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하10.JC족보, 다윗-솔로몬 시대 연혁..메아리 황금률..암몬의 도발-암몬 원정 전쟁(1차:아람 동맹 용병 동원, 2차: 동맹 총수 소바아람 하닷에셀의 지휘 아래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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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10장...9장의 (므비보셋이 보여주는 바)겸손-감사와는 반대로 교만-오만방자함의 대적-전쟁으로 나서고 있는 암몬이다!!


===다윗이 암몬과 싸우다 BC991...[212. 겸손히 주를 섬길 때] [214. 나 주의 도움 받고자] [216. 성자의 귀한 몸] [218.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마7:7-11.... “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고-찾고-두드림) 제자들마다 믿고 구하는대로 아버지께 [지고지선-최상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 넉넉히 주심으로]받게 될 바, 기도 응답 경험자마다 먼저 상호 인자함 베풀며 세상 불신영혼 구원 위한 바 중보기도에로 확장시켜 나가야 함...긍휼-자비-은혜 베풂 실행과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중보기도 실행이 마땅히 있어야 함을, ...[메아리 법칙] 그 황금율을 기억하고 실행하기를 촉구하고 계심..

.....[마7:12.(빛과 소금, 아만-헤세드의 사람아!! 먼저 성실한 선대함-그 사랑으로!!, 그 메아리 황금율).“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누가복음에서는 (아직 세상은..전혀 변할 기미조차 없을 그 때라도!!..그 어떤 지레짐작/짐짓추정하는 바 닥쳐올 수 있는 육적 두려움의 동기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믿음으로 충만한 전지전능자 Q 마음 중심에서 나온 친절-관대-포용-섬김, 곧 사랑의 동기에서 출발한 !!] ,믿음으로 긍휼-자비-은혜 베풂의, 한 걸음 먼저 내딛는 중보기도와 내어줌 실행을!!) 먼저 베풂을 강조하신다...

.....[눅6:27-31...*27.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18:18-20..*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전심으로 합심-합력-교통-주이름 부름으로써)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거듭난 참 믿는이요, JC의 제자인 증인-하나님 안으로 하나 됨의 특별 은총 받은 자마다 반드시 마음을 열고 그 받은 바 차별없이 베풀도록 당부하시는 바,  (주께서 선인과 악인을, 의로운자 불의한 자를 따지지 않으시고 [슬프고 아픈 마음 가운데서, 돌아와 주와 하나됨, 곧 지고지선 최상의 삶 구가하게 되기를 기다리시며!!] 인생의 날들을 위하여 해와 비를 내려주시듯) 불신세상 영혼들에게조차 골고루 차별없이 그리스도 그 자체인 선대하는 사랑, 곧 아만+헤세드를 베풀기를 당부하심 =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삶이자 증거-전파함!!

......[마5:43-48...*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오직!! 각 영혼의 회개와 주와 하나됨 안에 있는 아들들들의 중재기도 통해 주권적 구원을 베풀고 계심 기억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또 한가지, [모든 시기-질투-편견-오도됨-오해/착각-오남용/악용에로 편향됨의 경향을 주 안에서 깨어 기도함으로 경계하라] 세상에 베푸신 바 된 모든 유용한 학문-기술마다 본래 중립적인 바 [그 참 근원자이신] 아버지께서 베푸신 바임을 깊이 깨달아, 주님 지도 아래 머물며 감사하며 [참된 청지기의!!] 합당한 자세로 이용하고(*그 어떤것도 우상 삼지 말라!!, 동시에 [제한 받지 않고, 지금도 일하고 계신, 살아계신] 전지전능의 창조주 Q을 결코 제한하지 말라!!) 주께서 허락하사 이끌며 인도하심따라 지혜-총명-모략-재능 기울여 각자에게 [잘 할 수 있도록 나누어 주사] 탁월하신 주님 영광 그대로 나타냄 위한 전문영역 삼도록 허용하여 이끄시는바, 그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가 되기를 힘쓰고 전력투구하여 그 분야에서 탁월함 발휘하되 그리스도의 내적 열매(성령 열매)를 따라 일하라..


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2.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헤세드)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은총" ...당시 주변 정황으로 미루어보건대, 실은 (암몬의 침략으로 항복 직전에 놓인) 야베스 길르앗의 구원 요청에 대한 사울의 즉각적 지원-원정으로 암몬이 패한 후, 나하스는 사울과 다윗 사이에 긴장관계를 예의주시하다가 (어려움 당하는 중인) 다윗과 사이에 "이이제이" 불가침조약을 맺어 이를 굳건하게 상호간에 지켜왔고, 모압 정복후 더 나아가 암몬까지 정복하려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가능함..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므비보셋에게 베푼 바 주님의 은총의 나라 확장을 고대하는 다윗의 심정 가운데 흐르는 내적 바램은..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 곧 왕 한사람이 살아계신 주 여호와의 은총에 겸손히 그 마음 열 때에 임할 바!! 그 나라 전체에 구원-축복이 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마음에서 나온 선대의 제스츄어였을 것!!) 하고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 그의 아버지를 조상하라[동시에 하눈의 왕위 등극 축하하라]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매 ::: [=나함....하나이신 Q의 참 위로]

...... @@나함 --(사람이)후회하고 통화자복함으로써 주께로 완전히 마음을 돌이켜 돌아와 하나되다(=슈브)--->이로써(자녀가 범죄함 인해 아픈 마음으로 그를 징계하시는 중에서 (주님이) [징계에서 긍휼로 .태도를  바꾸사 = 후회하사] 뜻을 돌이키시다(주께서 통회-자복-회개한 죄인을 용서하사 죄과를 보혈로 씻어 지워 뒤로 던져버리시고 [미안해 하시며] 은혜와 긍휼을 베푸사 동정/위로/위무/안위하사 어루만져/토닥이며 눈물닦아 주시고 껴안아주시다 = 나함), (사람에게 발생한 일시적 평강 상실이나 손실에 대해) 위로하다/애석해 하다 (친애하는이의 죽음을, 함께 슬픔 공감으로 동정-애도하며 기운차리고 일처리 잘하도록) 조문하다

.....나함(동사)은 기본어근이며, '후회하다 repent, 위로하다 comfort'를 의미하며, '회개하다, 애석해 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라는 의미도 함축한다. 이 어근의 기원은 '깊이 숨쉼' 따라서 사람의 감정, 주로 슬픔, 동정, 위로의 육체적 표출이라는 개념을 반영하는 것 같다. 이 어근은 우가릿어(UT 19: no 1230의 '위로하다'를 보라)에서 나타나며 느헤미야, 나훔, 므나헴과 같은 구약성경에 언급된 고유명에서 발견된다. 70인역본은 나함을 메타노에오와 메타멜로마이로 번역한다. ...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가 '후회하다'라는 의미, '위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a)  나함은 '후회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학자들은 이 단어를 성질의 변화, 마음의 변화, 목적의 변화, 또는 행위의 변화에 대한 강조와 연관시킴으로 말미암아 나함의 의미를 확인하려 한다.

---'후회하다'라는 의미에서 대부분의 실례가 인간의 후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후회를 언급한다. ((인간의 후회나 회개를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다(to turn)'를 뜻하는 슈브(bWv , 7725)이다.))

---죄를 자각하여 진정한 후회와 비애를 느끼는 인간과 달리, 하나님은 죄에서 자유하신다. 그럼애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것(창 6:6-7, 출 32:14, 삿 2:18, 삼상 15:11 등), 즉 그는 자신의 주권적 목적에 따라서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거나(미소짓는 얼굴 빛 비추심) 사람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표면상으로 볼 때 이런 언어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단언하는 어떤 구절들과 상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표면적으로 는 조화되지 않는 것 같이 보인다(참조: 삼상 15:11, 시 110:4). ((그러나 나함이 하나님께 사용될 때 그 표현은 신인동형론적인 것이며 궁극적 긴장은 없다. )) 단지 인간의 제한되고 세상적이고 휴한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뜻이 변화한 것 같이 보일 뿐이다. 그리하여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행하기로 작정하셨던 심판이나 재앙을 내리시기를 '후회하셨다', 즉 '돌이키셨다'고  (과감히) 말한다(대상 21:15, 렘 18:8, 렘 26:3, 렘 26:19, 암 7:3, 암 7:6, 욘 3:10). 

---확실히 렘 18:7-10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예언이 인간의 반응에 따라 조건부적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상기시켜 준다. 

이와 관련하여 헤셀(A. J. Heschel)은 '어떠한 말씀도 하나님의 최종적인 말씀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이 변화하면 하나님의 심판도 변한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후회에 대해 좀더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창 6:6에서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 이 구절에서 '후회하다'는 마음을 바꾸거나 뜻을 돌이키는 것을 함축한다. 

하나님은 그가 이미 행한 일에 대해 사람처럼 후회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는 변화된 그 상황과 조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셨다. 

인간이 [먼저, 주님 명령 거역하여] Q과 맺은 [하나됨에서 떨어져 나와 등진 원수 됨에로 들어섬으로써] 관계를 변경했기 때문에 Q과 인간의 관계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이 Q을 떠나 죄를 범할 때 Q은 교제의 관계를 징계의 관계로 바꾸신다. 

인간이 죄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은 교제의 관계를 회복시키신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를 완전히 심판의 관계로 바꾸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후회하심, 곧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후회하시거나 뜻을 돌이키지만 인간과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는 신실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마찬가지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repented, NASB는 'changed his mind'로 번역함)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때로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관련하여 시행하려고 계획했던 방침을 '돌이키신다'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repent)"(렘 18:8).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repent)"(렘 18:10).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repent)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시나니"(욜 2:13). 

다른 실례들에서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변경하신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분명히 인간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마음을 바꿀 때 하나님께서도 마음을 바꾸신다. 

그러나 인간이 악한 행위를 계속할 경우 악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바뀔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행위는 변하지만 그 자신의 의로우심에 대한 신실하심은 영원 불변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기'(repenting)에  싫증을 내시는데(렘 15:6), 이것은 [나름대로 정해두고 계신바] 그의 규정을 수행해야 할 기준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행위의 실례로 사울에게 전한 사무엘의 말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사무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의 왕권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repent)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악한 행위에 대한 참회와 중재의 기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마음을 바라고 자신의 행위를 '돌이키신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간청하였다.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repent)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 32:12). 이 기원의 응답은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 32:14)는 말씀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니느웨에 전한 말씀에서도 이 용례를 볼 수 있다.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turned)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repented of)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욘 3:10). 

이러한 실례에서 하나님은 후회하시거나(repent) 그의 뜻을 돌이켜서(change his mind) 자신의 계획을 변경시키신다. 

그러나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는 신실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다른 구절들에서 인간들의 태도의 변화(혹은 이 변화의 부족)를 뜻하는 말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사악함을 회개하지 않을 때에 반역을 선택하여 벌하신다(렘 8:6).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에브라임(이스라엘 북쪽 지파의 대표자) 지파가 회개(repent) 한다면(렘 31:19)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렘 31:20).

사람도 타인에게 회개를 표명할 수 있다. 베냐민은 부도덕한 죄를 범함으로써 심한 고통을 받았다(삿 19-20장).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repented)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삿 21:6, 삿 21:15 참조).

(b)  나함은 '위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위로하다', '위로 받다'를 의미한다.

① 나함은 바벨론 유수에서 살아남은 모든 경건한 유대인에게 잘 알려져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사야의 '위로의 책'의 서언인 '나하무 나하무 암미'(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1)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함'은 또한 '위로하다' (comfort)를 의미한다. 바벨론으로 망명한 자들은 생존자들이 [주님 거역한 죄 회개하며] 재난의 예루살렘으로부터 도착했을 때 '위안을 받았다'(겔 14:23). 

여기서 '위로하다'라는 말과 '후회하다(회개)'라는 말의 관계는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서 예루살렘에 내린 재난에서 결과된 것이다.

.....이 단어가 시 23:4에도 쓰이는데, 다윗은 그의 하늘 목자에 대하여 "(징계하시는[=야카흐 : 잘못을 교정하다] 사람 막대기-인생 회초리로 경험되는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 잘못을 깨닫고-자복하고-통회하며 주님 마음 아프게 하여 주 얼굴 돌리셨음을 자각하고 (주없이 살 수 없고 살아도 사는 것 아니기에!!)  마치 아비가 죽은듯 슬퍼함의 애통 가운데, 십자가 위에서의 죄-사망 경험을 적용함으로써, 주께로 완전히 돌이켜 하나됨으로써(=슈브) 주님 앙망하며 기다릴 때, 그 얼굴 돌이키사 그 빛 비춰주심으로써]나를 안위하시나이다(=나함)"라고 말한다.

② 다윗은 밧세바의 죄 중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은 후에 그녀를 '(존귀한 자를 잘못 대하였음에 대해 깊이 미안해 하고 사과하며, 동시에 조문하며) 위로하였다'(삼하 12:24). 

이것은 그들의 부주의로 생긴 일에 대한 다윗의 후회를 지적하는 것 같다. 많은 구절들은 죽은 자들을 인하여 위로 받는 것("조상하다")을 다룬다(삼하 10:2, 대상 19:2, 사 61:2, 램 16:7, 렘 31:15). 사람들은 유아(삼하 12:24), 10대의 아들(창 37:35), 어머니(창 24:67), 아내(창 38:12) 등으로 인하여 위로받았다.

어머니는 자기 자녀를 위로함 같이(사 66:13)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로하신다(시 71:21, 시 86:17, 시 119:82, 사 12:1, 사 49:13, 사 52:9).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나훔, 나함의 파생어)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된다'(호 11:8).

③ 다른 한편 이 단어는 인도적인 감정에 나온 '위로'에 대해 사용되었다. 

욥은 세 친구들에게 물었다 - "이러한 즉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 너희의 대답은 거짓 뿐이니라"(욥 21:34, 그들의 태도는 잔인하고 무감각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comfort)를 간구했다.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시 71:21).

④ 나함은 '애석해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 동정하다'라는 의미도 나타난다(신 32:36 = 시 135: 14).

......이를 통하여 아버지 앞에 새벽, 오히려 미명에 나아가, 교통하심 통해 아버지께서 보이시며 들여주신 바 그대로 보이시며 말씀하시던 그리스도로 살기를 매일 실행함....(오직 영생-영존하시는 하나님께 유일한게 합당한) 번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JC의 십자가 보혈로 씻긴바 전존재를 받으시도록) 오늘 나의 속건제-속죄제로 취하여 십자가에서부터 그리스도와 하나되어-못박혀 죽고-장사되고-부활승천하여 보좌에 앉혀진바 되고 오늘 이 땅에 그분의 천국복음 살며 전파하는 화목의 대사로서 부활생명의 성령이신 그리스도의 새로운 기름부음과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영-마음, 곧 영혼의 주인으로서 친히 사시는 , 전존재가 그분으로 충만 한 종으로 , 내려 놓고 열어-비워-내어드림..

[[성경이 말씀하시는 (네오스-카이노스-아나네오오-쉼모르포스!!, 날마다 새로이 이루며 누릴 바!! 진정한 참 구원에 이르는 회개... 이를 통한, 시공 초월한-천지에 충만한-한량 없이 그분자신 부어주사 후히 누리게 하시는 주님과 하나됨의 참 회복-진복의 관문인) 회개는 두 종류/단계로 이루어진다.]] **1)사람 막대기-인생 회초리로 징계하심의 사랑(=야카흐)에 대해 범과함 인해, 얼굴 돌리시는 주님의 아픈/슬픈 마음 명심/기억하고 모든 거리낌 토설함+절실히 깨닫고 후회함(메타노이아)..성육신하신 구주 JC는 모든이마다 초청하고 계시는바 " 귀 있는 이마다 듣고 내게 나아오라, 회개하라, (그리하여 마땅히 누리며 살 바) 천국이 가까이 왔고 또 임하였느니라"하고 계신다==>**2)한 걸음 더 나아가!!, 구원 받고 천국백성 된 이마다 매일의 삶 가운데서!!, 주 이름 간절히 부르며!! 그분 없는 삶이란 전적으로 무의미하며 소망없음 깨달았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철저히 남김없이 그 뿌리까지!! 통회-자복하고 믿음으로 보혈 의지하며 기다리며 머무름(구주 십자가 죽음과 하나됨/장사지낸 바 됨 그 안에 머무름 ::: 메타노이아+에피스트레포 = 슈브)--얼굴 돌이켜 빛 비추시는 주님의 가납/안위하심(나함) :: 그분의 생명 안으로 열어주심따라 하나 됨- 하나되신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를 살며 천국-복음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하기)

메타노이아(μετανοέω [metanoeo])는 양심의 가책에 의한 후회, 심경의 변화로 뉘우치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에피스트레포(epistrepo [ἐπιστρέφω])’는 심경의 변화만이 아닌 행동을 의미. 악한 길로 가다가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그 가던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 가는 것을 의미. 그러므로 성경이 요구하는 "구원받을 만한 회개는 [ἐπιστρέφω]에피스트레포"인 것... 유다가 마 27:3절에서 한 회개는 헬라어 사본의 단어로는 μεταμεληθεὶς 메타노이아, 후회하다. 뉘우치다는 단어에 해당될 것... 유다의 경우는 어땠을까...

3.  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관계를 깨는, 부정적 의견을 내는] 권좌 가까이 있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사악한 , 사익 위한 정치꾼, 사탄마귀인 경우가 많다...당시 정황으로 볼 때, 그렇게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하며 부정적으로 판단할 여지는 분명히 있었으니..그동안 다윗에게 정복당한 나라들-블레셋, 모압-은 그에게 호의적이었던 나라들이었음) 그들의 주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니

.....[막9:23..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누가 절대 긍정의 입장을 주장하고 실행할 것인가!!...바로 그 사람을 쓰도록 하라!!))

4.  이에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문화인류학적 백치!!))...다윗과 그의 나라가 추구하는 바 평강에 대해 전혀 무지하고, 이스라엘 백성 간의 가치-예의범절도 존중함이 전혀 없었고 오만-무례-도발했다!!

5.  사람들이 이 일을 다윗에게 알리니라 그 사람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성령충만 = 상호간에 서로서로의 입장에 서서 최선이 되도록 [친절-자비로] 위함 - 황금률)) 마음을 다하여 돌봄-자상한 배려!!


***((아만-헤세드로 대하는 그대에게 상대방의 오만무례함, 잘못-도발에 대해, 짐짓추정-섣부른 충동적 행함으로가 아니라 일단 주 안에 머물며!! 주님바라기로 일관하라!! 온유한 마음으로 참아 기다리며, 회개함에 이르도록 중재-중보하라..회개하지 않는 고집쟁이-악한 자들의 선제 도발 + 제발저림/자승자박 적대 행동 개시함에 대해서는 주께 여쭈며 준비하며 기다릴바 그분의 인도와 신호를 따라 단계별로 준비하여 [여호와의 전쟁]을 수행하라)) ***[351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358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360.행군나팔소리로]


6.  ○암몬 자손들이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이 된 줄 알고 암몬 자손들이 사람을 보내 벧르홉 아람 사람과 소바 아람 사람의 보병 이만 명과 마아가 왕과 그의 사람 천 명과 돕 사람 만 이천 명을[=총3만3천명의 용병] 고용한지라

7.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잘 훈련된-비상대기/상비군-정예병)를 보내매

8.  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어귀에 진을 쳤고 소바와 르홉 아람 사람과 돕과 마아가 사람들은 따로 들에 있더라

9.  ○요압이 자기와 맞서 앞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의 선발한 자 중에서 또 엄선하여 아람 사람과 싸우려고 진 치고

10.  그 백성의 남은 자를 그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맡겨 암몬 자손과 싸우려고 진 치게 하고

11.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12.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13.  요압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아람 사람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14.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요압이 암몬 자손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15.  ○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 모이매

16.  하닷에셀이 사람을 보내 강 건너쪽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 내매[=총동원] 그들이 헬람에 이르니 하닷에셀의 군사령관 소박이 그들을 거느린지라

17.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매 그가 [전쟁동원령 내려 자원군 편성함으로서]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헬람에 이르매 아람 사람들이 다윗을 향하여 진을 치고 더불어 싸우더니

18.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백 대와 마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그 군사령관 소박을 치매 거기서 죽으니라

19.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그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삼하8장과 연결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음 :: 하닷에셀은 [다메섹과 유브라데강 사이, 하맛 동편 지역의] 아람 소바 왕으로서 아람 동맹의 머리였고 그의 군사령관은 소박이었음...소바 아람은 1차전에서는 용병만 보내 간접적으로 참여했으나 패한후, 그 다음 2차전때는 [1차전 참패를 만회하고 동시에 유브라데 강 유역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맛과 지배권 다툼 중이었다!!**] 아람 동맹국(다메섹 아람을 제외한) 거의 전부를 총동원한 총력전 형태로 도발하였고 이스라엘도 총력을 기울여 맞서는데, 결과적으로 아람 동맹군은 패하고 소박도 전사하여 북쪽으로 패주하는 중에 다메섹 아람이 지원군을 보내지만, 이스라엘군은 이 마저도 격퇴한 후 암몬 랍바성도 포위섬멸한 후, 다메섹 아람과 암몬 사이에, 그리고 암몬과 에돔 사이에 다윗 수비대를 두어 도발을 방지하게 된다...그 결과 삼하8:3-10의 기록과 이어지고 있는 것임....특히 2차전 때는 종결 즈음, 랍바 왕성 포위섬멸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도중에 다윗은 궁성에 남아있었고 [깨어 중보-중재함의! 찬양-묵상-기도를 건너뜀으로써!!] 밧세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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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0장


1.  Now it happened afterwards that the king of the Ammonites died, and Hanun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2.  Then David said, "I will show kindness to Hanun the son of Nahash, just as his father showed kindness to me." So David sent some of his servants to console him concerning his father. But when David's servants came to the land of the Ammonites,

3.  the princes of the Ammonites said to Hanun their lord, "Do you think that David is honoring your father because he has sent consolers to you? Has David not sent his servants to you in order to search the city, to spy it out and overthrow it?"

4.  So Hanun took David's servants and shaved off half of their beards, and cut off their garments in the middle as far as their hips, and sent them away.

5.  When they told [it] to David, he sent to meet them, for the men were greatly humiliated. And the king said, "Stay at Jericho until your beards grow, and [then] return."

6.  Now when the sons of Ammon saw that they had become odious to David, the sons of Ammon sent and hired the Arameans of Beth-rehob and the Arameans of Zobah, 200000 foot soldiers, and the king of Maacah with 10000 men, and the men of Tob with 120000 men.

7.  When David heard [of it,] he sent Joab and all the army, the mighty men.

8.  And the sons of Ammon came out and drew up in battle array at the entrance of the city, while the Arameans of Zobah and of Rehob and the men of Tob and Maacah [were] by themselves in the field.

9.  Now when Joab saw that the battle was set against him in front and in the rear, he selected from all the choice men of Israel, and arrayed [ them] against the Arameans.

10.  But the remainder of the people he placed in the hand of Abishai his brother, and he arrayed [them] against the sons of Ammon.

11.  And he said, "If the Arameans are too strong for me, then you shall help me, but if the sons of Ammon are too strong for you, then I will come to help you.

12.  "Be strong, and let us show ourselves courageous for the sake of our people and for the cities of our God; and may the LORD do what is good in His sight."

13.  So Joab and the people who were with him drew near to the battle against the Arameans, and they fled before him.

14.  When the sons of Ammon saw that the Arameans fled, they [also] fled before Abishai and entered the city. Then Joab returned from [fighting] against the sons of Ammon and came to Jerusalem.

15.  When the Arameans saw that they had been defeated by Israel, they gathered themselves together.

16.  And Hadadezer sent and brought out the Arameans who were beyond the River, and they came to Helam; and Shobach the commander of the army of Hadadezer led them.

17.  Now when it was told David, he gathered all Israel together and crossed the Jordan, and came to Helam. And the Arameans arrayed themselves to meet David and fought against him.

18.  But the Arameans fled before Israel, and David killed 700 charioteers of the Arameans and 400000 horsemen and struck down Shobach the commander of their army, and he died there.

19.  When all the kings, servants of Hadadezer, saw that they were defeated by Israel, they made peace with Israel and served them. So the Arameans feared to help the sons of Ammon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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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0장 (개요)

본 장은 다윗이 암몬 및 그 동맹인 수리아(아람 동맹국 군대)과 벌인 전쟁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1. 다윗은 (새로 등극한)암몬왕 하눈에게 조문 겸한 우호 사절을 보냈다(1, 2).

2. 하눈은 그 사절이 악의에서 파견되었으리라는 [방백들의 선입견과 짐짓추측에 동의하는 바!!]야비한 추측하에 다윗의 사신들을 모욕했다(3, 4).

3. 다윗은 이에 분개하고 암몬과의 전쟁 준비를 했다(6).

4.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를 보내 원정 전쟁을 암몬인의 땅에서 벌였고 요압과 아비새는 아주 큰 용기와 지도력으로써 전쟁에 임했다(7-12).

5. 암몬인과 그 동맹군 아람인(용병)은 전면적으로 패주했다(13, 14).

6. 재집결한 수리아 군대는(아람 동맹의 수장인 하닷에셀의 진두 지휘로 참전한 총력전) 두 번째로 패주했다(15-19). 

이와 같이 하여 다윗은 나머지 주변 국가들과의 우호를 회복시키고 피해를 보상 받음으로써 자기 명성을 진작시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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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몬 족과의 전쟁(삼하 10:1-5)

Ⅰ. 여기에서 다윗은 자기 이웃, 곧 암몬 족의 왕에게 표한 큰 경의가 나온다(1, 2절).

1. 다윗이 이렇게 경의를 표하게 된 동기는 이전에 자기가 암몬의 선왕 나하스에게서 받았던 호의에 보답하려고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다윗은 “그 아비 니하스가 내게 은총을 베풀었다”고 말하면서(2절) “그러므로 그 아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근자에 므비보셋에게도 그 아버지를 위해 은혜를 베풀고 만족을 느꼈었다. 

이와 같이 한 가지 자비스러운 행동을 통해 얻어지는 즐거움은 우리에게 또 다른 자선 행위를 권한다. 

나하스는 이스라엘의 원수였고 잔인한 대적이었으면서도(삼상 11:2) 다윗에게는 친절을 베풀었다. 

나하스가 이렇게 했던 것은 다만 자기와 사이가 나빴던 사울에게 대항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다윗은 그의 호의를 받으면서도 그 원인이나 동기를 엄밀히 분석하고 별로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호의에서든 악의에서든 자기에게 베푼 친절을 감사히 여기며 그에 보답할 결심을 하고 있다. 

만약 바리새인이 교만심에서 구제를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상을 내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지만 구제받는 자는 그 자선에 대해 감사를 돌려야 마땅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아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2. 상호 동맹 관계에 있는 통치자들 사이에 흔히 있듯 다윗이 경의를 표한 구체적 사례는 암몬왕의 서거를 문상하는 조위 사절의 파견으로 나타났다. 

“다윗이 그 아비 죽은 것을 조상하라 하니라”(원의: “다윗은 그를 위로하러 그 신복을 보내니라.”). 

부모를 여윈 자녀들로서는 부모의 친지들이 곧 자기들의 친지이며 그들이 자기들과의 교분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여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슬픈 일을 당한 자로서는 자기들과 함께 슬퍼하고 자기들의 손실을 알아 주며 자기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큰 위안을 얻는 것이다. 

고인의 기억을 존중하고 추모하는 자들로서는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고인의 기억을 존중하는 자들이 있으며 자기들이 소중히 여기던 자를 그들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Ⅱ. 암몬 왕 하눈은 다윗의 사신들에게 수치를 입힘으로써 다윗을 크게 모욕했다.

1. 하눈은 자기 방백들의 간사한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대신들은 다윗의 사신들이 조문한다는 미명 하에 정탐하기 위하여 파견된 것이라고 교묘히 말했다(3절). 

거짓된 인간은 곧잘 남도 자기들처럼 거짓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가 이웃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자들은 자기 이웃이 자기들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는 것을 한사코 믿지 않으려고만 한다. 

그들이 만약 자기들이 한 차례 앙갚음을 하기 위해 시치미를 떼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이 다윗이 위장된 정탐꾼을 보낸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근거없는 의심은 악한 심사를 입증한다. 

패트릭 감독은 “아무리 호의로 하는 짓이라도 오해될 수 있으며 특히 자기 자신 외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으레 곡해되기 마련이다”라고 이 부분을 주석하고 있다. 

명예와 덕이 극히 높은 사람들은 설사 이와 같이 잘못된 소리를 듣더라도 이상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치 않는 법이다”(고전 13:5).

2. 하눈은 이런 간사한 의견을 받아들여서 비열하게도 다윗의 사신들을 학대했다. 

그는 악하고 더러운 심사를 가진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런 짓은 왕관 쓴 자보다 차라리 깡통차고 하수도나 뒤지는 자에게 어울리는 짓이었다. 

설사 다윗의 사신들이 악한 목적으로 왔을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눈치 채이지 않고 가급적 빨리 물러가도록 지혜롭게 조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명백히 다윗과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혐오감에서 사신들에게 최대의 모욕을 가했을 따름이다. 

사신들은 그 나라에서 존귀한 자들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자기 나라와 자기들의 군주를 대표하는 자들이었고 그들과 그들의 명예는 특별히 국제법의 보호아래 있었다. 

그들은 암몬인들을 신뢰하고 비무장으로 왔다. 그럼에도 하눈은 그들을 마치 부랑자나 악한처럼 다루었고 더욱이 “그 수염 절반을 깎고 그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잘랐다.” 

이런 처사는 그 사신들로 하여금 하눈 자신의 신복들에게 수모와 조롱을 받도록 하기 위한 저의에서 나온 것이다. 

즉 자기 신복들이 다윗의 사신들을 희롱하며 그 사신들을 볼품없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Ⅲ. 다윗은 이런 학대를 받은 자기 신복들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그들을 맞으러 사람을 보내서 자기가 그들의 수모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으며 되도록 빨리 그 일을 복수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는 또 그들에게 여리고에서 체류하라고 지시했다. 여리고는 은밀한 곳이었다. 그곳은 그들이 사교장에 나올 기회가 별로 없는 곳이었다. 

그는 절반이나 깎인 그들의 수염이 다른 수염만큼 길어 아름답게 손질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거기 머물도록 지시했다(5절). 

유대인들은 나이 많고 엄숙한 외모를 명예로 생각하여 수염을 길게 길렀다. 

그러므로 신분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자기 이웃과 다른 모습으로 등청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잘린 의복은 벗어버리고 다른 의복을 갈아입으면 되었지만 깎인 수염은 그렇게 빨리 복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이 수염도 다시 자라날 것이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억울한 수모에 너무 가슴 아파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수모도 저절로 닳아 없어질 것이며 오히려 그런 부당한 수치를 만들어 낸 장본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손상받은 명예는 깎인 수염이 잠시 후 다시 자라듯이 곧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실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며 그를 기다리라”(시 37:6, 7).

혹자는 다윗이 암몬 왕에게서 이런 모욕을 당함으로써 이교 왕에게 구애하고 아첨한 덕을 톡톡히 앙갚음 당했다고 생각한다. 

다윗은 암몬 왕이 이스라엘의 숙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나하스가 그 아들 하눈처럼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의 오른쪽 눈을 뽑아버리겠다고 했을 때 그것이 “온 이스라엘을 모욕하겠다” 는(삼상 11:2) 의도였다는 것을 기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토록 원한 깊은 집과 앙심 품은 족속한테서 선한 대접을 기대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암몬인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민족이었다. 심지어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었다(신 23:3). 

그들은 이스라엘이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될 민족이었다. 그런데도 다윗은 왜 그들과 우호를 맺으려고 안달이 났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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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몬인과 아람인의 패주(삼하 10:6-14)

Ⅰ. 여기에는 암몬인의 전쟁 준비가 기록되어 있다(6절). 

그들은 자기들이 다윗에게 몹시 미운 존재가 되었으며 그는 정당한 분노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그들이 이미 사신들을 학대할 때 예견했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사신에게 대한 모욕은 바로 선전포고였으며 다윗에게 대한 대담한 도전이자 당돌한 모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는 그들이 자기들의 수천 명으로써는 다윗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야 자기들이 다윗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깨닫고 부득불 외국 용병을 들여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죄인은 무엄하게도 하나님을 격동시켜 자신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노출시키면서도 “그가 자기들보다 강한 자” 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전 10:22). 

암몬인들은 먼저 수모를 주었다. 그래 놓고도 그들은 먼저 군대를 일으켜 그 도발을 합리화시키려 들었다. 

그들이 만약 자신을 낮추고 다윗의 용서를 구했다면 아마 그런 허물은 떳떳하게 지워져서 서로 만족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제 발 저린 나머지, 아람 용병들로 전쟁준비함으로써] 자기들이 한 일을 고집하기로 굳게 마음을 가졌고 그런 행동은 결국 자멸을 불러 들인 꼴이 되었다.

Ⅱ. 다윗군의 신속한 공격이 묘사된다(7절). 

다윗은 암몬인의 전쟁 준비를 듣자 요압에게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다윗의 자손 예수와 전쟁하는 자들은 먼저 도발할 뿐만 아니라 전쟁도 먼저 시작한다. 

그는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시지만(사 30:18), 그들은 스스로 강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치 않으면 칼을 가신다(시 7:12).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진노를 무시하는 자들을 치러 보내실 군대가 있다(사 5:19 참조). 

그들은 “스스로 강퍅히 하여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형통한 자는 아무도 없다”(욥 9:4)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지만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을 것이다. 

전쟁 장소를 암몬 땅으로 잡고 그들의 성문 어귀에서 싸우게 한 다윗은 지혜로왔다. 

성문은 암몬인의 수도 랍바의 성문이거나 아니면 강변을 방어하기 위해 포진한 메드바 성문(대상 19:7)이었을 것이다. 

전쟁의 공포와 피해는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선한 군주라면 누구나 백성을 아끼는 마음에서 되도록 멀리서 전쟁하려고 할 것이다.

Ⅲ. 교전 준비는 쌍방이 다 하고 있었다.

1.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전군을 양군으로 나누었다. 암몬군은 성문에 포진하여 정면으로 이스라엘군을 대적하게 되었으며 용병으로 불러 온 아람군은 멀리 들에 포진하여 이스라엘의 측면이나 후군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다(8절).

2. 요압은 지장(智將)답게 적군의 의도를 재빨리 간파하고 자기 군대도 양분했다. 

그는 정예병을 자기 수하에 배치시켜 수리아인을 대적하게 하고(9절) 나머지 군사는 자기 동생 아비새의 수하에 붙여서 암몬인과 싸우도록 수배했다(10절). 

그는 아마 아람군이 용병이므로 전쟁에 더 능하고 훌륭한 군대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요압은 적군의 전쟁 준비가 너무나 잘 된 것을 보고 그 때만큼 자기 지휘와 용기가 시련을 겪는 때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Ⅳ. 전투에 앞서 요압이 행한 연설(11, 12절). 그의 연설은 길지 않지만 적절하고 용감하다.

1. 그는 슬기롭게도 자기 동생 아비새에게 일군을 맡기되 전력의 분산으로 전투력이 약화되지 않게 하며 어느 쪽이든 고전하는 쪽을 돕기로 약속한다. 

요압은 최악의 경우 곧 그들 중 어느 하나가 패전하는 경우를 예상하고 있다. 그럴 경우에는 신호를 따라 구원군을 파견하기로 약조한 것이다. 

상부상조는 형제의 의무임을 명심하자.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이와 같이 영적 전투에서 서로의 손을 강하게 해야 한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구원하고 도와야 한다. 

은혜를 통해 시험을 이기는 자들은 시험받는 자를 권면하고 위로하고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돌이킨 후에 너는 내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 우리 몸의 각 지체들도 서로 도움이 되고 있다(고전 12:21).

2. 그는 자기 동생과 전 장병을 격려하여 전력을 다해 전쟁에 임하라고 권면한다. 

큰 위험은 참 용기를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요압은 앞 뒤의 전선이 자기들에게 불리한 것을 보자 명예로운 퇴각을 명령하기는커녕 자기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우어 더욱 용맹스럽게 만들었다.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보수나 승진이나 명예나 성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즉 일반대중의 안전과 안녕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런 대중의 안녕에 훨씬 관심을 많이 가지시고 또 그로써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의 원리에서 용감하자. 그들은 우리 백성이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동포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훈련받고 급료를 받는 군사이다. 그들이 평화를 누려야 우리도 평안을 누린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원리에서 용감하자. 그 성읍들은 하나님의 도시이며 우리가 방어하기 위해 싸우는 것도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해서다.” 

사람과 물건을 막론하고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것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되며 우리는 그것에 대한 봉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3. 요압은 경건하게도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긴다. 

“우리는 각자의 입장과 의무를 따라 제각기 할 바를 다하자. 그리고 나서는 여호와께서 자기가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게 하자. 성패야 어떻게 되든지간에 우리는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우리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이다. 우리는 의무의 이행을 본분으로 삼을 때 최대의 만족감으로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 우리의 용기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형통케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생각지 말고 그가 자기 원하시는 대로 행하실 것으로 생각하며 하나님 자신의 방식과 시기에 구원을 이루어 주실 줄로 소망하자.”

Ⅴ. 요압은 아람인과 암몬인의 동맹군에게서 승리를 거두었다(13, 14절). 

그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했고 아람군과 암몬군이 자기로써 너무 강할 것이라는 것도 가상했었지만(11절) 그 결과는 자기가 그들에게 너무 강한 적수로 나타났다. 

좌절에 대비함으로써 성공이 방해받는 일은 없다는 것을 유의하자. 먼저 아람군이 요압에게 궤멸되었고 그 다음에 암몬군은 아비새에게 패주당했다. 

암몬인은 아람군이 패주하자 전혀 싸우지도 않고 성 안으로 도망친 것처럼 보인다. 

등 뒤에 도망쳐 들어갈 성이 있다는 것은 병사에게 유혹이 된다. 사람이 싸우느냐 도주하느냐 하는 것과, 싸우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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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패한 아람군(삼하 10:15-19)

1. 여기에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승승장구하는 다윗의 군을 저지하기 위한 아람군의 새로운 공격이 나오고 있다. 

풍지박산 되었던 세력들이 다시 규합되고 “다 모였다”(15절). 실패한 것도 그 속에 생명이 남아 있는 한 다시 고개를 쳐들게 된다는 것은 매우 암시적이다. 

다윗의 아들을 대적하는 원수들도 그렇다(마 22:34; 계 19:19). 이들 패전한 아람군은 자신의 부족성을 의식하고 강 건너편에 있는 동맹국과 속국에게 원조를 청했다(16절). 

그리고 이렇게 새 병력을 보충하자, 그들은 이스라엘과 일전을 벌여 자기들의 패전을 보상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곡식단을 타작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으셨기 때문이다.

2. 이런 아람인의 시도는 다윗의 경계와 용맹 앞에서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다윗은 그들의 계교를 간파했다. 

그는 그들이 공격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기로 작정하고 친히 군대를 영솔하여 요단강을 건넜으며(17절) 대접전 끝에 아람군을 궤멸시켜버렸다(18절). 

역대상 19장 18절과 비교할 때 여기서 살해된 자는 병거 700승에 타고 있던 7,000명과 마보병 4만 명인 것 같다. 

이 전투에서 아람군의 총수도 전사했고 다윗이 승전고를 울리며 개선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3. 아람인에게 승리한 결과가 서술되고 있다.

(1) 다윗은 몇몇 조공국을 획득했다(19절). 

하닷에셀에게 속했던 “왕들” 또는 군소 제후들은 다윗의 막강한 세력을 보게 되자, 그와 전쟁할 능력이 자기들에게 없음을 깨닫고 이스라엘과 화친하며 또 그들에게서 보호를 받을 수 있으므로 이스라엘을 섬겼다. 이렇게 하여 아브라함(창 15:18)과 여호수아(수 1:4)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곧 이스라엘의 지경이 유브라테 강까지 확정되리라는 약속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2) 암몬인은 자기들의 오랜 맹방을 상실했다.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더라.” 

이것은 그들이 불의한 명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제법을 깨뜨리는 범죄는 합리화시킬 수 있으므로) 그것이 성공하지 못할 명분인 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들을 돕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넘어질 때는 돌연 돕던 자들도 함께 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모든 종들 곧 선지자들을 유대 교회와 유대 민족에게 보내신 뒤 신약 시대에도 자기 사자들 곧 사도들과 제자들을 보내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눈이 다윗의 신복을 모욕하고 조롱했듯이 그리스도의 사자들을 욕보이고 학대하며 살해하기까지 했다. 

저희 불의의 양을 채우며 구제할 길 없는 파멸을 초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마 21:35, 41; 22:7; 대하 26:16 비교).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사역자들에게 가해진 모욕과 피해를 자신에게 대한 것으로 간주하셔서 그들에게 보응하고 복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호크마==

사무엘하 (10 : 1~19)

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ㅇ그 후에 - 여기서 '그 후에' 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와예히 아하레이 켄'은 8:1의 용례와 같이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연결하는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내용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단순 접속어이다. 8:1 주석 참조.  따라서 우리는 이 말에 근거하여 본장의 사건이 앞장의 사건 뒤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본장 1-14절의 사건은 8:3-8에 나타난 사건보다 앞서는 것이다(L-eon Wood). 

왜냐하면 소바왕 하닷에셀의 다윗에 대한 도전(15-19절 ; 8:3-8)은 본장에 언급된 암몬과의 전투(1-14절)에 뒤이어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장 1-14절은 8:12에 간략히 언급된 암몬과의 전쟁에 대한 보다 상세한 부연 설명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Lange, Pulpit Commentary).

ㅇ암몬 자손의 왕 - 삼상 11장에 언급된 나하스(Nahash)를 가리킨다. 그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치려다가 오히려 사울 왕에게 패배한 적이 있다(삼상 11:1-12).

2 다윗이 가로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 아비가 내게 은총을 베푼것 같이 하리라 하고 그 신복들을 명하여 그 아비 죽은 것을 조상하라 하니라 다윗의 신복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매

ㅇ그 아비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같이 - 나하스가 다윗에게 언제 어떠한 은총을 베풀었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음과 같이 각기 다르게 추측하고 있다. (1)아마도 나하스가 다윗의 즉위식(卽位式, 2:4;5:1-3)에 특사를 보내어 축하해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Lange). (2)또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다닐 때 나하스가 그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Keil, Matthew Henry). 즉 사울에게 패배한 나하스(삼상 11장)가 같은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다윗을 동정하여 그를 도와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3)나하스가 다윗에게 베풀어 주었다고 하는 '은총'이란 히브리어로 '헤세드'인데, 이는 '언약적인 호의'를 의미한다(9:1 주석 참조). 그러므로 본절은 쌍방간에 불가침 조약과 같은 모종의 계약을 체결한 것을 가리킬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Rust, Interpreter's Bible). 그러나 우리는 이상의 세 견해 중 어느 것이 보다 사실에 가까운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성경의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절에서 이러한 사실 여부보다도 남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고자 한 다윗의 의리있는 인격에 보다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3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그 주 하눈에게 고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 신복을 보내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ㅇ다윗이...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 이는 다윗의 호의에 대한 암몬 방백들의 오해이다. 

이와 같은 저들의 오해는 분명 다윗의 세력 확장에 대한 저들의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다(Lange, 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Rust). 

즉 저들은 가나안 지역의 최강자 블레셋과 이웃 나라인 모압이 다윗의 군대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사실(8:1, 2)을 알고 저들의 미래를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웃 나라인 모압이 다윗에게 패배한 이후에 끔찍한 형벌을 받은 사실(8:2)은 그들에게 더욱 큰 경계가 되었을 것이다(Keil). 

따라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다윗의 호의를 그들을 정복하려는 저의(底意)로 오해하게 된 것도 무리(無理)는 아니다.

ㅇ이 성 - 이는 암몬(Ammon)의 수도인 랍바(Rabbah) 성을 의미한다. 이 랍바 성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의해서는 좀처럼 함락되지 않는 견고한 요새였다(11:1;12:26;신3:11). 

따라서 암몬 사람들은 외국 사절들에게 이 성의 내부를 보여 주는 것을 꺼려했을 것이 틀림없다(11:1 주석 참조).

4 이에 하눈이 다윗의 신복들을 잡아 그 수염 절반을 깎고 그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ㅇ그 수염 절반을 깎고 - 고대 근동지방에서 남자의 수염은 명예와 권위를 상징하였다. 또한 수염을 기르는 것은 자유인의 권리를 상징한 것이었다(Lange, PulpitCommentary). 

따라서 다윗의 특사들이 수염을 깎이운 것은 노예처럼 취급된 최고의 수치였다(사 7:20;50:6;15:2;렘 41:5).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러한 관습은 아랍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 그들은 수염을 깎이우는 것을 죽음보다 더한 수치로 여기고들 있다(Keil & Delitzsch, Wycliffe). 

한편 여기서 '수염의 절반을 깎았다'는 말은 수염의 밑부분을 잘랐다는 말이 아니라 얼굴의 한쪽면에 있는 수염을 깎고 다른 한쪽면은 그대로 두었다는 말이라는 주장도 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 p. 375). 그러나 확실치는 않다.

ㅇ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자르고 - 여기서 '의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두'는 '펼치다', '확장시키다'는 뜻의 동사 '마다드'에서 파생된 말이다. 

즉 이는 발목까지 길게 내리운 옷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람인들은 다윗 신하들의 긴 옷을 엉덩이 윗부분까지 잘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겉옷 속에 내의를 입지 않았으니(Keil, Pulpit Commentary)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선 지독한 모욕(侮辱)이 아닐 수 없다(6:20).

5 혹이 이 일을 다윗에게 고하니라 그 사람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저희를 맞으러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ㅇ너희는...머물다가 돌아오라 - 다윗이 이처럼 신복들에게 여리고에 머물다가 수염이 어느 정도 자라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고 한 것은 저들의 수치를 감추어 주기 위한 배려임에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랍바 성에서 가장 가까운 여리고는 비교적 이스라엘의 변방(邊方)으로서 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삼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이같은 말에는 보다 암시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머물다가 돌아오라'는 말 다음에는 아무 말이 없긴 하지만 이는 분명 '머물다가 돌아오라 그 동안에 너희가 당한 수치는 내가 반드시 갚아 주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Matthew Henry'sCommentary, Vol. II, p. 491).

ㅇ여리고 - 여리고(Jericho)의 뜻은 '향기로운 성읍' 또는 '달의 도시'이다. 그런데 이곳은 종려나무 산지로 유명하였으므로 일명 '종려나무 성읍'(the city of palms)으로도 불리웠다(삿 1:16). 한편 이곳은 랍바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위치하였는바 곧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28km 지점이다.

6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미움이 된줄 알고 사람을 보내어 벧르홉 아람 사람과 소바 아람 사람의 보병 이만과 마아가 왕과 그 사람 일천과 돕 사람 일만 이천을 고용한지라

ㅇ암몬 자손이...고용한지라 - 다윗의 사신들을 모독하므로 일종의 선전 포고(宣戰布告)나 다름없는 짓을 자행한 암몬 왕 하눈(4절)은 이처럼 인근 4개국의 군대 3만 3천명을 고용하여 다윗 군대와의 일전(一戰)에 대비하였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식하고 돌이키기는 커녕 오히려 다윗을 대적하기 위해 무력을 갖춘 것이다. 이는 곧 회개할 만한 마음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하기에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해 하는 악인의 전형적인 표본이 아닐 수 없다(창 3:11-13;삼상 13:8-14). 

한편 하눈이 고용한 용병(傭兵)들의 내역을 간략히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ㅇ이상에 열거된 4개국 중 3개국은 아람 도시 국가였다. 당시 아람인들은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각기 분립적(分立的)인 소도시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성경에 나타난 아람의 소국들은 소바 아람(6절 ; 8:3), 벧르홉 아람(6절), 마아가 아람(6절), 다메섹 아람(8:5) 등이 있다.

ㅇ벧르홉 아람 - 이는 벧르홉(Beth-rehob2)에 도시를 건설한 아람 소국(小國)을 의미한다. 벧르홉은 단 지파의 성읍인 라이스(Laish) 바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삿18:28;민 13:21).

ㅇ소바 아람 - 소바(Zoba)는 라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의 동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으로서 아람의 여러 소국들 중 하맛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8:3 주석 참조.

ㅇ마아가 - 이는 바산 동북쪽(신 3:14), 헬몬 산 서남쪽에 위치한 아람 왕국이다. 이곳은 그술(Geshur)과 인접한 이웃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본절에서 오직 마아가(Maacah)만 암몬의 모병(募兵)에 응하고 그술이 응하지 않은 것은 그술 왕 달매가 다윗의 장인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3:3).

ㅇ돕 - 돕(Tob)은 독립 국가는 아니었고 이스라엘 지경인 길르앗 지방 내에 있는 한 성이었다(삿 11:2, 5). 이곳은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대신 암몬 땅에서 가까왔기 때문에 암몬의 모병에 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ㅇ고용한지라 -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19:6에 보면, 암몬 왕 하눈이 군대를 모집하기 위해 사용한 돈은 은 칠천 달란트였다. 

이를 노동자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인 드라크마(Drachma)로 환산할 경우, 6백만 드라크마가 된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한편, 암몬왕 하눈이 고용한 2만명의 보병은 역대기의 기록에는 '병거와 마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대상 19:6). 이러한 차이점은 두 저자중 누군가의 오기(誤記)라고 하기 보다는 아마도 각 저자의 상이한 관점에 따른 기록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당시 하눈이 고용한 아람 용병은 보병과 전차병, 기마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Lange, Keil & Delitzsch).

7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내매

ㅇ용사의 온 무리 - 혹자는 용사와 온무리 사이에 '와우'를 첨가하여 '용사와 온 무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Thenius). 그러나 본절은 원문상 '와우'를 첨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Keil, Lange). 여기서 '용사'와 '온무리'는 동격(同格)으로서 본절에서 처럼 '용사의 온무리'로 해석해야 한다(KJV,NIV,RSV). 

한편, '용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깃보림'은 '용감한', '힘센' 등의 의미를 가진 형용사'깃보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 용어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국민병(militiame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 경험이 많고 싸움에 능한 요압의 정예부대를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서 암몬은 군대의 수(數)에, 다윗은 질(質)에 치중한 것을 알 수 있다.

8 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어귀에 진을 쳤고 소바와 르홉 아람 사람과 돕과 마아가 사람들은 따로 들에 있더라

ㅇ암몬 자손은...성문 어귀에 진을 쳤고 - 여기서 '성문 어귀'는 암몬의 수도인 랍바성문 앞을 가리킨다. 3절 주석 참조.

ㅇ소바와...따로 들에 있더라 - 대상 19:7에 의하면, 아람 용병들이 진친 들은 메드바 들(the field of Medeba)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메드바 들은 요단 강의 동편 고원 지대로서 랍바 성에서 북서쪽으로 약 6km 지점에 위치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병거와 마병을 원활히 운용하기 위하여 들판에 포진(布陣)하였을 것이다. 

한편 이처럼 암몬군과 아람 동맹군이 남북으로 따로 진을 쳤던 것은 요압의 군대를 가운데 몰아넣고 양쪽에서 협공(挾攻)하기 위함이었음에 틀림 없다.

9 요압이 앞 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의 뺀 자 중에서 또 빼서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 치고

10 그 남은 무리는 그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붙여 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 치게 하고

ㅇ요압이...이스라엘의 뺀 자 중에서 또 빼서 - 이는 요압이 이스라엘 정예군을 두대로 나눈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요압의 지휘는 양쪽에 포진하고 있던 적의 협공에 대비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였다.

ㅇ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치고 - 요압이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정예병 중에서 또다시 선발한 무리를 가지고 아람 용병과 대치(對峙)한 것을 의미한다. 

즉 암몬군보다는 필시 아람 용병들이 더 전투에 능하리라고 판단한 요압은 스스로가 저들과 맞서려고 전투 태세를 갖춘 것이다.

ㅇ그 남은 무리는...아비새의 수하에...진치게 하고 - 이는 곧 아비새로 하여금 암몬군을 공략케 할 뿐 아니라 저들이 아람군을 도와 요압 자신의 용사들을 협공하는 것을 차단케 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다.

11 가로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ㅇ가로되...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 적은 병사로 많은 적군을 물리치기 위한 요압의 작전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즉, 그는 적의 협공이 있기 전에 아비새로 하여금 암몬군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도록 해놓고 자신은 일군(一軍)을 이끌고 메드바 들에 있는 아람 동맹군을 선제 공격함으로써 적의 양군의 결집력(結集力) 또는 협력 관계를 깨뜨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혹시라도 자신의 선제 공격이 실패할 경우에는 아비새가 암몬군을 포기하고 자기에게로 달려오고, 다행히도 그 선제 공격이 성공하면 자신이 아비새에게 달려가기로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압의 작전은 많은 수의 동맹군을 무찌르는 데 가장 이상적인 작전이었음은 분명하나 그만큼 자신과 그 군대에게 미치는 위험이 컸던 것 또한 사실이다.

12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ㅇ너는 담대하라 - 암몬 . 아람군과의 싸움에 임하기에 앞서 요압이 일사 각오의 정신으로 아비새의 용기를 돋우는 장면이다. 

이러한 요압의 각오는 단지 돈을 받고 전쟁에 임한 아람 군대의 정신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ㅇ하나님의 성읍 - 요압은 이스라엘의 성읍을 이처럼 '하나님의 성읍'(the cities of our God)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은 요압의 발언은 이스라엘의 모든 기업(基業)이 하나님께서 선물로 그들에게 주신 것(창 12:6, 7;13:14-17;수 1:15)이라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었다(Keil, Lange). 

따라서 그의 이러한 발언 속에는 이스라엘의 한치의 땅도 적들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각오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요압은 이번 전쟁이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을 위한 명분 있는 싸움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ㅇ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 혹자는 요압의 이와 같은 말을 해석하기를 '만약 하나님께서 적에게 승리를 준다해도 우리는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하였다(Clericus, Lange).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바로 앞에서 요압이 한 치의 땅도 빼앗길 수 없다는 의도로 '하나님의 성읍'이라고 발언한 사실과 배치된다. 

오히려 이말은 하나님의 성읍이 이방신을 섬기는 적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므로 그 뜻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말이다. 

즉 요압의 이말은 이스라엘의 세(勢)의 불리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읍은 하나님께서 지키시리라는 확신을 나타낸 말인 것이다(삼상 17:47).

13 요압과 그 종자가 아람 사람을 향하여 싸우려고 나아가니 저희가 그 앞에서 도망하고

ㅇ저희가 그 앞에서 도망하고 - 아람 동맹군이 요압 앞에서 도망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점에 의거할 때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1)저들은 전쟁을 해야하는 분명한 명분도 없이 단지 돈에 팔려왔기 때문이다(Grotius, Patrick). (2) 또한 저들은 여러 나라가 동맹한 군대로서(6절) 서로 앞장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 그뿐 아니라 저들은 요압의 사기 충천한 군대를 보고선 이미 전의(戰意)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전쟁은 비록 소수의 정예 부대와 다수의 싸움이긴 하였지만 소수의 정예 부대가 보기좋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14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의 도망함을 보고 저희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으로 들어간지라 요압이 암몬 자손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ㅇ아람 사람의 도망함을 보고 저희도...도망하여 - 당시 아람 군대는 병거와 마병을 갖춘 군대로서(18절 ; 대상 19:6, 7) 수리아 지역의 주도권을 다툴 정도였으니 암몬군대보다 훨씬 강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아람군이 다윗 앞에서 패퇴(敗退)한 것을 본 암몬군 역시 다윗을 두려워하여 성 안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결국 돈과 사람을 의지한 군대가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군 앞에서 아무 힘도 사용하지 못하고 물러난 사건이었다 하겠다.

ㅇ요압이...돌아오니라 - 요압이 다윗의 특사를 모욕한 암몬(4절)의 랍바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이처럼 회군(回軍)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랍바 성은 견고한 요새였으므로 소수 정예 부대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3절). 11:1 주석 참조. (2)또한 이때는 전쟁하기 어려운 겨울이나 혹은 우기(雨期)였기 때문일 것이다(The Interpreter's Bible, Keil). 이러한 추측은 11:1의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라는 말에 의해 더욱 신빙성이 높다. 11:1 주석 참조.

15 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 모이매

16 하닷에셀이 사람을 보내어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매 저희가 헬람에 이르니 하닷에셀의 군대 장관 소박이 저희를 거느린지라

ㅇ하닷에셀이...아람 사람을 불러내매 - 하닷에셀(Hadadezer)은 그 당시 요단 동편과 유브라데 강 유역 등 수리아 지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했던 소바 아람국의 왕이다.8:3 주석 참조.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아람 동맹군의 패배(13, 14절)를 다른 어떠한 아람 왕들보다 더 수치스럽게 여기고선 그의 지배하에 있는 아람국의 군사들을 대규모로 소집하였을 것이다.

ㅇ헬람 - 아람 동맹군의 재집결지인 헬람(Helam)은 지난번 그들이 요압군에게 패주했던 메드바(Medeba) 들(8절 주석 참조)에서 북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이곳은 갈릴리 바다로부터 동쪽으로 약 48km 지점인 오늘날의 알마(Alma)로 알려지고 있다(Ewald, Lange, Thenius).

17 혹이 다윗에게 고하매 저가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헬람에 이르매 아람사람들이 다윗을 향하여 진을 치고 더불어 싸우더니

ㅇ저가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 이는 지난번 전쟁에서 다윗 왕이 요압의 정예 부대만을 보낸 것과는 달리(7절) 이번에는 이스라엘 온 지파에서 병사들을 소집한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다윗 왕이 이번에는 총력전으로 나선 것은 재차 이스라엘에 도전해 온 아람군이 지난번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새로이 정신적, 군사적인 무장(武裝)을 강화하였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적의 동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는 다윗 왕의 신중성과 지혜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곧 전쟁의 승패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물론(12절), 인간으로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신앙 자세가 아닐 수 없다(마 10:16).

18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백승의 사람과 마병 사만을 죽이고 또 그 군대 장관 소박을 치매 거기서 죽으니라

ㅇ사만을 죽이고 - 아람 동맹군의 전사자(戰死者) 수를 보여 주는 이 통계는 제 일차로 아람 동맹군의 사망 숫자 이만(8:4;대상 18:4)과 후에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 다메섹 아람의 지원군 이만 이천을 합산한 수이다(8:5;대상 18:5). 그런데 여기서 이천 명의 오차가 생기는 것은 아마도 계수(計數)의 착오이거나 붙잡힌 아람 군사 얼마가 도주하므로 생긴 오차일 것이다(Lange).

ㅇ소박을 치매 거기서 죽으니라 - 고대 전쟁에서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16절)의 전사는 곧 그 전쟁의 패배를 의미한다(삼상 17:51-53). 

따라서 본절은 아람군 전사자의 통계와 더불어 아람 동맹군의 완전한 참패(慘敗)를 보여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9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이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

ㅇ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 - 이들은 하닷에셀을 지원하여 다윗을 대적했던 아람 소국의 왕들을 의미한다(16절). 

ㅇ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 이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승자와 패자 간에 맺는 종주권 계약(宗主權契約)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때에 패자는 승자에게 조공을 바쳐야만 했다. 8:6 주석 참조. 아무튼 이처럼 이스라엘이 암몬군과 아람군에게 연전 연승(連戰連勝)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7:11)의 성취라는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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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솔로몬 시대 연혁]]==그랜드종합주석 성경 총론 pp62-64

##다윗(15세) 첫 기름부음 받음-->(20세) 엘라골짜기 골리앗 상대...(30세)헤브론, 유다왕 등극(BC1010)-->(37세)헤브론, 이스라엘왕 등극(BC1003)-->사망(BC970)

**다윗(B.C.1010)-헤브론, 유다왕 등극--- 삼하 2:1-4//이스보셋-아브넬의 대적(B.C.1005 ::2년 동안 11족속 왕)---삼하 2:8-3:1//아브넬의 죽음---삼하 3:6-30

**다윗의 통일 왕국 왕으로 추대(헤브론, B.C.1003)---예루살렘에서 33년-- 삼하 4:5-12

>다윗의 블레셋 침략 2회 정벌-- 삼하 5:1-5//다윗의 예루살렘 성 정복-- 삼하 5:17-25//다윗 궁의 건설-- 삼하 5:11

>다윗의 1차 법궤 이동 실패, 3개월 동안 오벧에돔에 머뭄--- 삼하 6:1-11//예루살렘 성으로 운반된 언약궤-- 삼하 6:12-19//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 삼하 7:1-17

>블레셋 메덱암마 정복(항복)-- 삼하 8:1//모압 정벌-- 삼하 8:2//소바, 다메섹, 하맛 정벌-- 삼하 8:3-10//에돔 정벌-- 삼하 8:13-14

>다윗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돌봄-- 삼하 9:1-13

>3년 기근(사울왕의 기브온 사람 학살 사건, 응어리 해결)-- 삼하 21:1-14

##암몬과 아람 정벌(BC992-BC990)--삼하 10:1-19//다윗과 밧세바 사건(B.C.991...다윗48세경)--삼하 11:1-12:23//솔로몬 출생(B.C.990) -- 삼하 12:24-25//암몬의 도성 랍바 완전 정복--삼하 12:26-31

##암논의 다말 강간과 압살롬의 복수 -- 삼하 13:1-33//압살롬의 도주(B.C.986..그술에 3년간 거함)--삼하 13:34-39//압살롬의 귀환.BC984--삼하 14:21-24//압살롬의 반역 준비 --삼하 15;1-6//압살롬의 반역(B.C.981, 4년 동안 준비, 거사)-- 삼하 7-12//다윗 왕의 도피와 후새의 충성--  삼하 15:13-18//압살롬의 예루살렘 장악---삼하 15;37//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함---삼하 16:5-14//아히도멜의 계략과  압살롬의 악행--삼하 16:20-17:4//후새의 지혜로운 계략--- 삼하 17:5-14//다윗의 마하나임 도피--삼하 17:1 5-22//아히도벨의 자살--  삼하 17:23//다윗 군과 압살롬 군의 싸움---삼하 18:1-33//압살롬의 죽음---삼하 18:9-15//다윗의 예루살렘 귀환 BC980--삼하 19:1-43

**세바의 반역 진압 BC980--  삼하 20:4-22

다윗의 인구 조사와 대 재난--B.C.973--  삼하 24:1-5

다윗의 성전 건축 준비---  대상 22:1-19

아도니아의 반역---B.C.971---  왕상 1:5-10

##솔로몬의 왕위 등극(20세)---B.C.970--40년 동안 통치--  왕상 1:32-49

아도니아에 대한 사면--B.C.970--  왕상 1:50-53

다윗의 죽음--B.C.970--  왕상 2:1-11

아도니아 처형--  왕상 2:13-25//아비아달의 추방--  왕상 2;26-27//요압의 죽음--  왕상 2:28-34//시므이의 죽음--  왕상 2:36-46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결혼함--  왕상 3:1

솔로몬의 1천 번제--  왕상 3:4

#여호와의 복의 현현 1차--  왕상 3:5-15//솔로몬의 명 재판--  왕상 3:16-28//솔로몬의 성전 건축 준비--  왕상 5:1-18

솔로몬의 성전 건축 시작--B.C.966--솔로몬 제위 4년--  왕상 6:1//성전 건축 완공--B.C.959--7년 동안 건축함--  왕상 6:37-38

솔로몬의 왕궁 건축 시작--B.C.959--  왕상 7:1-8

성전 봉헌식--B.C.959-- 왕상 8:1-66

왕궁 건축 완공--B.C.946--13년 동안 건축함--  왕상 7:1

#여호와의 복과 현현 2차--  왕상 9:1-9//스바 여왕의 방문--  왕상 10:1-13

솔로몬이 우상 산당을 건축함--  왕상 11:1-13//에돔 인 하닷의 대적--  왕상 1:14-22//르손의 대적--B.C.938--  왕상 11:23-25//여로보암의 반역--애굽으로 망명--  왕상 11:26-40

##솔로몬의 죽음--B.C.930--40년 동안 통치함--  왕상 11;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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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는 회개]로서의 회심(Conversion) 표현의 다양성===

구원의 서정에 따른 구원론[소명-중생-회심]의 세 번째는 바로 ‘회심’(conversion)이다. 
>>먼저 회심에 대한 구약에 나오는 단어를 살펴보면 나함이 있다. 나함은 “후회하다(삼상15: 11,35, 렘4:28), 한탄하다(창 6: 6,7), 뉘우치다(출13:17, 렘 31:19, 스 8:14), 뜻을 돌이키다(렘1 8:8, 요 2:14, 시 106: 45), 돌아오다(시 90:13)”등으로 구약성경에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주로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 대해 사용하고 있다..
----사람에게서 쓰이는 경우 "나함"은 메타노이아 =뉘우치다/한탄/후회하다/유감스러워하다/죄송해하다, 하나님에게서 쓰이는 경우 (사람이 "나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주의 십자가 보혈 의지하며 자복-통회-애통하며 죄로 인해 죽은바 된 상태임을 자각할 뿐 아니라 구원역시 주님의 "헤세드"로만 일어날 수 있기에 침잠하여 머무르는 바, 빛난 얼굴을 가리우고 징계하시던 데서 주님이 마음을 돌이키시고 그 얼굴 빛 비추심 인해 징계에서 안위하심으로 돌아서심을 경험케 하신다.
-----하나님에 대해는, 부정적 측면에서 거듭난 자녀의 평강-형통-보헤사이신 분께서 그 얼굴 빛 가리시고 사람 막대기와 인생 회초리를 드심의 징계(야카흐)에로의 전환(사망의 골짜기-눈물 골짜기  경험 안으로), 긍정적 측면에서는 참된 회개와 징벌 감수함을 통해 (자녀들의 죄악을 그냥 두고보지 못하시기에 합당한 징벌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눈물 골짜기 허락하셨던바) 거룩하신 주님의 아픈/슬픈 마음을 알아드리는 참 자녀의 내적 성숙의 그릇이 차오른 그 시점에서!! 그 얼굴 빛 드러내 비추심, .....그 양자에서 모두 "나함"을 쓰고 있음 :: 타락함 인해 주님과 하나됨(토브와 샬롬 누림) 잃어버린 바 된 세상에 대해 허락하신 징벌인"야카흐" 통해 + "내게 오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아니 이미 너희에게 임했다"초청하심에 반응하여 참 마음으로 "슈브"하는 이마다 주님은 "나함 = 안위하심"으로 구원 누림 주고 계시며, 혹시 실수-잘못하여 넘어질지라도 자기자신을 온통 내어주사 체결하여주신 하나님의 일방적 구속의 은혜 언약을 결코 취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참 마음의 진실함으로 나아가 "죄의 그 무게를 참되게 인지하며, 그 사랑의 무게를 새롭게 경험함으로써" 애통-회개할 때마다!!  구주 십자가 보혈-말씀으로 씻김-성령의 씻음  통해("야카흐", 곧 구주 대속의 죽음-장사됨-부활승천-성령 부으심은 "야카흐-나함" 적용) 다시 일으켜 하나 됨 안으로 이끌어 주고 계신다!!
>나함보다 회심에 대해 더 보편적으로 사용된 구약성경의 단어는 히브리어 "슈브", 헬라어 "에피스트레포"가 있다. 
슈브는 신앙적, 영적 입장에서 ‘돌아오다’ ‘돌이키다’ ‘돌아가다’ 등의 의미를 가지면서 가던 길을 180° 돌아서는 것을((그래서 TUQ 안으로 믿어들어가 하나됨=다바크(붙좇음=접붙임)=상호 거함))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에피스트레포(ἐπιστρέφω)’로 번역되었다. 
----에피스트레포(ἐπιστρέφω)’는 항상!!, 날마다 새로이 실행하고 발휘되어야 하는 [오직 구주 십자가 보혈의 은혜 의지하여 그리스도를 오늘 나의 속건제-속죄제로 취함의!!, 보혈-성령-말씀으로 씻음 통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합당한 그릇으로 드림 준비함의 참 회개!!...이는,  신앙[지적 동의가 아니라 전인적 생명으로 주와 믿는이 간에 전존재로 올인하여, 살아 생동하는 생명 공급-교통하며 내어주심(하나님)+맡겨드림(믿는이)=faith]의 절대적 하나 됨의 살아 생동하는 , 발휘되는 참 신앙의 관계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칠십인 역(LXX)에서는 슈브가 메타노이아로 번역되지 않고 나함이 ‘메타노이아’로 번역되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신약 성경에서 회심을 뜻하는 가장 보편적인 단어는 (마태복음에서, 요한과 예수는 바로 이 단어를 쓰고 있다). 헬라어 메타노이아[=메타노에오]이다.‘메타노이아’는 [바꾸다]는 뜻 가진 헬라어 전치사 ‘메타’와 ‘알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노이아’가 합성된 말로 ‘아는 것을 바꾸다’라는 뜻으로 곧 ‘회개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되었다. ::: 이것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에피스트레포)까지도 포함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회심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conversion’이 있다. 이 회심을 뜻하는 영어 단어 ‘conversion’은 우리말로 번역될 때 ‘전환’, ‘변환’, ‘개조’, ‘전향’, ‘개종’, 특별히 종교적인 ‘회심’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이에 반해 우리말 ‘회개’를 뜻하는 ‘repentance’를 찾아보면 후회, 회한, 회개, 참회’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루이스 벌코프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구원의 서정의 세 번째 요소로 영어 단어 ‘convesion:회심, 곧 전향 = 회심-전향’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회심’(conversion)에는 두 가지 요소인 ‘회개’ (repentance)와 ‘믿음’(faith)이 있다는데 동의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말에는 회심(conversion)과 회개(repentance)가 구별되어 사용되어지고 있지 않다.....교회 안에서 회개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그것이 ‘회심(conversion)’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회개((repentance)’를 의미하는 것인지 모호할 때가 많다.
>>탕자를 통해 본 회심, 전향(Conversion) 이야기
죄인이 죄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의식적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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