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20장 [312.너하나님께이끌리어] [314.내구주예수를더욱사랑]..앗수르 멸망..BC.612.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 1. 그 때에(39세 시점, 앗수르 산헤립과의 전쟁중, 산헤립 철군 결정 시점 직전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당시 바벨론은 아직 세력이 미약하여 앗수르에 거의 위협이 되지못했고 쫓기는 상태였다..BC.699..)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성전을 향하여 누웠다고 봄이 합당..당시, 병자는 성전 출입 금지]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질병-침략-후사, 세가지 당면과제)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이 귀절은, 바로!! 히스기야의 발병시점은, 아직 산헤립 철군 이전 시점임을 의미]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역병??..종기??]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심 그대로]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바벨론 역사서에도 동시에 기록되어 있음) >>> ===바벨론에서 온 사자들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그러나 중심의 기도를 들으신 주께서 말씀을 보내사 낫게 하셨고, ((바벨론에서도 관측되어 기록된것처럼)) 아하스의 일영표가 십도 물러난 징표를 말씀하신 그대로나타내 보여주셨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위로와 (바벨론과의 반앗수르 동맹 체결-주께 묻지않았음-)감사의]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히스기야가 죽다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BC.586년)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1.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NASB]제20장
1. In those days Hezekiah became mortally ill. And Isaiah the prophet the son of Amoz came to him and said to him, "Thus says the LORD, 'Set your house in order, for you shall die and not live.'" 2. Then he turned his face to the wall, and prayed to the LORD, saying, 3. "Remember now, O LORD, I beseech Thee, how I have walked before Thee in truth and with a whole heart, and have done what is good in Thy sight." And Hezekiah wept bitterly. 4. And it came about before Isaiah had gone out of the middle court, that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saying, 5. "Return and say to Hezekiah the leader of My people, 'Thus says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 David," I have heard your prayer, I have seen your tears; behold, I will heal you. On the third day you shall go up to the house of the LORD. 6. "And I will add fifteen years to your life, and I will deliver you and this city from the hand of the king of Assyria; and I will defend this city for My own sake and for My servant David's sake." '" 7. Then Isaiah said, "Take a cake of figs." And they took and laid [it] on the boil, and he recovered. 8. Now Hezekiah said to Isaiah, "What will be the sign that the LORD will heal me, and that I shall go up to the house of the LORD the third day?" 9. And Isaiah said, "This shall be the sign to you from the LORD, that the LORD will do the thing that He has spoken: shall the shadow go forward ten steps or go back ten steps?" 10. So Hezekiah answered, "It is easy for the shadow to decline ten steps; no, but let the shadow turn backward ten steps." 11. And Isaiah the prophet cried to the LORD, and He brought the shadow on the stairway back ten steps by which it had gone down on the stairway of Ahaz. 12. At that time Berodach-baladan a son of Baladan, king of Babylon, sent letters and a present to Hezekiah, for he heard that Hezekiah had been sick. 13. And Hezekiah listened to them, and showed them all his treasure house, the silver and the gold and the spices and the precious oil and the house of his armor and all that was found in his treasuries. There was nothing in his house, nor in all his dominion, that Hezekiah did not show them. 14. Then Isaiah the prophet came to King Hezekiah and said to him, "What did these men say, and from where have they come to you?" And Hezekiah said, "They have come from a far country, from Babylon." 15. And he said, "What have they seen in your house?" So Hezekiah answered, "They have seen all that is in my house; there is nothing among my treasuries that I have not shown them." 16. Then Isaiah said to Hezekiah, "Hear the word of the LORD. 17. 'Behold, the days are coming when all that is in your house, and all that your fathers have laid up in store to this day shall be carried to Babylon; nothing shall be left,' says the LORD. 18. 'And some of your sons who shall issue from you, whom you shall beget, shall be taken away; and they shall become officials in the palace of the king of Babylon.' " 19. Then Hezekiah said to Isaiah, "The word of the LORD which you have spoken is good." For he thought, "Is it not so, if there shall be peace and truth in my days?" 20. Now the rest of the acts of Hezekiah and all his might, and how he made the pool and the conduit, and brought water into the city,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Judah? 21. So Hezekiah slept with his fathers, and Manasseh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 ..열왕기하 20장 (개요) 본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히스기야의 병. 그 병에서의 회복. 이것은 그의 기도의 응답이요, 약속의 이행이다. 건강 회복을 위한 한 방편이 사용되고, 하나의 표징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확증된다(1-11). 2. 히스기야의 죄와 그것으로부터의 회복(12-19).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이사야는 그에게 보내어진 하나님의 사자(使者)였다. 3. 그의 통치의 종결(20-21). -------- 히스기야의 기도(왕하 20:1-11) 열왕기를 쓴 역사가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산헤립이 삶의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파멸되는 사건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가운데서 기도한 히스기야가 구원받은 사건을 보여준다. 산헤립의 생애는 단축되었고, 히스기야의 생애는 연장되었다. Ⅰ.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 “그날에” 즉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바로 그 해에 있었던 일이다. 왜냐하면 히스기야는 모두 29년을 재위했는데, 15년을 더 살았으므로, 이 해는 그의 재위 14년째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18:13). 어떤 이는, 앗수르 군대가 그 성읍을 포위하고 있거나 혹은 포위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6절) “내가 그 성읍을 보호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후에 반복되었다. 즉 위험이 극도로 임박하게 되었을 때 그 약속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19:34). 다른 이들은 생각하기를, 산헤립의 패망 직후의 일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평안은 불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원수의 군대를 이기고 한창 승리하는 중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고, 죽음의 굴레 아래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떨리는 마음으로 기뻐해야 한다. 종기 혹은 역병에 대해 읽을 수 있기 때문에(7절), 히스기야는 역병에 걸렸던 것 같다. 앗수르 사람들을 죽이던 바로 그 질병이 그에게 침입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서 역병을 취하셔서 그의 원수들에게 주셨다. 위대함이나 선함도 쓰리고 치명적인 질병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줄 수는 없다. 어느 누구보다 하늘의 은혜를 입은 히스기야도 병들어 죽게 된다. 그것도 40세 이하의 한창 때에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까지도 그만한 나이 또는 2-3년 어렸을 적에 죽었기 때문에, 이 병이 자기에게 치명적임을 히스기야는 더욱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 죽음이 있도다.” Ⅱ. 그에게는 자기의 죽음에 대해 준비하라는 경고가 주어졌다. 그 경고는 이사야를 통해 전달되었다. 앞장에서는 이사야가 두 번씩이나 히스기야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로 언급되었다. 우리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 외에 다른 것을 전해 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만족하든 혹은 불만족하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선지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그의 병은 죽을 병이다. 그리고 그가 자비의 기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면 분명히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고 말했다. 2. 그러므로 그는 아주 신속히 죽음을 맞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너는 집을 처치하라”고 말씀했다. 이런 일은 우리가 건강할 때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우리가 병들었을 때에 재촉을 받는다. 참회하는 새로운 행위와 신앙과 또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써 마음을 안정시키라. 그리고 이 세상과 즐거이 작별하고 다른 세상을 맞이하라. 그리고 만일 미리 해놓지 못했다면(이것이 최선의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너의 집을 정리하라. 너의 뜻을 정하라. 너의 재산을 정리하라.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로 너의 일들을 정리하라. 이는 너희 뒤에 올 자들의 편안함을 위해서이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그의 왕국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다만 그의 집에 대해서만 말한다. 다윗도, 선지자의 자격을 가지고, 자기를 이어 다스릴 자를 지명할 권위를 가졌지만, 다른 왕들은 자기 왕관을 그들의 소유물이나 재산처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었다. Ⅲ. 이때 그는 기도하였다. “그는 여호와께 기도하였다”고 했다(2절). 병든 자가 있는가? 기도하게 하라. 그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또 그 자신도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하라. 히스기야는 앞장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지 않으며 신앙의 기도는 평안의 응답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을 찾을” 것이다. 기도가 응답되는 행복한 경험을 하면, 기도를 계속할 수 있는 약속과 용기를 얻게 된다. 그는 마음속으로 죽음의 선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운명이 역전될 수 있다면, 그것은 기도로써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려고 하시면, 그는 “이 일을 위해서, 간구하게 할 것이다”(겔 36:37). 우리가 만일 구하지 않거나 혹은 잘못 구한다면 얻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 선고가 역전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기도는 역시 죽음에 대한 최선의 준비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로써 하나님의 은총과 힘을 얻어 우리의 생을 잘 마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할 수 있다. 1. 이 기도자의 주위 형편을 살펴보자. (1) 그는 침상에 누워서 “벽으로 얼굴을 향했다.” 아마 은밀히 기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자기 골방으로 물러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 그의 주위에 있는 무리들을 최대한으로 피했다. 우리는 우리가 은밀히 기도하거나 경의와 엄숙한 형식을 갖추어 예배하고 싶은데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그렇다고 기도나 예배를 빠뜨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서 기도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 법이다. 그는 성전을 향해 얼굴을 돌렸고, 그것은 그가 기도를 하려고 성전에 올라가기를 얼마나 원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19:1, 14). 그는 할 수 있다면 성전 안에서나 그곳을 향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언제나 그를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리고 어떤 예배도 “그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2) 그는 “심히 울었다.” 이 사실을 어떤 이는 그가 죽기 싫어한 것이라고 추단한다. 영과 육의 분리를 다소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나 신약성서의 성도들과는 달리, 구약성서의 성도들에게는 저 세상이 음울하게만 보였다. 그러므로 이 세상 떠나기를 원치 않았다 할지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경우에는 독특한 사정이 있었다. 즉 그는 한창 활동하고 있었고, 훌륭한 개혁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죽는다면 그 사업이 실패로 끝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만일 이 사건이 앗수르 군의 격퇴에 앞서 있었다면, 그는 죽기를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왕국이 멸망 받을 위험의 직전에 있었고, 그때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를 이은 므낫세는 그후 3년이 지나서 태어났다. 만일 그가 자식 없이 죽었다면 그의 왕국의 평화와 다윗과의 언약은 위태롭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그것은 그의 안타까움을 표하는 눈물이며, 그의 기도 속에 나타난 간절한 애착의 표현에 불과했던 것 같다. 야곱도 눈물로 간구했다. 우리의 복되신 구주께서도 기꺼이 죽으려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그리스도)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물로 크게 부르짖었다(히 5:7). 히스기야의 기도로 그의 눈물을 해석하자. “그” 기도 속에는, 속박이나 고통을 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란 일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2. 기도의 내용을 생각해 보자. “여호와여! 내가 진실로 주 앞에 행한 것을 기억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생명을 보존하여 나로 그 사업을 계속하게 하시든가, 혹은 나의 일이 마치면 주께서 이와 같이 행한 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그 영광스런 곳으로 나를 영접하소서.” 여기에서는 다음 사실들을 살펴 볼 수 있다. (1) 히스기야의 경건이 표현되어 있다. 그는 세상에서 정직한 의도를 가지고(“나는 주 앞에서, 마치 주의 눈 아래에서, 그리고 언제나 주를 바라보고 행하였나이다”), 올바른 원리에 입각하여(“진실로 그리고 진심으로”), 그리고 의로운 법칙에 따라 생활했다― “나는 주 보시기에 선한 것을 행하였나이다.” (2)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었다. 그 사실이 그의 병상을 편케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성실하게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사실을 우리의 양심이 증거해 준다면, 그것은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용기와 기쁨을 줄 것이다(고후 1:12). (3) 그는 그 사실을 하나님께 겸손히 아뢰었다. “여호와여! 이제 그것을 기억하소서.”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상기시켜 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며, 만물을 알고 계신다). 혹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 줄 책임이 하나님께 있어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요구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한 것도 아니다(자비와 은총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 인해서만 바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언약의 조건으로서의 성실을 내세울 수 있다. 즉 “그것은 주의 손으로 친히 하신 역사이옵니다. 여호와여! 그것을 인정하소서”라고. 히스기야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지 않았다. “여호와여! 나를 용서하소서. 혹은 여호와여! 나를 취하소서. 그리하여 주의 뜻을 이루소서.” 오히려 그는 “여호와여! 나를 기억하소서.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나를 주의 것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Ⅳ.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이 기도에 즉시 응답하셨다. 그 선지자가 궁정 가운데에도 이르기 전에, 히스기야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가지고 가라는 전갈을 받았다(4-5절). 즉 그가 회복될 것을 알릴 메시지였다. 하나님께는 “예” 해 놓고 “아니오” 하는 것이 없다. 즉 그가 말한 것을 다시 취소하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해서는―그 기도는 하나님이 예지했던 바요, 하나님 자신의 영이 그로 하여금 그럴 마음을 주셨던 기도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때에는 하려 하지 않으셨을 일을 히스기야를 위해 하셨다. 하나님은 여기서 히스기야를 “내 백성의 주권자”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잠시 동안 연장시킨다는 사실을 뜻한다. 왜냐하면, 전시에는 백성들이 그러한 주권자를 살려둘 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셨다. 이것은, 그가 다윗과 맺은 언약 관계 때문에, 그리고 그가 항상 다윗을 위하여 한 등불을 임명하겠다고 한 약속 때문에 그를 살리고자 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이 응답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생각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주시하셨고, 그 메시지에다가 그 기도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영광스럽게 하신 것이다. 그는 메시지에서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고, 내가 너의 눈물을 보았도다”라고 하셨다. 기도 생활을 많이 하고, 기도를 특별히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특별히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다. 2. 하나님은 그가 기도한 것 이상을 들어주셨다. 그는 다만 하나님이 자기의 성실을 기억해 주시기를 빌었지만, 하나님은 다음의 것들을 약속하셨다. (1) 그를 병에서 일으키시겠다는 약속이다. “내가 너를 낫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질병도 하나님이 부리는 종이다. 그들은 그가 보내는 곳으로 가며, 또 그가 소환할 때 온다(마 8:8-9). “너를 치료한 자는 나 여호와니라”(출 15:26). (2) 그가 감사 기도를 드리기 위해 “3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만큼 급속히 건강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마음을 아시되, 그가 얼마나 열렬히 하나님의 전에 거하기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영예가 머물렀던 그곳을 얼마나 간절히 사모하는지를 아신다. 그리고 그가 회복되면, 즉시 공적 규례에 참여하러 가기 원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병들었을 때는 자기 얼굴을 성전 쪽으로 돌렸고, 그가 회복되었을 때는 성전으로 발걸음을 향하기 원했던 것이다. 다른 아무것도 그를 그보다 더 즐겁게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영혼을 소생케 하소서. 그러면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리이다”라고 하나님께 약속한다. 그리스도께서 고쳐 주신 그 사람도 그후 곧 “성전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요 5:14). (3) 그의 생명을 15년을 더 연장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렇다고 그가 노인이 되기까지 살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14년 혹은 15년이 연장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살려고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그의 차용기간이 갱신되었다. 그는 그 기간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가 얼마나 오래 살리라는 것을 미리 예고 받는 사람은 일찍이 아무도 없었다. 틀림없이 이 선한 사람은 그 예고를 잘 선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롭게도 우리에게 우리의 생애 기간을 모르게 하셨으니, 그것은 우리로 언제나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4)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에게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신다(6절). 히스기야의 마음은 자신의 건강 회복에만 집중되었으므로, 그 약속이 여기서 반복된다. 만일 이 사건이 포위 공격이 중지된 후에 있었던 일이라면, 산헤립의 재규합을 두려워하는 공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 내가 이 성을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신다. Ⅴ. 그의 회복을 위해 사용되었던 처방을 보자(7절). 이사야는 그의 의사였다. 그는 외과적 처방을 지시했다. 매우 값싸고 쉬운 일을 시켰다. 즉 “그 종처에 무화과 반죽을 놓으라. 그리하면 그 종처가 곪아 머리까지 퍼졌다가, 그 길로 사라지게 되리라”고 했다. 이것은 그 치료에 무엇인가를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질병이 절정에 달했다가 갑작스레 멈추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치료는 하나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여기서 다음 사실들을 주의하자. 1. 우리가 병들었을 때, 우리 몸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시험하는 것이 된다. 2. 평범하고 일상적인 치료약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시어, 은혜롭게도 그러한 많은 것들이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은 축복이 되며 또 효력이 있다. Ⅵ. 그의 신앙을 격려하는 표적이 주어졌다. 1. 히스기야는 한 표적을 요구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대한 어떤 불신에서거나 반신반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약속된 내용이 지극히 위대한 일이므로 어떤 확인이 필요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며, 또한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일은 하나님께 늘 있어 왔던 일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께 표적 구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얼마나 노했었던가를 기억하고 있었다(사 8:10-12). 히스기야는, 그가 심판의 보좌에나 성문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될 그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고 물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는 “시온의 딸의 문들에서” 자기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건강이 회복되기를 원했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 산다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 2. 해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혹은 뒤로 물러갈 것인가 하는 것은 그가 선택해야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보여주는 표적이었다. 그가 그 두 가지 중에서 더 힘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했다 할지라도, 역시 그 표적은 그의 신앙을 더욱 확고히 해 주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선지자의 말은 아마 이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사 45:11). 태양의 변경 각도는 10도였고, 그 제안이 있었던 때는 정오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해가 아침 7시에 그 자리에서 뒤로 물러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저녁 5시에 그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였다. 3. 그는 태양이 10도 뒤로 물러가기를 겸손히 원했다. 왜냐하면 어느 것이든, 큰 기적일지라도 태양이 앞으로 나가는 것은 자연스런 방향이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더 기이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또 히스기야가 “소년 때를 회복”하고(욥 33:25), 그의 생명의 날이 연장되는 것이 더 의미 있기 때문이었다. 그 표적은 이사야의 기도에 따라서 이루어졌다(11절). 이사야는 하나님의 특별한 허락과 명령을 받아 “여호와께 간구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태양을 10도 물러가게 하셨다. 그리고 그 사건은 아하스의 일영표 위의 그림자가 뒤로 물러감으로써 히스기야에게도(그 표적이 그를 위해 의도되었으므로) 보였다. 아마 침실 창문으로 그가 이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현상이 다른 모든 일영표 위에서도, 심지어 바벨론에서도(대하 32:31) 관찰되었다. 이 태양의 역행 운동이 점진적으로 있었는지 혹은 급작스레 일어났는지, 또 앞으로 나아갈 때와 똑같은 속도로 뒤로 물러가서 하루를 평소보다 열 시간이나 더 길게 했는지, 혹은 그것이 갑자기 뒤로 물러갔다가 잠깐 동안 계속된 뒤에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게 되어서 천체의 상태에는 전혀 변경이 없었는지(박식한 학자 패트릭 주교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경이로운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을 땅에서는 물론 하늘에서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대해 가지는 관심과, 자기의 선택받은 백성들에 대해 품고 계신 큰사랑을 나타낸 것이다. 이교도들의 가장 그럴 듯한 우상은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로써 그것은 가장 터무니없는 허위요 모순이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왜냐하면 이로써 그들의 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약을 받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도수의 노래”(Songs of degrees: KJV에는 이렇게 표제가 붙어 있다―역주) 열다섯 편은(시 120편 이하) 태양이 뒤로 물러갈 때의 일영표 위에 변경된 도수와 히스기야의 생명이 15년 간 연장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수금으로(사 38:20) 노래하도록 히스기야가 선정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이트푸트는 이들 시편들 중의 많은 부분이 이스라엘의 고통과 구원, 그리고 히스기야의 질병과 회복을 의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 히스기야의 경건과 죽음(왕하 20:12-21) 여기에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Ⅰ. 바벨론 왕의 한 신이 히스기야에게 와서 그의 회복을 축하했다(12절). 이때까지 바벨론의 왕들은 앗수르 왕들의 부속국의 대리자들에 불과했고, 니느웨가 그 왕성이었다. 우리는 바벨론이 앗수르 왕에게 예속된 사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17:24). 그러나 바벨론 왕은 자립하기 시작했고, 점점 사태가 바뀌면서 앗수르가 바벨론 왕에게 예속되기까지 되었다. 이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를 칭송하고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사신을 보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 첫째는 종교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바벨론 사람들은 태양을 섬겼다. 그런데 그들의 신이 히스기야를 위해 뒤로 물러가 줌으로써 히스기야에게 어떤 명예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도 또한 그를 명예롭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늘의 총애를 입은 자들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2. 둘째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만일 바벨론 왕이 앗수르 왕에 대한 반란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히스기야를 자기편으로 끌어넣는 것이 정책상 유리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하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여, 그리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앗수르 왕에게 치명상을 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앗수르 군대가 약화된 것은, 히스기야와 그의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과 그렇게 특별한 관계를 가진 자보다 더 유력하고 가치 있는 동맹자를 만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사신과 편지와 예물을 가지고 최대의 존경을 표하여 히스기야를 알현했다. Ⅱ. 히스기야는 그 사절단을 친절히 환대했다(13절). 그들에게 정중하고 또 사절들에게 마땅한 경의로써 영접하는 것은 히스기야가 해야 할 의무였다. 그러나 그는 도에 지나쳤고, 너무 정중하여 실수를 범했다. 1. 그는 그들에게 지나친 호의를 보였다. 그는 “그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이었지만, 그는 그들과 친밀하게 되었고, 그들의 주인인 왕과 동맹을 맺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을 모두 들어주었다. 그는 정도 이상으로 개방적이고 후대했다.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그가 이방의 군주와 동맹을 맺으려, 혹은 그의 호평을 받으려고 그렇게 열성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렇게 고귀한 은혜를 베풀어주었고, 본인은 그것으로 그렇게 즐거워했었는데, 이 사절이 무슨 영예를 그에게 더해 주겠는가? 2. 그는 지나치게 호의를 보여 그들에게 자기 궁전과 국고와 무기고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서 그들의 임금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즉 히스기야가 실제로 얼마나 위대한 왕이며 그들의 임금이 그에게 어떤 명예를 보내야 하는지를 보고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들에게 성전과 율법책과 예배의식을 보여주었다는 말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는 그들을 참 종교로 개종시켰을지도 모르며, 그때야말로 그가 그런 행위를 할 가장 적절한 기회였었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는 그들을 모욕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저택의 값진 가구와 귀중품이 든 곳간과 앗수르 왕이 금고를 비운 이래로 그가 축적한 부, 곧 그의 “금은과 향품”을 보여주었다. 그는 직접 관리들을 시켜서 자기가 가진 모든 값나가는 것들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이야 무슨 해가 있겠는가? 한 나라의 부와 보물들을 손님에게 보여주는 것, 즉 우리의 친구에게 우리의 집과 가구와 정원과 마구간과 그리고 도서관들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후하고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박수갈채를 받기 위해서 하거나,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의 교만으로 그런 짓을 한다면, 그것은 히스기야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죄가 된다. Ⅲ. 이 문제로 히스기야는 문책을 받게 된다(14-15절). 종종 위안자였던 이사야가 지금은 그의 견책자가 되었다. 복되신 성령께서도 두 가지 일을 하신다(요 16:7-8). 경우에 따라서는 사역자들에게도 양면이 있어야 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다. 그러므로 그가 권위를 가진 자로 여겨 줄 것을 히스기야에게 요구했다. 그는 “이들은 누군가?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들의 직업은 무엇인가?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히스기야는(왜 당신이 관여하여 이 일에 대하여 내게 묻느냐고 말하지 않고) 그 심문에 응했을 뿐만 아니라, 솔직한 고백을 했다. “나의 내탕고(內帑庫)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16절)라고 대답했다. 왜 그는 그때 그들을 이사야에게 데려오지 않았는가? 왜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가장 귀중한 보물인 이사야를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바로 그의 기도와 예언으로 그 모든 경이가 일어났으니, 그 사절단은 그러한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느냐고 묻게 되었을 것이 아닌가? 아마 히스기야는 자기가 곤경에 처해 있었을 때와 똑같은 가치를 지금도 이사야에게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일 먼저 이들 사절들을 이사야에게 데려옴으로써, 자기가 이사야를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더라면, 잘못된 처사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Ⅳ. 그의 교만과 허영, 그리고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 그가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던 사실 때문에 그에게는 선고가 내려졌다. 그것도 그가 거룩한 일을 깊이 체험한지 불과 얼마 안 되는 때에 속된 일에 빠졌던 것이다. 그 선고는 다음과 같다(17-18절). 1. 즉 그가 그렇게 자랑한 보물은 앞으로 약탈물이 될 것이며, 그의 가정도 모두 약탈당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믿고, 우리의 자랑거리로 삼는 것을 앗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처사이다. 2. 그가 동맹을 맺고자 그토록 호의를 보였던 그 바벨론 왕이 그들을 포로로 잡아가는 원수가 되리라고 했다. 히스기야가 이러한 심판을 초래하게 된 것은 이 죄 때문만은 아니다. 므낫세의 죄, 그의 우상숭배, 그리고 살인이 이 재앙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에서야 히스기야에게 예언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교만과 그가 바벨론 왕에 대해 가졌던 가치는 어리석다는 것을 알려주고, 또 그러한 자기를 부끄러워하게 만든 것이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의 왕성을 도와 앗수르 왕의 엄청난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에 기꺼이 협력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가슴에 품고 있는 뱀이 머지 않아 자기의 가슴을 쏠 것이며, 그의 왕손들이 바벨론 왕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그 예언은 성취되었다. 단 1:1 이하).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히스기야에게 가장 큰 굴욕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다. 바벨론을 좋아하는 자들은 바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에게서 떠나오는” 자들이 지혜롭고 복되다(계 8:4). Ⅴ. 이 선고에 대한 히스기야의 겸손하고 참을성 있는 복종을 보자(19절). 그가 어떻게 이 선고에 스스로 복종하는지 살펴보라. 1. 그는 이러한 진리를 말하면서 그것을 수긍한다. “여호와의 말씀은 선하시다. 심지어 이 위협적인 말조차 선하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말씀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씀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그는 선한 사람들에게 아무 피해도 의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하다. 즉 그는 그것에서 선을 가져오며, 그것을 미리 말씀해 주심으로써 나에게 선을 베풀었다.” 우리는 모든 섭리에 대해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즉 모든 섭리는 선하고, 선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이다. 2. 그는 그 말씀 속에 선한 것이 있음을 알았다. 즉 그가 그러한 재앙이 올 때까지 살아서 거기에 참여하게 되지 않을뿐더러, 그 재앙을 목격할 때까지 살지도 않으리라는 점이었다. 그는 악을 가장 선용한 자이다. 즉 “그것은 선하지 않은가?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선하다. 그리고 내가 받기에는 분에 넘치도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주의하자. (1)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질책을 받을 때, 그 질책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선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들의 불의에 대한 징계를 인정한다. 히스기야가 그랬다. 그리고 이것으로써 “그가 진정으로 자기 마음의 교만에 대하여 겸손하게” 되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2) 우리가 불행한 섭리 아래 있거나 혹은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어두운 전망을 예상하고 있을 때에도 언제든지, 우리는 우리에게 “불리한” 것은 물론 “유리한” 것도 식별해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을 영예롭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인내로써 우리의 평온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3) 공적인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시대에 진리와 평화가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요, 또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①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만일 우리에게 평화와 진리가 있다면, 즉 우리가 참된 신앙을 고백하고 있고, 그 신앙을 간직하고 있고, 또 우리에게 성경과 사역자들이 있고, 또 그들을 평화로이 향유할 수 있고, 전쟁이나 핍박의 경보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만 않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② 우리가 죽은 다음 어떤 곤경이 닥치더라도, 우리 시대에라도 만사가 잘 된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후손들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즉 재앙을 예견한다는 것은 하나의 고통이다. 그러나 심판의 연기는 일반적으로 큰 은혜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가 평안히 죽을 때까지 심판이 연기되는 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다. 왜냐하면 자비는 집안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그 심판을 견딜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심판이 오기 전에 안전히 하늘로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좋게 생각해야 한다. Ⅵ. 마지막으로, 히스기야의 생애와 그에 대한 이야기의 결말이 나와 있다(20-21절). 역대하 29-32장에는 열왕기하에서보다 히스기야의 개혁 사업에 대해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일반 연대기에는, 그의 세력과 그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한 훌륭한 공적들, 특히 그가 파이프를 통해 그 도시에 물을 끌어들인 사업에 대한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물이 풍부하여 물을 얻으려고 싸우지 않으며, 물을 길을 때에 궁수들의 소란으로 위협을 받지 않으며, 우리 주변에서 편안히 물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물의 부족은 큰 재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역사가(성경 저자)는 그를 “그의 열조와 함께 잠들게” 하고, 아주 고약한 아들을 그의 왕좌에 대신 들어서게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은총을 물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악한 아하스는 경건한 아비의 아들이고, 경건한 아들의 아비였다. 선한 통치자―분명 그랬다―가 있는 동안에도 개혁되지 않던 그 나라는 마침내 황폐해지고, 악한 통치자에 의해 멸망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선한 통치자가 개혁을 시도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멸절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호크마== ..열왕기하 20장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ㅇ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 성경에서 '그 때에'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막연한 어떤 시기'를 가리키지만(삿21:25) 여기서는 카일(Keil)의 주장처럼 앗수르의 유다 침입(18,19장)과 관련이 있다(6절). 즉 병행구절인 사38:1-22에 의해서도 분명히 알 수있듯 히스기야의 병은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해온 초기에 일어났던 것이다. 한편 산헤립의 1차 유다침입은 B.C.701년경 그리고 2차 유다침입은 B.C. 699년경의 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니 히스기야의 발병(發病) 시기도 그때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18:17 주석 참조. ㅇ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 - 이사야(Isaiah)에 대한 이러한 소개는 이미 19:2,20에서 행해진바 있다. 그런데 본절에서 또다시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그의 새로운 역할을 자연스레 소개하기 위함인 듯하다. 한편 본절에서 이사야는 왕의 자문자(諮問者)로서 왕이 죽게 될 경우 왕가에 일어날 혼란과 다툼을 예방하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ㅇ너는 집을 처치하라 - 문자적 뜻은 '너는 네 집에 대하여 명령하라'이다. 이는 곧 죽기 전에 모는 일들을 정리하고 국정(國政) 인계를 하라는 뜻이다. 평행 구절인 사38:1에는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로 나와있다(Keil &Delitzsch Commentary,Vol. III,p.461). ㅇ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 창50:5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구문에 나타난 미래형 동사는 임박한 가까운 미래를 가리킨다. 또 이러한 임박한 죽음의 선포는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낸다(1:1-4;삼상2:31-34). 그러나 히스기야가 어떠한 잘못으로 이러한 심판을 당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ㅇ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 혹자는 왕의 이러한 행동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여호와께로만 향하겠다는 다짐을 나타내는 것이다'(Gray)라고 말한다. 이것은 히스기야 왕의 경건성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한 해석이다. 한편 당시에 얼굴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얼굴을 든다'고 할 때 그것은 그 대상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누구에게서 '얼굴올 돌렸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경멸이나 무관심을 가리킨다(왕상21:4;겔7:22). 따라서 기도를 위한 히스기야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은 히스기야의 간절함을 나타낸다. 즉 그는 자기의 평상 업무와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물리친 후 오직 여호와께만 전심전력(全心全力)하여 매달린 것이다.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ㅇ본절의 히스기야의 기도는 사38:3에도 나와 있다. 그런데 이 기도는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비록 보잘것 없는 자신의 행적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행하고자 처신을 다했다고 하는 겸허하고 간절한 기도일 것이다. ㅇ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 이것은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율법을 행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을을 가리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히스기야의 이러한 경건한 행위를 모방만하며 자신의 의를 드러내어 자랑하고 율법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러한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책망하셨다(눅18:9-14). 실상 그러한 위선적인 바리새인들과 히스기야 왕의 차이점은 진실됨과 그렇지 못함에 있었다. ㅇ심히 통곡하더라 - 히스기야가 이렇게 심히 통곡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추측된다. (1)아직 그에게는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Josephus),21:1에 따르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는 12세였다.그렇다면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15년의 생명을 더 연장받은 후(6절)에 얻은 아들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히브리적 관념에 비추어 볼 때 후사(後嗣)가 없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잘해 왔던 히스기야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형벌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2)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장수(長壽)를 약속하셨는데(잠10:27) 한창 나이인 중년에 세상을 하직한다는 것은 불공정한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Keil).이것도 역시 장수하는 것을 하늘의 축복으로 알았던 시대적인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개연성이 있다.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ㅇ성읍 가운데 까지도 이르기 전에 - 사38:4에는 이러한 기록이 없다. 따라서 본문의 기록은 더욱 생생한 목격자의 진술임을 알 수있다(Pulit Commentary). 한편 여기서 '성읍 가운데'가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명백하지 않다. '성읍'에 해당되는 히브리어'하이르'를 맛소라 학자들은 '마당' 또는 '뜰'이란 뜻의 '하체르'로 읽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게 볼 때 본문은 '가운데 마당까지도 가기 전에'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가운데 마당'이란 히스기야의 왕궁 안에 있는 중간 뜰(middle court)을 가리킬 것이다. 아무튼 이사야가 미처 이곳을 벗어나기도 전에 계시를 받은 것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그토록 신속했음을 보여준다.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ㅇ내 백성의 주권자 - 이것은 성경에서 그렇게 흔하게 쓰이는 칭호가 아니다. 지금까지 삼상9:16과 10:1에서 사울에 대해, 삼상 13:14과 삼하 5:2에서 다윗에 대해 쓰여진 경우등을 들 수 있을 뿐이다(Pulpit Commentary).어쨌든 여기서 이러한 호칭은 히스기야가 3절에서 자신을 이상적인 왕으로 표현한 것과 잘 어울린다. 그리고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호칭과 함께 이 칭호는 히스기야가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이었음도 시사해 준다(삼상13:14;행13:22). ㅇ내가...들었고 보았노라 - 19:20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더욱이 이러한 본절은 성도의 눈물의 기도를 차마 뿌리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 준다(시 51:17). 6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ㅇ십 오 년을 더할 것이며 - 자신이 죽게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단지 자신을 긍휼히 여겨 달라는 것이었다(3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생명을 무려 십 오 년이나 연장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계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복 주시되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엡3:20) 주시는 분이시다. 더군다나 히스기야 왕이 받은 이러한 생명의 연장은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요6:40))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히스기야와 같이 다윗의 반열에 속한 자들을 위하여 '영원한 집'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삼하 7장). ㅇ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 이와 똑같은 내용의 글은 이미19:34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산헤립의 공격과 히스기야의 발병 시기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시사해 준다(Hobbs, Keil). 1절 주석 참조. ㅇ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 이유가 곧 하나님 당신의 영광 및 다윗과 맺은 언약(삼하 7장) 때문임을 거듭 천명하고 있는 구절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9:34 주석을 참조하라. 7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ㅇ무화과 반죽 -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악질 또는 기타 다른 요인으로 인한 종기(腫氣)및 위궤양등을 치유할 때 민간요법으로 무화과(Fig)를 사용하였다(R.D.Patterson). 그러나 여기서는 무화과의 본래적인 치유 효능으로 인해 히스기야가 질병에서 치유함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마치 그리스도께서 진흙을 사용해 장님의 눈을 뜨게 하신 것처럼(요9:1-12) 여기서 무화과는 하나님의 이적적인 치유 능력을 보여 주시는 매개물일 뿐이다. 평행 구절인 대하32:24도 히스기야가 질병에서 회복된 것이 하나님의 이적으로 된 것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ㅇ종처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쉐힌'은 '염증', '종기'(욥2:7;출9:9) 또는 '역병'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발병 후에도 격리 수용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그의 종처는 전염성이 강한 역병은 아니었던 것 같다. ㅇ나으니라 - 8절에서 히스기야가 쾌차(快差)의 징조를 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히스기야의 종처는 그 즉석에서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나아 삼일 만에야 완전히 히복된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렇지 않고 즉시로 완쾌되었다면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징조를 구하였을리 만무하다.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ㅇ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 히스기야가 이미 치유를 받은 후에(7절)도 왜 이처럼 징조를 구하였는가에 대하여 간혹 학자들간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병이 완전히 회복되는 기간으로 예언된 3일(5절)은 히스기야에게 있어서 참으로 초조하고도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기도가 정말로 상달되었는지 차인할 수 있는 징조를 구하였던 것이다(Pulit Commentary).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를 히스기야의 연약한 믿음 탓으로 볼 수는 없다. 평행 구절인 사38:7,8에는 본절에서와 같이 히스기야가 직집 징조를 요구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바로 여호와께서 징조를 주셨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종종 먼 미래에 성취될 약속에 대해 좀더 가까운 징조를 주시는 것은 구약시대에서는 일반적인 일이었다(19:29;출3:12;삿6:37-40). 오히려 아하스 같은 왕은 징조를 구하지 않으므로 책망을 받기도 했다(사7:10-13).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본절에서 자기에게 징조가 당연히 허락되는 줄 알고 징조를 요구한 것이다. 한편 '징조'(Sign)에 대해서는 본장 1-11절 강해, '징조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9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 갈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ㅇ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 이와 비근한 예로 모세가 소명받을 때(출3:12)에도 징조가 임했고, 엘리 제사장의 집이 멸망할 때(삼상2:34)에도 징조가 임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징조'(오트)는 자주 이적적인 사건과 연관이 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한편 본절과 같은 장면에서 징조는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바를 반듯시 행하실 것이라는 증표(證標)가 된다. ㅇ해 그림자가 심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 이에 헤당하는 히브리 원문은 과거 시제로 '..... 십도를 나아갔습니다'로 되어 있다. 그리고 또 원문에는 의문사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래서 버니(Burney)는 '나아갔습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할라크)를 '하옐레크'로 수정하여 과거 시제를 미래 시제로 바꾸고 의문사를 첨가하였다.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도 그러한 견해에 입각한 것이다. 한편 '도'(度)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로트'는 '올라가다' 라는 뜻의 동사 '알라'에서 파생된 것으로 본래는 '계단'(Step)을 의미한다. 당시 해시계는 계단 맨 꼭대기에 막대를 세워 그 막대의 그림자가 비치는 계단의 수로시간을 측정했다(Rawlinson). 이러한 해시계는 앗수르나 바벨론에서 처음으로 발명되었는데 유다에선 히스기야의 아비 아하스(Ahaz, B.C735-716)가 처음으로 일영표(日影表)를 만든듯 하다(11절;사38:8).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것이 아니라 십도가 물러갈 것이니이다 ㅇ히스기야 - 지금까지 '히스기야'라는 이름은 원어상 '히즈키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제 여기서는 '예히즈키야후'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 이외에 사1:1과 호1:1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오펠(Ophel) 비문에 보면 이것이 본래 이름이었던 것 같다(Gibson). 참고로 히스기야(Hezekiah)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강하심' 또는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심'이다. ㅇ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물러갈 것이니이다 - 여기서 '나아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의 문자적인 뜻은 '길게 하다', '뻗치다'이다. 일반적으로 그림자가 길어지는 때는 오후이다. 따라서 이 일이 오후에 있을 일이라면 그림자가 일반적인 속도보다 빨리 10도를 나아가게 한다 할지라도 별다른 확신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은 보다 분명한 증거를 '구하기 위하여 보다 어려운 징조를 선택한 것이다. 과거 삿6:36-40에서 기드온이 양털에 이슬이 있게하는 것과 없게 하는 두 가지 이적을 요구한 것도 이처럼 분명한 증거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 갔던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ㅇ아하스의 일영표 -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이 해시계는 바벧론으로부터 아하스가 본따 온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우상의 상징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 38:8의 사해사본(Dad Sea Scrolls)에는 '일영표' 즉 '계단'이라는 뜻의 '마알로트' 가 '다락방'이라는 뜻의 '알리트'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레이(Gray)는 그것을 '성신(聖神)숭배를 위한 방'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우상의 상징물이었다면 히스기야가 종교개혁할 때(18:3-6)에 그것을 제하였을 것이다. 또 본문에서도 해시계가 다락방과 같은 그러한 건조물로 되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한편 야딘(Y. Yadin)은 '아하스의 일영표'가 지붕 위나 높은 건물 위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참고로 바벨론의 일영표는 12계단으로 되어 있었음을 기억함은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awlinson). ㅇ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 여기서 '물러가게 하셨더라'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와 야쉐브'는 히필형(Hihpil;사역형 능동)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해 그림자가 물러갔음을 강조해 준다. 한편 이 사건이 전세계에 영향을 주는 지구 회전의 역전(逆轉)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아하스의 일영표에만 영향을 끼친 국지적(局地的) 사건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태양과 달이 멈추었던 사건(수 10:12,13)과 더불어 이 사건 역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이적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ㅇ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닥발 라단이 - 앗수르 비문에는 부로닥발라단(Berodach-Baladan)이 '발라단의 아들'이 아니라 '야긴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야긴'(Yakin)은 그의 조부 이름이거나 왕조의 명칭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때의 바벧론 왕국은 종종 '비트-야긴'(Bit-Yakin)으로 언급되곤 했다(Hobbs). 한편 이사야서는 이 왕의 이름을 '므로닥발라단'(Merodach-Baladan)이라고 표기하고있다. 그의 이름의 바벨론식 표기가 '말둑-아팔-이디나'(Marduk-apal-iddina)인 것으로 보아 이사야의 표기가 더 정확한 것 같다. 한편 이 이름의 첫 부분인 '므로닥'은 본래 바벨론의 신 이름이다(렘50:2). 이 므로닥 신은 별들의 왕으로서 최고의 재판관으로 나타나는데 당시 근동의 사람들은 이와같이 신의 이름을 본따 왕명을 지었다(Bahr). 한편 므로닥 발라단은 B.C. 722년 사르곤(Sargon) 원년에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켜 B.C.710년까지 약 12년간 바벨론을 통치하다가 다시 사르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B.C. 705년에 사르곤이 죽고 난 뒤 다시 6개월 동안 통치하였는데 (Eusebius) 후에 산헤립에 의해서 국외로 추방되었다(Rawlinson). 그리고 그 이후 B.C.702년경부터 그는 메소포타미아 남동쪽의 엘람(Elam)에 거처를 정하고 계속해서 앗수르에 대항해 왔는데 그가 히스기야에게 사절단을 보낸 것은 바로 이때의 일이 아닌가 추측된다(Leonwood). 따라서 여기서도 히스기야의 발병 시기를 알 수 있는데 아마 므로닥발라단은 산헤립을 물리친 히스기야의 명성을 듣고 사절단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병 완쾌를 축하한다는 구실로 유다에 사절단을 보내어 유다와 군사 동맹을 맺으려고 했을 것이다. ㅇ병들었다 함을 듣고...보낸지라 - 여기서 '병 들었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할라'(* )는 과거 완료형으로서 그것은 이미 병이 나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Keil &Delitzsch Commentary Vol. III, p.466). 한편 대하 32:31에 의하면 바벧론 사절단의 방문 목적은 히스기야의 병회복을 축하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이적에 관해서도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세푸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외에도 거기에는 히스기야가 죽기 전에 그로부터 자기 나라의 독립을 얻기 위해 군사적 도움을 구하기 위한 목적이 개재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실 비록 산헤립이 뜻하지 않은 재앙으로 인하여 원정(遠征)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지만 (19:36) 그때에도 앗수르는 여전히 바벧론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래서 므로닥발라단은 앗수르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히스기야와 둥맹을 맺어 자국의 독립을 꾀하려고 했던 것이다(Von Gerlach). 13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에게 보였는데 무릇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것을 저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라 ㅇ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 대하 32:27에 따르면 히스기야의 부와 영광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롑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대하 32:23)고도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에서 바벧론 사절단의 방문은 여러 이방사절단의 방문들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서 철수, 고국으로 돌아간 이후 이러한 영광을 획득하게 되었음도 알 수 있다(대하 32:22). 한편 당시 국력이 신장(伸張)하고 있던 바벨론의 사절단이 히스기야를 방문한 것은 히스기야에게 특별한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바벧론과 동맹을 맺는다면 앞으로 앗수르의 침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사절단에게 신망(信望)을 얻기 위하여 자기 보물고를 보여 주었을 것이다(Bahr). ㅇ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 - 여기서 '보물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베트 네코트)의 문자적인 뜻은 '향료의집'이다. 이것은 주로 향료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창고로서 간혹 금과 은을 보관해 두기도했다(Keil). ㅇ보배로운 기름 - '기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세멘'으로서 '감람유'(olive oil)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값진 감람유'라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들 감람유가 아닌 왕궁에서 쓰는 향료용 기름(balsam oil)인 듯하다. ㅇ내탕고 - 이는 곧 왕이 자신의 사사로운 재물을 모아 두는 곳집을 가리킨다. ㅇ모든 것을 다 사지에게 보였는데 - 본절은 겉으로 보기에는18:15,16에서 히스기야가 금은을 모두 앗수왕에게 주었다는 진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에게 금은을 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보물들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었던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히스기야는 산헤립에게 모든 보물을 다 주지 않았다. 즉 그는 은 삼백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만을 주었을 뿐이다(18:14). 그리고 그가 성전 문에 입힌 금박까지 벗겨서 다 주었던 것은 산헤립에게 더 이상 줄것이 없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위장 술책이었다(Keil). (2)히스기야는 선조 때부터 물려 내려오던 많은 보물들을 감추었을 뿐만 아니라(17절) 그 동안 다른 이방 나라의 사절단으로부터 많은 예물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대하 32:23).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왕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ㅇ선지자 이사야가...나아와서 - 이사야는 이방 나라와 동맹을 맺어 의지하려는 마음이 히스기야에게 있음을 간파하고 비록 왕의 청함이 없었지만 그를 징책하고 경계하기 위하여 히스기야에게 나아갔을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사야는 오직 여호와께만 도움을 구하고 이방을 신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해 왔었다(사30:1-7;31:1-7) 그러기에 이제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심증을 캐묻기 위하여 또는 히스기야가 바벨론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토록 하기 위하여(Bahr, Mattew Henry) 그에게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라고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ㅇ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 이러한 히스기야의 대답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1)자신의 명성이 바벨론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음을 의미한다. (2)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들과 동맹맺는 것을 경계한 율법의 말씀들(신29:22;수9:6,9)을 생각하고 자신이 범죄하였음을 인정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Hobbs). 15 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ㅇ내 궁에 있는 것을...다 보았나니 - 본절에서 히스기야는 자신이 사절단에게 행한 일들을 자세하고 솔직하게 고백하고있다. 즉, 왕을 경책하기 위해 온 선지자에게 히스기야는 마치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들을 고백하듯이 분명하게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다윗에 버금가는 히스기야의 위대한 신앙이 있다 할 것이니(삼하12:13) 사실 잘못을 지적받고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법이다.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ㅇ날이 이르리니 - 이러한 구절은 일반적으로 대개 어떤 미래적인 사건을 선포할 때 쓰인다(렘31:31;눅23:29). 사실 본절에 기록된 사건 역시 실제로 25:13 이하에서 비로소 성취되고 있다. ㅇ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 - 여기에 언급된 보물들 가운데 금은의 상당 부분은 앗수르에게 넘어 갔지만(18:15,16) 기타 다른 보물들은 여전히 히스기야가 보관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3절 주석 참조. ㅇ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 이처럼 히스기야가 바벧론 사절단에게 국고(國庫)를 열어 보인 것(13절)은 그만 도둑에게 자신의 보물을 자랑한 꼴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본절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으니 곧 B.C.586년 예루살렘 멸망 때이다.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ㅇ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 히스기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비록 후대에는 형벌이 있을 것이나(17,18절)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은 형벌을 받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안심이 되어서 하는 말(Rawlinson)은 결코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이기주의자로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히스기야가 본절과 같이 말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복의 표시로서 왕의 편에서 공적인 태도를 표명한 것이다(Bahr, Keil,Hobbs). 즉 히스기야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서 엄청난 징책을 선고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ㅇ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 '태평'과 '진실'은 상호 관련성을 지닌 것으로(렘33:6) 미천한 자에게 평화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진실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제 이와같은 축복이 히스기야에게 주어지고 있음은 3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히스기야가 진실과 진심으로 행하고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스기야는 본절에서 그 같은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권력과 못과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중으로 인도하여 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히스기야의 남은 사적 - 대하 32:27-33에 보면 히스기야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번영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번영들은 대부분 B.C.701년 앗수르의 침략 이후에 획득한 깃이니 그가 병에서 완쾌된 후 15년 동안은 실로 태평 성대를 이루었음을 알수 있다. ㅇ못과 수도를 만들어 - 대하 32:2-8에 따르면 히스기야가 예루살렘 성 밑으로 수로(水路)를 뚫어 만든 못과 수도는 앗수르의 침략을 대비하여 만든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자들이 증거하는 바에 따르면 이때 만든 지하 수로의 길이는 약540m 가량 된다고 한다(Gibson).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8:17주석을 참조하라. ㅇ유다 왕 역대지략 - 역대 유다왕들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한 일종의 왕실 일지(王室日誌)이다. 왕상 15:23 주석 참조. 21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고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그 열조와 함께 자고 - 대하 32:33에는 히스기야의 죽움과 관련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저의 죽움에 존경함을 표하였더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유대인의 전승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히스기야는 다윗과 솔로몬 다음 자리에 장사되었다고 한다(Ginzberg). 한편 레이몬드 웨일(Raymond Weil)이 다윗 성에서 왕들의 묘실을 발견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묘들이 너무나 많이 훼손되어 있어서 어느 것이 누구 묘인지 구별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묘들 가운데 하나가 히스기야의 묘임은 분명하다(Hobbs). ㅇ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므낫세'(Manasseh)란 이름의 뜻은 '망각케 하는 자'이다. 유다 제 14대 왕(B.C.697-642)으로 등극한 그는 그 이름에 걸맞게 아비 히스기야의 선행(善行)을 잊어버리고서 악정(惡政)을 일삼았다. 그러한 므낫세의 통치는 다음 장에 언급되니 자세한 내용은 21장을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