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룻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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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4장 [623.주님의시간에]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30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친구의 고백/.얼마나 아프셨나..사랑의십가가를맞이하네..오예수님이제옵니다....하나님은우리의피난처가되시고(너희는가만히있어)...주가일하시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다

....기업무를자로,보아스가<룻의 배우자로> 확정된 칠칠절(오순절) !!  = 이제 메시야 가계가 계속됨...죄로 저당 잡힌 천국기업, 과부된 처지인 죄인을 구주의 피로 되사서 돌려주심!!


1.  (이른아침부터!!)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보아스는 성읍 장로들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방여인 라합이 낳은 아들이라서!!> 장로들조차 존경하여 따로 만들어 둔바, 항상 앉는 그의 자리...유력자는 주님 심정과 말씀따라 제 문제 경청하고 중재하며 해결한다)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감사하라!!..아멘-할렐루야)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공식적으로)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룻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에게 물려주어)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헤스론 - 이름의 뜻은 '울타리' 

==람 -- 높아짐

==암미나답(히브리어: עַמִּינָדָב, 'Ammīnāḏāḇ, "내 백성은 고귀하다")...아미나답은 עמינדב) 암미나다브 5992) ...암미나답 이라는 뜻... 이 단어는 עם)암5971) 백성 이라는 뜻으로, 이 단어는 עמם)아맘 6004) 합치다 감추다 깨닫지 못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 또한 아미나답은 נדב)나다브 5068) 기쁘다 드리다 헌신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로서, 아미나답은 고귀한 백성이라는 의미

==나손은 נחשון)나흐숀 5177) 나손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נחש)나하쉬 5172) 경험으로 알다 깨닫다 점을 치다 예언하다 라는 뜻<주관적 경험으로 알고 깨닫게 하시는 분>

==살몬은 שלמה)살마 8009) 살몬 이라는 뜻.. 이 단어는 שלמה)살마 8008) 의복..덮개 옷 이라는 뜻..<주님은 우리의 덮개, 덮는 옷이 되시는 분>

==보아스 이름의 뜻을 보면, 히브리어로 "보"라는 것은 "그에게," 즉 "하나님에게"라는 말이고, "아스"라고 하는 것은 힘, 능력이 있다는 뜻... "여호와 하나님께는 힘이 있다"는 뜻. 

==오벳... עובד)오베드 5744) 오벳 이라는 뜻.. 이 단어는 עבד)아바드 5647) 섬기다 봉사하다 종을 삼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섬기러 오신 주님>

==이새....이새 ישי)이샤이 3448) 감추다 계시다 <♣ 명제  이새는 만세전에 감춰진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감추어진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얻었다>

==다윗, 히브리어로 <ודִדָּ<.... 사랑받다 은총이 함께 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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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가계의 이름들...묵상]] 

(영원전부터 예비하신 바) 살인자 됨 회개하며 주를 찬송함의, 생생한 믿음 얻게 하신<유다>에게 자손을 주사 믿음으로 돌파하여<터치고 나아오는...베레스>그를 주님의 소유 삼아 비밀히 <울타리...헤스본>로 치시며 비밀히 <높여....람>영화롭게 하시고, <주님 마음 알며 자원-헌신....아미나답>하는 그를 친히 <감사드림 그 의미를 깨닫게 하사...나손> 더욱 주님의 은혜로<덮으심으로, 덮는 자 삼으심...살몬> 더 나아가 주만이 힘과 능력 참 근원<보아스>이심이라, [다바크+동행-결합-언약-친근]의 삶 실행하는 바로 그 여인 룻 통해 얻으신 겸손의 종<오벳>을 삼고, 비밀히 감추어 두신 <이새>자를 찾아오사, 주님이 정하신 때에 <사랑-은총...디윗>을 마침내 찾아 기름부으사 주께 합한 왕으로 삼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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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h 4...Amplified Bible...The Marriage of Ruth

1 Then Boaz went up to the city gate [where business and legal matters were settled] and sat down, and then the close relative (redeemer) of whom Boaz had spoken came by. He said to him, “Come over here, [a]friend, and sit down.” So he came and sat down. 

2 Then Boaz took ten men from the elders of the city and said, “Sit down here.” And they sat down. 

3 He said to the closest relative (redeemer), “Naomi, who has returned from the country of Moab, must sell the plot of land which belonged to our brother Elimelech. 

4 So I thought to let you hear of it, saying, ‘Buy it in the presence of those sitting here, and before the elders of my people. If you will redeem it, redeem it; but if not, then tell me, so that I may know; for there is no one besides you to redeem it, and I am [next of kin] after you.’” And he said, “I will redeem it.” 

5 Then Boaz said, “The day that you buy the field from Naomi, you must also acquire Ruth the Moabitess, the widow of the deceased, to restore the name of the deceased to his inheritance.” 

6 The closest relative (redeemer) said, “I cannot redeem it for myself, because [by marrying a Moabitess] I would [b]jeopardize my own inheritance. Take my right of redemption (purchase) yourself, because I cannot redeem it.”

7 Now formerly in Israel this was the custom concerning redeeming and exchanging property. To confirm a transaction, a man pulled off his sandal and gave it to the other. This was the way of confirming and attesting in Israel. 

8 So, when the closest relative (redeemer) said to Boaz, “Buy it for yourself,” he pulled off his sandal [and gave it to Boaz to confirm the agreement]. 

9 Then Boaz said to the elders and to all the people, “You are witnesses this day that I have bought everything that was Elimelech’s and everything that was Chilion’s and Mahlon’s from the hand of Naomi. 

10 I have also acquired Ruth the Moabitess, the widow of Mahlon, to be my wife to restore the name of the deceased to his inheritance, so that the name of the deceased will not be cut off from his brothers or from the gate of his birthplace. You are witnesses today.” 

11 All the people at the gate and the elders said, “We are witnesses. May the Lord make the woman who is coming into your house like Rachel and Leah, the two who built the household of Israel. May you achieve wealth and power in Ephrathah and become famous in Bethlehem. 

12 Further, may your house be like the house of Perez whom Tamar bore to Judah, because of the offspring which the Lord will give you by this young woman.”

13 So Boaz took Ruth, and she became his wife. And he went in to her, and the Lord enabled her to conceive, and she gave birth to a son. 

14 Then the women said to Naomi, “Blessed is the Lord who has not left you without a redeemer (grandson, as heir) today, and may his name become famous in Israel. 

15 May he also be to you one who restores life and sustains your old age; for your daughter-in-law, who loves you and is better to you than seven sons, has given birth to him.”

===The Line of David Began Here

16 Then Naomi took the child and placed him in her lap, and she became his nurse. 

17 The neighbor women gave him a name, saying, “A son (grandson) has been born to Naomi.” They named him Obed (worshiper). He is the father of Jesse, the father of David [the ancestor of Jesus Christ].

18 Now these are the descendants of Perez: Perez was the father of Hezron, 

19 Hezron was the father of Ram, Ram the father of Amminadab, 

20 Amminadab the father of Nahshon, Nahshon the father of Salmon, 

21 Salmon the father of Boaz, Boaz the father of Obed, 22 Obed the father of Jesse, and Jesse the father of David [the king of Israel and the ancestor of Jesus Christ].

===Footnotes

Ruth 4:1 The Hebrew for this word is a little peculiar, in that it means something like “a certain one” or “so-and-so.” It is used when the name of the person addressed cannot or should not be mentioned for some reason. No ill will or insult is implied. 

Ruth 4:6 Lit damage. The excuse given was probably made up on the spot by this relative-redeemer to avoid the obligation of marrying Ruth and raising a son in her deceased husband’s name (see note 2:20). He may very well not have wanted to raise a son under such circumstances, or to be married to a Moabite woman.

===희생과 사랑으로 기업을 무르는 구속자===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에게는 말론과 기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1:1,2).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은 여호수아 때에 각 지파와 각 가문의 대표에게 분배되었습니다.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각 지파에 한 지휘관씩 택하라”(민 34:18).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수 18:10).

예를 들면, 유다 지파의 경우,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러합니다.

[20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러하니라....21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쪽 끝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25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27 하살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30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32 르바옷과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스물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수 15:20-32)

그 이후로 각 가문의 땅은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엘리멜렉 역시 조상으로부터 땅을 물려 받았고 그 땅은 엘리멜렉이 죽으면서 당연히 두 아들의 몫으로 상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두 아들마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문의 기업의 땅은 가장 가까운 친족의 순서를 따라 먼저 나오미의 두 자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두 자부 중 하나인 오르바는 모압 땅으로 돌아갔기에, 이제 기업의 땅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며느리는 룻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친족으로는 보아스보다 앞선 다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즉, 촌수로 엘리멜렉에게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한 사람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보아스가 자기 발치에 누운 룻을 그의 옷자락으로 펴서 덮을 때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참으로 나는 기업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룻 3:12-13).

그리고 집에 돌아온 룻에게 시어머니 나오미는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고 확신을 준 것입니다. 즉, 나오미는 보아스가 어떤 방법으로든 합법적으로 룻을 자기 아내로 삼을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제 그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 성문이 열리고 성문 앞의 광장에 장사하는 사람들과 성읍 장로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 사회의 성읍은 매우 좁을 길에 집들이 세워져 있고 모든 장사와 공식적인 법적 처리는 전부 성문 앞 광장에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새로운 소식을 접하였고, 특히 성읍 대표인 장로들은 백성들을 만나 법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왕이 그 성읍을 방문하여 성문 광장에서 직접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다스리기도 했습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면 이곳에서 가르쳤습니다. 그곳에는 장로들을 포함한 성읍의 유력한 자들을 위한 의자가 할당되어 있었습니다. 

보아스도 유력한 자였기 때문에 그를 위한 의자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성문 광장은 성읍의 장터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이처럼 성문 광장은 성읍 백성들에게 있어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따라서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갔다는 것은 두 가지 일에 대한 법적 판결과 증인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 일은 엘리멜렉의 땅을 사서 무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엘리멜렉의 대를 잇기 위해 엘리멜렉의 며느리인 룻과 결혼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 거기 앉았다는 표현은 그가 유력한 자로서 그곳에 마련된 자기 자리에 앉았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그는 다른 여러 장로들보다 더 유력한 자였음이 확실합니다.

아무튼 지난 밤에 사랑하는 룻과 결혼을 약속한 보아스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성문으로 올라가서 그 기업 무를 자를 찾으며 기다립니다. 

보아스는 그를 만나면 그가 엘리멜렉의 땅을 무를 수 있는지 확인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보아스가 하고자 하는 일이 맘에 드셨는지 신속하게 그 일이 처리되도록 도우십니다.

룻기 4장 1절을 보면,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고 진술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마침’은 룻기 2장 4절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룻 2:3-4).

우리는 2장에서 보아스와 룻의 만남은 철저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고 마침 보아스는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서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보아스가 베들레헴 성문 앞에 나아가자 마침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그 사람이 보아스의 앞을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날 그 사람이 성문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또한 오더라도 수많은 인파 가운데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병이 들어 침상에 누워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먼 곳으로 출타 중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성문에서 기다리니 ‘마침’ 그 사람이 보아스 앞을 지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사건이 발생하였기에 ‘그렇구나’하고 본문을 읽지만 성문 앞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장사꾼들과 인파를 고려할 때 보아스는 대단히 운 좋은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이 보아스를 기뻐하사 별 다른 고생을 하지 않고 곧바로 그 기업 무를 자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보아스가 그 사람을 부릅니다.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이 말은 그와 해결할 어떤 문제를 놓고 정식 재판을 받자는 일종의 재판 청구 요청입니다. 

그러자 그가 와서 보아스 곁에 앉았습니다. 보아스는 성문에 앉아 있는 성읍 장로 10명을 청하여

“당신들은 여기에 앉으라”고 부탁하니 그들이 그곳에 앉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종의 작은 법정이 열렸습니다. 

판결할 장로들이 있고 여러 증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장로들의 판결은 서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베들레헴 성읍을 위해 남게 될 것입니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말을 합니다.

“우리의 형제 엘리멜렉이 살아 있을 때 그는 땅을 가지고 있었소. 이제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에게 그 소유의 권한이 있소. 나오미가 그 땅을 팔려고 하는데 당신이 사겠소? 당신은 엘리멜렉에게 가장 가까운 기업 무를 자라오. 여기에 여러 증인들과 성읍 장로들이 있으니 엘리멜렉의 땅을 사려면 사기 바라오. 만일 당신이 무르려면 무르지만, 무르지 않는다면 내가 무르겠소.”

나오미가 남편 엘리멜렉의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고 친족 구속자(고엘)를 찾아 팔려고 한 것은 일단 생계를 위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또한 친족인 기업 무를 자에게 먼저 팔아야 하는 모세의 법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 땅은 계속 가문 중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무개가 대답합니다.

“내가 무르리라.”

아마도 보아스가 이 대답을 들을 때 그의 눈과 표정은 당혹스러움 때문에 흔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룻을 사랑하였기에 철저하게 모든 것을 대비하였습니다.

한편, 여기서 무른다는 뜻은 엘리멜렉의 땅을 그 아무개가 사서 그 가문의 땅으로 남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나오미가 너무나 가난하여 땅을 팔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니 일단 먹고 살 수 있도록 돈을 마련하고 주고 그 땅의 소유권은 그 아무개에게로 넘어갑니다. 

물론 나오미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땅을 되찾을 돈이 생기면 그녀는 아무 때든지 돈을 주고 자기 땅을 사면 됩니다. 

만일 돈이 없으면 오직 희년이 되어서야 그 땅은 엘리멜렉의 가문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멜렉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면 그 땅은 희년이 되더라도 땅을 산 사람에게 영구히 속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땅을 산 사람의 기업은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지금 이 아무개는 나오미가 과부라는 것을 알고는 땅을 사고자 했습니다. 이는 희년이 얼마나 남아있었는지 본문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희년이 지나면 그 땅은 영구히 자기 것이 될 것을 계산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줄 모압 여인 룻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실, 그는 매우 계산적이고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4장 6절을 보니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겠노라”고 말합니다. 그의 이 말은 그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인지를 드러냅니다.

그 아무개가 엘리멜렉의 땅을 무르겠다고 하자 보아스는 차분하게 더 분명한 정보를 알려줍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아무개님, 한 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있소.”

“아, 그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나오미의 땅을 사려면 율법에 따르면 엘리멜렉의 아들들이 다 죽었고 그 아들 중 한 사람의 아내인 모압 여자 룻이 살아있는데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 들여야 하오. 그리고 그 아내로 하여금 엘리멜렉의 대를 이을 자녀를 낳아주어야 하오. 그래야 그 땅이 엘리멜렉의 가문에 계속 남게 될 것이오.”

이 말은 그 아무개에게 있어서는 엘리멜렉의 대를 잇기 위해 모압 여인 룻과 결혼해서 그 여자의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뜻이고 나아가 그 땅을 사더라도 그 여자가 낳는 아들이 소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결국 나오미의 땅을 꿀꺽 삼켜 먹을 수 없게 된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땅을 사서 룻과 그 아들에게 주어야 하니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정확한 정보와 법을 통해 사정을 알게 된 그 아무개가 대답합니다.

“나는 무르지 않을 테니, 당신이 무르시오. 나는 절대로 내가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겠소.”

그 아무개는 하나님의 선한 율법 정신과는 반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율법을 이용하려는 극한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그가 신속하게 구속주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이유는 재산상의 손해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는 룻에게 관심이 없었고 또한 그의 형제 엘리멜렉의 대가 끊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나아가 고엘 제도를 설정하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자비의 법 정신은 전혀 안 중에도 없었습니다.  

이때 이 답변을 들은 보아스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 답변이 그 아무개의 입에서 나올 때 보아스는 너무나 좋아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아무개는 고엘의 우선권을 보아스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그 우선권을 보아스에게 넘기는 계약을 한 것이 바로 그 당시의 규율에 따라 자기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준 행동입니다. 

이 행동에 대해 룻기 저자는 특이한 설명을 부연하고 있습니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룻 4:7).

룻기 저자는 “확정하기 위하여”라고 말했는데, 이는 신을 벗어 이웃에게 주는 행위가 계약을 비준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로 말하면 집을 살 때 공인 중개사 앞에서 양 측이 도장을 찍고 사인하는 것이라고 보면 하자가 없겠습니다.

즉, 그 아무개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우선권이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모든 증인들 앞에서 본인의 신을 벗어 보아스에게 줌으로 그 권리를 보아스에게 공식적으로 넘긴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모세의 율법을 보면, 기업 무를 수 있는 사람이 그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것은 가장 교활하고 이기적이고 악한 행동이라고 여기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 양도 과정에 망신 중에 망신을 주는 행위가 요구되어 있습니다. 

즉, 모세 율법은 가능한 기업 무를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는 친족이 어려움을 당할 때 가장 가까운 친족이 돕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즉, 가난하고 불쌍한 과부와 자녀들을 챙겨주고 돌보고 공급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는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정신은 신약에서도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아무튼 고엘에 대한 모세의 율법을 살펴보면 기업 무를 권한을 넘기는 것에 대해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신 25:5-10)

모세의 법에 따르면 나오미와 룻은 둘 다 베들레헴 성문에 있다가 그 아무개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지 않을 경우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 사람은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 이 같이 침 뱉음을 받아 마땅하다’라고 외칠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업 무르기를 거부한 그 사람과 그 집은 평생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는 오명을 갖고 살아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룻기에서 나오미와 룻은 가장 가까운 기업 무를 자에게 율법을 통해 기업 무를 것을 강요하기 보다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 사람을 ‘우연히’ 만나 그가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자인 것을 알게 되고는 그의 발치에 누워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룻 3:9)라고 말하면서 “이는 당신이 기업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즉, 나오미는 분명히 보아스보다 앞선 친족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룻을 위한 기업 무를 자를 보아스를 택하고 룻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두 과부는 기업을 무르지 않는 그 아무개에게 가서 침을 뱉으며 신을 벗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억지로 기업을 무르게 하는 것보다는 참된 사랑과 희생 정신으로 기업을 무를 참된 구속주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만일 룻이 이기적이고 사랑이 전혀 없는 사람과 결혼했다면 어떠한 삶이 살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매들이여!

남편을 택할 때 믿음에 의해 빚어진 성품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감시하는, 매우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그 아무개를 만나 가장 불운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택하지 않고 다른 우상들을 택하여 그 우상에게 인생을 던집니다. 하지만 그 우상들은 참된 구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우상들은 율법을 사용해서 자기에게 걸려든 사람들의 피까지 빨아먹은 후 내뱉을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자들은 계산 상 이득이 오면 결혼을 하려 하겠지만 그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구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참된 사랑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구속만이 영원한 연합과 감사와 복락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아무튼 그 아무개는 율법을 악용하는 부패한 인간 및 악한 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마음 중심은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에 언약이라는 굴레를 씌운 후에는 신속히 악독하고 이기적인 정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언약을 맺고 결혼한 여인은 비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 정신과 정반대로 율법을 악용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하게 여기며 싫어하십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욥이 부요하였을 때는 욥의 친구로 있었지만, 욥이 궁핍해지고 비참하게 되자 욥을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교만한 자리에 서서 도리어 욥의 가슴에 가장 아픈 비수를 꽂습니다. 

이때 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사용하여 이러한 무자비한 짓을 합니다. 이에 욥은 하마터면 그 세 친구들 때문에 하나님을 저주할 뻔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미워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처형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 정신과는 정반대로 미움과 교만에 갇혀 지극히 겸손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업신여기고 자기들의 기준으로 정죄하였습니다.

이처럼 그 아무개와 같은 사람들은 내 눈에 들보가 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잣대인 율법으로 자기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판단하고 재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늘 자기 의와 자기 유익을 위해 주의 율법으로 자기 자랑을 하며 자신을 드러내지만 남을 향해서는 주의 율법으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단 한 순간이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5-4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도다 (갈 5:13-14)

안타깝게도 우리 인간들은 죄로 인해 부패함으로써 지독히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이 다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죄악 됨을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란다면 주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생명과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에 우리가 주께서 주신 생명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령을 따라 새생명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율법의 강령인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에는 언제나 아무개와 같은 죄성 때문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위기 앞에서 포기하는 사랑은 언약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결혼은 언약적인 사랑이기에 결코 위기 앞에서 포기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혼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자주 이러한 상담을 받습니다.

“이 남자를 제가 어떻게 사랑하나요? 너무 고약하고 문제가 많아요.”

그러면 저는 성경으로 답변합니다. “자매님은 결혼과 함께 언약적 사랑을 하기로 했기에 그 남자가 당신 남편이니까 그래서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주께 하듯 부군에게 순종하십시오.”

또한 형제가 상담합니다.

“이 여자를 제가 어떻게 사랑하나요? 너무 머리가 나쁘고 답답해요.”

그러면 또 다시 성경으로 답변합니다. “형제님은 언약적 사랑에 의해 그 여인을 당신의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무조건 아내를 위해 생명 바쳐 사랑하십시오.”

보아스와 룻의 사랑은 언약적인 사랑으로서 그 아무개의 난관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결코 포기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의 견인을 믿습니다. 즉, 하나님과 아들의 언약 가운데 우리를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어떠한 우리의 죄성이라는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막히거나 포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4-35)

아무튼 그 아무개의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이제 보아스와 룻과의 결혼은 율법적으로나, 사회-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의 진행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엘리멜렉에게 더 가까웠던 친족이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주자 보아스가 자신 있게 장로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선포합니다.

[9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룻 4:9-10)

사랑하는 여러분!

결혼의 성립은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언약을 맺어야 됩니다. 

물론 결혼의 본질은 그 아무개처럼 법으로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아스처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언약이 없는 결혼은 거짓 결혼입니다. 그리고 언약 후에는 서로가 결혼한 부부라는 것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숨겨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를 향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향한 무조건적인 주의 희생적 사랑을 알게 되면서 감사와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세례를 받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내 된 주의 백성의 결혼 언약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때 증인으로는 성삼위 하나님이 계시고 이미 거듭난 주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의 백성들 앞에서 세례를 베풀어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새언약 가운데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라.](롬 10:9-11)

이처럼 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고백한 후 세례를 받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사람들은 그 이후 주님과의 연합 관계를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1-13)

[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눅 12:8-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결혼은 단 둘의 비밀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언약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 역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세례로 공개되어야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인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은 숨겨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 사건이 숨겨진 사건이라면 우리의 믿음 역시 숨은 믿음이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복음의 비밀을 온 세상에 공식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23 (아그립바 왕이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행 26:23, 26)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그러므로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참 신자들마다 언제 어디서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를 드러내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숨기는 것은 부부가 서로의 관계를 숨기는 것과 같으며 사실 이보다 더 비겁하고 위선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반면, 보아스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룻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를 위해 그의 모든 삶을 던질 것을 맹세한 것처럼, 우리 주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자기 아내로 인정하시며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지셨고 지금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수고하며 희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으로써 우리의 맏형입니다. 따라서 룻과 같은 우리를 얼마든지 구속하여(Redeem) 주십니다.

주께서는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자 우리를 죄값으로부터 그리고 죄성으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친히 섭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사셨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룻에게 있어서 구속자는 룻에게 기업을 주기 위해 철저하게 법을 지키면서 참으로 신실한 사랑으로 땅 값을 치르고 땅을 사고 나아가 그녀를 아내로 삼은 보아스입니다.

룻과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구속자는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나아가 생명 주시기 위해 부활 승천하셔서 장래 부활과 함께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을 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과 입과 삶으로 완전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러므로 룻을 향한 보아스의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신부된 주의 백성이 받게 될 구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제 보아스의 선포를 들은 모든 백성과 장로들 역시 성문 앞에서 선포합니다.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마도 이 선포를 할 때 그 자리의 백성들과 장로들은 추수의 곡식들을 하늘로 던지며 환호성을 외치면서 선포하였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보아스의 마음을 아는 충실한 종들이 보아스와 룻이 마침내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중대한 재판에서 승리했을 때 우리 및 우리 주변의 같은 편들은 환호성을 부르짖으며 춤을 춥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는데 큰 장애가 있다가 그 장애가 사라지고 마침내 결혼의 성사가 공식적으로 가능하게 되면 결혼을 하는 두 사람 및 주변의 친지들은 기뻐 환호성을 치며 덩실 덩실 춤을 춥니다. 지금 장면이 그러한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뱀에서 속아서 죄를 지음으로 비참에 떨어졌을 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복음은 여자가 뱀에게 속아서 인류를 망쳤지만, 여자를 통해 한 씨가 태어나 인류를 망하게 한 그 뱀의 머리를 쳐서 멸망시킬 것이라고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그런데 그 씨가 이 세상에 오도록 쓰임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의 입에서 터져나옵니다.

그 이름은 라헬과 레아, 그리고 다말입니다. 이 세 사람은 결혼을 통해 자녀를 낳음으로 메시아의 약속을 이룬 복된 여인들입니다.

베들레헴 성문의 모든 백성과 장로들은 룻에게 복을 빌며 룻이 이스라엘의 집을 세우고 메시아가 오실 유다 지파의 대를 이어준 다말과 같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베레스를 말합니다. 즉, 룻이 자녀를 낳되 베레스와 같은 자녀를 낳기를 축복한 것입니다. 

베레스는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야곱이 죽으면서 유다에게 왕족의 예언과 먼 훗날 메시아의 예언을 남겼는데 그 예언을 유다의 뒤에서 곧바로 이어 준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 성문의 장로들과 백성들의 축복은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선포된 축복으로서 이는 정확하게 메시아의 대를 이를 자녀가 룻에게서 나게 될 것을 축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룻기를 볼 때 이러한 큰 그림 속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보아스와 룻의 작은 만남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적인 경륜을 이루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하나의 조각이었습니다. 

그 조각이 하나님의 큰 그림에 끼워질 때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어 마침내 완성될 것입니다. 

물론 그 완성은 가장 중요하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마침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이요, 오셔서 하나님의 예언대로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하와의 그 씨로 오셔서 마귀의 머리를 때리신 참 메시아인 그리스도인 사실을 알며 이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와 왕으로 계신 그분께서 반드시 가장 적절한 때에 재림하셔서 모든 죄와 저주와 마귀들과 그것에 속한 모든 것을 불못을 던지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마 어마한 우주적 차원의 사업과 온 인류를 위한 가장 중대한 일에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게 되면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의 장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있습니다. 자녀가 자라나면서 믿음의 자녀들이 되는 것은 부모의 가장 큰 복입니다. 

이는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셔서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위대한 도구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자라난 그들은 보아스에게 주어진 성문 백성과 장로들의 축복처럼 이 시대에서 그들이 있는 곳에서 유력하여지고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유명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보아스가 낳은 먼 훗날의 후손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러한 복을 무한하게 누리던 자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영원하고 참된 진정한 구속자를 맞이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에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할 일은 그 구속자를 그들 평생에 믿고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이 땅의 교회는 무너질 것이고 다른 세속적인 사상들과 돈과 쾌락과 세상의 초등 학문의 이념이 이 시대 및 우리의 자녀들을 삼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서지 못함으로써 온 땅이 지옥 자식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아는 모든 친족들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특히 우리의 귀한 자녀들에게 영원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십자가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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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이 보아스에게 청혼한 데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첫째는 아들을 낳아 죽은 남편의 이름을 잇게 해 주시도록 간청하는 의미였고, 둘째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갖고 있던 기업의 땅을 다시 돈을 주고 사달라는 의미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룻의 청혼에는 이름과 땅의 회복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름과 땅은 매우 중요합니다.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땅이 없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네 이름이 없다고 하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땅과 이름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천국에 땅과 이름이 있는가 없는가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룻기 3장에서 룻이 요구한 것의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내게 천국의 땅과 천국의 이름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보아스가 청혼을 수락합니다. 보리 여섯 되를 나오미에게 보냈습니다. 보리 여섯 되는 청혼을 받아들이겠다는 증표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보리 여섯 되를 받은 나오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룻기 3장 18절에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룻기 4장은 나오미가 언급한 ‘이 일’이 성취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즉, 기업 무르기를 성취하는 것, ‘구속의 성취’(Accomplishment of Redemption)입니다. 

룻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땅도 없고 이름도 없었던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죄인들을 예표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룻을 구원해서 땅도 주고 이름도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인 것입니다. 

구약은 그림자고 신약은 실체입니다. 구약에서 룻은 신약의 죄인들을 예표하고 보아스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위해 구속을 성취하는 것이 룻기 4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룻기 4장의 내용을 통해 구속의 성취, 성취된 구속에 관한 다섯 가지 진리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Ⅰ. 우리가 얻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다 

구원은 100%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3장 18절에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너는 이제 보아스에게 청혼한 것으로 네 할 일을 다 했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속의 성취는 보아스가 다 알아서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름을 잇는 것, 땅을 도로 찾아주는 것도 모두 보아스가 할 일이고, 이제는 네 할 일을 다 했으니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에게 청혼하는 것 이외에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의지로 땅을 회복할 수 없고 이름을 회복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룻기 4장에 나타난 구속의 성취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보아스가 계획한 것이고 주도하는 것이며 성취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100% 보아스가 다 이룬 것입니다. 

성경적인 구원관에 있어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인들이 스스로의 능력과 선행으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이 100% 다 이루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가 있는가 하면 타락한 기독교도 있습니다. 타락한 기독교의 특징은 인간의 선행이 천국 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50% 담당해 주시고, 인간의 선행과 공로 50%가 더해져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간의 선행이 구원에 일부분 기여하거나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기독교는 구원이 인간의 힘이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공로로 되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구원을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구원을 적용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속의 계획’(Planning of Redemption)을 이루시고, 성자 예수님은 ‘구속의 성취’(Accomplishment of  Redemption)를 이루시고, 성령 하나님은 ‘구속의 적용’(Application of Redemption)을 이루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부 하나님은 택자를 예정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택자를 위해 죽으셔서 죄 값을 다 갚으시고, 성령 하나님은 택자들에게 이 구속의 진리를 믿게 하시고 거듭나게 해 주십니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으로 계획하시고 완성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은 구원에 있어서 0.00001%도 기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속죄하는 일에 죄인들의 피는 조금의 가치도 없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일에 인간의 지성은 0.00001%도 공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요나서에 참으로 위대한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서 니느웨로 향하지 않고 다시스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다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원들은 이 일이 누구로 인함인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고, 제비 뽑힌 요나를 잡아 바다에 집어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집어 삼키게 하셨고,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삼야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요나 2장 9절은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문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자기 힘으로 살아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말미암는 일임을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구원은 노력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으로 천국 가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천국 가는 모든 구원의 성취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이루시는 일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Ⅱ. 우리가 얻은 구원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된 것이다 

구약의 계대결혼은 죽은 사람의 형제들이 지는 의무입니다. 형이 결혼해서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은 반드시 형수와 결혼해야 합니다. 이것이 계대결혼의 의무입니다. 동생은 형수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죽은 남편인 말론의 동생이 아닙니다. 룻의 죽은 남편인 말론의 아우는 기룐이지만, 그도 이미 죽었습니다. 

그러니 보아스는 사실상 계대결혼을 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없었습니다. 자발적으로 기업을 무를 수 있었지만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대결혼해야 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보아스는 기업 무를 순위 1순위가 아니라 2순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룻의 청혼을 받았을 때, 정중히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거절한 보아스를 향해 손가락질하거나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의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없고, 신발을 억지로 벗길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의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룻의 기업을 무른 이유는 단지 자발적인 본인의 선택으로 동정심과 사랑의 마음을 갖고 추진한 것입니다. 보아스는 스스로 룻을 구속하고, 스스로 계대결혼하고, 스스로 말론의 땅을 사서 그 아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한 일들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 10:17~18). 

혹자는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고 피 흘려 죽임당한 것이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셔야 할 필연적인 의무를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꼭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은 천국에 갔을까요?” 이런 질문은 건전한 질문이 아닙니다. 질문 자체가 아주 좋지 못한 전제가 깔려 있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전제일까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음을 증거해 주셔야 할 의무가 있고, 우리 인간은 모두 공평하게 복음을 들어야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누구도 내게 복음을 들려달라고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에 불특정 다수를 구원해 주셔야 할 의무를 갖고 계십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께 그런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본주의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으면 왜 나를 지옥에 보내시겠느냐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야 한다면 그것은 자기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그 어떤 의무도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요구할 권리가 없으며, 하나님 역시 인간을 반드시 구속하셔야만 하는 의무를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자발적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선물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보아스가 다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공짜로, 거저 받게 되는 것입니다. 

Ⅲ. 우리가 얻은 구원은 구속자 편에서 대가를 치르고 성취된 것이다 

구속자는 큰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룻이 한 것은 단지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었습니다. 청혼만 하고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공짜로 결혼한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룻과 결혼했습니다. 우선 땅값을 지불했습니다. 

보아스는 성문 앞에 나아갔습니다. 성문은 쉽게 말하면 법정과도 같은 장소입니다. 재판석이 있는 곳이 성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기업 무를 1순위의 사람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로 성문 앞을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자 보아스가 그를 불렀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의 이름을 밝혀주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중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그를 불러 앉힌 후, 장로 10명을 청해서 함께 앉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증인들 앞에서 기업 무를 1순위의 사람에게 묻는 것입니다.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엘리멜렉의 사유지를 관할하고 있지 않느냐? 물론 땅을 팔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소유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사용권을 다시 찾아와야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년이 되기까지 땅의 사용권을 매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유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소유지의 관할권은 나오미가 갖고 있었지만, 사용권을 되찾아와야 했기에 보아스는 기업 무를 1순위의 사람에게 당신이 그 땅의 사용권을 되찾아 오겠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법으로 보면 상속자가 없는 경우 기업 무를 자가 땅을 되찾았을 때, 그 땅의 소유주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부인에게 땅을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 땅의 소유권을 취할 수 있었기에 그는 그 땅을 무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4절에 “내가 여기 앉은 자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고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그가 가로되 내가 무르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가 부연설명을 합니다. “당신은 나오미가 팔은 땅을 다시 사는 경우 룻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주고 당신이 산 그 땅을 그 아들에게 상속해야 한다. 그래도 기업을 무르겠느냐?” 그러자 가만히 생각하더니 기업 무르는 일을 포기하게 됩니다. 4절에서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더니, 보아스의 부연설명을 듣고 수지타산을 고려해 본 결과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을 알게 된 그는 곧 무르지 않겠다고 돌변한 것입니다. 그는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6절에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최종결혼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발에서 신을 벗는데, 이는 권리를 포기하고 양도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표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2순위자인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보아스는 땅값을 지불하고 땅을 되찾아 가지고 있다가 룻과 결혼해서 아들 오벳을 낳고 오벳에게 그 땅의 소유권을 모두 상속한 것입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룻이 지불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보아스가 다 지불하고 기업 무르기를 성취한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받은 것입니다. 우리 편에서는 지불한 것이 없지만,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땅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 없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위해 매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 흘리시는 대가를 치러주셨습니다. 이것은 은과 금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대가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것은 예수님이 이런 희생을 대신 치러주셨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Ⅳ. 우리가 얻은 구원의 핵심은 영생을 얻는 것이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해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남편, 재물, 평안, 기쁨, 행복 등 많은 것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세상적인 복을 다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게 된 것은 더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0절에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름과 땅을 얻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없어졌던 땅, 깨어졌던 이름을 잇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때 필요한 땅과 주민등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핵심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갔을 때, 땅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이름이 천국에 주민등록 되어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땅과 이름은 어떻게 얻는 것입니까? 공짜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생하는 복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서 이 세상의 필요한 모든 복을 받고 누리게 됩니다. 건강도 얻고, 부자도 됩니다. 술을 끊으니 부자가 되는 것이죠. 술과 담배를 끊게 되니 건강이 유지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부와 명예와 건강과 같은 현세적인 복이 전부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복의 핵심은 내세의 복입니다. 죽어서 갈 곳이 있다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에 가면 거할 곳이 있습니다. 

천국에 내 이름과 내 땅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며 영생하게 될 것입니다. 

Ⅴ. 우리가 얻은 구원은 절대적 확신을 주며,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것을 비밀리에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성문 앞 법정에서 기업 무를 권리를 획득했습니다. 증인 2명만 있어도 충분할 것을 장로 10명을 데려다 놓고 기업 무를 1순위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9~11절에 보면 ‘증인이 되었다’는 표현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업 무를 1순위의 사람이 자기 발에서 신을 벗어 “나는 더 이상 기업 무를 권리를 찾지 않고 양도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자 공적, 법적인 절차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보아스가 구속하는 모든 과정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었고, 법적인 인준 절차를 합법적으로 밟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결코 취소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영생을 주신 것은 결코 취소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인준을 받으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주시하셨고, 인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침례를 받고,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두 번이나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인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인준의 절차가 마치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받아주셨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구속사역은 공적이고 법적인 인준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죄인들의 죗값을 모두 치러주셨고, 다시 빼앗기거나 취소될 수 없는 영원한 영생의 선물을 값없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거래는 결코 취소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룻이 보아스로 말미암아 현세의 복, 내세의 복을 다 받았습니다. 우리는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현세의 복, 내세의 복을 다 받은 사람들입니다. 현세와 내세의 복을 받을 통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는 이 복을 거저 받았습니다. 공짜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짜로 주지 않으시고 자신의 생명으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룻이 보아스에게 청혼하여 아내가 되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예수님을 영적인 신랑 삼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구원을 받는 일보다 시급하고 중차대한 일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장례식장을 가 보면 고인에게 얼마나 많은 재산이 있었는지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옥에 앉아서 대통령하고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살아있을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죽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죽음은 득달같이 찾아옵니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홀연히 소천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죽음은 어둠 속의 비수처럼 날아온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죽음은 그렇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를 준비했는가입니다. 천국에 내 이름과 내 땅이 있는가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 어떤 집을 지었는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에 갈 것인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는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판가름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상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좋은 집을 짓고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 것만 바라보고 살면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한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천국에 좋은 집을 짓고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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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4장 (개요)

이제 보아스는 룻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죽은 형제의 과부와 혼인하는 다소 특이한 결혼이었다. 

이것은 율법(신 25:5 이하)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복음의 사명을 위해서 기록된 것이다. 본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보아스는 그의 경쟁자를 정당하게 물리쳤다(1-8).

2. 보아스와 룻은 대중 앞에서 엄숙하게 혼례를 행했고 많은 이웃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9-12).

3. 이들 가문에서, 다윗의 조부인 오벳이 나오게 되었다(13-17). 그리고 본서는 다윗의 족보로 끝나고 있다(18-22). 

성령의 축복이 이 이야기를 거룩한 성령 안에 기록되게 했고, 현숙한 이방 여인 룻의 혈통에 하나님의 섭리가 임하시어 그 손자로 다윗을 낳게 하고 그 가문이 다윗으로 계승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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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절차를 밟은 보아스(룻 4:1-8)

Ⅰ. 보아스는 즉시 법정을 소집했다. 

아마 보아스 자신도 그 성읍의 장로였을 것이다. 그는 재산이 많은 유력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그 성읍의 원로로서 회의를 주관했을 것이다. 본문에 나타난 바로는 그가 평민으로서가 아니라 욥처럼(욥 29:7 이하) 성문에 올라가 앉을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다 지파의 방백 나손의 손자로 태어난 보아스가 그 성읍에서 한 재판관보다 더 낮은 지위를 갖고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전에 보아스가 타작마당에 있는 노적가리 곁에서 잠을 잤다고 해서 성문에 올라가 재판하는 높은 지위에 대해 불명예스러운 일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째서 보아스는 이렇게 급히 서둘고 이 혼례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을까? 룻은 가난했기 때문에 남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훌륭한 지위에 있지도 않았으며 타국인이었다. 그녀는 아름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설사 그녀가 예전엔 아름다웠다 할지라도 고통을 겪고, 먼 길을 걷고 이삭을 줍고 하여 그녀의 아름다움은 시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아스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의 일을 서둘러 돌보아 주는 것은 모든 이웃 사람들이 그녀를 현숙한 여자라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보아스는 이것을 “진주보다 더 귀하게”(잠 31:10) 여겼다. 그러므로 그는 만일 그가 그녀와 결혼하는 것이 그녀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이라면, 곧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날이 법정을 여는 날은 아니었으나 그는 그 성읍의 10명의 장로들을 소집해 성문의 꼭대기에서 자기를 만나도록 했다(2절). 거기서는 공적인 업무가 처리되었다. 그 성읍의 관례대로 많은 장로들이 모였는데, 그것은 아마 법정의 구성원 전원인 것 같다. 보아스는 그 자신이 재판장이었지만 그의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다른 장로들의 의견을 물었다. 정직한 의도를 지닌 자는 대중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Ⅱ. 그는 그의 경쟁자를 불러 이 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1절). “아무여, 여기 앉으라.” 

보아스는 분명 그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 기록자는 그 이름이 후세대에 알려질 필요가 없으므로 여기에 기록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아스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그가 룻의 일을 제안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하게 하셨다. 때로 작은 일들의 도움으로 중요한 일이 빨리 이루어지기도 한다.

Ⅲ. 보아스는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었을 때 식량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엘리멜렉이 저당잡힌 땅을 찾아줄 것을 그에게 제안했다(3절). 

“나오미에게 팔아야 할 땅이 있도다. 즉 그녀는 그 땅의 무를 값을 내면 저당잡은 자의 손에서 그 땅을 팔 것이니라.” 또는 나오미의 남편이 죽었으므로 이것은 그녀의 재산이며, 어떤 조그만 일로 돈이 필요하게 되자 그녀의 재산을 살 만한 법적 구매인에게 팔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아스는 이것을 정식으로 통고했으나 그는 자기가 이 일을 맡기를 거절했다. 누가 사든지 간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보아스는 아마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느 친족 못지않게 풍부한 돈을 갖고 있느니라. 만일 내가 마음에 있다면 내가 제일 먼저 이것을 제안했으므로 나의 친족 남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그것을 사지 않겠느냐?” 그러나 아니다. 비록 보아스가 그것을 사고 싶더라도 그는 제일 가까운 친족 남자를 앞질러 자기가 나서는 그런 야비한 일은 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행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정당하고 정직해야 할 뿐 아니라, 정중하고 명예로워야 하며, 남에게 들킬 것을 꺼리지 말고 솔직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Ⅳ. 그 친족 남자는 처음에는 그 땅을 살 뜻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한 자는 룻과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듣자 거절하고 물러갔다. 그는 가난한 과부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주 싼값에 그 땅을 사서 그의 재산을 늘리리라 기대하고는 욕심스럽게 그것을 노렸을 것이다. “진심으로 내가 무르리라”고 그는 말했다(4절). 그러자 보아스는 그에게 밭을 사는 날에 그 젊은 과부도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율법이나 이 나라의 관습대로 그는 이런 의무를 행해야 하며, 나오미는 이런 조건이 아니면 그 땅을 팔지 않겠노라고 고집했다(5절).

어떤 사람은 이 문제는 형제의 과부와 결혼하라는 율법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라고 본다(후기에 와서 관습에 의해서 결혼의 의무가 그 다음 친족에게까지 확장되지 않았다면, 그 율법은 한 아버지의 자식 간의 의무를 말해 주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신 25:5). 오히려 이 문제는 재산상환법(레 25:24, 25)에 관계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그를 “기업 무를 자”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재산 매입자가 과부 룻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나오미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결정이었든, 보아스가 이런 거래의 조건을 내세웠을 때 그 친척은 거절했다(6절). “나는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라. 나는 이 일로 해서 내 재산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이 일을 맡지 못하겠노라.” 그는 토지만은 그 재산에 유익하나 여자를 함께 데리고 오는 것은 별 도움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마도 타국에서 와서 남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가는 이 가난한 과부와 결혼하는 것은 천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이렇게 하면 그의 가문에 수치가 되고, 그의 혈통을 더럽히게 되며 그의 가족들에게 손해를 주게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리아역은 그가 이것을 거절한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즉 그 친척은 이미 아내를 갖고 있었고 룻을 또 그의 아내로 맡게 되면, 그들 사이에 논쟁과 싸움이 일고 재산상속 문제가 까다롭게 되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것이다. 또는 룻이 많은 자식을 낳게 되면 그들 모두 각자의 재산을 취하려 하여 재산이 거의 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속(값을 치름)을 부끄럽게 느낀다. 그들은 믿음을 받아들이기를 꺼려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신앙의 얘기를 이미 많이 들어왔다. 거기에 아무런 이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앙을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도 칭찬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그들의 재산을 잃을까 두려워해 신앙을 기꺼이 버리며, 도저히 신앙에 붙어 있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지만 성결한 생활을 하려 하지 않는다. 믿음은 이 세상의 욕심과 함께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을 따르려는 자는 세상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Ⅴ. 이래서 정당하게 값을 무를 권리가 보아스에게 넘어왔다.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그 친족 남자가 훌륭한 재산과 아내를 택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으며, 보아스 역시 이렇게 귀하고 원하던 것을 얻게 된 일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고대의 관습은 후기에 와서처럼(렘 32:10 이하) 증서를 주어 토지를 매매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표적이나 의식을 가지고 행했다. 즉 우리들이 열쇠를 줌으로써 집의 점유권을, 잔디나 나뭇가지를 줌으로써 땅의 소유권을 양도하는 의식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행해진 의식은 “신을 벗어서”(시리아역에는 이것이 “그의 오른쪽 장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살 사람에게 주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그가 신중히 생각한 끝에 이 토지에 대한 모든 권한을 사는 사람에게 양도한다는 표시였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였다”(7절). 이런 전례가 이 경우에도 행해졌다(8절). 만일 이 친족 남자가 율법대로 룻과 결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율법을 무시해 거절했다면, 룻은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어야 했다”(신 25:9). 그러나 비록 그가 어느 정도 친족으로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만 먼 친척이었기 때문에 그는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며, 그의 거절은 룻이 바라던 일이었으므로 룻은 그에게 처벌을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패트릭 주교는 이런 일은 그 율법과는 상관없으며 여기서 신을 벗는 의식은 불명예스러운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토지가 옳지 못한 방법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고 양도했다는 확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속임수 없이 일을 처리하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우리의 모든 계약과 거래를 공명정대하게 해야 함을 잊지 말자. 보아스가 친족 남자에게 알리지도 않고서 몰래 나오미와 거래를 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고 이렇게 정당하게 처리한 것은 얼마나 영예로운 일인가? 정직이야말로 최선의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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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의 재혼(룻 4:9-12)

보아스는 자기 할 일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친족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리라고 룻에게 말했던 그 약속을 지체없이 수행했다. 그의 성읍의 문에서 그 장로들과 모든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그는 모압 여인 룻과 혼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는 엘리멜렉가(家)에 속한 모든 부동산을 매입했다. 그가 재산이 많은 “유력한 자”(2:1)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상환금을 지불할 수 없었을 것이요 자기의 친족 집안에게 이런 협력을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재물이 이렇게 자기의 집안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주인이 그렇게 사용할 마음이 있어서―큰 일을 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결혼에 관해서 살펴보자.

Ⅰ. 그 결혼은 의식을 갖추게 되었고, 최소한 많은 증인들 앞에서 거행되었다(9, 10절). “너희가 증인이니라.”

1. “내가 그 재산을 매입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니라. 누가 그녀의 재산을 저당잡았든 간에, 내게 오라. 내가 그 땅값을 따라 표를 주리라.” 

땅값은 희년까지의 연수에 따라 계산되었다(레 25:15). 희년이 되면 물론 그 재산들은 엘리멜렉가로 되돌아가게 된다. 재산 거래가 공적으로 거행되면 거행될수록 그 재산은 탈취의 위험이 적어진다.

2. “그 과부를 나의 아내로 맞이하였다는 자들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니라.” 

그는 그녀에게 지참금을 주지 않았다. 룻이 가지고 있던 재산은 팔렸다. 보아스는 그 재산에 해당하는 만큼의 돈을 내지 않고는 차지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녀를 사들이겠다고 말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덕이 있는 여인이므로 보아스는 정당한 거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집과 재물은 조상들에게서 상속하느니라”(잠 19:4). 그러나 현명한 아내가 더욱 값있는 것이니, 그것은 주께로부터 오는 특별한 선물이다. 그는 그녀와 결혼함으로써, 고인들을 기억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말론은 룻에게 아들을 남겨 두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이 그의 가문에서 끊겨지지 않게 했다. 아마 이런 방편은 그 때까지도 남아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아들 말론의 미망인 룻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공식적 기록에 삽입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등록 명부를 볼 기회가 있을 때는 그 조상들의 관계를 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 보아스와 룻의 결혼과 그 결과를 위해서 보존된 것이며, 사실상 보아스의 생각을 훨씬 초월해 이 세상 끝날까지 말론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유력한 방편이 된 것이다. 보아스는 살아 있는 자에게 친절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의 명예까지도 생각했던 고로 하나님은 그의 이름이 메시아의 족보에 기록되는 영예를 부여하셨다는 점을 주목하자. 이래서 그의 집안은 이스라엘 모든 가계보다 더 존중을 받게 된 것이다. 반면에 자기가 그 과부와 결혼하면 자기의 이름과 재력이 약화되리라고 두려워하던 그 친족의 이름과 가문과 재산은 영원히 암흑과 치욕 속에 매장되고 말았다. 고인의 명예와 가난한 과부나 나그네―이들은 자비를 되갚을 능력도 없다(눅 14:14)―의 위안을 염려하는 다정하고 관대한 마음씨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요 확실히 상급을 받으리라.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고엘 곧 우리의 구속자(무를 자)이시요,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이시다. 보아스와 같이 그 분은 타락된 인간들의 가련한 상태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 분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우리를 위해서 하늘의 재산을 사 주셨다. 그 재산은 우리들의 죄 때문에 저당잡혔고, 하나님의 종들의 손에 빼앗겼던 것이다. 또한 지금껏 우리의 능력으로 그 값을 치르지 못하고 있었던 재산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속주 그리스도는 한 특정한 백성을 맞아들이셨다. 즉 그 분이 친히 원하시는 백성이었으니, 룻처럼 이방인들이든 외국인이든, 가난하고 비천하든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죽어 묻혀 버렸던 인종의 이름이 영원히 제거되지 않도록 하셨다. 이 일을 위해서 그 분은 그 자신의 기업과 결혼하는 일을 감행했다. 그 분은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고후 8:9)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 분의 하늘 아버지로부터 풍성한 보상을 받으셨으니, 그것은 그 분이 그렇게 당신 자신을 낮추셨으므로 아버지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기”(빌 2:9)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께 대한 고마움을 고백하고, 그 분과의 관계를 확실히 하여,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그 분에게 영광 돌리게 할까를 연구하자. 보아스는 이 결혼과 재산 매입을 공중에게 알림으로써 모든 사기꾼들을 물리치고 자기의 권리를 확고히 했다. 뿐만 아니라 룻에게 영예를 부여해 준 것이다. 즉 그가 룻과 그의 가문과 가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요 또한 비밀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긴 셈이다. 빛을 미워하고 거기에 가까이 오지 않으려는 것은 오직 마귀뿐이다. 보아스는 자기의 행동에 대한 증인을 요청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요 그래야 다시는 부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심은 장로들에게뿐만 아니라 성문에 있던 모든 사람과 지나가던 모든 일반 사람에게도 요청되었다(9절). 또한 그들이 그 요청을 들었을 때에는(11절) “우리가 증인이니라”고 대답했다.

Ⅱ. 그 결혼식에는 많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장로들과 모든 사람들은 그 결혼의 증인이 되면서 결혼을 축복했다(11, 12절). 이제 룻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던 것 같다. 그들이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젊은 여자”(한글 개역에는 “이 소년 여자”라고 되어 있음)라고 했다. 보아스가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려 하자, 그들은 이미 그녀를 보아스의 집 식구로서 존경했다. 그리고 그들은 깊은 정성으로 이 새로운 부부를 위해 기도했다.

1. 원로급 장로로 보이는 자가 이 기도를 했고, 다른 장로들은 일반 사람들과 더불어 그 기도에 합심했다. 

그러므로 그 기도는 그들 전체가 드린 기도처럼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공중기도에서는 한 사람이 말을 하나, 모든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결혼은 축복을 받아야 하며, 기도가 수반되어야 한다. 

모든 피조물과 만물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삶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온갖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예의 있고 우정어린 일이다. 또한 우리가 바라는 모든 선을 모든 선의 근원 되신 분께 구해야 마땅한 법이다. 말씀과 기도로 봉사하는 사역자들은 남에게 권면을 주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듯이, 또한 이런 새 삶에 돌입하는 자들을 위해서 축복을 기도해 주기에도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2) 우리는 남의 결혼을 시기하고 분노해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기도하고 복을 빌어 주어야 한다.

2.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해 보자.

(1) 그들은 룻을 위해 기도했다.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간 여인으로 라헬과 레아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1절). 즉 “하나님께서 그녀를 현모양처가 되게 하기를……!” 한 것이다. 룻은 정숙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친구들의 기도가 필요했다. 그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자기가 들어간 그 집안의 축복이 되기 위해서다. 그들은 그녀가 사라와 리브가보다는 라헬과 레아가 되기를 빌었다. 사라는 아들이 하나뿐이었고 리브가에게는 둘이 있었으나 하나는 언약의 아들이 되고 다른 하나는 언약이 거부된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라헬과 레아는 “이스라엘의 집을 세웠다.” 그들의 모든 자녀들이 교회의 백성이 되었고, 그들의 후손들이 무수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번성하여 열매 맺고 네 집 내실에 있는 결실한 포도나무(시 128:3)가 되기를 원하노라.”

(2) 그들은 보아스를 위해서 기도했다. 

그가 계속 유력해(값있는 자가 되어) 그 성읍의 자랑이 되며, 더욱더 그 이름이 떨쳐지기를 기원했다. 그들은 그 아내가 그 집안의 사사로운 일에 축복이 되기를 빌었고, 그 남편은 그 마을의 공적인 업무에 축복이 되기를 빌었다. 그녀는 그녀의 위치에서, 남편은 또 남편의 위치에서 각각 지혜롭고 덕 있고 성공적인 인물들이 되기를 빈 것이다. 유명해지는 유일한 길은 유력한 자(쓸모 있는 자)가 되는 것임을 주목하자. 위대한 명성은 위대한 공로에 의해서 온다. 쓸모 없는 일을 하지 않고, 해롭거나 악한 자가 되지 않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그 시대에 쓸모 있고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그 이름이 뛰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이 처한 그 곳에서 별처럼 빛나지 않으면 안 된다.

(3) 그들은 또 그 집안을 위해 기도했다. 

“네 집으로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즉 “네 집안의 사람이 많은 수가 되고 베레스의 집안같이 크게 번성하기를 원하노라”는 것이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베레스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요 그들이 얼마나 번성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었다. 즉 이스라엘 각 지파의 분배 때에, 야곱의 손자 베레스는 므낫세와 에브라임 외의 다른 사람이 차지했던 명예를 차지했으며, 그의 자손은 헤스론과 하물의 두 구별된 집안으로 다시 세분되었던 것이다(민 26:21). 그들은 보아스의 집안―이들은 그 그루터기의 한 가지다―이 시간이 감에 따라서 베레스의 집안 전체처럼 그렇게 무수히 번성하기를 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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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가계(룻 4:13-22)

Ⅰ.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취했다. 

상례적인 예식을 갖추어 그녀를 자기 집으로 맞아들였다. “그녀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13절).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한 현숙한 여인이 그의 덕성 때문에 귀인이 된 것을 축하해 준 것은 의심할 나위 없다. 나오미를 떠나 자기 백성과 자기 신에게 돌아간 오르바는 룻에 비해 형편없이 잘못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에 오르바는 나오미와 함께 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다른 친척처럼 그녀는 자기 나름의 길을 택했다. 보아스는 이 경건한 개종자가 자기의 용기와 정절에 대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충분한 상급을 받게 되기를 기도했다. 즉 그녀가 “보호를 받으러 온 날개 아래서”(2:12) 보호받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기 기도의 응답이 되는 바로 그 친절의 한 도구가 되어 자기의 말을 실천하게 되었다. 룻은 자기가 사귀어 왔던 종들과 자기가 함께 이삭을 줍던 그 밭의 종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위치를 갖게 되었다. 이처럼 때로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어 방백들과 함께 세우신다”(시 113:7, 8).

Ⅱ. 룻은 어머니가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셨다.” 태의 열매가 그의 상급이시기 때문이다(시 127:3). 자식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열쇠 중의 하나다. 하나님은 그 때 오랫동안 잉태치 못하던 여인을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신다(시 113:9; 사 54:1).

Ⅲ. 그러나 룻은 여전히 한 며느리였다. 

그녀는 이 큰 즐거움을 당해 시어머니 나오미를 잊기는커녕 여전히 전과 같이 잘 행했다. 룻이 아기를 낳을 때에 일을 돌보아 주던 선한 여인들은 보아스나 룻보다도 그 일로 인해 나오미를 축하했다. 나오미가 그 일을 성사시킨 중재자요, 이 아기를 통해 세워지는 집안도 나오미의 남편의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앞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의 일상적인 예절 속에서 신앙을 읽어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그 결혼에 참례하신 하나님께 기도했고(11절) 그 아기의 탄생에 참례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이다. 이런 경건의 말씨가 기독교인들이나 타락한 자들 간에 형식적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당신께 이 손자를 주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14, 15절).

1. 선한 여인들은 나오미의 집안의 이름을 보존할 이 아기가 앞으로도 유명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기 때문이다.

2. 선한 여인들은 또한 그 아기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이후로 누구든 나오미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바랐다. 

아이가 장성해서 결혼하고 그 아내가 나오미를 돌보려 한다면, 그는 연로한 할머니에게 위안이 될 것이요, 그녀의 생명의 회복자가 될 것이다. 또 때가 오면 그는 그 할머니의 노년을 보살펴 드리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연로한 자들이 자기들의 후손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둥처럼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다. 그들이 나이가 들면 그런 것을 바라게 되는 법이요, 늙어지면 자기들 자신에게는 아무 낙이 없노라고 말하게 되는 때가 오지만 그것은 필경 즐거움이다.

그들은 룻에 대해 이르기를, 그녀는 나오미를 사랑했고, 그러므로 일곱 아들보다도 나오미에게 더 훌륭했던 여자라고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라.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 우리가 최대한의 기대를 걸던 자들을 잃은 슬픔을 오히려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던 자들을 통해서 위로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랑의 유대는 혈연의 유대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가 있는 법이다(잠 18:24).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친자식보다 더 나은 며느리가 있다. 지혜와 은혜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를 깨닫자.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1) 그 아기에게 이웃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 주었다(7절). 

그 선한 여인네들은 그를 오벳 곧 종이라고 부르기를 원했다. 그것은 아마 그 어머니의 비천함과 가난함을 기억하기 위해서이거나, 그가 아주 유능한 한 종이 되어 자기 할머니를 공양할 것을 내다보고 지은 이름일 것이다. 고귀하게 태어난 자들이 하나님, 자기들의 친구, 자기들의 동포를 위해서 일하는 한, 종이 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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