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신25..아직 영적 성장성숙 과정 중에 있음을 이해-포용/인내-용서/용납-사랑/화평/기쁨으로 기다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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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25장. 보혈 말씀 성령님으로 사는, 오늘도 새 영, 새 마음, 새로운 몸, 주의 성전~그리스도의 집...내밀한 사랑, 넘치는 기쁨, 평강이신 그리스도로 삶!!

[380 나의생명되신주] [436 나이제 주님의 새생명 얻은 몸]...[주님과같이] [보혈을지나] [은혜로만들어가네][내눈여소서][보소서주님나의마음을][오주여나의영혼이주께로향하엤으니] [주은혜로이곳에 서있네...주를위한이곳에][아버지당신의마음이있는곳에] 

.....((절대적 원칙~오직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의 삶)) 사탄체계인 세상의 악행에 대해 주로 말미암아 절대 평강 가운데 <선으로 악을 이기라>..그 무엇보다도 [주이름 부르며] 주로 주 되시게 여쭈며 신뢰로 앙망함의 친밀한 교통으로 한걸음씩 동행하며 그분으로 조성되고 있는지, <매너리즘 벗어나라, 깨어 있어 늘 새로이 달콤하게 주께 여쭈어야 한다..드물게 ((바울의  로마행처럼 그 타이밍조차, 주님 나라 위해 마련해 열어주시리라..바울처럼!!, 주위의 반대가 있을 때조차도)) 세상 법정에 호소하게 하시는 방법을 쓰도록  지침  주시는 경우가 생길 때조차도 분명히 알게 하여 주시고 인도해 주시리라>

1.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2.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앞에서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그 모든 일에 앞서서  오직  십자가 보혈!! 의지하라 하늘 열리리니..주님 앞에 나아가 자성하고 자백함...주 이름 의지하여 용서 구함... 깨어 깊이!!  내 안의 대적을 경계함..주와 함께 동행, 그때 시비 판단을 참되게 알게 하실 것

4.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그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열린 마음으로 감사 표하며 합당한 대가 지불..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오직 돌봄과 공급 그 자체가 그리스도로 살며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삶....영적 후사 세움이 됨!!!

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아이가 없거든..으로 읽어야 주님 뜻에 합당함..여자도 기업을 이을 수 있었다.... 오직 주만 바라보고 의지 동행함  통해 그리스도로 살면서 영적 후사 산출케  하는 어미 되게 함]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다른 법

.....마땅히 돌봄과 배려, 돌아봄이 필요한 과부라 하더라도, 먼저 그 자신은 주 앙망함으로 주 임재 앞에서 영적 순결-순전과 장중함, 곧 소망의 그리스도로 항상 살아가는 단독자 됨(참 과부 됨으로써 살 수 있게 도우라!!)  ..오직 주께 묻고  합당히  행하라 

11.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그 치는 자의 손에서 그의 남편을 구하려 하여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12.  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버릴 것이고 네 눈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말지니라...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13.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14.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15.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16.  이런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이미 이긴 자로서 주와 함께 걷기...주 이름 부르며 찬송하라!! [마땅히 미워할 바] 옛사람, 즉 사탄-죄성(육신)-세상,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십자가에 못박은 자, 오로지 (파송하신 바) 그리스도의 화목의 대사로 합당하게 살기!!,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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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f there is a dispute between men and they go to court, and the judges decide their case, and they justify the righteous and condemn the wicked,

2.  then it shall be if the wicked man deserves to be beaten, the judge shall then make him lie down and be beaten in his presence with the number of stripes according to his guilt.

3.  "He may beat him forty times [but] no more, lest he beat him with many more stripes than these, and your brother be degraded in your eyes.

4.  "You shall not muzzle the ox while he is threshing.

5.  "When brothers live together and one of them dies and has no son, the wife of the deceased shall not be [married] outside [the family] to a strange man. Her husband's brother shall go in to her and take her to himself as wife and perform the duty of a husband's brother to her.

6.  "And it shall be that the first-born whom she bears shall assume the name of his dead brother, that his name may not be blotted out from Israel.

7.  "But if the man does not desire to take his brother's wife, then his brother's wife shall go up to the gate to the elders and say, 'My husband's brother refuses to establish a name for his brother in Israel; he is not willing to perform the duty of a husband's brother to me.'

8.  "Then the elders of his city shall summon him and speak to him. And [if] he persists and says, 'I do not desire to take her,'

9.  then his brother's wife shall come to him in the sight of the elders, and pull his sandal off his foot and spit in his face; and she shall declare, 'Thus it is done to the man who does not build up his brother's house.'

10.  "And in Israel his name shall be called, 'The house of him whose sandal is removed.'

11.  "If [two] men, a man and his countryman, are struggling together, and the wife of one comes near to deliver her husband from the hand of the one who is striking him, and puts out her hand and seizes his genitals,

12.  then you shall cut off her hand; you shall not show pity.

13.  "You shall not have in your bag differing weights, a large and a small.

14.  "You shall not have in your house differing measures, a large and a small.

15.  "You shall have a full and just weight; you shall have a full and just measure, that your days may be prolonged in the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gives you.

16.  "For everyone who does these things, everyone who acts unjustly is an abomination to the LORD your God.

17.  "Remember what Amalek did to you along the way when you came out from Egypt,

18.  how he met you along the way and attacked among you all the stragglers at your rear when you were faint and weary; and he did not fear God.

 

19.  "Therefore it shall come about when the LORD your God has given you rest from all your surrounding enemies, in the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gives you as an inheritance to possess, you shall blot out the memory of Amalek from under heaven; you must not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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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5장 (개요)

본 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필 수 있다.

1. 악인을 벌줌에 있어서 조심하라는 율법(1-3).

2. 곡식 떠는 소를 잘 대우하라는 율법(4).

3. 사망한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치욕을 주라는 것(5-10).

4. 정숙하지 못한 여인에게 주는 벌에 대해(11, 12).

5. 공정한 추와 되에 대해(13-16).

6. 아말렉의 멸망에 대해(17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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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은 40을 초과하지 말라(신 25:1-4)

Ⅰ. 재판장들에게 악인을 징벌하라는 명령(1-3절).

1. 만약 사람이 범죄의 혐의가 있으면, 그 논쟁이 판결될 수 있도록, 고소인과 피고소인(원고와 피고)은 재판장 앞에 나아가 대변해야 한다고 했다.

2. 만약 사람이 범죄의 혐의로 고소당했으나 그 혐의가 그에게 불리하도록 판명될 수 없을 만큼 증거가 불충분할 때는 그를 방면시키도록 되어 있었다. 

즉 “의인은 의롭다 하고”라는 것은 “재판정에서 의인으로 보이는 자가 의인”이라는 뜻이다. 

만약 고소 내용이 사실로 판명되면 고소당한 자는 곧 유죄 판결을 받으며, 이 경우 그 고소에서는 고소인이 의롭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3. 만약 고소당한 자가 유죄로 인정되면 그에게 판결이 내려져야 하니, 곧 “악인은 정죄”해야 한다. 

악인을 의롭다 함은, 의인을 정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게 되는 것이다(잠 17:15).

4. 만약 법이 그 범죄를 극형에 처해야 마땅한 것이라고 규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죄인에게 태형을 가해야 했다. 

우리가 보게 되는 많은 계율에는 거기에 구체적 형벌 조항이 부가되어 있지 않지만, 대다수 경우 그것을 위반할 때는 항구적 유대 관습에 따라서 태형으로 징벌했고, 그 경우 그가 범죄자라면 누구라도 그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단서가 붙어 있었으니, 그것은 곧 그는 결코 비난을 당해서는 안 되며, 그 형벌을 받았다 해서 불명예나 치욕의 낙인이 찍힌 자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죄인을 징벌하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지시가 내려졌다.

(1) 그 집행은 엄숙히 거행되어야 한다. 

길거리에서 소란스럽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개 법정의 재판장 면전에서 행하되, 무척 신중히 하여 때리는 횟수까지 계수되도록 했다. 

유대인들에 의하면 이 태형이 집행되는 동안 재판정의 수석 재판관은 신명기 28장 58, 59절 및 29장 6절 말씀을 큰 소리로 봉독했으며, 시편 78장 38절 말씀, 즉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셨느니라”는 말로 끝맺었다고 한다. 

이처럼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 행위로 행해졌고, 더 나아가서는 범법자 스스로를 개심시키며 타인들에게 온화한 사람이 되도록 하려는 데에 힘썼던 것 같다.

(2) 태형의 집행은 죄에 비례하여 “그 죄의 경중대로” 행해져야 한다. 

어떤 범죄는 다른 죄보다 더 극악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 죄인은 “많이 맞을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7, 48절은 아마 이 사실을 들어 말한 것이리라.

(3) 그 죄가 아무리 중하다 하더라도 매 맞는 횟수는 사십을 초과해서는 안 되었다(3절). 40에서 하나 감한 매가 통상적인 관례였다(고후 11:24). 

아마 그들은 다른 범죄자들과 똑같은 횟수의 매를 바울에게 가했음이 분명하다. 

비록 재판관들 중 하나가 때리는 횟수를 헤아리도록 지정되어 있었을지라도, 계수에 착오가 있었을까 두려워하여 하나를 감했든지, 아니면 그들이 극히 엄격하게 하고자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리했거나, 세 가닥의 채찍으로 된 매로 집행되기 때문에 열세 번의 매질은(1대가 3대로 되므로) 39대가 되나 이 계산으로는 한 번만 더 때리면 마흔 두 대가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횟수에 대한 이유가 주어져 있다.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그는 여전히 “형제로” 간주되어야 했으며(살후 3:15), 그의 책벌에 대한 이 자비로운 제한에 의해 그의 명성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율법으로 그 죄인을 돌보심으로써, 그는 자기 형제들에게 천히 여김을 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이 개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보시기에 귀하게 인간을 만들려고 은혜를 베푸셨으니, 인간은 그 누구도 인간의 눈에 천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Ⅱ. 가축이 일을 하고 있을 때, 만약 음식물이 그 가축이 먹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가축이 먹는 것을 금하지 말도록 농부에게 명령했다(4절). 

곡식 또는 짐승에 대한 이 실례는(이것에 대한 암시가 선지자의 글에도 나온다. 호 10:11), 모든 유사한 경우에도 통용되는 것이다. 

이 율법을 가장 주목하게 만드는 사실은(이것은 그와 비슷한 율법들도 동일한 적용을 하도록 권장한다) 목회자들에게 안락한 생계를 제공하는 것이 회중의 의무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신약성경에서 이 율법을 두 번씩이나 인용했다는 사실이다(고전 9:9, 10; 딤전 5:17, 18). 

이 율법은 문자적으로 보더라도, 미물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봉사하는 짐승은 중히 여겨야 하며, 생존에 필요한 뒷받침을 해 줄 뿐만 아니라일하기에도 편리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부리는 모든 자에게 공정하며, 동시에 친절해야 하고, 그들을 부양할 뿐 아니라 저들의 힘을 북돋아 주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중 말씀 가르침과 복음전파를 위해 애쓰며, 우리의 영혼을 잘되게 하기 위해 종사하는 분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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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미망인과의 결혼(신 25:5-12)

Ⅰ. 죽은 형제의 미망인과의 결혼에 관한 율법. 

이 율법은 유다의 가정의 이야기를 보면 독특한 가계의 유지를 위한 고대 관습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창 38:8). 

여기에 제시된 경우는 한 남자가 후사 없이 죽는 경우다. 이것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이 경우,

1. 그 과부는 그녀의 남편의 모든 친족이 그 여자와 결혼하기를 거부하지 않는 한, 다른 가문으로 재가할 수 없었다. 

이는 그녀에게 증여된 소유지가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2. 그 남편의 형제,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녀와 결혼해야 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그 여자에 대한 존경심에서였는데, 그 여자는 자기 백성과 자기 아비의 집을 여의었으므로, 시집 가족은 그 여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친절이라도 베풀어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죽은 남편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했는데, 그는 비록 죽어 사라졌지만 잊혀지지 않도록 하고 자기 지파의 족보에서 누락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형제나 가까운 친족이 그 과부로 말미암아 얻은 장자가 죽은 자의 이름을 따르게 하여, 그 고인의 자식으로서 족보에 기입했다(5, 6절). 

이 율법 아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 저쪽의 세계의 삶에 대한 소망을 우리만큼 분명히 가지고 있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딤후 1:10)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은 자기 자손을 통해 자기가 영원히 살기를 원할 수밖에 없었고, 이 순진한 욕구는 이 율법에 의해서 어느 정도 충족되었던 것이다. 

이는 편리한 방편으로서, 비록 그 아내에게서 아이를 얻지 못한 자라도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을 안출해 냈던 것이다. 

즉 가계에서 삭제되든가 자식 없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의 교리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우리 구주 예수님께 이 율법에 관련된 한 사례를 제시했다(마 22:24 이하). 

인간의 이름과 그 가문을 이 세상에 영속시킴에 대해 율법에 너무나 잘 규정되어 있으므로, 영혼 불멸과 장차 올 나라에 대해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했던 것 같다.

3. 그러나 만약 죽은 자를 기억하여 행할 이 선한 직무를 그 죽은 자의 형제나 가까운 친족이 봉행(奉行)하지 않으려고 거부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 그 죽은 자의 형제는 그 후사를 잇는 행위를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7절). 

만약 그가 그 여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여인 취하기를 거절할 자유가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모세 율법 중의 이 조항에서는 그런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애정은 부부 관계의 행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강요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므로, 애정 없이 부부 관계만을 강요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2) 그러나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적인 치욕을 당한다. 

고인의 이름과 명예에 가장 관심이 깊은 장본인인 그 미망인은 그가 거부했다는 사실을 장로들에게 고하게 된다. 

그래도 만일 그가 그 미망인을 취하지 않으려고 계속 고집하면, 그녀는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라”고 했다(혹은 유대 학자들은 그 얼굴 앞에서 침을 뱉는 것이라고 온건하게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 후 그의 가문에 오명의 표시가 계속 남게 하려는 뜻에서였다(8-10절).

마땅히 타인들의 이름과 명예를 보존해야 할 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도리어 저들은 자기의 명예가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깨닫자. 

자기 형제의 집안을 세우기를 원치 않는 자의 집에는 이런 오점이 찍혀야 마땅했다. 곧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고 칭함을 받을 것이다. 이는 그가 맨발로 다녀야 마땅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룻의 경우에서 이 율법의 실행을 엿볼 수 있는데(룻 4:7), 가장 가까운 친족이 거절하자, 남편의 형제의 본분을 기꺼이 행할 다른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데 거부했던 자의 신을 벗긴 자는 과부가 아니라 그 제삼자였다. 곧 룻이 아니라 보아스였던 것이다.

Ⅱ. 정숙하지 못한 여인의 징벌에 관한 율법(11, 12절). 

바로 앞의 율법에 의해서 자기 남편의 형제가 자기와 결혼하지 않는 데 대해 장로들에게 호소하고, 그들 앞에서 그의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하는 여인에게는 상당한 뻔뻔스러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신뢰심이 율법이 여성을 옹호해 준다는 과신으로 자라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염치가 없거나 근신하지 않는 여성을 벌하는 엄하고도 공정한 율법이 내려져 있다.

1. 그에 대한 사례는 극히 추문에 속하는 것이 명백하다. 

여자가 자기의 모든 덕성과 명예심을 완전히 마비되지 않는 한, 그런 행동을 자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2. 그녀의 이유에는 다소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너무 상대하기 벅찬 자의 손에서 자기 남편을 구해 내려고 한 짓이었다. 

격분해서 한 짓이었으며 좋은 의도로 행한 것이었는데도, 그토록 가혹한 징벌을 받았으니, 하물며 방자함과 욕망 속에서 행해진 일에 있어서랴!

3. 벌은 그 여인의 손을 찍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치리하는 자는 하나님보다 더 자비로운 것처럼 자부해서는 안 되었다. “네 눈이 그를 불쌍히 보지 말지니라”고 했다. 

아마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도 이 율법을 암시하여 우리로 “범죄케 하거나” 우리의 죄악의 원인이 되는 한쪽 “손을 찍어 버리라”고 우리에게 명하셨을 것이다. 

영혼이 영원히 파멸당하는 것보다, 육체에 최대의 고통이 가해지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마 18:8). 

정숙은 순결의 울타리이므로,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마음가짐을 온유하게 하고 계속해서 정숙(겸손)을 지켜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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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될 아말렉(신 25:13-19)

Ⅰ. 저울추와 되를 속이지 못하도록 금한 율법. 

저들은 거짓 도량형기를 사용 못 할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어서도 안 되었으니, 곧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있거나 집에 두고 있거나를 막론하고 금했다(13, 14절). 

만약 저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게 되면,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저들은 물건을 살 때에 쓸 큰 저울추와 큰 되, 그리고 팔 때에 쓸 작은 추와 작은 되를 가져서는 안 되었다. 두 쪽이 다 속이는 것이었고, 어느 것도 아주 사악한 것이었던 까닭이다. 

우리가 아모스 8장 5절에서 읽는 바와 같이 에바는 작게 만들어 저들이 파는 곡식을 되는 데 쓰고, 세겔은 크게 만들어서 저들이 받을 돈을 다는 데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라”고 했다(15절). 공정의 척도가 되는 것, 그 자체가 우선 공정해야 하는 법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항구적 기만이다. 

이것은 이전에도 주의를 들은 바 있었던 것이다(레 19:35, 36). 이 율법은 두 가지의 아주 타당한 이유로 인해 발효된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정의와 공평은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에게 내리게 할 것이다. 

우리의 날이 길게 되며 번영을 누리는 길은, 우리의 모든 거래에 있어서 공평하고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정직은 최상의 방책이다.”

2. 부정과 불의는 우리를 하나님의 저주에 놓이게 한다(16절). 

불의 그 자체뿐만 아니라 불의하게 행하는 자도 “여호와께 가증”하다. 

불쌍할진저! 자기를 지으신 이, 곧 창조주께 미움을 받는 자여! 모든 기만의 술책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미움받는 것인가를 솔로몬은 누누이 증언하고 있다(잠 11:1; 20:10, 23). 

그리고 바울 사도는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고 했다(살전 4:6).

Ⅱ. 아말렉 사람들을 근절시키라는 율법. 

이것은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대로 다시 아말렉에게 같은 셈을 치러야 한다는 “공정한 저울추”요 “공정한 되”이다.

1.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가한 해를 기억해야만 했다(17, 18절). 

그 일이 처음 행해졌을 때에는 책에 기록되도록 명하셨으나(출 17:14-16), 여기서는 그것을 기억하여 마음에 간직할 것을 명하셨다. 

이는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말렉에게 고통을 받았던 세대는 다 죽고 지금 살아 있는 자와 그 자손들은 그 상해에 대해 개인적인 적개심이라고는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망에서(하나님의 영광이 아말렉인의 모욕을 받았으므로) 행해야 했다. 그것은 “여호와의 보좌”를 치려고 아말렉이 손을 들었던 까닭이다. 

이스라엘에 대해 행한 아말렉인의 행동이 여기에 잘 묘사되어 있다.

(1) 그것은 대단히 비열하고도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저들은 이스라엘과 싸울 필요가 전혀 없었던 데다가, 선전 포고나 선언 따위도 없이 이스라엘인들이 막 속박의 집에서 떠나올 즈음에, 하여튼 그들이 보는 한에 있어서는, “하나님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리려고” 가고 있을 때에 불시에 저들을 습격했기 때문이다.

(2) 그것은 대단히 야만적이고 잔인한 짓이었다. 

왜냐하면 저들은 마땅히 구제해 주었어야 할, 저 유약한 자들을 쳤기 때문이다. 가장 비겁한 자가 대개 가장 잔인한 법이다. 

그 반면, 사나이 대장부의 용기를 가진 자들은 사나이다운 자비심을 갖는 법이다.

(3) 그것은 또한 불경스럽고 참람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구름 속에서 징표로 보이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위엄에 대해 경의의 마음을 가졌거나, 최근에 바로 왕의 권세에 퍼부은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도, 저들은 감히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그렇게 감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 이것이 분쟁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보건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저지른 행악은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받아들이시며, 처음으로 믿는 신앙의 초심자를 낙심케 하고 방해하는 자나(사탄의 첩자로서), 연약하고 유약한 자를 덮쳐서 곁길로 나가도록 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자, 그리고 당신의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자들도 낱낱이 셈하실 것이다.

2. 아말렉이 가한 이런 피해는 반드시 적당한 때에 가서 복수해야 한다(19절). 

이스라엘이 이 전쟁을 끝마치고, 그리하여 나라를 정착시키며 해안 지방까지 국경을 늘릴 때, 그 때에 그들은 “아말렉으로 더불어 싸워야”(출 17:16) 한다(19절). 

이는 단지 그들을 쫓아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진멸하려는 것이었다. 곧 “아말렉에 대한 기억까지도 도말하기”(KJV)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오래 복수하기를 지체하신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대한 본보기였으니, 그동안 아말렉인들은 회개하기에 이르러야 마땅했던 것이다.

그렇지 못한 까닭에, 오랜 후에 아말렉인의 후손은 자기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행했던 피해로 인해 멸망당했는데, 이 사실은 무서운 응보의 한 본보기다. 

이것은 모든 세상 사람이 “무릇 그들을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 2:8)는 것을 보고 말하게 하려 함이었다. 

이 일이 있은 뒤 근 400여 년 후에, 사울은 하나님의 이 판결을 시행하도록 명령받았다(삼상 15장). 

그러나 사울은 이 명령을 십분 충분히 실행치 아니하고는, 사무엘로부터 받은 특별한 명령인 동시에 모세가 내린 총괄적이기도 한 이 명령을 업신여겨서, 그 저주받은 민족의 일부를 살려 주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렸던 것이다. 그는 결코 모세의 이 명령을 무시하지 말아야 했다. 

그 후 다윗이 아말렉의 일부를 멸망시켰고, 히스기야 시대의 시므온 자손들이 남은 자들을 쳤다(대상 4:43).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때에는, 모든 것을 이기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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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25:1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 기록에 의하면, 구약 시대에도 재판상의 부정이 있었으며 재판관이 타락하여 돈에 매수되는 사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16:19; 잠 17:23; 사 1:23). 그런데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의 선악 기준을 어지럽게 하는 범죄이자 하나님의 공의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재판관이 사심없이 오직 공의(公義)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라고 강조하고 있다(출 23:6-8).
===25:2
재판장은...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 - 유대 전통에 의하면, 태형(笞形)의 집행시에는 재판정의 수석 재판관이 입회하여 본서 28:58, 59 및 29:9을 큰 소리로 봉독하였으며 태형 후 맨 마지막에는 "그러나 주께서도 자비가 충만하셔서 저들의 죄를 사하셨느니라"는 말로 끝맺음 하였다고 한다(Mishna).
죄의 경중대로 여수히 - '여수히'에 해당하는 '미스파르'(* )는 '세다', '기록하다'는 말에서 온 단어로 곧 '일정하게', 또는 '적당한 수로'(KJV, by a certain number)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범죄자가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 무거운 형벌이나 또는 그 반대로 지나치게 가벼운 형벌을 가하는 것과 같은 형평에 어긋난 처사를 하지 말라는 강조적 의미로 쓰였다. 따라서 모든 죄악은 거기에 따른 적절한 징벌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 곧 율법의 공의로운 정신이다<1-4절 강해, 성경에 나타난 형벌의 종류>.
===25: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 '40'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종종 '심판'과 '연단' 또는 '시험'을 의미하는 상징수로 사용된다(창 7:12; 출 24:18;민 13:25; 마 4:2; 행 1:3).그러므로 40대의 매를 때리는 것은 곧 죄에 대한 심판을 뜻함과 동시에 선한 길로 인도하려는 연단의 방편을 의미한다(Keil) . 그런데 후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태형을 집행할 때 40에서 하나를 감한 39대까지만 때렸다. 그 이유는 혹시라도 계수(計數)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40대의 매를 초과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후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던 중 다섯 번이나 맞았다는 매가 바로 그것이다(고후 11:24). 한편 혹자(Maimonides)는 여기서 유대인들이 태형(笞形) 집행시 최고 30대까지 정한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즉 그것은 태형 집행시 유대인들이 태형 도구로 세가닥으로 된 채찍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4번을 때릴 경우, 40대를 초과하여 42대를 때린 셈이 되었기 때문에 13번, 곧 39대까지만 때렸다는 것이다(Pulpit Commentary, Matthew Henry's Commentary). 여하튼 본 규정은 당시 이방 국가에서처럼 인간을 무자비하게 때림으로 해서 사람을 불구로 만든다든지 혹은 죽게 되도록 만드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 시킨 규정이다. 따라서 만일 40대 이상의 형벌이 가해질 정도로 중한 범죄이면, 재판관은 차라리 그를 처형시켜야 했다.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 칼빈(Calvin)은 여기서 '천히 여김을 받게 하다'는 말을 '너무 심한 매질을 하여 흉측한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였다. 이 해석이 정확한 해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본절은 범죄에 대해 마땅히 징벌함으로써 정의 구현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인격을 송두리째 짓밟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규례임에는 분명하다.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 기본 인권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적 가르침인 것이다(Matthew Hanry).
===25:4
곡식 떠는 소 - 여기서 '곡식을 떤다'는 것은 곡식의 타작을 가리킨다. 팔레스틴에서는 대개 두 가지의 타작법(打作法)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편편한 널판지에 구멍을 많이 뚫고 그곳에 날카롭고 단단한 돌을 박은 타작기를 당나귀나 소로 하여금 타작할 곡식 위로 끌고 다니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평평한 바위나 고르게 다진 타작마당에 곡식 단을 펴놓고 막대기나 도리깨로 두들겨 타작하는 방법이다(삿 6:11).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 앞서 언급한 방법대로 소를 이용하여 탈곡할 경우, 소가 곡식 낟알을 주워 먹는 사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비록 짐승이라도 그 수고한 대가를 받는 것이 마땅함을 가르쳐 준다. 따라서 이는 보상의 일반 원칙을 언급한 일종의 격언인데, 예수께서 "전도자가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마 10:10)고 한 것이나, 사도 바울이 "교회 사역자들이 교회로부터 응분의 대가를 제공받는 것이 마땅하다"(고전 9:9-14; 딤전 5:18)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아뭏든 회교권 국가에서는 오늘날에도 이같은 가르침에 입각, 탈곡 작업에 동원되는 가축의 입을 망으로 씌우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 두는 것을 볼 수 있다(Robinson).
===25:5
형제가 동거하는데 - 칼빈(Calvin)은 사촌 미만의 사람이 계대 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을 할 경우 근친 상간죄(레 18:6-18)에 해당되므로, 여기서의 '형제'란 친형제가 아닌 사촌 이상의 가까운 친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칼빈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레 18:16의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치 말라"는 조항은 살아 있는 형제의 아내와 관계하는 것을 금한 것이지 이미 죽은 형제의 아내를, 더구나 아무런 후사(後嗣)가 없는 경우에 한해, 특별한 취지하에 취하는 계대 결혼을 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동거하다'는 말은 반드시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경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아내를 데려가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인접 지역에 사는 경우도 포함하는 말이다(창 13:6; 36:7).
아들이 없거든 - 문자적인 의미는 그대로 남아(男兒), 곧 '아들'(벤, * )만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은 형제에게 아들 대신 딸이라도 있을 경우 그 딸이 아비의 기업을 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민 27:4-7; 36:8). 그러므로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 그리고 KJV등은 본절을 '아이가 없거든'(and have no child)으로 적절히 번역하고 있다.
그 남편의 형제가...아내를 삼아 - 이같은 계대 결혼에 있어서,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경우로는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과 그의 형수 다말 간의 예를 들 수 있다<창 38:1-11 강해, 계대 결혼법>. 그러나 당시 오난은 그와같은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자기 자손이 되지 못할 것을 알고서는 고의로 땅에 설정(泄精)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 죽임당했었다(창 38:6-10). 다음의 경우로는 룻과 보아스 간의 예를 들 수 있는데, 그와 같은 관계에서 출생한 아이가 곧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벱이다(룻 4:17).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다 행할 것이요 - 즉 '계대 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의 의무를 다하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계대 결혼이라 함은 만일 결혼한 형제가 후사(後嗣)없이 죽은 경우 다른 형제가 형제된 의무로서 이 죽은 형제의 과부된 아내와 결혼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이 계대 결혼의 풍습은 모세보다 훨씬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와 고대 근동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풍습이었으나(창 38:8-11), 모세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율법으로 성문화(成文化)되었다. 계대 결혼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죽은 형제를 대신하여 대(代)를 이어줄 후사를 낳아 줌으로써, 그 형제의 이름과 기업을 가문(家門)과 지파 내에서 보존해 주기위함이었다. (2)이스라엘 여인이 이방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3)홀로 남아 의지할 데 없는 과부를 제도적으로 보살펴 주기 위함이었다.
===25:6
첫 아들로... 후사를 잇게 하여 - 여기서 '잇게 하다'에 해당하는 '쿰'(* )은 '지탱하다', '성립하다'(잠 15:22), '일어나다'(17:8)등과 같은 다양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쓰러진 가문(家門)을 다시 '일으키다'는 의미로 쓰였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이와 같은 역할은 계대 결혼에 의하여 태어난 첫아들이 수행하였다. 즉 첫아들은 죽은 형제의 아들로 간주되어 족보에 대신 이름이 올려졌으며 또한 그 기업을 상속하였다 한다(Talmud).
그 이름을...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 계대 결혼의 가장 큰 목적이다. 실로 자손 번성을 하늘(신)의 축복으로, 반면 가문의 대가 끊어지는 것을 하늘의 저주로 여기는 것은 비단 이스라엘인뿐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현상이다(시127: 3,4).이러한 연유에서 고대로부터 자연적으로 발달한 것이 축첩(蓄妾)제도이기도 하다(창 16:1,2). 이에 대해 한편에서는 타 동물에 비해 성장기와 독립기가 10배 이상이나 긴 인간이 인생 말년에 가서야 겨우 이루어 놓은 사회적 기반과 부(富)따위를 죽음과 함께 타인에게 넘겨 줄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더욱 더 갖가지 방법으로 후사를 얻으려 하는 것이 보편적 인간 심리라는 지적도 있다.
===25:7
성문 장로 - '성읍 장로'(8절)로도 불리우는 이들은 이스라엘 각 성읍에서 개정(開廷)되는 법정의 재판관을 가리킨다<21:1-9 강해,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 한편 이스라엘의 재판 제도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각 마을에서 열리는 일반 법정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 성소에서 열리는 고등 법정이다. 그런데 각 마을에서 열리게 되는 일반 법정의 장소가 바로 마을 성문이며<17:5> 그 재판을 주관하던 재판관들이 곧 마을 장로들이었으므로 '성문 장로'라 칭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6:18주석을 참조하라.
나아가서 말하기를 - 계대 결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인 사람이 그것을 회피할 경우, 결혼을 거절당한 미망인이 그 사실을 법정에 정식 고발하는 것을 가리킨다.
===25:8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 계대 결혼을 거절당한 여자의 고발이 접수되면, 재판관들은 곧 법정을 개정한 후 피고를 소환하여 고발 내용의 사실 여부를 심문할 의무가 있었다. 이때 피고가 결혼을 거절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재판관들은 다시 한번 그 남자에게 계대 결혼이 갖는 목적과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 주면서 거기에 따를 것을 종용하였다 한다(Keil).
내가...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 이와 관련하여 메튜 헨리(Mattthew Henry)는, 본규정은 그 당시 관례적으로 내려오던 계대 결혼의 풍습으로 인하여 자칫하면 생겨날지 모르는 억지 결혼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op. cit. p.827). 즉 계대 결혼의 의무가 있는 자라 할지라도 상대방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결혼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애정없는 억지 결혼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곧 본문의 규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계대 결혼 거부자에 대한 공개적인 멸시와 모욕 조치(9,10절)는 공동체적 사회 생활에서 도저히 그 사람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같은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따라서 본문의 규정들은 형제의 가문과 기업을 보존시켜 주기를 거절하는 자에 대하여 '사회적 제재를 가하기 위한 규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형사 처벌이 뒤따르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 계대 결혼은 '도덕적 사랑의 의무 규정'이라 봄이 좋을 것이다(Keil).
===25:9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 본 규정은 원래 땅 소유자가 자기 소유의 땅을 발로 직접 밟음으로써, 그 토지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확인하고 주장하였던 고대 공증(公證) 풍습에서 유래된 행위이다. 그리고 자신의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자는 자신이 신고 있던 신을 벗어 상대방에게 건네 주었다 한다(Keil & Delitzsch). 따라서 계대 결혼을 거절한 남자의 신을 벗기는 것은 이제 그가 더이상 형제의 기업을 이을 자격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상징적 행위(룻 4:7, 8)였음을 알 수 있다(F.J.Dake, Hupfeld). 그런데 이에는 다분히 여자가 상대방 남자를 조소하고 경멸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성경상에서 맨발의 상태는 치욕과 조소 및 비천한 상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삼하 15:30; 사 20:2,3).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 유대 랍비들이 이 말이 실제로 얼굴에다 침을 뱉으라는 뜻이 아니라, 그의 '면전에서' 침을 뱉으라는 뜻이라고 해석하였다(Keil, Talmud). 아뭏든 이는 계대 결혼을 거절함으로써, 형제 된 의무를 기피한 자에게 모욕과 수치를 가하는 일종의 공개적 징벌이었음에는 분명하다(레 15:8;민12:14;욥 30:10; 사 50:6).
===25:10
신 벗기운 자의 집 - 그 의미상 '별 볼일 없는 집안', '하찮은 가문'이란 뜻이다. 부함으로써 형제의 가문이 끊기는 일이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대 결혼을 거부할 경우, 일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집안 전체에까지 불명예가 돌아가는 것은 크나큰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이것은 당시 히브리 사회가 개인 보다는 가문과 공동체 위주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25:11,12
음낭을 잡거든...손을 찍어 버릴 것이고 - 성기(性器)는 그 사람의 상징이자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이며 치명적인 급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무리 곤경에 처한 자기 남편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할 지라도, 다른 남자의 성기를 잡아당기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커다란 모독임과 동시에 생명에 대한 위협 행위이다. 또한 성기는 자손을 생식하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기가 위해(危害)를 당한다는 것은 곧 생식 기능이 위협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가문(家門)의 계승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던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타인의 성기를 공격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그 손을 잘라 버리는 것과 같은 중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많은 학자들은 여자가 다른 남자의 성기를 잡아당기는 행위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음란과 호색(好色)이 게재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엄벌로 다스렸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Calvin, Dake, Lange, Matthew Henry). 그러나 후일 유대 랍비들은 손을 찍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벌금형을 내렸다(Commentary).
네 눈이 그를 불쌍히 보지 말지니라 - 19:13 주석 참조.
===25:13
같지 않은 저울추(* , 에벤 와아벤) - 직역하면 '한 돌과 또 한 돌'이란 뜻이다. 즉 히브리인들은 무게를 달 때 돌로 만든 저울추를 사용하였는 바, 이는 동일한 저울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다. 즉 부정직한 자들은 서로 같지 않은 두 개의 추를 주머니에 간직하고 있다가, 물건을 살 때에는 큰 추로 무게를 측정하여 정량보다 많은 양을 거두어 들이고, 물건을 팔 때에는 작은 추를 사용하여 정량보다 적은 양을 줌으로써 부당 이득을 취하였던 것이다(Keil). 따라서 공정한 상거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도량형기(度量衡器)의 정확성이 요구되었는바, 이에 대하여 성경도 누차 강조하고 있다(레 19:35, 36; 잠 20:10; 21:6; 암 8:5).
===25:14
네 집에...두지 말 것이요 - 앞서의 "너는 주머니에... 넣지 말 것이며"라는 말과 대구를 이루는 말로, 곧 같지 않은 도량형기는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해서도 안 될 뿐 아니라, 집에다 그런것을 둠으로써 유혹의 소지를 안고 있어도 안된다는 강한 경고이다(Lange). 성경이 우리에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권면하는 까닭도 처음부터 우리로 하여금 이처럼 그릇된 길로 빠질 수 있는 일체의 여지를 배제토록 하기 위함이다.
===25:15
그리하면...네 날이 장구하리라 - 비단 일개인을 향한 축복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사회 전체에 대한 축복으로 보아야 한다. 서로 공정한 도량형기(度量衡器)를 사용하므로써 이웃간에 상호 믿고 화목할 수 있는 사회가 구현된다면(레 19:35,36), 그 자체가 축복일 뿐 아니라 그 사회가 장구(長久)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25:16
무릇 부정당히 행하는 자는...가증하니라 - 비록 사람이 사람을 속여 부당 이득을 취할 수는 있을지라도,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된다(시 33:1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치 못한 도량형기 따위로 불의의 재물을 모으는 것은 하나님을 엄수히 여기는 가증스런 행위로, 스스로의 멸망을 자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잠 21:6).
===25:17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 출애굽 제 1년 2월 말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렙산 근처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를 가리킨다(출 17:8-16).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 -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손들이다(창 36:12). 이들 족속은 팔레스틴 남쪽 광야에서 시내 반도 사이를 배회하며 약탈을 일삼았는데, 특히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집요하게 괴롭혔었다(출 17:8-12; 민 14:45; 삿 3:13;삼상 30:1). 여기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도 그러한 것 중의 하나로,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는 이스라엘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행군 후미에 처진 유약자(幼弱者)들을 기습 공격하여 무참히 살륙한 사건(18절; 출 17:8-16)을 가리킨다.
===25:18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 아말렉 족속의 잘못이 근본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정의해 주는 말이다. 즉 그들의 잘못은 그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는데 있지 아니하고, 그와 같은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도전행위였다는데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애굽의 권세를 꺽고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이 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출 7-14장)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분명 들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으니, 그것은 곧 하나님의 전능성을 모독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가 되었던 것이다.
뒤에 떨어진...쳤느니라(* , 자나브) - 직역하면 '꼬리를 자르다', '꼬리를 치다'는 뜻으로, 비겁하게도 상대방 행군 대열의 가장 뒤쪽을 기습적으로 습격하여 무자비하게 살륙하는 행위를 가리킨다(Keil).
===25:19
여호와께서...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 아말렉 족속의 멸절을 이처럼 가나안 정복후로 미루도록 하신 것은 혹자가 생각하듯 당시로서는 아말렉 족속이 너무 강하여 이스라엘이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이스라엘 중 가장 연약한 자들만으로도 능히 아말렉을 섬멸할 수 있으셨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이 완수해야 할 선결 과제는 곧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밖에 거주하고 있는 아말렉 족속의 멸절을 그 이후로 연기토록 하신 것이다.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 여기서 '이름'에 해당하는 '제케르'(* )는 '자카르'(기억하다, 표하다)에서 온 말로 '기념물', '회상' 또는 '기억'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를 보다 충실히 살려 본절을 번역한다면 '아말렉 족속을 모조리 멸절시켜서 그들에 대한 기억조차 세상에서 없어지도록 하라'가 된다. 한편 '이름'을 뜻하는 일반적인 히브리어는 '제케르'가 아닌 '쉠'(* )이다(창 2:11;5:2;출 1:1;레 24:16).
너는 잊지 말지니라 -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잊지않고 반드시 아말렉 족속을 멸절시키게 하기 위한 다짐 말인 동시에,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주목하게 하기 위한 말이다. 즉 본절은 '너희는 잊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시행하라 그리고 또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말씀을 성취하시는지를 살펴보라'는 뜻이다. 이 명령 그대로 후일 아말렉 족속은 사울 왕에 의해(삼상 15장), 그리고 시므온 자손에 의해(대상 4:39-43), 그리고 마침내는 에스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에 3:1; 7:9,10; 8:11-13) 완전히 멸절당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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