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27.블레셋 가드왕 아기스에게 두번째 의탁..시글락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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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7장 [484 '내맘의주여소망되소서] [487.어두움후에빛이오며]...나약해있을때에도, 보소서주님나의마음을,나의안에거하라


****(해병대에서 회자되는 애기...어제가 제일 편했다!!)...당장 지금은 고난-역경으로 지치고 불안하고 힘들고 어려워 ((고역지불힘어)보일지라도 주와함께 걷기를 선택함이 가장 편안하다!!

###주 안에서 주 보시기에 참 믿음은 ....사방대적-첩첩산중-암흑터널 속에, 갈수록 어려울것이라고 [세상분석가들이 객관적으로-세상적 관점에서 분석할 때] 예상된다 말해도...그래도 좋다!! "죽으면 죽으리라" 얼마든지 전기진역-풍한설우 중에도(주님이 나를 안고 업고 무등 태워 함께 걷고) 계시니 얼마든지 올테면 와보라!!...(주님이 채우시겠다 하셨으니..믿음으로 입을 크게 열고 가슴을 펴라) 휘둘리거나 끄떡함 없이 담대히 주와 함께 그분따라 걷는것###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피하다...(십광야에서의) 두번 째 사울 살려준 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여전히 주께 여쭈지 않고 가드로 향하는 다윗!!

1.  ((주께 여쭈지않고...일부러 순종하고 싶지 않았던것 아닐까??....쉬울것이라 생각했던 길이 오히려 더 어려운 경우라 할 수 있다..사서 고생이었다!!...그럼에도불구하고 주님은 끝까지 붙둘고 계셨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에봇 가진 제사장이 함께 동행함에도 불구하고!! 주께 여쭈어보지지 않고 가드로 향하였기에, 또 결국 주께 여쭈어 보지 않고 시글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그 결과는 30장에서 보듯이 아말렉족속의 침탈 대상이 되고 만다!!

2.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4.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5.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7.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8.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아기스의 정탐들 눈치를 보면서!!)), 시글락에 머무는 동안은 약탈자 생활로 근근이 생계를 지탱해야 했으며, 곤란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그래도 주님은 거짓말로 보고 계신다!!...주여 저를 용서하여 주소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9.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약탈-상납 위해 시글락이 아니라 가드로 먼저]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10.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11.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서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이 행한 일이 이러하니라 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주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12.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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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27장

1.  Then David said to himself, "Now I will perish one day by the hand of Saul. There is nothing better for me than to escape into the land of the Philistines. Saul then will despair of searching for me anymore in all the territory of Israel, and I will escape from his hand."

2.  So David arose and crossed over, he and the six hundred men who were with him, to Achish the son of Maoch, king of Gath.

3.  And David lived with Achish at Gath, he and his men, each with his household, [even] David with his two wives, Ahinoam the Jezreelitess, and Abigail the Carmelitess, Nabal's widow.

4.  Now it was told Saul that David had fled to Gath, so he no longer searched for him.

5.  Then David said to Achish, "If now I have found favor in your sight, let them give me a place in one of the cities in the country, that I may live there; for why should your servant live in the royal city with you?"

6.  So Achish gave him Ziklag that day; therefore Ziklag has belonged to the kings of Judah to this day.

7.  And the number of days that David lived in the country of the Philistines was a year and four months.

8.  Now David and his men went up and raided the Geshurites and the Girzites and the Amalekites; for they were the inhabitants of the land from ancient times, as you come to Shur even as far as the land of Egypt.

9.  And David attacked the land and did not leave a man or a woman alive, and he took away the sheep, the cattle, the donkeys, the camels, and the clothing. Then he returned and came to Achish.

10.  Now Achish said, "Where have you made a raid today?" And David said, "Against the Negev of Judah and against the Negev of the Jerahmeelites and against the Negev of the Kenites."

11.  And David did not leave a man or a woman alive, to bring to Gath, saying, "Lest they should tell about us, saying, 'So has David done and so [ has been] his practice all the time he has lived in the country of the Philistines.'" 

12.  So Achish believed David, saying, "He has surely made himself odious among his people Israel; therefore he will become my servant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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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7장 (개요)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런데 그런 다윗의 잘못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우리가 본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고로 삼기 위한 것이다. 
본 장에 나오는 기록이 그 사실을 증명하여 준다.
1. 우리는 그의 칭찬할 만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다윗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을 신중히 생각했다(2-4).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가나안 사람들과 용감하게 싸웠다(8-9).
2. 하지만 우리는 그의 명예롭지 못한 점도 볼 수 있다.
   (1) 그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자포자기하기 시작했다(1, 2).
   (2) 그는 자기 나라를 버리고,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살려고 그리로 갔다(1, 5, 7).
   (3) 다윗은 그가 행한 싸움에 관해서 아기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나, 애매한 말로 그를 속였다(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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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로 간 다윗(삼상 27:1-7)
Ⅰ. 다윗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이 약해졌기 때문이다(1절). 
다윗은 자기의 현재의 상태에 대해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이렇게 그 말씀을 읽을 수도 있는데),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라”라고 했다. 
다윗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사울의 끝없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백성들의 배반과 십 사람들의 고발 등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또 자기와 함께 있는 군사들의 수가 상당히 적은데도 한동안 군사의 숫자를 새로 보충할 길이 없고 발붙일 만한 땅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침울한 심정으로 이런 어두운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라.”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느냐?” [할수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못할일이 전혀없느니라, 나 여호와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네 입을 크게 열라-내가 채우리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이르리라]
그는 왕이 되리라고 기름 부음을 받지 않았던가? 그것은 그가 왕국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을 계시해 주지 않았던가? 
그가 비록 사울의 약속은 믿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믿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나님의 섭리가 그를 특별히 돌봐 주신 경험들을 통해서도 그는 능히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를 지금껏 구해 주신 분이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구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불신이란 선인에게도 쉽사리 붙어다니는 죄이다. 그런 때 사람들은 “겉으로는 싸우고 속으로는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다. “여호와여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Ⅱ. 다윗은 이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사울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자 다윗은 블레셋 땅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 결정했고, 에봇이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지 않은 채 이렇게 말했다.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오랫동안 시련을 당하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약해지고 인내하기가 어려워진다.
1. [스스로의 생각으로 대적을 만들어 궁지에 물아넣는 자마다 자승자박, 궁지에 몰리게 되는 법이다!!]..사울은 다윗을 궁지에 몰아넣다보니 자기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왕국에 대해 대적이 되었다. 
사울은 다윗과 같이 훌륭한 장군과 그가 지휘하던 부대를 파면함으로 대적의 편이 되게 했으며, 결국 자신의 힘을 약화시켰다.
2. 이런 길을 택하는 것이 다윗 자신에게도 충실한 것은 못 되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기치를 유다 땅에” 세우라고 하셨다(22:5). 
하나님은 거기서 놀라운 방법으로 그를 지켜 주셨고,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 주기도 하셨다. 그런데 그는 왜 자기 자리를 떠날 생각을 했을까? 
그가 이스라엘의 지경을 벗어나고도 어떻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최근에도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미친 척하고 간신히 피해 나올 수 있었는데, 어떻게 그들 사이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고 기대했을까? 
다윗은 앞으로 그가 왕이 되면 전쟁도 불사해야 할 그런 사람들의 말을 지금은 따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다윗은 그로 하여금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분부하는 그의 대적들을 좋게 해 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다시 이것을 가지고 그를 비난할 것이며, 다윗은 그 비난에 대하여 대답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은 또 이로써 그의 친구의 손들을 약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까?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여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Ⅲ. 다윗은 가드에서 친절한 영접을 받았다. 
아기스는 그처럼 용감한 사람을 접대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관용심에서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로 하여금 자기를 돕도록 하기 위한 정책적인 면에서 다윗을 환영했다. 아기스는 다윗을 환영함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도 자기에게로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사울을 믿지 못한 다윗이 아기스는 믿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아기스는 다윗에게 그를 보호하여 주겠다는 단단한 약속을 보여 주었을 것이다.
그가 만일 간사함이 없는 참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블레셋 사람의 말을 더 믿는 것과, 의인이 이스라엘 땅에서 안주할 곳을 찾지 못한다고 하여서 가드의 성읍에 피난지를 구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1. 다윗은 그의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2절). 
그것은 다윗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또 그들도 다윗과 함께 있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윗은 그를 위해 일을 해 주기를 바라는 아기스에게 자기의 입장을 보다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2. 다윗은 “그의 아내들과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갔으며, “그의 사람들” 역시 가족을 거느리고 갔다(2, 3절). 
한 가정의 가장들로서 그들에게 속한 모든 식구들을 데리고 가서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로 하여금 “친히 아는 사람들처럼 지내게 하는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Ⅳ. 사울은 더 이상 다윗을 쫓지 않기로 했다(4절).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그가 최근에 회개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자기의 손에 닿는 곳에 있었다면, 또다시 그에게 일격을 가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는 감히 다윗이 있는 곳에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를 더 이상 쫓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죄를 떠난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죄가 그들을 떠난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기회가 있었으면, 죄를 범했을 것이다.
사울은 비록 자기 손으로 그의 피를 흘리게 하지는 못했지만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18:25), 조만간에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게 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그가 블레셋 땅으로 사라진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고 그를 더 이상 쫓지 않았다. 
사울은 비록 자기 손으로 다윗을 죽이는 기쁨은 가지지 못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죽여만 준다면,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로써 만족하고자 했던 것이다.
Ⅴ. 다윗은 가드를 떠나 시글락으로 갔다.
1. 다윗은 매우 신중하고도 정중하게 자기가 옮겨지기를 요청했다(5절).
(1) 그것은 매우 신중한 행동이었다. 
다윗은 사울의 궁중에서 시기를 받았던 것과 같이 아기스의 궁중에서 역시 그 이상으로 시기의 대상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기스의 궁중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거절했다. 그리고 시골에 묻혀 살기를 원했다. 
거기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피해서 자기 혼자의 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가 다스리는 고을에서 그는 자신의 신앙생활에 힘쓸 수 있으며 또 자기의 사람들도 신앙에 충실하게 할 수 있으며, 가드에서와 같이 자기의 의로운 영으로 하여금 블레셋 사람들의 우상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글락으로 가기를 원했다.
(2) 다윗은 매우 정중한 방법으로 아기스에게 요청했다. 
그는 결코 자기가 가고 싶은 지명을 사전에 지적해서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좋을 대로 지방에 있는 성읍 중의 하나로 가게 해 달라고만 했다(빌어먹는 자가 골라 먹을 수는 없다). 그는 다만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당신의 주변에 있는 이들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든든히 서려고 하는 자들은 높은 데 서지 말아야 하며, 겸손한 사람은 왕도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2. 아기스는 다윗의 요청을 매우 관대하고 친절하게 들어 주었다(6, 7절). “아기스가 그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다.”
(1) 이로써 이스라엘은 그들의 조상의 기업을 되찾았다. 
왜냐하면 시글락은 유다 지파의 기업에 속한 땅이었으며(수 15:31), 나중에 다른 성읍들과 함께 시므온 지파에게 속하게 된(수 18:5)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워서 그 땅을 점령해서 그 땅의 주인이 된 것이 아니었다. 아마 그들은 불법으로 이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각이 있고 명예를 아는 아기스는 이번 기회에 그 잘못을 보상했을 것이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의롭게 판단하신다.”
(2) 다윗은 이로써 가드로부터 멀리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땅과 접경을 이루는 편리한 곳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거기서 다윗은 자기 나라 사람들과 계속 연락을 취할 수 있었으며, 점차 다가오는 혁명시에 그들이 그에게로 집결하는 장소로 삼을 수 있었다. 
다윗은 사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가 그의 군사의 수를 늘렸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30:10에 의하면 그때까지 그의 군사는 여전히 6백 명이었다). 
그런데 사울이 죽자마자, 그의 친구들은 시글락으로 모여들었다. 
아니, 사울 때문에 다윗은 숨어 살았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뜻을 보여 주기 위해 다윗에게로 찾아갔던 것으로 보인다(대상 12:1-22).
이로써 다윗은 더 큰 이득을 보았다. 그날 이후로 시글락은 내내 이스라엘 왕에게 속하게 되었다(6절). 
겸손함과 정중함과 그리고 물러가기를 원하는 것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도 없다. 헛된 명예를 피할 때 참다운 성공이 따른다.
다윗은 시글락에 몇 날, 즉 “4개월”을 머물러 있었다(7절). 그 기한에 대해서는 단지 4개월이라고도 읽을 수 있다. 또 70인역에 의하면 “몇 개월”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여간 다윗은 왕위에 오를 때까지 한동안 그곳에서 기다린 것은 틀림없다. “믿는 자는 결코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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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렉 사람들을 침노한 다윗(삼상 27:8-12)
여기에는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 있으면서 취한 행동에 관한 기록이 있다. 
다윗은 몇몇 저주받은 백성들의 남은 거민들을 침략했다. 그리고 다윗은 아기스에게는 실제와는 다르게 보고했다.
Ⅰ. 우리는 다윗이 취한 잔인한 행동을 나무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멸망당하도록 정하신 족속이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자로서 그들을 처단했다. 
그러므로 그가 한 일은 잘한 일이며, 그는 이 일을 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도록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기 몸을 드러내지만 않으면 사울로부터 안전하리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은거하고만 있다면, 이는 그에게 합당치 않은 노릇이다.
다윗은 이들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전부터의 불만을 해소시켜 드렸으며, 동시에 그 자신과 그의 군대를 위한 식량을 마련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칼을 가지고 먹고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말렉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아마 그술 사람이나 기르스 사람들은 아말렉 사람들의 한 지파였을 것이다. 
사울은 아말렉 사람의 왕을 살려 준 일이 있다(15:8, 9). 그러나 다윗은 그들 중의 어느 한 사람도 살려 두기를 거절했다. 
다윗은 사울의 뒤를 잇기 전에 사울에게서 부족했던 순종심을 보충했다. 다윗은 그들을 치되, “아무도 살려 두지 아니하였다”(8, 9절). 
수고에 따르는 대가가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군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전리품으로 많이 가져갈 수 있었다.
Ⅱ. 그러나 우리는 다윗이 원정에서 돌아와서 그 원정에 관해서 아기스에게 거짓으로 속여 말한 것은 좋게 보아 줄 수 없다.
1. 다윗은 아기스에게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아무도 살려서 가드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11절). 
이는 다윗이 자기의 한 일이 기쁜 일이기 때문에 부끄럽게 여겨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만일 블레셋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면, 자기를 그들의 땅에 숨겨 주는 것이 그들 자신들과 또 동경한 나라들에 대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그들의 땅에서 쫓아낼 것이 두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열심히 그들에게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 사람들을 모두 살육했다. 
그래야만 감히 그 이웃들이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고, 또 한다고 해도 그렇게 빨리 알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정보는 오늘날 처럼 그렇게 빠르지가 못했다.
2. 다윗은 애매한 대답을 가지고 아기스에게 사실을 숨겼다. 
어느 방면으로 출격을 했었느냐는 아기스의 물음에 다윗은 “유다 남방”이라고 대답했다(13절). 다윗이 유다의 남방에 있는 나라들을 침노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아기스로 하여금 자기가 유다의 남쪽 지방, 예를 들면 여러 번 자기를 배반한 바가 있는 십 사람들을 침략했던 것으로 믿게끔 말했다. 
아기스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아기스는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다”고 추단했다. 그리고 다윗이 영영 자기의 편이 되었다고 단정했다.
다윗에 대한 아기스의 성실성, 좋은 평가, 그리고 신임 등은 그만큼 아기스를 속인 다윗의 죄를 더욱 큰 것으로 만들었다. 
이때와 그리고 이와 비슷한 다른 경우를 생각하고, 다윗은 다음과 같은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으로 보인다. “주여 나를 거짓말하는 데서부터 옮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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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사무엘상 27장
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ㅇ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망하리니 - 본절과 같은 다윗의 생각과 판단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사실 사울은 다윗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굳게 맹세하고서도(24:16-22) 그 약속을 스스로 뒤엎는 등, 다윗으로서는 도저히 사울을 믿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었다. 따라서 다시는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했던 십(Ziph) 진(陳) 사건(26:6-12) 직후의 사울의 약속(26;21, 25) 또한 다윗으로서는 믿을 수 없었다. 더구나 사울의 주변에는 사우로 하여금 다윗을 죽이도록 부추기는 인물들이 있었으며(24:9; 26:19), 특히 다윗의 은신처 주변에는 다윗의 행동을 밀고하는 `십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23:19; 24:19), 특히 다윗의 은신처 주변에는 다윗의 행동을 밀고하는 `십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23:19; 24:1; 26:1). 따라서 600명의 군사와 그에 딸린 남녀 가족들을 거느린 다윗으로서는 언제까지나 불안정한 도피 생활을 할수가 없었기에, 당시 사울의 추격권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블레셋으로의 도피'를 결정하기에 이른것이다.
ㅇ블레셋 사람의 땅으로...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 당시 다윗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압(22;3, 4) 보다 블레셋으로의 도피를 상책(上策)으로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자신과 600명의 군사 및 그에 딸린 가족들의 보다 안전한 도피 생활을 위해서는 당시 이스라엘보다 약소국인 모압 보다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블레셋이 더 좋다고 판단되었으며, (2) 또한 블레셋이 모압보다 이스라엘과 더 인접한 곳에 있는 관계로, 유사시의 사건에 대비하는데 더 좋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J.P. Lagn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아무튼 이방의 땅인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들어 가는 것'은 다윗이 최악의 경우 취하려고 했던 선택이었다(26:19, 20).
ㅇ사울이...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다윗은 블레셋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려고 했다. 따라서 그때 다윗은 블레셋 땅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전혀 없었음이 분명하다.
2 일어나 함께 있는 육백인으로 더불어 가드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ㅇ일어나(야캄) - 성경 용례상 이 표현은 종종 결정적인 그리고 중대한 의지적 결단이 이루어지는 문맥에서 사용되는 단어이다.
ㅇ함께 있는 육백 인 - 다윗의 휘하 추종 병력으로, 여기의 이 숫자는 앞에서와 동일하다(23;13; 25:13). 한편, 600명이란 숫자는 분명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출전할 만한 성인 남자들만을 계수한 수효일 것이다(민 1:3). 따라서 600명의 병력에 딸린 가족들의 수효까지 모두 계산하면, 다윗이 거느린 일행의 총수효는 대략 2,500~3,000명 가량 되었을 것이다. 
ㅇ가드 왕...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 비록 블레셋은 이스라엘과는 적대국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했던 사울 왕에 대해서 특별히 강한 증오심을 가졌던 관계로, 당시 사울의 강력한 경재 자상대이자 증오의 대상인 다윗에 대해서는 오히려 호감을 가졌던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을 기대하고 다윗은 블레셋 땅으로 도피해 들어간 것이다. 한편 여기서 `가드'(Gath)는 블레셋의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로서(5:8; 수 11:22; 13:3 주석 참조), 그 위치는 당시 다윗과 그의 일행이 피신하고 있던 `십 황무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37km 지점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가드 왕'은 블레셋의 5대 방백 중의 한 사람임이 분명하다(5:8 주석 참조). 또한 `아기스'(Achish)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21:10 주석을 참조하라. 
그런데 이때 다윗이, 전에 `아기스'로 부터 도망나온 일이 있었으면서도(21:10-22:1) 다시 그에게로 도피한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1)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갔으며, (2) 다윗이 아기스의 대적인 사울로부터 계속해서 핍박을 받고 있었음이 그에게까지 틀림없이 알려졌을 것이며, (3) 또한 아기스는 다윗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군사적 세력을 확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ㅇ마옥의 아들 - 여기서 `마옥'(Maoch)은 왕상 2:39에 나타나는 `마아가'(Maachah)와 동일한 인물인 듯하다(Keil, Smith, Fay). 그렇다면 아기스가 솔로몬이 즉위한  직후까지 블레셋의 가드왕으로서 계속 살아 있었겠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기스가 다윗의 즉위(B.C. 1010년) 직전부터 솔로몬의 즉위(B.C. 970년)직후까지 약 50여년간 왕위에 있었다면 이 문제는 넉넉히 해결될 수 있다(Keil & Delitzsch,Vol. II-ii. p. 255).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 되었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ㅇ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고 - 이것은 단지 몇명의 부하만을 데리고 블레셋 땅에 들어갔던 21장의 경우와는 완전히 상이하다.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이처럼 가족까지 모두 데리고 블레셋으로 간 것은 가족들의 안전과 정착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ㅇ아히노암...아비가일 - 다윗의 최초 아내는 사울의 딸 `미갈'이었으나, 그녀는 사울에 의해 다른 남자에게 다시 시집보내졌기 때문에 다윗 아내의 명단 중에서 빠져있다(25:44).
4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ㅇ사울이...수색하지 아니하니라 - 본절의 내용은 다윗이 블레셋으로 도망가기 직전에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11절).
ㅇ다윗의 도피 생활 - `엔게디'동굴 사건 후 사울과 일시 화해한 다윗은 사무엘 사후 또다시 위험을 느끼고 `바란 광야'로 내려갔다. 이후 다윗은 다시 `십 황무지'로 돌아왔으나, 십 사람들의 밀고 행위로 다시금 사울의 추격을 당한다. 그러나 십 진(陳) 사건으로 또다시 사울의 목숨을 해할 기회가 있었으나 다윗은 사울을 해하지 않았다.  이에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으나, 다윗은 더이상 사울의 변덕스런 마음을 신뢰할 수 없어, 결국 블레셋 땅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로 도피한다. 그리고 아기스 왕으로부터 식읍(食邑) `시글락'을 얻어 그곳에서 1년 4개월 동안 정착 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다윗의 목숨을 채던 사울은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고, 다윗은 오랜 도피 생활을 마감하고 조국 땅으로 들어오게 된다(24:1-27:12).
5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지방 성읍 중 한 곳을 주어 나로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ㅇ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 문자적으로는 `내가 당신의 눈에서 호의를 발견했거든'(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 NIV, RSV)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결국 다윗이 `아기스'와 용병(傭兵) 관계를 형성한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다윗은 아기스와 용병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그에게 적절한 요구를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기스는 다윗과 바로 이같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정치.군사적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을 것이다.
ㅇ당신의 종이 어찌...왕도에 거하리이까 - 당시 다윗의 군사가 약 육백 명이었다면(2절). 그의 가족까지의 숫자를 모두 합칠 경우 거의 삼천 명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많은 숫자는 `왕도'(王都) 가드의 시민들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항상 있었다.  바로 이같은 점을 내세워서 다윗은 왕도 `가드'를 떠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이 가드를 떠나려고 했던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였다. 즉 다윗이 지방 성읍의 독립된 거주지를 요구한 진정한 이유는 (1) 우상 숭배가 성행하던 가드에서 거주할 경우 자신의 백성들이 이교적(異敎的) 혼합주의에 빠져들 우려가 충분히 있었고(5:8, 9; 26:19), (2) 다윗이 아기스의 궁전에 자주 출입할 경우  아기스의 신하들에게 시기의 대상이 될 우려가 또한 있었으며(21:11; 29:4, 5), (3) 그리고 다윗이 가드를 떠날 경우 아기스의 정치적 영향권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점 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ㅇ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주었으므로 - 아기스 왕에 대한 다윗의 간청이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곧 아기스가 다윗과 자신을 호혜적(互惠的) 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가드 왕 아기스가 망명객 다윗을 영접하고 그에게 식읍(食邑)으로서 `시글락'을 수여하는 등 다윗을 환대한 것은, 사울과 분명한 적대 관계에 있는 다윗과 그의 무리들을 자신의 신복(臣僕) 내지는 용병(傭兵)으로 포섭하여 자신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12절). 한편 여기 `시글락'(Ziklaq)은 가나안 정복 후 원래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가(수 15:31), 그후 다시 시므온 지파에게로 넘어간 성읍이었다(수 19:5; 대상 4:30). 그러나 시므온 지파는 사사시대에 그 땅을 블레셋에게 다시 빼앗겼던 것 같고, 그 이후 그 성읍에는 사람이 거주치 않은 것 같다(Keil, Fay).  그 위치는 가사(Gaza) 동남쪽 약 24km 지점으로, 그때 다윗이 머물고 있었던 가드(Gath) 남서쪽 약 40km 지점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같은 가드로부터의 먼 거리는 가드를 떠나려고 했던 다윗의 진정한 목적(5절 주석 참조)을 넉넉히 충족시켜 줄만 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같은 다윗의 목적과는 달리 아기스는 아기스대로 다윗을 그곳에 주둔시킴으로써, 자신의 영토의 남쪽 변경을 다른 민족들이 공격해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Klein).
ㅇ시글락이...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 여기의 `왕'(말키)은 복수(plural)이다. 따라서 `유다 왕'은, 정확히 하자면 `유다 왕들'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이 `유다 왕들'이란 표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본서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할된 후(B.C. 930년)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  아울러 본서 전체를 면밀히 고찰할 때 본서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B.C. 722년)에 대한 암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 보수주의 학자들은 본서(사무엘서)의 저작 시기를 분열 왕국 직후(B.C. 930년)로 부터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B.C. 722년)사이의 어간으로 본다(Steinmueller, Moeller, Young, Fay)
ㅇ오늘까지 - 즉 본서가 기록된 때까지를 가리킨다(서론, 3 `기록 연대' 참조).
7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한 날 수는 일년 넉달이었더라
ㅇ블레셋 사람의 지방 - 여기서 `지방'(사데)은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빈들'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6:1; 창 2;5; 왕상 11:29). 따라서 이것은 다윗의 독립된 거주지 시글락이 변방에 위치했음을 시사해 준다.
ㅇ거한 날 수는 일 년 넉달 - 여기서 `일 년'(야밈)은 문자적으로는 `날들'(days)이란 의미이다.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요세푸스와 칠십인역은 다만 `넉 달'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여기의 `야밈'은 (1) 성경에서 `매년'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1:3; 2:19), (2) 또한 `일 년'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라는 점에서(Klein; 삿 17:10; 삼하 14:26),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일 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편 다윗은 바로 이 기간이 지난 후 헤브론으로 돌아가 유다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삼하 2:1-4).
8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로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
ㅇ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 여기서 `올라가서'(알라)는 보통 저지대에서 고재대로 오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당시 다윗이 침노한 족속들이 시글락보다 고지대인 바란 광야의 북동쪽 산악 지대에 거주했음을 시사한다(Keil, Smith, Fay). 또한 이 표현은 성전(聖戰)에 있어서 이스라엘 군대가 이방의 군대를 공격하는 것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수 4:19; 6:5; 8:11). 따라서 본서 저자는 여기서 이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다윗이 비록 타국 땅에 도망나가 있기는 했지만, 그는 거기서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온갖 애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
ㅇ그술 사람 - `그술'(Geshur)은 정확치는 않으나, `교랑'이란 의미인듯하다. 그런데 이 종족은 아말렉 족속처럼 유랑 생황을 하던 족속으로서, 그 당시 어떤 한 지역에 모여서 살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즉 그들 중 일부는 요단 동쪽 지방에(신 3:14; 수 12;5; 13:11, 13; 삼하 13:37). 또 다른 일부는 `가사'와 인접한 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같다(신 2:23).
ㅇ기르스 사람 - 여기의 `기르스'(Girz)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제시되었다. 즉 (1) 팔레스틴 중앙부의 그리심 산 근처에 살던 한 종족으로 보는 견해(Smith), (2) 블레셋 땅과 이스라엘 땅의 남부에 거주하던 민족으로 보는 견해(IDB) 등이 있다. 그러나 첫째, (1) (2) 의 견해와 관계되는 민족들은 팔레스틴 남부에 위치하고 있던 다윗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없었으며 둘째, 그때 다윗의 또다른 공격목표였던 `그술 사람 및 아말렉 사람'등이 모두 팔레스틴 남쪽에 거주하던 민족들이며 셋째, 본절은 다윗으 공격 목표가 되었던 세 민족을 `술과 애굽땅으로 지나가는 지방' 곧 팔레스틴의 남쪽에 사는 거민들로 말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위의 세 견해 중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ㅇ아말렉 사람 - 이 종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15:2 주석을 참조하라. 이 `아말렉 족속(the Amalekites)은 일찍이 사울의 군대에 의하여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15:7,8), 오랜 세월의 지난 그 당시 아말렉 족속은 다시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한 듯하다(Fay ).  그래서 이들은 다시 이스라엘과 블레셋 모두에게 심각한 골치거리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ㅇ그들은 옛적부터...지방의 거민이라 - 원문에는 본 구절의 앞 부분에 `왜냐하면'이란 의미를 갖는 접속사 `키'가 있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다윗이 앞에 언급된 세 민족을 침한 까닭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이같은 측면에서 본 구절을 해석해야 하는데, 우선 본 구절을 히브리 원문에 따라 `왜냐하면 그들은 옛날로부터 그 땅의 거민이었기 때문이다'로 바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곧 그 땅의 거민들이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혀 왔다는 사실과 연관시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다윗은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혀 왔고 또한 괴롭히고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들을 공격했던 것이다(Keil).
ㅇ술과 애굽땅으로 지나가는 - 이것은 다윗이 공격했던 그 땅이 과연 어떤 땅인가를 설명해 주는 구절로 볼 수 있다. 우선 본 구절은 히브리 본문에 보다 가깝게 `너희가 애굽과 술로 들어갔을 때의'로 번역할 수 있다. 즉 본서의 저자는, 15:7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 족속을 쳤던 영역에 대하여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라고 언급한 것을 염두에 두고 본 구절을 쓴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본 저자는 `그 땅'을 하나님의 군대로부터 엄중한 징벌을 받아야 하는 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15:1-3)
ㅇ결국 본 구절은 앞에 언급된 세 민족에 대한 다윗의 침공이 하나님의 뜻과  합치되는 정당한 것이었음을 입증해 주는 언급이라 할 수 있다.
9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을 취하고 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이르매
ㅇ다윗이...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 다윗의 이같은 행위는 결코 종교적 목적에따른 행동이 아니었다. 이같이 볼 수 있는 근거는 (1) 하나님께서든 다윗에게 그들을 `진멸하라'(아헤라메템)는 명령을 내리지 아니하셨다는 사실, (2)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혹시 `진멸하라'는 명령이 있었다면, 그 거민들에게 속했던 모든 가축 등의 재산도 동시에 진멸해야 했으나 다윗은 그것들을 진멸치 않았다는 사실, (3) 본서의 저자는 다윗의 이같은 행위를 비밀 유지의 목적상 그렇게 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11절) 등이다.
ㅇ양...소...나귀...약대...의복을 취하고 - 사실 이처럼 노획물을  획득하는 것이,다윗이 이스라엘 남방의 세 민족을 공격했던 주된 목적이었다. 즉 다윗은 이러한 노획물로써 (1) 자신에게 딸린 많은 식솔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했으며, (2) 또한 생활이 어려운 유대 사람들도 도와야 했던 것이다(30:26-30).
ㅇ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이르매 - 다윗이 자신의 본거지 시글락(6절)이 아닌 왕도(王都)가드로 향한 것을 가리킨다. 다윗이 이같이 한 까닭은 아기스에게 약탈물의 일부를 바침으로써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함인 듯하다(Smith).
10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로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
ㅇ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 아기스는 자신에게 바쳐진 전리품(戰利品)을 보고 이같은 질문을 하였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오늘'은 그 당일에 이스라엘이 남방에 거주하는 민족들에 대한 침공이 행해졌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이번에'란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침노하였느냐'(파솨트)는 `벗기다', `강탈하다'란 의미로서, 주로 전리품의 탈취를 목적으로 한 노략과 공격행위를 가리킨다(8절; 30:1; 31:8; 겔 16:39).
ㅇ유다 남방...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겐 사람의 남방 - 이같은 다윗의 대답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지극히 애매한 답변을 함으로써, 자신이 아말렉 등을 약탈한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한편 여기서 `유다  남방'은 브엘세바의 인근지역을 가리킨다(8:2; 삼하 24:7). 그리고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은 유다의 남쪽 변방 지역을 가리킨다(30:29). 여기서 `여라므엘'(Jerahmeel)은 `하나님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란 의미인데, 이 사람은 유다의 손자이자 베레스의 아들인 헤스론의 장자이다(대상 2:3, 5, 9). 다라서 `여라므엘 사람'(Jerahmeel)은 이 `여라므엘'의 후손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또한 `겐 사람의 남방'은 `아말렉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지역과 인접한 곳을 가리킨다. 이전에 사울은 아말렉 족속을 치려고 하면서 겐 사람들도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겐 사람'(Kenites)들을 대피시켰던 일이 있었다(15:6주석 참조). 아무튼 여기서 다윗이 아기스의 질문에 실제로 그가 침노한 그술, 기르스, 아말렉 족속(8절) 대신 유다, 여라무엘, 겐 족속이라고 답변한 이유는 다윗이 유다와 그 동맹.종속.우호 성읍들을 공격한 것처럼 아기스에게 믿도록 함으로써 아기스의 신임을 더욱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 다윗이 유다를 약탈하던 이방 종족들을 공격한 것은 잘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 쉽사리 은폐.거짓말을 한 것은 당시 이방 땅에 머물러 있었던 다윗의 신앙이 연약한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즉 다윗의 답변은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려는 인간적 기지(機智)에서 나온 말로,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선(善)이 되지 못한다. 이처럼 시글락 정착 시절에는 다윗의 신앙 상태가 연약해졌는데, 이는 블레셋의 시글락 정착 1년 4개월 동안(7절) 다윗이 지은 시편이 하나도 없다는 데에서도 입증된다. 즉 당시는 다윗에게 기도와 찬양이 메마른 때였다(F. B. Meyer). 
11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행사가 이러하여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ㅇ본절은 다윗이 그술, 기르스, 아말렉 족속 등을 공격하면서 그곳 거민들을 남녀 불문하고 몰살시킨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 준다.
ㅇ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 이것은 패전국의 주민을 노예로 붙잡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같은 일은 고대 전쟁에 있어서는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같은 관습을 따르지 아니하고 모두 죽여버린 것이다.
ㅇ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 당시 다윗은 그술, 기르스, 아말렉 등의 남방 족속들에게 자신이 행한 침노 행위가 가드 왕 아기스에게 보고될 것을 두려워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족속들은 주로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들로서 블레셋으로서는 하등 공격할 이유가 없는 족속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라서 다위의 행위는 블레셋의 입장에서는 이적(利敵)행위가 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을 시기하던 아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에 의하여 끌려왔을 노예들로부터 전해들은 다윗의 행적을 과장하고 악평하여 보고할 가능성이 많았으며, 또한 끌려왔을 노예들도 다윗에 대하여 앙심을 품은 나머지 다윗의 행적을 과장해서 떠들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다윗의 행적이 사실 그대로아기스에게 알려지면 그 사실이 과장됐든지 안됐든지 간에, 아기스는 다윗의 그같은 이적적(利敵的)인 공격 행위로 인하여 다윗을 의심하고 또한 경계하기 시작할 것이 뻔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바로 이 점을 사전에 방지코자 한 것이다.
12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하니라 
ㅇ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 이것은 유다 남방 족속들을 공격했다는 다윗의 답변에 `아기스'가 완전히 속아 넘어갔음을 뜻한다(10절). 따라서 아기스는 이제 다윗에 대해 가졌던 일말의 의구심과 경계심까지 풀기 시작한 것이다.
ㅇ다윗이...이스라엘에게...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 다윗이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 및 그 동맹.우호.종속 성읍들을 침공 몰살시킴으로써, 스스로 그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같은 아기스의 착각은 그가 다윗의 답변(10절)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반영해 준다.
ㅇ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 아기스는 동족을 무자비하게 친 다윗의 행위는 반드시 동족유대의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고, 따라서 다윗은 더이상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 이제 평생토록 자신의 심복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편 여기서 `사역자'(에베드)는 `종', `신하'란 의미인데, 전에 `아기스'가 다윗을 이스라엘의 한 `왕'으로(21:11, 12) 본 것과는 많이 대조된다. 즉 이같은 다윗에 대한 아기스의 인식의 전환은, 아기스가 다윗에 대해 품었던 경계심을 이제 더 이상 갖고 있지 않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아무튼 이때 `아기스'는 다윗이 그 자신의 동족을 침노하여 몰살시킨 일로, 다시는 조국 유대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오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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