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하23장...[391.오 놀라운 구세주]..주가보이신생명의길..**겸손이란(앤드류 머레이)... Q 경영하심의 손길 방식 안에서 자기를 해석함*** ===다윗의 마지막 말 .......[왕적 제사장, 목자] 주님의 보혈에 씻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새로운 존재...맑고 밝고 가볍고 분명-명료-쾌청함//다정다감-부드럽게 어루만짐-온화함-민감하게 소통하는 영 충만...:: [새로이 베풀어 주시는 날마다...무지무각, 무력무능 자각] 완전하신 Q 경외함 아래서-사랑과 공의/인자와 진실/인내-온유-절제로 돌보며 인도함 아래..바로 그렇게 맡기신 이들과 하나되어 교통하며 (Q 생명의 무한 공급 그 자체JC) 서로 나누며 마음-심정-눈높이 같이 하며 주님 존전에 함께 나아감...."사랑으로 역사하는 견고한/일편단심의 믿음으로!! 주와 합한, 하나인 영으로써 한영됨을 사는 참믿음"이야말로 "내주하시는 주 보시기에 합당한 절대선 = 영속적 기름부음"임을 선포하고 계심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임종직전 솔로몬에게 준 유언-왕상2장1~12절-이란 의미는 아님..내가 말씀따라 Q 경외함으로 살아보니까 결론은 ~이더라!!, 즉!! 오히려 인생 정리하는 인생의 정수= 참 생명 말씀 + 예언적 신탁의 말) 이새의 아들[한낱 베들레헴 농부의 아들로서, 시작은 미약하였던..멸시받는-별볼일 없는-낮고 천히 여김 받던 자, 그러나 기름부어 은혜로 선택하신자] 다윗[사랑받는자]이 말함이여 [주님의 작정하심대로 그리하신 바]높이 세워진 자, [고난 많은 험난한 일생이로되 포기 모르는 주님의 사랑 받은 조상 야곱,]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JC 믿고 거듭난, 말씀하며 움직이시는 주께 민감한]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늘 Q높여 찬송함으로 살아가는] 자가 말하노라 .......[벧전5:6...(말씀 묵상함 안에 깨어 민감하게 듣는 구조)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대리왕의 합당한 통치방식..주 보시기에 진정한 지도력이란 거듭난 그의 인격 속에 Q 경외함의 JC로 충만함이라.그의 삶에 Q말씀이 그대로 녹아 충만-흘러나옴 :: 오직 Q경외하기 솔선수범 통해 백성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주를 경외하며 함께 따르게 함....억지로!! 백성 윽박지름이 하나도 없었음]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Q의 백성 다스림을 위임 받은 대리왕의 마땅한바에 대해]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인자와 사랑/인내의 보듬는 손길 필요함] 하시도다 ......[히8:8.하....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벧후3: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롬6:4하..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요1: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6. 그러나 사악한 자[=벨리알]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 ***[270.. '변찮은 주님의 사랑과'] ===다윗의 용사들(요압은 빠져 있음, 우리야의 이름이 들어감) --회개/구속사, 그 인생의 고백과 찬양 행전 기록!!....구속사 관점에서!!(생명책에 기록되는 영적 참군사 명단) .....영적 의미를 깊이 살피라!! [내눈 주의 영광을 보네][나의 맘을 주께]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나의 소망은 주 경외함 내 맘을 다해 주 경배해 내 안에 모든것 주 찬양해 주님만 사모해 영원히 나의 맘을 주께 내 영을 주님께 나 주위해 살리 살아 있는 동안 어느 순간에도 나 주만 따르리 ------- [3그룹으로 나뉨]..첫째3인방(완비+충성...백성은 모름)---둘째3인방(백성들도 아는자들..부족함 있으나 충성다함...아비새-브니야+무명씨)---세째 그룹의 유명한 삼십인 용사들 ---- .....[눅10:17-20...*17.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서 1:7)
8.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대상11장) [세상은 모르나, 주님은 아시는!! ((끝까지 섬기고 나눔의)) 완비됨+ 임재하시는 여호와와 합한 한 영됨의 충성 다함+솔선수범/임전불퇴/주님의 군사된 백성에게 여호와의구원+승리 안김의 무명용사, 최고의 3인 용사 --요셉밧세벳(곧 아디노)- 엘르아살- 삼마]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앞장서서-솔선수범-임전불퇴]단번에 팔백 명을 쳐죽였더라 9.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10.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솔선수범-임전불퇴 용사들]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물러섬 없이]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13. ○[두번째 3인방...부족함 있음 + 충성 : 아비새-브나야-무명용사(아마도 요압?)...두번의 르바임골짜기 전쟁 중, 첫번째 전쟁에서 다윗은 요새화한 아둘람굴 산성에 주둔했었음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19km돌파)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다윗의 그 마음 알고 자발적으로 행함!! --JC 마음 알아드려 "지상명령으로 여기고" 그분에 대한 사랑과 목마름으로!!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행하였던 적이 있는가?]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18.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이니 그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라 그가 그의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세 사람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19. 그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20.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이니 그는 용맹스런 일을 행한 자라 일찍이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이 올 때에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쳐죽였으며 21.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그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려가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그를 죽였더라 22.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3. 삼십 명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그를 세워 시위대 대장을 삼았더라 24. (유다-이스라엘-이방인 31명....요압의 이름은 탈락!!)○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명 중의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25.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26. 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27.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28. 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29.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30.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31.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과 32.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33. 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34.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35. 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36. 소바 사람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37.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무기를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38.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39.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 [NASB]제23장
1. Now these are the last words of David. David the son of Jesse declares, And the man who was raised on high declares, The anointed of the God of Jacob, And the sweet psalmist of Israel, 2. "The Spirit of the LORD spoke by me, And His word was on my tongue. 3. "The God of Israel said, The Rock of Israel spoke to me, 'He who rules over men righteously, Who rules in the fear of God, 4. Is as the light of the morning [when] the sun rises, A morning without clouds, [When] the tender grass [springs] out of the earth, Through sunshine after rain. ' 5. "Truly is not my house so with God? For He has made an everlasting covenant with me, Ordered in all things, and secured; For all my salvation and all [my] desire, Will He not indeed make [it] grow? 6. "But the worthless, every one of them will be thrust away like thorns, Because they cannot be taken in hand; 7. But the man who touches them Must be armed with iron and the shaft of a spear, And they will be completely burned with fire in [their] place. " 8. These are the names of the mighty men whom David had: Josheb-basshebeth a Tahchemonite, chief of the captains, he was [called] Adino the Eznite, because of eight hundred slain [by him] at one time; 9. and after him was Eleazar the son of Dodo the Ahohite, one of the three mighty men with David when they defied the Philistines who were gathered there to battle and the men of Israel had withdrawn. 10. He arose and struck the Philistines until his hand was weary and clung to the sword, and the LORD brought about a great victory that day; and the people returned after him only to strip [the slain]. 11. Now after him was Shammah the son of Agee a Hararite. And the Philistines were gathered into a troop, where there was a plot of ground full of lentils, and the people fled from the Philistines. 12. But he took his stand in the midst of the plot, defended it and struck the Philistines; and the LORD brought about a great victory. 13. Then three of the thirty chief men went down and came to David in the harvest time to the cave of Adullam, while the troop of the Philistines was camping in the valley of Rephaim. 14. And David was then in the stronghold, while the garrison of the Philistines was then in Bethlehem. 15. And David had a craving and said, "Oh that someone would give me water to drink from the well of Bethlehem which is by the gate!" 16. So the three mighty men broke through the camp of the Philistines, and drew water from the well of Bethlehem which was by the gate, and took [it] and brought [it] to David. Nevertheless he would not drink it, but poured it out to the LORD; 17. and he said, "Be it far from me, O LORD, that I should do this. [ Shall I drink] the blood of the men who went in [jeopardy] of their lives?" Therefore he would not drink it. These things the three mighty men did. 18. And Abishai, the brother of Joab, the son of Zeruiah, was chief of the thirty. And he swung his spear against three hundred and killed [them,] and had a name as well as the three. 19. He was most honored of the thirty, therefore he became their commander; however, he did not attain to the three. 20. Then Benaiah the son of Jehoiada, the son of a valiant man of Kabzeel, who had done mighty deeds, killed the two [sons of] Ariel of Moab. He also went down and killed a lion in the middle of a pit on a snowy day. 21. And he killed an Egyptian, an impressive man. Now the Egyptian [had] a spear in his hand, but he went down to him with a club and snatched the spear from the Egyptian's hand, and killed him with his own spear. 22. These [things] Benaiah the son of Jehoiada did, and had a name as well as the three mighty men. 23. He was honored among the thirty, but he did not attain to the three. And David appointed him over his guard. 24. Asahel the brother of Joab was among the thirty; Elhanan the son of Dodo of Bethlehem, 25. Shammah the Harodite, Elika the Harodite, 26. Helez the Paltite, Ira the son of Ikkesh the Tekoite, 27. Abiezer the Anathothite, Mebunnai the Hushathite, 28. Zalmon the Ahohite, Maharai the Netophathite, 29. Heleb the son of Baanah the Netophathite, Ittai the son of Ribai of Gibeah of the sons of Benjamin, 30. Benaiah a Pirathonite, Hiddai of the brooks of Gaash, 31. Abi-albon the Arbathite, Azmaveth the Barhumite, 32. Eliahba the Shaalbonite, the sons of Jashen, Jonathan, 33. Shammah the Hararite, Ahiam the son of Sharar the Ararite, 34. Eliphelet the son of Ahasbai, the son of the Maacathite, Eliam the son of Ahithophel the Gilonite, 35. Hezro the Carmelite, Paarai the Arbite, 36. Igal the son of Nathan of Zobah, Bani the Gadite, 37. Zelek the Ammonite, Naharai the Beerothite, armor bearers of Joab the son of Zeruiah, 38. Ira the Ithrite, Gareb the Ithrite, 39. Uriah the Hittite; thirty-seven in all. ==== 사무엘하 23장 (개요) 이제 역사가(기록자)는 다윗의 통치를 종결지으려 한다. 그래서 여기에다 이런 얘기를 한다. 1. 그의 마지막 말 몇 마디―이것은 그가 영감을 받아 한 것이요, 전장의 말미에서 말했던 그 영원한 후손을 가리키는 것 같다(1-7). 2. 훌륭했던 인물들, 특히 군사적으로 다윗 밑에서 큰 일 한 사람들,―그 첫 3인(8-17)과 그 3인 다음가는 2인(18-23) 그리고 30인(24-39). -------- 다윗의 마지막 말(삼하 23:1-7) 여기서는 다윗 왕의 유언과 거기에 붙은 유언 보충서를 보게 된다. 그것은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나중에 지을 성전에 관한 재보를 마련한 후였다. 지위 높고 선한 사람들의 유언은 특별히 기억해 둘 가치가 있다. 다윗은 그것이 특별히 유의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시편에다가 붙이든가(여기서 앞 장의 끝에 붙였듯이), 그의 역대기에 붙여 두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특히, 이전에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 암송했던 구절인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말”이라 했을 것이다. 죽음이 다가올 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 주변에 있는 자비를, 지혜의 즐거움을 오랜동안 경험한 자들은, 일생을 마치게 될 때, 그들의 경험록을 남겨서 그 약속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증거를 남겨두도록 하라. 우리에게는 야곱과 모세, 그리고 이곳의 다윗 같은 이들의 유언 기록이 남아있다. 그것은 그들이 남기고 간 후손들의 유산을 위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이런 것을 살필 수 있다. Ⅰ. 이것은 누구의 유언인가? 일상적인 사례대로 유언자 자신이 한 최후의 말이든지 아니면 사무엘서 기록자가 전해 준 최후의 말이다(1절).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기록되었다. 1. 그의 근원부터 기록되었다. 그는 “이새의 아들”이다. 아무리 출세한 자라도 종종 “자기들이 깎아져 나온 그 바위”를 기억해 봄이 좋으리라. 2. 그의 높은 출세가 기록되었다. 그는 “높이 들려졌다.”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자가 되었고, 보다 위대한 무엇이 그에게 예정되어 있고, 자기 이웃 민족들 이상으로 뛰어났으며, 예언자처럼 앞을 내다보게 되었다. (1) 그는 “야곱의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였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의 일반 정치적 이권과 국토의 보호 및 그들에게 대한 정의의 집행에 유용한 자가 되었던 때문이다. (2) 그는 “이스라엘 중 가장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신앙에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를 쓰고, 곡을 붙이고, 노래하는 자와 악기 연주자에게 그것을 주었으며, 그것 때문에 선한 사람들의 신앙심은 크게 북돋아졌다. 시를 노래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규례요, 하나님을 찬미하기를 즐거워하는 자들에게는 매우 어울리는 일임을 기억해두자. 다윗이 시편 기자였다는 사실이 그가 유명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로 간주되어 있다. 그가 “이렇게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였기 때문에 위대하듯, 역시 시편 기자였기 때문에도 위대했었다. 참된 진급은 교회의 신앙에도 도움이 되고, 기도와 찬미의 복된 일도 증진시킨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다윗이 임군이었던가? 그것은 야곱을 위해서이다. 그가 시편 기자였던가?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해서이다. 성령의 은사는 그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유일을 끼치기 위해서다. 따라서 “각자가 은사를 받은 대로 동일한 것을 섬기라.” Ⅱ. 이 유언의 취지는 무엇인가? 다윗이 하나님과 나누었던 교제를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1. 하나님이 왕으로서의 다윗을 훈계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그리고 거의 후계자들에게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보기를 즐거워하며, 그의 말씀을 기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기를 좋아한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신 것을 다윗은 두 번씩 듣게도 되었던 것이다. (1) 누가 말씀하셨는가? “여호와의 영”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리고 “이스라엘의 반석”―혹자는 이것이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말이라 한다. 그래서 성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성자는 “이스라엘의 반석”이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왔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그 영이라 한다. 그리고 그 성령이 특별히 다윗을 통해서 말씀하셨고, 성령께서 그만이 아니라 타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다윗의 마음만이 아니라 혀까지 감동시키었다 한다. 여기에 보면 다윗은 자기가 신의 영감을 받았음을 단언하고 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해 말을 하셨도다.” 다윗과 다른 거룩한 사람들은 “성신의 감동을 받은 대로” 말하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이 사실은 시편서의 영예를 더해 준다. 성령께서 가르치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 시편을 우리의 신앙에 맞게 이용할 것을 명령해 준다. (2) 무슨 말을 했는가? 본문에 보면 성령께서 다윗을 “통해 하신 말씀과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구별하고 있는 듯하다.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해서 남에게 하시는 말씀도 주의해서 잘 들어야 한다. 남을 가르치는 것이 직책인 자들은 먼저 배우고 자기들을 먼저 확실히 가르쳐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 나와 있는 말씀(3, 4절)을 생각해 보자. ① 먼저 다윗과 그의 가족에게 관한 말씀일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다스리는 자들에게도 의무가 있다. 왕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자기의 위신과 권세가 높다하여 불평도 하지 말고, 그 의무를 들어야 한다. 영국 속담에 “해야 한다는 말은 왕을 위해서 있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다윗 왕을 위한 “해야 한다”는 말을 하나 엿볼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다스림으로써, 정의로와야 한다.” 또한 하급 관원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그리해야 한다. 다스리는 자들은 자기들이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은 그런 짐승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가지고 있는 자기들과 동등한 인간을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결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는 자들을 다스리는 고로 지도자는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다스린다. 그러나 하나님 밑에서, 하나님을 위해서이다. 1.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이 다스리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 개개인에 대해서 공정해야 한다. 그 권력을 피해자들을 바로잡아 주는 데에 이용되어야 한다(신 1:16, 17 참조). 자기들이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다. 잘못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 다스려야 한다. 즉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고, 그것 때문에 실제로 온갖 불의와 압제가 금지되어야 한다. 느헤미야가 그러했다(느 5:15). “내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므로, 그리하지 아니했노라.” 그리고 요셉도 그러했다(창 42:18). 또한 지도자는 자기들 휘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통치자는 율법판의 두 판을 모두 보호해야 한다. 곧 신앙과 정직 둘이다. 둘째, 그들이 의무를 다하면 번영이 약속된다 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다스리는 자는 아침 빛같이 되리라”(4절). 빛은 쾌적하다. 의무를 다하는 자는 그 빛의 은혜를 누리리라. 그리고 그의 즐거움은 양심이 그를 증언해 주고 있다는 점이 되리라. 빛은 밝다. 그처럼 훌륭한 임군은 찬란해지리라. 그의 공정과 경건심이 그의 영예가 될 것이다. 빛은 축복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다스리는” 임금보다 백성에게 더 좋은 선물은 없다. “아침 빛”이 밤의 흑암이 지난 뒤에 가장 즐거이 환영되듯이(사울의 정부 이후의 다윗 정부가 그러했다. 시 75:3), 또 점점 빛나게 하듯이 선한 정부의 발전이 바로 그러하리라. 그러한 정부는 바로 부드러운 풀에 비유된다. 그것은 땅이 인간의 수고의 산물로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게 은혜로운 수확을 가져다 준다(시 72:6, 16 참조). 아마 그곳 시편 말씀도 다윗의 유언 중의 일부일 것이며, 여기에 나온 말도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②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킬 수 있다. 이럴 때는 그것이 예언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아마 본래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다스리는 한 공정한 자가 있으리라.” 그것은 그가 자기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신앙의 사업과 하나님 예배를 명할 것이며, 그것으로써 그가 “아침 빛같이 되리라.” 그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드러운 풀” 같이 되리니, 그는 “여호와의 가지”요, “땅의 열매”이기 때문이다(사 4:2). 이 말씀을 그리스도의 “의의 통치”와 “여호와의 경외 중에 있는 민감한 총명” 을 약속한 그리스도의 약속과 비교해 보라(사 11:1-5; 32:1, 2; 시 72:2).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것을 예견케 하셨고, 그의 가족의 수많은 비극과 그의 후손이 당할 우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위로를 받게 해 주신 것이다. 2.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는 어떻게 응답했는가?(5절) 이것은 그 같은 소식이 전해졌을 때의 그의 명상과 비슷하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반석 앞에 있는 자가 그에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를 “통해서” 성령이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가 영원한 계약을 믿고 소망하는 신앙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1) 그러나 여기에 곤란이 예상되어 있다. “내 집이 하나님 앞에 그 같지 아니될지라도”(4절―다소 다름), 그리고 “그가 그것을 자라게 아니할지라도”(역시 다소 다름―5절 끝부분)라고 했다. 다윗의 집안은 하나님 앞에서 3, 4절에 기록된 것과는 달랐다. 다윗이 바랐던 것과도 달랐다. 그가 생존해 있는 동안도 그러했다. 그러므로 자기가 좋은 뒤에는 자기 집안이 더 엉망으로 될 것을 알았다. ①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다.” 우리나 우리 식구의 참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임을 기억하자.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 그에게 신실하며, 그를 위해 열심을 내기를 바라는 것이 자녀들에 대한 다윗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앙이 돈독한 어버이의 자식들이 때로는 기대와는 달리 거룩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혈통을 따라 흐르는 것은 은총이 아니라 죄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자기 마음대로 주신다. ② “자라지 않게 되었다.” 즉 수적으로나 권세에 있어서 말이다. 집안을 크게 하거나 작게 하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시 107:41). 선한 자에게도 때로는 암담한 자기 식구들의 장래를 내다보는 경우가 있다. 다윗의 집은 그리스도의 집이신 그의 교회에 대한 한 상징이었다(히 3:3).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있지도 아니했고, 실수와 타락으로 퇴락해 버렸다. 거의 멸족의 위기를 맞이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의 머리와, 곧 다윗의 아들과 세운 언약이 이루어진다. 지옥 문이 그의 집을 범하지 못하리라 했다. 우리 구주께서 고난을 받으면서도 기뻐하신 것은, 자신을 통해서 그 약속이 실현되기 때문이었다(사 53:10-12). (2) 위로가 보증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나와 영원한 계약을 맺었도다.”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전망이 어떠하든, 그 슬픔을 능히 물리칠 만한 몇몇 위로가 있다(고후 4:8, 9). 마치 이 시편 기자의 경우와 흡사하다.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① 하나님이 다윗과 그의 자손들, 그리고 그 나라를 염두에 (예형적으로) 두고 왕권을 약속하신 것이다(시 132:11, 12). 그러나, ②모든 신도들에 대한 은총의 약속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도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 사실은 왕권의 계약이 상징해 준 바이다. 따라서 그 계약의 약속을 “다윗의 확실한 자비”라 했다(사 55:3). 그것이 영원한 계약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있어서 만이다. 다윗이 수많은 시편 속에서 말한 그리스도와 그 복음의 은총이 이 유언에서는 빠져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은총의 계약을 맺으셨다. 그래서, 첫째, 그것을 “영원한” 계약이라 했다. 그 계약의 협정이 영원하고, 그 결과가 영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은 “예정된” 것이다. 만물 중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중보자의 이름을 높이며, 그럼으로써 신도들의 성격과 위로를 더하게 하도록 예정된 것이다. 계약을 통해서 약속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고, 잘못을 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이 아니라 중보자의 보호 덕분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바로 이같은 뜻(예정) 때문이다. 셋째, 그것은 “확실하다.” 잘 예정된 것이므로 확실하다. 그 계약의 전문이 확실하다. 또 약속된 자비가 조건 이행에 따라서 확실하다. 또 믿는 자들에 대한 구체적 적용이 확실하다. 넷째, 그것은 “우리 모두의 구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며, 이것이면 족하다.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기초가 이것이다. 다섯째,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 됨이 틀림 없다. 이 계약과 그 약속의 이권에 참여하자. 그러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리라. 3. 여기서 벨리알 자손들의 운명을 읽을 수 있다(6, 7절). (1) 가시나무같이 버림 받고 버려지리라. 그들은 가시나무 같다. 손댈 수가 없다. 현명하고 신실한 훈계도 견디지 못한다. 때문에 법과 정의의 검으로 통제시키는 수밖에 없다(시 32:9). 그래서 가시나무 같은 것이다. (2) 결국엔 당장에 불로 소멸되고 말 것이다(히 6:8). 그 뜻은 이런 것이다. ① 치리자는 자기들의 권세를 이용하여 이 사악한 자들을 벌주고 다스리라는 명령이다. “벨리알의 아들들은 버리라”(시 101:8 참조). ② 또는 치리자들, 특히 다윗의 아들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주는 주의로 볼 수도 있다. 즉 그들 자신은(그 중 너무 많은 자들이 그러하시다) 벨리알의 아들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다윗과의 관계나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들의 정의의 칼에 희생됨을 막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리라. ③ 그리스도의 나라의 원수들의 멸망을 예고하는 예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나라를 대항하는 외부의 원수들이 있다. 그리고 은밀히 배역하고 거짓말을 하는 내부의 적이 있다. 그 둘 다 벨리알의 아들들이다. 곧 독사의 자손이다. 그들 모두가 걱정과 조심을 주는 가시 나무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그들을 쳐부수고 자기 나라를 세울 때면, 그들도 쫓겨나고 말 것이다(사 27:4). 그리고 때가 오면, 교회에는 “쥐어 뜯는 엉겅퀴도 삼키는 가시나무”도 없게 되리라. 회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날에 영원한 불에 던져지리라(갈대아역 의역판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눅 19:27 참조). ------- 다윗의 용사들(삼하 23:8-39) Ⅰ. 사무엘 기록자가 다윗 시대에 활약한 주요 군인들의 명단을 기록한 데는 이유가 있다. 1. 다윗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다윗은 그들을 훈련시켜 전쟁 기술을 익히게 했고, 훌륭한 위용의 모범을 친히 보여 주었다. 여기에 나온 것 같은 그런 훌륭한 군인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왕의 장점인 동시에 영예이다. 2. 스스로를 훌륭하게 한 자들을 위해서이다. 그들은 다윗을 왕위에 앉게 했고, 그의 왕좌를 보호하며, 그의 정복을 돕는 일을 한 자들이다. 공직에 있으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나라의 이익을 위해 일한 자들은 갑절의 영광을 받아야 한다. 그 시대만이 아니라 후대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마땅하다. 3. 후대들로 하여금 관대한 경쟁을 하도록 자극하기 위함이다. 4. 신앙은 용기를 북돋아 주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다윗은 시를 통해서만 아니라 그의 건실한 예배를 통해서도 나라 안의 공신들 중에 신앙을 더욱 증진시켰다(대상 29:6). 그리고 그 공신들이 신앙으로 유명해지자, 역시 그 용맹으로도 유명해졌다. Ⅱ. 이제 그 용사들을 3등급으로 나누어 보자. 1. 첫 3용사. 그들은 가장 큰 일을 했고, 그래서 최대의 영예를 얻었다. 그들은 아디노(8절), 엘르아살(9, 10절), 그리고 삼마(11, 12절)이다. 다윗의 이야기 중 어디에도 이들에게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다가, 이곳과 그 병행 부분인 역대기(대상 11장)에만 나온다. 다윗의 위대한 많은 사건이 역대 일지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윗의 영광이 아니라 결점을 말해준다. 특히 우리아의 문제로 죄를 지은 이후에 그러하다. 따라서 실상 우리가 기록에 남은 것을 읽는 것보다는 훨씬 더 그의 업적이 찬연했을 것이다. 이 용감한 3총사들의 활약이 나와 있다. 그들은 외적, 특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1) 아디노는 자기의 창으로 한 번에 800명을 죽였다. (2) 엘르아살은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쳤듯이, 블레셋을 섬멸했다. 그러나 그 용맹은 골리앗보다 더욱 컸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도망간 뒤에도, 그는 자기의 진을 지켰을 뿐 아니라, “일어나 블레셋을 쳤다.” 이에게 놀라운 용기를 주셨듯, 하나님은 저들에게 놀라운 공포심을 주셨던 것이다. 그의 팔이 피곤해졌으나, 그의 칼은 계속 일을 했다. 마지막 힘이 떨어지기까지, 그는 칼을 휘둘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비록 우리의 육체는 피곤해지고 약해졌더라도―정신만은 즐겁고 단호한 태도로 일해야 한다. 피곤하나 달려가고, 손이 피로해 있으나, 칼을 놓지 아니했다(삿 8:4). 이스라엘 병사들이 싸움터에서 물러간 후에도, 엘르아살은 적을 쳤다. 그래서 그들은 뒤늦게 와서 노획에 참여했던 것이다(9, 10절). 할 일이 많을 때 물러간 자들도, 얻을 게 있을 때는 신속히 모여드는 것이 인간의 상례다. (3) 삼마는 적의 일단이 군량 때문에 헤매고 있는 중에 만나서 쳤다(11, 12절). 그러나 이번 원정과 지난 번 것을 비교해 보라, 여기에는 “여호와께서 큰 승리를 이루셨다”고 했다. 도구(사람)의 용맹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결과의 찬양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싸웠으나, 승리는 하나님이 이룩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강한 자라도 자기의 힘을 자랑하거나 군사적 활동을 자랑하지 말라. 오직 “그 영광을 여호와께 돌리라.” 2. 그 다음 세 사람은 삼십인과 구별되고 그들보다 존귀했으나 첫 삼인에 미치지는 못했다(23절). 위대한 자라고 하여 전부가 다 같은 규모는 아니다. 일등성이 아니면서도 밝고 따뜻한 별은 많으며 일급은 아니면서도 좋은 배는 많다. 두 번째 3인조 중에서는 아비새와 브나야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다윗의 이야기에 종종 나타난다. 양인은 계급상으로는 처음 삼인보다 열등했지만 그 유용성으로는 그들에게 뒤지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나온다. (1) 이들 세 사람이 용감한 합작 행위. 이들은 다윗이 도피 중 아둘람 굴에서 곤란을 겪을 때 그를 시종하던 자들이다. 이들은 그와 함께 고난을 겪었기에(13절) 나중에 중용되었다. 다윗과 그를 시종하던 용사들은 아주 용감하게 블레셋인들을 막았지만 사울의 치세시에 시세가 불리하여 쫓겨다니게 되었고 왕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동굴과 성채에 숨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 때 블레셋 사람들이 르바임 골짜기에 진치고 심지어 베들레헴에까지 수비대를 두었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13, 14절). 만약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장 좋은 친구들과 신앙의 투사들을 핍박할 정도로 교회를 그릇 인도 한다면 공동의 적이 그 기회를 틈탈 것은 명약관화하다. 다윗이 자유로이 활동하고 있었다면 베들레헴이 어찌 블레셋의 수중에 들어갔겠는가! 다음을 살피자. ① 다윗은 베들레헴의 우물 물을 몹시 갈망했다. 혹자는 다윗의 이 말을 애국적 소원으로 해석하여 “오! 우리가 베들레헴에서 저 블레셋의 수비대를 쫓아내고 저 사랑스런 성읍을 다시 우리의 소유로 만들 수 있다면 좋으련만”이란 의미로 받아들인다. 왕왕 강이 국가를 상징하듯 우물은 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이 설령 그런 의미로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 주위 사람들은 그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히려 다윗의 신체적 쇠약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때는 추수기여서 일기는 더웠고 그의 갈증은 심했다. 아마 먹을 만한 물은 귀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베들레헴의 우물 물을 단 한 모금이라도 마셔 보았으면”하고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소년시절에도 그 우물 물로 심신을 상쾌하게 한 적이 어디 한두 번 뿐이랴! 지금은 비록 접근조차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 우물 물이 아니면 못살 것 같은 심경이었으리라. 다윗은 이상하게도 까닭 모를 기분에 젖었다. 갈증이라면 다른 물을 마셔도 될 터였다. 그런데도 그는 유독 베들레헴 우물 물을 마시고 싶어한 것이다. 이런 묘한 기분을 즐긴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그런 기분의 충족을 고집하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의 식욕이 다른 것보다 더 맛있고 참으로 구미에 맞는 음식을 향해 과도히 발동할 때 우리는 그 식욕을 억제해야 마땅하다(진찬을 탐하지 말라, 잠 23:3). 하물며 이 같은 기분을 충족시키려는 일이랴! ② 다윗의 세 용사 곧 아비새와 브나야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용사는 용맹무쌍하게 호구(虎口)인 블레셋인의 진영을 통과하여 베들레헴의 우물 물을 길어 왔다(16절). 그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으나 다윗은 이를 알지 못했다. 다윗이 처음 이 소원을 피력할 때 자기 부하 중 누구라도 목숨을 걸고 이를 감행해 주도록 바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세 사람은 이 일을 해냈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나타낸다. 첫째, 이들은 자기 군주를 몹시 중히 여겼으며 그를 섬기는 일이라면 아무리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라도 서슴치 않았다. 다윗은 비록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유형당한 죄인이나 다름없었고 추종자들의 애호나 존경을 끌 만한 외면적 이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중용하거나 상 줄 만한 능력도 없는 가난한 군주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보상의 시기가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이렇게 열성적으로 그의 마음을 흡족히 하려고 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모험을 강행해야 한다. 비록 고난받는 일이라 하더라도 결국 득세하여 손해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자답게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도를 섬기자. 그들은 자기 군주의 극히 작은 암시만 받고서도 그처럼 분연히 뛰쳐나가 그를 만족시키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우리가 주님께 인정받으려고 탐내지 않겠는가? 주님께서는 이미 그의 말씀과 성령과 섭리로써 자기 의사를 갖가지로 암시하셨는데 우리가 어찌 그 뜻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둘째, 그들은 블레셋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블레셋인을 무시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희열을 느꼈다. 그들이 남 몰래 적진을 돌파하고 그 돌파술이 너무도 교묘해서 적에게 발각되지도 않았는지, 아니면 공공연하게 침투하고 그 표정이 너무나 두려워 블레셋인이 감히 막지 못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들은 칼을 손에 쥐고 힘들여 길을 열었던 것처럼 보인다. ③ 다윗은 멀리서 떠 온 이 귀중한 물을 받자 굉장한 극기심을 발휘하여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다(17절). 첫째,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 부하의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나타내고자 했고 그들의 피를 낭비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음을 나타내려고 했다(시 72:14).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둘째, 그는 이로써 자기의 어리석은 발언에 대한 유감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들은 다윗의 말 한 마디 때문에 목숨을 적군에게 내어 주려고 한 셈이었던 것이다. 권세자들은 말 조심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주위에 있는 자들이 그 말을 곡해하거나 오용할지도 모르는 때문이다. 셋째, 이렇게 하여 그는 장차 있을지도 모를 자기 부하의 성급한 처사를 방지하려고 했다. 넷째,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미련한 취미를 억제하고 그런 것을 즐기고 탐닉한 자신을 책하려 했다. 그는 자기가 경솔한 행위를 시정할 만큼 건전한 사고를 하고 있으며 극히 좋아하는 것에도 극기할 줄 안다는 것을 표시하려고 했다. 지혜로운 자와 권세자와 선한 자에게는 이런 폭넓은 극기가 어울린다. 다섯째,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을 존귀케 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자 했다. 그는 이렇게 얻은 물이 자기가 마시기에는 너무도 값비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물을 하나님께 전제로써 부어드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 물이 그들의 피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했다. 피는 언제나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패트릭 감독은 다윗이 동경한 물이 자연수가 아니라 생수를 가진 메시아였다고 생각하는 어떤 자들을 언급한다. 그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블레셋인들이 베들레헴을 파괴시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일곱째, 다윗은 자기 부하들이 피의 위험을 무릅쓰고 획득한 물을 매우 귀중히 여겼다. 그렇다면 우리의 복되신 구주께서 자기 보혈을 흘려가면서 사신 은혜를 우리는 더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언약의 축복을 과소 평가하는 자들처럼 언약의 피를 값없이 여기지 말자. (2) 또 다른 경우에 나타난 두 사람의 용감한 행동. 아비새는 한 때 삼백명을 살육했고(18, 19절). 브나야는 효용한 일을 많이 행했다. ① 브나야는 두 모압인을 죽였는데 그들은 사자처럼 용맹하고 대담하고 강하고 흉포하고 맹렬했다. ② 그는 함정에 빠진 사자를 죽였다. 이는 삼손처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였거나 아니면 사자가 사람들을 해쳤기 때문에 애국심에서 행한 일이었을 것이다. 강설기였던 터라 그는 여느 때보다 몸을 움직이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며 사자는 더 흉맹하고 굶주려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사자를 제압했다. ③ 그는 애굽인을 죽였다. 그 시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 애굽인은 완전무장을 갖추고 있었지만 브나야는 무기라곤 막대기밖에 없이 그를 공격하여 그의 손에 들려있던 창을 잽싸게 빼앗아 그를 찔러 죽였다(21절). 이런 전공과 다른 유사한 공훈으로 다윗은 그를 시위대장으로 중용했다(23절). 3. 두 번째 삼 인보다는 못하나 이름을 크게 날리던 삼십인의 명단이 여기에 나온다(24절). 맨 먼저 나오는 이름은 아사헬이다. 그는 다윗의 통치 초기에 아브넬에게 살해되었지만 이 명단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 다음에 오는 엘하난은 첫 번째 삼인 중 하나인 엘르아살의 아우였다. 이들의 이름 앞에 붙은 별칭은 출생지나 거주지에서 따온 것인 듯하다. 전국에서 가장 지혜롭고 용맹한 자들이 선발되어 왕을 섬겼다. 여기에 나오는 이름 중 몇몇은 다윗이 연중 한 달씩 체번하도록 임명한 반열의 반장으로도 나타난다(대상 27:1). 가치 있는 일을 한 자들은 그 공을 따라 승진되었다. 아히도벨의 아들도 그런 자 중 하나였다(34절). 아버지가 군신 회의장에서 모략으로 유명했듯 아들은 전장에서 용맹을 날렸던 것이다. 삼십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헷 사람 우리아에게 이르러서는 다윗의 죄가 회상된다. 그것은 다윗의 죄를 더욱 가중시킨다. 자기 왕과 나라로부터 상을 받아야 마땅할 사람이 그토록 억울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요압은 이들 중에 언급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1) 그는 너무나 큰 자여서 언급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첫 삼인 중 첫째 인물은 군장 중 두목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총사령관격으로 이들을 지휘했던 것이다. (2) 또는 그가 너무도 악하여 언급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위대한 군인이란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였고 자기 전리품을 하나님의 전에 바칠 정도로 신앙이 깊은 인물이었지만(대상 26:28), 다윗의 두 친구를 살해함으로써 얻은 불명예는 적군을 살육해서 얻은 명예만큼이나 컸던 것이다. 다윗의 아들인 그리스도께도 존귀한 용사들이 있다. 이들은 다윗의 용사들처럼 그리스도의 모범에 감화를 받고 그의 나라의 영적 원수들과 싸우며 그의 강한 힘으로 정복자들 이상 가는 존재들이다.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그의 직계 시종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효용한 일을 많이 했었고 그를 위해 크게 고난을 받았다. 그래서 결국 그와 함께 왕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들이 구약에 언급되고 있듯 사도들은 신약에서 존귀한 자로 언급되고 있다(계 21:14 참조). 아니, 그리스도의 모든 선한 군사들은 이들 존귀한 자들보다 그 이름이 더욱 잘 보존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에 그 이름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모든 성인들은 이런 명예와 존귀를 얻는다.
==호크마== ..사무엘하 23장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ㅇ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 본장의 노래는 22장의 다윗의 시(詩) 다음에 배열되어 있지만, 이 두 시는 시기적으로 각기 다른 시간대에 저작되었다. 즉, 22장의 시는 다윗이 주변의 이방 국가들을 정복한 직후 곧 그의 이스라엘 통치 초기에 저작된 것인 반면(22:1), 본장의 시는 모든 역경과 좌절을 맛본 다윗 통치 말년 곧 다윗이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저작한 시이다(Thenius, Lange, Hertzberg, Payne). 곧 전장의 시가 노래의 활기찬 흐름으로 보아 다윗의 최전성기에 기록되었다면, 본장은 그의 인생을 마감하던 때 곧 범죄 이후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섭리와 그와 동시에 베풀어지는 그분의 사랑에 감격했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이 고백적 찬양은 단순한 다윗 개인의 신앙과 감사를 다룬 것이 아니라, 미래에 완성될 공의로운 메시야 왕국을 예언했다는 점에서 '선지자적 찬양'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본 시를 22장과 연결시켜 같은 종류의 감사시로 보는 카일(Keil)의 입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본시는 22장의 감사시와는 성격상 다른 것으로서, 모세가 죽기 전에 축복의 시를 지었듯이(신 33장) 다윗이 임종하기 전에 그의 마지막 소원을 노래한 것이다(Hertzberg). 그러나 그 소원은 다윗의 개인적인 소원이라기 보다는 성령에 의해 감동된 '메시야적 소원'으로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베푸신 '다윗 언약'(7:8-16)에 기초한 소원이었다. ㅇ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 여기서 다윗은 자신을 '이새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새의 아들'이란 호칭은 사울 왕이 다윗을 비꼬아 말할 때, 나발이 다윗을 비난할 때, 그리고 세바가 다윗을 대항하여 난을 일으켰을 때 각기 사용한 호칭이었다(20:1;삼상 20:30;25:10). 따라서 다윗에게 있어서 '이새의 아들'이란 호칭은 '이스라엘의 왕'이란 호칭과는 대비되는 호칭으로서, 결코 명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의 보잘것없음과 비천함을 드러내는 호칭이었다. 따라서 다윗은 이 거룩한 노래를 시작함에 있어서, 자신의 어떠한 자랑거리도 나타내지 아니함으로써 오직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려고 이 호칭을 사용했던 것이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말함이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움'은 특별히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말씀과 관련된 말이다. 즉, 이 말은 선지자가 그의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갖추었던 서론적 형식인 '여호와의 말이니라'에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이 시가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다윗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시적 형태로 전달한 것임을 알 수 있다(Keil, Pulpit Commentary). ㅇ높이 올리운 자...기름 부음 받은 자 - 다윗은 본래 양치는 미천한 목동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선택되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기름부음 받아 크게 높아진 자가 되었다는 뜻이다(22:34, 44). ㅇ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 - 실제 다윗은 양치는 소년 시절부터 악기 잘 타는 자로 이스라엘에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에, 사울 왕궁의 수금 연주자로도 활동했었다(삼상 16:16, 19, 23). 그러나 여기서 '노래'는 세속적인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의미한다(시 81:3;98:5). 한편 다윗의 이러한 서언은 이전에 발람이 이스라엘과 열방의 미래에 대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 그 예언 초두에 도입한 서언과 유사하다(민 24:3, 4). 이로 볼 때 다윗 역시 선지자적 입장에서 자신의 노래를 미래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고자 시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Keil, Fay). 2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ㅇ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 여기시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란 말을 직역하면, '내 안에서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즉, 이 구절은 본시를 읊기 바로 직전에 하나님의 영에게 감동된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다(Keil).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시가 사적 감정에 의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 주장받은 계시적 성격의 노래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ㅇ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 이는 다윗이 자신의 입술을 주장하는 주체가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가 아니라, 여호와의 신 곧 성령임을 고백한 말이다. 즉 지금 자신이 성령의 완전한 지배하에 있음을 고백한 말이다. 이와같은 성령의 완전한 지배를 '성령 충만'이라 부른다(엡 5:18, 19). 그러므로 이것은 다윗의 노래가 신적(神的)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근거요 충분한 조건이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ㅇ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 이는 참된 선지자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취했던 서론적 형식과 일치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여기 소개되는 다윗의 노래의 기원이 하나님이심을 밝혀 주는 구절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지시고 그들을 바로의 압제하에서 구원하신 선민의 하나님이란 뜻으로, 당신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다윗이 이 시에서 특별히 이 호칭을 사용한 것은 본시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주인공이신 의로운 통치자 메시야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ㅇ이스라엘의 바위 - 이 역시 하나님에 대한 비유적 호칭으로서(22:3, 47), 흔들림없는 하나님의 불변성(不變性)을 강조하는 말이다. 실로 하나님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같이 영구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으로서, '바위'(추르)와 같은 속성을 지니신다(22:3 주석 참조). 그러므로 본시는 다윗 언약(7:8-16)에 기초한 확신의 시로서, 한번 약속하신 사실을 결코 변개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불변성 또는 신실성을 강조하고있다. ㅇ사람을 공의로...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 이는 이상적(理想的)인 신정 국가의 왕의 자세를 보여 주는 구절로서 일차적으로는 다윗 자신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야'(the Messiah)를 가리킨다. 즉 신정 국가의 이상적인 왕은 인간 사회에 대해서는 정의롭고(렘 23:5;33:15), 하나님을 향해서는 경외심(시 7:8)을 갖춘 바로 그러한 신앙 인격자라야 했다. 다윗 왕은 바로 이러한 이상적인 신정 국가의 왕이었다. 그는 백성을 공의로 다스렸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따라서 다윗은 역대 유다왕들을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 그 기준(基準)이 되었다(왕하 14:3;18:3;22:2). 이런점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여기에 묘사된 이상적인 신정 국가의 왕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도덕적으로 무흠하신 분으로서, 모든 인류를 공의로 판단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한 참된 의미에서의 이상적인 왕이신 것이다(시 2:1, 2;겔 34:23, 24;사 11:3-5). 4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ㅇ돋는 해 아침 빛 같고...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 여기서 언급된 비유어들의 주어는 혹자의 주장처럼(Payne, Wordsworth) 3절에 암시되어 있는 '메시야'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본 구절에는 명확한 주어의 형태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비유어들의 주어는 비인칭(非人稱) 형태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이 비유어들이 묘사하고 있는 대상은 메시야(신정 국가의 이상적인 왕)가 아니라 메시야가 강림하신 이후의 신세계(新世界)라고 볼 수 있다(Keil, Lange-한글 개역 성경의 '저는'이란 말은 원문에는 없는 단어로서 번역자가 삽입한 것이다). 특히 이처럼 비유어들의 묘사의 대상이 메시야가 아니라, 메시야의 의로운 통치로 말미암는 신세계라는 사실을 강하게 입증해 주는 단서는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메시야(그리스도) 자신 보다는 메시야 통치의 복스런 결과를 의미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돋는 해 아침 빛 같고'라는 말도 메시야의 시대에는 이와 같을 것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곧 메시야의 시대에는 고통과 죄악과 부패의 온갖 어두운 흑암의 밤은 물러가고, 기쁨과 번영과 행복의 찬란한 아침 햇살이 비추이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구름 없는 아침'은 온갖 근심과 염려의 구름이 완전히 걷힌 청명한 하늘처럼, 곧 순수하고 영광스러운 기쁨과 번영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상징이다(사 44:3). 즉, 비는 초목의 생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후에 내리쬐는 광선은 더욱더 초목을 싱싱하게 자라나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말미암아 새생명이 생명력 넘치게 자라나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움이 돋는 새 풀'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열매를 의미하는 것이다(Keil).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ㅇ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 이는 3, 4절에서 언급된 메시야, 곧 의로우신 통치자가 다윗의 집(후손)으로부터 나올 것이라는 다윗의 확신에 찬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결코 자기 개인에 관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다윗이 이 부분에서 자기의 개인적인 일을 언급했다면, 분명히 7:18에서 보여준대로 겸손히 자기를 낮추었을 것이다(Fries). 아울러 본 구절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말하고 있으므로, 이 구절이 다윗 자신의 일을 말한 것이라고는 결코 볼 수 없다. 따라서,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4절에 묘사된 신세계가 그의 후손을 통하여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기 '집'이란 용어는 '후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7:11). ㅇ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 여기서 언약은 7장에 기록된 '다윗 언약'(7:8-16)을 의미한다. 특별히 여기서 다윗이 '영원한 언약'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분명 다윗은 장차 자신의 가계를 통해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워질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았음이 틀림없다. ㅇ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실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계심을 의미하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언약을 세우실 뿐만 아니라,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발견할 수 있다. ㅇ나의 모든 구원과...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 여기서 '나의 모든 구원'은 다윗과 다윗의 집에 약속하신 구원을, '나의 모든 소원'은 하나님의 언약 위에 기초하고 성령에 감동된 다윗의 거룩한 메시야 소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과 그분의 신실성에 근거하여, 이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ㅇ사악한 자는...가시나무 같으니 - 의로운 왕이 도래할 경우에 있게 될 축복의 측면을 이미 언급한 다윗은(4절), 여기서 또 다른 측면인 심판의 측면을 언급하고 있다. 즉, 메시야의 강림과 통치는 경건한 자에게는 축복이 되지만, 불경건한 자에게는 심판이 되는 것이다. 한편 '사악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벧리야알'은 '무익한 자', '쓸모없는 자', '무가치한 자'라는 뜻으로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경건한 자 및 하나님의 통치에 백해 무익한 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에 비유되었는데, 이는 곧 불경건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한 말이다. 즉, 가시나무는 발견되는 즉시로 농부가 밭에서 뿌리채 뽑아 불태우는 쓸모 없는 것으로서(Kimchi), 이는 불경건한 자가 창졸간(倉卒間)에 받을 철저한 심판을 묘사한다(사 27:4;겔 28:24). 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사르이리로다 하니라 ㅇ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 가시 나무는 맨손으로 잡을 수 없으므로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이 구절은 밭에서 백해 무익한 가시나무를 불태우기 위해 철재(鐵製) 도구를 사용하여 한 자리에 거두어 모으는 장면을 묘사한 말로서, 하나님의 피치 못할 심판으로 말미암아 멸절당할 불경건한 무리들의 비참한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 ㅇ불사름이리로다 - 여기서 '불'은 하나님의 진노와 그로 인한 심판의 상징이다(마3:10;13:30;눅 19:27). 결국 사악한 자의 철저한 멸망이라는 냉혹한 심판 선언으로 마무리 짓고 있는 다윗의 이 노래는 (1) 메시야께서 통치하시고 건설하실 그 나라에서는 불의한 사단의 세력이 완전 소멸될 것과(사 27:4), (2) 메시야의 의로운 통치에 대적하고, 그 나라를 해(害)롭게 할 무가치한 자에게 임할 심판의 필연성을 깨우치고 있다(마 25:30). 8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이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 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장의 두목이라 저가 한때에 팔백인을 쳐죽였더라 ㅇ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이 이러하니라 -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용사들은 다윗 왕국에서 크게 활약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는 데 큰 공을 세운 600명의 용사들 중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본 구절과 거의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대상 11:10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 보면 이 용사들을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윗의 힘을 도와...왕을 삼았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구절에는 모두 37인의 용사들이 소개된 반면, 대상 11:10-47에는 16명의 용사들이 추가로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아마도 몇 명의 용사들의 사망으로 인한 누락과 새로운 명단의 추가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Pulpit Commentary). ㅇ다그몬 사람 요셉 밧세벱...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 - 같은 내용의 기록인 대상 11:11에는 '다그몬 사람'이 '학몬 사람'으로, '요셉밧세벱'이 '야소브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다그몬'은 '학몬'에 대한 오기(誤記)이며, 그리고 '요셉밧세벱'은 이름이라기 보다는 '밧세벱에 거주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의 본 이름은 '야소브암'이며, '아디노'는 그의 별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는 시글락에서 다윗과 합류하였으며(대상 12:6), 2만 4천명으로 구성된 정월 첫반(다윗은 상비군을 12개의 군대로 나누고, 달마다 한번씩 근무하도록 하는 체번제(替番制)를 실시하였다)의 반장이었다(대상 27:2). ㅇ군장의 두목이라 - 여기서 '군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리쉬'는 '셋'이란 의미의 '솰로쉬'에서 파생된 용어로서, 지휘관중의 지휘관, 곧 가장 뛰어난 세 장군을 의미한다(F.R. Fay). 이들은 왕이 전쟁에 참전할 때 병거에서 왕과 함께 있었으며, 왕 주번에서 특수 부대(호위병)를 지휘하였다(왕하 9:25;10:25). 그러나 이들은 요압이나 아마사가 차지했던 전체 이스라엘 군대의 군장, 곧 '사르'와는 거리가 있는 직책이었다. 9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한 세 용사 중에 하나이라 블레셋 사람이 싸우려고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10 저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서 저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ㅇ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 - '아호아'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다(대상 8:4). 그리고 '엘르아살'(Eleazar)은 2만 4천명으로 구성된 이월반(二月班)의 반장이었다(대상 27:4). 그는 야소브암, 삼마와 더불어 다윗의 '솰리쉬'로 활약하였다<23:8>. ㅇ블레셋 사람이 싸우려고 모이매 - 같은 병행 구절인 대상 11:13에는 '바스담밈'에서 접전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바스담밈'은 삼상 17:1에 따르면, '에베스담밈'(Ephesdammim)이다(Keil). 이 지명은 '피의 경계선'이란 뜻으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무수한 전투를 벌인 곳이었으며, 국경 지역인 엘라 골짜기에 위치해 있었다(R. Payne Smith).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ㅇ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 혹자는 이 구절이 블레셋을 대항하기 위해 진군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Lange, Smith). 그러나 여기서 '물러간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다'란 뜻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지(高地) 위로 올라간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Thenius, Bottcher). 즉,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의 대단한 진용(陳容)에 놀라 높은 고지 위로 도망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0절 하반절에 기록된 '백성들은 돌아와서'란 말을 통해서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이렇게 볼 때, 다윗의 '솰리쉬'(3인의 용사) 중 하나인 엘르아살은 혼자서 적과 싸움을 하였던 것이다(Keil). ㅇ싸움을 돋우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라프'는 '조롱하다', '능욕하다'는 뜻으로, 세 용사가 블레셋 군의 비위를 건드려 싸우믈 유도해 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삿 8:15;삼상 17:10, 26, 36, 45). ㅇ손이 피곤하여 칼에 붙기까지 - 이는 어찌나 칼을 손에 꽉쥐고 많은 적군들을 쳐부셨던지 손에 쥐가 날 정도의 상태에까지 이르렀다는 의미이다(Keil, Lange). ㅇ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 원어상으로는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란 뜻이다. 즉 저자는 이날의 승리가 엘르아살을 힘있게 붙드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이 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12 저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ㅇ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 - 다윗의 3인의 용사 중 하나인 '삼마'(Shammah)는 33절에서 30인 중 하나로 다시 소개되고 있다. ㅇ떼를 지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하야'이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말이 '떼를 지어'란 의미의 말이 아니라, '레히'라는 지명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nge, The Interpreter's Bible, Josephus). 특히 이 말이 반드시 지명(地名)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이유는 원문상 뒤어어 지시 부사인 '솽'(거기에)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Thenius, Ewald). 한편, '레히'는 삼손이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1천명을 살해한 유서깊은 곳이다(삿 15:9, 14, 17, 19). ㅇ녹두나무 - 병행 구절인 대상 11:13에는 '보리'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블레셋인들은 이스라엘의 농작물을 망쳐놓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듯하다(Pulpit Commentary). ㅇ백성들은...도망하되 - 여기서 '도망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누스'는 전투에서 패배하여 달아난다는 의미의 말이다(10:14;왕상 20:30). ㅇ막아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칠레하'를 직역하면, '그것을 붙잡았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아 밭으로 들어온 블레셋 사람을 삼마가 '뭍잡아' 살해했음을 보여 준다(Keil).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떼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ㅇ삼십 두목 중 세 사람 - 이 세 사람은 앞절에 언급된 3인이 아니라 아비새와 브나야, 그리고 익명의 한 사람이다(18, 22절). 이들은 둘째 3인으로서 이들의 충성은 첫째 3인(야소브암, 엘르아살, 삼마;8-12절)에 못지 않았으나 능력면에서 첫째 3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다(23절). ㅇ아둘람 굴 - 이곳은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여 은신한 곳이며, 이곳에서 다윗은 그의 가족과 다른 동료들과 결합하였다(삼상 22:1, 2). 그 위치는 가드와 베들레헴의 중간, 곧 가드 남동쪽 약 16km 지점이다. 최근에 성서 고고학자의 탐사로 이곳의 산 중턱에서 약 400명 정도가 거주할만한 큰 동굴 하나가 발견되었다. ㅇ때에 블레셋 사람의 떼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 이 구절은 여기에 언급된 블레셋 전투가 5:17-25절에 기록된 전투와 같은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Keil). 왜냐하면 양쪽 구절 모두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쳤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르바임 골짜기'(the valley of Rephaim)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이며,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 지역이었다<5:18>. 또한 이 전투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직후, 통일된 다윗 왕국의 세력을 우려한 블레셋 족속이 선제 침공함으로써 발발되었다(5:17).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ㅇ다윗은 산성에 있고 - '산성'(메추다;stronghold)은 아둘람 근처에 있던 산성(山城)을 말한다. 당시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다윗은 천혜(天惠)의 요새지인 예루살렘에 있지 못하였고, 그 대신 아둘람 근처의 산성에서 피신하고 있었던 듯하다(5:17). ㅇ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 '영채'(맛차브'garrison)는 군부대를 의미하는 말이다(13:23;14:1). 한편 블레셋 사람들은 아마도 길보아 전투(삼상 31:1-7) 때에 베들레헴을 차지한 듯하다. 15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ㅇ다윗이 사모하여...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 여기서 '사모하다'(아와)란 말은 '간절히 바라다', '열렬히 추구하다', '애태우다'란 뜻으로, 곧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을 위해 마음이 애타는 상태를 일컫는다. 당시 다윗은 블레셋과의 치열한 전투 와중에 고향 근처에 이르게 되었고, 그는 고향에 대한 향수로 인해 육체와 정신의 피곤에 젖어들게 되었다. 결국 다윗은 고향의 우물 물에 대한 갈증을 애타는 마음으로 호소하게 되었고, 이를 귀담아 들은 둘째 3인의 충정어린 행동이 결행되었던 것이다. ㅇ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 - 성서 고고학자 리터(Ritter, Geography of Palestine)에 따르면, 깊은 우물로부터 솟아나오는 이 물은 시원하고 깨끗한 냉수였다. 그러나 당시 다윗이 진 치고 있던 아둘람 근처의 물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깨끗하고 시원한 이 물을 사모했던 것이다(The Interpreter's Bible, Lange).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 우물은 베들레헴 북동쪽으로 약 15분 걸리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다윗의 우물'이란 이름으로 전해 내려왔다고 한다(Keil). 한편, 다윗은 베들레헴 태생으로(16:2, 18), 어려서부터 이 우물 물을 마시고 자랐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며 17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니이다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ㅇ충돌하고 지나가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카'는 '가르다', '쪼개다'는 뜻으로(시 78:13;사 48:21;욥 26:8), 이는 세 용사들이 베들레헴에 있던 블레셋의 부대를 정면으로 꿰뚫고 나아갔음을 보여주는 말이다(Keil). 여기서 우리는 세 용사의 비범한 용맹과 아울러 목숨을 건 충정을 발견할 수 있다. ㅇ다윗이...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 이는 다윗이 이 물을 여호와께 전제물로 드린 사실을 묘사하고 있다. 다윗은 이 물이 용사들의 피와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다윗은 부하들의 피와도 같은 이 물을 자신이 마시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전제물로 바쳐드린 것이다(Smith). ㅇ이는...피니이다 - 다윗은 부하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그 물을 하나님께 전제(奠祭)로 부어 드렸다(16절). 즉 그는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그들의 생명의 대가인 물을 '피'로 간주하여 율법에 따라(레 17:11;신 12:23-27) 한방울도 축내지 않고 하나님께 헌납하였다. 이 같은 행동은 (1) 인간의 생명은 결코 헛되이 허비되어서는 안되며(막 3:4), (2) 모든 희생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고(계 12:11;시36:9), (3) 어떠한 생명이라도 인간의 사악한 욕구 충족에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등의 교훈을 제시해 준다. 하나님은 이웃의 생명과 인격을 존중히 여길줄 아는 자의 생명과 인격을 또한 보존하신다(잠 14:25a;시 56:13a). ㅇ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 그 이유는 '피를 먹지 말라'(레 17:10)는 율법의 조항을 다윗이 기억하였기 때문이었다. 즉 다윗은 세 용사가 떠온 물은 그들의 생명을 걸고 떠온 것이므로 그것을 그들의 피로 간주했던 것이다(Keil). 레 17:11 주석 참조. 18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니 저는 그 삼인의 두목이라 저가 창을 들어 삼백인을 죽이고 그 삼인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19 저는 삼인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저가 저희의 두목이 되었으나 그러나 첫 삼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ㅇ그 삼 인의 두목이라 - 여기서 '삼 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리쉬'는 (1) '군장'(8절)과 (2) '삼 인' 모두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관사 '하'가 붙어 있으므로, 다윗을 위해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 물을 떠온 '그 삼 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Pulpit Commentary). ㅇ그 삼인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 여기에서 '삼 인'은 혹자의 견해처럼 야소브암, 엘르아살, 삼마(8, 9, 11절)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Keil) 아비새, 브나야, 그리고 익명의 뛰어난 한 용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아비새'(Abishai)는 제 2 용사단(솰리쉬)의 두목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ㅇ그러나 첫 삼 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 첫삼 인은 8-12절에 기록된 야소브암, 엘르아살, 삼마를 가리킨다. 한편 '아비새'(Abishai, 삼상 26:6)는 제 이의 삼 인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용사였으나, 첫 삼인의 힘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20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니 저는 효용한 일을 행한 자라 일찌기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한 사자를 죽였으며 21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저가 막대를 가지고 내려가서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죽였더라 22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3 삼십인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첫 삼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저를 세워 시위대 장관을 삼았더라 ㅇ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 '갑스엘'(Kabzeel)은 유다 남쪽에 있는 한 지방이며(수 15:21;느 11:25), 오늘날의 '길벱 호라'(Khirbet Hora)로 추정된다. 그리고 여호야다는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이었다(대상 27:5;12:27). 이러한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Benaiah)는 다윗 치하에서 그렛과 블렛의 대장(근위 대장)이었으며(8:18;20:23), 또한 2만 4천 명으로 구성된 제 3월 군대의 장관이었다(대상 27:5). 그리고 브나야는 아도니야의 반역을 분쇄한 공으로 솔로몬 치하에서는 요압 대신 군대 장관이 되기도 하였다(왕상 2:28-35). ㅇ효용한 일(라브 페알림) - 직역하면 '위대한 행위', '큰 일'이란 뜻이다. 구체적으로 그 '큰 일'은 여기서 세가지로 제시된다. 즉 (1)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인 행위, (2)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사자를 죽인 행위, (3) 막대기로 창을 가진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인 행위 등이다. ㅇ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 여기서 '아리엘'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 이에 대한 견해는 둘로 나뉜다. (1) 혹자는 '아리엘'이 '신(神)의 사자(獅子)'란 의미로서, '아리엘의 아들 둘'은 '사자같이 용맹스런 두 용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eil, Lange). 또한 이에 대한 증거로서 지금도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은 매우 뛰어난 용사를 가리켜 '아리엘'이라 부른다고 한다(Bochart). (2) 반면 혹자는 '아리엘'이 모압 왕의 이름일 것이라고 추측한다(Smith, Ewald, Thenius). 따라서 이 두 사람은 모압 왕 아리엘의 아들들(왕자들)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원문상으로, 본 구절에는 '아들'이란 단어가 들어있지 않다(한글 개역 성경에서 이 용어를 삽입한 것임). 따라서 이 견해를 따를 경우 '아리엘의 두 사람'이라는 애매한 말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2)의 견해 보다는 (1)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ㅇ눈 올 때에...한 사자를 죽였으며 - 팔레스틴의 사자는 페르시아 산(産) 사자에 속한다. 한편 구약 시대에 사자의 출현은 매우 흔했다. 따라서 성경은 사람이 사자에게 물려 죽은 사례들을 여려 군데에서 기록하였다(왕상 13:24;20:36;왕하 17:25). 이 사자들은 추운 날 눈이 많이 내려 먹이가 궁해지면 민가로 내려와 사람들을 먹이로 삼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러한 식인 사자를 잡기 위해 함정(큰 구덩이)을 만들곤 하였는데, 그때에 갈고리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였다(겔 19:4, 8). 그런데 '브나야'는 맨몸으로 '함정'(보르-'큰 구덩이')으로 뛰어들어가 사자를 때려잡은 것이다(삿14:6;삼상 17:34-36). ㅇ장대한 애굽 사람 - 병행 구절인 대상 11:23에 보면, '그 사람의 키가 다섯 규빗이요 그 손에 든 창이 베틀채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대 성경의 도량법상 1규빗이 대략 45.6cm이므로, 그의 키는 무려 2m 30cm에 이른다. 이러한 자를 브나야가 막대기 하나로 대결하여 그 장대한 애굽 사람의 손에 든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 이겼다고 하니, 우리는 여기서 브나야의 용맹과 괴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ㅇ다윗이 저를 세워 시위대 장관을 삼았더라 - 시위대는 왕의 근위대를 의미하며, 이는 사형 집행 기관인 '그렛' 부대와 왕명을 급히 전달하는 '블렛' 부대로 구성되었다<8:18>. 24 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인 중에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ㅇ아사헬은 삼십 인 중에 하나요 - '아사헬'(Asahel)은 요압과 아비새의 아우이자 다윗의 조카로, 그 발이 들노루 같이 빠른 용사였다(2:18). 그는 이스보셋의 군장 아브넬을 추격하다가 그의 창에 찔려 죽었다(2:23). 그런데 그가 삽십 인 중에 속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삼십 인의 구성은 최소한 그의 죽음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사헬은 다윗의 헤브론 치세 때 곧 사울 왕가의 이스보셋과의 내전 중에 전사했으므로, 30인의 구성은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으로 즉위한 직후 얼마 후에 이러어졌을것이다(The Interpreter's Bible). ㅇ엘하난 - 여기 도도의 아들 '엘하난'(Elhanan, 대상 11:26)은 21:19의 야일의 아들 엘하난과는 다른 인물이다(Keil). 25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ㅇ하룻 사람 삼훗 - '삼훗'은 원문상으로는 '삼마'이나, 대상 11:27의 삼훗과 일치시키기 위해 여기서도 삼훗으로 번역되었다. 물론 그는 11절의 삼마와는 다른 인물이다(Keil). 왜냐하면 삼마는 하랄 사람이나, 삼훗은 하룻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편 '삼훗'은 대상 27:8에 기록된 5월 장관 삼훗과 동일 인물로 여겨진다. ㅇ엘리가 - 역상에는 그의 이름이 빠져있다. 아마도 '엘리가'(Elika)는 삼훗과 함께 하룻 사람이므로 생략되었을 것이다(Lange, Pulpit Commentary). 26 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ㅇ발디 사람 헬레스 - '발디'는 유다 남쪽 벧-벧렛 근처이며(수 15:27;느 11:26), '헬레스'(Helez)는 7월 장관이었다(대상 27:10). 한편 역대기에는 '블론(발론) 사람'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대상 11:27;27:10), 아마 착오인 듯하다(Fay, Keil). ㅇ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 - '드고아'는 베들레헴 남동쪽의 요새화된 성읍이며, 유다 광야에 속해 있다(대상 2;24;암 1:1). 그리고 '이라'(Ira)는 6월 장관이었다(대상 27:9). 한편, 그는 다윗의 대신이었던 야일 사람 '이라'와는 다른 인물이다(20:26). 27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ㅇ아나돗 사람 아비에셀 -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 내에 있는 레위인의 성읍이다. 이곳은 제사장의 성읍으로서, 아비아달의 출생지요(왕상 2:26)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향이기도 하다(렘 1:1;수 21:18;사 10:30). '아비에셀'(Abiezer)은 9월 장관이었다(대상27:12). ㅇ후사 사람 므분내 - '므분내'는 '십브개'의 오기(誤記)이다. 왜냐하면 21:18과 병행 구절인 대상 11:29에서 모두 '십브개'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십브개'(Sibbechair)는 블레셋 거인 '삽'을 죽였으며(21:18), 다윗 군대의 제 8월 장관이었다(대상 27:11). 28 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ㅇ아호아 사람 살몬 - '살몬'(Zalmon)은 '엘르아살'과 같이 베냐민 지파 아호아 출신이며(9절), 그의 이름이 대상 11:29에서는 '일래'로 소개되어 있다. ㅇ느도바 사람 마하래 - '느도바'는 베들레헴 부근 동북쪽에 위치한 곳이며(스 2:22;느 7:26), 이곳에는 레위인의 향리가 있었다(대상 9:16). 오늘날의 '베이트 나티프'(Beit Nattif)로 추정되나(Robinson), 확실치는 않다. 한편 '마하래'(Maharai)는 10월 장관이었으며(다상 27:13), 유다 지파 출신이었다. 29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ㅇ바아나의 아들 헬렙 - '헬렙'(Heleb)은 대상 11:30에서는 '헬렛'으로, 그리고 대상27:15에서는 '헬대'로 소개되었으며, 그는 옷니엘의 후손으로서 12월 장관이었다. ㅇ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 - 여기 베냐민 사람 '잇대'(Ittai)는 가드 사람 잇대(15:19)와 다른 인물이다. 대상 11:31에서는 '이대'로 소개되어 있다. 30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ㅇ비라돈 사람 브나야 - '비라돈'은 에브라임 지파의 땅이며, 오늘날의 나블루스(Nablus) 남서쪽 페라타(Ferata) 마을이다(삿 12:13). 물론 여기 '브나야'(Banaiah)는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20절)와는 다른 인물이다. ㅇ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 - '가아스' 시내는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가아스 산의 한 시내를 의미한다(수 24:30). 따라서 '힛대'(Hiddair)는 에브라임 지파이다(Keil). 한편, 대상 11:32에서 그는 '후래'로 소개되어 있다. 아마 이러한 착오는 '달렛' 과 '레슈'의 혼동으로부터 야기되었을 것이다(Smith). 31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 (아스마웻)과 ㅇ아르바 사람 아비알본 - '아르바'는 유다 광야에 속한 저지대 아라바 광야인데(수18:18), '벧 아라바'로도 불리워진다(수 18:22;15:61). 한편 '아비알본'(Abialbon)은 대상 11:32에서는 '아비엘'로 소개되었다. ㅇ바르훔 사람 아스마웻 - '바르훔'은 '바후림'으로 여겨진다(Keil, Lange, Smith). '바후림'은 예루살렘 동북쪽 약 6km 지점이며,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다(3:16;16:5). 한편 대상 11:33에서는 '바하룸'으로 나타나 있다. 32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ㅇ사알본 사람 엘리아바 - '사알본'은 '사알빔'과 동일한 지역으로 여겨지며, 이곳은 단 지파에게 할당된 아모리 족속의 성읍이었다(삿 1:35;왕상 4:9). 제롬(Jerome)은 이곳을 벧세메스와 아얄론 주변으로 보았는데, 제롬이 말한 이곳은 오늘날의 '셀비트'(Selbit)로 알려졌다. ㅇ야센의 아들 요나단 - 병행 구절인 대상 11:34에는 '하랄 사람 사게의 아들 요나단'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역대기의 기록이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Keil). 33 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ㅇ하랄 사람 삼마 - 여기 '삼마'(Shammah)는 11절에서 소개된 다윗의 첫 3인 중 한사람인 삼마와 동일 인물이다(Fay, Smith). ㅇ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 - 대상 11:35에서 '아히암'(Ahiam)은 '사갈'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아랄' 사람도 역대기에서는 '하랄' 사람으로 표기되어 있다. 34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ㅇ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벧렛 - 마아가는 바산 북동쪽 헬몬 산 서남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이었다<10:6>. 다윗은 이곳을 정복하고 이곳의 용사 엘리벧렛을 30인 용사에 박탁하였다. 한편 혹자들(Keil, Fay)은 (1) 역대기의 기록(대상11:35, 36-'울의 아들 엘리발과 므게랏 사람 헤벧')과 (2) 본절의 특이성, 즉 '~손자~아들'로 주부까지 표기되어 있다는 점 등에 근거하며, 본절은 두 이름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그들은 본절을 '울의 아들 엘리발과 마아가 사람 헤벧'로 해석한다. ㅇ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 - 길로 사람 '아히도벧'은, 한때 다윗의 모사였으나 배반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한 '아히도벧'을 가리킨다(15:12). 또한 '엘리암'(Eliam)은 우리아의 처 밧세바의 아버지였다(11:3;23:34;대상 3:5). 35 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ㅇ갈멜 사람 헤스레 - '헤스레'(Hezrai)는 대상 11:37에서는 '헤스로'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갈멜'은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유다의 성읍이다(수 15;55;삼상 15:12;25:2, 40;27:3;30:5). ㅇ아랍 사람 바아래 - '아랍'은 헤브론 근방에 있는 유다의 산악 지대이다(수15:52). 한편, 대상 11:37에서는 "에스배의 아들 나아래'로 소개되어 있다. 36 소바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ㅇ소바 나단의 아들 이갈 - 대상 11:38에서는 '나단의 아우 요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소바'는 다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 동쪽에 위치했던 아람 소국(小國)이다. 이 나라는 다윗의 세력에 도전했다가 크게 패배하였다(8:3). 다윗은 이 나라를 정복하고 이 나라 출신 '이갈'(Igal)을 30인의 용사로 발탁한 것이다. ㅇ갓 사람 바니 - 대상 11:38에서는 '하그리의 아들 밉할'이라고 소개하였다. 37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병기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ㅇ암몬 사람 셀렉 - '셀렉'(Zelek)은 암몬 출신으로 이방인이었으나, 다윗에 의해 30인 용사로 발탁되었다. ㅇ요압의 병기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 - '브에롯'은 기브온의 성읍이었으며 후에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다(수 9:17;18:25;삼하 4:2). 따라서 '나하래'(Naharai)는 기브온 족속일 가능성이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한편, '병기 잡은 자'란 의미는 '부관', '경호원', '호위병'이란 의미이다(삼상 14:1;16:21;31:4). 38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ㅇ이델 사람 이라와...가렙 - 여기서 '이델'은 기럇여아림 족속에 속한 한 족속이다(대상 2:53). 따라서 '이라'(Ira)와 '가렙'(Gareb)은 둘다 기럇여아림의 이델 출신이다. 물론 여기의 '이라'는 다윗의 대신(大臣)이었던 야일 사람 '이라'와는 다른 인물이다(20:26). 39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도합이 삼십 칠인이었더라 ㅇ헷 사람 우리아 - '우리아'(Uriah)는 다윗이 범한 밧세바의 남편이자(11:3) 다윗의 충신이었으나, 다윗의 책략으로 모살당했다(11:14-17). 한편 '헷'은 가나안 족속으로서 이방 족속이었다(창 10:15). ㅇ도합이 삼십 칠 인이었더라 - 본문(24-39절)을 따를 경우 용사의 수는 도합 31인이 된다. 그런데 여기 37인이라는 수는 다음과 같이 산정되었을 거시다. 첫째, (1) 첫 3인의 용사단(8-12절)과 (2) 둘째 3인의 용사단(13-23절) 및 (3) 세째 그룹의 31인의 용사단(24-39절)의 수효를 합하여 산정했을 경우이다(R. Payne Smith). 혹은 둘째, (1) 첫 3인의 용사단(야소브암, 엘르아살, 삼마;8-12절)과 (2) 둘째 3인의 용사단(13-23절) 중 그 이름이 밝혀진 2명(아비새, 브나야)과 (3) 그리고 세째 그룹(24-39절) 중 수정된 본문(34절)에 따를 경우에 산정되는 32인의 수효를 합한 경우이다(Keil). 한편 이 용사들의 명단에는 '요압'(Joab)의 이름이 빠져 있다. 그 이유로서 우리는 (1) 요압이 전군(全軍)의 군대 장관이었기 때문에 생략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Lange, The Interpreter's Bible). (2) 그러나 또한 요압은 헌신적으로 충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넬과 압살롬, 그리고 아마사 등을 살해하는 무자비한 행동을 하였고, 아울러 솔로몬 왕을 대적하는 반란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본 명단에서 삭제되었으리라는 추측도 무시할 수 없다(Wycliffe Bible Commenta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