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5장
절실하게 도움 청하는 자마다!! 겸손과 온유로!! 주님 인도/이끄심 따라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 그대로 따르기를 배워 실행하라 ((주 앞에서 행하라!!...결코!! 자존심 내세우지말라!!))...도움 베푸는 자마다 대상자 한 사람마다 차별하지 말고!!(서로 진심 다해 그 사정 알아주고 공감하며 위로/격려해 주고 인정하라.. 선함-인자함이신 주님이 친히 그리하고 계심이니...마음 지키라..) 오로지 이끌어 오신 주님을 맞이하여 영접-환대하는 마음으로 그 필요를 공급해야함을 명심하라..
......당시 게하시는 선지생도들 중 으뜸으로 평가되었던듯...그래서 근거리 시중들고 있었다..슬픈일이다.((전형적인 북이스라엘, 세속이 더 좋아보이고, 돈-권력이 더 좋아보이는))...그러나, (그토록 야곱이 애지중지했던)라헬이 아니라 (어쩌면 밋밋해보이고 특출한 미모가 아니었던) 레아가 조상이 묻힌 헤브론 동굴에 안장되고 있으며, 요셉이 아니라 유다를 통해서!! 베들레헴 이새의 8번째 아들-특출해 보이지 않았던 막내 다윗을 통해서!! 구주 예수님에 이르는 구속사 계보는 내려오고 있음을 또한 명심해야 하리라..,
===(주님 구원 예비하심대로!!) 나아만이 고침을 받다 [542.구주예수의지함이] [471.주여나의병든몸을] [287. 예수 앞에 나오면 ][311.내너를위하여] 1.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지금 고쳐주소서 모든 병을 고쳐주마 주 약속 하셨네 내가 지금 굳게 믿고 주님 앞에 구하오니 주여 크신 권능으로 곧 고쳐 주소서 2. 나의 주님 뜻이라면 나를 고쳐 주소서 머리위에 기름 붓고 날 고쳐 주소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간구하는 나의 몸을 지금 주의 약속대로 곧 고쳐 주소서 3. 주를 위해 살겠으니 나를 고쳐 주소서 내게 속한 모든것은 다 주의 것이니 성령이여 강림하사 능력 있는 손을 펴서 나의 몸을 어루만져 곧 고쳐 주소서4. 나의 병을 고쳐 주심 내가 믿사옵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 찬송하겠네 나를 구원하신 말씀 어디든지 전하오리 나의 병을 고쳐 주심 참 감사합니다 아멘 ------- .....##벤하닷2세의 북이스라엘 침공 :: 1차.BC858<사마리아> ..2차.BC857<아벡>..모두 아람이 패배 (길르앗 라못 반환 약조...아람 벤하닷2세 풀려남) .....벤하닷2세 휘하 군대장관 나아만, BC856 앗수르의 살만에셀3세 주도의 남진 정복전쟁을 (북이스라엘 아합군 포함한) 10개국 연합군을 운용해서 맞아 카르카르전투 승전 통해 저지하였음,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길르앗 라못 탈환 위한 아합-여호사밧 원정군을 길르앗 라못에서 대패시켰고(BC.853) 이 전쟁에서 아합은 전사했었다 .....##아합과 여호사밧의 연혼 동맹 ==(아마도) BC.856. 카르카르전투 끝난 직후로 보고 있음, 남유다 왕자 여호람--북이스라엘 공주 아달랴의 결혼을 통해 사돈지간이 됨...==> BC853. 아합-여호사밧 연합군의 길르앗 라못 탈환 전쟁, 아합 전사....##북이스라엘 여호람--남유다 여호사밧의 모압원정.BC849...(엘리사의 비밀 종군).. ---- 민수기 13장과 14장은 나병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먼저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사역을 맡기실 때 몇 가지 기적을 보여주시는데 이 때 그 중 한가지 기적이 나병을 주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신다는 사실이었다...민12장 미리암(주님과 직대하여 음성 듣는 모세의 대리자 권위 비방).., 남유다의 웃시야 왕(대하26...제사장의 고유한 제사 권한 침범)....나아만의 영혼 구원 위한 엘리사 선지자의 선물 거절을 무위로 만든 게하시의 권한 침범 등으로 인해 나병 발생 사례가 예시되고 있다....죄는 영혼의 나병...따라서 치료라는 말을 쓰지않고 깨끗하게 된다는 "주님의 사유하심" 개념을 적용하고 계심......(주를 모르며, 일부러 거역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죄의 나병에 걸려 있다....[롬3:10-18...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וְ֠נַעֲמָן (눈-아인-멤-눈....즐거움/유쾌함)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약탈]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자기처지 비관?.지금은 없다-보냄 받은자의 인식/자각으로..주 앙망함...덕 세움]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궁지에서 주님 임재따라 벗어나게 하며, 죽은 아이 살아나고 독이 제거되고 적은것으로 많은이들을 배불림)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요일2:18-27)...이 진리의 성령 =기름부음 JC 이름의 권위+권능의 인격적 성령님, 거룩하신 자 즉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영, 오셔서 l친히 우리 안에 거하시고, 또 운행하고 움직이시며 깨닫게 하시며 JC이름 부름 안에서 우리를 예수님의 말씀과 진리로 늘 가르치는 참목자.....모든 상황 가운데 주 이름 불러 모든 거리낌 아뢰며 인도-분별 구하고 순종하는 이에게 그때마다 ‘모든 것에 대해 십자가의 두 방면(죽음-부활생명 적용) 통해 기름부음따라 살기를 가르쳐 주시는 분’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 ..(( 287. 예수 앞에 나오면)) 1. 예수 앞에 나오면 죄 사함 받으며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2.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며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3. 예수 앞에 설 때에 흰 옷을 입으며 밝고 빛난 내 집에 길이 살리라[후렴]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말씀/규례따라 말하고 있다..물론, 결코 경홀히 여김이 아닌것을 명심하라]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시공 초월하여 계시는 무한하신 YHWH에 대해 무지/몰이해 상태] 그가 [직접 출두]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무당들이 그리하듯]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최대의 경어를 사용))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겨우!!)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일단 "겸비-비천에 처함 통해 겸손 배우도록....주님이 낮추시는 경우" 바로 그 선하신 뜻 이루시려고!! 겸손케 하는 환경-상황-형편-처지가 닥쳐오더라도...진정한 의미에서!! "심령의 가난한자 복되도다" 하신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에는!!" (자기가 인정하든 않든간에) 무의식-잠재의식 속에서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자의 그 목소리 = 실은 이것이야말로, 구원 받음을 막기위한 죄성과 하나인 사탄의 반발/꼬드김이다 = 슬며시 올라오는 혈기/반발의 속삭임... "뭐라...~하라 했다고??.. 그게 사람 대하는 태도냐...자기는 콧빼기도 안 비추고 ??!! ...나도 그리 말하는 그대보다 못하지는 않아..아니, 그대 보다는 훨씬 더 나을수도 있고, 실지로 더 낫지...그런데, 이건 뭐지...왜 나를 홀대하는거야....(왕이라 해도 내 앞에서는 함부로 못하는데..) 은근히 기분 나쁜데.."라며 은근히 비교하며, "나는 적어도 교만-자만하진 않다고 느끼는데....., 그럼 ...이 정도는 해 줘야 하는거 아냐??"라고 (말없더라도, 표정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그러하리라.... 이 때!!, 어떻게 설득하는 것이 그 사람(나아만)으로 하여금 참 유익을 얻도록-- 합당하게 결정하도록 이끄는 것일까...바로 그리 말하여 (나아만에게) 모멸감 느끼게 말한 상대방(엘리사)도 비하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나아만을 최대한 높여 깍듯이 존중하고 인정-달래주면서 동시에..."기왕 온김에....그래도 속는셈치고...지시한 그대로 해 보는것이 어떨까요....후회하지 않게요..(바로 그분이 손수 죽은 아이도 살려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객관적 관점에서 상호 최선의 유익 얻도록]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자기 생각과 느낌을 접어두도록 !! 조심스레 재삼 재사 끈질기게 붙들어 권고하는 것이 참지혜자의 태도이다....((이 타이밍 놓치면!! 빙 돌아가는 것이요, 어쩌면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니... 후회막급이다!!))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목욕 7번 아님에도 불구하고..(구하고-찾고-두드리는바)...그렇게 여겨 주고 계셨다]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549.내 주여 뜻대로].. 비밀한 하나 됨 그 안에서 오직 주 보좌 앙망하며, 보고 듣게 하신바 주님 시선/심정 헤아려 행하게 하소서...뜻하신 그대로 영생구원 이루소서 15. ○[이미 아람에 복귀한 터였지만!! 군대를 되돌려 대동하고 엘리사를 , 그의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도로 왔다고 보여짐...]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Q의 치유하심 확인,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돌아옴, 즉 분수령적 회심은 아직 아니기에 주께서 베푸시는 진정한 구원 은혜에로 연결시키기 위해(대가로 여겨질 수 있는!!) 예물을 거절하고 있었다...한편, Q을 참되게 알고 경외하는바, 수넴여인의 게스트하우스 제공/섬김은 (주님 베푸심으로 여겨!!) 기꺼이 받고 감사함으로 수용하였음을 볼수있어야 하리라..!! 영적측면에서 어찌 분별해서 적용해야 하는지 주께 나아가 깨닫기를 구하라.. ===가솔이나 공동체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해!! ...혹 헌물을 가져다가 주는자의 손에서 받아서 생계에 써도 되는 때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당분간 거절해야만 하는때를) 그 사람의 믿음의 정도를 잘 분별해서 그 결과 연약한 믿음 가진이들을 더욱더 자라나야 할바 참된 ((전적인 기름부음따라 사는, 믿음의 홀로서기가 가능한)) 그 믿음을 추구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을 당분간 거절해야 하는 때를!! 주께서 분별하도록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할지니... 그것을 구분해야만 극단적 이기주의에 속하는 탐심에서 벗어남이 될것이다...===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또 다른 <우상숭배 근원 될 수 있는바, 보이지않는 하나님 아니라 가시적 번제단 쌓고 제사하겠노라고>, 다른 형태의 극단으로 치우칠 우려 있음?>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여기서는 자기 스스로 한 말의 함정에 처한바 신앙지조를 혼동--슬며시 타협 제시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지금 영이신 분, 무소부재/무한/창조주-시공초월-영생하시는 Q 모르기에....무슨말 하는지 모르고 있구나...<그렇지만 이미, Q이 그리 여겨주시는바 너는 이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니> 주님이 친히 그분의 때에 네 문제/걱정 해결해 주시리라...단지 (믿음으로!) 기름부음 안에 머무르라, 그분의 인도를 따르게 되리니)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의 치명적 병폐!! 감정 만능/제일/우선주의--<네가 신이야!!..라는 말에 속아 미혹-현혹당해 사로잡혀 스스로 어리석어짐 선택/미쳐가게 됨> 극단적 이기주의"의 주구 되기를 자청하고 일탈을 ((은근히..명시적으로)) 부추기는 사조가 조성되고 있다...((Q의 나라와 Q의 일!!)) 이 땅에 두신바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 추구 통한 공익 위한 공복 개념 실현 추구는 정녕 누구에게서나 찾아볼수 있을 것인가...평소에는 그 성적 실체가 남성이기에 모든 부분에서 남성으로서 역할하던 이가 갑자기"나는 여성같은데.."라고 느껴졌다고 여성전용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보는것을 허용해야한다"거나..이를 허용해서 결국 큰 추문거리가 이미 발생하고 있다..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아무것도 받지않고 그냥보냄은 너무<재정형편 넉넉지 못한 공동체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않음이기에...공동체 유지면에서는 분명히 손해막심 아닌가?>...뻔히 그 속 사정 다 아는 나까지도...그냥 두고 볼수는 없지 않는가))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25.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나아만은 이제 막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 신앙에 겨우!! 눈 뜨기 시작한 시점인데..성숙에 이르지 못했기에 미혹-유혹-현혹-오도되어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는바인데..((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특별 은총으로만 주어지기에 !!, 살아계신 주께만 영광돌림이 가장 중요한데..그게 아니라, 세상 재물이나 소유로도 하나님의 구원-은혜-축복을 얼마든지 얻을수도 있다는 오해를 심어줄수있는바. = 그런 오해의 빌미가 될수있는데))]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27. 그러므로(동병상련!!)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 [NASB]제5장 1. Now Naaman, captain of the army of the king of Aram, was a great man with his master, and highly respected, because by him the LORD had given victory to Aram. The man was also a valiant warrior, [but he was] a leper. 2. Now the Arameans had gone out in bands, and had taken captive a little girl from the land of Israel; and she waited on Naaman's wife. 3. And she said to her mistress, "I wish that my master were with the prophet who is in Samaria! Then he would cure him of his leprosy." 4. And Naaman went in and told his master, saying, "Thus and thus spoke the girl who is from the land of Israel." 5. Then the king of Aram said, "Go now, and I will send a letter to the king of Israel." And he departed and took with him ten talents of silver and six thousand [shekels] of gold and ten changes of clothes. 6. And he brought the letter to the king of Israel, saying, "And now as this letter comes to you, behold, I have sent Naaman my servant to you, that you may cure him of his leprosy." 7. And it came about when the king of Israel read the letter, that he tore his clothes and said, "Am I God, to kill and to make alive, that this man is sending [word] to me to cure a man of his leprosy? But consider now, and see how he is seeking a quarrel against me." 8. And it happened when Elisha the man of God heard that the king of Israel had torn his clothes, that he sent [word] to the king, saying, "Why have you torn your clothes? Now let him come to me, and he shall know that there is a prophet in Israel." 9. So Naaman came with his horses and his chariots, and stood at the doorway of the house of Elisha. 10. And Elisha sent a messenger to him, saying, "Go and wash in the Jordan seven times, and your flesh shall be restored to you and [you shall] be clean." 11. But Naaman was furious and went away and said, "Behold, I thought, ' He will surely come out to me, and stand and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his God, and wave his hand over the place, and cure the leper. ' 12. "Are not Abanah and Pharpar, the rivers of Damascus, better than all the waters of Israel? Could I not wash in them and be clean?" So he turned and went away in a rage. 13. Then his servants came near and spoke to him and said, "My father, had the prophet told you [to do some] great thing, would you not have done [ it]? How much more [then,] when he says to you, 'Wash, and be clean'?" 14. So he went down and dipped [himself] seven times in the Jordan,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man of God; and his flesh was restored like the flesh of a little child, and he was clean. 15. When he returned to the man of God with all his company, and came and stood before him, he said, "Behold now, I know that there is no God in all the earth, but in Israel; so please take a present from your servant now." 16. But he said, "As the LORD lives, before whom I stand, I will take nothing." And he urged him to take [it,] but he refused. 17. And Naaman said, "If not, please let your servant at least be given two mules' load of earth; for your servant will no more offer burnt offering nor will he sacrifice to other gods, but to the LORD. 18. "In this matter may the LORD pardon your servant: when my master goes into the house of Rimmon to worship there, and he leans on my hand and I bow myself in the house of Rimmon, when I bow myself in the house of Rimmon, the LORD pardon your servant in this matter." 19. And he said to him, "Go in peace." So he departed from him some distance. 20. But Gehazi, the servant of Elisha the man of God, thought, "Behold, my master has spared this Naaman the Aramean, by not receiving from his hands what he brought. As the LORD lives, I will run after him and take something from him." 21. So Gehazi pursued Naaman. When Naaman saw one running after him, he came down from the chariot to meet him and said, "Is all well?" 22. And he said, "All is well. My master has sent me, saying, 'Behold, just now two young men of the sons of the prophets have come to me from the hill country of Ephraim. Please give them a talent of silver and two changes of clothes.'" 23. And Naaman said, "Be pleased to take two talents." And he urged him, and bound two talents of silver in two bags with two changes of clothes, and gave them to two of his servants; and they carried [them] before him. 24. When he came to the hill, he took them from their hand and deposited them in the house, and he sent the men away, and they departed. 25. But he went in and stood before his master. And Elisha said to him, " Where have you been, Gehazi? "And he said," Your servant went nowhere. " 26. Then he said to him, "Did not my heart go [with you,] when the man turned from his chariot to meet you? Is it a time to receive money and to receive clothes and olive groves and vineyards and sheep and oxen and male and female servants? 27. "Therefore, the leprosy of Naaman shall cleave to you and to your descendants forever." So he went out from his presence a leper [as white] as snow. ======= ..열왕기하 5장 (개요) 본 장에는 엘리사가 행한 두 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1. 아람 사람, 곧 이방인인 나아만의 문둥병을 치료해 준 일. (1) 나아만의 딱한 처지(1). (2) 포로로 잡혀 온 한 하녀에게서 소식을 듣고 엘리사에게로 그를 보내는 하나님의 섭리(2-4). 그리고 아람 왕은 이스라엘의 왕에게 나아만을 소개하는 소개장을 써서 보냄(5-7). 엘리사가 그를 초청함(8). (3) 나아만에게 처방이 내려지고, 그는 소동을 피우다가 결국 그 처방에 따르게 되고, 그래서 병을 고침(9-14). (4) 이에 대해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사례를 표함(15-19). 2. 엘리사의 종인 게하시가 바로 문둥병에 걸리게 된다. (1) 게하시는 거짓말로 자기 주인의 말을 나아만에게 전한 죄를 짓고(20 -24), 거기에 대해 심문을 받아 자기 주인을 속임(25). (2) 이 죄로 인해 게하시는 벌을 받음(26, 27). 나아만의 치료가 이방인을 부르시리라는 것을 보여 준 한 모형이었다면, 우리 구주께서도 그러한 모형을 보여 주셨다(눅 4:27). 게하시가 문둥병에 걸린 것은 유대인들이 눈이 멀어 구주를 거부하리라는 한 모형이 된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내리는 것을 시기한다. 마치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호의를 베푼 데 대해 게하시가 질투한 것과 같은 이치다. --------- 나아만의 문둥병(왕하 5:1-8) 우리 구주께서 베푸신 기적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식탁에서 떨어져 가나안 여인에게로 가게 되었던 부스러기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엘리사가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베푼 기적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선하시므로, 또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신다. Ⅰ. 나아만은 한창 명성을 떨치고 있던 때에 큰 곤경을 만났다(1절). 그는 높은 직위에 있는 요인(要人)이었다. 그는 돈이 많았고 계급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두 가지 점에서 행복했다. 1. 그가 나라를 위해 큰 임무를 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종종 “여호와께서는 그를 통하여 아람에게 구원을 주었다.” 즉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조차 그가 이기도록 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섬기지도 않는 자들의 번영까지도 하나님의 덕분이다. “그는 만인의 구주”시며,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기 때문이다.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이긴 것은, 그것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일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자. 2. 그는 왕의 마음에 아주 잘 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총애를 받았고, 국무총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대단히 위대하고, 높은 존귀를 받았고, 장수였다. 그런데 문둥이가 된 것이다. 이것은 그 자신에게도 매우 수치스러운 병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해 두자. (1)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고 명예가 있고 권세가 있고 정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생의 가장 불행한 비극을 막아 주지는 못한다. 값지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으나 병들고 미치광이가 될 자도 많다. (2)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저런 특성을 소유하고 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수치스럽고 본인을 왜소하게 만드나, 어떤 것은 그를 화려하게 하고, 또 어떤 것은 기쁨에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나아만도 대단히 행복하고 선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 있어서는 자기가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지도 좋지도 못했다. 나아만은 아마 세상에서는 최대한으로 위대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홀 주교가 표현한 바대로, 아람 나라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이라도 나아만의 살갗을 자기의 것과 바꾸어 가지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Ⅱ. 그에게 엘리사의 능력을 알려 주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 정보는 그의 아내를 시중드는 작은 계집종에게서 온 것이었다(2, 3절). 그 하녀는 이스라엘 태생이었는데, 아마 아람(수리아)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만의 집안으로 뽑혀 갔을 것이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곳에서 엘리사의 명성을 퍼뜨린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불행한 분산이 때로는 하나님께 관한 지식을 퍼뜨리는 아름다운 기회가 된 적이 있다(행 8:4). 1. 이 계집종은 참이스라엘인으로서 조국의 영예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자기는 작은 소녀에 불과하지만, 자기들 나라에 있는 유명한 선지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도 일찍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사업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디를 가든지 그 사실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법이다(시 8:2 참조). 2. 그녀는 좋은 하인이었다. 그녀는 포로로서 할 수 없이 종이 되었지만, 자기 주인의 건강과 복리를 염원했다. 종들은 모두 자기 주인의 유익을 구해야 한다.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은 그 포로 된 땅의 평화를 추구해야 했다(렘 29:7). “엘리사는 이스라엘 문둥이는 아무도 깨끗하게 해 주지 않았다”(눅 4:27). 그러나 이 소녀는 엘리사가 행한 다른 기적들을 미루어 보건대, “능히” 자기 주인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자애심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가 아람 사람도 고쳐 줄 “마음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종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선지자들의 영예가 되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그 집안에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Ⅲ. 그리하여 아람 왕은 나아만을 위해 이스라엘 왕에게 탄원서를 내었다. 나아만은 평범한 하녀에게서 들은 정보였지만, 그녀가 천하다 하여 그 정보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 정보는 그의 신체적 건강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소녀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군. 아람의 모든 의원들도 못 고쳤는데, 이스라엘 선지자가 어떻게 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유다 민족을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았지만, 유다 민족만이 자기 병을 고쳐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들에게 은혜의 보답을 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오, 영혼의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이여, 저 위대한 의원(예수)에 관한 소식에 이처럼 귀를 기울여라! 나아만이 이 조그마한 암시를 받고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살펴보자. 1. 그는 선지자를 불러오도록 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의 병을 고칠 그런 신적인 능력을 가진 자에게는, 비록 자기 몸이 아프고, 사람에게 나설 형편이 못 되고, 또 긴 여행을 해야 되고, 자기가 가야 할 나라가 적국이었지만, 직접 찾아가 만나 보려는 극진한 존경을 표하고자 했다. 제왕들도 필요하다면 선지자들에게 간청을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2. 그는 “변장하고”(In cognito) 가려 하지 않았다. 비록 자기의 용무가 역겨운 자기의 질병을 알리는 것이었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많은 수행원을 대동하고 갔으니, 그것은 그 선지자를 더욱 존경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3. 그는 빈손으로 가려 하지 않았다. 금, 은, 의류 등을 자기의 의원에게 선물로 가지고 갔다. 부유한 자는 건강을 원한다. 이것은 그들이 건강을 더 큰 축복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부유한 자들이 몸의 평안과 힘과 건강을 위해서 무엇을 아끼겠는가? 4. 그는 자기의 주군이 이스라엘 왕에게 쓴 편지를 가지지 않고서는 가지 않으려 했다. 그 주군은 나아만의 건강 회복을 진심으로 염원하고 있는 자였다. 아람 왕은 이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 나아만에게 가장 귀중한 일을 베풀 선지자가 사마리아 어느 곳에 살고 있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아만은 그 선지자가 자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바라면서, 두 왕의 권세로 지원을 받으며 그에게로 가고자 한 것이다. 만일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이스라엘 왕은 자기의 한 제후이므로 그 요구를 들어주리라고 희망했다. 아람 왕은 자기 신하가 주는 선물은 틀림없이 이스라엘 왕에게 좋은 선물과 존경의 뜻을 표하게 될 것이요, 그러면 그가 “문둥병을 고쳐” 줄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6절). 그는 왕과 선지자를 사실 이상으로 유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Ⅳ. 이것이 이스라엘 왕에게는 경보가 되었다(7절). 그는 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읽었다. 1. 하나님을 지독하게 모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신성모독이라고 생각되는 말이나 글을 보았을 때 행하는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서, 이스라엘 왕은 자기의 옷을 찢었다. 어떻게 하나님의 권능을 자기와 같은 인간에게 돌릴 수 있다는 것인가 하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하나님이냐? 내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내겐 결코 그런 능력이 없다.” 그리하여 높은 지위에 있으나 악한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은 단지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끔 되었다. 왜 이런 생각을 한 그가 우상 숭배를 떠나지 못했을까? 이렇게 생각해 보라―“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으며, 복을 줄 수도 화를 줄 수도 없는 그런 것을 신으로 숭배해야 하는가?”고. 2. 왕은 자기를 해치려는 계획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기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그(아람 왕)가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그는 나더러 문둥병을 고치라고 하는도다. 내가 그렇게 못 하면―물론 난 그렇게 할 수 없도다―그것을 구실 삼아 내게 전쟁을 걸어 올 것이니라.” 나아만이 그의 장군이었던 관계로 이스라엘 왕은 더욱 의심을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 편지의 사연, 즉 아람 왕이 문둥병을 고쳐 달라고 그에게 편지를 쓸 때는 분명히 그 병이 고쳐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바로 이해했더라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도 종종, 남이 우리에게 좋은 뜻으로 한 말이나 행실을 오해하여 스스로 큰 불안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스스로 나쁜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이 우리 자신들에게 좋다.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와 그의 능력을 알고 있었더라면, 편지의 뜻을 쉽게 이해했으리라. 그래서 자기가 취할 바를 즉시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이 그 선지자에 대해서 전혀 이방인이었던 연고로 이러한 당혹에 빠지고 만 것이다. 왕보다도 포로가 된 하녀가 선지자를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Ⅴ. 엘리사가 이 일을 맡겠다고 제의를 했다. 그는 왕이 비록 자기를 몰라주고, 자기가 베푼 이전의 선행을 벌써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 왕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려고 했다. 왕이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만일 그 환자가 자기에게 오면 결코 그 수고의 대가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8절).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그가 알리이다”(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없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이 감히 해 볼 생각도 못 했고, 아람 선지자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일을 능히 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 선지자는 비록 알려지지 않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 고침 받은 나아만(왕하 5:9-14) 여기서는 나아만의 문둥병이 고쳐지는 것을 보게 된다. Ⅰ. 선지자는 나아만에게 간단하고 평범한 지시를 내리고서는, 분명히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만은 수레를 타고 수행원을 대동하고서 엘리사의 집에 당도했을 때는, 그를 지극히 존경하려고 했다(9절). 평소에는 선지자를 존경하지 않던 자들도 때가 되어 그들이 필요해지면 지극히 아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엘리사의 문간에서 구걸하는 거지처럼 엘리사의 집 문간에 대기했다. 영적 문둥병에서 낫고자 하는 자들도 “지혜의 문”에 나아가 “그 문설주 옆에서 기다려야”(잠 8:34) 한다. 나아만은 자기의 인사에 대한 보답을 기대했다. 그러나 엘리사는 아무런 공식적 답례도 없이 대답만 했다. 선지자는 문간에 나아가 그를 맞으려 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자기에게 베풀어진 그런 영예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단지 사환을 시켜서 이렇게 전달하라고 했다. “가서 요단 강에 일곱 번 씻으라.” 그렇게 하면, 그 병이 깨끗해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분명했다. “네가 깨끗해질 것이다.” 그 처방법도 명백했다. “요단 물에 씻으라.” 이런 것이 병을 고쳐 주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물론 냉수욕이 건강에 좋다고 추천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문둥병일 경우에는 오히려 해가 된다고 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치유의 한 표징이었으며, 그의 순종을 시험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자들은 명령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엘리사는 이러한 지시를 사환을 통해서 했을까? 이유가 있다. 1. 아마 그 때 엘리사는 예배를 위해서 은거 중이라, 그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2. 아니면, 나아만이 거만한 사람임을 알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 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Ⅱ. 이렇게 처방된 방법에 대해서 나아만은 역겨움을 느꼈다. 자기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두 가지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1. 엘리사가 자기를 업신여기고 종을 보내면서, 직접 와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11절). 나아만은 치유에 대한 기대가 몹시 컸으므로, 그 치유 방법도 거창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꿈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그가 내게로 올 줄로 확신했노라. 아람 귀족인 나에게 최소한 그 정도는 할 줄 알았노라. 나는 그에게 온갖 체모를 다 갖추어 왔으며, 이스라엘을 물리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내게 말이다. 그리고 그가 일어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내 이름도 넣어가며, 기도해 주고, 그러고 나서 그의 손으로 상처를 씻으면 고쳐질 줄 알았노라.” 그런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므로, 그는 화를 내게 된 것이다. (1) 그는 자기 자신이 문둥이라는 것을 잊었다. 엘리사는 모세의 법을 거룩히 준수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은 문둥병자들과의 교제를 금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아만은 정중한 격식을 요구할 수 없는 처지였다. 섭리에 따라서 당연히 겸비해져야 할 많은 사람들이 겸손치 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민 12:14). (2) 나아만은 자기가 감히 요청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 호의를 바라는 탄원자임을 잊었다. 거지가 선택권을 가질 수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환자가 의원에게 처방을 내릴 수도 없는 법이다. 나아만의 어리석은 자만심을 보라. 그는 위풍당당하고 법석을 떠는 격식을 거쳐서 치료되지 않으면, 어떤 치료에도 만족을 못 누릴 자다. 그는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다면, 고쳐지는 것도 싫어했던 자다. 2. 그는 엘리사가 자기의 나라 아람을 경시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강, 요단에 가서 씻으라고 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스라엘의 모든 강보다 뛰어난, 다메섹의 아마나 강과 바르발 강”을 생각했다. 그는 다메섹에 있는 이 두 강을 지나치게 자랑했다. 그 강들은 얼마 후에는 하나가 되어, 지리학자들은 그 강을 “크리소로아스”, 곧 “황금의 강”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한편 그는 이스라엘의 모든 강을 지극히 조소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을 “모든 땅의 영광”이라고 불렀고, 특히 그 땅에 있는 “시내”(신 8:7)를 염두에 두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람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은 흔히 이렇게 차이가 난다. 또한 나아만은 선지자의 지시를 얼마나 업신여겼던가! “내가 거기서(자기 나라 강) 몸을 씻으면 깨끗해지지 않으랴!” 했다. 그는 자기 나라 강에서 씻으면 때를 깨끗이 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씻더라도 문둥병을 씻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그 선지자가 자기더러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리라고 명령한 사실에 대해 분노했다. 그는 선지자가 온갖 것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별로 중요치 않은 일을 시킨 것에 대해 불쾌히 여겼다. 아마 그는 그 처방이 너무 값싸고 평이하며, 자기처럼 위대한 자의 치료법으로서는 저속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그것이 아무 효험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도대체 요단 강물이 다메섹의 강물보다 치료 효력이 더 크단 말인가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1) 요단 강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치유의 효력은 바로 그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이지 다메섹의 신들에게 기대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요단 강은 여호와의 땅, 거룩한 땅을 흐르는 강이다. 기적적인 치유 효과는 그 강의 깊이라든가 물줄기의 수려함이 아니라 그 강과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2) 요단 강은 이 일 전에도 여러 번 전능자의 명령에 순복한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이스라엘에게 통행로를 제공했고, 최근에는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통행로를 주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공통된 법칙에만 따르며 한 번도 달리 행해 본 일이 없는 그런 강들보다는 이 요단 강이야말로 그러한 목적에 적합했던 것이다. (3)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요단은 지정된 강이라는 점이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낫기를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해야 할 것이요, 이유를 묻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들의 생각에는 지혜로운 자들이, 하나님의 지혜의 명령과 처방을 업신여기며,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들의 환상을 좇으려 한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 두자. “자기의 의를 세우려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에 순복하려” 하지 않는다(롬 10:3). (화가 난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이) 나아만은 화가 나서 선지자의 집을 나와서 더 이상 선지자와는 말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해야 되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다면 누가 손해를 볼 것인가?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풀어진 자비를 저버린다”는 것을 기억하자(욘 2:8). 교만한 자들은 그들 스스로에게 최악의 원수가 되며, 자기들의 구원을 망친다. Ⅲ. 이 때에 나아만의 종들이 간곡히 조언을 했다. 그들은 그의 분노를 은근히 비난하면서 그 선지자의 처방을 따라 보라고 제의했다(13절). 다른 때에는 그들이 그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지만, 이제 그가 분노해 있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멀리 있었지만, 평소에 그가 이상적인 추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것이야말로 귀인들이 지닐 훌륭한 성격이요, 귀한 것이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와 이 문제를 놓고 대담한 추론을 폈다. 그들은 그 선지자의 중대한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아마 그들은 엘리사에 대한 얘기도 서민들에게서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서민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나아만은 이스라엘 왕과 조신들과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이보다 큰 일을 하라고 명하였더라면, 즉 지루한 치료 기간을 가지라든가 어떤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으라든가 흡각법(吸角法)이나 침을 빨아내는 법을 쓰라고 했더라면 당신은 행하지 않았겠나이까?”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바로 나아만 자신의 종들이 그를 이렇게 책망하고 충고했다. 나아만의 아내의 계집종에게서 그의 병을 고칠 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나아만은 이들의 조언을 조금도 경시하지 않았다(3절). 우리에게 거리낌 없이 대해 주는 자들이 있고, 우리의 결점과 어리석음을 신실하게 얘기해 주는 자들―비록 우리 밑에 있는 자들이라도―이 우리 가까이 있다면, 그것은 큰 축복으로 알아야 한다. 주인들도 종들의 논리에 기꺼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욥 31:13, 14). 아무리 높고 존경스러운 자의 이름으로 주어질지라도, 불신앙적인 조언은 듣지 말아야 하듯이, 우리보다 훨씬 아래에 있는 자들이 들려줄지라도 좋은 충고에는 또한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바른말만 하면, 그 말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2. 그 책망은 지극히 온당했고 또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그들은 나아만을 “아버지여”라고 불렀다. 종들은 자식들이 부모에게 대하듯 효심을 가지고 상전을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을 책망하듯이 충고할 때는, 그 말이 사랑과 참된 존경에서 우러나온 것이요,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3. 그것은 지극히 합리적이었고 지혜로웠다. 무례하고 무사려한 종들이 주인의 분노에 부채질을 하여, 그 선지자와 싸움을 걸어 복수를 하라고 제의했더라면―(나아만은) 엘리사가 자기를 모독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그 결과는 얼마나 불행스럽게 되었겠는가! 아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 모두를 죽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주 놀랍게도, 그들은 선지자의 편을 들었다. 엘리사는 자기의 말이 나아만의 비위에 거슬릴 것을 알았지만, 그의 마음을 달래려고는 하지 않았다. 나아만이 계속 화를 낸다면 자신의 생명이 위험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종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나아만의 분노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조리 있게 추궁했다. (1) 나아만은 자기의 병을 고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무엇이든 “하지 않았겠나이까?” 이렇게 병든 죄인들이 치료를 위해서 무엇이든 하려 할 때, 즉 어떤 일에도 만족하며, 무엇이든 복종하며, 무엇이든 버릴 각오가 되어 있을 그 때에―그 때가 되기까지는 안 된다―비로소 약간의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런 죄인이 어떤 조건으로든 그리스도를 모시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그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자기편으로 삼을 수 있게 될 것이다. (2) 그 처방이 매우 쉽다고 논증했다. “단지 몸을 씻으면 깨끗해지리이다. 그냥 해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 일에는 돈도 안 들고 어렵지도 않습니다. 몸에 유익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될 것은 없습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죄라는 문둥병에 걸린 자들을 위한 처방법도 이렇게 평이하므로, 우리가 그 처방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 때는 전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믿기만 하라. 그러면 구원받으리라”, “ 회개하라. 그러면 용서받으리라”, “씻으라. 그러면 깨끗해지리라” 하는 처방을 받은 것이다. Ⅳ. 그대로 행하니, 치료가 되었다(14절). 나아만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나서, 실천을 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은 깊은 믿음이나 결단력을 가지고 행한 듯이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선지자는 요단 강에 일곱 번 씻으라고 했는데, 그는 단지, 할 수 있는 대로 쉽게 일곱 번 물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 자신의 말씀이 영광 받게 되는 것을 지극히 기뻐하시사, 그것이 효력을 발생하게 하셨다. “그의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 살같이 되었다.” 이것을 보고 그는 크게 놀라면서 기뻐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그의 제도에 참여하는 자들은 이러한 놀라움과 기쁨을 맛보게 된다. 나아만이 물로 씻음으로써 깨끗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문둥병자를 정결케 하는 율법을 존귀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그 이름 이상으로 굳게 하실 것이다. -------- 기쁨으로 돌아가는 나아만(왕하 5:15-19) 우리 구주께서 열 문둥이를 고쳐 주셨을 때, 그 중에 한 사람만 “돌아와 감사를 드렸는데”, 그는 바로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눅 17:16). 이 아람 사람도 그렇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Ⅰ.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가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만이 홀로 하나님이시요, “이스라엘 외에는 천지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15절)는 것을 실제로 알게 되었다. 이것은 아주 고귀한 고백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방 세계의 불행을 시사해 주는 고백이기도 하다. 많은 신들을 지니고 있는 열방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온 세상에 이스라엘 하나님만 계시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나아만도 아람의 신이 진짜 신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이스라엘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요, 온 우주의 절대주(主)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나아만이 다른 문둥이들도 깨끗해지는 것을 보았더라도, 그러한 체험이 그에게 이런 확신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병이 나았다는 기적보다도 그 치료의 자비가 그를 감동시킨 것이다. 체험으로 아는 자가 하나님의 권능을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법이다. Ⅱ. 그리고 선지자 엘리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므로 당신이 누구의 종이든, 나는 당신의 주인을 위해 금, 은, 보화 무엇이든 당신이 받기 원하는 것을 선물로 드리리이다.” 그는 문둥병 치료가 선지자에게 너무나 용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효험이 자기에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 치료를 높이 평가했다. 따라서 거기에 따른 보상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선물을 받으라는 강요를 들었으나, 한사코 사례를 거부했다. 더 이상 졸라 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맹세하면서 거절했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받지 않으리라”(16절). 엘리사는 매우 가난했고, 그러한 재물이 있으면 써야 할 곳도 알고 있었던지라, 필요 없어서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재물이 있다면, 그것을 선지자 생도들에게 잘 나누어 줄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 그 사례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안 받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때에도 엘리사가 사례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이 아람인에게서, “내가 엘리사를 부유하게 했노라”(창 14:23)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라엘 하나님의 종들은 거룩한 신앙을 가지고 이 세상 부귀를 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이 새로운 개심자에게 보여 줄 수 있다면, 하나님께 더욱 영광이 돌아갈 수 있고, “이스라엘 외에는 하나님이 없도다”라고 하던 나아만의 신앙을 더욱 굳혀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고전 9:18; 고후 11:9 참조). Ⅲ. 나아만은 이스라엘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했다. 그는 자기의 치유에 감사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신에게도 제사 드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다(7절). 문둥병 치료라는 복된 치료가 보다 더 무서운 병, 우상 숭배까지 치료해 준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의 회심에 두 가지의 약점과 결점이 있다. 1. 한 가지 일은, 그의 행동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즉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제단을 만들기 위해” 엘리사 집의 마당 흙을 가져가고자 했으며, 적어도 엘리사가 그런 일을 명령만이라도 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17절). 얼마 전에는 이스라엘의 강물을 아주 경시하던(12절) 그가 이제는 다른 한 극단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스라엘의 흙을 지나치게 존귀히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흙 제단”을 만들라고 하신 적이 있으므로. 출 20:24) 그 흙으로 제단을 만들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온 “땅이 여호와의 것이요, 그 모든 소산도” 여호와의 것이라는 점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그 선지자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엘리사의 권능은 물론이요 그의 덕과 관대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곁들여서―지니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옛말에도, 왕을 사랑하는 자는 그 땅에 나아가 흙을 얼마간 집어서 집으로 가져간다고 했다. 2. 또 한 가지 일은 지나치게 모자란 점이다. 그는 자기의 주군을 기쁘게 하기 위해, 또 조신의 의무에 따라서 림몬의 신당에 나아가 그 앞에 경배할 자유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18절), “이 일은”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는 자기가 꼭 그렇게 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현재의 자리에 붙어 있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즉 자기가 경배하는 것은 결코 어떤 우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자기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랐다. 이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정상을 참작한다면, 다소 변명의 여지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확신하는 바로는 다음과 같다. (1)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서, 이미 알고 있는 죄를 계속 짓겠다는 유보 조항을 만든다면, 그 조항은 우리를 계속 죄에 빠지게 만들 것이요, 또한 그 언약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는 우리의 온갖 죄악을 버려야 하며, 림몬의 어떤 신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격려의 말을 듣는다. 그러나 어떤 죄든지 앞으로 계속 지을 테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을 조롱하는 일이요,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3) 하나님께 대해 범죄하고 양심을 더럽히지 않고서는 지킬 수 없는 자리인데도, 그 자리가 궁궐이라 하여 떠날 줄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제대로 평가한 자들이 아니다. (4) 진실로 악을 역겨워하는 자들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려고 애쓰게 된다. 나아만이 자기의 종교를 감추지는 못했지만, 이스라엘 하나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은 아람인으로서는 대단히 장한 일이며, 그 문제로 인해 용서를 빌고 있는 것을 미루어 보건대, 회심과 정직성에는 그래도 개선의 희망이 보일 만큼 지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선지자 엘리사는 그에게 “평안히 가라”고 명한 것이다. 젊은 개심자들은 부드럽게 다루어야 한다. ------- 게하시의 미련(왕하 5:20-27) 아람 사람이요, 조신이요 군인인 나아만에게는 많은 종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지혜와 선행에 대해서 읽어 보았다(13절). 거룩한 선지자요,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에게는 단 한 사람의 종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천박하고 남을 속이며, 아주 쓸모 없는 녀석이었다. 멀리서 엘리사 소식만 듣는 자들도 그를 존경했고, 자기들이 들은 소식으로 유익을 얻었다. 그런데 줄곧 엘리사 앞에 서 있으며 그의 지혜를 듣는 자가 엘리사의 교훈이나 기적을 보고 듣고도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엘리사의 종이라면 당연히 성도라고 생각할 것이다(아합이나 오바댜의 종들은 그러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에도 가룟 유다 같은 자가 있는 법이다. 은총을 전달하는 수단(매개체)들은 은총을 줄 수 없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고, 가장 선한 사역자들이라도 자기들 주변에 저들의 걱정과 수치가 되는 자들이 흔히 있는 법이다. 교회당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하나님과는 더욱더 멀어지는 수가 있다. 그 나라의 자녀들이 쫓겨나는 그때에, “동서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함께 앉으리라.” Ⅰ. 게하시의 죄를 보자. 그것은 아주 복합적인 죄였다. 1.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다. 그것이 그의 죄악의 바탕이었다. 그의 선생은 나아만의 보물을 경멸했으나, 게하시는 그것을 탐냈다(20절). 홀 주교의 말대로, 그의 마음은 나아만의 금고로 온통 꽉 차 있었다. 따라서 그것을 갖기 위해서 나아만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 재물을 탐내다가 “신앙에 실수를” 범하는 자들이 많으며, 결국 “많은 근심에 빠지게 되고” 만다. 2. 그는 자기 선생이 나아만의 선물을 거절했다 하여 선생을 비난했다. 충분히 가져도 되는데 금을 갖지 않았으니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으며, 이 이방인에게 지나친 친절과 관용을 베푼다고 시기와 증오를 보냈다. 그 재물은 엘리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자기가 선생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3. 나아만이 교양 있는 자세로 자기의 수레에서 내려 게하시를 맞아 주자(21절), 게하시는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즉 자기의 주인이 자기를 보냈다고 했고, 나아만이 자기 선생에게 표하는 정중한 인사를 대신 받았다. 4. 그는 자기 선생을 악용하고, 나아만에게 거짓으로 선생을 설명했다. 즉 자기 선생은 그 관대하던 마음을 즉시 후회하는 변덕스러운 사람이요, 자기 마음도 제대로 모르는 자이며, 말을 이랬다저랬다 하는 자요, 맹세해 놓고 취소하는 자이며, 존경스러운 일을 했다가 또 곧 번복하고 마는 그런 자라도 되는 듯이 말을 해 버렸다. 그가 얘기 중에 선지자들의 생도들 중 두 사람을 들먹인 것은 실로 어리석은 것이었다. 두 젊은 생도들을 위해서 선물을 구했다면, 은 한 달란트쯤으로는 그들에게 별로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5. 또 그것은 나아만의 거룩한 신앙을 잃어버리게 할 위험이 있었다. 나아만은 이제 새로이 그 신앙과 결합했던 것이다. 또한 나아만이 그 신앙에 대해 가졌던 인상을 그르칠 위험성도 알고 있었다. 바울의 적이 바울에 대해 말했을 때처럼(고후 12:16, 17), 게하시는, 엘리사가 직접 자기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교묘한 수를 써서 자기에게 이득이 될 물건들을 되돌려 보냄으로써 자기를 기만했다고 하는 말을 능히 할 위인이었다. 우리는 엘리사의 손길이 그 일과는 상관이 없음을 나중에 나아만도 알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게하시가 부당하게 취했던 것을 할 수 없이 도로 돌려주게 되었다는 것도 알았으리라. 아마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아만은 다시금 우상을 섬기게 되었을 것이다. 6. 부당하게 취한 것을 감추려 했다는 것은 더욱 가중한 죄다. (1) 아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취한 물건을 아주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숨겼듯이, 게하시도 할 수 없이 그 물건을 내어 놓게 되었을 때까지는 집에 숨기고 있었다(24절). 이제 게하시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나아만의 지혜나 엘리사의 분별의 영까지도 속일 수 있었던 능란한 사기술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마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도들을 속이고 흡족해하던 꼴과 같다. (2) 그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그는 “들어가서 그의 주인 앞에 섰다.” 그의 명령을 기다린 것이다. 자기 주인의 말에 게하시처럼 순종하는 듯이 보이는 자도 없었겠지만, 또한 실상 게하시처럼 엘리사에게 피해를 입히는 자도 없었다. 게하시는 에브라임처럼 생각했다. “나는 실로 부자가 되었도다. 아무도 내게서 불의를 발견하지 못하리라”(호 12:8). 그의 주인은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답하기를 “선생님, 아무데도 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흔히 거짓말은 또 하나의 거짓말을 낳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한 죄악의 길은 내리막길이다. 그러므로 대범하게도 진실인 척한다. Ⅱ. 이 죄는 처벌을 받게 되었다. 엘리사는 즉각 사실을 말하도록 했다. 1. 게하시는 크게 확신하고 있었다. 선지자를 속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언의 영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고, 성령을 속이려는 것은 무익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엘리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1) 게하시는 부정하지만, 그가 한 일을 말할 수도 있었다. “너는 아무데도 안 갔다고 말하지만, 네 마음이 너와 함께 가지 아니하더냐?”(26절. 한글 난외 참조) 도대체 게하시는 선지자들에게는 신령한 눈이 있다는 것을 아직 못 배웠단 말인가? 아니면 선견자나 여호와의 은밀한 것을 알고 있는 자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를 짓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기억하자. 우리가 몰래 곁길로 들어서면, 양심이 동행하지 않는가? 또 하나님의 눈이 동행하지 않겠는가? “자기의 죄를 은폐하는 자는 잘되지 못하리라.” 특히 “속이는 혀는 잠시일 뿐이니라”(잠 12:19). 거짓말로 혼란된 속에서도 진리는 그 표면을 꿰뚫고 나올 것이요, 유난히 빛나게 되리라. (2) 게하시 자신이 은밀히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까지도 엘리사는 말할 수 있었다. 게하시의 생각과 의도, 그리고 지금 두 달란트를 가지고 있으니―땅이나 가축을 사려고―앞으로는 엘리사를 떠나 자활하리라는 구상까지도 말해 버릴 수 있었다. 이 세상적인 온갖 희망과 궁리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드러나고 마는 것임을 명심하자. 또한 그 행위가 악했다는 사실을 말했다. “지금이 어찌 돈을 받을 때냐? 지금이 너 자신의 재물을 늘릴 기회냐? 네 주인을 속이고 갓 개종한 자에게 걸림돌을 놓는 수를 쓰지 않고는 돈을 벌 수 없었다는 것이냐?” 항상 재물만 생각하고, 특히 옳든 그르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는 자들은 스스로 엄청난 유혹에 뛰어드는 것임을 명심하자. 부해지려고 하는 자들은(per fas, per nefas; rem, rem, quocunque modo rem―정당한 수단으로든 그릇된 수단으로든, 원칙은 생각지도 않고 돈만 의도하는 자들은)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된다”(딤전 6:9). 흔히들 그렇게 하지만, 전쟁이나 불이나 질병이나 파선 따위가 돈 버는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신앙에 치욕이 되거나 우리 자신이 남에게 해를 끼치는 수를 쓰지 않고는 돈을 벌 수 없다면, 그 때야말로 재산을 늘릴 때는 아닌 것이다. 2. 게하시는 무슨 벌을 받았는가?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갈지니라”(27절). 게하시가 그의 돈을 가지고자 했으니, 그의 돈과 함께 그의 병도 가지게 되어야 마땅하다―“장애물까지 가지고 사라진다”(Transit cum onere). 그는 후손에게 땅을 물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대신 세세토록 자기 몸의 역겨운 병을 상속해 주게 되었다. 이 선고는 즉시 시행되었다. 엘리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루어졌다. 게하시가 “그의 앞에서 나아오니, 문둥병이 발하여 흰눈같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게하시는 어디로 가든 낙인을 달고 다니고 그 악명을 떨치게 되었으니, 항상 그 치욕의 표지를 지니고 다녀야 했다. 이리하여 그는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 저주를 가져다 주었다. 그 저주는 그의 악행을 잠시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기억되게 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니라”(잠 21:6). 사기 등의 불의로 치부한 자들은, 그 재물로 위안을 받게 되거나 또 그 재물이 계속 보존되리라는 따위의 기대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게하시가 두 달란트를 얻게 되자, 그것으로 인하여 건강과 영예와 평안과 직업을 잃게 되었고, 또 만일 회개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자기의 영혼까지 잃게 되고 말았을 텐데, 그가 얻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욥 20:12 이하 참조) ========= ..열왕기하 5장 1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용사나 문둥병자더라 ㅇ아람 - '셈족'의 후예로서 '수리아'라고도 불린다. 유목 민족이었던 그들은 B.C.13세기 경에 힛타이트의 영토였던 다메섹에 정착했다. 북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우호 관계, 혹은 적대 관계를 맺었다(16:5;왕상 15:18-20). 특별히 상업에 재능을 보여 각지를 돌아 다니며 통상을 벌였기 때문에 그 언어가 동방 무역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18:26;사 36:11;스 4:7;단 2:4).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된 후 신약시대에는 아람어가 팔레스틴에서 통용되었다(마 27:46;막 5:41;7:34). ㅇ아람 왕의 군대 장군 나아만은 - 여기서 아람 왕이란 직접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 이름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6:24과 8:7에 등장하는 벤하닷I세(Ben Hadad I세, B.C. 900-860)와 동일 인물로 알려져 있다(T.R.Hobbs). 그리고 본장에 기록된 사건은 이스라엘과 아람의 계속적인 전투중 간헐적으로 나타났던 평화 기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한다(K.W.Bahr). 왜냐하면 벤하닷 I세가 생존한 시기에는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가 적대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본장의 중심 인물인 나아만의 이름은 우가릿어(Ugarit)로서 '공평한', '은혜로운'이라는 뜻(Gray)인데 혹자는 이 이름이 아람인이 섬기는 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Ewald)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당시의 아람에서 군대 장관이라는 직책은 군대의 총지휘권을 가진 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 아래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라는 직위 서열로 군대 조직이 구성되어 있었다(1:9 주석 참고). ㅇ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 여기서 '크고'라는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전장(前章)에서 수넴 여인을 가리킨 단어인 '귀한'(4:8)이라는 말과 동일한 용어 '게돌'이다(4:8주석 참고). 그리고 '존귀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문자적인 뜻은 '한 권위자가 스스로 얼굴을 들어 올리는 행위'에서 나온 것(Gray)인데 일반적으로 존경 스러움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인다(3:14). 이처럼 나아만은 벤하닷의 군대 장관으로서 큰 영화를 누렸던 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표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영예를 얻었다', 혹은 '존경을 받았다'라고 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ㅇ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 본절에서 이방인이 얻은 승리를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한 결과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은 구약 전반에서 보더라도 참으로 특이하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에서 파생된 자연스러운 논리적 결과이다(T.R.Hobbs). 즉 이는 온 천하에 유일한 신(神)이신 여호와께서 이방인의 삶까지도 섭리하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나타낸 독특한 히브리적 개념인 것이다(암9:7;사10:13,Lange Commentary). 그래서 여기에 특별히 언급된 아람의 구원은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얻은 승리를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T.R.Hobbs). 한편 요세푸스에 따르면 나아만은 아람의 배반자인 이스라엘의 아합 왕(B.C.874-853)을 살해한 자였다고 한다. 또한 역대하 18장의 아람어 탈굼(Targum) 역본에도 이와 동일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ㅇ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 나아만은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등 많은 공적을 세운 능력있는 군대 장관으로서 영화를 누렸지만 불행하게도 문둥병에 걸리고 만다. 그렇지만 문둥병자를 사회에서 추방하는 이스라엘(레 13장-14:57)과는 달리 아람에서는 문둥병자라도 왕과 아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Keil &Delitzsch, Vol. , p.317).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에까지 도움을 구하러 온 것을 보면 그의 문둥병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대단한 지장이 있었음을 알 수있다(Thenius). 이러한 사실에 대해 혹자는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려서 앗수르를 치는데 더이상의 공헌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Wycliffe). 한편 본절에서 '큰 용사'라는 표현은 '좋은 군인'이라는 의미 이상의 아무런 뜻이 아니다(Pulpit Commentary).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 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ㅇ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 여기서 '전에'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전치사는 언제라고 분명히 그 시기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본장의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의 '때'를 가리킨다. 아합 왕이 라못 길르앗을 원정한 이후로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는 조그만 싸움들이 잦았다. 본절은 그러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서 이러한 표현을 한것이다. 한편 여기서 '떼를 지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자르다', '침투하다'라는 어근 동사 '가다드'의 변형인 '게두딤'으로서 흔히 '몰래 습격하는 비적 떼'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삼상 30:8,15). 또한 헬라어 역본들에는 '모노조노스'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벨트를 하나 밖에 차지않은 가벼운 복장 차림을 한 군대의 병사들을 가리킨다(3:21 주석 참고). 그리고 중세 헬라어 역본들을 보면 '도적 떼'라는 뜻의 단어 '페이라테리온'이 첨가되어 아람 사람들의 떼가 비적, 혹은 도적 떼임을 더욱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ㅇ작은 계집 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 고대의 도적 떼들은 보물의 약탈뿐 아니라 종으로 삼을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성행했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본절에 언급된 작은 계집 아이는 자신을 잡아온 사람들에게까지 탁월한 용기와 자비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고향과 친지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괴로워하지 않고, 복수 하기보다는 오히려 친절을 베푼다(마 5:44).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본절의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Wycliffe). ㅇ수종들더니 - 이것을 히브리어 문자대로 직역해 보면 '앞에 있다'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4:12,15에 기록된 '앞에 서 있다'라는 말의 단축형으로 보기도 하며 '존경'을 표시하기도 하며 심지어 '숭배'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T.R.Hobbs). 그 뿐만 아니라 이 용어는 맹세를 나타내는 구문에서도 사용된다(5:16 '나의 섬기는'). 3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ㅇ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 이는 엘리사 선지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엘리사는 사마리아에 집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6:32) 그곳에서 때때로 거주했기 때문에 그렇게 칭함을 받은 것같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ㅇ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 하나님은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땅에서 사로 잡은 '작은 계집 아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명성이 이방 땅에도 전파되도록 하셨다. 이 약한 소녀를 통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는 이방에까지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벧전 2:1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안목으로 판단했을 때 지극히 비천한 자를 종종 들어 쓰시며(고전 1:28) 그들을 사용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ㅇ이러이러 하더이다 - 이와 같은 표현은 대화시에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서 전기 선지서에 많이 나타난다(9:12;수 7:20등). 이처럼 나아만이 이스라엘에서 온 계집 아이의 말을 왕에게 전함으로 인해 엘리사 선지자의 명성은 더욱 더 널리 아람 땅에 전파된다. 5 아람 왕이 가로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개와 의복 열벌을 가지고 가서 ㅇ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 본절을 통해서 나아만 장군이 아람 왕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총애를 받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K.W.Bahr, Pulpit Commentary). 한편 아람 왕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왕의 이름을 본문에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엘리사가 활동한것은 여호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4대에 걸친 시기, 즉 B.C.848-797년이었다. 그러나 본장에 등장하는 아람 왕이 8장에 나오는 벤하닷 I세와 동일인이라고 간주할 때 본장의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벤하닷 I세가 암살되기 이전,즉 B.C. 842년 이전이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때에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은 바로 여호람이 되는 것이다(T.R.Hobbs, Word Biblical Commentary, p.63-64). ㅇ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 - 나아만이 이스라엘을 향해 떠날 때 가지고 간 선물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한 달란트는 3,000세겔에 해당되며 무게로는 약 34.27kg에 해당되므로(출 38:25,27;왕상 16:24;계 16:21) 은 십 달란트는 약342kg에 해당된다. 그리고 금 육천 개는 두 달란트에 해당되며 무게는 약 68.4kg에 해당된다. 또한 이것을 카일(Keil)의 계산법에 따라 환산해 보면 은 십 달란트는 옛 독일의 화폐로 약 25,000탈러(Thaler)이고 금 육천 개는 약 50,000탈러이다. 그러니까 영국 화폐는 약 3,750파운드와 7,500파운드에 각각 해당된다. 한편 그가 선물로 갖고 간 의복 열 벌은 매우 높은 가격의 선물로서 상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었던 근동 지방의 풍습을 반영한 것이다(Pulpit Commentary). 이러한 풍속과 습관은 오늘날까지도 이 지방에서는 지속적으로 내려온다(Keil & Delitzsch). 이처럼 나아만이 가지고 간 선물은 상당한 것으로 그 당시 나아만의 권세와 부귀가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 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ㅇ본절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외교문서에서 쓰는 공식적인 용어이다(T.R.Hobbs).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엘리사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아람 왕이 엘리사를 일종의 '우두머리 마술사나 이스라엘 종교의 대제사장'(Menken)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을 왕에게 부탁하면 왕의 수하에 있는 이 선지자가 병을 고쳐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고쳐주소서'라는 표현은 '모으다', '회복시키다', '제거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사프토'를 번역한 말이다. 이는 병의 근원을 뿌리채 뽑아 달라는 탄원과 함께 간절한 열망을 내포하고 있다.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ㅇ자기 옷을 찢으며 - 본절에서 이스라엘 왕은 극한 슬픔과 분노의 표현으로 옷을 찢는다(창 37:29; 44:13;민 14:6;수 7:6;삿 11:35).이것으로 보아 당시의 이스라엘이 아람의 위압에 눌려 있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이 어렇게 분노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아람 왕의 말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왕은 아람 왕의 말을 왕 자신이 그 문둥병을 고쳐 달라는 말로 잘못 받아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 이 병은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과 같이 중한 병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신32:39;삼상2:6). 따라서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신에게 이러한 중대한 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공연히 시비를 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K.W.Bahr, Pulfit Commentary). (2) 엘리사가 이적을 행하는 줄 몰랐던 왕으로서는(8절) 이렇게 오해한 것이 당연했다. 왜냐하면 벤하닷은 아합 왕 때에도 이와 같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왕상 20:3-6). 한편 히브리 민족은 옷을 찢는 행위 이외에도 슬픔이나 분노를 나타내기 위해 머리에 티끌을 뿌리거나(수 7:6) 흙이나 재를 뒤집어 쓰기도 하였다(삼하 13:19;에 4:1,3;욥 2:8). 그리고 정수리의 머리털을 면도해 버리거나(렘 7:29) 얼굴과 가슴을 치고 뜯기도 하였다(눅 18:13).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ㅇ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그가 있던 곳은 사마리아로 추정된다(G.Rawlinson). 따라서 요단 강과는 어느정도 떨어진 곳(이십마일 정도)이었다. ㅇ저가 이스라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