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삿11..최악의 서원(근본적으로 잘못된) 거두어들임없이 그냥 실행해버림으로써 스스로 실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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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1장..[279.인애하신 구세주여]

.....세상적 협상의 달인이라 자처말라!! 환경-상황-형편-처지, 세상의 영향에 대해 과감히 귀먹고 눈감고 살기, 오직 말씀 곧 주와 하나됨만 추구하라!!..그렇지 않으면 실족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위해 입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고 싸우라 허락하셨다.. 그것은 주님 자신을 위함이지 결코 입다 그 자신을 위함이 아니다.

(그러나, 입다는 패전 그 자체가 두려웠다!!..게다가 세상적 방식과 주님의 원하심에 대한 분별없음, 곧 주님에 대한 불신의 소치로 인해!! 섣부르게 최악의 서원을 하게되었고, 또 그것에 대해 거두어 들임-대가지불의 속죄제-속건제 드림 없이 살인죄를 저지르고 만다).

.....또 주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 나실인의 서원에서조차도!!]서원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진정 그분을 정말 알고 그분의 마음과 생각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겨드림에서 출발하는, 사랑겨운 자원함만 바라신다"...오직 주 은혜만 바라며 살기를 붙들라....주님께 합당한 서원이 아니었다면 주께 말씀드림으로써 거두어들이고 속죄제-속건제 JC를 드림이 합당하다.

.....말씀에 무지한 입다는 세상, 곧 몰렉에게 하는 방식대로(주님이 싫어하신다..그분을 모독함이다) 주님과 협상하려 하고 있었다...게다가 인신제사 서원 그 자체가 (주께는) 무효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주께 용서를 구하면 되었을 것을...세상을 절대 결코 두려워 해서는 안되며 오직 주만 바라라...하나 더..세상적 단체를 만들려 말고 거기에 휩쓸리지도 말라...사람과의 약속에 대해서도 일단 약속했다면, (약속 위반하게 된다면 반드시 용서 구하고 그 대가 지불하기를 잊지 않음으로써)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라...오직, 주님 뜻 알기를 구하며 중심을 주께 드리라..."자기 존속 살인"의 치명적 실수를 깨달았다면 주께 사정 아뢰어 회개하고 돌이켜야만 한다....입다는 어쩌면 그리해야 함에도, 그것을 깨달아 알았음에도..회개함 없이 자책하는 가운데...(협상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에브라임의 시비를 못참고 동족상잔을 벌였던 것은 아닐까...결국 6년만에 죽고 만다(이 또한 하나님의 긍휼이다)..

[잠19:2.3...*2.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3.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잠20:25...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

@@오로지 야하드, 헨의 비밀을 깨닫고 붙들어 살며 그 의미대로 사는 자...거듭난 믿는이는 [주님은 그분자신의 전존재로 구속하셨기에!! 결코 버리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신다..오직 믿는이가 자포자기하고 끝끝내 회개하지 않고!! 전존재적 자살을 감행하는 경우에만 그 관계가 끊어진다] 이미 영생 안으로 들어 와 있는자들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신 그 영의 내주하심과 하나되어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의 아들들의 참 명분에 도달하도록 계획하신 바, 오직 주님의 다바르를 붙들어 인생 광야(미드바르)를 주님과 함께 걷는 바 드비르(지성소)의 삶의 새로움으로 매일 매일 새로운 오늘(네오스), 영원히 새로우신 주님이 부어주시는 오늘에 합당한 그분의 새로운 영광의 적셔짐-주입됨-충만-변화-영화롭게 됨, 더 가까이 나아가며 더 가까이 나아오심, 그분을 더 닮아감 이루고 계신다...그 목적은 오직 유일무이한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 곧 그분과 하나된 교회요, 이 땅에 그분의 거처 얻으시려 함에 있다...그러므로, 비록 세상을 살되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하늘의 하나님께,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자로서 자기의 참된 신분을 자각하며 합당한 걸음을 걷되, 마땅히 [주님의 진노하심의, 경책하시는] 사랑에 대해서도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하리라....오로지 자신에 대해서만[특히 그 누구의 목숨이든지...목숨과 관해서는 결코 타인에게는 그 누구라도 권한이 없으며 (지키지 못할 것을 가지고 섣부르게 맹세하는 것은 주님을 망녕되이 일컬음이 되는 경우가 많고 사탄의 가스라이팅 당할 위험이 크다), 그 목숨의 주인은 주님과 그 당사자이기에(그의 목숨을 도둑질함이자 살인죄가 되기에 주님은 자의적인 인신제사 그 자체를 절대적으로 금하셨다....아브라함의 경우는 직접 주님과의 교통 아래에서 주께서 특별히 시험하신 경우임을 깨달아야 하리라.. )...주님이 이미 알게하여주신 올바른 지식 아래서만] 맹세나 서원하기를 배우라...주님은 오직 그 중심과 근본동기를 보신다!!


1.  길르앗(므낫세 반지파..길르앗 지역 북단경계는 야르묵강, 남단 경계는 얍복강<숙곳, 마하나임, 브니엘 위치>.길르앗 미스베는) 사람 입다(=그가 여신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큰 용사" ...기드온에게도 같은 단어를 쓰고 있으나..입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그 당시 그를 그렇게 칭하였음을 의미한다....주님은 부르신 자의 미래를 미리 보심으로써 그렇게 부르고 계셨다(베드로처럼) ...주님만 신뢰하기를 배우되, 결코 사람이 준비해 두어야 할 바를 소홀히 말라...그러나 우리의 힘 아닌, 말씀하시고 이끄시며 앞서 나아가 싸우시는 주님, 그분 자신의 임재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 결코 잊지말라.. 그분이 친히 싸우신다!!

....**길르앗 라못 = 길르앗 북동쪽 경계 성읍(도피성) **길르앗 야베스(요단강 하구에서 멀지 않은 위치) **길르앗 미스베(망대)=길르앗 미스바 ::입다의 고향??.. 야곱이 라반과 언약맺은 곳으로 추측. :: <암몬 지역과 더 가깝다>...길르앗의 동남쪽 경계 성읍...(얍복강 인근 성읍들인) 인근에 브니엘, 마하나임, 숙곳은 미스바보다 북서쪽임

2.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그때까지 같이 살고 있던!!...주님 경외하며 홀로서기를 배우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그 누가 그의 속사정과 눈물어린 인생여정을 알아줄 수 있으랴...다만 경청하고, 같이 울고 같이 위로할 뿐..함부로 그 사람됨을 판단말라)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길르앗의 북동쪽 경계인 길르앗 라못에서 동쪽 20km지점, 아람의 소국)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사울에게 쫓기는 다윗과 비슷한 처지 형편...합당한 리더십 익히게 하고 계심)

......주님 뜻따라 예비하신 은사자(카리스마)에게 모이게 하시기도 하지만, 유유상종의 세상적 잡류(아비멜렉=권력욕, 다윗=사울왕에게 억압받는 아둘람 사람들) 로서 모이는 두 경우가 있음을 분명히 분별하고 주의하라..::: 모이는 류가 누군지를 보라!!...다만 합당히 여기시는 그 자리에 있으라!!

4.  ○얼마 후에 암몬(길르앗의 동남쪽 경계 지역..요단 서편 진출 위해서는 먼저 길르앗을 취하여야 했음)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최우선적으로 주께 나아가 아룀이 없었으니..((주님은 마치 부재하시는 것 같으나, 다만 침묵하고 계실 뿐..진정 ㅈ부님으로 주 되게 하는 자 없음을 안타까워 하고 계신다)) 그만큼 둔감해 있어서 Q 없는 자처럼 되어 있었다..주께 고함 없었고 자기들이 가진 수단을 동원하려 하고 있었다!!..이때에도 주님은 침묵하시며 지켜보고 계심을 명심하라

6.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카친...'(조직, 집단의) 장, 지휘자, 사령관, 통치자)이 되라 하니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8.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길르앗 미스바(미스베) = 야곱과 라반이 상호불가침 조약 맺은 곳, 얍복강 남쪽, 길르앗 남단 국경 성읍이며, [처음엔 갓지파, 후에는 므낫세 반지파가 관장]이스라엘군이 암몬군과 싸울 때 이곳에 진을 쳤다(삿 10:17)...입다의 고향인 이곳에서 길르앗 사람이 입다와 언약을 맺었다(삿 11:9-11)....이 성읍은 호세아의 예언에서 언급되며(호 5:1), 라맛 미스베(수 13:26)와 동일한 곳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12.  ○[전쟁 시작 전에 반드시 수행하게 하신 주님 백성의 원칙 준수....입다는 협상의 단계적 과정과 그 중요성을 아는 자였다]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14.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15.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17.  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더니

18.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19.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의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20.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2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22.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2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

24.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25.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26.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28.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모든 사실적-신학적논거를 확실히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미 싸우려 작정한 자를 돌이키게 할 수는 없음도 알고 미리 [예비하고 갖출 바 일전불사의 준비를 단단히 갖추되, 준비한 바를 의지함 아니라...우리의 모든 힘과 능력 그 자체이신 승리의 용사 전지전능의 만군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 친히 일어나시도록 부르짖고 그분을 따라 하나되어 행군함]이 중요하다..

29.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국경선 망대 성읍)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정말, 내게는 그러한 [무지무각하여, 세상의 영향따라] 섣부른 약속이나 서원이 없었는지 곰곰이 주 앞에서 돌아보라, "그대의 왕-머리-주인이신 분, 그분의 살아계심에 비추어, 그리한 것이 있다면...(ㅅ사람에게든지, 주께든지) 용서 구하고 (JC 드림으로써 주께, 그리고 사람에게도) 위약에 대한 합당한 대가 지불하라...조금도 마귀에게 틈을 주지말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민닛<=메나트..(분배, 할당, 몫)밀 생산지>, 아벨 그라밈<=포도의 평원> :: 모두 암몬 내 성읍으로 미스바 동남쪽

===입다의 딸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이것은 유일무이한 참 진리에서 벗어난, 전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다!!...주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보라, 결국 의도적인 존속 살인으로 귀결되고 있다....게다가 자기딸을...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 어느누구도 일께워주지 않았다!!..<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주님은 이미<자기를 아버지의 서원대로 순종하여 주께 맡겨드린!!> 그 딸을 받으셨음에 주의하라!!,,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주님이심만 굳게 붙들고!!... 무의미한 논란은 피하라!!)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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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11장


1.  Now Jephthah the Gileadite was a mighty man of valor, and he was the son of an harlot: and Gilead begat Jephthah.

2.  And Gilead's wife bare him sons; and his wife's sons grew up, and they thrust out Jephthah, and said unto him, Thou shalt not inherit in our father's house; for thou art the son of a strange woman.

3.  Then Jephthah fled from his brethren, and dwelt in the land of Tob: and there were gathered vain men to Jephthah, and went out with him.

4.  And it came to pass in process of time, that the children of Ammon made war against Israel.

5.  And it was so, that when the children of Ammon made war against Israel, the elders of Gilead went to fetch Jephthah out of the land of Tob:

6.  And they said unto Jephthah, Come, and be our captain, that we may fight with the children of Ammon.

7.  And Jephthah said unto the elders of Gilead, Did not ye hate me, and expel me out of my father's house? and why are ye come unto me now when ye are in distress?

8.  And the elders of Gilead said unto Jephthah, Therefore we turn again to thee now, that thou mayest go with us, and fight against the children of Ammon, and be our head over all the inhabitants of Gilead.

9.  And Jephthah said unto the elders of Gilead, If ye bring me home again to fight against the children of Ammon, and the LORD deliver them before me, shall I be your head?

10.  And the elders of Gilead said unto Jephthah, The LORD be witness between us, if we do not so according to thy words.

11.  Then Jephthah went with the elders of Gilead, and the people made him head and captain over them: and Jephthah uttered all his words before the LORD in Mizpeh.

12.  And Jephthah sent messengers unto the king of the children of Ammon, saying, What hast thou to do with me, that thou art come against me to fight in my land?

13.  And the king of the children of Ammon answered unto the messengers of Jephthah, Because Israel took away my land, when they came up out of Egypt, from Arnon even unto Jabbok, and unto Jordan: now therefore restore those lands again peaceably.

14.  And Jephthah sent messengers again unto the king of the children of Ammon:

15.  And said unto him, Thus saith Jephthah, Israel took not away the land of Moab, nor the land of the children of Ammon:

16.  But when Israel came up from Egypt, and walked through the wilderness unto the Red sea, and came to Kadesh;

17.  Then Israel sent messengers unto the king of Edom, saying, Let me, I pray thee, pass through thy land: but the king of Edom would not hearken thereto. And in like manner they sent unto the king of Moab: but he would not consent: and Israel abode in Kadesh.

18.  Then they went along through the wilderness, and compassed the land of Edom, and the land of Moab, and came by the east side of the land of Moab, and pitched on the other side of Arnon, but came not within the border of Moab: for Arnon was the border of Moab.

19.  And Israel sent messengers unto Sihon king of the Amorites, the king of Heshbon; and Israel said unto him, Let us pass, we pray thee, through thy land into my place.

20.  But Sihon trusted not Israel to pass through his coast: but Sihon gathered all his people together, and pitched in Jahaz, and fought against Israel.

21.  And the LORD God of Israel delivered Sihon and all his people into the hand of Israel, and they smote them: so Israel possessed all the land of the Amorites, the inhabitants of that country.

22.  And they possessed all the coasts of the Amorites, from Arnon even unto Jabbok, and from the wilderness even unto Jordan.

23.  So now the LORD God of Israel hath dispossessed the Amorites from before his people Israel, and shouldest thou possess it?

24.  Wilt not thou possess that which Chemosh thy god giveth thee to possess? So whomsoever the LORD our God shall drive out from before us, them will we possess.

25.  And now art thou any thing better than Balak the son of Zippor, king of Moab? did he ever strive against Israel, or did he ever fight against them,

26.  While Israel dwelt in Heshbon and her towns, and in Aroer and her towns, and in all the cities that be along by the coasts of Arnon, three hundred years? why therefore did ye not recover them within that time?

27.  Wherefore I have not sinned against thee, but thou doest me wrong to war against me: the LORD the Judge be judge this day between the children of Israel and the children of Ammon.

28.  Howbeit the king of the children of Ammon hearkened not unto the words of Jephthah which he sent him.

29.  Then the Spirit of the LORD came upon Jephthah, and he passed over Gilead, and Manasseh, and passed over Mizpeh of Gilead, and from Mizpeh of Gilead he passed over unto the children of Ammon.

30.  And Jephthah vowed a vow unto the LORD, and said, If thou shalt without fail deliver the children of Ammon into mine hands,

31.  Then it shall be, that whatsoever cometh forth of the doors of my house to meet me, when I return in peace from the children of Ammon, shall surely be the LORD's, and I will offer it up for a burnt offering.

32.  So Jephthah passed over unto the children of Ammon to fight against them; and the LORD delivered them into his hands.

33.  And he smote them from Aroer, even till thou come to Minnith, even twenty cities, and unto the plain of the vineyards, with a very great slaughter. Thus the children of Ammon were subdued before the children of Israel.

34.  And Jephthah came to Mizpeh unto his house, and, behold, his daughter came out to meet him with timbrels and with dances: and she was his only child; beside her he had neither son nor daughter.

35.  And it came to pass, when he saw her, that he rent his clothes, and said, Alas, my daughter! thou hast brought me very low, and thou art one of them that trouble me: for I have opened my mouth unto the LORD, and I cannot go back.

36.  And she said unto him, My father, if thou hast opened thy mouth unto the LORD, do to me according to that which hath proceeded out of thy mouth; forasmuch as the LORD hath taken vengeance for thee of thine enemies, even of the children of Ammon.

37.  And she said unto her father, Let this thing be done for me: let me alone two months, that I may go up and down upon the mountains, and bewail my virginity, I and my fellows.

38.  And he said, Go. And he sent her away for two months: and she went with her companions, and bewailed her virginity upon the mountains.

39.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wo months, that she returned unto her father, who did with her according to his vow which he had vowed: and she knew no man. And it was a custom in Israel,

40.  That the daughters of Israel went yearly to lament the daughter of Jephthah the Gileadite four days in a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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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1장 (개요)

본 장에서는 사사 입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구약성경에서 믿음으로 큰 일을 행한 자들(히 11:32)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사사다. 

그러나 그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처럼 어떤 특별한 소명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그리 영예롭지 못했던 출생은 입다에게 불리한 조건이었다(1-3).

2. 길르앗 사람들은 입다를 대장으로 세워 암몬 사람들을 치기로 작정하며, 입다는 그들과 조건을 맺는다(4-11).

3. 입다는 두 나라의 권한에 대해 암몬 왕과 협의를 하고, 일을 잘 매듭지으려 했다(12-28).

4. 입다는 암몬 사람들과 싸우기 전 엄숙한 서원을 하며(29-31),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었다(32, 33).

5. 입다는 맹세로 인해 집안에 재난을 초래했다(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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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입다(삿 11:1-3)

우리는 앞 장에서 길르앗 사람들이 모여 대장을 뽑기 위해 의논하면서 암몬 자손들을 치러 나갈 때 그들의 군사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자를 길르앗 주민의 우두머리로 앉히겠다는 결의를 했음을 읽었다. 이 일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으므로, 그 일을 행한 대가로 이렇게 큰 위로를 약속해 줄 만했다. 

이제 모두들 이 일을 해내기에 가장 적합하고 용맹스러운 자로서 입다에게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그는 세 가지 불리한 점을 갖고 있었다. 즉

Ⅰ.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으며(1절), “다른 여인의 아들”로(2절) 그의 어머니는 아내도 아니었고 첩도 아니었다. 

어떤 학자들은 그녀가 이방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요세푸스는 그를 “어머니 혈통에 의하면 타국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유대 사람들은 그를 이스라엘의 자손이라고 부르고 있다. 만일 그의 어머니가 기생이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그에게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 영예로운 일을 행해서 남의 모범이 되는 한 부모나 가문의 불운 때문에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이런 기생의 아들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영광스러운 가문의 자손들처럼 환영받을 수 있었을 것이며, 하나님께 기꺼이 바쳐질 수 있었을 것이다. 

입다는 율법서를 공부하였음이, 그것도 정말 진지하고도 살아 생동하는 방식으로 "주 앞에서, 궁구하며" 주님이 당신께 의탁하는 세상 만민을 전혀 차별없이 대하시는 분이심을 깊이 깨닫고 있었으며, 자기가 치러 가는 그 암몬 족속들은 그 당시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는 오명을 지니고 있음을 읽지 못했을런지는 모르겠으나, 바로 그 본문(신 23:2, 3)에서 자기와 같은 사생자도 총회에 들어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은 능히 파악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두어야 할 바가 있다고 보이는 것은!! 만일 그 율법이―다분히 그럴 가능성이 크다―금지하고 있는 것은 음행의 결과가 아니라(사생자로 태어났다고 해서가 아니라) 단지 근친상간의 결과로 태어난 자만을 뜻하는 것이라면, 입다는 율법을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로가!!)  범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Ⅱ. 그는 형제들에 의해 그의 나라에서 쫓겨났다. 

그의 아버지의 적출자들은 엄격한 율법을 내세우며 그를 그 곳에 거하지 못하게 했다. 

만일 그들이 좀더 주의 깊게 입다의 뛰어난 재질을 살필 수 있었더라면, 그가 천부의 재능을 갖고 태어난 자로 그의 가문의 유력한 힘이며 자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며, 그가 서자라는 사실을 별로 중시 하지 않고 그를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2절). 아무도 이 버림받은 젊은이가 이스라엘을 구하고 사사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때로 그가 세우시려는 자를 낮게 만드시며,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게”(마 21:42) 하신다. 

요셉과 모세와 다윗은 모두 이스라엘의 뛰어난 목자였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불러 큰 직책을 맡기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자들이었다.

Ⅲ. 그는 쫓겨나 천민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3절). 

그는 형제들에게 내몰렸으나, 훌륭한 영혼을 지닌 자였으므로 결코 애걸하지 않고 그 자신의 힘으로 살아갔다. 

이때에 곤경에 처한 자들은 이런 그의 용감한 태도에 감명받아서 그의 아래 모이게 되었다. 

본문에는 그들을 “잡류”라고 표현했으나, 재산을 잃고 생활에 허덕이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입다와 힘을 합해 약탈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들짐승들을 잡아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들을 침입하려는 기회를 찾고 있었으나, 어떤 이유로 해서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바로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할 자였다. 그 백성들은 우상숭배로 가증한 일을 행하고 하나님과 그 계약을 저버린 이방인이 되었으므로, 비록 그들이 회개는 했을지라도 사생자이며 추방당한 입다를 높이 세우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굴욕을 느끼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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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하게 된 입다(삿 11:4-11)

Ⅰ. 이스라엘 자손은 암몬 사람의 침입으로 곤경에 처했다(4절). 

아마도 이것은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친”(10:17) 사건을 다시 언급한 내용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라는 구절은 입다가 쫓겨난 직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입다는 쫓김을 당한 치욕을 겪은 며칠 후에 다시 영예롭게 불림을 받았다.

Ⅱ. 장로들은 입다에게로 와 그의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서면으로 부탁하거나 사람을 보내 그에게 부탁하지 않고, 그들 자신이 직접 와서 그를 데리고 가려 했는데, 이것은 그가 거절하리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사정이 급한 만큼 조금도 지체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하는 말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6절)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큰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그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었고, 실상 그들 자신은 이 일에 적합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입다가 용맹하고 칼에 잘 훈련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야말로 이 일을 맡아야 할 자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 분이 계획하고 계시던 자들로 하여금 일하게 하고 그들을 어떻게 고통 속에서 빛나는 자들로 드러내시는지를 보라. 

만일 입다가 그 형제들의 불친절로 인한 전환점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는 무사의 자질을 시험해 연마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따라서 그 자신이 유명한 인물이 되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온다”(14:14).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여 진을 쳤다(10:17). 그러나 대장 없는 군대는 머리 없는 몸과 같았으므로, 그들은 “우리가 싸울 수 있도록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고 그에게 요청했다. 

우리는 여기서 통치 기구의 필요성을 본다. 비록 그들이 이 일에 열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지휘할 대장 없이는 싸울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회에는 다스리는 자와 복종하는 자가 있으며,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주인이 되려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호의를 베풀어 주도록 겸손하게 요청해야 한다. 통치 기구, 특히 선한 통치 기구 위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있기를!

Ⅲ. 입다는 그들의 청을 거절했다.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7절) 

입다에게 온 장로들 중에는 그의 형제들이 그를 괴롭힐 때 함께 그를 모욕했던 장로들이 있었던 것 같다. 

장로들의 직분은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시 82:3, 4) 그를 추방하는 죄를 저질렀으므로, 입다가 그들을 이렇게 책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치리자들은 피해 받은 자를 보호해 줄 권한을 갖고 있으므로, 고통 중에 있는 자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쫓아내었으니 내가 어찌 너희들의 제안이 진실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으며, 어찌 너희들은 내가 이 일을 하리라 기대하겠는가?” 

그러나 입다는 매우 기쁘게 그의 나라를 위해 일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전에 그에게 행한 불친절을 기억하게 하여 죄를 회개하고 그들의 직무를 잘 이행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요셉도 그 자신을 형제들에게 알리기 전에 이처럼 그들의 교만을 꺾었다. 

그런데 길르앗 사람들과 입다 사이의 경우는 당시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와 대체로 비슷했다. 

그들은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버렸으나, 그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자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들의 청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으나, 은혜롭게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입다의 경우도 이와 비슷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 선한 자들을 무시하나 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는 하나님의 자비와 선한 자들의 도움을 바라게 된다.

Ⅳ. 그들은 긴박한 형편에 있었으므로 입다가 그들의 제안을 응낙해 줄 것을 재촉했다(8절). 

“우리가 전에 네게 행한 그릇된 일을 속죄하고 회개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와 우리가 모욕하였던 만큼 너를 영예롭게 해 주려 하노라.” 

이 일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아무리 비천한 자라도 경멸해서는 안 되며, 우리를 이롭게 하지 못하는 자라고 그를 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지금은 약하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고 그들의 은혜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자도 우리의 적으로 만들지 않는 지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언제 고통에 처해 이처럼 그가 우리의 친구로서 필요하게 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 위대한 사람은 비록 경솔하고 나쁜 대접을 받더라도 용기를 가져야 된다. 

그들은 온화하고 즐겁게 그 억울한 일을 견디며, 하나님께서 이 어두움을 밝혀주시도록 맡겨야 한다. 

풀러 박사는 그의 저서 《비스가 산의 전경》에서 이 이야기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 시대의 덕은 스스로 자기의 존귀를 가져오나니, 덕을 증오하던 것들도 덕을 필요로 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덕의 존귀가 더욱 빛나게 되리라.

Ⅴ. 입다는 그들과 협정을 맺었다. 

입다는 전에 그들이 그에게 행한 모욕을 책망했으나 그들이 회개한 것을 알았을 때, 매우 훌륭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그는 그 사실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 분을 모욕한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셨으므로(10:16), 입다 역시 용서를 베풀었다. 

그러나 그는 이들을 신뢰할 수 없을 만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앞날을 위해 현명하게 그들과 협정하는 것이 신중한 일이라 생각했다.

1. 그는 그들에게 신중한 질문을 던졌다(9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벌하시기 위해 암몬 사람의 지배를 받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성공을 자신 있게 확신하지 않고 그의 말에 “만일”이라는 뜻을 넣었다. 

그는 그 자신 스스로 확신하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다. 즉 그는 그 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그 싸움의 중재자이며 승리를 부여해 주시는 하나님을 우러러보게 하기 위해 만일 그가 이기는 경우, “그들을 그의 손에 붙이시는 것은 여호와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어 내가 승리하여 돌아온다면 분명 내가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내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너희를 구원하면 하나님 아래 있는 내가 너희를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되기를 바라는 자도 이와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가 너를 구원하신다면 너는 기꺼이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받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 분은 너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너를 행복하게 해 주신다면, 너는 그 분을 거룩하게 섬길 것인가? 만일 그 분이 너를 도우신다면 너는 그 분을 너의 대장으로 삼겠는가?”

2. 그들은 즉시 그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다(10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리이다. 싸움에서 우리를 지휘해 주고 또한 싸움이 끝나도 우리를 다스려 주시오.” 

그들은 더 깊이 생각해 볼 시간도 없었다. 이 문제는 분명 토의해 볼 필요가 있었으나, 워낙 긴급한 사태였기 때문에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뽑은 자를 위해 이 약속을 확실히 해 줄 권한이 있었으므로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라”는 말로 맹세했다. 

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진실된 마음을 살피시고 후에 그것을 어기게 되면 벌해 주실 것을 탄원했다. 그래서 그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하나님께서 듣는 자가 되셨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 간의 계약에 대해 비준이 이루어졌으며, 후에 “입다가 사사가 되었다”(12:7)는 대목으로 보아, 모든 이스라엘이 이 일에 동의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입다는 그들과 함께 백성들이 모인 곳으로 갔으며(11절), 그곳에서 백성들이 동의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았다.” 

즉 백성들과의 협정이 비준되었으므로 그는 이제 그들의 장관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머리가 되었다. 

입다는 이렇게 보잘것없는 영예를 얻고도 그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려 했다(12:3). 

하물며 그리스도에게서 “이긴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받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의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당한다 하여 낙심에 잠길 필요가 있겠는가?

Ⅵ. 입다는 이 중대한 일로 인해 하나님께 경건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였다”(11절). 

그는 곧 성소로 들어가 그 직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또 그 일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 것인지 기도로써 하나님께 의논했다.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하나님 없이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고, 그 자신의 지식이나 용기는 신뢰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과 그 분의 은총에 모든 것을 의탁하려 했다. 그는 이 일에 대한 그의 생각과 근심들을 하나님께 모두 아뢰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할 때 자유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 “주여, 백성들이 나로 그들의 머리를 삼았나이다. 당신께서 이 선택을 확인해 주시고 나로 하여금 당신의 아래서 또 당신을 위하여 백성들의 머리 됨을 승인해 주시겠나이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평하신 것은 단지 “저들이 왕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않았다”(호 8:4)는 것이었다.

"주여" 입다는 계속 했다. "저와 함께해 주시렵니까? 당신께서 제 앞에 서 주시지 않으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를 여기에 세워 주지 마옵소서. 주여, 이 일이 제게 타당하다는 것을 알려 주시옵고 제가 이 일에 승리를 거두리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이, 특히 위대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기란 퍽 드문 일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의 은총을 간구하고 그 분의 조언을 청하며 그 분과 함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번영하게 될 것이다. 입다는 이렇게 기도로 그의 출정의 문을 열었다. 이처럼 경건하게 시작된 것은 영광스럽게 끝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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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렬된 화평조약(삿 11:12-28)

이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입다와 암몬 사람들의 왕(그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이 여기서 담판을 하고 있다. 

입다는 가능하다면 두 나라가 피 흘리는 싸움을 하지 않고 협상으로 화해하려 했다.

Ⅰ. 입다는 이스라엘의 권세를 지닌 자로서 이스라엘을 침입해 온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서 그가 이 곳에 온 이유를 물었다. 

“왜 네가 내 땅을 치러 왔느냐?(12절) 만일 내가 먼저 너의 땅을 치러 갔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와 싸울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떻게 무력을 무력으로 대적치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러나 나는 네 땅을 침입하지 않았거늘 너희가 왜 이렇게 악의를 품고 내 땅을 치러 왔느냐?” 

이 정당한 항의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1. 입다는 비록 용맹하고 유력한 자이긴 했지만 싸우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먼저 평화롭게 화해하기를 원했다. 

만일 그가 침입자를 말로 설득해 돌아갈 수 있었다면 그는 칼로써 그들을 몰아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왕의 마지막 방편”(ratio ultima regum)이며, 어떤 방법으로도 사태를 수습할 때까지는 피의 싸움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규칙은 율법에 의해서도 존중되어야 한다. 

싸움의 칼과 마찬가지로 정의(재판)의 칼도, 대적하는 무리들이 서로를 부드러운 방법으로 이해시키고 여러 가지 수단으로 화해를 시도해 보기도 전에 쓰여져서는 안 된다(고전 6:1).

2. 평등의 원리에 밝은 입다는 의롭지 않은 일은 행하고자 하지 않았다. 

만일 이스라엘이 암몬 자손을 해했다면, 그는 곧 암몬 사람들의 권리를 회복시켜 줄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그들이 이스라엘을 침입함으로써 이스라엘에게 피해를 가한 것이 분명하다면, 그는 이스라엘의 권리를 보호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정의감이 우리를 안내하고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Ⅱ. 암몬 왕은 입다의 요청에 따라 이 일에 대한 그의 이유를 늘어놓았는데, 이것은 그가 이스라엘에 침입해 들어오기 전에 알렸어야 하는 것이었다(13절). 

그가 내놓은 이유란 “이스라엘이 오래전에 내 땅을 빼앗았으니, 이제 그것을 찾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암몬 사람이 이스라엘을 침입한 것은 그들이 전에 에글론과 더불어 행했던 것처럼 (3:13), 단지 그 나라를 더럽히고 약탈해 그들의 배를 불리자는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에글론 밑에서 행했을 때는 비록 이유가 뚜렷했을지라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러나 입다가 이 싸움의 이유를 물었을 때 그들은 수치스럽게 사실 그대로의 의도를 밝힐 수는 없었으므로 진부한 역사적 사실을 들추어 그들이 침입한 일을 정당화하려 했다. 

아무리 나쁜 일을 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정의의 양심에는 한 가닥 가책이 남아 있어서, 자기들은 옳은 일을 행했다는 듯이 꾸민다. “그 땅을 다시 돌리라”고 했다. 

우리 자신은 이 세상의 부를 취할 때 어떤 모호한 변명을 내세우는지를 살펴보라.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던 것도 때로는 우리의 의심을 사게 되며, 우리의 손아귀에서 빠져 달아나기도 한다. 

그러나 하늘의 가나안에 도달한 자는 그 나라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심문당한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Ⅲ. 입다는 그들의 요구가 매우 부당하며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 

즉 암몬 사람들은 현재 르우벤과 갓 지파가 소유하고 있는 아르논과 얍복 사이의 땅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그의 나라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있던 입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1. 이스라엘은 모압이나 암몬 사람들로부터 땅을 빼앗은 일이 없었다. 

그는 이 두 부족을 함께 놓고 있는데, 그것은 이들이 롯의 자손들로서 서로 형제였고 서로 이웃에 살고 있었으며 그모스라는 공통되는 신을 섬기고 있었고, 아마도 같은 왕의 지배 아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스라엘이 앗아갔다고 주장하는 땅은 모압이나 암몬 사람에게서 얻은 것이 아니고(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들을 간섭하지 말고 그들로부터 아무것도 취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아 그것을 종교적으로 잘 지키고 있었다. 신 2:9, 19), 

아모리 왕 시혼이 그것을 다스리고 있을 때에 정당하고 영예롭게 얻었다. 

역사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이 그 나라로 오기 전에 아모리 사람들이 모압과 암몬 사람들로부터 이 땅을 취했다면(민 21:26; 수 13:25) 이스라엘은 거기에 대한 심문을 받을 필요도 없으며, 대답해 줄 필요도 없었다. 

암몬 사람들이 그들에게 그 땅과 권리를 빼앗긴 것이라면 이스라엘은 암몬 사람에게 되돌려 줄 의무도 없었다. 

그들의 땅은 그들 스스로가 정복하는 것이지 결코 남이 해 줄 일이 아니었다. 그의 첫 번째 해명은 그것은 “범법적 죄과가 아니다”라는 점이었다.

2. 이스라엘은 저주받은 가나안의 후손(이들은 아모리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창 10:16) 

이외에는 그 어느 나라의 땅도 침입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도 에서의 자손인 에돔 사람들의 땅이나 롯의 자손인 모압 사람들의 땅을 지나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를 지나오는 동안 너무 지쳐 있었으므로(16절), 가장 먼저 에돔 왕에게, 그후 모압 왕에게 그들의 나라를 지나가도록 허용해 줄 것을 부탁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이에 매우 불쾌하고 화난 이스라엘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에돔과 모압 땅을 피해 돌아갔을 뿐 결코 국경 안을 지나가지는 않았다(18절).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자들은, 그 대가로 위안을 얻을 것이며, 부당한 비난에서 보호받을 것임을 잊지 말자. 

그래서 “후일에 우리의 의가 표징이 될 것이며”(창 30:33),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을 것이다”(벧전 2:15).

3. 아모리 족속의 시혼 왕이 그들을 쳐들어오자 그들이 아모리 땅을 빼앗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싸움을 건 자는 시혼 왕이었고 이스라엘이 아니었다(19-20절). 

그들은 아모리 왕에게 그 땅을 지나게 해 달라고 탄원하면서 그들이 그 곳을 조용히 지나가기만 할 것을 약속했다. 

“우리를 용납하여 우리 곳에 이르게 하라. 우리는 지금 우리의 땅인 가나안으로 가려 할 뿐이지 결코 여기에 머무를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시혼은 에돔과 모압 족속과 같이 그들의 정중한 부탁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그가 그것을 허락했다면 이스라엘이 다른 길로 갔을는지 누가 아는가?) 그의 군사를 이끌고 와 이스라엘을 치려 했다(20절). 즉 그는 이스라엘을 그의 땅에서 몰아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칼로 죽여(민 21:23, 24) 완전히 멸하려 했다(20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마땅히 그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맞서서 싸워 그의 군사들을 패주시켰고, 결국 아모리 족속의 땅을 점령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그들이 이 땅에 권한이 있음을 의심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전에 아모리 사람이 살았던 땅이므로 암몬의 영토이며, 암몬 사람들이 그것을 소유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다(21, 22절).

4. 입다는 이 땅이 이스라엘의 것이며, 이스라엘이 다스릴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23, 24절). 

그들의 땅을 빼앗은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그들은 오랫동안의 행진에 지쳐 있었으므로 그렇게 빨리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그것을 충만케 하시는 만백성의 왕,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다. 즉 아모리 사람들이 소유한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특별히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시어 다스릴 권한을 주셨고,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을 대적해 선을 행하게 했다. “내가 시혼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다”(신 2:24).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들이 불리한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하시어 아모리의 땅을 다스리게 하셨다. 

“너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특별히 우리에게 주신 땅을 모압이나 암몬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매우 귀하게 여기므로, 그것을 그리 쉽게 줄 수 없다.” 

그는 이 진술을 확증하기 위해 그 사자와 논쟁을 벌였다.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그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들과 그들에게 이것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신에게 이 일을 물어보도록 했다. 

입다는 그모스를 신이라 생각하지 않고 단지 너희의 신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모스를 숭배하는 자들은 이 쓰레기 신들이 아무 일도 행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그들이 주었다고 믿고 있었다.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게 준 것이라”(호 2:12; 삿 16:24 참조). 

때문에 그들의 신이 준 땅을 굳게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거늘 우리는 그럴 수 없겠느냐?”

암몬 사람들은 그들이 아모리 땅을 차지하게 한 것은 그들의 그모스 신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상 그것은 신명기 2장 19, 21절에 나타났듯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이었다. 입다는 말했다. “자, 이제 우리는 너희가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 대한 정당한 권한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영예와 경의의 표시로 그 분이 주신 것을 취할 뿐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 그 분을 위해 지키고,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는 그것을 버리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소유하도록 했을 뿐이며 그것을 즐기도록 하시지는 않았다. 그것을 즐겨야 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5. 입다는 규정을 진술했다.

(1) 그들이 가장 먼저 쳐들어왔을 때, 그들은 그들의 권한을 주장하기 위해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25절). 

“당시 아모리 사람에게 많은 땅을 빼앗긴 모압의 왕은 발락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곳을 점령한 일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누구보다도 그가 가장 먼저 우리를 꾸짖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잠자코 있었으며 결코 이스라엘과 싸우기를 요청해 오지 않았다.” 모압 왕은 그 땅을 아모리 사람에게 빼앗긴 것은 정당한 싸움의 결과였으므로 그것을 결코 다시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스라엘이 정정당당하게 아모리 사람들에게서 그 땅을 빼앗았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왕은 남은 땅을 지키는 데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였으며 잃은 땅에 대해서는 결코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민 22:2, 3 참조). “그 때 너희 왕도 하나님의 뜻을 묵인해 주었거늘 이제 너희가 그것을 어기려 하느냐?”

(2)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은 조금도 그들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26절). 

입다는 그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로 약 3백 년간이나 보존되어 왔으며, 암몬 사람들도 그동안 이것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고 그들이 이스라엘을 억압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을 때도 역시 그렇게 했다(3:13, 14)는 것을 진술했다. 

처음에는 이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권한이 확실치 않았으나 여러 세대를 지남에 따라 암몬 자손들은 영원히 그 곳에 대한 권리를 잃게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던 권한은 더 이상 논의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이 된다.

6. 이 논쟁에서 입다는 그 자신과 이 일이 정당하다는 것을 밝히고(“나는 권한이 없는 땅을 취하려 하거나 계속 갖고 있으려 하여 죄를 짓지는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나는 즉시 그것을 반환해 주겠다”), 암몬 사람들을 책망했다. “네가 나를 쳐서 악을 행하여 번영하고자 하는도다”(27절). 

분명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세력을 키우고 번영하던 때(사사들의 시대에 이런 때가 있었다)에 이웃 나라를 언짢게 하거나 성가시게 굴지 않았으며, 그들을 억압하지 않았으므로(이스라엘은 보복하기 위해 혹은 종교를 전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침입하지 않았다) 그들과 싸울 기회를 찾던 암몬 왕도 3백 년을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와 같이 남을 해하지 않고 결백하며 남의 비난을 듣지 말아야 한다.

7. 이 논쟁을 끝내기 위해, 입다는 그 자신을 하나님과 그 분의 칼에 맡기고 암몬 왕과 싸우기로 했다(27, 28절).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판결하시옵소서.” 

입다는 하늘과 땅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일을 판결해 주시기를 엄숙히 선언했는데, 이것은 암몬 사람들로 하여금 타당한 이유로 설복시켜 싸우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거나 아니면 그래도 그들이 계속 싸우려 할 때 그들을 진압하려는 그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싸움은 이 세상의 모든 불화를 다스리시는 심판자인 하나님께 호소하는 방법이다. 

만일 누구에게 권한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결정해 주시도록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그 권한이 분명히 드러났을 때에도 그것을 거절하고 침입해 오려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것을 옹호해 주시고 그릇된 것을 벌해 주시도록 청해야 한다. 

정의(법정)의 칼이 율법을 무시하고 복종하지 않는 자를 위한 것이라면(딤전 1:9), 전쟁의 칼은 법을 무시하고 복종하지 않는 군왕들이나 국가들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울 때에도 하나님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그 분이 의롭지 못한 일을 옹호해 주시길 기대하는 것은 극히 위험스러운 일이다. 

암몬 자손의 왕은 입다의 해명에도, 그의 호소에도 동요됨이 없었다. 18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하면서(10:8) 약탈의 쾌감을 맛본 그는 이제 또 그들을 부유하게 만든 과일나무의 주인이 되려는 욕심을 품게 되었다. 또한 남을 멸하는 데 익숙해진 그는 입다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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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몬 족속과의 전쟁(삿 11:29-40)

입다는 여기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또 한편, 입다는 그의 경솔한 맹세로 인해 고통 속에 괴로워하게 된다.

Ⅰ. 입다의 승리는 분명한 것이었으며, 그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을 밝게 드러내어 그의 탄원과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을 이루었다.

1. 하나님께서 그에게 훌륭한 영을 주셨으므로, 그는 매우 용맹스러워졌다(29절). 

그 백성들이 만장일치로 그들의 유력한 지도자로서 입다를 뽑은 후에 입다는 정당한 이유를 내세워 암몬 왕에게 화해를 제안했으나, 그 왕은 단호하게 거절해 버렸다. 

그 때에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했다. 입다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힘입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용감하고 슬기로워졌으며 그의 백성의 적에 대한 거룩한 열의가 더욱 불붙듯이 일어났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임무를 확신시켜 주셨으며 그에게 그 일의 성공을 약속하셨다. 이렇게 분명한 말씀을 들은 그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그는 대담하게 전장에 나아갔다. 그가 적진을 향해 나아왔다는 사실이 특기되어 있다. 아마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비상한 분별력을 주심으로써, 그는 그것을 이용해 전략적인 진영을 택했을 것이다. 열심히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의로운 길로 가게 된다.

2. 하나님은 그에게 훌륭한 승리의 기회를 마련해 주셨으며, 그는 그것을 대담하게 활용했다. 

“여호와께서 암몬 자손을 그 손에 붙이시어”(32절) 의로우신 심판을 내리셨으며, 그들로 하여금 결코 굴하지 않는 전투력을 지니게 하셨다. 그들과 싸우시는 분은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시는”(시 9:4)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었다. 

입다는 그에게 주어진 호기를 놓치지 않고 잘 이용해 드디어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즉 그들의 전사들을 패주시키기 위해 성읍으로 추격해 무기를 가진 자들을 모두 칼로 쳐 죽이니 그들은 결국 이스라엘 군들과 싸울 수가 없게 되었다(33절). 

그러나 여호수아가 그 저주받은 백성을 완전히 멸한 것과는 달리 입다는 그들을 전멸시킨 것 같지는 않으며, 비록 그들이 이스라엘이 그들의 지배국이 된 것처럼 아첨했을지라도 그는 그 자신을 그들의 지배자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가 목표했던 것은 그들이 완전히 이스라엘에 항복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해하려 할 때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방어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해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Ⅱ. 입다는 아주 우둔한 맹세를 했다. 

그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 집에서 나오면서, 만일 하나님께서 그를 승리하게 해 주시면 그가 집으로 돌아갈 때 집에서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또 무엇이든지 그것을 번제로 바치겠다는 비밀스러운 엄숙한 맹세를, 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가 승리를 거두고 이 기쁜 소식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갑게 맞아 준 것은 바로 그의 외동딸이었다. 

이 일로 그는 매우 당황했으나 이미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입다의 딸은 자신의 불운을 애통하는 기간을 가진 후에 아버지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복종했다.

1. 이 이야기에서 배워야 할 몇 가지 일들이 있다.

(1) 진실되고 깊은 믿음을 가진 자들 가운데에도 때로 불신과 의혹이 일어날 수 있다. 

입다는 그의 성공을 확신할 근거를 충분히 갖고 있었으며, 특히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신” 것을 알았을 때 승리를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일을 행해야 하는 순간 그는 주저했으며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30절) 내가 이렇게 행하겠노라는 맹세를 했다. 

이제 그 맹세로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은 그의 약한 믿음과 그가 하나님께 귀한 것을 바치지 않는 한,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를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고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2)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바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합당한 봉사를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나,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그 분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그리고 우리를 이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경의로서 나타내야 한다. 

이런 희귀한 맹세는(레 27:2)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자기 민족의 이익을 구하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좀더 열심히 하려는 뜻을 솔직하고 분명히 나타내려는 것임에 틀림없다.

(3) 우리는 이런 맹세를 하는 데 있어서 좀더 깊이 생각하고 좋은 충고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서원한 후 양심의 갈등으로 혼돈 속에 빠져,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전 5:2-6) 말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또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성급하게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된다”(잠 20:25). 

그러므로 우리는 서원하기 전에 잘 살피고 필요한 조건과 제한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양심의 갈등을 막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입다의 경솔한 맹세를 우리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신 23:22 참조).

(4) 우리가 하나님께 엄숙히 맹세한 것은 그것이 아주 힘들고 우리에게 슬픈 것이라 할지라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우리도 입다처럼 맹세한 것은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어 엄숙히 서원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35절). 

즉 “나는 이제 내 자신이 한 맹세를 취소하기에는 이미 늦었으며, 그 무엇이든지 그것을 감히 없앨 수도 없고, 또 나로 하여금 그것을 포기하도록 할 수 없다.” 

그 물건이 내 것이었을 때에는 “내 임의”로 할 수 있었으나(행 5:4), 이제는 그렇지도 않도다. 내가 “서원하였으니 갚아야 한다”(시 76:11).

우리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성찬식에서 맹세를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사함 받은 은총을 입었을 때, 우리는 죄악을 강하게 대적할 수 있으며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려는 강한 노력과 함께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일을 실행해야 한다. 내가 맹세했으니 나는 그 일을 해야 하며 곧 행하리로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조롱하지 않게 하라.”

(5) 자식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들의 부모들에게 온순하게 그리고 기꺼이 복종해야 하며, 특히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한 경건한 결정에 잘 순응해 그 가정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가혹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해야 한다. 

레갑 족속은 그들의 선조 요나단의 명을 지켜 믿음 가운데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여기에 나오는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맹세를 지켜 드리기 위해, 또 하나님과 그녀의 나라를 영예롭게 하기 위해 기꺼이 그녀 자신을 제물로 헌신했다.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36절). 아버지는 나를 귀히 여기시나 그보다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셔야 하나이다.” 

아버지는 딸의 서원을 취소하거나 허락하지 않을 수 있으나(민 30:5), 딸은 아버지가 한 서원을 그렇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제5계명을 더욱 확고히 하는 일이 된다.

(6) 우리는 친구의 재난을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가 자기의 기구한 운명을 애곡하러 갈 때, 그녀의 처녀 친구들은 함께 가서 애곡해 주었다(38절). 

그녀가 사귀었던 이 같은 연령의 친구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을 때 매우 기뻐해 주었을 것이며 이제 그녀가 이 무서운 재난을 당하자 다시 함께 산에 올라가 그녀의 슬픔을 매우 애통한 마음으로 같이 나누었을 것이다. 함께 기뻐할 뿐 우리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함께 울어 주지 않는 친구는 친구의 자격이 없다.

(7) 비록 경솔하고 잘못된 것이었지만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영예롭게 하려는 대담한 열의는 영구히 기억될 만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아버지를 위해 원수를 갚으셨으므로(36절), 그녀의 목숨조차도 아끼지 않은 영예로운 입다의 딸을 기억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딸들이 매년 의식을 행했다는 것은 퍽 좋은 일이다. 여자들은 싸움에 참가하거나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금해져 있었지만 그녀는 이렇게 대담하게 자기를 희생시킴으로써(아마도 그녀는 아버지가 “너는 나를 참담케 하였다”<35절>고 말하며 그의 서원함을 이야기했을 때 그녀가 헌신해야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승리를 거두게 해 주신 감사로 그녀 자신을 제물로 드리기를 꺼리지 않았고 이렇게 큰 일을 위해 그녀의 목숨을 기꺼이 바쳤다. 

그녀는 사람들의 속죄를 위한 제물로서가 아니라(이 영예는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주어진 것이었다) 그 백성들에게 내리신 은혜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제물로 자신을 바치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8) 우리는 입다의 일을 통해 이 세상에서는 오늘의 환희가 돌연 슬픔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오늘의 이 기쁨이 계속되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기뻐하되 항상 슬픔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2. 이 이야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점들이 몇 가지가 있어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여기서 간단히 몇 가지만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1) 입다가 그의 맹세대로 그의 딸을 제물로 바쳤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① 어떤 학자들은 입다가 서원한 말의 문맥으로 보아 그가 그의 딸을 번제로 바쳤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며, 그녀를 “여호와께 돌리겠다”는 문맥으로 보아 그녀로 하여금 결혼을 하지 않게 하고 오로지 일평생을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견해를 갖고 있는 학자들은 그녀가 “그녀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다”(37, 38절)는 구절과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였다”(39절)는 구절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만일 입다가 그녀를 제물로 바쳤다면 그녀가 애통하게 생각했을 것은 그녀가 죽게 된 일이 아니라(그녀는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것을 기쁘게 여겨 기꺼이 그렇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남독녀로서 결혼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재산이나 명예를 상속할 혈통이 끊어지게 된 그 불행한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입다가 그녀 이외에 아무런 자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34절)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입다가 그의 맹세를 회피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여자든 남자든 결혼하지 않은 자가 결혼한 자보다 더욱 거룩하다거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더욱 합당하다는 율법이나 풍습을 구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사장이나 나사렛 사람들에게 이런 전통은 없었다. 여자 예언자였던 드보라와 훌다는 모두 결혼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녀가 단지 결혼하지 않는 일에만 입다의 맹세가 한정된 것이라면 그녀는 두 달이라는 기간만 애곡하기보다는 그녀의 전 생애를 통해 그래야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슬픈 이별을 고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40절의 내용, 즉 이스라엘의 여자들이 해마다 4번씩 그녀를 위해 애곡했다는 구절에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② 그러므로 우리는 입다가 그의 딸을 제물로 바쳤다는 의견이 더욱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입다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자에게 내린 율법(“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 27:29)을 그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줄로 잘못 알았기 때문에 그의 딸을 바쳤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일을 기억해 위로받고,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려 한다면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하신 것처럼 그에게도 사자를 보내 그 일을 정지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 할지라도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아마 이런 생각이 입다로 하여금 더욱 담대하게 행할 수 있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자기를 해하도록 허락했다 할지라도 그를 해하여서는 안 된다.” 

입다는 분노나 악의로 행해진 것이 아니면 살인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의 선한 목적이 이 나쁜 행동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가 맹세를 한 이상, 그 맹세를 깨뜨리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딸을 죽이는 편을 택했으며, 하나님의 섭리가 그의 딸로 하여금 싸움에서 승리하고 오는 그를 가장 먼저 맞이하도록 했다고 생각했다.

(2) 그러나 입다가 그의 딸을 제물로 바쳤다고 할 때 그것이 잘한 일인지는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① 입다의 딸은 그에게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매우 귀한 자식이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의 행위를 잘한 일이라고 정당화하는 학자들도 있다. 

입다는 히브리서 11장 32절에서 믿음으로 위대한 일을 행한 훌륭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행한 위대한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입다가 두 달 동안이나 생각하고 상의해 신중히 행한 일이었다. 또한 입다는 그 일로 해서 영감을 받은 저작자에 의해 비난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이 행위가 아버지의 권위를 높이 세우긴 했지만 어쨌든 정당화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한”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또한 우리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그의 일상생활은 모범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어떤 학자는 이 일을 위대한 제물로 바쳐지셨던 그리스도의 일에 비유하고 있다. 

즉 입다의 딸이 처녀였던 것과 같이, 그리스도는 깨끗하고 결백했으며 우리를 위해 저주받으시고 그의 아버지에 의해 제물로 바쳐졌다. 

또한 그리스도는 입다의 딸같이, 하나님께 복종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소서” 하고 말씀하셨다. 

②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입다가 경솔하게 맹세하고 그릇된 일을 행했다 하여 그를 비난하고 있다. 

그는 그의 맹세로 인해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제6계명을 어겼다. 하나님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금하셨으며, 그것은 실상 라이트푸트의 의견대로 몰록(고대 페니키아 사람들이 자식을 제물로 바치고 섬기던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영감을 받은 저자들도 사실 입다가 그의 딸을 제물로 바쳤는지는 잘 모르고 있으며, 따라서 그 후에 자기의 자손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자들도 확실한 위안을 받을 수가 없다. 

이런 입다에 대한 일과 제물을 바치는 그밖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학자들도 의혹 속에서 잘 규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 이야기로 혼돈을 초래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호크마

=====11:1-3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 (1절) 버네이(C.F. Burney)는 말하기를, "여기서 지방 이름("길르앗")이 입다의 아버지로 인격화(人格化) 되어 나온 것을 보면, 1절 하반에서 2절까지는 후대인의 삽입구이고 본래의 원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다(Here the district is personified as father of Jephtha-a mark of late for vv. I -2, which can have formed no part of the original narrative.-The Book of Judges, with Introduction and Notes, 1970, p.308). 그러나 버네이의 이와 같은 추측은 합당치 않다. 사람의 이름이 지방 이름과 같은 실례는 역사상에 많이 있다. 특별히 민 26:29, 32:40을 참조하라. 

그러면 "입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1) 기생의 아들이요(1절), (2) 이복(異腹) 형제들에게서 축출된 자요(2절), (3)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하류배(下流輩)와 함께 사는 자였다(3절). "돕"(* )이란 땅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곳이다. 삼하 10:6, 8 참조. "잡류"란 말(* )은 반드시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이 말이 생활 안정을 얻지 못하고 유리하는 가난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실정이 입다의 처지와 같기 때문에 그들이 그와 동조했을 것이다. 삼상 22:1-2 참조.

=====11:4-9

당신이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 (6절 끝) 암몬 족속의 침략을 대항하기 위하여"길르앗 장로들" "입다"를 그들의 "장관"(* ), 곧 통치자로 세우고자 하였다.

여기 이른 바 "장로"는 인도자를 가리켰을 것이다.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 (9절 하반) 입다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는 진실한 신자였다(11절 하반). 

진실한 신자가 사람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고 고독한 중에 신앙을 지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시는 한 때가 오는 법이다. 

그를 박대하던 자들이 그에게 절하게도 된다. 미 7:7-8; 계 3:9 참조. 요셉을 이방인들에게 팔아버린 그 형들은 마침내 그에게 찾아와서 그에게 은혜를 구히기 위하여 무릎을 꿇었다(창 37:27-28, 42:6). 

입다는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였다. (1) 그는 길르앗 장로들의 약속을 신중히 취급하며 그들의 진실성을 검토하였음. 그는 말하기를,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란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라고 하였다(7절). 그 장로들은 길르앗의 정치적 지도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찌기 입다의 형제들이 그를 내어쫓는 불의한 처사를 알고도 그대로 방임, 혹은 찬동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임을 추궁하는 입다의 말을 그대로 받아 들인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입다를 저희의 최고 지도자로 삼겠다고 다시 약속한 것이다(8절). 그들은 변동 없이 끝까지 입다를 최고 지도자로 삼을 것을 하나님 앞에 맹세하였다(10절). (2) 그는 "큰 용사"였으나 자기힘으로 승리할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였음. 그는 믿음으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였다(9절 하반). 이 말은, 그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믿은 증거이다. 삼상 17:47 참조. (3) 그는 암몬 족속과 전쟁 할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 그의 사정을 고하며 기도하였음. 그는 구원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믿고 그렇게 기도한 것이다. (4) 그는 암몬 자손을 반격하기 전에 먼저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하고자 하여 암몬 왕에게 사신(使臣)을 보냈다(12-27). 그러므로 봉크(C. Vonk)는 말하기를, "입다는 신앙이 진실할 뿐 아니라 지혜롭고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었다."라고 하였다(Jefta nietalleen eengelooig - man was--maar ook een wijs en voorzichtig man.-De Voorzeide Leer, Deel I, De Heilige Schrift, Inleiding op De Profeten, Jdzua, 1973, p.563).

=====11:12-28

입다는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전쟁 없이 외교(外交)에 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암몬 왕은 "아르논에서 부터 얍복과 요단까지"의 영토를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다고 하면서 그땅을 반환하라고 주장하였다(13절). 

그 때에 입다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한 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셨기 때문이라고 길게 변론하였다. (1) 이스라엘은 언제나 다른 민족들을 침략한 적이 없다고 함(16-18). 이스라엘이 일찌기 광야를 통과하던 때에도 에돔에게나 모압에게나 화평스럽게 행했다고 하였다. 민 20:14-22; 신 2:9 참조. (2)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왕 시혼"과도 이스라엘은 전쟁하기를 원치 않았으나 그가 선제공격(先制攻擊)으로 이스라엘을 침해하였다는 것(19-22). 그때 전쟁의 책임은 헤스본 왕 시혼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하여 시혼왕의땅(아르논에서 얍복, 요단까지)을 취하도록 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니 결국 그 땅은암몬 족속의 소유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소유라고 설명하였다(23-27).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하냐 - (23절 하반) 여기 "네가"란 말(* )은 역설체(力設體)인데 암몬 왕을 힘있게 지적하는 것이다. 

이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을 암몬 왕 "네가" 차지할 권리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 (24절 상반) "그모스"(* )는 모압 신(神)인데(민 21:29; 왕상 11:7, 33; 렘 48:7, 13, 46), 그때의 암몬 왕이 혹시 모압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암몬 족속의 신 "밀곰"(*)(왕상 11:5)을 관설하지 않고, 모압의 신"그모스"(* )를 관설한 듯하다. 

여기서 입다가 그모스 신을 믿을 만한 신이라고 간주하는 뜻에서 관설한 것은 물론아니다. 그모스에 대한 그의 관설에 있어서 그의 중심에는 그것을 헛된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다만 이론을 위하여 그것을 관설한 것 뿐이다. 입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었다(27절).

=====11:29-32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 (31절) 이것은 입다가 서원(誓願)하는 말이다. 

그는 암몬족속과 전쟁하기에 앞서 여호와께 이와 같은 서원을 올렸다. 여호와께서 이번 전쟁에 승리케 해주시면 집에 돌아가서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것이다. 

여기 이른 자 "번제"(* )는 반드시 불에 태워서 바치는 제물만을 의미하지 않고, 여기서는 그저 바쳐 올리우는 제물(ascending offering)을 의미한 것이다. 

사람을 태워 바치는 제물로 사용하는 것은 율법에 엄금되었다(레 18:21,20:2-5; 신 12:31, 18:10). 

입다는 이 율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암몬 족속이 몰록 우상(혹은"밀곰"이라고도 함, 왕상 11:5,33)을 섬겼는데(왕상 11:7), 저희 자녀를 불살라 그 우상에게 바치는 악한 미신(迷信)에 젖어 있었다. 그 때에 입다가 암몬을 대적하면서 저런 미신도 미워하였을 것은 물론이다.

=====11:35,36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 (35절) 입다가 승전하고 집으로 돌와왔을 때에 그의 외딸("무남독녀")이 누구보다도 먼저 나와서 아버지를 영접했다. 이 때에 입다는 그의 서원한 것 때문에 걱정하였다. 

여기 이른 바 "슬프다"란 감탄사(感歎詞)는 히브리어로 "아하"(* )인데 그저 염려를 나타내는 말이다. "슬프다"는 말은 너무 심각한 불행을 표현하므로 여기서 적당한 번역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나로 참담케 하는 자"란 말(* )은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곧, "너는 나를 당황케 만드는구나"라고. 우리 한역의 "나로 참담케 하는 자"란 번역은 역시 너무 심각한 불행에 대한 표현이다. 35절 상반의 히브리어를 보면 입다의 걱정은 그 딸이 죽임이 될 지경의 불행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것 같다. 

입다의 걱정은, 그 딸이 결혼하지 못하고 독신으로 성전 봉사에 평생 바침이 되어 그(입다)의 기업이 계승되지 못하게 됨을 그 중점으로 하였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 (36절) 입다의 딸은 이 말로써 그 자신의 인격을 보여 주었다.(1)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며, (2)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효도를 행하였고, (3) 의리(義理)를 위하여는 자신이 희생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11: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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