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3장 302.내주하나님넓고큰은혜는 85.구주를생각만해도 90. 주예수내가알기전
^^^엡3:2-21까지는 삽입구로서,.. 엡3:1은 4:1에 이어짐을 명심하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의 비밀...Q의 비밀 mystery = 겉으로 이미 제시된 진술, 그 안에 감취어진 Q의 목적 = 그리스도
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 스스로를 <이방을 위하여> <현실적으로는 감옥에, 그러나 영적으로는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스스로 자웑하여))그리스도 안에 갇힌> 그리스도 예수의 갇힌 자로 인식하고 있는, 바울의 사도로서의 위치는 그에게 [1장과 2장에서] Q의 계시를 보일 자격을 준 반면에, 주의 갇힌 자 된 위치는 주 안에서의 그의 행함을 나타내고 있었기에 그 자신처럼, 그는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행할 것을 간청한다.,
.... <바울이 그리스도에게 붙들린 것 처럼> 그대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조만간 그대는 그대가 사랑하는 그리스도에 매료되고 사로잡혀 스스로 그 안에 있기를 원하는바, 그 그리스도가 그대의 감옥이 될 것이다. 이 때 그분을 극도로 누리게 될 것이다. 하늘에 속한 이상, [교회를 위한-그리고 그 결과 자신을 위한]가장 높은 계시를 볼 수 있는 때란 바로 이런 때이다!!
.... 대다수 믿는이들의 문제란, 오히려 너무도 <자기 자신을 위해> 느슨하고 자유롭기에. 그리스도 밖에서 누리는 그 자유 때문에 영적인 눈이 멀어버리는 것을 자초한다는 점이다.
....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대가 고난 받음 가운데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대가 기꺼이 자원함으로 [교회와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 자신의 자유를 잃는 것조차 감수하고자 한다면 그 대가로 주님이 보여주시는 분명한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갇히는 이 누림-체험은 우리로 하늘에 속한 계시를 얻게 하리라.
....모든 기독자들도 주께서 예비하신 재림-JC영광에의 참여함의 그 때까지 각자 JC 닮아감 + 불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이땅에서 Q의 섭리따라 고난 받으며 또한 갇혀 있음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 참되게 믿는 우리에게 <그 영께서 접붙여 주심 인해>도달한 그리스도, 그분의 모든 충만과 풍성>의 경륜<=청지기 직분, 곧 Q의 모든 풍성에 대해 그분 뜻따라 분배-행정-관리 맡음...따라서 청지기는 그 맡은 바 분배를 위해, 주인과 그 집을 떠나서는 안됨>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 은혜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믿음으로써, 그리스도께 접붙임 받음 인해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Q> 오직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가 얻고 누린 Q자신
.... 모든 기독자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깨닫고 실지로 체험하며 증진-확장-전파-참생명 JC 공급 통로로 살아야 함
.... Q의 부르심에 합당히 행한다 함은 다만 친절-겸손으로 사랑하는 것 그 이상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즉, 바울이 기도하고 보여주는 그대로, 그리스도 안에 갇힌 자로서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보며, 보면 볼수록 비례적으로 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리스도를 더 얻음으로써 그리스도의 풍성을 Q의 집의 지체들에게 분배하는 청지기가 됨에 이르러야 한다. 곧 우리가 그분의 황홀한 영광 보여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그리스도께 매료됨 인해 자원하여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 즉 이상을 볼 수 있는 곳 안에 갇히고 제한되는 것을 기뻐함에 이르러야 한다... 그 때, 이 이상을 봄으로써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되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으로 역사되어,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풍성을 사람들 속에 분배하는 청지기가 됨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풍성을 몸의 지체들에게 분배하여 몸을 건축되게 하는 사역자가 된다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앞의 1,2장에서)기록함과 같으니
.... Q의 비밀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비밀은 교회이다!!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 <사랑하는 주님, 넘쳐 나는, 주님 사랑의 그 황홀함 어찌 다 감당하오리까, 그러나 진정, 주님 사랑에 매료되고 사로잡혀 더 더 주 알기 원하여 자원하여 스스로 주 안에 갇힌 자로서 나를 주께 내어드립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 주심 따라 영적 지혜와 총명을 더하시며, 마음의 눈을 밝혀 주사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하늘을 열어 주님 영광과 이상을 보게 하소서, [[사도 바울의, 다 표현할 길 없어서 다만 무한한 장광고심의 우주적 차원으로 밖에 표현 못한]] 하늘에 속한 이상을 분명-명료하게 보며 알게 하사 서로서로 더욱 더 교회와 주님을 깊이 알며 사랑하며 섬기도록 도우소서 >...주께서는 <(모든 믿는 이마다 나의 풍성-충만을 분배하는 청지기들이니) 비록 청지기들인 너희를 통해, 요리해서 먹을 수 있도록 내게 있는 것을 분배해 주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맛있게 요리해서 먹는 것은 너희들의 각자 해야 할 바이다>하시오니, 주여 <주님이 갈망하시는 바 그대로> 바로 이것을, 말씀 안의 진정한 진찬을 우리에게 깨달아 알고 먹고 그로 인해 조성되게 하여 주소서, 몸 안의 형제 자매들에게 주님을 주입하고 공급할 수 있도록 우리 손을 채워 주옵소서..주여, 우리는 받아 가진 정도만 줄 수 있습니다...다음 세대를 위한 그리스도 생명 공급과 양육에 있어서도 그러하오니, 오 주님 주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바로 그 충만-풍성을 열어 부어 주소서.. 구하오니...우리의 복음 전도가 다만 영혼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Q을 그 영혼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급-분배-양육함으로써, 접촉한 바 그리스도의 충만-풍성을 체험적으로 알고 매료되도록 친히 주장하사 저들도 자원하여그리스도께 헌신함 되게 만드소서>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그들의 주와 합한 하나된 영 안에]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 참되게 믿고 거듭난 우리의 사역은 영 안에 있는 비밀의 계시로 말미암는데, 그 내용이란 Q의 비밀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비밀은 교회라는 것이요, 그것을 참되게 아는 자마다 그리스도 분배 공급 사역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된다.
.... 이런 점에서 모든 믿는이는 사도들이자 또한 선지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때 신약의 선지자란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관념과는 달리, 주로 미래를 예언함이 아니라 Q을 대신하여, 주를 위하여, 주님이 입에 넣어즈신 것을 말하는 사람이 신약의 선지자들이다.
.....결국 [그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지와 무관하게!!] 정상적인 신자라면 집-학교-직장 그 어디서든지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외치며...주님이 지워주시는 마음의 부담에 순종하여 성령과 함께 나아가는>사도와 선지자, 즉 보내심을 받고 말하는 자들이다.
.... 그러나, 사도와 선지자들에게는 그들이 [보내심을 받은 Q의 대변인]들인 사도와 선지자들임을 입증하는 특별한 표시가 있어야 하는데, 이 표시가 곧 비밀의 계시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람들을 접촉할 때 그들이 보지 못한 어떤 것을 <주께서 깨달아 알게 하여주심으로써> 당신이 깨닫고 보았음을 그들에게 합당한 방법으로 알게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주 안에 머무름을 통해서 오게 되는데, 주님이 부담지워주시는 바 누구에게 어디로 가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지시받게 되며, 담대히 나아가서 주 앙망할 그 때 그대의 입을 열어주시리라!!))
....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할 때, <그 어디서나, 그 언제나.> 결코 생각-감정-의지로부터 말해서는 안됨을 주의하라.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체험한 것을 <성령과 하나로 연합된> 영으로부터 말해야 한다.....여기서 적용되는 <기억해 둘> 중요한 하나의 원칙은, 감정은 감정을, 생각은 생각을 , 의지는 의지를 만지고 마찬가지로 오직 영만이 영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그대가 주 이름 부르며 그대의 영으로부터 말한다면 그들의 영을 만지게 되리라..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 <함께 후사가 되고 ::Q의 집의 축복> = Q의 신약 경륜 안에서열국, 즉 선택받고 구속된 이방인들이 믿는 유대인들과 연합되어서 Q의 후사가 되어 Q을 상속받을 것...<함께 한 몸이 되고 :: 그리스도의 몸의 축복> =구원받은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연합되어서 그리스도의 유일한 표현을 위한 그분의 몸이 될 것.. <함께 참예한다 ::Q의 약속의 축복> = 이방 신자들이 Q의 신약경륜의 모든 축복에 관해 구약에 주어짐ㄴ Q의 약속에 참ㅇ하기 위해 유대 신자들과 연합될 것.. ... Q의 집의 축복과 그리스도의 몸의 축복은 특별한 것이지만, Q의 약속의 축복은 일반적이고 만유를 포함하는 것임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부활-만물을 초월-만물을 발 아래 굴복케 함-만물의 머리됨의 4중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우리 생명과 생명 공급이신 Q>의 선물<=gift..은사=능력>을 따라 내가 일꾼[=사역자=청지기=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분배함.모든 성도가 사역자임...이 사역은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를 실현함이다.]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교리>-<계통>-<조직>으로부터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어떠함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으로부터만 산출 가능함,,
....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이 표현은 지극한 겸손의 표현으로 보기도 하지만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진정, 바울은 자신을 돌아볼 때, <그리스도 분배 사역을 감당할 만한> 자격이 전혀없는 자임을 절절이 느꼈을테지만, (그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꼈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주님은 오히려 그를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 삼으심으로써) 그분의 사역자로 쓰여지는 은혜를 받았기에, 성도들 중 지극히 작은 자라 해도 그 자신이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자 됨을 결코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사도 바울은 <성도란 특별한 특징이나 성취 직책을 가진 그 누구가 아니라> 모든 믿는이 한사람 한 사람이 성도임을 말하고 있다!!..마찬가지로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성도마다 가 되기도 한다
.... 고전15:9에서는 자신은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했었다...여기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자!!>라 표현한다....왜 이렇게 말했을까...그 의도는 (아마도, 흔히 그렇게 여기고 싶어 하는 바) 사도를 성도보다 더 큰 자로 여겨서는 안됨을 오히려 강조하며, 오직 모든 믿는이마다 Q께서 각자를 부르신 그 부르심에 합당히 행하기를 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사도와 선지자는 ((목사나 장로도 또한, 신분-지위의 문제로 보는 것은 그릇된 관념이다, 그렇게 여기지 말라!!))다만 <오로지 주만 바람으로써!!> 앞서 나아가는 선주자에 불과함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도-선지자-목사-장로들이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계시를 받는 것-그리스도를 사는 것-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며 그리스도의 풍성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성도라면 누구나 그렇게 살도록 하셨다!!)) 일에 앞장서는,<모범과 본을 보이는> 자일뿐이다. 그들은 지도자/선생이 결코 아니요, 유일한 지도자는 그리스도뿐이심 :: .<마23:8-10..*8.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그 결과는, 분배된 그리스도로 충만한 그분의 몸=한 새 사람인 교회 산출]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 Q의 감추어진 목적은 비밀(mystery)이고, 이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 계시(베일을 벗겨냄)이며, 이 계시를 실현하는 것이 교회를 산출하는 사도의 사역이다. 이 Q의 경륜은 아담-아브라함-모세-다윗, 혹은 이사야나 다른 선지자들에게도 <감취어져 있는 상태였기에>알려지지 않았었다... Q의 아들은 Q의 체현이시다. Q의 경륜은 그분의 이러한 체현을 위한 <확장-증가된>몸을 산출하기 위하여 그분 자신을 <그분의 택한 백성인>많은 사람들 속에 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 가운데 가장 큰 비밀이다.
10. 이는 이제 <산출된>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곧 (사탄의 계략을 철저히 무용지물화 하심으로써)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하심을 나타내는, Q의 지혜의 전람회라 할 수 있다!>
.... ***정사와 권세들은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의 정사와 권세들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악한 자, 즉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말한다. 그의 왕국과 그의 천사들과 그의 통치 영역을 갖고 있는 사탄, 그의 통치 영역은 공중과 땅 위이다.(곧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공중에 있는 사탄의 지배하에 있음을 다니엘서는 가리킨다)
.... 1장은 Q의 능력을, 2장은 Q의 은혜를, 3장은 Q의 지혜를 말하고 있는 바, Q은 대단히 지혜로우시며, 우주는 그분의 지혜를 계시한다. Q은 유일무이한 발명가이시다. 그분은 지식 아닌 지혜로써 많은 것을 고안하셨다. 그분이 창시한 것을 적용하려 하실 때 그분은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신다. 지혜는 지식보다 높고 깊다. 지혜는 무엇인가 시작할 때, 예를 들면 새로운 발명을 고안할 때에 볼 수 있지만, 지식은 실제적 적용에서 발견된다. ..지혜 : (예전에는 없었던)새로운 것을 고안-생산하거나, 어떤 문제 돌파 위한 해결책
.... 우리에게 있어서 지혜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지식은 우리 생각에 있다. 그대가 영 안으로 들어가는 법을 모른다면 비록 많은 지식을 소유하더라도 어떠한 지혜도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영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 지혜로울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대의 생각 안에서 그대는 지식과 총명을 갖게 될 것이다.
.... 사탄의 배역조차도 Q의 지혜의 영역 안에 있다. 사탄의 배역이 없었다면 Q의 지혜가 완전히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지혜 충만한 사람이라면 환난과 어려움, 곧 역경을 당할수록 더 많은 지혜를 나타내게 된다. (반대로 모든 일이 잘 되고 평안하고 문제가 없다면 지혜를 나타낼 기회가 없게 될 것이다) 그대의 지혜를 나타내려면 역경이 필요하다. Q 또한 역경이 필요하시다. (심지어 대적자 사탄조차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에덴 동산에 사탄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없었더라면 Q의 지혜는 완전히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문제들을 통해서만 Q의 지혜의 모든 방면이 나타난다.
**[주님 없이] 우리 스스로는 절대적으로 무지-무각-무력-무능-무가치하다. 우리 스스로는 실패하는 일도, 승리하는 일도 할 수 없다. 만일 그대가 스스로 실패하지 않으려 한다면 실패할 것이요, 일부러 스스로 실패하기를 원한다면 실패할 수 없음을 알게 되리라.
..... 때때로 사탄의 유혹은 주님의 택한 자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시는 Q을 속상하게 만들고, Q과 택자를 갈라치기 하려는 데서 오는 경우들로서, 그 유혹이 성공했을 때 사탄은 나름대로 쾌재를 부르겠지만, 그 마지막에 나타나는 결과는 항상 Q의 지혜로우심을 더 크게 나타나도록 만드신다. <물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남에 있어서, 그 역경으로 인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은 아픔이 Q과 택자에게 공히 주어지기는 하지만....그러기에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말해서는 결코 안된다.. 그것은 사랑하는 분에 대한 고의적 배역이기 때문이요, Q은 그대가 일부러 실수하지 않더라도 그분의 완전하심 안에서 <그대의 실수나 잘못이 없더라도 능히 얼마든지 계획하신대로의 지고지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 다윗의 타락은 Q께 그분의 지혜를 나타낼 기회를 드렸다. 밧세바에 대해 다윗은 큰 실수를 했다 그러나, 다윗의 타락과 회개를 통해서, Q의 죄 사함과 함께 다윗은 성전 건축자가 될 아들 솔로몬을 얻게 되었다. 후에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를 계수하는 실수를 또 범하지만, 그로 인해 성전 지을 터를 얻고 있었다.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 :: Q의 영광<=Q을 영화롭게 함= 택자들을 통해 Q의 표현케 함으로써, 만물로 Q께 감사-영광 돌리게 함>--Q의 택자를 위한 축복--Q의 대적을 부끄럽게 함의 3중 목적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Q께 담대히 나아감-들어감-하나됨 이룸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영적 아들들인>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함으로 인한 사도가 당하고 있는 환난은 <분명한 이상과 약속을 따른 것으로서> 궁극적으로 택자들로 하여금 Q을 표현케 함이 될 것이기에!!
.... .... <자신을 그분의 택자들 안으로 분배하시어 Q의 완전한 표현을 위해 그들을 Q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확장과 증기로 만드시려함>의, Q의 영원한 경륜을 <계시로 받고> 본 자로서 바울은 그분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가 되었고, 또 Q을 위해 선지자이기도 했으며, 또한 Q의 대변자로서 갈망하는 그대로 다른이들도 같은 계시를 봄으로써 사도와 선지자들이 될 수 있도록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공급했으며, 이를 위해 투옥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는데, 감옥에 갇힐수록 그는 더욱 더 많은 계시를 주로부터 받았고 더욱 더 그리스도를 공급할 수 있었다.
.... ((고전12:27-29...*27.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한편, 고전12:29에서의<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라 한 귀절에 대해서는 세심한 해석이 요구됨을 주의하라...예수를 직접 만난 바 선두주자(fore-runner)들로서 "그" 사도, "그" 선지자란 뜻이며, 물론, 우리는 모두가 그들 자체란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라!! 분명히 고전14:31에서 바울은 성도들이라면 예외없이 누구나 모두 예언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그들은 선주자들로서 앞장선 자들이고 우리는 뒤따르는 자들이라는 것이지, 그들이 할 수 있었던 바로 그것을 우리는 할 수 없다는 말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동일한 원칙이 어떤 지역교회 안에서 장로들과 다른 지체들의 차이는 장로들은 <하나의 양 무리 중에서 가장 앞서 걷는 것처럼> 앞장서고 다른 지체들은 뒤따른다는 데 있을 뿐 장로들이 하는 것을 다른 지체들이 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성직자들이 하는 것을 평신도들이 할 수 없다는 관념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 사람이란 존재는 혼(soul)이요, <내적 그릇인>영과 <외적 그릇인>몸의, 두가지 그릇을 가지고 있다. --- 거듭나기 전에는 영 안에 생명은 없었고 단지 혼 안에 사람의 생명(혼 생명으로서의 인격)만을 가졌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거듭남으로써 우리 영 안에 Q께 속한 생명(Q생명인 영 생명)을 갖게 되었기에, 우리의 영은 더 이상 그릇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Q의 생명을 가진 우리의 인격<즉 영 생명으로서의 인격 : 신성+인성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합할 수 있는 [그래서 [고전6:17..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는 말씀 이룸이 가능한]>이 되었음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혼 안에 있는 사람의 옛 샘명과 옛 인격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 옛 인격, 곧 사람의 생명을 갖고 있는 혼은 십자가에 이미 못박혔으며, 이제 우리의 새로운 인격은 Q의 생명을 갖고 있는 영, 즉 우리의 영이 이제는 우리의 속 사람이다. ---그대의 마음의 지향이 그리스도의 영(주 영, 곧 그 영)과 하나된 그대의 영 안에 되돌려져서 머무를 때에라야 <양심-지정의로 구성된 마음이>강건케 되고 영 안에서만 Q의 모든 충만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채워지기에(19절), 영 안에 머무르기를 배우라. 이것이 주로 주 되시게 함이다.. --- 자신이 기도할 때 얼마나 <혼의> 생각이 방황하는지 경험해 본 적이 있다면, 영 안으로, 속 사람에게로 되돌이켜지기 위해 영 안에 머무름의 연습의 중요성을 절감케 될 것이다.
.... 거듭난 우리는 영적 존재이기에, 우리가 영 안으로<즉 속 사람 안으로>돌이켜 <주와 하나된> 영 안에 머무르며 기도하기를 연습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이를 통해서 언제든지 자연스레 영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그 때가 실지로 <주로 인해> 강건케 되는 때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속사람<=주와 하나인 영> 안으로 온 존재의 지향성이 돌이켜짐 인해 강건케 되는 때, 그리할수록 우리의 내적 존재의 여러 부분들이 영 안으로, 즉 속사람 안으로 되돌이키게 되며, Q의 모든 충만-풍성함으로 채움 받고 Q의 충만한 표현이 된다. ----이제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진정 그대의 주님 되시도록, 우리 마음에(마음의 구성 요소들 = 혼<생각-감정-의지>+영의 양심) 거처를 정하시도록 <허락해드리고, 말씀 그대로 그렇게 되었다 (믿음으로) 여기고> [주 이름을 불러서] 그분 자신으로 채우시고 주장(통제-충만/확장-공급-강건케)하시기를 기대하고 앙망하며 교통하며 따르라..... 이 때 비로소 우리를 인도하는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에게 주어졌던 같은 계시를 받을 수 있다...이렇게 개별적이고도 주관적으로 우리 스스로 자원함으로써 이 계시를 받아야 한다. <바로 이렇게 계시를 보고 보내심을 받아 그리스도를 위해, 그분을 말하는 자라야 오늘날의 사도와 선지자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차원을 깨닫고 그분의 사랑 알기의 4단계 기도(엡3:16-19)
..... *1)<아버지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 안으로(영 안에서 +동시에/또는 영 안으로) 능력(4중의 부활 능력..엡1:19-22)으로 강건케 해 주시기를(즉, 그리하심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심으로써)
.... *2) <그 결과로> <실제화 하는 능력인>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양심+지정의]에 거처를 정하시고 온전히 적시도록 해 주시기를(허락하심으로써)
.... *3)<그 결과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참되게> [그 너비-길이-높이-깊이(광장고심)의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하시기를<허락하심으로써>,
.... *4)<그 결과로> 우리가 Q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그분의 모든 충만에 이르기까지>충만케 되도록 하시기를<허락하심> 구함
...... Q의 충만은 Q의 표현이요, 몸은 그리스도의 충만이다(풍성이 아님을 주의하라).... 풍성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그리스도의> 다양하고 많은 측면들인데 이 풍성함이 소화-분해-흡수-동화의 신진대사를 거쳐 우리 몸으로 조성됨의 최종 결과가 충만이다...이것은 우리가 충만케 된 결과가 곧바로 Q의 표현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오늘날 Q의 표현은 교회인데, 그것은 만유 안에서 만유를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인 몸이다.(엡1:23) 즉, 엡3:19의 Q의 충만이란 1:23의 그리스도의 충만이요,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 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림으로 인해 조성된다..
.... 바울은 우리를 인도하는 자이며 모본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풍성에 대한 계시를 받고 또 누렸는데, 그 결과 그분의 모든 풍성이 그의 존재 속으로 <신진대사적으로> 조성되어 몸의 일부분이 되도록 했기에, 오늘날 사도와 선지자들이 되고자 하는 이들마다 바로 그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주님 바라시는 그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조성될 것인데 다름아니라 그리스도의 충만이자 Q의 충만이 될 것이다.
.... **뿌려진 씨의 싹 틈에 대해 생각해보라.... 대개 발아시기와 뿌리 뻗어나옴의 시기는 일치하며, 위로 자라나면 자라날수록 뿌리는 비례적으로 깊이 뿌리박게 된다...... [그리스도의 몸, 곧 생명의 건축을 말함에 있어서] 바울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고 그 터가 굳어짐을 말하는데, 딤전1:14는 그리스도의 체험에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깨닫게 하는>믿음과 <그리스도를 참되게 누리도록 만드는>사랑, [우리에게는 믿음-사랑이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진실로, I'm Nothing in Myself, but I'm Everything in Christ인 것이다]곧 그분의 사랑과 믿음 부어주심 통해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주시는 그 믿음과 사랑이 필요하다. .... (Q과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신뢰하며 생생하게 발휘하여 능력 나타내는 살아 생동하는)그분의 믿음이 우리가 그분을 믿는 믿음이 되며, (우리가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곳인 사랑은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실현되고 체험된 신실한 사랑이요, 우리는 그러한 사랑으로 주님을, 그러한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는데) 그분의 사랑이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랑이 됨을 의미한다.
.... [깨닫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는 것뿐 마니라 여기에 더하여 꽉 붙드는 것(grasp)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지식을 초월하는 사랑의 <너비-길이-높이-깊이, 광장고심> 차원을 온전하게 붙잡으려면 혼자서는 결코 안되고 모든 성도들이 동일한 수준에서 함께 단체적으로 꽉 붙드는 것이 반드시 필요함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의 (우주적) 차원을 경험적으로 알아가기<너비-->길이-->높이-->깊이> : 먼저 너비와 길이의<[(<시간을 들여 이루는 기도 + 성경 연구+ 집회 참여의 조화로움인> 경사-위사가 골고루 함께 섞여) 잘 짜여진 양탄자 같은] 평면적 경험 체득(...결코 일차원적 [일직선의] 극단에 치우치는 외골수가 되어서는 안됨)>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확장을 체험하고 그후 높이로서 솟아오르는(위를 향해 자람=높여지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높이 체험) 그리스도를, 그후에는 그 깊이로서(뿌리가 박힘) 내려오시는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은 입방체가 됨을 깨닫게 된다.
... <(믿는이들의 족속이요 가정인)교회는 우주 안에 있는 많은 족속들 중 단 하나에 불과함....그외 다른 족속에는 천사들의 무리, 인류, 이스라엘족속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Q이 영광 얻으신다고 말함은 오직 한 족속<교회> 안에서만 영광을 얻으심을 뜻한다. 그러나 Q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얻으신다 함은 그리스도께서 <만유를 포함하시는> 만유의 머리시기에 Q이 영광 받으시는 대상에는 만유가 포함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시기를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차원)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부활의 4중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행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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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hesians 3 Amplified Bible
==Paul’s Stewardship
1 For this reason [because I preach that you and believing Jews are joint heirs] I, Paul, am the prisoner of Christ Jesus on behalf of you Gentiles—
2 assuming that you have heard of the stewardship of God’s grace that was entrusted to me [to share with you] for your benefit;
3 and that by [divine] revelation the mystery was made known to me, as I have already written in brief.
4 By referring to this, when you read it you can understand my insight into the mystery of Christ,
5 which in other generations was not disclosed to mankind, as it has now been revealed to His holy apostles and prophets by the [Holy] Spirit;
6 [it is this:] that the Gentiles are now joint heirs [with the Jews] and members of the same body, and joint partakers [sharing] in the [same divine] promise in Christ Jesus through [their faith in] the good news [of salvation].
7 Of this [gospel] I was made a minister by the gift of God’s grace given me through the working of His power.
8 To me, [though I am] the very least of all the saints (God’s people), this grace [which is undeserved] was graciously given, to proclaim to the Gentiles the good news of the incomprehensible riches of Christ [that spiritual wealth which no one can fully understand],
9 and to make plain [to everyone] the plan of the mystery [regarding the uniting of believing Jews and Gentiles into one body] which [until now] was kept hidden through the ages in [the mind of] God who created all things.
10 So now through the church the multifaceted wisdom of God [in all its countless aspects] might now be made known [revealing the mystery] to the [angelic] rulers and authorities in the heavenly places.
11 This is in accordance with [the terms of] the eternal purpose which He carried out in Christ Jesus our Lord,
12 in whom we have boldness and confident access through faith in Him [that is, our faith gives us sufficient courage to freely and openly approach God through Christ].
13 So I ask you not to lose heart at my sufferings on your behalf, for they are your glory and honor.
14 For this reason [grasping the greatness of this plan by which Jews and Gentiles are joined together in Christ] I bow my knees [in reverence] before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15 from whom every family in heaven and on earth [a]derives its name [God—the first and ultimate Father].
16 May He grant you out of the riches of His glory, to be strengthened and spiritually energized with power through His Spirit in your inner self, [indwelling your innermost being and personality],
17 so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through your faith. And may you, having been [deeply] rooted and [securely] grounded in love,
18 be fully capable of comprehending with all the saints (God’s people) the width and length and height and depth of His love [fully experiencing that amazing, endless love];
19 and [that you may come] to know [practically, through personal experience] the love of Christ which far surpasses [mere] knowledge [without experience], that you may be filled up [throughout your being] to all the fullness of God [so that you may have the richest experience of God’s presence in your lives, completely filled and flooded with God Himself].
20 Now to Him who is able to [carry out His purpose and] do superabundantly more than all that we dare ask or think [infinitely beyond our greatest prayers, hopes, or dreams], according to His power that is at work within us,
21 to Him be the glory in the church and in Christ Jesus throughout all generations forever and ever. Amen.
==Footnotes
Ephesians 3:15 In Greek, the word for family is patria, which is derived from pater, the word for “father.” The concept of family originates with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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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장 (개요)
본장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Ⅰ. 바울이 하나님에 의하여 이방인의 사도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실을 에베소인들에게 설명한 부분(1-3).
Ⅱ. 에베소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린 바울의 경건하고 열렬한 기도(14-21).
바울이 여기에서 베푸는 바 매우 많은 지시, 교훈과 훈계, 중보와 기도를 섞어 가면서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친히 수신자들과 함께 동역하시지 않는다면 전혀 무익하고 헛된 것이며 무익하게 될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았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인 바, 그들은 마땅히 거룩하신 성령의 능력이 그들의 사역에 친히 함께 하시어 성공의 면류관으로 씌워 주시기를 열심히 기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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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사도로 임명된 바울(엡 3:1-13)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자신에 관한 설명을 에베소인들에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Ⅰ. 우리는 바울이 사도됨을 인하여 당한 재난과 시련을 에베소인들에게 알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1절).
첫 번 구절은 앞장과 연결되는 말씀으로 그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1. 우선 "이러하므로"라는 말씀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겠다. "
앞 장에 있는 기독교의 교리를 전하였으므로 또한 복음의 위대한 특권이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비록 할례받지는 않았으나 이방인들 중의 믿는 자들에게까지도 속하여 있음을 주장하였으므로"라는 뜻의 말씀인 것이다.
즉 바로 이러한 일로 인하여 다음의 아래의 말씀이 계속된다.
"나는 죄수가 되었으되 곧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자가 되었도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았도다. 그러나 내가 주를 위하여 고통을 받은 동안에도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이 됨을 그치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의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받았노라"고 말한다.
만약 그리스도의 종들이 감옥에 갇힌다면 그들은 주를 위하여 갇힌 바 된 자들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를 위하여 갇힌 바 된 자들을 경멸하시지 않는다.
주님은 세상이 그들을 악평한다고 해서 그들을 더욱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으신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추종하였고 그리스도는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도 그를 돌보시었다. 또한 본문에 보면 "너희 이방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바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이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그를 박해하고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신실한 그리스도의 종은 자기의 전하는 진리가 일부 사람들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또한 복음을 전함으로 어떤 고통을 받더라도 그리스도의 거룩한 진리를 전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2. 또한 "이로 인하여"란 말씀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도 있다.
"너희가 더 이상 외인이나 나그네가 아니며(2:19),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의 교회와 더불어 하나가 되었으므로"란 말씀으로 볼 수 있겠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바 된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그러한 특권에 동참하는 자로서 손색이 없는 행동을 할 것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그의 취지가 14절에서 바울 자신에 의해 표현된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는 1절 이후 주제에서 이탈하여 다른 것을 말한 후 14절에서는 다시 첫절에서 시작한 것을 연결시킨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은 앞으로 전진하고 그들에게 요구된 바를 계속 수행하기 위해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바울이 감옥에 갇힌 동안에도 에베소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한 것을 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열심히 하기를 태만히 하며 핑계할 만큼 특별한 고난을 없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는 다시 그가 받은 고난에 대하여 말한다.
이에 대하여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라"(13절)고 말한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그 곳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 비록 바울이 당하는 고통이 그들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그늘 하나님께서 그의 전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을 볼 때, 이 일로 그들을 실망시키거나 낙심시키게 하려 하지 않았다. 에베소인들은 이 얼마나 따뜻한 관심을 받았던 것인가!
바울은 자신이 그 고난을 참기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에베소인들이 자신의 고난을 보고 약해지거나 실망하게 될 것을 더 염려할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결과를 막기 위하여, 바울은 자기의 고난이 그들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에베소인들이 이 문제를 바르게 보고 이 고난으로 인하여 그들이 영광을 돌리고 기쁨을 지닌다면 낙심할 이유가 없노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그들을 향하신 큰 관심과 염려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주기 위하여 사도들을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게 하셨고 그들이 박해까지 견디며 진리를 전하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진리를 확고히 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역 자들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까지도 그들이 복음의 섭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기뻐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함을 생각하자.
Ⅱ. 바울은 에베소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하여 자기를 임명하셨으며, 그 일을 위하여 특별한 계시를 자기에게 보여 주심으로써 자기를 선택하기고 자격을 주셨음을 말한다.
1.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서 바울을 임명하셨다.
이에 대하여 그는 본문에서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다"(2절)고 말한다.
그들은 전에 이것에 대하여 들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문제를 의심스러운 투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에이 게’는 때때로 확신을 나타내는 접속사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너희가 이미 들었다"라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복음을 (다른 곳에서처럼) "하나님의 은혜"라고 규정한다. 왜냐하면 복음이 죄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인 까닭이다.
복음에는 모든 은혜스러운 제안이 담겨 있고 또 복음에는 기쁜 소식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풍부하신 은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 안에서 그것에 의하여 은혜로 역사하시는 바로 그 복음은 또한 성령에게는 위대한 도구가 된다.
바울은 이러한 은혜의 분배가 자기에게로 주어졌음을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에 의해 복음의 교훈을 분배하도록 인정을 받았고 또 위탁을 받았음을 이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 위임과 권위는 주로 이방인 곧 "너희들을" 위한 봉사를 위하여 그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그는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복음에 대하여 말하면서 다시 "이를 위하여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7절)고 하였다.
여기서도 그는 다시 그의 권위를 주장하였다. 바울은 사역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바울이 스스로 일군이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사도의 영광을 취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경륜의 은사를 따라" 일군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위하여 바울을 택하시고 자격을 주셨다.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모든 필요한 선물과 은혜로써 그를 도우셨다.
즉 때로는 평범하게, 때로는 비범하게, "그의 힘의 능력있는 역사에 의하여" 그를 도우셨다.
이 은혜는 특별히 그에게 역사하였고 또한 그가 전한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하셨다.
바로 이 은혜에 의하여 에베소서인들을 위한 바울의 수고가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그 일에 적절한 사람을 부르시며 또 전능하심으로 그의 일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하나님의 능력의 효율적인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수반하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사도직에 임명하신 동시에 그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에 의하여 바울에게 뛰어난 자격을 부여하셨다.
바울은 계시된 신비한 내용과 진리를 계시에 관하여 설명한다.
(1) 계시된 신비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리라"는 것이다(6절).
즉 다시 말하면 그들이 믿음을 갖게 된 유대인들과 함께 하늘 유업의 동일한 후사가 되고 유대인들과 같이 신비한 몸의 지체가 되며 그리스도 교회에 영접하며 복음의 약속에 참여자가 되며 특별히 성령의 대 약속에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안에서 모든 약속이 예가 되고 아멘이 되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어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일은 복음의 시대에는 "복음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또는 "복음에 의하여"라는 말은 그들에게 전파된 복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 복음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시는 도구요 수단이라고도 볼 수 있다.
(2) 다음 이러한 진리의 계시에 대하여 바울은 언급한다(3-5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복음 교회 안에서 하나로 연합한 것은 대단히 큰 신비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섭리하셨으나 그 일이 성취됨으로써 그것에 대한 예언에 밝혀지기까지는 여러 세대를 지나도록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 둘의 연합이 본문에서 신비라고 불리워지고 있다(그 연합이 이루어질 시기, 방법, 수단이 숨겨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 신비에 관한 몇 가지 요소와 특성이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에게 직접적으로 계시하시기까지는" 하나님의 가슴속에 숨겨져 있었고 비밀로 지켜졌기 때문이었다. 사도행전 26장 16-18절을 보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이 둘의 연함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계시되었으며, 그리스도에 관련이 깊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비라고 불리운다.
이것에 관하여 바울은 앞에서 즉 앞장에서 몇 가지 암시를 주었다. 그러므로 본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또 한 원문을 보다 충실하게 해석한다면, 이것을 주의 깊게 읽으면(우리가 성경을 겨우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성경 내용을 주의 깊게 읽고 면밀히 검토하고 주께 여쭈어 듣고 읽고 배운 것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을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바울의 이방인의 사도로서 어떻게 선택하시고 자격을 주셨는가를 에베소인들이 이해하게 될 것이며 이 사실은 그들에게 바울이 거룩한 권위를 받은 증거를 명백히 깨닫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계속 말한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나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않으셨으니"(5절)
이말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성령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가르침과 영감을 받은 현 시대의 선지자들에게 복음이 계시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 이전의 세대에서는 그렇게 충분하고 명백하게 밝혀지지 못하였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방인들이 회심한 것은 존경할 만한 신비임을 생각해 보고 지나가자.
우리는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누가 이전에 그렇게 오랜동안 어둠 가운데 거하고 그렇게도 먼 곳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운 빛을 받고 가까이로 나오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최악의 실패를 당하거나, 최악의 사람들에 직면하여서나 최악의 상태에 있는 국가들에 대하여도 실망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하겠다.
하나님의 은총 앞에는 이루어지지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취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위대한 은사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도 하나님의 이 역사에 의해 얼마나 큰 혜택을 받았는가! 우리가 비밀이 계시된 시대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특별히 전에 우리는 외인이며 손이었던 나라에 속하여서 엄청난 우상의 세계 가운데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영원한 복음으로 새로워지고 그 약속에 동참자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Ⅲ.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하여 이방인은 위한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사도의 직분을 위임받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그들에게 설명한다.
1. 이방인들에게 그가 전한 것부터 생각해 보자.
바울은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그들에게 전하였다(8절).
본 절에서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는 겸손히 표현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존귀하게 표현하였다.
(1)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겸손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말하였다.
사도들 중의 으뜸이 되는 바울이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 말씀에는 그가 이전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자였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바울은 할 수 있는 한 자신을 낮추어 평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기시는 자들에게 스스로는 겸손히 행하게 하며 자기를 낮추게 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하나님께서는 낮아지는 은사를 주신 자에게는 모든 다른 은혜를 함께 주시는 것이다.
바울이 사도 직분 맡기신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서는 극히 낮게 평가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역자는 비록 그가 자신의 거룩한 직분을 행한 데 대하여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한다고 하여도 자신에 관하여서는 대단히 겸손해야 하고 자신을 낮추어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하자.
(2)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얼마나 높게 표현하였다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8절)이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자비와 은혜와 사랑, 지혜와 지식의 측량 못할 풍성한 보물이 있다.
이 보물이 유대인과 이방인 양편을 다 위한 것이다. 또는 복음의 풍성함이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라고 표현되었다.
이 풍성함은 그리스도가 값 주고 사신 것이요 그리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또한 그 풍성함은 헤아릴수 없는 풍성함으로 우리가 그 한계를 알 수 없고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으며, 다만 계시에 의하지 않고는 복음에 관한 지식을 결코 알 수 없는 그러한 풍성함이다.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생생하게 체득하는 바, 주관적 체험의 산 지식으로 삼으라!!))
이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전하는 것이"바울의 사명이요 직책이었다.
또한 그 직분은 바울이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표현한 은총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이라는 말에는 "나같이 무가치한 사람에게 이같이 특별한 은총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다니!"라는 감격이 서려있음을 보게 된다. 이방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전하게 하심"은 이방 세계에 주시는 무한한 은총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풍성함을 알지 못하고 빈곤한 상태로 남아 있지만 그 풍성함이 우리들 가운데 전하여지고, 우리로 하여금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잘못이다.
2.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전한 말씀의 내용(9절).
바울의 맡은바 직분은 모든 사람에게(전 세계에 공포하여 알림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그의 목적 안에 감추었던) 비밀의 교제가(지금까지 교회에 대하여는 외인들이었던 이방인들이 교회와는 사귐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었다."
이 하나님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었다"라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을 구원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못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의 위대한 사업을 수행하신 것을 볼 때 그가 모든 인류의 구원의 사업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무에서 만물을 창조하신 첫번쨰 창조나, 회개하게 하는 은사로 말미암아 죄인들은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한 새 창조의 역사나 둘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은 진리이다. ((창세전에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예정-선택하사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를 창조하셨던 바, 그것을 현재도 이루고 계신다!!)) 바울은 덧붙여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되어 결국 하늘에 있는 권세의 천신들과 세력의 천신들까지도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10절).
하나님께서 숨겨져 있는 비밀을 계시하여 주신 목적 중의 하나는 천사들에게 이 신비를 알리시려는 것이었다.
즉 이 세상의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권력을 부여받았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한 위대한 권능을 부여 받은 천사들이(보통 때 그들은 주로 하늘에 거하지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된다는 말씀이며 또한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에 의하여 이루어진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그가 지혜로 나누어 주신 여러 가지 일들과 또는 그가 여러 세대를 걸쳐서 그의 교회에서 지시하시던 여러 방법을 통해 나타난 지혜와 그리고 특별히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실을 통하여 복음을 천사들에게 알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우리의 구원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룩한 천사들은 이방인들 가운데도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성함이 전파되었다는 이 신비의 단면을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에 의한 것임을" 그들은 알았다(11절).
어떤 주석자는 ‘카타 프로데신 톤 아이오논’ - 즉 그가 미리 정해 놓으신 매시대에 따라라고 번역한다.
휘트비(Dr. Whitby) 박사 등이 이에 속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초의 시대에서는 구세주에 대한 약속을 타락한 아담에게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지혜의 하나님은 생각하셨다."
두번째 시대에서 그는 유대인들에게 구세주를 성도들, 의식, 희생 제사를 통하여 유형으로 보여 주셨다.
그리고 메시야의 시대 즉 마지막 시대에서는 "유대인들에게 구속자를 나타내 보이시고 그들도 이방인들에게 구속자에 대하여 전하게 하셨다"고 본다.
또 다른 주석자는 현재 영역 성경의 번역을 따라 본문을 이해한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 구원이라는 큰 사업을 이루신 것이라고 본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한 후 이 예수에 관하여 덧붙여 말하기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12절)고 하였다. 이 말은 다른 말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에게 자유로이 마음을 열 자유를 받았으며 그리고 듣는 자들을 설득한 확실한 근거를 얻었으며 하나님에게 용납될 확실한 근거를 얻었다. 또한 우리가 이것을 믿음의 방법에 의하여 우리의 대 중재자시요 변호자로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우리는 무서운 저주가 폐지된 것을 알게 됨으로써 하나님께 겸손함과 담대함으로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며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말씀과 위로를 들으리라고 기대하여도 좋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 중보자를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에 대한 대변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히 말씀드리러 나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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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기도(엡 3:14-21)
이제 우리는 본장의 두번째 단원을 대하게 된다.
본문에는 사랑하는 에베소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바울이 경건하고 열렬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하므로"란 접속사는 "너희를 위한...... 낙심치 말라"는 바로 앞 절과 연결시키는 말씀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하므로"란 말을 사도는 1절에다 연결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
즉 이로써 그는 이탈하여 중간에 삽입하였던 내용을 마무리하고 다시 본론으로 이탈하여 중간에 삽입하였던 내용을 마무리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Ⅰ. 그가 기도를 올린 대상.
그는 1장 3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Ⅱ. 바울의 기도드리던 자세.
그것은 겸손하고 경건한 것이었다. 본문에 "내가 무릎 꿇고 비노니"라고 되어 있다(15절).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을 때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그를 경외해야 하며 또 가장 적합하고 알맞는 행동과 자세로 우리의 경외함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영광스러운 찬송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15절). 보편적인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한다.
"그에게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은 이름을 부여받은 것이다"(15절).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자랑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그리스도로부터 이름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을 영광의 면류관을 쓴 하늘 나라에 거하는 성도들과 이 세상에서 은혜의 역사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여하간 이 둘은 한 가족을 이루게 되며 그들이 실제로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또한 그리스도와 관계 맺음을 고백함으로 둘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부여 받았다.
Ⅲ. 바울이 자기의 형제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구한 것.
그것은 영적인 축복이었다. 이는 가장 최선의 복으로 우리 모두 각자가 자신과 동료들을 위하여 열심히 구하며 기도해야 할 복인 것이다.
1. 그들에게 영적인 힘을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이 영적인 힘은 그들이 부름을 받고 종사하기 위하여 위임받은 일과 의무를 위한 힘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16절)라고 기도하였다.
"속 사람"이 현재 있는 상태보다 더욱 강력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높은 경지의 은혜와 의무를 수행하고 유혹을 물리치며 박해를 견디는 영적인 능력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바울은 "주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이 일은 이루어 지기를 기도하였다. 또는 그의 영광스러운 풍요함에 의지하여 기도하였다.
그 풍성함은 하나님 안에 있는 권능과 자비와 은혜의 풍성함을 말하는 것으로 곧 그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풍성함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 가운데 은혜로서 직접적인 역사를 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주어진다.
이로 볼 때 인간의 속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강함은 가장 최선, 지고지선의 바람직한 힘이며 영원 안에 있는 힘 곧 믿음과 모든 은혜의 힘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봉사하게 하고 우리의 의무를 다하게 하며 활력과 즐거움으로 그리스도인의 해야 할 바를 수행하게 해주는 힘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은혜의 역사가 먼저 시작되면 복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지속되며 수행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가 (실지로 참되게!!)거하실 것을 기원하였다(17절).
그리스도께서는 은혜로운 역사와 영향력을 통하여 주의 백성들과 더불어 항상 현존하여 계시기 때문에 그들 안에 "거하시라"고 그는 기원한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함께 거하심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만약 그리스도의 법도가 마음에 새겨져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거기서 흘러넘치면 곧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거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선한 기독교인들의 영혼을 거주지로 삼으신다. 거기 주의 성령이 거하시며 또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은 바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모든 영광을 공급하신다!!]그리스도께서도 거기 거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이 있는 마음에 거하시며 그 믿음을 끊임없이 훈련시키신다. 믿음은 영혼의 문을 열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인정하게 하며 그에게 순종하게 한다. 또한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안에서 유업을 얻게 된다.
3. 저희 마음 가운데 경건하고 열심어린 사랑을 확고히 해줄 것을 기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18)라고 기도하였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자들인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 확고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의 종들에 대한 얼마의 사랑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궁이에 던져진 가시덤불 같아서 소리만 요란할 뿐 곧 사그러지고 만다.
마음 가운데 사랑이 굳어져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열심히 소망하여야 한다.
어떤이는 이 말씀을 그들이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앎에 있어서 굳건히 세워졌다는 말로 이해한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앎이 그와 다른 사람을 향한 거룩한 사랑에 열심히 나게 고무하였다고 본다.
우리의 영혼 가운데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확고히 함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그렇게 함으로써 언제나 우리는 바울처럼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성취하는 가장 최선의 길을 우리의 영혼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그를 사랑하려는 노력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주를 사랑하는 것은 주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4. 이 사랑을 갖기 위하여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들이 경험하여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우리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친숙하게 알면 알수록 그로 인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주위 백성들을 위한 사랑에 더욱 더 열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위하여 본문에서 기도한다(18,19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그의 백성들을 향한 놀라운 사랑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고 확고히 믿게 되기를 바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성도들이 어느 정도 알고 믿으면 이를 통하여 앞으로 더욱더 잘 알게 될 것이다.(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친밀하게 사랑하며 그분의 장성하신 분량의 충만함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인도따름으로 상승확장충만의 선순환 이루기를 구할 것!!)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성도들보다 뛰어난 이해를 갖는데에만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역사하시는 것과 같이 그들도 동일하게 같이 대우하시며 취급하시리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한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더 깊이-더 높이- 더 넓게-더 길게] 깨닫게 되기를 바라야 하며 성도들에게 이 세상 안에서 갖도록 허락된 만큼의 지식을 얻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성도들이 도달한 정도 이상을 넘어섰다고 [결코!!]자만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얼마나 우아하게 표현하였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구원의 사랑의 차원을 표현하기를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여러 각도로 묘사함으로써 바울은 그리스도 사랑의 놀라운 위대함과 헤아릴 수 없는 풍부함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 사랑에 대하여 욥은 "하늘보다 높고 음부보다 깊고 땅보다 크며 바다보다 넓다"고 고백한다(욥 11:8, 9).
어떤 이는 이 세부적으로 묘사된 말씀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 사랑의 넓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그 사랑이 모든 세대와 사회와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또 그 사랑의 길이라는 말에서 그 사랑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속됨을 볼 수 있고 그 깊이라는 말에서 그 사랑이 죄와 비참함의 수렁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고 자유케 하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까지 미치셨음을 볼 수 있으며 그 사랑의 높이라는 말에는 그 사랑이 우리를 하늘 나라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알도록 소망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랑을 알려는 태도가 모든 성도들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만족을 얻고 신뢰를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또한 기도하였다.
만약 사랑에 지식이 수반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완전히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며 알면 알수록 그 지식을 더욱 더 알고자 애써야 한다.
비록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보다 그리스도인들이 더 잘 인식하고 또 알고 있다고 하지만 하늘 이편의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완전히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다.
5. 바울은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이 말씀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표현이다. 만약 성경 안에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감히 이 말씀을 염두에 두려고 흉내도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신의 본질(성품과 본성, 영광)의 참여자가 되며" "하늘 나라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완전하게 됨을" 의미한다.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이기에] 이 말씀을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의 백성들의 하나님으로서 그가 우리와 더불어 언약을 맺으신 범위 내에서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충만함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하나님의 충만함을 채우고자 소망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은혜와 은사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주시고자 하신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부터 은혜 위에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들의 역량만큼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케 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이 이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기쁨과 지식의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고 그와 완전히 일치되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하여서인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본장을 끝맺는다(20,21절).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대한 영광을 돌림으로 끝맺는 것은 당연하다.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을 표현하고 어떻게 영광을 돌렸는가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히 하실 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에게는 은혜와 자비의 헤아릴 수 없는 충만하심이 있으며 모든 성도들이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한 이 충만함은 결코 다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주시며 또한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시며 또한 지극히 풍성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너희의 입은 크게 벌려 보라.(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나 여호와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전혀 없느니라,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청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에 풍족하심과 전능하신 능력을 생각하게 되고 이로써 우리의 믿음이 용기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본문에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라고 말하였다(20절).
이 말씀을 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증거를 이미 받았고 그 증거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셨으며 그의 은혜로 우리를 소생 시키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에게 돌아오게 하셨음을 나타내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성도들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권능은 그들의 그 능력에 대한 수용력에 따라 좌우된다.
그의 충만하심을 주신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을 그들로 경험하게 하신다.
바울은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주시는 은혜를 구하고자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할 것이다.
그에 대한 영광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돌려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는 그의 모든 뛰어남과 완전함을 고백하고 그의 뛰어남과 완전함의 광채와 그 귀한 결과를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는 교회 안에 있음을 명심하자. 하님께서는 이 세상으로부터 드려지는 작은 영광까지도 교회를 통하여 받으신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워진 거룩한 사회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개개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모여진 사회이다.
이 찬양에 대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모든 은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도달한다.
또 우리로부터 하나님께서 드리는 영광도 같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려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영원무궁하도록 세상이 지속되는 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주께 영광 돌리는 교회를 언제나 갖고 계실 것이며 주의 교회로부터 드리는 영광의 찬송을 영원히 받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멘. 그렇게 이루소서! 그리고 이 일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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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제 3장
=====3:1
@이러하므로 - 이것은 2:22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으나(Lenski, Meyer) 2장전체, 혹은 2:11-22을 염두에 두고 쓴 말일 수도 있다(Blaikie, Wood) 한편 '이러하므로'는 14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 반복은 1절과 14절의 직접적인 연결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비울은 -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갇힌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데스미오스 투 크리스투 예수는 문자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죄인'(the prisoner of Christ Jesus, NIV), 혹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 죄인'(the prisoner for Christ Jesus, RSV)이란 의미이다.
'갇힌 자'는 두 가지 측면 즉 문자적 측면과 은유적 측면에서 사용되었다. 문자적으로 바울이 실제적 구속을 당한 것은 은유적으로 바울이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된 것이다(Lincoln, Lenski). 또한 바울은 '자신이 갇히게 된 것'에서 복음진리 전파 및 공급면에서는 <이방인의 서도로서>'이방인을 위하여'라는 신학적 의미를 도출해낸다.
이방인들도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바울의 복음 선포는 반대자들로 하여금 분노케 하였으며 그 결과로 바울은 체포당하였다(행 21:27-36). 바울의 체포 당함과 투옥은 바울의 사도적 직분 즉 이방인의 사도됨을 시사한다(7, 8절, Meyer, Lincoln).
한편 본문에는 '나 바울'이라는 강조 성격을 띤 (고후 10:1; 갈 5:2; 골 1:23; 살전 2:18; 몬 19) '주어'만 나타나고 동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 바울'과 연결된 동사는 15절의 '무릎을 끓고 비노니'로서 이것은 2-13절이 하나님의 은혜를 근거로 중보 기도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 삽입된 것임을 시사한다. 삽입된 내용은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이다.
=====3: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 '경륜'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안'(* )은 '하나님의 계획이나 경영'(1:9) '관리하는 실제적 행위'(9절, 1:10) 등을 의미하는데 본절에서는 '집안 관리를 맡은 직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Lindemann, Houlden, Lincoln, Wood).
이것은 이방인을 위한 바울의 사도직을 시사한다. 골 1:25에서는 '오이코노미안 투 데우'(*, '하나님의 경륜')라고 한 반면에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 오이코노미안테스 카리토스 투 데우)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바울이 받은 사도 직분이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시사한다(행 11:23).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 자신이 과거에 교회를 박해하던 자로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 복음을 이방인에게까지 전하는 도구로 삼아주신 것을 나타낸다(행 9:15).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 혹자는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게 에쿠사테'(*)를 '만일 너희가 들었다면'(If ye have heard, KJV)으로 해석하여서 본 서신의 수신자들 중에서 바울 사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한다(Bruce). 그러나 문맥상 본문은 '너희가 확실히 들었기 때문'(For surely you have heard, NEB) 또는 '너희가 분명히 들었다'(Surely you have heard, NIV)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Foulkes, Lincoln).
즉 본문은 바울이 어떻게 사도직을 수행(遂行)하게 되었는가를 에베소 교인들이 이미 확실하게 들었음을 시사한다(Meyer).
=====3:3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 '계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립신'(*)은 문자적으로 '드러낸다', '베일을 벗기다'를 의미한다.
'계시'는 하나님이 당신을 인간에게 제시하는 방법으로 성령의 감동과 조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본절의 '계시'는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겪었던 경험을 암시한다(Wood, Bruce,Lincoln).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비밀' 즉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획을 알게 되었다.((또는, 예루살렘 방문시 성전에서 본 환상을 통하 계시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비밀'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하나님 나라에 용납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킨다(행 26:17, 18; 갈 1:16, Lincoln, Lenski, Meyer,Foulkes).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 바울은 본절에서 이미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대략적으로 기록하였음을 밝힌다.
바울이 이미 기록한 것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의 다른 서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갈 1:12, 16이라고 주장한다(Houlden). 그러나 '대강'이 바울의 다른 서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Lincoln). 따라서 그것은 다른 서신이 아닌 본서의 내용으로 1:9, 10과 2:11-22을 암시한다(Bruce, Wood,Meyer).
=====3:4
@이것을 읽으면 - 혹자는 본문의 '이것'이 구약의 예언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본절은 구약에서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읽고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Hort). 그러나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호...아나기노 스콘테스'(*)에서 '프로스'는 일반적으로 '...에 관해서'(with regard to, with reference to)를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에 따라서'(in accordance with)를 의미하여 '이것을 읽음으로 말미암아'를 뜻한다(Lincoln). 따라서 '이것'은 앞절에서 언급한 '대강 기록한 것'을 가리킨다(Wood, Mitton, Foulkes).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 바울이 앞서 밝힌 하나님의 계획을 잘 읽으면 에베소 교인들도 바울이 계시로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 함축된 비밀 즉 그리스도의 인격, 사역 특별히 이방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연결짓는 그의 구속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이 곧 하나님의 비밀이다(Meyer, Bruce).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비밀'이며(골 1:26, 27;2:2), 이 비밀은 복음을 선포하는 가운데 나타난다(고전 2:1).
한때 이 비밀은 감추어졌던 것이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밝히 드러난 것이다(요 16:13; 고전 2:12; 골 1:28).
=====3: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나타내신 것같이 - 본절은 영원 전부터 감취었던 비밀이(롬 16:25), '이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밝히 드러났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결정적인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초대 교회 당시부터 현재의 시대까지를 의미한다 하겠다(Merklein, Gnilka).
한편 골로새서에서는 이 '비밀'이 '성도들'에게 계시되었다고 되어있는 반면(골 1:26) 본절에서는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계시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교회에서 사도와 선지자들이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사도 바울의 표현과 연결된다(2:20).
'선지자들'에 대해 혹자는 '사도들'과 동일한 것으로 주장하나(Lenski), 신약 시대의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2:20).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수식하는 '거룩한'은 '하나님에게 구별된'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계시를 받기 위해 하나님에게 구별된 하나님의 특별한 사신(使臣)과 도구임을 시사한다(벧후 1:21, Meyer, Lincoln, Wood).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 '다른 세대'는 앞서 언급된 '이제'와 대조적인 개념으로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 즉 구약 시대를 가리킨다(행 14:16;17:30).
한편 '사람의 아들'은 히브리적 표현으로 70인역에는 자주 나타나는 반면에 신약성경에는 본절 외에 단 한 번 나타난다(막 3:28). 혹자는 '사람의 아들들'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대조 개념으로 이해하나(Blaikie) 그것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이스라엘의 아들들'과 대조적인 것으로 구약 시대의 이방인을 총칭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Wood).
=====3:6
본절은 구약의 이방인들이 분명히 깨닫지 못한 '비밀'의 내용이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맘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됨이라 - 그 비밀이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된 이방인들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죽고, 장사(葬事)되었다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골 2:12-15).
이방인의 참여를 나타내기 위해서 바울은 '쉰'(* , '함께')으로 시작하는 세 단어를 나열한다. 바울은 '쉰'으로 시작하는 자신이 만든 조어를 통해서 단순히 유대인과의 연합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취된 새로운 연합체 혹은 통일체를 언급한다.
이 '통일체'는 옛 구분이나 범주를 초월한 것으로 이방인도 그것의 구성원이 된다.
@함께 후사가 되고(* , 슁클레로노마) -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자'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롬 8:17; 갈 3:29;4:7). 그들이 공유하는 '유업'은 성령을 통해서 이미 참여하고 있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을 의미한다(1:14, 18;5:5).
@함께 지체가 되고(* , 쉿소마) - 이것은 이방인들도 그리스도께서 머리가되신 교회(엡 4:15;5:23; 골 1:18)의 지체가 됨을 의미한다. 이방인도 유대인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Wood, Bruce).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에이나이...쉼메토카 테스 에팡겔리아스) -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이다(창 12:1-3). 과거에 이방인들은 '약속의 언약'에 대해 제외된 자들이었다(2:12).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속함으로' 아브라함의 약속 즉 생명과 구원의 약속에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갈 3:22, 29).
=====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 바울이 일꾼이 된 목적은 복음을 모든 이에게 특히 이방인에게 전파하는 것이다(고후 3:5;4:1). 이런 복음 전파 사역은 바울 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셨음을 고백한다(1:19; 골 1:29). 그 역사하심은 성령의 내주로 바울의 삶 전체에서 일어났다. 바울이 말씀과 하나님의 계획을 잘 이해해서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통해서였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 '일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스'(* )는 본래 '손님 식탁에서 시중드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섬기는 자를 의미한다. 바울은 자신이 이런 직분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 자신을 선택해 주시고, 부르셨으며, 능력을 부여하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1:6, 7) 바울 자신이 과거에 교회의 박해자로서 도저히 그 직분을 감당할수 없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복음 사역의 직분을 주셨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에 대해서 혹자는 후대 사람들이 바울의 겸손을 드러내기 위해서 개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B.S. Easton). 그러나 과연 후대인들이 바울을 낮추는 말을 썼는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C. Spicq, Wood). 왜냐하면 본절만 갖고 진정성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Lincoln). 또한 바울이 다른 서신에서도 자신에 대해 '지극히 작은 자'(고전 15:9, 10),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절의 바울 고백은 신빙성이 있다. 바울의 이 고백에 대해서 혹자는 인위적이고 과장된 표현이라고 주장한다(Mitton). 그러나 수사학적인 화려한 묘사가 아니라 과거에 교회의 박해자였으며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육체에 하나님을 거스리는 나쁜 욕망(欲望)으로 가득차 있다(롬 7:18; 딤전 1:13-15)는 죄의식에서 비롯된 겸손이다(Blaikie).
한편 '은혜를 주신 것'은 바울 자신이 받은 직분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시사한다(Lenski, Blaikie).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 바울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직분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이방인'에 해당하는 혤라어 '에드네신'(* )은 '경멸'을 뜻하는 용어이다. 바울은 이방인을 욕되게 부르는 용어를 사용해서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베푸신 은혜와 축복이 지극히 큰 것임을 나타낸다(Blaikie). 이방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한 것이다.
한편 '측량할 수 없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넥시크니아스톤'(* )는 '밑바닥까지 도달할 수 없는' 혹은 '한계가 없는'을 의미하는 것으로(Mitton) 주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으나(LXX, 욥 5:9;9:10;34:24; 롬 11:33),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풍성'과 관련된다.
'그리스도의 풍성'의 헬라어 '플루토스 투 크리스투'(* )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Lincoln). (1) 주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해서 '그리스도'가 구원을 소유하신 자이며 수여하시는 자임을 시사한다(Meyer). (2)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그리스도 자신이 복음의 풍성함의 내용임을 시사한다(골 1:27;2:3).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과 긍휼 그리고 구원의 은총과 은사를 가리킨다(Bruce, Wood,Lenski). 바울은 이런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해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 바울의 사명은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비밀의 경륜'이 공인본문(Textus Receptus)에서는 '코이노니아 투 뮈스테리우'(*, '비밀의 친교')로 되어 있다(the fellowship of the mystery,KJV). 그러나 대부분의 사본에는 '코이노니아' 대신 '오이코노미아'(*, '경륜')로 되어 있다(Foulkes). 또한 '경륜'은 '계획'(plan, RSV)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의 은총을 베푸시고자 하는 계획을 가리킨다. 이런 계획은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비밀을 감추었다는 의미로 비밀의 신적 출처를 시사한다(Lincoln).
한편 바울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당시의 거짓 교리 즉 영지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Bruce, Wood).
영지주의자들은 이분법(二分法)을 이용하여서 '창조주'와 '구속주'를 구별하였다.
바울은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계획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인간을 구속하시고 자신과 화해시킴으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를 화목하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가시는 분이 곧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라 선언하고 있다.
이는 구속주와 창조주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한분이신 하나님이심을 천명한 것이다.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베푸신 은혜의 계획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다.
=====3:10
본절은 '히나'(* , '...하기 위하여')로 시작한다. 이는 본절이 앞서 언급한(8, 9절)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나게 하는 목적임을 시사한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 이방인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드러내게 하는 것은(8, 9절) 바울의 사명일 뿐 아니라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Wood).
교회는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알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정사와 권세들'은 '하늘에 있는 선한 천사들'을 가리킨다(Hendriksen).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인간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간절히 알기를 원하고 있다(벧전 1:12).
교회는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각종 지혜'는 9절의 '비밀'과 같은 것으로(Lincoln)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완전히 계시된(2:6-10) 하나님의 구속 게획을 가리킨다.
천사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무너져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교회를 통해서 감취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된다.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 본절은 바울과 교회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영원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계획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하신 것이다.
본절의 '하신 것이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포이에센'(* )은 문자적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를 지니나 본절에서는 '성취했다'를 의미하는 것으로(accomplished, NIV,achieved, NEB) 단순히 '이루셨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의 성취'를 시사한다(Wood, Lenski).
본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실행하셨음을 시사하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중재하시는 '선재하신 중재자'(pre-existent mediator)이심을 나타낸다(Lincoln).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 본절에서 바울의 관심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선포에서 구속함을 받은 성도인 자신과 에베소 교인에게로 바뀌었다.
'담대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르레시안'(* )과 '나아감'의 헬라어 '프로사고겐'(*)은 담대히 나아감을 강조하기 위한 이사 일의(二詞一意)이다(Lincoln).
여기서 '파르레시안'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의미한다(Wood, Lenski). (2)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히 4:16;10:19, Foulkes). 이 두 가지는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파르레시안'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이 나아가며 동시에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아뢸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징계하시며 심판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이라기 보다는 언제든지 나아가서 대화할 수 있는 친근한 아버지이시다(마 7:10,11; 롬 8:15; 갈 4:6).
한편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테스피스테오스 아우투'(* )는 문자적으로 '그의 믿음을 통해서'라는 의미로 혹자는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arth, Mitton, G.E. Howard). 그러나 그것은 본서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1:13,15, 19;2:8)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신 득의를 통해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롬 5:2, Lincoln).
=====3:13
@그러므로 - 이것은 본절이 앞서 언급한 전체 내용과 상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Meyer). 비록 바울 자신은 '갇힌 자'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한 바울과 에베소교인은 담대함을 갖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 본절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이다. (1) '낙심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카케인'(*)의 주어가 헬라어 본문에서는 명확치 않기 때문에 '바울 자신이 낙심치 않도록 기도 부탁을 했다'는 의미이다(Origen, Jerome, Theodore, Goodspeed). (2)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낙심치 않게 하기 위해서 지금 기도하고 있다는 '기도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3)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낙심치 않기를 부탁하는 것이다(Mitton, Lincoln). 본절에 대한 세 가지 해석 중 마지막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 첫번째 해석의 경우 만약 바울 자신의 절망 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본절에서 '나의 환난'이라고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Lenski). 두번째 해석의 경우 '구하노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투마이'(* )는 기도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이는 '기도를 드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본절을 기도문(祈禱文)으로 해석하기 어렵다(Foulkes). 따라서 본절은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 자신의 환난으로 인해서 낙심하지 않기를 부탁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NIV, RSV, NEB, Meyer,Wood, Lenski).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 바울은 본문에서 에베소 교인을 위하여 당하는 자신의 환난이 에베소 교인의 영광이 된다고 말함으로 '자신의 고난'과 '에베소 교인의 영광'을 대조 병렬시키고 있다. 바울 사상에 있어서 '고난'은 '영광'의 전제 조건이다(롬8:17, 18; 고후 4:17).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고난당하는 사람이 후에 영광을 받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바울 사도의 고난이 에베소 교인의 영광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겪는 고통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채워져야 하는 남은 분량의 고난으로 알고 기뻐했던 것과 일맥 상통한다(골 1:24).
이러한 선포를 통해서 바울은 자신이 현재의 고난을 장차 얻게 될 지극히 큰 영광을 예비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처럼(고후 4:17) 에베소 교인들도 바울의 현재 고난이 미래의 교회에 미칠 그리스도의 영광에의 참여라는 사실을(롬 8:17) 깨닫고 낙심하지 않기를 권면한다.
=====3:14,15
@이러하므로 - 이것은 1절과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한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증 후에 다시 '베라카'(* , '축복')로 돌아가 중보 기도를 한다.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 '각 족속'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사 파트리아'(* )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 '모든 부권'(all fatherhood)을 의미한다(Bruce, Barclay). (2) '모든 족속'(the whole family)을 의미한다(Wood, Lenski, KJV, NIV). (3) '각 족속'(every family)을 의미한다(Foulkes,RSV, NEB).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족속'에 해당하는 헬라어'파트리아'는 '한 아버지나 조상'에서 비롯된 사람들의 그룹을 가리키는 말로서 (Robinson) '아버지'(* , 파테르)와 상관성은 있다 할지라도 '부권'(fatherhood)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모든 족속'의 의미를 지니려면 '관사'가 있어야 하는데 본절에는 관사가 없다. 따라서 '파사 파트리아'는 '각 족속'을 의미한다(Lincoln, Foulkes). 그러나 그 '각 족속'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구성원이 된 믿음의 족속임을 전제로 하며(Caird) 구속(救贖)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Mitton). 한편 혹자는 '하늘에 있는 각 족속'은 천사를 가리킨다고 본다(Lincoln). 후기 랍비들은 천사를 의미하는 상부 가족(upper family)과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하부 가족(lower family)을 분류했다. 따라서 '하늘과 땅에있는 각 족속'은 '각 족속'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으며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임을 시사한다(Lincoln).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끓고 비노니 - '이름을 주신 아버지'는 앞서 언급한 구속론적 차원의 '아버지'(2:18)와 '만물의 창조자'로서의 '아버지'(9절)와 상관성을 갖는다(Lenski). 구약에서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그것)를 존재케 하며 또한 그(그것)를 지배함을 가리킨다(시 147:4; 전 6:10; 사 40:26). 이것은 '아버지'가 각 족속의 창조자이며 주(主)이시며 모든 존재의 의미가 되심을 시사한다(Lincoln). '아버지'는 더이상 심판자가 아니라 '친근한 분'이시다. '앞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는 친근한 사람과 마주보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 바울은 '무릎을 끓고' 중보 기도를 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서서 기도하는 것이 관례였으나(마 6:5; 눅 18:11), 바울이 무릎을 끊고 기도하는 것은 바울의 '간절한 마음'과 '복종'을 의미한다(Foulkes, Wood, Lenski).
=====3:16
@그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본절에서 바울은 '속 사람이 강건해지기를' 기도한다. '속 사람'은 인간의 '영', '마음', '이성과 의지가 활동하는 인격'을 가리킨다(Foulkes).
성경에서 '속 사람'은 '겉 사람' 즉 육체에 속하여 부패한 사람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롬 7:22;고후 4:16)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속 사람'은 성령을 통해서 능력으로 강건해진다.
본절에서의 '성령'에 대한 언급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속 사람에 날마다 내주하셔서 역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내주하신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전 16:13; 빌 4:13).
한편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이루어진다.
'영광'은 하나님의 안전한 행위를 시사하는 것으로(Lincoln) 하나님의 모든 속성 즉 사랑과 은혜, 지혜의 무한함과 영원함을 포함한다(Lenski, Bruce).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선물의 기준이며 규범이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리스도인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능력을 부여함으로 속 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하며 강건하게 하심을 시사하며 그리스도인들이 간구하는 것 이상으로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확신을 나타낸다(Lincoln).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 본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내주(內住)는 앞절에서 언급한 성령의 내주와 정교한 병행 관계를 형성한다.
바울은 '속사람'과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의 기능'과 '성령의 역할'을 세심하게 병행시킴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성령 사이의 아무런 차이점도 경험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고전 15:45; 고후 3:17; 갈 4:6, Lincoln).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내주를 경험한다(요 1:12;14:20;17:21; 롬 8:9, 11; 고전 3:16).
'내주'는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항상 함께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곳은 '마음'이다. '마음'은 인격의 중심으로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전인(全人)의 사고와 감정과 의지를 나타낸다(Mitton, Lincoln).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것으로(마 7:15-20;24-27장),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믿음'과 연결짓는 반면에(골 1:23;2:7) 본절에서는 '사랑'과 연결짓는다.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이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토양으로서(Lincoln) 그리스도의 내주의 결과이다(Mitton). 이 '사랑'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다(Schnackenburg). (2)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다(Meyer,Abbott, Gnilka).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에게 부어주신 것으로(롬 5:5), 이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은 물론 타인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3:18,19
본문은 두 개의 '히나'(* , '위하여')로 이루어진 목적절이다. 바울의 중보기도 목적이 본문에 두 가지로 나타난다.
@능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시스퀴세테'(* )는 '강건해지게'(may have power, NIV, RSV)라는 의미이다.
헬라어 본문에서 '엑시스퀴세테'는 '히나'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강건해지는 것[=속사람이 강건해짐= 경험하고 체득된 JC의 사랑 경험을 붙들기에 요동없이 견고함] '이 바울의 중보 기도의 목적임을 시사한다.
@모든 성도와 함께 -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강건해지기를 간구한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신비적인 지식이나 혹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속한 것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실지로 체험 통해 참되게 알아야 하는 목표임을 시사한다(Bruce, Lenski, Lincoln).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 본문은 헬라어 본문에서 19절에 속하며, 개역성경의 19절 중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는 헬라어 본문에서 18절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직접 생생하게 삶속에서 체험하고 깨달은 바, 곧 체험하여 참되게 아는 바, 체득된 JC의 사랑>'은 다음 절에서 언급된 네 가지 차원의 대상이 된다(Mitton, Calvin, Meyer, Abbott, Moulden). 바울은 본절에서 '알아'(* , 그노나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단순히 지식적인 이해가 아니라 인격적인 체험 통해 체득된 경험적 지식임을 보다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Lincoln). 한편 '지식에 넘치는'은 다음 절에서 언급된 네 가지 차원을 표현한 말로서 인간 지식의 한계로는 광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결코 다 이해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고전 8:1;13:2, Foulkes, Wood). 하지만 '지식에 넘치는'이란 말은 '지식'의 중요성을 격하시키려 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적(성도 각자마다 꼭 구비되어야 할 주관적 체험), 영적 깨달음 통한 살아 생동하는, 발휘되는 믿음에 연결되는, 계시된 산 지식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반복해서 강조한다(3-5, 9절;1:9, 17,18;4:13;5:17).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의 헬라어 '토 플라토스 카이 메코스 카이 휩소스 카이 바도스'(*)는 하나의 관사 '토'에 의해서 제한된다. 이것은 네 가지 차원의 통일성과 전체성을 나타내어 그리스도의 사랑의 광대함을 상기시킨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인간의 지식으로 가히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풍요를 시사하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전 구속 사역이 또한 그러함을 암시한다(E. Percy, Bruce).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본절은 바울의 중보 기도의 절정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을 [참되게]획득하기를 기도한다.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의 헬라어 '에이스 판 토 플레로마'(* )에서 '에이스'는 하나님의 충만을 향해 [중단없이, 영속적으로]나아가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종말론적 차원에서 해석된다.
교회는 이미 충만함을 받았으나(1:23; 골 2:10), 또 한편으로는 충만으로 채워져 가야 하는 것으로(4:13;5:18) 이는 바울의 종말론('이미'와 '아직')을 이해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하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은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 통치를 의미한다(Lincoln).
또한 바울이 이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것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량의 충만함을 바라는 것이라기보다(NEB, Barclay)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충만함'(the fullness which God requires, NEB)으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는 것이며(4:11-13) 하나님이 허락하신 온전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Hendriksen).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것은 성령의 내주(16절)와 그리스도의 내주(17절)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18, 19절)을 통해서 성취된다.
=====3:20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 본문은 앞서 언급한 중보 기도의 성취에 대한 확신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이제까지 드린 중보기도를 성취하실 뿐만 아니라 '더 넘치도록' 풍성하게 이루어 주실 분임을 확신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내주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하게 실현시키실 것임을 시사한다.
=====3: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니 -'영광'은 하나님의 지위나 명예의 고양된 광휘(光輝)로서 하나님의 인격이나 능력의 어떠함을 참되게 드러냄이다(Lincoln). 바울은 하나님께 이런 영광을 돌리면서 그것이 실현되는 두 가지의 영역을 언급한다.
(1)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 교회는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에게 까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실현된 곳으로(6-10절),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원하신 구속주이며 그 둘을 통일시키는 분이시다(Foulkes). 따라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마땅하다.
교회안에서와 그리스도안에서, 이 두 가지 영역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의 지체들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멘 - 이는 히브리어 '아멘'(* )을 음역한 것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씀의 확실성과 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로 사용했으며(마 5:18;막 9:1; 요 10:7) 사도들은 서신서의 송영으로 사용하였다(롬 15:33;16:27; 고전16:24; 갈 6:18).
이것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혹은 '그렇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라는 의미로, 바울은 하나님의 은총과 게획이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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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 교회를 통해 보는 에베소서의 깊이@@@ 에베소서는 많은 신학자들에게 바울 신학의 핵심을 깊이 있게 풀어내는 서신으로 높이 평가됩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접근해 왔던 에베소서는 가정이나 직장 생활의 길잡이, 혹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풍성한 삶에 관한 세미나의 본문 정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에베소서가 그 처음부터 말하는 창세 전의 예정과 그 안의 신비한 섭리에 대한 깨달음 없이 에베소서를 이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깊이로 나아오라 우리를 초청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에베소서가 인간적인 도움을 주는 묵상으로 끝나지 않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합시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에 대해 더 깊이 깨달으며 그 은혜를 누리길 기도합니다.
---하늘을 움직이는 교회의 영향력과 사명 지난 시간, 우리는 천사나 마귀나 교회를 통해 선포될 하나님의 신비한 지혜를 알고 싶어함을 나누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던 비밀한 경륜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공유하며, 주님의 뜻을 함께 이루어 드리는 그의 신부입니다. 이 놀랍고도 신비한 섭리 안에서, 10절의 ‘하늘’에 주목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늘’은 크게 세가지 정도로 그 의미를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Sky, 자연으로의 하늘입니다. 다음은 Cosmos, 즉 우주적 공간입니다. 마지막으로 Heaven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상의 공간, 혹은 영적 존재들이 활동하는 영계의 두 가지 의미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에베소서에 등장하는 하늘은 대부분 Heaven으로, 10절의 하늘은 전반적인 영적 세계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할 바가 여기 있습니다. 교회가 영향을 끼쳐야 할 자리, 교회가 사명을 감당할 영역에 Heaven, 곧 영적 세계가 속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 땅에 세워진 교회를 향해, 하늘의 일들을 바라보고 행하라 말합니다.
처음으로 교회가 선포되었던 마16:18~19을 봅시다. 주님은 대적의 문을 취하는 자들이 될 것이라던 아브라함과의 약속으로 교회를 선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땅에 세워진 교회에게 하늘을 닫고 여는 열쇠가 주어졌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서 하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하늘을 매기도 하며 풀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본을 보이며 가르쳐주신 주기도문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교회가 기도할 때,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열리고 풀어지게 됩니다.
구약 역시 하나님의 집, 교회가 땅에 있으나 하늘에 속하여 영계를 움직임을 말합니다. 에서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집을 떠난 야곱은 그가 잠든 곳에서 하늘까지 연결된 사닥다리와 그 위를 오르내리는 천사들을 보고 말합니다. “이 곳이 하나님의 집이며 하늘의 문이다.” 이는 교회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임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의 21일 기도와 그 응답의 과정 역시, 교회가 영적 세계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함을 보여줍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공유하며 그 뜻에 동참하여 동역할 자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JC이름으로 HS따라 행하는 ㄱ리스도의 몸인 교회, 우리뿐입니다. 하늘에 속하여, 하늘을 움직이는 교회가 땅의 기관으로 남지 않길 기도합시다. 오직 그리스도와 한 영된 우리를 흥분시키고, 감동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일들이 오직 하늘에 속한 것이길 기도합니다.
자칫 세상염려때문에 이 땅의 일들로 낙담하거나 좌절하거나 분노하거나 탐욕을 부리다가, 진정한 소망과 능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땅을 살되 이 땅을 초월하는 우리의 삶이 승리안에서 한 걸음씩 전진해가기 위해, 영적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사수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곳, 바로 하늘의 자리입니다.
---교회로 충돌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어둠의 나라 두 번째로 주목할 주제는 ‘정사와 권세들’입니다. 이는 개역한글 버전본문이고, 개역개정 성경에는 ‘통치자들과 권세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대상들은 에베소서 전반에 걸쳐 등장합니다. 3장 10절 본문 뿐 아니라, 에베소서 1장 21절의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 2장 2절의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지막 6장의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나옵니다. 앞서 살펴 보았던, 에베소서에 등장하는 통치자나 권세들이 대부분 어둠의 영들을 지칭함과는 달리, 3장 10절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수종 드는 천사나 마귀를 포함한 하늘의 모든 영적 존재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에베소서의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영적 전쟁과 연결하여, 우리가 싸울 대적인 어둠의 영들에 대해 더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엡6:12이 말하듯, 어둠의 영들은 계급에 따라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왕자/분봉왕급인 정사, 방백/장군급인 권세로서 하늘의 악한 천사들, 그 아래로 어둠세상의 주관자와 더 하위급의 귀신/능력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HS따라 진군하는 JC이름의 기치를 든 영적 군대들인 교회로서 우리의 대적이며, [영적영역의 최전선에 선, 그러나 JC께서 이미 이긴 바로 그 승리를 인해 믿음으로 이미 이긴 영적 전사들의 유기적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영향을 받아야 할 대상이란 점입니다.
[교회는 이제 당당하게 서서, 이미 이긴 승리자 만유/만물의 주, 실제적인 통치자 전능왕 JC이름으로 대적하며 선포해야 합니다.
"모든 미혹케 하는 영들아 너를 묵꼬 결박하며 대적하노니 ~에게서 나와, 무저갱에 들어가라", 저들이 사로잡은 바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 얻을 수 있도록
"네게 재갈물리며 너를 결박하고 ~에게서 추방하노니 ~을 풀어 놓어 자유케 하고 너는 무저갱으로 떠나라' 명하며, 더 나아가
"JC이름으로 명하노니 ~를 사로잡고 미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하는 모든 정사-권세-능력-주관자-마귀/악령들아 너희는 너희를 이기신 JC이름으로 명하노니 재갈 물림과 결박받아 무저갱으로 떠나라"고 통제해야 할 선포명령의 대상입니다.]
보이는 세계이든 보이지 않는 세계이든 교회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드러나듯, 영광스러운 나라에서나 어둠세상의 정부를 향해서도 교회로 하나님의 소리가 선포될 것입니다. 이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둠의 나라와 충돌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여야 함의 당부입니다. 주님이 다스리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깊이 성찰하고 회개하여 주님의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그 사명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주님의 뜻에 따르지 않는 교회, 곧 주님의 통치에서 벗어난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교회 주 그리스도의 몸인 범사에 승리하는 교회가 아니라 단지 무능력한, 땅에 속한, 이름뿐인, 담임목사의 나라, 장로의 나라, 돈 잘 쓰고 정치 잘하는 그 누군가의 나라로 전락해버릴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한 분 JC 주님뿐임을 기억합시다. 교회가 주께서 운행하시는 그의 나라가 될 때, 어둠의 나라와 맞서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습니다.
---고요히 숨어있던 어둠의 나라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나라, 교회 이 세상보다 더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는 영적 세계와 그 안에 속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교회. 이를 경험하며 알아갈수록, 사역의 방법도 분명해집니다. 그 어떤 집회에 초청 받아 참석하든지, 오직 영적 세계를 바라보고 씨름하며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그 곳에 임합니다.
치유와 부흥의 열매들이 맺어져 감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때 주어지는 전리품과 같습니다.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을 상대하기 시작할 때, 교회로 승리하는 경험이 더 넓고 깊어집니다. 어느 해 한 청소년 연합 수련회 사역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캠프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아이들로 인해 애타는 마음이 끓어올랐고 스탭들이 모여 금식하며 수 시간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그 느낌과 거리낌, 답답함의 근원이] 무엇때문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물으며 몇시간 동안 무릎 꿇고 부르짖고 기다림 가운데, 그 자리에서 주님은 우리가 싸울 영적 대상이 그 지역과 그 사역지를 주관하던 영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 저녁 집회 시간, 끝까지 예배와 기도로 씨름하던 중 이윽고 영적 공기가 한순간에 바뀌며 참석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적 세계를 향해 외쳐야 할 소리가 무엇인지 알려주셨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급격하게 변화된 아이들과 함께 돌아오던 길, 저는 어둠의 정사와 권세가 내뱉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이 땅이 하나님의 땅이라고 외친 자들이 없었는데...” 아직도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임이 선포되지 않은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교회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진동이 시작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밟는 땅마다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나며, 그로 인해 어둠의 영들이 쫓겨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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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정사)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엡6:10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 [[하늘영역의 악한 영((공중권세 잡은 자))의 체계....= 정사(사탄의 수구회의 ??..파멸을 기획/명령) + 권세(방백/장관/군장들-각부장관 역할??)]] +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능력]] (하위 명령 분배/실행하는 악한 영/마귀들 : 나라민족백성방언지역가정개인들을 각각 담당하여 구체적인 파멸 유도)
---- 바울은 본문에서 교회가 영향을 줘야 할 자리가 우리 주변뿐 아니라,'하늘에' 있다고 말합니다.
---‘정사’와 ‘권세,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이란?
**첫 번째, 선악간에 모든 높은 위치에 있는 영적 존재들이 하늘영역과 공중에 존재함을 뜻합니다. **두 번째, 그중에서 어둠의 악한 영들이라 함은, 공중권세, 곧 공중에 자리잡은 사탄의 정부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둠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단의, 기만적 정사와 권세와 주관자라고 하는 계급체계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정사’는 왕 급의 영들, 가장 높은 레벨의 영들입니다.
이들은 한 도시를 통치하기도 하고 한 지역이나 영역을 다스리기도 합니다. (계시록 9장 11절에 대표적으로 아볼루온이라는 이름의 왕 급의 영이 나옵니다.)
정사가 결박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열립니다.
마태복음 12장 28-29절에 보면 강한 자를 결박해야 세간을 늑탈할 수 있다고 나옵니다. 강한 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이기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1장을 통과하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배웠습니다.
[Q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호흡보다, 의식보다 더 기까우신 내주하신 HS, 곧 JC의 영으로 JC를 살고 있는 성도 각자가 바로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정사와 권세들을 이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이름 앞에 굴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땅을 취해야 합니다. 강한 자가 결박되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전리품이 돌아옵니다.
>>‘권세와 주관자들’은 정사급의 높은 레벨의 영이지만 정사 밑에 있고 많은 어둠의 영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많은 귀신을 거느리는 주인급의 바알세불과 같은 영들을 뜻합니다. >>‘악의 영들<악귀, 마귀>’은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는 귀신들(마 8:16, 막 7:29)입니다.
이들은 상위 레벨의 영들에 의해 끌려다니기도 하고 우리 몸 속에 들어오기도 하는 하위 레벨의 졸병들입니다.
**세 번째, 땅의 정사와 권세를 뜻합니다. 물론, 모든 권위와 권세는 하늘로부터 옵니다.
이 일이 교회,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와 연결돼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땅의 정사와 권세가 하나님을 대적할 때 끝까지 승리한 역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이 나라 위정자들이 하나님 앞에 패역하지 않고 대적하지 않도록 교회가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땅의 왕들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계 10장 11절에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이 종들을 일으켜 왕들에게 예언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지역에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 어둠의 정사와 권세들을 파하고 결박하고 이 도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 하겠습니까?
교회가 기도로 땅에서 묶고 풀 때 하늘에서 묶이고 풀립니다. 우리가 기도를 계속할 때 기도가 성장하고 하늘의 정사와 권세와 주관자, 어둠의 영들을 묶입니다.
---기도의 1단계(첫 번째 하늘) : 어린아이의 단계
기도의 첫 단계는 ‘어린아이의 단계’입니다. 이 기도의 특징은 계속 구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하는 기복주의적인 필요 중심의 정보를 나열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 대적기도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은 먹을 것, 입을 것을 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넓고 자애로우신 주님은, 이런 기도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자에게는 어린아이들수준의 기도가 한층 성장성숙하도록 차츰 이끌어 가시고 이윽고 두 번째 단계에 올라가게 하십니다.
---기도의 2단계(두 번째 하늘) : 청소년의 단계
두 번째 단계의 기도부터 영적 발돋움이 시작됩니다. 성령세례, 방언, 은사 등이 열립니다. 이 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도 하고 안 들리기도 합니다. 영적인 업 앤 다운이 있는 이 ‘청소년’ 단계를 ‘사춘기적 기도’라고도 합니다. 이 때 반드시 거쳐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멘토가 있어야 합니다.
은사가 나타날 때 반드시 질서 아래 들어가야 합니다. 권위 아래에서 분별 받고 지도 받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2) 말씀의 정립을 해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의 체계를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서와 진리, 울타리를 잘 세워야 합니다.
3) 내적치유(특히 참소하는 영의 속임/모든 더러운 패러다임에서 주하나님의 어떠하심의 패러다임안으로 들어감!!)입니다.
우리의 많은 파편이 이 안에 박혀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치유 받아야 합니다. 치유는 성숙해가는 과정입니다. 성령님은 문제가 없는데 우리 안의 창이 더러워서 성령의 역사들을 굴절시키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우리를 깊게 보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내적치유는 성화의 여정입니다. 내면의 나와 대면하면서 치유되는 일들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의 3단계(세 번째 하늘) : 성년 단계
영적인 사춘기적 시절을 지나면서 좋은 공동체 안에서 멘토링 받으며 계속 기도생활을 하면 세 번째 하늘이 열립니다. 이 때를 ‘성년기’라고 표현합니다.
영으로 인도받는 단계입니다. 하늘이 열려 하늘의 세계에 영향을 주는 기도가 시작됩니다. 이 때부터 내가 원치 않아도 기도가운데 정사들이 부딪히게 됩니다. 이때 비로소 영이 분별됩니다. 영분별은 진리체계가 선명해지면서 열립니다. 간혹 이 단계에서는 ((마땅히 아직도 처리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영적 상채기들이 마저 탐지되고 JC와 합일됨의 산 경험 통해 극복되어 평강가운데 나타나야 함!!)) 영적 학대, 컨트롤 때문에 지혜가 어두워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컨트롤 받는 사람은 (영적 침체로 인해)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기도의 4단계(네 번째 하늘) : 성인(아비) 단계
네 번째 하늘에 이르게 될 때 우리는 ‘성인’으로서 깊이 있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요한은 이것을 신령한 자들이라고 표현했고, 바울은 견고한 믿음-영광의 소망-열정적인 사랑으로 JC안에 거하며 JC를 빼어닮은, HS과 한영됨을 살며 하나되어 동행하는, 참생명 그리스도를 공급함으로써 생명을 낳는 영적아비/어미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단계의 기도에 올라갈 때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JC이름으로 하늘의 악한 영, 곧 정사와 권세들과 싸워 이김으로써 결박하며 재갈 물리는, 영적 씨름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진정 이 단계까지 이르러 하늘과 땅을 묶고 푸는 영적 장수들이 수다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 JC증인됨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나아가는 곳마다 변화가 일어나고, 공기가 바뀌고, 처소 제단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요,
기도의 단을 쌓음으로 인해 세상영역에서 영적 기류가 바뀌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응답 차원을 넘어 진정 정복하는 단계, 가정과 직장, 공동체의 모든 영역과 이 도시안의 영적 세계가 달라지고 실제적 하나님나라로 회복되는 역사를 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늘의 지혜를 선포하는 자들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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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은 예표-그림자-상징, 예언들 , 예언들의 성취 안에서도, 그외에서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예표-그림자-상징]
... 예표와 그림자는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사람들의 얼굴이 엇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것과 같다. 예표는 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인물들과 사물들을 말하며, 반면에 그림자는 주로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의식과 관습들을 가리킨다.. 골2:16, 17절에 따르면 먹는 것에 관한 규례들과 의식들과 성일들은 그림자였다.(즉, 구약의 율법들과 규례들과 의례들이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그림자들이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아담-아론-모세는 그림자가 아니라 예표였다. 그와는 달리 안식일과 월삭은 그림자였다. 안식일이 안식이었지만 참된 안식은 그리스도였으므로 그것은 참된 안식이 아니었고 그림자였다. 마찬가지로 Q의 간증인 율법은 Q의 어떠하심을 설명했다. Q에 대한 설명과 묘사인 율법은 Q의 간증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율법은 Q에 대한 참된 설명과 묘사와 간증 자체, 곧 Q의 체현인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다.
.... 상징은 주로 특별한 장면들을 제시하는 상황을 언급한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방황한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방황하는 생활의 체험에 대한 상징이자 그림이다. 유유ㅓㄹ절은 또 하나의 상징이다. 유월절 어린 양이 그리스도의 예표이기는 하지만 유얼절 자체는 우리의 유월절이신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를 Q의 심판에서 구원하시고 그분의 어떠함으로 우리를 먹이시는가를 요사하는 상징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예언들과 예언들의 성취]
예언들과 예언들의 성취 안에서<신약에서는 성취된 예언에 간혹 때때로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것들을 볼 수 있다..이는 그리스도는 예언 자체를 넘어서시는 무한한 분임을 시사하고자 함이다>
[식물들(풀-꽃-나무-곡식)-동물들(어린 양-염소-독수리-사자-비둘기)-광물들(금-은-놋-보석들)-인물들]
[우주 안의 모든 적극적인 만물들(만유인력-문-공기-빛)]
[사람의 미덕들과 거룩한 속성들(참된 사랑-인내-용서)]
@@@모든 그리스도의 풍성은 교회 산출을 위한 것이다.
. *1)이것은 믿는 이들 안으로의 그리스도의 거룩한 분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분배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생명과 더 강한 생명과 더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되며, 교회 생활은 더욱 높이 고양된다.
*2)믿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림으로, 우리는 합당한 교회 생활 하는 몸의 일부가 된다.
즉 우리 편에서 볼 때는 체험과 누림의 문제이다...풍성 누림<먹고 소화-흡수-동화-조성>의 결과는 충만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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