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신29.모압 언약..깨닫는 마음-보는 눈-듣는 귀..오로지 지옥의 불쏘시개에 합당할뿐임을 자각함 인한 십자가 은혜의 새 생명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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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29장 [144. 예수 나를 위하여] [324.예수나를오라하네] ..내가그리스도와함께..내눈여소서..나의마음을정금과같이


===모압 땅에서 세우신 언약

1.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4.  그러나 (안타깝게도...요단 도하를 앞둔 시점인 지금까지도..주님, 곧 Q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말씀>으로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바, 주님과 하나되어 그분으로 살기에 필충조건이랄 수 있는)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너희 각자마다 직접 영원 생명이시요 살아계시는 주께 나아가 믿음-소망-사랑의 붙좇음 안에서 전 존재 기울여 구할 때 주시는 것인데]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이는 결과적으로 볼 때, 실지로는 너희 각자의 마음이 그분을 완전히 신뢰하여 붙좇음 안으로 들어가 하나됨 배우기를 주저하며 여전히 무지무각한 어라석음에 휩싸여 고집스레 그분을 제한함의 결과라 할 것인데..)

.....[신8:1-6..*1.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7.  (오직 기억할지니..)너희가 이 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8.  그 땅을 차지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오늘 당장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라!!..'솨마르'(* )는 '주의를 집중시키다','세심히 보다'...사랑과 믿음으로 주 이름 부름=앙망/응시-바라봄/주목-교통/사귐/청종..이것을 연습하며 주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그분의 임재 앞에 믿음으로 머물러 교통함으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10.  ○오늘 너희 곧 너희의 수령과 너희의 지파와 너희의 장로들과 너희의 지도자와 이스라엘 모든 남자와

11.  너희의 유아들과 너희의 아내와 및 네 진중에 있는 객과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 있는 것은

12.  네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하시는 맹세에 참여하여

13.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14.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15.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이니

16.  (우리가 애굽 땅에서 살았던 것과 너희가 여러 나라를 통과한 것을 너희가 알며

17.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

18.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19.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

20.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위에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부으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버리시되

21.  여호와께서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구별하시고 이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언약의 저주대로 그에게 화를 더하시리라

22.  ○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의 자손과 멀리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 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23.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

24.  여러 나라 사람들도 묻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이같이 크고 맹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냐 하면

25.  그 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26.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27.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28.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

29.  (주님보다 앞서려 말라, 짐짓 추정 말고 그분께 들으라, 깨닫기를 구하라, 오직 믿음-소망-사랑 안에서<그분의 마음-뜻-심정-생각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여쭈고 친밀히 사귀며, 귀기울여 듣고, 그대로 기쁨으로 따르라)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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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신명기 29:14~29절)== 

>>하나님의 염려(14~21절)

자, 오늘도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한 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게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아버지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는 복된 아침이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야 할 본문은 하나님의 염려입니다. 적합한 표현이 아닐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제목 삼고 싶었습니다. 

이 제목은 18절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19절에서 할까 함이라는 말씀도 하나님의 염려를 표현한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16~17절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살았던 것과 너희가 여러 나라를 통과한 것을 너희가 알며,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야다([d'y:)입니다. 애굽 땅에서 살았던 것은 이스라엘의 과거가 노예였다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를 통과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안 것이 아닙니다. 경험적으로 구체적으로 알았습니다. 

애굽의 열 재앙과 홍해를 건너던 그 순간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듯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받은 시절의 경험은 그냥 지나치면서 안 것이 아닙니다. 온몸과 마음으로 체험하여 안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여기서 보았다는 말은 라아(ha;r;)입니다. 이 말은 검사하다, 인지하다, 숙고하다, 발견하다, 관찰하다, 주목하다, 분별하다 등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냥 본 것이 아니라 주목해서 본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애굽과 가나안의 우상들을 주목해서 보았는지 참 답답한 대목입니다.

애굽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여러 나라를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들이 섬기는 우상이 얼마나 헛되고 힘없는 존재들인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만나고 우상들의 덧없음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떠나서 죽은 신들을 섬길까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할까 염려하시는것일까요? 

앞 단락에서 등장했던 사람들, 여기서는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모든 사람!!.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는 것이 보는 것의 영향을 받아 바뀐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는 핵심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온몸과 마음을 다해 경험해서 안 것이 우상숭배 하는 나라들의 풍속을 보고 그들을 따라갈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염려는 기우가 아닙니다. 

이미 역사를 살펴본 것처럼 하루 이틀 이렇게 우상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800여 년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선지자를 보내셨습니까? 그런데도 끝까지 우상을 따른 결과, 저주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레위기 26장에서는 우상숭배가 거룩을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그 우상숭배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즉 그침의 원리, 성회의 원리, 나눔의 원리는 안식일의 정신입니다. 

그 안식일이 제대로 지켜지면 안식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의 문제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닌 모양입니다. 구약 성경을 살피다 보면 우상숭배가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기 때문입니다. 

17절에 출애굽을 하면서 본 우상들을 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그런 우상들을 섬길까 염려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독초와 쓴 뿌리가 생겨서 이 저주의 말씀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독초와 쓴 뿌리는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아 보입니다. 인간을 해치는 나쁜 마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향력이 큽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독초와 쓴 뿌리라고 표현한 것은 이것의 해악이 독초와 같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오면서 다른 나라들이 섬기는 우상의 하찮음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마음에 독초와 쓴 뿌리가 자라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탐욕이라고 봅니다.

이 부분의 번역은 다른 번역 성경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새 번역입니다. 19~21절까지를 읽어 보겠습니다. “당신들은 그들 가운데 있는 역겨운 것과, 나무와 돌과 은과 금으로 만든 우상을 보았습니다. 당신들 가운데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가, 주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을 멀리하여, 다른 민족의 신들을 섬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 가운데 독초나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이런 저주의 말을 들으면서도 속으로 자기를 달래면서 '내 고집대로 하여도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그런 사람을 그대로 두면, 맹렬한 재난을 만나서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주님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퍼부으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저주를 그에게 내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려서,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구별하여, 이 율법책의 언약에 나타나 있는 온갖 저주대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 우상을 섬기는 것과 19절의 스스로 하는 위로는 같은 것입니다. 19절에서 이 저주의 말은 28절에 길게 언급하셨던 축복과 저주 가운데 저주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숭배에 빠진 독초나 쓴 뿌리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달래면서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마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아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긴장입니다. 그 긴장 사이에 하나님의 염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이 보는 것의 영향을 받아 흘러 떠내려갈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분노하시고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려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염려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과 모든 것들을 경험했지만 우상숭배에 빠져서 여호와를 떠나는 것입니다. 

저주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나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평안할 것이라고 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 일이 이미 일어난 일입니까? 아닙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이렇게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0절에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위에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부으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주저를 그에게 더하신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21절에서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염려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서 여호와를 떠나게 되어 그들을 심판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언약하시는 언약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오늘 너희, 곧 너희의 수령과 너희의 지파와 너희의 장로들과 너희의 지도자와 이스라엘 모든 남자와 너희의 유아들과 너희의 아내와 및 네 진중에 있는 객과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입니다. 그리고 15절에 의하면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란 자에게까지”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오고 오는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주의해서 보셔야 할 것은 수령과 장로들, 지도자와 모든 남자가 누구와 동일 선상에서 취급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유아들, 아내들, 객들, 나무패는 사람들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 빈부귀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분의 귀천과 고하가 어디서 차별이 없어집니까? 여호와 앞에 서 있을 때입니다. 11절에서 여호와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핵심은 [모든 백성,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믿는이들마다!!] 여호와 앞에 서 있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서는 누구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이며 언약의 당사자들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도 이 언약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 당사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의 출신 성분이나, 직업, 직분을 초월해서 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입니다.

15절에는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 오늘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한 미래에 태어날 사람까지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들까지를 바라보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언약의 대상은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까지 미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는 대상은 어쩌면 오늘 우리들 까지를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염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오늘을 잘 살아야 하겠습니다.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의 의미(29절)

하나님의 인도라는 주제로 성경 공부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나, 국가의 흥망성쇠, 이른 비와 늦은 비 같은 영역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대하고 기도할 뿐입니다.

(사진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경우를 만납니다. 날씨에 대한 체크를 꼼꼼히 합니다. 며칠 전부터 바람이며 습도며, 구름을 살피고 또 살펴서 출발합니다. 그런데요? 막상 도착하면 전혀 다른 풍경이 우리를 맞아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법성포에 사진을 담으러 간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내내 날이 흐립니다. 분명히 일기예보는 구름 많음이었는데 하늘은 온통 시멘트 색입니다. 가다가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다가 어찌어찌 대덕산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부지런히 장비를 챙겨서 올라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내려옵니다. 상황 종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뒤늦게 올라가는 저를 조금은 한심하게 바라보고 내려갑니다. 그래도 저는 야경이라도 담아보겠다고 올라갔습니다. 가장 낮은 포인트에서 몇 컷을 담습니다. 신통치 않습니다. 야경을 담으려고 하는데 포인트가 너무 낮아 조금 더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요? 올라가서 다리를 펼치고 1분이 지나지 않아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약 40분간 환상적인 일몰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런데 인용하는 것이 죄송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날씨입니다. 멀리 수원에서 부산에서 온 사람들이 다 내려갔는데 불과 서너 명이 남아 그 장관을 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요사이 묵상하고 있는 나훔 선지자의 앗수르에 대한 심판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 인간으로 하여금 장래를 알지 못하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입니다. 장래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윤리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성경 말씀 전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제사장 나라 백성들이 이렇게 살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들은 순종할 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신명기도 온통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이 정확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생활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순종하며 살아가느냐가 관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윤리적인 뜻은 더 배우고 살펴서 내 삶의 빛이요 등이 되도록 해야 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상한 현상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윤리적인 뜻, 즉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나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도록 해 놓은 장래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보았다느니 환상을 보았다느니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더 나아가 장래 일에 대해 길흉화복을 점치는 희한한 기독교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 사이의 긴장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2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한 것이 다릅니다. NIV성경입니다. “The secret things belong to the LORD our God, but the things revealed belong to us and to our children forever, that we may follow all the words of this law.”

새 번역 성경도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숨기시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일도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뜻이 담긴 율법을 밝히 나타내 주셨으니, 이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손은 길이길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 secret things에 해당하는 것이 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속하는 것들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숨기시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영역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things revealed, 즉 이미 역사를 통해 나타난 일들, 계시 된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담긴 율법을 나타내 주신 것은 우리와 우리 자손이 길이길이 이 율법에 순종하도록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감추어진 일’은 히브리어로는 싸타르(rt's;)로 ‘숨기다’, ‘감추다’라는 의미입니다. 나타난 일은 가라(hl'G:)로 ‘발가벗기다’, ‘누설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학자들 가운데는 이 말씀을 어렵게 생각해서 감추어진 것들은 하나님에게만 알려진, 즉 하나님이 어떤 명령을 하는 이유이고, 나타난 일은 이스라엘이 다 모르더라도 그들에게 맡겨진 것이라고 합니다. ... 또 다른 분들은 감추어진 일은 숨겨진 죄인데 이것들은 하나님께 다 드러나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벌하실 것이고, 나타난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의 책임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감추어진 일은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일인데, 우리는 그것을 상상할 것이 아니라, 나타난 일, 즉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말씀을 따라서 사는 성도들의 삶이라고 해석합니다. (이게 더 자연스럽고 문맥에도 맞아 보이는데 학자들은 왜 저런 주장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도 새 번역 성경의 해석이 옳아 보입니다. 물론 NIV 성경도 동일한 견해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9절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와 신비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나타난 일, 즉 계시 된 언약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이 정말 중요한 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일, 즉 주권적인 하나님의 뜻을 엿보아 아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미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에는 무관심하거나, 하찮게 여기고, 신비만 좇습니다. 

그것이 훨씬 종교적이고 고상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의 삶에서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게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터전으로 주셨습니다. 그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내기를 아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런데 감추어진 Q의 뜻에만 관심이 있고 정말 살아내야 할 Q의 뜻은 하찮은 것이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교만을 떠는 것은 기독교를 더 하찮은 종교로 전락시키는 주범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묘한 일은 Q께 속하였습니다. 아멘. 그것은 Q의 영역입니다. 그것에 관심 둔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안다고 하더라도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나타난 일, 우리에게 허락된 것을 따라서 살 뿐입니다. 그것이 Q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Q의 뜻입니다. 아멘.

그래서 29절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감추어진 일을 알기 위해 마음을 쓰기보다 이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것이 Q의 백성이 살아가야 할 올바른 길입니다.

>>오늘과 같다 하리라(22~28절)

자, 그러면 여기서 주의해서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핀 29절은 앞 단락의 인과 절입니다. 다시 말해 22~28절에 대한 결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앞의 우상숭배가 감추어진 일을 알려고 하는 인간의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자, 우선 22~28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24절을 보는 것에서 시작해 봅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묻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이같이 크고 맹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냐?”고 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옛날 번역에는 “열렬하게 노하실 것이라.”입니다.

Q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질문 거리가 되고 부끄러움이 되었는데 그렇게 Q의 교회가 모욕당하는 상황을 Q께서 맹렬하게 노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Q께서 맹렬하게 노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22~23절입니다. “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의 자손과 멀리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 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그럽니다.

자손과 객들이 재앙과 질병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질병과 재앙의 출처가 여호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내리시는 재앙이요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즉 징계라는 말입니다. 온 땅이 유황이 되고 소금이 되었다는 말은 앞서 하늘이 놋이 되고 땅이 철이 되었다는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황폐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후손들도 알고 세상 사람들도 아는데 Q의 징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왜 Q께서 이렇게 맹렬하게 노하시느냐는 것입니다. 

25~2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

여기서 그때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렇게 된 이유를 사람들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맹렬하게 진노하시는 이유를 사람들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서 있는 너희, 즉 언약 갱신에 참여한 보배로운 신부 같은 백성들이 언약을 저버리고, Q의 백성다운 삶을 살지 않을 때 Q께서 맹렬히 진노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진노하시는 것입니까? 이미 여러 번 말씀하신 것처럼 Q께서 어린양의 피와 홍해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만나와 구름 기둥, 불기둥과 반석의 물 등등을 체험하게 하심으로 그들을 설득하신 뒤에 드디어 약속을 맺으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Q이 염려하셨습니다. Q께서 말씀하시는 저주의 말씀을 듣고도 우상숭배에 빠지고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 마음이 평안하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의 그리스도인들과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이 언약은 29:12절 말씀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하시는 언약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처럼 하나님께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시고 인간들에게는 그 언약에 동참하라고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은혜 언약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25절에 언약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Q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알지도 못하고 주시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8절에 Q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고 누가 말합니까? 사람들이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점검해 보겠습니까? 24절의 열렬한 진노, 맹렬한 진노는 지금 이루어진 일입니까? 아닙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입니다. 따라서 29절 말씀을 다시 살피는 일은 중요합니다.

호렙에서 모압까지의 시간은 경험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겪게 될 일들은 경험의 시간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내야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따라서 나타난 일들을 교훈 삼아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빛이라고 고백하며 살아내는 것이 성도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 사이에서

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언약은 감추어진 것입니까? 나타난 일입니까? 나타난 일입니다. Q께서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뜻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지키고 따라야 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감추어진 Q의 뜻에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그게 어디로 간 것입니까? 알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주시지도 않은 다른 신들을 따라간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무당을 많이 찾아갔습니다. 그때 무당에게 묻는 것은 거의가 감추어진 일에 속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사업장을 어디에 내야 하는지, 결혼 날을 언제 잡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에서부터 집에 생기는 크고 작은 우환이 왜 일어났는지 별의 별 것들을 다 가지고 가서 물었습니다. 

그런 것들 가운데는 대부분 감추어진 것들이 많았습니다. 즉 Q께서 알지 못하도록 하신 것들입니다. 그렇게 찾아가서 묻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염려이고 다른 하나는 탐욕입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는 근본적으로 탐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감추어진 일, 즉 Q의 주권적인 영역들을 왜 알고 싶은 것입니까? 단순히 궁금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뭔가 필요한 것이 있고 염려스러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복술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당들이 기독교 내에도 존재합니다. 이름만 기독교로 바뀌었지 과거 무당들이 하는 짓을 똑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은 인격적인 Q이 아니라 무당 종교의 신과 비슷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기도했더니 보여주셨다고 하면서 오만 것들에 다 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Q은 나타난 일, 즉 Q께서 말씀하시고 이렇게 살라고 하신 것 외에 인간은 Q의 형상이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수많은 영역에서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결정은 지나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책임이 따릅니다. 

그런데 무당에게 물으면 내 책임은 빠지고 무당책임이 되고 운명이 됩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이런 기독교는 오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 되는 기독교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오늘 진노를 받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들처럼 예배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열심히 율법을 준수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다만 우상도 겸하여 섬긴 것입니다. 그리고 저울추가 우상에게 더 기울어진 것입니다. 

Q은 그런 종교에 기만당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묘하게 무당 종교와 기독교를 섞어서 기독교 무당이 되는 것은 사실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감추어진 것들은 Q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그 영역을 자꾸 말하고 안다고 하는 것은 오늘 본문은 우상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29절이 말씀하고 있는 감추어진 일, 즉 Q의 영역을 우상 종교는 자꾸 침해하고 거짓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그런 기독교를 Q은 끔찍하게 싫어하셔서 그들을 향해 진노하시고 멸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아야 할 그들의 삶에 대해서 Q께서 미리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나타난 일이 아니라 장차 곧 있게 될 일입니다. 장래에 속한 일이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되었을 때 이렇게 살지 말라고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여호와께서 맹렬하게 노하시는 상황은 사실은 감추어진 일입니다.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것도 아닙니다. 

Q의 주권적인 뜻이 아닙니다. 그 삶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Q은 그 일을 미리 말씀하시면서 그때 그때의 결정을 나타난 일에 의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을 살아갈 때 나타난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감추어진 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그것에 관심 두기보다 나타난 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좋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안다고 치부하지 마십시오.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면서 이론만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매일 그 말씀 때문에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도록 놓아두어야 합니다. 탐욕을 그치고 우상숭배를 그쳐야 합니다. 그래야 Q께서 말씀하신 나타난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생활과 지금 우리의 미래는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니, 우리가 살아야 삶도 다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면서 나타난 말씀, 우리에게 영원히 주신 Q의 말씀을 사랑하고 깨닫고 순종하는 일에 매일 헌신하는 귀한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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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se are the words of the covenant which the LORD commanded Moses to make with the sons of Israel in the land of Moab, besides the covenant which He had made with them at Horeb.

2.  And Moses summoned all Israel and said to them, "You have seen all that the LORD did before your eyes in the land of Egypt to Pharaoh and all his servants and all his land;

3.  the great trials which your eyes have seen, those great signs and wonders.

4.  "Yet to this day the LORD has not given you a heart to know, nor eyes to see, nor ears to hear.

5.  "And I have led you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your clothes have not worn out on you, and your sandal has not worn out on your foot.

6.  "You have not eaten bread, nor have you drunk wine or strong drink, in order that you might know that I am the LORD your God.

7.  "When you reached this place, Sihon the king of Heshbon and Og the king of Bashan came out to meet us for battle, but we defeated them;

8.  and we took their land and gave it as an inheritance to the Reubenites, the Gadites, and the half-tribe of the Manassites.

9.  "So keep the words of this covenant to do them, that you may prosper in all that you do.

10.  "You stand today, all of you, before the LORD your God: your chiefs, your tribes, your elders and your officers, [even] all the men of Israel,

11.  your little ones, your wives, and the alien who is within your camps, from the one who chops your wood to the one who draws your water,

12.  that you may enter into the covenant with the LORD your God, and into His oath which the LORD your God is making with you today,

13.  in order that He may establish you today as His people and that He may be your God, just as He spoke to you and as He swore to your fathers, to Abraham, Isaac, and Jacob.

14.  "Now not with you alone am I making this covenant and this oath,

15.  but both with those who stand here with us today in the presence of the LORD our God and with those who are not with us here today

16.  (for you know how we lived in the land of Egypt, and how we came through the midst of the nations through which you passed.

17.  "Moreover, you have seen their abominations and their idols [of] wood, stone, silver, and gold, which [they had] with them);

18.  lest there shall be among you a man or woman, or family or tribe, whose heart turns away today from the LORD our God, to go and serve the gods of those nations; lest there shall be among you a root bearing poisonous fruit and wormwood.

19.  "And it shall be when he hears the words of this curse, that he will boast, saying, 'I have peace though I walk in the stubbornness of my heart in order to destroy the watered [land] with the dry.'

20.  "The LORD shall never be willing to forgive him, but rather the anger of the LORD and His jealousy will burn against that man, and every curse which is written in this book will rest on him, and the LORD will blot out his name from under heaven.

21.  "Then the LORD will single him out for adversity from all the tribes of Israel, according to all the curses of the covenant which are written in this book of the law.

22.  "Now the generation to come, your sons who rise up after you and the foreigner who comes from a distant land, when they see the plagues of the land and the diseases with which the LORD has afflicted it, will say,

23.  'All its land is brimstone and salt, a burning waste, unsown and unproductive, and no grass grows in it, like the overthrow of Sodom and Gomorrah, Admah and Zeboiim, which the LORD overthrew in His anger and in His wrath.'

24.  "And all the nations shall say, 'Why has the LORD done thus to this land? Why this great outburst of anger?'

25.  "Then [men] shall say, 'Because they forsook the covenant of the LORD, the God of their fathers, which He made with them when He brought them out of the land of Egypt.

26.  'And they went and served other gods and worshiped them, gods whom they have not known and whom He had not allotted to them.

27.  'Therefore, the anger of the LORD burned against that land, to bring upon it every curse which is written in this book;

28.  and the LORD uprooted them from their land in anger and in fury and in great wrath, and cast them into another land, as [it is] this day. ' 

29.  "The secret things belong to the LORD our God, but the things revealed belong to us and to our sons forever, that we may observe all the words of this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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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귀와 보는 눈과 깨닫는 마음 = 하나님의 선물 ]]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렇다면 믿음 이전에 들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를 주셨을 때 그 계시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계시란 말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가리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보아야 할 것을 보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은 하나님의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요. 이를 다르게 표현해보면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 할 것입니다. 

혹은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 29:2-4...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 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1.  바른 눈과 귀와 마음이 없으면 ...

이러한 하나님의 주시는 선물인 세가지가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리고 정반대로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이사야서 6장은 이사야의 사명을 소개하는 말씀인데 이사야는 불행한 사명을 맡게 됩니다.

[사 6:8-13....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러한 보는 눈 듣는 귀 깨닫는 마음은 <바로 오늘날, 신약 시대에도!!>천국 비유를 들을 때에도 필요합니다.

[마 13:11-17...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또한 바울이 로마에서 유대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도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행 28:23-28...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그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이러한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은 성경을 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요구되고 있고  또한 그러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70인 제자가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를 언급하십니다.

[눅 10:21-24...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에게 말씀하시면서 한결같이 이야기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들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들을 귀와 보는 눈과 깨닫는 마음이 없는 자는 복이 없는 자입니다. 정반대로 들을 귀와 보는 눈과 깨닫는 마음이 있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들려주며 무엇을 깨달으라 할까요? 무엇을 들어야 무엇을 보아야 무엇을 깨달아야 복이 있는 것일까요?

==2. 들어야 할 것

들어야할 것은 다른 것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제대로 들으면 됩니다.

[전 5:1...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히 3:16-4:2...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 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무엇을 들으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을 제대로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듣는 자들에게 다 복음입니다.  

모세와 함께 출애굽했던 사람들에게 주신 시내산 언약이 그들에게 복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의 발신자와 수신자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예수님의 소식은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문제는 이 복된 소식을 제대로 들어야합니다.  제대로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잘못 들으면 믿음이 없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그 사람에게 유익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은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3. 보아야 할 것

주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야 합니다.

[미 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생명의 길이 보여야 합니다.

[행 2:28....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이 세상의 만물을 보면서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롬 1:19-20...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성령님께서 오직(이것만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고전 2: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4. 깨달아야 할 것

자기의 허물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 19:12...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악인의 결국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악인 때문에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합니다.

[시 73:17...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악인)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주의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시 107:43...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시편107편에 소개된 하나님의 하신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실 일이 깨달아져야 합니다.

[단 9:1-2...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예레미야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세상이 망할 징조에 대해서 바로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마 24:15...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내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서 꼭 깨달아야합니다.

[롬 7: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에베소서를 읽으면서 바울이 깨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우리도 깨달아야합니다.

[엡 3:4...이것(에베소서)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예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우리에게 충만으로 경험되어집니다.

[엡 3:18-19...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복음을 듣고서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져야 합니다.

[골 1:6...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5. 글을 맺으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은혜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그 믿음 이전에 필요한 듣는 귀와 보는 눈과 깨닫는 마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 세가지에서 싹 트는 믿음 또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엡 2:8-13...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그저 주신 사랑의 은혜를 감사히 받고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그런 은혜를 주셨는지를 생각하면서 겸손히 그리고 선한 일에 힘쓰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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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9장의 내용은 1절의 말씀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다시 말해 신명기 29장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데스바네아에서 벌을 받을 때에 20세 미만이었던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 즉 신세대들과 모압 땅에서 세우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이 언약은 40년 전에 그들의 부모가 호렙산, 즉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과 내용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호렙산에서 맺은 언약을 모압에서 갱신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언약의 6대 구조 가운데 ‘언약 당사자이신 하나님께서 역사적으로 무슨 은혜를 베풀어 주셨길래 언약체결을 요구하시는가’와 같은 역사적 서문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 서문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 저러한 은혜를 주셨고, 그들이 이적과 기사를 목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기 원하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참으로 낙망되는 해석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4절) 

이것은 언약체결을 하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에 대해 고백하는 개인적인 느낌과 해석입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할 때, 말씀의 내용을 설명하고 적용을 해나가는 과정 중에 가끔 개인이 느끼는 느낌을 섞어서 이야기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설교를 듣는 분들이 다른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해도 이 부분만큼은 잘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그렇게 느꼈다는 점을 은연중에 동의하며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큰 은혜와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듣지 못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그와 같은 깨닫는 마음을 주시지 않은 것이로구나”하는 해석을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말씀은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깨닫는 마음을 주시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며 탄식합니다. 

모세는 신명기 30장 11, 13절을 통해서도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고 역설합니다. 모세는 행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받으며 살 수 있는 원리는 간단하고 쉬운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는 마음이 없고, 보는 눈이 없으며, 듣는 귀가 없다면 쉬운 진리도 알 수 없고,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어 그 진리를 실천하여 축복받는 삶을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1. 동일한 문제의 지속

이와 같은 문제는 모세 시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사야가 예언하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6:9).

또한 동일한 문제가 예수님의 공생애 시대에도 지속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막4:11-12).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외인들이 돌이켜 죄사함을 받을까봐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이 사실은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사함과 깨달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의 예수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수님과는 조금 다른 분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사도들이 살던 사도행전 시대에도 계속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가르칠 때 사람들이 도무지 믿지를 않자 바울은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행28:26-27)고 말합니다. 

사람이 들어도 알지 못하고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듣는 귀와 보는 눈을 주지 않으셔서일 수도 있고, 사람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닫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과 귀를 닫게 하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사람이 고침 받고, 죄사함 받고, 구원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예외 없이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D.L.무디식, 빌리 그레함식의 복음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수님은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구원 받지 못하도록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고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으셨다는 그 말씀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말씀일지도 모릅니다.

==2. 이 문제의 고통

사람이 깨닫거나 알지 못한다고 해서 무슨 큰 문제가 있느냐고, 혹은 무슨 고통이 따르겠느냐고 반문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 등 오감을 가지고 외부세계와 접촉합니다. 사람의 오감 가운데 하나라도 장애가 생기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감기 걸려서 코만 막혀도 냄새를 맡기가 힘들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장애인들도 가끔은 장애체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을 가리거나, 귀를 가리고 한 두 시간만 생활해 보세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편해서 살 수가 없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장애체험을 하고 나면 주어진 오감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어제 저는 수레바퀴 선교회를 이끄시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처음 뵙는 분인데 저를 소개하니까 대뜸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뭐가 고마우시냐고 물었더니  장애우들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들어줬다는 소문을 듣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이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까 장애우들에 대한 약간의 배려에도 매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어느 사회든지 선진국이 되려면 장애우에 대한 배려지수가 높아야 합니다. 장애우를 고려하지 못하는 사회는 후진국입니다. 장애우들을 배려해 줄 수 있는 마음과 물질의 여유가 없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멀쩡한 육체적인 오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육신의 눈은 떴지만 영의 눈은 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귀로는 모세의 말씀을 다 들었지만, 영의 귀로는 듣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오감은 멀쩡했지만 영의 오감이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사람의 육신에도 오감이 있듯이 영에도 오감이 있습니다.

영적인 오감에 관해 사람은 세 종류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영의 감각기관이 완전히 죽어 있는 불신자입니다. 불신자들은 아무리 지성이 뛰어나고 똑똑할지라도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습니다. 

성경말씀도 우스꽝스럽게 취급합니다. 영이 죽어서 영의 감각기관이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믿고 영이 살아나긴 했지만 영의 눈이 어두운 사람들입니다. 

영의 눈과 귀가 어두워 잘 보고 듣지 못합니다. 또 잘 깨닫지도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영적으로 어린 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영의 눈과 귀가 밝아 깨닫는 마음도 큰 사람들입니다. 

영이 죽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영의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밝게 뜨는 역사가 있기를.... 

육신의 오감이 멀쩡하다고 해도 영적인 오감이 죽어 있거나 기능이 약하면 영적인 세계를 올바로 감각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세계를 올바로 감각하지 못하면 영의 진리를 바르게 분별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시다. 바알과 아세라, 몰록과 같은 우상들을 가짜다. 우상을 따라가면 망한다. 하나님을 따라가라. 위급할 때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만 하나님께 와서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모든 것이 잘 될 때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따르라.” 

그러나 모세가 아무리 외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깐 사이에 우상을 만들고 따라갔습니다. 영의 감각기관이 아주 어둡거나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모세는 그들이 마귀의 유혹을 따라가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반복하여 가르쳤습니다.

자녀들은 듣기 싫을지 몰라도 부모들이 잔소리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자녀들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의 길로 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신명기에서 보듯이 끊임없이 잔소리를 계속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

거듭되는 모세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의 눈과 귀가 닫히고 깨닫는 마음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체험치 못한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께서 택하셨으며 40년 동안 날마다 하나님을 체험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같이 행했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보았고, 갈라진 홍해를 건너갔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홍해에 빠져죽는 것을 목격했고,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40년 동안 따라다녔습니다. 

비록 빵은 먹지 못했지만 반석에서 솟아나오는 생수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던 백성들이었습니다. 아마 세상 모든 백성들 가운데 이처럼 밝은 빛을 받은 백성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적 감각기관이 모두 죽어 버렸기 때문에 모세가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체 옆에 환한 빛을 비추거나 라디오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고 해도 시체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미 죽어서 빛과 소리를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빛을 주셨지만 시체처럼 그들의 영적인 눈이 감겼기 때문에 그 빛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영적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는 인간의 전적타락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면에서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사업을 잘 이끌어나가며 정치적으로 출세를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영적인 세계를 감각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빛을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둠을 택했다면 수긍이 가지만 이스라엘과 같이 큰 빛을 받고도 어둠을 택한 경우에는 그들의 영안이 멀고, 영적으로 죽게 되었다는 말 외에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게 은혜를 주시려면 주시고 말려면 마세요”라는 자세로 나오면 절대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영적으로 무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저는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기도할 때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교만하여 기도 하지 않고, 성경 읽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고꾸라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제가 영적으로 무능합니다. 저의 영안이 닫혔습니다. 저를 불쌍히 보시고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진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6절),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9절)고 선포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형통하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신인체하는 존재들, 잡신, 우상, 악신, 귀신들도 많지만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존재하시지만 한 분이신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만이 오직 참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를.. 

또한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 행복하고 형통하며 축복받는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합니다. 

“너희가 죄인이니 예수님을 믿어라. 예수님을 믿고 내가 너희에게 준 거룩한 법을 따라 살아라.” 그게 십계명입니다. 

부모를 학대하거나 살인하는 사람이 잘 될 수 없습니다. 간음하고 도적질하는 사람들의 가정이 행복하고 자녀들이 잘 되는 경우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분명하고 쉬운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입 안에도 있고 마음에도 있습니다. 머리로는 분명하게 압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닫지 못한다면 문제입니다. 

영의 감각기관이 약하거나 죽어버리면 아무리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설교도 많이 듣고 말씀도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 감각기관은 늘 소생되어야 합니다. 영의 감각기관이 어두우면 어두움에 방황하다가 결국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악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결국 파멸과 저주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감각기관이 죽어 있다 보니 가나안 땅에 살아도 전쟁과 기근이 그치지 않고 결국 포로가 되어 열방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4. 영적 감각기관의 소생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영의 눈을 뜰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9장에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침으로 진흙을 이겨서 소경의 눈에 바른 후, 실로암 못가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소경이 실로암 못가에서 눈을 씻자 갑자기 육신의 눈이 떠지고 빛이 감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이 놀라운 기적 앞에 깜짝 놀라며 예수님을 경외하기는커녕 안식일에 소경의 눈을 뜨게 했다는 사실로 예수님께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소경 되었던 사람이 깨달은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9:32-33). 소경의 고백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소경된 자가 자신들을 가르치려 한다며 도리어 눈뜬 이를 꾸짖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눈을 떠서 구원 받고 축복 받을 수 있다는 태도로 예수님께 맞서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눈이 감긴 사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영의 눈을 뜰 수 없습니다. 영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영의 눈이 어둡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 자기에게 죄가 있다고 자백하는 사람, 진리를 알지 못하므로 가르쳐 달라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아무리 은혜가 임한다고 해도 눈과 귀가 닫힌 사람들은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술주정뱅이에게 술 취했냐고 물어보면 대개는 취하지 않았다고 발뺌합니다. 도둑질 한 사람에게 물어봐도 자기는 도둑이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밉니다. 

재판 현장에 가보면 판사가 죄가 있느냐고 물어볼 때에 죄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입니다. 

죄가 있다고 고백하면 판사가 정상을 참작하여 형량을 줄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못 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눈을 뜨게 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문제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제자훈련을 많이 합니다. 목사들이 선생이 되어서 많은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제자훈련을 한다고 해도 지성에만 호소하면 깨달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우리의 영성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영적인 은혜를 받고 살 수 있습니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의 영적 감각기관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아무에게나 주시는 은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택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예수님은 염소들을 위해 죽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못 보면서도 본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겸손하게 고백하고 불쌍히 여겨달라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영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엘리사가 수종드는 게하시의 영안을 열어주었듯이 오늘 영안이 열리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 집사가 성령의 소리를 듣고 영의 귀를 열었듯이 영의 귀가 열리는 역사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바울이 깨달은 마음으로 가르쳤듯이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도 깨닫는 역사가 있게 되시기를... 

내가 눈을 떴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귀가 열렸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도 모르는 분들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냥 무조건 엎드려서 ‘하나님 은혜를 주십시오. 영안을 열어주십시오. 영적인 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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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9장 (개요)

본 장에 나오는 첫 말씀 “이들은 언약의 말씀이라”(1) 하는 것이 본 장의 내용이다.

1. 하나님께서 저들과 언약을 맺기 위해 저들에게 전해 준 말씀(2-8).

2. 그 언약의 말씀을 지키도록 하라는 엄숙한 명령(9).

3. 언약 내용의 발췌 부분(12, 13).

4. 언약을 맺은 자들의 명단 열거(10, 11, 14, 15).

5. 우상 숭배를 금하는 이 언약의 큰 의도를 괄호로 묶어서 알림(16, 17).

6. 죄악의 길에 서서 평안을 기대하려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두렵고 가중한가를 나타내는 아주 엄숙한 선언(18-28).

7. 숨겨진 일들과 나타난 일들 사이의 구별과 더불어 이 조약의 종결이 나와 있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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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회상해 보라(신 29:1-9)

그 언약 중 백성들이 자기들 몫으로 준행해야 할 명령들과 하나님 몫으로서(저들의 처신 여하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취시키실 약속들 및 위험의 경고는 이미 모세가 자세히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 전체적인 것을 요약하여 종합적 협약 문서처럼 말하고 있다. 

이전에 세웠던 언약이 새삼스레 언급되고 있으며 전과 같이 이번에도 모세가 그 중재자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세우신 언약이 이러하니라”(1절). 

모세 자신은 (비록 여수룬의 왕이었을망정)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가 아닌, 어떠한 언약도 그 스스로는 세울 수 없었던 것이다. 

언약의 조건을 결정하는 문제는 사역자들의 권한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그 언약에 날인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본문에 보면, “호렙에서 세우신 언약 외에”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언약의 내용은 비록 같은 것이었을지라도 여기서의 것은 새로운 공포와 비준이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에 살아 있던 몇몇 사람은 비록 소집될 수 있는 연령은 아니었을지라도, 호렙에서 세운 언약에 스스로 동의할 수 있는 연령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과 엄숙히 언약을 맺은 자들은 자기들이 선택한 것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그 변경을 원치 않는 자들처럼, 그 언약을 항상 새롭게 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거기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대다수가 새로운 세대였고 따라서 언약을 새로이 세울 수밖에 없었으니, 이는 언약의 자손들에게 언약을 새로 세워 줌이 온당한 연고다.

Ⅰ. 언약서는 낭송으로 시작하는 것이 통례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행하셨던 큰 이적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1. 그것은 하나님께서 진실로 저희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저들이 믿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 분이 더욱 많은 일을 앞으로도 계획치 않으셨더라면 저희를 위해 그토록 많은 일을 베풀어 주셨을 리가 만무하며, 그 분이 지금껏 행하신 모든 일은 더 많은 계획의 서론(말하자면), 혹은 서막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분은 지금까지 자기가 저들에게 행한 일 가운데서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고, 이것은 하나님이 저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이 함축성 있는 약속의 광대한 범위에 부합하는 어떤 큰 기대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했던 일을 그들이 고려함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요청이었다.

Ⅱ. 모세는 자기 말의 사실성을 증거하기 위해 저들 자신의 체험에 호소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2절). 

저들 자신의 지각(知覺)이 하나님께서 저들을 위해 큰 일들을 행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되며, 저들 자신의 이성은 이에 못지 않게 모세의 추론의 공정성을 입증해 주는 유능한 재판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9절).

Ⅲ. 모세는 그 일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는데, 이는 저들을 위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능력과 인자하심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1. 저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심(2, 3절). 

바로가 재앙을 받고 저들을 풀어 줄 수밖에 없었던 놀라운 이적과 기사들이 있으며, 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그 재앙으로부터 안전하게 구해 주실 것을 믿느냐 못 믿느냐 하는 시험을 받았던 것이다.

2. 광야를 통과하는 40년간의 저희들의 행적(5, 6절). 

저들은 광야에서 기적으로써 인도함 받고, 배불리 먹었고, 옷을 입었던 것이다. 

비록 광야의 길이 생소하며 전인미답의 지역이었을망정, 하나님께서 저들로 길을 잃지 않도록 지키셨던 것이다. 

그리고 (패트릭 주교가 관찰하는 대로) 하나님의 명령으로 저들이 막 출애굽할 준비를 갖추었을 때(출 12:11), 곧 유월절에 신었던 바로 그 신발이 해어지지 아니하고 가나안까지 오는 데 사용되었던 것이며, 저들이 비록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는 떡을 먹지 못한 대신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나는 생수를 마셨을지라도, 저들은 강하고 담대하며 힘있는 자들이어서 전쟁에 용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들은 이 기사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아가서 그 하나님이 바로 자기들의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3. 그 즈음 저들이 시혼과 옥에게서 쟁취했던 승리와 저들이 소유하던 좋은 땅들(7, 8절). 

이전의 자비와 새로운 자비가 다 순종에 대한 자극으로서 우리에게 활용되어야 한다.

Ⅳ. 이런 기억들에서 추측할 수 있는 사실들을 통하여,

1. 모세는 저들의 우매함을 한탄한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4절). 

그렇다고 해서, 마치 저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자세를 완전히 갖추고 그 은혜를 갈구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시지 않은 양, 저들의 무분별함과 우매함과 믿음 없음이 하나님의 책임 때문이라는 것은 아니니, 오히려 그 죄는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여호와는 모든 영들의 아버지시며, 너희들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이시고, 너희에게 풍부한 자비를 항상 베풀어 오셨던 주(主)시며, 이 선물과 아울러 다른 모든 은사를 면류관으로 주셨던 분이 분명하므로, 만약 너희가 자신의 완고함과 불의로 말미암아 그 분의 자비로운 뜻을 꺾지 아니하며 그 분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아니하였다면, 그 분이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을 너희에게 주었으리라”는 뜻이다.

(1) 보는 눈과 듣는 귀와 이해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다. 그런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2) 하나님은 당신이 (특별한) 은총을 주시지 않은 많은 자들에게도 음식과 의복뿐만 아니라 부와 큰 재산(일반 은총)까지도 주신다. 

많은 자들이 그 주시는 자를 깨닫는 마음이 없고 그 은사들의 참의미와 용도를 깨닫는 마음도 없으면서 천부의 선물을 즐기고 있다.

(3) 하나님이 다른 여러 가지 일로 우리에게 선을 베풀기를 기꺼워하심은, 우리가 은사 중 가장 귀한 것인 은혜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자신의 잘못이지 하나님의 과오가 아니라는 데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 분은 우리를 모으고자 하시되 우리가 원치 않았던 것이다.

2. 모세는 저들에게 순종하기를 명한다. “그런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9절). 

우리는 의무와 신실함뿐만 아니라 고마움과 관심을 가지고 “언약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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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신된 언약(신 29:10-29)

여기에 있는 여러 문장의 길이와 그 표현의 풍부함 및 신랄함으로 보건대, 모세는 자기 담화의 종결이 다가옴에 따라 자기가 말한 것들이 이 무사려한 백성의 마음에 깊이 인상 지워지기를 열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들을 하나님과 의무에 더 단단히 잡아매기 위해, 모세는 아주 장엄한 표현을 해 가면서(출 24:42 이하에서 사용되었던 외부적 의식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하나님과 저들 사이의 (말하자면) 거래, 즉 하나님은 저들을 잊지 아니할 것이며 저들은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영원한 언약을 체결하고 있다.

그는 저들의 명백한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 앞에 그 문제를 명백히 제시하고는 하나님과 저들 자신의 양심에 맡겨 버리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Ⅰ. 언약 당사자들.

1. 저들이 언약을 맺을 자는 저들의 하나님 여호와시다(12절). 

저들은 그 분께 자기들의 전 존재를 바치며, 또 하나님과 저들 자신을 결합시켜야 했다. 

“그것은 그 분의 맹세다. 그 분이 그 언약을 기초하셨으며 정하셨다. 그 분은 네가 그것에 동의하기를 구하고 계시며, 그 분이 네게 맹세하셨은즉 너도 그 분께 맹세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언약을 맺고 있는 분이 얼마나 위대하신 하나님이며, 우리를 온전히 알고 계신 분인 동시에 우리를 절대적으로 통치하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있어 우리로 하여금 신실하고 진지하며 겸손한 동시에 경건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 저들 모두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야 했다. 

저들은 거기에 참예하도록 모두 소집되었다(2절). 

거기에 따라서 저들은 모두 모였고, 한 무리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듣게 되는데(10절), 저들은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에 동참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1) 비록 저들의 큰 자나 지파의 두령이나 장로들이나 유사까지라도 저들의 목에 이 언약의 멍에를 메는 것이 자기 명예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하거나 자기 권세를 감소시키는 일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저들은 오히려 자기 아랫사람에게 솔선수범하기 위해 먼저 이 언약 속으로 들어와야 했던 것이다.

(2) 남자들뿐만 아니라 저들의 아내나 자녀들까지도 이 언약 속에 들어가야 했으니, 비록 계수되거나 점호되지 않았을지라도, 저들은 모두 여호와 앞에 서야 했다(11절). 

비록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언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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