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신33.모세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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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3장 [390.예수가거느리시니][406.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540.주의음성을내가들으니]


기억하고 명심할 것은!!, 그대를 완전히 감싸시는 주님이시라..<연합한 하나됨으로 그대 안에 충만-내주하여 계신 주님 앙망하며> 깨어 구하며-하나됨 안에 믿음으로 머물러 주 이름 부르며 사랑으로 호흡하며 친밀한 움직임과 운행하심에 거듭난 자신의 전 존재를 맡겨드리라((반드시 주님 자신을 알도록 하시리라!!))..각 사람마다 오직 Q이 원하시는 [그분이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 곧 신실(미쁘심)과 참(진리-진실) 그자체이신 주님, 그분의 보혈-말씀-내주하시는 그리스도로 사는 그분 안에 거하는 삶을, 주님께 나아가 주 이름 불러 앙망-주목-응시-바라봄으로써 동행하며 그분으로 온전히 적셔지는 자마다 이루게 하실 바, 점유-충만-변화-몸의 구속-참 아들의 명분 이루며 주님 닮은 신령한 산 돌로서 건축 요소가 됨 이루시리니...이 땅에서는 서머나 교회-빌라델비아 교회이리니!!...이는 하늘의 시온성/새 예루살렘, 그분의 몸의 지체로 참여케 될 것... 모세의 축복은 통째로 진실로 긍정적으로 그대로 누리게 될 것

 

[예수님의 행적] 자라나신 갈릴리 나사렛은(갈릴리 가나도) 스불론 지역 ==>주된 사역지 가버나움은(고라신-가버나움-막달라) 모두 <갈릴리 호수 북서안>, 남서안에 디베랴가 있고 모두 납달리 지역 ((다볼산은 스불론-납달리, 잇사갈 지파의 경계선)).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 동북단>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 남동안>므낫세 영역이다.


[[스불론, 거하라 그리고 나가라]]

[창세기 49:13..13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신 33:18-19...18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19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1. 스불론, 거한다는 이름을 갖고 나가는 자

스블론은 레아가 낳은 마지막, 즉 6번째 아들입니다. 야곱의 12 아들 중10번째이지요. 스블론의 이름 뜻은 “거함”이라는 뜻입니다. 동생 라헬에게 남편의 사랑을 빼앗긴 레아에게는 깊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레아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라헬이 아이를 못 낳는 동안 아들을 6명이나 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아무리 낳아줘도 야곱의 사랑은 늘 라헬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아들 스블론을 낳고 난 다음 레아는 ‘이제는 내 남편이 나와 함께 거할 것이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후에 야곱은 스블론에 대해 예언할 때에,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라고 예언을 합니다. 스불론이 해변에 거한다는 말은 사실 언어 유희입니다.  ‘거하는 자가 … 거한다’ 의 라임을 맞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사실은 여호수아서에서 스불론이 분배받은 땅이 해변이 아니라 내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야곱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스블론이 받은 땅은 비록 내륙에 있었지만, 동으로는 갈릴리 해변, 서로는 지중해 해변을 가까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분배받은 땅은 갈릴리 땅으로서 매우 박한 땅이었으므로, 농사를 지어서는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서의 두 해변으로 나아가 왕성한 무역활동을 함으로써 활로를 모색했습니다. 좀 특이한 방식으로 예언이 성취된 것이지요. ‘해변에 거한다’ 할 때의 거한다는 단어 역시 일시적으로 장막을 치고 거한다는 뜻입니다. 해변에 아예 사는 것이 아니고 산업을 위해 잠시 거한다는 뜻이지요. 

2. 스불론, 거하라

우리는 스블론의 이름 뜻이 “거하다”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블론’에 해당하는 가장 가까운 신약의 용어는 ‘임마누엘’입니다. 우리말로는 ‘임재’이겠지요. 스블론은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에 ‘거하신’ 장소입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그 땅에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스블론 땅에서 자라셨으며, 스블론 땅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첫 기적의 장소, ‘가나’ 역시 스블론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스불론 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언을 했습니다. 

(사 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스블론 지역은 땅이 박한데다가 역사적인 여러 연유로 인해 멸시를 받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거하심”으로 인해 영광스럽게 바뀌어진 땅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는 스불론과 같았습니다. 멸시와 천대와 슬픔과 어두움 가운데 있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순간, 우리의 땅은 빛과 영광으로 바뀌었습니다. ‘임재’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으면, 우리는 더 이상 슬픔과 좌절과 어둠이 아닌, 기쁨과 소망과 빛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해야 합니다. 레아는 그저 남편과 함께 거하기를 원해 지었던 이름 스블론, 그런데 막상 그 땅에 예수님이 거하셨다는 사실에 하나님의 세월을 뚫는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주님의 임재가 있으면 우리는 인생의 역전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3. 스불론, 나가라

모세는 “스불론은 나감을 기뻐하고 잇사갈은 장막에 있음을 기뻐할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 속한 기름진 땅을 분배 받았던 잇사갈 지파는 땅이 기름지므로 한 장소에 웅 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반면, 박한 땅을 받았던 스블론은 해변가로 나아가 활발한 무역활동을 함으로써, 스불론에 대한 야곱과 모세의 예언이 모두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스블론은 거함의 장소임과 동시에 나감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로 거하셨던 곳이며, 복음이 전파되는 선교의 중심지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선교 지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중해 건너편이요, 다른 하나는 요단강 건너편이었습니다. 그 양쪽을 모두 장악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스불론 지역이었습니다. 스블론은 복음이 시작된 곳이며, 열방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나간 곳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가장 박한 땅을 분배 받았지만 선교 전략상 가장 중요한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해변은 헤엄치고 선텐하는 아름다운 해변가가 아니라 항상 출항을 준비하고 있는 복음의 교두보로서의 해변이었습니다. 복음을 들고 뱃고동을 울리며 열방을 향해 흩어져 나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모세의 예언은 적중했다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라고 예언했습니다. 열국의 백성들을 불러 하나님의 산에 모이게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일을 스블론이 감당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우리 안에 진정한 ‘거하심(스블론)’이 있으면 우리는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임재는 반드시 흩어짐을 초래합니다. 그것이 스블론의 역설입니다. 거하지만 흩어지는 자, 그것이 스블론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스블론이 되어야 합니다. 강한 임재 안에 거하지만, 머물러 있는 자가 아닌 복음을 들고 흩어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 거하고 나가야 하는 이유, 모래 속 진주를 찾아라

모세는 또한 스블론에 대하여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귀한 보화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과 비교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저 모래입니다. 그러나 모래 속에 감추인 보배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그러나 모래 속 감추인 보배는 감추어져 있을 뿐 아니라 직접 찾아오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맡기기만 하면 발견될 수밖에 없는 보배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 보배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 안에 더 깊이 거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를 더 깊이 알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보배는 알면 알수록 더 깊이 감추인 것들이 그 속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알고 또 알아도 여전히 감추어져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인 천국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값진 보배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상인은 그 값진 보배를 발견했을 때에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팝니다. 남의 땅을 갈던 소작농은 밭을 갈다가 보배를 발견하자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삽니다. 모든 것을 다 팔아도 보배가 더 값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도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서 그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자는 반드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됩니다. 모래 속에 감추인 또 다른 보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보배는 바로 하나님께서 애타게 찾으시는 한 영혼입니다. 바다에 풍부하게 널부러져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찾아야 하는 영혼들입니다. 스불론 지파는 문자 그대로 바다로 나아가 어업을 하여 바다의 풍성한 것을 취하였으며, 배를 타고 여러 지역에 나아가 장사를 하여 많은 보화들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로 넘어가면서 스불론 땅은 새로운 의미로 그 예언을 성취합니다. 스불론이 복음의 시발점이자 확장점이 된 것이었습니다. 즉 척박한 모래땅 스불론에 우리의 보배 예수님이 거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중심으로 영혼이라는 또 다른 보배를 캐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영적인 스블론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 나아가 바다의 풍부한 것, 즉 영혼들을 취해야 합니다. 배를 타고 여러 지역에 나아가 모래 속에 감추인 보배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취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셨으며”, 지금도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 안에서 발견된 ‘모래 속에 감추인 보배’였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모래 속에 감추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배’를 찾아 나서야 할 때입니다.

-------[[잇사갈, 헌신과 지혜의 아이콘]]

[창세기 49:14-15....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신33:18-19...18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19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1. 값을 치루고 보상으로 얻은 아들, 잇사갈

잇사갈은  레아가 낳은 5 번째 아들이며, 야곱의 12 아들 중 9번입니다. 야곱과 모세의 예언이나 땅 분배에서는 스블론이 먼저 등장하지만, 사실 잇사갈이 형입니다. 잇사갈이 동생인 스불론보다 더 나중에 등장하는 이유는 아마도 잇사갈에 대한 예언이 스불론에 대한 예언보다 더 좋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잇사갈의 이름 뜻은 “값” 또는 “보상”이란 뜻입니다. 값을 치루다는 뜻인 사카르와 연결된 이름입니다. 잇사갈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잇사갈이 태어나기 직전, 레아의 큰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가져옵니다. 합환채는 성욕을 증진시키고 임신 능력을 높이는 특효약으로 여겨졌습니다. 야곱의 둘째 부인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했으므로, 첫째 부인 레아에게서 합환채를 사는 대신 그 날밤 남편 야곱을 레아에게 팝니다. 야곱은 영문도 모른 채 레아에게 끌려가 잠을 자게 되고, 그렇게 해서 레아가 임신하게 된 아들이 잇사갈이었습니다. 레아는 잇사갈을 낳기 직전, 라헬과의 자식 낳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기 몸종 실바를 남편과 자게 하여 갓과 아셀을 낳게 하였습니다. 레아는 남편 야곱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그렇게 하긴 했지만, 아마도 그것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잇사갈을 낳았을 때, ‘시녀를 남편에게 내어주고 받은 보상’이란 뜻으로 아들 이름을 잇사갈이라 붙였으니까요. 합환채를 판 값으로 남편과 자서, 시녀를 남편에게 들여보낸 보상을 받아 낳은 자식이 잇사갈이었던 것이지요.

2. 헌신과 지혜의 아이콘

야곱은 잇사갈을 축복할 때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 비유를 합니다. 유다가 사자로 비유되었다면, 잇사갈은 나귀로 비유가 되고 있습니다. 비실 비실한 나귀가 아닌 건장한 나귀였습니다. 실제로 잇사갈은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므깃도 전투에서 사사 드보라와 협력해 혁혁한 공을 세운 후 그 용맹을 인정받았습니다. 

잇사갈은 또한 건장한 나귀처럼 인내심있고 열심히 일하는 지파였습니다. 본문의 “양의 우리”라는 단어는 “두 개의 짐”이라고 번역될 수 있으며, 사실 그 번역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즉, 두 개의 짐 사이에 어깨를 내리고 짐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 나귀라는 것이지요. 두 개의 큰 짐을 지고 불평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오히려 인내하며 감당하는 아주 좋은 장점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잇사갈은 지혜마저 가졌습니다.  역대상 12:32절에 보면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이 이백명이니 저희는 그 모든 형제를 관할하는 자며”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시세라는 말은 ‘시대의 흐름’이란 말입니다. 잇사갈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지혜마저 가졌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리더들이 200명이나 잇사갈에서 배출되었습니다.

잇사갈은 참 많은 것을 소유한 지파였습니다. 강한 체력과 힘이 있었고, 늘 나귀처럼 성실히 섬기는 열심과 꾸준함이 있었습니다. 많은 짐들 사이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짐을 지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헤로워서 분별력과 판단력도 뛰어났습니다. 교회에는 반드시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불평도 원망도 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감당해내며, 두개의 짐 사이에서도 기꺼이 그 짐을 감당하기 위해 어깨를 내려놓을 줄 아는 그런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잘 지치지도 않고 일에 대한 두려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구슬 땀을 흘립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읽어 영적인 분별력마저 있습니다. 이런 성도 한 사람을 갖는 것은 그 교회의 복입니다. 물론 찾아보기 힘든 희귀종이기도 하지요.

3. 스불론의 영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잇사갈의 영성

잇사갈은 스불론 바로 동편에 땅을 얻지만, 척박한 땅을 얻은 스불론과는 달리 매우 기름진 땅을 얻었습니다. 모세는 잇사갈을 축복할 때에 스불론과 같이 묶어서 예언을 합니다. 스불론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할 것이고, 잇사갈은 장막에 거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이니다. 두 지파의 땅은 나란히 접해 있었지만, 땅의 형세는 달랐습니다. 척박한 땅을 가진 스불론은 밖으로 나아가 해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반면, 비옥한 땅을 가진 잇사갈은 자기 땅에 머무르는 것을 즐거워 하는 것으로 예언은 성취가 됩니다.  야곱의 예언대로 자기 ‘쉴 곳을 좋게 여기고, 자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겼던 것’ 이지요. 

교회는 건강한 나귀인 잇사갈처럼 땀흘리고 헌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돌아갑니다. 모세는 잇사갈과 스불론을 싸잡아서 축복하되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라고 축복합니다. 이는 잇사갈과 스불론이 있었던 갈릴리 지방에서 예수님의 주요 사역이 이루어지며 복음이 처음 선포되었던 것으로 성취가 되어졌습니다.  

모래에 감추인 보배는 일차적으로 모래알과도 같은 세상 것들 속에서 참보배가 되시는 그리스도나 또는 복음 자체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영혼을 상징하는 것으로 적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스불론처럼 밖으로 나가 전도와 선교에 열을 올려 보배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헌신과 땀과 열심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감추인 보배를 찾아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잇사갈형 성도입니다. 아무리 많은 영혼을 데려다 놓아도 땀흘려 섬기고 돌보는 사람들이 없으면, 모래 속의 감추어진 보배는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스불론과 잇사갈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선교사가 있는 반면, 내보내는 선교사도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데려오는 전도자가 있는 반면, 섬기고 헌신하는 양육자가 있어야 합니다. 잇사갈과 스불론은 함께 손을 잡을 때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4. 풍요에 안주한 채 장막에 머무르는 신앙의 폐해

잇사갈의 문제는 좋은 지형과 풍요로움 때문에 이곳은 다른 지파의 땅보다 훨씬 더 자주 침략과 공격을 받았으며 노예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라는 야곱의 예언처럼, 그들은 아름다운 토지를 가진 것에 대한 “값”을 치루며 살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잇사갈에게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장막 안에 안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스불론과 짝을 이루지 못하면, 그저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그냥 이대로 살다 죽을래요’의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잇사갈은 땅이 너무 비옥하다보니 항상 장막에 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압제에 시달리며, 조공을 ‘보상’으로 바치며 먹고 사는 노예같은 삶이 된다 할지라도 기름진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분열왕국 시대에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은 아합 왕이었고, 가장 악한 여인은 그의 아내 이세벨이었습니다. 아합왕이 바로 잇사갈 출신이었고, 그 때문에 이세벨의 바알숭배, 앗세라 숭배의 진원지가 된 곳도 바로 잇사갈이었습니다. 아합은 악한 왕이었지만 사실 그의 시대는 정치적인 풍요를 누리던 시대였습니다. 물질적인 풍요에 묻히다 보면 영적인 궁핍을 피할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전부는 아닙니다. 물질적인 풍요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영적인 풍요이며, 영혼들의 풍요입니다. 교회는 풍요로울 때일 수록 눈을 밖으로 돌려야 합니다. 잇사갈을 축복할 때, 스불론과 묻어서 같이 축복하였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풍요에 파묻혀 안에 거하기만 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세울 수가 없습니다. 풍요로와 질수록 스불론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자기가 밖으로 갈 수 없으면, 보내기라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적 풍요를 주신 이유는 풍요에 목매라는 것도, 그저 풍요를 누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모래에 감추인 보배들을 찾아 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풍요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끼리만 풍요롭게, 우리끼리만 즐겁게, 우리끼리만 하나되어, 우리만의 평화로운 교회를 만들려는 교회는 마귀의 압제를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미 풍요의 노예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풍요는 마귀가 쳐놓은 가장 힘있는 덫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나라가 역동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풍요 속에 안주하게 하고, 정적으로 머물러 있게 합니다. 우리의 쉬는 땅이 보기에 좋고, 우리의 차지한 땅이 아름답게 여겨져, 안주하는 순간 우리는 그 풍요를 누릴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그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 값은 ‘마귀의 종 노릇’이라는 치욕적인 값입니다. 

우리는 분명 건장한 나귀와 같은 헌신과 시대를 읽는 분별력과 그에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영성이 무너져 있다면 순종과 헌신과 지혜는 악한 것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본질이 무너져 있다면, 순종은 잘못된 관습에 대한 순종이 되고, 헌신은 악한 전통에 대한 헌신이 되며, 지혜는 세상 풍요를 탐하는 지혜가 되기 쉽상입니다. 우리의 헌신과 지혜가 영혼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본질 안에서 발휘되는 헌신과 지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납달리,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예수님의 암사슴]]-----

[창세기 49:21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신 33:23..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

1. 아픔의 이름 납달리

납달리는 야곱의 여섯 번째 아들로서 빌하의 차남입니다. 납달리의 어머니 빌하는 원래 라헬의 몸종이었습니다. 아이를 못 낳던 라헬은 몸종 빌하를 야곱에게 주어 임신하게 한 후 자기 무릎 위에서 출산하게 함으로써, 두명의 아들을 얻습니다. 첫째는 단, 둘째는 납달리입니다. 

라헬은 빌하를 통하여 둘째 아들을 낳은 후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는 의미에서 아들을 ‘납달리’라 부릅니다. 납달리는 “경쟁, 다툼”의 뜻입니다. 

이름 안에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라헬의 아픔이 담겨 있고, 자신이 낳은 아들의 이름에 치기어린 주인의 감정이 실리는 빌하의 아픔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2.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놓인 암사슴

야곱은 납달리를 축복할 때에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라고 예언합니다. 

암사슴은 아름다움과 빠름의 상징입니다. 암사슴은 아름다우며 겁이 많은 짐승으로 위험이 닥치면 항상 빠른 발을 이용해 도망할 준비부터 합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사슴을 길들여서 짐을 실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납달리 지파는 암사슴처럼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로운 지파였습니다. 납달리를 매여있는 암사슴이 아니라 풀어 놓은 암사슴으로 비유한 야곱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유대 전승에 의하면 납달리는 실제로 뜀박질에 가장 능한 지파였다고 합니다. 한마리의 아름다운 암사슴이 그 빠른 발로 자유롭게 초원을 누비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이 납달리가 받은 복이었습니다. 납달리는 또한 아름다운 소리를 발할 것이라고 예언되어졌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3. 자유를 누리는 예수님의 암사슴

납달리 지파가 빠른 발을 가졌고, 자유로웠으며,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다는 실질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들 이면에는 구속사적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발할 것이라는 예언은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납달리가 분배받았던 땅은 갈릴리 지역으로 예수님의 주 활동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천국복음이 가장 먼저 발하여 진 곳이 곧 납달리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납달리에 위치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본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풀어놓은 한마리의 아름다운 암사슴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의 짐을 지고 이 땅을 살다가, 죽음의 사슬에 묶여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하며, 형벌의 멍에를 지고 영원한 벌을 받아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가 풍성하고 하나님의 복이 가득한 자들, 즉 납달리로 택정되어졌기에 그 어떤 짐도 사슬도 멍에도 매지 않은 “풀어놓은 암사슴”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모든 짐과 사슬과 멍에를 예수님께서 감당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암사슴이라 불러 주십니다. 암사슴은 아름다운 신부에 대한 비유입니다. 

아가서 8:14는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라고 노래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우리는 꽃들이 아름답고 그 향내가 진동하는 아름다운 초원에서 신랑되신 예수와 함께 뛰어 노는 한마리의 아름다운 암사슴인 것입니다. 

납달리의 출발은 아픔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라헬의 아픔을 그 이름에 담고 있으며, 그 친 어미 빌하는 이복 형 르우벤과 간통을 하는 죄를 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슬픔과 더러움의 아들 그것이 납달리의 출발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야곱은 그런 납달리를 놓인 암사슴으로 부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아픔의 아들이요, 죄의 아들인 우리를 죄와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시고 빠르게 뛰어노는 암사슴으로 불러주셨습니다. 

4. 자유를 주는 하나님의 은혜

납달리에 대한 모세의 예언도 예수님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납달리에 대해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라고 축복합니다. 

납달리는 모세의 예언대로 갈릴리 바다의 서쪽과 남방까지를 경계로 차지했습니다. 그 땅은 비옥하고 풍요로와서, 성전에 바치는 첫 열매를 가장 먼저 바쳤던 지파가 납달리 지파였습니다. 그러나 납달리가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역시 구원에 대한 “아름다운 소리”가 가장 먼저 발해진 곳이 납달리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납달리는 천대받고 멸시받는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땅에 등장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땅은 은혜가 풍성하고 하나님의 복이 넘치는 땅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역을 통해 그들을 묶고 있는 모든 속박과 멍에를 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가 가장 먼저 이 땅에 실현된 곳,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곳, 그곳이 곧 납달리였던 것입니다. 

자유롭게 뛰어노는 암사슴이 더욱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과거가 아픔이었고 더러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암사슴이 이제는 더이상 슬픔과 죄의 멍에를 홀로 감당하는 자가 아닌, 강하고 멋진 신랑 “예수”를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삶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전의 사연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5. 암사슴이 빨리 달리는 이유 – 율법이 아닌 은혜

암사슴이 빨리 달릴 수 있는 이유는 그에게 자유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죄로부터의 속박도 속박이지만, 율법의 속박을 풀어주시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유대인들은 율법의 멍에를 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은혜는 그 율법의 멍에로부터 그들을 자유케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크리스쳔들은 율법으로 다시 회귀하곤 합니다. “이러면 안돼, 저러면 안돼, 이렇게 살아야 해, 저렇게 살아야 해” 등등의 올무로 자기 스스로를 학대할 뿐 아니라, 형제 자매를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란 자유입니다. 진리는 그것을 받아 들인 자를 자유케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이유는 우리에게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면 율법을 지키기 위해 멍에를 매는 것이 아니라 심령에 내주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씀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함 속에 거룩함이 임한다는 것이지요. 율법주의에 매여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복음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람을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합니다. 

6. 예수님의 암사슴이 달려가야 할 길과 발해야 할 소리

암사슴은 빨리 달리며, 아름다운 소리를 발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풀려진 암사슴은 빠른 발로 달려야 하는 목적지가 있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벌판에서 혼자 고고, 디스코, 트위스트 추라고 자유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인 우리를 풀린 암사슴으로 만들어 주시면서 푯대를 주셨습니다. 

그 푯대를 향해 달리라는 것이지요. 그 푯대는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름다운 소리를 통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리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소리입니다. 

예수님만이 슬픔과 고통에 매여 있는 또 다른 암사슴들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듣지 못한 수많은 매인 암사슴들을 향해 우리는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목소리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하나는 풀린 암사슴의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보여줌으로 복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는 별개로 예수님의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온전하지 못할 지라도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말씀을 우리는 선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선포되는 말씀에 신뢰가 가기 위해서는 역시 말씀을 전하는 자가 우아해보여야 합니다. 

사슴이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데, 그 삶의 모습은 꼬질 꼬질 때가 타 있다면, 매인 암사슴들은 코웃음을 치며 말할 것입니다. “글쎄… 나는 너처럼 되고 싶지 않아. 그냥 이대로 살다 죽을래.”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입술을 통해, 그리고 삶을 통해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암사슴이 되어야 합니다.....https://www.livingspring.net/genesis


===모세의 축복


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4.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5.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수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

....NASB,NKJV, RSV에서는 모세를 나타낼 때는 he, 여호와를 나타낼 때는 He로 구분해서 쓰고 있는데 "그가 여수룬의 왕이셨다."And He was king in Jeshurun, When the heads of the people were gathered, The tribes of Israel together.."에서는 He를 쓰고 있다...그런데, KJV에서는 그냥 he로 쓰고 있다..And he was king in Jeshurun, when the heads of the people and the tribes of Israel were gathered together..[(Rec)신33:5..백성의 우두머리들이 모이고 / 이스라엘 지파들이 함께 모일 때에 / 주님은 여수룬의 왕이셨습니다.”(And He was King in Jeshurun,/ When the heads of the people gathered themselves, / The tribes of Israel together)]....모세는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이 생략된 것으로 보고 있었을까?) 여수룬의 왕이었다(신 33:5)고 읽는 것이 KJV와 매튜 헨리의 관점!!. ::: 그러나!! 이 표현은 분명히 다소 어폐가 있는 것 같다. 주님이 친히 영원히 여수룬의 왕이시며, 모세, 그는 그분의 "집을 맡은 종"이었다고 바울은 언급하고 있다!! 비록 일정 기간 동안 (일정 한계 내에서 주님을 대신하도록 맡겨주셔서) 권한을 위임 받은 대리권위자를 지칭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비록 그 자신이  위임 받은 바 [왕]의 권한을 발휘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자신은 왕이 결코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믿는 우리 역시 그러하다<작은 그리스도로되, 유일무이하신 그리스도 그분 자신은 결코 아니다>...믿는이는 세상의 관점과는 달라야 한다!!

6.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7.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믿음-감사-찬송>의 음성<=기쁨의 경배 소리>을 들으시고<=샤마..듣고 준행하다> [유다의 음성 = 그리스도 예수= 여호와 구원자, 그분을]그의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의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가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완전-무결-성실>과 우림<우르(불꽃)의 복수형>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출28을 보라....<흉패 안의 둠밈과 우림은 꺼내 놓으면 모두 일종의 조명기로서 작용했으리라...12지파의 대표 보석으로 만든 흉패를 착용하고 대제사장이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인도를 구하기 위해 ] 지성소에 들어가 주님의 의향을 알고자 할 그 때, 둠밈과 우림을 노출시킨 상태에서 시은좌의 영광의 빛의 공명 통해 주님 뜻 알게 하셨을 것으로 보임...히브리어 알파벳 22 자 중 18개가 흉패 보석의 12지파 이름 안에 포함되어 있었고 나머지 네 자는 흉패에 부착된 둠밈에 포함되어 있어서 한 글자 글자마다 명확히 빛을 냄<긍정적 의미의 지명> 또는 꺼짐<부정적 의미의 지명> 통해서도 단어나 문장을 구성해 내는(대제사장은 유달리 빛을 내는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받아 순서대로 기록함으로써 주님의 뜻을 알 수도 있었을 것)  일종의 주님의 지시하심을 표현하는 타자기 + 조명기 역할을 했었다고 본다.

9.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저들이 모세의 편(따라서 하나님의 편)을 들어서 금송아지 숭배자들을 치고(출 32:26 이하), 그 죄악에 가담한 백성의 두령들을 처단하는 데 있어서 지극히 공평하여 사사로운 정을 두지 아니했기 때문이니,.. 저들이 이 세상에서 가진 친구들이 비록 가장 가까운 친지처럼 저희에게는 친절했다고는 하지만, 만약 그 친구들이 우상 숭배자인 경우에는 살려 두지 않았던 것이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11.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날마다의 삶 가운데, 또한 궁극적으로도 그렇게 하시리라!!...이는 그리스도의 확장과 증대 결과이다!!

12.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Q이 만드신 바, [오른손의 아들]이란 별명 그대로 그분의 친밀한 사랑 입음...분배 받은 지역 위치가 예루살렘 바로 위 마치 어깨 모양의 경계선을 가졌다.

13.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과

14.  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선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선물과

15.  옛 산의 좋은 산물과 영원한 작은 언덕의 선물과

16.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17.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민족들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자손은 만만이요 므낫세의 자손은 천천이리로다

.....[=요셉, 주께서 도우시고 더하심의 은총 입는 자, 그 무엇보다도 먼저 Q으로만 사는 법을 배워 익히는 자. <예기치 못한, 그러나 Q이 미리 아시고 예비하신, 그에게 꼭 필요하다고 여기셔서 허락하신> 삶의 시련과 고난 중에도 일편단심으로 주 앞에서 완전한 믿음-소망-사랑겨운 순종과 교통으로 사는, 오직 "주님 자신을 더하시도록" 기도하고 추구하며 그분으로 적셔지고-점유-충만-변화-공급/산출/양육/보호하며 사는 자, 진정한 영적 아비-어미]....Q이 잊게 하신 바 잊어 뒤로 던져 버리고, 생명 산출/양육-공급/보호/인도/양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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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밖으로 나감을 기뻐하라<사도-전도자..영적 아비...진취적..싸우며 탈취함으로 영적 생명 낳는 자>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선지자-교사-목자; 산출-양육하는 영적 어미>

19.  그들이 백성들을 불러 산에(여호와의 산!!) 이르게 하고 거기에서 <보혈-성령-Q말씀따라 동행-동거-동주-하나됨의 찬송, 살아낸 그리스도를 드림의>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진정 그리스도를 드릴 때, 주님의 모든 풍성-부요-충만 참되게 얻고 누림 열릴것!!...나 주님의 기쁨!>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축복]

모세는 줄곧 각 지파마다 그 특징에 따라 축복의 내용을 말하여 왔는데 스불론 지파와 잇사갈 지파는 함께 축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불론과 잇사갈은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아들들로서, 스불론은 11번째 아들이고 잇사갈은 10번째 아들이며 두 지파는 함께 묶여 모세의 축복을 받지만 그 내용은 서로 상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불론은 밖으로 나감을 기뻐하라고 하고. 잇사갈은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고 하고 있다.

이 내용은 야곱의 축복에서도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유언의 축복을 남길 때, 스불론에게는 이렇게 축복하고 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리고 잇사갈에게는 이렇게 축복하고 있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스불론 지파는 후에 대지중해까지 진출하여 해변을 통해<해상무역> 살았던 지파였다. 그들의 주업은 무역업이었고 잇사갈 지파는 비교적 이스라엘 땅 내륙에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건장한 나귀 같다는 야곱의 말처럼 모세도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고 축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스불론 지파와 잇사갈 지파에 대한 축복의 내용의 특징 둘 다 명령형 이라는 것이다. 

스불론은 밖으로 나감이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고. 잇사갈은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는 명령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세가 마치 명령과 같은 축복의 말씀을 남긴 이유는, 스불론이 밖으로 나가고 잇사갈이 장막에 있는 것이 그저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일이기 때문인데,,,. 당시에는 배로 무역업을 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 했던 일이요. 또한 잇사갈도 장막에 있는 것이 그저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야곱의 유언에서 잇사갈에 대한 유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쉴 곳도 좋고, 토지도 아름다운데, 정작 잇사갈은 건장한 나귀로서 어깨에 짐을 매고 압제에서 섬기게 된다는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가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스불론에게는 나감을 기뻐하라는 명령을 한 것이고, 압제를 당하듯이 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잇사갈에게는 장막에 있음을 기뻐하라는 명령을 한 것이요. 그래서 사실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축복은 축복이 아니라 권면과 위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그러한 수고와 헌신 그리고 희생과 섬김이 이스라엘 전체에 큰 지지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수고의 결과가 19절 “그들이 백성들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인 것이다....스불론이 목숨 걸고 바다에서 무역을 해 온 것으로 이스라엘은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누리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잇사갈의 희생과 같은 노동은 이스라엘이 산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에 사용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수고와 헌신이 단지 우리를 향하고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또한 우리가 공동체 전체의 기쁨을 바라보며 함께 섬길 때, 때로는 힘들고 어렵고, 수고스러운 상황이 오더라도 기쁨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기억하셔서, 서로의 기쁨을 위해 섬길 수 있는 하루가 되시고, 또한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여 함께 이 은혜를 누리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하면서, 오늘도 기쁨과 감사로 하루를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20.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하게 하시는 이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용맹....다윗군대의 용장들이 나왔음) 같이 엎드리고 팔(대적의 힘)과 정수리(지혜와 모략)를 찢는도다.....<8. 갓 사람 중에서 광야에 있는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의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9. 그 우두머리는 에셀이요 둘째는 오바댜요 셋째는 엘리압이요 10. 넷째는 미스만나요 다섯째는 예레미야요 11. 여섯째는 앗대요 일곱째는 엘리엘이요 12. 여덟째는 요하난이요 아홉째는 엘사밧이요 13. 열째는 예레미야요 열한째는 막반내라 14. 이 갓 자손이 군대 지휘관이 되어 그 작은 자는 백부장이요, 그 큰 자는 천부장이더니 15. 정월에 요단 강 물이 모든 언덕에 넘칠 때에 이 무리가 강물을 건너서 골짜기에 있는 모든 자에게 동서로 도망하게 하였더라 (역대상 12장 8-15절)>

21.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입법자의 분깃으로 준비된 것이로다(직접 모세로부터<곧 구하는 바를 Q으로부터>, 주님이 따로 예비해 두셨던 분깃을!! (구한 바 그대로..물론, 처음엔 모세에게 완곡하게 거절 당했지만!!) 인정받았음...그러나, 끝까지 깨어 주님을 의뢰하지는 못했고 곁길로 빠져들었다) 그가 백성의 수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약속대로 가나안 전쟁의 선봉에 서서 그 의무를 다하게 될 것을 예언함)

22.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야곱은 독사라 했으나, 모세는 (성령으로 사는!!...나실인- 이긴 자!! 삼손을 바라보며, 또한 골란고원 일대로 이주할 것을 미리 보고 있었을까?)

23.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쪽[=갈릴리호수 지역 서부의 대부분, 대해로 진출 연습 교두보]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

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감람유의 주 산지!!..영적 의미가 크다)

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오직 주 안에서!!..특별히, 스불론<해외선교.. 확장>-잇사갈<국내선교 + 영적 후사 산출 양육>-단<오직 주 안에서!! 강하고 담대함 = 참되고 진정한 용력 발휘함>-납달리<오직 주 영광 누림의 산 믿음으로!!..선교 연습과 실천의 장>-아셀<오직 성령으로!!>에 대해 묵상이 더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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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AMP----

1.  Now this is the blessing with which Moses the man of God blessed the sons of Israel before his death.

2.  And he said, "The LORD came from Sinai, And dawned on them from Seir; He shone forth from Mount Paran, And He came from the midst of ten thousand holy ones; At His right hand there was flashing lightning for them.

3.  "Indeed, He loves the people; All Thy holy ones are in Thy hand, And they followed in Thy steps; [Everyone] receives of Thy words.

4.  "Moses charged us with a law, A possession for the assembly of Jacob.

5.  "And He was king in Jeshurun, When the heads of the people were gathered, The tribes of Israel together.

6.  "May Reuben live and not die, Nor his men be few."

7.  And this regarding Judah; so he said, "Hear, O LORD, the voice of Judah, And bring him to his people. With his hands he contended for them; And mayest Thou be a help against his adversaries."

8.  And of Levi he said, "[Let] Thy Thummim and Thy Urim [belong] to Thy godly man, Whom Thou didst prove at Massah, With whom Thou didst contend at the waters of Meribah;

9.  Who said of his father and his mother, 'I did not consider them'; And he did not acknowledge his brothers, Nor did he regard his own sons, For they observed Thy word, And kept Thy covenant.

10.  "They shall teach Thine ordinances to Jacob, And Thy law to Israel. They shall put incense before Thee, And whole burnt offerings on Thine altar.

11.  "O LORD, bless his substance, And accept the work of his hands; Shatter the loins of those who rise up against him, And those who hate him, so that they may not rise [again.]"

12.  Of Benjamin he said, "May the beloved of the LORD dwell in security by Him, Who shields him all the day, And he dwells between His shoulders."

13.  And of Joseph he said, "Blessed of the LORD [be] his land, With the choice things of heaven, with the dew, And from the deep lying beneath,

14.  And with the choice yield of the sun, And with the choice produce of the months.

15.  "And with the best things of the ancient mountains, And with the choice things of the everlasting hills,

16.  And with the choice things of the earth and its fulness, And the favor of Him who dwelt in the bush. Let it come to the head of Joseph, And to the crown of the head of the one distinguished among his brothers.

17.  "As the first-born of his ox, majesty is his, And his horns are the horns of the wild ox; With them he shall push the peoples, All at once, [ to] the ends of the earth. And those are the ten thousands of Ephraim, And those are the thousands of Manasseh."

18.  And of Zebulun he said, "Rejoice, Zebulun, in your going forth, And, Issachar, in your tents.

19.  "They shall call peoples [to] the mountain; There they shall offer righteous sacrifices; For they shall draw out the abundance of the seas, And the hidden treasures of the sand."

20.  And of Gad he said, "Blessed is the one who enlarges Gad; He lies down as a lion, And tears the arm, also the crown of the head.

21.  "Then he provided the first [part] for himself, For there the ruler's portion was reserved; And he came [with] the leaders of the people; He executed the justice of the LORD, And His ordinances with Israel."

22.  And of Dan he said, "Dan is a lion's whelp, That leaps forth from Bashan."

23.  And of Naphtali he said, "O Naphtali, satisfied with favor, And full of the blessing of the LORD, Take possession of the sea and the south."

24.  And of Asher he said, "More blessed than sons is Asher; May he be favored by his brothers, And may he dip his foot in oil.

25.  "Your locks shall be iron and bronze, And according to your days, so shall your leisurely walk be.

26.  "There is none like the God of Jeshurun, Who rides the heavens to your help, And through the skies in His majesty.

27.  "The eternal God is a dwelling place, And underneath are the everlasting arms; And He drove out the enemy from before you, And said, 'Destroy!'

28.  "So Israel dwells in security, The fountain of Jacob secluded, In a land of grain and new wine; His heavens also drop down dew. 

29.  "Blessed are you, O Israel; Who is like you, a people saved by the LORD, Who is the shield of your help, And the sword of your majesty! So your enemies shall cringe before you, And you shall tread upon their high places."

---KJV------

1.  And this is the blessing, wherewith Moses the man of God blessed the children of Israel before his death.  2.  And he said, The LORD came from Sinai, and rose up from Seir unto them; he shined forth from mount Paran, and he came with ten thousands of saints: from his right hand went a fiery law for them.  3.  Yea, he loved the people; all his saints are in thy hand: and they sat down at thy feet; every one shall receive of thy words.  4.  Moses commanded us a law, even the inheritance of the congregation of Jacob.  5.  And he was king in Jeshurun, when the heads of the people and the tribes of Israel were gathered together.  6.  Let Reuben live, and not die; and let not his men be few.  7.  And this is the blessing of Judah: and he said, Hear, LORD, the voice of Judah, and bring him unto his people: let his hands be sufficient for him; and be thou an help to him from his enemies.  8.  And of Levi he said, Let thy Thummim and thy Urim be with thy holy one, whom thou didst prove at Massah, and with whom thou didst strive at the waters of Meribah;  9.  Who said unto his father and to his mother, I have not seen him; neither did he acknowledge his brethren, nor knew his own children: for they have observed thy word, and kept thy covenant.  10.  They shall teach Jacob thy judgments, and Israel thy law: they shall put incense before thee, and whole burnt sacrifice upon thine altar.  11.  Bless, LORD, his substance, and accept the work of his hands; smite through the loins of them that rise against him, and of them that hate him, that they rise not again.  12.  And of Benjamin he said, The beloved of the LORD shall dwell in safety by him; and the Lord shall cover him all the day long, and he shall dwell between his shoulders.  13.  And of Joseph he said, Blessed of the LORD be his land, for the precious things of heaven, for the dew, and for the deep that coucheth beneath,  14.  And for the precious fruits brought forth by the sun, and for the precious things put forth by the moon,  15.  And for the chief things of the ancient   mountains, and for the precious things of the lasting hills,  16.  And for the precious things of the earth and fulness thereof, and for the good will of him that dwelt in the bush: let the blessing come upon the head of Joseph, and upon the top of the head of him that was separated from his brethren.  17.  His glory is like the firstling of his bullock, and his horns are like the horns of unicorns: with them he shall push the people together to the ends of the earth: and they are the ten thousands of Ephraim, and they are the thousands of Manasseh.  18.  And of Zebulun he said, Rejoice, Zebulun, in thy going out; and, Issachar, in thy tents.  19.  They shall call the people unto the mountain; there they shall offer sacrifices of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suck of the abundance of the seas, and of treasures hid in the sand.  20.  And of Gad he said, Blessed be he that enlargeth Gad: he dwelleth as a lion, and teareth the arm with the crown of the head.  21.  And he provided the first part for himself, because there, in a portion of the lawgiver, was he seated; and he came with the heads of the people, he executed the justice of the LORD, and his judgments with Israel.  22.  And of Dan he said, Dan is a lion's whelp: he shall leap from Bashan.  23.  And of Naphtali he said, O Naphtali, satisfied with favor, and full with the blessing of the LORD: possess thou the west and the south.  24.  And of Asher he said, Let Asher be blessed with children; let him be acceptable to his brethren, and let him dip his foot in oil.  25.  Thy shoes shall be iron and brass; and as thy days, so shall thy strength be.  26.  There is none like unto the God of Jeshurun, who rideth upon the heaven in thy help, and in his excellency on the sky.  27.  The eternal God is thy refuge, and underneath are the everlasting arms: and he shall thrust out the enemy from before thee; and shall say, Destroy them.  28.  Israel then shall dwell in safety alone: the fountain of Jacob shall be upon a land of corn and wine; also his heavens shall drop down dew.  29.  Happy art thou, O Israel: who is like unto thee, O people saved by the LORD, the shield of thy help, and who is the sword of thy excellency! and thine enemies shall be found liars unto thee; and thou shalt tread upon their high pl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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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3장 (개요)

지금까지 한 것으로, 모세가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할 일을 마친 것이 아니었다. 

전 장 마지막에서 그는 저희에게 마지막 작별을 한 것처럼 보였으나, 아직 그는 더 할 말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고별 설교를 아주 자세하고도 감동적 담화로 선포했다. 

그리고 그 설교를 한 뒤에 저희에게 노래, 곧 긴 시가를 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을 축복하는 일뿐이었다. 

그는 본 장에서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포하고, 그들을 하직한다.

1. 그는 하나님이 이미 그들을 위해 행하셨던 일 가운데서 특히 그들에게 당신의 율법을 주신 일에서 축복을 받았다고 선포한다(2-5).

2. 모세는 각 지파 위에 축복을 선포하는데, 그 축복은 저들의 복을 비는 기도인 동시에 예언이 된다.

   (1) 르우벤(6). (2) 유다(7). (3) 레위(8-11). (4) 베냐민(12). (5) 요셉(13-17). (6) 스불론과 잇사갈(18, 19). (7) 갓(20, 21). (8) 단(22). (9) 납달리(23). (10) 아셀(24, 25).

3. 모세는 그들 모두를 한데 묶어 축복을 선포하는데, 이는 저들이 순종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시리라는 이유에서다(26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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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축도(신 33:1-5)

첫째 구절은 본 장의 표제다. 그 표제는 축복이다. 

모세는 전 장에서 저들의 죄악을 인해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공포를 발했으므로, 전 장은 애가와 애도 및 비통으로 가득 찬 에스겔서와 같은 장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런 것을 무마하고 자기가 분노 중에서 작별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축복을 첨가하고 평강을 남긴다. 

그 평화는 화평의 아들들 중에 거하는 모든 자에게는 임할 평화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서 마지막으로 행하신 일은 본 장의 모세처럼 서로의 우애 속에서 작별한다는 표시로서 제자들에게 축복을 하신 일이었다(눅 24:50).

--- 모세는 한 선지자로서, 곧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저들을 축복했다. 

하늘 나라에 관계된 자들의 기도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임을 알자. 그것이 곧 “선지자의 상”이다(마 10:41). 

모세는 이 축복에서 자기 백성에게 그의 축원을 발표할 뿐 아니라, 예언의 영에 의해 저들에게 일어날 일까지도 예언하고 있다.

---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한 어버이로서 저들을 축복했다. 

어진 임금은 그 백성들에게 어버이와 같기 때문이다. 임종 시의 야곱이 그 아들들을 축복했는데(창 49:1), 그의 모본에 어긋나지 않게, 모세도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난 각 지파들을 축복한다. 이것은 비록 저들이 가증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발했다고 할지라도 축복의 상속권이 상실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가 죽기 직전에 이 일을 행함은 그들에게 더 한층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비록 자기는 죽어야 하고 그들과 동참할 수는 없으되 저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는 자기의 호의를 그들에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다. 

모세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율법 주실 때에 나타내신 당신의 영광스러운 현현과 그것으로 인해 저들이 누렸던 위대한 이익을 장엄하게 묘사해 주는 말로 시작된다.

Ⅰ.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엄위가 눈에 선하게 나타나 있으니, 가히 무신론자와 불신앙인을 깨우치고 침묵시킬 만하며, 아주 우둔하고 경솔한 자들을 각성시키며 감동시키기에 족하고, 다른 신들에게 은밀히 이끌리는 모든 자에게 부끄러움을 주기에 충분했다(2절).

1. 하나님의 현현은 영광스러운 모습이었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행하실 때에는 태양처럼 빛을 발하셨다. 얼마간 거리에 떨어진 두 산 세일과 바란까지도 시내 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조명을 받았고, 그 빛을 다소 반사했으니, 그 현현은 너무 휘황찬란하여 인접한 나라들도 매우 주목했다. 선지자도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섭리의 기이함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했다(합 3:3, 4; 시 18:7-9). 

예루살렘 탈굼은 이것을 진기하게도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려고 하강하셨을 때 먼저 그는 세일 산에서 에돔인들에게 율법을 제시하였으나 저들이 그것을 거부했으니, 이는 저들이 그 안에서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바란 산에서 이스마엘인들에게 그것을 주셨으나 저들 또한 그것을 거절했으니, 이는 그 율법 안에서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조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시내 산으로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율법을 주셨고, 저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저희가 행하리이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탈굼이 오래 되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이런 근거 없는 허구를 옮겨 적지도 않았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종자(從者)들도 영화스러웠다. 

에녹이 오래 전에 그 분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러 마지막 날에 오시리라고 예언했던 바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일만 성도와 함께 강림하셨다(유 14). 

이들은 천사들이었고, 여호와께서 계셨던 “성소”에 있던 “하나님의 병거”들이었다(시 68:17). 

저들은 존엄한 하나님을 수종드는 자들이었고, 그 날의 엄숙한 의식에 봉사하도록 고용된 하나님의 하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은 “천사의 전한” 것이라고 일컬어진다(행 7:53; 히 2:2).

Ⅱ. 하나님이 저들에게 당신의 율법을 주셨다. 그 율법은,

1. 불 같은 율법이라 일컬어진다.

 이는 율법이 불 가운데서 저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며(신 4:33), 또 그 율법은 불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율법을 받으면 무엇이나 녹으며, 따뜻하게 되고, 깨끗하게 되며, 부패의 더미가 타 버린다. 

만약 율법을 거절하면 무엇이나 완악하게 되며, 시들게 되고, 고통을 주며, 파괴한다. 성령은 불의 혀같이 임했다. 그것은 복음도 또한 불같은 율법인 까닭이다.

2. 율법은 “그 오른손”에서 온다고 일컬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이 석판 위에 율법을 썼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율법의 권능과 힘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율법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것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할 것이다. 혹은 율법은 저들에게 내린 선물이었으니 귀한 선물, 즉 오른손으로부터 내리는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3. 그것은 하나님이 저희를 위해 품으셨던 특별한 친절의 한 본보기였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신다”(3절). 그러므로 그것이 불 같은 율법이었을지라도, “저희를 향해”(KJV) 있는, 곧 저들에 유익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2절). 

마음에 쓰여진 하나님의 율법은 거기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임을 명심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그 분의 은총의 선물 중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참으로, 그 분은 그 백성을 안으셨으며 “가슴에 품으셨다.” 

이 말씀은 가장 자애로운 하나님의 사랑을 뜻할 뿐만 아니라 가장 따사롭고 주의 깊은 보호를 나타내기도 한다.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혹자는 이 구절이 특별히 시내 산에서의 사건을 의미한다고 본다. 

거기서는 너무나 두려움이 극심하여 모세까지도 떨었지만,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보살피사 생존케 하셨던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살았다고 했다(신 4:33). 아니면 그 말씀은 하나님이 그들을 그 분의 율법으로써 하나의 민족을 이루게 하셨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듯이, 그 분이 저들을 형성하고 주조하여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곱 별이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은 것처럼(계 1:16) 저들이 하나님의 손에서 엄호받고 보호되며 사용되고 처리됨을 뜻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그 분의 모든 성도를 자기 수중에 장악하고 계시니, 비록 그 분의 성도가 일만이 있다 할지라도(2절), 바다를 측량하시는 그 분의 손은 능히 저들 모두를 장악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크고 충분히 강하심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저희를 그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음”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요 10:28).

Ⅲ. 하나님은 당신이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그들이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셨다.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이는 흡사 스승이 자기들에게 전수해 주는 것을 학생들이 겸손히 청종하고, 시중하며 존경하는 표시로 그 스승의 발 앞에 정좌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산 기슭에 앉아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무엇이든 간에 듣고 준행할 것을 약속했던 것이다. 

어떤 자는 이 구절을 저들이 “당신의 발에 달려들었다”고 해석한다. 그것은 시내 산의 두려움으로 인함이요, 그것으로 인해 저들이 그 당시에는 당분간 스스로 크게 겸손해 했다(출 20:19). 그 때에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 채 서 있었고, 또 율법이 여호수아 8장 34절에서와 같이 저들에게 공표될 때에 또다시 그러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우리에게 다시 또 그 말씀을 들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큰 특전이요 은혜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요 17:26). 

그래서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저희의 기도와 그밖에 살아 있는 신탁에 의해 계속 율법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감사하여 율법 그 자체와 아울러 그 율법을 가져다 준 모세를 영광되이 기억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4, 5절). 

시리아의 역본 두 가지는 “이스라엘 자손이 말하되, 모세가 우리에게 한 율법을 명하였도다”라고 해석한다. 

또 유대인이 말하는 바로는 아이가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대로 그 아버지는 “모세가 우리에게 한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라는 말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1. 그들은 율법을 지극히 존중하라는 교훈을 받았다. 그래서 그 율법을 “야곱의 총회의 기업”으로 부르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1) 그들은 그 율법이 자기들에게만 특유한 것으로 보았다.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며, 이방 족속은 율법에 대한 지식도 없고(시 147:20) 저들이 안다고 해도 이스라엘처럼 지켜야 할 의무는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패트릭 주교의 말대로) “유대인들이 어떤 나라를 정복하면 그 피정복민 누구에게라도 모세의 율법을 모두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아니하고, 단지 노아의 일곱 계율에만 복종하도록 요구했다.”

(2) 율법을 저들에게 상속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들의 자손에도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다.

(3) 그들은 율법을 저들의 재산과 진정한 보물로 삼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총의 방편을 즐거워하는 자들은 “우리는 훌륭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하게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부자다. 여기에서 율법은 기업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이것은 저들에게 기업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며, 또 그것이 기업과 그토록 밀착되어 있어서 율법을 저버리면 기업을 몰수당하게 되기 때문이다(시 119:111 참조).

2. 그들은 모세를 크게 존경하라는 교훈을 받았다. 

그리고 모세가 그런 영예를 자기 집안에 국한시키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모세의 이름을 더욱더 잘 받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사장들이 “아론의 아들들”이라 칭함을 얻었던 것처럼, 모세의 후손들은 “모세의 아들들”이라고 불린 적이 결코 없었다.

(1) 그들은 모세를 자기들 민족에 대한 큰 은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율법을 명하였던” 것이다. 율법이 비록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모세의 손을 거쳐 전해졌기 때문이다.

(2) 여호와 Q, 그는 “여수룬의 왕”이었다.(매튜 헨리는 He란 주어를 여호와가 아니라 모세로 보고, "모세, 그가 여수룬의 왕이었다"고 (민수기1장 해석에서 언급하고 있다).그의 마음에 그렇게 바라며 또 그렇게 이해하고 싶어했다고 본다!!...모든 왕과 방백들, 위정자들마다 모세처럼 주님과 친밀함 안에서 청종하는 이로서 맡은 바 충성 다하게 되기를!!) 그는 저희에게 “율법을 명하고” 난 후에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율법이 잘 준행되고 있으며 실시되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그런 왕을 가지고 있으매 행복했다. 그 왕은 저희를 다스렸고 저희 앞에서 늘 출입했으나, “백성의 두령이 함께한 때”, 말하자면 국회에 모였을 때 유달리 위대하게 보였고, 모세는 그들 중에 주재하는 자가 되었다. 

혹자는 이를 하나님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이해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저희 왕으로 스스로를 공포하시고 저희가 여수룬, 곧 정직한 백성으로 지내는 동안은, 또 저희가 자기를 배척할 때까지는 저희의 왕으로 계속 계실 터였다(삼상 12:12). 

그러나 이것은 모세 자신에 관해 이해되는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좋은 정부는 어떤 민족에게나 큰 축복이 되며, 그들이 감사해마지 않을 만한 이유가 된다. 

또 모세 당시의 이스라엘이나 우리(영국)의 정부처럼 각 지파의 두령이 함께 모였을 때, 여수룬의 왕과 지파들의 두령들이 권력을 분배하고 있는 헌법은 복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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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우벤과 유다에게(신 33:6-7)

Ⅰ. 르우벤의 축복을 선언했다. 비록 르우벤이 그의 생득권의 영광을 상실했을지라도, 모세는 르우벤부터 시작한다. 

수치당한 자를 모욕해서는 안 되며, 처음부터 비록 그가 아무리 공정하게 오명을 쓰게 되었다 하더라도, 불명예의 오점을 영속적으로 씌우고자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6절).

1. 모세는 르우벤 지파의 보존을 소원하고 또 예언한다. 

비록 건너편 요단 강 쪽 일선에 위치한 지파이지만, 그래도 “살게 해 주셔서, 그 이웃 민족에 의해 멸망당하거나 그들 중에서 없어지지 않도록 하소서”라고 했다. 

아마 모세는 여기에서 르우벤 지파 가운데서 뽑힌 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자기 가족들을 떠나 자기들에게 이미 맡겨진 운명의 제비를 뽑고 “저희 형제들보다 앞장서서 무장하여 건너갈”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었다(민 32:27). 

“이 고귀한 원정에서 저들로 보호받게 하시고 저들의 머리가 싸움의 날에 엄호받게 하소서!” 하는 뜻이다.

2. 모세는 이 지파의 수가 증가하기를 원하고 예언한다.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 혹은 “그들의 사람 수가 많아지기를 원하노라.” 즉 “수많은 족속이 되기를 원하노니, 비록 저희가 다른 명예들을 놓쳐서 빼어난 민족이 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저희로 번성하게 하소서” 하는 뜻이다. “르우벤 지파는 비록 그 사람 수가 소수일지라도 살고 죽지 아니하게 하소서.” 

그래서 패트릭 주교는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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