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하12.주님 보내신 나단 방문-다윗 회개ㅡ주권적 지존자 Q의 친밀한 내적 말씀 교통, 목숨 걸고 따르기..반쪽 롬8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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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12장...세상의 유혹시험이...[405.주의친절한팔에][446.주음성외에는] [540.주의음성을내가들으니] [535.주예수대문밖에] [538.죄짐을지고서곤하거든] [254.내주의보혈은] [273.나주를멀리떠났다][311,내너를위하여][430.주와같이길가는것]

.....밧세바와의 불륜/동침 시작 시점에서 거의 1년여 경과..주님은 진행 단계 단계마다 여러번에 걸쳐 주께 나아와 토설함으로써 돌이킬 기회를 주고 계셨으나!!...다윗은 그냥 묻혀 지나가는 줄 알고 있었고(그렇게 되기를 바랬으리라).. 그 사이에 불륜임신-우리야 피살(간접살인) 소문은 이스라엘 전역에 이미 두루 퍼졌을 시점

.....[마음에 그 어떤 거리낌이 남아있다면...불면의 밤으로 그 단서가 남아있을 수도 있고, 평강의 느낌 없는 기간으로도 남아 있을 수도 있으리라..]..까닭없는 폭발적 분노-우울-공황장애라고 하는 질병 프레임 아래  예전과 달리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출하거나, 아니면 남 탓하고 욕설 퍼붓는 그 미움으로나,과 (심지어 저주까지도),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하기를 즐기는 자마다!! 이미 그의 마음 안에 (주께 직대-직고함 통한 토설 통해 사함 받음의 길을 거부하고 고집하는..) 아직 해결 받지 못한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음을 반드시 이해하여야 한다..(참되게 믿는이마다 구주와의 생명 교통 없이는 결코 제대로 살 수 없다) 그것을 느끼는 이마다 그를 위해 중보/중재함이 옳다..

.....하나님은 분명히 죄를 사하셨으나!!( = 주님과의 교통은 재개되었다!! = 용서받은 죄인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한 가지가 더 남아있게 되리니...피해자에 대한 죄과는 아직 변제된 상태가 아니기에, 주님께 그 피해자를 능동적으로 찾고!!, 그에게 적절한 피해보상과 용서-화해를 이룰 수 있도록 때와 대상을 만날 수 있도록 간구해야만 한다!!...[밀양]케이스를 만들어서는 안됨!!)


===나단(=이름 뜻 : 선물....다윗의 세째 아들 이름이기도 하며 마리아의 계보 조상, 요셉 계보의 조상은 둘째(혹은 네째) 아들 솔로몬)의 책망과 다윗의 회개

1.  (회개조차도 Q이 발동 걸고 계심...가이없는 사랑과 한량없는 지혜로 친히 모든 관계 새롭게 하심을 주도하시는 분, 살아계신 Q의 주도적 일하심 "보냄-방문-직접 메시지 전달이거나 초대 형태", 이것이 가장 중요함...타락한 사람의 자기주도적 회개란 주님 보시기에는 결코 없고 단지 후회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참 회개마다 모두 주님의 일하심이다...)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죽을 각오로..죽으면 죽으리다] 다윗에게 가서 (*미인대칭* 회개 촉구의 사명 맡은자는 몸소 직접 찾아 가서, 오랜 친구, 우연한 방문처럼 천연덕스럽게!!, [예나 다름없이, 항상 그렇듯 친구 일 부탁하듯 다정하게, 친절함으로, 차분하게, [어떻게 말할지] 마음 중심에 기도하며, 기회를 잡아 말해야 하리라.)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애지중지하는 반려동물로서]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범죄 이전의 다윗의 그 감사-자애로움-쾌활함은 사라지고 냉담-심각-표독해졌다!!...자기 죄악/허물 찔림 받은 심령의 특징은 안색-언사가 달라짐)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강탈 행위를 저지 위한 정당방위 =도적을 죽여도 되는 경우에 해당!!)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코람데오!!, 살아계셔서 감찰하시는 주, 계명 주신 그대로 갚으시는 분, 살아계신 주 앞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없이, 서슴없이]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출22:1, 눅19:8) 하리라 한지라

.......[출 22:1-15...1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2 도둑이 (밤에)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3 해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둑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4 도둑질한 것이 살아 그의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막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바로 나의 본질적 죄인됨-죄 그 자체-문제임을 직시-자복할 그때에라야 주앞에서 단독자로서의, 생생한 직대가 됨...==>실제로 첫아들-암논-압살롬-아도니야가 네명이 죽고 있다..)...하나님이 허락하신 바, easy going :::승승장구로 인해 인정 욕구=자기사랑(자기자랑 =자만)에 취해 넘어가서, Q자리에 앉아 있었다..........진정한 참 지식은 "그 언제라도 (범죄 가능성 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죄인"임을 아는것이다..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대-내-가 바로 죽어야 할!!..)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요한복음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죄인의 자백=.유구무언!!...오직 눈물뿐...오직 우옵니다..소리낼 수조차, 하물며 숨 쉴 수조차 없다, 오 주님!!... 그러나 내가 (사랑의 주님 의지하여!!) 믿음으로 여기 떨며 서 있나이다..주님 임재의 그 영광 앞에!!...다만 내 가슴치며..용서를 빌뿐..

8.  ([끝까지 돌봄의 선한 의도로] 세상 왕조 바뀜 전례 적용까지도 포함하는 바, 네가 정 원한다면 그리하도록)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마치 사울처럼]자만-자긍-자기사랑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 있는 다윗..느부갓네살과 다름 없었다"..."네 자신을 알라" ...사랑-연민-안타까움 가운데, 그러나 준엄하게 이르고 계심)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이미 항상 있는 말씀 + 그 바탕 위에서 여쭈는 자에게 들려주실바, 즉각적으로 주시는 말씀 ::: ##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새로이 깨어 주 이름 부름으로써 그분 안에 거하며, 경계하라 ::: 지존하신 그 말씀 멸시/무시하고!!..[삼상15:23..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사울!!)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차도살인의 흉악범죄)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탐심/정욕-강탈+도적질 = 우상 숭배)

......((섭섭함-속상함-서운함-자기 기대/고집대로 안됨 인해 토라짐"은 교만의 발로!!)) 왕상17-19장의 "주님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기꺼이 죽을 준비 되어 있던, 즉각적 말씀 순종의 사람, Q의 선교/이방전도의 사람" 선지자 엘리야는 그의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참되게 알아듣고 즉각적으로 그 말씀 그대로 [아합왕에게] 전하고 주님의 인도 말씀따라  즉각 그대로 행동하는, 살아 생동하는 산 믿음 발휘함 아는 선지자!!...그러나, 그가 [주님 말씀하심대로 3년반의 기근 끝내시기 위해 아합을 직대하도록 하신 명령따라 직대했을 때] --말씀 그대로 아합에게 ["기근 푸신다"는 주님 말씀 없으면 계속 기근 지속됨]을 고한 다음, 즉각 그릿 시내로 가서 숨고, 이제 거처 옮기라는 그 말씀따라 시돈 땅 사르밧 과부에게로 가서 머물러(과부 권속들을 얻고), 기근 푸실 시점에 이르러, 아합을 가서 만나보라 하신대로 순종하였음 --갈멜산 제단 불 강림 대결을 기획-제시했고(주님은 가납하여주셨다!) 850명의 바알-아세라 선지자들을 처리하고 큰비 주심의 주님 약속 실행하시는 분, 살아계신 주님 영광 참되게 드러냈지만!!...아직 ((추측이긴 하지만...[여호와의 선지자는 자기만 남은줄 알고 있었다..그래서 ...결말짓고자 하는 마음에 ...조급해져 있었다]..내친김에 내심 새 왕조 출범케 하시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기대대로 100%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바, "자기연민에 빠져, 속상하고-섭섭하고-토라진 채, 선지사역을 임의대로 그만두려 하고 있던 차에(~그만둘까??), 이세벨의 독기어린 저주-경고를 듣고는, 갑작스러운 두려움-자기연민-우울/공황감(자기나름대로의 생각과 느낌)에 스스로 내어주고 사로잡혀, 이를 기화로 주님께 따지기 위해(?) 브엘세바 거쳐 호렙으로 [350km로서, 보통 10일 보행 거리..그런데 40일 걸렸음...모세의 3차례 호렙산 40일 중보기도를 떠올리게 한다]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주님 말씀하시기 전에 앞서 (짐짓추정으로) 주님께 함부로 (족하오니, 죽여주소서) 말하여 도발함으로써... 결국 ["보시다시피, 저만 남았습니다!!..그런데..]그 자신의 뜻 이룸 구하려 하였었음을 뒤늦게 참되게 깨닫고  있었으며, 그런 엘리야에게 주님은 [위로하시며!!][남유다, 오바댜의 공궤한 바 선지자100인 외에도]이스라엘을 위하여 7천명을 남겨놓겠다(남겨두었다) 말씀하고 계셨다...

......[주께서는 분명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하셨던 그대로!! 말씀 넣어주시며 바로 그 일 행하사 일하시는 분이시지만... 주님께 여쭈지 않고-들으려하고-말씀하시도록 기다림 없이!! (자기 기대따라) 전지전능 하나님의 하실 큰 일 기대하고 기다리면서도!!] 엘리야 마음에 먼저 짐짓추측-기대-기획하였던 바-주께 그 다음 단계로 향후 어찌하시려는지 여쭈지 않고 있었다??!!.. 하여, 그의 마음에 기대한 그대로 하늘로부터 임하는 갈멜산상의 제단 불내림 대결에서 통쾌한?? "불의 전차" 같은 승리 거두었음에도... 이세벨의 저주 한마디에 갑작스런!! 두려움 엄습-혼비백산하여 브엘세바 거쳐 [광야 로뎀나무 아래서 죽여달라 하고는 있으되!!...주님의 공급하심을 의지하여] 호렙으로 향한 엘리야, 바위 틈 통굴 속에서 듣게 하시는 바 세미한 주 음성!!은 그를 [주님 말씀에 100% 반응하며 떠는자, 유한-겸비한 피조물로!!] 회복시키고 계셨다..  엘리야의 그 두려움과 침체 근원은 (친밀하고도 세미한) 말씀 교통-임재의 떠남 = 말씀하시는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업신 여김/멸시/경시함에 있었던 것 아닐까...호렙에서 엄청난 외적 소란이 가라앉은 후 그의 내면으로부터 말씀하시는, 세미한 소리를 듣는바 전존재로 떨며 귀히 여겨 순복하고난 다음에야... 그는 비로소 회복되고 있었으며, 주님은 그에게 네길을 돌이켜(=슈브 데레크 : 의지-태도를 완전히 바꿈의 분수령적 참 회개) (주님이 계획해두신대로) 광야 거쳐 다메섹으로 가서 맡긴 사명 수행하라 하셨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죄악 범함과 사함의 문제는 [십자가가 표상하는 그대로]Q과 사람에 대해 빚진자 됨을 의미한다...주님께 용서 받았다 함은 참 생명 Q과의 교통과 은혜 공급 통로가 재개되었음을 의미한다!! .용서(죄 사함) 받았다고 (사람에 대해서는 아직 빚이 남아 있는 바, 피해자에 대해서조차) 죄 대가 지불할 필요없다는 것이 결코 아님에 주의하라...사람과의 형제간 사랑으로 하나됨 위한 화해는 그 빚을 합당하게 갚은 후에라야만(피해자가 만족할만큼 대가지불 하거나 그 무게를 자각함 안에서 용서-방면의 선포로) 가능하게 된다..그대의 빚 변제 받을 대상이 아무도 없다면 주께서 친히 (그 가족을 대신하여) 공정하게 집행-해소하시리라!!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원수의 비방 거리 제하시는] 대속의 구주 JC의 죽으심..표상...그 의미를 참되게 깨닫고나서,  주 안에서 [아이를 떠나보낸]밧세바를 위로할 힘 얻고 있음) 하고

......@@왜 다윗을 용서하셨나..회개 때믄에??...그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까닭이 있다....선하심-인자하심, 신실과 참이신 주님!!, 그분의 언약하심에 대한 절대 신실하심 때문이다!!...[대하21:5-7...*5.여호람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니라   *6.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8.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나단이 다녀간 직후.눈물 바다 되어 통회하는 다윗의 시-----

[시51....<<다시 죄 범하지 않기 위해.. 주님의 통찰하는 눈 적용하며, 구주 보혈만 의지함>>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시32...*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6.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8.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9.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시편 51편...다윗의 회개에서 보이는 몇 가지 특징들.@@------

......하나님은 다윗이 [스스로 결정해서] 한 모든 일이 결국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삼하11:9, 10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명령을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며 행했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는 하나님 이름과 하나님 명령을!! 다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긴 것으로 주님 빛 아래 드러나고 있었다.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 죄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이다. .....다윗으로서는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웃의 아내를 탐내고 강탈함으로써 자신의 이웃의 가정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그 이웃사람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을 업신여겼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모든 일 하나하나마다 하나님과 관계 없다고 결코 생각할 수 없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절대 계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그 계명 주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멸시하는 일이다. 계명을 주신 분, 유일무이하신 지존자 천지의 주재, 창조주 하나님이 마치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도록 (명료한 분별력에 거짓광고의 수건 덮어씌워 그 존귀와 초월적 권능을 교묘히 감추어 버리고) 그 대용품을 그럴듯하게 만들고 거짓광고가 참인것처럼 호도함의 홍수 퍼부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로 그 거짓광고 모조품을 선택하게 만들려 함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대접을 받으실 분이 아니시다. 하지만 우리가 죄를 선택할 때 하나님은 그런 대접을 받으신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하고 그를 살해할 때 그는 단지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았고 그것만 어떻게 잘 정리하면 될 것 같았지만 사실 동시에 그리고 더 궁극적 측면으로 나아가 본다면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특히 그는 범죄한 후로도 성전에서 제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가르치는 일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당하셨다.

.........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 죄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 누구보다 이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한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이다. 누군가를 고의로 해치거나 미워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선대-사랑함의 영 따름과 정반대, 해 끼침-간음/탐냄/도둑-강도-살인함과 다름없음을 의미한다..."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할 수 없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형제를 미워한다면 하나님도 미워하는 것이다". [요한1서 4: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책망에 대해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반응한다(삼하12:13). 어떤 면에서 보면 ‘이걸로 그냥 끝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 시51편, 성경은 다윗이 단순히 그렇게 말만 한 것이 아님을 기록하고 있다.-----

>>낮아진 자세로 은혜를 구함(시51:11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자, 은혜, 긍휼을 따라 되는 것임을 인정한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죄도 당연히 용서 받을 수 있는 죄는 없다.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실 때 가능하다.

>>죄에 대해서 변명하려고 하지 않는다(3-4절).

정당화하거나 합리화시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밧세바의 핑계를 대지 않는다. 왕으로서 체면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다윗은 자신이 죄를 지었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인정한다(4절).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초점이 있다(10-12절).

원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 다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고 그분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예배드리기를 원했지만, 그 형식에 앞서 자신이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알고 그렇게 한다(17절). ....이런 [분수령적 회개+내적 지속적 회개 = 구원함에 이르는 회개]..회개는 사울이 보였던 모습과 크게 대조가 된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않은 것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을 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삼상 15:19). 그 불순종이 선한 의도로 한 것이니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주장했고, 뒤에는 백성들을 두려워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고 계속 변명하고 있다. ..불순종의 잘못은 인정했지만 그 잘못으로 인해 손상된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급하려 않고, 오히려 백성들과의 관계를 더 걱정했던 척 한다. ...게다가 사무엘에게 이제 잘못을 인정했으니 (그냥 대충 넘어가자) 마음 풀고 왕의 체면을 세우도록 같이 백성들 앞에 나아가 주면 좋겠다고... 마치 뭐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역정을 내느냐는 듯이 말한다.

사실 사울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가 했던 일은 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장을 살려준 자비로운 행동이었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예물을 마련한 지혜로운 결정이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언급하는 사무엘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울의 입장에서 걱정되는 것은 백성들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 했다(삼상 15:24). 사람과의 관계가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그랬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낮아진 마음으로 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죄가 단순히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님을 그는 알았다. 그래서 “여호와께 범죄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난 하나님과의 관계 손상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그것이 회복되기를 낮아진 마음으로,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구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실패했을 때 보여준 특징이다. 변명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은혜를 주셨다.

>>사건의 결말

다윗의 죄는 용서 받았다(13절). 하지만 그 죄의 결과는 그가 당해야 했다(14-23절). 하지만 결국 회개한 자와 하나님의 관계는 회복되었고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되었다(24-25절).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는 죄의 결과로 죽게 되었지만, 밧세바는 다윗의 정식 아내로서 다윗에게 위로를 얻고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

>>도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그분의 마음을 추구하고 그분의 마음으로 돌이키는 자, 하나님이 내 뜻을 이뤄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때로 실패해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 무엇보다 최우선순위에 놓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회개한다.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다.

지금까지 성경의 여러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모두 우리가 따를만한 좋은 본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하나님께로 돌이켰던 요시야, 하나님을 의지했던 히스기야,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던 갈렙, 가장 온유한 자 모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사실 표현은 다르고, 그 삶에서 강조된 모습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사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었다. 그것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따라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항상 옳으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요시야는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로 돌이켰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든 구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히스기야는 힘들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하나님을 의지했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신실하신 분임을 믿고 갈렙은 그 평생 하나님을 따랐다. 모세가 온유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믿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추구했던 것도 그가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은 단순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 모두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내 생각을 온전히 내려 놓아야 하기도 한다. 

내 자존심을 버려야 할 때도 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어떤 것이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할 때 그것을 막아야 한다. 심지어 내 목숨까지도 그렇게 해야 한다.

세상의 상식을 거스려야 할 때도 있다.....((말씀이신 주님의 비추심따라 명심하고 분별하여야 한다...사탄체계인 세상에 속한 것들로 인해 기만당하여 속고 강탈당하며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도록 JC이름으로 깨어 대적해야 하리니..))[세상 상식이란 본래 사람의 일상적 삶을 위하여 주신바, 중립적이라 할 수 있으나] 작금 세상의 왕으로 군림하는 배후조종자  원수마귀사탄은, [너무나도 간교-노회-교활한바 가능하다면 믿는이조차!!] 오도/호도-오남용/악용하여 생명 상실과 어둠-파멸의 길로 이끌기 위해 [복음 보고 듣고 깨닫고 깨어나 경험한 복음 말함의 진정한 복락의 길 걷기]에서 벗어나 곁길로 빠져 벗어나도록 정욕-탐심 가득한 (깨끗한 양심 흐리고 화인 맞게 유혹-미혹-현혹하여) 온갖 쓰레기 같은 죄-중독 투성이인 악성 광고의 홍수로 매스미디어를 가득채워 버렸고 그 악영향은 마치 전염병과도 같이 지대하다..(그러나 이 또한, 주께로 돌아가면 정결케 함 받고 주 이름 부르는 자에게마다 참 생명의 분별력이 회복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위에 언급한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살았고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선진들이라고 부른다. 믿음의 영웅들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웅 같은 사람들이지만 사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우리처럼 보이지 않는 분을 믿으며 보이지 않는 분을 사랑하며 보이지 않는 분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별명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불리울까? 우리는 어떤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평가하실까? 우리는 어떤 사람들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기억될까?.....그 무엇보다 좋은 믿음의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그 믿음에 따라 살아간 사람들로 우리 모두가 기억되기를 바란다.


===다윗의 아이가 죽다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 엄위하신, 사랑의 주님, 생생한 임재의 교통 구하며, 겸비함으로, 임재 의식 안에서..코람데오] 금식하고 [궁]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7일간 내내 금식 + 땅에 엎드려 침묵-앙망-주 이름 부름의 내적 전심 기도 중에)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Q이 겉보기에는 "No"로 응답하셨으나, 실지로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주님 자신과 하나됨의 상호교통/소통 재개를 열어주셨다 = 참생명의 예배-상호교통-기도 자리를 회복한 것))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주님 주권 인정+하나됨의 상호 교통 회복 감사!!)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 "[유일무이한 영존하시는 영생의 참 주권자 창조주 참 생명 하나님의 절대적 옳으심을 인정-신뢰-의지함 =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영적 질서 따른)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 말의 참된 정의가 달라져야 할바!! ...[일상적 삶의 한복판에서 자기 내면의 하나님을 생생하게 대면하기]= 오직 주님의 주권적 결정에 "주님은 절대적으로 옳으시기에 이렇게 하심 또한 최고-최선-최상의 처리하심임을 믿고-받아들이며 감사-찬양합니다" 말씀드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주를 참되게 믿고 한걸음 한걸음 동행하며 따르는 것이라야 한다!!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솔로몬이 태어나다

24.  ○((다윗은 그의 죄로 인해 "대신 죽은, 아이의 대속적 죽음".. 그 "JC십자가 대속 죽음"  의미 깨달음 통해 거듭남-주님의 안위(=나함)의 체험자 다윗, Q께서 동시에 밧세바를 그의 새로 맞아들인(=거듭난) 정식부인/아내로 인정하셨음을 새삼스레 참되게 깨닫고 그 내용으로 위로하고 있으며,  밧세바를 [그의 마지막 여자로 삼아] 일심으로 사랑하는바 새로와진  남편 다윗을 보라!!)) 다윗이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삼중적 슬픔에 빠져있는)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나함]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샬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다윗"의 뜻 = 사랑받는자 + 두목(머리), "여디디아 : 예디디아" 뜻 = 여호와께 사랑받는자

......Q 사랑받는자=여디디아 ::: Q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 Q으로충분한자 ::: 이렇듯, 주께 사랑받는(아버지품에 안긴 독생자JC가 그리하심과 같이!!), 그래서 늘 사랑-기쁨-화평 안에 머무는자마다, 이미 이긴 다윗임을 알게될 것!!

......##성경의 기술 순서 및 기록 원칙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 순서도 중요하지만!!) 주님 보시기에 영적 중요성이 어떠냐에 달려있음을 늘 명심하자!!

.....우리야의 전사-장례후 ((나단 선지자의 경책을 달게 받고 [간음-살인-탐심] 범과를 인정-자복-철저한 통회--성령의 새롭게 하심에로 나아감)) + 정부인/아내로 맞이한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첫째 아들은 태어난 지 7일만에(여호와의 치심으로) 죽게 됨 ==> 솔로몬은 정부인/아내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네째로 볼 수도 있고(그러면, 연대기가 다소 틀려짐) 둘째 아들일 수도 있음 .... 물론, 그외의 아들로서 시므아 소밥 나단이 더 태어났음을 볼 수 있다..[시므이, 삼무아, 시므아, shemea]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 '고명/유명인사' [소밥] (Shobab) :“돌아오다, 다시 데려오다” [나단, nathan]"선물"..((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왕-구주 JC의 계보))마태복음에서는 솔로몬을 계보에 넣는 반면, ((인자-구주JC의 근원 Q에 이르는 계보))누가복음에서는 솔로몬 대신 나단을 계보에 넣고 있다..)). 


===다윗이 랍바(바깥에는 물의 성, 그 내부에 왕성으로 이루어진 이중 구조였음)를 쳐서 점령하다

.....우리야가 죽음 인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가 재개된 제2차 암몬전쟁..밧세바의 첫아이가 태어나 죽기전, 솔로몬이 태어나기전의 일이라고 봄이 합당하다...그러므로 적어도 암몬 전쟁 종료까지 3년 넘게 걸렸다고 봐야 함!!.....죄악 중에서도 " 육적 측면에서는 승승장구, 더 잘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분명히 있을 수 있음을 그대로 보이고 계심...바로 그 아이러니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대는...부러운가????

26.  ○요압이 암몬 자손의 랍바를 쳐서 그 왕성을 점령하매.... [바깥성인 물의 성을 돌파하여, 안쪽의 왕성을 둘러싸 점유하고 있다는 뜻]

27.  요압이 전령을 다윗에게 보내 이르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읍을 쳐서 점령하였으니

28.  이제 왕은 그 백성의 남은 군사를 모아 그 성에 맞서 진 치고 이 성읍을 쳐서 점령하소서 내가 이 성읍을 점령하면 이 성읍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속뜻은 "내 이름 '요압'으로 붙여주세요") 하니

29.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그 곳을 쳐서 점령하고

30.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박힌 왕관을 가져오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34kg)라 다윗이 자기의 머리에 쓰니라(결코 그래서는 안되었다..무엇보다도 그 승리의 그 영광을 순전하게 주께 돌렸어야 했다 = 무언가 예전 같지 않고 부자연스럽고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법궤 안치때나, 다윗 언약 주심에 감사하는, 자애로움의 영성이 예전보다 못함을 보여준다!!) 다윗이 또 그 성읍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오고

31.  그 안에 있는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철도끼질과 벽돌구이를 그들에게 하게 하니라[= 예전의 피정복지 백성들과는 다르게, 과도-과중한 노역형의 처벌 내림...포악함의 측 면이 또 드러나고 있다....이 모습은 마치, [미갈을 얻는 조건으로 블레셋인 양피100개를 요구했던 사울의 명령을 핑계로 200명을 죽이고 200개를 갖다주었던(무의미한 살인폭력배)의 면모가 그대로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삼하8:14하, 15...*14...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15.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그럼에도불구하고, 암몬 랍바성 점령 당시는 그의 영성이 성숙 상태가 결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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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2장


1.  Then the LORD sent Nathan to David. And he came to him, and said, "There were two men in one city, the one rich and the other poor.

2.  "The rich man had a great many flocks and herds.

3.  "But the poor man had nothing except one little ewe lamb Which he bought and nourished; And it grew up together with him and his children. It would eat of his bread and drink of his cup and lie in his bosom, And was like a daughter to him.

4.  "Now a traveler came to the rich man, And he was unwilling to take from his own flock or his own herd, To prepare for the wayfarer who had come to him; Rather he took the poor man's ewe lamb and prepared it for the man who had come to him."

5.  Then David's anger burned greatly against the man, and he said to Nathan, "As the LORD lives, surely the man who has done this deserves to die.

6.  "And he must make restitution for the lamb fourfold, because he did this thing and had no compassion."

7.  Nathan then said to David, "You are the man! Thus says the LORD God of Israel, 'It is I who anointed you king over Israel and it is I who delivered you from the hand of Saul.

8.  'I also gave you your master's house and your master's wives into your care, and I gave you the house of Israel and Judah; and if [that had been] too little, I would have added to you many more things like these!

9.  'Why have you despised the word of the LORD by doing evil in His sight? You have struck down Uriah the Hittite with the sword, have taken his wife to be your wife, and have killed him with the sword of the sons of Ammon.

10.  'Now therefore, the sword shall never depart from your house, because you have despised Me and have taken the wife of Uriah the Hittite to be your wife.'

11.  "Thus says the LORD, 'Behold, I will raise up evil against you from your own household; I will even take your wives before your eyes, and give [them] to your companion, and he shall lie with your wives in broad daylight.

12.  'Indeed you did it secretly, but I will do this thing before all Israel, and under the sun.' "

13.  Then David said to Nathan, "I have sinned against the LORD." And Nathan said to David, "The LORD also has taken away your sin; you shall not die.

14.  "However, because by this deed you have given occasion to the enemies of the LORD to blaspheme, the child also that is born to you shall surely die."

15.  So Nathan went to his house. Then the LORD struck the child that Uriah's widow bore to David, so that he was [very] sick.

16.  David therefore inquired of God for the child; and David fasted and went and lay all night on the ground.

17.  And the elders of his household stood beside him in order to raise him up from the ground, but he was unwilling and would not eat food with them.

18.  Then it happened on the seventh day that the child died. And the servants of David were afraid to tell him that the child was dead, for they said, "Behold, while the child was [still] alive, we spoke to him and he did not listen to our voice. How then can we tell him that the child is dead, since he might do [himself] harm!"

19.  But when David saw that his servants were whispering together, David perceived that the child was dead; so David said to his servants, "Is the child dead?" And they said, "He is dead."

20.  So David arose from the ground, washed, anointed [himself,] and changed his clothes; and he came into the house of the LORD and worshiped. Then he came to his own house, and when he requested, they set food before him and he ate.

21.  Then his servants said to him, "What is this thing that you have done? While the child was alive, you fasted and wept; but when the child died, you arose and ate food."

22.  And he said, "While the child was [still] alive, I fasted and wept; for I said, 'Who knows, the LORD may be gracious to me, that the child may live.'

23.  "But now he has died; why should I fast? Can I bring him back again? I shall go to him, but he will not return to me."

24.  Then David comforted his wife Bathsheba, and went in to her and lay with her; and she gave birth to a son, and he named him Solomon. Now the LORD loved him

25.  and sent [word] through Nathan the prophet, and he named him Jedidiah for the Lord's sake.

26.  Now Joab fought against Rabbah of the sons of Ammon, and captured the royal city.

27.  And Joab sent messengers to David and said, "I have fought against Rabbah, I have even captured the city of waters.

28.  "Now therefore, gather the rest of the people together and camp against the city and capture it, lest I capture the city myself and it be named after me."

29.  So David gathered all the people and went to Rabbah, fought against it, and captured it.

30.  Then he took the crown of their king from his head; and its weight [was] a talent of gold, and [in it was] a precious stone; and it was [ placed] on David's head. And he brought out the spoil of the city in great amounts.

31.  He also brought out the people who were in it, and set [them] under saws, sharp iron instruments, and iron axes, and made them pass through the brickkiln. And thus he did to all the cities of the sons of Ammon. Then David and all the people returned [to]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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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2장 (개요)

앞 장은 다윗의 범죄를 기술했는데 본 장은 그의 회개를 설명하고 있다. 

비록 다윗이 실족했지만 완전히 버림받지는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를 되찾으며 하나님께로부터의 자비를 믿는다.

1. 다윗은 나단이 전한 하나님의 메시지로 말미암아 자기 잘못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우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1-6) 다윗 스스로 자신을 정죄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나단은 이 비유를 다윗에게 적용하여 다윗의 죄를 꾸짖고(7-9) 그에게 심판을 선고한다(10-12).

2. 다윗의 회개와 용서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13, 14).

3. 아이의 병과 죽음이 나오고 아이가 아플 때와 죽었을 때 다윗이 취한 태도가 묘사되고 있는데 그 태도는 모두 다윗의 회개를 입증하고 있다(15-23).

4. 솔로몬의 출생과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화해하셨음을 입증하고 있다(24, 25).

5. 랍바의 함락이 나오는데(26-31)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대로 갚지 않으신 본보기로 언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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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의 비유(삼하 12:1-14)

다윗이 회개하게 된 것은 그가 밧세바와의 간통죄를 범한지 한참 뒤의 일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나단이 다윗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때는 아이가 이미 태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이 죄를 범하고 회개치 않은 상태에 있은 것은 약 9개월 정도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의 다윗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의 마음은 결코 가책을 받지 않았으며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남몰래 애통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자기의 범죄를 슬퍼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아이가 태어나자 즉시 나단은 다윗에게 보냄을 받았다. 아이의 출생으로 그들의 비행은 세상에 다 알려지고 화제꺼리가 되었던 것이다. 

나단은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훈계를 위해 그에게서 죄의 고백을 받으려고 갔다. 동시에 그는 다윗으로 하여금 제약이 딸린 사연을 얻게 하려고 그에게 갔다. 

우리는 이 아홉달 동안 그에게 대한 은혜의 위로와 역사가 유예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중단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확실히 그는 시편을 짓지도 않았으며 그의 수금은 곡조가 맞지 않았고 그의 영혼은 뿌리에만 생명이 남아있는 겨울 나무 같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나단이 자기와 함께 한 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시 51:12, 15)라고 기도한다. 다음을 관찰하라.

Ⅰ. 하나님은 다윗에게 사자를 보내셨다. 

우리는 11장 말미에서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매우 악했다”는 말씀을 읽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 다음에는 여호와께서 원수들을 보내 그를 침략케 하시고 공포를 내려 그를 사로잡게 하시며 죽음의 사자를 그에게 보낸다는 기사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신실한 친구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다. 그는 신실하고 믿을 수 있는 종이었다. 그는 다윗에게 충실히 훈계하고 권고할 자였다. 

다윗에게는 그때만치 고백자가 필요한 때도 없었다. 그렇지만 다윗은 나단을 부르러 사람을 보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비록 자기 백성이 죄에 빠지도록 허용하시지만 그 죄 중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놔두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주목하자. “그는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했다.” 

그는 제 혼자 내버려 두면 끝없이 방황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길을 보았은 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사 57:17).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찾기 전에 우리를 찾으러 보내신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틀림 없이 길을 잃고 말 것이다. 

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대한 인자하신 의도를 알리려고 보내신 선지자였다(7:4). 그러나 이제는 그를 통해 자기의 진노의 메시지를 보내신다. 

말씀인도자들의 입으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공포의 말이든 위로의 말이든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단은 하늘의 환상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심부름으로 다윗에게 간다. 

그는 "다윗이 범죄했기에 나는 그에게 가까이 가지 않겠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와 같이 권하라”(살후 3:15). 

그는 “다윗은 왕이므로 나는 감히 그를 책망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시면 “자기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한다” (사 50:7).

Ⅱ. 나단이 다윗에게 전한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그로 자기 잘못을 확실히 깨닫게 하기 위한 말이었다.

1. 그는 비유를 들어 완곡하게 표현했다. 

다윗에게는 이것이 자기 신복 중 하나가 불쌍한 이웃을 학대하였으니 피해자의 억울한 사정을 시정해 주고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는 호소로 들렸다. 

나단은 전에도 이런 일로 다윗에게 나아오곤 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더 더욱 이 비유가 자기에게 대한 것임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권세자에게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억울하게 피해입는 자를 위해 나서야 마땅하다. 그래서 그들의 사정을 바로잡아 주도록 해야 한다.

(1) 나단은 다윗에게 한 억울한 피해자의 경우를 설명해 준다. 

한 부자가 자기와 다툴 능력이 없는 정직한 이웃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이다.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2절) 가난한 자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었다. 이와 같이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그러나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신 분께서는 부자로 하여금 자비를 알게 하시고 가난한 자는 만족을 알게 하셔서 분배를 하신다. 이 가난한 자는 더 많이 사거나 기를 재력이 없어서 오직 암양 새끼 한 마리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양새끼는(그렇게 불렀다) 그의 자식과 함께 자랐다(3절). 그는 그 암양 새끼를 귀여워했고 그 양새끼는 자나깨나 그와 친숙히 지냈다. 그런데 부자는 양새끼를 친구로 삼을 필요도 없으면서 그 가난한 자의 양새끼를 폭력으로 빼앗아 가지고 잡아 먹었다(4절). 그는 탐심에서 그랬거나 아니면 허영심에서 그랬을 것이다. 즉 자기 양을 잡기가 아까와서 그랬거나 아니면 자식처럼 고이고이 기른 양새끼는 자기 양보다 더 별미일테고 그 맛이 기막힐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을 것이다.

(2) 나단은 이 비유로써 다윗이 밧세바를 더럽힌 죄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그에게 제시했다. 

그는 처첩이 많았으면서 마치 부자가 자기 가축을 들에 두고 있는 것처럼 그들을 멀찍이 두고 있었다. 그가 단 한명의 아내만 거느리고 그 아내가 가난한 자의 암양새끼처럼 그에게 소중하며 그 아내가 사랑스러운 암사슴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아서 그가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겼다면 그는 더 이상 다른 여인에게 시선을 향하지 않았을 것이다(잠 5:19). 결혼은 간음죄에 대한 치료약이지만 중혼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일단 부부일체의 법이 깨뜨려지면 방종한 욕망은 터진 뚝처럼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아는 가난한 자처럼 단 한 명의 아내밖에 없었다. 밧세바는 우리아에게 있어서 그의 영혼이나 다름 없었고 늘 그의 품에 누운 새끼양과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품에 누울 아내가 달리 없었고 다른 것을 원치도 않은 때문이다. 패트릭 감독이 유대인 기록자들의 글에서 해석하듯 본문에 나오는 “행인”은 악한 생각, 악한 욕망을 나타낸다. 그 악한 생각이 다윗의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 즉 자기 처첩으로 만족할 수 있는데도 우리아의 아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바로 악한 생각이다. 이 악한 생각이 나그네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타당하다. 왜냐하면 악한 생각이 처음에는 행인에 지나지 않으나 때가 되면 손님이 되고 마지막에는 그 집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또 4절 서두에서는 “행인” 이라고 불리우는 자가 끝에서는 “사람”(아쉬-남편)이라고 불리우는 것도 그 이유가 된다. 그러나 혹자는 단 하루 저녁만 묵고 가는 길손처럼 욕망도 다윗의 마음 속에 잠시 머물렀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했다고 관찰한다. 욕망은 다윗의 마음 속에 항구적으로 거하지도 않았고 거기서 영원히 왕노릇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3) 그는 이 비유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다윗의 판결을 이끌어낸다. 

나단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자, 그 말의 진실성을 전혀 의심치 않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한 다윗은 즉시 그 범법자에게 대한 판결을 내리고 맹세로써 그 판결을 확증했다(5, 6절).

① 새끼양을 강탈한 불의로 인해 그는 양 한 마리 당 네 마리라는 율법에 따라(출 22:1)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한다고 다윗은 판결했다.

② 가난한 자를 학대함으로써 쾌감을 느낀 그의 포학성과 독선은 극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다윗은 판결한다. 굶주린 가난한 사람이 배부름을 얻기 위해 부자의 물건을 훔치는 경우에는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어 주게“ 되더라도 배상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잠 6:31). 또 솔로몬은 32절에서 이것과 간음을 비교하고 있다. 그러나 부자가 도둑질하는 경우에는 이와 다르다. 궁핍해서가 아니라 허영심에서 훔치며 도둑질을 위한 도둑질을 하며 단지 거만을 떨고 남을 괴롭힐 목적에서 도둑질한다면 그는 죽어 마땅하다. 그런 자에게는 배상만으로는 처벌이 안 된다. 그런 자는 극형을 받아야 된다. 이 판결은 너무 가혹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짓고서 아직 자비를 얻지 못한 다윗의 예리한 신경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2. 그는 드디어 이 비유를 다윗에게 적용한다. 비유로 시작하면서 그는 자기의 슬기를 보여 주었다. 

책망이나 견책에는 슬기가 아주 필요하다. 여기에서와 같이 범법자가 자기 일인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을 정죄하며 유죄로 인정하게 할 수 있다면 좋은 책망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나단은 이 비유를 해설하면서 자신의 충실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마치 다윗이 평민이기라도 한 양 다윗에게 노골적이면서도 준엄한 말을 하고 있다. 그 어휘는 노골적이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 나쁜 짓을 한 이는 바로 당신이다. 아니 당신이 이웃에게 한 짓은 그보다 더 나쁘다. 그러기에 당신은 자신의 판결로 죽어야 마땅하다고 했고 자신의 입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자기 이웃의 양새끼를 빼앗은 자가 마땅히 죽어야 한다면 네 이웃의 아내를 빼앗은 너는 어떻겠느냐? 그 부자는 새끼양을 뺏긴 했지만 너처럼 그 주인의 생명을 뺏진 않았다. 그러니 너는 백 번 죽어 마땅하지 않는가?” 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이름으로 직접 말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신다”고 말을 시작하고 있다. 다윗에게는 그 이름이 신성하고 경외할 만한 이름이어서 그의 주의를 끌만도 했다. 나단은 이제 가난한 자를 위한 탄원자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체면을 돌보지 않으시고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말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자신이 다윗을 위해 행하시고 계획하셨던 크나큰 일을 상기시키신다. 

하나님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시고 그를 보존하여 나라를 차지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권세를 주셔서 그의 전임자 사울의 집과 그의 주인되었던 자들의 가정을 다스리게 하셨으니 나발이 그 한 예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도 주셨다. 나라의 재물은 모두 자기 마음대로였고 누구든지 기꺼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어했다. 아니, 하나님은 그를 편안하게 하시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그에게 주시려고 하셨다.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8절). 하나님은 선물을 얼마나 아낌없이 주시는 분인지 주목하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으면 부족한 것이 없다. 그는 많이 주시는 자에게는 더욱 많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후하시면 후할수록 우리의 불만이나 금단의 열매에 대한 욕망은 더욱 중한 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바라며 마음대로 기도할 수 있다.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을 탐낸다는 것은 이만저만 배은망덕한 짓이 아니다.

(2) 그는 다윗이 이 간음죄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아주 업신여겼다고 책망한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네 자신의 권위와 권세를 믿고)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겼느냐?” (9절) 

하나님의 법과 그 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을 경시하는 것은 죄의 근원이며 죄의 악함이다. 하나님의 법에 대한 의무가 별 것 아닌 듯, 그 교훈이 시시하고 그 경고가 별로 두려워할 것이 아닌 듯 생각하는 것은 바로 죄악의 기초이다. 하나님의 법을 다윗보다 정중하게 쓴 자도 드물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그가 하나님의 법을 경시했다고 책망받는 것은 당연하다. 화근이 된 밧세바와의 간음이 여기에 언급되지 않는 것은 아마 그가 이미 그 일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① 우리아 모살은 두 번 언급되고 있다.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였다.” 비록 자기 칼로 죽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펜으로 그를 죽였고, 명령을 내려 그를 최전방에 배치시켰다. 악한 짓을 궁리하고 명령하는 자는 하수자와 꼭 같이 범인이다. 이 일은 더욱 나쁜 것으로 거듭 언급되고 있다. “네가 그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할례받지 못한 대적 암몬인의 칼로 죽였다.”

② 마찬가지로 밧세바와의 결혼도 두 번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이 일을 해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9, 10절). 먼저 더럽혔던 여인과의 결혼, 더욱이 그 남편을 살해하고 결혼한다는 것은 결혼 의식에 대한 모독이다. 그것은 악행에 대한 위장일 뿐만 아니라 악행을 성별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일로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겼다. 그런 짓을 금지한 전반적 계명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개개의 말씀도 업신여겼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앞에서 나단을 통해 자기가 다윗에게 집을 세워주리라고 약속하셨던 것을 상기시켰다. 그가 만약 이 거룩한 약속을 정당하게 존중하였더라면 이처럼 자기 집을 피와 정욕으로 더럽히지 않았을 것이다.

(3) 그는 다윗가에 대한 심판을 경고한다(10절).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네 당대뿐만 아니라 네 뒤에도, 너나 네 자손은 대부분 전쟁에 휩쓸릴 것이다.” 

아니면 이것은 다윗의 자식들 곧 암논과 압살롬과 아도니야에게 있었던 유혈극을 가리킬 것이다. 이 자들은 모두 칼에 엎드러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집에서 자비가 떠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셨으나(7:15) 여기서는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자비와 칼이 양립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 언약의 은혜로부터 제외되지 않은 자라도 크고 오랜 환란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심판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이유는 “네가 나를 업신여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경멸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들이며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특히 여기서 경고하는 내용은 두 가지이다.

① 그의 자녀가 그의 슬픔이 되리라는 것.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리라.” 죄는 가정에 어려움을 가져오며 한 가지 죄는 다른 죄의 벌인 경우가 적지 않다.

② 그의 처들이 그의 수치가 되며 유례가 없는 악행으로 그들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능욕을 당하리라는 것(11, 12절). 이 일이 그 자신의 아들에 의해 행해지리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데 이는 예언이 너무 명시되면 그 예언의 성취가 방해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권고를 받아들여 그대로 행했던 것이다(16:21, 22). 자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는 자는 자신의 아내도 남에게 더럽힘을 당해야 한다. 욥의 탄원 가운데 나타나듯 그 죄는 그렇게 처벌되곤 했다(욥 31:10 ,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호세아도 그것을 경고한다(호 4:14). 그 죄는 은밀했고 부지런히 감춰졌지만 그 벌은 공개되고 부지런히 선포되어 다윗에게 수치가 될 것이다. 비록 다윗의 죄는 수년 전에 저지른 것이라 하더라도 이 때가 되면 사람들이 회상하고 화제에 올리게 될 것이다. 거울에 비취는 얼굴이 자기 모습과 꼭 같듯 벌은 죄와 부합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피는 피로, 음란은 음란으로 처벌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자기가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며 어느 곳에서 발견하든지 간에 그 죄를 벌하지 않고 무사히 넘기는 법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신다.

3. 자기 죄에 대한 다윗의 고백과 참회. 

그는 자신을 변명하거나 자기 죄를 낮추기 위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13절). 그는 무조건 자기 죄를 시인하고 있다. 그는 아마 이런 취지로 더 많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짤막한 고백은 그가 나단의 말에 진정으로 겸손해졌고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자기 죄를 시인한다. “내가 죄를 범하였노라.” 그리고 더욱 가증한 것은 그 죄가 여호와께 범죄했다는 것이다. 그는 시편 51편 1절에서도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같은 말을 하고 있다.

4. 이 참회의 고백에 그의 사유가 선언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붙는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 하리이다. 그가 복수의 눈 앞에서 당신의 죄를 제거하셨으니 당신이 영원히 죽지는 아니하리이다. 당신이 당신의 죄를 제하지 않았더라면 당신도 영원히 하나님께로부터 제거될 테지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였기에 영원히 그에게 제거되지는 않으리이다.” 이로써 징벌의 의무는 취소되고 무효로 되었다. “그는 정죄되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바로 사유의 본질이다. “네 죄가 너의 영원한 멸망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이 곧 용서이다. 그는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판결을 받았다.

① 그러나 칼은 그를 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평안히 무덤에 내려갈 것이다. 다윗은 간음자와 살인자로서 마땅히 죽음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멸절시키려고 아니하셨다.

② 그는 평생토록 여호와께 징계를 받을 것이나 세상 사람에게는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시는 데 얼마나 신속한 분인지 주목하자. 다윗은 아마 이것을 가리켜 “내가 자복하리라 하였더니 주께서 사하셨다”(시 32:5)고 말했을 것이다. 큰 죄인이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 자비를 얻을 수 있으니 낙심치 말아야 한다. 누가 하나님처럼 허물을 용서해 주는가?

(2) 그럼에도 나단은 그 아이에 대해 사형 선고를 내린다(14절). 

하나님의 주권을 보라! 죄지은 부모는 살고 무죄한 아이는 죽는다. 그러나 모든 영혼은 그의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 원하시는 대로 자기 피조물을 통해 영광 받으신다.

① 다윗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했다. 그 세대의 악인과 이교도와 우상 숭배자와 독신자들은 다윗의 타락을 기뻐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을 경외하고 존중한다던 자가 그토록 큰 죄를 범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비방했을 것이다. “이런 자들이 소위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이다. 열심히 기도하고 찬미의 시를 노래하며 그토록 신앙이 돈독하다는 자가 이 모양이다. 간음과 살인을 막지 못한다면 그 따위 신앙 행위의 선한 점이 무엇이냐?”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과 달라서 중심을 살피신다(삼상 16:7)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사울은 이보다 작은 일로도 하나님께 싫어버린 바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째서 다윗은 살아서 왕노릇 해도 된단 말인가?”라고 말할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다윗의 선례를 들어 하나님을 비난하며 완악한 죄를 짓는 자들이 있다. 어느 누구도 사실 다윗 때문에 하나님을 혹평하거나 그의 말씀과 그의 처사를 비난할만한 정당한 이유를 갖지 못한다. 그런 행위는 죄가 된다. 그렇지만 다윗은 그런 자에게 거침돌이 되었고 정당하진 않더라도 비난할 구실을 주었으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는 자들이 평판 나쁜 죄를 범하는 경우에는 큰 폐해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즉 그들은 하나님과 기독교의 원수들에게 비난거리와 훼방할 재료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롬 2:24).

②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대한 당신의 노여움을 나타내심으로써 세상 사람에게 자기가 다윗을 사랑하시지만 그의 죄는 미워하신다는 것을 알리시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옹호하신다. 그는 아이의 죽음으로 자기의 정당성을 입증하시려고 하신다. 땅 주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압류할 권리가 있다. 아마 유아 이환율이나 사망률은 그 당시가 요즘보다 더 낮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은 흔치 않는 일이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진노를 더 명백히 입증하는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 아비의 죄를 자손에게 갚겠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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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겸비(삼하 12:15-25)

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뒤 궁에 머물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는 아마 자기가 설교한 다윗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회개시키기 위한 도구로써, 그리고 자비와 심판의 선포자로서 나단을 사용하셨고 그럼으로써 그의 사역을 존귀하게 하셨으며 “그의 말을 그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다”(시 138:2). 다윗은 이 선지자를 존경하여 밧세바에게서 얻은 아들 중 하나를 나단이란 이름으로 불렀으며(대상 3:5) 위대한 선지자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아들의 후손이었다(눅 3:31). 나단이 물러가자 다윗도 아마 한적한 곳에 가서 시편 51편을 지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편에서(비록 자기가 죄사함 받았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간절히 용서를 빌고 자기 범죄를 크게 슬퍼한다. 진정한 회개자는 하나님께서 용서한 뒤에는 자기들이 행한 일을 부끄러워할 것이다(겔 16:63). 이 문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아이의 앓음. “여호와께서 아이를 치시매 아이가 심히 앓았다”(15절). 

아이는 경풍이나 다른 무서운 질병에 걸렸을 것이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아이들의 질병이나 사망(롬 5:14)은 이들이 잉태될 때의 죄나 원죄를 증거한다.

Ⅱ. 다윗은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하신 표징인 줄 깨닫고 겸비케 되어 아이의 생명을 위해 하나님께 보고한다(16, 17절). 

그는 금식하고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며 자기 시종들의 공궤나 부축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회개가 진정에서 우러난 것임을 증명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이로써 보건대 다윗은 자기 죄의 수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기 죄를 항상 자기 앞에 두며 그 죄에 대한 끊임없는 책망을 감수하려고 한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살아있는 한 그는 다윗이나 남들에게 그의 죄를 알리는 기념물이 될 텐데도 다윗은 그의 생존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이의 죽음을 원하기는커녕 대개의 경우에 그러하듯 아이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진정한 회개자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참을성 있게 지고 젊었을 때의 욕망을 부끄러워한다(렘 31:19).

2. 여기에 나타나는 부성애와 인정은 보통 사람 특히 무인으로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깊고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나타내는 또 다른 증거이다. 회개하는 자는 동정심이 많게 될 것이다.

3. 그는 이 일로 저 다른 세상에 대한 큰 관심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 또한 회개의 증거가 된다. 나단은 그에게 이 아이가 정녕 죽으리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 기도할 수 있는 동안 아이의 생명을 위해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한다. 그의 기도는 주로 아이의 영혼이 저 세상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되며 자기 죄가 아이를 해롭게 하지 않으며 아이가 다윗 자신의 죄로 인해 장차 올 상태에서 곤란을 당치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4. 그는 하나님과 그의 노여움에 대해 거룩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는 주로 아이의 죽음이 자기와 자기 집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였고 위협의 전주곡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이를 살게 해 주시도록 이처럼 간절히 기도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와 화해하셨다는 표시가 될 것이였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소서”(시 6:1)

Ⅲ. 아이의 죽음.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 아이는 그 때 생후 팔일이었고 따라서 할례도 받지 못했다. 다윗은 아마 더더욱 그 아이가 언약의 인침 아래 들기 전 죽은 것을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아이의 행복을 믿어 의심치 않는데 이는 언약의 혜택은 인침에 좌우되지 않는 까닭이다. 다윗의 신복들은 자기 주군의 성미로 보아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 극도로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다윗은 직접 물어 보고서야 비로소 아이의 죽음을 알았다(19절).

Ⅳ. 다윗은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자 놀랍게도 평정과 침착을 잃지 않았다.

1. 그는 어떻게 행하였는가?

(1) 그는 슬픔의 표시를 불식해 버렸다. 그는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며 깨끗한 옷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이것은 단정히 하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함이었다.

(2) 욥이 자기 자식들의 부음을 듣자 그랬던 것처럼 그는 “여호와의 전(원의:장막)에 들어가서 경배했다.” 그는 이 환란 속에 하나님의 손질을 인식하고 겸비케 되며 그의 거룩하신 뜻에 복종하며 자기를 살려두시고 자기 죄를 사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대한 쟁변을 계속하시거나 그의 모든 분을 일으키지 마시도록 기도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다”(약 5;13). 애곡이 예배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3) 그리고 나자 그는 궁으로 돌아와서 환란 날에 자기 종교로 은혜를 받은 자답게 스스로 기운을 차린다. “경배”했으므로 그는 음식을 먹고 그 얼굴에는 수색이 더 이상 없었다.

2. 그가 자기의 행동에 대해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신복들은 다윗이 아이가 앓을 때는 그토록 자기 학대를 하다가 아이가 죽자 그것을 아주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에 의아심을 느끼고 그에게 묻는다(21절). 그 물음에 답하여 그는 자기 행동을 이렇게 분명히 설명해 준다.

(1) 아이가 살았을 동안에는 아이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 자기 도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22절). 나단이 아이가 정녕 죽으리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나 그는 히스기야의 경우처럼 그 경고가 유동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하나님께서는 왕왕 그의 곡성을 들으셨다(시 6:8). 그런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게 낮춤과 간절한 기도에 판결을 번복하시고 아이를 살려 주려고 하실지도 몰랐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지 누가 알까?”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기대할 만한 특정 약속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일반적 자비심에 대한 신뢰감에서 어떤 특정 축복을 간절히 구하도록 허락하신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일에서 결과를 확실히 알 순 없지만 기도는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지 누가 알랴? 우리 친척이나 친구가 병에 걸렸을 때 믿음의 기도는 역사함이 많다. 생명이 있는 한 소망이 있으며 소망이 있는 동안에는 기도할 여지가 있다.

(2) 이제 아이가 죽자 그는 하나님의 처사에 만족하는 것이 자기 도리라고 생각한다(23절).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그의 슬픔을 억제하는 것은 두 가지다.

①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죽은 자들은 기도의 영역 밖에 있으며 우리의 눈물도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통곡으로도 기도로도 그들을 이 세상에 불러오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금식해야 하겠는가? 이렇게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랴?”(말 3:14) 그러나 다윗은 요나단이 죽었을 때는 그를 추모하여 금식하고 애곡했다.

② “나는 저에게로 가리라.”

첫째, 그는 무덤 속의 아이에게로 간다. 우리는 친지가 죽을 때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 슬픔이 완화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것은 공통된 운명이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대신 우리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비록 지금은 그들을 잃는 손실이야 어떻든 간에 우리도 곧 죽어서 그들에게로 갈 것이다.

둘째, 그는 천국에 있는 아이에게로 간다. 천국은 복된 나라여서 구약 성도들도 다소 기대를 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슬퍼하는 경건한 부모들은 유시에 죽는 자녀에 대해 그들의 영혼이 저 세상에서 복되다는 것을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약속은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행 2:39). 이 약속은 자기 문에 빗장을 걸지 않는 자들에게 이행될 것이다. favores sunt awpliandi―즉 은총을 받으면 은총에 대한 희망이 더 많아진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태어난 자들을 자기 자녀라고 부르신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소생이라면 그는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 자녀가 우리와 사별하더라도 그들이 이 세상의 일과 재물보다 더 나은 일과 부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는 잠간이면 그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이며 그 때에는 더 이상 이별이 없을 것이다.

Ⅴ. 솔로몬의 탄생. 여호와는 다윗이 밧세바와 결혼한 것을 노여워하셨지만 이혼하라고 명하시지는 않으셨다. 아니,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아들을 주셔서 왕권의 언약까지 그와 맺으셨던 것이다. 밧세바는 틀림없이 죄의식과 하나님의 노여우신 표징으로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의 구원의 기쁨을 축복해 주셨으므로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바로 그 위로로써 밧세바를 위로했다(24절). 다윗과 밧세바 두 사람은 하나님의 화해하신 표징 가운데서 위로를 얻을 만했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1. 하나님은 섭리로써 그들에게 한 아들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아들은 분노하신 가운데 주셨다가 진노하심으로 빼앗아 가버린 먼저 번 아들과 달리 은혜 속에서 주셔서 예루살렘의 산 자 중에 기록된 아이였다. 그들은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했으니 그 의미는 “평화스럽다”는 뜻이다. 이는 그의 출생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평하심을 나타내며 그에게는 번영이 약속되고 그는 평강의 왕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서 한 아들을 데려가 버리셨으나 아벨 대신 셋을 주셨던 것처럼(창 4:25) 그들에게도 그 대신 다른 아들을 주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왕왕 자기 백성의 슬픔을 동일한 일에 의한 위로로써 상쇄시키신다. 즉 하나님이 어떤 일로 고난을 주시면 바로 그 일로 위로를 주셔서 전자와 후자를 대조시키시는 경우가 흔히 있다. 다윗은 먼저 번 아이가 죽었을 때 매우 참을성 있게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손실을 보상하실 뿐만 아니라 이 아이의 탄생으로 풍성한 혜택을 내리시기까지 한다. 우리의 위안물을 계속 보유하거나 회복하거나 아니면 그 손실을 다른 모습으로 보충하는 비결은 그것들을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는 데 있다.

2. 하나님은 은혜로써 그 아들을 특별히 인정하시고 총애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셔서 그 이름을 여디디야 즉 여호와께 사랑받는 자라고 하셨더라” (24, 25절). 그는 비록 행악자(다윗과 밧세바는 행악자였다)의 자식이었지만 언약은 너무도 관대하여 면류관까지 그의 머리 위에 씌워 주며 부패한 피와 모든 상실한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다. 이것은 태어나면서 진노와 불순종의 자식되었던 자들이 은혜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화해받을 뿐만 아니라 은총받는 자가 됨을 상징한다. 또 솔로몬은 여디디야라는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복된 “여디디야” 이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셨고 하나님께서는 몇 번이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고 선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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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바 함락(삼하 12:26-31)

여기에는 랍바 공략과 암몬족의 다른 성들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이 기사는 다윗의 득남 기사 다음에 나오지만 이 일은 이보다 훨씬 먼저 있었던 일일 것이다. 

아마 우리아가 죽고 난 뒤 (다윗의 첫아이 임신한 채) 밧세바가 그를 위해 호곡하던 동안 (즉, 분수령적 회개 있기전=주 임재 누림 떠남),  랍바성은 함락되었을 것이다. 다음을 관찰하자.

1.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다. 

다윗은 이 전쟁기간 중에 범죄했고 더욱이 사악하게도 암몬인의 칼을 빌어 우리아를 살해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때부터 바로 암몬인의 칼을 다윗과 그 나라의 재앙으로 삼으셨어야 마땅할 터였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칼을 꺾으시고 다윗이 아직 회개하기 전에 다윗의 칼을 승리의 칼로 만들어 주신다. 

이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시기 위해서이다” (롬 2:4).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않으신다(시 103:10)고 고백할 만 했다.

2. 요압은 매우 정직하고 공손하게 처신했다. 

그는 “물들의 성” 곧 암몬 자손의 왕궁이 있는 성을 곧 취하게 되었다. 

도성 나머지 지역은 왕궁이 있는 곳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그러므로 왕성을 차단하면 나머지 지역은 곧 항복하지 않을 수 없게 돼 있었다. 

요압은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 왕이 친히 이 위대한 작전을 성사시키라고 청했으니 이는 다윗으로 하여금 랍바 공략의 찬사를 듣게 하기 위함이었다(26-28절). 

이로써 요압은 자기가 충실한 신복임을 나타내었다. 그는 주인의 명예를 먼저 구했고 자신의 명예는 다만 주인의 명예에 귀속시키는 가운데서 구했을 따름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에게 본을 끼쳤다. 그리스도의 모든 종들은 무슨 일에서나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를 영화롭게 마시고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3. 이때 다윗은 극히 오만하고 엄하여서 겸손하거나 인정스러운 모습이라곤 추호도 없었다.

(1) 그는 암몬 왕의 면류관을 너무 좋아했던 것 같다(30절). 

그 왕관은 보석들이 박혀 있어서 아주 값비싼 것이었으므로 자기 머리 위에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차라리 이 왕관을 하나님 발 앞에 던져 버리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 때 죄를 입고 있던 몸이 아닌가! 그는 땅에 엎드려 입에 흙을 머금어야 할 때였다. 

죄 때문에 진심으로 겸손해진 심령은 세상의 영화에 대해서는 스스로 죽어서 그것을 거룩한 경멸감으로 바라본다.

(2) 그는 전쟁 포로를 너무 가혹하게 취급한 것 같다(31절). 

“그가 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으로 켜고 써레로 썰고 도끼로 찍고 벽돌가마로 지나게 하였더라”(한글 개역과 다름). 

그 도성은 오래도록 완강히 버티었고 공격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끝에 함락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전투 속에서 눈에 띄는 적군을 도륙한 것으로 충분했다. 그것만 해도 가혹한 짓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뒤 냉혈한처럼 살육과 고문을 자행하여 톱과 써레로 능지처참한 행위는 그답지 않은 짓이었다. 그는 통치를 할 때 인자와 공의를 찬송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시 101:1). 

자기 사자들을 모욕하거나 그 일을 권고하고 방조한 자들만 본때를 보여 주어 국제법의 위반을 문제삼았더라면 다른 나라들한테도 두려움을 주는 동시에 명분이 뚜렷한 정의의 행위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암몬족의 모든 성을(즉 모든 성의 수비대나 병사) 이 같이 한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행위일뿐더러 다윗의 마음이 아직 회개로써 부드러워지지 않았다는 표시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그의 긍휼심이 이렇게 꽉 막혀 있을 리 있는가! 이것은 아직 그가 자비를 얻지 못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더 많은 자비를 보였으리라!

====호크마==

사무엘하 (12 : 1~31)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ㅇ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신때는 다윗이 범죄한 이후(11:4, 5) 약 1년 정도는 되었을 때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밧세바가 다윗의 아이를 해산한 때였기 때문이다(14절).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다윗이 범죄한 즉시 견책하지 않으시고 약 1년 후에 견책(譴責)하신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 다윗으로 하여금 죄로 말미암은 영적인 고통의 실상을 경험케 하여 다시는 죄를 범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시32:3, 4). (2) 다윗의 완악해진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려지기를 기다리시기 위함이다(시 32:5). 아무튼 이처럼 여호와께서 다윗을 회개시키기 위해 선지자 나단을 보내신 사실은 하나님께서 먼저 범죄한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다(겔 34:11, 12). 사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여전히 죄와 절망의 자리에 버려진 상태에 있을 것이다(롬 1:28). 

한편 나단(Nathan)은 앞서 다윗이 성전 건축을 상의한적이 있는 선지자이다(7:2). 특히 왕의 권세앞에서도 당당히 진리의 말씀을 외치며 죄악을 지적하는 이 선지자의 용기는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힘과 소명감을 고취시켜 준다(행4:13-22; 고전 4:1, 2).

ㅇ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 이는 다윗의 무서운 범죄를 지적하기 위한 나단 선지자의 비유(比喩)이다. 나단이 이처럼 비유를 들어 다윗을 책망코자 했던 이유는 다음 서너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한 나라의 왕인 다윗의 권세에 대한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여 다윗의 완고해짐을 막기 위함이다. (2) 우회적(迂廻的)인 방법을 사용, 다윗 스스로가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고백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3) 자신의 죄의 실상에 대해 둔감한 다윗에게 비유를 통해 그 죄의 참담한 실상을 환히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비유는 완악하고 어리석은 죄인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한 방법이다(사 5:1; 겔 17:3; 19:2, 3; 24:3; 마 13:34).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적절한 비유까지 예비하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한편 비유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본장 1-14절 강해, '비유'(parable)를 참조하라.

2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ㅇ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 여기서 '부한 자'는 바로 다윗을 의미한다. 그리고 '양과 소'는 다윗의 수많은 처첩(妻妾)을 의미한다(3:2-5; 5:13-16; 대상3:1-9). 나단이 이러한 비유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처럼 다윗이 많은 아내들을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치 아니하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눈길을 돌렸다는 점(3, 4, 9절; 11:2-5, 27)이다 (Matthew Henry's Commentary, Vol.II, p. 500).

3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ㅇ가난한 자는...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 뿐이라 - 여기서 '사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나'(* )는 '한 개인의 사유 재산으로 획득한다'는 의미이다. 즉, 이 말에는 개인의 소유 개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창 4:1; 잠 4:7;15:32; 16:16; 19:8; 룻 4:9, 10). 따라서 이 말은 작은 암양 새끼 하나가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한 가난한 사람의 절대 소유임을 강조해 준다. 

한편, 혹자는 여기서의 '작은 암양 새끼'에 대하여 단순한 재산의 개념으로 이해하려 하였다(Lange). 즉, 고대 근동 사람들은 가축을 그들의 부의 척도로 삼고 있었다는 지론(持論)이다(창30:25-43; 민 32:1; 욥 1:3). 그러나 여기서 '작은 암양 새끼'는 단순한 재산 이상으로 주인의 온갖 사랑을 받고 재롱을 떠는 애완용 가축을 의미한다(Keil, PulpitCommentary). 그 근거로서 우리는 근동 지방에서는 지금도 애완용 양을 키우는 관습이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Keil).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1) 이 '작은 암양 새끼'는 다른 사람이 앗아갈 수 없는 오직 '가난한 자'의 고유 소유였다는 점이다. (2) 또한 그것은 가난한 자가 극진히 사랑하고 길렀던 애완용 양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비유는 오직 하나뿐인 자신의 아내 밧세바(11:3)에 대한 우리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ㅇ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딸처럼 되었거늘 - 이는 곧 가난한 자에게 있던 암양 새끼 한 마리가 그에게 있어선 단순한 애완용 동물의 차원을 넘어 그 자신의 유일한 꿈과 희망이 담겨 있는 고귀한 존재임을 의미한다.

ㅇ자라며...먹으며...마시며...누우므로 - 암양 새끼와 가난한 주인 간의 동고 동락(同苦同樂) 관계를 묘사한 말로서 곧 우리아와 밧세바 간의 애정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다윗이 우리아의 가정을 파괴하기 이전에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하였지만 우리아의 가정이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ㅇ행인...행인...자기에게 온 사람 - 혹자는 이와 같이 열거된 동의어(同義語)들이 인간의 탐심의 발전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Augustine, Wordsworth). 즉, 처음의 '행인'(* , 헬렉크)은 탐심의 초기 단계로서 잠깐 머물다 떠나는 단계이며, 둘째의 '행인'(* , 오레아흐)은 보다 진보된 단계로서 상당히 오래 머무는 단계이며, 셋째의 '자기에게 찾아온 사람'(* , 이쉬하바 엘라우)은 완전히 탐심이 그 사람 속에 자리잡고 떠나지 않는 단계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일련의 동의어들은 어디까지나 같은 의미를 수사학적(修辭學的) 으로 다양하게 기술한 것일 뿐이다(Lange, Keil), 왜냐하면 본절의 초점은 부자가 한 행인을 위해 가난한 자의 양 새끼를 빼앗은 강탈 죄를 부각시키는 데 있는 것이지 인간의 탐심이 어떻게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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