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신32.모세의 노래_TUQ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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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2장  [456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309장 목마른 내 영혼] [405.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기업, 할당 몫, 몫, 분깃, 영토(토지)...ql,je(2506, 헬레크) 

헬레크(명남)는 할라크(ql'j; , 2505)에서 유래했으며, '할당 몫, 몫, 분깃, 영토'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68회 나온다.

---헬레크는 승리자들 가운데 분배되는 전리품(창 14:24) 혹은 제사장들 가운데 나눠주는 제물(레 6:10)의 몫일 때 이 단어는 <그가 누릴 권한으로서>'몫' lot(고랄)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

---더욱 일반적인 것으로 이 단어는 <분배하여 주셔서 누리게 하신 구역, 지계표로 정하려 주신> 유업의 몫을 가리킨다. 

구약성경 초기에 이 단어는,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의 모든 지파에게 주어진 땅의 몫이라는 전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용법에서 이 용어는 "유업" inheritance(마할라)의 동의어이다. 

"그 땅이 하나님의 유업"이라는 원리에서, 그 땅의 몫은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줄 몫에 의하여 나타나는 그 "땅의 몫"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정된 "하나님의 땅", 즉 요단 동쪽밖에 살고 있는 자들(수 22장, 참조: 겔 48장)은 "여호와께서 분의"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고 생각한다(수 22:25-27, 슥 2:16).>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 약속의 일부인 그 땅은 저들의 소유로(미 2:4) 그의 백성들에게 주어졌으며, 하나님의 의로운 몫으로 저들에게 주셨다(느 2:20).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쳐진 아론과 레위인들은 이와 같은 땅의 분깃이 없었다. 저들에게는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다(신 10:9, 민 18:20). 

메시야 시 16:5에서 그 진술을 참조하라: 즉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고랄)을 지키시나이다". 

이러한 특별한 관계는 저들이 스스로 일하였던 그 어떤 땅으로부터가 아니라 희생제물로부터 성전 직무자의 생계유지를 위한 배려를 낳았다.

하나님과 백성들과의 이와 같은 관계는 다음과 같은 영적인 개념으로 정의되었다. 즉 여호와는 그들의 피난처요(시 142:5, H6), 공급원이 되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내 분깃이시라"(시 73:26),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분깃이 되신다"(신 7:9). 레위인들과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여기에서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를 보장한다는 모든 온전하고 완전한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G. von Rad, The Problem of the Hexateuch, 1966, p. 263).

이 단어의 영적 개념을 고려해 볼 때 이 단어가 이스라엘의 인격적 이름들, 예를 들어 힐기아에서 일반적 요소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것이 아니다.(참조: D. J. WISEMAN;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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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사44:2) 

여수룬은 히브리어로 사랑을 받는 자,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붙여 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여수룬이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하셨습니다. 모태에서 친히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여수룬입니다.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사44:3) 

여수룬은 축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축복을 당대에서 자손에게 계속 흐르게 하시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대대로 흘러 넘치는 은혜가 여수룬에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가 여수룬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에게 여수룬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신33:26)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나는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여수룬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는 여수룬으로, 오신 후에는 그리스도인으로 그 이름을 축복하셨습니다. 여수룬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결코 작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붙잡을 때, 반드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수룬입니다.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신32:15)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고난의 시간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다가, 하나님께서 건져내시자, 하나님을 발로 차 버렸던 여수룬이었습니다. 

바로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기에, 오늘도 무릎 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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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비전...천국은 왜 침노하는 자들의 것인가.. ..구원은 우리들 각자가 이루어 나가야 할 몫이 있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태복음 11:12).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이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 편에서는 구원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우리에게 구원을 위해서 더 적극적인 자세로 노력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고, 빼앗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 각자가 이루어 나가야 할 몫이 있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하나님께만 구원을 의지하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노심초사 여러 방면으로 역사하고 계심이 분명하기에 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열심에 맞추어서 더 열심히 분발하고 뛰어 가는 것이 당연하다.

   사도 바울이 달려갈 길을 달려간다고 했던 것처럼 천국 들어가기 위해 우리도 달려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브리서 4:11).

   성경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에 대해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잘못된 구원론자들은 우리 인간에게 선을 행할 의지는 완전히 죽어 버렸고 무능력 상태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구원의 최종적인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그 과정에서 <주 보시기에 올바르게, Q의 바램따라, 그분의 원하신 뜻을 참되게 추구하여 알고 이해하며 깨닫고 결단하여 순종-동행함으로써 그분의 거처를 이루어 나감에 있어서> 우리의 자유의지는 필수적이다. 우리의 의지의 노력이 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바르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 같으면 우리에게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디모데전서 6:11-12). 

사도행전에서는 구원 얻은 성도들이 또한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가는지에 대해 잘 나와 있다. 물론 구원은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이 시켜 주신 것이요, 그렇게 구원 받은 성도들은 그 감격과 기쁨과 은혜를 가지고 지금 맛보며 누리는 바 [그리스도 그분 자신인] 천국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새 예루살렘, 곧 하늘의 시온성인 그분의 거처 이루는 그리스도의 지체요 그분처럼 신령한 산 돌로서 그분의 몸 이룸에 있어서 합당한 신령한 산돌 그리스도의 판박이 됨에 이르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Q이 예비해두신만큼 극도로 성장성ㅅ훅하고 깎여져 나감, 이것을  얻기 위해> 더욱 보혈을 의지하여 완전하신 그분의 사랑-믿음을 공급 받고 그리스도 안에 거함-동거,동주,동행-순종 통해 그분의 사랑-기쁨-평강 안에 하나됨으로 사는 삶] 이룸의 온전-완전함에 이르도록 그분께 영러드리며 내려 놓고 내어-비워드림으로  <주로 참 주인이시요 머리되시도록> 날마다 그날 부어주시는 은혜의 분량따라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하늘에서 이미 주 품에 인긴 성도들도 이것을 응원하고 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 2:43-47).

   이러한 열심과 헌신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의무사항도 아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 교회에 가지고 올 의무도 없고, 날마다 성전에 모일 필요도 없었지만 이렇게 자원하여 행한까닭것은 무엇일까?  그분의 백성-자녀-권속-짝 삼아 주심의, 구원받은 감격과 기쁨 때문이다. 이 기쁨을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도 천국을 <기억하라!! 천국은 참되게 영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 자신이시다!!...그분을  Q이 예비하신 만큼 온전히>차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성령, 그리스도의 영, 곧 그리스도, TUQ 자신>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7-11).

   천국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제로 이끌고 가지는 않으시는데, 그 길은 우리 각자가 선택해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열심을 가지고 그 길을 선택해서 가지 않으면 <구원 받았다 해도 Q이 예비해 두신 참된 분량으로서의>천국에 이를 수 없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인도해 주시고 천국까지 가게 하신다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복음 7:13-14).

   여기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 결정하는 그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좁은 문으로 인도해 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매순간마다, 매 호흡마다 영생 안으로 더 나아갈지니!!> 좁은 문을 선택해야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요, 천국은 하나님에 의해 수동적으로 취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능동적으로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그대가 그 도상에 있음을 진실로 아는 이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바는, 오늘 그대가 주님과 동행-순종함 안에서 그리스도로 조성되는 만큼 <주님 오늘 오신다면> 바로 그 정도까지만 <하늘의 시온성, 새 예루살렘에서도> 그리스도를 얻고 누리게 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직 그대의 영 안에 내주하여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머리시요 주인이신 그분과의 온전한 교통(교제, 사귐) 안에서 그분이 이미 이루신 모든 성취와 그분의 예비해 두신 모든 풍성-부요-충만을 공급 받으면서 인도-보호-양육-이끄심 받으며 주와 동행함의 순종의 걸음을 온전히 이루도록 하자..



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아잔 = 듣다)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이므라, 에므라 = 말, 발언, 연설) 들을지어다(샤마 = 경청-순종하다 )

2.  내 교훈은(레카흐=진리, 곧 참 교의<도리>를 이치대로 풀어 진리의 참 지식을 참되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기억하고 명심하여 마음에 새김으로써 언제든지 그 길을 걷도록 베풀고 설득함, 그 능력)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고델=장엄-위대-광대)을 돌릴지어다

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타밈=완전complete,온전-무결whole, 순전-건전한sound, 시종일관, 진실과 사실에 일치됨-정직-정당-옳음rightous [죽어버리고 딱딱한 완전주의가 결코 아니며, 모든 가능성은 있으되, 주의 어떠하심따라 그분의 믿음으로 나아감]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미쉬파트 : 각 개인마다 주신 평등한 인권들을 분별-시비를 가리고 다스리시는 Q의 절대적 주권/권위의 기준)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찻디크=체다카) 바르시도다(야사르=올곧은, 정직)

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8.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  여호와의 분깃은(=헬레크)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유업)이로다

.....사무엘의.마음은(삼상12:22,23) 일편단심/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선민(=하나님의 귀와 마음에 보배로운 보물, 그분의 특별하고도 개인적인 소유물)을 위하며 돌봄에 있었음

.....[((여호와의 분깃은 야곱, 그가 택하신 기업, 자기 백성))신32:9...*9.헬레크 예호와 에트 암 헤벨 나할라 =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For the LORD'S portion is His people; Jacob is the allotment of His inheritance.]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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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1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22.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23.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24.  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25.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로다

26.  내가 그들을 흩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으나

27.  혹시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

28.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29.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

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

31.  진실로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아니하니 우리의 원수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다

32.  이는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독이 든 포도이니 그 송이는 쓰며

33.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이라

34.  이것이 내게 쌓여 있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35.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36.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37.  또한 그가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이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38.  그들의 제물의 기름을 먹고 그들의 전제의 제물인 포도주를 마시던 자들이 일어나 너희를 돕게 하고 너희를 위해 피난처가 되게 하라

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40.  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

41.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42.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

43.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44.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45.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46.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48.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9.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50.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52.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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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룬]]

여수룬 Jeshurun이란 ‘이스라엘’ 혹 ‘이스라엘 백성 the people of Israel’의 애칭 혹 별명(nick name). 야곱이 가나안 땅에 돌아올 때 얍복강가에서 밤새 천사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가 위골되었다. 그래도 야곱은 천사를 놓지 아니하며 복을 빌어달라고 애원했을 때,  천사가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니 ‘야곱(발꿈치를 잡은 자이란 뜻)입니다’고 했다. 이에 천사가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하나님이 싸우셔서 이기게 하심이란 뜻)이라 하라. 이는 네가 왕자로서[킹제임스역,  as a prince]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모세는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 애칭함으로 ‘바르게 살아 가는 자’를 희망하고 있다.여수룬의 어근이 ‘정직한 upright, 의로운 righteous’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이스라엘 백성의 정직하고 의로운 모습을 뜻한다. 그렇지 못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모세의 노래와 축복문에 나온다.

[모세의 노래] 신 32: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모세의 축복] 신 33:5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한 때에로다. 신 33: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또한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에 관해 언급할 때 사용된다.

(이사야 44;2) 사 44:2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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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룬의 왕(신 33:1-5)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수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5절). 

<여수룬>이란 호칭이 무슨 뜻인지를 확실히 알기란 쉽지 않다. 성경에도 이 말이 단 4번만 나온다(신 32:15, 33:5, 26, 사 44:2). 

<여수룬>은 히브리어 <예수룬>을 단순히 음역한 것인데,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은 이 말을 <사랑 받은 자, 옳은 자, 정직한 자>로 옮겼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애칭인 <여수룬>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복된 호칭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대에는 우리 믿는 자들이 다 <여수룬>이다. 그리고 <여수룬의 왕>은 주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수룬의 왕>으로 모시고 살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26절).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사 44:2).

그렇다. 행복한 사람이 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29절).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사람의 삶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택하신 백성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 많은 재물, 더 높은 지위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어리석다. 

주님을 여수룬의 진정한 왕으로 모신 자만이 행복하다는 행복 방정식을 굳게 신뢰하고 이를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만이 도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3절).

-본문인 신명기 33장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일까?

-당신은 자신이 이 시대의 여수룬이고, 주님이야말로 그 여수룬의 왕이심을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가?

-<여수룬>이란 호칭이 나오는 구약성경 네 곳의 말씀을 직접 다 찾아 정독해 보시라.

주님, 당신이 택하신 백성들이야말로 다 <여수룬>입니다. <너 같이 구원을 얻은 백성이 누구냐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 33:29)고 하실 만큼 많은 은혜와 축복을 누린 택하신 자들입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여수룬의 왕>이신 주님 앞에 더욱 고개 숙이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며 그분의 뜻을 받들며 사는 백성들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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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신33장은 모세가 죽기 직전에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한 내용입니다. 

특히 5절과 26절에서는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29절에서는 “행운이 열렸구나. 너, 이스라엘아, 너 같은 행운아가 어디 또 있겠느냐?”(공동번역)라며, 하나님께서 "의롭게 만들어 주신 그대로", "주 앞에서 의롭게  정직하게 사는 <=야사르, 올곧고 정직한> 사랑 받는 이스라엘 백성이야말로 [여수룬]이요 최고 ‘행복자’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 모세는 임종 직전 ‘여수룬의 축복’을 선포했습니다.

‘여수룬’은 ‘곧다, 바르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솨르’에서 유래되어 ‘의로운 자, 올바른 자, 곧게 선 자’라는 뜻이며, 70인역에는 ‘사랑을 받는 자’로 번역돼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정답게 부르는 애칭으로, 누가 뭐라고 말해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토라(율법)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열방 가운데 가장 옳은 자로 인정해 주신다는 뜻입니다(신33:3). 

하나님은 이 세상에 보낸 사람 가운데 특별히 모세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나의 종, 여호와의 종, 하나님의 사람’ 등의 직함이 붙어 있습니다(신33:1, 5). 

모세는 신구약 성경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과 대면하였던 자로, 원어에는 얼굴과 얼굴(파님 엘 파님), 입과 입(페 엘 페)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눴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출33:11, 34:10, 민12:8). 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목전에서 가르치고 지도하였는데, 그들의 불신의 소리를 막기 위해 백성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였을 때 비로소 큰 권능과 위엄을 행했습니다(신23:12).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와 스데반은 신18:15-18에서 모세가 예언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가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행3:22, 7:37). 모세는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 전달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신임을 받아, 임종을 앞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행복자 ‘여수룬’이라 축복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2. 여수룬의 행복은 하나님의 먼저 찾아오심에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과거 이스라엘의 행복이요, 오늘날 우리 교회의 행복입니다. 여수룬의 행복이 되신 하나님은 ‘오시는 하나님’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사람에게 먼저 찾아오십니다.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시내(시내산)에서 오시고”라고 말씀하였는데, ‘오시고’는 완료 진행형으로, 지난날 모세에게 오신 하나님이 지금도 계속해서 모세와 그 백성을 향해 찾아오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지금도 계속해서 은혜와 진리로,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에 오십니다. 우리에게 ‘여수룬’이라는 이름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전 세계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와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낳아 준 부모가 우리를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잊지 않으시니(사49:15), 우리가 얼마나 행복자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행복 역시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결과, 열국의 아버지가 되었고(창17:5, 느9:7), 이삭과 야곱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신 결과, 인생 여로에서 예기치 못한 축복의 샘물을 발견하여, 그 곳에서 터진 생수로 오늘날까지 그들의 자손들까지 목마름이 없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삶의 경지를 체험하고 조상으로서 후손들에게 떳떳하였으며, 후손들 또한 자기 조상들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 모세를 찾아오신 결과,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위대한 영도자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오셔서 말씀(율법)을 주셨습니다(출19:16).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찾아오신 것 자체가 그들이 행복자인 이유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는 궁극적 목적은 「인류의 영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과 은혜, 진리 곧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오셨다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이 인생을 찾아오신다는 기록이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계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려 주십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自存者) 여호와께서 자기 스스로 그들에게 나타내심을 체험했습니다. 

이렇게 말씀, 은혜, 기사이적 등으로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는 궁극적 목적은 바로 인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고 숨어 있는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하고 먼저 찾아오셔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라는 구원의 방도를 계시해 주셨습니다(창3:9,15). 

그 후 아브라함을 찾아오셨고(창12:1-3), 그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제사장을 통해 우림과 둠밈으로(출28:30), 수많은 선지자, 예언자의 입을 통해 말씀으로 찾아오셨으며, 계시의 최고 절정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시의 방편은,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시다가 이 모든 마지막 날에 말씀이 육신이 돼서 은혜와 진리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말씀하신 것입니다(히1:1-2, 요1:14).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 계시하신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로 아들 예수를 죽이시기까지 하면서 인류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입니다(요3:16, 롬5:8).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은 ‘영생’ 하나뿐이라고 말씀했습니다(요일2:25). 이러한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 구속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요일4:19). 

예수님 이후 지금까지 약 2천 년 동안은 보혜사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돕고 보호해 주고 계십니다(요15:26, 16:7). 

오순절 날 성령의 역사로 초대교회가 처음 세워졌으며(행2장), 행13장의 안디옥 교회도 성령이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므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제 분명 마지막 때 예수께서 우리를 다시 찾아오셔서, 세상을 새롭게 하심으로 아담이 죄 짓기 전 창조 본연의 세계를 회복시키시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계21:5). 

결론 : 우리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 비밀 곧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열방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찾아오셔서 의로운 자 ‘여수룬’, ‘행복자’로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어떤 환란과 고통 속에서도 복음을 힘차게 증거하는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 되시기를...(골1:25-27, 갈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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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야웨...hwhy(3068, 예호와) 

예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고유명사, '여호와, 야훼'로 음역.  "여호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명칭은 본래 히브리어 4자음 문자 '요드, 헤, 와우, 헤(YHWH)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신성 4문자(Tetragammaton)는 하나님의 인격적 이름으로 성경에서 창 2:4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구약성경을 일관해서 총 6,000여회(cf. BDB) 나타난다.

이 하나님의 이름은 한글 번역본의 개역에서 "여호와", 공동번역에서 "야훼", 영역본에 Jehovah 라고 음역하고 있지만 그 정확한 발음을 알 수가 없다.  중세 어느 때에 그 정확한 발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신성 4문자에 대한 정확한 발음과 기원 및 의미는 상당한 논의의 주제가 되어왔다(Freedman. TDNT).

1. YHWH의 발음과 금기

(1)  마소라 본문에서 YHWH는 영속적 케레(qere perpetuum)의 명칭. 

하나님의 이름을 구성하는 이 신성 4문자는 너무 거룩하므로, 유대인들은 관습적으로 그 이름을 발음하지 않았다. 사본 필사자들이 신성 4문자를 기록할 때는 매번 완전히 목욕을 하고 완전히 옷을 갈아 입었으며, 그 문자들을 기록하는데 사용한 붓을 부러뜨렸다. 감히 입으로 말하기가 황송한 그 이름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구약성경  시대 이후(B.C. 3세기 경부터),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할 때, 또는 읽는 자들이 성경에서 그 이름을 볼 때마다 명사 아도나이(adonay, 나의 주님)로 발음했다.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문자적으로, 헛되이, 경솔히) 일컫지 말라”는 계명과 관련된 것이다.

그 후에 마소라 학자들이 자음으로만 기록되어 있는 구약 본문에 모음을 삽입할 때 아도나이(adonay)를 나타내는 마소라 모음을 신성 4문자 YHWH의 모음으로 첨가했다(C. Brown, TDNT). 그렇다면 야호와(yahowah)로 발음 표기되어야 하는데 예호와(yehowah)로 발음 표기되어 있다. 이것은 첫 음절에 a 모음을 가지면 그들이 피해야 하는 바로 그 금기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언어 구조상 가장 특색이 없는 e를 선택하여 예호와(yehowah)로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신성 4문자의 첫 음절이 e 혹은 이와 유사한 모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직접적 증거가 된다(C. H. Gordon, Vgaritic TextBook, Anor, 38, 1965; R. Kittel, "Yahweh", Schaff-Herzog).

(2)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 예호와(yehowah)와 합성된 인명(人名)을 살펴보면 두 가지 어형을 가지고 있는데 요­(yo-)와 예호­(yeho-)이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 주신다'를 의미하는 yonatan(요나탄, 삼상13:3)과 yehonatan(예호나탄, 삼상18:1)이다.

그리고 yehosua(예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칭호는 하나님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이름이다. 

세칼(M. H. Segal)은 이 호칭이 일찍부터 존재했다는 것은  YHWH라는 명칭이 모세에게 계시되기 전에 이미 알려졌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로 보았다. 

보다 긴 어형이 보다 짧은 어형보다 더 이른 시대에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보다 긴 어형이 분명히 본래의 어형이다(G.J. Botterweck의TDOT).

그리고 야-(ya-)나 야호-(yaho-)로 부르지 않고 요-(yo-)나 예호­(yeho-)라고 부른 것은 야-(ya-)나 야호-(yaho-)가 금기가 되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

어떤 인명의 끝 부분에서 신성 4문자는 역시 두 가지 어형 형태를 가지는데 '-yahu(-야후)와 -yah(­야)'이다. 

예를 들면‘나의 왕은 여호와이시다’를 의미하는 malkiyyahu(말키야후)와 malkiyyah/ya(말키야)이며, 여기서도 보다 긴 어형 ­야후가 우선이다. ­

야후나 ­야는 첫음절 이외에는 금기가 되지 않으므로 본래의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다.

구약시대 말기(주전 5세기)의 엘레판틴 파피루스(Elephantine papri)의 더 짧은 이름 YHW는 -야후(shemayahu=셰마야후 같은 이름에서 처럼)나 야호-(Jehozadek=예호체닥 같은 이름에서 처럼)로 읽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야호(yho)라는 발음은 B. C. 1, 2세기 쿰란의 헬라어 단편들과 1세기의 영지주의 문서에서 발견된 헬라어형 iao(야오)에 의해 확증된다.

2. YHWH의 어원 및 의미와 보다 정확한 발음

(1)  어떤 학자들은 이 이름을 달에 대한 숭배와 관련된 감탄의 소리로 간주되고 있는 원시적인 어형 야(Yah)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본다(참조, G. R. Driver, ZAW, 46, 1928). 그래서 그 이름이 ‘오 그 분’을 의미하는 야­후와(Ya -huwa)에서 유래되었다고 암시하는 학자들도 있다(참조, M. Buder, Moses, 「1946」1958. 49f,: S. Mowinckel, "The Name of the God of Moses").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거부되었다. 그 이유는 그 이름을 감탄사의 소리로 간주하게 되면 신앙이 언제나 그 이름에 기초를 두어 왔다는 종교적 내용과 그 이름에 부수되는 계시적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참조, E. Jacob, Theology of Old Testament).

(2)  보다 적절한 해석은 “있다, 존재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haya(하야)와, 그리고 그 동의어 hawa(하와)와 관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출애굽기 3:14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ehyeh aser ehyeh) 스스로 있는 자(ehyeh)가 나를 보내셨다 하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하나님 여호와( YHWH)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효니라”고 말씀하셨다.

R. de Vaux는 에흐혜 아셰르 에흐혜라는 문구의 번역과 의미에 대해서 가장 좋은 번역문은  "I am He who Exists"(나는 존재하는 자[그]이다)라고 주장한다.

NASB, NRSV는 "I AM WHO I AM"으로 번역했다.  이 문구는 그 의미에 있어서 초시간적(omnitemporal)이다. '나는 이미 존재하였고, 이제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자, 곧 영원히 존재하는 자이다' 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이름 에흐예(ehyeh)는 칼 미완료 1인칭 단수로 “나는 있다”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 

야훼/여호와라는 이름은 사람이 그를 3인칭으로 말할 때 생긴다.

따라서 하야(haya)의 미완료 3인칭(히필형)은 야흐예 또는 야혜(yahyeh)이며, 그 동의어 하와(hawa)의 미완료 3인칭(히필형)은 야흐웨 또는 야훼(yahweh)이다. 

여기서 발음상 두 경우에 유사하지만 야훼가 신성 4문자 와 더 근사하다.

혹자는 YHWH가 동사 하와(hawa)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모세 시대에 하와(hawa)가 발음되었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어떤 기원이 불분명한 고대의 단어라고 제시하지만 우리는 출애굽기 3장 내용과  YHWH 를 연관시켜 연구해 본 바 hawa(하와)와  YHWH가 서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N. Walker 등은‘있지도 않은 히필형(사역형)을 만들어 낸다고 비난하지만 W. F. Albright, D. N. Frcedman 등 여러 학자들은 히필형이 남서 셈어에서 알려 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이었으리라고 시사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인 신성 4문자 YHWH는 하와(hawa)의 미완료 야흐웨(yahweh, 보통 야훼로 발음함)와  YHWH의 후기 표기인 헬라어 야웨(iaoue)나 야베(iabe)에서 볼 때, 원래의 발음이 YaHWeH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데오도레토스(4세기)는 사마리아인들이 신성 4문자를 iabe(야베)로 발음했다고 말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3세기 초)는 iaoue(야웨)로 발음했다.

YHWH의 셋째 문자인 와우(w)를 사마리아인들은 b(ㅂ)로 발음하고 클레멘트는 ou(우)로 발음한 것이다.

(3)  남부 가나안 언어들(히브리어, 모압어)이 y는 i, w는 u, h는 e, a로 발음되었다고 본다면  YHWH는 iaue(야웨)로 발음될 수 있다(여러 가지 발음이 제시되고 있을지라도). 이 음역은 앞에서 살펴본 바, 후기 헬라어 표기인 iaoue(야웨),  iabe(야베, b를 u로 발음할 때 iaue[야웨〕가 된다)와 일치하며, hawa(하와)의 미완료 3인칭 히필형 yahweh(야흐웨, 야훼)와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YHWH의 발음은 야웨(yahweh)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3. YHWH의 번역들

(1)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하나님의 이름  YHWH는 마소라 본문에서 금기 때문에 예호와(yehowah)로 나타난다. 

우리가 지금 일반적으로 공인하고 있는 70인역본도 이 이름을 유대인들의 읽기(케팁→케레)를 따라 '퀴리오스'로 번역했다.

RSV와 다른 역본들도 이 이름이 본문에 나올 때는 언제나 주(LORD)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기록함으로서 이 관계를 따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라틴어 성경도 도미누스(Dominus:주 Lord)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세계의 거의 모든 성경 번역본들(극소수를 제외하고)은 '주' 라는 말을 사용하며, 새번역 표준판도 '주' 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야훼란 이름을 세계의 모든 성경에서 제외시키는 무서운 음모라고 할 수 있다.))

((70인역본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70인역본의 한 사본 단편들에는 헬라어 본문에 히브리어 문자로 쓰여진 신성 4문자 YHWH가 등장한다. 이 관습은 주후 1세기의 후기 유대인 구약성경 역자들에 의하여 실행되었다. 쿰란에서 발견된 70인역본의 한 사본에는 심지어 신성 4문자가 IAW로 번역되어 있다.

이러한 발견들은 70인역본의 번역자들이 신성 4문자(YHWH)를 '퀴리오스'로 번역했다고 하는 생각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70인역본의 본문에 있는 신성 4문자를 철저하게 퀴리오스로 대치시킨 것이 주로 기독교인 서기관들의 짓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해 준다(P. E. Kahle, H. Bietenhard).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70인역본으로 공인하고 있는 70인역본은 본래의 70인역본을 변개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렇다면 이 70인역본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70인역본과 다른 길로 행하는 것이 된다.))

(2)  그리고 예호바(Jehovah)라는 어형은 마소라 본문의 표기에 근거하여 16세기에 통용되었으며, 갈라티누스(P. Galatinus)의 라틴어 역본에서는 iehoua(예호와)라는 어형으로 나온다(De Arcanis Cath, Veritatis, 1516, 11).

1530년에 틴데일(Tyndale)은 출애굽기 6:3을 번역할 때 Jehouah(예호와)를 사용했다. 그 후 Jehovah는 표준 철자가 되었다(C.Broun:DNTT). 따라서 미국표준역성경(ASV)과 신세계번역본(NWT)는 Jehovah, 한글 개역은“여호와”로 번역했으며, KJV는 일곱개의 구절, 즉 그 이름이 특별히 강조되거나(출 6:3; 시 83:18; 사 12:2; 26:4), 다른 요소와 결합된 구절(창 22:14; 출 17:15; 삿 6:24)에서 Jehovah로 번역했다.

그러나 "Jehovah"나 "여호와" 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YHWH라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바른 음역이라고 할 수 없으며, yahweh가 더 바른 음역이다. 

예루살렘성경과 공동번역은 야훼로 번역했다.

4. YHWH의 이름의 중요성

이름은 신이든 사람이든 그 인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존재의 이름을 아는 자는 누구든지 그 이름에 관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자와 매우 밀접히 결합되어 그의 본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능력이다.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다만 표상 명칭이나 특정인의 인격과 다른 사람의 인격과를 구분짓는 이상으로 그 인격의 전존재성과 본질성 그 자체와 동일시 하고자 했다.

(1)  구약 종교에 있어서 신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와의 교제(혹은 상대)를 위해 특별히 중요한 것이다.

신을 영화롭게 하고 신의 도움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은 신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야곱은 그와 씨름한 강력한 존재에게(창 32:30), 또한 마노아는 신비한 신적 사자에게(삿 13:17이하), 그들의 이름을 알기 위해 물었다.

그러나 구약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은 친히 그 이름을 계시로 알리셨다(창 17:1; 출 3:14; 6:2). 하나님은 모세에게“나는 여호와(YHWH, 야훼)로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이름 중에 여호와의 이름이 가장 의의가 깊고 중요하다. 성경 계시의 가장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격적인 이름을 가지셨고 그 이름에 의하여 그를 부를 수 있으며 또 불러야 한다. 지정된 전에서 여호와께 호소할 때 그는 가까이 오셔서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신다.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심지어 왕까지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한다(민 6:24­27; 신 10:8; 삼하 6:18).

(2)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여호와를 상대하며 그의 임재를 확보할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답을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시지만 그러나 그는 땅에 그의“이름”이 거할 장소를 선택하셨다(신 12:11; 14:23; 참조:삼하 7:13; 왕상 3:2; 5:17). 

그의 이름이 성전에 거한다는 점에서 여호와의 임재, 그 자체가 보증된다(왕상 8:13이하). 여호와의 이름은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권성을 가진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이 그 이름으로 기쁨을 누리리라'(시5:11; 7:17; 9:2, 10; 18:49 등등)라고 찬양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있어 하나님 예배는 바로 그대로 그 성호를 앙청하고 응답하는 행위로써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그 이름의 실체이신 주권 앞에 완전한 헌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 자체의 능력있고 독립된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그의 이름이 여호와 그 자신과 여전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 이름 자체의 능력있는 힘을 통하여 경건한 자들은 여호와의 보호와 도움을 경험한다.(참조:잠 18:10; 말 1 :11; 시 54:6).

(3)  여호와의 이름은 때때로 여호와에 대한“찬양”, 여호와의“영광”이란 의미로 사용된다(사 26:8; 55:13; 시 41:10)."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혹은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 15:3; 사 51:15; 렘 10:16; 암 4:13; 시 23:3)와 같은 표현상의 변화가 있어도 같은 방향을 가르치며, 세상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 의미를 알리는 모든 국가 중에서의 여호와의 주권과 영광에 대한 그의 주장을 지적해 준다(사 12:4; 시 105:1­3).

진실로 종말에 여호와께서 세상에 계시됨으로서 온갖 우상 숭배가 사라지고 모든 무릎이 홀로 하나이신 그의 이름 앞에 꿇을 것이다'(슥 14:9; 사 45:23, G. Von Rad).

(4)  여호와의 이름과 관련하여, 그의 이름으로 여호와께 요구하고 기원한다는 경배 의식을 통해 그에게 예배드린다는 것이다(참조:창 4:26; 12:8).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여호와의 권능이 관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제사장이 백성을 축복할 때 복을 수여하는 것은 그것과 제사장의 축복 행위와 자유로이 연결시킨 하나님의 처분에 있는 것이다(민 6: 24­26, 27; 참조:신 10:8; 삼하 6:18; 왕하 2:24).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은 마술의 수단이나 방편이 아니라 계시의 선물이다(Bietenhard). 

이것은 야웨의 이름을 언급하거나 부르는 것에 야웨의 능력을 믿는 신앙을 함축한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베솀 야웨'즉 야웨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맹세(삼상 20:42; 레 19:12), 저주(왕하 2:24), 혹은 축복할 때(삼하 6:18) 이렇게 발언한 그 이름은 야웨의 임재, 배려(attention)와 실제적 간섭(개입)을 보증한다.

(5)  진실로 여호와의 이름은 그의 인격적 통치와 활동의 강력한 표현이기 때문에 여호와 자신을 말함에 있어서 그 이름이 대용될 수 있다(레 18:21; 시 7:17; 미 5:4­5). 

여호와께서 인간과 접하시는 면이 바로 그의 이름이며, 이 이름으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신다. 

과거(출 3:6, 13, 15)와 현재(출 20:7)와 미래(겔 25:17; 34:50)를 통한 인간에 대한 그의 역사적 다루심은 그의 이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10계명은 분명히 마술이나 주문 혹은 거짓 맹세에서 이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는 것을(맹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금하였다.(출 20:7). 

왜냐하면 이미 언급한 바 여호와의 이름은 계시의 선물이며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창 17:1; 출 3:14; 6:2).

거짓 선지자들의 여호와께 대한 호소는 불법이다. 이는 그들이 여호와로부터 고하라는 임무나 말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신 18:20; 렘 14:14이하; 23:25; 29:9). 

여호와의 이름은 이스라엘을 신용하여 그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그 이름을 모른다(시 79:6).

이스라엘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것은 예배의식, 희생제사, 기도, 축복과 저주 또한 거룩한 전쟁(Holy war, 시 29:8)에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를 섬기되, 그 만을 섬기며 그의 계명에 복종함으로써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신의 예배에 참예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힙을 뜻한다(레 19:21).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루살렘(렘 25:29), 성전(렘 7:10), 언약궤(삼하 6:2)를 일컬어 이것들을 성별, 여호와와 관련시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신성화의 유일한 기초이다(참조:F.F. Brace, DNTT; Bietenhard, TDNT).

(6)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들이 자기를 보낸 자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가 무엇이라고 말하리까? 라고 물었다. 

하나님은“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너희에게 보낸 이는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념할 나의 표호니라”고 대답하셨다(출 3 :13-15).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세겜에 모아 놓고 "이제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여호와만 섬기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신자에 있어서 여호와는 대대로 기억해야 할 소중하고도 큰 영원한 이름이다. 이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어떤 고대 역사에 의하면 의인 시몬(Simon)이 죽은 후에(B.C. 200년경) 제사장들은 축복 행위에서 여호와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중지했다고 한다(T. Sot 138). 

성전 예배 의식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여전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축복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나 교육 행위에서 성경 인용시 여호와라는 단어가 '이름'이라는 '셈'으로 대치되었다. 그래서 신성 4문자 YHWH를 사용하기를 중단했으며, 따라서 그 발음마저 잊어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세계의 거의 모든 성경 번역자들은 성경에서 여호와/야웨라는 이름을 없애버린 것이다. 

대한성서공회서 번역한 표준 새번역도,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여호와란 이름을 모두 없앤 것이다. 

역사의 하나님 여호와를 최고의 역사 기록에서 삭제해 버리는 이 무리들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 혹은 야웨라는 이름이 소중한 큰 이름임을 명심해야 한다."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아멘 -. (참조: J. B. PAYNE; FREEDMAN; O'CONNOR; RINGG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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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ive ear, O heavens, and let me speak; And let the earth hear the words of my mouth.

2.  "Let my teaching drop as the rain, My speech distill as the dew, As the droplets on the fresh grass And as the showers on the herb.

3.  "For I proclaim the name of the LORD; Ascribe greatness to our God!

4.  "The Rock! His work is perfect, For all His ways are just; A God of faithfulness and without injustice, Righteous and upright is He.

5.  "They have acted corruptly toward Him, [They are] not His children, because of their defect; [But are] a perverse and crooked generation.

6.  "Do you thus repay the LORD, O foolish and unwise people? Is not He your Father who has bought you? He has made you and established you.

7.  "Remember the days of old, Consider the years of all generations. Ask your father, and he will inform you, Your elders, and they will tell you.

8.  "When the Most High gave the nations their inheritance, When He separated the sons of man, He set the boundaries of the peoples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

9.  "For the Lord's portion is His people; Jacob is the allotment of His inheritance.

10.  "He found him in a desert land, And in the howling waste of a wilderness; He encircled him, He cared for him, He guarded him as the pupil of His eye.

11.  "Like an eagle that stirs up its nest, That hovers over its young, He spread His wings and caught them, He carried them on His pinions.

12.  "The LORD alone guided him, And there was no foreign god with him.

13.  "He made him ride on the high places of the earth, And he ate the produce of the field; And He made him suck honey from the rock, And oil from the flinty rock,

14.  Curds of cows, and milk of the flock, With fat of lambs, And rams, the breed of Bashan, and goats, With the finest of the wheat-- And of the blood of grapes you drank wine.

15.  "But Jeshurun grew fat and kicked-- You are grown fat, thick, and sleek-- Then he forsook God who made him, And scorned the Rock of his salvation.

16.  "They made Him jealous with strange [gods;] With abominations they provoked Him to anger.

17.  "They sacrificed to demons who were not God, To gods whom they have not known, New [gods] who came lately, Whom your fathers did not dread.

18.  "You neglected the Rock who begot you, And forgot the God who gave you birth.

19.  "And the LORD saw [this,] and spurned [them] Because of the provocation of His sons and daughters.

20.  "Then He said, 'I will hide My face from them, I will see what their end [shall be;] For they are a perverse generation, Sons in whom is no faithfulness.

21.  'They have made Me jealous with [what] is not God; They have provoked Me to anger with their idols. So I will make them jealous with [those who] are not a people; I will provoke them to anger with a foolish nation,

22.  For a fire is kindled in My anger, And burns to the lowest part of Sheol, And consumes the earth with its yield, And sets on fire the foundations of the mountains.

23.  'I will heap misfortunes on them; I will use My arrows on them.

24.  '[They shall be] wasted by famine, and consumed by plague And bitter destruction; And the teeth of beasts I will send upon them, With the venom of crawling things of the dust.

25.  'Outside the sword shall bereave, And inside terror-- Both young man and virgin, The nursling with the man of gray hair.

26.  'I would have said, "I will cut them to pieces, I will remove the memory of them from men,"

27.  Had I not feared the provocation by the enemy, Lest their adversaries should misjudge, Lest they should say, "Our hand is triumphant, And the LORD has not done all this." '

28.  "For they are a nation lacking in counsel, And there is no understanding in them.

29.  "Would that they were wise, that they understood this, That they would discern their future!

30.  "How could one chase a thousand, And two put ten thousand to flight, Unless their Rock had sold them, And the LORD had given them up?

31.  "Indeed their rock is not like our Rock, Even our enemies themselves judge this.

32.  "For their vine is from the vine of Sodom, And from the fields of Gomorrah; Their grapes are grapes of poison, Their clusters, bitter.

33.  "Their wine is the venom of serpents, And the deadly poison of cobras.

34.  'Is it not laid up in store with Me, Sealed up in My treasuries?

35.  'Vengeance is Mine, and retribution, In due time their foot will slip; For the day of their calamity is near, And the impending things are hastening upon them.'

36.  "For the LORD will vindicate His people, And will have compassion on His servants; When He sees that [their] strength is gone, And there is none [remaining,] bond or free.

37.  "And He will say, 'Where are their gods, The rock in which they sought refuge?

38.  'Who ate the fat of their sacrifices, [And] drank the wine of their libation? Let them rise up and help you, Let them be your hiding place!

39.  'See now that I, I am He, And there is no god besides Me; It is I who put to death and give life. I have wounded, and it is I who heal; And there is no one who can deliver from My hand.

40.  'Indeed, I lift up My hand to heaven, And say, as I live forever,

41.  If I sharpen My flashing sword, And My hand takes hold on justice, I will render vengeance on My adversaries, And I will repay those who hate Me.

42.  'I will make My arrows drunk with blood, And My sword shall devour flesh, With the blood of the slain and the captives, From the long-haired leaders of the enemy.'

43.  "Rejoice, O nations, [with] His people; For He will avenge the blood of His servants, And will render vengeance on His adversaries, And will atone for His land [and] His people."

44.  Then Moses came and spoke all the words of this song in the hearing of the people, he, with Joshua the son of Nun.

45.  When Moses had finished speaking all these words to all Israel,

46.  he said to them, "Take to your heart all the words with which I am warning you today, which you shall command your sons to observe carefully, [even] all the words of this law.

47.  "For it is not an idle word for you; indeed it is your life. And by this word you shall prolong your days in the land, which you are about to cross the Jordan to possess."

48.  And the LORD spoke to Moses that very same day, saying,

49.  "Go up to this mountain of the Abarim, Mount Nebo, which is in the land of Moab opposite Jericho, and look at the land of Canaan, which I am giving to the sons of Israel for a possession.

50.  "Then die on the mountain where you ascend, and be gathered to your people, as Aaron your brother died on Mount Hor and was gathered to his people,

51.  because you broke faith with Me in the midst of the sons of Israel at the waters of Meribah-kadesh, in the wilderness of Zin, because you did not treat Me as holy in the midst of the sons of Israel. 

52.  "For you shall see the land at a distance, but you shall not go there, into the land which I am giving the sons of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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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2장 (개요)

본 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보게 된다.

1.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달해 준 노래. 

이 노래는 그들에게 하나의 훈계를 들려주기 위함이며, 하나님을 저버리지 말라는 주의의 말씀을 담고 있다.

   (1) 서문(1, 2).

   (2) 하나님의 고귀한 품격과 이에 상반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악한 성격(3-6).

   (3) 하나님이 저희를 위해 베푸신 크나큰 일들의 열거, 그리고 이와 반대로 하나님께 대한 저희 악행의 설명(7-18).

   (4) 저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내리실 황폐와 멸망의 심판에 대한 예고. 저희의 극심한 불경건으로 인해 심판을 내리시지만 하나님은 의로우심(19-35).

   (5) 드디어 저희 원수들과 압제자들의 멸망이 약속되며, 남은 자들은 영화로운 구원을 얻으리라는 약속(36-43).

2. 모세가 저들에게 이 노래를 주면서 함께한 훈계(44-47).

3. 모세에게 느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48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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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노래의 서언(신 32:1-6)

Ⅰ. 모세의 노래에 대한 당당한 머리말 또는 서언(1-2절).

1. 그는 자기가 말하려는 내용의 진실됨과 증요성, 그리고 반역하고 패역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의 정의로움을 하늘과 땅에다 엄숙히 호소함으로써 시작한다. 

그는 이미 이 노래에서는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리라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31:28). 

차라리 하늘과 땅이 이 패악하고 무사려한 백성보다 더 잘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천지는 저희 창조주께 대한 순종을 거부하지 아니하고, “주의 종”으로서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기” 때문이다(시 119:89-91). 그런 연고로 패역한 이스라엘을 정죄하는 때에는 천지가 일어나 칠 것이다. 

천지가 죄인들을 고발하는 증인이 될 것이며, 그들에게 내린 경고에 대해 증거할 것이고, 저들이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사실을 고발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낼 것이요 땅이 일어나 그를 칠 것인즉”(욥 20:27). 또한 하늘과 땅은 천사와 사람들, 그 양자의 거처라고 말해지고 있다. 

하늘과 땅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의롭다 하고 “그 공의를 선포하는” 데 동의할 것이다(시 50:6; 계19:1, 2 참조).

2. 그는 그 백성에게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엄숙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2절). 

시리아역의 한 해설자는 2절 상반절을 “그것은 패역한 자들을 휩쓸어 가는 비가 되리라”고 해설했다. 

비는 때때로 심판을 위해 보내지는 것이며, 세상이 비로 인해 물에 잠겼었다는 것이 증거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도 어떤 자들에게는 소생시키고 활력을 다시 주는, 즉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지만, 그 반면 다른 자들에게는 공포를 주며 죽이는 것, 곧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고후 2:16). 그것은 받으려고 잘 준비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감미롭고 즐거운 이슬이 된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이 노래의 주제는 교훈이다. 

모세는 그들에게 이미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주었다(출 15장). 그러나 이것은 훈계의 노래로 주었으니, 시가나 찬미가나 신령한 노래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기” 때문이다(골 3:16). 그러므로 다윗의 시편 중 다수에 “마스길”, 즉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란 표제가 붙어 있는 것이다.

(2) 이 교훈은 비와 소나기로 적절히 비유되고 있으니, 저들은 위로부터 내려서 대지가 열매를 맺게 하며 저들이 보냄 받은 일을 성취시키되(사 55:10, 11) 인간의 지혜나 뜻에 의지하지 않는 까닭이다(미 5:7). 이 비가 우리에게 자주 내리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긍휼이요, 그것을 “흡수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히 6:7).

(3) 그는 자기 교훈이 소리 없이 조용하게 내리는 이슬이나 가는 비처럼 내리고 맺히리라는 약속을 하고 있다. 

전파된 말씀은 조용히 와서 듣는 이들의 마음과 사랑 속에 교묘하고 달콤하게 젖어드는 것이다.

(4) 그는 저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며 영접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목마른 대지”에 내리는 비처럼 그것이 저들에게는 달콤하고도 즐거우며 환영받을 만한 것이 되리라는 것이다(시 72:6).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 주시는 법이다.

(5) 학식이 많은 패트릭 주교는 이것을 기도로 이해한다. 

하늘로부터 저들에게 보내진 그 분의 말씀들이 대지를 부드럽게 해 주는 비와 같이 저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가 저들로 순종의 열매를 맺게 해 달라는 기도로 보는 것이다.

Ⅱ.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의로우심에 대한 장엄한 선포(3, 4절).

1. 모세는 이 장엄한 선포를 하면서, 그것을 자기의 제일 원리로 설정한다.

(1) 하나님의 존귀를 보존하기 위한 제일 원리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악행 때문에 하나님께 어떠한 치욕이라도 돌아가지 않도록 하고자 함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그 백성이 아무리 악하고 부패했다 할지라도, 그 분은 공명정대하고 의로우시며, 그 분의 모든 일은 선하시며, 저들의 악함으로 인하여 더 나쁜 분으로 생각될 수 없는 분이다.

(2) 그렇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고 경배했으면서도 그들 스스로는 그토록 불경건했던 이스라엘의 사악함을 강조하기 위한 제일 원리다.

(3) 저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처사의 정당하심을 입증하는 원리다. 

우리는 비록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렘 12:1; 시 36:6).

2. 모세는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려고 한다고 했다(3절).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모신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있으므로, 결코 그 하나님을 거짓 신이나 쓰레기통의 신으로 바꾸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려는 것이다. 모세는 그 분께 위대함을 돌리라고 저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높고 존귀하게 생각하는 일이나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위엄을 하나님께 돌릴지어다”라고 외친다는 일은, 우리가 죄악을 예방하고 의무의 길을 지키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분의 위대하심에 무엇을 더 보탤 수는 없었으니, 그것은 그 분의 위대하심이 무한하신 까닭이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인정할 뿐이다. 

그 분께 그 영광을 바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무한하심을 설명하거나 하늘 세계에서의 그 분의 영광이 찬란하다고 하는 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그 분의 말씀의 신실하심과 그 공덕의 온전하심 및 그 분의 나라의 치리가 지혜롭고 공평함을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런 일들 가운데서 그 분의 영광은 우리에게 가장 선명하게 빛나며, 이런 것들은 그 분께 대한 일을 계시한 것이니,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하는” 것이다.

(1) “그는 반석이시다”(4절). 본 장에서 하나님은 여섯 번이나 반석이라 호칭되는데, 70인역 성경은 그것을 내내 ‘하나님’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휴 브로턴(Hugh Broughton)은 구약성경에서(본 장 외에서) 하나님이 18회나 “반석”이라 불린다고(어떤 곳에서는 반석을 “힘”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계산해 내었으며, 가톨릭 교도들이 성 베드로를 교회의 터전이 되는 반석이라고 주장할 때는 그를 하나의 신으로까지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나님은 반석이시니, 그는 원래 불변 부동하시며, 자기를 찾고 자기에게 도피해 오는 모든 자에게는 튼튼한 피난처가 되어 주시며, 자기를 신뢰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터전이 되시기 때문이다.

(2) “그 공덕(사업)이 완전하다.” 그 분의 창조 역사도 완전해서, “모든 것이 매우 선하였고”(창 1:31 참조), 그 분의 섭리의 역사도 역시 그러하며, 또한 때가 되면 완전해질 것이니, 하나님의 오의(奧義)가 완성될 때에는 그 분의 온전하신 역사가 온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고쳐질 수가 없다(전 3:1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곧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셨고, 또 그들을 위해 시작하셨던 일을 완전하게 이루어 주셨다. 이 일의 완성으로 저들은 하나님의 모든 사업의 성취에 대한 영광을 그 분께 돌려야 한다. 인간의 일은 제아무리 최선의 것이라 해도 불완전한 것이어서, 흠과 결점이 있으며 미완성인 채 남아 있으나, 하나님은 “그 공덕이 완전하시다.” 그 분이 시작하시는 일은, 그 분이 성취하시고야 만다.

(3) “그 모든 길이 공평하다.” 그 분의 길들의 목적은 모두 의로우시며, 그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방법의 선택에 있어서 그 분은 지혜로우시다. 공평(심판)이라 함은 분별력과 정의를 의미한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호 14:9).

(4) 그 분은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분의 말씀은 우리가 의지할 수 있고, 그 분은 자기의 모든 약속에 진실한 분이어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며, 그 분의 경고는 결코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

(5) 그 분은 “무망하신”(불의가 없으신) 분이다. 당신을 신뢰하는 자이면 그 누구든지 속이지 아니하셨고, 그 분의 공의로우심에 호소하는 자에게 해를 입히지 아니하셨으며, 그 분의 자비를 구하여 자기를 맡기는 자들에게 결코 가혹하지 않으셨다.

(6) 그 분은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다.” 그 분은 저들이 당연하게 받을 응징 이상으로 화를 내리지 않는 분이며, 또한 당신을 위해 봉사하며 고난당하는 모든 자에게 틀림없이 상급을 주시는 분이다. 그 분은 참으로 공정하고 의로운 분이다. 왜냐하면 그 분은 어느 누구라도 자기로 인해 손해를 당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배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 한 구절이 우리에게 나타내 주는 바가 실로 얼마나 긍정적이고 온화한가! 그렇다고 할 때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 분 안에서 기쁨을 얻는 생을 누리며, 그 분께 의지하고, 그 분께 헌신하는 일이 얼마나 당연지사인가! 이 분은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결코 없도다(시 92:15).

Ⅲ.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심한 질책이 내려졌다. 이스라엘은 그 성격 어느 모를 보아도 저들의 하나님의 품성과는 정반대였다(5절).

1. “저들은 스스로를 부패케 하였다”(KJV). 또는 “그것은 그 스스로를 부패시켰다”는 것이다. 그 민족 전체가 병들고,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다”(사 1:5). 하나님께서 저들로 부패케 하신 것이 아니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기” 때문이다. 저들 자신이야말로 자기들의 죄와 파멸을 초래한 유일한 장본인이다. “저들은 스스로 부패하였다.” 그 이유는 누구나가 자기 욕망에 이끌리면 시험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은 스스로 패망하였다”(호 13:9, KJV). 네가 거만하여 비웃으면, 네 홀로 죄와 비통함을 당하리라(잠 9:12).

2.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종류로다.”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이 세상의 불완전한 상태 속에 존재하는 고로, 흠을 가지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죄나 흠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기 기만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경배하여 이기려고 애쓰는 그런 약점이 아니라, 저들의 마음에 온전히 자리잡은 악이었다.

3. 저들은 “사곡한 종류(세대)”여서 모순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므로 금지한 일은, 그 일이 금지되었으므로 인해 더욱 해 보고자 했다. 저들은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여 저들 자신의 기분과 기호를 내세웠고, 견책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올바른 징계를 혐오했고,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였다”(사 57:17). 시리아 의역본(意譯本)은 이 구절을 “저들이 스스로를 흩으며” 변했으되, “그에게로 간 것이 아니요, 우상을 섬긴 자녀들과, 자기들의 공덕을 박탈당하고 스스로 그 공덕을 내어버린 세대가 되었도다”라고 해석한다.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을 해칠 수는 없으며, 그 분의 공덕에 손상을 끼치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이 세상의 나그네로 만들지도 못한다(욥 35:6 참조). 오히려 그들이 행하는 모든 피해는 그들 자신과 그들의 공덕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박학한 패트릭 주교는 이를 달리 읽어서, “그가 그에게 어떤 해라도 가했는가?”라고 해석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재앙에 책임을 져야 할 반석이신가? 아니다. “그의 자녀들은 그들의 오명이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생긴 모든 악은 그 자녀들의 사악함의 열매인 것이다. 그 이유는 저 모든 세대가 사곡하고 불의한 무리이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파멸하는 모든 자들은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자들이다. 그들은 결국은 죽어야 할 죽음을 죽는다.

Ⅳ.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이 백성의 배은망덕을 탓하는 가슴 아픈 훈계(6절). “너희가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진실로 너희가 금후로는 이전같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성실치 못한 행위를 하지 말라.”

1.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당신을 섬기고 당신께 집착하도록 분부하신 의무를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저들에게 아버지가 되셨고, 저들을 낳아서 먹이시고 이끄셨으며, 양육하시며 저들의 예의범절을 가르치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버지의 온정을 박차 버리려는가? 그가 저들을 값 주고 사셨으며, 많은 기적을 베푸사 저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저들을 위해 사람들을 “속량물로”, 백성들을 저들의 “대신으로” 주셨던 분이다(사 43:4). “그는 네 아버지 네 소유주가 아니시냐?(어떤 사람은 이렇게 읽는다) 곧 네게 대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소유권을 가지신 분이 아니냐?” “소는 그 임자를 안다”(사 1:3). “그가 너를 지으셨고, 너를 생기게 하셨고, 세우셨으며 네 생존을 지속시키셨다. 그가 그같이 하지 않으셨느냐? 그가 너를 위해 행하셨고 계획하셨던 큰 기사들을 생각해 본다면, 네가 짊어진 의무를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뜻이다.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들로서의 우리의 의무, 곧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시요, 우리를 값 주고 사신 구속자시며, 우리를 세우신 성별자이신 분께 대한 우리의 의무 역시 중대하고 확고한 것이 아닌가?

2. 그는 하나님을 버리고 반역하는 일이 악이라고 결론짓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것은 야비한 배은망덕이기 때문이다. “너는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이것이 네가 입은 그 분의 모든 은총에 대한 보답이란 말이냐? 너는 네가 받은 능력으로 네게 능력 주신 그 분을 치는 데 사용하려느냐?”(미 6:3, 4; 요 9:32 참조) 이런 일은 온 세상이 부끄러워하는 극악한 행위다. 어떤 사람에게 배은망덕한 자라고 말해 보라. 그것보다 더 나쁜 호칭은 없는 것이다.

(2) 그것은 극도의 미치광이 짓이기 때문이다. “우매무지한 백성아! 어리석은 자들아! 이중으로 우매한 자들아!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너희에게 그토록 요긴한 의지가 되고 있는 분에게 거역하는, 이 진정으로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 자신의 자비를 거짓된 허영과 바꾸려고 버리다니!” 모든 방종한 죄인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이스라엘 백성 중의 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지몽매하고 망은(忘恩)의 인간들이라는 것을 주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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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덕(신 32:7-14)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저들의 큰 은혜자이심을 개략적으로 나타내고, 저들은 감사히 그 분을 섬기고 순종해야 할 것을 지금까지 말해 왔으나, 여기서는 저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관심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 몇몇 예증은 고대의 것으로, 그 증거를 위해 그는 기록에 호소한다(7절). “옛날을 기억하라.” 즉 지나간 날들의 역사, 곧 옛 세계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우신 섭리의 역사를 기억하라. 너희는 일련의 자비가 너희 조상을 꾸준히 뒤따라 보살펴 주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며, 모든 사정이 이제 일어난 일을 향해 얼마나 오래도록 역사해 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믿을 만한 고대의 역사들은 매우 유용하며, 특히 구약 교회나 신약 교회나 교회 요람기의 역사는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 다른 예들은 더 후대의 것으로서, 그 증거를 위해 모세는 당시 생존해 있어 저들과 같이 있었던 아비와 장로들에게 물을 것을 호소한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부지런히 가르치되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법도(신 6:7)와, 그 분의 규례의 의미(출 12:26, 27)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적과 그 분의 섭리의 방법도 또한 가르쳐야 한다(시 78:3, 4, 6, 7 참조). 그리고 자녀들은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는 데에 꼭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해야 한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예증하고, 저들의 확고한 의무를 결코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세 가지 사실이 실례로서 자세히 부연된다.

Ⅰ. 가나안 땅을 저들의 유업으로 미리 정하심. 

그러므로 여기서의 가나안은 우리의 천국 분깃의 모형이요 예표로서 예전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미 내정되고 준비되었던 것이다(8절).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노아 홍수 후 벨렉 당시에 온 땅이 인간의 아들들에 의해 나누어지고, 각 족속이 자기 몫을 받았다. 몫으로 차지한 그 땅에서 각 족속은 정착해야 했으며, 점차로 한 민족으로 형성되어 갔던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미 당신의 심중에, 안중에 넣어 두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복지(福地)를 적당한 시기에 가서 이스라엘의 상속물이 되도록 정하시고, 당시에 존재하던 그 어떤 족속보다 특히 가나안의 자손들은 그 동안만은 그 곳에서 거하게 했던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할 준비가 될 때까지만 그 땅을 소유하도록 명하셨던 것이다. 그 족속은 노아의 저주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저주로 인해 가나안의 자손들은 섬김과 멸망을 당하도록 정죄되어서(창 9:25), 때가 차 이스라엘이 소유할 때가 되면, 저들은 자연히, 그리고 쉽사리, 또 실제적으로 멸절을 당할 운명에 놓여 있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미리 예정하시고 가나안 백성의 경계를 정하셨다. 즉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그 땅에 돌아와 살 수 있을 만큼 많아지게 될 때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혹자는 가나안 자신과 그의 열한 아들(창 9:15 이하)이라는 수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와 꼭 맞는다고 한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의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연대와 장소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다(행 17:26). 

그 분이 “땅을 인생에게 주셨을” 때(시 115:16),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취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민족들에게 그 기업을 나누어 주셨으니, 이는 저들로 자기의 것을 각자가 알고 남의 소유를 침범치 않도록 하시고자 함이었다.

(2) 무한하신 지혜는 넓기가 한량이 없으시니 오랜 뒤에 일어날 일도 미리 정하신다. “그의 모든 일들은” 태초로부터 종말까지 “하나님께는 알려진 바나”(행 15:18, KJV), 우리에게는 그렇지 아니하다(전 3:11).

(3) 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나라들과 열국의 일을 명하시는 중에도 자기 교회와 자기 백성을 특별히 감찰하셔서 그들의 유익을 고려하신다(대하 16:9; 사 45:4 참조). 가나안인들은 다른 이방 족속들과 같이 자기들도 자기 땅에 대한 영원하고도 확실한 권리를 소유한 줄로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저들이 이스라엘, 곧 저들의 주인이 올 때까지의 소작인에 불과하도록 내정하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를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자들을 통해 자기 백성에 대한 자비의 목적을 성취하시나니, 저들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다”(사 10:7; 미 4:12).

2. 저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또한 생각하기도 훨씬 전에(내가 말할 수 있는 대로), 이 백성을 위해 하나님이 취하신 특별한 배려에 대한 이유가 나타나 있다. 그것은 그 분의 인자하심을 더욱 크게 하며, 그 분의 자비를 말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 것으로 만든다. 곧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9절). 온 세계는 그 분의 것이다. 그 분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요, 소유자시다. 그 분의 교회는 각별한 의미에서 그 분의 것이다. 그것은 그 분의 영유지이며 포도원이자 울타리 속에 든 정원이다. 그 분은 그것을 특별히 기뻐하신다. 교회는 그 분의 영혼이 사랑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그 분은 행하시고 거하시나니, 그것은 그 분의 영원한 안식처이다. 그 분은 그것에 특별한 염려를 기울이시며, 자기 눈동자와 같이 지키신다. 인간이 자기 기업에 대해 그러하듯, 그 분은 그것에게 특별한 기대를 하시며, 이 세상 여타 모든 것보다도 이 구별된 남은 자들로부터 훨씬 더 큰 영광과 존귀와 경배를 받으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기업이 되리라는 사실은 쉽사리 설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저들의 기쁨이요, 복이 되시는 까닭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그들로 인해 혜택도 받으시지 못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가 하는 것은 결국 거저 주시는 은혜의 놀라우신 겸손으로 귀착되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선한 연고에서니이다.” 그래서 그들을 그렇게 부르시고 그렇게 대우하신다.

Ⅱ. 저들을 한 민족으로 형성시킴은, 나이가 차야 성년 상속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정하신 때에 이 유산을 차지하기에 적합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가나안 땅은 하늘로부터 오는 상속물의 예표였다. 왜냐하면 하늘나라가 영원 전부터 모든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을 위해 계획되고 예정되었듯이, 저들도 시간이 되면(그것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그 땅에 합당하게 되고 그것을 맞아들이게 된다(골 1:12).

이스라엘이 그 압제자들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종살이로부터 구출되기까지에는, 분명히 깨달을 수 있기까지에는, 너무나도 많은 기사와 이적이 뒤따랐다. 또 그 사건이 너무나 여러 번 말해졌으므로, 이 노래에서는 새삼 언급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들을 위해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로운 일들에 비하면, 그 분이 지금 저들을 위해 행하신 영광스러운 일들은 별로 주의를 끌지 못할지도 모르므로, 그는 저들에게 이 일들에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 백성을 한 민족으로 형성하고, 또 약속의 땅에서 저들이 받게 될 위대한 일들에 알맞은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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