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계2.에베소-서머나-버가모-두이디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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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장

....계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시대적 구분...사실상, 그 어떤 지역교회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닌 바 교회마다, 이 모든 범주에 속한 영적 실제를 나타내 보일 수 있음]...에베소 교회(초대 교회, AD 34~100), 서머나 교회(박해시대 교회, AD 100~313), 버가모 교회 (로마국가 교회, AD 313~538), 두아디라 교회(중세시대 교회, AD 538 ~16세기 초<1517.종교개혁>) : 천년간), 사데 교회(개혁 교회, AD 16세기 초<종교개혁>~18세기<19C초중엽>), 빌라델비아 교회(선교 중심 교회<17세기 청교도 사상과 청교도 운동이 그 바탕> + 영국 기독교 형제단의 회복 운동, AD 18세기 말엽(실제로는19세기초)~ 19C중엽), 라오디게아 교회(현대 교회, 19세기 중엽 이후~예수 재림까지)

::: 도해...###하락 중의 교회 [에베소 : 첫사랑 열정 상실]==>(서머나<환난>)==>[버가모-두아디라]<행음>==>반작용, 회복 안의 교회 : [사데(남은 자-믿음의 의, 말씀)]==>[빌라델비아<형제사랑 회복>]==>[라오디게아(다시 타락)]

###첫사랑 잃은 교회에게, <권유하신 바 참된 회개 통해 돌아오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고난에 참여함인] 고난 통해 구원의 감격과 첫사랑을 회복시키려 하시나 <합당한 반응 없었고>, 오히려 낙심한 그 상태에 머물러 있음으로, 세상  권력-세상 가치와 <타협하였음>, 그 결과 한 걸음 더 나아가 변절하여 우상 숭배에 빠져듬<음녀 바벨론>--> 에베소-서머나-버가모-두아디라 교회는 말씀의 지조 잃은, 변절된 가톨릭으로 귀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완전한 모습으로 회복되지는 않았음.. JC말씀과 생애를 생명관점에서 참되게 깨닫고 추구하는 바, 영의 기름부음(살아 생동하는 움직이심) 추구 결핍된> 개혁교회가 출현,<말씀 떠남은 변절이요, 주님 이름 아닌 다른 이름으로 칭함은 영적 음행이기 때문임>... 

###뒤이어 합당한 교회생활이 회복된<형제사랑 교회>가 출현했으나, <유기적공동체로서 사랑 안에서 하나됨에 합당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에 채움 통해] 상호 겸손-온유-용납-견인의 깎여짐 실행이 더 필요함. 

###최우선시 되는, 주님의 어떠하심을 체험적으로 알지 못한 바, 우매무지무각 가운데서, 내주하시는 주님 임재의식 없고, 결국 세상 가치따라 시류에 영합하며, 회복에서 벗어나 소망하는 바에 대한 <합당한 대가 지불 없이, 값싼 은혜만 원하는, 다시 타락한 교회>가 되었음..  

---시대적 필요들----

....[(시작 단계인 초대교회 끝 무렵 AD1세기말, 적그리스도들의 이단적 사상으로 위협 받던), 에베소 교회..구원의 감격 다시 불일듯 하라..첫사랑 기억하여,Q사랑 부으심에 반응 하며 형제사랑 이루라: 사랑의 수고로, 그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 내주하시는 주 영의 부활생명 발휘함으로써 소망의 인내로 모든 상황 돌파하여 새 예루살렘 이루라]에게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등대 가운데를 거니시는>그리스도의 돌보심의 은혜가 필요함

....[(AD1세기말에서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 AD313 이전의,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 받던 당시)고난 받는 단계인 서머나 교회...소망의 인내 붙듬 필요]에게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의 부활 생명이 필요함

....[(기독교 공인 이후부터 AD6세기말엽 교황권 확립이전까지, 세상과 결혼한 가톨릭 교회) 타락되고 세상에 물든, 세속적 단계, 세상적인 버가모교회....진리 말씀 안에 거함으로써 주 영의 기름부음따라 영 분별, 대적 필요]에게는 그분의 심판하시고 살육하는 <좌우에 두 날 가진> 검이 필요함

....[(AD6세기말엽 교황제도 확립이후부터 이 시대의 끝인 구주재림까지, <중세 암흑기 포함>변질된 가톨릭 교회)배교 단계인 변절한 두아디라 교회....일편단심, 살아 생동하는 불굴의 믿음으로 깨어 있어서 <주 앞에서 거듭난 자의 신분 인식함으로써> 모든 상황 돌파함 필요]에는 각인의 심령을 친히 꿰뚫어 살피시고 심판하시는 그 분이 필요함

====<(구원의 감격, 곧 자유함 가운데 고백한, 주님이 부어주신), 주님과 형제자매 향한>언약적 첫사랑을 소홀히 함으로써 놓치고 있는 교회에는, 책망하시는 주님 음성 듣고 반응함으로써 회개함 통해 [잊고 있는 바 사랑-생명-빛!!] 일곱 별 붙드시며, 일곱 등대 사이를 거니시면서 돌보시는, Q 낙원의 생명나무 열매 누림이, 

====<환난 받고 있는 교회>에는, 죽도록 충성함의 견인<소망의 인내> 통한,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부활생명 획득-앙망-성숙이,

====<세상과 연합한,  세상적 교회>에는 거듭난 자로서 자신의 신분과 존재적 근본 동기 돌아 보고 회개함 통해 참빛인 주님 말씀-날카로운 양날검으로 분별하여 갈라내고 끊어냄의 실행과, 일편단심 주만 따르며 지성소에 거함 통해 감추어진 만나 누림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건축하는 흰돌로 변화됨이, 

====<변절한 교회, 이는 실상 사탄의 체현이다!!>에는 (세상이 찬탄하고 매료되고 매혹적으로 여기는) 외적으로 표현되어 드러나는 모든 미덕들(*겉만 보고 속지말라!!..얼마든지 조작 가능함..내적 생명 존재의 근본동기-참 빛이신 JC 알고 사랑하며 섬김 누림 닮아감 여부-가 중요하다!!), 그 보다 더 중요한 바, 결국 영적 음행에 이르게 하는 [자칭 여선지자라 하며 실상 우상숭배 강요하는 이세벨의 교훈들, <이교적 요소들인>상대적인 세상 가치나 세상 교훈]을 맹종<추종..[세상], 곧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추구>케 함이 있게 된다...하기에 이에 대해.. 거절하고 끊어냄으로써, 항상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서 [영원 생명 말씀 진리따라] 분별함 통해 발휘되는 일편단심의 용맹한 믿음과 열정적인 사랑 드림, 새벽별이신 주님 앙망함, 주께 합당한 근본 동기 점검에로 나아가 주께 구함으로써 받는 바, 주님의 꿰뚫어 살펴 감찰-적발하는 눈 + 짓밟아 멸하는 심판의 발로 <구속-부활-중재를 이루고 계시는> 주와 동행함이 절대 필요함. 

....[(16세기초 종교개혁시점부터 구주재림때까지, 개신교 교회)거의 죽게 된 상태, 개혁단계인 개신교 교회인 사데 교회...아직 말씀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남아 있음]에는 <일곱 영과 일곱 별> 곧, 하나님의 일곱 배나 강화된 영, 곧 JC따라 그 안으로 추구하여 들어가 <변화되고 빼어닮은> 별처럼 빛나는 인도자 들이 필요함, 

....[(19세기 초엽부터 구주 재림까지, 모든 종파적-분열적 조직 밖에서 참된 교회 실행 위해 영국에서 일어난 형제사랑의, 회복된 교회) 회복된 단계인 형제사랑의,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이제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몸 건축 위한 깎여짐 이룸 위해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서의 JC가 필요함,  

....[(19세기말부터 구주재림까지, 회복되었으나 다시 타락한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거듭난 이마다 <주 안에서 새로운 신분 자각, 대가지불 통한 마지막 관문 통과, 곧 완주 위해><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으로서의 JC가 필요함

((사도시대....에베소 교회)) :: [AD.96사도시대 종결<요한 사망>]....

((서머나 교회)). ::: [AD313, 콘스탄티누스, 기독교 공인].....

((버가모 교회)) :::: [AD.590..그레고리1세 교황권 확립]......

((두아디라 교회, 중세 가톨릭 교회)). ::: [AD.1517 종교개혁 선언].....

((사데 교회, 종교개혁으로 개신교 교회 태동)) ::: 그 후, 종교전쟁 발발, [17세기 청교도 사상 태동/파급, 18세기초반 이후<청교도 사상과 실천 바탕>선교 중심 교회 본격 개막]....

((빌라델비아 교회....혹자는 18세기초로 분류하기도 함)) ::: 19세기 초반<영국 중심의 형제 사랑 교회 실천 운동> 대 부흥의 물결 (중국, 한국에 이르기까지)파급].... 

((라오디게아 교회)) ::: [19세기 후반 이후, 민족국가 독립 바탕<현대 교회>]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말씀 [[사랑+생명나무<말씀 안에>..분별과 인내..근본동기]].....[342. 너 시험을 당해] [200.달고오요한그말씀] [539.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사랑-생명-빛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알고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아노라 :::그런데, <사랑 안에서 시종일관 생명-빛따라 거룩한 하나됨>위함 아니면 헛수고이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이는 다름아니라 그분께서 유일무이한  머리되심 :: 그분과 하나 안에서 그대는 그분 영광의 의 통로요 그분의 공급통로임..믿는이가 추구할 바 모든 마땅한 실행 가치 중 첫째 가는 사랑!!]을 버렸느니라 :: 처음 사랑(구원 감격 안에서 Q사랑-형제 사랑으로 상호간에 뜨겁게 사랑-용납하는 사랑)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일편단심-순전,온전, 완전한 아가페적 사랑의 열정따라 순복함으로 달구어짐 그 안에 충만 감사로 거함으로써 연합한 하나됨 회복, 유지)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아직은 교리화 되지는 않았지만, 실제적 교권주의 적용/실행 + 신도의 공동 생활을 넘어서서 심지어 아내조차 공동 소유 필요를 주장>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을 [탐심 가운데서]함부로 쓰지 말고, 합당하게 써야 함을 명심하라!!...~형제/자매를 [치료/구원하사] 주의 쓰임에 합당케 하여 주소서!!>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들은 바 그 말씀따라, 곧 첫째 가는 사랑을 회복하며 살아냄 통해]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말씀[[고난(잠간의 <혹독한>환난-박해-시험...단체적 고난 통과 :: 연단통해 <부활, 생명>소망을 이룸)..인내/이김의 면류관]]..[338.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341.십자가를내가지고] [336.환난과 핍박중에도] ....부활생명과 생명의 면류관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 [관유의 기름부음 환영하라]온전한 첫째사망 통해서 온전한 첫째부활에 참여하기를 고대하라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너는 보아스요, 야긴이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 <사탄이 배후에 도사리고 조종하는 바>, <무지몽매무각한>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회당 세력에 의한 유혹/비방+<황제 숭배 거부죄를 들어 자행하는, 로마권력의 >공공연한 박해에 고발/동조로 나타남.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짧은, 완전 수의 기간..혹독하지만 끝이 반드시 있음]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완전-온전-순전한 죽음<몰약>의 향기를 발하는 자 부활생명 획득하리라] 충성[신실-성실-견인]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영생Q누림]의 관을 네게 주리라(지피지기 백전백승!!)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듣고 믿은 바 붙들어 간직하여 묵상하며 여쭘 통해 성령께 인도함 받아 환난 중 소망의 인내, 곧 견인 이룸으로써]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대환난 전(여섯째 인 떼는 시점) 비밀한 휴거<초기의 이긴 이들, [사내아이로 표상되는, 강한 지체들...하나님의 누림 위함 + 마귀와 그의 수하들 축출 위한 하늘전쟁 승리를 위함] --> 두 증인의 <대환난 기간동안>증거/순교부활승천-->대환난 끝 무렵 (일곱째 나팔 시점)무렵<후기의 이긴 이들...어린양의 혼인잔치-구주지상재림-아마겟돈 전쟁 참여-천년왕국 참여 위함],,둘째사망으로 들어가는 이들 가운데 곡과 마곡이 있음..[곡과 마곡(겔38: 1-2, 계20:7~9) =<땅의 사방 민족들, 특히 메섹과 두발>의 거처인 마곡 땅, 그들의 왕 곡....천년왕국 거치면서 아직 여전히 참된 믿음 통한 구원 누림 안에 거하지 못하는, 사탄에 미혹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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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사망<누구나 겪는 죽음..이는 참되게 믿는이마다에게는 부활(곧, 첫째부활...천년왕국 참여 위한, 자는 성도의 부활 + 생존 성도의 몸의 변형 통한 <구주의 공개적 공중재림에 수반돤>공중 휴거-예루살렘보좌 심판-어린양의 혼인잔치-구주 지상재림-아마겟돈전쟁후 베풀어질 천년왕국)로 통하는 문임  :: 천년왕국 안에서도 왕국 참여에 부적당한 자들을 위한, [밖에 버려져 어둠 속에서서 이를 갊이 있음]의 하나님의 다루심이 여전히 있게 됨...이것이 완전한 복음이다!!>..둘째사망<천년왕국 끝, 곡과 마곡의 전쟁 직후 있을 백보좌 심판[불못에 던지움] 위한 불신자의 몸의 부활(둘째 부활) 후 있게 됨>

----그리스도 안에[보아스(풍성부요충만-능력..성전 전면에서 사람이 볼 때 좌편<지성소에서 주님 보시기에 우편..끝>), 야긴(세움..성전 전면에서 사람이 볼 때 우편<지성소에서 주님 보시기에 좌편..시작>)]  :: [부활 생명, 영생의 구주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이로서]네 시작<세움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세움의 완성>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눅15:31]*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그래서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31 The father said to him, ‘Son, you are always with me, and all that is mine is yours.

--------[317. 내주예수주신은혜][545.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버가모<결혼(연합)+견고한 탑..세상과 결혼/연합함 통해 이룬, 높고 견고한 탑...마13:31-32..겨자씨의 본질 잃고 <큰 나무가 되어 버린> 교회에 보내는 말씀[[진리/진실..일편단심..분별/견인의 이김...미혹/오도/변조/변질]]...변화를 위해 먹음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순교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 "안디바" = <주예수님의 증거[말씀과 생애]에 빗나간 모든 것을 반대함>의 증거를 지녔음...헬라어로 순교자 = 증인..주님은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우리가 주님을 생명나무, 감추어진 만나, 좋은 땅의 풍성한 소산으로 먹고 누림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교회를 건축하기를 원하셨으나, 세상적인 교회는 믿는이들을 빗나가게 하여 생명과 생명공급의 누림이신 그리스도를  생명과 누림 없는 가르침으로 대치, 격하시켜서, 그 결과  명목상  종교를 산출하였고, 또한 주님의 이름과 인격 누림 상실에 따라 그 대신에 우상숭배와 음행이 기승 부리게 되었음.((발람의 가르침은 머리되신 <살아계신>그리스도의 인격에서 떠나 우상숭배에 몰두하게 하며, 니골라당의 가르침<교권주의/성직자계급제도>그리스도 누림에서 빗나가게 하여 음행을 유발시킨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을 참되게 믿고 붙들어 살며 내주하시는 성령께 인도함 받음으로써 말씀-성령따라 분별함 통해 말씀-성령따라 분별함으로써 일편단심의 산 믿음 지킴 통해]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건축하는, 죄사함-성결의 증명인]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지성소 안에 거하는 제사장의 <매일의> 먹고 누림인 (언약궤 안의 금항아리 속의 한 오멜의 만나, 말씀 새긴 돌판, 살구나무 가지[부활 생명]이신 JC) + 진흙이 변하여 건축재료인 <성결한 산 돌이신 JC 빼어닮은, 죄사함 받은 >흰 돌이 됨 이룸

===두아디라((= 그침 없는(향기로운) 제물..주님은 많은 제물에 질리셨다.)) 교회에 보내는 말씀[[거룩함..분별-통찰/심판-이김...세상권력추종타협/두 마음<혼잡>/영적 간음 야기]]...(영혼 구원하는 사랑 실행에서 참된 권위가 인정됨) 권위와 새벽별

....[484.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435.나의영원하신기업]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심령, 근본동기와 숨은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감찰하여 <회개케 하여>정결케 하는, <육적 자아 죽음>에 처하는, 엘 로이 Q]그 눈이 불꽃 같고<동시에 사랑 가득한 눈물 고인 눈!!> [심판하여 짓밟는/보수하시는, 엘 게몰라 Q]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마리아의 <육적>아들이 아니다!!..두아디라는 염료와 <용광로 작업 통한>주석 산업이 발달했음...세인들은 겉보기에 그럴듯한 것 추구하나..

19.  내가 네 사업[주님의 친히 주도하시는 일인가?? 스스로 돌아보라!!]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 에베소교회 문제(첫사랑의 순수한 열정 상실)를 극복했으며,전도-구제-자선-사회봉사와 함께, HS 열매 등 온갖 미덕들도 풍성했지만...누가 시작-주도-주장하는가, 누구를 위함인가..

20.  그러나 [Q보시기에 합당한 절대적 기준인< 순수한 생명 말씀-성령따라 주님 살아내기>에로 돌이킴 통해, 주께 합당치 못한 불순하고 혼잡한 것들을 분별하여 JC입에서 나오는 두 날 가진 날카로운 검으로 찔러 쪼갬-심판의 발로 짓밟아 멸절하기를 소홀히 함으로써 스스로 속고 있는]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거짓선지자>라 하는 [마13:33의, 고운 가루서말에 누룩 넣어 부풀게 한, 겨자씨 생명이 변질되어 나타난 바, 공중의 새가 긷들이는 거대한 나무 되게 한, 계17:4,5, 16의 큰 음녀..시류 따르는 상황 논리 주장,적용, 관철하는, 권력과 야합하여 육적 형통 추종케 하는 <우상숭배와 음행>의 큰 음녀 바벨론으로 나타나는]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생명나무요 감추인 만나인]Q말씀보다 사람의 말<상대적 세상 가치나 육에 속한, (좋은게 좋다는)시류에 영합하여 Q대적하는 이론들> 청종케 함...<생명이자 생명공급인 소제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그분 자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슬쩍 끼워넣기 한 바 크리스마스<태양신 숭배의 날, 태양절이었던 것임>가 필요한 것이 결코 아님(슬며시 틈을 타서 들어 온 것이 주객전도 상태 야기).

21.  또 내가 그에게[이세벨]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과거에 주의 종이었다 해도]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영적 간음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계7:14(참 교회는 통과함 통해 정결케 됨), <<마24:21(적 그리스도-거짓선지자는 대 환난 때 오히려 큰 음녀를 미워하고 공격하여 잔멸시킴)]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추종자들]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의지적]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 그의 전 존재가 사탄의 몸인 바, 큰 음녀와 그의 남편들, 추종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대 환난때에 적 그리스도에게 잔멸당하게 될 것.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주 안에 남아 있어서 끝까지 생동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산 믿음 견지함/사탄을 분별 대적함 통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참된 교회를 미혹하려는 비밀한 궤계/사탄적 철학과 속임수에 넘어가서 교회 안에서조차 야기된 <복음에다가 무언가를 더해서 순수함에서 벗어남인> 변절 통해 자리잡고 음행을 조장하는 바]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첫째 가는 열정적 그 사랑-환난 중 소망의 인내-말씀-성령따라 분별하여 JC이름으로 대적하여 마음의 순전함 지키며 끝까지 견뎌냄 통해]이기는 자[=타락한 가톨릭, 거짓선지자 이세벨, 큰 음녀 바벨론을 <영적 통찰로 참되게 분별하며, 심판의 말씀따라 JC이름으로 대적하여 밟음 통해>이김]와 끝까지 [지금 잘 하고 있는 바, 일편단심 주와 하나됨 안에서 JC의 하시는 바, 구속-부활-중재하심 안에서 참 생명 JC와 하나되어 동행함으로써 거룩-경건-영성-자기죽임으로 변화받아 그리스도의 몸 건축을 준비함]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초기의 이기는 자들과 사내아이로서 들림 받게 될 것>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왕국 참여-왕적 제사장, 시2:9]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지금은 거짓선지자-큰 음녀 이세벨, 그의 남편들, 그의 자녀들을, 더 나아가 천년왕극 안에서 만국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JC 대망하는 자들, 곧 JC를 대망하고 찾아 나섰던 동방박사에게 나타났던 바, JC자신을 표상]을 주리라 ::그외의 다른 이들에게는 단지 비추는 태양으로만 나타나실 것(말4:2)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처음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세 서신들에서는 <그 영의 말씀하심을>듣는 귀가 강조되어 먼저 나오고, 그 후에 이기는 자들의 부르심이 언급되고 있으나, 이제는 두아디라교회를 기점으로 순서가 뒤바뀌게 되는 바, <말씀을 참되게 믿는이 각 개인의 [성령따라 JC살아냄]의 참된 결단을 우선시 하시기에>이기는 자가 먼저 나오고 그 후에 [선순환 고리로서] 듣는 귀가 나오고 있음을 유의하라...즉, 첫째 그룹이 에베소-서머나-버가모 교회요, 둘째 그룹이 사데-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교회임이 드러나고 있음..[이미 이 시점에서는 [신 구약] 성경의 정경화 작업도 이미 완성되었기에, 이제는 그 말씀에 근거하여 참되게 살며 <교회를 건축하는>신령한 산돌 되기를 원하는 개인적 결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으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또한 3+4란 관점에서 보자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성경을 통해서 다 깊이 체험적으로 알아갈 수 있도록 드러났고, 모든 피조물, 그들의 대표인 사람은 합당한 순종을 통한, 말씀하시는 하나님 살아내기로 나아가는 결단이 필요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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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lation 2 Amplified Bible

==Message to Ephesus

1 “To the angel (divine messenger) of the church in [a]Ephesus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the One who holds [firmly] the seven stars [which are the angels or messengers of the seven churches] in His right hand, the One who walks among the seven golden lampstands (the seven churches): 

2 ‘I know [b]your deeds and your toil, and your patient endurance, and that you cannot tolerate those who are evil, and have tested and critically appraised those who call themselves apostles (special messengers, personally chosen representatives, of Christ), and [in fact] are not, and have found them to be liars and impostors; 

3 and [I know that] you [who believe] are enduring patiently and are bearing up for My name’s sake, and that you have not grown weary [of being faithful to the truth]. 

4 But I have this [charge] against you, that you have left your first love [you have lost the depth of love that you first had for Me]. 

5 So remember the heights from which you have fallen, and repent [change your inner self—your old way of thinking, your sinful behavior—seek God’s will] and do the works you did at first [when you first knew Me]; otherwise, I will visit you and remove your lampstand (the church, its impact) from its place—unless you repent. 

6 Yet you have this [to your credit], that you hate the works and corrupt teachings of the [c]Nicolaitans [that mislead and delude the people], which I also hate. 

7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and heed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To him who [d]overcomes [the world through believing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I will grant [the privilege] to eat [the fruit] from the tree of life, which is in the Paradise of God.’

==Message to Smyrna

8 “And to the angel (divine messenger) of the church in [e]Smyrna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the First and the Last [absolute Deity, the Son of God] who died and came to life [again]:

9 ‘I know your suffering and your poverty (but you are rich), and how you are blasphemed and slandered by those who say they are Jews and are not, but are a synagogue of Satan [they are Jews only by blood, and do not believe and truly honor the God whom they claim to worship]. 

10 Fear nothing that you are about to suffer. Be aware that the devil is about to throw some of you into prison, that you may be tested [in your faith], and for ten days you will have tribulation. Be faithful to the point of death [if you must die for your faith], and I will give you the crown [consisting] of life. 

11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and heed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He who overcomes [the world through believing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will not be hurt by the second death ([f]the lake of fire).’

==Message to Pergamum

12 “And to the angel (divine messenger) of the church in [g]Pergamum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Him who has and wields the sharp two-edged sword [in judgment]:

13 ‘I know where you dwell, [a place] where Satan sits enthroned. Yet you are holding fast to My name, and you did not deny [h]My faith even in the days of [i]Antipas, My witness, My faithful one, who was killed (martyred) among you, where Satan dwells. 

14 But I have a few things against you, because you have there some [among you] who are holding to the [corrupt] teaching of Balaam, who taught [j]Balak to put a stumbling block before the sons of Israel, [enticing them] to eat things that had been sacrificed to idols and to commit [acts of sexual] [k]immorality. 

15 You also have some who in the same way are holding to the teaching of the [l]Nicolaitans. 

16 Therefore repent [change your inner self—your old way of thinking, your sinful behavior—seek God’s will]; or else I am coming to you quickly, and I will make war and fight against them with the sword of My mouth [in judgment]. 

17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and heed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To him who overcomes [the world through believing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to him I will give [the privilege of eating] some of the [m]hidden manna, and I will give him a [n]white stone with a new name engraved on the stone which no one knows except the one who receives it.’

==Message to Thyatira

18 “And to the angel (divine messenger) of the church in [o]Thyatira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the Son of God, who has eyes [that flash] like a flame of fire [in righteous judgment], and whose feet are like burnished [white-hot] bronze:

19 ‘I know your deeds, your love and faith and service and patient endurance, and that your last deeds are more numerous and greater than the first. 

20 But I have this [charge] against you, that you tolerate the woman Jezebel, who calls herself a prophetess [claiming to be inspired], and she teaches and misleads My bond-servants so that they commit [acts of sexual] immorality and eat food sacrificed to idols. 

21 I gave her time to repent [to change her inner self and her sinful way of thinking], but she has no desire to repent of her immorality and refuses to do so. 

22 [p]Listen carefully, I will throw her on a bed of sickness, and those who commit adultery with her [I will bring] into great anguish, unless they repent of her deeds. 

23 And I will kill her children (followers) with [q]pestilence [thoroughly annihilating them], and all the churches will know [without any doubt] that I am He who searches the [r]minds and hearts [the innermost thoughts, purposes]; and I will give to each one of you [a reward or punishment] according to your deeds. 

24 But to the rest of you in Thyatira, who do not hold this teaching, who have not explored and known the [s]depths of Satan, as they call them—I place no other burden on you, 

25 except to hold tightly to what you have until I come. 

26 And he who overcomes [the world through believing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and he who keeps My deeds [doing things that please Me] until the [very] end, to him I will give authority and power over the nations; 

27 and he shall shepherd and rule them with a rod of iron, as the earthen pots are broken in pieces, as I also have received authority [and power to rule them] from My Father; 

28 and I will give him the [t]Morning Star. 

29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and heed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Footnotes

Revelation 2:1 Ephesus, the largest city in Roman-controlled Asia Minor, developed into a major trade center because of its access to the Aegean Sea. It was the primary center for the worship of the goddess Artemis (Diana). The Temple of Artemis, the largest building in ancient times, was considered one of the Seven Wonders of the World. The open-air theatre in Ephesus could accommodate 25,000 spectators and was used for both drama and gladiatorial combat.

Revelation 2:2 Here through 3:18, “your” and “you” are in the singular, referring to the angel of each church. Much of what is said is rebuke and admonishment, so if the angels are heavenly beings, they may serve in some way as representatives of the sinful people in their churches. Jewish tradition maintained that every nation and individual has a guardian angel, and that when God is about to punish a nation, He first punishes its angel. There is even a story of Michael, the guardian angel of Israel, being rebuked by God for the sins committed in the time of Ezekiel. So the original readers of Revelation might have assumed that the angels here are the guardian angels of the individual churches, sharing responsibility for the actions of the members.

Revelation 2:6 There is scant information about the cult of the Nicolaitans, but it appears they adopted a syncretistic worship, combining Christianity and idolatry. They may have held heretical views similar to those mentioned in vv 14 and 20.

Revelation 2:7 The definition of one who overcomes is recorded in 1 John 5:5.

Revelation 2:8 In ancient times Smyrna (modern Izmir, Turkey) was a beautiful, cosmopolitan city. Located on the Aegean coast, it vied with Ephesus and Pergamum in importance in Asia Minor. It was closely identified with Rome and the cult of emperor worship. Smyrna was later the home of Polycarp, the great Christian church leader who, at the age of eighty-six, was burned at the stake for his refusal to worship the Roman emperor.

Revelation 2:11 The Valley of Hinnom located south of Jerusalem was the place where garbage burned continuously. Often regarded in ancient times as symbolic of hell (the lake of fire), reserved for the wicked. Paradise or Abraham’s bosom (cf Luke 16:22) was the place reserved for the good in anticipation of heaven. Mentioned in Matt 5:22, 29, 30; 10:28; 18:9; 23:15, 33; Mark 9:43, 45, 47; Luke 12:5; James 3:6.

Revelation 2:12 Pergamum (modern Bergama, Turkey) was built on a promontory about sixteen miles from the Aegean Sea. It was famous as a worship center for many pagan gods including Zeus (Jupiter, king of gods), Dionysus (Bacchus, god of wine and intoxication), and Asklepios (god of healing). The enormous altar dedicated to Zeus is on display in the Pergamon Museum in Berlin. Pergamum also had an important temple dedicated to the worship of Caesar. Refusal to take part in the imperial cult was considered treason. A culturally sophisticated city as well as a center for pagan worship, Pergamum’s library, believed to contain over 200,000 volumes, was second only to the Library of Alexandria.

Revelation 2:13 I.e. your faith in Me.

Revelation 2:13 Antipas was a pastor or leader of the church at Pergamum.

Revelation 2:14 The king of Moab in the time of the exodus, who hired Balaam to curse Israel.

Revelation 2:14 Pagan worship often included the use of temple prostitutes who served as “priestesses.”

Revelation 2:15 See note v 6.

Revelation 2:17 This probably refers to the pot of manna placed in the Ark of the Covenant by Moses (Ex 16:33; Heb 9:4). Manna was a food supernaturally provided to Israel by God during their wanderings in the wilderness after the exodus from Egypt.

Revelation 2:17 White stones were sometimes used as tickets of admission to public assemblies. Here the white stone may symbolize admission to the Messiah’s banquet.

Revelation 2:18 Thyatira (modern Akhisar, Turkey) was famous for its dyeing and indigo trade. It was the home of Lydia, the seller of purple fabrics, who was converted under the ministry of Paul (Acts 16:14). Located in a valley, midway between Pergamum and Sardis, it was originally established as a military base by one of the generals in the army of Alexander the Great.

Revelation 2:22 Lit Behold.

Revelation 2:23 Lit death.

Revelation 2:23 Lit kidneys, i.e. inner man. In Jewish thought, the kidneys were considered a source of wisdom (cf Ps 16:7).

Revelation 2:24 I.e. participated in and experienced evil. 

Revelation 2:28 In 22:16 this expression designates Christ as the true Messiah, the root and the descendant of David. Here, the gift probably is the privilege of knowing Christ at a much higher level (see Phil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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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장 (개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제 1장에서 그가 본 것에 대해 기록한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이제 있는 일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1:19). 

다시 말해서 그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쓰고자 하는데, 그 교회들은 그가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각별히 연락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들이다. 

그는 그 모든 교회의 각각의 형편과 처지에 알맞는 내용의 서신을 써서 그 교회의 사람들에게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자들이란 그 교회의 목사 또는 목회자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이 사자라고 일컬어진 것은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 2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Ⅰ.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1-7).

Ⅱ.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8-11).

Ⅲ. 버가모 교회에 보낸 편지(12-17).

Ⅳ.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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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계 2:1-7)....에베소[지명의 원 뜻은, ‘욕망과 소망(바람직한, 흠모할 만한..<인내로>원함-바램] <음란과 퇴폐, 우상으로 가득한 동서양의 교차점, 아시아의 관문,소아시아 제1의 도시>..사도요한이 말년에 시무하였던 교회..4세기에<사도요한기념교회>가 세워지고 6세기에 오늘날 모습으로 증축됨. 에베소는 소아시아 최대의 항구도시.


[경천애인으로 표상할 수 있는 JC의  십자가는 경천<종적 = 진리(교리), 경외함의 경건> 애인<횡적 = 윤리적 사랑으로 교리를 실천>를 말한다.] 초기기독교 시대의 에베소교회는 성경과 교리를 수호하는 면에서는 강했으나 그것을 실행하는 면에서는 약했던 것 같다. 교리는 ‘무엇을 믿느냐’하는 종적인 문제이고, 윤리는 ‘어떻게 사느냐’하는 횡적인 문제이다. 성도들은 믿을 바에는 바로 믿어야 한다. 바로 믿는다는 말은 성경이 말씀한대로 믿어야 한다는 말이며, 성도들은 자기의 믿는 바를 실천해야 한다. 실천하지 않는 교리는 죽은 교리다.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고 했다. 여기서 아버지의 뜻은 구속의 사랑을 말한다. 사랑하라고 명하신 뜻에 복종하는 것이 기독교의 행함이다.


Ⅰ. 이 편지의 수신자에 대해 알아보자.

1. 첫 번째의 편지는 에베소 교회에 보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 세워지고(행 19장), 나중에는 요한이 오랫동안 상주하면서 다스린 유명한 교회이다. 

디모데가 그 당시의 이 교회의 담임 목사거나 감독이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성도의 영혼을 그토록 훌륭하게 보살폈던 디모데가 이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들이 받은 그런 비난을 받아 마땅한, 태만의 사람이 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이 편지의 발신자에 대해 알아보자. 

여기서 우리는 제 1장에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던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 칭호들 중의 하나를 볼 수 있다. 

그는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있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걸어다니시는" 분이시다(계 1:13, 16). 이 칭호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고 있다.

(1) 그는 "오른손에 별을 쥐고 계시는 이"이시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주님의 각별한 염려 아래, 돌보심과 보호를 받고 있다. 

별들의 수를 아시며, 별들을 각각 그 이름대로 부르시며,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시며, 삼성의 띠를 푸시는 것은"(욥 38:31) 하나님의 영광이시다. 

그리고 별들이 세상에 대해 주는 축복보다도 더 큰 축복을 교회에 주고 있는 목사들이 주님의 손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시다. 

주께서는 그들의 모든 행동을 지시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각자의 궤도를 따라서 돌게 하신다. 

주님은 또 빛과 능력으로 그들을 채워 주시며, 그들을 돌봐 주신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떨어지는 별의 신세가 된다. 

그들은 주님의 손안에 들어 있는 도구이며, 그들이 행하는 모든 선은 그들을 쥐고 계시는 주님의 손을 향해서 이루어진다.

(2) "그는 금촛대 사이를 거니신다." 

다른 하나의 것이 목회자들과 주님의 관계를 말해 주는 것과 같이, 이것은 교회와 주님의 관계를 말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친밀하신 방법으로 임재하시며, 그의 교회들에 대해 소상하게 알고 계신다. 주께서는 그들의 실정을 잘 아시며 또 언제나 주목하고 계신다. 

사람들이 주님의 정원을 거닐 때 기쁨을 맛보는 것과 같이 주님은 교회들 사이를 거니시면서 즐거움을 느끼며 누리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하늘에 계시면서도 땅에 있는 교회들의 잘못이 무엇이며,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주시하시면서, 그것들 사이를 거닐고 계신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를 보살피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주 예수께서는 그의 손바닥 위에 그 교회들의 이름들을 새겨놓고 계신다.

Ⅱ.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다음에 나오는 교회들에게 보내는 것도 대개 비슷하다.

1. 그리스도께서 이 에베소 교회와 목사들, 그리고 신도들에게 하신 칭찬의 말씀이 있다. 

주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하시는 칭찬과 비난은 엄숙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생각 없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잘 알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에 에베소 교회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1) 그들이 책임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게을리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를 아노라"(2절). 

이는 많은 수고를 하며 매우 부지런하였던 이 교회의 목사들과 관계가 있는 말씀이다. 

권위에는[참된, 진실한, 지속적 사랑에서 비로소 권위가 발출된다!!] 책임이 뒤따른다.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는 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나누어주기 위해 항상 활동할 필요가 있다.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3절).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그를 위해 일하는 종들의 수고를 알고 계신다. 따라서 "그들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는다."

(2) 고난 속에서의 그들의 인내 때문에 에베소 교회는 칭찬을 받았다. "너의 수고와 네 인내를 … 아노라"(2절). 

우리들이 부지런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로서 우리는 고난을 참고 견디어야 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게다가 목사들은 많이 참아야 하며 겪는 바 많은 어려움을 견뎌내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인내가 없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의 모욕과 하나님의 책망을 견디기 위해서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어떤 시련이 있을 때에는 "네가 참고 견디었노라"(3절)는 약속의 말씀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 그러한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이며, 인내가 요청되는 일을 부지런히 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3) 에베소 교회의 신자들이 악한 자들과 맞서서, 그들의 거짓을 드러낸 열심을 칭찬하셨다.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절). 

이 말씀은 죄를 가볍게 보지 않으며, 더욱이 죄를 용납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끈기와 잘 일치하는 말씀이다. 이러한 그들의 열의 때문에 보다 많은 칭찬을 듣게 되었다.

비록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온유함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그들을 꾸짖는 정당한 열의를 나타내 보여주어야 한다. 

허위와 음모, 악인들의 교리에 대한 신자들의 시련 즉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이란 그리스도인의 분별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열심이란 신중성에서 비롯된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진짜 그러한지]시험받기 전에는 버림을 받아서는 안 된다. 

어떤 이는 자기가 보통의 목사가 아니라, 사도라고 주장하면서 이 에베소 교회에서 행사하려고 하였으나,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참되게 분별하기 위해]사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드디어 그 진실을 알게 된다.

2. 이 교회에 대해 책망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4절), 좋은 점을 많이 가진 자는 또한 그 만큼 잘못된 점도 많이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공정하신 주님이시며 심판자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이 두 가지를 다 주시하고 계신다. 

비록 주님께서 먼저 좋은 것을 보시고, 이에 대하여 언급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또한 잘못된 점들을 주시하고, 그것들 때문에 그들을 엄하게 책망하시기도 한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주님께서 이 교회에 대해 책망하신 그들의 죄는 그들의 사랑과 열심이 [생명의 성령따라 행하며 그리스도를 모든 성도들의 모든 것, 곧 절대필요, 절대적 필수불가결한 생명임을 인식하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사랑-기쁨-화평-인내의 모든 은혜를 공급 받고 자라가는 선순환의 날마다 분발하며 추구함의 사랑의 열정에서부터 떠나가서, 어느덧 냉담해지고 식어가고 정체되어]부패하고 타락한 상태에 처한 것이었다. 이는 그들이 사랑과 열심 그 자체에서 떠나거나, 그것들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처음에 나타내었던 사랑의 강렬한 정도를 잃었다는 것, 즉 열의가 전보다 식어졌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1) 사람들이 그리스도, 거룩한 것,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해 품었던 첫사랑은 대개 활기가 넘치며 뜨거운 것이다. 

하나님은 남편이 어디로 가든지 그를 따르고자 했던 이스라엘의 신부들의 사랑을 기억하셨다.

(2) 이러한 활기에 넘친 사랑이 부단히 계속되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생동적인 사랑이라도 쉽사리 약해지며 냉냉해진다.

(3)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나태해지며, 자기에게 대하여 냉담해지는 것을 볼 때, 그의 백성들에 대해 애통해 하시며, 서글프게 생각하신다. 

그리고 주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이 그들을 좋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고자 하신다.

3.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충고의 말씀을 내려 주셨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

(1) 그들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디서 그것이 떨어져 나갔는지 생각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들의 현재의 실정과 과거의 실정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지금 보다 얼마나 더 좋았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또 그들이 그들의 처음 사랑을 떠남으로 얼마나 많은 평강과 능력과 순결과 즐거움을 잃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이 밤에 누워서 얼마나 아늑하게 잠을 잘 수 있었으며- 그들이 아침에 얼마나 상쾌하게 깨어날 수 있었으며- 어떻게 굴욕을 견딜 수 있었고,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합당하게 즐길 수 있었으며- 죽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수월한 것이었으며, 하늘나라에 대한 그들의 욕망과 소망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내야 한다.

(2) 그들은 회개해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어떤 계기로 그런 냉담함과 낙심, 실망, 속임과 참소 미혹의 영이 스며들어 와서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꼭 생각해 내라!!]

그들은 마음속으로부터 그들의 죄많은 타락을 애통해야 하며, 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책망해야 하며,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하고, 그것 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자백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 스스로를 판단하고 책망해야 한다.

(3) 그들은 돌아와서 처음 행위를 다시 찾아서 행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하며, [지고지선의 진복, 참생명 근원, 온 우주의 중심이요 처음과 나중이신 분, 완전무결한 사랑의 열정적 신랑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잘못 생각함으로써] 그들이 맨 처음 발을 헛디뎠던 곳까지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되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맨 처음에 가졌던 열심과 양순함과 성실함을 회복시키며 그것들을 되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길에 들어서서, 그들이 맨 처음에 드리던 것과 같이 진정으로 기도하며, 성실히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주님의 임재와 현존, 말씀 통한 그분의 음성을 분별하고 달게 사랑하며 신뢰함으로 순종함의 참생명누림 회복시켜주시기를 앙망하며 추구함...교훈과 훈계통해 돌파가 일어나야 한다!!]

4. 주께서는 이런 좋은 충고의 말씀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하셨고, 재촉하셨다.

(1) 주님의 말씀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신 혹독한 위협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강요하고 재촉하셨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내주하시는 성령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주께서는 우리를 매우 분통히 여기시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주님은 회개하지 않은 교회와 죄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갑자기 그리고 놀라웁게 임하시사 교회의 특권 등을 박탈할 것이며, 그들로부터 복음의 말씀과 목사들과 예배 의식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주님께서 그 자신이신 바 복음의 말씀을 거두어 가신다면, 교회와 교회의 사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2)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6절).

이 같이 그들 중에는 그래도 아직 선한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격려의 말씀을 들려 주셨다. 

이 말은 곧 "비록 너희들이 사랑에 있어서는 선하다고 할 수 없지만, 악을 증오하는데 있어서는 잘하였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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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골라 = 니카오(지배하다) + 라오스(평민, 평신도) :: 처음사랑 [JC 나의 주, 하나님, 그분을 믿는 우리모두는 하나님의 가정의 누구나 사랑받는, 서로 사랑하고 존귀히 여겨 위로-격려-세워가야 할 한 형제자매들이요, 그리스도의 단체적 신부됨을 고백하며 그 고백안에서 신랑 그리스도께 일편단심, 순수한 열정과 사랑의 정절을 지킴 = 생명나무의 열매 (최우선시 되어야 할 생명나무, 그 열매가 있어야 비로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게 됨)로 표현하심]을 지니고 그안에서 하나된 형제자매됨의 인식안에 이루어진 아가페적 사랑의 공동체로 출발하였으나, 성도라는 참된 영적 정체성과 참 직분(일꾼됨)의 중요성 그 안에서 더 잘 섬기기 위해 오중직분 개념이 주어졌지만, 그 의미를 오용한 나머지, (물론 기독교진리수호와 거짓사도를 분별, 배척하는 와중에  성도간 직분 차이를 신분 계급 차이의 우열로 인식, 차별, 고착화를 시도함으로써) 성도간 하나됨을 깨뜨리고 교만과 탐욕에 기인한 육적 판단으로 평신도를 지배하려는 직분자들의 시도를 부추기는 사탄의 계교를 말하는듯 함..... 이로 인한 갈등은 곧 이어 신분상의 차이 고착 시도로 이어지게 되어 사단적 분리-각개격파를 시도할 수 있는 틈을 내 주게 됨.

^^이제, 더 나아가 성도의 하나됨을 왜곡되기 시작한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는 결국 한마디로 말해서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해방시켰다.”라는 것 :::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성령과 함께 말씀안에서 걷기 통해 JC의 성결과 의를  빼어닮아 가며 JC께서 명하신 바로 그대로 복음 증거함]에서 크게 벗어난 바 이단적 구원론은 그 원조를 니골라당의 교리에서 찾을 수 있다....JC의 말씀에서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신 바를 사도바울의 견해로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으로 순종할 때 얻게 되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뜻한다...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16~1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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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골라당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하여 [또한 니골라의 이름을 도용하였고, 공동소유나눔정신을 악용- 남용-오용하여 아내까지도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자기 자신들을 위하는 불실한 종파였다. 그들은 가증스러운 교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악의에 가득 찬 죄를 짓고 있었고, 그리스도와 모든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되는 존재였다. 

사악한 교리와 음모에 대하여 바른 투기와 혐오심을 가지고 있었던 에베소 교회에 대한 칭찬을 주님은 잊지 않고 언급하셨다. 

[진리와 그 실상, 정체의 어떠함을 드러내기 위해 명료하게 찔러쪼개며 나누며 분별하는 하나님말씀 적용하기를 멈추고진실과 과오, 선과 악에 대해 무관심한, 대충(좋은게 좋은 것이라 하며 그냥 넘겨버리려는) 심령을 두고 사람들은 "자비로운 마음" 또는 "온후한 마음"[똘레랑스라는 미명으로...실상은 썩은 냄새로 진동하며 구더기가 들끓고 구역구토를 일으키는 회칠한 무덤이다!!]이라고 일컬을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마음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우리의 구속주가 되시는 주님은 자기의 충고의 말씀이 보다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그처럼 가혹한 위협의 말씀에, 이상과 같은 온후하신 칭찬의 말씀을 덧붙여 주셨다.

Ⅲ.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이 편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씀이 계셨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1) 이 말씀은 곧 성서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뜻이다.

(2) 어느 한 교회에 하신 말씀은 곧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있는 모든 교회들과 관련이 있는 말씀이라는 뜻이다.

(3) 우리의 청력을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청력은 잃어버려도 무관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청력을 가지지 못하기를 바라고 싶다.

2.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커다란 은혜의 말씀이 계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와 사탄, 세상 그리고 육에 대한 싸움이다. 우리는 다만 이러한 싸움을 싸우기만 하는 것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리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우리는 영적인 대적에게 굴복 당해서는 안 되며, 앞서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승리를 얻은 것같이, 우리도 승리를 얻기까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싸워서 승리하는 자는 영광스러운 개선과 보상을 받게 된다. 

여기서는 싸움에 승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는 약속이 주어졌다. 

그들은 아담이 그의 시련의 과정을 잘 극복하였다면 얻을 수 있었던 거룩함의 완성과 그 확실함을 받게 될 것이다. 

잘만 하였다면 아담은 낙원 한 가운데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계속해서 거룩하고 행복된 상태를 유지하리라는 보증을 확약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시련과 싸움에 이기는 자들은 이 지상의 낙원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완전하고도 학실한 거룩함과 행복된 생명 나무와 같이 길이 보호함을 받을 것이다(계 22: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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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계 2:8-11)


....서머나는 에베소에 이어 제2의 항구도시[이즈미르]..스미르나는 몰약<그리스도 죽음의 향기..그리스도의 죽기까지 인내하심을 시사>이란 뜻..사도요한에게 배운 폴리캅이 감독으로 있다가 순교당했음...도시는 부요했으나 <예루살렘 함락이후 대거 이주해 온, <황제 숭배 강요에 동조하면서 분열 획책-생계 수단 박탈하는> 유대인들의 박해와 반대로 인해>서머나교회는 극한 가난을 겪었음..17세기에 <폴리캅 기념교회>가 세워졌음


우리는 아시아에 있는 다른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를 계속해서 살펴보게 되었다.

Ⅰ. 서론이라고 할까 또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두 곳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 누구에게 이 편지가 직접 전달될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서두가 있다. 그것은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가는 것이었다. 

서머나는 오늘날까지도(17세기중반) 몰려드는 상인들에 의해서, 큰 무역의 중심지요, 부요의 도시였던 것으로 유명한 도시였으며, 아마 일곱 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오늘날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회교에 의해 정복되었기 때문에 그 교회의 존재는 조금도 돋보이지 못하게 되었다.

2. 여기에는 우리 주님의 또다른 영광스러운 칭호를 보여 주고 있는 설명이 있다. 

그것은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는 것인데 이 칭호는 1장 17,18절에서 온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이요 나중"이시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 인간들에게는 아주 극소한 분량의 시간만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구속주 되시는 그리스도는 처음이요 나중이시다. 

그는 처음이시다. 왜냐하면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고, 그리고 그는 만물보다도 먼저 하나님과 계셨는데 이는 곧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이시다. 왜냐하면 만물은 그를 위하여 지음 받았고, 그는 만물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실로, 영원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칭호이시다. 그리고 그것은 변함없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는 분에게 돌릴 칭호이시기도 하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으시다. " 

그는 처음이시었다. 왜냐하면 교회가 처음에 그에 의해서 기초가 놓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나중이시다. 왜냐하면 시간이 종말을 고할 때, 그에 의해서 그 마지막 마무리가 맺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시다. 

그는 죽었었는데,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던 것이다. 그는 살아나셨다. 

그는 죽으셨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이 성취되었다. 

그는 살아나셨다. 그리고 그가 다시 사심으로 이러한 구원이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 5:10). 

우리는 성찬을 받을 때마다 그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매 주일마다 그의 부활과 생명을 기억한다.

Ⅱ.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들과 특히 그의 교회들이 행한 바에 대해 완전히 아신다고 하는 그의 전지(全知)하심에 대한 일반적인 선언과 함께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이 편지의 핵심 즉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해 그가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을 밝혀 주셨다.

1. 그들이 이룩한 영적인 성장에 대해 아노라고 하셨다. 

이러한 말씀은 짧은 삽입구 모양으로 표현되었지만, 그러나 매우 힘이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3절). 

물질 면에서는 가난하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한 자이며--마음은 가난하나 은혜는 부요한 자이다. 그들의 영적인 부요는 그들의 외적인 빈곡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물질에 있어서 부요한 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는 가난하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런 교회였다. 

때로는 외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이 내적으로는 부요하며, 믿음과 선한 행위에 있어서 부요하며, 그 특권과, 은혜의 선물, 소망 그리고 상속할 재산이 부요한 경우가 많다. 

영적인 부요는 흔히 부지런히 수고한 보상으로 얻어진다, 곧 "부지런한 손이 부요를 이룩한다." 

영적인 부요가 있는 곳에서는 외적인 빈곤을 잘 감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그리고 선한 양식 때문에 물질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들은 영적으로 부요한 자들이 되며, 그러한 영적인 부요가 오히려 그들에게 더욱 만족스러운 것이며, 또 오래 지속되는 것이기도 하다.

2. 그들이 당하고 있는 환난을 아신다고 하셨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그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기까지의 핍박을 당하고 있다.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모든 환난을 특히 주목하고 계신다. 그들이 당하는 모든 고난중에 그리스도께서도 함께 고난 당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그러한 고난을 갚아 주시며, 고난을 당한 자들에게는 그의 품안에서 쉴 수 있는 안식을 주실 것이다.

3. 그는 그들의 대적들의 악독함과 거짓됨도 아시고 계신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이미 버렸는데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과 특별한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백성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잘못 자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또는 지금은 낡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폐기된 그러한 유대인의 관습과 의식을 그대로 고집 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들이 실상은 "사단의 회"인데도, 그들은 이 세상에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라고 주장할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적인 이스라엘로서의 교회를 이 세상에 가지시고 계신 것같이, 사단 역시 그의 회를 이 세상에 두고 있다. 

세워진 복음의 진리에 거슬리기 위해 세워진 회합, 그리고 가증스러운 잘못을 조장 또는 선동하는 모임--복음적인 예배의 순수성과 신령함을 모독하기 위해 세워진 회합,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인간의 날조된 관습과 의식을 조장 또는 선동하는 모임--하나님께 때한 참다운 예배와 예배자들을 모욕하고 핍박하기 위해서 세워진 모임 등, --이런 모든 회합과 모임이 곧 사단의 회이다. 

사단이 그 모임을 주장하며, 그 모임을 통해 사단이 일하고, 그들을 통해 사단은 자기 만족을 누리고 있고, 사단은 그들로부터 무시무시한 공경과 영광을 받고 있다.

(2) 사단의 회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교회 또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일컫는 것은 신성 모독이다. 

사단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더럽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성모독을 분히 여기시사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빠른 보복을 내리실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당할 앞날의 시련을 미리 아시고, 이에 대해 미리 경고하심으로, 그들에게 미리 대비시키신다.

(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의 시련에 대해 미리 경고하신다.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라"(10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고비의 시련이 계속 몰려 올 것이며, 그 고난의 도가 점점 더 높아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전에 있었던 시련으로 이미 약해진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옥에 갇혀야만 하게 되었다. 

마귀는 그의 수하인 악인들을 충동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게 한다. 

폭군과 핍박자들은, 그들 스스로는 자기들의 적개심을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마귀의 도구 노릇을 하고 있으며, 사단의 악의에 의해 총동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임박한 환난에 대해 미리 대비시켜 주신다.

① 그는 이런 말씀으로 권면하신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이것은 단지 명령의 말씀뿐만이 아니라 힘을 북돋아 주는 말씀이기도 하며, 아마 노예적인 공포심을 금하게 하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으로 하여금 힘과 용기를 갖추도록 격려하여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②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당할 고난이 얼마나 한정된 것인가를 보여 주셨다.

첫째, 그것은 전체적인 것이 못된다고 하였다. 

그들 가운데서 옥에 갇히는 자는 전부가 아니라 그 중의 일부라고 하셨고, 따라서 옥중에 갇힌 자들은 그 남은 사람들의 방문과 위로를 통해 힘을 얻음으로 능히 그 고난을 참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둘째, 그들은 영원히 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영원한 시련이 아니다. "택하신 자들을 인하여서 그 기한이 짧아질 것이다. "

셋째, 그 시련은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 인내, 그리고 용기가 과연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가 아닌가를 시험하기 위한 것임을 알려 주셨다.

③ 그들이 충성하면 영광스러운 보답을 내려 주신다고 제안하시고 약속하셨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첫째, 그 보상은 확실한 것이다. 

"내가 네게 주리라." 

주께서는 그가 하실 수 있는 말씀들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가 하시고자 하신 일은 반드시 그대로 실행하셨다. 

그들은 주님이 직접 내리시는 보상을 받을 것이며, 그들의 원수는 아무도 그것을 주님의 손에서부터 빼앗을 수 없으며, 그들의 머리로부터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둘째, 그 보답이 매우 적절한 보답이란 것을 보여 주셨다.

a. 그들의 빈곤, 그들의 충성, 그리고 그들의 분투 노력에 대해서 "면류관"이 보답으로써 약속되었다.

b.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 죽어도 충성을 버리지 않는 자, 그리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된 것은 매우 적절한 보답이다. 

그를 섬기거나 또는 그를 위해 목숨을 다 바친 사람에게는 다른 세상에서 그보다 훨씬 더 좋고, 또 영원히 계속되는 귀한 생명을 상급으로 받게 된다.

Ⅲ. 먼저의 편지와 같이 여기에도 결론 부분이 나온다.

1. 온 인류와 온 세상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들 사이에 주고받은 바를 귀 기울여 들으라고 하는 우주적인 부르심이 있다.

--다시 말해서 주께서 그들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셨으며, 주께서 그들을 어떻게 위로하셨으며, 주께서 그들의 실수를 어떻게 책망하셨으며, 주께서 그들의 충성에 대해 어떤 상급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는가를 들어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하는 문제는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이다. 이로써 온 세상은 지식과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2. 승리하고 정복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로운 약속의 말씀이 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11절).

(1) 육체의 죽음이 있은 뒤에도 인간에게는 첫 번째 뿐만 아니라 두 번째의 사망도 있다.

(2) 둘째 사망은 첫째 사망보다 극도로 더 처참한 죽음이다. 

죽어가는 자의 단말마의 부르짖음이 끊임없이 들려온다(그것은 아무런 도움을 받을 길이 없는 영혼의 처절한 절규이다). 

그리고 그 기간도 "영원한 죽음"이다. 언제나 죽어가고 있는 것이며 끊임없이 죽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죽음을 당하는 자는 정말로 비참하다.

(3) JC께서는 이런 비참한 죽음으로부터 그의 모든 충성된 종들을 지켜 주신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둘째 사망이 아무런 맥을 추지 못한다. 첫째 사망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며, 둘째 사망도 그들을 지배할 수 없다.

**첫째사망-첫째부활 : 믿는 자에게 있어서는 영적 측면에서는 JC십자가에서 믿음으로 JC와 합하여 죽었고 동시에 그의 부활과 합하여 이미 JC의 부활생명안으로 들어간 상태임, 물론 육체적 측면에서는 누구나 당하는 육체의 죽음은 첫째 죽음이요, 육체적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임하시는 그 때, 먼저 잠든 자들이 주의 나팔과 천사장의 호령소리 가운데 먼저 새 몸으로 일어나고, 이어 살아 있는 성도들도 몸이 새로운 부활체로 변하여 주께로 이끌려지게 될 것.((캐나다영토내에 있는 캐나다의 공항이라 해도 미국비자 받은 자들은 항공기에 탑승하자마자 미국시민권자로 인정받는다!!))....한편 불신자들의 경우는 반드시 육체적 죽음을 맞게 되고, 또한 불신상태로 죽은 자들은 최후심판 직전에 부활하여 백보좌심판 거쳐 용-짐승-양새끼가 던져진 불못에 처하데 될 것인데, 이것이 둘째 사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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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교회에 보낸 편지(계 2:12-17)


버가모(Pergamum)의 현재의 지명은 '베르가마'라고 부른다.., 헬라어 “페르가모(Περγάμῳ)”는 페르(Περ)이중)+가모스(γαμος)결혼)의 합성어..이중 결혼을 의미. 가모스의 어근 감(γαμ)은 '연합하다'의 의미로 세상 권력과의 합치를 의미.

BC13세기때 있었던 10년여간의 트로이전쟁으로 유명하며, 일명 [신들의 도시]로 불렸던 당시 버가모는 에베소와 서머나와 함께 소아시아의 3대 도시였다.(곧이어 로마의 소아시아 수도로 지정됨)....버가모는 양피지의 발달 20만권의 장서를 가진 세계 2대 도서관과 대학이 있던 학문의 도시였고, 최고의 종합병원 아스클레피온(Asclepion)과 의사들이 있어 기적적인 치료법을 찾아 나선 순례자들을 모여들게 하는 의술의 도시였으며, 한편 번영하는 우상의 도시였다.....얕은 산이 있는 그 정상에는 제우스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가 있다. 버가모의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보면 넓이 30㎡, 높이 20㎡에 이르는 거대한 제단이 있는 제우스 신전을 주축으로 디오니소스, 아스클레피오스, 아테나 등 웅장한 4대 신전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로마시대에는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도 있었다.


Ⅰ.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의 제목에 대해 살펴보자.

1. 이 편지의 수신인은 "버가모 교회의 사자"이다. 

버가모는 "신 트로이(런던도 한때는 그렇게 일컬어졌던 것과 같이)라고 하며, 옛 트로이의 폐허 위에 재건된 도시였는지, 혹은 같은 이름의 다른 도시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버가모는 그리스도께서 일찍이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고 또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시사 복음적인 교회를 세우게 하신 곳이다.

2. 버가모 교회에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여기서 그 자신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1:16),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이"라고 하신 바로 같은 예수님이시다. 

각각의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앞부분에서 일컬어진 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칭호들은, 각각 그 교회의 상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이 있다. 

에베소 교회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잠에 취해 타락해 가고 있는 교회를 일깨우고, 바른 길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는 "손에 별들을 붙잡고,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것 이상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없다. 환난 가운데, 고난 받는 서머나 교회에는 죽기까지 충성함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자 약속인 부활 생명의 관이 필요했다.

버가모 교회에는 타락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교회의 신앙과 풍습을 타락시키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의 검으로 분별하시며 혼-영-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시며 끊어내심 통해 심판-멸절하심으로 그들과 대항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에, 그 자신의 칭호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라고 하셨다.

(1) 하나님의 말씀은 검이다. 

그것은 공격과 방비를 겸할 수 있는 무기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죄와 죄인들을 모두 베어버릴 수 있다.

(2) 그것은 "날선 검"이다. 

그 검으로는 아무리 굳은 마음도 찔러서 상처낼 수 있다. 아무리 단단하게 묶은 매듭이라도 짤라낼 수 있다. 그것은 혼과 영을 구분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혼과 어떤 관습들로 인하여 다른 영혼처럼 되어버리거나 또는 매우 중요한 요소처럼 보이는, 그런 죄된 습성을 분리시킬 수 있다.

(3) 그것은 "좌우에 날선 검"이다. 

그것은 상하 좌우 어느 쪽으로도 찌를 수 있다. 

거기에는 율법을 어긴 사람들을 찌를 수 있는 율법의 "칼날"이 있으며, 복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찌를 수 있는 복음의 "칼날"도 있다. 

거기에는 찔러 상처를 낼 수 있는 칼날이 있고, 그리고 곪은 상처를 파헤쳐서 낫게 할 수 있는 칼날도 있다. 

이 칼날에서 피할 수 있는 곳이란 없다. 오른쪽으로 피해도 거기에 칼날이 있고, 왼쪽으로 피해도 거기에 역시 칼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 칼은 어느 방향으로도 찌를 수 있다.

Ⅱ. 제목 부분에서부터 편지서의 본론 부분으로 옮겨갈 수 있는데, 이러한 방법은 다른 나머지 모든 서신에서도 같다.

1.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가 당하고 있는 시련과 어려움에 대해 주목하고 계신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라"(13절). 

하나님의 종들의 수고와 노력은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그런 수고를 했는가를 바르게 이해할 때 더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이 버가모 교회의 선한 활동에 대해 그 광채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이 교회가 세워진 고장의 그 환경 때문인데, 그 곳은 다름 아닌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의 위대하신 주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고장에서의 우리가 얻는 모든 이점과 기회를 주시하고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고장에서 우리가 또 당하고 있는 모든 시련과 낙심의 조건들 역시 주시하시면서, 그것들을 크게 참작하여 주신다. 

버가모의 교인들은 사단의 위가 있으며, 사단이 세력을 뻗치고 있는 곳에서 살았다. 

사단의 "통치권"은 온 세상에 미치고 있었으며, 그의 "위"는 사악과 과오와 잔악함 때문에 악명이 높은 고장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도시의 로마 집정관은 그리스도인들을 매우 적대시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의 핍박의 자리가 곧 사단의 자리였다.

2. 주께서는 그들의 견실함을 칭찬하셨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고,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 " 

이 두 가지의 표현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아마 결과를 의미할 것이요, 그리고 후자는 원인 또는 그 방법을 말할 것이다.

(1) "너는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 너는 나와의 관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내 이름으로 너희가 일컬어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아내가 남편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것같이 너희도 나의 이름으로 일컬어졌다. 이것을 너희는 너희의 영광과 특권으로 굳게 붙잡고 있다. "

(2) "너희를 이처럼 충실하게 한 것은 믿음의 은혜이다. 너희는 복음의 위대한 교리를 저버리지 아니하였으며, 기독교의 신앙에서도 떠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너희의 믿음을 굳게 지켰다. "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충실한 신앙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저버리는 사람도 그들의 성실함, 그리고 하나님과 양심에 대한 충실함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 나름대로의 충실한 신앙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을 파선시키는 암초 위에 그들의 선한 양심 역시 파선시킨다. 

그런데 우리의 은혜로우신 주님은 그들이 살았던 장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살았던 시대적인 환경에 대해서도 그들의 신앙을 충실히 지킬 수 있도록 교회의 충실성을 증진시켜 주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님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그들 가운데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그들의 신앙을 충실히 지킬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누구이며, 그의 이름에 어떤 애매한 점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한 기록이 없다. 하여간 안디바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였으며, 그것 때문에 순교를 당했고,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그의 믿음과 충성을 그의 피로 보증하였다. 그리고 그 곳에 살았던 다른 나머지 신자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보았지만, 그들 역시 그들의 용기를 읽거나 그들의 성실함을 저버리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것이 그들의 명예에 대해 추가해서 언급된 치하이다.

3. 주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태만을 책망하셨다(14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그리고 네게도 내가 미워하는 니골라당의 교훈[교권-성직자 계급주의]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들 가운데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는 것이 율법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며, 단순한 간음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것처럼 부도덕한 예배를 통해 그들을 부도덕한 생활로 유인하는 자들이었다. 여기서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자.

(1) 때로 영적인 불결과 육체적인 불결이 공존한다. 때로 타락한 교리와 타락된 예배는 타락된 교제로 사람들을 이끌고 간다.

(2) 이단사설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그들의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붙이는 것은 매우 합당한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손쉽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타락된 교리와 행동을 가지고 있는 자들과 계속 사귐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것이며, 온 세상을 죄로 물들게 하는 처사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동참하는 자들이" 된다고 비록 교회가 그러한 이단 사설에 빠졌거나,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사람들에 대해 육체적인 형벌을 내릴 권리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교회의 사귐에서 추방할 권리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법을 정해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그것 때문에 노여워하실 것이다.

4. 주께서는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16절). 

여기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살펴보자.

(1) 회개란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은 복된 의무이다.

(2) 회개는 또 개개인의 의무인 동시에 교회와 공동체의 의무이기도 하다. 함께 죄를 범한 자들은 함께 회개하여야 한다.

(3) 그리스도인의 모임은 죄를 범한 사람들이 어떤 묵인 아래 그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한 그러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회개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4) 하나님께서 어떤 교회의 타락된 지체들을 벌하실 때에는 그 교회가 그러한 자들과의 교제를 계속하는 것 때문에 그 교회 전체를 책망하시며, 온 사회에 대해 그의 책벌의 소나기를 쏟아 부어 주신다.

(5)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검 이상으로 깊은 상처를 내며,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검이 또 없다. 말씀의 위력을 가지고 죄인들의 양심을 찔러 줄 수 있도록 하라. 

그리하면 그 죄인은 자신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위협이 실현되면 죄인들은 도리어 멸망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검은 조만간에, 그들에게 확신을 주든지 또한 혼란을 가져오게 하든지 하기 위해 죄인들을 붙들고 계신다.

Ⅲ. 이 편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주적인 경각심을 환기시킨 뒤에는, 이기는 자에게 줄 커다란 은총이 약속되었다.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이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17절).

1. 감추어진 만나. 

그리스도와의 사귐에서 얻어지는 그리스도의 영이 주는 영향과 위로는 시시각각으로 땅에 사는 인간들을 돕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늘에 사는 성도들과 천사들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을 땅에 사는 성도들이 미리 맛보게 하여 주는 것이다.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만나가 감추어져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기쁨에 동참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만나는 지성소 가운데 있는 언약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

2. 흰 돌 위에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 

흰 돌은 죄의 허물로부터 놓임을 받게 된 것을 말한다. 고대의 관습에서 형벌을 면제받게 된 사람에게는 흰 돌을, 형벌이 선고된 사람에게는 검은 돌을 준 것에서 유래되었다. 

새 이름이란 양자로 들어가게 된 가정 즉 양가(養家)의 이름이다. 양자로 들어가게 되는 사람은 그 양가의 성을 따라야 한다. 

그 자신외의 다른 사람들은 그가 양자로 들어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그 사람도 언제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참고 견디면 그가 아들이 된 것과 상속자가 되었다고 하는 그 증거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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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계 2:18-29)


서머나 북동쪽100km, 버가모에서 남동쪽65-80km지점의 내륙평야 지역 도시로 루디아의 고향, 헬라어, 뒤아티라=뒤오스(제사)+아(없음)+테이레스(약화) = 끊임 없는 우상제사, 본래는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던 순박한 농부들과 목동들이 터를 잡고 생활하던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후에 유대인들이 정착하면서 활발한 상업과 무역의 도시 ......평야에 위치해 천연 요새를 갖고 있지 못했다, 방어에 지형적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버가모를 정복하려는 침략자들은 먼저 두아디라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고, 로마 군대는 이곳을 중간기지로 삼으려 했다. 두아디라를 수호함으로써 본래 공격 대상인 버가모로 들어오는 길목을 차단하려 했던 것......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 두아디라 성에서 온 자주색 옷감 장사인 루디아란 여자가 복음을 듣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행 16:14). 빌립보까지 판매망을 두면서 장사한 것을 보면, 두아디라의 염색 기술이 뛰어났던 것 같다. 루디아란 이름은 두아디라가 속한 리디아(Lydia) 지역에서 유래하였다. 빌립보 근처 해변에서 소라나 고동을 구하여 자주색 원료를 채집하여 고급 옷감을 만들었던 것 같다...... 두아디라 교회가 어떻게 설립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 때 전도됐거나 빌립보의 루디아가 이곳으로 복음을 전달하여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 그녀는 요즘 같으면 영향력 있는 여성 사업가로서, 모르긴 몰라도 두아디라에 본사를 두고 멀리 빌립보까지 가서 장사를 하였을 수 있기 때문....두아디라는 장사하려면 조합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서 신전의 우상숭배의식과 제사에 참여해서 제물을 먹고 음란의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강제 되었기에[이것을 여자 이세벨이라 표현했음], 참된 신앙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동업조합에서 탈퇴하였고, 빈곤과 박해를 당하였음.


모든 편지들의 구성이 거의 같다. 따라서 다른 편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편지에서도 편지의 서두, 내용, 그리고 결론을 고찰해 보아야 한다.

Ⅰ. 서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1. 수신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이 편지는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편지다. 

두아디라는, 북으로는 무시아와 그리고 남쪽으로는 무역의 고장 루디아와 인접하고 있는, 로마 총독이 관할하고 있는 아시아의 한 도시였다. 

특히 루디아는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사업상 그 곳을 방문하였다가 "바울의 설교를 듣는 중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바울과 실라를 환대한 자주 장사 루디아의 고향이다. 그녀의 고향인 두아디라에 그녀가 복음을 전파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 고장에 복음적인 교회가 성공적으로 세워졌다고 하는 것은 이 편지를 볼 때 확실하다.

2. 편지를 보낸 사람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편지는 "하나님의 아들"이 보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은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고 묘사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그의 총괄적인 칭호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이시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가지셨지만, 동시에 별개의 것이면서도 종속적인 삶의 양태를 가지고 계신 분임을 보여 준다.

그에 대한 여기의 표현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 불꽃과 같은 그의 눈은 그의 투시력과 완벽한 지식,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나타내며, 그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엘로이]"(23절)이심을 보여 주며, 그가 그런 분이심을 모든 교회들에게 알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2) 빛난 주석과 같은 그의 발은 [복음에서 나타내신 그대로..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당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전능자이신 바]그의 섭리가 확고하고, 장엄하게 그리고 순결하고 거룩하게 시행된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 준다. 그가 온전한 지혜를 가지고 심판하시는 것처럼, 그는 온전한 능력과 견고한 힘을 가지고 활동하신다.

Ⅱ. 다른 편지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편지의 내용 또는 핵심 사항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있다.

1. 그리스도께서 이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명예로운 품성과 칭찬의 말씀이 있다. 

그들에게 이러한 칭찬을 주신 분은 그들에게 대해 결코 낯설지 않으며, 그들 자신들과 그리고 그들이 취한 행동의 원칙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 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칭찬할 점들에 더해 언급하셨다.

(1) 그들의 "사랑"에 대해 아신다고 하셨다. 

그들의 사랑이란,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일이었을 것이며, 보다 특별한 의미로는 믿음의 식구들에 대해 행한 것을 말할 것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 신앙도 있을 수 없다. [사랑이 있을 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2) 그들의 "섬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들의 목회적인 섬김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말씀과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수고한 교회의 임원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말이다.

(3) 그들의 "믿음"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이것은 다른 나머지의 것들, 즉 그들의 사랑과 섬김이 가능하게 하였던 은혜이다.

(4) 그들의 "인내"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사랑하며, 부지런하며, 충실한 사람들도 아직도 그들에게 인내심을 길러 주는 사건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5) 그들이 점점 더 성숙해 가고 있는 것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그들의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 보다 좋다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의 훌륭한 성품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첫 사랑을 버렸고, 처음 열심을 잃어버렸는데, 이 사람들은 점점 더 지혜로워지며, 훌륭해지고 있었다. " 

그들의 나중 일이 그들의 가장 좋은 일이 됨으로 그들은 매일매일 보다 더 훌륭하게 되고, 그들의 최후의 것이 가장 최선의 것이 되도록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사모해야 한다.

2. 잘못된 일에 대한 성실한 견책의 말씀이 있다. 

이러한 견책은 교회 자체에 대해 직접적으로 퍼부은 것이 아니고, 그들 가운데 있는 악독한 유혹자들에 퍼부은 것이었다. 

교회의 잘못은 그들에게 지나치게 너그러웠다는 점이다.

(1) 이 아득한 유혹자들은 이세벨과 같은 여자로 간주되어, 그녀의 이름을 그들에게 붙였다.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핍박하였고, 우상을 섬기는 자와 거짓 선지자들을 크게 도와 준 여자였다. 

이런 유혹자들의 죄는 하나님의 종들을 간음죄에 빠지도록 유혹한 것과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도록 미혹한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지자라고 했고, 교회의 목사들 보다 훨씬 더 굉장한 권위가 있다고 선전하였다. 

두 가지의 것이 그들의 죄를 가중시켰다. 그들은 그들의 정신과 의도가 같았음으로 마치 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①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의 교리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반대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죄를 더 가중시켰다.

② 그들은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잘못 이용하여 그들의 악행을 더욱 굳게 하는데 이용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첫째, 회개는 죄인의 멸망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

둘째, 회개에는 시간, 어느 정도의 시간 즉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매우 위대한 일을 한다.

셋째, 하나님이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하나님은 회개의 열매를 기대하신다.

넷째, 회개의 기회를 놓치면 죄인은 이중적인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2) 그런데 두아디아 교회가 왜 이러한 이세벨의 잘못 때문에 책망을 받아야 할까? 

두아디라 교회가 그 여자로 하여금 그 도시의 백성들을 미혹하도록 용납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그런 일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교회로서 그들은 그 여자를 벌주거나 옥에 가둘 수 있는 공적인 권리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 여자를 책망하거나 파문시킬 수 있는 치리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가지고 있는 힘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그 여자의 죄에 가담한 결과를 가져 온 것으로 보인다.

3.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 이세벨에 대한 징벌이 기록되어 있다(22,23절). 즉 바벨론의 멸망과 같은 멸망이 예언되었다.

(1)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라고 하셨는데, 그 침상은 안락한 침상이 아니라, 고통의 침상이며, 불꽃의 침상이다. 

그리고 그 여자와 더불어 죄를 범한 자들도 그 여자와 함께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면 그것은 징벌을 미리 막을 수 있다.

(2)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라고 하셨는데 말하자면 둘째 사망이다. 

그것은 결정적인 죽음이며, 다시는 생명의 가망이 전혀 없는 죽음이며, 부활의 소망도 없고, 오직 영원한 수치와 멸시만 있을 따름이다.

4. 이런 악독한 미혹자를 멸하시는 그리스도의 계획은 오직 다른 사람도, 특히 그의 교회를 교훈 하시고자 하심이라는 말씀이 있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지라.

하나님은 "그가 행하시는 심판으로" 그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리고 이러한 미혹자들에게 보여 주는 보응으로써 아래와 같은 사실을 또한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

(1)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교리, 계획, 구조와 기질, 격식, 그들의 무관심 그리고 우상 숭배에 기울어지는 그들의 은밀한 경향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완벽하신 지식을 나타내신다.

(2)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시는" 그리스도의 공정한 심판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하며, 비록 교회라 할지라도 죄지은 자들에게는 그들의 보호처가 될 수 있는 성역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5. 스스로를 정결하고 순결하게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격려의 말씀이 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24절).

(1) 이 미혹자들은 자기들의 교리를 "깊은 것" 즉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심오한 신비라고 했다.

목사들보다도 오히려 신앙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사탄의 깊은 곳" 즉 사탄의 미혹과 악독 그리고 악마적인 비법이라고 하셨다. 

"경건한 자들의 위대한 신비"(mystery)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악한 자들의 신비"(mystery)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비를 멸시하는 것은 위험한 노릇이다. 그리고 사탄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한 노릇이다.

(3) 그의 충성된 종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온유하심을 보여주셨다. 

"다른 짐으로는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24,25절). 

"나는 어떤 새로운 신비(mystery)을 가지고 너희의 신앙을 더 무겁게 하거나, 어떤 새로운 법을 가지고 너희의 양심을 무겁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너희가 이미 받은 바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켜 주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올 때까지 그것을 굳게 붙잡아라. 나는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미혹을 더 이상 받지 않도록 끝내 주려고 오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들의 굳건한 신앙과 선한 양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지키고 있으면, 모든 난관과 위험은 극복될 수 있다. "

Ⅲ. 이제는 이 메시지의 결론 부분을 살펴 볼 때가 되었다(26-29절).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1. 참고 끝까지 견딘 승리의 신도들에게 줄 보상의 약속이 두 가지로 제시되었다.

(1) 다른 모든 세계를 다스리는 매우 위대한 힘과 지배력을 약속하셨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는 현세에서, 콘스탄틴 황제때와 같이, 황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세계가 그리스도인 황제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고, 또 다른 세계에서,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심판의 보좌에 앉아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원수들에게 형벌을 선포하고 또 부과시키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올바른 자들은 아침에 왕노릇하리라."

(2) 그와 같은 권세자들에게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노라." 그리스도는 새벽별이시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루의 광명을 가져다주시며, 은혜와 영광의 빛을 가져다주신다. 

그리고 그들이 부활의 아침에 누리게 될 통치권과 위엄의 자리에 어울리는 빛과 지혜를 온전케 하여 주실 것이다.

2. 이 편지서도 다른 편지서와 같이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이 편지서 보다 앞서 나온 편지서들에서는 이러한 명령이 결론적인 약속 보다 앞에 나온다. 

그러나 다음에 나오는 편지서들에서는 이러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명령이 약속의 뒤에 나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에게 주신 권고의 말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약속의 말씀에도 주목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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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angel, 사자 messenger. a[ggelo"(32, 앙겔로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a)  앙겔로스는 '메시지를 가져오는 자, 사자(messenger)'를 의미하며, 호머(Homer)에서 이미 이 의미로 사용되었다. 

호머 시대에 사자는 성사적(sacral)이다. 사자는 신들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이 이유 때문에 아킬레스(Achilles)는 미케네(Mycenae)의 왕 아가멤논(Agamemnon)의 사신들에게 분노를 발하지 못한 것이다. 사자의 임무는 메시지들을 전하는 것이다.

이 임무가 사람들 간의 교류의 유일한 가능성이기 때문에 그는 특별한 신의 보호를 받는다.

사자들(앙겔로이)은 헬라인의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소포클레스(Sophocles)는 Trachiniae에서 사자의 사역에 대하여 묘사한다. 그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것과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답하며, 그 다음에 그 보상을 요구한다. 

비문들에는 사자의 기능에 대한 정보도 준다. 그는 조약을 체결하고 공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공물을 받으며 상대방의 맹세도 받아낸다(Ditt. Syll.). 새들은 신들이 사람들에게 보낸 사자로서 큰 역할을 한다. 철학자도 신의 사자로 나타난다(Epitetus).

(b)  세상의 거룩한 사자는 하늘의 사자들의 원형이다. 

헤르메스(Hermes)는 가장 유명한 하늘의 사자이다. 헤르메스와 함께 다른 신의 사자들도 때때로 언급된다.

하늘의 사자들 뿐만 아니라 지하 세계에 온 사자도 있다(Plato). 예를 들면 네메시스(Nemesis)와 헤게트(Hecate)와 함께 지하 세계의 사자들이 있다.

(c)  우리는 사자와 관련하여 통속적 종교에서 이제 철학자들의 종교로 돌아간다. 

철학적인 종교는 로고스(lovgo", 3056)의 신학을 발달 시켰는데, 헬라 사상은 로고스 신학을 헤르메스(Hermes)와 관련시키었다. 필로는 히브리의 말아크를 우화식으로 그것을 나타내었으나 유대의 사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성경에서 단 하나의 천사(angel)가 나타나는 곳에서, 필로에 의하면 그는 로고스와 동일시 될 수 있다.

(d)  요세푸스는 앙겔로스를 '사자 messenger'와 '천사 angel'라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그는 이 단어를 구약성경의 천사에 대하여 사용한다. 그는 발람을 만난 천사를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렀다(Antiquities 4. 108). 그러나 그는 천사에 대한 에세네파의 견해를 피했다(The Tewish war).

2. 구약 및70인역본의 용법. 

(a)  명사 앙겔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300회 이상 나오며, 주로 말아크를 번역한다. 

히브리어 말아크는 헬라어 앙겔로스에 해당하는 말이며, 역시 '사자 messenger, 천사 angel'를 의미한다. 그리고 앙겔로스는 벤(아들, 창 6:2; 욥 1:6; 욥 2:1), 벤 엘로힘(하나님의 아들, 욥 38:7), 엘로아(신, 하나님, 시 8:6; 시 97:7[96:7]; 시 138:1[137:1]); 엘라흐(아람어, 하나님, 신, 단 2:11; 단 3:25), 압비르(강한 자, 천사, 황소 등을 표현함, 시 78:25[77:25]), 엘(하나님, 신, 욥 20:15), 에노쉬(사람, 인류, 창 19:16), 에베드(종, 사 37:24), 이르(깨어있는 자, 천사, 단 4:10, 19-32), 치르(전달자, 사신, 잠 13:17; 잠 25:13), 사르(수령, 우두머리, 통치자, 방백, 단 10:21; 단 12:1), 야드(손, 잠 26:6)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b)  앙겔로스는 70인역본에서 인간 사자와 초자연적인 사자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① 인간 엥겔로스(사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이다. 

앙겔로스는 좋은 소식을 전하며(삼상 6:21), 요구를 알린다(민 20:14; 삿 7:24), 앙겔로스는 어떤 목적을 위해 파송되는 자로서 자객이 될 수도 있다(삼상 19:11; 왕하 6:32). 앙겔로스는 외교 사절로 봉사했다(삿 11:12-14; 삼하 5:11; 왕상 20:2).

엥겔로스는 선지자의 경우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의 공적인 대표자를 의미한다(대하 36:15-16; 학 1:13). 

다윗은 "하나님의 천사, 사자"로 불리웠는데, 그는 신의 특별한 속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백(삼상 29:9); 지혜(삼하 14:17); 자비로움에 대한 희망(삼하 19:27).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연약한 자로 나타난다(사 42:19).

② 초자연적 엥겔로스(사자)는 하늘의 존재로서, 여호와의 궁전의 일원들이며,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천사들이다(욥 1:6; 시 148:2). 

그들은 메시지를 전달, 계시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이 그 중심 기능이다(슥 1:9; 11이하; 슥 2:2-5). 그들은 인간의 노력을 도우며(창 24:40), 백성을 보호하며(출 23:20), 사람들을 구원하며(창 19:15이하), 보호한다(시 91:11).

그들은 세계의 창조를 증거하며(욥 38:7), 그들의 임재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창 28:12-17). 그들은 심판을 집행하며(삼하 24:7), "벌하는 사자들"(시 78:49), "멸하는 자"(욥 33:22)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그들도 무흠한 자가 아니다(욥 4:18). 그들은 천사장, 순찰자, 강한 자, 손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앞의 (a)를 참조하라).

③ 여호와의 엥겔로스(사자, 천사)는 특별한 천사의 존재를 나타낸다. 

이 사자의 특징도 다른 사자들과 같이 동일한 일반 영역의 기능들을 가진다. 그는 선한 메시지(창 16:10-13)와 위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삿 5:23). 그는 심판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고(왕하 19:35; 시 35:5-6), 사람들을 구원한다(창 22:11; 시 34:7[H8]).

오직 삼하 24:16이하에서만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여호와의 사자는 불타는 가시덤불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서 자기를 가리켜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셨다(출 3:6).

이 여호와의 사자는 잘못된 일로 여행하는 발람의 가는 길을 막았다(민 22:22).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사사 시대 초기 때에도 이 하나님의 사자는 벧엘(삿 2:1-5)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나중에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인의 속박에서 구해낼 군대의 지도자가 되라는 사명을 주었다(삿 6:11-14). 또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나타나 그들이 장차 아들(삼손) 하나를 얻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었다(삿 13장). 이 여호와의 사자는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있던 다윗에게 나타났으며, 동시에 파괴하는 천사를 중지시켜 심판을 그치게 하였고 나중에 선지자 갓에게 나타나 다윗으로 하여금 그곳 바위 위에 제단을 쌓도록 하라는 명령을 전하게 했다(대상 21:15, 18, 27).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에게서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하늘의 존재로, 그의 배후에서는 천사의 개성이 완전히 사라진다. 따라서 천사가 나타나는 것을 본 자가 그의 속성(이름)을 시험하고 간파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참조: 삿 13:17이하). 

여호와의 천사는 거의 언제나 이스라엘이나 어떤 사람을 돕기 위해 나타난다. 사실상 그는 여호와의 실재적 현현이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의인화된 도우심이다(출 14:19; 민 22:22; 삿 6:11-24; 왕하 1:3이하). 

간혹 우리는 여호와와 여호와의 사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언급이 인간과는 상관 없이 여호와를 언급할 때는, "여호와"라는 말이 사용되며, 인간이 그를 목격하는 곳에서는 "여호와의 천사"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이 표현은 여호와의 초월성을 나타내는 것이다(예: 창 18장; 출 23:20-23). 

여호와의 거룩하심은 이스라엘을 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의 사자만이 이 백성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H. Bietenhard, DNTT). 오직 그의 사자만이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과 중보하는 사역을 수행한다(슥 1:12; 3:1-5).

그의 신원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이미 언급한 것 외에도 그를 본 자들은 하나님을 본 것처럼 놀라워하며(삿 13:21-22), 그는 일인칭으로 하나님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창 16:10; 출 3:2, 6; 삿 2:1). 그는 기능면에서의 유사함, 특히 앞에 언급된 중보 기능에 근거하여 볼 때,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사자"로 불리울 수 있으나(삿 13:6, 9; 참조: 삿 13:3). 이러한 명칭은 그의 독자적인 지칭이 아니다. 한편 '인간 사자'라는 항목에서 성경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인간에 대하여서도 '하나님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라고 불렀다.

3. 신약성경의 용법 

엥겔로스는 신약성경에서 175회 사용되는데, 공관복음에서 51회, 사도행전에서 21회, 요한계시록에서 67회, 바울 서신에 14회 나오며, 사람 사자와 천적 존재에 대해 사용되었다.

1. 엥겔로스는 사람 사자에 대해 6회 사용되었다. 

'인간 사자'라는 의미로는 약 2:25에서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군들, 눅 7:24에서 요한이 예수님께 보낸 사람들, 눅 9:25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의 한 촌으로 앞서 보낸 사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11:10과 병행구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언약의 사자로서 세례(침례) 요한에 대해 사용되었다.

2. 엥겔로스는 주로 천적 존재들, 곧 천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a)  신약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의 유대적 개념들이 채택되었다.

·천사들은 천상계의 대표자들이요 하나님의 사자들이다(히 12:22; 딤전 5:21). 그들이 나타날 때, 초자연적 세계가 이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다.

·천사들과 같이 되는  것은 그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 6:15).

·천사들과 비교하는 것은 신적인 것과 비교하는 것이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갈 4:14).

·천사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천계에 거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이렇게 제시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히 13:2에 의하면 천사들은 천계의 대표자, 하나님의 사자로서 구약의 성도들, 곧 아브라함(창 18장), 롯(창 19장)에게 나타났다.

·행 7:30; 행 7:35에 의하면 천사는 모세에게 나타났다(출 3:2).

·행 7:53; 갈 3:19; 히 2:2에서 천사들은 율법을 수여하는 데 역할을 담당했다.

(b)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주권의 표현이다. 따라서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 생애와 사역과 관련된 중요한 순간에 나타났다.

①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전후하여 빈번히 나타났다: 천사는 성소에서 분향하는 사가랴에게 나타나 선구자 요한의 출생을 예고하였다(눅 1:11-눅 1:13).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였다(눅 1:26-눅 1:28; 눅 1:31).

천사는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잉태가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알리었다(마 1:18-마 1:21).

천사는 밤에 양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나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눅 2:8-눅 2:11),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눅 2:13이하).

천사는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 예수님의 안전을 위해 지시했다(마 2:13; 마 2:19).

②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후에 나타나 그에게 수종들었다(마 4:11; 막 1:13).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을 하면서 천사들의 도움을 언급했다(마 4:6; 눅 4:10).

③ 예수님께서 수난과 관련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천사가 나타나 힘을 도왔다(눅 22:43).

마 26:53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천사들을 자기 마음대로 호령할 수 있었다.

④ 천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무덤 입구의 돌을 굴려내 치웠다(마 28:1이하). 천사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뉘었던 곳에 앉아 있다가 찾아온 여인들에게 말을 걸었다(요 20:12이하). 천사는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였다(마 28:5이하).

⑤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심판관으로 재림하실 때 그와 함께 와서 사역할 것이다(마 13:49; 마 16:27; 마 25:31; 눅 12:8이하; 살후 1:7).

(c)  천사들은 구원사의 과정에서 동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이 구원사에서 개인의 발달(성장)에 관심을 보인다(눅 15:10), 

마 18:10에서는 "소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나온다. 천사 혹은 여호와의 천사는 하나님의 교회가 사명을 행할 때 사도들을 위하여 활동하며(행 5:19; 행 12:7이하),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며(행 8:26; 행 10:3이하; 행 27:23) 사도들의 대적을 벌한다(행 12:23).

(d)  신약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는 천사들과 동등한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위에 계신다고 한다(막 13:32). 

천사들은 섬기는 영이며, 구원 받은 자들을 섬기라고 보내신 하나님의 일군에 불과하다(히 1:4이하; 참조: 엡 1:20이하; 빌 2:9이하). 만일 그가 천사들보다 더 낮은 존재로 언급되었다면, 이것은 단순히 그의 임무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히 2:5이하).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천사들에게 거의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사도로서의 그는 천사들의 명령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갈 1:8). 천사의 말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전 13:1). 어떠한 피조물도, 어떠한 천사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롬 8:38).

천사들은 결혼하지 않은 영이며(마 22:30),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전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의 시기를 알지 못한다. 성도는 천사들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고전 6:3). 

바울은 천사 숭배를 공격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중개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독특한 위치를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골 2:18; 계 22:8이하; 참조: 골 1:15이하).

(e)  바울은 여러 범주의 천사들이 있음을 인정하였다(롬 8:38이하; 참조: 고전 15:24; 엡 1:21; 골 1:16).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 참여하였다(갈 3:19; 참조: 행 7:53; 히 2:2). 그들은 인간들과(눅 15:10) 사도들의 운명에(고전 4:9)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한다(눅 16:22).

천사들은 요한계시록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보좌를 에워싸고 찬양의 노래로 천상계를 가득 채운다(계 5:11; 계 7:11). 이들은 계시를 전달하고 환상을 준다(계 1:1; 계 10:1 이하; 계 10:8 이하; 계 14:6 이하; 계 17:1).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실행한다(계 7:1; 계 8:2 이하; 계 9:1; 계 9:13; 계 11:15; 계 12:7 이하; 계 14:15; 계 14:17 이하; 계 15:1; 계 15:6 이하; 계 18:1 이하; 계 19:17; 계 20:1 이하).

한편 사단도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다(마 25:41; 고후 12:7). 벧후 2:4과 유 1:6은 천사들의 타락에 대해 말하고 있다.

(f)  수호 천사 또는 인도하고 섬기는 천사에 대한 개념은 유대교에서 채택된 것이다.

행 12:15은 천사와 사람의 모습과 음성이 유사함을 나타낸다.

마 18:10에서 천사들은 우리로 하여금 소자도 하나님께 중요하며 우리에게 마땅히 그러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고전 11:10은 천사들의 성애적 욕망에 대해 언급한 것 같으나, 아마도 오히려 그들이 요구하는 예의 범절을 언급한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계 1:20과 2-3장에서 교회의 사자들은 감독들을 의미할 수 있으나, 신약성경 시대에 감독은 교회 위로 높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문맥상, 지지하고 있는 천사들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그럴듯하다.(참조: J. Schniewind; H. Bietenhard;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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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골라당 Nicolaitan.Nikolai?th"(3531, 니콜라이테스) 
니골라당은 계 2:6과 계 2:15에만 나타나며,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교리를 주장하던 그리스도인 회중들을 지칭한다.
이레니우스는 그들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도록 선택된 집사 중의 한 명인(행 6:5) 안디옥의 니골라를 따르는 자들이며, 참 기독교 교리를 흔들어 놓은 무리이며, 방종 중에서 살았다고 말한다(Against Heresies Ⅰ; 26:3).
히폴리투스(Hippolytus)는 니골라가 분명한 교리는 남겼지만 사람이 무엇을 먹을 것인지 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지녔다고 하면서 이 사실을 확실하게 했다(Refutation of Heresies 7:24).  사도의 조직(The Apostolic Constitutions, 6:8)은 그들을 "부정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묘사했다. 
비록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니골라의 추종자들이 그를 잘못 이해했다고 하면서 니골라를 변호하기는 했으나, 클레멘트도 니골라당은 자기 충동의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는 염소새끼 같이 쾌락에 자신들을 내던져 버렸다고 보았다(The Miscellianes 2:20). 
페타우의 빅토리누스(victorinus or pettau)는 요한계시록의 최초의 주석가로서 '니골라당은 잘못되고 성가신 사람들로서 니골라의 이름 아래 사역한 목회자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이단을 형성하고 우상에 제사를 하고 그 제물을 먹었다. 그리고 '간음을 행하는 자는, 여덟 번째 날에 평화를 소유하게 된다'고 주석했다. 
이런 견해가 확실하다고 하기에는 물론 의문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 가운데 보면 니골라당은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일종의 말의 유희인 듯 하다. 
"니골라당"이라는 말은 두 헬라어 단어로부터 왔는데, 지배한다는 뜻의 "nikan"이라는 단어와 백성을 뜻하는 "laos"라는 단어이다. 
마찬가지로 발람도 두 히브리어 단어인 bela(지배하다)와 ha'am(백성)에서 유래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니골라와 발람은 같은 이름의 헬라어와 히브리어로써 어느편이나 백성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을 이단의 노예가 되게 하는 악한 교사를 묘사하는 말이다. 
발람이 모압왕 발락을 꾀어서 축제를 벌여, 모압 여인과 불륜의 관계를 갖도록 이스라엘 사람을 유혹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민 25:1-5). 
만약 이런 상태가 억제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망했을 것이다. 
민 31:16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한 유혹에 빠지게 된 것은 모압왕 발락을 꾀어 악한 일을 하게 한 발람 선지자의 악한 영향에 돌리고 있다. 
그러므로 발람은 히브리 역사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불륜과 죄악으로 이끄는 악한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
버가모 교회에 보낸 편지는 특별히 그들은 백성들을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도록 하며, 음란한 행위를 하도록 유혹한다고 책망했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은(행 15:28; 행 15:29) 이방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오는 두가지 조건을 정했는데 그것은 우상의 제물과 음행을 삼가는 것이었다. 
이런 규칙을 바로 니골라당이 범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경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육신을 위한 기회로 삼는 자들이었다(갈 5:13). 
이런 잘못된 행위의 유혹이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었던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이 일반화된 이교도 사회에 많이 있었다. 
이방사회에서는 혼외의 정사가 상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니골라당은 [공동소유 미풍양속을 오용하여 아내들조차 공동 소유함이 옳다 하는 괴상한 실행으로]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로마의 이교도 사회와 타협을 시도했다. 
의심할 나위없이 이러한 교훈을 가장 잘 용납한 사람들은 개심하기 전에 자기들이 속해 있던 문화로부터 격리함으로서 최상의 위치를 상실할 만한 형세에 있었던 상류계급이었다.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와 이세벨을 따르는 자(20절)는 매우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다. 이는 니골라당도 이와 유사한 종류의 사람들임을 나타낸다. 
이는 확증할 수는 없지만, 동일하지는 않으나 이 세 무리가 서로 관련된 사실을 살펴볼 때에 가장 합리적 해석으로 고려되기 때문이다. 
니골라당은 믿음을 파괴하려고 하는 공개적인 외부의 적은 아니다. 
이 거짓된 교사들의 '그들은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진보적, 현대적으로 발전된 양상으로 보인다'고 주장하였다(바클레이).  
일종의 자유주의적 관점(구원의 완성이 평생을 걸쳐 완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일회적이며, 그 후엔 간음 등  성적 방종조차 허락된다고 보는 입장)에 서는 바, 이단적 구원파의 효시라 할 수 있을것이다.  니골라당은 내부에서 파괴를 시도하는 방심할 수 없는 무리였다. 니골라당의 교리는 이원론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마 인간의 몸은 어쨌든 악하고, 영혼은 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의 육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행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육신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영혼은 그가 행한 것에 관계없는 은혜와 용서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세상과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었다. 
계시록 저자는 그들을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비판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교훈의 귀결은 기독교가 세상을 변화시킨다기 보다는, 기독교가 세상을 추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유세비우스는 이 종파가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과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은 계시록에 나타난 언급 외에는 찾아볼 수 없음을 지적했다. (참조: Leon Morris;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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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 2장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에베소'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상업상으로는 매우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로서 소아시아에서 제일 부유한 도시이며 유프라테스강에서 라오디게아를 경유하여 에베소까지 이르면서 동방의 산물이 종착하는 곳이었다. (2)종교적으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Artemis) 여신상이 있어서 미신이 성행하였으며 황제 숭배가 행해지던 부도덕한 곳이었다. (3)정치적으로는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스트라테고이'(Strategoi)라는 독자적 행정관이 있었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통치 기관으로서 '불레'(Boule)라는 민회관과 순회 재판소가 있었다. 따라서 명목상 '버가모'가 소아시아의 수도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에베소가 소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Mounce, Kraft, Kiddle). 이러한 에베소에 기독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또한 바울이 이 에베소 지역에 2년 간 머무르며 목회하였고 후에 디모데가 바울의 열심을 본받아 목회 활동을 함으로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행19장; 딤전1:3, Ironside). 한편 '사자'는 그리스도에 의해 책임을 갖고 교회를 수호하는 하늘의 천사들을 가리킨다(Johnson, 1:20주석 참조).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 본문은 에베소 교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에서 '붙잡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톤'(* )은 단순히 '잡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요동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며 지배하고 계심을 시사한다(1:13,16,20). 
한편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역시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을 사랑하고, 능력 가운데 교회에 임재하고 계심을 암시한다(Mounce, Johnson, Clarke).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 '행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는 포괄적인 의미로 전체적인 삶의 모습을 말하며(요3:19,20; 5:36; 요일3:8), '수고'의 헬라어 '코폰'(* )은 단순한 노력의 차원이 아니라 고통스런 노동을 동반할 최선의 삶을 가리키고(롬16:12; 고전15:10), '인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모넨'(* )은 '아래'를 의미하는 '휘포'(* )와 '머물다'를 의미하는 '메노'(* )의 합성어로 어떤 어려움도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확보 부동함을 나타낸다(약1:3, Lenski, Morris). 이런한 '행위'와 '수고'와 '인내'의 항목에 대해 혹자는 살전 1장과 연결시켜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해석하여 각각 독립적인 덕목이라고 주장하며(Rist), 혹자는 '수고'와 '인내'를 '행위'의 내용으로 해석한다(Mounce,  Johnson, Charles, Moffatt, Plummer). 두 가지 견해 중 헬라어 구문상 후자가 더 타당하다. 한편 '알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다'(* )는 단순히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나타내는 '기노스코' (* , '알다')와는 달리 직관적으로 아는 생득적(生得的) 지식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행하는 수고와 인내를 모두 알고 계심을 나타내므로 그리스도의 전능성을 시사한다(9,13절; 3:1,8,15, Sweete).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본문은 에베소 교회가 가졌던 고상한 영적 분별력을 말한다. 여기서 '악한 자들'(* , 카쿠스)은 관사 없는 복수 명사로 문자적으로 '악한 것들'을 뜻한다. 이 말이 정확하게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에베소에 있던 거짓 사도 혹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는 듯하다(Mounce,Johnson, Ladd, Greijdanus). 이들은 자칭 사도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주의자들로 본다(고후11:13-23, Spitta). (2)혹자는 바울의 제자들로 간주한다(Holtzmann). (3)혹자는 '니골라당'으로 본다(Bousset, Charles), 이 중 세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6절에 에베소 교회가 미워하던 거짓된 자들인 니골라당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행20:28-30; 고후11:13; 갈1:8,9).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은 예수를 부인할 뿐만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확신을 통해서 이익을 추구하였다(고후 11:13,15; 12:11). 교회는 자칭 사도라 하는 이런한 거짓된 자들의 거짓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었고, 에베소 교회는 훌륭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열매'를 통해(마7:20) 거짓을 분별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그들의 거짓을 드러냈다(고전14:29; 살전5:21; 요일4:1; Johnson, Mounce).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본절은 앞절에 나타난 사실을 반복하여 더욱 강조함과 동시에 에베소 교회의 신앙의 정절을 나타낸다. 당시 교회는 황제 숭배 강요 때문에 심한 박해 가운데 있었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단들의 내적 도전들이 많았으나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복음에 확고히 서서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지켰다.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본절은 에베소교회에 대한 책망을 나타낸다. '처음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 이다. (1)혹자는 에베소 교인들이 가졌던 기독교적인 사랑 즉 형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행20:35; 엡1:15, Vincent, Plummer, Charles,Moffatt, Rist, Kiddle). (2)혹자는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가졌던 그리스도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cott).에베소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있던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느라고 형제를 의심하고 엄격하게 구별함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다(Barclay, Mounce, Ladd).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형제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막12:29ff., Beasley-Murray, Johnson).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형제 사랑을 동반하기 때문에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은 어느 하나라도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두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버렸느니라'에 해당하는 '아페카스'(* )는 부정 과거로 단회적 행동을 나타내어 에베소 교인들이 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과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본문은 에베소 교회가 교리적(敎理的)으로 칭찬할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생명 없는 형식주의로 전락하여 사랑을 상실했음을 단호하게 책망하고 있다(Alford, Johnson).
=====2:5
본문은 에베소 교회의 책망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명령어를 사용하여 제시한다. 이러한 세 가지 명령은 에베소 교인들을 보호하시려는 그리스도의 단호한 명령이며 권고이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 이것은 죄의 원인을 깊이 생각하되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생각하라는 명령이다. 여기서 '생각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모뉴에'(*)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계속하여 생각하고 회상하라'는 의미이다.(눅15:17-22). 에베소 교인들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그것을 어디에서 무엇으로 인해서 상실하게 되었는가를 상고해야만 한다.
@회개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에손'(* )은 부정 과거명령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다(마3:2; 눅15:20).
@처음 행위를 가지라. - 에베소 교인들은 특별히 회개하여 돌아가되 무분별한 사랑이 아닌 그들이 가졌던 처음의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Kiddle, Moffatt). 여기서 '가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에손'(* )은 '행하다'는 의미를 가진 '포이에오'(* )의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지금 즉시 행하라'는 말이다(마3:8, Robertson, Johnson, Mounce). 에베소 교인들은 지금 즉시 처음에 그리스도에 대해 가졌던 사랑으로 형제들에게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본문은 그리스도의 권면을 외면했을 때 초래할 결과에 대한 진술이다. '내가 네게 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코마이 소이'(* )는 미래적인 현재 능동태로 예언적인 사실의 확실성을 나타낸다(22:20; 요14:13; 요일2:18). 그러기에 혹자가 주장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재림'때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Clarke), 오히려 회개치 않을 경우 맞게 될 현재적 심판을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Charles, Alford, Plummer). 한편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에베소 교회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Ramsay). (2)혹자는 당장 있게 될 지금의 심판을 말하는 것으로 에베소에서 교회가 없어지고 그 도시 전체가 황폐화할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요 15:6; 엡1:22, Mounce, Greijdanus, Charles).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문맥상 현재에 임할 그리스도의 심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 '니골라당'에 관해서는 본서 이외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된다. (1)역사적으로 이는 사도행전에 언급된(행6:5)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니골라가 타락하여 만든 이단이라고 추측한다(Irenaeus, Tertullian, Alford). (2)언어적으로 '니골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콜라이톤'(* )은 '백성'을 뜻하는 '라오스'(* )와 '없애다'혹은 '정복하다'를 의미하는 '니카오'(* )의 합성어로 구약성경에 기록된(민22:12) '발람'(* , '백성을 이긴')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발람의 행위와 동일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는 거짓 무리들로 추측한다(Bousset,Cha-rles, Trench, Ewald).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와 같이 니골라당은 발람의 교훈을 따른 자들로 이해된다(14,15절).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본문은 예수께서 지상 사역 중 반복해서 내리신 명령이며(마11:15; 13:9,43; 막4:9,23; 눅8:8; 14:35), 본서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의 결론적 어구로 반복된다(11,17,29절; 3:6,13,22), '귀 있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에콘 우스'(* )는 개교회 전체에 속한 청중들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11,17,29절; 3:6,13,22) 여기서 '귀'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통역하시는(Swete) 그리스도의 영이요(Beckwith) 예언의 영인 (Kiddle) 성령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나타낸다. 한편 '교회들에게'(*, 타이스 여클레시아이스)는 복수로 각 교회들에게 보내진 서신 맨끝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문구이다. 이는 이 편지들이 특정한 한 지역 교회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편적인 교회를 향해 보내진 것임을 시사한다(Lenski, Hughes).
@이기는 그에게는. - 본문은 그리스도의 권면대로 행하여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이기는 그에게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니콘티'(* )는 관사가 있는 현재 능동태 분사로 계속해서 이기는 자를 가리키며 본서와 복음서에서 여러번 반복되는 문구이다(17,26절; 3:5,12,21; 5:5; 12:11; 15:2; 17:14; 요16:33;요일2:13). 또한 이 말은 군사적인 용어로 그리스도와 사단의 타협없는 대결상을 잘 묘사한다. 즉 사단과 대결하여 끝까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자를 나타낸다(Mounce).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 '낙원'의 헬라어 '토 파라데이소'(* )는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말로 일차적으로는 인류 최초의 거주지였던 에덴 동산을 암시하며(창2:8-10)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하나님 나라 자체를 의미한다(22:1-4,14; 눅23:43,Morris, Robertson, Johnson). 한편 '생명나무의 과실'은 죽음과 고난이 존재하지 않는(22:2) 영생(永生)을 상징한다(Johnson, Mounce, Ladd, Beasley-Murray). 그리스도의 권면대로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에베소 교인들은 첫창조 때에 에덴 동산이라 했으며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할 예루살렘 즉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되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생명나무 즉 영생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서머나'는 에베소북쪽 약 80km 지점에 있었고, 당시 인구가 약 20-30만정도로 소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다. '서머나'란 말 가운데 '머'(Myrrh)는 '유향'이란 뜻으로 이곳은 향료 수출지로도 유명하였다. 또한 이곳은 호머(Homer)의 출생지이며 학문, 특히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도시였다. 종교적으로는 이교 문화와 종교의 집합처로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서머나는 소아시아 도시들 가운데서 지리적으로나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로 인해 복음이 순수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황제 숭배가 성행하는 등 혼합화와 박해가 뒤따른 도시였다(Johnson, Kraft). 한편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본 서신 외에 잘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폴리갑의 생애'에서 바울이 이곳에 전도하였다고 전한다(Eusebius). 그리고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서머나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던 폴리갑(B.C.155-166)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 '처음이요 나중이요'는 1:17,18의 반복된 표현이다. 이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 전체를 지배하시며 태초에도 계셨으며 역사의 종말에도 계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나타낸다. 한편 '죽었다가 살아나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에게네토 네크로스 카이 에제센'(*)은 두 부정 과거 시제가 사용된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역사적이며 단회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계시하신 것은 투옥과 사형의 핍박 가운데 있는 서머나 교회 교인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다(Johnson, Lenski).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 '환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들마신'(*)는 '무거운 물건 밑에서 눌려 부서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신앙으로 말미암아 받는 외부적 핍박을 시사한다. 또한 '궁핍'의 헬라어 '프토케이안'(*)은 '외적 핍박으로 생긴 물질적인 빈곤'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숭배를 거절함으로 당한 경제적 제재나 적대 감정을 가진 유대인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가리킨다(Johnson, Ladd).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 서머나 도시 자체는 부요한 도시였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온갖 핍박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궁핍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 부요하다고 인정하신다. 이것은 육신적으로는 궁핍하나 내적으로 정결하고 부요함을 의미한다(눅12:21; 고후6:10; 딤전6:17,18; 약2:5). 이는 외적으로는 부요하나 내적, 영적으로 궁핍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정반대이다(3:17).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 서머나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서머나의 유력한 위치에 오른 자들이 많아서 기독교를 박해하고 방해하였다. 예를 들면 황제 숭배를 이용하여 거짓된 말로 로마 제국을 충동해서 서머나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을 처형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인 것을 천국 시민권으로 오해함으로 더욱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다. 실제로 초대 교회 여러 이단들과 잘못된 사상들 가운데 유대주의는 가장 포괄적이며 무서운 기독교 진리의 훼방자였다(Moffatt, Johnson,Kraft).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여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서머나의 유대인들은 사실상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유대인은 혈통(血統)에 의한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에 의한 이면적 유대인이기 때문이다(롬2:28,29). 서머나의 유대인은 도리어 사단의 회였다. '사단의 회'는 자칭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여호와의 총회'라 했으나(민14:27,35) 그들의 실체는 사단의 자식이며,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적대자임을 시사한다(요8;31-47). 그들은 교회와 복음을 방해하며 교인들을 핍박하였다. 이들에 대한 언급은 본서 전체에서 자주 나타난다(13절; 3:9; 9:11; 12:9,10,12; 13:4; 20:7,10 Johnson).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 서머나 교회에 대한 서신에서는 책망과 심판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고 곧바로 권면 즉, 곧 있게 될 고난을 상기시키며 두려워 말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보아 당시의 신자들이 장차 임할 핍박과 고난을 생각하고 두려워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본문은 장차 서머나 교인들이 받게 될 핍박의 내용이다. 서머나 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이 유대인이든 당시 정부이든 간에 그 핍박의 주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였다. 마귀는 서머나 교인들을 시험하기 위해 몇몇 사람을 감옥에 넣을 것이었다. 한편 '시험을 받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데테'(* )는 '유혹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련을 통해서 '시험하다'는 뜻으로 감옥에서 받을 온갖 고난이나 핍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난과 핍박을 그리스도인들은 감수해야 하며 심지어 순교로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증명해야 한다.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 본문은 환난의 기간을 나타낸다. '십일 동안'의 헬라어 '헤메론 데카'(* )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십일은 짧은 기간을 가리키거나 실제로 열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창24:55; 민11:19; 단1:12,14; 행25:6, Alford, Charles, Plummer, Johnson, Kiddle,Beasley-Murray, Ladd). (2)혹자는 십일은 극단적이면서도 완전한 환난을 상징하고 긴 기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민14:22; 욥19:3, Mounce, Summers).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십일은 짧은 기간을 나타내는 셈어적 표현이기 때문이다(Johnson, Moffatt)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누 피스토스 아크리 다나투'(*)에서 '기누'는 '기노마이'(* , '되다')의 현재 중간태 명령형으로 과거의 순교자들이 순교하기까지 충성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드러냈던 것처럼 서머나 교인들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야 함을 시사한다. 이것은 당시 극심한 황제 숭배 강요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던 교인들을 향한 단호한 명령이다. 한편 '생명의 면류관'은 죽기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에게 주어진 상급이다. '면류관'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1)'디아데마'(* )로 '왕관'을 의미한다. (2)'스테파노스'(* )로 운동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진 '승리의 관'을 의미한다. 두 가지 중 본문에 사용된 면류관은 후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운동 선수가 경기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 듯이 온갖 핍박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을 가리킨다. 성경은 '생명의 면류관'(약1:12) 외에도 '썩지 않는 면류관'(고전9:25), '자랑의 면류관'(살전2:19), '의의 면류관'(딤후4:8), '영광의 면류관'(벧전5:4) 등을 그리스도인이 받을 상급으로 진술하고 있다.
=====2:11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생명의 면류관과 연결된 것으로 승리자에게 주어진 약속을 나타낸다. '둘째 사망'은 탈굼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대인에게는 아주 친숙한 용어였다(Johnson, Beasley-Murray).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가 직면하게 되는 육체적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이 당할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分離) 곧 영원한 죽음을 가리킨다(Ladd). 그리스도인들의 최후에 비그리스도인이 당할 불못 즉 영원한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20:14; 21:8). 이러한 그리스도의 약속은 순교에 직면한 서머나 교인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버가모'는 서머나북쪽 약 100km되는 곳에 위치한 수도로 주전 130년 경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곳은 에베소와 서머나가 상업적으로 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한 반면에 문화적인 측면에서 아시아의 중심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의학교가 있었으며 장서 20여 만권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으며 책을 만드는 종이인 양피지의 생산지였다. 종교적으로 치료의 신으로 이해되었던 '아에스쿨라피우스'(Asclepius)라 불리는 뱀신과 주신인 '제우스'(Zeus), 그리고 아테네 신전 지도자 '디오니소스'(Dionysos) 등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지였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 본문은 버가모 교인들에게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1:16의 반복이다. '검'은 권위와 능력을 가진 심판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버가모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과 니골라당을 대적하여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한다(16절, Mounce, Lenski).
=====2: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 '네가 어디 사는 것'은 단순히 버가모 교인들이 버가모에 살고 있는 것을 안다는 의미보다 버가모교인들이 지금 처하여 있는 어려움을 안다는 의미이다. 버가모가 황제 숭배와 온갖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기에 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고난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심으로 위로하신다. 한편 '사단의 위'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버가모 지역의 대표적인 우상 신전 중 특별히 제우스 제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Deissmann). (2)혹자는 버가모 도시 자체가 언덕처럼 생겨서 평원 위로 솟아오른 모습이 하나의 제단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본다(Wood). (3)혹자는 버가모가 이방신과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Johnson, Mounce, Alford). 세 해석 중 마지막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사실상 버가모는 황제 숭배를 비롯한 모든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 '굳게 잡아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이스'(* )는 '크라테오'(* ,'붙잡다')의 현재 능동태 시상으로 '계속해서 굳게 잡았음을 의미한다(25절; 3:11). 따라서 이것은 여러 가지 우상과 황제 숭배의 강요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에는 고난과 순교 가운데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한 사람 안디바를 제시한다. '안디바'( , 안티파스)는 '모든 것에 대적하는 자'란 의미로 그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로 나뉜다. (1)이름의 의미 자체가 밝히는 것처럼 어느 개인이 아닌 당시 순교자 전체에 대한 지칭이다. (2)당시 버가모에서 최초의 순교자든지 아니면 위대한 어떤 순교자를 지칭한다. 두 가지 추측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터툴리안은 '안디바'가 버가모 교회의 명성 높은 감독으로 황제 숭배 거절로 인해 불에 타 순교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Moffatt).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분문은 버가모 교회가 내부적으로 분열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으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지만 반면 부분적으로는 발람의 교훈을 좇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6절). '발람'은 어원적으로 '백성을 정복하라'는 의미의 '니골라당'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6절 주석 참조).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 분문은 버가모 교인들이 따랐던 발람의 교훈에 대한 설명이다. 발람의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사람들 잡혼(雜婚)을 하게 하고 우상 숭배하는 일에 타협케 한 것을 가리킨다(민22-25장; 31:8,16). 발람은 발락의 청구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정면으로 저주하지는 않았으나 모압 여인을 통해 이스라엘을 유혹하게 하여 음행케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 수만 명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게 하였다. 이러한 '발람의 교훈'은 신약성경에서(벧후2:15; 유1:11), 혹은 유대 역사에서 늘 경계의 표적으로 언급되었다. 이처럼 당시 버가모도 특히 우상 숭배가 많은 지역이었고,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형식으로 세상과 타협하였다. 따라서 본문은 버가모 교인들이 우상 숭배에 동참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혼합화된 현상은 정죄받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Bousset, Plummer, Johnson, Charles, Kiddle).
=====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이와 같이'는 앞절에서 언급된 발람의 교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절에서는 언급되는 '니골라당의 교훈'과 '발람의 교훈'이 동일한 것임을 암시한다.
=====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 본절은 발람의 교훈과 동일한 니골라당의 교훈에 빠져있는 버가모 교인들에 대한 권면과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생겨날 일에 대한 경고이다. 그 권면은 '회개하라'는 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회복할 것을 의미한다. 만약 회개하여 신앙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심판이 임하게 된다.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에서 '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코마이'(* )는 미래적인 현재 중간태시상으로 지금 그리스도께서 임하고 있다는 현재성과 김급함을 나타낸다(5절; 3:11;11:14; 22:7,12,20,Johnson). 한편 '내 입의 검'은 '심판의 말씀'을 의미한다(19:15). 마치 하나님이 발람의 추종자들을 칼로 심판하셨던 것처럼(민31:8) 우상이나 황제 숭배와 타협하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한다(엡6:17; 히4:12).
=====2:17
본절은 권면을 듣고 그대로 행함으로 신앙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 '감추었던 만나'는 후손들을 위해 언약궤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가(출16:32-34; 히9:4)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예레미야 혹은 천사에 의해 감추어졌다가 장차 메시야 왕국에서 공개 된다는 유대 전설을 반영한 것으로(마카비하2:4-6; 바룩29:8) 이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만나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지할 삶의 능력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Swete). (2)혹자는 '감추었던'이란 말은 이 세상에 없고 하늘에만 있다는 의미로 보아 하늘에서만 먹는 양식으로 해석한다(Meyer). (3)혹자는 '감추었던 만나'는 신령하고 참된 양식으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를 통해 주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Greijdanus, Charles, Johnson, 요6:33,39,48).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즉 '감추어진 만나'는 생명나무의 열매와 마찬가지로(7절) 하나님께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나라에서 주실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Beasley-Murray).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승리한 버가모 교인들에게 두번째로 주어질 것은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이다. 여기서 '흰'것과 '새'것은 장차 천국에서 맞게 될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서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1:14; 3:4,5,18; 4:4; 6:2,11;7:9,13,14; 19:11,14; 20:11; 21:1,2,5 Trench, Charles, Plummer). 이 '흰 돌'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1)혹자는 '흰 돌'을 이방의 미신 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황제 숭배 사상과 관련있는 것으로 해석한다(Moffatt). (2)혹자는 만나가 하늘에서 내린 것처럼 하늘에서 내린 흰 돌로 본다(Rist). (3)혹자는 당시의 풍습에서처럼 재앙을 막기 위해 사용한 흰 돌에다 알 수 없는 이름을 새겨 넣은 것으로 본다(Holtz-mann). (4)혹자는 재판 과정에서 배심원들이 사용한 무죄 표시의 흰 돌로 해석한다 (Clarke, Bengel). (5)혹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대제사장의 흉패에 붙인 보석으로 본다(Trench). (6)혹자는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우승의 기념으로 새겨 주었던 흰 돌로 본다(Zahn).(7)혹자는 연회장에서 초대의 표시로 사용한 흰 돌로 본다(Plumptre,Johnson). 이 가운데서 여섯번째와 일곱번째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흰 돌'은 하나님 나라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는 상급이며,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케하는 상급이다. 한편 '새 이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석한다(Kiddle, Lohmeyer, Rist). (2)혹자는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상태에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Beasley-Murray).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Johnson). 즉 세상에 감추어져 있으나 장차 드러나게 될 그리스도 자신의 이름이든지(3:12; 14:1), 아니면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이름을 나타낸다.
=====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두아디라'의 옛 이름은 '펠로피아'(Pel-pia) 혹은 '유힙피아'(Euhiooia)이며, 현재는 '아킷살'(Akhissar)로 불리운다. 이곳은 버가모와 서머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공업 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주전190년 경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태양신 '아폴로'(Apollo)와 '아데미'(Diana), '삼바다'(Sambatha) 등의 신전이 있었으며, 공업이 발달하게 된 동업 조합이 유명하였다.
빌립보에서 개종한 자주 장사 루디아가 이곳 출신의 여인이었다(행16:14, Johnson). 한편 두아디라 교회가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 때 전도하였거나 루디아가 전달하여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그리스도의 모습은 두아디라에서 숭배하던 태양신 '아폴로'와 거짓 예언자 '이세벧'(20절)을 염두에 두고 경고하시는 것으로 그들의 우상 숭배와 행음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당시 청동업이 발달한 두아디라에 사는 교인들에게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은 생생한 화면처럼 느껴지는 계시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1:14,15 주석 참조, Johnson, Ramsay). 한편 '하나님의 아들'이란 언급은 일곱 교회 서신의 서두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 중에서 본절에만 나타난다. 이는 시2:7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위엄을 강조하며 (Charles) 두아디라 지방의 우상이면서 제우스의 아들로 여겼던 아폴로나 황제와 대조를 이루어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사한다(Mounce, Lenski).
=====2:19
@버가모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칭찬은 버가모 교회가 지닌 성숙함에 대한 것이었다. 본절에는 다섯 가지 칭찬 덕목이 나타난다.
>>사업.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 )는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연이어 언급되는 '사랑', '믿음', '섬김', '인내' 등의 제반 덕목을 포괄한다.
>>사랑. - 이것은 에베소 교회가 부족했던 덕목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마땅히 지녀야 할 삶의 규범이다(마22:37-4-; 고전12:31-13:3).
>>믿음. -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되는 삶을 가리킨다. 그런데 '믿음'보다 '사랑'의 덕목이 먼저 언급된 것은 두아디라 교회가 믿음보다 '사랑'을 강조한 듯하다.그래서 말씀과 믿음의 바탕이 없는 사람들이 '이세벧'같은 이단을 수용한 듯하다.
>>섬김과 인내. - 이는 '사랑'의 외적 표현으로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덕목이다(롬15:25; 고전16:15).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 이것은 에베소 교회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으로(4절) 두아디라 교회의 신앙 상태가 현저하게 진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에베소교회가 믿는 도리를 강조하다 사랑을 잃었으나 두아디라는 사랑이 식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 사랑의 사업이 처음보다 더 많아졌음을 나타낸다.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벧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 구약성경에서 '이세벧'은 시돈의 왕녀였으나(왕상16:31; 왕하9:7) 이스라엘 왕 '아합'의 왕비가 되어 바알신을 이스라엘에 가져와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를 하게 함으로 영적 간음을 행하게 하였다. 두아디라 교회에도 거짓 선지자인 이세벧이 있었다. 두아디라 교회에 있던 '이세벧'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다른 사본에 '이세벧' 앞에 '너의'(* ,수)가 있어 당시 두아디라 교회 교역자의 아내라 주장한다. (2)혹자는 특정 인물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인물로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세벧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단자라고 주장한다(Alford, Charles, Barclay, Walvoord).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당시 두아디라에 성행했던 조합(組合)과 관련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고 성적 부도덕에 빠지는 일이 비일 비재했으며 그 거짓 선지자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해 구약성경의 이세벧이란 명칭을 상징적으로 사용한 듯하다(Alford,Johnson).  사실상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벧의 정체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를 교회 내에서 활동하도록 용납함으로 범죄하였다. 그들은 분명히 이세벧을 징계했어야만 하나 하지않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 이세벧이 저지른 죄악은 두아디라 교인들을 유혹하여 행음케 하고 우상 제물을 먹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세벧의 행위는 에베소와 버가모 교회의 니골라당이나 발람의 가르침과 유사하다(14,15절).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 '주었으되...아니하는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도카...우 델레이'(*)에서 '에도카'는 부정 과거형으로 결정적인 경고의 기회가 주어졌음을 나타내며, '우 델레이'는 현재의 시상으로 지금도 계속하여 회개하기를 원치 않음을 나타낸다. 거짓 선지자인 이세벧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주어졌다. 그러나 '이세벧'은 주어진 회개의 기회조차도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22,23절).
=====2: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 '볼지어다'는 감탄사로 단호한 심판적 경고에 앞서 두아디라 교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한편 '침상'의 헬라어 '클리넨'(* )은 '잠자는 침상', '잔치용 상', '환자용 침상' 등을 의미한다. 본문에서의 '클리네'는 죄로 인한 심판과 관련되어 우상 숭배를 위한 상이나 음행을 위한 침상이 병상으로 바뀌어짐을 암시한다(Ramsay, Johnson, Ladd). 실지로 소아시아의 비문들은 음행의 결과로 질병에 걸려 죽은 사실들을 전하고 있다(Moffatt).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 '그로 더불어'는 이세벧과 짝한 것을 가리킨다. 이세벧과 뜻을 같이하여 음행하거나 우상 숭배한 모든 자들이 회개치 않는다면 이세벧과 동일하게 심판을 당할 것이다. 한편 '큰 환난 가운데'는 이세벧에게 주어진 심판, 즉 병상에 던져버림을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인들을 유혹하여 행음케 하고 우상을 숭배케 했던 이세벧은 물론 이세벧과 마음을 같이하여 회개치 않는 범죄한 교인들에게 도 동일한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 '그의 자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실제로 음행한 자들의 자녀라고 주장한다(Holtzmann, Vincent). (2)혹자는 이세벧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르는 모든 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harles,Rist,Morris).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그의 자녀'를 이세벧과 행음하는 자 사이에서 생겨난 자녀로 보기는 어렵다(Ladd). 이러한 심판은 엘리야를 통해 이세벧에게 경고되고 성취되었던 형벌과 일치한다.(왕상21:21; 왕하9:6-37). 따라서 본문은 이세벧을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의 형벌을 받는 것이 엄연한 사실임을 보여 준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지라. - '모든 교회'라는 언급은 본 서신이 특수한 상황 아래 있는 교회에 보내졌지만 보편적인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는 시7:9; 렘11:20 등의 말씀을 반영한 것으로 하나님만의 신적 속성을 그리스도도 소유하심을 시사한다. '뜻'(* ,네프루스)은 문자적으로 '신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의 가장 깊은 생각과 감정의 총체'를 말하며, '마음'(* ,카르디아스)은 '감정'(롬9:2)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내적 생각과 사상과 감정 모두를 알고 계심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자기 계시를 통해 두아디라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식하게 하고 회개케 하고자 하신다.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엄격히 드러낸 말로서 하나님이 인간의 중심을 살피실 뿐 아니라 그 행위에 따른 남김 없는 보응을 행하실 것을 가리킨다(렘17:10; 마 16:27; 롬2:6; 갈6:7).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21절).
=====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일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 '사단의 깊은 것'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구원을 얻으려면 신비한 지식을 터득해야 하며 자신들만이 그러한 지식을 가졌다고 하는 영지주의자들의 학설을 말한다고 해석한다(Alford, Clarke, Plummer, Vincent, Rist,Bruce). (2)혹자는 이세벧이 직접 '사단의 깊은 것'이란 말을 사용하였으며 마땅히 우상 숭배나, 음행, 또는 이교도들의 깊은 생활을 알아야 더 철저한 영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라고 해석한다(Zahn, Boussett, Spitta, Johnson). 위의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신약 호크마 9권의 공동서신 개론, '공동서신의 이단사상' 참조). 두아디라 교인들은 죄가 풍성한 곳에 은혜가 더하다는 말씀을 이용하여 죄를 실제로 체험함으로 은혜를 더욱 값지게 느낄 수 있다는 이세벧의 유혹을 당하였다.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 '다른 짐'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이세벧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라는 25절의 명령을 제외한 다른 것으로 본다(Beckwith, Walvoord, Holtzmann). (2)혹자는 행15장에 나타난 음행이나 우상 숭배에 관한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이외의 것으로 보기도 한다(행15:28,29, Alford, Sweet,Vincent, Ladd).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 음행과 우상 숭배를 함으로 책망받았다(20절). 그러므로 '다른 짐'은 음행과 우상 숭배에 대한 교훈을 제외한 다른 교훈을 가리키는 듯하다.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 '너희에게 있는 것'은 두아디라 교인들이 처음에 가졌던 그리스도에 관한 참된 진리와 소망과 특권을 가리키며 (Ladd, Alford), '내가 올 때까지'라는 말은 성도들의 궁극적인 승리의 날인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의 날을 의미한다(Morris, Johnson). 한편 '굳게 잡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사테'(* )는 단순 과거 명령형으로 단번에 진리라 굳게 붙잡고 변치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두아디라 교인들은 이세벧의 유혹에 의해서 음행과 우상 숭배 그리고 혼합주의의 위험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이세벨의 유혹을 물리치고 오직 기독교의 진리를 굳게 변치 말 것을 권고하신다.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 '이기는 자'와 '지키는 그에게'라는 언급은 일곱 교회에 보내진 서신의 공통적인 형식으로 진리를 굳게 붙잡으며 그리스도의 권면을 듣고 순종하는 승리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또한 '끝까지'는 온전한 승리자가 되는 시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시기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25절).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연속되는 사단과의 투쟁이며 그 가운데 인내해야 함을 암시한다.
한편 '내 일'(* ,에르가무)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는 말씀과 연관된 것으로(23절) 이세벨주의자들의 교훈과 가르침에 정반대되며(22절) 이미 두아디라 교회가 시행하여 칭찬받는 것의 내용을 의미한다(19절).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첫번째 약속으로 시2:8,9을 반영한다. 시2편은 메시야의 주권 사상을 노래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것처럼 세상 끝에 그리스도인들도 그 권세에 참여함을 시사한다(1:6; 3:21; 9:10; 11:6; 20:6; 22:14; 마28:28).
=====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 본절은 시2:9의 인용으로 철저하게 정복하시는 메시야 그리스도의 권세의 실체를 나타낸다. '다스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마네이'(*)는 '양을 치다'라는 의미를 가진 '포이마이노'(* )의 미래 능동태로 뒤이어 언급되는 '깨뜨리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쉰트리베타이'(*,'산산 조각이 나다')와 대조를 이룬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재림시에 행하실 권세가 한편으로는 '양을 치듯'하며,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깨뜨리는 심판으로서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Charles, Mounce, Lenski). 즉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셔서 악에 대해 심판함과 동시에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 승리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임을 나타낸다. 한편 '받은 것이'의 헬라어 '에일레파'(* )는 완료형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만국을 다스리는 절대적 왕권을 부여받았음을 암시한다(시2:1-5; 빌2:9-11).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권능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기인한 것임을 자신이 소유한 권세의 신성(神性)을 강조하고 있다(눅22:29; 요17:18).
=====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승리자에게 주신 두번째약속이다. 여기서 '새벽 별'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이를 왕의 지배권을 상징한다고 보아(민24:17; 마2:2)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인내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영광스런 승리로 해석한다(Plumptre). (2)혹자는 영광의 상징이거나(Stuart), 구원의 상징으로 해석한다(Moffatt). (3)혹자는 22:16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자신으로 해석한다(눅23:43, Victor, Bleek, Charles, Johnson, Kiddle).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본문은 시2편을 반영하며, 그 의미 역시 시2편과 상통하기때문이다.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동행하심으로 어두움에 대한 온전한 승리를 획득할 것이다.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본문은 일곱 교회에 보내진 서신의 결론적 어구로서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권면과 인도에 귀기울여 청종해야 함을 강조하는 명령이다(7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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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4방위]].....성경의 관점에서 본 4방위(북쪽에 서 있는 상태에서 동-->남-->서로 시야를 옮기도록 말씀하심!! ::  = 북남동서(조선시대 <정철의 관동별곡>에서도 동일함) : 배산(북)/임수(남) - 좌입(동)/우궁(서)......먼저(최우선순위) 북쪽에 있는 떡상에서 말씀을 먹은 후 이제 남쪽의 순금 등대 빛으로 비춤 받아야 함......그후, 이제 동쪽<입구, 시작>에서 남쪽<재조명>을 거쳐 서쪽<마무리, 안식>에로 합당한 관찰과 성찰 통해 주님 목적과 일치되기를 추구할 것!!....**[창13:14-18]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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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1:24]*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24 Now I rejoice in my sufferings on your behalf. And with my own body I [i]supplement whatever is lacking [on our part] of Christ’s afflictions, on behalf of His body, which is the church.
==에베소==
요한 계시록은 예언의 책이기 때문에 이 책 가운데 있는 이름도 다 예언적인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시대 이후 제일 첫 단계의 교회 상태에 대한 예언이다. 주후 96년전까지는 사도 시대였다. 
96년 이후에 사도 시대는 완전히 끝나고 옳지 않은 많은 것들이 점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에베소’는 헬라어 원문으로 ‘사모/흠모할 만한 = 원하고 바라며 기대함<소망의 인내>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교회는 사도 시대 교회 이후에도 여전히 사모할 만한 교회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 ”(계 2:2상)라고 하셨다. 계시록 2, 3장에서 쓰는 ‘너’라는 글자는 다 단수이다. 
일곱 교회 가운데에서 다섯 교회는 책망을 받았고, 한 교회<서머나 교회>는 책망도 칭찬도 없었으며, 오직 한 교회만이<빌라델비아 교회> 칭찬을 받았다. 
에베소 교회는 책망을 받은 교회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에서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먼저 영적 참 실제<형편과 상태>를 알려주셨다. 
혹자는 “주님은 외교 수완을 쓰는 것처럼 책망하시기 전에 먼저 <귀가 간지러운>좋은 말을 하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책망을 받는 사람들에게 좋을 것이다.”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여기에서 교회의 영적 실제를 드러내 놓으시는 것이다. 외적인 상태가 어떻든지 영적인 참 실제는 <언제나> 존재한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람의 눈에는 보잘 것 없었지만 하나님은 발람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민 23:21)라고 하셨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보고 세밀히 살펴서 다 알고 계시지만, 잘못된 것만을 보고 계시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눈이 우리의 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다만 영적인 실제<참된 영적 실상>를 보시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쉽게 오늘날 교회의 황폐한 상태를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이 어떤 형제나 자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 앞에 참된 영적 의미에서 빛 비춤을 받는다면, 돌연히 이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어쩌면, 그들의 <겪으면서 아파하고 있는 바> 많은 약함과 실패가 다 <피상적이며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거짓된 것임을 볼 것이다. 
진실로, 영적인 실제만이 참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이것들은 다 거짓이다. 
한 어린아이가 길에 나가 흙을 잔뜩 묻혀 왔다고 하자. 그 아이가 집에 들어올 때 그 몸은 더럽지만 <주 안에서 참된 영적 실제를 안다면> 그 아이를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그의 온 몸은 더럽지만 그 더러움은 속에서부터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 더러움은 겉에 있는 것이므로 씻기만 하면 깨끗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배워야 할 것은 그 아이를 씻기기 전에도 좋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그 더러움은 거짓된 것이고 그 아이의 영적 실제는 좋은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겉보기에는>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큼 그렇게 영광스럽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참된 영적 의미에서 볼 때에는> 참으로 <여전히>영광스럽다.
만일 당신에게 영적인 눈이 있다면 교회가 아직 씻겨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좋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교회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교회는 영광스러운 것이며,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다(엡 5:25-27). 티가 없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주름 잡힌 것이 없다는 것은 늙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주님 앞에서 신선함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좋다고 하시는 것은 그의 영적인 실제가 좋다는 것이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계 2:2하). 
주님께서 사도 여부를 시험했다고 하신 것은 사도 시대 이후에도 교회 가운데 여전히 사도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만일 그 사도라는 말이 열두 사도만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여기에서 말하는 사도가 요한인지 <주께 나아가서 참되게 추구함으로써>물어봐야 할 것이다. 
만일 요한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사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열두 사도 중 다른 사도들은 이미 다 세상을 떠났고 남은 자는 요한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여부를 시험했다는 말은 열두 사도 이후에도 또 사도가 있었다는 말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개인마다 단독자로서 주께 나아가 직접 여쭙는 것이 관건이다!!...지금은 라오디게아 시대이기에, [자기 영혼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바 참된 영적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이 ‘처음’이라는 글자는 헬라어로는 ‘Proten’이다. 곧 시간적으로 처음일 뿐 아니라 성질상으로도 처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아버지가 탕자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힌 그 ‘제일’과 같은 글자이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하). 
계시록 2, 3장에서의 교회들은 예언의 교회일 뿐 아니라, 실제로도 당시의 소아시아 일대에 이 일곱 지방 교회가 있었다.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천 년 이상 에베소에 교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촛대가 옮겨졌으며 외형도 이미 사라졌다. 
현재 고린도, 로마 등지에는 다 교회가 있으나 오직 에베소에 만은 교회가 없다. 그가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촛대가 옮겨진 것이다.
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6절) 것이다. 
니골라당은 교회 역사 가운데에서 찾아볼 수 없다. 계시록이 예언의 책이기 때문에 우리는 단어의 뜻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 글자 속에 있는 뜻을 알아야 한다. 
‘니골라’는 헬라어에서 두 단어가 합하여 된 것이다. ‘니카오(Nikao)’는 ‘정복하다’, 혹은 ‘다른 사람들 위에’라는 뜻이요, ‘라오스(Laos)’는 ‘보통의 백성’, ‘서민’, 혹은 ‘평신도’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니골라’는 곧 ‘평민을 정복한다’, ‘평신도 위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니골라당은 보통의 믿는 이들보다 스스로를 더 높게 생각하여 <섬김이 아니라, 통제하고 삼김 받으려 하며, 좌지우지하며>군림하려 하는 무리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시야로 보자면, 주님이 위에 계시며, 보통의 믿는 이들은 낮은 데 있다. 
니골라당은 주님 아래 있으나 보통의 믿는 이들 위에 있어서 <그 무엇이나> 자기들을 거쳐야만 주께로 갈 수 있는 것처럼 권위 체계를 만든다. 
<인정 받을 수 있는 진정한 권위란 오직 사랑의 수고와 섬김, 이타적 희생에서만 인정됨을 명심하라>. 
주님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신다. <그 누구라도>평신도 위로 올라가려는 행위를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이러한 계급적인 행위는 주님이 미워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이런 행위만 있었을 뿐 그것이 가르침이나 교리가 되지는 않았었다.
신약 안에 있는 하나의 기본 원칙은 곧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다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다(5-6절). 
하나님이 처음에 정하신 것은 온 백성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일이 발생했다. 
모세는 돌판을 깨뜨리고 여호와의 편에 설 사람은 손을 들어 그들의 형제를 죽이라고 말했다. 그때 레위 자손들이 하나님 편에 섰다. 
결국 그 날 이스라엘 백성 중에 삼천 명이 죽인 바 되었다(출 32:25-29). 그 후로 오직 레위 지파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으며 제사장 나라는 제사장 지파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은 제사장이 될 수 없었고, 그들을 대신해 제사장이 될 레위인들을 의존해야 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의 제사장 계급은 중간 계급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착각과 오류에 빠져 있지 말라]
신약에서 베드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라고 말한다. 
참되게 주예수를 믿는이마다 보편적 제사장됨, 우리 온 교회가 다 제사장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처음의 뜻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피로 씻음을 받은 수가 곧 제사장의 수이다(계 1:5-6). 
제사장은 하나님의 일을 보는 사람이므로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보는 것이며 교회 안에 그 어떤 <고정된> 중간 계급이란 있을 수 없다. 
교회 안의 대제사장은 오직 주 예수뿐이다.
교회가 변질되기 전에는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자원함으로써>했다. 
그러나 사도 시대가 저물고, 그 이후부터 변하기 시작하여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사탄의 간교한 전략전술 중 하나이다!!>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점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로마 천주교가 시작될 때(버가모 교회 시대), 구원받는 사람들은 적었으나 세례받는 사람들이 많아 교회에 <참된 의미, 영적 의미에서 살펴 볼 때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해졌다. 
그 때 저들을 제대로 양육하고 돌봐야 할 <기능적 필요에서> 성직자 무리가 생겨났다. 영적인 지체가 없는데 그들이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그들 모두에게마다 회계장부를 내려놓고 설교할 성경책을 집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을 소도 있다. 
이리하여 한 무리의 사람들을 택하여 <주께서 낳으신 바 된 영적 지체들을 양육-훈련-계도-상담하는>영적인 일을 관리하게 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세상속으로 가서 세상 일 속에서 주를 섬김 통해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가는 일을 하도록 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직’ 계급이 발생되었지만, 처음의 순수한 의도와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우상 숭배적 세상 가치를, 시류를 수용하면서 순수함을 잃어 버리게 되어가고 또한 정치 권력과 야합하고 보신에 몰두하는, <교리화 되고>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서> 점차 정형화-세습화-특권계급화 되어버렸기에 하나님의 뜻을 위반한 것이다. 
주님 마음은 어떠하실까..하나님은 세상 일을 하는 모든 믿는 이들마다 또한 언제든지 주님 부르심에 답하여 <참되게 섬기는 자로, 기능적 측면에서, 주 앞에서 자라난 바>영적인 일을 돌볼 수 있게 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모델, 그 전형을 기억하라..예수님도 그렇게 부르심 받았고 제자들도 그랬었다. 
먼저 일상 가운데서 주를 의지하고 앙망함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섬김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셔서 훈련시키시고 <오직 감사로, 사랑으로> 지체들 섬김 안으로 이끄셨음을 기억하자.
로마 가톨릭 교리와 제도에서는, 성례전, 곧 떡을 나누고 안수하고 세례 주는 일들을 다 신부가 한다. 심지어 결혼식이나 장례식의 주관까지도 성직자들만이 하도록 되어 있다. 
개신교에서는 그 역할을 맡는 이들은 목사이다. 스스로 돌이켜 보며 판단컨데, 참되게 믿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주께 묻는 것을 생략한 채, 무심코 병에는 의사를, 소송에는 변호사를, 영적인 일에는 목사를 부르며,  자신은 전적으로 세상 일만 하는 것이 어느덧 습관화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도교(道敎)에는 도사(道師)가 있어 신도를 대신해 경문(經文)을 읽고, 유대교에는 제사장이 있어 하나님의 일을 하지만 교회에는 이러한 <고정된 의미의>중간 계급이 있을 수 없고, 그리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 우리 모두가 다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십여 년 동안 계속 부르짖은 것은 ‘보편적인 제사장 직분’이다. 
아벨도 능히 제사를 드렸고 노아도 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능히 했다. 그러나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일이 생긴 후로 자신이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구주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부활-승천, 성령 내주-동행하심과 권능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사건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직접 하나님 앞에 나와 교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일을 자원함으로 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에는 <여전히> 중간 계급이 있다. 누가 그러한 교파의 집회에 자유롭게 일어나 간증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교회 가운데 니골라당이 <여전히>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기독교는 어느덧 이미 유대교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간 계급을 거절하는 것이 곧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피로 씻음을 받았다면 당신은 직접 영적인 일에 참여할 수 있다. 교회는 이 근거 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다만, 니골라 당의 교리와 행위를 따르는> 유대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투는 것은 종파의 문제가 아니요 피의 권리에 대한 문제이다. 
오늘 이 세상에서 교회는 세 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그 한 종류는 세계교 곧 로마 천주교요, 또 한 종류는 국교 곧 루터회, 성공회 등이다. 나머지 한 종류는 독립교 곧 감리교, 장로교 등이다. 로마 천주교 안에는 신부 제도가 있고, 성공회 안에는 성직 제도가 있으며, 독립교 안에는 목사 제도가 있다. 이들은 다 중간 계급으로 영적인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기 원하시는 것은 중간 계급 없이 순수-완전한 복음을 따라 <완전히>행함이 있을 수 있는 교회이다. 
만일 완전한 복음을 따르지 않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상). 
주님께서는 일곱 교회에 대하여 동일하게 말씀을 하셨다. 에베소 교회만 들으라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교회가 다 들으라는 것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하).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처음의 의도는 곧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직접 그의 앞에 와서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문제는 생명나무가 무엇이냐에 있지 않고 당신이 기꺼이 하나님의 처음 의도 즉,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생명나무 실과를 먹기 원하느냐에 있다. 
오직 이기는 자들만이 먹을 수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와 요구로 돌아오는 자는 다 이기는 자이다.(교회의 정통,제 2장 에베소 교회)
==서머나==
서머나교회는 에베소 교회 북쪽으로 약 20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고 에게해를 향하여 세워진 항구도시였습니다. 
소아시아에서는 에베소, 밀레도, 그리고 서머나가 3대 항구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지진이 잘 일어나서 그로인해 도시가 잿더미가 된 적이 여러 번 있었고 다른 나라들이 소아시아를 침공하기 위한 발판으로 이곳을 먼저 침공하여 전술, 전략적 요새를 삼았기 때문에 상당히 환란이 많았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황제가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부터 많은 돈을 들여 서머나 항구도시를 튼튼한 도시로 재건했는데 그후 그곳 사람들은 황제를 신성시하는 폐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서머나교회로 하여금 박해를 당하게 하는 올무가 되고 훗날 순교자가 생기게 되는 문제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머나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도 큰 칭찬을 받은 교회 중 하나였고 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정절을 지킴으로 그들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죽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하였으나 영적으로는 부유한 교회였습니다. 
서머나라는 이름의 뜻은 ‘몰약 성’입니다. 관목이라는 나무를 여러 조각을 내어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찧어서 나무의 수액만 뽑아냅니다. 그리고 그 수액에서 추출해 낸 것이 몰약입니다. 이것은 방부처리를 하는 용도나 향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몰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과 수모를 겪으시며 죽임을 당하시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머나교회는 ‘몰약 성’이란 이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본문 8절에서는 서머나교회를 두고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죽임당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서머나교회에  예수님이 서머나교회를 향해 자신을 이처럼 표현하신 것은 서머나교회에 순교자가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내포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신 말씀은 육신적인 기준에서 그 당시 서머나교회 교인들이 당하고 있는 상황이 상당히 가난했고 환란을 많이 당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보시는 기준은 영적 소망의 믿음이기 때문에 서머나교회는 영적으로 믿음과 은혜가 충만해서 상당히 부요한 교회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예루살렘 함락 후>여러 나라에서 <서머나에> 모여 든 <디아스포라>들이 자신들은 할례 받은 자들로 유대인이라 자칭하며 유대교를 따르라고 강요하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며 교회를 훼방하고 대적, 핍박하는 역할을 했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유대인도 아니고 사단의 모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이 고난을 통하여 정해진 기간 동안 환란을 겪고 고문과 죽임을 당할 것이지만 하나님이 서머나 교회에 환란을 붙이심으로 진짜로 믿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짓는 일을 하시는 것이기에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십 일 동안 환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10 일이라는 숫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기간이라는 의미이며 또 한 가지는 다소 짧은 기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어려움 가운데 있게 되는데 정말 견디기 힘들어서 하나님 앞에 빨리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그 환란을 당하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영적 성과를 기대하시는 확실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기간이 지나기 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대에 바로 설 수 있는 믿음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빨리 그 환란이 지나가게 할 수 있는 지혜의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하십니다. 
죽음으로 온전한 믿음과 충성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잘 믿었던 믿음으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또한 희생양으로 죽임 당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같이 순교하더라도 반드시 예수님을 살리신 것 같이 살리시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믿음의 정절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무한한 능력을 온전히 믿고 목숨까지 완전히 의탁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땐 오히려 죽음이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11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했는데 이것은 서머나교회에만 일러주신 말씀이 아니고 세상 모든 교회에 일러주시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죄악과 사탄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첫째 사망은 육신이 죽어서 영과 육이 분리되는 것이며, 둘째 사망은 요한계시록 20:11~15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구원 얻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다 부활하는데 그 부활은 심판받고 지옥가기 위한 부활입니다. 이것을 심판의 부활이라고 하는데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그 행위록에 따라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는데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8에도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했습니다. 즉 본문 11절에서 말씀하시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지옥가는 일을 면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서머나교회 교회학교에 치아파닉이라는 12살된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당시는 황제숭배 사상으로 인해 황제를 신성시하여 황제상을 만들고 제단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제단에 절하게 만들었는데 이 아이는 절하지 않고 그냥 서서 기도만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절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며 내가 죽을지언정 이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나를 나게 하셨고 오늘까지 나를 살리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귀한 분이고 그분을 섬겨야 할 입장입니다”며 당당히 말했고 이로 인해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이 아이는 “수령님, 제가 사자 굴에 들어가서 이 육신이 찢어진다 하더라도 내 영혼이 하나님 품에 안길 것이기 때문에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은 수령님이 이처럼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해치는 일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인데 그 엄청난 형벌을 어찌 감당하려고 이러는지 그것이 걱정입니다”고 말하며 사자 굴로 들어갔습니다.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그 교회 지도자인 폴리갑을 잡아오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결국엔 A.D 155년에 화형을 당함으로 순교의 사명을 다하게 됩니다.
A.D 105년경 서머나교회의 감독으로 있었던 폴리갑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 속에서도 두려워 할 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도 순교적 각오로 구령성과를 위한 사명에 자기 생애를 바친 사람입니다. 
어찌보면 이런 훌륭한 목사님을 두고 있었던 교회였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책망 받을 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폴리갑의 믿음을 그대로 전수받아 당당한 믿음으로 순교했던 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이 죄악세상을 이겨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생명의 면류관을 보장받고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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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5:1-11(3-4)]*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1.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at is, acquitted of sin, declared blameless before God] by faith, [let us grasp the fact that] we have peace with God [and the joy of reconciliation with Him]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2. Through Him we also have access by faith into this [remarkable state of] grace in which we [firmly and safely and securely] stand. Let us rejoice in our [a]hope and the confident assurance of [experiencing and enjoying] the glory of [our great] God [the manifestation of His excellence and power]. *3. And not only this, but [with joy] let us exult in our sufferings and rejoice in our hardships, knowing that hardship (distress, pressure, trouble) produces patient endurance; *4. and endurance, proven character (spiritual maturity); and proven character, hope and confident assurance [of eternal salvation]. *5. Such hope [in God’s promises] never disappoints us, because God’s love has been abundantly poured out within our hearts through the Holy Spirit who was given to us. *6. While we were still helpless [powerless to provide for our salvation], at the right time Christ died [as a substitute] for the ungodly. *7. Now it is an extraordinary thing for one to willingly give his life even for an upright man, though perhaps for a good man [one who is noble and selfless and worthy] someone might even dare to die. *8. But God clearly shows and proves His own love for us, by the fact that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9. Therefore, since we have now been justified [declared free of the guilt of sin] by His blood, [how much more certain is it that] we will be saved from the [b]wrath of God through Him. *10. For if while we were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God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it is much more certain, having been reconciled, that we will be saved [from the consequences of sin] by His life [that is, we will be saved because Christ lives today]. *11. Not only that, but we also rejoice in God [rejoicing in His love and perfection]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we have now received and enjoy our reconciliation [with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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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31-39]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31 What then shall we say to all these things? If God is for us, who can be [successful] against us?  *32 He who did not spare [even]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 how will He not also, along with Him, graciously give us all things?  *33 Who will bring any charge against God’s elect (His chosen ones)? It is God who justifies us [declaring us blameless and putting us in a right relationship with Himself]. 
*34 Who is the one who condemns us? Christ Jesus is the One who died [to pay our penalty], and more than that, who was raised [from the dead], and who is at the right hand of God interceding [with the Father] for us.  *35 Who shall ever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d]Christ? Will tribulation, or distress,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danger, or sword?  *36 Just as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For Your sake we are put to death all day long;  We are regarded as sheep for the slaughter.” *37 Yet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and gain an overwhelming victory through Him who loved us [so much that He died for us].  *38 For I am convinced [and continue to be convinced—beyond any doubt]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nor things present and threatening, nor things to come, nor powers,  *39 nor height, nor depth, nor any other created thing, wi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unlimited] love of God, which is in Christ Jesus our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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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6:24-27]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눅9:23-26] *2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버가모===
===세상과 결혼한 교회
....첫 번째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회개하여 첫째가는 사랑을 회복하라고 충고하신다. 
우리는 그분의 충고가 받아들여졌음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두 번째 교회인 서머나 교회는 주님을 진실로 사랑했고, 박해를 받았으며, 고난받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사실에 의하면 로마 제국이 교회를 손상시키려고 진력했을 때 교회는 수많은 고난을 받았다. 마침내 원수 사탄은 박해가 그렇게 효과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간교한 자인 사탄은 그의 전략을 교회를 박해하는 것에서 환영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4세기 초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기독교는 계속 일종의 로마 국교회가 되었다. 
이렇게 로마 제국이 교회를 환영한 것 이 교회를 해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교회가 세상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교회는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나왔으며,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분별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교회를 환영함으로써 교회는 세상으로 되돌아갔고, 하나님 보시기에 심지어 세상과 결혼했다. 하나님은 이런 유형의 세상적인 연합을 영적인 간음으로 여기신다.
.... 이런 결혼 때문에 교회는 순수성을 잃고 세상적이 되었다. 교회가 세상과의 연합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많은 세상적인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세상적인 것들은 우상숭배와 관계있는데, 이는 세상적인 것은 언제나 우상숭배와 결합되기 때문이다. 
버가모 교회는 먼저 세상적이 되었고 그런 다음에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다. 사탄은 세상과 우상들로 교회를 적셨다. 그 결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바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하나님은 세상 밖에 있고 세상과는 아무 상관없는 교회를 갈망 하신다. 교회는 반드시 금등잔대, 곧 삼일 하나님의 순수한 표현이어야 하고 또 세상과는 아무 관련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교회를 세상적인 종교로 만든 이후로 교회는 완전히 더럽고 세상적이며 우상숭배하는 곳이 되었다.
=== 사탄이 거하는 곳
.... 요한계시록 2장 13절에서 주님은 버가모 교회에 대해 “나는 네가 거하는 곳을 안다. 그곳은 사탄 의 권좌가 있는 곳이다.”라고 하셨다. 
사탄의 거처는 세상이다. 교회가 세상과의 연합 안으로 들어갔고 세속적으로 되었기 때문에, 이제 교회는 사탄이 거하는 곳인 세상 안에 거한다.
===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
.... 또한 버가모 교회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 거한다. 이것 역시 세상을 언급한다. 세상은 사탄의 거처일 뿐 아니라 그가 다스리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제 교회는 세상과 하나일 뿐 아니라 심지어 사탄과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너무 끔찍하다! 
오늘날 세상적인 기독교는 여전히 세상과의 연합 안에 있으며, 여전히 사탄의 사상들과 관념들과 이론들과 실행들로 침투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의 심각성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 원수 사탄은 간교하다. 그가 환영하는 것은 박해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사탄은 먼저 박해를 일으키고, 그다음 이것이 실패하면 그의 책략을 바꾸어서 우리를 환영한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과거에 본 적이 있다. 먼저 종교는 우리를 박해한다. 그런 다음 전략을 바꾸어 우리를 종교와의 타협 속으로 유혹하려고 애쓴다. 이것이 사탄의 교활함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에 의해 올무에 걸린다면, 우리는 결국 세상적이 되어 사탄과 연합할 뿐 아니라 그와 하나 되기까지 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이른바 기독교의 참 상황을 보고, 또 교회가 어디에 있어야 하며 어떠해야 하는지를 볼 수 있도록 일곱 서신을 요한계시록에 포함시키셨다. 
교회는 세상 밖의 순수한 금등잔대여야 한다. 교회는 반드시 세상과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하며, 사탄의 악하고 간교한 침투에 일보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항상 이것에 대항하여 서 있어야 한다. 
버가모라는 단어의 두 가지 의미인 ‘결혼’과 ‘견고한 탑’은 마태복음에 있는 두 비유인 큰 나무의 비유(마 13:31-32)와 누룩의 비유(마 13:33)와 부합된다. 
큰 나무의 비유에서는 아주 작은 겨자씨가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이것은 의심할 것 없이 거대한 기독교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확실히 커다란 나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룩의 비유에서 우리는 고운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는 한 여자를 본다. 누룩은 온갖 죄 있고 세상적이며 사탄적이고 마귀적인 것들을 상징한다. 이 모든 사악한 것들이 고운 가루 속에 넣어졌다. 
성경에서 고운 가루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양식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소제에서 사용된다. 큰 나무는 높은 탑과 일치되며 누룩을 가진 여자는 세상과 결혼 한 변절한 교회와 일치된다. 
이 문제에 있어서 그 성경적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독교는 소름끼치는 혼합물을 산출하려고 세상적이고 마귀적이고 사탄적이고 악마적인 것들을 그리스도에 속한 좋은 것들에 혼합시키는 큰 음녀 곧 악한 여자이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 큰 나무를 포기하고, 이 견고한 탑에서 빠져 나오며, 이 악한 제도 밖으로 나와 하나님께로 분별되어서, 그분의 원래의 의도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분의 의도는 바로 교회가 세상적인 것이나 우상숭배나 사탄의 침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순수한 금등잔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탄이 거하는 곳, 즉 사탄이 그의 권좌에 앉아 있는 곳에 있지 않다. 우리는 그곳에 있지 않다. 교회 안에는 사탄을 위한 여지가 없다. 여기에는 사탄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처음 세 서신에서 우리는 세 교회들, 곧 바람직한 교회, 박해받는 교회, 세상적인 교회를 본다. 
우리는 물론 바람직한 교회와 박해받는 교회이기를 원해야 하지만, 세상적인 교회가 되는 것은 반드시 거절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적인 어떤 것도 거부해야 한다. 조심하라! 원수가 당신을 박해한 다음에는 그의 전략을 바꿀 것이다. 
박해 대신에 환영이 있을 것이다. 이런 환영을 좋은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 오히려 당신은 전갈에게 쏘이는 것보다 환영받는 것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 
박해와 반대와 공격을 당하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리에게 따뜻한 환영의 손길을 내밀 때 그것이 가장 위험한 때이다. 
당신이 공격당하고 박해를 겪고 있을 때 용기를 잃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올바른 궤도 위에 있고 또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데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강한 표시이다. 
그러나 따뜻한 환영은 주의하라. 따뜻한 환영을 받는 것보다 박해를 당하는 편이 훨씬 낫다. 
버가모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는 우리가 어떤 길이나 어떤 점이나 어떤 면에서도 세상과 연합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세상과 전혀 상관이 없어야 한다. 지난 오십여 년 동안 따뜻한 환영의 손길이 우리에게 여러 번 내밀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매번 거절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 결과 우리는 여러 해에 걸쳐서 박해받음으로써 보존되어 왔다. 
우리는 결코 좋은 명성을 얻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만일 당신이 사탄과의 연합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는 당신에게 좋은 명성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가 끊임없이 전쟁에 참여하고 계속적으로 공격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쟁은 내내 벌어지고 있다. 주님의 회복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일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 이 증거는 곧 전쟁이다.
===안디바의 간증
.... 이 증거는 안디바에게 있었다. 요한계시록 2장 13절에서 주님은 “너는 나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 심지어 나의 신실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음을 당하던 때에도, 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신다. 
헬라어에서 안디바란 이름은 ‘모든 것을 반대함’을 뜻한다. 주님의 이 신실한 증인은 세상적인 교회가 끌어들이고 실행했던 모든 것을 반대하여 섰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순교자가 되었다. 
헬라어로 ‘순교자’라는 말은 ‘증인’과 같은 단어이다. 반대 증인인 안디바는 예수님의 증거에서 벗어난 어느 것에도 반대하는 반대 증거를 지녔다. 
그의 생존 시에 버가모 교회가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붙들고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것은 이 반대 증거로 말미암은 것임에 틀림없다. 
안디바는 세상적인 교회에 반대하여 싸우는 데 앞장섰으며 오늘날 우리가 세상적인 교회를 반대하여 싸울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세상적인 교회가 어떠하든, 무엇을 가졌든, 무엇을 행하든, 안디바는 그것에 반대하여 싸웠다.
 ===주님의 이름을 굳게 붙잡음
.... 요한계시록 2장 13절에서 주님은 “너는 나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이름은 그분의 인격을 나타내며 그 인격은 그 이름의 실재이다. 버가모 교회는 주님의 이름 곧 그분의 인격의 실재를 여전히 굳게 붙잡고 있었다. 
세상적인 교회의 빗나가는 경향은 주님의 인격의 실재를 포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것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데, 이것은 교회가 주님의 이름 곧 주님의 인격의 실재를 영원토록 굳게 붙들기 위함이다.
===주님의 믿음을 부인하지 않음
.... 또한 주님은 “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믿어야 하는 그분의 인격과 일에 속한 모든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우리 속에서 믿는 주관적인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믿어야 할 것들을 가리키는 객관적인 믿음이다. 
교회가 세상과의 연합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무시하고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죽기까지 신실함
.... 안디바는 그의 반대 증거에 있어서 신실했으며, 심지어 죽기까지 그러했다. 안디바는 교회가 세상적인 것에 반대하는 그의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하여 순교자가 되었다. 
세상적인 교회에 반대하여 증거하기 위해서는 순교의 영이 필요하다. 우리는 교회가 세상적인 것을 반대함으로써 죽기까지 주님의 증거에 신실해야 한다.(요한계시록 라이프 스타디, 12장, 152-156쪽)
===감추어진 만나는 하나님의 몫임
.... 감추어진 만나이신 예수님을 먹고 누리는 것이 교회생활 안의 온갖 하락을 이기는 길임
.... 교회생활 안에서 온갖 하락을 이기는 길은 내적인 생명과 생명 공급을 위해 감추어진 만나, 개인적인 만나이신 예수님을 먹고 누리는 것이다. 
....언약궤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 곧 우리의 생명 공급을 위한 특별한 몫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으로, 하락한 교회의 세상적인 것들을 이길 수 있다. 
우리는 주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하는 모든 사람들과 빗나가게 하는 것들을 떠나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개인적인 시간에서 감추어진 방식으로 주님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공개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지만, 여전히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서 분별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말씀 안에서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을 누릴 수 있는 개인적인 장소에 있을 필요가 있다.
많은 믿는 이들이 공개된 그리스도만을 누릴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개인적인,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누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만 집회에서 공개된 방식으로만 그리스도를 체험해서는 안 되며, 지성소 안에서 감추어진 방식으로, 심지어 언약궤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증거이신 그리스도 자신 안에서 그분을 체험해야 한다.
....  오늘날 언약궤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 안에 계시며, 우리의 영은 지성소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는 지성소를 가지고, 지성소 안에서 우리는 언약궤이신 그리스도를 가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금항아리 곧 신성한 본성을 갖는다. 
오늘날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은 우리의 영 안에 있다. 비록 우리에게 금항아리가 있을지라도,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자주 우리의 영으로부터 빗나간다는 것이다. 
영으로부터 나오기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싸우거나 다툴 필요가 없다. 형제들과 농담만 해도 우리는 영 밖에 있게 된다. 또한 종교적인 것은 영 안에 있는 것과 크게 다르다. 
종교적일 때 우리는 광야로 이끌리게 된다. 
금항아리는 언약궤 안에 있고, 언약궤는 지성소 안에 있으며, 지성소는 우리의 영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의 영 안에서 그리스도를 접촉한다면, 우리는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게 될 것이다. 
공개된 만나는 하나님의 거처 밖에 있으며, 광야에서 헤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었다. 
반면에 감추어진 만나는 하나님의 거처의 가장 깊은 곳에 머물며 더 이상 혼 안에서 방황하지 않고 영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사람을 위해 있다.
===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을 직접 섬김
....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거리가 있다면, 우리는 공개된 만나는 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감추어진 만나는 먹을 수 없다. 
우리가 감추어진 만나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간격이 없어야 한다. 
지성소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무언가를 누리는데, 그분의 임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결코 맛볼 수 없다. 
구약의 성막 주변의 봉사를 생각해 보라. 레위인들은 바깥뜰에서 섬겼고, 제사장들은 바깥뜰과 성소에서 섬겼다. 성소에서 제사장들은 임재의 떡을 진설하고, 등잔을 정돈하며, 향을 피웠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할 일이 거의 없었다. 바로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직접 하나님을 섬겼다. 바로 지성소에서 섬기는 사람은 감추어진 만나를 누린다. 
감추어진 만나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간격이 없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누리는 그리스도의 몫이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봉사하는 것이 더 적어진다. 하나님께 더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더 많은 봉사를 드린다. 
결국 지성소 안에 있는 신성한 영광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때 모든 봉사가 멈춘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임재만을 갖고, 감추어진 그리스도, 감추어진 만나를 누린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주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갖고 그분의 마음과 의도를 알게 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그분을, 그분의 의도를, 그분께서 우리가 하기 원하시는 모든 일들을 위임으로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식으로 우리는 그분의 마음과 의도를 아는 사람이 된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이 될 때 그분의 위임이 우리의 것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임을 갖는다.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간격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 밖에 사는 사람들은 감추어진 만나를 누릴 수 없다. 지성소 안에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사는 사람들만이 감추어진 만나를 누릴 수 있다. 
주님 편에 서서 그분의 증거를 지키는 사람들은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생명 공급으로 얻을 것이지만, 그 공급의 맛은 감추어진 만나일 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그 맛을 모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이기는 이들이 체험하고 누린 그리스도를 만지거나 맛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명예나 지위를 추구한다면, 이기는 이들의 누림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감추어진 만나를 맛보거나 만지거나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적인 명예를 갈망하고 세상과 결혼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누릴 수 없다.
.... 우리가 그리스도와 친밀할 때 어떤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과 너무나 가깝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신성한 본성을 접촉하고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면서, 세상과 모든 상황과 우리의 자아와 심지어 우리의 타고난 존재까지도 초월하게 된다.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 모든 사람은 대제사장과 함께 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지성소 안에 계시며, 우리 또한 거기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지성소 안에 있는 제사장들이 되어야 하며, 지성소에는 금항아리가 있다. 우리가 이 장소에 있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상과 온갖 종류의 상황을 초월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 상하는 것을 초월해야 한다. 
우리가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즐거운 상황이든 슬픈 상황이든, 모든 상황을 초월할 때, 우 리는 우리의 영 안에 있으면서 언약궤와 금항아리를 접촉하게 된다. 
우리가 감추어진 만나에 참여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지속적으로 우리의 영 안에 있으면서 신성한 본성을 접촉해야 한다. 감추어진 만나를 먹는 것은 절대적으로 세상 밖에 있는 일이다. 
세상적인 교회가 하락하여 세상과 연합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집트에서 광야로 올라가고, 광야에서 좋은 땅으로 올라가며, 좋은 땅에서 성막으로, 바깥뜰에서 성소로, 성소에서 지성소로 올라가야 한다. 
지성소 안에 들어간 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언약궤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며, 금항아리를 만지고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교회가 더욱더 세상적이 될수록, 우리는 더욱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감추어진 만나를 먹어야 한다. 우리가 감추어진 만나를 누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의 깊은 친밀함 안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 안에 있어야 하는데, 이 신성한 본성 안에는 세상적이거나 우리를 빗나가게 하는 것이 전혀 없으며,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교통이 있다. 
감추어진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체험을 가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주님, 저는 세상을 주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 당신만을 주의하며, 어떤 인간관계나 친구 관계도 주의하지 않습니다. 주님, 저는 모든 관계를 버리기 원합니다. 주님, 이제 저는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제 깊은 속에서부터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를 방해하는 것이 조금도 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께 말할 때, 우리는 금항아리 안에, 곧 신성한 본성의 친밀함 안에 있으면서 감추어지신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기념이 됨
.... 금항아리 안에 보존된 만나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거처였던 성막의 중심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고 소화하고 동화시킨 그리스도는 오늘날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의 일부인 우리 존재의 중심이다(딤후 4:22, 엡 2:22). 
우리가 공개된 만나로서 먹은 그리스도는 우리 존재 안으로 소화되고 동화됨으로써 감추어진 만나가 된다. 오늘날 하나님의 건축물의 초점은 그분의 백성이 먹고 소화하고 동화시킨 그리스도이다.
.... 공개된 만나, 곧 매일 아침 지면에 내려온 만나는 공개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누림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항아리 속에 두어진 한 오멜의 만나(출 16:33)는 감추어져 있었고, 공개적으로 온 회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여호와 앞에서 항아리 안에 두어진 만나의 양은 한 오멜이었다.
 이 양은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거두어 먹은 만나의 양과 같았다(출 16:16-18). 영적인 체험에서 이것은 우리가 먹은 그리스도의 양이 우리가 간직할 수 있는 양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매일 그리스도께 참여할 때 우리는 또한 그분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만큼의 그리스도를 간직할 수 있느냐는 얼마만큼의 그리스도를 먹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많이 먹을수록, 우리는 그분을 더 많이 간직한다. 
우리가 먹은 그리스도가 우리가 간직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어떤 방면을 먹든지 그것은 대대로 기념이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먹고 누린 그리스도는 영원한 기념이 될 것이 다. 왜냐하면 그러한 그리스도는 우리의 조성이 되어 우리를 건축되게 하고, 심지어 이 우주에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존재의 어느 것도, 우리의 소유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 어느 것도 기념이 될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 오직 우리의 조성이 되신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기념이 될 가치가 있으시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바뀔 수 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영원토록 남을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 안에 있을 때 기념할 만한 그리스도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오늘날 그리스도를 많이 먹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 안에서 회상할 그리스도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주님께 올바르고 지속적으로 그분을 먹는다면, 우리는 영원 안에서 그분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그리스도를 먹고 누렸던 놀라운 시간을 회상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우리가 어떠한 그리스도를 누렸든지, 그것은 전부 영원한 기념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기념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 안에 간직될 것이다. 이러한 감추어진 만나는 하나님의 거처의 건축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공급이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이다.
=== 감추어진 만나를 먹음으로 성막 안으로 합병됨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께는 경륜이 있으시고, 그분의 경륜의 의도는 우주적인 합병체를 갖는 것이다. ‘합병체’라는 단어는 서로 안에 거하는, 곧 상호 내재하는 인격들을 가리킨다.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하나님은 상호 내재하시고 하나로 함께 일하시기 때문에 합병체이시다. 삼일성의 셋은 존재에 의해서, 행함에 의해서 합병체가 되신다(요 14:10-11). 
영원 과거에 삼일 하나님은 회의를 여시어(행 2:23), 삼일 하나님의 둘째 분이 사람이 되시고, 인생과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치셔서, 구속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모든 믿는 이들을 하나님의 합병체 안으로 합병되게 하여, 확대된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가 되게 하실 것을 결정하셨다.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구속되고 거듭난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확대된, 우주적인, 신성하고 인간적인 합병체가 되었고(요 14:20), 이것은 하나님의 성막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계 21:2-3). 구약에서 성막은 우주적인 합병체의 표징이며, 감추어진 만나를 먹는 것은 성막 안으로 합병되는 것이다.
....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는 성막의 중심이시다. 감추어진 만나는 금항아리 안에 있다. 금항아리는 금이 입혀진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진 궤 안에 있고, 이 궤는 지성소 안에 있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감추어진 만나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금항아리 안에 있다. 금항아리 안에 있는 감추어진 만나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안에 계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궤는 지성소 안에 있고, 지성소는 우리의 영이다. 오늘날 성령께서 거하시는 우리의 영이 지성소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께서 금항아리이신 아버지 하나님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궤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주하시는 영이신 이 그리스도는 지성소의 실재인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사신다. 이것은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며, 그 영이신 아들은 지성소의 실재이심을 의미한다. 
이것은 요한복음 14장 16절부터 20절까지에 나오는 네 번의 ‘안에’와 일치한다. 20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은 “실재의 영께서 …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우리는 아들 안에 있으며, 아들은 우리 안에 계시고, 실재의 영은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이것이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과 거듭난 믿는 이들로 된 합병체이다.
.... 성막 안으로 합병되는 길은 감추어진 만나를 먹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먹으면 먹을수록 우 리는 우주적인 합병체이신 삼일 하나님 안으로 더욱더 합병된다. 감추어진 만나를 먹음으로써 우리는 성막 안으로 합병된다. 
구약에서 성막은 새 예루살렘의 예표였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막이라고 불린다. 하나님의 성막인 새 예루살렘은 우주적인 합병체이다. 
이 우주적인 합병체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이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막이고, 이 성막의 중심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이다. 
새 예루살렘 안에 있는 길은 그리스도를 먹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먹을수록 우리는 이 우주적인 합병체 안으로 더욱더 합병된다.
.... 세상은 불 못에서 멸망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세상의 일부인지 하나님의 성막, 우주적인 합병체인 새 예루살렘의 일부인지 질문해 보아야 한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에 있는 이기는 이들에게 그들이 그분을 먹으면 우주적인 합병체, 완결된 새 예루살렘 안으로 합병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감추어진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써 새 예루살렘 안으로 합병되어야 한다. 
이 유일한 합병체 안으로 합병되는 길은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먹을 때, 우리는 이 합병체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며, 이 합병체는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의 단체적인 몸이고,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 (신약의 결론, 영문판, 410장, 4179-4182, 4186-4187쪽)
===두아디라===
...두아디라 교회에 ==이세벨의 음행에서 돌아서라
1. 두아디라 (Θυάτειρα, 계속적인 제사, 회생)교회 배경
1) 두아디라(Θυάτιρα, Θυάτειρα) 이름의 유래
두아디라의 헬라어 뒤아티라는 '뒤오스(Θυος 제사)와 아(α 非) 그리고 테이레스(τειρες약화)의 합성명사로써 '우상에게 제사드리는 일에 약해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뒤아티라는 본래 펠로피아(Pelopia)와 유히피아(Euhippia)로 알려져 있었는데 알렉산더(Alexander)대왕의 신하 중 한 사람이었던 셀류커스 니코토(Secleucus Nicotor) 1세에 의하여 도시가 건축된 것으로 그의 딸 이름을 따서 뒤아티라(Thyatira)로 명명된 것으로 전해진다.
버가모와 사데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두아디라는 B.C. 7세기 경 리디아(Lydia)인들이 거주하며 펠로피아(pelppia)라 불리웠으나 후에 티아티라고 개명되었다. 
이는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더의  장군인 셀레우코스(Seleukos)가 이곳을 점령하고 군대를 주준시킨 뒤 이곳에서 출생한 자신의 딸의 이름을  따서 티아티라(티아의 동네)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도시를 번성시키기 위하여 유대인들을 이주시킴으로 번성한 티아티라는  리디아 왕국 때부터 페르가몬 비잔틴 사르디스 스미르나의 교차점이며 상업도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 때 로마와 동맹 관계에 있던 버가모 왕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로마의 속령이 되었다. 
2) 두아디라는 황제숭배와 잡신 숭배의 혼합지대였다.
두아디라(Thyatira)의 현재 이름은 ‘아키사르(Akhisar)이다. 
두아디라에서 주로 숭배했던 이방신은 태양신이며 동시에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로이다. 아폴로가 황제의 수호신이었기 때문에 황제숭배의 존재를 추측할 수 있다(Osbome, 152). 
각 지역에서의 신들에 대한 숭배는 황제숭배와 혼합되어 시행되었고 특별히 아폴로는 로마 제국의 동전뿐만 아니라 두아디라 지역에서 통용되었던 동전에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두아디라 지역에서 아폴로를 로마 제국의 황제와 함께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의 단면을 보여준다(Ramsay, 318-22).
두아디라 교회는 루디아가 빌립보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고향에 세운 교회다. 
두아디라는 버가모에서 남동쪽으로 약 8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두아디라는 주변에 흐르는 루크스(Lycus강을 끼고 있어서 비옥하여 목축업이 성행했다.
그리고 기능공 숙련공으로 구리세공, 자주색 옷감 염색이 발달했다. 군사적 요충지로 외세의 많은 침략 때문에 기원전 1세기까지 지속적으로 평화를 맛볼 수 없었다. 
그러나 로마의 세계 평화 정책에 의해 그러한 상황이 평정되었고 상업과 제조업을 중개하는 무역의 통로가 되었다.
3) 두아디라는 상업도시였다.
두아디라는  알렉산더 대왕의 대장 중  한 사람으로  후에 페르가몬의 지배자가 되는 셀레우코스 니카도르(Selucus Nicator)가 B.C  3세기 경 도시를 재 건립할 때까지는 대수롭지 않은 곳이었다. 
이 도시는 군사도시로 성채도시였다. 평지에 있어 방어하기에 어려운 도시였지만 지정학적 위치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거점 도시였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건립할 때의 군사적 목적은 서서히 잊혀져 갔으며 도시는 상업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졌다.
두아디라(Thyatira)에 유대인들을 이주시켰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상술과 지리적 특성은 자연히 상업도시로 번성케 했으며, 이때 이미 상인조합(길드/Guild)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애 많은 장인길드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양복길드 목수길드 도공길드 제빵기술자 등등 모든 분양의 숙련된 노동자들은 길드의 회원들이었다. 
이런 상업적인 길드들은 이교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은 아폴로(Apollo) 신이었다. 지금도 도시 한 켠에 아폴로 신전 유적지가 있다.
당시 이 도시에는 트림나스라는 무당과 무녀들이 많아 기독교인들을 유혹했고 또한 시장조합 Guild를 중심으로 우상숭배와 음란한 제사가 행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 2장 18 29에서 예수님은 이단의 득세와 교인들의 변절을 질책하셨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예수님을 지칭하는 빛난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에서 빛난 주석은 두아디라가  주석 산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4) 두아디라는 루디아의 고향이다.
사도행전 16장 11절  15절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을 할 때 빌립보에서 두아디라에서 온 루디아를 만난다. 
예로부터 자색 옷감 생산지로 유명했던 티아 티라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마케도니아의 빌립보(Philippi) 외곽에서 만난 옷감장수 리디아(Lydia)가 이곳 두아디라 출신의 상인이었다. 
리디아는 장사하는 여자로 하나님을 공경하던 믿음이 독실한 여자였다(행 16" 11 -15).   
5)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하였다.
두아디라 교회는 척박한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번창하는 교회였지만 세력을 크게 확장하는 중에 받아들여서는 안 될 이방종교의 영향까지 받아들였다. 
이세벨이 바로 그 증거다. 그래서 두아디라 교회는 사도요한으로부터 경고를 받는다. 
이세벨은 북 이스라엘의 7대왕 아합의 부인이다. 그녀는 바알 우상을 섬기는 지중해 해양 국가인 시돈왕국 출신이었다. 
이세벨은 아합과 신하와 온 백성에게 우상숭배를 가르친다. 정책적으로 우상을 섬기도록 하였다.  이세벨은 우상숭배뿐 아니라 그것을 지적하고 반대하는 엘리야 선지자를 잡아 죽이려고 했다. 
그 죄의 모양은 이세벨이라는 이름 속에도 나타난다. 이 여자는 돈을 사랑하여 왕권을 이용해서 백성의 재산을 약탈한다. 그래서 남편 아합의 왕조는 이 여자로 인해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한 것이다.  
2.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내용(2:18-29절)
“18두아디라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행음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3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24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릴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18-29) 
1)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18두아디라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그의 눈은 타는 불꽃같고 그의 발은 빛나는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18절)  
예수님이 두아디라교회에 보이신 이미지는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모습이다. 심판주이신 모습이 돋보인다.
(1) 그 눈이 타는 불꽃(φλόξ)과 같았다.(τοὺς ὀφθαλμοὺς αὐτοῦ ὡς φλόγα πυρός)
'불꽃과 같은 눈'은 전지전능과 심판하는 의로운 눈(계 19:12)을 가리키는 것으로 다니엘 10장 6절에는 그 눈이 횃불 같다고 하였다. 
두아디라 교회의 불의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불꽃과 같은 눈으로 그들의 심령 골수까지 통찰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셨다. 
특히 두아디라는 염색업과 청동 제련업으로 고열의 용광로가 뿜어내는 불꽃은 눈을 바로 뜨지 못하게 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불꽃 같이 두아디라 교회는 물론 우리를 꿰뚫어 보신다.
(2) 그 발은 빛난 주석과 같았다.(οἱ πόδες αὐτοῦ ὅμοιοι χαλκολιβάνῳ)
두아디라는 주석의 산지이다. 이곳에 빛난 주석같은 모습으로 주님이 나타나셨다. 
'빛나는 주석'(계 1:15, 2:18)의 발은 악과 불의를 태워 소멸시키는 위협에 찬 심판의 발길로 땅 위를 밟으신다(미 1:3-5; 합 3:5; 욥 40:12)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3)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셨다.(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두아디라의 도시적, 문화적, 종교적 상황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두아디라의 최고의 신은 제우스라고 믿었고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가 물질과 풍요를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숭배하는 신 중의 하나였다. 이에 대하여 천지만물의 주재자는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고 있다(계 2:18). 
2)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칭찬은 무엇인가?
"내가 네 사업(행위들, σου τὰ ἔργα 수 타 에르가)과 사랑과 봉사와 믿음과 네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19)“ 
‘사업’이라 번역한 “에르가 (ἔργα)”는 “일”, “행위”를 말한다.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칭찬은 그들의 행위들, 곧 사랑과 봉사와 믿음과 인내다. 
특별히 처음 행위보다 나중 행위가 더 나은 모습을 기뻐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내면적 가치가 더 풍성해졌음을 칭찬하신 것이다. 
(1) 사랑(ἀγάπη 아가페)의 행위를 칭찬하셨다.
에베소 교회가 신앙 사수를 위해 법과 규율을 지키다가 잃어버린 사랑을 두아디라 교회는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 때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다(마 24:12).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이 이전보다 더 많으므로 주님의 칭찬을 받았다.
(2) 믿음(πίστις 피스티스)의 행위를 칭찬하셨다.
믿음(πίστις 피스티스)은 충성(πιστός 피스토스)과 같은 어원이다.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셨고(마 14:31) 백부장의 큰 믿음은 칭찬하셨다(마 8:10; 15:28). 
두아디라 교회는 믿음이 부요했었다.
(3) 봉사(διακονία 디아코니아)의 행위를 칭찬하셨다.
봉사, 디아코니아의 어원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 집사)는 디아(διά 통하여)+코니오르토스(κονιορτός 먼지)의 합성어로 ‘먼지 속에서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낮은 자리, 더러운 자리에서 일하여 빛을 발하는 교회였다.
(4) 인내(ὑπομονή 휘포모네)의 행위를 칭찬하셨다.
인내, 휘포모네는 휘포(ὑπό 아래)+메노(μένω 거하다)의 합성동사이다. 군사 용어로 많이 사용된 것으로 '적의 습격을 받고 숨어서 견디어 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전쟁 때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의 신분을 말하기도 한다. 인내를 뜻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오래 참음(μακρθυμία 마크로뒤미아)이다. 
전자 휘포모네는 교리나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인내를 말하는 반면, 후자 마크로뒤미아는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인내에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연상시킨다(갈 5:22).(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또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8단계를 생각하게 한다(벧후 1:5-7).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가?
(5)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음을 칭찬하셨다.
3) 두아디래 교회에 대한 책망이 무엇인가?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노니 이는 네가 자칭 여선지자 이세벨(Ἰεζάβελ 예자벨 / לבזיא 이제벨)이란 여자를 용납함으로 그녀가 내 종들을 가르치고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 2:20). 
두아디라교회가 이세벨(לבזיא)의 가르침을 용납한 것에 대해 책망하신다. 그 가르침의 구체적인 내용은 음행과 우상숭배이다.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회개치 않았다.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을 선포하신다.
(1) 여자 이세벨이요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함을 책망하셨다.
자칭 선지자(ἑαυτοῦ προφῆτις 헤아우투 프로페티스)는 자칭 여선지자 이세벨을 지칭한다. 이세벨은 우상숭배의 통로요 거짓 여선지자였다. 
① 이세벨이 가르치고 꾄 것은 무엇인가?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 것이다. 이세벨의 이름은 '고결하다', ‘순결하다’라는 뜻이였지만 정반대로 추악한 여자였다. 사탄은 본래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기를 좋아한다(고전 11:14). 
이세벨은 히브리어 "이제벨(איזבל)"로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인물이다. 아합 왕의 부인으로 아합 왕과 이스라엘에게 바알을 섬기도록 부추겼다(왕상 16:31-34; 21:25-26; 왕하 9:22). 
우상 숭배는 음행이 병행되므로 역사적으로 두아디라 교회에도 음행과 우상숭배가 동시에 자행되었음을 보게 된다.
가) 가나안의 신 바알의 아버지 엘의 족보 
엘( אל) - 가나안 최고의 신
아세라(אשירה) - 엘(לא אל)의 아내
바알( בעל) - 엘(אל)의 아들, ‘하늘의 주’로 불림
아낫( ענת) - 엘( אל)의 딸이며 바알( בעל)의 누이 전쟁과 성(sex)의 신
아스다롯(אשתרות)- 아낫과 같이 전쟁과 성의 신
여신인 아세라, 아낫, 아스다롯은 모두 가나안의 3신이다.
아스다롯의 로마식 이름은 비너스다.
“저희가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숭배하며(열왕기상 11:33)”
② 여자 이세벨의 의미가 무엇인가?
요한복음 2:4에서 주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에게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Τί ἐμοὶ καὶ σοί γύναι) 하셨다. 
여기서 여자(γυνή)란 당시 황후 등 높은 부인을 부른 극존칭이다. 메시아적 입장에서 극존칭으로 표현한 것이다. 
본문 “여자 이세벨”에서 “여자(γυνή)”라는 의미는 두아디라 교회의 지도자 부인이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된다. 
일설에 의하면 “여자 이세벨”로 호칭된 인물은 그 지역 교회의 장로급 부인이었으며 영향력이 있는 부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칭 선지자로서 교회 안에 잘못된 신앙을 퍼뜨리고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게 유도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이 황제 숭배 우상 숭배와 더불어 황제 숭배자만이 가입할 수 있는 ‘길드(Guild)’라는 상업조합이 있어서 가입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살기가 어려운 때였다. 
이러한 때 로마 황제를 주로 고백하지 않으면 생업이 어려웠다. 
그 상황에서 “잠시 우상에게 절한다고 해서 신앙을 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건성으로 절하고 먹고 살 길도 찾고 신앙인의 명분도 가지면서 살자고 적당히 비켜가는 것이 지혜라고 물 타기를 했을 것이다. 
(3)  회개 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지 않음을 책망하셨다(21절).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21절)
주님은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어 인내로 오랫동안 기다리셨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4) 심판에 던지리라 경고하셨다.
"보라,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질 것이요 또 그녀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들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를 죽이리니(계 2:22절)
① 심판의 대상
이세벨, 더불어 간음한 자들(그녀의 자녀들)이다. 행음이다. 혼인이 순결치 않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우상과 섞어서 경배하는 자들이다. 
문화차원에서 돼지 머리 놓고 고사지내는 격이다. 문화란 가치가 축적된 것이다. 영적 가치냐 세속적 가치냐 하늘의 가치냐 땅의 가치냐가 문제다.
② 심판의 내용
가) 이세벨 심판 
이세벨을 '침상에 던진다'는 것은 '질병에 걸려 아프게 하다'라는 상황을 환유적(metonymic)으로 표현한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침상'은 심각한 질병에 대한 은유로서 사용하기 때문이다(출 21:18; 시 6:6; 41;3). 곧, 질병을 통해 이세벨을 심판하시겠다는 뜻이다.
나) 그녀로 더불어 간음한 자들 심판
여기 '그녀로 더불어 간음한 자들'은 그녀의 가르침을 함께 따랐던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에 던질 것이다.
다) 그녀의 자녀들
이세벨의 가르침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제자들 그룹으로 볼 수 있다. 회개를 거절한 자들이다. 사망으로 죽일 것이다.
(5)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경고하셨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23절)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다. '살피다'(ἐραυνάω 에라우나오)는 어떤 것을 알기 위하여 철저한 노력을 기울이다 라는 뜻이다.
'사람의 뜻' 으로 번역된 네프로스(νεφρός)는 사람의 콩팥(신장腎臟)을 뜻한다. 인간이 생각하고 감지하는 일체를 지칭한다. 
히브리어의 '킬르야(כליה)의 배경으로 시편 139:13에서는 이 단어가 사람의 ‘내장’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동시에 비유적으로 '생각(mind)이라는 의미로 성경에서 많이 사용한다. 아마도 사람의 내장 중에 신장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이러한 의미가 파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καρδία)는 심장으로 인간의 지정의를 포괄하는 인격의 좌소를 지칭한다.
4) 두아디라 교회 남은 자를 향한 주님의 칭찬과 권면이 무엇인가?
남은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은 이세벨의 교훈을 집요하게 거부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러한 삶을 지속적으로 살 것을 권면하신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계 2:24절)
(1)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칭찬이 무엇인가? 
①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아니한 남은 자들이 있음을 칭찬하셨다.
이세벨의 가르침을 좇지 않은 자들을 '두아디라에 남아 있는 너희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남은 자(שארית 쉬에리트)' 사상으로 두아디라에 이세벨의 가르침에 굴복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이것은 아합 왕의 이세벨 시절에 바알의 우상숭배를 거부하였던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 칠천을 남겨 놓으신 말씀과 병행한다(왕상 19:18).
②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는 뜻이 무엇인가?
다른 짐(ἄλλο βάρος 알로 바로스)은 이세벨을 좇지 않음으로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본 성도들로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다. 여기에 다른 무거운 짐을 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른”이라는 헬라어 '알로스 (ἄλλος)'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고 '헤테로스 (ἕτερος)'는 이질적으로 다른 것을 뜻한다.
‘짐’, '바로스 (βάρος)'는 너무 무거워서 사람이 도저히 질 수 없는 짐을 가리킨다(마 20:12; 행 15:28; 계 2:24). 
이 외에 간신히 들을 수 있는 짐은 '포르티온 (φορτίον)'이며, 걸치는 옷 정도의 짐은 '옹코스 (ὄγκος)'라고 한다.
(2)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권면이 무엇인가?
"그러나(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계 2:25절)
① '그러나'
'그러나'(πλὴν 플렌)는 '알라'(ἀλλά 그럼에도 불구하고)나 '데'(δέ 또한, 그러나)와 다른 표현으로 여기에서만 나온다.
② 그러나 너희에게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사단의 깊은 것을 좇지 않는 그들의 신앙 태도를 말한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신다.
5)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강복이 무엇인가?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계 2:26-29)" 
(1)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이 무엇인가?
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라 하셨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는 메시아적 직분과 사역의 성경을 가진다. 27절은 메시아 시편으로 알려져 있는 시편 2:9절을 인용하여 26절의 말씀을 보충한다.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는 것은 메시아의 이러한 권세를 계승한다는 것이다. 또한 복음을 통해 세상에 권세를 행사하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는 메시아 왕국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는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
② 새벽 별을 주리라 하셨다. 
새벽 별을 주리라는 것은 메시아적 통치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는 그리스도는 광명한 새벽 별(계 22:16)이라는 표현으로 보아서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받을 것이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는 것이다.
두아디라교회에 약속된 종말론적 축복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과 같은 파괴력을 갖는다. 
이러한 메시아적 통치의 권세는 '새벽 별'로 표현된다.  
6) 결론적 권고가 무엇인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2:29) (ὁ ἔχων οὖς ἀκουσάτω τί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1) 귀 있는 자의 의미가 무엇인가?
귀(우스, οὖς)란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귀를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귀가 있는 자는 많지 않다.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또한 가려져서>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딤후 4:3-4) 예언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1:15, 13:19, 13:43, 막 4:9, 4:23; 눅 8:8, 14:35)라고 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7교회에 보낸 편지의 결구(結句)로 반복되었다(계 2:7, 11, 17, 29, 3:6, 13, 22, 13:9) 
성령으로 할례 받은 자의 귀 만이 들을 수 있다(행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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