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5장 [312.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623. 주님의 시간에]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440.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430. 주와 같이 길 가는것]
@@@[시온산] 시온성, 다윗성(=시온산성)@@@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삼하 5:7)
.....시온(Zion)은 '요새'란 뜻으로,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이다(풀핏 주석). 그런데 여부스족속에 의해 이곳에 세워진 산성을 다윗이 빼앗아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시온'은 광의적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묘사하는 말로 곧잘 사용되었는데(왕하 19:21; 사 3:16; 슥 2:10),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었다(사 24:23;옵 1:17). ....."그때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자기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다스리실 것이며 그와 같은 영광 때문에 해와 달이 무색할 것이다."(이사야 24:23)......"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2-24)
......본문에 나타난 세 가지 호칭(시온산,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동의어이며 하나를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이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집이라고도 불렸으며 이스라엘 지파들이 만나던 장소였고, 영광스러운 하늘 도성의 기초로 불려지기도 하였다(LXX 사 28:16; 54:11-14). 이러한 시온 산이라 불린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은유로서(히 12: 28절; 겔 48:35; 계 3:12) 새 언약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에 완전히 소유할 나라임과 동시에(히 13:14) 이미 소유하고 있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다(28절).
•시온산과 세일 산
가나안의 시온산이 언약의 땅을 상징한다면(시 87:1-5), 세일 산은 에돔을 대표하는 산으로서 이방인의 요새를 의미한다(겔 35:2,15). 이 산은 사해와 아카바 만(gulf) 사이의 아라바 동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에서는 아마도 산악지대인 이 땅을 전쟁을 통하여 점령하였거나 아니면 거주민 호리 족속과의 통혼을 통하여(2절) 점차 자신과 후손의 거주지로 차지해 나갔을 것이다.
한편,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발 붙일 만큼의 유업도 얻지 못하였으며(행 7:5),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헤브론 근처의 막벨라 밭을 사라의 매장지로 사기전까지는(창 23장)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그와 동일한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삭과 야곱도 그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삭과 야곱도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그 때에 '장막에 거하였다'. .....'장막에 기거했다' 는 표현은 조상들이 완전히 정착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나그네 생활을 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약속해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바를(창 12:2, 3) 성취하실 것을 굳게 믿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깨문이다"(히 11:10).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믿음의 인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나타낸다. '터'는 '기초'를 의미하는 것으로 '터가 있는 성'은 히 11: 9의 '장막'과 상반되는 표현이다. 장막은 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동하기 위한 임시 거처인 반면에 '터가 있는 성'은 한 곳에 고정된 영구한 집이다. 이 성은 지상에 있는 어떤 도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동치 못하며 장차 올(12:28;13:14) 영원한 하늘 도성으로 하나님에 의해 견고히 세워진 '시온 성'을 암시한다(시 48:8;87:1-3, 5;121:3;사 14:32;33:20, Lane).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10)
'경영하시고'의 헬라어 '테크니테스(τεχνίτης)'는 '기술'을 뜻하는 '테크네(τέχνη)'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술자', '설계자' 혹은 '건축가'를 뜻한다. 이를 앞서 언급된 '성'과 결부시킬 때 본절에서는 '설계자'나 '건축가'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으실'의 헬라어 '데미우르고스(δημιουργός)'는 '사람의 무리'를 뜻하는 '데미오스(δῆμος)'와 '일'이란 뜻의 '에르곤'의 합성어로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자'의 뜻을 지닌다. 이 두 가지 표현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성을 건축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손수 지으신 하늘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믿음과 인내를 할 수 있었음을 시시한다.
• 다윗이 시온성을 정복한 과정
본래 시온성(예루살렘)은 여부스라는 족속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북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천길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천예의 요새였다. 다윗이 천혜의 요새 시온 산성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었는가는 성경에 세세히 기록 되어 있다.
시온성은 해발 750미터의 고도에 위치한 곳이다. 천애의 요새지만 한 가지 단점은 물을 외부에서 얻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이 남동쪽 기혼 샘이라는 풍부한 물을 가진 샘이 있었지만, 기혼샘은 성곽 외부에 있었기에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 그것을 길어 오는 것은 큰 문제였다.
다윗은 시온성은 정복하기 위해(여호수아가 시작한 가나안 정복을 매듭짓는 의미) 용맹한 부하를 "수구로 올라가게 해서" 정복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수구'는 '하수도','배수로','지하 통로'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곧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 들어온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수직으로 파놓은 갱도(坑道)를 의미한다. 이 갱도는 성 안에서 성 밖으로 연결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공 불락의 예루살렘 성안으로 군사들이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따라서 다윗이 이곳을 통해 적 진지에 들어가 공을 세우는 자에게 푸짐한 상급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요압과 그 군사들이 이에 응하였던 것이다(대상 11:6). ....한편 이 수갱(水坑)은 1886년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1967년 워렌(Charles Warren)이 재차 발견하여 현재 '워렌 수갱(수직갱도)'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이 수갱이 B.C 2000년 경에 예루살렘 거민들에 의해 건설되었음도 밝혀내었다.
•천혜의 요새
시온성이 천혜의 요새라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은 이 성에 살던 사람들이 다윗에게 한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윗 왕과 그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삼하 5:6)"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 오지 못하리라 하더라"(삼하 5:8) ..... "절뚝발이와 소경", 여기서는 다윗이 당시 지형적인 이점을 의지하고 교만하게 말했던 여부스 사람들(6절)을 비꼬는 말이다. 즉 저들은 불구자가 아니었지만 이제 다윗의 공격 앞에 꼼짝 못하고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절뚝발이와 소경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는 훗날 속담이 되어 '미운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즉 여부스인들처럼 자기의 힘만 믿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어떠한 집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윗, 시온성을 더욱 견고히 함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9-10). .... '밀로(מלּוא)'- 채우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이 '밀로'(Millo)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것이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 성채는 아마도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장 취약 지구인 북방의 방어를 위해 북동쪽이나 북서쪽 한쪽 모퉁이에 세워 놓았던 것일 것이다. 아무튼 다윗은 이 밀로를 기점으로 하여 예루살렘에 성벽을 둘러 쌓음으로써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 종교를 위한 중앙 성소의 기초(대하 3:1)를 마련하게 되었다.
• 시온산과 새예루살렘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계 14:1) 시온 산에 서 있는 어린양의 모습은 계 12:17에 묘사된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는 용의 모습과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시온 산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약간씩 차이가 났다. 즉 포로 시대 이전에는 유다의 전영토와 이스라엘 전족속을 의미했고 포로 시대 이후에는 성전과 예루살렘성을 가리켰다. 또한 구약성경과 예언서에서 시온은 메시야가 오셔서 구속받은 자기 백성들을 모으는 장소를 상징했다(시 48:1;사 24:23;욜 2:32;미 4:1, 7).
이러한 배경을 지닌 '시온 산'이 본문에서 어디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실제적으로 지상에 있는 땅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영적인 세계인 하늘에 속한 것으로서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명이 거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히 12:22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에서 '시온'을 '하늘의 예루살렘'과 관련시켜 이해한다. (3) 혹자는 지상에서 이루어질 메시야 왕국 또는 천년 왕국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히 12:22의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갈 4:26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무두 하나님이 계신 하늘 시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땅에 거하는 구속 받은 성도들에게 이 땅에 이루어질 메시야 왕국의 전형이나 모델로서 제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니멀리스트 관점에서 보면 다윗성은 남북으로는, 요새화 된 밀로(오벨 언덕) --다윗의 백향목 궁--실로암 못까지, 동쪽은 기드론 골짜지, 서쪽은 두로베온(티로포엔, 중앙)골짜기로 구분하고, 맥시멀리스트 관점에서는 다윗 궁과 남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시온산까지 포함하여 남쪽의 힌놈골짜기, 서쪽의 기혼골짜기까지 포함하고 있다..----예수님 당시, 갈보리산은 진영밖/성밖에 위치했고 최후의 만찬 장소는 힌놈골짜기와 기혼골짜기가 만나는 곳 인근이었다..
[유다왕 되기까지 10년 동안 15군데를 이동하며 도망다니는 다윗]
....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는데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생각하며 살펴보자.....베들레헴에서 기브아로 이동, 도피행각 시작 ::: *1)라마-->*2)기브아-->*3)놉-->*4)가드-->*5)아둘람-->*6)모압 미스베-->*7)헤렛수풀-->*8)그일라-->*9)십 광야-->*10)마온 광야-->*11)엔게디 광야-->*12)바란 광야-->*13)가드-->*14)시글락-->*15)헤브론
1) 라마(삼상 19:18)
다윗은 제일 먼저 도피한 곳은 사무엘 선지자가 있는 라마이다.
사울은 세 번에 걸쳐 전령들를 보냈는데 예언을 하다가 돌아온다(삼상 19:20-21). 사울이 직접 나섰지만 그도 예언한다. 심지어 너무 뜨거워 하루 종일 옷을 벗었다.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게 분명한데도 사울왕은 깨닫지 못한다. 예언한다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게 아니다. 마음을 열고 순종하는 게 중요하다.
2) 기브아(20:1)
다윗은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의 요나단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사울의 의중을 확인한다. 초하루날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않자 사울왕은 화를 내며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진다. 요나단은 에셀바위에서 화살을 쏘는 것으로 다윗에게 도망치라고 신호해준다. 다윗과 요나단은 상호 보호의 약속을 체결하며 위대한 우정을 보여준다.
권력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정치인들과 너무 대조적인 걸 본다. 한번 약속했으면 어떤 상황이든지 약속을 지킬 때 하나님도 신실하게 역사하신다.
3) 놉(21:1)
다윗은 기브아에서 4km 떨어진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간다. 아히멜렉은 먹을 것을 찾는 다윗에게 제사장만이 먹는 거룩한 떡을 성결 확인후 준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이삭 먹은 걸 따지는 바리새인들에게 이 일을 예로 드셨다.(마12:3)] 하나님께 드린 진설병을 제사장만 먹으라는 율법 정신의 의미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거룩한 떡이 부정하게 관리되지 않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중요하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느라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신앙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에돔사람 도엑이 사울왕에게 고하여 제사장 85명이 죽임당했다(22:18).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이렇게 많이 죽인 걸 보면 사울왕이 얼마나 미쳤나 알 수 있다.
4) 가드(21:10)
너무나 생명의 위협을 느낀 다윗이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블레셋 가드왕에게 간다. 가드는 골리앗의 고향이다. 놀라운 것은 그들도 다윗에 대한 소문을 환히 알고 있었다...다윗은 거기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갑자기 침을 흘리며 미친 척 한다...다행히 가드왕은 미친 놈을 데려왔다며 다윗을 쫓아냈고, 다윗은 위기를 넘겼다.
이때 지은 시가 시편 34, 56편이다. 시편 150편 중에 73편이나 다윗이 썼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노래한거다. 그래서 시편은 고난 중에 큰 위로가 된다.
(시 34:6-8)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무나 곤고한 상황에서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찾았는지 느껴진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둘러 진치고 건져주신다. 다니엘기도회가 진행중이다. 함께 말씀 듣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것이다.
5) 아둘람 굴(22:1-2)
다윗이 아둘람굴로 도망쳤을 때, 가족과 환난 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자가 모인다. 그곳에서 위로받으려 무려 4백여 명이 모였고 다윗은 목자의 심정으로 그들을 돌본다. 오합지졸이지만, 긍휼의 마음으로 돌보니 나중에 용사가 되고 왕국의 리더들이 된다. 개척교회는 아둘람굴과 같다. 삶이 힘들지만 함께 하며 위로받고 성장해가는 것이다. 함께 울고 웃으며 끝까지 견디다 보면 나의 신앙과 삶이 훌쩍 자란 것을 보게 될거다. 좋은 환경을 모두가 원하지만, 진정한 변화와 축복은 고난을 통과할 때 온다. 교회에 나를 보내주신 것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순종하길 축복한다.
6) 모압 미스베(삼상 22:3)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이 모압 출신이었기에 다윗은 부모를 잠시 모압 왕에게 부탁한다. 자기 때문에 부모님까지 힘든 광야의 삶을 살게 할 수 없었다. 다윗의 효심이 보인다.
7) 헤렛 수풀(삼상 22:5)
부모님을 맡기고 다윗은 갓 선지자의 말씀을 따라 유다 땅 헤렛 수풀로 이동한다. 사울이 찾아올 수 없는 곳에서 살면 편하겠지만 다윗에게는 꿈이 있다. 사울왕 같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왕국의 왕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만나는 훈련은 필수인 것이다. 대충 살거면 훈련은 필요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면 강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광야에서 살아가는 훈련이었다면 이젠 배신과 쫓김의 훈련을 받는다.
8) 그일라(삼상 23:1-5)
자신도 도망치는 신세인데 그일라가 블레셋의 약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다윗이 첫 번째로 한 일은 무엇인가? 23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은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셨지만 다윗의 사람들은 반대했다. 그러자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물었다.(23:4)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승리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사울왕에게 밀고했고 사울왕은 다윗을 잡을 최적의 기회라며 내려온다. 하나님은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배신할 것임을 알려주신다. 목숨걸고 도와줬는데...
다윗은 그일라에서 큰 걸 배웠다.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 꼭 기억하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신뢰할 대상이 아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할 수 있어? 내가 얼마나 잘 해 줬는데...” 이런 사람은 보증서서 집과 재산도 다 날리고, 배신을 여러번 당해야 정신차린다. 배신당했다며 미워하고 욕하고 저주하지 말고, 처음부터 사랑의 대상으로 보길 축복한다.
9) 십 광야(삼상 23:15)
사울왕이 매일 다윗을 수색하며 다녔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왕에게 넘기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잡힌다.(마10:29) 다윗은 마지막으로 요나단을 만나 위로받는다. “두려워말고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라”
한편, 십 사람들은 다윗을 밀고한다. 계속 하나님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시편 54편을 지었다.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고 하나니만 붙든다.
(시 54:4)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10) 마온 광야(삼상 23:24)
사울은 마온 황무지까지 다윗을 쫓아왔지만 블레셋이 침노하자 어쩔 수 없이 돌아간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고난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피할 길을 주심을 경험한다. 고난 없는 삶을 원하는가? 대충 살면 된다. 경건하게 살수록 핍박이 강력하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1) 엔게디 광야(24:1)
사울은 블레셋과 싸움을 마치자 다윗을 잡으러 3천명을 이끌로 엔게디 황무지에 왔다. 급히 용변을 보러 굴 속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다윗이 숨어있었다.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을 죽일 기회라 했지만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만 살짝 벤다.
그런 후 다윗의 마음은 괴로웠다.(24:5) 왜? 왕의 인격을 조롱했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하나님이 기름부은 종에 대한 결례를 행한 것은 아닐까 양심이 찔렸던 것이다.
이때 지은 다윗의 시가 시편 57편이다. 하나님은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을까?
(시 57: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사람들은 ‘다윗은 왕을 죽이려는 역적이다’ 비방했는데 이 일을 통해 오해를 풀어주셨다. 사울왕이 웅덩이를 파고 자기가 거기에 빠진 걸 보며 외친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다윗은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랬더니 적이 파놓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주실 뿐 아니라 그들이 빠지게 하셨다.
다윗이 원수를 갚지 않고 사울왕에게 선을 베풀었더니 사울왕이 이렇게 축복했다. (삼상 24:19하-20)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미치광이 사울왕이 다윗의 진심 앞에 감동하여 다윗을 축복한다. 또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이 견고히 설 것이라고 축복한다. 정의도 중요하지만 원수에게 사랑을 베풀 때 이런 진한 감동이 나오는 것이다. 원수를 갚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상대방은 다시 복수의 칼을 들고 달려오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이 어려우면 기도라도 해주라! 그러면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나만 축복하시는 게 아니라 자손대대로 복을 내려주신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이처럼 다윗의 도망길은 진짜 왕으로 만들어지는 훈련의 과정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있을까?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꾀부리지 말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새벽을 깨우길 축복한다. 다윗처럼 도망만 다니지 않고 진정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길 축복한다. :: 12) 바란광야 -->13) 가드--> 14)시글락-->15) 헤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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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의 경한 것과 영광의 중한 것]....[(고후 4:16-18)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Q나라 이미 맛본 다윗이었기에!!..기름부은 자로서 자기 안팎의 의 모든 사람들을 분별하며 여호와 Q과 동행함=경외함의 길을 따라 사랑-믿음-소망의 인내로 걷고 있었다.::: 진정으로 항복-스스로 주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는자마다 다 받아줌이 합당함을 일깨우고 계심!!.**[이를 위한 주님 친히 준비시켜주심] 내안의 사울(군주국가 세워 자립하려 함 = 사탄의 궤계에 스스로 걸려듦이었다) --이스보셋 = 기름부은자 사울의 후손을 존귀히 여김(서로 주 안에서 형제 됨 인식하여!! 오직 주 앙망하며 인내하고 참아주며 기다려주며 덮어줌) ::: 스스로가 판단하고 처리함 아니라 주님께서 처리하시도록 (원수 사랑하며) 인내하며 기다려야 함 **내안의 스루야의 아들(괴롭히는 유혹과 핍박 :: 파내어 끊을수록 더 발견되는 여전한 연약함/약점들...또, 내 옆에 계륵이나 혹 같은, 때때로 치우쳐 제멋대로 교만 행하며 힘들게 하는/주께 부르짖게 하는 대상...그래도 그 안에 여전히 아직 남아 있는 Q 나라 만개 기다리며 바라 봄.(주께서 도와주시도록!! 구하며) 합당한 시점까지 포용하고 품어야)..+ 아브넬(기회주의적 공명심/교활함/책임 전가/배신의 영을 날마다 근절함)....(이 역시 주께서 도와주시도록!! 구하며) 합당한 시점까지 포용하고 품어야) **내안의 아말렉청년/레갑과 바아나(경건을 이익의 재료 삼음([=교회 출석의 속마음은 사업/장사/거래 목적]..구제/자선이란 명옥 하에 세상적 타협 제의해며 생색 냄) = 날마다 분별함으로써 근절하고 쳐내야 함.... 대표적 전개 구절들 :::[((내가..오늘 약하여서..제어하기 어려우니..여호와는..갚으실지로다--날마다 바로 오늘, 여호와 앙망함))삼하3:39..--->[((분별의 영을 따라 처리함..좋은소식..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피흘린 죄를...명령하매...)) 삼하4:9-12..*--->[((임마누엘...점점강성하여가니라))삼하5:10....((그리고))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창15:13-18..((Q이 일방적 횃불언약으로 [그분의 목숨 = 성육신하신 하나님, 곧 참 구주 JC의 목숨 = 을 일방적으로 거는, 일방적 구속사적 생명 언약]영원한 생명 언약 세우심]..Q은 주님 자신 이름으로 맹세하시며, 아브라함은 신뢰하고 붙드는 참 믿음으로 주 앞에 서 있다..오늘날도 동일함....여기서 진리이신 하나님 여호와의 공의와 정의, 정직, 인자. 믿음-소망(희망)-평강이 유출되어 나옴...이것이 Q-사람 간 수직적 베리트, 이에 바탕하여 남녀간 결혼 언약인 수평적 카라트(베리트, 카라트 :: 베다, 자르다)를 맺는 것이요 여기서[십자가 사랑] 입헌군주적 나라와 사회 계약 전제가 출발됨을 장 자크 루소는 말하고 있음))......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생명 언약을] 세워[=베리트(수직적), 카라트(수평적)...베다-자르다(죽음) = 맺다, 체결하다, 세우다]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영원히 영원 안에서!!, 주님은 이 땅을 새롭게 하심 통해 새 예루살렘 도래케 하신다]
주 임재 앞에서!!, 하나되어 전존재에 두루 녹아계신 주 임재 그 이끄심따라, 마음 중심으로부터 전심-일편단심으로, 매 호흡마다(하나되신 주님의 지정의의 어떠하심의 발출로서), 열어 부어주신바 주경외함-지식-지혜-총명/명철-재능-권능-힘 아낌없이 전력 다해!! 사랑-빛으로 섬기기를 모든 순간 실행함..
***"이단"이란, 천지의 주재-살아계신 영생 지존자 하나님을 한낱 기복 위한 우상으로 만들어버리는것..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은 우상이요, 그 중 가장 괴악한 것이 "옛자아-죄성/육신"이니...경계하라 성령 안에 깨어 분별-대적하라!!
....전심전력 다 기울이는 목자 다윗의 양 돌보기.....양은 지독한 근시, 방향감각 없고 냄새나고 무기력, 때로 고집스럽고 제멋대로 죽는줄도 모르고 앞선 양 뒤꽁무니를 따라감..그러나, 목자의 사랑의 음성만은 알아보며, 위경에서는 목자를 찾는다..그 양의 임자가, 그 본래 소유자가 누구였든지 무관하게!!..일단 자기에게 맡겨진 양은 (서두르지 않고 먼저 부드러이 대하며, 안돈시키며, 친해지고, 아껴주며, 비록 낯설어 땡깡부리며 속 썩이며 시험하더라도 오래참아주고 긍휼-친절-온유함으로 기다려주고) 한 마리 한 마리마다에 대해 [이름붙여 부르며, 사랑과 깊은 관심, 곧 생명 가치 크기를 진지한 마음으로 절감하며 용감대담무쌍함 안에서!! 정성 기울여] 그 특성을 잘 파악하고 지극 정성으로 돌보며 격려하며 다독여 주고 평강 안에 복된 삶 살도록 주위를 잘 살펴 명철-기지와 지식과 지혜를 발휘하며 주께 여쭈며 문제를 해결하고 늘 감사 찬송하며, 그들을 보호-인도-양육하기를 목숨 걸고 싸워 이겨 퇴치시키며 지켜 왔던바 주님은 그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왕"이라 말씀하고 계셨다.
....스스로 쟁투 거쳐 강제적으로 취한 세상 권력 속성은 (벌거벗은) 늘 불안한 폭력에 지나지 않으나, 참 목자의 권위와 권세란, 영적 참 권위-권세-자격 근원이신, [친히 내주하사] 깨닫게 하시는 분께서 열어 주사 직역 맡겨주심따라!! 또한, 진정한 깨달음과 기쁨 가운데 [초대와 부름따라 자원하여 그의 양무리 안에 들어오기를] 자발적으로 동의하며 따르고자 하는 백성의 권한 위임으로 오게 됨...**그러나, 깨어있어야 할지니, 다윗이란, 사람의 사랑받음이요, 여디디아란 Q의 사랑받는자란 뜻이지만, 아쉽게도 솔로몬은 (전 생애동안!!) 그 이름에 합당한 삶 살지는 못했다.**
....[다윗의 두번 째(유다 왕으로서)와 세번 째 기름부음(이스라엘왕으로서)]].. 모두 헤브론에서 있었음.....[하나님의 갈망 , 참되게 배워 (거듭난) 자기 것 = DevineDestiny-OriginalDesign= 삼아!! ] 주 안에서 임마누엘로 동행하여 걸으며, 익히 알며 구함으로 사는자.]...생명을 귀히 여기며 영생 구원 위하는 다정한 목자로서 언약적 왕의 마땅한 , 오래참음의 길을 겸손히 주 앙망함으로써 걷기를 마다하지 않는, 주 임재로 살아가는 다윗!!...진정한 욍중 왕이신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거처, 곧 그분의 임재가 거하며 말씀하시는 바 법궤가 안식할 지성소 성전, 그 터전을 어디에 두기 원하시는지에 대한 궁구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라 인도받고 제물로 드렸던 모리아산이 위치한 시온산을 포함한 예루살렘이 당연히 그곳임을 이미 배워 익히 알고 있었다...이로 인해 유추하건대, 두번의 기름부으심은 주님 사귐-주님 마음 알기 학교 시작 시점에, 그리고 졸업 시점에(그의 성품이 무르익었음을 인정??) 헤브론에서 있었지만, 언약하신 때에 이르러서는, 예비해 두신!! 모리아산=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이땅을 걷는 모든 믿는이마다 어쩌면 두번의 기름부음이 더 부어져야하는!! 영적 헤브론에 있는바, 주께서는 하늘 시온-새 예루살렘을 마련해두셨다(우리는 그 새 예루살렘의 구성원이요 구성 요소들이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다.....그러므로 이는 벧후 1 :5-7 그대로였으니;........[벧후1:5-7(미덕지절인경우사)...5. 그러므로 ([오직 성령 안에서])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5장에서 나타난 바, 하나님의 두 가지, 넘치는 은혜 베푸심의 이벤트를 보라!! === 시온산성, 곧 예루살렘 공략 점령 허락하심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으로서 다윗 왕국(하나님나라의 그림자) 위한 그림을 완성하는 "화룡점정" 찍으심이요, 히람의 자발적 공물 제공은 이방인들에게로 확대될 바 나라의 영광을 확증하며, 블레셋을 두 번 연달아 이기게 하신 르바임 계곡 1,2차 전쟁은 산뜻하게 포장한 영원히 기억될 선물, 영원한 이김과 평강을!! 함께 만들어 넘겨 주심이었다.((다윗 통치 기간 중에는 블레셋은 도발 준동할 의욕을 완전 상실한다!!))
[[권위/권세(LORD JC's Authority = 세상의 소금과 빛, 성의진선이신 보혜사-말씀의, 사랑-공의의 순종과 희생적 섬김 감사찬양 기반)와 권력(world a.= 하나님 영광 가리는 수건과 가스라이팅, 곧 타락한 세상의 오도/착각/기만을 참되게 깨닫지 못한 가운데 내질러진, 영원가치 지닌 영생구원 추구함에 대해 무지무각함, 그 소치인 이기적-방어적 폭력 기반) = 엑수시아(성화-영화의 담지자/그릇 됨) ::: 권능 (power) = 두나미스(그 담긴 바 내용, JC-복음-을 받아 누리고 체득-간직한 그대로 그분을 참되개 전파-넘겨줌의 특권 행사함)]]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두나미스'는 '할 수 있다. 가능하다, 힘이 있다'는 뜻의 '두나마이'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강한 힘, 이지적인 능력, 전능한 일'이란 의미이다.
......보통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능력'(두나미스...power)을 얻기 위해 기도하곤 한다. 그러나 이 단어가 쓰인 용례를 보면 숨겨진 속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령(말씀)이 임하면 권능(두나미스)을 받아 말씀의 증인이 되며 (행1:8)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그러한 권능(두나미스)이 어디서 났는지 사람들이 놀라고 (마13:54, 막6:2)...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두나미스)이 충만하여 성령으로 말하며 (행6:10)
.... '권세'(엑수시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품을 수 있는 부여받은 직역/자격으로서의 능력'이라고 말한다면, '권능'(두나미스)은 '하나님의 말씀[=곧 하나님 자신, 하나님 이름 = 그분 존재 자신 = 전지전능 창조주 하나님, 인격이신 그 자신으로서 진리 생명 빛이신 분 그 자체]을 전해주고 넘겨주는 실제적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헬라어 '두나미스'가 히브리어로는 '코아흐'라고 하는데 이를 파자하면 '완성된 진리로서의 생명zoe을 넘겨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데서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을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9:1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말씀)을 온 천하에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모세를 세우면서 '능력'(두나미스)을 보여주시고 그 능력을 주셨는데, 모세가 받은 능력은 다름 아닌 말씀을 전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성령(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나의 말(율법)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품을 수 있는 권세(엑수시아...주님 나라에 속한 하나님 자신이신 진리 생명 말씀을 전파/전도하여 넘겨주는 증인이자 전권대사의 고유 자격이자 능력)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전령=증인= 전권대사로서 하나님 말씀인 복음을 전함에 전혀 지장 없도록 필요충분한 정도로..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더 이상 제한받지 않으시며 자유로우시며 막힘없는] 능력(두나미스....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 그분의 영, 주님 그분 자신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능력(두나미스) 행함이란, 눈에 보이고 육신을 만족케하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의미에서의 행함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의 말씀, 생명 말씀을 참되게 그대로 전해준다는 의미에서의 행함을 말하는 것이며 그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진정한 '능력'(두나미스 )행함의 삶을 사는 것이다.
>>권위는 헬라어로 ‘exousia’인데 이 단어는 ‘ex(나오다)’과 ‘ousia(존재)’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권위는 유일무이한 참 근원자 만왕의 왕 참 지존-주재-주권자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주셨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그 엑수시아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흑암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포로됨의 속박과 압제에서 진리 안의 참 자유 누림의 나라로 옮겨주심의 구속을 완전히 이루어 주셨고, 이와 더불어 이 땅에 계실 때 가지셨던(아버지로부터 받으신바) 그 엑수시아를 부활생명의 성령을 분배해 주심으로써 나누어주셔서 전권대사요 참 증인 삼으셨다)) 거듭난 참 믿는이, 부활생명 원천이신 그분의 성령이 내주하시며 또한 위로부터 증언자로서 합당한 권능의 영을 부어주신 바 된 우리에게 주셨다(마 28:18). 영적 권위, 위치상의 권위, 통치상의 권위 등 이 모든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권위-권세-자격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로 그 권위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라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나와 예수님이 받으셔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좋은 선물이다. 선물은 좋은 것이므로 권위는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는 창세기 1장에 나타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다(창 1:7, 9, 11, 15, 24, 30)고 성경은 말한다. 이것이 권위이다.
그 권위를 받은 우리 또한 “(다바르=로고스이신바!! 주님 말씀 그대로) 그렇게 될지어다. = 아멘 아멘 아멘”라고 [참되게] 말할 수 있게 하신다. 이것이 권위의 기도이다.
바로 그러한 창조행위의 모습은 그렇게 되라는 권위를 부여받은 세상 피조물들이 씨를 만들고 열매를 맺고 낮과 밤을 주관하고 공중을 날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기어 다니고 땅을 충만하게 채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피조 세계에 수고스럽게 직접 개입하신다. 왜냐하면 피조 세계의 창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말에 궁극적인 생명의 완성이 일어날 때까지 하나님의 창조는 말씀의 권위로 계속된다.
이 말씀의 권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에게 주어졌다(창 1:26). 하나님은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주권자의 칙령으로 이 세상의 창조를 완성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지닌 존재들을 지으심으로써 하늘을 바라보는 존재인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세계를 세상에서 친히 완성시키시려고 하신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매우 인격적인 결정이시다.
사람의 창조에 관하여 신격의 세분 사이에 회의가 있었다(창 1:26).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겠다고 결정하신 일은 영원 과거에 있었다.
이것은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엡 3:9-11).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의도는 그분 자신의 권위를 사람에게 주어 이 세상의 창조를 종말에 궁극적으로 완성하시려는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에서 주신 그 권위도 인간들은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의 권력으로 변질되었다.
우상숭배가 바로 그 예인데, 우상은 인간을 취약함에서 건져내고 썩고 변질된 황홀경의 맛을 보여주어 도취시키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권위를 왜곡된 파워(power)의 모습으로 변질시켰다. 우상 숭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바벨론 제국이다. 바벨론 제국은 니므롯으로부터 시작하여 바벨론 제국이 되었다가 로마가 되었다가 말세에 큰 바벨론이 되어 나타나 주님께 대적한다(창 10:8-10, 계 17-18장). 이 세상은 지금 바벨론이 추구하는 것을 추종하고 있다.
물질적인 세상뿐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세상도 바벨론을 추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종교적인 바벨론(계 17장)과 물질적인 바벨론(계 18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이 아름답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야 할!!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권위를 마치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듯이 휘두르는 권력으로 쓰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수단으로 제대로, 정당하게, 개인과 공동체를 살리는 방식으로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임해 주신 것을 권력으로 써버리게 되면 그로 인하여 이 세상은 지옥이 되지만, 참되게 깨닫고 주님 마음에 합당하도록!! 권위로 쓰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 즉 다스림이 있는 사랑의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물질적인 나라가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화평과 기쁨과 사랑이기 때문이다(롬 14:17).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더 알아가며 더 누려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하나님께 받아 우리에게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다는 것의 의미와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랑과 빛과 거룩과 의라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위가 있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과 빛과 거룩과 의라는 하나님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창 1:26).
.......모든 사람에게 어떤 권력이 있다. ((자세히 글자 구성을 보라 :: 권력이란 단어 속에 힘 "력"은 Q 임재따라 순종함의 "Q의 대리자"에 대한 참된 인식에서 떠나고 Q을 배제할 그 때는 "사탄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자의" 무지막지한 강제와 폭력 휘두름일 뿐이니, 곧 권위의 변질이다. 높은 자리든 낮은 자리든 어떤 자리에 있든지 권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권력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의 변질이라는 것을 참되게 깨달아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그래서 회개함으로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받았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권위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지만, 권위의 변질인 권력은 세상을 자기 왕국으로 만들려고 한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한 왕국을 만드는 것을 죄라고 하신다.
■여호와를 앙망하는(사40: 영혼에게 주시는 ((부활/회복/창조/성취 + 보호/방어/지킴))의 능력!! = <코아흐-כוח + <오즈עזֹ<
[창15: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엘 마겐 + 마시아....)) 너의 지극히 큰 상급((= 보수/대가..은혜))이니라]
[사40:28-31...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시81:1...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
[마3:17...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후13: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능력의 히브리어는 <코아흐כוח <또는 <오즈עזֹ<.....*1) 코아흐כוח<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영혼에게 주시는, 주님 그분 자신이신 능력, 곧 권능=뒤나미스을 의미....수동적인 인생에서 (오똑이처럼!!) 능동적으로 일어서는 그 힘, 힘 권세 능력 권능의 의미로 사용 *2) <오즈עזֹ<에는 힘과 보호라는 뜻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전지전능 하나님께서 친히 그늘이되사 보호하시는바 불의 방어벽/방패-피난처/안식처-요새/산성/반석 되심 의미 ---하나님을 앙망 하는 자에게 주시는 능력이 <코아흐כוח<와 <오즈עזֹ<입니다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인생의 길을 열 수 있는 힘입니다 그 어떠한 위험과 위협에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보호 하시는 그 힘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영혼에게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그 능력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기에..
===[나라]강성..가돌//[개인]형통....찰라흐..:::: 형통하다 = 돌진하다/돌파하다, (주님의 영원한 경륜적 갈망 이름 위해, 예비하신 바 다루심 과정 그대로 다 거쳐서 마침내 뜻하신 바 그 뜻 그대로, 궁극적으로 영원에 이르도록) 외부적 환경과 장애, 즉 일시적 풍열수습조한에도 불구하고 그의 참 생명이 흔들림 없이 " 참생명 주와 하나", 그 참 믿음의 다바크(붙좇음)=상호거함/교통/누림/기업됨의, 돌진/돌파하고 극복함 통해, 곧 엄동설한 뚫고 새싹 나고 꽃 피고 열매 산출/성숙-거둠(출생-성장-만개-과숙-추수)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 보기에 기쁨이 되는, 시종여일하게, 참되게) 내적-본질적 생명 활력으로 인해 긍정적 변화 영속적 발현 :: 돌파/전진-번성/번영-창대[풍성-부요-충만]케 되다 === become continually greater(more and more powerful) in... make it prosper in
........형통에는 두 종류의 형통이 있음 알아야 할지니.. 분명히 겉과 속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첫째, 세상적-상대적-일시적-환경적 형통... 사전의 정의처럼 ‘사람의 눈으로, 겉보기에!!, 세상적 기준에서!!...하는 일마다 잘 되고 번성하는 것’을 말하며. 겉다르고 속 다를 수 있다.
둘째, 성경이 말하는 영적-절대적-영속적-내적 형통이 있으니, 요셉의 형통이 그러하였다.
........요셉의 인생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으며,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성실히 일하여 인정을 받고 가정 총무가 되기도 하였으나 여주인의 유혹을 뿌리침으로 증오와 모함으로 감옥의 죄수가 되는, 불행이요 비극을 겪는 와중에도!!. 그런데 성경은 그가 형통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세기39:23)
성경에서 말하는 절대적 형통이란? .......단순히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느냐 하시지 않느냐를 형통과 불행의 기준으로 삼는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하였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써 그 결과로 나타나는시지 않으면 진정한 형통이 아닌것이요,. 요셉처럼 어려움에 처하였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진정한 형통이라는 것이다.
요셉에게 대해 성경이 적용하며 쓰인 “형통”은 히브리어로 “찰라흐 ( צלח)” .... “찰라흐”는 “돌진하다. 뚫고 나아가다”라는 뜻이다. ....앞에 놓인 안팎의 장애물은 [임마누엘 주님 의뢰하여] 돌진하여 돌파하라고 주어진 것이라는 깨달음 아래 이끄시는 분과 함께 나아감인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때로 어려움의 시기를 만나고, 실패하고 넘어지게 되리니...사업의 문을 닫기도 하며 직장을 그만두게 되기도 할 바,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고난과 어려움이요 실패요 좌절로 볼 수도 있으나, 주님은!! ..그러나 [성경의 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 주님과 하나 되어 동거-동주-동행 관점이 생겨나게 되면, 달리 보는 내적 시력과 시야가 열리는 바...아하!! 바로 그 시점이 전개되었네...나를 친히 업으시고-안아주시고-무등 태워 건네주시는 분!! 주님께 전존재가 전심전력으로 집중-올인하여 달라붙어 있어서 그분의 걸으심으로써 함께 돌진-돌파할 타이밍 왔네!!...하며, 오히려 주님을 친밀히 앎의 시기 다가욌음을 환영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그분의 걸으심으로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돌진하여 뚫고 나아갈 때 비로소 참 형통이라고 한다. ....쇠사슬에 묶여 애굽으로 끌려갈 때에도,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노예로 지낼 때에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절망과 좌절의 상황에도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찰라흐의 힘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이에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증거하고 있음이다.
.....지금, 혹시 바로 그런 지고지선의 진복, 그 지복지관의 환희 안에 지나는바!!, 복된 절대적 형통의 삶을 살고 있는가? ....때론 건강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매달 렌트비와 갚아야 하는 융자금에 어려움을 겪고 있든지,. 사업장의 어려움과 심지어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일자를 찾아야 함에 잠 못 이룰 때도 있을 수 있으나 그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진정 형통한 자, 참 평강 그리스도의 반쪽, 참 형통 그리스도의 반쪽 참 사람"으로서 주님 누림의 시간이다.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뚫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함께 하사 “찰라흐의 형통”을 마침내 영원무궁히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적 어려움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용기 내라,. 힘 내시라. 찰라흐의 하나님이 함께 하사 그 모든 것을 이기고 기쁨의 춤을 출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모래위의 두 발자국>이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날이 올 것이다....
어느 날 밤 난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는 꿈이었습니다. 모래 위에 두 발자국이 남겨졌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황혼이 되어 걸어 걸었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발자국이 하나만 있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으로 주님께 물었습니다.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가장 어렵고 힘들 때 주님은 어디로 가셨나요?” 주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야, 나는 너를 홀로 두고 떠난 적이 없단다. 시련과 고통의 순간에 보인 그 발자국은 너를 업고 간 내 발자국이란다.”
어느 날 난 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그 때에도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 여전히 하나 밖에 없는 발자국이었습니다. “주님, 정말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군요.” 주님께서 “그래 그때는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쳤었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지그재그로 엉망이 된 두 사람의 발자국이 보였습니다. “이건 무슨 발자국이죠?” 주님이 기쁨 가득한 얼굴로 대답하셨습니다. “ 모든 어려움이 지난 후 우리가 함께 즐거워 춤을 추었었지.”
.....그렇다. 어렵고 힘들 때 전능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찰라흐”의 형통, 능히 뚫고 이겨나가도록 도와 주사 마침내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한 후 우리는 주님과 함께 기쁨의 춤을 출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 날을 소망하며, 어떤 어려움과 힘든 일에도 믿음으로 나가시길..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형통한 사람'이었다. (창 39:2) 그러나 성경은 요셉 개인사적 형통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요셉 자신의 개인적 비전을 이루어 가는 역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비전(vision)을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에 대한 구원사이다. 그러므로 요셉 기사의 형통 사상은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 내용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시각이 분명해야 한다.
요셉의 형통 기사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하나님나라의 한 시점이요 부분',. 좁게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을 통해 열두 지파로 형성될 이스라엘 민족 국가를 이루시는 역사의 한 시점이요 부분이기에.... 그래서 성경은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에 '요셉의 역사'가 아니라, '야곱의 약전, 즉 야곱의 역사'(창 37:2)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요셉의 형통은 이와 같은 성경 자체의 관점을 통해 보고 들을 수 있어야 바른 것이다. 사람마다의 생각을 따라 입술에 널리 오르내리는 것과 같은 형통 개념이 아니다.
요셉의 형통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3)"는 말씀에서와 꼭 같은 개념의 형통이다. '복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나게 되어 있는 삶의 모습이다. 생명수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시냇가에 옮겨졌고 심기어진(수동형) 나무와 같이 복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잎사귀는 마르지 않게 될 것이며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나무는 주인의 뜻이 아니라면, 자신의 새로운 자리인 시냇가를 스스로 떠날 수 없다. 주인의 그 선한 뜻 안에서 이탈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마르지 않게 될 나무의 생명력과 시절을 따라 맺게 되는 그의 적절한 열매는 주인의 선한 뜻을 반영하게 될 것이니... 성경으로 말씀하고 있는 요셉의 형통이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통에는 희비(喜悲)와 고락(苦樂)이 늘 교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비전(vision)을 이루시는 역사 안에 있는 인생의 희비고락인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되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는 하나님나라의 큰 역사를 이루시는 한 시점, 한 부분을 감당케 하시는 생애를 살았던 것이다. 스데반이 설교하여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요셉은 다만 '하나님의 은총과 지혜'(행 7:10)로 살펴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나라 역사의 한 시점이요 한 부분으로 감당하게 되는 그의 세상을 성실로써 순종하여 살게 되었던 것이다.
요셉의 형통은 자신의 꿈과 비전을 이루려 하는 의지와 노력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 차원의 형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나라의 크신 역사 안에서, 그를 택하시고 세우셔서, 그로 하여금 그 역사의 한 시점과 부분을 적절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모든 은혜와 은사로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형통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요셉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것으로 말하려 하지 않고 행동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보내심을 받은 분'으로서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요 8:43)"는 말씀 그대로였다. 그들은 지금 그들의 '어떤 잘못된 방식'에 의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방식, 즉 자기 것으로 말하고 듣는 방식'에 의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고 밀씀하심이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즉 성령의 능력으로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람 자신의 해석을 통해 듣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 당신의 생각과 말씀이나 행위는 자신 '스스로의 것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하시는 말씀의 교훈,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시는 말씀인 것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는 마귀'(요 8:44)를 좇고(따라 부분적으로만 듣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보는 우리 심령의 눈과 귀가, 이와 같이 되어서는 안 되리라.... 우리는 지금 '십자가의 도'가 너무나도 분명한 신약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의 안목이 아직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듣는 틀 속에 갇힌 인간사적인 것이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는, 주의 말씀을 더욱 깊이 고민하며 기도해야 할 사람의 성경 안목인 것이다.
요셉의 형통은 하나님나라의 크신 구원의 역사 안에서의 형통이었다. 성경은 요셉이 자신의 개인적 비전을 품고, 그것을 이루어 나아가고 있는 인간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비전(vision)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큰일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는 창세전부터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비밀(골 1:26)이지만,. 그러나 이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십자가의 도'로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타내신 은혜와 진리인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삶의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좇아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원인과 과정마다에서 또한 감사의 결과를 산출해 주시며 감사하게 하신다. 또 그 감사의 결과 위에 더욱 큰 감사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 계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는 이와 같은 은혜와 진리가,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하게 하고 계심이다(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 모두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요셉의 형통과 꼭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 .. [526. 목마른 자들아]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대상35장에 의하면 35만명 운집..1차 통일 이스라엘 총회) 다윗에게 (그들 스스로)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택하신 바 된, 한 형제됨 확증 :: 아브넬, 이스보셋의 죽음과 무관함 객관적 보증!!-->입헌군주제 형태 :: 아브넬도 이를 확신하고서 협상했었다)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일편단심+충성된 목자됨 확신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신학적 해석..도토리 속에 이미 상수리 나무가 감추어져 있음..작은일에 충성된 자라야 큰 일 맡아 능히 충성되게 해낼 수 있음!! = 참 믿음에서 나오는 오래참고 기다림 배운 바, 평강 안에서 주님의 시간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참 지혜....참된 용기와 담대함) .....주님은 한사람의 소시민적 일상 속에 주님 나라에서의 감당할 바 직역을 감추어 놓으셨음..목자였던 다윗을 [쟁취 위한 피흘림 없이!! 자발적 동의와 원함으로 인한 언약 맺음 통해..3번의 기름부음 받음 통해!!]이스라엘의 참 목자 되게 하고 계심.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베리트(하나님과 사람), 카라트(사람과 사람)]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삼하3:21...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이는 아브넬도 그 필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그 절차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바였다..(상호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믿음과 사랑의 목자-주권자 삼음의, 자발적 권한 위임인바 "참된 권위 = 엑수시아"임을 명심하라...동일한 헬라어 단어, 엑수시아를 쓰지만 "(세상) 권력"은 일방적 폭력 휘두름으로 쟁취-행사하는 폭력 휘두름 허용함일뿐이다.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주님의 때 기다리면서)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JC만난 참 믿는이-거듭난 자-JC로 사는자, 그대 자신이 본질로, 언약적기초인 말씀하시는 Q께로 돌아가야 한다!!... 주님과의 언약적 기초가 중요하다!!....죽을 때까지 견고한 심지로 아버지의 뜻따라 살아가신 변함없는 언약지킴이이신 JC와 함께 살며 거하며 걸을 때, 이 JC의 지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자가 될 것...다윗을 그렇게 만드사 [일편단심, 산 믿음-소망-사랑의 (아벨처럼..언약의) 사람으로 젊었을때부터 임마누엘로 함께 하사 붙드신 하나님!!..]..그와 함께 지내면서, 가까이 하는 주변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나(아둘람 동굴-->엔게디 광야-->시글락 공동체-->헤브론..)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 그를 닮아갔다!!
===다윗이 시온[= 모리아 산]을 빼앗아 성을 둘러 쌓다 ..[305.나 같은 죄인 살리신]..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행13:22, 삼상16:1-18)] 뭘 모르는 세상, 기만/포로-오도/착각-가스라이팅당함/죄 중독-저주 가운데 마귀사탄, 원수 대적자의 대변하는 입술이 되어 "네 꼬라지를 보라..네가 감히.."라고 "나 예수께로 나아오라"고 초대하여 부르신 분께 나아가 영접하여 거듭남으로 주와 하나됨을(=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 점령함이다) 막아서고자 하나 누가 주님보다 강한가!!....
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함-가나안의 후손)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다윗이 점령하기전까지 예루살렘 점유 중이었던 여부스족속...[속설에는]그들의 신전 사제 서임 위해서는 [참된 시력-시선 없앰]눈을 빼거나 [참된 자발적 순종 없앰] 다리를 분질렀다??)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빗대어 경멸하는 조롱의 극치!!]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단단한 바위로 온통 사방이 둘러싸여 있는 바 난공불락의 지형적 잇점 가진 철옹성 형태였기에, 그때까지 완전점령한 자가 없었기에 ..그 누구도 점령불가였던것처럼!!)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내게 나아오라" "할 수 있다...하거라-허락한다" 하신이는 전능자 주 하나님!!, 그에게 성밖 기혼 샘으로부터 성내로 잠입하는 돌파의 길[수직 수로..끌어 올려 물 깃는 통로] 보여주셨으니!!]다윗이 [수하 몇사람과 함께 특공 기습부대로 수로 통해 침입-공략하여]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다윗을 위해 남겨두셨음....예기치못한 새로운 선물 ::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서 통일 이스라엘에게 주님이 허락하신 예기치 못한 깜짝선물로서 제공!!)
......##Zion의 본래 뜻(이중적) ::건조한 땅/사막 + 산마루 반석/바위 천연 요새...그러나, 거기에 기혼 샘이 터져나오고 기드론 시내 골짜기기 있다..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성령 따르라...구주JC이름 불러 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라, 회개하고 주께 주도권 넘겨드리라]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JC이름으로 기름부음 받은이의 모독/방해자를!! 대적하라...하나도 남기지 말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하나님의 내소인]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이는 결코 장애인 비하가 아님..[마태복음 21 장 14절 /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워렌의 수갱 Warren's Shaft--‘워렌의 수갱’은 영국 엔지니어 찰스 워렌(Charles Warren)이 1867년에 발견한 수직 갱도.....이는 예루살렘 밖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예루살렘의 주요 수원 기혼 샘에서 산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수직 갱도.....다윗이 정복하기 이전에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시온 산성(다윗이 정복한 후 다윗 성이라 불렀고, 다윗 시대의 예루살렘이다)은 산 위에 있었다. 물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요 수원인 기혼 샘에서 물을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 시온 산성에서 곧바로 기혼 샘의 물을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산성에서 계단으로 된 터널과 수평 터널을 거쳐 워렌의 수갱에 이르게 되고, 물동이를 이 수갱으로 내려서 기혼 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여 있는 구멍(sinkhole)에서 물을 길어 올렸다. 워렌의 수갱의 길이는 대략 14m 정도...(최근 라이흐(Reich)와 슈크론(Shukron)이란 학자는 다윗 시대에 워렌의 수갱이 물이 흘러가는 수로로 사용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성 안의 사람들이 지하로 들어갔다가 자연 동굴 통로로 가서 기혼 샘에 있는 망루에 내려가서 거기에 있는 커다란 웅덩이 물(기혼 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인 웅덩이)을 길었다고 말한다.)....다윗이 여부스 족속의 시온 산성을 정복할 때 요압이 이끌던 다윗의 군대는 아마도 이 기혼 샘에서 워렌의 수갱을 통해서 산성으로 올라갔거나(사무엘하 5:8). 아니면 지금은 막혀 있는 자연 동굴 통로(Natural Tunnel)로 여부스 족속의 시온 산성으로 침입했을 것이다.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기혼샘 아래에 있는 밀로로부터 외벽을 세워 둘러 근원을 보호하였음...나선형 또는 계단식으로..기혼 샘이 노출되지 않도록] 성을 둘러 (새로이 성채 있는 외벽을)쌓으니라 [=더 이상 변치 않도록 주님이 지키심]
......(기도하며 궁구하는 다윗, 그들의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시온산 주변의 물 긷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따라가다가, 마침내 간헐적 분출 동반하는 마르지 않는 기혼샘을 발견-->여기로부터 물을 끌어 성내에 공급하는 성내로 연결된 수로(=워렌의 수직 갱도) 발견 :((:: 간헐적 용출천인 기혼샘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수로를 만들어서 성내로 공급함)), 바로 그 수로를 타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성 점령....나중에 히스기야때는 앗수르와의 전쟁을 예견하여 [기드론 골짜기로 흐르는]기혼 샘 지류들을 전부 봉쇄하여 막아버리고 기혼샘 근처 실로암 못(=물 저장고...구 예루살렘 동남쪽에 외부로 노출된 인공 연못...나면서부터 눈먼 맹인에게 침으로 흙을 개어 눈에 바른 후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셨음..요9장)으로 통하는, 성 안으로부터 수직-계단-경사식으로 내려가 533미터의 수평에 가까운 (히스기야) 터널을 통해서만 물이 흐르도록 터널을 만들었고(워렌의 수직 갱도와 연결시켰음) 이를 통해 성 안에 물을 끌어 올렸다고 봄)
......(([또 하나의 간헐천 베데스다 못가에 친히 가셨던 예수님은...(낫기를 원하는!!) 38년된 중풍병자를 낫게하셨다!!] '베데스다'의 뜻은 '자비의 집, 은혜의 집'........베데스다 연못은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있는데 양쪽에 두 개의 문이 있는 양문이 아니고, 가축의 양의 문...그 문을 '스데반의 문'이라고 한다....양의 문이라는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에 제물을 드릴 속죄양들을 이 문을 통하여 들어왔기 때문... 지금도 이 연못이 남아 있으며 그곳에 기념 교회가 세워졌고, 스데반의 문 위쪽에는 지금도 양을 사고 파는 장터가 있다....베데스다의 연못에서 주님이 사랑의 기적을 베푸셨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연못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대신해 속죄의 제물로 죽어갈 양들이 그 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을 것...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요1:29절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기혼 샘은 다윗 성, 곧 예루살렘의 주요 수원(water source)이었다. ....예루살렘의 동쪽, 곧 기드론 골짜기로 물을 흘려보내는바, 밀로 아래쪽(밀로는 기혼 샘의 덮개에 해당함)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전, 여부스 족속이 시온 산성에 있을 때도 기혼 샘은 그들의 주요 수원이었다. 이 기혼 샘은 간헐천이어서 건기인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 정도, 우기인 겨울에는 하루에 네댓 번 정도 솟아올라 물을 기드론 골짜기로 흘려보내서 1년 내내 예루살렘에 신선한 물을 공급했다(오늘날도 히스기야 수로를 통해서 흐르는 신선한 기혼 샘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족속들은 물을 안정되게 공급받기 위해서 기혼 샘에 수조처럼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실로암 못이 바로 그 샘물 저장소로서, [예수님 당시에도] 그 흐름이 성 안 외부로 연결-노출되도록 해 놓아서 성 안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였었다....성경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된 후 여부스 족속이 정착하고 있던 시온 산성, 곧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 “물 긷는 데”, 곧 수로를 이용해 산성 안으로 침입했다고 전한다(삼하 5:8, 이 블로그 “다윗의 성” 항목 참고). 여부스 족속은 기혼 샘의 물이 모이는 수로에 물동이를 넣어서 물을 길었을 것이다. 이 수로는 아마도 수직 갱도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수직 갱도가 워렌의 수갱(Warren's Shaft)라고 본다.
----기혼의 샘과 실로암
실로암은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데, 구약에서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사 8:6), ‘왕의 동산 근처 셀라못’(느 3:15), 그리고 앗수르 왕 산헤립과 히스기야의 전쟁에서 히스기야가 수로를 만든 이야기에서 ‘아래 못’으로 등장한다.
옛 예루살렘 성에는 물을 공급받는 길이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성 밖에 있는 ‘기혼의 샘’에서 물을 공급받는 것이었다. 기혼의 샘은 예루살렘 성의 존립 여부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다윗 성’이라 불리는 옛 예루살렘 성은 기혼의 샘을 기준으로 샘 근처에 세워졌다. 다윗이 여부스 족속이 이전에 예루살렘 땅에 쌓은 성을 정복할 때에도 기혼의 샘을 먼저 점령하고, 그 물길을 통해서 공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는 영적인 의식을 행할 때 기혼의 샘이 그 장소로 많이 쓰였다. 예를 들면, 솔로몬이 이곳에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군사들이 물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기혼 샘만 제외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았으며, 하나님의 지혜 대로 수로(터널)를 만들어서 (지하저수지인 실로암 못[=아래 못]에 저장되도록 만들고) 그 기혼 샘의 물 흐름을 실로암 못에서 히스기야 터널(수로)로 저절로 흐르도록 성안으로 이끌어들여 수직갱을 통해 길어올림으로써 물을 공급받았다. 그렇게 판 히스기야 터널의 끝이 기혼 샘 옆에 있는 실로암 못이다....(한편, 예루살렘 동남쪽, 기혼 샘 가까이에 있었던 옛 못(old pool...= [예루살렘 동쪽골짜기쪽] 폐쇄시킨 기혼 샘 못)을 윗못이라 불렀고, 여기서 산헤립의 군대사절단이 유다의 대표와 만났었다..)
---히스기야 터널
히스기야 터널은 어른 걸음으로 30분 가량 걸어야 터널을 다 통과할 수 있다. 터널의 높이는 2m 정도 되며, 폭은 한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
18세기 중반부터 고고학자들에 의해 히스기야 터널과 실로암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고, 18세기 말에 한 아랍 소년이 돌에 새겨진 비문을 발견하면서 모든 것이 밝혀졌다. 이 비문을 ‘실로암 비문’이라고 하는데, 비문에는 수로가 어떻게 파여졌는지 당시의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 터널은 남쪽과 북쪽 양쪽에서 꼬불꼬불하게 파들어 갔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중간 지점에서 양쪽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정확하게 만난다. 전체 길이는 무려 533m에 이른다. 공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실로암 비문에서 당시 공사자들의 증언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3규빗을 남겨두고 상대쪽의 목소리가 들렸다. 터널이 뚫렸고 우리는 서로 껴안고 철도끼(혹은 곡괭이)를 서로 부딪치게 했다. 샘에서부터 일천이백 규빗의 물이 흘러나왔다.”
-[--실로암 못
실로암은 ‘아래 못’으로 불렸는데(사 22:9), 왕의 처소와 가까이 있었기에 당시에는 ‘왕들의 연못’으로 불리기도 했다. 옛 실로암은 길이 17.4m, 폭 5.4m, 깊이 5.7m의 돌로 된 인공 못이었다. 지금은 옛날 모습은 없고 그 형체만 조금 남아 있다. 신약 성경에는 실로암 망대 사건이 나오는데(눅 13:4), 무너졌다고 추정되는 망대는 실로암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유적 발굴팀에서 망대의 아랫부분을 발견했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예수님 시대에 실로암의 물은 침례와 같은 유대교인들의 종교의식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한 가지 아는 것은…
실로암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가장 떠오르는 이야기는, 히스기야와 산헤립의 이야기도 아니고 실로암 망대 이야기도 아니었다. 바로 예수님과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의 이야기였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기독교 순례자들은 저마다 요한복음 9장 이야기를 떠올리며 가이드의 인도로 실로암을 찾을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9장 이야기 속에는 복음의 비밀이 여럿 숨겨 있다.....당시에 소경이나 절름발이 같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 사이에서 죄로 인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말미암은 것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통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셨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도구인 것이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바로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는데,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그의 눈에 바른 후 그를 실로암으로 보내셨다. 그리고 얼마 후,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에 내려간 소경은 눈이 온전히 나아서 돌아왔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했던 바로 그 소경이었다가 나은자의 이야기가 굉장히 감사하다. 그의 부모도 유대교인들이 두려워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그는 유대교인들을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거세게 몰아세울 때 담대히 이렇게 말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 9:25)....이 말은 소경이 된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간증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아만 장군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엘리사 선지자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가 문둥병에 걸렸던 몸이 깨끗해졌다. 아마 나아만도 사람들에게 “내가 전에는 문둥병자였으나 지금은 깨끗해졌나이다” 하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간증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 값을 갚으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 내가 거듭났다. 그 후로 나도 소경이었던 자나 나아만처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전에는 더러운 죄인이었으나 지금은 깨끗한 의인이 되었습니다.”....소경이었던 사람은 성경도 잘 모르고, 유대 종교인들만큼 신학적인 지식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종교지도자들이 가진 모든 사상과 이론을 이기고도 남았다. 우리도 거듭난 후 우리를 깨끗하게 한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에 있어서, 우리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모든 지식과 이론을 깨뜨리고 이기는 것을 본다. 이런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비결이다!!...지속적으로 끝까지 그 안에서 새로와져야 함)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가돌(being greater and mmore) = 강성 <----형통...모든 것 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그분 자체가 확장증대됨) ::: 창39:2, 3..(찰라흐 ::: 형통 = 진전/발전-번성-번영-창대)
----[창39:2,3...*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시23:..((유족=무한자족하시나 사랑이신 주님, 그분을 위하는 크기따라 형통-위대하게 하시는 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길로 인도하신다)).*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요삼2-4, ((잘됨 [= 형통+ 강건 = 번성-번영-창대...참 신앙으로 진리 안에 살아감..시1편, 팔복의 삶]은 언약적 관계 온전-완전-순전-순결함 회복으로부터 :: 주님과의 언약적 교제 안에서==>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확장...곧, JC로 사는, 거듭난 영혼의 관계적 회복 = 관계적 형통이 바르게 세워지고 유지되는 것이 참 형통이다--주로부터!! 와야 형통함 온다))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2 Beloved, I pray that in every way you may succeed and prosper and be in good health [physically], just as [I know] your soul prospers [spiritually]. 3 For I was greatly pleased when [some of the] brothers came [from time to time] and testified to your [faithfulness to the] truth [of the gospel message], that is, how you are walking in truth. 4 I have no greater joy than this, to hear that my [spiritual] children are living [their lives] in the truth.]
......[사26:1-21...제26장..((여호와께서 백성에게 승리를 주시리라))..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5. 높은 데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11.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들을 사르리이다 12.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13.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4.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15.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 18.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 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 놓으리로다 ((심판과 회복)) ...20.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21.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덮지 아니하리라]
-----***JC안에 거함([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심]믿음-소망-사랑 ==> 8복 + 성령의 열매)==>견고한 심지의 동행 =임마누엘로 인한 형통(찰라흐)에로 이어짐***----증인 됨의 나날!!
===찰라흐....형통하다 = 돌진하다/돌파하다, (주님의 영원한 경륜적 갈망 이름 위해, 예비하신 바 다루심 과정 그대로 다 거쳐서 마침내 뜻하신 바 그 뜻 그대로, 궁극적으로 영원에 이르도록) 외부적 환경과 장애, 즉 일시적 풍열수습조한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돌파하고 극복함 통해, 곧 엄동설한 뚫고 새싹 나고 꽃 피고 열매 산출-성숙-거둠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 보기에 기쁨이 되는, 시종여일하게, 참되게) 번성-번영-창대케 되다 ===
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 나를 지으신이, 부르신이, 보내신이가 하나님!! ......다른이가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 해도, 주님이 주셨기에 바로 그것을 !! 너무너무 귀하고 보배롭게 여기는 바로 그 사람이 주께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오 놀랍도다!!, 주님을 발견하는 그대여!!
.....이 사건을 바라보는 다윗의 영적 해석 :: 넘치는 은혜의 주님께서 두로 왕 히람에게 자발적 선제적 화친 행위로서 (그의 마음 감동시키심 통해) 왕궁 건축이라는 선물 제공, 이그런 마음 주시고 를 허락하신 분은 여호와이시니, 자기를 통일 왕으로 기름부으셨음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분의 맡기신 백성을 잘 섬기는 목자 되라] 하심이니, 이는 오직 전적인 은혜로 그리하셨음을 감사함.....자랑거리가 하나도 없음 인정하며 마음 중심에 새겨 다짐함..(비록 넘어져도, 십자가로 넘어진 다윗이었다!!) :: 비른 믿음은 바른 깨달음!!..사랑스럽게 볼 수 밖에 없는바, 주님의 기쁨이다!!
((두로왕 히람의 고백)) 다윗이여!!...그대를 보니 살아계신 천지의 주재 참 하나님을 보는 것 같도다.. 살아계신 하나님 믿고 살고 누리는 그대를 보니 그대와 함께 하며 살아계신 하나님 만나고 싶고 뵈며 그분으로 살고 싶네..그분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그분에게 헌정하는 선물 드리고 싶네...나도 그대의 예배 무리에 끼워주게나....이제 알았도다..!!
===다윗의 아들과 딸들 ::: 시편45편.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보게 될 바, 어린 양의 아내, 예수님의 신부인 유기적 생명 공동체 = 단체적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표상함
[((이스라엘의 왕도))신17:14-20...14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주시는 그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살 때에, 주위의 다른 모든 민족같이 당신들도 왕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 15 당신들은 반드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당신들 위에 왕으로 세워야 합니다. 당신들은 겨레 가운데서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고, 같은 겨레가 아닌 외국 사람을 당신들의 왕으로 세워서는 안 됩니다. 16 왕이라 해도 군마를 많이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되며, 군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이집트로 보내서도 안 됩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는 당신들이 그 길로 되돌아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7 왕은 또 많은 아내를 둠으로써 그의 마음이 다른 데로 쏠리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자기 것으로 은과 금을 너무 많이 모아서도 안 됩니다. 18 왕위에 오른 사람은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되어 있는 2)이 율법책을 두루마리에 옮겨 적어, 19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으면서, 자기를 택하신 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성심껏 어김없이 지켜야 합니다. 20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기 겨레를 업신여기는 일도 없고, 그 계명을 떠나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도 않으면, 그와 그의 자손이 오래도록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게 될 것입니다."]
13.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14.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밧세바의 4 아들들.
15.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16.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하나님의 뜻하신바 경륜적 갈망 이룸에 동참하는 산 믿음의 길 그대로 따라 주와 하나됨의 길 따르는 이들에게 주어진 번성의 약속들)...
[창15: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17:1-14(2,6)..*1.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옛사람, 타락한 사람인 육체의 죽음 선포, 실행!!...거듭난 자로서!!, 새로운 날마다 새롭게!! 주 영따라-말씀따라-보혈 능력으로 살기를 배워 실행함에서 전진함!!)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세례] *12.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히6:9-20(14)...*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다윗이 블레셋을 쳐서 [두번 다]이기다...[407.구주와함께나죽었으니]
.....블레셋은 물러났고, "주와 하나" 안에 있는자에게는 오직 승리뿐, 더 이상 궁극적 패망은 없지만(롬8:28, 약4:7-10, 고전15:57-58), 믿는이의 유익 위해 날마다 또 온다(매일 [세상-육신-자아]라는 블레셋 패잔병들이 괴롭히리니, 예수이름으로 끝까지 분별-대적하고 이김/승리 주심 감사하라) :: 새로운 날, 날마다, 새로이 나아가 여쭈라...매일 새로이 말씀하시며 새 전략 일러주시는 분.[36.주예수이름높이어]..보좌에계신이와어린양께, 약한나로강하게 세상의유혹시험이..
.....[사람들을 두려워 말라...하나님은 친 아빠이다!!...뻔하고 당연하게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것조차 주 이름 부르라, 주님께 여쭈고 듣기, 곧 기도하고 행하기를 연습하여 전존재에 배어들도록,자연스럽게 실행하라!!...십자가는 모름지기!! 성패와 무관하게 (친밀함으로) 주 이름 부름이다, 그 자체이다....여쭈어 묻고 대화하며 듣고 행하는 자리이다!!...하나님이 하시기에 전적으로 옳으시다...아파도-슬퍼도 주님이시기에 전적으로 옳으시다!!]
###구약시대 인도함 받기...[삼상23:7-14.....9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12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13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삼상 30:7-8...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삼하2:1-3...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2.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3.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신약시대를 사는. 이땅에 오사 아버지의 모든 말씀 전해주셨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바 된,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의 우림-둠밈은 오직 성경과 성령, 곧 말씀과 성령 안에서의 직접 듣는 기도::: 기뻐하시는 분,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우리 아버지이시다!!......[..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주님의 말씀으로 마음과 입에 채우고 속삭이며 주께 사랑-신뢰함으로 주이름 부름으로 여쭈고, 때로 부르짖으며 선포하고 상상하고 감사하며 그 다음에 하게 하실 일 믿는 눈으로 바라보라..
[민14::26-35(28)......*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시81:1-16(10)...1.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2.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3. 초하루와 보름과 우리의 명절에 나팔을 불지어다 4.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5.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아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6.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7.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8.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13.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14. 그리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들을 치리니 15.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는 그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그들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되리라 16.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
17.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18.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19.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참 신앙은 (알더라도) 주 하나님께 묻는것.....순종 안하려면 묻지말리..내가 나아와 대화하며 묻기를 그토록 기다리시는 분, 친아버지-주인-상전께 물으면 그분의 일 되고, 묻지 않으면 내일이 됨..묻고 답 얻었으면 답 얻은 그대로 순종해야 함]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20.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21.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한곳에 모아 태워 살라]치우니라
----불신자들은 무력하지만, 믿는이마다에게 주님은 그의 전능하심을 보이신다!! ::: 세상의 의지하는 바 그 우상을 치워 태워불살라버리는 것이 믿는이의 마땅한 바...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라 (대상14:8-17)
----사울의 길보아 산 전투 패전 결과로 이스라엘 전역에 속속들이 블레셋 점령지화 되어 우상이 가득하게 되었던 바, 그 회복 개시 전환점이 되었음
22.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23. 다윗이 [어찌할지]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24. 뽕나무[=발삼나무 덤불]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오늘도 주 안에서 이미 이긴자로서 산 믿음 -사랑으로 주께 나아와 듣고 행하라!!
[엡6:10-20...*10.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시37....*1.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12.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13.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14.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15.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16.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17.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18.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19.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20.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21.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22.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23.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27.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28.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29.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30.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31.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32.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33.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34.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35.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36.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37.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38.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39.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40.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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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5장
1. Then all the tribes of Israel came to David at Hebron and said, "Behold, we are your bone and your flesh.
2. "Previously, when Saul was king over us, you were the one who led Israel out and in. And the LORD said to you, 'You will shepherd My people Israel, and you will be a ruler over Israel.'"
3. So all the elders of Israel came to the king at Hebron, and King David made a covenant with them before the LORD at Hebron; then they anointed David king over Israel.
4. David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forty years.
5. At Hebron he reigned over Judah seven years and six months, and in Jerusalem he reigned thirty-three years over all Israel and Judah.
6. Now the king and his men went to Jerusalem against the Jebusites, the inhabitants of the land, and they said to David, "You shall not come in here, but the blind and lame shall turn you away"; thinking, "David cannot enter here."
7. Nevertheless, David captured the stronghold of Zion, that is the city of David.
8. And David said on that day, "Whoever would strike the Jebusites, let him reach the lame and the blind, who are hated by David's soul, through the water tunnel." Therefore they say, "The blind or the lame shall not come into the house."
9. So David lived in the stronghold, and called it the city of David. And David built all around from the Millo and inward.
10. And David became greater and greater, for the LORD God of hosts was with him.
11. Then Hiram king of Tyre sent messengers to David with cedar trees and carpenters and stonemasons; and they built a house for David.
12. And David realized that the LORD had established him as king over Israel, and that He had exalted his kingdom for the sake of His people Israel.
13. Meanwhile David took more concubines and wives from Jerusalem, after he came from Hebron; and more sons and daughters were born to David.
14. Now these are the names of those who were born to him in Jerusalem: Shammua, Shobab, Nathan, Solomon,
15. Ibhar, Elishua, Nepheg, Japhia,
16. Elishama, Eliada and Eliphelet.
17. When the Philistines heard that they had anointed David king over Israel, all the Philistines went up to seek out David; and when David heard [of it,] he went down to the stronghold.
18. Now the Philistines came and spread themselves out in the valley of Rephaim.
19. Then David inquired of the LORD, saying, "Shall I go up against the Philistines? Wilt Thou give them into my hand?" And the LORD said to David, "Go up, for I will certainly give the Philistines into your hand."
20. So David came to Baal-perazim, and defeated them there; and he said, "The LORD has broken through my enemies before me like the breakthrough of waters." Therefore he named that place Baal-perazim.
21. And they abandoned their idols there, so David and his men carried them away.
22. Now the Philistines came up once again and spread themselves out in the valley of Rephaim.
23. And when David inquired of the LORD, He said, "You shall not go [ directly] up; circle around behind them and come at them in front of the balsam trees.
24. "And it shall be, when you hear the sound of marching in the tops of the balsam trees, then you shall act promptly, for then the LORD will have gone out before you to strike the army of the Philistines."
25. Then David did so, just as the LORD had commanded him, and struck down the Philistines from Geba as far as Ge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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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5장 (개요)
아브넬이 사울가를 버린 일, 그가 살해된 일, 그리고 이스보셋의 죽음 따위가 혁명의 완성과 전(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다윗의 군림을 얼마나 도왔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직후 좋은 변화가 뒤따라온 것만은 확실하다. 여기서는 그것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된다.
1. 다윗은 전(全) 부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다(1-5).
2. 그는 시온이라는 요새의 주인이 된다(6-10).
3. 자기의 집안을 세우고 나라 속에서의 자기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11,12).
4. 이 일 후에 태어난 그의 자식들(13-16).
5. 블레셋을 쳐서 이김(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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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全) 이스라엘의 왕 다윗(삼하 5:1-5)
Ⅰ. 온 지파들이 다윗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한다(당시 이들은 목자없는 양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선 그를 자기들의 왕으로 인정한다. 다윗이 결단코 이스보셋의 살해를 찬성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생긴 유리한 조건들을 선용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제의를 수락했다. 유다 지파는 이미 7년 전부터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다윗 치하에서 그들이 누렸던 평안과 행복은 다른 지파들도 다윗에게 궁정을 바치도록 종용했던 것이다.
각 지파에서 몇 명이 나왔으며, 어떤 열의와 성의로 나왔으며, 헤브론에서 3일을 지내면서 그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그때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다윗을 왕으로 삼았다―하는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다(대상 12:23-40). 여기서는 그들의 연설 요지와 다윗을 왕으로 삼으려는 그들의 이유가 나와 있다.
1. 다윗에 대한 그들의 관계가 다소 동기가 되었다. “우리는 당신의 골육이니이다(1절). 당신은 우리의 골육이요, 이방인이 아니며, 율법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왕이 될 분일 뿐만 아니라(신 17:15) 우리는 당신의 것이옵니다.” 즉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당신의 골육으로 여기실 뿐만 아니라, 사울과 그의 집과는 달리, 사람이 자기 집안 사람들에 대하여 갖는 그런 지극한 사랑을 우리에게 대하여 가지고 있음을 아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골육이니이다. 그러므로 이 오랜 내란을 종식하는 것을 당신도 기뻐하리이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며, 보호하시고, 우리의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옵소서.”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왕으로 삼는 자들은 그에게 이런 환원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주의 골육이니이다. 주는 모든 점에 주의 형제들에게처럼(히 2:17) 되었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통치자가 되시옵고 이 멸망을 주의 수하에 두옵소서” (사 3:6).
2. 그가 이전에 민중에게 행한 훌륭한 봉사는 더 한층 좋은 동기가 되었다(2절). “사울이 왕이었던 때에도, 그는 그림자였고, 당신이 실상이었으니, 이스라엘을 주관하신 자는 당신이었나이다. 그리고 당신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온 자이니이다. 그러므로 이 공식 중의 보좌에 당신보다 더 적합한 자 누구오리까?” 작은 일에 충성한 자는 보다 큰 일을 맡게 된다. 우리에게 베풀어진 이전의 훌륭한 직능들은 기회가 있는 대로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이 좋다.
3. 하나님의 명령은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일지니라.” 즉 너는 그들을 다스리라. 방백들은 목자처럼 자기 백성을 먹이며, 매사 그들의 편익을 도모해야 하며, 먹어야 한다. 그들을 탈취해서는 안 된다. “너는 평화시에 다스리는 왕이 될 뿐 아니라, 전시에는 전쟁 사령관이 될지니, 진영의 온갖 수고와 위험에 대처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고, 이제 마침내 필요성에 의해서 그들이 그리로 나아가게 되었으니, 말도 역시 그렇게 하게 된 것이다.
Ⅱ. 다윗의 공식적이고 엄숙한 취임(3절). 각 도성의 대회가 소집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다윗에게 나아왔다. 계약이 체결되었다. Pacta conventa―즉 계약들이 세워지고, 쌍방이 서명을 했다. 다윗은 평화시에는 그들의 사사로서, 전시에는 그들의 사령관으로서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들의 “동맹자가 되었고.” 하나님이 그 증인이 되셨다. 그리고 장로들은 그에게 복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맹은 “여호와 앞에서” 맺어진 일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세 번째로 왕으로서 부름을 받았다. 그의 승진은 점진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신앙이 시련과 연단을 받았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의 나라는 메시야의 나라의 한 예표가 되었다. 메시야의 나라도 점차적으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우리는 아직 만물이 그에게 굴복한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히 2:8). 그러나 마침내는 그런 일을 보게 되리라(고전 15:25).
Ⅲ. 그의 치적과 연한에 대해서 일반적인 기록이 나와 있다. 그가 왕이 될 때 나이는 30이였고, 그 때 사울이 죽었다(4절). 바로 그 나이에 레위인들은 비로소 자기들의 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민 4:3). 다윗의 자손 예수도 그 나이쯤에 공무를 시작했다(눅 3:23). 그때에야 사람은 판단력에 있어서 완전히 성장하는 것이다.
그는 도합 40년 6개월을 통치했다. 그 중 7년 반은 헤브론에서 33년은 예루살렘에서였다(5절). 헤브론은 유명했었다(수 14:15). 그곳은 제사장의 성읍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더욱 유명해져야 했고, 더욱 거룩한 도성이 되어야 했다. 위대한 왕들은 각기 자기의 도성을 세우고 싶어한다(창 10:11, 36:32-35). 다윗도 그러했다. 예루살렘이 바로 다윗의 도성이었다. 그것은 성경의 끝까지 유명한 이름이다(계 21장). 거기에 보면 새 예루살렘이란 것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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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성 시온(삼하 5:6-10)
멜기세덱이 왕으로 있던 곳, 살렘이 바로 예루살렘이라면 (시 76:2 를 보면 그런 것 같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시대부터 유명했다. 여호수아는, 자기의 시대에, 예루살렘을 가나안 남부의 중심 도시로 만들었다(수 10:1-3). 그곳은 베냐민 지파의 몫이었다(수 18:28). 그러나 유다의 땅과 밀접하게 붙어 있었다(수 15:8). 유다의 자손들이 그 도성을 차지했었다(삿 1:21). 그러나 베냐민의 자손들은 여부스 사람들이 자기들과 함께 사는 것을 허용했다(삿 1:21). 그래서 여부스 사람들이 점점 강성해지자, 그곳을 “여부스 사람들의 성읍”이라 했다(삿 19:11). 이제 다윗은 자기가 전(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직후에 첫 원정으로 여부스 사람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했다. 원래는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울가에 충성하던 베냐민 지파가 자기에게 복종하기까지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일 것이다(대상 12:29). 여기서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Ⅰ. 여부스 족속은 다윗과 그의 군대를 무시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소경과 절뚝발이들을 물리치기 전에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6절 개역과 다름―역주). 그들은 다윗에게 이렇게 분노를 자극하는 전갈을 보냈다. 그들은 나중에 다른 기회에 한 말처럼, “어떤 적도 예루살렘의 말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애 4:12).
그들은 적어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1. 자기들의 신의 보호에 대한 신념. 그러나 다윗은 그 신들을 경멸하여 “소경과 절뚝발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발이 있으나 걷지 못하기”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 도성의 수호신이다. 네가 이들을 물리치지 않고서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혹자들은, 그 신은 놋으로 만든 별 자리의 우상이며, 요새의 은밀한 곳에, 보호 구역에 안치해 두었을 것으로 본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을 “마우짐” 곧 “요새”(단 11:38)라고 불렀다. 그 자체가 요새에 의지해 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이 우리의 강한 망대이니”, 그의 팔이 튼튼하고, 그의 눈이 투시력을 가지고 있음이로다.
2. 또는 자기들의 요새의 힘을 믿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요새가 천연적으로든, 인공적으로든 너무도 난공불락의 성으로 방비되어 있으므로, 비록 소경이나 절뚝발이들도 충분히 적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특별히 시온의 요새를 의지하고 있다. 아마 그들은 성벽 위에다가 소경과 절름발이들―병자든 처벌을 받은 죄인이든―을 세워두고 다윗과 그의 군대를 비웃게 하며, 그들이라야 다윗의 적수가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부상당한 자들만 남아 있었지만, 공격자들은 능히 격퇴하리라고 믿었다. 예레미야 37장 10절과 비교하라. 하나님의 백성의 대적들은 흔히 자기들의 힘을 신뢰하며, 자기들의 몰락할 날이 다가왔을 때에도 아주 안심하고 있은 것이 보통이다.
Ⅱ. 다윗은 여부스족을 치는데 성공한다. 그들의 교만과 무례가 다윗을 놀라게 하기는커녕 원기를 돋우어 주었다. 그래서 다윗은 총공격을 하면서 부하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누구든 여부스족을 칠 자는 하수로 내려가서 저 소경과 절뚝발이를 치라. 그들이 우리와 우리 하나님을 모독하려고 성벽 위에 세워져 있도다.” 그들은 어떤 불경스런 말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다윗의 미움을 샀을 것이다. 8절의 말씀을 그렇게 읽을 수 있다. 현재와 같은 해석(흠정역)은 역대상 11장 6절에서 따온 것이다. 거기에 보면 단지 여부스족을 쳤다는 말만 나온다. 소경과 절뚝발이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여부스 사람은, 자기들의 신상이 자기들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소경과 절뚝발이도 이 집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즉 (그레고리 씨의 해석대로) 그들은 더 이상 자기들의 부적을 믿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그 신상들을 존경하지 않을 터였다. 다윗도 그 요새를 점령하고 나서 역시 그런 말을 했다. 자기를 예배하는 자들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이 신상들을 더 이상 그 자리에 둘 수가 없다고 했다.
Ⅲ. 다윗은 시온에다 도읍을 정했다. 이제는 안전한 요새에 거하게 될 것이다. 한 때는 그에게 대항하고 위협적 존재이던 자들도 이제는 그의 안전에 기여했다. 그리고는 자기의 수행원들과 호위병들을 위해서 그 둘레에다 집을 지었다(9절). 그 집은 밀로(마을 회관이나 정부 청사 같은 곳)로부터 시작하여 안으로 지었다. 그는 계속 진행했고, 그의 손이 닿은 모든 일은 잘 되어갔다. 명성을 떨치게 되고, 권세와 재산이 갈수록 더해갔고, 자기 백성들이 보기에는 점점 영예로왔고, 적군들의 눈에는 두려운 인물이 되어갔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자기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뜻대로 이용하시며 당신의 목적을 이루신다. 그런 그분이 다윗과 함께 하사, 그를 지도하시고 지키시고 번영케 해 주셨다. 만군의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자들은 인간들이나 마귀의 무리들이 대적해 올지라도 겁낼 것 없다.
크게 강성해진 자들은 그것이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 덕분임을 알아서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교회를 “시온”이라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읍”이라고 한다. 여부스족들, 그리스도의 적군을 먼저 정복하여 찾아내야 한다. 즉 절름발이와 소경을 쳐부셔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그리스도께서 노략물을 나누시고, 자기의 보좌를 거기에 정하시며, 성령에 의해서 그곳을 자기의 주재지로 삼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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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 왕의 선물과 다윗의 우행(삼하 5:11-16)
여기서는 이런 기록을 볼 수 있다.
Ⅰ. 다윗의 집이 세워졌고, 대신들의 영접을 위한 궁정이 마련되었고, 충성이 돌려진다(11절).
유대인들은 농부와 목축업자들이었다. 상업과 공업에는 별로 종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두로 왕 히람―그는 재산이 많은 군주였다―이 다윗의 즉위를 축하하면서, 그에게 공인(工人)들을 보내어 집을 지어 주겠다고 한 제의가 있다.
다윗은 이 제의를 달게 수락했다. 그리고 히람의 공인들은 다윗의 마음에 드는 집을 지어 주었다.
하나님의 약속된 계약에는 문외한인 많은 자들이 예술과 기술에는 탁월하다. 그러나 다윗의 집은 한 번도 하나님께 봉헌하기에 부족할 만큼 허술했던 적이 없다.
그의 집은 이방인들의 자손이 지었기 때문이었다. 복음의 교회에 대해서 이런 예언이 있다. “이방인들의 아들들이 네 벽을 지을 것이요, 그들의 왕이 네게 시종을 들리라”(사 60:10).
Ⅱ. 다윗 정부가 수립되었다(12절).
1. 그의 나라가 안정되었다. 아무 것도 그 나라를 동요시킬 수 없었고, 그의 주권을 방해하거나 그의 왕권 자격을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신 자가 그를 안정되게 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한 예표였고,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손이 있고, 그의 “계약은 든든히 서 있기” 때문이다(시 89:21-28). 사울은 왕이 되었다. 그러나 안정되지는 못했다. 아담도 무구(無垢)한 시대에 그러했다. 다윗은 안정된 왕이었다. 다윗의 자손(예수)도 그러하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향해 만들어진 모든 자들도 역시 “왕의 제사장”이 된다.
2. 그의 나라는 그의 친구들의 눈에나 원수들의 눈에나 다같이 존귀히 보였다. 이스라엘 나라가 이 때에 시작된 모습처럼 그렇게 탁월한 적은 전혀 없다. 그리스도가 “땅의 왕들보다 더 존귀하게“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시 89:27). 하나님은 실제로 “그를 지극히 존귀하게“ 하셨다(빌 2:9).
3. 다윗은 자기가 승진되게 안정된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로써 주께서 내게 은총을 베푸셨음을 내가 아옵니다”(시 41:11).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는 많으나, 그것을 깨닫는 자는 적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은총의 위안을 모른다. 존귀를 받아 안정에 처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인 줄을 아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자이다.
4.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자기가 그들에게 복된 전재이도록 해 주시며, 그들은 자기의 정치를 통해서 행복하게 될 수 있도록 해 주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것임을 인정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윗의 신민으로 삼으신 것은 다윗을 위해서, 다윗이 위대해지고 부해지고 절대적 인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백성들을 위해서 그를 왕으로 삼으신 것이다. 그가 백성을 지도하고 안내하며 보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왕들은 “자기들의 백성을 복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일군들”이다(롬 13:4).
Ⅲ. 다윗의 식구가 늘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이사한 이후 그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들이 모두 나와 있다. 그가 헤브론에서 맞은 아들 여섯 외에, 예루살렘에서 도합 열 한 아들을 본 것이다(3:2, 5).
거기서는 그들의 어미들이 나왔으나, 여기서는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일괄해서 다윗이 “처와 첩들을 더 취하였다”고만 했다(13절). ...자랑거리라 할 수 없었다!!
이것을 잘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를 정당화시킬 수 없다. 변명해 줄 수도 없다.
족장들의 그릇된 선례가 그런 일은 해도 괜찮은 일로 생각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다윗은 자기의 동맹국을 늘이고 자기 식구를 늘임으로써 자기의 권세를 확고히 하려 했을 것이다.
“자기의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한 자는 행복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집 옆에서 자라나고 있는 한 그루의 덩굴 나무도 능히 바다와 땅 끝까지 줄기와 가지를 뻗칠 수 있다.
아담은 한 아내를 통해서 세상에다가 사람을 가득하게 했고, 노아도 다시 그렇게 했다.
다윗은 아내를 많이 두었다. ....그러나 자기 이웃의 아내를 탐내거나 범하지는 않았다. 사람이란 일단 울타리를 박차고 나가면 끝없이 방황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윗의 첩들에 대해서는 사무엘하 15장 16절, 16장 22절, 19장 5절을 보라. 그리고 그의 아들들에 관해서는 역대 상 3장 1-9절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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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군을 물리침(삼하 5:17-25)
다윗이 할 독특한 공헌은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하는 것” 이었다(3:18). 그러므로 먼저 거룩한 섭리자께서 다윗이 자기의 일을 달성할 기회를 주셨다.
여기서는 블레셋을 물리친 두 큰 승리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다윗은 이 전쟁을 통해서 사울이 죽게 되었던 그 전쟁에서 당한 이스라엘인들의 손실이 가져온 치욕을 보복했을 뿐만 아니라, 이 골치 아픈 이웃 민족, 저주받은 민족 중 마지막 민족을 완전히 몰락시키는 데까지 일을 밀고 나갔다.
Ⅰ. 두 번 다 블레셋인들이 먼저 공격을 했다. 그래서 자기들의 멸망을 부채질했고, 스스로 목을 맨 것이다.
1. 먼저 그들이 “다윗을 찾으러 올라왔다”(17절).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즉위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울의 휘하에서도 1만 명을 죽인 바로 그가 왕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무슨 일인들 못하랴! 그러므로 그의 정부가 아직 자리를 잡기 전에, 초기에 박살을 내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연전(年前)에 사울을 이겼다. 그래서 다윗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고,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같이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메시야의 나라도 세상에 수립되자마자 맹공격을 받았으니, 그것은 그 나라에 반기를 들었던, 유대인들과 이방이 연합된 어두움의 군대들에 의한 공격이었다.
이방인들이 사납게 날뛰었고, 세상 왕들이 반항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다(시 2:1 이하).
이와 같이 사울의 나라가 파멸될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은 모여서 의논했으나, “산산이 부서졌다”(사 8:9, 10).
2. 나중에는 먼저 잃어버린 것을 만회하려는 꿈을 안고 “다시 올라왔는데” 그들의 목은 멸망을 향해 더욱 굳어져 있었다(22절).
3. 그 두 경우에 모두 그들은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해 있었다.” 이곳은 예루살렘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그들이 차지하려고 바라고 있던 그 도성은 이 다윗이 완전히 요새화해 둔 곳이다. 예루살렘은 초기부터 특정 원수들의 공격 목표였었다.
그들이 편만했다는 것은 그 수가 많았음을 말하며, 겉보기에 굉장해 보였다는 뜻이다.
교회의 원수들이 “지면(地面)에 널리 다닌다”(계 20:9)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편만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화살에는 더 좋은 표적이 되는 법이다.
Ⅱ. 다윗은 어느 경우에서나 그냥 돌진해 갈 수 있었다 (다윗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요새로 나갔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중요하고 유리한 지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17절). 그러나 흉패를 통해서 “여호와께 물어 보기” 전에는 행동을 개시하지 않았다(9,23절). 그는 두 가지를 물었다.
1. 자기의 임무에 관해서. “내가 올라가야 하니까? 그들과 대처해야 할 하늘의 임명을 내가 받았나이까?” 혹자는 이것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왕이 된 것은 바로 여호와와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움을 싸우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선한 사람은 자기가 행동하기에 앞서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기를 좋아한다. “내가 지금 가오리이까?”
물론 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이 그 때입니까 하는 뜻이다. “네 모든 행사에서 그를 인정하라.”
나아가서 블레셋이 비록 공적인 적이었지만, 그들 중 어떤 자들은 과거에 다윗과 절친한 친구였었던 것이다.
아기스는 다윗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그를 도와 주고 보호해 주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싸움을 하는 것보다는 화해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적이다. 멸망의 운명이 정해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망설이지 말고 올라가라.”
2. 자기의 성공에 대해 물었다. 그의 양심은 “내가 올라가리이까?”하는 앞의 질문을 했다.
그의 지혜가 이번에 이렇게 묻는다. “주께서 그들을 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이로써 그는 자기가 승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손에 넘겨 주시고, 그의 명분을 하나님이 기뻐 인정하시지 않는 이상, 자기가 그들을 정복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시인한 셈이다. “주께서 그렇게 하시겠나이까?” 그렇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결정코 그렇게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다면, 그는 우리를 지지해 주실 것이요, 또 우리를 통해서 그가 지지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영적 대적을 이기고 승리하리라고 하신 보장, 곧 머지 않아 그가 우리의 발 아래 사탄이 짓밟히게 하리라는 약속은 영적 투쟁에 있어서 우리를 고무시켜 주어야 한다. 우리는 불안 속에서 싸우지 아니한다.
당시 다윗에게는 대군이 있었고 사기도 충천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권세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의지했다.
Ⅲ. 먼저 번에는 칼을 통해서 블레셋군을 근절했다(20절). 다윗이 “그들을 쳤다” 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났을 때,
1. 그는 자기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렸다. “여호와께서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도다. 하나님이 먼저 그렇게 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내가 그런 일을 못했으리라. 그는 마치 땜의 물을 터뜨리듯이 길을 뚫으셨다. 그래서 그 길이 일단 트이자 물은 점점 더 많이 흘러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아니 차라리 그가 모두 하신 것이다.
다윗이 한 일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께만 영광을 돌리라.” 다윗은 이 사건이 마치 댐의 수문을 열어젖힘같이 되어, 결국 블레셋군이 전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 사건을 영원히 기념하고 싶었다. 그곳을 “바알브리심” ―” 물떠뜨림의 주인” 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이 그들의 군대들의 저변을 파괴시켰기 때문에 머지 않아 그들의 주인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손들도 이 사실을 알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2. 다윗은 블레셋의 미신들을 부끄럽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상을 마치 보호자인 양 전쟁터로 끌고 나왔다. 이스라엘이 진중에 법궤를 수행시킨 것을 본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겁을 집어 먹게 되자 자기들의 신상을 도로 가져갈 겨를도 못 가졌다. 그 신상들은 “지친 짐승들에게 무거운 짐”이었기 때문이다(사 46:1). 그래서 자기들의 다른 짐꾸러미와 함께 정복자들의 손으로 넘겨 주고 만 것이다. 그들의 신상은 그들을 실패하게 했고, 아무런 도움도 못 주었다. 그러므로 저들이 스스로 신상을 원수들이 처리하도록 버려 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던 것들로 싫증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인간들이 죽자사자 좋아하던 것도 버리게끔 만들 수 있으며, “몸도 우상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져버리게까지 할 수 있다(사 2:20, 21).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다른 모든 노획물은 자기들의 뜻대로 이용했으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신상들은 불태워버렸다(신 7:5). 하나님은 이렇게 명하셨었다. “너희는 저들의 새긴 신상을 불에 태우라. 그것은 우상 숭배를 너희가 증오한다는 표지요, 너희가 올무에 걸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패트릭(Patrick) 주교는 여기서 이런 점을 잘 지적해 주었다. 법궤가 블레셋인들의 손에 넘어갔을 때는 그 법궤가 그들의 신상들을 멸해버렸다. 그러나 저들의 신상들이 이스라엘 사람의 손에 들어왔을 때는 오히려 그 신상들이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Ⅳ. 나중 번에는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어떤 구체적 표적을 주었다. 그래서 이전처럼 직접 그들을 공격하지 말라고 하셨다.
단지 “저들 뒤에 가서 포위하라” 고 하셨다(23절).
1. 하나님은 다윗에게 뒤로 돌아가라고 명하셨다. 그래야 “이스라엘이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2. 하나님은 자기가 직접 눈에 뵈지 않는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대적을 치겠다고 하셨다(24절). “너는 하늘 군대의 행진소리 같은 발자국 소리를 뽕나무 꼭대기에서 들으리라.” 천사들은 가벼이 밟는다. 그리고 구름 위로 걸을 수 있는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시면 나무 꼭대기에서 또는 (패트릭 주교가 이해한 대로) 뽕나무나 나무울타리 위로 걸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표적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네 앞에서 행하심을 알리라. 비록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소리를 들을 것이라. 믿음은 들음으로써 오고 또 들음으로써 돈독해지느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다윗이 직접 그들을 쳤을 때에는(20절) 그가 그 일을 하나님 탓으로 돌렸다. “여호와께서 내 대적을 흩으셨도다.”
이러한 감사에 넘치는 고백에 대해 다윗을 보상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하나님이 돌로 그 일을 하신 것이니, 다윗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가 한 일로 인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는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해 주심을 경험하리라.
그러나 보라. 하나님이 “내가 앞서 가서 블레셋을 치리라”고 약속하셨지만, 다윗은 그 행진 소리를 들었을 때, 스스로 분별하여 성공을 이룰 채비를 차려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노력을 분발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야 함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을 주시고 일하시도록 역사하신다고 해서, 우리는 할 일이 없는 사람마냥 그냥 주저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가능한 모든 수고와 열심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빌 2:12, 13).
발자국 소리는
(1) 다윗이 행동할 시기를 알리는 신호였다. 하나님이 앞서가신다면, 우리도 안심하고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2) 적군들에는 경보요, 당황케 하는 소리가 되었을 것이다. 자기들의 진을 향해 오는 군대의 행군 소리를 듣자, 그들은 황급히 물러섰을 것이다. 그리고는 뒤에서 지키고 있던 다윗의 군대에게 괴멸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대항하여 싸우신 자들을 대해 이런 말씀이 있다.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가 그들을 도망치게 하리라”(레 26:36).
(3) 이 전쟁의 성공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25절). 다윗은 명령을 지켰다. 하나님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야 움직였다. 그전에는 가만히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받았고, 그 섭리에 의지하는 법을 익혔다.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을 지키신다. 그래서 그의 앞에 가셨고, 적군을 근절시켰다. 그리고 다윗도 대기 상태에 있던 자기의 이점을 살리는 데 실패하지 않았다. 그는 블레셋인들을 쳤다. 그들의 국경 지대에서도 죽였다. 메시아의 나라가 세워져야 했을 때도, 마귀의 나라를 칠 사도들은 자기들이 성령의 약속을 받기까지는 아무런 일을 해서도 안되었다. 성령은 “강한 바람처럼 하늘에서 나온 소리와 더불어 왔다”(행 2:2). 이것이 바로 뽕나무 위에서 나던 걸음소리로 상징되었던 것이다. 사도들이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스스로 분기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로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정복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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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ㅇ이스라엘 모든 지파 - 어떤 학자들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3절에 기록된 '이스라엘 모든 장로'와 같은 의미로 본다(Rust,The Interpreter's Bible). 즉, 이들은 20세 이상의 모든 지파의 인구가 헤브론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모든 장로들이 이스라엘 온 백성들을 대표하여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온 것처럼 저자가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대상 12:23-40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윗을 위해 헤브론으로 나아온 인구가 무려 약 35만명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와 3절의 '이스라엘 모든 장로'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1,2절은 이스라엘 온 지파가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는 장면이며 3절은 그 결과 이스라엘을 대표한 장로들이 다윗을 공식적으로 왕으로 삼는 장면이라 하겠다(Leon Wood,Pulpit Commentary). 즉 1-3절은 한 사건을 중복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과정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ㅇ왕의 골육 - 직역하면 '당신의 뼈 그리고 당신의 살'(thy bone and thy flesh,KJV)이란 뜻이다.그런데 이 말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상호간의 혈육 관계를 나타내는 관용어이다(창 2:23;29:14;37:27;삿 9:2).따라서 이는 결국 다윗에 대하여 백성들이 전적인 신뢰를 표한 말임을 알 수 있다.
2 전일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는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ㅇ출입하게 한 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치 웨하메비'는 문자적으로 '나오고 들어감'을 의미하나, 주로 이 용어는 '군대를 지휘하기 위해 출입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삼상 29:6;왕상 3:7;대하 23:7;수 14:11).
따라서 여기서는 사울 휘하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잘 이끌어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던 다윗의 지도력(삼상 18:6,7)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다(Lange,Matthew Henry).
ㅇ이스라엘의 목자...주권자가 되리라 - 여기서 '목자'란 백성들에 대한 봉사의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다.즉 신정 왕국(神政 王國)의 왕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서 그분의 뜻대로 백성들을 인도하며 보호하고 먹일 의무가 있는 것이다.반면 '주권자'란 백성들에 대하여 강한 지도력, 통치권을 행사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왕은 비상시에 군 최고의 통수권자(統帥權者)로서 백성을 효율적으로 관리,적의 위협을 분쇄해야 할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능률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입각하여 국정(國政)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본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말을 하셨다고 하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3:9,10,18;삼상13:14;15:23,26,28;25:30등을 살펴볼 때, 하나님의 이같은 신탁(信託)은 이미 그 당시 백성들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던 것이다.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ㅇ언약을 세우매 - 왕위 즉위식 이전에 행하는 공식적인 행사였던 이 언약은 쌍방간의 합의에 의한 언약이 아니라 일방적인 언약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다윗왕이...저희와 언약을 세우매'라는 본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본 구절의 주어는 '저희'가 아니고 '다윗'이다. 따라서 언약의 주체는 이스라엘 지파가 아니었고 다윗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 언약이 쌍방적인 성격이 아니라 일방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언약(삼상 13:14;15:23,26,28)과 관련이 있다. 즉,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시며 왕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 언약은 다윗이나 기타 모든 백성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결정하신 일방적인 언약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다윗 왕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서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지 결코 군주와 국민들간의 어떠한 이해 관계를 따져 협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즉,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다윗을 왕으로 삼겠다고 맹세하므로, 그 나라에 큰 복을 베푸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의 내용은 다윗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 아니었고 그 반대로 백성들이 다윗 왕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었다(Hertzberg). 따라서 이 언약을 통해 본 신정 국가의 국가관은, 군주와 국민의 계약 관계를 국가 성립의 근본으로 본 근대의 국가관과는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신정 국가의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독재자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대리자(代理者)임을 뜻할 뿐이다.
ㅇ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 다윗이 사무엘 당시(삼상 16:13), 그리고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세움 받을 당시(2:4)에 이어 마지막 세번째로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대상 11:3에는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는 말이 덧붙여 있다. 이와 같이 다윗의 세번째의 기름 부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다윗과 맺으신 그 언약(삼상 16:1)을 어김없이 이루신 감격적인 사건이었다.2:4 주석 참조.
ㅇ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 이로써 이제 유다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다시금 사울 통치 때와 마찬가지로 한 왕 아래 통일 되었다.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왕 아래에서 최초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다는 의의를 지닌다.한편 이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장 장(章)강해를 참조하라.
4 다윗이 삼십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
ㅇ삼십 세 -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다윗왕의 나이인 삼십 세는 성경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공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였다. 즉, 이 나이는 (1) 레위인이 성전에서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으며(민 4:3;대상 23:3),(2)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나이였으며(창 41:46),(3)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나이였다(눅 3:21-23). 이와 같은 사실은 적어도 성도는 이 나라가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공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암시적 메시지(message)를 제공해 준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나이와 학력 등에 구애받지 않고 당신의 사람을 적재 적시(適材適時)에 들어 쓰신다(삼상 17:41-54). 그러나 인격적 성숙은 나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도 사실인 것이다.
5 헤브론에서 칠년 육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ㅇ헤브론에서 ... 예루살렘에서 ... 다스렸더라 -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시점에서 그의 통치 연대를 개괄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성경 기자들이 왕조(王朝)의 역사를 기술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서술 양식 중 하나이다(왕상15:9,10;16:29;왕하 3:1;12:1;13:1;14:2,23;15:27).
6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ㅇ그 종자들이 - 여기서 가리키는 다윗의 종자(從者)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그럴듯한 견해가 있다.(1) 다윗에게 서약하기 위해 온 '온 이스라엘의 군대'(1-3절)라는 주장이다(Lange,Keil & Delitzsch,Pulpit Commentary). 이 주장은 대상 11:4의 내용과 일치한다. (2)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 종자들이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윗과 행동을 함께 해온 그 정예병(精銳兵)들(삼상22:4;23:13)이라고 주장한다(Rust,Hertzberg). 그들은 그 근거로서,만일 온 이스라엘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면 구태여 본서 저자가'다윗의 종자들'이란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세운다. 그런데 (1)번의 견해는 평행 구절(대상 11:4)과 일치하며 (2)번의 견해는 문자 해석상 그럴 듯하므로,따라서 이 두 견해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충적인 견해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다시 말해서,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 가까이까지는 나아갔으나,실제로 지형적으로 험난한 예루살렘을 공략한 자들은 다윗의 종자들, 곧 요압과 그 정예 군사들이었다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ㅇ예루살렘 - 다윗이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천도(遷都)하려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지형적, 종교적인 이점들 때문이었다. (1) 헤브론(Hebron)은 유다에서 볼 때는 중심 지역이었지만 온 이스라엘로 볼 때는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었다. 2:1 주석참조 .그러나 예루살렘(Jerusalem)은 온 이스라엘을 치리하기에 아주 좋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Pulpit Commentary). (2) 예루살렘은 주위가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었고 성읍 자체가 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천혜(天惠)의 방어 요새였다(Wycliffe). (3)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골짜기(the valley of Kidron)에는 기혼 샘(the spring of Gihon)이 있어 충분한 수원(水源)을 확보하고 있었다(Lange). (4)예루살렘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였다(수 15:7,8;18:6). 따라서 예루살렘은 두 지파 간의 심각한 갈등을 해소시키며,더 나아가 온 나라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적합한 도읍지였다(Keil & Delitzsch). (5)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의 중심부로서 중앙 성소를 짓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신 12:4-14 강해,'예루살렘 중앙 성소의 의의'참조. 즉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수 있는 성전 건축의 최적소(최적소)로 예루살렘을 지목하였던 것이다(Leon Wood). 한편 이와 관련하여 예루살렘에 대한 보다 전반적인 정보를 얻기 위하여서는 대상 11:4-9 강해,'예루살렘'을 참조하라.
ㅇ여부스 사람 - 여부스 족속(Jebusites)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예루살렘과 그 주변 산간 지역에 계속 정주(定住)해 왔던 족속이다(민 13:29;수15:8;18:16).수 9:1,2 강해,'가나안의 일곱 족속'참조.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일시적으로 패주하기도 했으나(수 10:23,26) 완전히 정복당하지는 않았다. 그 후 사사 시대에 이르러 유다 및(삿 1:8) 베냐민 지파의 자손들(삿 1:21)도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고로 그들은 점차 세력을 확보하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그들의 방어 기지로 삼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 다윗에 의해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복당하고만 것이다(7-9절). 한편, 여부스(Jebus)는 한때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수18:16,28;삿 19:10;대상 11:4).
ㅇ네가 이리로...들어오지 못하리라 - 여부스 족속이 쳐들어 오는 다윗에게 큰소리 치는 장면이다.지리적으로 여부스 족속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독립한 나라로서 이와 같이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까닭은 다음과 같은 예루살렘의 지형적인 이점 때문이었다. (1) 예루살렘은 당시 가나안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던 주요 도로인 '왕의 대로'(King's Highway, 민 20:17;21:22;신 2:27)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2) 예루살렘 남쪽과 동쪽의 성벽은 절벽과도 같은 가파른 언덕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3) 예루살렘 주변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 주는 기드론, 힌놈, 두로베온과 같은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천혜의 방어기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자신 만만하게 다윗을 향해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큰 소리 쳤던 것이다.
ㅇ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 메튜 헨리(Mstthew Henry)는 이와 관련, 여부스족들이 다윗을 조롱하기 위해 실제로 예루살렘 성벽에 소경과 절뚝발이들을 세워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Vol.II,p.468). 그 사실 여부는 오늘날 확인할 수 없지만,아무튼 본절은 당시 예루살렘 성을 과신(過信)했던 여부스인들의 자만을 충분히 증거해 준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철옹성 여리고도 함락시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권능(수 6:1-20)을 기억해야만 했다.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ㅇ시온 산성 - 시온(Zion)은 '요새'란 뜻으로,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이다(Keil & Delitzsch,Pulpit Commentary). 그런데 이곳에 세워진 산성을 다윗이 빼앗아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시온'은 광의적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묘사하는 말로 곧잘 사용되었는데(왕하 19:21;사 3:16;슥2:10),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었다(사 24:23;옵 1:17).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 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ㅇ수구로 올라가서 - 다윗이 천혜의 요새 시온 산성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었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수구'에 해당하는 '친누르'는 '하수도', '배수로', '지하 통로'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곧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 들어온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수직으로 파놓은 갱도(坑道)를 의미한다. 이 갱도는 성 안에서 성 밖으로 연결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공 불락의 예루살렘 성안으로 군사들이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따라서 다윗이 이곳을 통해 적 진지에 들어가 공을 세우는 자에게 푸짐한 상급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요압과 그 군사들이 이에 응하였던 것이다(대상 11:6). 한편 이 수갱(水坑)은 1886년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1967년 워렌(Charles Warren)이 재차 발견하여 현재 '워렌 수갱'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이 수갱이 B.C 2000년 경에 예루살렘 거민들에 의해 건설되었음도 밝혀내었다.
ㅇ절뚝발이와 소경 - 여기서는 다윗이 당시 지형적인 이점을 의지하고 교만하게 말했던 여부스 사람들(6절)을 비꼬는 말이다.즉 저들은 불구자가 아니었지만 이제 다윗의 공격 앞에 꼼짝 못하고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절뚝발이와 소경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는 훗날 속담이 되어 '미운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즉 여부스인들처럼 자기의 힘만 믿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어떠한 집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9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ㅇ밀로 - 채우다(말레아)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이 '밀로'(Millo)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것이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 성채는 아마도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장 취약 지구인 북방의 방어를 위해 북동쪽이나 북서쪽 한쪽 모퉁이에 세워 놓았던 것일 것이다(Hertzberg,Keil,Lange,Rust). 아무튼 다윗은 이 밀로를 기점으로 하여 예루살렘에 성벽을 둘러 쌓음으로써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 종교를 위한 중앙 성소의 기초(대하 3:1)를 마련하게 되었다. 한편, 솔로몬과 히스기야는 이 밀로를 증축, 또는 수축한 바 있다(왕상 11:27;대하 32:5).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ㅇ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 이에 해당하는 '야웨 엘로헤 체바오트' 는 '천군 천사(天軍 天使)의 하나님 여호와'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체바오트'의 기본형 '체바아'는 본래 '군대', '무리'란 뜻으로,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거느리고 계시는 수많은 하늘 군대인 천사들(욥 33:23;느 9:6;시103:21;마 10:27;히 12:22)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무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란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으로서, 약칭 '야웨 체바오트'로 종종 표기된다(6:2;삼상 15:2;왕하 3:14;대상 17:24;시 24:10;사 1:9).
ㅇ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의 결과이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 군대를 인솔하시어 다윗의 대적을 물리쳐 주시니 (6-9,17-25절)그의 왕국이 안으로는 물론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될 정도로(11절)강성해 진 것이다.12절 주석 참조.
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저희가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ㅇ본절은 다윗 왕과 히람왕 간의 화친(和親)장면이다. 그런데 이는 17절 이하에 나오는 블레셋 정복 사건 이전에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블레셋 정복이 다윗과 히람 왕의 화친보다 시간상으로 빨랐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주장한다(Keil,Rust,Lange,Leon Wood). 이러한 견해가 가능한 것은 성경이 반드시 연대순으로(chronologically)만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도(topically)배열되어 있는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견해가 가능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1) 결정적으로 본문의 내용 자체가 이를 뒷받침 해주기 때문이다. 즉 17절에 보면,다윗의 블레셋 정복 사업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직후에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며(17-25절)성벽을 구축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9절) 다윗 초기에 그가 거할 궁궐을 지었을 것이라고는 도저희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2) 또한 다윗이 즉위하던 때에는 히람(Hiram)왕이 분명히 왕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왕상 9:10에 의하면,히람 왕은 최소한 솔로몬 통치 20년까지는 생존하였다고 하였으니,그가 다윗의 즉위 초기부터 왕위에 있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무리이다. 이에 대하여 고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우리에게 간접적인 증언을 해주고 있다. 즉 그의 {고대사}(Antiquities)에 볼 것 같으면, 히람 왕은 그의 부왕 아비바알(Abibaal)을 계승하여 34년간을 통치하다가 그의 나이 53세에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Lange,Keil & Delitzsch, Vol. II, pp.319 ff). 따라서 그의 증거에 의하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할 때(1-3절) 그는 왕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따라서 다윗과 히람의 화친은 다윗의 초기가 아니라 말기에 이루어진 사건임이 분명하다. (3) 또한 히람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파견하였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즉 이는 분명 다윗이 블레셋을 비롯한 이방 민족들을 보기좋게 제압하자(17-25절) 다윗의 큰 세력을 인식한 히람 왕이 화친의 제스처(gesture)로 사자들과 백향목 등을 보내온 것으로 사료(思料)되기 때문이다(Leon Wood).
이상과 같은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다윗과 히람 왕의 화친은 다윗의 블레셋 정복 사업보다 훨씬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본절은 저자가 다윗의 흥왕(10절)의 구체적 실례를 보여 주기 위해 앞당겨 기록한 내용일 것이다.
한편, 이로써 히람 왕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파견한 것은 다윗의 즉위를 축하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주장(Thenius)은 이상의 증거들에 위해 근거없는 것임이 판명되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319).
ㅇ두로 - 두로(Tyre)는 시돈(Sidon)과 함께 B.C. 8-10세기경 베니게(Phoenicia)의 중심적인 도시 국가였다. 이스라엘 최북단 국경에서 약 24km 서북쪽에 위치해 있던 이 도시 국가는 지중해 연안 국가로서 일찍부터 목재, 밀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수출하는 무역 국가였다. 한편 B.C. 10세기 경에는 두로가 시돈을 압도한 듯 했으나 얼마후에 두로는 시돈의 지배를 받은것 같다(사 23:2,12). 하지만 그들의 전성 시기에 두로의 상선들은 애굽과 스페인까지도 진출했었다.
ㅇ히람 - 일명 '후람'(Huram)이라고도 하며, 이름의 뜻은'고귀한 자'이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두로를 다스리던 왕으로서, 다윗은 물론 솔로몬의 건축 사업에 적극 조력한 것으로 유명하다(왕상 5:1-12).
ㅇ백향목- 레바논이 주산지인 백향목(cedar trees)은 왕궁, 성전(왕상 5:5,6;6:9,10), 배의 돛대(겔 27:5), 우상 등을 건설 또는 만드는 데 사용될 정도로 최고급 건축 자재였다. 이 나무는 잘 썩지 않고 벌레가 먹지 않으며 또한 내구성(耐久性)이 강하며 방향(芳香)을 지니고 있다.따라서 히람 왕이 이렇게 좋은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다윗이 다스리던 신정 국가의 위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아니라
ㅇ다윗이...아니라 - 여기서 '알다'(perceive,KJV)에 해당하는 원어 '야다'는 단순한 인식을 의미하는 '나카르'와는 달리 경험을 통해 아는 실제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이 말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한 단순한 기억이나 어떤 사물에 대한 단순한 인식을 의미하지 않고, 전에는 희미하게(막연히)알았으나 여러 경험을 통해 그 본질을 더욱 확실하게 파악한 체험적인 지식을 의미한다(창4:1;18:19;신 1:39;8:5).
따라서 본절에서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신 것'을 알았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한 사건(3절)을 기억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와는 달리,이 말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예루살렘 정복(6-10절), 블레셋 정복(17-25절), 히람 왕과의 화친(11절) 등 만사 형통하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그 본질을 확실히 파악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예를 들어 설명하면, '학교'라는 말만 아는 어린이가 직접 학교에 들어가 경험해 봄으로써 날마다 학교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듯이,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그 기름 부음의 실제적인 의미를 통하여 더욱 승승장구하는 여러 경험들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한편 이와 마찬가지로 본절 후반부에서 여호와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다윗이 알았다는 말도 같은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사 그 나라를 열방 중에 높이신 것은 다윗 개인에게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복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13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ㅇ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므로 - 그당시 동양적인 관습에 따르면, 처첩의 수는 곧 권세의 상징이었다(Leon Wood,TheInterpreter's Bible). 따라서 다윗도 그당시 보편화된 관습에 따라 많은 처첩을 거느렸는데 이제는 예루살렘에서 유다 지파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되었으므로(1-5절)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애기해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신 17:17)을 어기고 취한 많은 처첩들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수치를 안겨 주고 말았다.13-16절 도표 참조. 그리고 훗날 아비 다윗의 영향을 받은 솔로몬 역시 다윗보다 더 많은 처첩을 거느린 결과(왕상 11:3) 나라 안에는 각종 이방 우상 숭배 풍조가 만연하였고(왕상 11:4-8) 외환(外患)이 끊이지를 않았다(왕상 11:14-15). 따라서 우리는 이상과 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일부 다처주의(一夫 多妻主義),축첩 행위가 명백히 하나님의 뜻(창 2:24)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한 그에 따르는 불행 역시 엄청난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창 4:16-24 강해, '일부 다처제';창16:1-6 강해,'축첩 제도의 부당성'참조.
14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ㅇ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 이들은 모두 밧세바의 소생이다.13-16절 도표 참조.
그런데 12:24에는 이들 중 마치 솔로몬이 밧세바의 첫 아들인 양 기록되어 있다. 아마 그 까닭은 솔로몬을 다윗의 왕위 계승자로 부각시키려는 목적에서 기록한 탓일 것이다.
15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16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ㅇ엘리벧렛 -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심'이다. 그런데 대상 3:6,8에는 이 이름으로 불리우는 다윗의 아들이 두 명 나온다. 본절의 '엘리벧렛'은 이 중 대상 3:8에 나오는 '엘리벧렛'이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대상 3:6에 나오는 '엘리벧렛'을 '엘벧렛'(Elpalet, 대상 14:5)으로, 본절의 '엘리벧렛'(Eliphalet)은 그냥 그대로 표기함으로 써(대상 14:7) 양자를 구분하고 있다.
17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해처로 나가니라
ㅇ르바임골짜기 "바알브라심"전투는...예루살렘 점령 이전?, 이후?...대부분의 역사가들과 주석가들은 본절 이하에서 보여 주고 있는 블레셋과의 전투가 실제로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사건(6-10절) 이전에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LeonWood, Keil,Payne, Hertzberg). 저들은 그 증거로서 몇가지 점을 들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1)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직후에 다윗과 전쟁을 벌이려 쳐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즉 다윗 왕은 즉위하자마자 블레셋의 대침공을 막아내야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점령할 여유(6-10절)가 없었을 것이다. (2) 블레셋 군대가 예루살렘을 직접 공략하지 아니하고 르바임(Rephaim)을 공격했다는 사실이다(18,22절). 이와 같은 사실은 아직껏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증거이다(Leon Wood). (3)본 절의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찾았다'는 말은 다윗이 아직 예르살렘에 그의 거처를 정하지 않았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9절).(4) 더욱이 본문의 평행 구절에 해당되는 23:13,14에서는 다윗이 블레셋의 침공을 맞이하여 아둘람 굴에 진영을 설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 준다. 이는 그가 아직도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즉, 그가 이미 예루살렘을 정복했었더라면, 구태여 아둘람 굴에 진영을 설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여러 증거들로 볼 때 다윗의 블레셋과의 전투는 예루살렘 정복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임에 틀림없다.
ㅇ블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 블레셋 군대가 전에는 다윗을 죽이려 하지 않다가 그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곧 그를 죽이려 한 것은 그들의 얄팍한 정치적인 계산 때문이었다.즉,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그를 죽일 수 있는 처지에서도 그를 죽이지 않았다(삼상 27:1-12).그 이유는 다윗을 당시 이스라엘이 왕 사울의 견제 세력으로 키워 이스라엘이 통일 국가가 되지 못하도록 하자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1-3절) 길보아 전투(삼상 31장)이후 북방 이스라엘 지경에서 크게 세력을 확보한 그들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2:10 주석 참조.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확장된 세력을 굳히기 위해 이제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이다(Keil & Delitzsch,Lange,Matthew Henry,Pulpit Commentary). 한편, 본절에서 '블레셋 사람이 다 올라왔다'고 하는 말은 당시 그들이 통일된 다윗의 세력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ㅇ요해처로 나가니라 - 여기서 '요해처'에 해당하는 '므추다'는 '그물','접근하기 힘든 장소','요새'등을 뜻하는 말이다.그런데 학자들간에는 이 '요해처'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1)요해처는 다윗이 점령한 예루살렘 요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Lange). 그러나 이 주장은 앞서 일어났던 사건임을 보여준 여러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옳지 못하다.특히 본절의 '나가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야라드'는 본래 '내려가다'는 뜻이다. 따라서 원래 높은 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예루살렘 요새로 다윗이 내려갔다는 말은 모순이 된다.그렇다면 여기서의 '요해처'는 분명히 예루살렘 요새를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Keil). (2)이 요해처는 아둘람 굴을 의미한다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Keil & Delitzsch,Thenius,Pulpit Commentary).그 근거로 그들은 평행 구절인 23:13,14에서 다윗이 아둘람 굴에 그의 진영을 설치해 놓았던 사실을 들고 있다. 이는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는 견해인데 많은 학자들도 대체로 이에 동의한다.한편, 이 아둘람 굴(the cave of Adullam)은 다윗이 사울 왕과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일시 도피하였던 곳으로 이곳에서 다윗은 그를 사모하여 추종한 자들의 장관이 되기도 하였다(삼상22:1,2). 오늘날 이곳은 '텔 에쉬-쉐잎 마두쿨'(Tell esh-Sheikh Madhkur)로 알려지고 있는데 가드와 베들레헴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18 블레셋 사람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ㅇ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 르바임 골짜기(the valley of Rephaim)는 그 뜻이 '거인의 골짜기'인 것으로 보아 이는 아마 그 골짜기 부근에 살았던 거인족 '르바임' (신 2:11)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인 듯하다(Lange,Pulpit Commentary). 실제로 그 지명처럼 르바임 골짜기는 길이가 약 5km,폭이 약 3km 정도나 되었으니 엄청난 수의 병력이 그곳에 포진(布陣)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다. 이 골짜기의 북쪽 끝은 유다 지파의 북쪽 접경지인 동시에 또한 베냐민 지파의 남쪽 경계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블레셋 군대가 이곳을 먼저 점령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 유다의 경계지인 이곳을 차지함으로써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분단시키고자 함이었다(Leon Wood). 그런데 이들이 이처럼 엄청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1)르바임 골짜기 바로 남쪽에 그들의 요새인 베들레헴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3:14).아마도 이 베들레헴은 길보아 전투 때에(삼상 31:1)그들의 손 안에 들어갔을 것이다.(2) 또한 그들은 아직껏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지인 예루살렘 요새가 다윗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17절 주석 참조.
19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ㅇ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 이말은 다윗이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 당시 다윗과 함께 했던 제사장 아비아달은 우림과 둠밈을 단 에봇을 소유하고 있었다.2:1 주석 참조.
아무튼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중요한 일을 당할 때마다 먼저 여호와의 뜻을 구한 다음 그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그의 훌륭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2:1;삼상 23:9;30:7).
ㅇ네 손에 붙이리라 -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개인의 생명이나 국가의 장래를 막론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나타내 준다)16:8;창14:20;신 2:30;수 10:8;왕상 20:13).신 1:2 주석 참조.
20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
ㅇ바알브라심 - 본절 후반부의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는 말은 이 지명이 옛부터 내려온 고유의 지명이 아니라 다윗의 대첩(大捷)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이 붙여진 이름임을 보여 준다. 한편 바알브라심(Baal-perazim)은 '주'(Lord)라는 뜻의 '바알'과 '터치고 나옴','부숴뜨림', 또는 '흩음'을 의미하는 페라침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복합어이다. 따라서 이 말의 의미는 '흩으심의 주'이다. 즉, 이는 블레셋 대군을 물을 흩어버림과 같이 쉽게 물리쳐 주신 여호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다윗이 만들어 붙인 신지명(新地名)이다. 한편, 이곳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바알'이란 명칭이 이방 종교의 신 '바알'(Baal)과 일치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8 주석 참조. 즉 바알 종교로 인해 '바알'이란 명칭 자체를 혐오하게 되었던 후대의 유대인들이 그 명칭을 내포하고 있는 '바알브라심'이란 지명 자체를 말소시켜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Rust).
ㅇ여호와께서...내 대적을 흩으셨다 - 다윗은 이처럼 블레셋을 격파시킨 일이 자신의 지략, 용맹성, 군사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즉 그는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19절)그 일이 끝난 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이는 참으로 "살든지 죽든지 내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빌 1:20)하여야 할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귀감 (龜鑑)이 아닐 수 없다.
21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 종자들이 치우니라
ㅇ그 우상을 버렸으므로 - 본절은 (1) 당시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에 있던 블레셋 대군(18절)이 다윗의 정예 부대 앞에 얼마나 혼비 백산하게 후퇴했는가를 보여 주며, (2) 또한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20절)이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보여준다(Hertzberg). 한편, 블레셋인들이 전쟁터에 그들의 우상을 가져온 것은 그들의 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당시 고대 근동 국가의 미신적 관습 때문이었다. 이는 과거 이스라엘이 법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갔던 사실(삼상 4:3,4)과 외형상 일치한다(Keil & Delitzsch,Lange,Matthew Henry,Wyccliffe,Pulpit Commentary).
ㅇ다윗과 그 종자들이 치우니라 - 같은 내용의 기사인 대상 14:12에는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우상을 불태운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처럼 다윗이 우상을 불태운 것은 우상에 대한 여호와의 율법대로 순종한 행위였다(신 7:5,25). 아무튼 다윗의 이러한 행위는 수년 전 아벡 전투에서 승리한 블레셋 군대(삼상 4장)가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아 들고 행진한 사실(삼상 5:1)과 대조적이다. 즉, 그들은 여호와의 법궤를 들고 갔으나 다윗은 그들의 우상을 가증한 것으로 여겨 불태웠던 것이다(Leon Wood).
22 블레셋 사람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ㅇ블레셋 사람이 다시 올라와서 - 다윗의 정예 부대 앞에 혼비 백산하여 도망갔던 블레셋 군대(17-21절)가 다시 전열(戰列)을 가다듬어 제 2차 공격을 해오는 장면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스라엘을 선제 공격하기는 커녕 도리어 예기치 않은 역습을 받아 뿔뿔히 도망쳐야 했던 첫번째의 실패를 만회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23-25절).즉 그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움을 힘입은 이스라엘에게 두번 씩이나 연속해서 대패하므로 팔레스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23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온대 가라사대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ㅇ올라가지 말고...엄습하되 - 여기서 '올라가지 말라'는 말은 고지(高地)에 올라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블레셋 군대와 정면으로 맞서지 말라는 뜻이다(Keil).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앞서와 달리(19,20절) 이번에는 전면전을 피하고 기습전을 택하라고 하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즉 당시 (1) 긴장하고 있는 블레셋 군사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놓고 (2) 그들을 이스라엘 지경에서 아주 멀리 쫓아 내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의 일환 때문이었다(Leon Wood). 아마도 블레셋군은 지난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위해 이스라엘 군의 정면 공격을 예상하여 만반의 대비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획을 미리 아시고 이번에는 다윗에게 기습 공격을 명하셨던 것이다.
ㅇ뽕나무 수풀 - 뽕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카' 가 과연 어떤 나무를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견해들이 있다. (1) 배나무로 보는 견해(Rosenmuler,Vulgate). (2) 한글 개역 성경처럼 뽕나무(mulberry tree)로 보는 견해(Luther,KJV). 그러나 본래 '울다', '통곡하다'라는 뜻을 지닌 '바카' 에서 파생된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우는 나무'(weeping tree)를 가리킨다. 여기서 '나무가 운다'라는 것은 '나무가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니 이는 곧 '수액(樹液)을 낸다'는 의미이다(Wycliffe). 따라서 대개의 학자들은 '바카'가 '뽕나무'나 '배나무'를 의미하지않고 수액(樹液)을 내는 '발삼나무'(Balsam tree)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Lange,Keil,Rust). 한편, 달만(Dalman)은 이 '바카'가 관목류(灌木類)가 아닌 덤불에 가까운 종류라고 하였다(Hertzberg). 이렇게 볼 때 바카,곧 발삼나무 수풀은 이스라엘 군이 매복해 있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였을 것이다.
24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ㅇ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 -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보여 주는 공격 신호(attack sign)임에는 분명하다.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음과 같이 의견이 분분하다. (1) 이 공격 신호는 단지 강한 바람에 의해 나무 꼭대기가 흔들리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Rust). 이러한 주장은 바람이 곧 여호와의 영(靈)을 상징하며, 그 움직임은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대의 관념에 기초한다.그러나 이 견해는 하나님의 공격 신호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 중 하나였으며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아닌 걸음 걷는 소리였다는 점에서 적합하지 못하다. (2) 또한 이 공격 신호를 '나무의 신탁'(tree oracles)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Hertzberg). 즉, 다윗은 나무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징조를 가지고 점을 쳐서 하나님의 공격 신호를 찾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너무나도 미신적이다. 당시 참된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앙하던 다윗(19,23절)이 이처럼 어리석은 미신적 행위에 탐닉하였을리 만무하다. (3) 이 공격 신호는 여호와의 군대가 하늘로부터 임하는 소리였다는 견해이다(Lange,Keil). 즉, 이러한 현상은 야곱과 엘리사에게 보였던 하나님의 군대의 진군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창 32:2,3;왕하 6:17). 이 견해는 '걸음 걷는'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체아다'가 '행군하다','전진하다'는 뜻이며 이번 전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성전(聖戰)이었다는 점에 의거할 때 비교적 타당하다.수 5:13-15 강해,'성전'(聖戰)참조.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ㅇ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대상 14:16에는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라고 되어있다.
즉 본절의 게바(Geba)가 대상 14:16에는 기브온(Gibeon)으로 되어있는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심각한 차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해석들을 가하고 있다. (1) 본절의 게바는 본래 기브온이었으나 이 두 지명의 세 '자음'이 똑같기 때문에 필사자가 실수하여 기브온을 게바라고 오기(誤記)했다는 해석이다(Keil,The Interpreter's Bible).이 해석은 게바의 위치가 예루살렘 북동쪽인 반면 게셀(Gezer)의 위치는 정반대인 예루살렘 서북쪽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즉, 정신없이 도망치는 블레셋 패잔병들이 예루살렘 북동쪽으로 갔다가 다시 정반대인 서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사실은 어쩐지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다. 반면,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게셀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게바보다는 기브온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다음에 제시되는 견해에 비추어 볼 때 분명히 옳지 않다. (2) 삼상 13:3에 의하면, 게바는 블레셋군의 강력한 수비대(守備隊)가 있었던 곳이다. 한때 요나단에게 이곳을 뻬앗겼던 (삼상 13:1-4)블레셋 군대는 길보아 전투(삼상 31장)때 이곳을 다시 재탈환 하여 전보다 강력한 진지를 구축하였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본문에서 물처럼 흩어진 패잔병들이 그들의 강력한 수비대가 있는 게바로 일단 후퇴했다가 그곳에서도 이스라엘군을 막아낼 수 없게 되므로 그들의 본토인 게셀로 후퇴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다(Lange,Pulpit Commentary). 그러므로 블레셋군이 제 1차로 후퇴했던 곳은 기브온이 아니라 게바임이 분명하다. (3) 그렇다면 이번엔 대상 14:16의 기브온이 또 다른 필사자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게바로 후퇴했던 블레셋군이 게셀로 도망갈 때 기브온을 거쳐 도망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블레셋군의 최종 도착지인 게셀은 블레셋 영토의 북동쪽 경계지이며 이번 전투 지점(르바임 골짜기)에서 최소한 24km나 떨어진 곳이었다(Leon Wood).
이로 보아 다윗 군대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거두게 하신 [십자가로 사탄의 머리를 짓밟아 깨부수심처럼!!, 세상의 영적 흐름을 뒤바꾼]완전한 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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