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26.십광야에서 두번째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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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6장  [190. 성령이여 강림하사]...


요일4:7-21....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 각자는 거듭난 참 믿는 제자요 증인된 참 생명 Q의 권속이요 그분이 아가페 사랑과 생명으로 친히 낳으신 고귀한 형제자매인 바. 이제는 상호 사랑의 하나 됨 안으로 이끄심 따라 한걸음 더 나아가 한 몸 이룸 위해, (진리로 자유케 하심따라) 마음을 열어 서로 받아주며 섬길 바]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서로 사랑으로 하나됨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면 아직 친히 낳으신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참되게 온전-완전히 앎 가운데 있지는 못함]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한 생명-한 사랑-한 성령 TUQ 안에 우리 상호간에도 모두 하나로서 상호 연결되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 이렇게 거듭난 형제자매간 상호 사랑-생명-교통의 한 몸 이룰 때, [그리스도의 충만한 긍휼 넘쳐 흐름을 주관적으로 경험케 되며, 세상에 공급할 수 있게됨]


===다윗이 또 사울을 살려 주다

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2.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3.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4.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5.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육에 속한자, 아비새)삼하16:9-12...*9.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10.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13.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 꼭대기에 서니 거리가 멀더라

14.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이르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아브넬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하더라

15.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가운데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16.  네가 행한 이 일이 옳지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이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하니

17.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하고

18.  또 이르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19.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사람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20.  그런즉 청하건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 곳에서 이제 나의 피가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

21.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

22.  다윗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은 창을 보소서 한 소년을 보내어 가져가게 하소서

23.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24.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25.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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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26장

1.  Then the Ziphites came to Saul at Gibeah, saying, "Is not David hiding on the hill of Hachilah, [which is] before Jeshimon?"

2.  So Saul arose and went down to the wilderness of Ziph, having with him three thousand chosen men of Israel, to search for David in the wilderness of Ziph.

3.  And Saul camped in the hill of Hachilah, which is before Jeshimon, beside the road, and David was staying in the wilderness. When he saw that Saul came after him into the wilderness,

4.  David sent out spies, and he knew that Saul was definitely coming.

5.  David then arose and came to the place where Saul had camped. And David saw the place where Saul lay, and Abner the son of Ner, the commander of his army; and Saul was lying in the circle of the camp, and the people were camped around him.

6.  Then David answered and said to Ahimelech the Hittite and to Abishai the son of Zeruiah, Joab's brother, saying, "Who will go down with me to Saul in the camp?" And Abishai said, "I will go down with you."

7.  So David and Abishai came to the people by night, and behold, Saul lay sleeping inside the circle of the camp, with his spear stuck in the ground at his head; and Abner and the people were lying around him.

8.  Then Abishai said to David, "Today God has delivered your enemy into your hand; now therefore, please let me strike him with the spear to the ground with one stroke, and I will not strike him the second time."

9.  But David said to Abishai, "Do not destroy him, for who can stretch out his hand against the Lord's anointed and be without guilt?"

10.  David also said, "As the LORD lives, surely the LORD will strike him, or his day will come that he dies, or he will go down into battle and perish.

11.  "The LORD forbid that I should stretch out my hand against the Lord's anointed; but now please take the spear that is at his head and the jug of water, and let us go."

12.  So David took the spear and the jug of water from [beside] Saul's head, and they went away, but no one saw or knew [it,] nor did any awake, for they were all asleep, because a sound sleep from the LORD had fallen on them.

13.  Then David crossed over to the other side, and stood on top of the mountain at a distance [with] a large area between them.

14.  And David called to the people and to Abner the son of Ner, saying, "Will you not answer, Abner?" Then Abner answered and said, "Who are you who calls to the king?"

15.  So David said to Abner, "Are you not a man? And who is like you in Israel? Why then have you not guarded your lord the king? For one of the people came to destroy the king your lord.

16.  "This thing that you have done is not good. As the LORD lives, [ all] of you must surely die, because you did not guard your lord, the Lord's anointed. And now, see where the king's spear is, and the jug of water that was at his head."

17.  Then Saul recognized David's voice and said, "Is this your voice, my son David?" And David said, "It is my voice, my lord the king."

18.  He also said, "Why then is my lord pursuing his servant? For what have I done? Or what evil is in my hand?

19.  "Now therefore, please let my lord the king listen to the words of his servant. If the LORD has stirred you up against me, let Him accept an offering; but if it is men, cursed are they before the LORD, for they have driven me out today that I should have no attachment with the inheritance of the LORD, saying, 'Go, serve other gods.'

20.  "Now then, do not let my blood fall to the ground away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for the king of Israel has come out to search for a single flea, just as one hunts a partridge in the mountains."

21.  Then Saul said, "I have sinned. Return, my son David, for I will not harm you again because my life was precious in your sight this day. Behold, I have played the fool and have committed a serious error."

22.  And David answered and said, "Behold the spear of the king! Now let one of the young men come over and take it.

23.  "And the LORD will repay each man [for] his righteousness and his faithfulness; for the LORD delivered you into [my] hand today, but I refused to stretch out my hand against the Lord's anointed.

24.  "Now behold, as your life was highly valued in my sight this day, so may my life be highly valued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may He deliver me from all distress." 

25.  Then Saul said to David, "Blessed are you, my son David; you will both accomplish much and surely prevail." So David went on his way, and Saul returned to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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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6장 (개요)
사울 때문에 오는 다윗의 환난이 여기에 다시 시작된다. 폭풍이 이제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라는데, 맑아졌던 하늘에서 비를 머금은 구름이 또다시 몰려온다. 
다윗을 박해한 것이 자기의 잘못이었다고 사울이 고백하고 시인할 일이 있건마는 또다시 다윗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 다윗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와서 알려 주었다(1절). 그리하여 사울은 많은 수의 군사들을 이끌고 다윗을 찾아 나섰다(2, 3).
2. 다윗은 사울의 동정을 살펴볼 수 있었고(4), 사울이 진 친 곳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5).
3. 다윗과 부하 하나가 밤에 용감하게 사울의 진영에 들어가, 사울과 그의 호위병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보았다(6, 7).
4. 다윗의 부하는 사울을 죽이자고 했으나, 사울을 죽이지 않고, 다만 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왔다(8-12).
5. 이로써 다윗은 자기가 사울을 결코 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또다시 보였다(13-20).
6. 이로써 사울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한 번 또 다윗을 핍박하던 것을 중단했다(21-25). 
이 이야기는 24장의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그 두 이야기에서 모두 다윗은 사울의 손에서 구원을 받고, 사울은 다윗의 손에서 구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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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다윗을 쫓는 사울(삼상 26:1-5)
Ⅰ. 사울은 다윗의 움직임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를 공격했다.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와서 다윗이 지금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곳은 전에도 십 사람들이 그를 배반하여 사울에게 알려 준 바가 있던(23:19) 바로 그 장소다. (비록 여기에 아무런 언급은 없지만) 아마 사울은 다윗을 해하고자 다시 계획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은근히 그들에게 알려 주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어떻게 하면 사울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서 그랬을 것이며, (사울에게는 그런 충동이 새삼 필요한 것도 아니었건만) 다윗이 미워서 사울로 하여금 다윗을 치도록 그를 선동한 것으로 보인다(1절). 
십 사람들이 사울을 충동하지 않았다면 사울은 여전히 다윗에 대해 계속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24:17), 다윗을 또다시 괴롭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멸망의 씨앗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옥의 불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유혹의 불꽃이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가기를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있다.
사울은 그들의 말을 듣자마자 즉시 택한 자 3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이 숨은 곳으로 갔다(2절). 
이처럼 성결되지 못한 심령은 그들의 마음속에 결심했던 좋은 생각을 쉽사리 버리고, 개처럼 그 토한 것으로 다시 간다.
Ⅱ. 다윗 역시 사울의 움직임에 대해 정보를 입수했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수립했다. 
다윗은 사울과 맞싸우려고 나가지 않았다. 그는 사울을 없앨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전만을 도모했다. 그리하여 다윗은 여전히 “황무지에 있었다”(3절). 
다윗은 거기서 자신의 힘을 길렀으며, 조용히 은거함으로 자기의 용맹성을 통제하고 있었고, 어설픈 대결을 통해 보여 주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용기를 더욱 드러내 보였다.
(1) 다윗은 정탐을 통해 사울이 “매우 가까운 곳에 이른 것”을 알아냈다(4절). 
확실한 증거가 있기까지는 사울이 자기에게 야비한 행동을 취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 다윗은 자기의 눈으로 직접 사울의 진영을 확인했다(5절). 
다윗은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진 친 곳으로 가까이 갔는데, 저녁 황혼의 어스름 속에서도 그들의 진영 안을 살펴볼 수 있는 곳까지 매우 가까이,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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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목숨을 다시 살려 준 다윗(삼상 26:6-12)
Ⅰ. 다윗은 밤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 한 사람만 데리고, 용감하게 사울의 진영 안으로 들어갔다. 
다윗은 사울의 진영으로 가자는 말을 아비새와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부하에게 말했었다. 그런데 다른 부하는 그것이 매우 위험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든지, 아니면 그 일을 자진해서 하겠다고 나서는 아비새가 자기보다 그 일에 적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든지, 하여간 그 일에 나서지 않았다. 
다윗이 용감하기 때문에 감히 이런 일을 하겠다고 나섰는지 또는 어떤 이상한 계시를 받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은 기드온과 같이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고 경비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Ⅱ. 다윗이 들여다 본 사울의 진영의 상태는 이러했다.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사울이 그의 숙소가 기습을 받을 것을 대비해서 “그의 병거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며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혔다”고 읽는다(7절). 
그런데 파수를 보도록 지명을 받은 병사들까지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12절).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이처럼 그들의 눈은 잠겼고, 그들의 손은 묶여 있었다. 
다윗과 아비새가 그들 사이를 오가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도 그들 중 아무도 깨지 않은 것과, 그리고 모두가 깊이 잠들었던 것을 보면 거기에는 어떤 이상스러운 점이 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는 잠은 그들을 쉬게 하는 것이요. 그들에게 생기를 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들을 가두어 놓으시기 위해 그들에게 잠을 주실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다. “마음이 강한 자는 탈취를 당하여 자기 잠을 자고, 장사는 자기 손을 놀리지 못하도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이 들었나이다”(시 76:5, 6). 
이것은 자연을 명하사 자기 뜻대로 부릴 수 있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깊은 잠이었다.” 
하나님께서 맥을 못 추게 하고, 멸망시키기를 원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혼미한 심령”을 주신다(롬 11:8).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얼마나 무력했으며, 무장해제를 당했고, 사슬에 묶였던가! 그런데도 그들에게 어떤 해가 가해지지 않았다. 다만 깊은 잠에만 떨어졌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쉽사리 강한 자를 약하게 하며, 지혜자를 어리석게 하며, 경계하는 자를 속일 수 있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고, 하나님의 대적들은 그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Ⅲ. 아비새는 다윗에게 사울의 머리맡에 있는 창으로 그를 찌르도록 명령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비새는 (사울이 아주 가까운 곳에 누워 있으니 만큼) 단 한 번에 그를 찔러 버릴 수 있겠다고 했다(8절). 
아비새는 다윗 자신이 그를 찌르라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에 다윗이 이와 비슷한 기회가 있었을 때에 사울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아비새는 자기가 그 일을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만 열심히 간청했다. 
아비새는 사울이 악독하고 용서할 수 없는 대적일 뿐만 아니라 , 거짓되고 믿을 수 없는 원수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는 동정이나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했고, “하나님이 오늘날 그의 원수를 그의 손에 붙이셨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는 사울을 죽이라고 명령하다시피 했다.
지난번에 있었던 경우는 이번과는 달리 순전히 우연한 것으로서, 사울이 다윗이 있는 굴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사울과 그의 신하들이 빠졌던 깊은 잠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가 그에게 이런 기회를 주셨다. 
그러므로 다윗이 결코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비새의 주장이었다.
Ⅳ. 다윗은 사울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것도 관대한 마음으로 거절했다. 
그리고 이로써 자기의 충성을 보여 주었다(9절). 다윗은 아비새에게 사울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고, 자기 손으로 결코 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결코 그런 일을 시키지 않겠노라고 했다. 다윗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했다.
1.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죄가 된다고 했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종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었다”(롬 13:2). 
그런 일을 행하는 자는 죄가 된다. 다윗이 두려워한 것은 죄였으며, 그는 자신의 안전보다도 자신의 무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선수를 쓰는 것은 죄가 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나발의 경우에서 그에게 만일 그의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때가 돌아오면 반드시 그 복수를 시행하신다는 것을 충분하게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때의 경험으로 보아서,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사울에게 보복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에 “내가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셨던 것같이 그를 갑자기 치실 것이다. 아니면 전쟁터에서 죽으리라(후에 이것이 사실로 나타났다). 그것도 아니면 그의 죽을 날이 쉬 오리라.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약속된 왕관을 위해 어떤 폭력적인 수단을 쓰지 않고 오직 때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
폭력을 쓰고자 하는 유혹은 대단했다. 그러나 만일 다윗이 거기 굴복했다면, 그는 하나님께 죄를 범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단한 결심을 가지고 그 유혹을 물리쳤다(11절).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신다. 나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노라.” 이처럼 다윗은 자기의 양심을 따라 행했으며, 하나님을 신뢰했다.
Ⅴ. 다윗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의 흠 없음을 증명했다. 
다윗과 아비새는 사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을 가지고 돌아왔다(12절).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비병들이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의사가 강한 마약을 주었다고 해도 그렇게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울은 자기를 방비하는 창과, 자신에게 활력을 넣어 주는 물병을 잠자는 사이에 도둑맞았다. 이처럼 우리도 주의하지 않고 방심하면, 우리의 힘과 위로를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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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을 충고한 다윗(삼상 26:13-20)
다윗은 자기가 사울의 진영에 갔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무사히 그곳에서 빠져나오자,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감히 붙잡을 수 없는 그런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13절), 그가 어떤 일을 했는가를 말해 주었다.
Ⅰ. 다윗은 아브넬을 조롱하며 그를 빈정대며 말했다. 
다윗은 아브넬과 그리고 다른 호위병들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깊은 잠에 떨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 또 하나님께서 직접 손대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아브넬이 경비대의 대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그를 책망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주군인 왕이 그처럼 위험한 상태에 노출되었는데도 잠만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위험에서 빠져 나오자 약한 소리, 즉 멀리서 부르는 소리에도 아브넬이 깬 것을 보면(14절),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깊은 잠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아브넬은 (아침 일찍이) 깨어서 소리치며 왕의 휴식을 방해하는 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다윗은 “나로다”라고 말하고는 그가 마땅히 왕을 경비하여야 할 때에 잠이 들었던 것을 책망했다.
아브넬은 다윗이 아무 보잘것 없는 대적이라고 생각하여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보고, 방비를 단단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아브넬은 마땅히 깨어서 잘 지켜야만 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아브넬을 크게 당황하게 만들었다.
1. 아브넬이 크게 명예를 잃었다고 말했다(15절). 
“네가 사람이 아니냐?(글자 그대로는 이렇게 되어 있다). 너는 장군으로서 병사들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니냐? 너는 소문난 용사가 아니냐? 너는 아주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존경을 받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너는 부끄럽게 되었구나! 너는 게으름뱅이 장군이로다!”
2. 다윗은 아브넬이 마땅히 죽을 자라고 했다(16절). 
“군법에 의해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다. 왜냐하면 너희 임금을 보호하여야 할 때에 너희가 경비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Eccesignum―이 표를 보라. 왕의 창이 어디 있는가 보라. 왕이 그의 대적으로 생각하는 자의 손에 있지 않은가! 이 창을 가지고 올 수 있었던 자는 능히 쉽사리 그리고 안전하게 왕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었도다. 이제 누가 왕의 절친한 친구인가 보라. 너는 왕을 돌보지 않고 그를 위험한 데 내버려 두었도다. 그러나 나는 그가 위험할 때에 그를 보호하여 주었다. 너는 나를 죽일 놈이라고 말하며 사울을 충동하여 나를 쫓게 했다. 그러나 이제 누가 정말 죽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을 불의하게 정죄하는 자는 때로 그 정죄에 자기가 빠진다.
Ⅱ. 다윗은 사울과 진지하게 말함으로 그를 감동시켰다. 
사울은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서 누구가 말을 하는지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17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사울은 지난번과 똑 같은 방법으로 자기의 상냥함을 표시했다(24:16). 
사울은 다윗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도 이제 와서 그를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의 피에 굶주렸으면서도 그의 음성을 들으니 기쁘다고 말했다. 
좋은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도 겉으로만 좋은 척하는 사람은 정말 악한 사람이다.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었던 좋은 기회를 만났던 것처럼, 이제는 그의 양심을 감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다윗은 사울이 계속 다윗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다윗은 사울을 설득하여 그에 대한 핍박을 중단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썼다.
1. 다윗은 사울의 증오심 때문에 자기가 당하고 있는 비참한 상태에 대해서 사울에게 불평했다. 다윗은 두 가지 면에서 비탄하였다.
(1) 다윗은 그의 주인을 섬길 수 없게 되었으며, 자기의 직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내 주는 주의 종을 쫓으셨나이다(18절). 내가 내 주를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내가 전처럼 참으로 기쁘게 내 주를 섬기겠나이다. 그러나 내 주는 나를 종으로 생각지 않고 반역자로 생각하고 나를 쫓으시나이다. 내 주는 이제 나의 원수가 되었나이다. 나는 주를 존중하려고 하건마는 내 주는 나를 쫓아내시나이다.”
(2) 다윗은 자기를 하나님과 그를 믿는 신앙에서 쫓아내고자 하는 일에 대해 한탄했다. 그런데 이 일이 전번 것보다 훨씬 그를 더 슬프게 했다(19절). 
“그들이 오늘날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붙지 못하게 하나이다. 그들은 나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살지 못하게 하고 광야와 산지로 쫓아 버렸고, 조만간에는 완전히 나를 이 땅에서 쫓아내려고 하나이다.” 
다윗에게는 다만 자기의 기업에서 쫓겨나는 것보다 여호와의 기업인 거룩한 땅에서 쫓겨나는 것이 더 한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재산에 대해 우리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다.
다윗은 다만 이방인들 사이에서 살아야 되는 것보다,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우상 숭배를 강요받는 것이 더 그를 괴롭힌다고 했다. 
그의 원수들은 실제로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그를 쫓아냈으며 아마 다윗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들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쫓아내는 자요, 우리를 이교도로 만드는 자들이다. 
만일 다윗이 특별히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니었으며 철저한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 사람이며 참된 하나님의 예배자였던 이스라엘의 왕과 그 백성들이 그에게 보여 주었던 악독한 대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되고, 그리하여 우상 숭배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라면, 나는 블레셋을 위해 살다가 블레셋을 위하여 죽겠노라”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들의 태도가 다윗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이 우리를 가장 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윗은 자기를 유혹에 빠뜨리는 자들에 대해 “그들에게 여호와의 저주가 있을 지어다”라고 말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을 사탄에게 보내는 자들은 마땅히 저주를 받는다.
2. 다윗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18절) 
그는 결코 왕이나 다스리는 자나 영예로운 자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지 않았으며, 나라의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도 그러하였다는 양심의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사울도 그의 그러한 점을 증명하여 주었다(24:17). 사울은 “네가 나보다 의롭도다”라고 말했다. 다윗에게서 어떤 죄를 찾을 수 없는 데도 사울이 다윗을 계속 죄인으로 취급하고 그를 추격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며, 그를 더욱 악한 사람으로 만드는 처사이다.
3.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쫓는 것은 단지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사울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 영광이 지극히 크신 이스라엘의 임금이 다른 하실 일도 많은데 저를 잡으러 오신 것과 같습니다”(20절). 
이는 이스라엘 왕으로서는 감히 할 만한 노릇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다윗은 자기 자신을 메추라기에 비유했다. 그것은 죄도 없고 또 별로 해도 끼치지 않는 새이기 때문이다. 그 새는 사냥꾼 앞에서는 도망칠 뿐이요, 어떤 반항이나 저항도 하지 못하는 새였다. 그런데 다만 이런 한 마리의 메추라기를 잡으려고 많은 수의 군인들을 몰고 왔단 말인가? 얼마나 이것이 그의 명예를 깎아 버리는 것인가? 연약하고 그리고 죄없는 대적을 유린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점을 남기는 것인가! 야고보서 5장 6절에 보면 “너희가 너희에게 대항하지 않는 옳은 자를 정죄하고 죽였도다”라는 말씀이 있다.
4. 다윗은 문제의 핵심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그 끝장을 낼 방법이 강구 되어지기를 원했다(19절). 
사울은 정의에 입각해서 다윗을 쫓는다거나,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다윗도 (비록 사실이긴 하지만) 사울 자신의 질투와 악의가 그런 일을 하게 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윗은 이 일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면 악인들의 불의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1) “만일 여호와께서 왕을 격동시켜 나를 해하게 하시며 (비록 내가 당신에게는 죄가 없지만 하나님께 지은 죄를 인하여 이런 방법으로 나를 벌하시는 것이든지) 또는 당신을 괴롭히는 여호와의 부리시는 악신의 영향 때문이든지,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죄가 어떤 죄이든지 간에 용서를 받을 것이며, 당신과 나의 커다란 괴로움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화해를 되찾기 위한 다윗의 올바른 방법을 보라. 먼저 우리는 위대한 희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자. 그리하면 다른 모든 원수된 것은 소멸될 것이다(엡 2:16; 잠 16:7).
(2) 그러나 “만일 악인들이 당신을 충동하여 나에게 진노하게 한 것이라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왕궁으로부터 추방을 받아 그처럼 멸망받아 마땅하다는 말이다. 다윗은 왕으로 하여금 명예롭지 못하고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하도록 권면한 자들을 점잖게 책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께 저주받은 자들로서 왕의 앞에 서지 못하도록 쫓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요청을 사울에게 청했다(20절). “당신이 내게 대해 위협했던 것과 같이 나의 피로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이는 잘못을 가려 이를 보복하시는 여호와의 면전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이처럼 다윗은 사울에게 자기의 목숨을 위해서, 그리고 자기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애절하게 변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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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풀린 사울(삼상 26:21-25)
Ⅰ. 사울은 자기가 다윗을 괴롭혔던 것이 잘못이었고 또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참회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울은 존경한다는 다윗의 두 번째 주장은 전번보다 더 깊은 감동을 사울에게 줌으로 그가 올바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인다(21절).
1. 사울은 그에게 보여 준 다윗의 친절 때문에 자기의 마음이 풀렸다고 고백했다. “나는 네가 나의 생명을 미워할 줄로 생각했는데 너는 오늘 이를 귀중히 여겼도다!”
2. 사울은 다윗을 괴롭힌 것이 매우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했다. 사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법에 거슬린 일이었으며(“내가 범죄하였도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이익되지 못한 일(“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도다”)이었다고 했다. 또 자기 친구를 원수로 생각하고 이를 쫓아다녔는데, 생각이 모자란 탓이었다고 했다. “내가 너와 내 자신에게 대단히 잘못을 범하였다”고 그는 말했다. 죄를 짓는 자들은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치는 악행을 저지른다(욥 19:28).
3. 사울은 다윗에게 다시 궁전으로 가자고 청했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다윗과 같이 “지혜롭게 행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주위에 함께 있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사울은 전처럼 다윗을 해하지 않겠고, 그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사울의 이런 개심이 참된 회개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Ⅱ. 사울의 회심을 알게 된 다윗은 그에게 더욱 정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사울의 소년 하나가 와서 왕의 창을 가져가도록 했다(22절).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23절).
1. 다윗은 하나님께서 판단자가 되어 주실 것을 호소했다.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라.”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모든 인간의 참된 성품을 아시며,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 행한 대로 어김없이 갚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여 주시기를 원했다. 여기서 다윗은 실제적으로는 자기에게 불의를 행하고 신실치 못한 사울을 거스르는 기도를 드렸다(“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 대로 갚으소서.” 시 28:4).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그 자신을 위한 기도로 했으며, 그 자신의 의와 신실함을 보고 자기를 보호하여 주실 것을 기원했고, 사울은 자기를 악으로 보복했으나 하나님은 자기를 선하게 보응하여 주시기를 기원했다.
2. 다윗은 사울에게 다시 한 번 자기의 충성심을 보여 주었다. 
다윗은 사울을 의미하면서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기름이 그의 보호책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울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으니 만큼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는 뜻도 있다(만일 바울이 보통 인간이었다면 다윗은 그를 그처럼 선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 나가서 다윗은 자기도 역시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 만큼 자기가 사울에 대하여 선대한 것처럼 사울 역시 자기의 생명을 선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나타냈을 것이다.
3. 다윗은 사울의 약속을 크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의 보호에 맡기고 그의 은혜를 구했다(24절). 
“왕은 내 생명을 가볍게 여기셨으나, 여호와는 내 생명을 중히 여기시리이다.” 이처럼 다윗은 그가 사울에 대해 친절을 베풀었으니 만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친절을 갚아 주시기를 원했다. “좋은 일을 하는 자는 그 보응을 받는다.”는 확신을 가질 만하다.
Ⅲ. 다윗의 성공을 사울이 예언했다. 사울은 다윗을 위해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라고 축복했다(25절). 
사울은 이제 다윗의 정직함을 확신했기 때문에 자기의 군인들이 듣는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다윗을 칭찬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다. 드디어 사울은 다윗의 승리와 등극을 예언했다. “네가 큰 일을 행하리라.”
참된 선을 양심적으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참으로 큰 일을 행하게 된다. 사울은 계속해서 “네가 반드시 승리를 얻고 또 얻으리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것은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윗에게 있는 왕의 기질들―즉 사울을 살려 준 관용, 아브넬이 잠잔 것을 질책하는 그의 장군으로서의 권위, 나라의 일을 위한 그의 세심한 관심,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는 여러 가지 표적들―을 볼 때 그에게 예언되어진 그대로 드디어 다윗이 왕좌에 오르게 되리라는 것을 사울은 확신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좋은 치료제가 그 상처를 아물게 함으로써 그들은 다정하게 헤어질 수 있었다. 
사울은 그가 원했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리고 그 자신이 취했던 추격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기브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와 함께 돌아가지 않았다. 한 번 실수를 저지르면 쉽사리 그 신용을 회복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다윗은 자기 길로 갔다.” 그리고 여기서 헤어진 후 사울과 다윗이 다시 또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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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사무엘상 26장
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이르러 가로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산에 숨지아니하였나이까
ㅇ십 사람이...사울에게 이르러 가로되 - 본절 이하에서는, `십 사람'의 밀고 행위가 23:19이하에 이어 두번째 언급된다. 혹자들은 본문과 23:19이하 사건의 여러 유사성을 근거로하여 동일한 사건이 반복 기술되었다고 주장한다(Ewald, De Wette, Thenius) 그러나 우리는 그같은 유사성과 아울러 더 많은 상이점(相異點)이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절 하단에 나와 있는 24:1-22 사건과 본장 사건의 비교 도표를 참조하라.
ㅇ십 - `십'(Ziph)은 헤브론 남동쪽 약 8km, 마온 북쪽 약 10km 지점에 있는  유다의 성읍이다.  23:14 주석 참조.
ㅇ기브아 - 사울의 고향이자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이다. 10;26 주석 참조.
ㅇ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 `십 사람'들의 첫번째 밀고 때의 장소는 `광야 남편 '이었다(23:19). 그러나 여기서 언급된 `광야 앞'은 문자적으로는 `광야의 얼굴'이란 의미로서, `광야의 남편'과는 전혀 다른 `광야의 인접 지역'을 가리킨다(Drinkard, D-river, Klein). 따라서 아비가일과 결혼한 다윗은(25:42) 갈멜을 떠나서 십 사람들의 첫번째 밀고 때에 거주했던 곳보다 약간 북쪽으로 올라간 듯하다.
ㅇ하길라 산 - `십 사람'들의 1차 밀고 당시에 다윗은 여기처럼 `하길라 산'(the hill of Hachilah)이 아닌 `하길라 산 수풀 요새'(Horesh, on the hill of Hachilah)에 있었다(23:19). 그런데 `하길라 산 수풀 요새'는 `십 황무지'의 또 다른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그 같이 보아야할 이유는 여기의 `수풀'(Horesh)은 고유명사로서, 별도의 특정한 지점을 가리키는 지명이기 때문이다(23:15).
2 사울이 일어나 십 황무지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과 함께 십 황무지로 내려가서
ㅇ사울이...다윗을 찾으려고 - `십 사람'들의 1차 밀고 때에 자신에 대한 다윗의 선대(24:4, 10, 11)에 따라 다윗을 축복까지 했던 사울이(24:16-22), 여기서 다시 다윗을 죽이러 찾아나서고 있다. 이러한 사울의 행동은 악신의 영향하에 있는(16:14; 18:10) 그의 지극히 불안정하고 변덕스런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사울의 그같은 성격이 결국 잠정적으로 억제됐던 다윗에 대한 증오심을 다시 폭발시키게 한 것이다.
ㅇ십 황무지 - 23;14 주석 참조.
ㅇ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 이들은 `십 사람'의 1차 밀고 때에도 동원했던 사울의 정예병을 가리킨다.  24:2 주석 참조.
3 광야 앞 하길라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황무지로 들어옴을 깨닫고
ㅇ광야 앞 하길라 산 - 1절 주석 참조.
ㅇ길가에 - 여기에 `길' 은 예루살렘(Jerusalem) 방향에서 네게브(Negeb) 지방의 `아랏'(민 21:1)으로 통하는 대로(大路)를 가리킨다(Smith, Fay). 이같은 사실에서 볼 때, 본절의 `하길라 산'은 십 황무지의 동쪽임이 분명하다. 아하로니(Aharoni)도 그의 `성경지도'(Bible Atlas)에서 이 사실을 지지하고 있다.
ㅇ다윗이 황무지에 있더니 - 당시 다윗은 사울의 진 서쪽 지점 고지대에 위치했을 것이다. 이는 6절의 `진에 내려가서'란 말에 의해 입증된다. 따라서 다윗은 사울의 동태를 잘 관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4 이에 탐정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줄 알고
ㅇ탐정을 보내어...알고 - 여기서 `알다'(야다)란 말은 체험적이리만큼 확실히 깨달아 아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이다(2:12; 22:22; 창 4:1; 48:19). 즉 척후병의 보고를 통하여 다윗은 사울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쫓겨 도망하기에만 급급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오히려 이제 다윗은 사울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것이다.  이처럼 다윗은, 비록 전력에 있어서는 약자의 처지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연고로 강자인 사울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었다. 실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는 세상이 감당치못한다.
5 일어나 사울의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대장관 아브넬의 유하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ㅇ넬의 아들...아브넬 - `넬'은 사울의 숙부이다(10:14; 14:50, 51). 따라서 `아브넬'과 `사울'은 사촌 관계이다. `아브넬'은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을 사울에게 데려갔었다(17:55-58). 그후 아브넬은 사울의 편에 서서 다윗을 죽이려 쫓아 다니는 위치가 되었다. 그러다가 사울이 죽은 후에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앉힌 다음, 자신은 실세(實勢)로서 위치하였다(삼하 2:8-11). 그러나 아브넬은 사울의 첩 `리스바'와 통간한 사건으로 이스보셋과 관계가 악화되자(삼하 3:7-11), 이스보셋의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버리고 말았다(삼하 3:17-21). 그렇지만 아브넬은 전쟁의 와중에서 요압의 동생을 죽였던 연고로 인하여 결국 요압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삼하 3;27).
ㅇ사울이 진 가운데 누웠고 - 여기의 `진'(마갈)은 `방책'(barricade)을 의미한다(17:20). 그런데 당시 이 `방책'은 병거 및 마차 등으로 이뤄졌을 것이다(Calvin, Smith, Keil). 한편 사울이 이같은 위치에서 잠을 잔 까닭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자신의 몸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ㅇ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 이같은 언급은 앞의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웠고'란 언급과 함께 다윗의 용맹성을 강조.시사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반영해 준다. 즉 저자는 여기서 당시 사울이 소지하던 창과 물병을 바로 위와 같은 삼엄한  방어망을 뚫고 들어가서 가져갔던 다윗의 확신에 찬 영웅적 행동을(11, 12절) 부각시키려는 것이다(Klein).  한편 여기서 `백성'은 사울의 3천 병사를 의미한다(2절; 14:2; 수 8:1).
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가로되 누가 나로 더불어 진에 내려 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아비새가 가로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ㅇ헷 사람 아히멜렉 - `헷 사람'(the Hittite)은 가나안 일곱 족속 중의 하나였다(수3:10). 이들은 아브라함 시대 때도 이미 팔레스틴 땅에 거주했었으며(창 15:23), 이스라엘의 출 애굽 후 이스라엘에 의하여 정복되었다(삿 1:6; 왕상 9:20). 바로 이같은 헷 족속으로서 다윗을 좇았던 또 다른 유력한 인물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였다(23:39; 삼하 11장). 한편 `아히멜렉'(Ahimelech)은 `왕의 형제'란 의미를 갖는 가나안 식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름을 소유했던 제사장 `아히멜렉'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21:1). 그런데 헷 사람 `아히멜렉'이 다윗의 휘하에 들어오게 된 것은 그당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섞여 살던 `헷 족속'에 대하여 사울이 어떤 압박을 가했기 때문일 것이다(Lange; 22:2).
ㅇ스루야의 아들...아비새 - `스루야'(Zeruiah)는 그녀의 어머니가 다윗의 아버지 이새에게 시집오기 전 `나하스'라는 남자에게서 낳은 딸이다(삼하 17:25). 따라서 다윗의 이부(異父) 누이이다. 한편 `아비새'(Abishai)는 `아버지가 계신다'란 의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후에 비록 다윗의 용사 중 최상급인 `세 용사' 그룹에는 끼지 못했지만, 그 다음인 `삼십 용사' 그룹의 두령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삼하 23:18, 19;대상 11:20, 21).
ㅇ요압 - 요압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사람은 다윗의 군대 장관이 되어 명실 공히 다윗의 제 1 무사(武士)로서 많은 공을 세웠다(삼하 5:6 이하; 8:16; 20:23; 대상 11:4 이하; 18:15; 27:34).
ㅇ누가...내려가서 - 다윗의 일행이 사울의 일행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즉 그때 사울은 `길 가'(3절)에 있은 반면 다윗은 `산'(1절)에 있었다.
ㅇ아비새가 가로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 이것은 `아히멜렉'과 `아비새' 중 `아비새'가 더 용기있는 인물이었음을 말해 준다. 아무튼 본서와 사무엘하의 저자는 `아비새'에 대해서는 다윗을 도왔던 훌륭한 인물로서 계속 말하지만, 본절에서처럼 다윗의 요청에 묵묵부답(黙黙不答)했던 `아히멜렉'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한다.  바로  이같은 사실은 아히멜렉이 성경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이 그의 위와 같은 침묵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해 준다(Klein). 여기서 우리는 `아히멜렉'이 `아비새'보다 먼저 먼저 언급되는 등 더 우위에 있었으나, 그 자신의 지나친 소심성 때문에 그 위치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할 것이다.
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혔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ㅇ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혔고 - 여기서 `창'은 `홀'(笏)과 같이, 사울의 왕권(王權)을 상징한다(Keil, Fay, Smith). 이같이 사울이 자신의 왕권을 상징하는 `창'을 자신의 머리맡에 꽂아 놓은 것은 (1) 왕으로서의 자신의 위엄을 높이며, (2) 또한 왕으로서 의 자신이 잠자는 위치를 표시하기 위함이었다.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ㅇ하나님이...원수를...붙이셨나이다 - 아비새의 이같은 판단은 다윗의 각오 여하에 따라서는 사울이 얼마든지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결과였다(24:4). 즉 그는 이같은 상황 전개를,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을 죽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에 따른 것으로 본 것이다.
ㅇ단 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자고 있는 사울에 대해서 이같이 하기는 매우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사울의부하들을 깨우지 않고 달아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단 번'에 죽여야 했을 것이다.
ㅇ그를 두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 아비새의 이 말은 당시 사울이 완전 무방비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아마 사울을 비롯한 모든 군사들이 긴 출정으로 인하여 매우 피곤했던 관계로 모두 곯아 떨어진 것 같다.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10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 가서 망하리라
ㅇ여기서 다윗은 사울을 친히 죽여 복수해서는 안될 이유를 제시한다.
ㅇ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 그 첫째 이유이다. 즉 여호와께서 택하사 기름 부은 자는 여하한 경우일지라도 그 생명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다. 그런고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사람이 침해하면, 곧 그것은 여호와의 주권을 침해하고 모독한 결과가 된다. 따라서 다윗은 이러한 원칙에 철저히 입각하여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 사울의 생명을 하나님의 뜻에 맡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아니한 것은 단순히 다윗의 관대한 성품이다. 혹은 정치적 의도 때문이 아님은 분명하다.
ㅇ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아니한 두번째 이유이다(24:12) 즉 이 두번째 이유 역시 첫번재 이유와 마찬가지로 기름 부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 주권 사상에 입각한 것이다. 곧 사람을 택하사 왕으로 기름부어 세운 분이 하나님이시듯, 또한 왕을 폐하고 죽이는 일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하에 속한 것이라는 사상이다. 다윗은 시종 일관 이러한 사상에 입각하여 사울을 대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사울을 전쟁터에서 블레셋 족속의 손에 붙이심으로써(31:3, 4), 다윗과 사울간에 당신의 주권적인 심판을 행사하셨다.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ㅇ손을 들어...치는 것을...금하시나니 - 사람이 그 원수에 대하여 친히 복수하는 일을 금하고, 그 모든 선악간의 판결을 공의의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성경의 복수관(復讐觀)이다(신 32:35; 롬 12:19; 히 10:30). 그러므로 여기 무방비 상태의 사울을 단번에 처치하자는 아비새(8절)와, 하나님의 기름부은자임을 들어 그것을 만류하는 다윗(9-11절) 사이에서 우리는 신앙의 차원을 느낀다. 즉 전자는 이성에 근거한 인간적 사고의 발로요, 후자는 신앙에 근거한 신본주의적 사고의발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다윗이 아비새의 말대로 했다면, 나중에 그가 경험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참된 승리'(21, 25절; 롬 12:21)를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조그마한 일로부터 원수 갚은 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인도와 선한 판결을 바라는 자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참된 지혜와 판단력을 허락하신다(롬 12:19, 20).
ㅇ그의...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 이것은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증할 증거를 삼기 위함이었다(24:4).
ㅇ머리 곁에 있는 - 이것은 아비새의 말대로 다윗이 사울을 단칼에 죽일 수 있었던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기 위한 언급이다. 왜냐하면 `머리'는 몸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이 부분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곧 사울을 단번에 죽일 수 있었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8절).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깨든지 이를 보든지 알든지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이었더라
ㅇ본절은 사울을 죽이지는 아니하고, 다만 그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않았다는 증거만을 남기려고 한 다윗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돕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ㅇ여호와께서...깊이 잠들에 하셨으므로 - 여기서 `깊은 잠'에 해당하는 `타르데마'란 단어는 아담의 몸에서 하와를 만들기 위한 갈비뼈를 빼어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뜨리시는 광경을 묘사하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창 2:21). 또한 이 단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동물을 쪼개게 하신 후, 그와의 언약이 비준되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그를 깊이 잠들도록 하시는 장면을 다루고 있는 문맥에서도 나타난다(창 15:32). 바로 이같은 사실에서 볼 때, 사울과 그의 일행이 다윗의 접근을 전혀 인식치 못할 정도로 깊이 잠이 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다.
ㅇ그들이 다 잠이었더라 - 사실 이때 다윗은 아비새의 말대로 여호와께서 사울을 자신의 손에 붙이신 것으로 해석하여 사울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생명도 보존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에 앞서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 주권 사상을 더욱 존중함으로써 , 끝까지 모든 일의 판단을 하나님께 맡겼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주건을 인정하는 다윗을 기뻐하셨고, 결국 당신의 선하신 계획을 다윗을 위해 베푸셨다. 즉 다윗은 `선으로 악을'이긴 것이다(롬 12:1).
13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꼭대기에 서니 상거가 멀더라
ㅇ건너편...산꼭대기에 서니 - 다윗과 아비새는 이때 계곡 하나를 건너 맞은편 언덕, 즉 하길라 산 정상으로 올라간 듯하다.  그리고 여기의 이 `산 꼭대기'는 사울의 동정을 살필 목적으로 `탐정'(4절)이 정탐하던 곳이었을 것이다.
ㅇ상거가 멀더라 - 다윗이 이처럼 사울로부터 먼 거리에서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을 깨우고, 또한 사울과 대화를 하려고(14-25절) 한 까닭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사울에게서 도망갈 안전 거리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다윗이 사울의 변덕스런 감정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4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가로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지 아니하느냐 아브넬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15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중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중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16 네 행한 이 일이 선치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ㅇ여기서 다윗은 사울의 경호 책임을 맡고 있던 군대 장관 아브넬(14;50)의 직무유기를 비난함으로써 (1) 사울로 하여금 그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절감케 하며, (2) 그리고 다윗 자기 자신은 사울을 죽일 의사가 전혀 없었고 또한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ㅇ아브넬아 - `아브넬'(Abner)은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을 사울에게 데려가는등 이미 다윗과 친교가 있었다(17:55-58; 20:25). 더구나 `아브넬'은 사울과 사천간이며(14:50, 51) 다윗은 사울의 사위였다는(18:27; 25:44) 점에서 본다면, 다윗과 아브넬이 상호 친분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 확실해 질 것이다.
ㅇ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 이 말은 여자적(如字的) 의미로 이해되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이 아닌 아브넬을 불렀기 때문이다(14절). 따라서 우리는 이 말을, 다윗이 아브넬을 큰 소리로 불러 소란케 함으로써 잠자던 사울을 깨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Keil & Lange).
ㅇ네가 용사가 아니냐 - 이것은 아브넬이 왕을 경호하는 그 자신의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조롱하는 말이다. 한편 여기의 `용사'(이쉬)는 `여자'(잇솨)와 대조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창 2:23). 따라서 여기서 이 말은 `남자다운 남자'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Klein).
ㅇ네 주...네 주 - 여기서 `네 주'라는 말이 반복 기술된 것은 아브넬이 자신의 상전인 사울에 대한 경호 책임을 게을리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아브넬은 자신의 `주'사울을 보호해야 했어야만 했다.
ㅇ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 25:26 주석 참조.
ㅇ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 이것은 아비새가 사울을 죽이려 했던(8절) 가로막았던 다윗의 행동과 잘 대조된다. 즉 다윗은 이같은 언급을 통하여 아브넬의 직무 유기와 자신의 선행(24:17, 18)을 대조적으로 강조한다. 나아가 다윗의 이 말은 진정 사울을 지키고 보호해 줄 자로서 아브넬보다 자신이 더욱 적격자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Keil). 따라서 자신은 사울을 해하고자 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으며, 오해려 사울을 주(主)로 모시고 충성된 신하로서 지키고 보호해 줄 자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ㅇ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니라 - 문자적으로는 `너희는 죽음의  아들이니라'(20:31)란 뜻이다. 다윗이 여기서 아브넬과 병사들에 대하여 `죽음의 아들'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은 것은 곧 그를 죽인 것과 동일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9절).
17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다윗이 가로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ㅇ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듣고 - 이때는 캄캄한 밤 또는 동트기 전의 새벽녘이었을 것이므로, 사울은 음성을 통해서만 다윗이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ㅇ내 아들 다윗아 - 사울의 이같은 반응은, 다윗이 자신을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던 사실을 인식한 결과였다(24:16). 아마도 이때 변덕스런 사울은 다윗을 아브넬보다 더 나은 호위병으로(16:21) 생각했을 것이다.
18 또 가로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ㅇ어찌하여...쫓으시나이까 - 사울은 엔게디 동굴에서의 사건(24:2-7)으로 다윗과 화해를 했었다(24;16-22).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사울이 자신을 또다시 추격하는 것은 다윗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19 청컨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인자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날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붙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ㅇ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 이같은 표현은 주로 악행을 선행으로 전환할 도 한번의 기회를 줄 때 사용되었다(15:1). 즉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치 않았던 사울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기회를 주면서 이와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다윗의 이 말은 최후 통첩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종 다윗의 이 최후 통첩을 무시하고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에게(27:1-4) 하나님께서 결국 엄중한 심판을 내리셨다는 사실이다(10절; 31:4-6).
ㅇ만일 왕을 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만유(萬有)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상(대상 29:11; 시 103:19)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선(善) 뿐만 아니라 악(惡)도 주관하시는 분으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사울을 격동시킬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사울이 비록 다윗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됐다고 하더라도, 사울의 행위가 정당자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악이 나왔다고 함은 하나님께서 그 악을 교사(敎唆)했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악인이 그 소욕대로 저지르는 악을 묵허(黙許)했음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한 방편이며, 따라서 악한 행동 자체에 대한 책임은 항상 본인이 져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다윗은 하나님께서 악한 자까지도 친히 주관하신다는 사상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에, 압살롬의 난(亂)을 피하여 도망을 가는 자신을 향하여 온갖 모욕적 언사를 아끼지 않았던 시므이(Shimei)도, 자신을 징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고 그를 해하지 아니하였다(삼하 16;10, 11).
ㅇ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 다윗의 이 말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었다. 즉 (1)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달게 죽겠다는 뜻(Hertzberg, Klein), (2)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제물을  바쳐주기를 원한다는 뜻(Keil)등이 있다. 그런데 첫째, 여기의 `제물'(민하)은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하여(창 8:21) 그분 앞에서 태워지는 소제 제물의 향기를 가리키며 둘재, 사울이 격도오딘 것이 하나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만일 `인자(人子)들'에 의한 것이라면 다윗이 아닌 그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본절의 언급에서 볼 때,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하여 다윗 자신이 달게 죽겠다는 뜻의 (1)의 해석이 타당성이 있다.
ㅇ만일 인자들이면 그들이...저주를 받으리니 - 다윗은 엔게디 동굴 사건(24장) 직후에도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간신(奸臣)들의 중상 모략 때문이라고 말한바 있었다. 물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가장 큰 동기는 악신(惡神)의 영향하에 있는 사울의 증오심과 적개심 때문이지만, 이와 더불어 사울 주변에는 베냐민 사람 구시(시 7편)와 같은 중상 모리배(中傷謀利輩)들이 있어 그러한 사울의 증오심을 더욱 부축긴 것 같다. 24:9 주석 참조. 
ㅇ이는(키) - 앞 부분의 이유를 설명해 주는 절(節)을 이끄는 접속사이다.  따라서 이 접속사 이하는 사우을 격동시킨 사람들이 저주를 받아야 될 이유를 말해준다.
ㅇ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이 있는 땅,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땅인 이스라엘 땅을 떠나서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함께 사는 것을 뜻한다. 물론 사울을 격동시킨 자들이 이같은 말을 직접, 구체적으로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울을 격동시켜 그로 하여금 다윗을 추격케 함은 곧 다윗에게 이스라엘 땅을 떠나서 살라고 하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Calvin). 그런데 다윗의 이같은 염려는 실제로 현실화되고 말았다. 즉 다윗은 사울로부터 다가오는 생명의 위협을 피하여 결국 이스라엘 땅을 떠나 블레셋 땅으로 들어가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27:1, 2).
ㅇ여호와의 기업에 붙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 여기서 `여호와의 기업'은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을 가리킨다(출 19;5). 그리고 `붙지'(하스타페아흐)는 `연합하다', `모이다'라는 의미의 동사 `사파흐'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결국 이 말은 이스라엘이라는 언약 공동체의 유기체적 구성원이 됨을 가리킨다. 따라서 `붙지 못하게 한다'라는 말은 그 언약 공동체에서 강제로 추방시킴을 가리킨다.
20 그런즉 청컨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곳에서 이제 나의 피로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
ㅇ본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타국 땅으로 쫓겨 도망가 결국 이방 땅에서 객사하게 되는 그러한 비극이 없게 해달라고 사울에게 간청한다. 그러면서 다윗은 만일 자신이 타국 땅으로 도망간다면 그것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고자 쫓기 때문이라고 진술한다.
ㅇ여호와 앞 - 이 말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이 있으며, 따라서 그분께 제사와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장소 곧 `이스라엘 땅'을 뜻한다(Hertzberg). 물론 하나님이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이 사실이지만, 특별히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만을 특별한 약속의 땅으로 지정하셨음도 사실이었다(신 12;5). 그래서 모압 출신의 룻은 자신의 고향 모압 땅을 떠나 유다의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면서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들어간다고 말하였다(룻 2:12).
ㅇ먼 이곳에서(아르차 미네게드) - 직역하면 `~(앞)으로부터 떨어진 (그) 땅에서'(to the earth away from ~, RSV; to the ground far from~, NIV)란 의미이다.
ㅇ나의 피로...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 다윗은 이 말을 자신이 타국 땅으로 쫓겨가게 될 경우 나타날 결과로서 말한다. 따라서 다윗은 그러한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나지않도록 사울로 하여금 자신을 추격하는 일을 중지해 줄 것을 호소한다. 아울러 다윗은 여기의이 언급을 통하여 만일 자신이 사울에게 쫓겨 이방 땅에서 죽게 될 경우 사울은 다윗 자신의 그 피에 대하여 결코 무관치 않으며, 그러므로 사울은 하나님께로부터 그에 합당한 보수를 받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즉, 만일 다윗 자신이 이방 땅으로 도망가 그곳 우상의 땅에서 죽게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사울의 추격으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사울은 다윗 자신의 피를 흘리게 한 장본인이 되며, 그럴 경우 아벨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했던 가인처럼(창 4:10) 사울 역시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ㅇ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 이것은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추격하는 사울의 행동이 매우 어리석은 일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메추라기'는 `산'이 아닌 광야에 많기 때문이다(출 16:13, 14; 민 11:31). 따라서 메추라기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메추라기가 떼지어 다니는 광야의 들로 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사울은 어쩌다 산에 한 마리 있는 메추라기를 잡으려고 설치는 사냥꾼 같이 무가치하고 어리석은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Winer). 아무튼 우리는 이 비유의 초점이 다윗을 추격하는 사울의 행위가 매우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일임을 지적하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ㅇ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려 - 여기서 다윗은 `이스라엘 왕'과 `벼룩'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같은 대조를 통하여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얼마나 어리석으며, 또한 얼마나 무가치한 일인지를 역설한다. 24;14주석 참조.
21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 되었도다
ㅇ본절에서 사울은 다윗의 호소(18-20절)에 전적 수긍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반성한다. 즉 다윗을 죽이기 위해 추격한 자신의 행위를 (1) `범죄'로 (2) `어리석은 일'로 (3) `대단히 잘못된 일'로 고백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단순히 다윗을 자신보다 의롭다고 여긴 엔게디 동굴에서의 사건 직후 때(24:17) 보다 훨씬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울의 이같은 태도 역시 진정한 회개라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사울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27:1). 실로 참된 회개란 단순한 후회 또는 반성의 차원을 넘어 마음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지한 죄의 고백과 더불어 더이상 과거의 범죄나 실수를 범하지 않는, 새로운 삶의 전인격적 변화요 결단이어야 한다.
ㅇ내 아들 다윗아 - 이것은 다윗에 대하여 하등의 적의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24;16).
ㅇ돌아오라 - 옛 직책으로의 복귀를 가리킨다(18:13, 30). 또한 이것은 이방 땅으로 도망갈 필요도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19, 20절).
22 다윗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은 창을 보소서 한 소년을 보내어 가져가게 하소서
ㅇ왕은 창을 보소서...가져 가게 하소서 - 본절에서 다윗은 사울로부터 자신이 가져온 `창'과 `물병'중(12절) 다만 `창'만을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왕권을 상징하는 창에 비하면 `물병'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Klein). 한편 여기서 `물병'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그때 다윗이 창과 아울러 물병까지 사울에게 넘겨주었을 것은 당연하다.
23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내 손에 붙이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24 오늘날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ㅇ여호와께서...갚으시리니 - 엔게디 동굴 사건(24장) 직후 모든 일에 대해 여호와께서 심판해 주실 것을 다윗이 간구한 것처럼(24:15), 여기서도 다윗은 사울에 대하여 공의로운 처신을 한 자신에게는 상급이 있고, 다윗 자신에게 불의를 행한 사울에게는 상급이 있고, 다윗 자신에게 불의를 행한 사울에게는 징벌이 있을 것이라는 뜻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의 이 말은 혹자들(Thenius, Stahelin)의 주장처럼 결코 자화자찬(自畵自讚)의 말은 아니다. 다윗의 이 말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순수하고 선한 양심의 선언이요, 또한 공의와 진리의 하나님을 전적 의뢰하는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Keil).
ㅇ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 이 말은 사울의 반성과 태도 전환에도 불구하고(21절), 다윗이 사울로 인하여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왜냐하면 여기의 `환난'은 말할 나위없이 사울의 살의(殺意)에 따른 다윗 자신의 정처없는 위험한 방랑 생활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25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찌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ㅇ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 사울의 이말은 구체적으로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가리킨다(24:20). 물론 이것은 다윗이 왕이 된 후에 훌륭한 업적을 남길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ㅇ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 사울의 이 말 역시 엔게디 동굴 사건(24장) 직후의 말(24:20)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때, 다윗이 사울 자신을 포함한 모든 대적들을 꺾고 이스라엘의 왕위를 오를 것을 가리킨다(20;15, 16).
ㅇ다윗은...사울은...돌아가니라 - 이 표현은 성경에서 이별의 장면을 묘사할 대 사용되는 전형적 방식이다(24:23; 민 24:25). 그러나 특별히 여기서의 이 표현은 사울과 다윗이 아직 껏 화해하지 못한 사실을 암시해 준다. 즉 "사울과 다윗의 마음은 하나되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각기 자기 길을 따라 따로 가야만 했다"(Berleb Bible)
ㅇ자기 곳 - 여기의 `곳'(마콤)은 24:23의 `집'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2;20; 29:4; 왕상 8:21). 따라서 여기의 `곳'을 `집'이 아니라고 보고, 사울이 기브아의 자기 궁성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다윗을 계속 쫓았다는 주장(Keil, Lange)은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R. Payne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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