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서가 판단하는 "선한" 나기드(대리왕)의 평가 기준]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함 + 다윗의 길로 전심으로 행함......부가적 요소>산당 철폐 ..... 그 기준에 따라 살펴보면....북왕국 이스라엘에는 합당한 왕들이하나도 없었고, ....그나마 남왕국 유다의 열왕중 '정직히 행하여'란 평가를 받은 선왕은 아사--여호사밧--요아스--아마샤--웃시야--요담--히스기야---요시야 이렇게 8명뿐...그러나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란 칭찬을 받은 왕은 8명에서 오직 3명,. 여호사밧---히스기야---요시야... 이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 신앙의 정도를 걸어갔다는 극찬의 말이다.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산당 철폐까지, 요시야는 유월절 준수까지 기록되고 있음))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산당인가냐, 이방신을 섬기는기기 위한 산당인가 :: 주 임재 앞에서/주 임재따라 하나됨의 산 믿음.. 코람 데오-솔라 피데, 솔라 스크립투라, 솔라 크리스토스, 솔리 데오 글로리아!! .... 곧, 마음의 근본동기가 어떠하냐//분수령적/전환기적 회개-회심 + 날마다/매순간 십자가 보혈-말씀-성령 의지함으로써 교통하며!! 주안에 머무름의 영적 민감성으로 깨어 있어 생명 삶=회개로 하나됨의 삶 살기 " 일편단심, 전심으로!! 거듭난 믿응니와 하나되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령, 곧 (주 이름 부르며, 말씀으로 교통하며, 인도/이끄심따라 주와 하나됨으로 매순간 살아감 통해 그분의 증인된 삶 살기의 문제"=== ---성경을 읽으며 같은 듯 다른 단어를 만나게 된다. 그 단어를 살펴보며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가령 “그러나 산당은 없애지 않아 백성들은 여전히 여러 산당에서 제사 드리고 분향했습니다”(왕하 14:4)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올 때 산당은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곳 같은데, 선지자 사무엘과 솔로몬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 것을 보면 이방신 섬기는 곳이 아닌 곳으로 보인다. ......동일한 산당이라는 단어로 다른 성격의 장소가 기술되어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개정개역이나 우리말성경 구약성경에는 ‘산당’이라는 단어가 77회 나오는데 이 중에서 59회가 사무엘상부터 역대하까지 역사서에 집중해서 나온다. ---.산당(high place)은 높은 산에 설치한 제단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던 제단과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제단이 있는 곳으로 아래 4가지 정도로 구분된다. 사무엘 때의 라마 산당과 솔로몬 성전 건축 전의 기브온 산당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곳이었으나 나머지 산당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되는 제사와 이방신을 섬기기 위한 산당이었다. ==사울과 사무엘이 만나는 장면의 산당 사무엘상 7장 17절에서 사울과 사무엘이 만나는 장면의 산당은 사무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 산당은 라마에 있었을 가능성 있다. 그리고 9장과 10장에서 이 산당이 계속 등장한다(삼상 9:12, 13, 14, 19, 25, 10:5, 13). ...“그리고 언제나 자기 집이 있는 라마로 돌아와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그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삼상 7:17).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당신들보다 앞서가셨으니 서둘러 가 보세요. 오늘 산당에서 백성들의 제사가 있어서 지금 성에 도착하셨습니다’”(삼상 9:12). ...다윗이 다스리던 성전 건축 전에는 여호와의 장막(성막)을 기브온 산당에 두고 율법에 따라 번제를 드렸다(대상 16:39~40, 21:29).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그 형제 제사장들을 기브온의 높은 곳에 있는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여호와의 율법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번제단에 번제를 드리게 했습니다”(대상 16:39-40). ...솔로몬도 왕이 된 직후 일천번제를 기브온 산당에서 드렸는데 성경 번역상의 문제인지는 몰라도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는 일이 약간 부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왕상 3:2~4, 대하 1:3, 13). ...“그때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성전이 그때까지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하고 자기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살긴 했지만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는 일은 계속했습니다. 왕은 제물을 드리러 기브온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큰 산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그 제단에서 1,000마리 짐승을 번제물로 드렸습니다”(왕상 3:2~4). ==북 이스라엘에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세운 산당 솔로몬이 죽은 뒤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고,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남유다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 제사로 인한 민심 이탈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에 산당을 세웠다(왕상 12:27~29). 이 산당은 하나님께 제사는 드리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자신의 선조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낸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기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했다(왕상 12:31~2, 13:32~3). ...“‘이 백성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면 이 백성들의 마음이 그들의 주인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돌아갈 게 분명하다.’ 그리하여 여로보암 왕은 조언을 구한 뒤에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고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너희에게 큰일이다. 이스라엘아, 여기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너희 신들이 있다.’ 그리고는 금송아지 하나는 벧엘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습니다(왕상 12:27~29). ...여로보암은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사람들을 제사장들로 세웠습니다. 그는 유다의 명절처럼 여덟째 달 15일을 명절로 정하고 제단에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그는 벧엘에서 자기가 만든 금송아지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쳤습니다. 또한 벧엘에서 자기가 만든 산당에 제사장들을 두었습니다(왕상 12:31~32). ===남 유다에 세운 예루살렘 성전 이외의 산당들 히스기야 당시 솔로몬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 외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이 존재했으나 히스기야가 제거했다(대하 32:12). ... “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다만 한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대하 32:12). ...므낫세가 히스기야가 허문 산당들을 다시 세웠으나(대하 33:3~5) 회개 이후 이방신 섬기는 산당은 모두 제거했고,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은 그대로 두었다(대하 33:15~17). ... “므낫세는 자기 아버지 히스기야가 무너뜨린 산당들을 다시 지었고 또 바알의 제단을 세웠으며 아세라 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또한 하늘의 별들을 경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겠다’라고 말씀하신 그 여호와의 성전에 우상을 위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 안팎의 뜰에 하늘의 모든 별들을 위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대하 33:3~5). ...“그는 이방 신들을 없애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자기가 성전 산과 예루살렘에 지어 놓은 모든 제단들을 비롯한 우상들을 없앴습니다. 므낫세는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그 위에 화목제물과 감사제물을 드렸으며 유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리되 계속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대하 33:15~17).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 민수기,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하에 나오는 나머지 대부분의 산당은 가나안의 이방신들인 바알, 그모스, 아스다롯, 밀곰과 아세라를 섬기기 위한 산당들이다(민 22:41, 33:52, 왕상 11:7, 14:23, 15:14, 22:43, 왕하 12:3, 14:4, 15:4, 35, 16:4, 17:9, 11, 29, 32, 18:4, 22, 21:3, 23:5, 8, 9, 13, 15, 19, 20, 대하 11:15, 14:3, 5, 15:17, 17:6, 20:33, 21:11, 28:4, 25, 31:1, 33:3, 19, 34:3).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왕상 11:7). ...시편,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미가에도 산당이 나오는데 대부분 이방 신을 섬기는 제단이지만 일부 드물게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도 있어 앞뒤 문맥을 살펴 이해하면 된다 (시 78:58, 사 15:2, 16:12, 렘 17:3, 19:5, 26:18, 32:35, 48:35, 겔 6:3, 6:6, 16:16, 20:29, 호 10:8, 암 7:9, 미 1:5). ---------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해보면 가나안 정착 이후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의 산당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한 산당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분열 이후 산당들은 일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장소와 방법이 아닌 제사나 이방신에게 제사 드리기 위한 산당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 받으신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나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만들어드릴 수 없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다. == 하나님만 모시는 마음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시며 기뻐하시지만, 하나님 외에 돈, 명예, 쾌락 등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게 되면 더는 그 마음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성경에 나온 산당이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 판별하기 전에 그곳이 하나님을 모시는 곳인지 아니면 이방신에게 제사 드리기 위한 곳인지를 살펴야 한다.
왕상1장 ...아무것도 겉보기엔 진행됨 없어 보이며, 둘러싼 환경상황형편처지가 나날이 점점 더 악화 되어가는 것 같으나!!, 오히려 주님 일하심 보여주실 때가 이르렀음을 알고 그대 자신의 영혼을 정결케 더욱더 주와 합하며 주님 신뢰하기를 실행할지니!! -롬8:28을 기억-명심하고 다만 그대 자신의 마음을 열고 주 임재 안에 머물러 있어서 온전히 주께 합하라!!--주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며, 예비하신 그 때 반드시 오게 하시리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거하리라,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나 여호와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네게 주리니-네 소유가 당끝까지 이르리로다, 내가 반드시 행하고 성취하며 임마누엘로 행하는 바 너를 물댄 동산같이 만족하게 하리라,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할수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못할일이 전혀 없느니라 ...성경적 역사관 = 종말론. ***시온산, 시온산성(다윗성) 혼동 말것
##기혼샘 : 기드론 골짜기에 위치...이 기혼샘이 있었기에 시온산성이 세워질 수 있었음..이사야 7장 3절에 나오는 ‘윗못 수도’( 水道)는 예루살렘의 기드론(Kidron) 골짜기에 있는 ‘기혼 샘’과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수도 시설을 뜻함...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이 샘 때문에 시온 산성이 오벨(Ophel) 언덕에 세워질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펠 언덕 북쪽이 모리아 산(성전 산)이고, 오펠언덕 하부 지역과 시온산 사이에 다윗 성이 위치... 이 샘은 시온 성 밖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다윗이 이 지역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이곳 원주민들은 적의 공격으로 인해 물 공급이 차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오펠 언덕의 바위 밑으로 굴을 뚫어 기혼 샘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여 사용했다. 아마도 다윗은 바로 이 수구( 水口....워렌이 발견해서, 워렌 수구라 칭함)를 통하여 성 안으로 침입하였기 때문에 쉽게 시온 성을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참조, 삼하 5:6-9). 훗날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는 의식을 기혼 샘에서 행하였는데(왕상 1:32-39), 이는 다윗 자신이 시온성의 주인된 것이 기혼 샘 수로(水路) 덕분이었음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히스기야(Hezekiah, B.C. 725-697) 왕은 앗수르 왕 산헤립 (Sennacherib)의 침공에 대비하여 기혼 샘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수로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저 유명한 ‘실로암’(Siloam) 수로이다(참조, 대하 32:1-4, 30)....원래 실로암 못은 없었던 것인데 전에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산헤립의 침공을 대비하여 성 밖에 있던 기혼 샘을 메워버리고 대신 바위 밑으로 500여m 터널을 뚫어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여 실로암 못을 만든 것. 즉 솟구치는 싱싱한 기혼 샘물을 성 안으로 흘려 보냈으니 여기서 ‘보냄을 받았다’는 뜻으로 ‘실로암’ 못이라 이름 붙여졌다....실로암 못은 기드론 골짜기와 중앙 골짜기(티로페온 골짜기)가 만나는 다윗성 남단에 위치한다.. #엔로겔 샘 : 베냐민 지파와 유다지파 사이의 경계.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가 만나는, 다윗성 남단 실로암 보다 더 밑에서 더 남쪽으로 나아간, 50m 정도 더 떨어진 지점(세탁자 샘)
**두 제사장과 두 장막 체제 ::: 시온산 장막(언약궤 안치 + 아비아달이 주관) ---기브온 산당(큰 번제단 + 사독이 주관[모세의 성막과 제반 기구들을 보관])**
.......주님 보시기에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 언약 따라...참된 영적 질서 아래서만 존재함.....이 원칙을 JC께서도 지키고 계셨음(세례요한에게 겸손히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심) ...다윗의 형통은 [임마누엘 하나님 경외함 인해!! 눈물 골짜기-15광야를 겸손과 경외함-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지남 인해]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주님과의 친밀함의 뛰어남 인해] 형통한 자였고, 그에 비하면 솔로몬의 형통은 [여디디아]란 이름에 부합하지 못한바, 너무나도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삼하7:12-16, 대상22:5, 삼하12:24, 25에서도 솔로몬이야말로 여호와의 성전 지을자요,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자임을 분명히 해 주셨고, 다윗 그 자신도 밧세바에게 솔로몬을 주께서 친히 택하신 바, 자신의 뒤를 잇는 자요 주님의 성전 건축이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임을 주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전해주고 확약했음에도!! 즉, 솔로몬이야말로 분명히 주께서 언약하신 자임을 알면서도!! (밧세바와의 간음사건에 대해 애통하며 회개함으로 사해주신 주님 마음과 시선에 굳건히 머물러 있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때때로 오히려 세상의 도덕적 관점따라 "불륜-살인"을 돌아볼 때마다 올라오는 이상한 거리낌때문에 '정말..솔로몬을 후계자로 내세우것이 합당한 걸까--이로 인해 후세 사가들에 의해 내 명성에 계속 흠잠힘 되는 것은 아닐까는 잡생각에....다음 후계자는 솔로몬이라는 공표를 머뭇거리고 있었다....게다가 어찌보면 너무나도 완벽한 왕의 재목이요, 흠잡을 데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아도니야(뜻-나의 주는 여호와)는 그 얼마나 준수하고 그 어미 학깃(-뜻 : 축제)은 이스라엘 사람이라서, 압살롬과는 또 다른 귀염둥이/금수저로서 그야말로 스펙도 최고라서 학식-성경지식-예의범절-외모/호감도 그 어느측면에서도 당연히 최고의 왕재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 아닐까...바로 이런 점에서 요압과 아비아달은 함께 왕위찬탈 음모에 합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때.주님은 나단을 통해 그분의 일을 이루고 계셨다....그것을 깨닫고는 분연히 주님 뜻 실행하는 다윗이었다!! ......이것은 야곱의 열두 아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러했던 바, 요셉~, 요셉~하며 그들이 마치 구세주처럼 그동안 내세우고 있던 관점에서 마지막 임종 직전에 주신 바 유언이자 예언적 축복 시점에 이르러서는!! 돌연히 시아비-며느리의 불륜사건의 흠이 있으되 회개한 유다에게로 영적 후사 계보가 옮겨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 세상의 도덕적 관점이나 외모/스펙/예의범절과 도덕적 무결성 등 사람의 관점을 넘어서서 보고 계시며 예비해 두신!! 완전하신 주님의 택하심을 신뢰하고 붙드는 초월적 믿음/신앙의 일편단심과 은혜위의 은혜 관점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섣부르게 짐짓추정하며 차별-홀대함으로써 범죄하지 않도록 하자!!
===다윗이 늙은 때....[301.지금까지 지내온것]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나이가 들었다 생각된다면, 주 앞에서 돌아보라!!)) 말씀 주신 바 (자기연민에 빠지지말고!!) 주님 마음따라서만 생각하도록 하라..주 보시기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 Q나라를 어떻게 유업으로 순조로이 남기며 넘길까!! ......[고후4: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 뜻 : 내 아버지는 방랑객"..당시 천하제일미녀..아도니야까지도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그 미모를!! 탐낼 정도] 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 합당한 절제와 예의로!! 그러나 동시에 다정다감함으로 대하고 있음...성접촉 결코 시도하지도 않음을 의미(오직 곁에서 잔 심부름과 동시에 몸 시중 들며, 추위 타는 다윗의 체온 유지 위한 온돌 용품 대용 역할)]...볼썽 사나운 세상적 처방:: 쉬나미티즘::이 아님을 의미...압살롬 사후에는 오직 중심으로/일심으로 밧세바만 총애하고 친밀히 대함을 견지....비로소 음란중독에서 벗어나고 있음!!) .......열왕기상의 관점.....[사람이 전적으로 무력해질 그 때야말로, 하나님께서 언약 이루시려 일하시는 시간임!!! ]....약할때 강함 되시네..나주님의기쁨되기원하네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하다 ......[사람 용모따름이나 사람 생각 따름 아니라!!] Q의 언약 말씀에 대한 순종/복종 의무와 책임이 나단/사독-밧세바/솔로몬-브나야에게 주어지고 있음 5. ○[이제 아비 다윗은 70세에 가까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단지 서서히 죽어가는 뒷방노인네에 불과 하다고 생각하면서(착각이지만)...여호와의 언약을 받은 (아직은 유약해 보이는, 아직 20세 되기전) 솔로몬이 언약적 계승자 됨을 주장하여 나서기 전에 거사해야한다고 계책 제시하는 이들의 간언이 일어나고 있었던 그 때]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이 때에도 다윗은 망설이고 있었다!!..역시 압살롬에게 대하였듯 바로 그렇게 금수저 + 심히 준수함 + 스펙 짱짱 :: 학식 교양 성경지식 교육 두루 갖춘 영재 교육 --왕 후계자/말 잘 듣고 상대방 경청함 인해 능력있는 /실력 두루 갖춘 귀공자 대접 받음 + 동시에!!, 한편으로는 압살롬에 대한 냉대를 후회하였던 듯 = 너그럽게만 대하고 있었음....그 결과는 !!자식 교육 완전 실패!!...그 경건한 사무엘조차도 자녀교육은 엉망아었고, 그 결과 대리왕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었음!!) .......이 시대에 있어서 [공공 유익 관점에서] 진정한 애국이란 주님 말씀 따라 사는, 고난과 역경 아는, 주 앞에서 말씀따라 나아가는 자 됨에 있으니!!, 자녀 교육 제대로, 예의범절-질서 의식 갖춘 자녀 제대로 잘 키우는 것!!...학대/폭력 행사하는 부모 치하에서 (무의식적 반발/저주함으로써 동성애 경향성 가진, 치우친 자녀로 성장케 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음란 중독은 아비가 어미를, 또는 그 반대로 어미가 아비를 지나치게 학대할 그때, 그것을 본 아이에게 보호본능이 작동되어 보호하고 안아주려는 마음이 자라나게 되는 바 음란중독에로 가울어짐이 알려졌다..그러나, 이 모든 치우침은 거듭남으로써 다 끊어진다!!........[잠6:23..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전7:5..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22: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솔로몬이 왕이 되다...누가 오늘날, 주 앞에 그분 임재 앞에 깨어 구함으로써!!, 주님 마음 알아드리며, 그분의 지혜와 타이밍 따라 그분의 행하시는 손발 되어드리는 영적 선물 "나단"인가!!..(언약말씀 그대로 일하시는, 결코 식언함 없으신 하나님을 보라!!)..이제야 비로소!! 솔로몬이 바로 말씀하신 그대로 예비해두신 영적 후사 됨을 알아보고 인정하고 왕으로 세우고 있음!!...이것은 야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서, 요셉~, 요셉~하며 요셉을 최우선시 하다가 죽지전에 이르러 예언적 유언 주셨을 때에야 비로소 유다의 영적 후사됨을 알아보게 되었고, 야곱은 그 때 소스라치게 놀랐으리라!!..[368. “주예수여은혜를내려주사”] [255.너희죄 흉악하나] 11. ○[오늘, 누가 주 임재 안에 깨어 주님 나라 도래함을 구하는 "나단" 역할 할 것인가!!..주 앞에 깨어 구함으로써!! 주님이 일깨어 깨닫게 해 주신 그대로, 성령의 일하심 그 절차대로 순종하는 바, 주님의 일하시며 가리키는 손!!, 주님의 "선물"]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2.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그리고 부디 경청하시고 심사숙고하여 주님이 마음에 일깨우시는 바 그 말씀대로 말하며 행동해 주소서!!] 13.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14. 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하실 때에 나도 뒤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확증하리이다 15. ○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중들었더라 .......이미 밧세바와 아비삭은 주 안에서 서로 정중/다정하게 대하면서 아껴주는 바 상호 고마움과 상호 귀히 여겨 존중하는 한 팀처럼 마음이 하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음.. 16. 밧세바가 몸을 굽혀 왕께 절하니 왕이 [다정하게] 이르되 어찌 됨이냐 17. 그가 왕께 대답하되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여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거늘(..삼하7:12-16, 대상22:5, 삼하12:24, 25) 18.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내 주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9. 그가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을 청하였으나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나이다 20. 내 주 왕이여 온 이스라엘이 왕에게 다 주목하고 누가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지를 공포하시기를 기다리나이다 21.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 22. ○밧세바가 왕과 말할 때에 선지자 나단이 들어온지라 23. 어떤 사람이 왕께 말하여 이르되 선지자 나단이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왕 앞에 들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왕께 절하고 24. 이르되 내 주 왕께서 이르시기를 아도니야가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나이까 25. 그가 오늘 내려가서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군사령관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청하였는데 그들이 아도니야 앞에서 먹고 마시며 아도니야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였나이다 26. 그러나 왕의 종 나와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사오니 27. 이것이 내 주 왕께서 정하신 일이니이까 그런데 왕께서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 자를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 28. 다윗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밧세바를 내 앞으로 [다시]부르라 하매 그가 왕의 앞으로 들어가 그 앞에 서는지라 29. 왕이 이르되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 30.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 31. 밧세바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내 주 다윗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대상22: 5-10(9, 10) .. *5.다윗이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다윗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6.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7.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8.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9.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10.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삼하7:8-16(12,13, 16)...*8.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9.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0.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12: 24, 25...*24.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549.내주여뜻대로행하시옵소서] [338.내주를가까이하게함은]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하늘의문을여소서..내안에가장귀한것 32. ○다윗 왕이 이르되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니 그들이 왕 앞에 이른지라 33.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의 신하들을 데리고 내 아들 솔로몬을 내 노새에 태우고 기혼으로 인도하여 내려가고 34. 거기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너희는 뿔나팔을 불며 솔로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고 35. 그를 따라 올라오라 그가 와서 내 왕위에 앉아 나를 대신하여 왕이 되리라 내가 그를 세워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치자로 지명하였느니라 3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님과 왕을 신뢰하여 하나된 우리도 적극 찬동하오며, 왕의 지명 그대로 여호와께서도 확증하며 행하심으로]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37. 또 여호와께서 내 주 왕과 함께 계심 같이 솔로몬과 함께 계셔서 그의 왕위를 내 주 다윗 왕의 왕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 “아멘”(하고 브나야는 진정으로 말했다). “왕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도 말하리이다. 우리는 왕위 지명에 전적으로 만족하며 그 선택에 찬동합니다. 우리는 솔로몬을 만장일치로 지지합니다(nemine contradicente). 우리는 하나님의 순조로운 섭리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더구나 그것을 완성할 수도 없나이다. 내 주 왕의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나이다(36절).” 이것은 솔로몬의 왕권이 수립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다. 38.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내려가서 솔로몬을 다윗 왕의 노새에 태우고 인도하여 기혼으로 가서 39. 제사장 사독이 성막[사독이 주관하는 기브온 산당에 성막과 기구들을 (솔로몬성전 완공 때까지) 보관 중이었음...언약궤는 아비아달이 관리하는 시온산 장막에 있었음 --시온산 장막을 "여호와의 장막", 기브온 산당 장막을 "성막"으로 기술하고 있음에 유의하라 --번제단은 두 곳 모두에 있었음] 가운데에서 기름 담은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뿔나팔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40. 모든 백성이 그를 따라 올라와서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갈라질 듯하니 *** 41. 아도니야와 그와 함께 한 손님들이 먹기를 마칠 때에 다 들은지라 요압이 뿔나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어찌하여 성읍 중에서 소리가 요란하냐 42. 말할 때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오는지라 아도니야가 이르되 들어오라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43.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과연 우리 주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삼으셨나이다 44. 왕께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솔로몬과 함께 보내셨는데 그들 무리가 왕의 노새에 솔로몬을 태워다가 45.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이 기혼에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무리가 그 곳에서 올라오며 즐거워하므로 성읍이 진동하였나니 당신들에게 들린 소리가 이것이라 46. 또 솔로몬도 왕좌에 앉아 있고 47. 왕의 신하들도 와서 우리 주 다윗 왕에게 축복하여 이르기를 왕의 하나님이 솔로몬의 이름을 왕의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왕의 위보다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48. 또한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내 왕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내 눈으로 보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하니 49. 아도니야와 함께 한 손님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 50.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언약궤 안치한 시온 산 장막 제단의]제단 뿔을 잡으니 51.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52. 솔로몬이 이르되 그가 [추후에 주 임재 앞에서 삼가며 살아가는 바가, 그 행동으로 드러날 바!!] 만일 선한 사람일진대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그에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53. 사람을 보내어 [솔로몬의 말 그대로 전하여 (회개 촉구하고!!)] 그를 제단에서 이끌어 내리니 그가 와서 솔로몬 왕께 절하매 솔로몬이 이르기를 네 집으로 가라 하였더라 ---------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신명기 29:14~29절)== >>하나님의 염려(14~21절) 자, 오늘도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한 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게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아버지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는 복된 아침이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야 할 본문은 하나님의 염려입니다. 적합한 표현이 아닐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제목 삼고 싶었습니다. 이 제목은 18절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19절에서 할까 함이라는 말씀도 하나님의 염려를 표현한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16~17절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살았던 것과 너희가 여러 나라를 통과한 것을 너희가 알며,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야다([d'y:)입니다. 애굽 땅에서 살았던 것은 이스라엘의 과거가 노예였다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를 통과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안 것이 아닙니다. 경험적으로 구체적으로 알았습니다. 애굽의 열 재앙과 홍해를 건너던 그 순간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듯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받은 시절의 경험은 그냥 지나치면서 안 것이 아닙니다. 온몸과 마음으로 체험하여 안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여기서 보았다는 말은 라아(ha;r;)입니다. 이 말은 검사하다, 인지하다, 숙고하다, 발견하다, 관찰하다, 주목하다, 분별하다 등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냥 본 것이 아니라 주목해서 본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애굽과 가나안의 우상들을 주목해서 보았는지 참 답답한 대목입니다. 애굽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여러 나라를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들이 섬기는 우상이 얼마나 헛되고 힘없는 존재들인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만나고 우상들의 덧없음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떠나서 죽은 신들을 섬길까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할까 염려하시는것일까요? 앞 단락에서 등장했던 사람들, 여기서는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모든 사람!!.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는 것이 보는 것의 영향을 받아 바뀐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는 핵심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온몸과 마음을 다해 경험해서 안 것이 우상숭배 하는 나라들의 풍속을 보고 그들을 따라갈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염려는 기우가 아닙니다. 이미 역사를 살펴본 것처럼 하루 이틀 이렇게 우상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800여 년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선지자를 보내셨습니까? 그런데도 끝까지 우상을 따른 결과, 저주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레위기 26장에서는 우상숭배가 거룩을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그 우상숭배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즉 그침의 원리, 성회의 원리, 나눔의 원리는 안식일의 정신입니다. 그 안식일이 제대로 지켜지면 안식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의 문제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닌 모양입니다. 구약 성경을 살피다 보면 우상숭배가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기 때문입니다. 17절에 출애굽을 하면서 본 우상들을 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그런 우상들을 섬길까 염려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독초와 쓴 뿌리가 생겨서 이 저주의 말씀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독초와 쓴 뿌리는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아 보입니다. 인간을 해치는 나쁜 마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향력이 큽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독초와 쓴 뿌리라고 표현한 것은 이것의 해악이 독초와 같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오면서 다른 나라들이 섬기는 우상의 하찮음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마음에 독초와 쓴 뿌리가 자라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탐욕이라고 봅니다. 이 부분의 번역은 다른 번역 성경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새 번역입니다. 19~21절까지를 읽어 보겠습니다. “당신들은 그들 가운데 있는 역겨운 것과, 나무와 돌과 은과 금으로 만든 우상을 보았습니다. 당신들 가운데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가, 주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을 멀리하여, 다른 민족의 신들을 섬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 가운데 독초나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이런 저주의 말을 들으면서도 속으로 자기를 달래면서 '내 고집대로 하여도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그런 사람을 그대로 두면, 맹렬한 재난을 만나서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주님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퍼부으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저주를 그에게 내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려서,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구별하여, 이 율법책의 언약에 나타나 있는 온갖 저주대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 우상을 섬기는 것과 19절의 스스로 하는 위로는 같은 것입니다. 19절에서 이 저주의 말은 28절에 길게 언급하셨던 축복과 저주 가운데 저주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숭배에 빠진 독초나 쓴 뿌리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달래면서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마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아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긴장입니다. 그 긴장 사이에 하나님의 염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이 보는 것의 영향을 받아 흘러 떠내려갈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분노하시고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려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염려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과 모든 것들을 경험했지만 우상숭배에 빠져서 여호와를 떠나는 것입니다. 저주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나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평안할 것이라고 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 일이 이미 일어난 일입니까? 아닙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이렇게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0절에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위에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부으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주저를 그에게 더하신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21절에서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염려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서 여호와를 떠나게 되어 그들을 심판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언약하시는 언약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오늘 너희, 곧 너희의 수령과 너희의 지파와 너희의 장로들과 너희의 지도자와 이스라엘 모든 남자와 너희의 유아들과 너희의 아내와 및 네 진중에 있는 객과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입니다. 그리고 15절에 의하면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란 자에게까지”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오고 오는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주의해서 보셔야 할 것은 수령과 장로들, 지도자와 모든 남자가 누구와 동일 선상에서 취급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유아들, 아내들, 객들, 나무패는 사람들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 빈부귀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분의 귀천과 고하가 어디서 차별이 없어집니까? 여호와 앞에 서 있을 때입니다. 11절에서 여호와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핵심은 [모든 백성,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믿는이들마다!!] 여호와 앞에 서 있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서는 누구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이며 언약의 당사자들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도 이 언약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 당사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의 출신 성분이나, 직업, 직분을 초월해서 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입니다. 15절에는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 오늘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한 미래에 태어날 사람까지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들까지를 바라보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언약의 대상은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까지 미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는 대상은 어쩌면 오늘 우리들 까지를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염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오늘을 잘 살아야 하겠습니다.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의 의미(29절) 하나님의 인도라는 주제로 성경 공부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나, 국가의 흥망성쇠, 이른 비와 늦은 비 같은 영역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대하고 기도할 뿐입니다. (사진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경우를 만납니다. 날씨에 대한 체크를 꼼꼼히 합니다. 며칠 전부터 바람이며 습도며, 구름을 살피고 또 살펴서 출발합니다. 그런데요? 막상 도착하면 전혀 다른 풍경이 우리를 맞아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법성포에 사진을 담으러 간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내내 날이 흐립니다. 분명히 일기예보는 구름 많음이었는데 하늘은 온통 시멘트 색입니다. 가다가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다가 어찌어찌 대덕산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부지런히 장비를 챙겨서 올라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내려옵니다. 상황 종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뒤늦게 올라가는 저를 조금은 한심하게 바라보고 내려갑니다. 그래도 저는 야경이라도 담아보겠다고 올라갔습니다. 가장 낮은 포인트에서 몇 컷을 담습니다. 신통치 않습니다. 야경을 담으려고 하는데 포인트가 너무 낮아 조금 더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요? 올라가서 다리를 펼치고 1분이 지나지 않아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약 40분간 환상적인 일몰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런데 인용하는 것이 죄송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날씨입니다. 멀리 수원에서 부산에서 온 사람들이 다 내려갔는데 불과 서너 명이 남아 그 장관을 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요사이 묵상하고 있는 나훔 선지자의 앗수르에 대한 심판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 인간으로 하여금 장래를 알지 못하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입니다. 장래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윤리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성경 말씀 전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제사장 나라 백성들이 이렇게 살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들은 순종할 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신명기도 온통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이 정확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생활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순종하며 살아가느냐가 관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윤리적인 뜻은 더 배우고 살펴서 내 삶의 빛이요 등이 되도록 해야 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상한 현상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윤리적인 뜻, 즉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나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도록 해 놓은 장래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보았다느니 환상을 보았다느니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더 나아가 장래 일에 대해 길흉화복을 점치는 희한한 기독교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 사이의 긴장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2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한 것이 다릅니다. NIV성경입니다. “The secret things belong to the LORD our God, but the things revealed belong to us and to our children forever, that we may follow all the words of this law.” 새 번역 성경도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숨기시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일도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뜻이 담긴 율법을 밝히 나타내 주셨으니, 이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손은 길이길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 secret things에 해당하는 것이 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속하는 것들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숨기시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영역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things revealed, 즉 이미 역사를 통해 나타난 일들, 계시 된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담긴 율법을 나타내 주신 것은 우리와 우리 자손이 길이길이 이 율법에 순종하도록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감추어진 일’은 히브리어로는 싸타르(rt's;)로 ‘숨기다’, ‘감추다’라는 의미입니다. 나타난 일은 가라(hl'G:)로 ‘발가벗기다’, ‘누설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학자들 가운데는 이 말씀을 어렵게 생각해서 감추어진 것들은 하나님에게만 알려진, 즉 하나님이 어떤 명령을 하는 이유이고, 나타난 일은 이스라엘이 다 모르더라도 그들에게 맡겨진 것이라고 합니다. ... 또 다른 분들은 감추어진 일은 숨겨진 죄인데 이것들은 하나님께 다 드러나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벌하실 것이고, 나타난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의 책임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감추어진 일은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일인데, 우리는 그것을 상상할 것이 아니라, 나타난 일, 즉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말씀을 따라서 사는 성도들의 삶이라고 해석합니다. (이게 더 자연스럽고 문맥에도 맞아 보이는데 학자들은 왜 저런 주장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도 새 번역 성경의 해석이 옳아 보입니다. 물론 NIV 성경도 동일한 견해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9절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와 신비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나타난 일, 즉 계시 된 언약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이 정말 중요한 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일, 즉 주권적인 하나님의 뜻을 엿보아 아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미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에는 무관심하거나, 하찮게 여기고, 신비만 좇습니다. 그것이 훨씬 종교적이고 고상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의 삶에서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게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터전으로 주셨습니다. 그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내기를 아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런데 감추어진 Q의 뜻에만 관심이 있고 정말 살아내야 할 Q의 뜻은 하찮은 것이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교만을 떠는 것은 기독교를 더 하찮은 종교로 전락시키는 주범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묘한 일은 Q께 속하였습니다. 아멘. 그것은 Q의 영역입니다. 그것에 관심 둔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안다고 하더라도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나타난 일, 우리에게 허락된 것을 따라서 살 뿐입니다. 그것이 Q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Q의 뜻입니다. 아멘. 그래서 29절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감추어진 일을 알기 위해 마음을 쓰기보다 이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것이 Q의 백성이 살아가야 할 올바른 길입니다. >>오늘과 같다 하리라(22~28절) 자, 그러면 여기서 주의해서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핀 29절은 앞 단락의 인과 절입니다. 다시 말해 22~28절에 대한 결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앞의 우상숭배가 감추어진 일을 알려고 하는 인간의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자, 우선 22~28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24절을 보는 것에서 시작해 봅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묻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이같이 크고 맹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냐?”고 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옛날 번역에는 “열렬하게 노하실 것이라.”입니다. Q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질문 거리가 되고 부끄러움이 되었는데 그렇게 Q의 교회가 모욕당하는 상황을 Q께서 맹렬하게 노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Q께서 맹렬하게 노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22~23절입니다. “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의 자손과 멀리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 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그럽니다. 자손과 객들이 재앙과 질병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질병과 재앙의 출처가 여호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내리시는 재앙이요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즉 징계라는 말입니다. 온 땅이 유황이 되고 소금이 되었다는 말은 앞서 하늘이 놋이 되고 땅이 철이 되었다는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황폐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후손들도 알고 세상 사람들도 아는데 Q의 징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왜 Q께서 이렇게 맹렬하게 노하시느냐는 것입니다. 25~2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 여기서 그때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렇게 된 이유를 사람들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맹렬하게 진노하시는 이유를 사람들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서 있는 너희, 즉 언약 갱신에 참여한 보배로운 신부 같은 백성들이 언약을 저버리고, Q의 백성다운 삶을 살지 않을 때 Q께서 맹렬히 진노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진노하시는 것입니까? 이미 여러 번 말씀하신 것처럼 Q께서 어린양의 피와 홍해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만나와 구름 기둥, 불기둥과 반석의 물 등등을 체험하게 하심으로 그들을 설득하신 뒤에 드디어 약속을 맺으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Q이 염려하셨습니다. Q께서 말씀하시는 저주의 말씀을 듣고도 우상숭배에 빠지고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 마음이 평안하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당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의 그리스도인들과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이 언약은 29:12절 말씀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하시는 언약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처럼 하나님께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시고 인간들에게는 그 언약에 동참하라고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은혜 언약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25절에 언약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Q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알지도 못하고 주시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8절에 Q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고 누가 말합니까? 사람들이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점검해 보겠습니까? 24절의 열렬한 진노, 맹렬한 진노는 지금 이루어진 일입니까? 아닙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입니다. 따라서 29절 말씀을 다시 살피는 일은 중요합니다. 호렙에서 모압까지의 시간은 경험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겪게 될 일들은 경험의 시간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내야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따라서 나타난 일들을 교훈 삼아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빛이라고 고백하며 살아내는 것이 성도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 사이에서 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언약은 감추어진 것입니까? 나타난 일입니까? 나타난 일입니다. Q께서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뜻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지키고 따라야 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감추어진 Q의 뜻에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그게 어디로 간 것입니까? 알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주시지도 않은 다른 신들을 따라간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무당을 많이 찾아갔습니다. 그때 무당에게 묻는 것은 거의가 감추어진 일에 속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사업장을 어디에 내야 하는지, 결혼 날을 언제 잡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에서부터 집에 생기는 크고 작은 우환이 왜 일어났는지 별의 별 것들을 다 가지고 가서 물었습니다. 그런 것들 가운데는 대부분 감추어진 것들이 많았습니다. 즉 Q께서 알지 못하도록 하신 것들입니다. 그렇게 찾아가서 묻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염려이고 다른 하나는 탐욕입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는 근본적으로 탐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감추어진 일, 즉 Q의 주권적인 영역들을 왜 알고 싶은 것입니까? 단순히 궁금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뭔가 필요한 것이 있고 염려스러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복술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당들이 기독교 내에도 존재합니다. 이름만 기독교로 바뀌었지 과거 무당들이 하는 짓을 똑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은 인격적인 Q이 아니라 무당 종교의 신과 비슷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기도했더니 보여주셨다고 하면서 오만 것들에 다 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Q은 나타난 일, 즉 Q께서 말씀하시고 이렇게 살라고 하신 것 외에 인간은 Q의 형상이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수많은 영역에서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결정은 지나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책임이 따릅니다. 그런데 무당에게 물으면 내 책임은 빠지고 무당책임이 되고 운명이 됩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이런 기독교는 오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 되는 기독교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오늘 진노를 받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들처럼 예배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열심히 율법을 준수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다만 우상도 겸하여 섬긴 것입니다. 그리고 저울추가 우상에게 더 기울어진 것입니다. Q은 그런 종교에 기만당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묘하게 무당 종교와 기독교를 섞어서 기독교 무당이 되는 것은 사실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감추어진 것들은 Q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그 영역을 자꾸 말하고 안다고 하는 것은 오늘 본문은 우상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29절이 말씀하고 있는 감추어진 일, 즉 Q의 영역을 우상 종교는 자꾸 침해하고 거짓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그런 기독교를 Q은 끔찍하게 싫어하셔서 그들을 향해 진노하시고 멸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아야 할 그들의 삶에 대해서 Q께서 미리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나타난 일이 아니라 장차 곧 있게 될 일입니다. 장래에 속한 일이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되었을 때 이렇게 살지 말라고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여호와께서 맹렬하게 노하시는 상황은 사실은 감추어진 일입니다.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것도 아닙니다. Q의 주권적인 뜻이 아닙니다. 그 삶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Q은 그 일을 미리 말씀하시면서 그때 그때의 결정을 나타난 일에 의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을 살아갈 때 나타난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감추어진 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그것에 관심 두기보다 나타난 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좋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안다고 치부하지 마십시오.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면서 이론만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매일 그 말씀 때문에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도록 놓아두어야 합니다. 탐욕을 그치고 우상숭배를 그쳐야 합니다. 그래야 Q께서 말씀하신 나타난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생활과 지금 우리의 미래는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니, 우리가 살아야 삶도 다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면서 나타난 말씀, 우리에게 영원히 주신 Q의 말씀을 사랑하고 깨닫고 순종하는 일에 매일 헌신하는 귀한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 [NASB]제1장 1. Now King David was old, advanced in age; and they covered him with clothes, but he could not keep warm. 2. So his servants said to him, "Let them seek a young virgin for my lord the king, and let her attend the king and become his nurse; and let her lie in your bosom, that my lord the king may keep warm." 3. So they searched for a beautiful girl throughout all the territory of Israel, and found Abishag the Shunammite, and brought her to the king. 4. And the girl was very beautiful; and she became the king's nurse and served him, but the king did not cohabit with her. 5. Now Adonijah the son of Haggith exalted himself, saying, "I will be king." So he prepared for himself chariots and horsemen with fifty men to run before him. 6. And his father had never crossed him at any time by asking, "Why have you done so?" And he was also a very handsome man; and he was born after Absalom. 7. And he had conferred with Joab the son of Zeruiah and with Abiathar the priest; and following Adonijah they helped him. 8. But Zadok the priest, Benaiah the son of Jehoiada, Nathan the prophet, Shimei, Rei, and the mighty men who belonged to David, were not with Adonijah. 9. And Adonijah sacrificed sheep and oxen and fatlings by the stone of Zoheleth, which is beside En-rogel; and he invited all his brothers, the king's sons, and all the men of Judah, the king's servants. 10. But he did not invite Nathan the prophet, Benaiah, the mighty men, and Solomon his brother. 11. Then Nathan spoke to Bathsheba the mother of Solomon, saying, "Have you not heard that Adonijah the son of Haggith has become king, and David our lord does not know [it?] 12. "So now come, please let me give you counsel and save your life and the life of your son Solomon. 13. "Go at once to King David and say to him, 'Have you not, my lord, O king, sworn to your maidservant, saying," Surely Solomon your son shall be king after me, and he shall sit on my throne "?Why then has Adonijah become king?' 14. "Behold, while you are still there speaking with the king, I will come in after you and confirm your words." 15. So Bathsheba went in to the king in the bedroom. Now the king was very old, and Abishag the Shunammite was ministering to the king. 16. Then Bathsheba bowed and prostrated herself before the king. And the king said, "What do you wish?" 17. And she said to him, "My lord, you swore to your maidservant by the LORD your God, [saying,] 'Surely your son Solomon shall be king after me and he shall sit on my throne.' 18. "And now, behold, Adonijah is king; and now, my lord the king, you do not know [it.] 19. "And he has sacrificed oxen and fatlings and sheep in abundance, and has invited all the sons of the king and Abiathar the priest and Joab the commander of the army; but he has not invited Solomon your servant. 20. "And as for you now, my lord the king, the eyes of all Israel are on you, to tell them who shall sit on the throne of my lord the king after him. 21. "Otherwise it will come about, as soon as my lord the king sleeps with his fathers, that I and my son Solomon will be considered offenders." 22. And behold, while she was still speaking with the king, Nathan the prophet came in. 23. And they told the king, saying, "Here is Nathan the prophet." And when he came in before the king, he prostrated himself before the king with his face to the ground. 24. Then Nathan said, "My lord the king, have you said, 'Adonijah shall be king after me, and he shall sit on my throne'? 25. "For he has gone down today and has sacrificed oxen and fatlings and sheep in abundance, and has invited all the king's sons and the commanders of the army and Abiathar the priest, and behold, they are eating and drinking before him; and they say, '[Long] live King Adonijah!' 26. "But me, [even] me your servant, and Zadok the priest and Benaiah the son of Jehoiada and your servant Solomon, he has not invited. 27. "Has this thing been done by my lord the king, and you have not shown to your servants who should sit on the throne of my lord the king after him?" 28. Then King David answered and said, "Call Bathsheba to me." And she came into the king's presence and stood before the king. 29. And the king vowed and said, "As the LORD lives, who has redeemed my life from all distress, 30. surely as I vowed to you by the LORD the God of Israel, saying, ' Your son Solomon shall be king after me, and he shall sit on my throne in my place ';I will indeed do so this day. " 31. Then Bathsheba bowed with her face to the ground, and prostrated herself before the king and said, "May my lord King David live forever." 32. Then King David said, "Call to me Zadok the priest, Nathan the prophet, and Benaiah the son of Jehoiada." And they came into the king's presence. 33. And the king said to them, "Take with you the servants of your lord, and have my son Solomon ride on my own mule, and bring him down to Gihon. 34. "And let Zadok the priest and Nathan the prophet anoint him there as king over Israel, and blow the trumpet and say, '[Long] live King Solomon!' 35. "Then you shall come up after him, and he shall come and sit on my throne and be king in my place; for I have appointed him to be ruler over Israel and Judah." 36. And Benaiah the son of Jehoiada answered the king and said, "Amen! Thus may the LORD, the God of my lord the king, say. 37. "As the LORD has been with my lord the king, so may He be with Solomon, and make his throne greater than the throne of my lord King David!" 38. So Zadok the priest, Nathan the prophet, Benaiah the son of Jehoiada, the Cherethites, and the Pelethites went down and had Solomon ride on King David's mule, and brought him to Gihon. 39. Zadok the priest then took the horn of oil from the tent and anointed Solomon. Then they blew the trumpet, and all the people said, "[ Long] live King Solomon!" 40. And all the people went up after him, and the people were playing on flutes and rejoicing with great joy, so that the earth shook at their noise. 41. Now Adonijah and all the guests who were with him heard [it,] as they finished eating. When Joab heard the sound of the trumpet, he said, "Why is the city making such an uproar?" 42. While he was still speaking, behold, Jonathan the son of Abiathar the priest came. Then Adonijah said, "Come in, for you are a valiant man and bring good news." 43. But Jonathan answered and said to Adonijah, "No! Our lord King David has made Solomon king. 44. "The king has also sent with him Zadok the priest, Nathan the prophet, Benaiah the son of Jehoiada, the Cherethites, and the Pelethites; and they have made him ride on the king's mule. 45. "And Zadok the priest and Nathan the prophet have anointed him king in Gihon, and they have come up from there rejoicing, so that the city is in an uproar. This is the noise which you have heard. 46. "Besides, Solomon has even taken his seat on the throne of the kingdom. 47. "And moreover, the king's servants came to bless our lord King David, saying, 'May your God make the name of Solomon better than your name and his throne greater than your throne!' And the king bowed himself on the bed. 48. "The king has also said thus, 'Blessed be the LORD, the God of Israel, who has granted one to sit on my throne today while my own eyes see [ it.]'" 49. Then all the guests of Adonijah were terrified; and they arose and each went on his way. 50. And Adonijah was afraid of Solomon, and he arose, went and took hold of the horns of the altar. 51. Now it was told Solomon, saying, "Behold, Adonijah is afraid of King Solomon, for behold, he has taken hold of the horns of the altar, saying, 'Let King Solomon swear to me today that he will not put his servant to death with the sword.'" 52. And Solomon said, "If he will be a worthy man, not one of his hairs will fall to the ground; but if wickedness is found in him, he will die." 53. So King Solomon sent, and they brought him down from the altar. And he came and prostrated himself before King Solomon, and Solomon said to him, "Go to your house." ===== 열왕기상 1장 (개요) 본 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피게 된다. 1. 다윗의 병세 악화(1-4). 2. 아도니야의 왕위 찬탈 기도와 그 일당에 대한 처벌(5-10). 3.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대해 다윗의 명을 얻기 위한 나단과 밧세바의 시도(11-31). 4. 솔로몬의 기름 부음 받음과 백성들의 환호(32-40). 5. 아도니야의 찬탈 행위의 실질적인 종식과 그 일파의 분산(41-49). 6. 선행을 위해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떠나게 함(50-53). -------- 아도니야의 야심 (1)(왕상 1:1-4)
사무엘서 마지막 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다윗은 한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파멸케 하는 천사의 칼을 모면한 일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질병이나 위험으로부터 구조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집행 유예)에 불과하다. 촛불은 바람을 불어 끄지 아니하면, 저절로 다 타 버리게 마련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고령이라는 약점 때문에 몰락해 가고 있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 무덤의 문턱에까지 이끌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자는 “덫에 빠지게 된다.” 어차피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Ⅰ. 이처럼 연약해진 다윗을 본다는 것은 염려스러운 일이다. 그의 몸은 늙었고 체온마저 다하여 어떠한 옷으로도 그의 몸을 따뜻하게 보온할 수가 없게 되었다(1절). 다윗은 과거에 원기 있는 활동가이자 사업가였고, 맹렬한 불길이 언제나 그의 가슴속에서 불일듯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 그의 피는 싸늘해지고 순환이 불순하여, 침상에만 틀어박혀 있기만 하는데도 체온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이제 70세가 되었다. 허다한 사람들이 그 나이에는 아직까지 박력 있게 사업을 수행하기에 알맞은 때라고 하겠다. 그러나 다윗은 이전에 범했던 자신의 죄, 특히 우리아의 사건을 통해 범했던 죄에 대하여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겪은 예전의 여러 가지 수고와 역경을 당시에는 예사로이 여겼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더욱 악화됨을 깨닫게 되었다. “힘센 자들아, 너희의 힘을 자랑 말지니라.” 그 힘은 질병으로 곧 쇠잔해질 수 있으며, 또 마침내는 노령으로 약화되고야 말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이러한 불행한 날이 이르기 전에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우리의 손이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 그리고 우리의 세대를 위해 할 일을 발견했다면, 우리의 온 정성과 힘을 다해 그 일을 하자. 왜냐하면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 곧 연륜이란 밤이 오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정력이 다 사라지고 났을 때, 그 정력을 선용했다는 사실을 회상하면 큰 즐거움이요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Ⅱ. 다윗의 의사들이 너무나도 무력하고 기술이 없어서 외형적인 처방으로밖에는 시술할 수 없음을 보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강장제라든가 활력소가 아니라, 단지 1. “그들이 이불로 그를 덮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다윗에게 체온이 다소 있었다면, 그 체온을 보존하여 온기를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몸에 온기가 없었다면, 온기를 전달해 주는 데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것이니, 왕실의 침구로서는 소용이 없는 노릇이었다. 엘리후는 “우리의 의복이 우리에게 따뜻한 까닭”을 알기 어렵다고 했다(욥 37:17).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으면 “사람이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아니한데”(학 1:6), 다윗이 지금 그러했다. 2. 어리석게도 그들은 그의 장례식을 준비해야 했는데도 혼례를 권하였다(2-4절).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자기들의 타락을 충족시킬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다윗의 건강을 진단한다는 미명하에 다윗의 타락(된 마음)을 만족시키는 일에 급급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그의 의원들에게 처방을 물었듯이, 그의 선지자들에게도 뜻을 물어야 했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들까지도 아내를 많이 거느리는 것이 묵인되던 그 당시였던지라, 이러한 일도 변명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같이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한 남자는 한 아내를 취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마 19:5). 나아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전 7:1)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기 전에 먼저 다윗과 혼인하여, 그의 둘째 아내가 되었다. 그것은 아도니야가 자기 아버지 다윗이 죽은 후에(2:22) 그녀와 결혼하려 했음을 그의 크나큰 범죄로 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 아도니야의 야심 (2)(왕상 1:5-10) 다윗은 자녀들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암논과 압살롬은 그의 슬픔의 대상이었으니, 전자는 장자요, 후자는 셋째였다(삼하 3:2, 3). [아비가일이 낳은 그의 둘째 아들-길르압, 다른 이름은 다니엘-에게서는 위안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일찍 죽었다고 여겨짐] 넷째가 아도니야였다(삼하 3:4). 그는 헤브론에서 출생한 자 중의 하나다. 지금까지는 그에 관한 말이 전혀 없었다. 여기에 나타난 바로는, 그는 풍채가 준수하여, 연령이나 기질에 있어서 압살롬 다음가는 인물이다(3절). 그리고 줄곧 그의 아버지의 눈에는 보배 같은 존재였으나, 이제 와서는 하나의 가시가 되어 버렸다. Ⅰ. 그의 부친은 그를 애지중지했다(6절). 지금까지 그는 아버지 다윗을 조금도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혀 그의 부친을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아마 종종 그의 부친을 괴롭혔기 때문에, 그의 부친은 그의 악한 소행으로 은근히 속이 썩어 하나님 앞에서 탄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아도니야로 하여금 그의 웃음도 자제하게 하고, 그가 마음먹고 있는 것을 거절하거나, 그가 무엇을 했고 어디를 갔다 왔느냐를 대답하도록 부르고, 책이나 일에 집착하게 하거나, 잘못된 것을 보고들은 것을 꾸짖음으로써 섭섭하게 하지는 않았다. 단 한 번도 “네가 어찌하여 그런 짓을 하였느냐?” 하고 말한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그런 일이 아도니야에게 불쾌한 일이며, 아도니야가 그것을 화를 내지 않고 참고 들을 존재가 못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꾸짖음을 불쾌하게 느끼고,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아들의 잘못이다. 그는 꾸짖음에서 오는 유익을 상실하고 말았다. 반면 꾸짖음이 아들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들을 꾸짖지 않으면, 그것은 그 아비의 잘못이다. 따라서 이제 그는 아들을 버릇없이 기름으로 인해 징벌을 받는 것이니, 그것은 정당한 일이다. 하나님보다 자기 아들을 더 사랑하는 자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시키지 아니하는 자와 매한가지로, 그것 때문에 자기의 아들들로부터 능히 기대할 수 있는 영예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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