수종하는, (남을) 섬기는 영들이다.

4. 하늘은 영원한 성전이다. 거기서 교회는 튼튼히 서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새 예루살렘의 거리거리는 성전의 마루처럼 “정금으로” 되어 있다(계 21:21). 거기에는 그룹이 언제나 영광의 보좌 위에 있다. 성전은 한결같았다. 그와 같이 하늘의 성전에는 아름다움과 조화의 완성이 있다.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도끼 소리와 망치 소리가 안 들렸다.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스럽기만 하다. 그 성전에 놓일 모든 돌은 지금 시험과 준비 상태에 있으므로 앞으로 합당하고 잘 맞게 될 것이 틀림없다. 또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조각되고 다듬어져야 하며, 그래서 천국의 장소에 알맞게 되어야 한다.

===호크마===

...열왕기상 6장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ㅇ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 팔십 년 - 보통 출애굽 연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B.C. 1,440년 경으로 보는 주장이고('전기 연대설' 또는 '15세기설'), 다른 하나는 B.C. 1,200년 경으로 보는 주장이다('후기 연대설' 또는 '13세기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애굽기 서론 부분을 참조하라. 한편, 틸레(Thiele)의 계산을 따라 성전 건축을 시작한 솔로몬 4년 시브웰(유대 종교력 2월;오늘날 태양력 4, 5월)을 B.C. 966년 경으로 볼 때, 본문대로라면 출애굽 연대는 B.C. 1446년 경이 될 것이다. 그런데 본절의 '사백 팔십 년'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즉 많은 학자들은 나름대로의 근거하에서 480년이란 이 연대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가한다. 곧 (1) 70인역(LXX)은 480년 대신 440으로 보았다. (2) 요세푸스(Josephus)는 480년 대신 592년으로 잡는다. (3) 혹자들은 본문의 480년을 일종의 상징적인 세대수(世代數)로 본다. 즉 벌도우(Bertheau), 뵈쳐(Bottcher) 같은 학자들은 여기 480년을 '40년+12세대=480년'으로 보고, 실제적인 12세대는 250년~280년 가량이므로, 약 200년 가량 단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잡한 계산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의 주장은 입증할만한 뚜렷한 근거없이이 추측의 선에서 머물고 만다. 반면 카일(Keil)과 메튜 헨리(Matthew Henry) 같은 주석가들 및 우드(L. Wood)와 아쳐(G. A. Archer) 같은 보수주의 구약 학자들은 본문 그대로 480년의 정확성을 뚜렷이 주장한다. 

사실 본절이 왕의 통치 년, 월까지 상세히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의 신빙성은 높다. 그리고 이 480년은 부분적인 이견(異見)이 있긴 하지만, 대략 (1) 광야 생활 40년 (2) 가나안 정복기 및 평정기 32년 (3) 사사 시대 331년 (4) 사울의 통치기 33년 (5) 다윗의 통치기 40년 (6) 솔로몬의 즉위 후 4년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한편, 본서 저자가 성전 건축 시기를 특별히 출애굽을 기준으로 해서 기술한 까닭은, 성전 건축은 곧 약속의 땅에 대한 그 때까지의 임시적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항구적 소유를 표징(表徵)하는 신기원(新紀元)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Keil).

ㅇ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년 - 솔로몬은 즉위 초부터 히람과 협정을 체결하여(5:1-12), 대략 3년 동안 목재, 돌, 역군 등 건축에 필요한 제반 준비 작업을 하였을 것이다(5:13-18).

ㅇ시브월 - 37절 주석 참조.

ㅇ전(殿)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 역대하 3:1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는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이다(창 22:2). 그곳은 인구 조사의 죄를 범한 다윗에게 천사가 하나님을 위해 번제단을 쌓도록 지시한 장소(삼하 24:16-25), 곧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다(대상 21:15-27).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쳐 드리던 중 '여호와 이레'의 은혜가 나타난 역사적인 장소이다(창22:2, 14).

2 솔로몬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전은 장이 육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삼십 규빗이며

ㅇ전(殿) - 여기서 '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성전 본당을 가리킨다.

ㅇ장(長)이 육십 규빗이요 광(廣)이 이십 규빗이요 고(高)가 삼십 규빗이며 - 일반적으로 '규빗'(Cybit)은 어른의 팔꿈치에서 중지(中指)까지의 길이로 대략 45.6cm, 혹은 그 안팎이다(Siloam Inxdriptoin;창 6:16;출 37:1;신 3:11). 왕실에서는 좀더 긴 규빗이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1규빗이 대략 52~54cm 가량이다(Stinespring). 한편, 대하3:3에 의하면 솔로몬 성전에는 '옛적 재는 법', 곧 모세의 측량법이 적용되었다. 따라서 1규빗을 대략 45.6cm 가량으로 잡고 전의 규모를 환산해 보면, 대략 길이가 27.36m, 너비가 9.12m, 높이가 13.68m 가량이다. 그런데 이 규모는 당시의 대건축물에 비하며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이유인즉 아마 이곳은 일반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는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하나님이 거처하는 상징적인 장소로서 오직 제사장들만이 드나드는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Dentan, Hammond).

3 전의 성소 앞 낭실의 장은 전의 광과 같이 이십 규빗이요 그 광은 전 앞에서부터 십 규빗이며

ㅇ낭실(廊室) - '낭실'(* , 울람)은 '앞서가다', '인도하다'란 뜻을 갖고 있는 '울'에서 파생된 말이다. KJV는 이 말을 '현관'(porch)으로 번역하였다.

낭실은 성전 입구가 있는 동쪽에 위치한 부속 건물로 일종의 대기실 역할을 하였다.  문에 대한 언급이 예외적으로 없는 것으로 미루어(31, 33절) 아마 이 낭실은 터널같은 구조가 아니었을까 추측되기도 한다(Bahr). 한편, 낭실의 길이는 20규빗(9.12m)이며 너비는 10규빗(4.56m)이었다. 그리고 본절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대하 3:4의 기록에 의하면 낭실의 높이는 120규빗(약 55m)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건축상의 비율이나 건축물의 모양상 이렇나 낭실의 높이는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역대기의 기록에 필사상의 오류가 개재된 것으로 보고, 낭실의 높이는 성전 본관의 건물 및 낭실의 길이와 너비에 어울리게 20규빗 내지는 30규빗 정도로 추측한다(Keil, Thenius, Hammond, Furgusson, Bertheau, Bahr).

4 전을 위하여 붙박이 고창을 내고

ㅇ붙박이 교창(交窓) - 공동 번역은 '붙박이 교창'을 '우묵 들어간 틀에 끼운 창문'으로 번역하였다(windows with recessed frames, RSV). 즉 안쪽보다 바깥 쪽이 더 좁게 생긴 구조이다(Aquila). 그너데 창문의 이러한 구조는 햇빛과 공기가 잘 들어오고 연기는 잘 빠지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Keil). 한편, 지성소에는 이러한 창문이 없었으므로 완전한 암흑이었다.

5 또 전의 벽 곧 성소와 지성소의 벽에 연접하여 돌아가며 다락들을 건축하되 다락마다 돌아가며 골방들을 만들었으니

ㅇ전의 벽...다락들을 건축하되 - 솔로몬은 성전(성소와 지성소) 바깥 벽에 잇대어서 많은 '골방들'로 나뉘어지는 3층 구조의 건물을 지었다.

ㅇ골방들(첼라오트) - 이 골방들의 숫자는 30개이다(겔 41:6). 그리고 이 골방의 용도는 겔 42:13, 14에 의하면 (1) 제사장들이 제물을 먹는 장소. (2) 제물을 보관하는 장소. (3) 제사장들이 옷을 갈아 입는 장소 등으로 밝혀지고 있다. (4)그리고 성전에는 봉사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거처 장소이기도 했다(시 134:1). 한편, 이처럼 솔로몬 성전의 구조와 용도를 밝히는 데 에스겔의 미래의 성전은 곧 솔로몬의 성전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Quellette).

6 하층 다락의 광은 다섯 규빗이요 중층 다락의 광은 여섯 규빗이요 제 삼층 다락의 광은 일곱 규빗이라 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전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였으며

ㅇ하층...중층...삼층 다락 - 다락(야추아)은 3층으로 되어 있었고 밑층에서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1규빗씩 넓게 고안되었다. 그 까닭은 윗층 바닥이 아랫층의 양 벽에 좌우로 반 규빗씩 걸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각 층은 나사 모양의 사다리로 연결되어 오르내리도록 되었다(8절).

ㅇ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전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였으며 - '턱을 내어'(미그라오트)라는 말은 '벽의 두께를 줄인다'는 뜻이다(Keil). 예를 들면, 각층 골방의 들보를 지탱하는 선반(턱)을 만즐기 위해서 윗층벽의 두께를 1규빗씩 축소하는 식이다. 한편, 왜 들보들로 전(殿)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고 굳이 턱을 내게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단지 성전 벽면의 돌들이 크고 값진 것이므로 구멍을 내기 싫었을 것으로, 아니면 성소와 지성소의 신성함을 손상치 않으려는 것으로 추측해 볼 따름이다(Bahr).

7 이 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가져다가 건축 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ㅇ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 이 구절은 채석장(採石場) 현지에서 이미 치수에 맞춰 돌을 다듬었으므로 정작 건축 장소 내에서는 연장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을 말한다(Keil, Thenius, Bahr). 따라서 다듬을 필요조차 없이 건축물의 치수에 꼭 들어맞는 돌들을 미리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라는 견해(Theodoret)는 무리이다. 물론 그러한 견해는 신 27:5, 6의 정신에 맞추려는 관심에서 주장된 것이다. 그리고 본절이 제시하고 있는 공법(工法)이 어느 정도 그 같은 율법 정신을 반영함도 사실이다(Hammond). 그러나 본절의 문맥상, 그리고 5:18절을 고려할 때 본절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건축현장에 운반되기 전에 채석장 현지에서 미리 치수에 맞도록 돌을 다듬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레바논 외에도 솔로몬은 예루살렘 근처에 소위 '솔로몬의 채석장' 또는 '왕궁의 동굴들'로 일컫는 채석장들을 갖고 있었다 한다(Hammond, Gates, Wood, Josephus).

ㅇ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 일차적으로 '철기를 대지 않는 하나님의 제단'이라는 출 20:25;산 27:5의 옛 율볍 정신을 형식에서라도 가능한한 접근하려는 노력이다(Gray). 그리고 치석(治石)을 위한 모든 준비 작업이 레바논 채석장이나 '왕궁의 동굴들'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건축 현장에서는 철 연장 소리 없이도 작업이 가능했음을 이해할만 하다. 한편, 이처럼 '피를 흘리게 하는' 철 연장 소리 없이 정숙히 성전 건축 작업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암시하는 영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해 등을 상징하는 거룩과 평화의 장소로서 성전은 그 성격에 부합되도록 건축 과정에서도 평화로움과 정숙함과 거룩성이 유지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Patterson, M. Henry).

8 중층 골방의 문은 전 오른편에 있는데 나사모양 사닥다리로 말미암아 하층에서 중층에 오르고 중층에서 제 삼층에 오르게 하였더라

ㅇ중층 골방의 문 - '중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핫티코나'는 '중간'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구절을 '하층 골방 중간의 문'이라는 의미로 수정한다(Bahr, Ewald, Keil 등).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문 성경들도 '맨 아래층'(the bottom floor, Living Bible'the lowest story, RSV)이란 의미로 본절을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지상 3층 건물의 입구가 2층에서 시작될 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상과 같이 해석될 경우, 본절의 '골방'(하첼라)은 에스겔 41:5, 9, 11에서처럼 한 층에 속한 골방 전체를 통틀어 표현하는 말이 된다(Bahr, Keil).

ㅇ문은 전 오른편에 있는데 - 이처럼 제사장들을 위한 골방에 이르는 문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은 이 보속 건물과 성소 및 지성소, 즉 성전 본 건물 사이에 아무런 연결 통로가 없었음을 입증해 준다. 따라서 골방들이 있는 부속 건물에서 성전(성소와 지성소) 내부로 통하는 문이 있었으리라는 테니우스(Thenius)의 가정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것은 성전의 거룩성에도 어긋나는 추측이 아닐 수 없다(Hammond, Keil). 한편, 여기서 '전(殿) 오른편'은 7:39에 의하면 동남쪽 편이다. 그런데 이 때의 '오른편'은 밖에서 성전 입구를 바라보았을 때가 아니라,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서 밖을 바라보았을 때의 오른편이다.

ㅇ나사 모양 사닥다리 - '사닥다리'(룰림)란 단어는 여기와 70인역(LXX), 벌겟역(Vulgate) 등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창 28:12의 '사닥다리'는 본절과 달리 '술람'의 번역이다. 그리고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룰림'이 '나선형 계단'(winding stairs)이라면, '술람'은 문자 그대로 '사닥다리'(ladder)를 뜻하는 단어이다. 한편, 과연 고대에 나선형 사닥다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가능 했는지 의심하는 학자들도 있으나(Stade, Moffatt), 고고학자의 발전이 이를 입증해 줌으로써 반박되었다(Montgomery). 즉 B.C. 18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나선형 사닥다리 유적이 아카나(Achana)의 한 궁전에서 발견되었다(Patterson).

9 전의 건축이 마치니라 그 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ㅇ전의 건축이 마치니라 - 본절은 일단 돌을 사용하는 건축은 끝났음을 의미하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내장(內粧)과 지붕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이고(10, 15절), 최종적인 의미에서의 완성은 38절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그러나 석조 건축, 즉 성전의 외형(外形)공사는 일단 완료되었음을 설명하기 위해 본절이 보조문으로 삽입된 것이다(Montogomery).

ㅇ그 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 '덮었고' 에 해당하는 '이세폰'은 '감추다'라는 뜻을 가진 '사판'에서 유래된 단어이다(신33:19;렘 22:14). 그러므로 본절의 작업은 15절의 내장 공사와는 달리 지붕을 덮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지붕의 모양에 대해서는 (1) 둥근 아아치 형(Thenius), (2) 人자 모양의 박공(博供, gable) 형(Fergusson), (3) 평평한 형(Bahr, Keil) 등이 주장된다. 이 중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런나 당시 근동의 건축물의 대다수가 그렇듯, 일반적으로는 평평한 형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J. Hammond).

10 또 온 전으로 돌아가며 고가 다섯 규빗 되는 다락방을 건축하되 백향목 들보로 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ㅇ또 온 전으로 돌아가며 - 성전 본관 전면(全面), 즉 낭실이 있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3면의 둘레를 가리킨다(3, 5절).

ㅇ고가 다섯 규빗되는 다락방 - 이 '다락방'(야추아)은 6절의 다락들과 이에 딸린 골방들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속 건물은 3층 건물로서 각 층의 높이가 5규빗(약 2.3m)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3층 건물 전체의 높이는 15규빗(6.84m)이지만, 약간의 여유있는 간격을 염두에 둔다면 대략 18~20규빗(약 8~9m) 정도일 것이다(Hammond). 그런데 이 높이는 성전 본관의 높이(2절)와는 10규빗(4.5m) 이상의 차이가 나므로 이 간격에 창문을 설치했으리라 본다(Keil).

ㅇ백향목 들보로 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 이 들보들은 성전 벽 바깥 둘레에 이 용도를 위해 일부러 만든 턱(선반)에 걸쳐졌다(6절). 따라서 성전 본관 자체에는 어떤 손상을 주지 않고도 이 건물은 성전에 든든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Keil). 한편, 이 다락들은 분명 물건을 저장할 목적으로 지어졌을 것이다(Patterson).

11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2 네가 이제 이 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것이요

ㅇ네가 이제 이 전을 건축하니 - 영역본 RSV는 이 구절을 "네가 짓고 있는 이 집에 관해서"(concerning this house which you are building)로 번역하였고 다은 영역본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그런데 여기서 내용이 조금 잘린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은 원문이 조금 망가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공동 번역은 "네가 짓는 이 집 말인데..."로 옮김으로써 이런 사실을 비교적 잘 드러내주고 있다.

ㅇ법도 - '법도'(훅카)는 원래 '새기다', '조각하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새겨주신 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히 일반적인 법률과는 구별되는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에서 나온 법, 곧 율법으로서 이해해야 한다(신4:5, 14;6:20). 따라서 이 법도를 지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약을 지키는 것이 된다(Wharton).

ㅇ지켜 그대로 행하면...이룰 것이요 - 성전의 화려함이나 웅장함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성전에 임재하시도록 붙들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언제나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전네로 해서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성전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순종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Dentan). 한편, 이 조건적 언약의 내용은 2:3;3:14의 반복이다.

ㅇ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 - 구체적으로는 '네 아비 다윗과 맺은 너에 관한 언약'이란 뜻으로(NASB, JB), 삼하 7:12-16의 언약을 가리킨다.

13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ㅇ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 원래 성막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증하는 것이었다(출 25:8; 레 26:11). 이제 모세 성막을 대신할 솔로몬 성전이 세워짐에 따라 이 약속은 솔로몬 성전에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본절은 율법의 순종을 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새로이 지어진 솔로몬 성전을 자신의 임재의 보증으로 삼으시겠다는 언약인 것이다.

ㅇ버리지 아니하리라 - '버리다'(아자브)에는 '배반하다'하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본절은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결코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암시해 준다.

14 솔로몬이 전 건축하기를 마치고

ㅇ솔로몬이 전 건축하기를 마치고 - 이 말은 9절과 같은 보조 문장의 성격으로서 기록된 것이다. 그 이유는 11-13절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언급함으로써 잠시 중단된 성전건축에 대한 묘사를 다시 재개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하 15절로부터는 성전 외부 공사(2-10절)에이어 다시 성전 내부 공사를 기술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15 백향목 널판으로 전의 안 벽 곧 전 마루에서 천장까지의 벽에 입히고 또 잣나무 널판으로 전 마루를 놓고

ㅇ천장까지의 벽 - '천장까지의 벽' 에 해당하는 '핫시푼 키로트'는 원래 문자대로는 '천장의 벽'이다. 그런데 '천장의 벽'이란 표현은 좀 이상한 말이므로 혹자는 '키로트'(벽)가 '코로트', 즉 '들보'(beam)의 오기(誤記)일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Keil). 어쨌든 이것은 천장에 잇닿아 있는 데 까지의 벽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의 사면 안벽 전체를 백향목 널판으로 입혔다는 뜻이다. 한편 전의 천장은 이미 백향목으로 덮여 있었다(9절)

ㅇ잣나무 널판으로 전 마루를 놓고 - 천장과 벽에 이어 이제 성전 마루에도 나무를 깔았다. 이로써 성전(성소와 지성소)의 내부 전체는 돌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18절). 한편, '잣나무'에 관해서는 5:8 주석을 참조하라.

16 또 전 뒤편에서부터 이십 규빗 되는 곳에 마루에서 천장까지 백향목 널판으로 가로막아 전의 내소 곧 지성소를 만들었으며

ㅇ전 뒤편에서부터 이십 규빗 되는 곳에 - 전체 성전 길이의 1/3, 즉 60규빗(2절) 중 뒤편(서편)에서부터 20규빗 되는 곳에 백향목 널판으로 칸막이를 만들어 성전을 둘로 구분하였다. 그런데 성전 자체의 너비가 원래 20규빗 인데다(2절), 이 지성소는 정방형의 모양이 되었다.

ㅇ백향목 널판으로 가로막아 -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칸막이를 백향목 널판으로 세웠다. 원래 모세 성막에서는 청.홍.자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그 위에0 그룹을 수놓은 휘장만이 드리워져 있었다(출 26:31;36:35). 그런데 이제 솔로몬의 성전에는 휘장 뿐만 아니라 백향목 칸막이가 더해진 것이다.

ㅇ전의 내소 곧 지성소 - '지성소'(코데쉬 하코다쉼)는 '거룩함 중의 거룩함'(holy of holies), '가장 거룩한 성소'(most holy place)를 의미한다.  원래는 모세 성막의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출 26:34). 그런데 이제 솔로몬 성전의 맨 안쪽 방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고, 모세 성막 시절과 마찬가지로 언약궤가 이곳에 안치되었다(8:6;대하 5:7). 그리고 이 지성소에는 창문을 달지 않았으므로 매우 어두었다(Good;8:12). 한편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 규모는 모세 성막의 지성소 규모의 2배였다.

17 내소 앞에 있는 외소 곧 성소의 장이 사십 규빗이며

ㅇ외소 곧 성소의 장이 사십 규빗이며 - 지성소(16절)를 제외한 성전의 나머지 부분은 '성소'(the holy placd)에 해당되었다. 물론 이 성소는 지성소보다 더 크고 높다.   혹자는 성소의 높이도 지성소와 마찬가지로 20규빗으로 추정 하였다(Kurtz, Merz). 이들은 나머지 10규빗은 다락방이 차지한 공간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이것은 부주의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왜냐하면 다락방은 성전 본관에 달린 것이 아니고 측면의 보속 건물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Bahr). 따라서 성소의 높이는 성전 자체와 마찬가지로(2절) 30규빗이었을 것이다. 이 '성소'는 제사장 들이 일년 내내 정규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장소였다. 한편, 지성소와 성소 등 솔로몬 성전의 얼개를 이해하려면 출 25-31장, 36-40장 부분의 '성막'을 살펴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솔로몬 성전은 기본적으로 모세 성막의 설계를 본뜬 것이기 때문이다(Dentan).

18 전 안에 입힌 백향목에는 박과 핀 꽃을 아로새겼고 모두 백향목이라 돌이 보이지 아니하며

ㅇ박- 근동 지방에서 오두막집이나 시렁을 짓는 데 흔히 하용되는 호리병 박일 것이다. 왕하 4:39의 '들외'나 욘 4:6, 7의 '박넝쿨'도 이와 같은 식물일 것이다. 그런데 호리병 박은 넝쿨과 큰잎들을 갖고 있어서 근동 지방의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준다.

ㅇ핀 꽃 - '핀 꽃'(페투레이 치침)은 '활짝 피어 만개(滿開) ..한 상태의 꽃'(open flowers)을 말한다(J. Hammond). 그런데 이 '핀 꽃'은 일반적으로 즐거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영광을 상징한다(사 35:1, 2).

ㅇ아로새겼고 - 혹자는 이것을 얕게 돋을새긴 양각(陽刻, basirelief)이라고 생각한다(keil).

ㅇ돌이 보이지 아니하며 - 성전의 천장과 벽, 그리고 마루는 모두 백향목 또느 잣나무 등으로 덧입혀졌기 때문에 성전(성소와 지성소) 안에서는 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웅장한 석벽들은 온통 백향목으로 덧입혀졌기 때문에 마치 통나무 집과 같았다"(Stanley).

19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 위하여 전 안에 내소를 예비하였는데

ㅇ여호와의 언약궤 - '언약궤'(아론 하베리트)는 자기 백성과 함께, 그리고 자기 백성 중에 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신성한 언약의 징표이다(출13:21;14:19, 20). 따라서 이 언약궤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앞에 있는 것과도 같았다(민 10:35;수 6:8). 물론 언약궤 자체를 우상처럼 하나님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단지 올바른 여호와 신앙을 전제해서만 언약궤는 자기 백성과 친교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표징하는 지성물이 된다(Payne; 12, 13절 참조). 한편, 이 언약궤에는 본래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한 오멜의 만나,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 있었으나 솔로몬 시대에는 단지 돌판만이 남아 있었다(8:9;출 16:33;민 17:10;히 9:4).

ㅇ두기 위하여...내소를 예비하였는데 - '내소'(데비르), 즉 지성소는 오로지 법궤를 안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편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20 그 내소의 속이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백향목 단에도 입혔더라

ㅇ내소...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이십 규빗이라 - 내소, 즉 지성소는 완전한 정육면의 입방체(立方體)였다. 모세 성막의 지성소 및 장차 천상의 거룩한 성 역시 입방체의 모양을 띠고 있다(계 21:16). 분명 이것은 정방형으로서 '절대 완전' 또는 '절대 거룩'의 개념을 상징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J. Hammond). 그런데 본래 성전의 높이는 10규빗의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여러 견해들이 있으나, 가장 무난한 견해는 지성소 위의 공간에 10규빗 높이의 '윗 다락'(대하 3:9)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Keil, Stingers).

ㅇ정금으로 입혔고 - 본절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 방식을 의미하는지는 논란이 있다. 왜냐하면 '금으로 입히다'(예차페후 자하브)란 말은 금으로 두텁게 싸는 것일 수도 있고, 도금(鍍金)을 의미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말을 얇은 금판을 못으로 목재에 부착시키는 방식일것으로 말한다(Hammond). 특히 대하 3:9은 금못의 사용을 보여 준다. 따라서이주장이 옳다고 본다. 아마 그러한 기술은 애굽에서부터 익힌 기술일 것이다(출 25:11, 13). 한편 만일 그랬다면 성전 벽에 입힌 금은 엄청난 양일 것임에도 불구하고이후의 침략자들이 그 같은 금을 약탈해 갔다는 기록이 구체적으로 보이질 않는다는 점(왕상 14:26;왕하 14:14)을 들어 본절의 사실성을 부인하는 학자도 있다(B. Stade). 그러나 대하 3:6로 미루어 이방 침략자들이 약탈해간 보물, 즉 '보석'은 성전의 금을 포함한다. 실제 성전 내부에 사용된 금은 600달란트(약 20,400kg)나 되었다(대하 3:8). 

ㅇ백향목 단에도 입혔더라 - 개역 성경 및 KJV의 번역은 '백향바고 제단에 금을 입혔다'라는 의미를 주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원문은 '제단에 백향목을 입혔다'라고 되어 있다. 원문대로라면 제단의 몸통은 백향목이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무 제단에 또 나무를 덧입혔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2절과 함께 연결해 보면 제단은 백향목을 입힌 다음 다시 도금을 한 것이 된다(Bahr). 즉 성전 내부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의 공정(工程)을 거친 것이다. RSV 및 기타 영역본들은 무난하게 '백향목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made an altar of cedar) 정도의 의미를 취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백향목 단'(제단)은 '향단'을 가리킨다(Keil, Patterson). 비록 향단은 지성소 바로 입구의 '성소'에 위치하고 있었지만(출 30:6;40:5, 26), 그 기능면에 있어서는 '지성소'와 보다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지성소에 속한 것처럼 묘사된 것이다. 22절의 '내소(지성소)에 속한 단'이란 표현 역시 이와 같다.

21 솔로몬이 정금으로 외소 안에 입히고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지르고 내소를 금으로 입히고

ㅇ외소 안에 입히고 - 외소, 즉 '성소'의 내부도 내소, 즉 '지성소'와 마찬가지로 도금을 하였다.

ㅇ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 지르고 - 이 구절에서는 주로 금사슬의 기능과 용도, 그리고 '건너지른' 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가 논란이 된다. 금사슬의 경우, 그것이 단지 장식용이었다는 견해(Meyer)와 실질적인 기능, 즉 지성소의 문을 달아 거는 빗장 또는 휘장을 움직이는 장치로서의 구실을 했으리라는 견해(Bahr)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들을 따라 금사슬의 '건너지른' 상태가 달리 설명된다. 예를 들면 지성소 입구 좌우 양벽에 고정시켜 드리웠다든지(Keil, Hammond), 또는 금사슬 양끝에 고리가 있어 거기에 쇠를 가로질러 휘장을 달았다든지(Thenius)하는 등이다. 어쨌든 '내소 앞에 금사슬을 가로지른' 상태가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게 하는 뚜렷한 표식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성소 입구에 가로질러 드리워진 금사슬은 정한 규율(레 16:2)외에는 그 누구도 지성소에 근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Patterson). 영역복 KJV는 이런 점을 잘 살려 '금사슬로 구획을 지었다'(made a partiton by the chains of gold)로 의역하였다.

22 온 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내소에 속한 단의 전부를 금으로 입혔더라

ㅇ온 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 '온전'(콜 하바이트)은 지성소와 성소만을 지칭할 뿐이라고 보기도 한다(Bahr, Keil) 하지만 대하 3:4은 낭실도 도금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므로 본절의 '온 전'은 낭실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라고 봄이 좋다(Hammond).

ㅇ내소에 속한 단 - '내소에 속한 단'(하미즈베아흐아쉐르 라드비르)은 지성소에 속한 단 20절 이란 의미로 곧 '향단'(출 30:1-10)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제단은 지성소 내부가 아닌 입구 앞 성소에 놓여 있었다(출30:6). 이전 성막에서의 위치가 그러했기 때문이다(Keil, Hammond, Bahr, Patterson).

ㅇ금으로 입혔더라 - 성전 내부를 온통 금으로 입혔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대하 3:6). (1) 금은 빛과 순전함을 상징한다(욥 37:21:계 21:18). 따라서 하나님의 빛이시며 빛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이다(요일 1:5, 7). (2) 금은 불변성과 고귀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 또한 금과 같이 변치않는 고귀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 또한 금과 같이 변치않는 고귀한 믿음을 늘 지녀야 한다(히 11:6;벧전 1:7) (3) 정금으로 장식된 성전은 새 예루살렘, 곧 영원한 하늘 나라를 상징한다(계 21:16-18).

23 내소 안에 감람목으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고가 각각 십 규빗이라

ㅇ감람목 - 즉 올리브 나무. 높이 약5~10m 정도의 물푸레 나무 과(科)에 속하는 나무로 B.C. 3000년 경부터 소아시아에서 재배되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나무는 견고하고 내구성이 강해 희랍인들이 신들의 현상을 만드는데 종종 사용했다고 한다(Winer).  한편 솔로몬은 이 감람목에 금을 입혀 그룹 형상을 만들었다(28절).

ㅇ두 그룹 - '그룹'(케룹;복수형은 * , 케루빔)은 천사와도 같은 영적 존재의 한 부류이다. 그러나 그룹의 형상과 본성에 대한 문제는 확실히 결정되어 있지 못하다. A. D. 1세기의 유대 사가 요세푸스 조차도 그룹의 형상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고 했고, 신약 성경도 그룹의 본성은 "낱낱이 말할 수 없는"(히9:5) 것이라고 규정지었다. 따라서 솔로몬 성전의 그룹 형상도 예술적 표현의 하나일뿐이다(출 25:18, 19 주석 참조). 그러나 그룹의 기능에 대해서는 몇 가지 요점이 성경에 제시되어 있다. 즉 (1) 감시자의 역할(창 3:24), (2) 하나님의 보좌를 운반하는 역할 (출 25:22;삼상 4:4;왕하 19:15;시 80:1;사 37:16), (3) 불(숯불, 번개, 화광석)과의 관련성(겔 10:2;28:14;사 6:6, 7) 등 이다(Acomb). 한편, 성경에서 '둘'(two)이라는 숫자는 선포와 증거의 수이다. 따라서 '두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선포하고 또한 증거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또한편, 모세 성막내의 두 그룹은 법궤 쪽을 행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자세를 취하였으나(출 25:20;37:9), 솔로몬 성전의 그룹은 모세 성막의 그룹과는 달리 입구 쪽을 향해 정면으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대하 3:13).  그리고 두 그룹의 바깥 쪽 날개는 각각 지성소의 중앙 지점에서 서로 맞닿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27절). 38절 그림 참조.

ㅇ십규빗 - 혹자는 그룹 형상의 키가 10규빗인 데 주의를 기울인다(Hammond). 실제로 성경에서 수(數)의 상징적 용법상 10은 기본수이면서 완전수이다(창 24:10;31:7;레26:26;수 22:14;느 5:18;욥 19:3;마 25:1;계 2:10). 가장 대표적으로 십계명에서의 '10'이란 신성한 수가 그것이다(출 34:1;신 4:13). 그 밖에도 다니엘, 에스겔, 계시록의 상징 등에도 '10'은 완전수로 자주 사용되었다(Pope;단 7:7;계 12:3 등).

24 한 그룹의 이 날개는 다섯 규빗이요 저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 날개 끝으로부터 저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

ㅇ이 날개 끝으로부터 저 날개 끝까지 십 규빗 - 한 그룹의 전체 날개 길이는 십 규빗(대략 4.56m)이었다. 그런데 두 그룹의 날개는 성막에서와 마찬가지로(출 37:7-9) 서로 연(演)하여 있었고, 따라서 지성소의 전체 폭(20규빗)을 온통 차지하였다(20절).  그리고 각 그룹의 바깥 날개는 지성소 방의 벽에 닿았고 안쪽 날개는 지성소 방의 중앙에서 서로 맞닿아 있었다(27절).

25 다른 그룹도 십 규빗이니 그 두 그룹은 한 척수, 한 모양이요

26 이 그룹의 고가 십 규빗이요 저 그룹도 일반이라

ㅇ그 두 그룹은 한 척수, 한 모양이요 - 두 그룹은 서로 똑같은 모양과 크기를 가졌다. 한편, 솔로몬 성전에 세워진 이 그룹 형상들의 모양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였는지는 의론(議論)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이스라엘 주변 근동 문화의 연구를 통해 추측해 볼 따름이다. 예를 들면 바벨론이나 앗수르의 신전 입구에는 애굽의 스핑크스와 비슷한 수호상들이 서 있었는데 그것들은 사람의 얼굴과 독수리의 날개, 사자또는 황소의 몸통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솔로몬 성전의 그룹도 이와 유사한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에스겔의 환상에서 그룹은 사자, 소, 독수리 그리고 사람 등 네 생물의 형상으로 묘사되며 송아지 발바닥을 가지고 있었다(겔 1:5-10;10:14).

27 솔로몬이 내소 가운데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폐었는데 이 그룹의 날개는 이 벽에 닿았고 저 그룹의 날개는 저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

ㅇ내소 가운데 그룹을 두었으니 - '가운데'(타웨크)는 '중앙'을 의미한다(창 3:3;민 35:5;겔 48:8). 즉 그룹은 지성소 중앙의 법궤를 날개로 덮어 보호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이전 모세 성막에서는 두 그룹이 서로 마주 보는 자세였으나, 솔로몬 성전의 그룹들은 외소, 즉 성소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서 있었다(대하3:13).

ㅇ폐었는데 - '폐다'는 '펴이다', 즉 '피다', '폄을 당하다'의 준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룹들의 날개가 펼쳐져 있는 상태가 되게끔 하였다는 말이다. 공동 번역은 이해하기 쉽게 '펼쳐져 있어'로 되어 있다.

28 저가 금으로 그룹에 입혔더라

ㅇ저가 금으로 그룹에 입혔더라 - 이로써 지성소 내부의 모든 것이 금으로 싸여지고 장식되었다(출 25:10-13). 그리고 비단 지성소 뿐만 아니라 성전 내부 전체와 외소의 문짝까지도 금을 입혔다(30, 32, 35절). 이처럼 성전의 주요 부분들이 금으로 장식된 것은 금이 상징하는 빛과 순전함 및 불변성 때문일 것이다(욥 37:22;벧전 1:7;계21:18).

29 내외소 사면 벽에는 모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고

ㅇ그룹 - 6:23;출 25:18, 19 주석 참조.

ㅇ종려 - '종려'(티모라)는 야자과에 속한 높이 3~8m 내외의 나무로, 고급 정원수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고대 근동에서는 이 종려 나무(palm tree)가 생산력의 상징으로서 신전에 조각되는 등 매우 신성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조각 예술품들에도 사용되었고, 고대 유대의 회당에도 양각(陽刻) 또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다(Trever). 그리고 성경에서 이 종려는 환영, 즐거움을 나타내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요 12:13;계 7:9). 한편, 겔 41:18의 기록에 의하면 종려나무는 그룹 사이 사이에 엇갈려 새겨졌음을 알 수 있다.

ㅇ핀 꽃 - 18절 주석 참조. 활짝 핀 꽃은 예나 지금이나 싱싱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전은 생명력이 가득한 장소로 표현된 것이다(Bahr).

30 내외 전 마루에는 금으로 입혔으며

ㅇ내외 전 마루에는 금으로 입혔으며 - 내외, 즉 지성소와 성소에 깔린 마루 전체에 금이 입혀졌다. 이처럼 바닥에도 금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 성소와 지성소의 거룩하게 구별된 성격을 강조하여 준다. 즉 성소(the Holy Place)는 오직 성별된 제사장들만이 직무를 수행하던 곳이고, 더욱이 지성소(the Holy of Holies)는 1년에 한번 속죄의 날에 오직 대제사장만이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레 16:15,34;민 28:3; 히 9:6-7).

31 내소에 들어가는 곳에는 감람목으로 문을 만들었는데 그 문 인방과 문설주는 벽의 오분지 일이요

ㅇ문 인방 - 인방(引放, lintel)이란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문이나 창을 아래 위로 가로지르는 나무를 말한다.

ㅇ문설주 - 문설주(門楔柱, doorpost)란 문의 양쪽에 세워 문짝을 끼워 달도록 된 기둥을 말한다.

ㅇ벽의 오본지 일이요 - '오분지 일'로 번역된 '하미쉬트'를 정확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이 어휘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견해들은 대략 다음 세 가지이다.

(1) 문의 크기를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 즉 성전 폭의 1/5, 즉 4규빗 크기의 문을 의미한다는 견해(Keil, Bahr), (2) 엔태블러처(entablature), 즉 건축에서 기둥이 떠받치는 힘의 평형 부분이 기둥의 1/5 지점에 있음을 의미한다는 견해(Bottcher,Thenius), (3) 오각형(pentagon)모양의 문을 의미한다는 견해(Gray, Meyer, Stier). 한편, 대다수의 영역본들은 이 말을 오각형 모양의 문으로 번역하였다(RSV, apentagon;NIV, Living Bible, five-sided). 그리고 공동 번역도 "오각형을 이루었다"로 해석하였다.

32 감람목으로 만든 그 두 문짝에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곧 그룹들과 종려에 금으로 입혔더라

ㅇ감람목으로 만든 그 두 문짝 - 지성소 문의 이 문짝들은 7:50로 미루어 금돌쩌귀에 의해 문설주에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돌쩌귀란 문작을 문설주에 달고 여닫게 하기 위해 쇠붙이로 된, 암수 두 개가 한 벌로 된 물건을 말한다. 암짝은 문설주에, 수짝은 문짝에 박아 맞춘다.

ㅇ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 지성소의 문에는 벽에 조각된 것과 같은 형상들이 새겨졌다(29절). 한편 조각된 형상들에 금을 입힌 사실을 새삼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의 기록상의 특징이다. 즉 새로운 부분이 소개될 때마다 매번 금을 입힌 사실을 꼼꼼이 반복함으로써 강조의 효과를 자아내는 것이다.

33 또 외소의 문을 위하여 감람목으로 문설주를 만들었으니 곧 벽의 사분지 일이며

ㅇ벽의 사분지 일 - '사분지 일'(리비이트)의 해석 문제에 대해서는 31절의 '오분지 일' 부분을 참조하라. 한편 RSV, NIV 등 영역본들은 대개 '사각형'(square, foursided)의 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는 공동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34 그 두 문짝은 잣나무라 이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고 저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

ㅇ그 두 문짝은 잣나무라 - 외소, 즉 성소의 문짝을 잣나무로 만든 까닭은 이 나무가 감람목(올리므)에 비해 가볍기 때문에 쉽게 가라앉지 않도록 사용되었을 것이다(Keil). 아마도 외소(성솨)의 문짝은 내소(지성소)에 비해 훨씬 더 사용 빈도가 높은 것을 고려하였을 것이다.

ㅇ이 문짝도...저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 - 각 문짝이 두 짝으로 이루어져 다른 문짝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성소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일상적인 출입을 편리하레 하기 위해서이다(Keil, Montgomery). 그런데 각 문짝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것이 정확히 어떤 형태 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카일(Keil)은 33절의 '사분지 일'을 문의 크기로 보기 때문에 만일 각 문짝이 수직 분할로 되었다면 한 사람이 간신히 드나들기에도 비좁은 크기가 되므로 아마도 수평 불할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평 분할의 경우, 그의 계산으로는 각 문짝의 아래쪽 문은 각각 2규빗(너비), 4규빗(높이)의 크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1) 우선 33절의 문의 크기를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고, (2) 만일 그렇더라도 그의 계산은 본절이 외소의 문짝임에도 불구하고 내소의 문의 크기를 적용한 실수이며, (3) 수평 분할의 문은 당시의 건축에서 거의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 등이다. 따라서 각 문작은 수직 분할의 형태로 나뉘어졌다고 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J.Hammond).

35 그 문짝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그 새긴데 맞게 하였고

ㅇ새긴 데 맞게 하였고 - 즉 조각한 형상의 깊고 얕음에 따라 고르게 또한 세심하게 금을 입혔다는 말이다(J. Hammond). 그런데 고대의 도금 방식은 대개 얇은 금판을 못으로 부착하는 것이었다고 한다(Keil). 솔로몬의 성전에도 이처럼 못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대하 3:9).

36 또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안뜰을 만들었더라

ㅇ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 - 돌과 백향목 판자는 안뜰의 담을 구성하는 재료들이다. 여기서 '켜'(투르)란 포개어 놓은 물건의 낱낱의 층(layer, row)을 말한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대개 '줄'(line)로 번역되었다(출28:17;39:10;왕상 7:2;대하 4:3). 아마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을 세줄, 그 위에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줄 하는 식으로 담을 둘렀을 것이다. 이렇나 건축 방식은 포로 귀환 후의 제 2성전에서도 재현된다(스 6:4). 한편 대하 7:3에서 추론해 보면 이 안뜰담의 높이는 백성들이 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볼 수 있을 만큼 낮았을을 알 수 있다.

ㅇ안뜰 - '안뜰'(the inner court)이라는 표현 자체가 '바깥뜰'을 전제하는데, 각각 대하 4:9의 '제사장의 뜰'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렘 36:10은 본절의 '안뜰'을 '윗뜰'로 호칭 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은 안뜰이 바깥뜰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格)이 높기때문일 것이다. 즉 이전의 모세의 성막처럼 성전 앞의 뜰에서 제사장들과 백성들과는 달리 제사장들은 안뜰, 즉 제사장의 뜰에서 직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생긴 구별일 것이다. 그러나 안뜰과 바깥뜰 모두 크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다른 예들에 비추어 솔로몬 성전이 모세 성막 크기의 2배가 된다면, '안뜰'(제사장의 뜰)의 크기는 동서간의 길이가 200규빗(91.2m), 남북 간의 폭이 100규빗(45.6m) 될 것이다. 그리고 '바깥뜰'(큰뜰)은 안뜰 크기의 2배, 즉 길이 400규빗(182.4m), 폭 200규빗(91.2m)이 될 것이다(Keil, Hammond).

37 제 사년 시브월에 여호와의 전 기초를 쌓았고

ㅇ시브웰 - '시브'(지우)는 히브리 종교력의 둘째 달(2월)이다. 그리고 '시브'는 '밝음', '찬란함' 등의 의미를 가진 가나안어 에서 생긴 말로 추정된다. 그래서 시브웰은 오늘날의 태양력으로는 4, 5월 경이므로 꽃들의 찬란함에서 단 명칭일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Hammond, Keil).

ㅇ기초를 쌓았고 - 목재와 석재의 준비 기간(5:13-18)은 건축 기간에 합산(合算)되지 않았다(Keil, Bahr). 즉 본서 저자는 솔로몬 성전의 건축 기간을 성전의 기초석을 정초(定礎)한 시점부터 계산하고 있다.

38 제 십일년 불월 곧 팔월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전이 다 필역되었으니 솔로몬이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년이었더라

ㅇ제 십 일 년 불월 곧 팔 월에 - 여기서 '불'은 히브리 종교력의 여덟째 달(8월)로, 오늘날 태양력으로는 10-11월에 해당한다. '불'의 어원에 대하여 게세니우스(Gesenius)는 '비'라고 보았고, 카일(Keil)은 '열매' 라고 보았다. 아무튼 '불월'에 해당하는 히브리 종교력 8월(오늘날 태양력 10-11월)은 팔레스틴의 기후상 우기(雨期)일 뿐더러 과수의 열매를 추수하는 달이므로 이처럼 명명된 것 같다. 한편, '불월'은 후대(B.C. 5세기 경)에는 '마르헤쉬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렇게 바뀐 이유는 바벧론 포로 기간 동안 바벧로 언어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Saunders).

ㅇ그 설계와 식양대로 - 솔로몬 성전의 전체 건축 내용은 일찍이 선왕(先王) 다윗이 솔로몬에게 일러준 것이다. 나아가 성전의 설계와 식양은 성신(聖神)이 다윗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대상 28:11 이하, 특히 12절). 

ㅇ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 년이었더라 - 성전 건축은 솔로몬 즉위 4년 불월(B.C. 966년 2월)에 기초석을 놓음으로 시작하여(6:1), 솔로몬 즉위 11년 시브웰(B.C. 959년 8월)에 필역되었다. 따라서 건축 기간은 보다 정확히 7년 6개월 걸린 셈이다. 그런데 성전 건축에 걸린 이 기간은 고대의 다른 대건축물에 비하면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다. 에베소의 다이아나(Diana) 신전 건축은 무려 20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Pliny). 또한 애굽의 피라밋 건축에는 대개 20년이 소요된다(Hammond). 이와 비교하면 그토록 화려하고 정교한 건물을 완공하는 데 7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1) 성전이 비교적 작은 규모였다는 점, (2) 많은 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어 최선을 다했다는 점, (3) 그리고 다윗 시대부터 세심한 준비가 축척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솔로몬 성전 건축은 긴 세월 동안 정성을 다한 대건축 사역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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