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21. 에셀바위를 떠나 놉으로, 놉에서 블레셋 가드(왕 아기스)로.1차 의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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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1장 [382.너근심걱정말아라] [300. 내맘이낙심되며] [384.나의갈길다가도록] [405.주의친절한팔에안기세][345.캄캄한밤사나운바람불때] [372.그누가나의괴롬알며][370.주안에있는나에게] [375. 나는갈길모르니]


...하나님 앙망함, 그 안에서 그분의 마음을 따르라..(오직 진실함으로 나아가라..삿된 마음/방어적 마음의 생각을 버리고, 오직 순전하라..절대 신뢰-절대 평강-절대 감사-절대 기쁨..참생명 주님 누리며 기도-찬송 안에 참 믿음으로 걸으라)


****놉의 위치 == 베냐민영토에 속하고, 기브아의 동남쪽 약 4km 지점 예루살렘의 성전 산에서 북동쪽으로 21.5~4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추정

[((놉--기브아--기브온--예루살렘 상대적 위치))....놉은 예루살렘 동북쪽 2.5km지점, 기브아는 예루살렘 북쪽 5kM지점,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서쪽 10kM지점]

...... 다윗은 사울로부터 도망하였을 때, “제사장들의 성읍” 놉에 있던 대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그로부터 자기의 사람들을 위한 식품으로 얼마의 진설병을 받고 또한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골리앗의 환도를 받았다. 아마도 장막은 실로가 하나님의 심판(블레셋군대에 의한 황폐화)을 받았을 때에 놉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삼상 14:3; 시 78:60; 렘 7:12-14 비교) 

..... 나중에 사울은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도움을 베풂으로 [그 자신도 모르게 당한 일이라고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사울 자신은 스스로가 "신뢰의 삶 살기를 접은" 의심 많고 변덕스러운 자여서 "하나님의 영이 떠난 후에는" 한번도 순수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남을 믿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울 자신은 믿지 못하겠고-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그렇게 여기지도 않으며, 그러기에 의도적으로 함께!!(진실한 제사장이 아니라고 누명 씌움이었다), ] 모반을 꾀하였다고 그를 비난하였으며,,,사울의 명령에 따라 에돔 사람 도엑은 그 대제사장과 다른 제사장 84명을 죽였다. 그다음 도엑은 놉의 모든 남녀노유 및 동물들까지 모조리 살육하였고, 겨우 도망한 사람은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뿐이었다(에봇을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다)...혹자들은 이때, (성막에서 봉사하고 있던 기브온사람들까지 멸하였다고 봄) ....사울왕은 놉에 있던 성막을 기브온으로 성막을 옮겼을 것으로 추정함..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을 떠나 블레셋의 가드로 망명을 시도한다. 

다윗이 블레셋 망명을 시도한 근거는 아마도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외교적 역학 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인적 호감도 작용하고 잇었겠지만..)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전쟁이 그치지 않는 적대국이었다. 그러므로 사울의 미움을 받아 도망자가 된 다윗을 블레셋이 받아주리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의 계산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다윗이 거둔 전공을 상기시키며 다윗을 위험한 인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11절). ...위험을 감지한 다윗은 기지를 발휘하여 미친 척 연기를 하였고, 불행 중 다행으로 블레셋의 가드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

......시편 34편의 표제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되어 있다.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블레셋에서 참기 어려운 수치를 당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고, 하나님에게 피하는 자의 복을 노래한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8)]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34:19)] 

..... 다윗은 (일견 보기에는!!) 억울한 고난을 당하고 있다. 제사장에게 음식과 무기를 구걸하고, 나아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이방인 앞에서 미친 체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으로 다윗은 억울하게 당하는 거대한 고난도 참고 인내할 수 있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다

1.  다윗이 (홀로)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모든 표현, 곧 눈짓/손짓-말과 행함에서, 오로지 주 앞에서 주께 합당함이 단순/순전/온전/완전/티-흠-점-주름 없는 정결함이 최상의 지혜 그리스도를 사는것일지니...오늘을 [빛과 소금] 그리스도로 살라..

....."코람데오"의 매순간을 살라..그 사람이 누구든지, 그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거짓말 하기를 멈추라!!..임마누엘 주님 신뢰함으로써 그리하라....엘샤다이=엘 마겐(코아흐-오즈)의 여호와, 살아계신 "주 하나님이 예비하신 최선의 은혜" 받을 바, 그 그릇됨!!....타인을 선대하고 보호하는 최선의 삶 살게 되리니..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9.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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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21장

1.  Then David came to Nob to Ahimelech the priest; and Ahimelech came trembling to meet David, and said to him, "Why are you alone and no one with you?"

2.  And David said to Ahimelech the priest, "The king has commissioned me with a matter, and has said to me, 'Let no one know anything about the matter on which I am sending you and with which I have commissioned you; and I have directed the young men to a certain place.'

3.  "Now therefore, what do you have on hand? Give me five loaves of bread, or whatever can be found."

4.  And the priest answered David and said, "There is no ordinary bread on hand, but there is consecrated bread; if only the young men have kept themselves from women."

5.  And David answered the priest and said to him, "Surely women have been kept from us as previously when I set out and the vessels of the young men were holy, though it was an ordinary journey; how much more then today will their vessels [be holy]?"

6.  So the priest gave him consecrated [bread]; for there was no bread there but the bread of the Presence which was removed from before the LORD, in order to put hot bread [in its place] when it was taken away.

7.  Now one of the servants of Saul was there that day, detained before the LORD; and his name was Doeg the Edomite, the chief of Saul's shepherds.

8.  And David said to Ahimelech, "Now is there not a spear or a sword on hand? For I brought neither my sword nor my weapons with me, because the king's matter was urgent."

9.  Then the priest said, "The sword of Goliath the Philistine, whom you killed in the valley of Elah, behold, it is wrapped in a cloth behind the ephod; if you would take it for yourself, take [it.] For there is no other except it here." And David said, "There is none like it; give it to me."

10.  Then David arose and fled that day from Saul, and went to Achish king of Gath.

11.  But the servants of Achish said to him, "Is this not David the king of the land? Did they not sing of this one as they danced, saying, ' Saul has slain his thousands, And David his ten thousands'?"

12.  And David took these words to heart, and greatly feared Achish king of Gath.

13.  So he disguised his sanity before them, and acted insanely in their hands, and scribbled on the doors of the gate, and let his saliva run down into his beard.

14.  Then Achish said to his servants, "Behold, you see the man behaving as a madman. Why do you bring him to me? 

15.  "Do I lack madmen, that you have brought this one to act the madman in my presence? Shall this one come into my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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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1장 (개요)

이제 다윗은 완전히 사울의 궁전과 그의 진영을 떠나 또 하나의 자기―즉 자기의 분신인 사랑하는 요나단과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불법자 취급을 받았으며, 반역자로 낙인이 찍혔다. 

여전히 우리는 다윗이 자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이리저리로 피해 다니는 것과 그리고 사울이 그를 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본 장과 다음 장에서 우리는 다윗의 시편들과 관련이 깊은 고난들과 그리고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난을 당하며 참는 모습 또 나라를 다스리도록 기름 부음을 받고서도, 스스로 자기를 낮추셨지만 높이 들려 올려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은 조금도 죄가 없으신 것이지만, 다윗의 고난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 장에서 볼 수 있는 다윗의 도망 중의 기사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찾아낼 수 있다.

1. 다윗은 양식과 무기를 얻기 위해 제사장 아히멜렉을 속였다(1-9).

2. 가드 왕 아기스를(또는 그의 신하들을) 속이기 위해 다윗은 미친 사람으로 가장했다(10-15). 

.......분명히!!, 시련은 유혹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정당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시련 속에서 (원치 않는!!) 죄를 짓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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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설병을 취한 다윗(삼상 21:1-9)

Ⅰ. 다윗은 당시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라고 추측되는 놉 땅에 설치된 하나님의 성전으로 도망쳤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는 여전히 기럇 여아림에 있었지만, 실로가 버림 받았기 때문에 성막성전은 이리저리로 가끔 옮겨 다녔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의 진노를 피하여 여기까지 도망쳐 왔으며(1절), 제사장 아히멜렉의 도움을 요청했다. 

선지자 사무엘도 그를 지켜 주지 못했고, 왕자 요나단도 그를 지켜 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으로 제사장 아히멜렉을 의지했다. 

그는 장차 유랑의 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견했다. 그리하여 그는 성전으로 왔다.

1. 다윗은 성전과의 어떤 이별을 고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는 성전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그의 많은 시편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공적인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 이상 그를 서글프게 하는 것이 또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의 친구 요나단과 감동어린 이별을 고한 일이 있다. 그는 이러한 이별을 성전에 대해서도 고하지 않고는 그대로 갈 수가 없었다.

2. 다윗은 그 자신의 문제가 매우 어렵고 또 위험한 것이기에, 그가 어디로 가야 하며 또 어디로 가는 것이 안전한 길인가를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 성전에 왔다. 

그때 아히멜렉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22:15),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물었다”(22:10)고 나타나 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찾아가서 문제를 털어놓고,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해결의 방향을 지시받을 수 있는 하나님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Ⅱ. 제사장 아히멜렉은 그의 몰골이 초라한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가 왕궁의 호감을 잃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를 수상히 여겼다. 온 세상이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친구들도 그런 식으로 대하게 마련이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환대했다가 사울의 불만을 살까 저으기 두려워했다. 그리고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비참한 몰골을 만들었는가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홀로 있느냐?”(막 2:26 참조) 

그는 몇 사람과 함께 거기 갔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몸종에 불과했다. 

그는 다른 때 여호와께 물으려고 올 때 데리고 왔던 궁인(宮人)들이나 그의 신분에 알맞은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는 무리와 동행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습관이 있었다(시 42:4)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단지 두세 사람과 함께 왔으니만큼 아히멜렉이 그에게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느냐?”고 물을 만하다. 

목자들의 고적한 생활 속에 파묻혀 있던 그가 갑자기 군대의 진영 속의 궁중과 소용 속에 묻혀 살게 되더니, 다시금 갑자기 유랑의 신세로 전락하여, “지붕의 참새처럼 고독한 몸”이 되었다. 이 세상은 그처럼 변화무쌍하며, 그 웃음도 믿을 수 없다. 오늘 모든 사람으로부터 환대받는 사람도 내일에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척을 받을 수 있다.

Ⅲ. 다윗은 나라의 일을 위해서 사울의 보냄을 받아 왔다고 아히멜렉을 속인 다음, 그에게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2, 3절).

1. 여기서 다윗은 그답지 않은 행동을 취했다.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게 급한 일을 맡겼다고 커다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자기의 종자들은 여차여차한 곳으로 보냈으며, 비밀로 일처리를 하라고 했기 때문에 비록 제사장에게라도 말을 하지 못하겠노라고 했다. 

이것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성서는 이를 숨기지 않는다. 우리도 이를 정당화할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처사였다. 

그 결과도 나빴다. 그 때문에 “여호와의 제사장이 죽었다.” 다윗 자신도 나중에는 이 일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후회했다(22:22). 

그는 이처럼 제사장을 속일 필요가 없었다고 보인다. 그가 만일 사실을 이야기했다면, 사무엘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숨을 곳을 제공해 주고, 그를 구해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더 좋은 길을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충실한 목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탁 털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다윗은 매우 위대한 신앙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때 두려움과 겁 때문에 실패했고 부정을 저질렀다. 이것은 모두 그의 믿음이 연약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을 확실히 믿기만 했다면, 그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런 죄악된 방법을 사용치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도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면 그의 행동을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여기에 기록해 놓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를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날마다 기도하자.

아래와 같은 일들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1) 의인들의 연약함과 허약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완전한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실수가 많은 곳에서도 참된 은혜가 있을 수 있다.

(2) 의인들을 난국에 처하게 하는 악한 때가 있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때의 유혹은 그들에게 너무나 강한 유혹이 된다. 심한 고난은 지혜 있는 자도 어리석게 행동하게 한다.

2.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두 가지, “떡과 칼”을 구했다.

(1) 다윗은 떡을 요구했는데 “다섯 덩이”를 구했다(3절).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니던 때의 여행은 무척 고생스러운 것이었다. 더욱이 돈도 없던 다윗에게는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윗은 떡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은 때로 “의인의 자손도 걸식하지만” 언제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시 37:25).

① 그때 제사장은 자기에게 떡이 없고, 다만 거룩한 떡인 “진설병”이 있을 따름이라고 했다. 

이 떡은 성전 안에 있는 황금의 젯상에 한 주간 동안 진열되었다가 내려놓은 것으로서 제사장과 그의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다(4절). 

제사장들은 그렇게 호화스럽게 살지는 못했지만, 손님은 친절하게 대해 주고자 했으며, 그만한 자력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히멜렉은 다윗과 함께한 젊은이들이 한동안 그것이 자기의 아내였다고 할지라도, 여인들과 가까이하지 않았어야 이 떡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율법을 주실 때”에 요구되어졌던 일이 있다(출 19:15).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의식상의 정결을 위해 이런 일이 요청되었던 것을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때 제사장은 지나치게 세심했던 것 같다.

② 다윗은 그와 또 그와 함께한 소년들이 충분히 거룩한 떡을 먹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들은 삼일 동안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그릇을 취할 줄을 알았기에”(살전 4:4, 5), “그들의 그릇(즉 그들의 몸)이 성결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돌봐 주시며, 필요한 것을 부족함 없이 공급해 주실 것이며, 이 일을 제사장께서 하여 주시도록 원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거룩하기에 거룩한 것을 그들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가난하고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 제사장 노릇을 했다. 그들은 굶어 죽기보다는 비록 제사장 몫으로 정해진 것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신자들은 영적인 제사장들이다. 여호와께 드린 제물은 그들의 음식이 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떡을 먹는다.

그는 그 떡이 일반 떡과 같다고 해명했다. 이제 그 떡이 본래 가졌던 종교적 사명은 끝났다. 

그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던 것이라”고 밝혀 놓았다. 이것이 다윗의 구실이었고, 다윗의 자손도 이를 뒷받침하여 주셨다.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예수님은 자비가 제사보다 낫고, 의식적인 절차보다는 먼저 도덕적 의무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러한 일은 달리 해결할 수가 없는 매우 위급한 경우에 처했을 때만 가능한 일임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다가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비난했으므로, 제자들의 입장을 밝혀 주기 위해 말씀하셨다(마 12:3, 4).

③ 이에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을 주었다. “그는 거룩한 떡을 그에게 주었다”(6절). 

어떤 사람은 이것 때문에 “그가 여호와께 물었다”(22:10)고 생각한다. 그는 충실한 종으로서 주어진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주인의 것을 마음대로 처리하고자 하지 않았다. 

이 떡들은 성결된 떡이기에 다윗에게는 더욱 합당한 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서는 모든 청결된 것들이 더욱 가치를 지닐 수 있었다. 

진설병은 모두 열 두 덩어리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떡이 더 없으므로 그는 다윗에게 다섯 덩어리를 주었다(3절).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다.

(2) 다윗은 칼을 원했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비록 장군이라 할지라도, 그때는 지금과 같이 언제나 칼을 차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도 칼이 없었다. 

요나단이 왜 전번처럼(18:4) 자기의 칼을 다윗에게 주지 않았는지 이상하다. 하여간 그에게는 현재 무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 까닭을 다윗은 급히 서둘러서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8절). 성령의 검과 믿음의 방패를 가진 사람들은 결코 무장을 풀어 놓거나 또는 언제든지 그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제사장에게는 칼이 없었다. 그들의 무기는 육신을 죽이는 무기가 아니었다. 

성전에는 어떤 무기도 없었는데 다만 골리앗의 칼이 있었다. 그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에봇 뒤에 놓아 두었던 칼이다. 

아마 다윗은 제사장에게 칼이 있으면 달라고 했을 때 그 칼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칼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윗은 말하기를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9절)라고 말했다. 다윗은 사울의 갑옷을 입지 못했다. 왜냐하면 익숙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골리앗의 칼은 그가 사용해 보고 효과를 보았던 일이 있는 칼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서 다윗은 그런 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으리만큼 힘도 세지고 키도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셨다”(시 18:34). 

그리하여 그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칼에 대하여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서 그 칼을 다윗에게 주셨다. 

그것은 놀라운 은혜의표시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그 칼을 뽑을 때마다, 

그리고 그 칼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를 특별히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의 믿음이 크게 도움받을 수 있게 되었다. 경험은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② 그 칼은 다윗이 하나님께 봉헌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의 표시로서 이를 하나님께 바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지금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이 다시 그에게 수여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를 섬기기 위해 봉헌한 것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친 것은 다시 우리의 것이 된다.

이처럼 다윗은 무장도 갖추고 양식도 장만하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거기에 여호와 앞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도역이었고 나중에 사울에게 다윗과 아히멜렉의 일을 고자질했다. 그는 에돔 사람이었다(7절). 

그는 비록 사울 밑에서 출세를 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은 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 사람들의 오래고도 인습적인 적개심은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는 목자장이었다. 

아마 당시의 그의 직책은 오늘날의 마구 관리인보다 훨씬 더 명예로운 직분이었을 것이다.

어떤 용무 때문이든지 간에 도역은 제사장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어떤 부정으로부터 정결함을 받기 위함이었든지 아니면 서약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의 용무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그는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성전에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배와 제사에는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를 “병폐스럽다고 말하며 코웃음치고” 있었다(말 1:13). 

이것은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여호와 앞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이곳에 온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다윗을 해하며, 아히멜렉이 자기를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 보복을 하고자 계획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성전도 이런 양의 가죽을 쓴 이리 앞에서는 안전할 수가 없다(참조, 갈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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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간 다윗(삼상 21:10-15)

다윗은 비록 왕으로 택함을 받았지만 여기서는 한갖 유랑자의 신세가 되었다.

―많은 재산의 주인이 되도록 마련되었지만 여기서는 우선 그날의 양식도 빌어먹어야 한다.―그는 왕관을 이어받을 사람이지만 우선은 자기 땅에서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처럼 때로는 그 약속과는 정반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그의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며, 어떠한 어려움이 가로막고 있다고 하여도 그의 뜻을 온전히 펴신다는 것을 나타내 보임으로써 그의 이름을 더욱 영화스럽게 하고자 원하시기 때문이다.

Ⅰ. 다윗은 블레셋 땅으로 도망갔다. 

거기서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의 궁중이나 혹은 진영 속에 숨어 있기를 원했다(10절). 

이스라엘의 사랑받는 용사가 불가불 이스라엘 땅을 버리고, 블레셋의 원수가 블레셋 사람들 속에 보호처를 찾게 되었다(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는지 나는 모르겠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사랑했지만 이스라엘 왕의 개인적인 적의가 그로 하여금 그의 조국 땅을 버리게 한 것과 같이, 비록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미워했지만 가드 왕은 다윗의 공훈을 생각해서 그에게 개인적인 친절을 베풀기를 원했다고 보여진다. 아마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이 아기스와 친하게 된 동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다윗은 나중에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27:2, 3) 아기스를 믿고 곧장 그에게로 갔다. 그리고 아기스도 다윗을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편 사람들의 불친절을 두려워했다. 하나님의 고난 받는 성도들은 때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보다는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유대인의 회당보다도 이방인의 극장을 더 많이 이용할 수 있었다. 유다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가두었지만, 바벨론 왕은 그를 석방했다.

Ⅱ. 아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이 거기 온 것을 싫어하여, 이를 아기스에게 불평했다(11절). 

“이는 다윗이 아니니이까? 그가 블레셋을 이긴 그 사람이 아닙니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한 사람이 아닙니까? (우리의 들은 바가 사실이라면) 이 사람은 그 땅의 왕이 틀림없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의 대적입니다. 그런 사람을 보호해 주거나 환대하는 것이 안전한 일이며, 명예로운 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아기스는 다윗을 환대하는 것이 자기의 책략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이 지금은 사울의 원수가 되었으며, 그래서 그들의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한 나라의 범법자는 보통 그 나라와 대적하는 나라에서는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아기스의 신하들은 아기스의 책략에 반대했으며, 다윗이 그들 가운데 있는 것이 전혀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Ⅲ. 이 때문에 다윗은 크게 놀랐다. 

다윗은 아기스를 믿을 만한 확실한 몇 가지 근거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그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기스가 그들에게 내어 주지 않을까 하고 몹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는 “심히 두려워하였다”(12절). 그리고 그는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더 두려워했을 것이다. 

가드 사람들은 골리앗의 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골리앗의 목을 쳤듯이, 이번에는 그들에게 목이 잘리는 것이 아닌가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다윗은 우리에게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시 118:9)라고 가르쳐 주었는데, 그는 이 사실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한다. 그리하여 그런 사람으로 소망을 삼으면, 그들이 오히려 우리의 두려움이 되기 쉽다. 

다윗이 시편 56편(황금시의 하나인 믹담 시)을 지은 것은 이때, 즉 그가 가드에서 블레셋 사람에게 잡힌 때에 지은 시이다. 

거기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의 고민을 털어 놓은 뒤에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자기의 결심을 피력했다(3절). 

그리고 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고 말했다(11절).

Ⅳ. 다윗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책을 세웠다. 

“그는 미친 체하였다”(13절). 다윗은 천치의 모습과 행동을 취했다. 또 혹은 제정신을 잃은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다윗은 그가 빠진 재난과 어려움이 그를 미치게 만든 것이 틀림없다고 그들이 믿을 줄로 생각하고 이런 행동을 취했다.

이러한 다윗의 은폐술이 조금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자기 자신을 얕보게 하는 것은 너절한 일이며, 자기를 잘못 나타내는 것도 진리에 모순되는 행동이다. 

따라서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명예를 매우 더럽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용서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철저한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전술상의 책략일 수 있기 때문이며, 그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원수들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윗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취한 행동은 어느 정도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기는 하나, 그것은 술주정꾼들의 행위요, 인간의 가장 비열한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어리석게 하며, 그들의 행동을 이리저리 변하게 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흔히 백치의 말이나 행동처럼 망령되고 어리석은 것이며, 또는 미친 사람처럼 펄펄 뛰고 난폭한 것들이다. 

나는 그 처럼 지각이 있고 명예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고 놀란다.

Ⅴ. 다윗은 이런 방법을 통해 그곳으로부터 피해 달아났다(14, 15절). 

나는 아기스가 다윗의 미친짓이 거짓된 꾸밈인줄 알면서도 다윗을 지켜 주기 위해 일부러 그가 정말 미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자기 신하들 앞에서 내색했다고 보고싶다. 

(나중에 알 수 있듯이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을 미워할 때도 그는 여전히 다윗을 사랑했다. 28:1, 2; 29:6). 

그래서 그는 이가 다윗이냐 아니냐를 물어볼 필요가 있었고, 그가 다윗이라고 해도, 이미 제정신이 아닌만큼 그가 아무런 해를 줄 수 없으니 조금도 두려워 말라고 했다.

아기스의 신하들은 아기스가 다윗을 환대할는지 모른다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미친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 볼 일이 없다. 내가 그를 후대하며 그의 편의를 보아 줄까 봐 걱정하지 말라.” 

아기스는 신하들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춰 가면서 일을 잘 처리했다. “내게 미친 사람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나는 그에게 보여 줄 친절이 없다. 그러니 그를 해치지 말라. 그가 미친 사람이라면 동정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은 시편 34편의 제목에 나와 있는 그대로 쫓겨났다. 

이 시편은 이때의 일을 기록한 시편이며, 매우 훌륭한 시편이다. 그 시편에 의하면 다윗은 그의 처신을 함부로 했지만 결코 그의 심령을 함부로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처럼 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여호와를 믿으며, 그의 심령은 여호와께 확실히 매어달려 있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시편 속에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결코 버림받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그런 사람들은 지금 자기의 경우와 같이 외롭고, 고난을 당하며, “핍박을 받으나,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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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4...==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1.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22.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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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56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호크마===

사무엘상 21장

1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ㅇ다윗이 놉에 가서 - '놉'(Nob)은 '작은 산', '언덕', '산당'이란 뜻이다.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4km, 그리고 그 당시의 수도 기브아의 동남쪽 약 4km 지점으로 추정된다(느 11:32; 사 10:32). 일찍이 블레셋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실로(Shiloh)의 성막이 파괴된 이후(4:10, 11) 여호와의 성막은 제사장의 성읍인(22:19) 이곳 '놉'으로 옮겨졌던 것 같다. 

한편 다윗이 그때 '놉'으로 간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제사장의 우림과 둠밈으로 자신의 피신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고(22:10), (2) 당장 도피 생활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며(3-6절), (3) 자신의 몸을 보호키 위한 무기를 구하기 위한(8, 9절) 목적 때문이었던 것이다(F.R. Fay).

ㅇ제사장 아히멜렉 - '아히멜렉'(Ahimelech)은 '아히야'(Ahijah)와 동일시 되는 사울시대의 대제사장으로서(14:3), 아히둡의 아들이며 비느하스의 손자요, 엘리 대제사장의 증손이다(22:9).  그러므로 '아히멜렉'(아히야)은 이전 블레셋과의 믹마스 전투에서 사울 왕을 도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에 참가하기도 했다(14:3, 36-42).

ㅇ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 아히멜렉의 이같은 반응은, 사울의 포악한 성품을 익히 알고 있는 바 혹시 다윗이 사울의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어떤 위해(危害)를 가하러 오지는 않았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Keil, Lange).  이와 유사한 형태의 두려움은 사무엘을 급작스레 맞이했던  베들레헴의 장로들에게도 있었다(16:4).

ㅇ어찌하여...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없느냐 - 대제사장 아히멜렉의 이 질문은 왕의 사위이자 국가의 중요 지위(18:30; 20:5)에 있는 자가 호위병도 대동치 아니하고 기별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것에 대하여 매우 의아스럽게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때 다윗은 자신을 따라 나선 소년 몇 명을 대동하고 있었으나(2절; 막 2:26), 당시 사울에게 쫓기고 있던 자신의 처지를 은폐하기 위해 그들을 부근 어디엔가 남겨두고 단신으로 아히멜렉을 방문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때 다윗은 자신과 아히멜렉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방문 목적을 이루려 했던 것같다(Keil, Smith).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 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ㅇ왕이...일을 명하고...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 다윗이 이처럼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한 까닭은, 만일 자신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왔다는 사실을 아히멜렉이 알 경우 사울로부터의 보복이 두려워 아히멜렉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사울로부터 쫓긴다는 사실을 감춘 채, 마치 자신이 사울의 특명을 받아온 것인 양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사실 이 거짓말은 은연 중 아히멜렉을 위협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다윗은 이같은 속임수로 아히멜렉의 도움을 유도해 냈으나(6, 9절), 후일 그 일로 인해 놉의 제사장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비극을 야기시킴으로써(22:9, 10, 18, 19), 그들에 대하여 다시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말았다(22:22).

ㅇ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 여기서 '약정하다'(야다)란 말은 '알다', '지정하다', '약속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이 소년들과 어떤 장소에서 만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NIV, RSV). 즉 "제 부하들과 어느 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읍니다"(공동 번역)란 말이다. 또한 추측컨대 다윗의 이 말은 근거가 있는 말이다(Keil, Smith, Clericus). 왜냐하면 후일 이 사건에 대한 그리스도의 언급을 살펴볼 때(마 12:3, 4; 막 2:25, 26; 눅 6:3,4), 다윗에게는 당시 일행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의 성격상 다윗은 그들을 인근 어느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후 헤어지고 아히멜렉을 혼자서 찾아갔던 것 같다.  즉 다윗은, 자신이 아히멜렉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비밀에 붙이려 했던 것 같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ㅇ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 여기의 '떡 다섯 덩이'(five loaves of bread)는 다윗 일행이 당분간의 배고품을 면할 수 있는 양이었을 것이다(Keil, Thenius). 그리고 '무엇이든지'는 떡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료 즉 포도주를 가리킴이 분명하다(수9:12, 13).

ㅇ있는 대로...주소서 - 사울의 추격을 피해 정처없이 도피 생활을 해야만 하는 다윗의 절박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사실 먹을 것을 구하기가 힘든 광야의 도피 생활에서 무엇보다 굶주림을 면하는 일은 아주 중요했다.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ㅇ항용 떡 - 식용(食用)으로 먹는 일반적인 떡을 가리킨다.

ㅇ거룩한 떡 - 이 떡은 이전(以前) 안식일에서부터 돌아오는 안식일까지 일주일동안 여호와 앞 즉 성소의 떡상에 베풀어 놓았던 '진설병'(陳設餠)을 가리킨다. 이 떡은 일 주일에 한 번씩 반드시 새 것으로 교체되어야 했고, 물려낸 떡은 오직 제사장만이 성소의 거룩한 장소에서 먹을 수 있도록 율법에 규정되어 있었다(출 25:30; 35:13; 39:36; 40:23; 레 24:8, 9).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떡에 대하여 이같은 율법 규정을 두신 근본 정신은 이 떡을 아론의 후손들 곧 제사장들에게만 특혜적으로 먹게 하려는 데 있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 앞에 놓여졌던 거룩한 떡이 부정(不淨)하게 소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데 그 근본 정신이 있었던 거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왕의 임무를 띠고 먹을 것을 급히 요구하는 굶주린 다윗 일행에게 성결(聖潔) 여부를 확인한 뒤 진설병을 내어준 일은 후일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율법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 아니라고 인정되었다(마 12:3, 4; 막 2:25, 26; 눅 6:3, 4). 

한편 여기서 성소의 떡상 위에 진열되던 '거룩한 떡' 즉 '진설병'에 대한 언급은 블레셋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실로'(Shiloh)의 성소가 여기의 '놉'(Nob)에 재건되었다는 분명한 사실을 시사해 준다. 4:11 주석 참조.

ㅇ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성적(性的) 정결'은 (1) 성전(聖戰)에 참여중인 자(신 23:9-14; 수 3:5; 삼하 11:11, 12), (2) 특별한 종교 의식에 참여할 자 혹은 참여중인 자(출 19:15; 레 15:18) 등에게 반드시 요구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히멜렉이 진설병을 주는 문제와 관련하여 다윗 일행에게 이같은 성적 정결을 요구한 까닭은, 진설병과 관계된 율법 규정의 근본 정신에 따라 최소한 그 '거룩한 떡'(진설병)이 부정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본절을 통해, 시대 상황의 변천에 따라 다윗 시대에는 이미 제사장만이 진설병을 먹는 철칙이 무너졌고, 아울러 그와 관련된 여러 의식(儀式) 율법들은 그 근본정신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 어느 정도 융통성이 발휘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Klein)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ㅇ삼 일 동안이나 - 레위기의 정결법상 성관계를 가진 자는 그 당일에만 부정(不淨)하다는 점에서 볼 때(레 15:18), 여기의 '삼 일'은 아히멜렉에 의해 제시된 조건(4절)을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한편 여기의 '삼 일'은 다윗이 숲 속에 숨어있었던 월삭 잔치의 첫 날(20:24)을 기점으로 요나단과 헤어진 후(20:42) 놉에 도착한 그 당일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기간 동안 다윗 일행이 절제 생활을 했을것은 당연하다. 한편 이것의 문자적 의미는 '어제처럼 제 삼일에도'란 뜻이다.

ㅇ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 이것은 2절의 내용에 따라 다윗 자신이 왕의 명령을 받아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러 길을 떠났음을 강변키 위한 언급이다.

ㅇ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 여기서 '그릇'(켈리)은 (1) 소년들이 지참했던 무기, 옷, 기타 필수품 등을 가리킨다는 견해(Keil, Klein), (2) 소년들의 떡그릇을 가리킨다는 견해(Smith, Lange, Hertzberg), (3) 소년들의 몸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라는 견해(Schmid)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여기서 단순히 이 단어의 용례만을 따진다면 (1) (2)의 견해가 타당하나, 본 문맥이 떡을 먹을 주체(主體)의 성결 여부를 논(論)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3)의 견해가 더 타당한 듯하다.

ㅇ오늘날 - 즉 사울의 특명을 받고 거룩한 임무를 수행키 위하여 떠난 날을 말한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낸 떡 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낸 것이더라

ㅇ거룩한 떡...진설병 - '진설병'(陳設餠, Showbread)은 특별히 여호와께 바치기 위해 고운 밀가루로 만든 떡을 가리킨다. 이 떡은 모두 12개로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데, 6개씩 두 줄로 배열되어 성소의 떡상 위에 진설되었다. 그리고 이 떡은 매안식일마다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었으며, 이미 진설되었다가 물려진 떡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레 24:5-9).

ㅇ물려낸 떡 - 다윗이 온 후 물려낸 것이 아니라, 이미 물려낸 것으로서 제사장이 아직 먹지않고 보관했던 떡을 말한다.  이러한 떡은 대개 건조되어서 딱딱한 상태였을 것이다.

ㅇ더운 떡 - 물려 낸 떡 대신에 새로이 성소의 떡상에 진설한 떡을 가리킨다.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ㅇ사울의 신하 한 사람 - 곧 사울의 목자장 '도엑'(Doeg)을 가리키는데, 이 자가 특별히 여기서 소개되고 있는 이유는 22:9, 10에 기록된 바 도엑이 사울에게 다윗과 아히멜렉 사이에 되어진 일(1-9절)을 고해 바친 경로를 말하기 위함이다. 즉 당시 도엑은 다윗과 아히멜렉 간에 되어진 일을 목격하고, 그 사실을 사울 왕에게 고발함으로써 무고한 제사장 85인과 놉 땅의 거민과 가축을 몰살케 만들었다(22:9-22). 이처럼 도엑은 간악하고 아부 근성이 농후한 인물로서, 후일 다윗은 그의 시편 52편을 통해 도엑의 잔인성을 질타하였다.

ㅇ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 여기서 '머물러 있었는데'의 기본형 '아차르'는 원래 '닫다', '제지하다'의 의미이지만 수동형으로 사용될 경우 '물러나 있다', '갇혀 있다'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라는 말은 (1) '성소'라는 말 대신에 특별히 '여호와'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는 점(2:18), (2) 그리고 여기의 '머물러 있었는데'가 수동형으로서 의무에 따른 필요 행위를 나타낸다는 점 등에서 볼 때, 어떤 종교적 의식 절차의 이행을 위하여 성막에 일정 기간 동안 체류한 사실을 뜻한다. 즉 '도엑'은 (1) 에돔 사람인 까닭에 개종을 위한 할례를 받거나(창 17:23, 27), (2) 이미 개종을 했었다면 하나님께 특별한 서원을 하거나 (Stoebe, 1:11), (3) 혹은 어떤 병에 걸려서 제사장의 지시를 받기 위함이거나(레13:4), (4) 아니면 범죄를 속함받고자 정한 제사를 바칠 목적 등으로 당시 대제사장과 여호와의 성막이 있던 놉으로 갔을 것이다.

ㅇ도엑...에돔 사람 - '도엑'(Doeg)은 '불안'이란 뜻이다. 그리고 '에돔 사람'은 야곱의 쌍동이 형 에서의 후손들로서 팔레스틴 지방과 인접한 남부에 살고 있었다(창 36장). 바로 이같은 혈연적.지역적 사정으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에돔 사람들 중에는 개종(改宗)하여 이스라엘 사람이 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사울 왕의 목자장(牧者長)이란 요직을 맡을 정도가 된 '도엑'은 이미 개종하여 완전한 이스라엘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본서 저자가 여기서 '에돔'이라는 도엑의 과거 국적을 굳이 밝힌 까닭은, 그로 인하여 머지 않아서 결코 상서롭지 못한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려고 의도한 때문인 듯하다(Klein, 창 25:25, 30; 민20:14-21; 삼하 8:13, 14; 왕상 11:14-22).

ㅇ사울의 목자장 - 당시 가축은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는 점에서, '도엑'이 사울 왕의 목자장이라는 요직(要職)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사울 왕으로부터 대단한 신임을 받고 있었음을 암시한다(Smith). 한편 대부분의 고대 역본들과는 달리 70인역(LXX)은 이 말을 '사울의 노새를 관리하는 자'라고 번역하였는데, 그 근거는 희박하다(Keil, Fay).  또한 최근 들어서 몇몇 저명한 학자들은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여기 '목자'(로임)를 '로임'이 아닌 '라침'  , 즉 '달리는 자'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Driver, Graetz, Klein). 즉 여기의 '달리는 자'는 왕의 병거보다  앞서 나가는 왕의 시위대를 가리키는데(8:11), 따라서 도엑을 '달리는 자의 우두머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견해는 도엑이라는 인물이 (1) 왕의 시위대 가운데 끼어  있었으며(22:17, 18),(2) 많은 사람들과 가축을 쳐죽일 만한 무예 및 병력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뒷받침 된다고 한다. 참고할 만한 견해이다.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ㅇ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무사(武士) 다윗은 무엇보다도 무기가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정처없는 도피생활을 하는 중 어떤 위험에 직면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소한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방어할 무기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은 사울 왕의 급한 용무를 핑계로 아히멜렉으로부터 무기를 제공 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사실이 후일 도엑의 입을 통해 사울의 귀에 들어가자, 놉의 제사장들이 다윗과 공모하여 모반한 줄로 알고 사울은 그들을 모두 몰살시켰던 것이다.

9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 밖에 다른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ㅇ엘라 골짜기 - 17:2 주석 참조

ㅇ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 - 17:50-54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다윗은 이 칼로 골리앗의 머리를 벤 후, 이 칼을 자기 장막(베들레헴)으로 가져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칼이 이때 놉의 성막에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이후 다윗이 그 칼을 승리의 기념물로 하나님의 성소에 봉헌했기 때문일 것이다(17:54 주석 참조). 한편, 그런데 이 칼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침략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도우심의 징표였으므로, 제사장은 그 칼로부터 진흙과 습기와 녹을 제하고 방지하기 위해 보자기에 조심스럽게 싸서 제사장의 '에봇'(Ephod, 출 28:6-14)을 두는 거룩한 곳에 보관하였던 것 같다.

ㅇ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 다윗은 (1) 그 칼이 하나님의 절대적 도우심으로 말미암은 승리의 결과 얻은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2) 그같은 칼을 자기 손에 넣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자신의 미래가 매우 소망적이라는 판단을 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에서 다윗은 그 칼을 이세상에 다시 없는 귀중한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ㅇ내게 주소서 - 골리앗으로부터 탈취한 후 하나님께 봉헌한 칼을 다윗이 다시 되돌려 받은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 그 칼은 도우심과 은혜의 표시였다.  따라서 다윗은 그 칼을 뽑을 때마다 그로 하여금 거인 골리앗을 능히 이기도록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기억하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2) 그 같은 봉헌과 헌신의 표시였다. 즉 다윗은 골리앗에 대한 승리의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기 위해 그 칼을 성소에 봉헌하였는데, 이제 그것이 꼭 필요한 때 다윗에게 다시 되돌아왔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헌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시간, 재물 등) 필요 적절한 시기에 여러가지 방법과 모양으로 반드시 우리에게 되돌려 지는 것이다.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ㅇ두려워하여...도망하여 - 여기의 '두려워하여'란 말은 히브리 원문에는 없다. 다만 의미를 강화하기 위한 번역자의 삽입일 뿐이다. 한편 '도망하여'(바라흐)라는 동사는 본서의 19:18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즉 본서 저자는 다윗이 자신의 집을 떠나는 장면을 기술하면서도 계속 반복적으로 이 동사만을 사용함으로써, 다윗이 사울의 위협이라는 동일한 원인에 의해 계속적으로 도망을 다녀야만 하는 그 비참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19:18; 20:1). 그런데 여기 놉(Nob)으로부터의 '도망'은 사울의 신하 도엑으로 말미암은 황급한 도주였을 것이 분명하다(22:22).

ㅇ가드 왕 아기스 - '가드'(Gath)는 블레셋의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5:8)이다. 그 위치는 놉의 남서쪽 약 37km지점이다. 

수 11:22 주석 참조, 한편 '왕'(멜렉)이라는 호칭은, 블레셋 족속들에게는 중앙 집권적 왕이 없으며 다만 각 도시 국가를 다스리는 방백만 있었다는 분명한 사실(5:8; 17:8)에서 볼 때, 여기의 '왕'은 가드 지역만을 통할하는 '방백'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기스'(Achish)라는 이름은B.C. 1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애굽의 문헌에도 나오는데, 이는 그당시 애굽에 침입했던 '크레타 인'중의 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아기스'라는 이름이 칠십인역(Septuagint)에서는 '앙쿠스'로 번역되었는데, 이와 거의 비슷한 '앙키세스'라는 이름이 호머(Homer)의 서사시에도 나온다는 사실들은, '아기스'라는 이름이 비셈어계 즉 헬라 계통의 이름임을 잘 증명해 준다(4:1). 

한편, 후일 본 사건을 읊은 다윗의 시편 34편의 제목에는 여기 블레셋 왕이 '아비멜렉'(Abimelech)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것은 애굽 왕의 공식 명칭이 '바로' 로 통용되듯, '아비멜렉'은 가드 왕의 공식 명칭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 '아기스'는 실제 다윗 당시의 가드 왕 곧 아비멜렉의 이름이다(Keil, Smith). 그리고 또한편 다윗이 굳이 '가드'로 도망간 이유는 (1) '가드'는 엘라 골짜기 입구에 위치한 블레셋 국경의 첫번째 도시로서, 이방 국가로서는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고, (2) 다윗은 자신이 가드 출신의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인 후(17:49-51)벌써 수 년(약 3-4년,Smith)이 경과하였으므로, 그들이 당시와는 많이 변모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으며, (3) 오히려 블레셋 족속의 가장 큰 적인 이스라엘의 사울로부터 쫓겨다니는 도망자로 처신할 때, 어쩌면 가드의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R. Payne Smith, Keil & Delitzsch, Vol. II-ii. p. 220).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고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ㅇ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 당시 다윗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왕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다윗을 왕으로 인식한 까닭은 다윗이 사울과 대등한 위치로서 백성들에 의하여 칭송되었기 때문이다(18:7). 바로 이같은 사실에서 볼 때, 블레셋의 신하들은 다윗을 마치 자신들의 방백처럼 여러 명의 왕중의 한 사람, 즉 지역적 군주(local prince)로 봤음이 분명하다(McCarter; 수 12:1, 7). 결국 이것은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승리와 그 전승가(18:7)로 말미암아 사울은 다윗의 그늘에 묻히고, 다윗은 이방의 적들에 의해 그 땅의 영웅으로 부상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Thenius).

ㅇ사울...천천이요 다윗...만만이로다 - 이 노래는 다윗의 전공(戰功)으로 말미암아 블레셋에 대해 대승을 거두었던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전승가(戰勝歌)이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널리 유행했던 이 노래는 이방 국가에까지 퍼져, 그들도 잘 알고 있을 정도였다.  18:7 주석 참조.

12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ㅇ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 '이말'은 아기스의 신하가, 다윗이 자신들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줬던 영웅적 인물임을 알고, 이 사실을 자신의 왕에게 상기시켰던 것을 가리킨다(11절). 바로 이같은 사실은 '아기스'가 자신을 몰라 볼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피신해온 다윗에게는 심히 두려운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13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ㅇ그 행동을 변하여 - 여기의 '행동'은 '판단력' 혹은 '미각'(味覺)이란 의미이다(25:33). 따라서 이것은 상대를 제대로 분간도 못하는 사람처럼 태도를 취하는 것을 가리킨다(Smith, Thenius).

ㅇ미친 체하고 - 히브리 본문에는 이 말 뒤에 '그들의 손 안에서'(베야담)라는 말이 있다. 즉 이것은 다윗의 거짓 미친 짓을 아기스의 신하들이 강력하게 제지시키려 애썼음을 뜻한다. 한편 여기의 '미친 체하고'는 문자적으로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헤매다'란 의미이다(Lange, Smith).

ㅇ대문짝에 그적거리며 - 여기서 '그적거리다'(타와)는 '휘갈겨쓰다' (scribble)란 의미로서, 곧 뜻도 없는 글자를 되는대로 마구 낙서하는 것을 가리킨다(시 78:41; 겔 9:4). 그런데 혹자는 본 단어의 원래 의미가 '타우(히브리어의 마지막 알파벱) 자(字)를 쓰다'임을 의식하여, 다윗이 대문에 실제로 '타우' 자(字)를 썼을 것이라고 본다(Smith). 그러나 그것은 미친 사람에게는 부합되지 않는 행동임으로 타당한 해석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한편 여기의 '대문'(텔레트)은 성경에서 '성문'(삿 16:3; 느 6:1). '방문'(왕하 4:4, 5; 대하  29:7)등 모든 문(門)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라는 점에서, 과연 어떤 문을 말하는지 확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급된 상황을 통해서 볼 때 왕과 신하가 함께 정사(政事)를 의논하던 방의 문으로 추정함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한편 70인역(the Septuagint)은 이 말을 '대문짝을 쿵쿵 때리다'로 번역했는데, 벌겟역(the Vulgate)도 이를 따랐다.  

아무튼 이 말은 다윗이 자신을 최대한 미친 자로 가장하여, 손가락으로 낙서를 휘갈기며 주먹으로 대문짝을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을 말한다(Keil). 

또한 다윗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미친 자 행세는 아마도 악신(惡神)들린 사울의 행동에서 보고 배웠을 것이다(Lange, Smith, Klein). 

이로 볼 때 성도에게 임하는 선악간의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서 합력하여 마침내 선(善)이 됨을 알 수있다(롬 8:28).

ㅇ침을 수염에 흘리매 - '침'은 끈적끈적하여 보기만 해도 혐오감을 일으키는 분비물인데(Klein), 이러한 침을 수염에 질질 흘리는 행위는 미친 자의 행위로는 가장 적합한 행동이었다(Keil). 한편 이러한 다윗의 행동은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고려한다고 할지라도, 참다운 신앙인의 자세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결코 요동치 않는 피난처가 되어 주심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아기스왕을 두려워하여(12절) 이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를 모면케 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훗날 다윗은 시 34, 52, 56편 등에서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14 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ㅇ본절은 아기스 왕에게 자신을 전혀 두려워할 가치가 없는 미친 인물로 인식시키려 했던 다윗의 의도가 일차 성공했음을 보여 준다.

ㅇ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 고대 중근동에서는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감으로써 미친 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Smith, Fay), 사람들은 미친 사람과의 상종(相從)을 적극적으로 기피하였다. 바로 이 점을 이용하여 다윗은 그 위태한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 오겠느냐 하니라 

ㅇ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 아마도 아기스는 가드의 백성들 중 미친 자들을 이전에도 종종 보았던 것 같다(Fay). 한편 유대 전승은 이 말에 근거하여 당시 아기스의 집안중에 미친 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Philippson).

ㅇ내 앞에서(알라이) - 문자적으로는 '나를 대적하여', '내 위에서'란 의미이다. 이것은 결국 다윗의 미친 사람 행세가 주로 아기스 왕을 겨냥하여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아기스 왕은 매우 당황했었을 것이 분명하다.

ㅇ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 여기의 이 단어(솨가)는 때때로 황홀경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선지자의 괴기한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왕하 9:11; 렘 29:26;호 9:7). 따라서 바로 이같은 사실은, 아기스 왕이 자신의 민족 중에서 황홀경에 빠져들어가 이교적(異敎的) 예언을 하곤 하는 예언자들을 많이 보아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더욱이 이같은 추측은 본절 초반부의 '내게 마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라는 아기스 왕의 언급에 의해서도 뒷받침 될 수 있을 것이다.

ㅇ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 "그래 감히 이런 자를 나의  궁에 들일 작정이냐?" (공동번역)란 뜻으로, 곧 당장 이 궁에서 그를 쫓아내라는 의미이다. 

이는 결국 다윗의 미친 자 행세가 성공 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다윗은 이때 아기스의 궁을 도망쳐 나와 그 길로 아둘람 굴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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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편 읽기

1) 삼상 1~6장 마지막 사사 사무엘 등장

2) 삼상 7~20장 - 시편 1~2, 4~17, 59편 : 다윗의 도망시절

삼상21장(시편 56), 삼상22장(시편52, 57편), 삼상23장(시편 54편), 삼상 24장(시 63편)

다윗은 도망다니면서 외로울 때 하나님을 향해 기도시를 많이 썼다.

3) 삼상 25 ~삼하1장 - 시편19~30편

시편 22편은 마태복음 27장과 함께 읽을 것

4) 삼하 2~4장 - 이스라엘과 유다의 갈등

삼하 5~ 7장- 다윗의 통일왕국과 하나님과의 언약

시편 31 ~ 41편

5) 삼하8장 : 다윗왕국의 성립 - 시편60편

삼하 9~11장 : 통일후의 안정, 삼하 12장 밧세바를 범함 - 시편 51편

시편 42~50편 : 고라자손 ‘제사를 드리는 레위지파의 노래’

삼하 13~15장 : 압살롬의 반란 - 시편 3편

6) 삼하16:1~23:7 : 다윗의 말년기

삼하 23:8~24 : 다윗의 용사들과 인구조사 - 시편 53, 55, 58편, 시편61~62편, 시편64~71편

7) 시편 119편 읽기

말씀과 기도의 깊은 경지에 들어간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설교. 말씀을 구구절절 경외하며 신뢰하는 고백이며 성경 전체중에서 가장 긴 장수로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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