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11장
[슥3:2...사탄아..너를 책망하노라..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보라.. 진정코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מֻצָּ֥ל מֵאֵֽשׁ זֶ֦ה א֖וּד <제 우드 메찰 메쉬 ...빚어지고 다루심 받은자--동심합치로 Q의 달렛 이룬자---진리말씀에 매인바 된 참제자---Q의 진리말씀의 모든것>בִּירֽוּשָׁלִָ֑ם הֲלֹ֧וא<베 예루살라임 할로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Q, Q 말씀-참제자 그자체가 질적변화 이룬바 Q나타냄...외양은 가련해보이지만>]
[350.우리들이싸울것은...11:4-12] [352.십자가군병들아..11:13-21]
##아하시야 = 아하즈<(알렙-헤이트-자인)..부활생명의 Q이 빚고 다루심>+야<야흐..(요드-헤이 =여호와>) .... ##아달랴 = 아틀라/아탈<(아인-타브-라멛-요드)...완전하신Q의 생명말씀의 가지-참제자, 그분따라 행함 = 존귀케된 가지>+야흐<여호와..(요드-헤이)> .... ##요람 = 예호람(요드-헤이-레이시-멤...지존하신 여호와의 거처) .... ##여호세바 = 예호세바 = 예호와(요드-헤이-바브(상)-헤이..여호와) + 셰바(샤바..쉰(우)-베이트-아인..맹세/언약 .... ##요아스 = 요아쉬 = 예호아쉬 =예호아 + 이쉬 =...<요드-헤이-바브(상)> + <알렙-쉰(우)..*알렙-쉰(우)=이쉬..말씀/진리, 불/빛> .... ##여호야다 = 예호+야다 = 예호와<요드-헤이-바브(상)-헤이> + 야다<요드-달렛-아인...알다=증인> .... ##맛단 = 멤-타브-눈..선물...진리말씀의 완성, 그 실존 ...##바알<베이트-아인-달렛>
===유다 여왕 아달랴 1.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2.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 3. 요아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4. ○일곱째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성전에서 맹세하게 한 후에 왕자를 그들에게 보이고 .....*크레테 출신 용병(그렛족속)..한편, 블레셋 출신 용병은 블렛으로 통칭..다윗시대부터 [성밖에 주둔하는] 특별기동대로 편성/근무..왕궁 친위대(호위 맡은 호위대+시위대)는 성안과 왕궁 치안을 맡았음 5.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가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들어온 너희 중 삼분의 일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6. 삼분의 일은 수르 문에 있고 삼분의 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7. 안식일에 나가는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성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8. 너희는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너희 대열을 침범하는 모든 자는 죽이고 왕이 출입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하니 9. ○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 바 안식일에 들어오는 자와 안식일에 나가는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10. 제사장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니 11. 호위병이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성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까지 제단과 성전 곁에 서고 12.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왕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13. ○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백성에게 이르러 14. 보매 왕이 규례대로 단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셔 섰으며 온 백성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15.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대열 밖으로 몰아내라 그를 따르는 자는 모두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그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16. 이에 그의 길을 열어 주매 그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여호야다의 개혁 17.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18. 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고 그 제단들과 우상들을 철저히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하고 19.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려와 호위병의 문 길을 통하여 왕궁에 이르매 그가 왕의 왕좌에 앉으니 20.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더라 21. ○요아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칠 세였더라 ---------- [NASB]제11장
1. When Athaliah the mother of Ahaziah saw that her son was dead, she rose and destroyed all the royal offspring. 2. But Jehosheba, the daughter of King Joram, sister of Ahaziah, took Joash the son of Ahaziah and stole him from among the king's sons who were being put to death, and placed him and his nurse in the bedroom. So they hid him from Athaliah, and he was not put to death. 3. So he was hidden with her in the house of the LORD six years, while Athaliah was reigning over the land. 4. Now in the seventh year Jehoiada sent and brought the captains of hundreds of the Carites and of the guard, and brought them to him in the house of the LORD. Then he made a covenant with them and put them under oath in the house of the LORD, and showed them the king's son. 5. And he commanded them, saying, "This is the thing that you shall do: one third of you, who come in on the sabbath and keep watch over the king's house 6. (one third also [shall be] at the gate Sur, and one third at the gate behind the guards), shall keep watch over the house for defense. 7. "And two parts of you, [even] all who go out on the sabbath, shall also keep watch over the house of the LORD for the king. 8. "Then you shall surround the king, each with his weapons in his hand; and whoever comes within the ranks shall be put to death. And be with the king when he goes out and when he comes in." 9. So the captains of hundreds did according to all that Jehoiada the priest commanded. And each one of them took his men who were to come in on the sabbath, with those who were to go out on the sabbath, and came to Jehoiada the priest. 10. And the priest gave to the captains of hundreds the spears and shields that had been King David's, which [were] in the house of the LORD. 11. And the guards stood each with his weapons in his hand, from the right side of the house to the left side of the house, by the altar and by the house, around the king. 12. Then he brought the king's son out and put the crown on him, and [ gave him] the testimony; and they made him king and anointed him, and they clapped their hands and said, "[Long] live the king!" 13. When Athaliah heard the noise of the guard [and of] the people, she came to the people in the house of the LORD. 14. And she looked and behold, the king was standing by the pillar, according to the custom, with the captains and the trumpeters beside the king; and all the people of the land rejoiced and blew trumpets. Then Athaliah tore her clothes and cried, "Treason! Treason!" 15. And Jehoiada the priest commanded the captains of hundreds who were appointed over the army, and said to them, "Bring her out between the ranks, and whoever follows her put to death with the sword." For the priest said, "Let her not be put to death in the house of the LORD." 16. So they seized her, and when she arrived at the horses' entrance of the king's house, she was put to death there. 17. Then Jehoiada made a covenant between the LORD and the king and the people, that they should be the Lord's people, also between the king and the people. 18. And all the people of the land went to the house of Baal, and tore it down; his altars and his images they broke in pieces thoroughly, and killed Mattan the priest of Baal before the altars. And the priest appointed officers over the house of the LORD. 19. And he took the captains of hundreds and the Carites and the guards and all the people of the land; and they brought the king down from the house of the LORD, and came by the way of the gate of the guards to the king's house. And he sat on the throne of the kings. 20. So all the people of the land rejoiced and the city was quiet. For they had put Athaliah to death with the sword at the king's house. 21. Jehoash was seven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 ..열왕기하 11장 (개요) 예후가 안정되자 곧 이어서 이스라엘 왕국의 혁명은 완성되었다. 이제는 유다 왕국의 형편을 살펴보자. 유다는 이스라엘과 똑같은 때에 왕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스라엘보다 혼란이 더 오래 계속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본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들은 훌륭한 상태로 돌아오게 되었다. 1. 아달랴가 정권을 빼앗고, 왕의 씨를 진멸하였다(1). 2. 한 살 된 요아스가 기적적으로 보호되었다(2-3). 3. 6년이 지난 후, 여호야다에 의해서 왕이 된다(4-12). 4. 아달랴가 죽임을 당한다(13-16). 5. 나라의 공익이 되며 종교적인 유익이 되는 문제가 요아스에 의해서 잘 해결되었다(17-21). 이렇게 해서 약간의 방해가 지난 후 모든 일은 유리하게 옛날로 되돌아갔다. ---- 요아스의 구출(왕하 11:1-3) 하나님은 다윗 가문의 연속성을 확인했었다. 그 연속성은 “내 기름부은 자를 위해서 등을 예비”한 것이라고 불리고 있었다(시 132:7). 그것은 드러날 수밖에 없는 큰 사건이다. 이제까지 우리도 수많은 왕족들이 차례차례 완전히 근절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이제 약속된 다윗의 등불이 거의 꺼져가고 있었으나, 기적적으로 보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Ⅰ. 그 등불은 왕 태후 아달랴의 야만적인 악의에 의해서 거의 꺼져버렸다. 그녀가 예후에 의해서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올라가서, 왕의 씨를 진멸하였다”고 했다(1절). 즉 그녀는 그들이 모두 혈통적으로 왕이 되어야 할 자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 여호람은 여호사밧의 아들인 자기 형제들을 모두 죽였다(대하 21:4). 아라비아 사람들은 아하시야를 제외한 여호람의 모든 아들들을 죽였다(대하 22:1). 예후는 그들의 모든 아들들을 죽였고(대하 22:8), 아하시야까지도 죽였다. 확실히 왕족의 피가 그렇게 많이 흘려진 일은 없었다. 질투와 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 낮은 계급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행복하도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부족했다는 듯이, 아달랴는 남아 있는 왕의 모든 씨를 진멸하였다. 연약한 여성의 한 사람인 그녀가 그렇게 야만적일 수 있으며, 자신이 왕의 딸이었으며, 왕의 아내, 왕의 어머니였던 그녀가 자기 자신도 속해 있는 그 왕의 가족에 대해서 그렇게 야만적일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 일을 했다. 1. 그것은 야망의 정신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배를 목마르게 원했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론 지배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그녀와 함께 통치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중에 자기를 지배할지도 모르리라고 생각되는 유아들, 젖먹이들까지도 죽였다. 2. 하나님에 대한 복수와 격노의 정신 때문에 그렇게 했다. 아합의 집은 완전히 멸절되었고, 그중에서 그녀의 아들인 아하시야만 남았다. 그녀는 아합의 혈통이었기 때문에, 복수라는 방법으로 다윗의 집을 진멸하고, 하나님께서 영구화시키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대를 끊으리라고 결심했다. 얼마나 어리석고 실속 없는 일인가?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일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할머니들은 자기 자식들보다 손자들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아하시야의 친어머니는 아하시야의 친아들들(손자들)을 죽인 무서운 살인자였다. 특히 그녀가 그들을 양육하고 돌보아야 할 유아 시절에 그렇게 했다. 그녀가 “아달랴” 곧 “악한 여인”(대하 24:7), 이세벨의 친딸이라고 불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도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다윗 집안의 가지들인 요람과 아하시야의 죄를 그들의 자식들에게 갚은 것이다. Ⅱ. 등불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던) 요람의 딸들 중 한 여인의 헌신적인 배려로 기적적으로 보존되었다. 그녀는 왕의 아들들 중에 한 사람인 요아스를 훔쳐 달아나서, 그를 숨겼다(2-3절). 이것은 불 속에서 끄집어낸 타다 남은 나무였다. 얼마나 많은 수가 죽임 당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이 아이는 아마도 유모의 품안에 있었기에 잃어버려지지도, 조사되지도, 발견되지도 않았다. 이 아이를 구해 준 사람은 악한 요람 왕의 딸이요, 그 아이의 친고모였다. 하나님은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서는 보호자를 세우신다. 그 아이의 보호 장소는 성전에 있는 침실의 하나로 아달랴가 거의 신경 쓰지 못할 장소였다. 그녀는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맡겼고, 모세처럼 신앙으로 숨겼다. 이제 다윗의 말은 그의 자손 중의 한 사람에게서 실현되었다. “그는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도다……”(시 27:5). 이런 요아스가 성장했을 때, 그의 피난처였던 여호와의 전을 수리했다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다윗에게 한 약속은 한동안 중지된 것 같았으나 실패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약속에 따라 다윗의 자손에게 영적인 씨를 줄 것인데, 그것은 때로 소수로 줄어들고 매우 쇠퇴되고, 외적으로 실패하고, 때로는 감추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막에 상하지 않게 감추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 같으나, 때가 되면 영구히 계속될 것이다. 악한 왕이었던 요람이 경건한 제사장인 여호야다와 자기 딸을 결혼시킨 것은 특별한 섭리의 작용이었다. 왕의 딸이 성직자와 결혼하는 것이 왕의 가족으로 볼 때는 수치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파멸로부터 왕의 가족을 구하는 행복한 결혼임이 실증되었다. 여호야다는 성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그것이 그녀에게 그 아이를 보호할 기회를 주었고, 왕의 가족에 대한 그녀의 관계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울 기회를 그(여호야다)에게 주었다. 여호와의 지혜와 배려를 보자. 그가 계획한 것을 어떻게 준비했나 보라! 자기 자녀들을 지혜롭고 선한 자들에게 결혼시킨 가족을 위하여 쌓아둔 축복을 보라. --------- 요아스의 대관식(왕하 11:4-12) 6년 동안 아달랴는 폭정을 했다. 그의 치정에 관한 특별한 기록은 없다. 확실히 초기와 같았을 것이다. 예후가 이스라엘에서 바알 숭배를 금하고 있을 때, 그녀는 역대하 24장 7절에 나타난 것처럼, 유다에다 바알을 세웠다. 유다의 조정과 왕실은 아합 집과의 결연으로 퇴폐되었다. 그리고 두 왕실은 서로 저주와 화근이 되었다. 악한 친분 관계는 좋은 것을 낳지 못한다. 이러는 동안 요아스는 숨겨져 있었고, 왕위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늘나라의 아들들과 상속자들은 지금은 숨겨져 있고 “세상이 그들을 알지 못하지만”(요일 3:1), 요아스가 7년만에 나타났듯이, 그들이 영광 속에 나타날 때가 분명히 온다. 그때까지, 요아스는 어린아이로서가 아니라, 생활에 대한 첫 훈련을 다 배워서 결정적인 시기에는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준비를 했다. 즉 그는 성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좋은 단계를 밟고 있었다. 이때까지 사람들은 아달랴의 폭군 정치에 지쳤고 혁명의 기운이 익어갔다. 어떻게 그 혁명이 이루어지게 되었나를 살펴보자. Ⅰ. 이 큰 일의 주동자는 제사장, 아마 대제사장이거나 최소한 현자(sagan. 유다인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혹은 대제사장 보조자였을 여호야다였다. 그의 가문과 직책으로 보아 그는 분명 권위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왕위에 오른 의로운 왕이 없을 때는, 사람들이 그를 섬기고 복종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신 17:12). 그는 결혼으로 왕의 집안과 결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왕의 씨가 진멸되었다면 요람의 딸인 그의 아내는 아달랴보다 더 좋은 직책을 가졌을 것이다. 여호야다의 탁월한 재능과 품성은 그의 나라를 섬기는 데 적당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아달랴로부터 권력을 빼앗는 것보다 나라를 위한 더 큰 봉사는 없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했고, 선지자들이나 우림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이전에 이런 큰 일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Ⅱ. 일 처리는 매우 신중했고, 여호야다의 성격처럼 현명하고 훌륭히 되었다. 1. 그는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 대신들, 성직자들, 시민들, 군인들과 협의를 가졌다. 그는 그들을 성전으로 데리고 들어가 상의했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토로했다. 그는 비밀리에 맹세를 한 후 그들이 자기와 뜻을 같이한다는 것을 알고는, “왕자를 그들에게 보였다”(4절). 그들은 그의 충성심에 감격하여 그런 행동이 기만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윗 왕의 혈통이 그렇게 완전히 끊어졌다고 두려워했는데, 이같이 타다 남은 불에서 불티를 발견하게 되자 그 선량한 사람들이 실상 얼마나 놀라운 기쁨에 잠겼을까 하는 것은 가히 짐작이 간다. 2. 그는 그의 직속이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성전으로 가는 길에다 방어하기 위해 배치시켰고, “백부장들”의 명령을 받게 했다(9절). 다윗 왕은 제사장들을 조로 나누어서 순서대로 집전하게 했었다. 매 안식일 아침에는 새로운 일단의 사람들이 집전하게 했다. 그러나 전주(前週)의 사람들은 그날 안식일 저녁때까지는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매 안식일에는 예배가 두 번 드려지게 되고,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그 예배를 주관하는 자들의 수효도 두 배가 되었다. 여호야다는 이 큰 제사의 날을 호기로 이용했다. 그는 성전의 창고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로 그들을 무장시켰다. 이것은 다윗 왕 자신의 것과 적으로부터 탈취한 것이었는데,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서 바친 것들이었다(10절). 그 무기들은 낡고 구식이었을지라도, 다윗 왕의 것이었기에, 그들은 다윗 왕과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기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임무가 그들에게 부여되었다. (1) 어린 왕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야 하고”(5절), 아달랴의 군대로부터 어린 “왕을 호위하여” 출입할 때 “그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8절). 왜냐하면 아직도 왕족의 피에 굶주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성전을 보호하여, 이때를 당해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신성이 모독되지 않도록 지켜야 했다. “여호와의 전을 주의하여 지켜” 파괴되지 않도록 하며, 이방인이나 부정한 자가 들어와서 더럽히지 않도록 하라(6절). 여호야다는 혁명에 너무 열성을 내어서 자기의 신앙도 잊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신중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물에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Ne detrimentum capiat ecclesia). 여호야다가 각자에게 그의 직책과 위치를 지정해 준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6-7절). 왜냐하면 좋은 질서는 어떤 계획을 빨리 완수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직책을 알고 수행하고 이해하게 한다면, 그 일은 빨리 이루어질 것이다. 3. 호위병이 배치되었을 때, 왕이 나타났다(12절). “크게 기뻐하라. 시온의 딸이여! 거룩한 산에 왕이 나타났도다. 그는 실로 어린아이나, 이땅에 슬픔을 몰고 올 자가 아니도다. 그는 귀족의 아들, 곧 다윗의 아들임이로다(전 10:17). 그는 실로 어린아이였으나, 훌륭한 호위병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욱이 가장 좋은 호위자인 자비하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도다.” 여호야다는 지체하지 않고 어린 왕의 대관식을 진행시켰다. 비록 그 왕은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지만, 점차로 성장해 감에 따라 그렇게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은 엄숙하게 진행되었다(12절). (1) 요아스의 머리보다 크고 무거웠지만, 여호야다는 그가 왕으로 즉위한다는 상징으로서 “그에게 면류관을 씌워주었다.” 왕위를 상징하는 것들이 성전에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면류관이 쉽게 마련되었던 것 같다. (2) 율법에 따라 치리하겠다는 약속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겠다는 증거로서 여호야다는 그에게 율법서를 주었는데, 이것을 그는 “평생토록 읽어야 한다”(신 17:18-19). (3) 여호와의 영이 임재하여 그가 부름받은 이 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는 표시로서 여호야다는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솔로몬의 경우나 이 경우처럼 왕위 계승에 방해가 생겼을 때에만 왕들이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기사가 특기된다. 그러나 이 예식은 모든 왕들에게 실시된 것 같다. 적어도 다윗 가문의 왕들에겐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그들의 왕권은 그리스도의 왕권의 한 상징이요, 그리스도는 모든 다윗 자손들을 초월하여 기름부음 받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4)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그의 통치에 대한 복종의 표시로서 사람들은 기쁨에 넘치는 박수를 보냈으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원을 했다. “왕이여, 만수하소서.” 이렇게 하여 그들은 그를 자기들의 왕으로 삼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동의하고 협력했다. 아달랴의 폭정에 처해 있는 그때, 그들에게는 기뻐할 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들은 여호야다와 같이 훌륭한 사람의 교육을 받은 왕이 신앙의 회복과 확립을 이루어 주리라고 전망했다. 그들은 왕을 환영할 만하며, 죽음에서 살아서 그들에게 나타난 왕에게 “왕 만세”를 불렀다. 다윗 왕가는 그로 인해서 계속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우리의 마음에 이루어져서, 찬탈자 사단이 퇴위될 때, 우리는 “호산나, 오실 그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하는 찬송과 갈채로 환영해야 한다. “대왕 예수여! 영원히 살아 계시어 나의 영혼과 온 세계를 다스리소서.” 사실 이것은 약속이었다. “그는 생존하시며 사람들이 저와 그의 나라를 위하여 항상 기도할 것이로다”(시 72:17). ----------- 아달랴의 죽음(왕하 11:13-16) 그들은 아마 왕의 장엄한 취임식이 끝난 후, 아달랴를 방문해서 그녀의 살인, 왕위 찬탈, 폭정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기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달랴는 그녀의 어머니 이세벨처럼 그들이 오기 전에 그들을 만나러 왔는데, 그것이 자기의 파멸을 재촉케 했다. Ⅰ. 그녀는 소란한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 하여 놀라서 보러 나왔다(13절). 여호야다와 그의 동료들은 비밀리에 일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자기들에게 힘이 있음을 알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분명히 밝혔다. 아달랴는 자신의 귀로 소란한 소리를 듣기 전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리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사건이 이루어지기 전에 발견되었다면 진압할 수도 있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가 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 자신이 직접 와야 할 만큼 지혜롭지 못한 조언을 받고, 게다가 혼자서 왔다는 것은 이상하다. 확실히 그녀는 그녀를 위해서 함께 와 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불행히도 공포와 분개로 가득 차서 얼이 빠져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멸망시킬 자들을 먼저 바보로 만드신다. Ⅱ. 되어진 일을 보고 그녀는 도와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녀는 온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자가 앉아 있는 왕좌를 보았다(14절). 그녀는 자기 권력이 끝났다고 판단했고 자기 왕권이 찬탈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모든 사실은 그녀로 하여금,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나를 도와 반역자를 칠 자 없느냐!”라고 울부짖게 했다. 조세푸스(Josephus)는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죽이라고 그녀가 소리쳤다고 덧붙였다. 지금 행해지고 있는 것은 가장 의로운 일이었으나, 가장 큰 범죄로 낙인찍혔다. 그녀 자신이 가장 악한 반역자였으나, “반역이다! 반역이다!” 하고 울부짖은 것은 그녀가 먼저였다. 가장 큰 죄가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가장 뻔뻔스럽게 비난한다. Ⅲ. 여호야다는 우상 숭배자, 반역자, 공공 평화에 대한 적인 그녀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했다. (1) 그녀를 성소인 성전 안에서나 성전 뜰에서 죽여서는 안 된다고 주의가 내려졌다. 비록 정당하게 바쳐졌어도, 인간 희생의 피로 성소를 물들여서 안 된다. (2) 그녀를 옹호하는 자는 그녀와 함께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녀를 보호하고 구하기 위해 그녀를 따르는 자, 또 그녀에게 계속 충성하려 하며 자기들의 의로운 정권의 유익을 돌보지 않으려는 그녀의 모든 수행원들은 칼로 죽이라. 그러나 그녀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그대로 두라”(15절)고 했다. 명령에 따라, 그녀가 궁전 뒷길 말 다니는 길로 통과하여 도망하려고 하자, 그들이 “쫓아가 죽였다”(16절). “오 여호와여! 주의 모든 적을 멸하소서. 그리하여 피에 굶주린 창부에게 마실 피를 주소서. 그녀는 그럴 만합니다.” ---------- 왕위에 오른 요아스(왕하 11:17-21) 여호야다는 가장 힘든 일 중의 한 가지를 성취하였다. 아달랴의 죽음으로써 어린 왕은 모든 반대가 제거된 왕좌에 나아가게 되었다. 이제 그 어린 왕은 그 혁명을 완성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일을 위해 자기의 이점을 계속 활용해야 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을 볼 수 있다. Ⅰ. 그는 원래의 언약에 따라 좋은 기초를 놓았다(17절). 이제 왕과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동요되기 전에, 여호야다는 그들로 하나님과 긴밀하게 언약을 맺고, 그들 상호간에 언약을 맺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과 상호에 대한 의무를 똑바로 이해하여 지키도록 했다. 1. 여호야다는 그들과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해서 그들에게 신앙을 진흥시키려고 노력했다. 왕과 백성들이 다같이 여호와께 자신들을 결합시켰을 때, 서로간에도 긴밀한 결속을 하게 되는 법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편이 되셔서, 그들의 하나님 됨을 약속해 주셨다(여호야다는 언약의 책에서 그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이제 왕과 백성들은 “그들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을 하고 거기에 동의해야 했다. 이 언약에서는, 왕도 그의 신하들과 같은 입장이 되며,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진실히 봉사할 의무를 지게 된다. 이 약속에 따라서, 그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섬기던 바알을 버리고, 하나님의 다스림에 자신들을 맡겼다. 사람들이 스스로 겪은 모든 변화들을 통해서 자기들의 신앙의 기운을 되살리게 되고, 강화하게 되고, 진전시키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큰 축복이다.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님께 대한 의무에 대해 신선하고 분별 있는 책임을 다하는 자들은 번영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결속으로 인하여 모든 관계의 결속이 강화된다. 그들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다음에 “우리에게도 주었다”(고후 8:5). 2. 요아스는 취임 선서와 충성의 선서를 했다. 즉 왕과 백성 사이의 “언약”(pacta conventa)을 공포한 것이다. 그것은, 왕은 법에 따라 다스리며 그의 백성을 보호하고, 한편 백성은 그에게 복종해야 되며 신앙을 간직하고, 그에 대한 진실한 충성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언약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의무를 상기시켜 주며 재다짐하는 데에 유효하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 당사자들이 상대방을 서로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왕과 백성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되면 왕은 자기의 능력과 특권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고, 백성들은 자기들의 자유와 소유권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옛날의 경계표를 없애 버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Ⅱ. 그는 좋은 기초 위에서 좋은 출발을 했다.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서, 그들은 아합 집안의 비위를 맞추려고 전대의 왕들이 도입한 우상을 즉시로 제거했다(18절). “그 나라의 모든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열심을 보이기 위해 함께 모였다. 이제 훌륭한 지도를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바알 신전, 제단, 바알 주상을 깨뜨렸다. 모든 바알 숭배자들이 바알을 떠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직 바알의 제사장 맛단만은 그 제단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바알을 버렸으나 그는 버리지 않았기에, 거기서 처형되었다. 이것이야말로 그 제단에 이제껏 바쳐진 제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제물이 되었다. 바알의 신전이 파괴되었으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전을 수직할 관리들”을 임명하여, 하나님 예배가 정당한 사람들에 의해서, 정해진 시간에 규정대로 드려지는지를 감시하게 했다. 2. 그들 상호간의 언약에 대해, 그들은 서로 자발성과 만족감을 표시했다. (1) 왕은 당당하게 왕궁으로 인도되어, 청원과 호소를 받아야 되는 “다윗 왕가의 왕의 보좌인”(19절) 심판의 보좌에 앉았다. 그는 여호야다에게 그런 문제를 주어서 그로 하여금 대답해 주고 재판해 주라고 했을 것이다. (2) 백성들은 기뻐했고, 예루살렘은 평온했다(20절). 조세푸스는 그들이 여러 날 동안 기쁨의 축제를 함으로써 솔로몬의 관찰이 실현되었다고 말한다. 즉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라”(잠 11:10). ==== ..열왕기하 11장 1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ㅇ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 '아달랴'라는 이름은 '크게 일어나다', '존귀케 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아탈'과 '여호와'(Yahweh)라는 신의 이름이 합성되어진 것이다(Hobbs).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여호와는 존귀하시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벧벨의 딸인 그녀가 이러한 의미의 이름을 갖게 된것은 대단히 모순된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름이 갖는 의미와 그녀의 실제적인 행동은 전혀 정반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아달랴가 유다의 여호람과 결혼하게 된 것은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남유다 왕 여호사밧이 군사 동맹을 굳건히 하기위하여 전략적으로 세운 혼인 정책 때문(왕상 22:2-4; 대하 18:1)이었을 것이다. ㅇ그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 여기서 '일어나'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쿰'은 군사 용어로서 '어떤 행동을 개시하는 것'을 뜻한다(7:12). 지금까지 세기의 악녀 이세벧과 같이 자기 남편 여호람을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8:18; 대하21:5, 11) 아들 아하시야를 조종하여(8;27; 대하 22:3)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던 그녀에게 있어서 남편과 아들이 잇다른 죽음(8:24; 9:27)은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하시야가 통치하던 때에는 아달랴가 남유다 아하시야 왕의 태후로서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였었다. 한편 아달랴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태후 또는 '왕후'(게비라)가 왕보다 더 실질적인 세력을 가진 때(왕상 15:2; 렘 13:18;29:2)가 종종 있었는데(Bahr) 그 여자들은 때때로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예를 들면, 밧세바, 마아가, 아달랴, 이세벨). 그런데 이제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가 죽었으니 자연히 그녀의 손자들 중에 하나가 왕위를 계승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태후의 자리도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달랴는 자신의 권좌를 계속 누리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ㅇ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 본 표현에 나타난 '씨'는 히브리어 '제라'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씨를 뿌리다', '퍼뜨리다', '낳다'를 의미하는 '자라'에서 온 용어이다. 특히 이 말은 '열매', '자손', '후손'이라는 뜻도 지녀 본절에서 '왕의 씨'라고 함은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는 아하시야의 모든 아들과 친척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왕의 씨는 아달랴가 집권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 아하시야의 친척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라비아의 사람들에 의해서(대하 21:17), 그리고 예후에 의해서(10:13, 14), 또한 여호람에 의해서 (대하 21:4) 이미 멸절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달랴는 아하시야의 아들, 즉 자신의 친손자들을 죽였을 것이다. 한편 그 중에서 남아있는 왕족들은 대제사장들과 결혼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더욱 더 아달랴는 그들을 멸하였을 것이다(Rawlinson). 2 요람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ㅇ요람 왕의 딸...여호세바가. - 여기서 요람 왕은 유다의 여호람 왕을 가리킨다. 그리고 본절의 ㅇ여호세바 - 는 여호람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누이로서 대하 22:11에는 여호사브앗으로 나오는데 그녀는 제사장 여호야단의 아내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달랴가 왕위에 오를 만한 모든 정적들을 제거시키려고 한 시도는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침실에 숨겨 6년 동안 몰래 키움으로써 실패하였다. 그리고 아달랴가 행한 처사는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싸우는 극악한 죄악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윗 왕통을 계속하여 유지시키려는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한편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여호세바를 '요사베테'라고 하는데 그녀는 후궁 소생인 요람의 딸이라고 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에대한 구체적인 다른 자료들은 발견되지 않는다. ㅇ침실에 숨겨. - 여기서 '침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르 함미토트'의 해석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성전에 딸린 제사장들의 공동 침실이라는 견해(Luther, Clericus, Vatablus, Hobbs)와 2) 침실로 쓰여지지는 않으나 요나 이불이 있는 궁궐 내의 한 방(Keil, Bahr)이라는 견해이다. 그런데 여호세바는 모두 죽이기로 작정되어 있는 왕자들 가운데에서 요아스를 훔쳐냈기 때문에 제사장들의 숙소까지 옮기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두 번째 견해가 더욱 타장하게 보인다. 3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ㅇ요아스가 저와 함께. - 여기서 성전에 숨겨 있었던 사람은 요아스와 그를 위한 유모이다. 왜냐하면 요아스는 당시 갓난 아이였기 때문이다(Wycliffe). 한편 요아스와 함께 한 사람이 여호세바라고 혹자는 주장하나(Thenius) 여호세바가 그곳에서 6년 동안 요아스를 돌보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아니다(Bahr). 그리고 그들이 숨어 있었던 곳은 세속적인 목적을 위하여 성전에 딸려 있었던 방이었기 때문에(왕상6:5-8; 느 13:5-9) 성전 마당 한 곳에 있는 대제사장의 집, 즉 여호세바의 집에 그들이 숨어 있었다는 카일(Keil)의 주장은 옳지 않다. 그리고 성전 마당에 있는 어떤 건물 속에서도 대제사장과 그의 가족이 함께 살았다는 성경 기사가 기록된 곳은 아무데도 없기 때문에 이를 더욱 뒷바침해준다(Bahr). ㅇ육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 왕자인 요아스가 6년 동안이나 숨어서 살아야 했다는 것은 아달랴가 왕의 씨를 멸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극악하게 애써왔는가를 보여준다. 그래도 요아스와 그 유모는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 살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한차례 아달랴가 성전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대하 24:7)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를 보존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한편 요아스가 아달랴의 눈을 피해 성전에서 6년 동안 양육받았던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1) 다윗의 씨가 보전됨: 요아스는 다윗의 왕통을 이어야 할 자이다. 그리고 다윗의 왕통이 끊어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언약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단은 아달랴를 통해서 다윗의 왕통인 요아스를 죽여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시켜 버리려는 어마어마한 흉계를 꾸몄다. 이러한 사단의 흉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계속되었다(마 2:13-23). 뿐만아니라 이와 유사하게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언약의 자녀들에게도(고전 10:16;11:25; 히 13:20) 사단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어약적인 사랑에서 성도들을 끊어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택함 받은 백성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음으로(롬 8:13-39)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이 닥쳐와도 믿음으로 승리 하여야 한다. 2) 종교 개혁을 위한 예비 교육: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에서 양육되었기 때문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아(12:2) 여호와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각성을 쌓아갈수 있었을 것이다(12:4-6). 여기서 우리는 교회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딤후 3:4-17). 4 제 칠년에 여호야다가 보내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고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서 맹세케 한 후에 왕자를 보이고 ㅇ제 칠 년에. - 레 25:3-5에 따르면 7년째는 안식년에 해당된다. 그러나 여기서 칠년이란 말은 어떤 사건의 결정을 이루는 해를 가리킨다(F. R. McCurley,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p. 93). 즉 이는 여호야다가 지금까지 준비하고 계획한 요아스의 왕좌 복권 운동의 절정의 시점을 말한다. 이와같이 7일, 7주, 7년이란 기간에서 7은 종종 어떤 사건에 있어서 위기의 정점을 나타낸다(J. van Goudoever). 한편 혹자는 이 칠년에 해당되는 때가 유대인의 삼대 절기, 즉 유월절(출 12:1-28), 맥추절(민28:26-31; 신 16:9-12), 장막절(레 23:33-43; 슥 14:16-19) 중의 하나라고 이해한다(Wycliffe). 그러나 평행 구절인 대하 23:1-3에서의 '레위 사람과 이스라엘 족장들을 모았다'고 한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유대인들의 삼대 절기 중 하나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삼대 절기 기간에는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대성회로 지켰기 때문에 에위 사람과 족장들을 모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ㅇ여호야다. - 이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Yahweh)와 '알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야다'가 합성된 것으로서 '여호와께서 아신다'라는 뜻이다. 한편 본절에서 여호야다가 주체가 되어 모든 거사(擧事)를 진행하고 지휘한 것으로 보아 그가 요아스의 왕위 복권 운동의 핵심이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ㅇ가리 사람들의 백부장들과. - 여기서 가리 사람은 그렛 사람과 동일한 민족이다(대상 18:17). 그런데 이들은 가나안의 서방에 있던 정착민들로 (삼상 30:14)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에서 솔로몬을 보호했던 사람들이다(왕상 1:37, 38). 또한 이들은 브나야의 관할하에서 다윗의 심복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삼하 8:18) 일명 블레셋 사람이라고 칭해지기도 했다(겔 25:16). 한편 그레이(Gray)와 몽고메리(Montgomery)의 견해에 따르면 가리 사람들은 왕실을 경호하는 용병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역대기 사가(史家)는 여호야다의 왕정 복고 운동이 순수한 유다의 힘으로 성공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으나(대하 23:3, 4)본서 기자는 이방인이 세력이 혁명군으로 가담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당시의 백부장이라는 지위는 상당한 세력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되며 백부장 위에는 천부장이 있었다(삼하 18:1). ㅇ호위병.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침'으로서 '달리다'라는 뜻의 동사 '라츠'에서 파생된 단어이다(삼하 15:1; 왕상 1:5).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왕상 14:27절에 개괄적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왕을 경호하는것'이다. 한편 역대기 기자는 이 때에 모인 백부장이 다섯이라는 것과 그 이름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대하 23:1). ㅇ저희와 언약을 세우고. - 역대기에는 본서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유다 고을에 있는 레위 사람과 이스라엘 족장들이 모두 함께 하나님의 전에서 언약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 23:2, 3). 한편 예후가 이스라엘 왕 요람에 대한 자신의 혁명을 스스로 '반역'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10:9)과 비교해 볼 때 본절에서 '언약'이란 말에 대해 '케쉐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베리트'라는 전형적인 언약의 용어를 쓰고 있는 데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1) 이것은 하나님과 다윗 간에 세운 언약에 대한 재다짐이다(삼하 7:11-16). 실제로 7세된 요아스가 죽었더라면 다윗의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폐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서운 아달랴의 학살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씨를 보전하셨기 때문에 여호야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2) 하나님과의 언약을 세움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시도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이것은 여호야다가 요아스의 정체를 밝히기 이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는가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된다. 한편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에 대한 사단의 파괴 공작은 아담에게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언약에 성실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롬8:31-39). 5 명하여 가로되 너희의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입번한 너희중 삼분 일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ㅇ너희의 행할 것. - 여호야다는 두 곳에서 군사권을 장악하는 계략을 세웠다. 즉 성전과 왕궁이 바로 이곳인데 전자는 어린 요아스가 거하는 거처일 뿐만 아니라 왕관을 쓰고 기름부름을 받은 곳이기 때문이고 후자는 요아스가 앉을 왕의 보좌가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Bahr). 이러한 두 가지 임무는 본문(5-8절) 뿐만 아니라 대하 23:4-7에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ㅇ안식일에 입번한 너희. - 여기서 '입번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보'로서 '들어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이 말은 '호위 엄무를 수행하기 위해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시 호위병들은 당번(當番)과 비번(非番)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래서 당번이 근무를 위해서 출근하는 것을 '입번한다'고 하고 비번이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것을 '출번하다'(7절)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왕실 호위대는 각각 100명씩 다섯 부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대하 23:1) 이들은 백부장에 의해 지휘 되었다. 한편 안식일의 호위 임무를 위해 들어가는 부대는 이 중에서 세 부대이며 그 나머지 두 부대는 백성들의 치안을 돌보거나 성전을 지켰다(Rawilinson). 따라서 5, 6절은 안식일에 입번한 세 부대에 대한 여호야다의 지시 사항으로 왕궁, 수르 문, 그리고 호위대 뒷문에 각각 1개 부대씩 배치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이와같이 왕궁을 수호하게 한 것은 아달랴를 사로잡으려는 의도에서라기 보다는 이제 곧 왕위에 오를 요아스를 위해 왕의 보좌가 있는 왕궁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Rawlinson, Bahr). 이처럼 여호야다가 당시의 이러한 관례를 이용하여 성정에 많은 병력이 배치되는 안식일을 거사일로 잡은 것은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했는지를 알게 한다. 6 삼분 일은 수르문에 있고 삼분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고 ㅇ수르 문. - 이 문에 대해서 특별히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수르'라는 말이 '쫓아 버리다', '길에서 벗어나다'란 의미의 어근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이 장소는 '출구'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왕궁 사이에 있는 문으로 추측된다. 한편 대하 23:5에서는 스르문 대신에 이곳을 '기초문'이라고 적고 있다. ㅇ호위대 뒤에 있는 문. - 19절에서는 이곳을 '호위병의 문'아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은 왕궁 동편에 있어서 성전과 마주 대하기 때문에 새 왕의 대관식 때에 왕궁으로 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곳을 매우 중요하게 지키는 장소였다(Bahr). ㅇ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고. - 여기서 '방어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싸흐'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학자에 따라서 다양하다. F.Brown, S. R. Driver, and C. A. 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ament 사전에는 이 단어가 '밀어내다', '찢어내다'라는 뜻의 '나싸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견해를 보이고 있는 데이비슨(Davidson) 사전에도 이 단어의 뜻이 부사적으로 호위병들이 교대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루터의 주장 같이 이 단어가 '방어'를 의미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Bahr).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지킨다'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Ewald, Keil, Furst). 7 안식일에 출번하는 너희중 두 대는 여호와의 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ㅇ안식일에 출번하는 너희 중 두 대는. - 평일에는 왕궁이 세 부대가 배치되고 성전에 두 부대가 배치되기 때문에 안식일에 출번하는 부대는 두 대나 된다. 한편 이들의 주 임무는 성전에 있는 어린 왕 요아스를 돌보는 것이며 누구든지 그 왕을 해치려 할 때는 즉각 죽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하 23:7에는 유다각 고을에서 모여든 레위인들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본절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역대기에는 입번한 자들에 관한 언급은 있으나(대하 23:4, 5) 출번한 자들의 언급은 없다. 그래서 본문과 불일치하는 부분에 대한 해석이 학자들에 따라 모두 다르다. 1) 혹자는 왕궁 수비에 들어갈 세 부대의 구성원들이 모두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조직되어 있었다고 보기 때문에 출번한 자들이 두 대를 역대기에서는 단지 '모든 백성들'이라고만 밝혔을 뿐이라는 것이다(Keil). 2) 또 다른 주석가는 입번한 세 부대에 관한 본문의 언급은 군인들에만 관한 것이며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Bahr, Rawilnson). 그래서 여호야다의 계획에 다섯 백부장들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은(4; 대하 23:1) 모든 호위병들이 전부 동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 호위병들이 모두 본 계획에 가담하지 않고서는 이 일이 성공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역대기의 기록과 본장의 기록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역대기가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의 움직임을 그 중심으로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는 반면 본장은 전체적인 사실에 대한 언급으로 볼 때 이 문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Bahr). 8 너희는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무릇 너희 반열을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ㅇ왕을 호위하며. - 호위병은 왕의 앞과 뒤에서 호위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본문의 '호위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로 '둘러싸다', '부딪히다'라는 의미의 '나카프'에서 온'힉카프템'을 쓴 것이다. ㅇ왕의 출입 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 이것은 요아스 왕이 어디를 가든지 그를 둘러싸고 보호하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당시 요아스가 유년의 나이이기에 호기심이 많아 어디든지 가고 싶어했기 때문일 것이다(Rawilnson). 그러나 혹자는 이것이 요아스의 행동 전부에 대해 호위하라는 것이 아니라 왕이 성전에서 왕궁으로 들어가기까지를 호위하는 것이라고 한다(Bahr, Thenius). 9 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 바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ㅇ본절에서는 백부장들이 철저하게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아달랴를 보호하고 그 모든 일에 경호했던 그들이 이제는 요아스를 참된 왕으로 섬기기 위하여 제사장 여호야다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 - 란 호위병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엄격히 말해서 호위병들의 다섯 부대 가운데서 두 부대 만을 말하는 것이다(7절). 10 제사장이 여호와의 전에 있는 다윗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니 ㅇ다윗 왕의 창과 방패. - 이것은 다윗이 직접 사용한 무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전쟁에서 노획한 것들로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성전에 제물로 드린것이다(삼하 8:7-12). 특히 본절에서 여호야다가 하닷에셀의 신복들에게서 빼앗은 '금방패'(삼하 8:7)를 자신의 의도에 동참한 백부장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다윗 가문을 재건시키는 일을 성취시키자하는 의도'(Ewald, Thenius)에서였다. 따라서 약 300여년전에 언약의 왕조를 일으켰던 다윗 왕에 의해서 드려진 본 무기를 지급받은 백부장들은 사기가 충천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이 하려는 일은 요아스를 통해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호야다의 말에 더욱 충성하였을 것이다. 11 호위병이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전 우편에서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서고 ㅇ호위병이 각각 송에 병기를 잡고. - 여호야다로부터 다윗의 창과 방패를 받은 백부장들은 다시 그 무기들을 호위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여기서 '호위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침'은 '달리는 자들' 혹은 '경주자들'이라는 뜻으로 전형적인 군사 용어이다. 따라서 이 호위병들이 레위인들과 제사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카일(Keil)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주장이다. ㅇ단과 전 곁에 서고. - 여기서 말하는 단은 성전 안에 있는 향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 마당 중앙에 놓여 있는 번제단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제사장들과 직무를 수행하는 레위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민18;3, 7; 대하 23:6). 그리고 여기에 나타난 전은 곧 성전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호위대는 제단과 성전 현관 바로 앞 부분인 뜰의 가장 윗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Pulpit Commentary). 12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 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ㅇ면류관을 씌우며. - 삼하 1:10을 보면 이스라엘 왕들은 항상 면류관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한편 면류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젤'은 '멀리 떨어져 있다', '헌신하다', '봉헌하다'란 어근의 '나자르'에서 온 말로 '구별된 어떤 것', '왕관', '화관'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은 곧 제사장이나 나실인의 헌신, 또는 왕권을 상징하는 왕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왕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되어 바쳐진 자라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ㅇ율법책을 주고. - 여기서 말하는 율법책은 모세 오경 전부가 아닌 십계명만을 가리킨다(Bahr). 그리고 '증거판'(출 16:34; 25:16, 21)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이 십계명은 왕이 왕좌에 오른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주어지기도 하였다(신 17:18, 19). 또한 이것은 왕의 독단적인 생각과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으로 백성들을 치리하여야 함을 뜻한다(G. von Rod. "The Royal Ritual in Judah", The Problem of the Hexateuch, p. 222-232). ㅇ기름을 부어. -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기에 기록된 동사의 주어가 복수 형태로 나타나 있는데 병행구절인 대하 23:11에 따르면 여호야다와 그 아들들이 함께 기름을 부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이유는 여호야다의 아들들도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Keil& Delitzsch). ㅇ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 열왕기서에서 왕의 등극에 대한 백성들의 기쁨을 표현한 곳은 솔로몬시대 이후(왕상 1:39) 여기가 처음이다. 이것은 요아스로 인하여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새롭게 되었음을 백성들이 공통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혹자는 백성들이 박수하며 만세를 부른 것이 요아스에 대한 왕으로서의 승인과 인정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Wycliffe). 13 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백성에게 이르러 ㅇ호위병과 백성의 수리를 듣고. - 히브리 원문에는 '호위병'과 '백성'이라는 단어 사이에 '그리고'라는 뜻의 접속사 '와우'가 없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필사자의 오류로 실수하여 빠뜨린 것으로 본다(Keil, Bahr, Rawilnson). 그러나 호위병들도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속에 포함된 사람이므로 두 단어를 동격이라고 본다면 접속사'와우'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Ehrlich, Hobbs). 그리고 이것은 14절의 '온국민'이라는 말과 동일어 일 것이다. ㅇ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 아달랴는 바알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였기 때문에 안식일 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날에도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 성전에서 요란한 함성이 들려오자 불안한 마음이 생겨 성전으로 달려갔던 것이다(Rawilnson). 14 보매 왕이 규례대로 대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셨으며 온 국민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ㅇ본절과 13절에서 묘사된 아달랴의 반응은 매우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열왕기서 기자는 여기서 요아스 왕의 대관식과 아달랴의 당황함을 대조적으로 묘사하면서 참왕의 당당함과 거짓 통치자의 패망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왕권이 도래함으로 혼비 백산하는 사단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ㅇ왕이 규례대로 대 위에 섰고. - 여기서 '대'로 번역된 '암무드'는 '서다'(stand)라는 뜻의 '아마드'에서 파생된 단어로 집을 떠받치는 '기둥', '두 놋쇠 기둥'등을 뜻한다(삿 16:25, 26, 29; 출 27:10, 11, 17; 왕상 7:15). 한편 여기에 사용된 전치사 '알'이 '위'쪽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옆'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루터는 이 부분을 '기둥 옆'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것을 전통적으로 지정된 어떤 장소로서 왕을 위하여 특별히 만든 '사열대 위' 혹은 '관람석'(suggestus)이라고 생각한다(Keil, Bahr, Rawilnson). 그에 대한 실증적인 예로 대하 6:13을 보면 솔로몬이 놋으로 대를 만들어 그위에 섰다고 한다. 그리고 본절의 '규례대로'라는 말은 이와 같은 해석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왕이 당시의 규례대로, 즉 왕이 성전을 방문 하였을 대 취하는 습관이나 규범대로 그렇까 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아스 왕은 성전 제단 뜰 한가운데 있는 높은 대위에 서서 아달랴가 성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ㅇ장관들. - 4, 9, 10절에 나타난 호위대의 백부장들, 또는 대장들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그 외의 두령들을 포함해서 지칭하는 말이다. ㅇ나팔수. - 이것은 '노래부르는 자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솨림'과는 달리 '하사림'의 번역어이다. 이 말은 벌게이트(Vulgate)역에는 '노래 부르는 자들'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분명히 나팔을 부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관리들을 가리킨다(9:13; 민 10:2; 삼하 15:10). 즉 이들은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로서 양각 나팔을 불었던 악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Bahr). ㅇ옷을 찢으며. - 이는 요람과 같이 큰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취한 행동(6:30)이 아니라 분노와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옷을 찢은 것이다. ㅇ반역이로다 하매. - 여기서 사용된 '반역'(케쉐르)이라는 단어는 예후가 사용했던 것으로(10:9) 여호야다가 사용한 '언약'(베리트)이라는 말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그리고 아달랴의 이러한 외침은 분명한 목적이나 의도가 없이 본능적으로 내뱉은 절규였다(Puipit Commentary). 한편 혹자는 그녀의 이러한 외침으로 살펴볼 때 그녀의 호위대가 곁에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고 주장하나(Wycliffe)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15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무릇 저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저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ㅇ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 여호야다가 아달랴와 그녀를 따르는 자들을 반열 밖으로 몰아낸 것은 우상 숭배자요 살인자인 그들의 피로 성전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Rawilnson, Keil & Delitzsch). 한편 '몰아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호치우'인데 이는 '튀어 나오다', '도망가다', '실패하다'란 뜻의 '야차'에서 온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곧 다시 근접할 수 없도록 패퇴시키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6 이에 저의 길을 열어주매 저가 왕궁 말 다니는 길로 통과하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ㅇ말 다니는 길로 통과하다가. - 성전에서 왕궁으로 통하는 길은 여호야다의 호위병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5, 6절) 아달랴는 왕의 말 마굿간으로 통하는 길로 달아났다. 그런데 이것은 느 3:28에서 말하는 '말문'과는 다른 길이다. 즉, 본절의 '말문'은 성전 내에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왕궁으로 들어가기가 쉬웠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길은 말을 타고 동편에서 성으로 들어오는 성의 외곽에 있는 문으로서 궁전의 마굿간으로 통하게 되기 때문에 (렘 31:40) 호위병에 의해 제지를 받을 염려가 없다고 아달랴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이 아달랴는 말이 다니는 길에서 수치스럽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Hobbs). 17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ㅇ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 여기서 언급한 '언약'은 4절에서 언급한 '언약', 즉 인간 사이에서 그 증표로 나타내기 위해 세운 언약과는 내용상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고 히브리어 원문에는 정관사 '헤'를 동반하여 '그 언약'이리고 기록하고 있어서 본절의 언약이 모세의 언약이나 다윗의 언약에 대한 새로운 갱신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 기록된 언약은 두 가지 방면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수직적인 언약으로서 여호와의 왕과 백성 사이에서 이루어졌고, 둘째는 수평적인 언약으로서 왕과 백성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수직적인 언약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출 24:3-8)을 가리키는 것인데 왕과 백성은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것과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축복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말한다(신 4:20; 27:9, 10). 그리고 수평적인 언약은 왕이 백성을 율법에 따라 다스릴것과 백성은 하나님이 임명하는 왕을 섬기며 순종해야하는 것을 서약하는 행위를 가리킨다(삼하 5:3). 18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게 하고 ㅇ온 국민. -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호야다 제사장을 돕기 위해 유다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말한다(대하 23:2). ㅇ바알의 당. - 유다에도 이스라엘과 같이 바알 신전이 있었다는 기록은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이 바알 신전은 여호람과 아달랴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여호람의 악행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는 역대기서에서(대하 21:1-20) 그러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Rawilnson). 한편 혹자는 이 바알 신전이 모리아 산에 있었다고 주장하나(Bahr), 그 정확한 위치를 확정지을 수 있는 분명한 단서는 없다. 그리고 당시 바알의 신전이 여호와의 성전안에 있었다고 하는 견해(Thenius)는 대하 24:7이나 본절을 볼 때 가능치가 않다(Keil & Delitzsch, Vol. 3, p. 363-364). 한편 본절에서 '깨뜨리고'란 말은 히브리어 '쇠바르'를 역한 것인데 그 원뜻은 '산산히 부서지다', '파열하다'란 의미이다. 이는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완전히 으스러뜨림을 가리키는 것이다(레 26:13; 나1:13). ㅇ바알의 제사장 맛단. - '맛단'은 페니키아(두로와 시돈)식 이름으로 그뜻은 '선물'이라는 의미로 추측된다. 이에 대한 완전한 이름은 '맛단 바알', 즉 '바알의 선물'이란 뜻인데 바알의 제사장에게 아주 걸맞는 이름이다. 한편 이것은 페니키아 비문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며 히브리어로 유다의 마지막 왕인 '맛다니야'(24:17)와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ㅇ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게 하고. - 여호야다가 성전에 문지기를 세운 것은 1) 율법대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는가를 감독하고(Keil & Delitzsch), 2) 부정한 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였다(대하 23:18, 19; Thenius, Ewald). 이것은 아달랴의 통치기간 동안 정상적인 성전 예배를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칫 율법을 범하기 쉬웠기 때문인 듯하다(Rawilnson). 그리고 이 때가 왕의 대관식이 진행되는 중이었으므로(19절) 바알 숭배자들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도 함께 있었음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Bahr). 19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국민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서 호위병의 문 길로 말미암아 왕궁에 이르매 저가 왕의 보좌에 앉으니 ㅇ호위병의 문 길. - 이것은 6절에 있는 "호위대 뒤에 있는 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Rawilnson). 당시 성전은 시온 산에 있었으므로 요아스 왕은 시온 산에서부터 다윗 성까지 호위병들이 경호를 받으며 왕궁 보좌에 이르게 된것이다. 그리고 이미 왕궁에 배치된 3개 부대(5, 6절)는 입궁하는 왕을 보호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한편 역대기서에는 본절의 '가리 사람과 호위병' 대신에 '존귀한 자들과 백성의 방백들'이라고 표현해(대하 23:20) 왕을 옹위한 범위를 좀더 구체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Keil & Delitzsch). 20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었더라 ㅇ즐거워하고...평온하더라. 본절은 아달랴의 학정과 종교적 부패, 그리고 비리 등으로 그 동안 백성들이 많은 고통과 억압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또한 백성들이 이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 기쁨과 평온을 얻었음은 새로운 왕권이 상당히 안정되었다는 것을 반영해 준다. 참으로 불안한 지도자, 불안한 정책하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기쁨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 역시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미래를 두고서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요컨데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게 마련이다(잠 29:2).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 생활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정의가 넘치고 의인이 대접받을 수 있게 되도록 노력하는 보다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소지해야 하겠다. 한편 여기서 '평온'이란 말은 '조용하다'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싸움이나 전쟁이 없는 안정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수 11:23; 14:15; 대하 14:5). ㅇ왕궁에서 칼로 죽였었더라. - 외형상 본절의 의미가 16절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나 둘 다 왕궁 근처에서 무리가 아달랴를 죽였음을 뜻한다. 열왕기서 기자가 다시 한번 아달랴가 왕궁 근처에서 죽임당했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성중의 평온함과 대조시켜서 지금까지 유다를 혼란케 한 장본인이 바로 아달랴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21 요아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칠세였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