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1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계3.사데-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교회.두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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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3장

===사데<=남은 것.remnant> 교회에 보내는 말씀....올바른 방향성, 주 영 추구함으로써(산 믿음 발휘), 생명 말씀 그 안의 생명 능력 충만 누림 그 안에서 먼저, 열정적 사랑, 소망의 인내 안에서 걷기 필요.

....[176.언제주님다시오실는지]  [183.빈들에마른풀같이] [182.강물같이흐르는기쁨] [184.불길같은주성령]  [258.샘물과같은 보혈은] [254.내주의보혈은] [190.성령이여강림하사] [191.내가매일기쁘게]

....[갈 5:16, 17]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오직 말씀 안에서, 살아 생동하는 믿음을 발휘함 통해> 성령께, 그의 기름부음[움직이심]을 따라, <전 존재 기울여, 일심으로 집중-주목-올인-몰입하여>온맘다해 <사랑과 신뢰 드리며> 순복함으로써 그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영생능력 추구 절대 필요함..부활신앙 회복/이김<창포>..현실 생활...침륜/무지무각무력/어둠혼미(실상은 병중의, 생명의 활력이 무기력해진 상태)]].흰옷과 주님이 시인한 이름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일곱 영] 교회<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개신교>의 각성/새로움-강성-생명의 역동 위한 <내주하심>필요 =7 배로 강화되신 주 영, JC의 완전/충만의 실제화...[일곱 별]참 생명 빛 충만-반사 지속 위한 필요 = 주께 붙잡힌, 주님 빼어닮은 인도자들...지위나 조직체계가 아님.]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부르짖음!!] 그 남은 바[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성경(그 안의 생명을 오로지 추구함은 아직 없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주님 주관하시는 영적 각성과 주님 임재 의식 안에서 회개 통한 참된 부흥 필요]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루터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교리적, 피상적-보관, 축적 상태로 가만히 멈춰 있는, 결국 생동력 상실한 사망에 다름없었을 뿐, 참되고 진정한 주관적-체험적 진리에 따른, 생명방식이 아니었음... 이제라도 참된 부흥-생명방식의-이 절대적으로 필요함]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세상 가치따라 세상을 의식하는 고정관념은 과감히 버리고 오직 살아 생동하는 주님 심정과 마음, 기름부음을 따라 행하라!!> 부활생명능력이신 주님만 갈망하는 바, 읽고 듣고 받은 말씀을, 생명의 성령께 여쭈어 참되게 들은 바 그대로 인도따라 생명 방식으로 적용-작동시켜 발휘함, 그 영향력 참되게 누리며 충만히 변화 받고 공급함으로써 <이것이 참된 생명 삶의 예수 스타일이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비밀한 날, 비밀한 시간에 임하는 재림으로...사내아이(12장)와 첫 열매들(14장)을 포함하는 초기의 이기는 자들의 휴거로]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행함/행실과 일상생활에서의 어떠함이 각자의 옷인데, 사망으로 때 묻는 것은 최악의 더러움임..레11:24-25, 민6:6,7,9...사망은 죄보다도 더 극도로 더럽히는 것임...범죄는 속죄제물로 사함받을 수 있었으나<레4:27-3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7일을 기다려야만 정결함 받을 수 있었음<민19:11, 16>...그러므로 <다른 길이나 타협은 없으니, 오직 회개하고!!>생명의 성령의 기름부음따라, 그대의 영 안에서 행함이 바로 살아 생동함이다!!...결단코, 죽은 방식으로, 냉랭함으로 집회에 참석하지 말라!!...오직, 목숨 걸고 주 영 안에 머무르며 자기 역할 담당, 충심으로 기능 발휘하기를, 그 영의 기름부음따라 동행하기를 추구하여 그리스도의 몸 세움에 참여하라!!] 몇 명이 네게 있어 [들림 받고, Q께 그 행위가 합당한 자로 인정받아]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환난 전 휴거..어린양의 싸우는 하늘 군대]

5.  이기는 자는[=죽어 있는 개신교의 상태를, <의문의 [죽은]말씀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 따라 [생동하며 역사하는] 주관적 체험의 생명 말씀화 함 통해 실행함으로써, 이기고 극복함]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행함과 삶에 있어서 사망으로 더럽혀 지지않고 주께 인정받은 증거]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이미 <교회, 천년왕국, 영세에 참여할 축복 받은 자로>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바..눅10:20]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그 약속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가능한 바, 장차 올 천년왕국 안에서 지속되는 혼인임:: 먼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흰 (칭의의), 이후 주 영따라 성장성숙해 나가면서 줄기차게 전진함 통해, 주님따름의 길의 모든 방해물과 벗어나게 하는 것들을 분별함 통해 극복하고 이김 통해 받아야 할 바 <빛나고 순수한 세마포..19:8>가 필요함 ::: 이것은 JC를 <객관적 의>로 얻고 입게 됨 + <주관적으로 살아내며 체험한 의>로 체득한 바 우리 자신으로부터 발출됨<이것은 주님의 극도로 기뻐하시는 바로서, 그의 기뻐하심 안에서 합당하게 주실 바 [신부의]보상을 위한 최선의 준비가 될 것임>...이 예표는 시45편에서 볼 수 있는데, 여왕의 두 가지 옷에 해당됨.....교회 단계 안의 축복들은 죄 사함-구속-거듭남-영원생명-신성한 본성 등인데, 모두가 초기의 분깃들로서, 주께 선택된 모든 이들마다 이 분깃들에 참여함 통해 그들의 영적 삶을 시작하게 되며, 그들 각각마다 Q의 공급하시는 은혜에 적극 협력한다면 교회시대 단계에서 생명이 충만 성숙하게 될 것이요, 이러한 조기 성숙은 주님 재림시 그들에게 보상으로 주실 상을 조성케 될 것이며, 그 상은 천년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관건이 될 것인데. 그분께 선택된 이들이 교회시대에 그분과 함께 전진하도록 Q이 자극제(격려제)로 예비하신 주의 기쁨과 안식(마25:21, 23, 히4:9-11)과 만국 위에 왕노릇 함(계 2:26-27, 20:406) 등과 같은 그 단계의 신성한 축복들에 참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이는 바로 장자 상속권 누림이다!!>. 그러나 그분께 선택된 많은 이들이 그분의 죄 사함-구속-영원생명-신성한 본성 등을 받은 후에 그분의 은혜와 협력하거나 전진하려 하지 않을 때, 그들은 교회시대에 생명이 채 성숙하지 못하므로 주님 재림시 천년왕국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의 상급인 그 시대의 신성한 축복들에 참여하지 못할 것<즉, 천년왕국 동안에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흐려질 것 :: 두번째 택하심을 받지 못함>이요, 천년왕국 동안 주의 징계를 받아서 성숙하게 생명이 자란 뒤에야 비로소 그들은 영세 단계의 신성한 축복들,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와 함께하는 영원한 섬김, 영원한 왕노릇 함(계22:3-5), 새 예루살렘, 생명의 나무(22:14). 생명수(22:17) 등과 같은 것에 참여할 것이요, 이후 그들의 이름은 다시 생명책에 등재될 것이다... 이것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고 또 교회 단계에서 신성한 축복에 참여하게 된 Q께 선택된 모든 자들이 결코 영원히 멸망 당하지 않을 것(요10:28)임을 의미한다. 즉, 그들은 영세의 신성한 축복들을 결단코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시대에서 주님과 협력하지 않은 어떤 이들은 천년왕국동안 주님께 경륜적으로 징계 받을 것이며 그 단계에서의 신성한 축복들을 놓칠 것이다....두번째의 택하심<창세전에 구원받을 자로 미리 택하심은 일차적 주권이요!!>은 17:14절에서 의미하는 바 대로 그분이 재림시 모든 성도들이 휴거된 후 이루실 것인데, 이 선발<천년왕국과 영세 누림 위해 두번째 택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적 결정의 안배하심으로서, 교회시대를 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을 어떻게 영위했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하나님의 의도는 그분이 선택한 모든이들이 오늘날 JC를 극도로 누림으로 장차 올 시대에서도 역시 그들로 JC를 누릴 권리를 갖게 하려함인 것...하나님의 참된 의도는 우리의 누림 위해 우리안으로 참 생명 능력이신 그리스도를 역사하는 것이요, 교회 시대는 바야흐로 이것이 성취되는 때인 것.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빌라델비아<=형제 사랑> 교회에 보내는 말씀[회복 안의 교회..19C초(1820년대) 영국 기독 형제단에서 시작된 합당한 교회생활이 예시가 됨...이는 죽은 개신교에 대한 반응..주 오실 그때까지 가톨릭과 개신교에 대한 반-간증으로 계속 남을 것]....대 환난 전 휴거와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소망의 인내로 하나됨 이루라..

[[JC의 증언/증거, 그 자체가 되라..성의진선 인내 = 돌파 이김 능력]]

...열정적 사랑-소망의 인내-산 믿음 발휘함 안에서, 날마다 자기 죽임/부인/깎여짐 통한 서로 연결-굳건한 하나됨으로 그리스도의 몸 건축하기.

.....[433.귀하신주여날붙드사] [447. 이 세상 끝날까지] [380.나의생명되신주]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다윗의 열쇠>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통치권(창1장)에 근거한 정복과 다스림>..사람은 타락으로 인해 그 권세를 상실케 되었음...이 다윗의 열쇠, 곧 통치권 발휘 결과는 Q의 표현인 성전과 <온 우주, 특히 인류를 포함한> Q의 통치권의 상징인 도성으로 나타남...참 다윗, 더 큰 다윗, 다윗의 뿌리 JC는 Q의 경륜의 중심이시며, Q의 집, 곧 성전을 건축하시는 분이시요, Q을 대표하기 위해 전권을 행사하는 통치 영역을 세우신 분이심...그분이 가지신 열쇠는 온 우주를 열어 진행시킬  수 있도록 Q을 대표하는 그 무엇임]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사22:22-24]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23.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24.그의 아버지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믿는이마다 주께 붙들리고 매달린 바,  땅에서 분리된, 떨어진 성별된 존재들임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모든 항아리까지니라 

....[계21:16, 22...지성소(장광고가 각각 십규빗씩인 정방형<정육면체형>)의 확대판으로서 새 예루살렘 성, 그 자체가 성전....이는 Q의 집의 궁극적 최종 완성임]*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  *22.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 거룩과 신령한 영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궁극 목적은 Q의 성전 이룸, 곧 성전 안에서 기둥들이 될 수 있게, 새 예루살렘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이기에 중요함...  [계3:12] *12.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종교를 포함한, 모든 피조계의 모든  결박 푸시고 옥문을 열어 자유케 하셨음...따라서, 이것을 늘 기억하고 명심하여 합당하게 주 앞에서  행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모든 참된 기독자마다, 교회마다 담대함 잃지 말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하나됨 그 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오직 <성령이 인도하시는> 순수한 말씀의 길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지킴] [=오직 주의 이름<곧 주님 자신> 외에 다른 <파당이나 개인의> 이름 취함을 포기함...이것이 참된 신부의 특징이며, 그분의 임재와 빛과 생명의 풍성을 가진 살아있는 방식으로 주님을 표현함인 것..**요한 웨슬레와 동시대 인물인 조지 휫필드는 <나는 JC이름 외에 결코 다른 이름을 갖지 않겠노라>선언했음]  :개개인의 영성-거룩-경건은 [Q의 집 건축함인] 교회 생활에 의해 그 참됨과 어떠함이 시험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음, 영성-거룩-경건의 목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공급하는] 교회생활 이룸에 합당하지 않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인 암덩이에 불과함 :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큰 능력을 얻으려고 애씀이 아니라, 지금 받아 가지고 있는 바 그대로를, 주 섬김-따름-성가족인 바 형제자매 사랑함에 최선 다해 기능을 발휘함이 중요, 바로 이러한 <생명 방식으로, 우리 각자를 성전의 못이신 당신께 사랑으로 붙들어 매심으로써 땅에서 들어 올리시는  생명의 성령 안에서, 인내하며>극도로 참되게 유용하게 섬기기 위해 사용할 때에야 새 예루살렘의 일부인 참된 성전의 기둥들이 될 것...주님은 <사람 보기에 큰 믿음의>거인들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 주신 바<그 어느 만큼의 참된 은혜를 가진>, 자로 그것을 최선 다해 섬기기 위해 사용하는 작은 자들을 기뻐하심<나머지의 성장성숙은 주님 판단따라 전적으로 주께서 이루실 것>에 유의하라.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참되게 깨닫고 돌이키는 자...**오늘날,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교파마다 <주님 한분과의 합일에서 떠난> 일종의 회당들 됨에 주의하여 자신을 성별하여 깨끗케 된 자로서 주께 드리며 인도하심 따르기를 힘쓰라....이로 인해 타락과 파당 분열, 흐트러짐이 들어오게 되었음]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고난]의 말씀을 지켰은즉[전통 따름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인도하시는> 순수한 말씀의 길 안에서 <오늘도 거절과 핍박, 고난 가운데 계시는 바, 주께 참여하며>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킴]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시험을 면케 됨이 아니라, 시험의 때, 곧 5-6-7째 나팔(일곱대접 포함하는)의 때, 곧 대 환난시기][대 환난 전에 <비밀한 휴거로>들림 받게 됨 시사]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주 임재 의식으로 깨어 있는 이마다 주 오심에 대한 느낌과 영감조차 또한 주시며 그분 사랑함 안으로 이끄실 것]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이미 진흙이었으나, 그 본성이 변화를 입어 산 돌이자, 정결한 흰 돌인 교회의 건축재료가 된 상태로서 <주 뜻하심대로 연합 위해 깎여짐의>다루심 받아그리스도의 몸 건축에 참여한 바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창28장, 야곱의 꿈의 생생한 실현]...*기둥이 됨 :: 가령 돌기둥이라면 암석을 통째로 써서 깎아 냄 통해, 원하는 모양의 기둥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서는 [만들기 원하는] 기둥이 크면 클수록 몇 조각 낸 암석들을 다듬어 합당한 모양으로 만들고 난 다음, 서로 깎여짐의 상실 통해 짜 맞추는 형태로 기둥을 만들기도 함... 후자의 경우, 기둥 부분들끼리 연결을 위해서는 어느정도 오목-볼록의 구조로 연결을 위해 그 돌들마다 깎여 나감을 감수해야 함(기둥이 크면 클수록 안정된 상태로 만들기 위해 많이 깎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둥을 산출하기 위해 하나됨의 연결을 위한 자기부인-자기 십자가 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 때에, 깎여 나감의 고통 감수가 없이는 결코 연합과 연결 통한 기둥 세움이 불가능함을 기억하라..

[왕상7:13-22..성전 문 앞 양편 두 기둥 보아스_야긴의 높이 각각 18규빗] *13.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14.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15. 그가 놋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각각 십팔 규빗이라 각각 십이 규빗 되는 줄을 두를 만하며  *16. 또 놋을 녹여 부어서 기둥 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한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요 다른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며  *17.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으로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18.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둥 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19.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20. 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 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21.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22.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니라

[대하3:15-17..보아스와 야긴의 높이는 각각 35규빗] *15.  성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높이가 삼십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16. 성소 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17.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 좌우 각각에 높이 18규빗짜리 2개의  놋기둥을 이용하여 총 35규빗짜리 놋기둥 하나씩을 만들어 내어 성전 앞 좌우에 세웠다는 것< 기둥과 기둥머리 사이에서 서로 합쳐지려면 각각 반규빗씩의 깎여짐의 상실을 감수해야만 상호 연결이 가능해지며, 총 35규빗 높이의 기둥이 하나 완성됨>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내 자신이 체험하는 바, 주님과 하나임을, 곧 Q께서 우리안으로 역사해 들어 오셔서 우리를 소유하사, 그분으로 흠뻑 적셔졌음을 의미..누군가가 JC 빼어닮은 그대를 볼 때, 그는 Q을 본다!!....능력<보아스 : 그에게 능력이 있다...풍성부요-->충만<JC표현>을 위함, ==>야긴 :: 그가 세우신다>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세움을 위함이다!!!]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사람들이나 평신도의 의견과 판단> 교회에 보내는 말씀.

...[425.주님의뜻을이루소서] [549.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주님말씀하시면] [주님의 뜻 따르렵니다] [주님의 시간에] [하나님께로 더가까이갑니다] [주가 일하시네] [주님 내가 여기 있오니] [때로는 너의 앞에..너는 택한 족속이요]

..주 영따라 말씀 살아 냄의, 열정적  사랑 그 안에서 발휘되는 산 믿음의 동행, 새로이 하여 끝까지 완주하여 새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라!!

 ::[대가 지불하라...보내심 받은 자로서의 자각 안에서 깨어나라, 올바른 방향성에로 걸음을 내딛으라.. 생명과 모든 것 되시는 그리스도, 그분 임재 안으로 믿어 들어가서 그분 얻기를 추구함 통해, 이로써 그 품에 안겨 보좌에 감추인 바 됨, 곧 그 분 얻고 그 가운데 발견됨!!, 그렇게 그분의 임재 안에 하나되어 동행하라!!] 예비하신 바 그대로, 주님과 함께 정찬 먹고<상호 교통-누림-그분 빼어닮음/반사/공급> 그분의 보좌에 앉기를 추구할 것.

..<(19C영국, 회복된 모임들[형제회])..그렇게 회복되었다가 타락한 교회>의 상징..성경 지식은 풍성하나 <실지로 살며 누림의 실행 결여> ::JC의 풍성 누림은 빈약하거나 아예 없음 + 영적인 것에 대해 눈이 멀었음 

[[마음 새롭게 함 통해, JC말씀과 그 영의 기름부음을 그대의 생명 삼아 전 존재를 걸고 투신하여 주님을 추구하라..이로써 생생한 살아계신 주님 실재/실존 동거 증명..성전의 두 기둥 : 보아스<북..능력 : 풍성부요충만-떡상> 야긴<남..세움-등대>요 왕적 제사장들이 되리니..우매무지무각/기만/착각/마비<말씀 생명 교통/공급/누림 없음 인한>/무능/불신 그 상태를 돌파하라]]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확고-견고-신뢰할 만한 분>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라오디게아 교회는 이와 정반대라고 말하고 계심]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 생명 말씀 행함 없이 없기에, 타락한<회복된 교회였지만 = 타락한 회중>,  근원자이신 주님을 떠남으로써 변개되고 있음을 의미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주관적인 의로서 JC를 풍성하게 체험하기를  뜨겁고 열정적으로 추구하며, 돌이켜 합당하게 애통하며 회개하지 않는다면] 내 입에서 <구역질 나게 하는, 부담스러운>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착각하는 바>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교리에 대한 지식이 풍성함을 자랑함 =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지적 교만이 가장 큰 특징임> [곤고해결 난망의 답답함..사방이 막힘][가련마음 아플정도로 애처롭고 불쌍함][가난텅비어 만족 없고 헛헛함][눈 멂:통찰력 상실][벌거벗음 :주관적인 의, 곧 그리스도를 체험함이 전혀 없음] <체험적 앎이 없음 = 생생한 JC 체험적 간증/증거/증언 없음 : 열정적 믿음, 그 살아 생동하며 발휘되는 믿음 통한, 영생, 곧 살아 생동하는 생명 차원의 [그리스도의 풍성 체험-교통-공급 결여], 또한 진정한 깨달음 추구함 그 자체가 결여됨>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추구할 바 목표 뚜렷이 정하고 목숨 걸고 올인함의 대가 지불 통해]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살아 생동하는 산 믿음..갈5:6, 벧전1:7, 출25:11>흰 옷을 사서 입어 <내주하시는 주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불타는 열정으로 위하며 그분의 살아 나타나심인 주관적인 의, 살아 낸 그리스도로서의, 주께 순복함 통해 주님으로 살며 표현함, 살아낸 그리스도의 산 믿음, 풍성하고 신성한 본성의 표현 행위를 가지는 것이 필요.....이러 할 때에야, 두번째 선발이 주어짐>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영적 통찰력과 선견, 기름부음의 영..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최고 가치인 바>눈에 발라 보게 하라  :: 금-흰 옷, 안약은 모두 그리스도 자신이심.. JC얻기 위해 그분 외의 모든 것을 <쓰레기와 오물로 여겨 내어버림의>대가 지불의 필요성 역설하심(갈2:20, 빌3:8) ==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그리스도만 얻고, 그분만 남을 때까지>, 심지어 목숨조차 아끼지 않고...이러한 영을 따름이 대가 지불함의 영인 것!!..살아 생동하는 산 믿음을 가질 때 신성한 본성 체험은 따라오게 되며, 이 둘은 서로 상호 조화를 이루는 바 둘 다 금으로 상징됨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오직 겸손히,주님 신뢰하고 앙망하며 긍휼을 구하라, 오직 주님 얻기 위해 끝까지 아낌없이 모든 것 희생하라..주님이면 충분하다!! 

20.  볼지어다 내가 [타락한 <회복된 교회>, 곧 JC임재가 그 안에 없는 교회]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모든 형제자매들인, 믿는이 각인마다!!] 내 음성을 듣고 [단체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으로]문을 열면[=출애굽 하라-<공개된 만나 머기 위해>광야로 나아가라-<감추인 만나 먹기 위해>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라]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풍성한 소산물의 정찬이요 생명나무이신 주님 자신을, 당장 오늘부터 교통하며 누림으로써]먹으리라

21.  [비정상적으로 벗어난 교회들의 타락한 상태를, 미지근함과 교만을 이기며, <대가 지불-하나된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 건축 위해 필요한 것마다를 전심전력 다해 사서 구비함으로써, 또한 주님 들어 오시도록 문을 열어드림으로써>]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지금 당장부터, 그리고 천년왕국 안에서..공동왕으로서, 온 땅을 다스릴 것...영생의 주와 일치-분발-열정 지속 <거룩-사랑-빛>충만 교통-동거함]

22.  귀 있는 자는 [불타오르는 열정 가득한, 살아 생동하는 기름부음이신]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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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sardis(<긍정적 의미, 겉보기에>붉은-열정적인-혈색 좋은-건강한) : <부정적 의미..실상, 거의 모든 긍정적인 것들을 상실해 버렸기에 수치감으로 얼굴 붉힌>(겨우)남음, 남은 것, 남은 자(remnant)

@@라오디게아 :: 헬라어 '라오디케이아(λαοδικεία)'는 '라오스(λαός 백성)' + '디케(δίκη 정의, 공의) =주권이 백성/평민에게 있음..주권재민...그저 그냥 속고 기만 당해 착각과 게으름에 자신을 방치한 체, 무기력하게 세상 시류따라 휩쓸려 가는, 삶의 목표 상실한, 상대 가치 추구의 허망한  

cf>니골라 당 ..니골라당(Nicolaitans)  :: 헬라어로 “정복하다”의 니카오(nikaō) + 백성들 의미의 라오스(laos) =평민/평신도를 군림/지배/정복하다/좌지우지하다[주로부터 위임받은 바, 사랑의 직분/은사로서의 목자-감독직분을 감사함으로 수행함이 아니라 <제멋대로 절대적 교리화 하고 세속권력과 야합함과 동시에, 호구지책의 생계수단으로 여겨 전횡적 이익수단 삼는>관료주의적, 세습적, 계급적 교권 주의 파당].<행위 = 교리화 한 그대로 실행함>..

cf>발람 = 백성을 파멸케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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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lation 3 Amplified Bible

==Message to Sardis

1 “To the angel (divine messenger) of the church in [a]Sardis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Him who has [b]the seven Spirits of God and the seven stars: ‘I know your deeds; you have a name (reputation) that you are alive, but [in reality] you are dead. 

2 Wake up, and strengthen and reaffirm what remains [of your faithful commitment to Me], which is about to die; for I have not found [any of] your deeds completed in the sight of My God or meeting His requirements. 

3 So remember and take to heart the lessons you have received and heard. Keep and obey them, and repent [change your sinful way of thinking, and demonstrate your repentance with new behavior that proves a conscious decision to turn away from sin]. So then, if you do not wake up, I will come like a thief, and you will not know at what hour I will come to you. 

4 But you [still] have a few people in Sardis who have not soiled their clothes [that is, contaminated their character and personal integrity with sin]; and they will walk with Me [dressed] in white, because they are worthy (righteous). 

5 He who overcomes [the world through believing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will accordingly be dressed in white clothing; and I will never blot out his name from the Book of Life, and I will confess and openly acknowledge his name before My Father and before His angels [saying that he is one of Mine]. 

6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and heed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Message to Philadelphia

7 “And to the angel (divine messenger) of the church in [c]Philadelphia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the Holy One, the True One, He who has the key [to the house] of David, He who opens and no one will [be able to] shut, and He who shuts and no one opens:

8 ‘I know your deeds. See, I have set before you an open door which no one is able to shut, for you have a little power, and have kept My word, and have not renounced or denied My name. 

9 Take note, I will make those of the synagogue of Satan, who say that they are Jews and are not, but lie—I will make them come and bow down at your feet and make them know [without any doubt] that I have loved you. 

10 Because you have kept the word of My endurance [My command to persevere], I will keep you [safe] from the hour of trial, that hour which is about to come on the whole [inhabited] world, to test those who live on the earth. 

11 I am coming quickly. Hold tight what you have, so that no one will take your crown [by leading you to renounce the faith]. 

12 He who overcomes [the world through believing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I will make him a [d]pillar in the temple of My God; he will most certainly never be put out of it, and I will write on him the name of My God, and the name of the city of My God, the new Jerusalem, which descends out of heaven from My God, and My [own] new name. 

13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and heed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Message to Laodicea

14 “To the angel (divine messenger) of the church in [e]Laodicea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the Amen, the trusted and faithful and true Witness, the [f]Beginning and Origin of God’s creation:

15 ‘I know your deeds, that you are [g]neither cold (invigorating, refreshing) nor hot (healing, therapeutic); I wish that you were [h]cold or hot. 

16 So because you are lukewarm (spiritually useless), and neither hot nor cold, I will vomit you out of My mouth [rejecting you with disgust]. 

17 Because you say, “I am rich, and have prospered and grown wealthy, and have need of nothing,” and you do not know that you are wretched and miserable and poor and blind and naked [without hope and in great need], 

18 I counsel you to buy from Me gold that has been heated red hot and refined by fire so that you may become truly rich; and white clothes [representing righteousness] to clothe yourself so that the shame of your nakedness will not be seen; and healing salve to put on your eyes so that you may see. 

19 Those whom I [dearly and tenderly] love, I rebuke and discipline [showing them their faults and instructing them]; so be enthusiastic and repent [change your inner self—your old way of thinking, your sinful behavior—seek God’s will]. 

20 Behold, I stand at the door [of the church] and continually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restore him), and he with Me. 

21 He who overcomes [the world through believing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I will grant to him [the privilege] to sit beside Me on My throne, as I also overcame and sat down beside My Father on His throne. 

22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and heed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Footnotes

Revelation 3:1 Sardis (modern Sart, Turkey), in Roman times, was a wealthy city known for the manufacture and dyeing of woolen fabric and carpets. Originally, it was the capital of the ancient Lydian Empire and was the first city to mint coinage (600 b.c.). A stream that flowed through its market place carried gold dust from a nearby mountain. King Croesus of Lydia (560-546 b.c.) financed the building of the great Temple of Artemis in Ephesus (550 b.c.). The city was conquered twice, under Cyrus the Great and under Antiochus, due to lack of adequate watchfulness.

Revelation 3:1 See note 1:4.

Revelation 3:7 Philadelphia (modern Alashehir, Turkey) was a commercial center located on elevated ground overlooking the fertile plain of the Hermus (Gediz) River. In 189 b.c. the king of Pergamum established Philadelphia and named the city to honor his brother.

Revelation 3:12 Like the common phrase “pillar of the community,” this is a metaphor of great honor, but far more so. The statement that the one who overcomes will never leave the temple is assurance that he will never lose the privilege of being in the presence of God and serving Him.

Revelation 3:14 Laodicea, located beside the Lycus River, was a prosperous city about forty miles south of Philadelphia. It had a well-respected financial center, thriving textile production industry (specializing in black wool), and a leading medical school that produced a famous eye salve. Two other cities were in this general area: Colossae, known for its mountain spring of cold, fresh water; and Hierapolis, a site famous for its hot, therapeutic mineral springs.

Revelation 3:14 I.e. Origin of Source.

Revelation 3:15 This phrase and the word lukewarm in v 16 form a metaphor that is probably based on the quality of the water supply of Laodicea, which was delivered by aqueduct from the hot mineral springs about five miles away. During its journey, the water cooled to a warm or lukewarm temperature. 

Revelation 3:15 I.e. alive, productive—beneficial in one way or the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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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장 (개요)

여기서 우리는 다음 세 교회에 보낸 편지들을 볼 수 있다.

Ⅰ.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1-6).

Ⅱ.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7-13).

Ⅲ.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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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계 3:1-6)


‘남은 자’ 또는 ‘남은 물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데는 두아디라에서 남쪽으로 48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강가와 산기슭에 위치한다. 사데는 앞으로 팍톨루스(Pactolus)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있고, 뒤로는 투몰루스(Tumolus)라는 산이 자리하고 있다. 강과 산 사이의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사데의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는 이 도시를 난공불락의 도시로 만들었다. 한때 사데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하였다.....사데는 해발 250미터 높은 산으로 깎아 놓은 듯한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지형적으로 유리한 난공불락의 도시였다. 그리고 이 도시로 들어갈 때는 좁은 입구를 통과하면 큰 분지와 넓은 평원으로 이루어지는 곳에 도시가 건설되어 있었다. 이러한 지형적인 조건 때문에 사데는 군사적으로 상당히 유리한 도시였다......금화 주조에 사용되었던 금은 근처의 미다스 왕이 목욕했다는 팍톨루스(Pactolos)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여 만든 것이다. 거기에 흐르는 팍톨루스 강에는 예로부터 사금이 많아 ‘미다스’(Midas, 영어로 마이다스) 신화의 배경이 되었던 곳인데, 실제로 가보면 거기에 미다스의 거대한 능(陵)이 있어 ‘트로이 전쟁 이야기’처럼 실제 역사와 신화와 역사가 겹치는 곳이 되었다. 또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던 곳도 바로 리디아 왕국이다. 리디아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주사위와 공기놀이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디아와 페르시아 제국의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였던 사데도 ‘황금의 도시’라고 일컬어질만큼 상당히 부유했고, 항상 연회를 즐기며 미녀들과 오락, 그리고 쾌락이 지배했던 나라였다......사데는 과일과 양모 생산으로 유명하였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양모를 염색하여 옷을 만드는 일은 사데의 중요 산업이었다......사데 교회는 AD 1세기 중반에 이루어졌다고 보는데, 그리스어로 된 메노로지온(Menologion)에 의하면, 바울의 제자이며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클레멘트(Clement)가 처음 사데 교회의 감독이었다고 한다. 초대 교회 박해시에 사데에서 순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테라폰(Therapon)과 아폴로니우스(Apollonius)가 있다.  2세기경 사데 교회의 감독은 멜리톤(Meliton)인데, 그는 기독교 신앙을 대변하기 위해서 로마의 마라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많은 편지들을 써서 보낸 사람이며, 예루살렘을 처음으로 순례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멜리톤이 사데 교회의 감독이었을 때 교회의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로 말미암아 내적인 타락과 세속화로 인해 형식주의와 나태함이 교회 깊숙이 침투하였다.


Ⅰ. 서론 부분을 살펴보자.

1. 이 편지의 수신자는 "사데 교회의 사자"이다. 

사데는 트몰러스 산록에 자리잡은 루디아의 옛 도시로써 소아시아 지방의 수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 지역에서 제일 먼저 회개한 도시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데 교회는 맨 먼저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그리하여 제일 먼저 폐허가 된 도시라고도 한다. 

그 폐허는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어떤 교회의 흔적도 없었다.

2. 편지의 발신자는 주 예수이시다. 

여기 그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이시다. 그런데 1장 4절에 의하면 일곱 영은 "보좌 앞에" 있는 영들이라고 한다.

(1) 주님은 일곱 영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능력과 은혜와 작용을 나타내는 성령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이다. 

주님은 한 몸이시면서도 여러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신데, 여기 일곱이라고 표시된 것은 교회의 숫자가 일곱이며, 교회의 사자들의 숫자가 일곱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모든 교역자들과 모든 교회에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영력(營力)의 공급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 영력(營力)은 교회가 확장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그 교회의 교역자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개선되지 못할 때는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때까지는 성령이 그들에게서 철수하지 않으신다. 

교회도 개개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영력(營力)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편지는 쇠퇴해 가고 있는 교역자와 교회에 보내지고 있는데,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능력을 가진 일곱 영, 곧 성령을 가지고 계시며 따라서 그들은 그에게서 그들의 소생할 수 있는 활동력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2) 주님은 교회의 사자들인 일곱 별을 가지고 계신다. 

그들은 주님에 의해 파견되었고 또한 주님께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에, 그들은 충성을 다해야 하며, 열심을 다해야 한다. 

그 교역자들은 주님께서 고용한 교역자들이며, 주님은 교회의 이익을 위해 그 교역자들과 사귐을 가지고자 영적인 영향력을 구사하고 계신다. 

보통 성령은 목회를 통해서 활동하시며, 목회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효과를 낼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손이 이 양자를 모두 지탱해 주신다.

Ⅱ. 이 편지의 핵심 부분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점 한 가지가 있다. 

다른 편지들에서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들의 잘한 점을 칭찬하고 나서, 그들의 잘못에 대해 책망하고 있는데 반해 이 편지(와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그렇지 않다.

1. 먼저 책망의 말씀, 그것도 매우 심한 말씀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위선과 신앙의 쇠퇴가 곧 그 교회와 그 교회의 행위를 잘 아시는 분으로부터의 책망이다.

(1) 이 교회의 평판은 매우 좋게 나 있었다. 

이 교회는 번창하는 교회라는 명성을 획득하고 있었으며, 순수한 교리라든가,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치 그리고 예배와 품위 그리고 질서에 있어서의 통일성 등으로 해서 살아 있는 교회라는 이름을 듣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불행한 분열의 조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만사가 순조롭고 잘된 것이라고 보였다.

(2) 그러나 이 교회의 실제는 소문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은 살아 있으나 실제로는 죽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었으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생의 원칙이 없었다. 

그들이 아직 전적인 소멸의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영혼과 그들의 봉사, 그 교회의 교역자들의 목회와 기도와 설교와 대화는 크게 죽고 있었으며, 교인들도 설교를 듣는거나, 기도하는 것이나 대화에 있어서 역시 크게 죽고 있었다. 아직 목숨이 약간 붙어 있기는 하나, 거의 끝장이 난 상태에서 죽음 직전에 놓여 있었다.

2. 이러한 퇴보된 교회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충고를 주신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2절).

(1) 주님은 그들에게 깨어 일어나라고 권고하신다.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죽음과 타락의 원인은 그들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어있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기반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죄와 사탄과 그리고 우리의 선한 생명과 능력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2) 주님은 그들에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권고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사람들에 관한 권고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순결함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나마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음 일보전에 있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이 온통 죽음과 멸망의 분위기에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자신을 생명과 "선한 능력" 가운데 간직하고 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는 우리가 다음과 같은 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같이, 이것은 행위에 관한 것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또는 충만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들에게 껍데기는 있었으나 알맹이는 없었다. 그들에게 형체는 있었으나 영혼은 없었고, 그림자는 있었으나 실재는 없었다. 

내용물이 부족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텅비고 헛된 것이다. 그들의 기도는 거룩한 요망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구제도 참된 자비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대한 영혼의 참된 봉헌이 결여된 채 지켜졌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외적인 결핍된 상태에서는 그 형태마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3)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 자신을 돌아보고,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라"고 권고하신다(3절). 

그들은 그들이 어떤 것을 받고 또 들었으며, 또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았고, 그들이 받은 자비와 은혜의 표가 어떤 것인지, 어떤 설교를 들었는가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받았으며 또 들었는가, 하나님의 자녀의 영향력이 그들의 영혼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또 하나님의 말씀과 의식들에 대해 그들이 어떠한 애정심을 품게 되었는지, 그들이 처음에 복음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떻게 환영하였었는가를 또한 기억하여야 한다. 

"그때에 너희가 말하던 축복은 어디로 갔는가?"

(4)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받은 것을 잃지 않도록 굳게 지키도록 권고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신앙 생활을 잃어버렸으니 만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회개하라"고 권고하신다.

3. 주님은 그의 권고가 무시되지 않도록 위협적인 말씀을 덧붙이신다.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3절).

(1) 사람들이 그들의 품위 있는 태도를 잃어버렸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신다. 

그때 그들의 품위 있는 태도를 잃어버린 죄인들은 심판주의 모습에서 위협을 느낀다.

(2) 죽음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심판은 매우 신속하고도 놀라운 것이다. 

그들의 영적인 죽음은 그들을 방심하게 만들며,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노여움을 야기시키지만, 그들은 이에 대해 통찰력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또 이에 대한 준비를 갖추지 못하게 된다.

(3) 그리스도의 그러한 방문은 그들에게 커다란 손해를 가져다준다. 

주님은 도적같이 오신다. 오셔서 그들에게 남아있는 즐거움과 자비를 빼앗아 버리신다. 그러나 결코 속임수가 아니라,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빼앗아 버리신다.

4. 우리의 복되신 주님은 그들이 비록 죄많은 사람들이지만 결코 위로와 격려를 잊지 않으신다. 

"심판 중에서 그는 자비를 베푸신다"(4절).

(1) 사데에 남아 있는, 비록 숫자는 적지만 충실한 남은 자들의 영예를 주님은 기억하시고 언급하셨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다. "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그 당시의 시대와 장소에 널리 횡행하던 부패와 부정에 물들지 아니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의 곁에 남아 있는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라도 그들을 기억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숫자가 적을수록 하나님은 그들을 그만큼 귀하게 보신다.

(2) 주님은 그들에게 매우 귀한 약속을 하신다.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들로 의로움과 인정받음과 위로를 나타내 주는 흰옷이거나 또는 저 세상에서 받을 명예와 영광의 흰옷을 입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낙원에서 즐거운 걸음을 걷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얼마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갈 것인가! 

그것은 그들의 충성이 그들에게 가져다 준 고결함에 합당한 명예이다. 

그리고 그것이 법적인 것이 아니라, 복음적인 가치관에서 온 것이며, 그들의 공적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기는 해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그러한 특권을 부여하신 것은 매우 합당한 처사이다. 이 땅에서 참으로 거룩한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자는 저 세상에서 명예와 영광의 흰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합당한 상급이다.

Ⅲ. 이제 우리는 이 편지의 결론 부분을 살펴보자. 앞서의 편지와 같이 여기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이기는 자들에게 주는 커다란 상급이 약속되었다(5절). 

그것은 이미 언급한 바가 있는 편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순결한 은혜에 대한 상급은 온전히 순결한 영광이 될 것이다. 거룩함이 온전하면 그 자체가 상급이 되기도 한다. 영광이란 온전해진 은혜이다. 

그 구별은 종류상의 구별이 아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그 경우에 매우 합당한 또 다른 약속이 첨부되었다.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1)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책을 가지고 계신다. 그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① 그것은 영원한 선택의 책이다.

② 그것은 악한 세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았으며, 경건한 삶과 능력을 간직한 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책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택하신 그의 충실한 성도들의 이름을 결코 그의 생명책에서 지우시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들은 세례가 신앙 고백을 통해서 그들의 이름을 교회의 명록 속에 써넣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영적인 삶을 동반하지 않는, 다만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러한 이름이라면 그러한 이름은 지워지고 말 것이다. 

때로 그러한 이름은 그들의 악행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며 그들이 죽기도 전에 그 이름이 지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기는 자들의 이름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3)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그의 모든 천사들 앞에서 이 생명의 책을 내놓으시고 거기에 기록된 이름들을 시인하여 주신다. 

그 생명책이 열렸을 때 그리스도는 마치 재판장과 같이 이를 판정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그들의 대장으로서 그들을 이끌고 하늘로 개선하면서 그들을 아버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그들의 이름을 시인하실 것이다. 

"보십시오, 당신께서 나에게 맡기신 자녀들이 여기 있습니다. " 이 때에 그들이 받는 상급과 명예가 얼마나 놀랍고도 큰 것인가!

2. 온 우주적인 경각심을 촉구하는 명령의 말씀으로써 이 메시지는 끝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주목해서 들어야 한다. 

비록 한두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말씀인 것같이 보이지만, 그 말씀은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말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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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계 3:7-13)


도시명의 원 뜻은 [빌라(필리아=형제) + 델비아(아델포스=형제) = "형제 사랑"의 의미].상업도시이며 토모로우스 산맥으로부터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에 세워졌음,,BC2세기 아탈로스2세가 세웠고, 형제인 에우메네스와의 사이가 좋아서 빌라델비아(형제사랑이란 뜻)로 명명하게 되었음..사데-버가모-트로이로 연결되는 요충지였으나 AD17년 23년 등 빈번한 지진으로 도시발달은 미약하였음..


우리는 이제 아시아에 있는 교회에 보낸 여섯 번째의 편지를 살펴 볼 차례가 되었다.

Ⅰ. 그 편지의 제목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보여 주고 있다.

1. 이 편지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한 것이다. 

빌라델비아 역시 소아시아에 있는 도시로서 푸시아와 루디아의 접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형제애라는 그 이름의 뜻으로 해서 유명한 도시이다. 

아마 이러한 이름은 그 도시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에 붙여진 것이며, 모든 신자들이 한 아버지를 모신 그리스도의 형제이며 또 형제여야 한다는 기독교의 교훈의 영향을 받아서 명명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름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이름이다. 시민들 사이에 가졌던 협동 정신에서 우러나온 사상과 친절 때문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귀한 정신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고귀한 정신의 복음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별되게 될 때, 훌륭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 교회에 대한 잘못 추궁이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고 다만 공동적인 면에서의 잘못을 약간 볼 수 있으나, 그것 역시 사랑이 이들을 덮어 주고 있다.

2. 이 편지 역시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같은 예수님께서 보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편지에서의 우리 주님의 칭호가 어떻게 일컬어지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주님의 개인적인 인품은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분"이시다. 다시 말해서 그 본성은 거룩하시며, 따라서 그의 말씀은 진실하실 수밖에 없으신 분이시다. 

주님은 그의 거룩하심에 의해서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인 성품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가 가지신 이러한 통치와 권위의 열쇠는 그의 교회를 다스리시는 열쇠이시다.

(1) 그의 통치 작용에 대해서 살펴보자.

① 그는 문을 여신다. 

그는 그의 교회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신다. 그는 그의 교역자들에 말문을 열어 주신다. 그는 들어가는 문을 여시며, 마음 문을 여신다. 

그는 성찬식을 통하여 보이는 교회에 들어가는 문을 여신다. 그리고 그가 설정하신 구원의 원리에 입각해서 승리하는 교회에 들어가는 문을 여신다.

② 그는 또 문을 닫으신다. 

그가 원하시면, 기회의 문과 말문을 닫으사, 완고한 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 속에 그들을 가두어 두신다. 

그는 불신자와 경건치 못한 자들에게는 교회의 문을 닫으시며, 은혜의 날에 깊이 잠이 들은 어리석은 처녀들에게는 하늘의 문을 닫아 주신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문을 닫아 주신다.

(2) 그가 이렇게 문을 열고 닫으실 때는 매우 주권적으로 행동하신다. 

사람들의 뜻이나 사람들의 능력에 의해 영향받지 않으신다.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

그가 하시고 싶으신 대로 행하신다. 그러나 그가 하시는 일에 대해서 방해할 자가 없다. 이것은 그만이 소유하고 계신 특권이며 특성이시다. 

그는 원하시는 교회를 택하사 거룩함과 진실에 있어서 그리스도께 충성하게 하시며, 그의 돌보심 아래서 자유와 기회의 넓은 문을 열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Ⅱ. 이제는 이 편지서의 주요 부분을 살펴보자.

1.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가 하는 것을 그들이 기억하게 하신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8절). 

내가 네 앞에 문을 열었으며, 아무리 대적하는 무리가 많을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문을 열어 놓겠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배우자.

(1)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들이 바라고 있는 모든 자유와 기회를 만들어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한 영적인 자유와 특권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간직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그들이 깨닫게 하여 주신다.

(3)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기하여 그들 앞에 열린 자유의 문을 닫으려고 애쓴다.

(4) 우리가 그리스도를 노하게 하사 이 문을 닫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누구나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2. 이 교회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받았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절). 이 말씀 속에는 매우 부드러운 책망의 말씀에 의한 지시가 들어 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너희 앞에 열어 놓은 넓은 기회의 문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은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한 은혜이며 너희는 그것을 충실히 지켰도다." 참된 은혜는 비록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비록 그리스도께서는 적은 힘도 받아 주시지만, 신자들은 적은 능력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은혜가 성장하며, "그 믿음이 강하게 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참된 은혜는 비록 약하지만, 다른 일반적인 은혜보다 훨씬 커다란 은사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은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게 하며, 그의 이름을 배반치 않게 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순종과 충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유롭게 고백하는 것은 참된 은혜의 열매이며,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들이다.

3. 이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은총의 약속이 여기 열거되어 있다(9,10절). 

그 은총에는 두 가지가 들어 있다.

(1) 그리스도께서는 그 교회의 원수들이 그 교회 앞에 굴복하게 하여 주신다.

① 그 교회의 원수들은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이라고 기술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유일한 백성이라고 하는 것은 실은 거짓이며, 실상 그들은 "사단의 회"에 불과하였다.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회야말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거짓 신들을 예배하거나, 참 하나님이라도 거짓된 방법으로 예배하는 회들은 사단의 회이다. 

그들이 비록 하나님의 유일한 백성이라고 고백하지만 그 고백은 거짓일 따름이다.

② 교회에 대한 그들의 굴복이 기술되었다.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리라.

그러나 교회 자체에 대해 경배하거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니며, 교회의 목회에 대해서 우러러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 자신들이 잘못 되었었으며, 교회는 올바르며,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교회와 사귐을 갖기를 원하며, 그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같은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원수들의 마음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교회에 베푸시는 특별하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런 일은 가능하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다음을 살펴보자.

첫째,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의 특별하신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는 명예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원수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은혜를 그의 백성들이 알게 하신다.

셋째, 이 그리스도의 은혜는 원수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사귐을 가지고자 열망하게 만든다.

(2)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대해 주시는 약속은 가장 가혹한 시험의 때(10절)에도 계속 은혜를 간직하게 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지난날의 충성에 대한 보상이다. "가진 자에게는 더 주리라."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①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내의 말씀이다

그것은 죄많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의 열매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고난에 대한 인내를 보여준다. 

그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고난을 참는 인내를 가지게 하여 준다.

② 이 복음은 그 복음을 따르는 자들이 힘써 지켜야 할 말씀이다. 그들은 이 복음에 기록된 대로 믿고 실천하며 그리고 예배하여야 한다.

③ 우리는 이러한 인내의 날에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복음적인 평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인내 끝에 온다.

④ 때로 그 시련은 매우 보편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 시련은 온 세상에 임하며, 또 그만큼 보편적인 동시에 때로는 길지 않을 수 있다.

⑤ 평화의 날에 복음의 말씀을 잘 지킨 자들은 유혹과 시련의 날에 그리스도로부터 보호함을 받는다. 복음을 지키는 것이 곧 시련을 이길 준비를 하는 것이 된다

평화의 날에 그들로 하여금 충실하게 하도록 만들어 준 것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핍박의 날에도 그들로 하여금 충실하게 만들어 준다.

4. 그리스도는 약속을 하시기 전에 교회에 대해 그들의 임무를 다하라고 명령하셨다. 

즉 그것은 인내하며,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는 것이다.

(1) 그 의무는 이런 것이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네가 가진 것이란 믿음과 진리와 은혜의 강함과 열심과 그리고 형제애이다. 너희는 이 보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굳게 붙잡으라."

(2) 그 동기는 그리스도께서 속히 임하시리라는 것 때문이다. 

"보라 내가 속히 임하리라보라, 나는 시련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오고 있으며, 그들의 충성에 대해 상급을 주며, 떨어져 나간 자들을 벌주기 위해 오리라. 그들은 그들이 바라며, 또 그들이 능히 차지할 수 있었던 면류관을 빼앗길 것이다. 그러나 참고이기는 성도들은 상급을 얻을 것이며, 뒷걸음친 자들은 그들의 상을 놓칠 것이다."

Ⅲ. 이제 이 편지의 결론 부분을 살펴보자(12,13절).

1. 주님께서는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광스러운 상급을 약속하신다. 

그것은 두 가지를 약속하신 것이다.

(1)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념비적인 기둥이 되게 하신다." 

그 기둥은 성전을 떠받드는데 필요한 기둥이 아니다(하늘에는 그러한 버팀 나무가 필요치 않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값이 없이 주시는 능력 많은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며, 로마의 황제와 장군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 놓은 기둥들같이 영원한 기념물일 따름이다.

(2) 그 기념비 기둥 위에는 그 당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것과 같이 명예로운 기명이 새겨져 있다.

①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이 축복에 참예하게 되었고, 그들은 하나님을 섬겼으며, 하나님 때문에 그들은 이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인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기둥 위에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행한 모든 봉사가 낱낱이 기록될 것이며, 그들이 얼마나 교회를 확장시켰으며, 교회의 순결성과 명예를 유지하도록 힘써 왔는가가 자세히 기록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싸운 용사란 이름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인 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이름이 될 것이다.

② 그 기둥에 새겨진 또 다른 이름은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다. 

그는 우리의 중보자이시며, 구속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대의 대장이시다. 

그의 이름 밑에 모든 이기는 자들의 이름이 함께 기명될 것이며, 그의 지도하에 행동하였으며, 그의 본을 받아 성도들은 용기를 얻었으며, 그의 영향을 받아 성도들은 선한 싸움을 싸웠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이 편지 역시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씀으로 끝나고 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귀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충성된 성도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의 가치를 알아주시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명령을 내리시며, 또 그들의 충성에 또한 해 어떻게 면류관을 내리실 것인가에 대해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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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계 3:14-22)


라오디게아(도시명의 원 뜻, 라오(라오스=민중, 백성, laity) +디게아(디세아=권리, 정의, right) = 민권)는 빌라델비아(Philadelphia)에서 동남쪽으로 약 72km 떨어진 곳에, 에베소에서는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도시의 맞은편 북쪽으로 약 9km 떨어진 곳에는 히에라볼리가, 북동쪽으로 약 14km 지점에는 골로새가 있다.

동방과 서방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금융산업도시였고 치유의 신전과 함께 의과대학이 있었고, 효과가 좋은 안약[프리기안]생산지였을 뿐 아니라, 또한 모직과 면직 산업의 중심지였다. 리쿠스 계곡의 넓고 기름진 땅에서 목양과 목화 재배가 활발했기 때문.  

이 지역의 현재 지명은 파묵칼레(Pamukkale)인데, 터키어로 '파묵'은 목화, '칼레'는 성이란 뜻이다. 그래서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란 뜻인데, 히에라볼리 바로 아래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하얀 석회봉이 있고 그곳 때문에 현재 지명도 파묵칼레로 불리게 되었다. 그처럼 예전 유명했던 모직·면직 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현재 지명도 자연스럽게 '목화(Pamuk)'라고 붙이게 된 것.


이제 우리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에서 제일 마지막에 나오며 빌라델비아 교회와는 정반대로 제일 나쁜 교회에 대해 살펴 볼 차례가 되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책망의 말씀이 하나도 없었던 것과 같이 이번에 살펴 볼 이 교회는 칭찬의 말씀을 한 마디도 들은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런 교회라 할지라도 "일곱 금 춧대"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었다. 타락한 교회라 할지라도 교회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먼저 살펴 본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Ⅰ.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는 제목이 있다.

1. 수신자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이다. 

이 도시는 루커스강 근처에 있던 유명한 도시로, 매우 긴 성곽과 세 개의 대리석으로 세워진 극장, 또 로마와 같이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써 유명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도시에 복음을 전파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골로새서의 마지막 장에서 사도 바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문안을 보내고 있다.

라오디게아는 골로새로부터 불과 20마일 이상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제 4세기에 교회 협의회가 열렸던 기사가 있다. 

그러나 그 도시는 파멸된 지 오래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폐허화된 그대로 남아 있다. 말하자면 "어린양의 진노"를 보여주는 무서운 기념비적인 도시이다.

2. 이 편지의 송신자. 이 편지에서 우리 주님은 스스로를 "아멘 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일컫고 계신다.

(1) 그는 "아멘"이시다. 

다시 말해서 그의 의도와 약속은 한결 같고 변함이 없으시므로 언제나 예이고, 언제나 아멘 이시다.

(2) 그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다.

따라서 그가 사람들에게 행하는 하나님께 대한 증언은 능히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믿을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에 대해 증언할 때 그것 역시 그대로 인정될 것이다. 그 만큼 그의 증언은 미적지근한 사람들의 고백과는 달리 신속하고도 참된 것이다.

(3) 그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다

먼저는 그가 첫 번 창조에서의 근본이시다. 말하자면 그는 제일 원인이시며, 창조자이시며, 그리고 그 창조의 통괄자이시다. 

그는 제이의 창조인 교회의 창조의 근본이시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는 몸된 교회의 머리이시며, 1장 5절에 밝혀진 바와 같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시다. 

그리하여 이러한 칭호를 가지시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의 신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같이 새로운 세계의 머리로서 그를 섬기는 살아있는 성전과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죽은 자들을 살려 주신다.

Ⅱ. 이 편지의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그들 자신들 보다 그들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시는 이가 그 교회와 목사와 그리고 교인들을 엄히 꾸짖고 계신다. 

"차든지 더웁든지" 하여야 할 그들이 그렇지 못하고,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였다"(15절). 

미지근하거나 냉담한 신앙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신앙적인 기질이다. 만일 믿음이 참다운 것이라면 그것은 가장 훌륭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심히 믿어야 한다. 

반대로 만일 믿음이 참다운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가장 몹쓸 사기술이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만일 믿음이 그 어느 것보다도 귀한 것이면, 그것은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믿음에 대해 냉담하다면 그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노릇이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믿음에는 중립이란 자리가 없다. 불성실한 중립 표방자 보다는 오히려 공개적인 적대자가 더 떳떳하다. 

그런 미지근한 자들보다는 차라리 이방인들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 더 낫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그의 편인지 또는 그를 반대하는지를 열심히 밝혀 주시기를 바라고 계신다.

2. 매우 엄중한 책벌이 그들에게 떨어졌다.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미지근한 물이 비위를 뒤집어서 구토를 일으키게 하는 것과 같이, 미지근한 신앙 고백 역시 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뒤집어 놓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 대해 넌더리를 내시며, 그들을 그 이상 더 참지 못하신다. 

그들은 스스로 그들의 미지근함에 대해 "사랑이라든가, 온유 또는 중용지도라든가 영혼의 관대함"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이른 바 똘레랑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그리스도를 지겹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내버려두신다. 

그들은 끝내 거절을 받음으로 거룩하신 그리스도께 다시 돌아올 수 없으리 만큼 철저하게 거부당하게 될 것이다.

3. 그들의 그러한 냉담하고 불일치한 신앙의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의 자만심과 자기 망상에서 오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에((이만하면 되었다..라는 자기기만!!)) 그 이상 더 성장하든지 말든지 무관심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한다"(17절). 

여기서 우리는 그들 자신들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그들을 보는 그리스도의 생각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를 살펴보자.

(1)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매우 좋게 생각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며, 부족할 가능성조차도 없으리 만큼 부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들은 그들의 육신을 위해서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배운 바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받은 바 은사가 있는데 그것을 은혜로 여겼다. 그들은 재치를 가지고 그것을 참다운 지혜라고 여겼다. 

그들은 그들의 의식(儀式)을 그 의식의 주인이신 하나님보다 더 윗자리에 올려놓았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속이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인가! 

지옥에 떨어진 많은 영혼들 가운데는 그들이 천국으로 가는 줄로 알았던 영혼들이 틀림없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우리는 우쭐대다가 우리들의 영혼의 관심을 떠나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않도록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자.

(2) 그리스도께서 그들에 대해 품으셨던 바른 생각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잘 알고 계셨다. 

그들의 상태는 능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연민의 정을 끌어들일 만큼 곤 고한 것이었다. 

그들은 비록 스스로를 자랑했지만 그들의 상태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겼다.

① 그들은 그들이 부자라고 말하며 그렇게 생각하였지만, 실상 그들은 가난하였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영혼을 살려나갈 양식이 없었다. 그들은 부요하다고 하나 그들의 영혼은 굶주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빚진 바가 많건마는 그 빛의 한 모퉁이조차 갚을 길이 없었다.

② 그들은 눈이 멀었다. 

그들은 그들의 상태, 그들이 가고 있던 길, 또는 그들이 처해 있던 위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처지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앞일을 내다볼 수 없었다. 

그들은 눈이 멀었건만 그들이 보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던 빛은 실상 어두움이었다. 그러니 그 어두움이 얼마나 짙었겠는가!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그들의 눈앞에서, 그들이 볼 수 있도록 십자가에 못 박히셨건만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언제나 계시건만 그들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죽음이 그들의 눈앞에 다가왔건만 그 죽음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영원한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그 영원을 볼 수가 없었다.

③ 그들은 벌거벗은 몸이 되어 입을 옷도 없고, 집도 없었으며, 영혼의 항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그들에게는 입을 옷도 없었고, 칭의의 옷이라든가 성결의 옷 같은 것도 없었다. 

그들은 죄와 더러움으로 말미암아 벗은 몸이 되었지만 덮어 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죄와 부끄러움에 노출된 채 내버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들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하였다. 그들을 가리워주지 못하는 누더기였으며, 그들을 더럽게 만들어 주는 것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집도 없고 항구도 없는 벌거벗은 몸과 같은 신세였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의 거처가 되시며, 인간의 영혼을 위한 편안한 안식처가 되시는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육체의 부요는 영혼의 부요가 될 수 없다. 육체의 겉모양은 영혼의 빛이 될 수 없다. 육체를 위한 안락한 집이 곧 영혼을 위해서는 좋은 휴식처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그 본성에 알맞는 집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적인 부요 속에서도 그 영혼은 가련하고도 불쌍한 처지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4.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죄많은 백성들에게도 좋은 말씀으로 권고하신다. 

그 권면은 그들이 그들 자신에 대해 가졌던 공허하고 거짓된 생각을 버리고, 그들의 진실한 모습을 찾아보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절).

(1)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선하신 권고를 저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도 계속 좋은 권고를 주신다.

(2)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우신 부르심과 권고를 기뻐하는 한 그들의 상태는 절대로 절망적일 수 없다.

(3) 우리의 귀한 권면자이신 복되신 주님은 모든 죄인에게 꼭 필요한 최선의 충고를 언제나 해 주신다.

① 이 사람들은 가난하였다. 그리하여 그에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해지도록 하라고 권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하여야 참된 부요를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첫째, 그들이 그 부요를 얻을 수 있는 곳은 그리스도에게서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팩톨루스(Pactolus) 강이나 포토지(Potosi) 광산으로 보내지 않고, 값진 진주이신 그 자신에게로 초대하신다.

둘째,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그로부터 이런 참된 금을 얻을 수 있는가? 

그들은 그것을 사야만 한다. 이것은 매우 적절하지 못한 말처럼 들린다. 그처럼 가나한 자들이 어떻게 금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돈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듯이(사 55:1) 그리스도에게서 사면된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가치 있는 대가인 것만은 아니다. 다만 참된 부요를 받아들일 만한 자리를 마련하기만 하면 된다. 

"죄와 자만의 생각을 버리고, 가난하고 빈 마음을 품은 채 그리스도께 오라." 그리하면 그는 그의 감추어진 보화를 가지고 너를 충만케 하여 주실 것이다.

② 이 사람들은 벗은 몸으로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어디서 그들이 옷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그 옷이 능히 그들의 벗은 것과 부끄러움을 가려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이런 옷을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해 주시는 흰옷을 입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금 걸치고 있는 더러운 누더기를 벗어 던져야만 한다. 그 흰옷이란 그리스도 자신의 의를 가지고 그들을 의롭게 여겨 주시며, 그리고 그들을 거룩하고 성결하게 하는 옷이다.

③ 그들은 눈이 멀었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들에게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권면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지혜와 이성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성령에 따라 순종하라는 권면이다. 

그리하면 그들의 눈이 떠져서 그들이 가는 길과 그 끝이며, 그들의 의무와 그들의 참다운 이해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밝히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새롭고도 영광스러운 광경이 그들의 영혼 앞에 전개될 것이다. 그들 앞에 전개될 새 세계는 아름답고 찬란한 것들로 꾸며질 것이다. 

그리하여 이 찬란한 광채는 금방 어둠의 권세에서부터 놓여 나온 사람들에게 황홀함을 안겨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처럼 경솔한 심령들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지혜롭고 선하신 권면이시다. 

그들이 그의 권면을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명예에 입각해서 그들에게 주신 그 약속이 꼭 실현되게 하실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죄많은 사람들일지라도 그의 훈계와 충고를 반드시 따르도록 크고 은혜로우신 격려의 말씀을 덧붙여 주신다(19,20절).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1) 그는 매우 진실되고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심한 말을 하며 엄히 꾸짖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들의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내가 만일 너희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희들의 그처럼 죄악된 미지근함과 헛된 신념에 대해 그렇게 공개적으로 책망하거나 또는 이를 고쳐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미워한다면, 너희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며, 죄로 말미암아 끝내는 너희 자신이 멸망하도록 버려둘 것이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채찍에 의한 징계를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의의 표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 따라 열심히 회개하고 그들을 치는 분에게로 돌아서야 한다. 친구의 험상궂은 얼굴과 상처가 원수의 아첨하는 웃음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2) 그들이 만일 그의 훈계를 따른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줄 귀한 것들을 준비해 두고 계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20절).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죄인들의 마음의 문을 찾아가시기를 즐겨하신다. 

그는 자비와 친절한 마음을 가지시고 그들을 찾아 나서신다.

② 그리스도는 그 문이 닫혀 있다는 것을 아신다. 

인간의 마음은 무지와 불신앙과 죄악된 편견 때문에 본성적으로 그리스도를 향해 닫아 놓고 있다.

③ 그리스도는 그 마음의 문이 닫힌 것을 보고도 즉시 철수하시지 않으신다. 

그는 그의 머리가 이슬에 젖을지언정 문이 열리기를 은혜롭게 기다리신다.

④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일깨우기 위해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쓰시며 그들로 하여금 문을 열게 만드신다. 

그는 그의 말씀으로 그들을 부르시며, 그의 성령의 충동으로 그들의 양심을 두드리신다.

⑤ 그리스도에게 문을 열어 드리는 사람은 그의 임재를 맞게 되고, 커다란 위로와 도우심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있는 좋은 것들을 취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좋은 열매를 드실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가장 좋은 대접의 일부를 가져가실 것이다. 만일 그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대접받게 된다면 그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져가실 것인가! 

그는 새로운 은혜와 위로를 가져다주심으로 그들의 신앙과 사랑과 기쁨을 새롭게 활동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통해 그리스도와 그의 회개한 백성들은 함께 즐거운 잔치에 참예할 것이다. 

그런데 완고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마음의 문을 열어 주기를 거부한 죄인들은 얼마나 귀한 것을 잃어버렸을 것인가!

Ⅲ. 이제 우리는 이 편지의 결론 부분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는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들어 있다.

1. 이기는 신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약속이 주어졌다. 그 약속의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1) 이 교회가 전적으로 미지근함과 자만심 때문에 굴복 당하고 쓰러져버린 교회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책망과 권면의 말씀에 따라 새로운 열심과 활동력을 소생시켜서, 영적인 면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이전에 지은 모든 죄는 용서받고 뿐만 아니라 상급까지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상급이란 어떤 것인가?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21절). 

이 말씀의 뜻은 다음과 같다.

①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시험과 시련을 겪으셨다.

②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시련을 이기셨고 단순한 정복자 이상의 분이 되셨다.

③ 그 시련과 승리의 상급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으시게 되었다. 

그러한 영광은 그가 아버지와 함께 영원 전부터 가지고 계신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구세주로서의 그의 구원의 사업을 완성시킨다는 보증으로서 그 영광을 아버지의 손에 위탁하고 그 자신은 땅에 내려 오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일을 완성하심으로 해서 아버지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나가시기 위해 Pignus reposcere - 즉 그 보증을 되찾으신 것이다.

④ 그리스도와 함께 시험과 승리에 동참한 사람은 따라서 그의 영광에도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그 보좌는 세상 끝날에 세상을 심판하는 심판의 보좌이며, 영원히 빛날 영광의 보좌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머리되신 그분의 신비한 몸으로서 빛날 보좌이다.

2. 이제 전반적으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씀과 함께 모든 말씀이 끝을 맺게 되었다(22절). 

그 말씀은 곧 이 편지서를 받아 볼 사람들이 그 내용을 사사로이 풀거나 또는 어떤 특정한 교회를 위해 가르치거나 책망하거나 시정시키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온 세상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에 해당되는 말씀임을 생각하게 하여 주는 말씀이다. 

그리고 또 여기에 나오는 교회들의 뒤를 이어 일어날 교회들에서도 그들의 은혜와 죄의 면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니만큼,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여기 나오는 교회들을 대하신 것과 같은 대우를 받으리라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것은 모든 세대를 위한 하나의 전형이다. 

따라서 똑같이 충성되고 열매맺는 교회는 똑 같은 상급을 받을 것이며, 충실치 못한 교회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어떤 교회들을 대하시는 품은 세상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 교훈을 주는데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먼저 시작된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겠는가?" (벧전 4:17) 

이렇게 해서 이 책의 서신 부분인, 아세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끝났다. 이제 우리는 예언의 부분을 살펴 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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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Sardis(지) Savrdei"(4554, 사르데이스) 
사데는 서머나의 동쪽으로 약 50마일 거리에 있는 소아시아 서쪽의 한 도시이다. 
아마도 일찍이 B.C. 1,200년에 세워졌다. 사데는 이 도시가 수도인 강력한 리디아(Lydia) 왕국을 통과하여 동서로 뻗어있는 무역 교차로에 위치해 있어서 상업과 트몰루스(Tmolus)강의 비옥한 평야와 대규모의 직물 제조와 금세공으로 부유하였다. 그 도시는 엄청나게 부요했던 크로에수스(Croesus: 리디아의 부왕)의 치하에서 최초의 주화의 주조로 신용을 얻었다. 
그리스는 아마도 사데로부터 화폐 주조 기술을 배웠을 것이다.
거의 난공 불락의 성채에도 불구하고 사데는 키루스(Cyrus..고레스) 대왕(B.C. 546)과 안티오커스(Antiochus) 대왕(B.C. 218)에 의해 정복 당했다. 
사데는 B.C. 129년 편제된 아시아의 로마 식민지에 속한다. 그 곳의 부유한 시민들은 죽은 자에게 생명을 돌려주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퀴벨레(Cybele: 프리기아의 대지의 여신)의 신비 의식을 포함하는 신비 의식의 후원자들이었다.  따라서 계 3:4의 요점은 사데에서도 "그들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흰 옷을 입고 다니기에 합당한 "소수의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다.  기독교 거주민들은 대다수가 이교도로 되돌아가기까지 타락하였다. 
장대한 아르테미스의 신전(B.C. 4세기)의 일부가 남아 있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 교회의 벽들은 A.D. 4세기 이전에 건설되었다. 
제우스의 신전이 크로에수스(Croesus)의 궁전 기초의 윗쪽에 세워졌다고 한다. 1931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A.D. 2세기부터 4세기까지 날짜가 기입되어 있는 체스터 뷰티 파피리(Chester Beatty Papyri)에는 사데의 멜리토(Melito)에 의한 설교, 또는 종교적인 강연이 포함되어 있다. (참조: HBD). 
##사데,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   
‘남은 자’ 또는 ‘남은 물건’이라는 의미를 지닌 사데는 두아디라에서 남쪽으로 48km 떨어진 곳, 강가와 산기슭에 위치,. 사데 앞으로는 팍톨루스(Pactolus)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뒤로는 투몰루스(Tumolus)라는 산이 자리하고 있다. 강과 산 사이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데의 지정학적 위치는 이 도시를 난공불락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천혜의 난공불락의 산 위에 리디아의 수도를 건설하여 외적의 침략 걱정 없이 리디아 왕조들은 안락을 누렸는데,  기게스 왕조의 5대 왕인 크로이소스(Croesos)가 왕이 되어 편안히 지내고 있을 때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리디아를 침공할 당시 사데의 역사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 준다. 
사데는 큰 분지와 넓은 평원으로 이뤄지는 곳에 도시가 건설되어 있었고,. 해발 250m 높은 산으로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이 도시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좁은 입구를 거쳐야 했었다.
이러한 곳에 페르시아(바사)군이 14일간 포위하고 있었으나, 입구를 찾지 못하여서 침략할 수가 없었고, 이런 철벽과도 같은 지형에 안심하며, 사데 왕과 백성들은 싸움에 준비도 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입구에만 군인들을 매복시켜 두고는 오히려 해이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데 지역 언덕에서 무엇이 떨어졌는데, 성벽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사데 병사 한 명이 졸다가, 쓰고 있던 투구를 절벽으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사데 병사는 적을 의식하지 못하고 오직 잃어버린 투구를 찾을 생각으로 성벽 아래로 뚫린 비밀구멍으로 내려와 투구를 가지고 다시 성벽으로 올라갔고, 그것을 본 페르시아 군사는 고레스 왕에게 보고하였고 그날 밤 정예 병사들을 취약점인 그 구멍으로 올려 보내 성문을 열게 한 후, 난공불락의 성 사데를 점령했다는 것이다. 이는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를 무너뜨린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 이후 사데는 페르시아 제국의 소아시아 지역 수도로 더욱 번성하여, 수도인 수사에서 사데까지 2,703km 길이의 페르시아 ‘왕의 대로’(King’s Way)가 만들어지면서, 이 도로를 이용해 동서 무역과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후 BC 334년, 그리스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난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에 이어 버가모(Pergamon) 왕국, 그리고 로마에 의해 각각 차례대로 점령되었다. 
BC 17년에는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원조로 재건되었다. 하지만 옛 영광의 모습과 도시의 중요성은 되찾지 못했다.
‘황금의 도시’라 불린 사데(Sardis)는 그 별명처럼 화려하고 부유했던 도시였으며, 지금은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한때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고, 페르시아 제국의 소아시아 지역 수도였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 불렸던 사데교회, 그렇게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도시들이 대부분 밟았던 전철 같이 사데교회도 역시 동일하게 형식은 살았으나 실질적 내면의 신앙은 죽은 교회로 전락하여 회개하라는 책망을 들었다. 무엇이 사데교회를 더럽혔는지는 계시록에 나와 있지는 않다.. 
물질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데가 멸망할 때와 같이 교회를 지키는 파숫군이 조는 틈을 타서 작은 구멍으로 마귀가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회가 다 썩고 부패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 중에 몇 명은 그래도 흰옷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을 지키고 있었다고 주님은 칭찬하셨고,. 이기는 자에게는 흰옷을 입히고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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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 3장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사데는 두아디라 남동 약 48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 현재 터키인 루디아의 수도였다. 이 도시는 상업적으로 번창한 도시였다. 특히 염직 공업과 양털 염색, 금모래가 유명하여서 사치와 부의 도시로 전략하였고 무역의 요충지가 되었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성채가 남쪽만을 제외하고 모두 암벽으로 되어 있어 난공 불락의 성을 이루고 있었기에 상당히 안일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사데 사람들은 그 안일함으로 인해 두 번 정복을 당하였다. B.C. 6세기 고레스(Cyrus)의 공격과 약 200년 후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침략이 그것이다. 종교적으로 사데는 시벨리(Cybele) 여신을 섬겼고 황제 숭배가 극심하였다. 한편 사데 교회의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요한의 전도로 세워졌고 2세기에 이르러 변증가며 주석가로 유명했던 멜리토(Melito)가 이 교회의 감독이 됨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물질적 부요로 말미암아 내적인 피폐로 안일과 부도덕의 모습이 교회에까지 침투하였다.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 본문은 사데 교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키며(1:4,16,20, Lenski,Morris, 1:4 주석 참조), '일곱 별'은 교회를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천사를 가리킨다(1:20 주석 참조). 한편 '가진'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천사의 역할을 주관하심을 시사한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하시는 주된 일은 내적인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원을 확증케 하는 일이다(요14:16).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시는 성령과 교회를 지키는 천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제로는 '죽었다'는 선언을 받은 사데 교회의 영적인 상태와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여 회개한다면 언제든지 죽은 사데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으며,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는 소수의 사데 교인을 지키고 계심을 시사한다(4절, Mounce, Moffatt, Ramsay, Ford).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사데 교회의 '행위'가 사데 교회의 과거 업적을 말하는지 아니면 과거의 명성만 주장한 채 현재는 생명을 상실한 모습을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다음 절에서 '온전한 것이 없다'는 선언으로 보아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Johnson). 실지로 사데 교회는 일곱 교회중 이단의 특별한 위협이나 외부의 핍박이 가장 적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교적 문화나 주변 환경과 타합함으로 생명력을 잃어 버렸다. 사데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한 사실을 단적으로 묘사한 '죽었다'는 표현은 사데에서 약 11km 떨어진 언덕같은 수많은 묘지를 암시한다. 이러한 표현이 종종 전통만을 고집하던 유대인들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Kiddle, Moffatt) 사데 교회가 외적인 형식과 모습은 갖추었으나 신령한 모습은 상실했음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3: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 '일깨워'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누 그레고논'(* )은 현재 미완료 시상과 현재 능동태 분사가 결합되어 계속적인 경성(警醒)을 시사한다(Moffatt, Beck, Robertson). 이는 사데 지역이 난공 불락의 천연 요새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안일에 빠져 두번씩이나 점령을 당했던 사데 지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경고가 되었을 것이다(Mounce,Lenski). 그리스도께서는 '일깨워'라는 권면을 사데 교회에 하심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함과(3절) 동시에 사데 교회가 비록 죽음 직전에 있으나 완전한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Weymount). '죽게 된 것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에메론 아포다네인'(* )은 미완료 능동태 시상으로 사데 교회가 부분적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준다(Swete). 한편 '굳게 하라'의 헬라어 '스테리손'(*)은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아직 남아있는 영적 생명을 견고히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시사한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 '온전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레로메나'(* )는 '충만함'을 나타내는 헬라어 '플레로오'(* )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완전함이라기 보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온전함을 말한다. 이것은 비록 사데 교회가 외적으로 보기에 풍성하며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시기에 허망하였음을 시사한다(Greijdanus).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 본문은 사데 교회를 향한 세 가지 명령이다. (1)생각하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모뉴에'(* )는 '염두에 두다'란 의미의 '므네모뉴오'(*)의 현재 명령형으로 '항상 상태를 되돌아 보라'는 뜻이다(12:5). (2)지키어.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레이'(* ) 역시 '유지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테레오'(* )의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이미 받았고 들었던 복음을 굳게 붙잡아야 함을 시사한다. (3)회개하라. 이것의 헬라어 '메타노에손'(*)은 '돌이키다'는 의미를 가진 '메타노에오'(* )의 부정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죄에서 돌이킬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단회적이며 시급한 돌이킴에 대한 명령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심판을 내다보며 죄로 부패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함을 나타낸다(Behm).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내가 알지못하리라. - 본문은 마24:34과 살전5:2을 반영한다.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권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죄 속에 머물러 생명력을 상실한다면 마치 도적이 밤에 들이닥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예기치 못할 때에 오셔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한편 '알지 못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 메 그노스'(* )는 제2부정 과거 능동태 가정법을 동반한 이중 부정으로 강조적이다.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 본문은 대부분의 사데 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으나 그 가운데 극소수의 예외가 있었음을 나타낸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단순한 도덕적 순결로 해석한다(Moffatt). (2)혹자는 성적인 불결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해석한다(Zahn). (3)혹자는 구원받은 자가 사회적인 풍조와 혼합에 물들지 않는 기독교적 성결로 해석한다(고후7:1, Lenski, Johnson).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당시의 사데 교회가 처한 입장은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이나 성적인 범죄와 같은 일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내적이고 기독교적인 문제였으며, '옷이 더럽다'는 것은 기독교적 순결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고전8:7; 고후11:2;유1:23). 이러한 옷에 대한 예는 양모 산업이 발달하여 옷에 대해 관심이 많던 사데사람들에게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한편 '몇 명'의 헬라어는 '올리가 오노마타'(*)로 문자적으로 '몇 이름들'이다(행1:15; 계11:13). 이는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됨을 시사한다(Mounce, Ironside).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기다리니. - '흰 옷'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는 의'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Plummer). (2)혹자는 '최후에 그리스도인이 하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과 성결'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lford). (3)혹자는 '죄나 이교도적인 혼합에서 분리시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enski).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와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사데 교회의 교인들은 외적인 겉모습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내적 정결과 이교(異敎)와의 분리된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기 때문이다(Johnson). 한편 '함께 다니리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그와 함께 교제함을 표현하는 것으로(창5:22; 요:6,7) 단순히 현재적인 교제는 물론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교제를 시사한다(Ladd, Greijdanus).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합당한'은 종말에 있게 될 심판의 기준에 타당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2:7,17,27,28)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누리는것을 시사한다(Clarke, Morris).
=====3:5
본절은 사데 교인들 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약속이
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 '이기는' 것에 대해서는 사데 교회의 경우 다른 소아시아의 교회와는 달리 외적 핍박이나 특별한 이단 그리고 신비주의가 언급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문맥과 사데 교회가 처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세상의 부패나 타협, 안일함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한편 승리자에게 주어질 첫번째 약속은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흰 옷을 입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희게 되었으며(7:14)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과의, 영광을 닮아(18절; 6:11; 7:9,13; 19:14) 하나님 나라에게의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받음을 시사한다(4절 주석 참조, Ladd,Johnson).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 '생명책'은 신,구약 성경에서 자주 언급된다(13:8; 17:8; 20:12,15; 21:27; 출32:32; 시69:28; 눅10:20; 빌4:3).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을 의미하였으며(출32:32,33), 신약성경에서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별하는 의미로 쓰여 그리스도의 피로 의로워진 자들은 영생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13:8; 17:8; 20:12,15; 21:27; 눅10:20; 빌4:3, Rosh). 그리스도께서 승리자에게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은 승리자를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롬8:38,39)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시민권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시사한다(Johnson, Beasley, Murray).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세번째 약속으로 마10:32을 반영한다(막8:38; 눅9:26; 12:8).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공적(公的)으로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시인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게소'(* )는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자신을 의지하여 승리한 자들의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증언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확인하실것을 시사한다.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이에 대하여는 2:7 주석을 참조하라.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약 40km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곳은 서머나와 루디아 왕국으로부터 동방으로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러야 하는 도시로 '동방의 관문'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를 누렸으나 지진이 잦아 피해가 많았다. 또한 많은 신전과 종교적 행사가 있어 A.D.5세기에는 '작은 아테네'로 불렸다. 그러나 빌라델비아는 이교 신전과 종교 행사가 많고 2,3장에 나타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위치한 지역 중 가장 짧은 역사를 기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B.C. 159-138) 아시아가 이슬람 교도들에 의해 짓밟힐 때 유일한 기독교의 보루(堡壘)로서 신앙적인 면에서 가장 칭찬을 받은 지역이다(Lenski, Johnson). 한편 빌라델비아교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단지 암미아(Ammia)라는 여선지자가 이 교회를 관할하면서(A.D. 100-160) 큰 부흥을 이룬 듯하다. 이 교회의 성장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개종하는 역사도 있었으나 반면에 교회를 가장 반대하는 자들 역시 유대인들이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하기오스, 호 알레디노스'(*)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자, 진실한 자'를 의미한다. '호 하기오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으나(사1:4; 5:19,24;10:17,20; 12:6; 렘51:5; 겔39:7; 호11:9; 합3:3)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그의 신성과 메시야성을 나타내고 있다(막1:24; 요6:39; 행2:27; 13:35; 히7:26) 또한 '호 알레디노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온전하며 충성된 자.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한 충성으로 메시야적 직무를 수행하신 완전한 분이심을 시사한다(Hort) (2)진실한 자.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로 사용되었으나(사65:16)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메시야로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는 분이시므로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언급되었다(Mounce, Ladd).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 본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22:15-25을 반영한다. 이사야서에서 국고를 맡고 있는 셉나 대신에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 열쇠를 맡아 다윗의 집 전체를 관리하는 권세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본문에서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집 즉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로서 하나님 나라의 특성인 영생의 수여권을 시사한다(Ladd, Beasley-Murray).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을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한 바와 같이 스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하신다(Johnson). 한편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에 대한 해석으로 당시 빌라델비아의 정황을 반영한다. 당시 빌라델비아에 많이 거주하였던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다윗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 살던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진이'라고 계시한 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선민 의식에 대한 반론이며, 그리스도 자신이 천국의 주권을 가진 메시야이심을 강조함으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위로하신 것이다(1:18; 마28:18; 엡1:22; 히3:6).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 '열린 문'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남북으로 로마와 소아시아의 수도 에베소를 연결하는 빌라델비아의 지리적위치 때문에 이를 '선교의 문'으로 해석한다(Ramsay,Swete, Alford, Clarke, Charles, Holtzmann). (2)혹자는 '그리스도의 문'이나, '기도나 순교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집접 나아가는 길'로 해석한다(Kiddle, Moffatt). (3)혹자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문'으로 해석한다(Ladd, Zahn, Rist, Beckwith). 이 가운데서 세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12절과 본서의 종말론적(終末論的) 성격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신 구원의 문을 닫을 사람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칭찬하신 내용이다.  '적은 능력'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크란 에케이스 뒤나민'(*)은 '능력이 거의 없다'는 의미로 그 지역에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신분이나 지위 등의 외적 능력이 변변치 못함을 나타낸다. 한편 '지키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에테레사스'(* )는 반의적인 강조 표현으로 문자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를 의미한다. 이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유대인들이 가하는 시련과 온갖 유혹 가운데서도(9절) 진리의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았음을 시사한다.
=====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처한 문제는 외적인 황제 숭배나 핍박같은 것도 아니었고 부도덕하게 혼합주의로 이끌어 가는 이세벨주의나 니골라당 같은 내적 문제도 아니었다. 그들이 처한 위기는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혈통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나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함으로 사단을 추종하는 자들 즉 '사단의 회'가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유대인이 혈통과 같은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이면적(裏面的)인 것임을 망각하였다(롬2:28,29).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 유대인들은 본래 이방인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와 굴복한다고 믿고 있다(사45:14; 60:14).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믿는 바와는 반대로 유대인들이 내면적인 유대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와 굴복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것에 대해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회심이라고 해석하나(롬9-11장, Ladd)  문맥상 본문은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인하는 '사단의 회'인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심을 나타낸다(Johnson, Mounce). 그리스도께서는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인한 혈통적 유대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셔서, 이면적이고 영적인 유대인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굴복케 하심으로 메시야이신 당신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드러내신다.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 '나의 인내의 말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인내함으로 그리스도의 마지막 재림을 기다리라'는 명령으로 해석한다(눅21:19; 히10:36, Lohmeyer, Vincent, Zahn). (2)혹자는 '인내로써 죄많은 세상의 모순을 극복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내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한다(살후3:5; 히12:3,Johnson, Charles, Ladd, Alford, Moffatt).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 '시험의 때'에 관해서는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혹자는 빌라델비아 지역에서 교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개인이 혹은 교회 공동체가 겪는 고통으로 해석한다(Payne). (2)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dd, Mounce,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시험의 때'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면하게 하리니'와 상관 관계를 형성하여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면하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레소 에크'(* )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요17:15의 용례를 들어 전치사 '에크'(* , '...중에서 밖으로')가 사용된 것은 환난 가운데서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본문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현재 처하고 있는 고통에서 보호받게 될 것을 말한다고 해석한다(Charles). (2)혹자는 약1:27의 용례를 들어 전치사 '에크'를 '아포'(* , '...로부터')의 의미로 보아 환난에서 떠나 보호를 받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이는 장차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환난 그 자체에서 제외된다는 입장으로 해석한다(Moffatt,Rist). 이 드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시험의 때'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 또는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Johnson).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사단의 역사로 인한 고난은 받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는 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장차 온 세상이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본문은 앞서 언급된 '시험의 때'에 대한 보충문이다. 본서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교회를 대적한 비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6:10; 8:13; 11:10; 13:8,14; 17:8).  그러기에 본절의 '시험할 때'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가 당하는 일반적인 환난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때를 가리킨다.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 본문은 본서의 중심 사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1)심판의 측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악한 자들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목적으로 한다(마24:48-51; 살후1:7-9). 이는 에베소(2:5), 버가모(2:16) 및 사데 교회(3절)에 임하신 모습이다. (2)축복의 측면. 본문에서는 심판의 경고가 아닌 충성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향한 축복의 재림의 약속을 나타낸다(2:16; 22:7,12,20, Johnson).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굳게 잡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이'(* )는 현재 명령형 시제로 이제까지 빌라델비아 교회가 지켜온 믿음을 더욱 지속적으로 공고히 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편 '면류관'은 경기장에서 승리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경기장에서 선수가 상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히12:1-4) 빌라델비아 교인들도 지속적으로 영적 무장을 통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의 말씀을 지켜 승리해야 함을 시사한다('면류관'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 본문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성전 기둥'을 비유로 하고 있다. 당시 빌라델비아는 잦은 지진으로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으나 파괴된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전의 돌 기둥뿐이었다(Ramsay, Johnson). 지진과 폐허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신전 기둥을 본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은 승리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하고 요동치 않는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렘1:18; 딤전3:15, Charles,Mounce,Ladd).
@내가...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본문은 빌라델비아 교인들 중 승리자에게 주어진 두번째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 종류의 이름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름을 부여받는 것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있어서 친숙한 것이었다. 빌라델비아는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을 때 티베리우스(Tiberius)의 도움으로 재건된후 '네오가이사랴'(Neocaesarea)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후에 베스파시안(Vespasian)황제의 성을 따라 '플라비아'(Flavia)로 개명되었다(A.D. 70-79). 이러한 경험을 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부여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하나님의 이름. -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졌다(민6:27).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시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승리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낸다(22:4, Ladd, Morris, Johnson).
(2)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 -하나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의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소유함을 시사한다(Mounce, Ladd, Morris).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것으로(빌3:20) 그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주할 것임을 암시한다.
(3)나의 새 이름. - 그리스도의 새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새 이름, 곧 다른 모든 권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절대적인 권력과 인격 그리고 성품을 나타내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이긴자들에게 주어짐을 의미한다(19:12, Mounce, Morris, Beasley-Murray, Ladd) 다른 하나는 구속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음을 나타낸다(사62:6; 65:15, Johnson).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2:7절 주석을 참조하라.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 동남쪽 약72km,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라이커스(Lycus) 계곡에 있는 여러 도시들 중 하나이다. 또한 맞은 편으로 10km 지점에는 히에라볼리가 약14km 지점에 골로새가 위치해 있었는데 이 세 곳은 바울 서신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골4:13,16). 이곳의 특징은 교통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모직물 공업의 중심지였으며 '브루기아 가루'마 알려진 안약과 의학교가 있었다. 또한 활발한 금융거래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이곳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히에라볼리와 골로새로부터 항상 수로를 이용해 물을 공급받아야 했다. 한편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바브라가 설립하였으며(골4:12,13) 골로새 교회와 함께 바울이 지도하였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 '아멘이시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멘'(* )은 문자적으로 '아멘인 자'를 의미하며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칭호로 나타난다(사65:16). 이것은 70인역에서 '톤 데온 톤 알레디논'(*, '진실한 하나님')으로 나타나면 '진리의 하나님'(the God of the truth, RSV), '이름이 아멘이신 하나님'(the God whose name is Amen, NEB)으로 번역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진리이시며, 신실하심을 시사한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칭호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그리스도의 신실성이 부각되고 있다(1:5,6; 고후1:20, Mounce). 한편 '충성되고 참된 증인'은 '아멘이시요'와 동일한 사상을 내포하는 칭호로(Ford, Beasley-Murray, Morris)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 온전한 순종과 충성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셨음을 시사한다(1:5,9;2:13;고후1:20, Johnson).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의 헬라어 '헤 아르케 테스 크티세오스 투 데우'(*)에서 '아르케'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의 최고(最高)의 근원을 나타낸다.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칭호 즉 '알파와 오메가'에서 '알파'에 해당되는 것으로(Beasley-Murray) 그리스도께서 피조물 가운데 처음이란 의미가 아니라 창조자이며 창조의 근본이심을 나타낸다(잠8:22ff.; 요1:1-3; 고전1:30; 골1:15; 히1:2,3,Moffatt, Charles, Lightfoot). 또한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시사한다(Moffatt).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열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음을 책망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차다'는 것은 라오디게아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약 16km 떨어진 골로새로부터 냉수를 공급받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그들이 불신의 상태로 세상에 속하였음을 시사한다. '더웁다'는 것은 인접한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신앙을 위한 열정을 비유한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차지도 덥지도' 즉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세상과 타협하지도, 혹은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소유하지도 않은 상태로 미지근하였다(16절).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만하는 자들이었다. 라오디게아교인들에게 '차든지 덥든지'하라는 요구는 양자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라는 의미라기보다 '차든지'와 '덥든지'의 중간 상태를 택하는 그들의 '미지근한 상태'에 대한 신랄한 책망이다(Johnson).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 '미지근하여'라는 언급은 '차다', '더웁다'는 말과 관련되어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가 무익하고 무력함을 나타낸다(Beckwith, Green, Rudwick).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히에라볼리로부터 끌어온 온천수와 골로새로부터 수로를 통해 가져온 찬물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물이 미지근하게 됨으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여 마시는 자마다 토하여 버렸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미지근한 물을 토해 버리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미지근한 영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거부하고 버리겠다고 책망하신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 '부요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루테카'(* )는 현재 완료형으로 이제 완전히 부요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의미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스스로가 부요하여 더이상 바랄 것이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상당히 부요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는 매우 빈곤하고 곤고하다. 이러한 모습은 서머나 교회와 대조를 이룬다. 서머나 교회는 외적으로 가난하였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였던 반면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반대였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실상을 묘사한 것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Mounce,Johnson). (1)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 '곤고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약탈되거나 파괴당했을 경우를 묘사하는 것으로(시137:8; 롬7:24) 그 어떤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영적 상태는 물질적 부와 정반대로 가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Lenski, Moffatt, Morris). (2)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 '가난'은 라오디게아인들이 금융업이 발달할 정도로 물질적인 부를 축척한 것과는 달리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는 상태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며(2:9), '눈먼 것'은 라오디게아에 특수한 안약과 의학교가 잇었던 것과는 달리 영적 시각 장애자로 분별력을 잃은 것을 의미하고, '벌거벗은 것'은 라오디게아의 검정색 양모가 유명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이 영적으로 벗은 모습임을 시사한다(Mounce).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부요하다고 착각하여 전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Johnson).
=====3:18
본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앞절과 동일한 방법으로 라오디게아에서 유명하고 풍부했던 것을 예로 들어 그들의 영적 무관심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 그리스도께서 는 영적으로 가난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 곧 시련을 통한 믿음을 사서 영적으로 부요해지라고 권면한다(사55:1, Johnson).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라오디게아는 광택있는 검은 양모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양모가 아닌 '흰 옷' 곧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입고 영적으로 수치스럽게 벌거벗은 것을 가리라고 권면하신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역의 특산물인 안약을 사서 치유하라고 권면함으로 그들의 영적 시각 장애를 치유하고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라고 권면하신다(골1:27; 2:3).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 하나님의 사랑은 주로 '아가파오'(* , '사랑하다')로 표현되는데 본절의 '사랑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필로'(* )로 되어있다. 이러한 문자적인 차이로 인해서 혹자는 '아가파오'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랑하시는 모습을 나타내는 반면에 '필로'는 그리스도의 판단으로 사랑하심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ngel). 그러나 필로는 '아가파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Barclay, Charles).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도 자주 '필로'와 '아가파오'가 같은 뜻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요5:20; 16:27). 한편 '책망'의 헬라어 '엘렝코'(* )는 원래 '낮춤'을 의미하는 말로 '말로써 교훈하고 다스리는 것'을 나타내며(눅3:19; 딤전5:20), '징계'는 책망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행위를 의미한다(히12:5,7).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의 잘못을 방관(傍觀)하지 않으시며 사랑어린 책망과 징계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열심을 내라'의 헬라어 '젤류에'(*)는 현재 명령형이며, '회개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에손'(*)은 부정 과거 시상이다. 이 두 개의 명령문의 시상 변화는 '단번에 결정적으로 회개하고 지속적으로 열심을 내라'는 의미를 갖는다(Moffatt, Rebertson).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 '서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스테카'(* )는 현재 완료 시상으로 이미 오셔서 준비가 완료된 상태를 의미하며 '두드리노니'의 헬라어 '크루오'(* )는 현재 시상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두드리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은 죄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인내와 사랑을 알리시는 모습으로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초청과 약속의 말씀이다(Mounce,Trench). 한편 '문'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세상으로 해석한다(마24:33; 약5:9, Swete, Beckwith). (2)혹자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Mounce,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앞절에서 현재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였기 때문에 본문의 '문'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지칭한다(Ladd).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회개 촉구의 권면을 듣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의 결과를 나타낸다. '먹고'의 헬라어 '데이프네소'(* )는 교제를 나누며 즐기는 식사를 가리킨다(Morris, Ladd,Johnson, Mounce).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경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안에 거하셔서 그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시며 친밀한 관계를 이루신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과 성령을 통해 교제하신다(요14:23).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심은 그의 왕적 지위를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음으로 왕적인 지위를 누리시는 것처럼 승리자에게도 그와 동일하게 권세를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것에 대한 약속이다(1:6,9; 2:26,27; 5:10; 20:4-6; 눅22:28-30; 롬8:17; 딤후 2:12). 한편 '보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 드로노'(* )에는 '위에'를 의미하는 전치사 '에피'(* )가 아니라, '안에'를 의미하는 '엔'(* )이 사용되어 단순히 보좌에 앉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의 명예와 권세를 주시며 참여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시사한다(Plummer). 이렇게 그리스도의 권면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적인 통치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3:22
2:7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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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에서 울려 퍼진 ‘백투더 바이블’ 운동]
19세기 교권주의 팽배했던 영국 땅에서 일어난  신실한 그리스도인 공동체, 성경으로 돌아가다
===교단 전통이나 관례보다 하나님 말씀 따라가야 
[기독교 형제단의 역사와 믿음...김종만]
한국 기독교 교단 수는 374개라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교단별로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대부분의 성도는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등 큰 규모의 교단 이름을 알고 어느 정도 그 정통성과 교리적 안정성을 신뢰한다.
하지만 한국 교계를 넘어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문제가 종종 상대적으로 안전한 교단에서 일어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교단의 세칭 ‘자정작용’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결국 교회의 교리적 안정성과 실천적 건전성은 개교회가 얼마나 성경의 원리와 가르침에 충실한지에 달려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잘 알려지지 않은 교단은 선입견을 갖기 쉬운데, 그래서 거대 규모의 교단에 속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설명이 필요하다.
가령 메노 시몬스를 기념하는 논문인 ‘다른 터는 없나니’(메노 시몬스, 대장간, 2018), 아나뱁티스트의 정체성을 설명한 ‘아나뱁티스트 신앙의 씨앗으로부터’(아놀드 스나이더, 대장간, 2020) 등 과거 교회사에서 이단으로 규정돼 바른 교리와 신앙까지 한꺼번에 묵살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최근 지속해서 소개되고 있다.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교파로 한국 교계에 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교파 중 하나는 기독교형제단(Christian Brethren)이다. 
교리적으로 세대주의 종말론을 창시한 다비와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진 조지 뮬러, 20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신약학자 F. F. 브루스와 에콰도르에서 순교한 선교사 짐 엘리엇, 리처드 도킨스에 맞서 성공적인 변증을 한 존 레녹스 등이 여기에 속해 있다.
정인택 목사는 나침반 출판사에서 기독교형제단의 역사를 <형제들의 모임 교회사>(2019)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는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가 추천사를 남기며 기독교형제단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기독교형제단의 역사와 믿음>이라는 소책자의 저자는 김종만 교수로,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신경과학과 물리치료학 분야에서 저명한 저자이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자의 체계적이고 분석적이며 객관적 시각으로 소개하는 기독교형제단의 역사와 믿음을 66쪽의 명료한 설명으로 얻을 수 있다.
기독교형제단의 시작은 1827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안토니 그로브스가 제안한 형제 운동인데, 그는 세 가지 원리를 실천하기 원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매 주일 함께 ‘주의 만찬’에 참여할 자유가 있다”, 
둘째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파와 교단의 장벽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셋째 “모든 신자는 성령께서 주신 은사로 사역해야 한다(18쪽)”.
이 원리들은 모두 성경에서 도출한 것으로, 주께 받은 명령대로 ‘떡을 먹으며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을 강조하고(고전 11:26),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연합을 지키고(갈 3:28),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신’ 은사의 원칙과 활용을 독려한다(고전 12:25).
무엇보다 기독교형제단은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신뢰한다. 
복음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데, J. I. 패커는 “기독교 형제단교회 전체가 다 복음주의자”라고 평가했다(12쪽).
한국 교계에서 이단처럼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세대주의 종말론’ 역시 미국 교계에서는 존 맥아더 목사나 대럴 벅을 비롯한 댈러스 신학대학원 교수진 등 실력 있고 저명한 목사와 교수들이 지지하는 성경적 종말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시한부 종말론이나 이단이 자주 악용하는 세대주의적 관점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을 뿐이다.
기독교형제단이 한국 교계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 중 하나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극단적인 구분이 아니라, 은사로서 목사의 직분을 인정하고 평등과 질서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이다.
성화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교회 정치엔 언제나 문제가 있기 마련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자매임을 늘 잊지 않고 실제 교회 생활 가운데 실천하는 기독교형제단의 원칙은, 목사가 왕처럼 군림하여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로부터 교회를 자유롭게 한다.
기독교는 성경이라는 절대 진리를 추구하면서 배타적인 성향을 갖는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성경에 대한 견해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에 있어, 서로를 돕는 방식이 아닌 싸워서 무너뜨리려는 방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라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 개혁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원리가 진리를 추구하는 노력을 통해 지켜지고 있어 다행이지만, 옛날 이단적인 극단의 아나뱁티스트와 함께 성경적인 공동체까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거하고 소수의 신실한 형제자매를 쉽게 판단하며 정죄한 것과 달리,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가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는 1965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유평마을에 기독교형제단 출신 선교사를 통해 뿌려진 복음의 열매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른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존 맥아더 목사가 총장으로 있는 마스터스 신학대학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교단의 정체성이 아닌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려 했고, 지금도 기독교형제단 자체보다 그들이 추구했던 성경적 원리를 소중히 여기고 실천해 나가고 있다.
한국 교회의 위기설이 흘러나온지 오래지만, 그 해결책은 결국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크고 작은 교단의 시작이 언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형제단의 역사와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19세기 교권주의가 팽배했던 영국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어떻게 성경으로 돌아갔는지 그리고 우리가 절대 잊지 말고 고수해야 할 초심이 무엇인지 되새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단의 전통이나 관례에 매이기보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막 7:8)”는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의 꾸짖음이 아니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라는 칭찬을 받지 않을까?
===플리머스 형제단===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은 1820년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성격의 복음주의 운동으로 태어난 개신교 교파이다.
===기원
법학을 공부했다가 아일랜드 교회의 성직자가 된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년 ~ 1882년)를 중심으로 영국 성공회의 지나친 교파주의와 형식적인 교인들의 생활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 형제단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모임을 결성하였고, 이후 영국 플리머스에 본부를 두게 되면서 플리머스 형제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형식적인 예배에는 사랑이 없었으며, 당시 설교자들의 설교는 회의론에 빠져 있었고 합리주의적, 고등비평적이었다. 
그래서 당시 영적인 성장과 초대교회의 회복을 갈망하던 기독교 신도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플리머스 형제단은 성장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19세기 초엽 형제단의 양적 성장과 아울러 1848년 개방적인 형제단과 보수적인(폐쇄적) 형제단의 분열이 발생하게 되었다.[1]
===특징
성서주의, 축자영감설 및 기독교 근본주의를 표방하며, 종말론에 있어서 세대주의와 전천년설을 따른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뢰하는 믿음을 가졌는지 확실하게 검증된 자만 성도로 영접된다.
거듭난 성도들과 하나님께 은사를 받은 장로가 성령님의 인도로 세워져서 모임이 운영되고 있으며, 누구든지 성도는 제사장이라는 [만인 제사장]원리를 적용하여 기독교 기성 교단의 조직 체계(목사-평신도)라는 계급적인 병폐를 거부하고 있다. 
또한 교단을 형성하지 않고 개별 교회가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다는 믿음을 따른다.
교회 일을 전임하는 장로 형제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각 지역교회마다 다르며, 일부 교회는 성도들의 연보에 의해 주어지고 일부교회는 정해서 지급되기도 한다. 재정이 어려운 교회는 자비량하여 해결하기도 한다.
유명한 성서학자(존 넬슨 다비, 매킨토시, 조지 위그람)나 복음전도자(죠지 뮬러, 디엘 무디)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연보는 무기명을 철칙으로 하며 연보는 의무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성경적이며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매주일마다 성찬예배를 하는데 형제들이 주보순에 의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찬송과 감사기도를 한 후 떡과 잔을 나눈다
믿음을 간증한 새신자들을 검증하여 침례식을 행한다.
타지역 교회로의 이동은 장로 형제의 추천으로 사는 곳에서 가까운 교회로 옮긴다.
신도중 여성은 머리에 모자나 수건을 사용하여 머리를 가려 천사들과 남자들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성경말씀(고린도전서 11장 10절)을 지금도 유효하다는 믿음을 따른다.
===한국의 형제운동
한국에서의 형제운동은 1959년에 회심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58년을 전후하여 부평에 있는 미군교회(ASCOM Chaple)에 영어를 배우러 갔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미군 병사들의 신앙이 전해지고 그들이 개방적 형제단의 선교사들과 연결되면서 한국에서의 형제운동이 시작되었다.
1) 한국으로의 전래과정
---매카피(Wilbur Thompson McAfee, 1917~2009)64)는 한국에 파송된 최초의 형제단 선교사이다. 
그는 직접 농장을 운영하면서 한국 농촌 계몽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남사중학교를 설립하였고, 경기도 화성군기오산읍에 오산기독병원을 설립하여 의료선교활동을 활발하게 하였으며 , 1974년에는 경기도 사후동에 무료요양소를 개설하여 결핵 환자들과 지체장애인들을 수용하고 치료하는 의료봉사를 함으로써 사회복지사역을 하였다.
그의 복음사역을 살펴보면, 1961년에 12명이 경상남도 거창 장팔리에 교회를 세웠는데, 후에 교회 성도였던 이들이 여러 지역으로 나가서 교회를 세웠다. 그는 1963년 경기도 평택으로 이주하여 사후동에 선교학교를 개설하여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농촌운동과 선교사명을 일깨워서 여러 지역으로 파송하였다.66) 
또한, 매카피는 1965년 미국으로부터 한국 엠마오성경 통신학교를 인가받아서 문서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1968년에는 미국의 선교기관인 CMML(Christian Missions In Many Lands, Inc.)의 지원으로 보건사회부 한국기독교 선교부를 승인받아 의료선교활동을 하였다. 
이렇게 한국 선교를 위하여 20년을 헌신한 매카피는 건강이 악화되어 1979년에 귀국하였다가 2009년에 생애를 마감하였다. 
---에드윈 제임스(Edwin Arthur James, 1912~1988)67)는 웨일즈 북부의 뱅고시(BangorCity)에 있는 센트럴홀(Central Hall)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1962년 5월에 50세의 늦은 나이로 일본을 거쳐 부산에 상륙하였다. 
제임스는 그곳에 마중 나온 매카피를 따라 거창에서 잠시 머물다가 8월에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부평의 미군부대에서 회심한 청년들과 1962년 10 월부터 장충동에서 모이기 시작하였다.68) 이것이 서울에서 세워진 첫 번째 형제단 교회인 노량진교회의 전신이며 시작이었다. 
제임스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3년까지 대형천막과 조립식 의자를 자신이 직접 설계하여 만들어서 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전국에 순회집회를 하였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형제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자 세계 곳곳에서 여러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협력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에서의 형제운동은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기독교회사에서 검증된 복음주의적 운동이 선교사들에 의하여 전파된 것이다. 한국의 형제단은 이러한 형제단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하여 세워졌고 그들과 같은 정신과 원리를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의 형제단과 국제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는 면에서 19세기에 일어난 형제운동의 역사적 선상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개방적 형제단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침례를 주고 장로를 인정하며 무엇보다도 지역교회의 독립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면에서 개방적 형제단의 맥을 잇고 있다.
2) 한국에서의 형제운동의 전개
한국에서의 형제단 교회는 지방에서는 1961년 경상남도 거창 장팔리에서, 서울에서는 1962년 장충동에서 첫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 후 한국에서 형제운동은 활발하게 진행되어 서울 39개, 강원 11개, 경기 60개, 충청 25개, 영남 47개, 호남 44개, 제주 4개 등 2014년3월 기준으로, 230개에 달하는 교회가 세워졌으며, 지금도 형제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또한, 한국의 형제단 교회는 1990년을 전후하여 해외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현재 한국의 형제단에서 파송된 29명의 선교사가 중국,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네팔, 몽골, 호주, 필리핀, 동티모르,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미 파라과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선교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의 형제단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독일, 일본, 대만, 인도, 남미와 동남아시아 등 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 있는 형제단과 국제적인 교류를 하면서 타문화권 선교에도 협력하고 있다.
Emmaus Bible College(미국 IOWA 소재)의 한국 분교도 같은시기에 설립되어 현재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교회들이 연합하여 설교및 성경연구 자료 동영상을 누구나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GNTV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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