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11장 [393.오신실하신주] [456.거친세상에서실패하거든] [455.주님의마음을본받는자] [449.예수따라가며] [458.너희마음에슬픔이가득할때]...내게로부터눈을들어.보라하나님은.((나의모습,나의소유, 오예수님내가옵니다, 너예수께조용히, 내가그리스도와함께))
(((욥의 성품))) [내적 태도/영적 양심 =속사람, 절대적, 도덕적, Q과 사람 앞에서...탐] = 순전 =완전/완벽 : 건전-착실-평이-조용/고요-평이(plain)/순진(harmless-무흠무결((성령과 물과 피..보혈-말씀-그영의 씻음 인해))) [외적 태도/혼적 행함 =겉사람, Q과 사람, 그 모든 관계에 있어서, 정직(구부러지거나 치우침 없음..야샤르) =올곧고 정당한, 의로운 ===>이것의 내적/외적 표현이 바로 성실 = 순전+정직의 총체(그 사람의 어떠함 바로 그 자체) .... 예수님의 성실/진실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를 보도록 하자,,....Q의 성실, 진실하심은 에무나[(남성형은 에문)확고부동-충실-성실]로서,... 예수님의 "진실로 진실로..= 이것은 진정 참이요 확고부동한 변함없는 진리이니 = 즉 거짓 없이 절대 진리의 참 됨으로"는 바로 "아만"임..믿음(아만, 아멘). 진리(에메트 =알레데이아), ...cf>은혜 = 헤세드(인자, 긍휼, 자비) [Q을 경외함...야레]...경건,,,Q의 말씀 따라 그분의 길로, Q께 나아가, (그리스도로 살기/그분 닮음을 추구함) ...그분과 하나됨 인해 보호-공급-양육-돌봄-인도 받음((야타브, 곧 토브의 복됨 누림<적극적> + 악에서 떠남<소극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여전히 있으니, 곧 Q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근본 목적 (= Q의 형상, 모양 따라 지음 받은 바로 그대로) Q을 표현함이 부족하였음(=그리스도로 충만 + 그분을 공급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자라남 + 그리스도의 몸, Q거처 이룸)
***[경륜oikonomia 따른 분배dispensation] ...경륜】經綸 economy - ‘분배하심’(dispensing)참조 ‘경륜’이라는 단어는 ‘가정 행정’을 의미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왔다. 그 단어는 또한 청지기 직분, 행정, 분배의 의미를 포함하는데, 즉 분배의 과정을 의미한다. 성경 전체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빛 안에서 볼 때, 하나님의 경륜은 교회를 산출하고 건축하기 위해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에 분배하는 하나님의 신성한 행정을 가리킨다. .....경륜economy, 헬라어 오코노미아(oikonomia)...가정 법률-가정 관리-가정 행정, 행적적인 시대-계획-경제를 의미...영생하시는 영원 하나님의 신성한 경륜은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을 산출-조성-건축하기 위해 Q의 택하신 백성 안으로 TUQ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믿는이의 영원한 참 생명과 모든 생명 공급이심..갈1:15-16, 골3:4상)를, (이 그리스도는 오직 그 영the Spirit의 형태로만 믿는이의 거듭난 영 안에 분배[=해방]-내주하심이 가능함), 이를 통해서 실지적으로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분배하심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다(엡1:14, 3:8-10, 딤전1:4)... 결국, 간단히 말하면, Q의 경륜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몸 [=교회, 거듭남과 구속 온전히 이룬 Q의 (장성한) 아들들로서 그몸의 지체 된 교회]을 얻으시는 것인데(이 때, 그리스도는 한 새 사람, 그 몸의 머리이심), 이 몸은 TUQ의 표현을 위한 Q의 확대로서 그분의 갈망하는 바, 그분의 완전한 만족과 기쁨이 된다.
[사랑 실행] ---관심(성령과 하나 됨 :: 너그러움+민감성+경청)-->이해-->존중(용납/개별화) -->주라(관계 맺음/멘토링) -->의무/ 책임(긍휼-자비-겸손-온유-오래참음-용납-용서-사랑-화평-기쁨) [딤전 1:5...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딤전 4:12...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딤전 6:11...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시내산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 (민11-14장) ---다베라 (민11:1-3) --백성의 악한 불평 : 진영 끝을 (여호와의 불로) 사르심...모세의 기도로 꺼짐 ---기브롯 핫다아와 (민11:4-34) ---섞여 있는 이방족속의 식탐 인한 불평이 온 백성에게 악영향 끼침....70인의 장로/선지자 세우심(아론은 제외) ---하세룻(민11:35-12:16) ---미리암의 주동으로, 아론 동조로 Q의 대리 권위인 모세를 대적함...미리암에게 나병 발생하여, 모세의 중보로 낫게됨..7일간 행군 지체됨 ---가데스바네아(민13-14장) : 바란 광야와 신광야 경계지역, 가나안 접경지역 :: 시나이반도 동북쪽 지역(바란 광야, 신 광야 경계)으로, 애굽 시내가 지중해 로 흘러들어가며 북동쪽 80 km 지점에 이스라엘 최남단인 브엘세바가 위치함.. 북쪽에는 지중해 연안의 가사, 남쪽에는 바란 광야, 동쪽에는 에돔, 서쪽에 애굽이 전개 된다. ......(1) 명칭:`가데스'란 「거룩한」 또는 「성별된」라는 의미이다. 팔레스틴에는 `가데스' 또는 `게데스'라는 이름의 도시가 많은데, 그것은 옛날 가나안의 성소가 있던 곳으로 이 가데스바네아도 그 중 하나이다. 따라서 `바네아'란 이 가데스를 다른 많은 가데스로부터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일 것이다. 이 이름은 개인명에서 유래했다고 생각되는데, 의미는 분명치않다. 가데스바네아는 창세기 14:7에서 `엔미스밧'이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이것은 「심판의샘」을 의미하고 있다. →지 엔미스밧. 또 신명기 32:51, 에스겔 48:28에는 `므리바가데스'라 되어 있고, 에스겔 47:19에는 복수형인 `므리봇 가데스'라 되어 있다. →므리봇 가데스. 이들 가데스바네아의 별명은 `므리바 물'의 호칭(「다툼의물」, 민 20:3-15,24참조. 여기서는 이 이름의 유래를 하나님과 백성의 다툼으로하고 있다)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사정을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 즉, 이 사막의 오아시스인가데스바네아는 유목민이나 대상이 들려 머물거나 모이는 일종의 센터와 같이 되어, 그 결과 이 땅에서 부족간에 종종 다툼이 생겨 그 다툼을 심판할 재판이 이 곳의 `성소'이며, 아마 샘의 물을 사용하여 시죄법(詩罪法)에 의하여 행해졌으리라는 것이다. (2) 위치:가데스바네아는 시내 반도의 `신 광야'(민 20:1)에, 또 `바란 광야'(민 13:26,신 광야를 바란 광야의 일부로 보았을 것이다)에 있으며, 이스라엘 영토 최남단에 있다.그 서쪽은 애굽 시내(와디 엘 아리슈, Wadi el-'Arish) 부근이며(겔47:19,48:28) 동은 에돔(민 20:16)과 또 아모리 족속의 산지(신 1:19)와도 접경하고 있었다.그 위치는 브엘세바의 남쪽 약 80㎞,아인엘구데라드(`Ain el-Qudeirat), 아인 게디스(`Ain Qedeis), 아인 고세이메(`Ain Qoseimeh)의 세 샘에 있는 곳으로 되어 있다.
===다베라...3일 길에 언약궤가 앞서서 인도하고 있었는데(아마도 모세도 초행길??)..여전히 익숙한(!!) 육을 따라 반응[모든 언행심사에 있어서, 사랑 받는 자, 곧 야타브(토브)-야다(도드..사랑)-에셰르(친밀)-하가(묵상...갈고-반죽하고-요리(굽고/익히고/기름에 튀겨) 입맛 다시며/잘근잘근 씹고, 맛 감상하며 물과 함께 삼킴)/아만<에무나..신뢰>의 다바크<붙좇음/결합>(바라크(예배/축복)-할라크(기업/소유/분복으로 누림/동행)주님의 소유, 언약 백성 됨에 대한 감동-감화-충만-교통-체득-자각 없음.] ....진의 규모 좌우간 거리 대략 8KM.하룻 길은 대략 24KM
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육적 자기연민의)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3. 그 곳 이름을 다베라(=불사름)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모세가 장로 칠십 인을 뽑다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어떤 가문의,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무리..고전5:6..사탄 마귀의 틈을 탄 꾐 표상!!)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사탄 체계인 세상이 주는 죄-마약 중독, 참된 존재 가치 추구에서 벗어난, 세상적 육체에 속한 일탈 누림 원함 의미(출16:3, 13)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거듭난 영적 이스라엘의 매일 생명 양식인 하늘에 속하신 그리스도를 의미..요6:29-35]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진가-참 맛의 무한한 다양함 맛보려는 자마다 주 성령님과 교통함의 하가를 거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9.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아가페 -필레오 TUQ의 풍성한 생명 공급, 그 신실하심) >> 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라, 정녕 그대는, 참되게 믿는 그대는 어떠한가...야댜-에셰르-다바크-할라크-바라크의 사랑-기쁨-화평 누림으로 동행동거동주하는 삶인가. 1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7*10..Q의 일하심에 있어서 완전-충만케 이루심 의미...새 예루살렘에는 보좌 주위에 [신구약의 모든 교회의 대표]24장로가 나타나 있다)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17.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19.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20.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21.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 24.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알리고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2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26. ○그 기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 27.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28.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0.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진중으로 돌아왔더라 ===여호와께서 메추라기를 보내시다...보라, 지혜의 Q 그분의 돌파를!! 31.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봄철(4-5월)에는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부터 홍해를 건너 시리아-유럽지역으로 이동하는 메추라기 떼, ((이미 1년여전, 출16:13에서 출애굽 6주 째에 [엘림에서 시내산 사이의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었음...))....여기 [둘째해 53일 경과 시점, 바란 광야에서의] 기록은 역풍을 불게 하심 통해 [1개월 내내 먹을 분량 지속 공급하심] 엄청난 메추라기를 몰아 오셨음을 의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스라엘 전체의 진 규모는 약 12평방 마일(=19.2평방킬로미터...가로-세로 각각 4.38km)이었다고 함.((메추라기는 진영 밖에서 하룻길 거리까지(하루 행군 거리 약 7-9km라고 4-5마일 공간) 높이 1미터 두께로 날아내렸음)) ....(그 양이란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가량... 이는 진영 중심부에서부터 볼 때 4.4km정도 떨어진 진영 바깥 경계에서부터 각각 하룻길 거리 정도에까지 이르는 범위, 진영 사방 둘레, 즉 최대 직경 약 22-25km(혹자는 32km라고도 함) 범위에 걸쳐서 1미터 높이로 메추라기가 날아 내렸음을 의미) 32.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탐욕의 무덤..시내광야 길에서 첫번 째 진친 곳)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35.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행진하여 하세롯(=촌락들...두번 째 진친 곳..그러나 숙영 지표에는 릿마 다음에 기록되어 있다(민 33:17, 18).)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정체성 부재의 시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가치란 다름 아닌 Q거절-반역 부추김 통해 공멸케 만들려는 사탄 마귀적 가치로서 참 기독자마다 그 근저를 알고 오직 살아계신 부활 구주 그리스도의 돌파하심을 따라 하나 됨의 연합 통해 극복-이김 누림-살게하는 대안 제시가 가능함....["나란 존재는 누구며, 관계성을 포함한 삶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이며 나는 어떠한가" 묻는, 인간 본질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은 전혀 필요치 않다 여기도록 하는 세상의 목소리를 추종하고, "그저 돈이면 만능이요, 돈이 최고이며, 나만 잘 먹고 잘 살다 죽으면... 결혼도 필요없고, 아기를 낳지 말고, 내가 보기에 나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라는, 마치 잡혀 죽을 짐승 같은.. 절대적 진리와 참 가치 체계 추구의 흔들림과 혼돈이 큰 특징을 이룸], 그 바탕엔 ((전적으로 세상- 곧 사탄 체계-을 이용한 사탄적 혼돈 기만과 궤계가 먹혀 듬인 바...그 현상의 뿌리에는 "절대적 빛과 소금이신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를 살지 않고, 살아내지 못하며, 공급하지 않음 인한 본연의 기능 상실 + 오히려 맘몬 숭배로 세상을 실망시킴"이란, 교회의 정체성 상실 이란 잘못이 분명히 깔려 있음...주께로 돌이켜야 하며, 교회의 본질-가치-사명, 그리스도로 사는, 그분의 몸으로 사는 삶의 참 가치, 능력과 소망과 참된 돌파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함)) 남과 비교하여 만족을 추구하는, 상대주의-대중/군중 영합주의- 개인 이기주의-쾌락주의 ((즉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의 함정에 빠져, 참된 깨달음 안에서 주어지는 자족함과 평강을 도외시함으로써 상실해 버린 상태....,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의 헛된 자기 성취감의 극단에 치우침과 "나만 좋으면 된다"(잘먹고 잘 살면 된다 -내로남불)의, 극도의 피상적, 개인주의적 웰빙 추구 등, 상대적 가치 비교에 자신을 맞추려 할 뿐 아니라 자기감정에 충실 +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다보니.... 내가 나로 살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와 자기 학대가 우리 속에 자리하게 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불안과 갈등, 우울을 안은 채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음 ---여기에 더하여, ‘융합’과 ‘연결’이라는 키워드의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있는 상황 가운데, 조만간 인간의 지식 노동 영역의 대부분을 가상의 인공지능이 차지하게 되리라고 예측하지만, 이에 대해 대안 제시하는 이가 없고 전적으로 치우쳤고, 저마다 무력/고독하게 느끼는 바, 여러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이미 혼돈기에 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음....다른 대안은 있을 수 없고 오직 영원 유일한 돌파와 해결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함의 빛 비춤에 있음". ------ ===기브롯 핫다아와가 주는 교훈(민 11:26~35)...영적 전진 가로막는 탐욕과 자기 연민 불식하고, 하나님 은혜 겸손과 감사를 늘 기억하고 전적 신뢰함==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민 11:3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때는 출애굽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있었습니다. 매일 내리는 만나의 은총에 감사하며 감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나에 배부른 그들은 애굽에서 맛보았던 고기를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돌아보면 이스라엘은 430년간 애굽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애굽 했습니다. 고센에서 출발하여 에담(출 13:20)을 거쳐 홍해를 건넜습니다. 마라(출 15:23)의 고통을 지나 엘림(출 15:27)에 진을 치기도 했습니다. 르비딤(출 17:2~3, 므리바, 맛사)에서는 반석에서 물이 났고, 이후 시내산에 도착하여 장기간 머물며 두 돌판에 새긴 언약의 말씀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내산을 떠나 3일 길을 걸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고 그 소리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여호와의 불’로 그들의 진 끝을 불타게 하셨습니다(민 10:33~11:1). 이곳이 다베라(불에 탄 곳)입니다. 여기를 지나 기브롯 핫다아와(탐욕의 무덤)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브롯 핫다아와가 주는 교훈을 통해 오늘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갈 길을 점검합시다. ===메추라기를 공급하시는 하나님(31절) “여호와께서 바람을 보내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과 그 주변 일대에 내리게 하시자 진영에서 사방으로 하룻길 떨어진 지역까지 메추라기가 지상에서 약 1미터 높이로 날아다녔다.”(현대인의성경)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학자들은 이 시기가 바람이 불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람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십니다(시 107:25).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람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메추라기를 공급하십니다. 그 양이란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가량입니다. 이는 진영에서 사방 약 32km에 1미터 높이로 메추라기가 날았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생활에 지쳐 고기를 맛보아야만 하겠다고 불평과 원망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달 동안 고기를 먹이시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18절) 겨울에 철새들이 철새도래지의 하늘에 까맣게 떠 있는 장면을 연상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제 그 약속 실현의 일환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까맣게 날아다니는 메추라기 떼를 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고 있는 자리에 떨어지게 하심으로써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결코 손이 짧은 분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십니다.(사 59:1, 민 11:23) 이 장면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밀하게 간섭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지파가 공정하게 먹을 수 있도록 이쪽저쪽에,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 수고의 대가로 일용할 양식을 얻도록 진에서 하룻길에 두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일용할 양식이면 족합니다(32절) “그래서 사람들은 그 날 밤과 낮, 그리고 그 다음 날 저녁까지 메추라기를 잡았는데 가장 적게 잡은 사람도 약 10가마 정도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말리려고 진영 주변에 사방 널어 놓았다.”(현대인의성경) 이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밤낮으로 그리고 다음날도 계속하여 먹을 것을 모았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원리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그들은 메추라기 때문에 삶의 균형과 영적 균형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먹는 재미에 푹 빠져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가나안으로 전진하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메추라기를 주신 분을 잊고, 가나안의 사명도 잊었습니다. 고기 때문에 가나안을 잊는다면 그 고기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바로 탐욕입니다. 탐욕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영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 버립니다. 바로 이 탐욕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자족하는 마음이 없을 때 존재하는 것임을 성경은 말씀합니다(롬 1:21). 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비유의 개수는 학자에 따라 30~62개로 차이가 있지만, 그 중에 16개는 돈과 소유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는 인간이 재물 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는지, 그리고 이 재물 때문에 심령이 악해지고 유혹에 넘어져 타락함으로써 구원을 상실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고 말씀하십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33~35절) 본문에서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랜 만에 먹어 보는 고기 맛에 정신이 없을 그 때쯤, 하나님께서는 심히 큰 재앙으로 그들을 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니 이 사이에 있는 것도 뽑으십니다. 자신들의 불신앙과 탐욕을 회개할 줄 몰랐으며,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는데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에 장사하였습니다. 이처럼 탐욕을 장사해야만 앞으로의 전진이 가능합니다. 우리 시대의 영적 전진을 가로막는 탐욕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의 영적 순례를 더디게 하는 탐심은 없는지요? 나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탐욕을 찾기 위해 멈추어 서서, 찾아 제거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입니다. 구원을 선물로 받았고,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고 있으며,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망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쯤에서 만족하고 살아야 할까요? 그것을 찾아가는 게 신앙이라고 봅니다. 영적으로 눈이 밝아야 이러한 것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다. 영적인 눈을 밝게 하기 위해 매일 주시는 만나를 먹어야 하겠습니다. 메추라기는 하나님의 응답이었고 축복이었지만, 탐욕을 낸 백성들에게는 복이 아니고 사망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복을 복으로 누릴 수 있도록 겸손과 감사를 잃지 않게 하옵소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게 하옵소서’. ---------- ...1. Now the people became like those who complain of adversity in the hearing of the LORD; and when the LORD heard [it,] His anger was kindled, and the fire of the LORD burned among them and consumed [some] of the outskirts of the camp. 2. The people therefore cried out to Moses, and Moses prayed to the LORD, and the fire died out. 3. So the name of that place was called Taberah, because the fire of the LORD burned among them. 4. And the rabble who were among them had greedy desires; and also the sons of Israel wept again and said, "Who will give us meat to eat? 5. "We remember the fish which we used to eat free in Egypt, the cucumbers and the melons and the leeks and the onions and the garlic, 6. but now our appetite is gone. There is nothing at all to look at except this manna. " 7. Now the manna was like coriander seed, and its appearance like that of bdellium. 8. The people would go about and gather [it] and grind [it] between two millstones or beat [it] in the mortar, and boil [it] in the pot and make cakes with it; and its taste was as the taste of cakes baked with oil. 9. And when the dew fell on the camp at night, the manna would fall with it. 10. Now Moses heard the people weeping throughout their families, each man at the doorway of his tent; and the anger of the LORD was kindled greatly, and Moses was displeased. 11. So Moses said to the LORD, "Why hast Thou been so hard on Thy servant? And why have I not found favor in Thy sight, that Thou hast laid the burden of all this people on me? 12. "Was it I who conceived all this people? Was it I who brought them forth, that Thou shouldest say to me, 'Carry them in your bosom as a nurse carries a nursing infant, to the land which Thou didst swear to their fathers'? 13. "Where am I to get meat to give to all this people? For they weep before me, saying, 'Give us meat that we may eat!' 14. "I alone am not able to carry all this people, because it is too burdensome for me. 15. "So if Thou art going to deal thus with me, please kill me at once, if I have found favor in Thy sight, and do not let me see my wretchedness." 16. The LORD therefore said to Moses, "Gather for Me seventy men from the elders of Israel, whom you know to be the elders of the people and their officers and bring them to the tent of meeting, and let them take their stand there with you. 17. "Then I will come down and speak with you there, and I will take of the Spirit who is upon you, and will put [Him] upon them; and they shall bear the burden of the people with you, so that you shall not bear [it] all alone. 18. "And say to the people, 'Consecrate yourselves for tomorrow, and you shall eat meat; for you have wept in the ears of the LORD, saying," Oh that someone would give us meat to eat! For we were well-off in Egypt. "Therefore the LORD will give you meat and you shall eat. 19. 'You shall eat, not one day, nor two days, nor five days, nor ten days, nor twenty days, 20. but a whole month, until it comes out of your nostrils and becomes loathsome to you; because you have rejected the LORD who is among you and have wept before Him, saying, "Why did we ever leave Egypt?" '" 21. But Moses said, "The people, among whom I am, are 6000000 on foot; yet Thou hast said, 'I will give them meat in order that they may eat for a whole month.' 22. "Should flocks and herds be slaughtered for them, to be sufficient for them? Or should all the fish of the sea be gathered together for them, to be sufficient for them?" 23. And the LORD said to Moses, "Is the Lord's power limited? Now you shall see whether My word will come true for you or not." 24. So Moses went out and told the people the words of the LORD. Also, he gathered seventy men of the elders of the people, and stationed them around the tent. 25. Then the LORD came down in the cloud and spoke to him; and He took of the Spirit who was upon him and placed [Him] upon the seventy elders. And it came about that when the Spirit rested upon them, they prophesied. But they did not do [it] again. 26. But two men had remained in the camp; the name of one was Eldad and the name of the other Medad. And the Spirit rested upon them (now they were among those who had been registered, but had not gone out to the tent), and they prophesied in the camp. 27. So a young man ran and told Moses and said, "Eldad and Medad are prophesying in the camp." 28. Then Joshua the son of Nun, the attendant of Moses from his youth, answered and said, "Moses, my lord, restrain them." 29. But Moses said to him, "Are you jealous for my sake? Would that all the Lord's people were prophets, that the LORD would put His Spirit upon them!" 30. Then Moses returned to the camp, [both] he and the elders of Israel. 31. Now there went forth a wind from the LORD, and it brought quail from the sea, and let [them] fall beside the camp, about a day's journey on this side and a day's journey on the other side, all around the camp, and about two cubits [deep] on the surface of the ground. 32. And the people spent all day and all night and all the next day, and gathered the quail (he who gathered least gathered ten homers) and they spread [them] out for themselves all around the camp. 33. While the meat was still between their teeth, before it was chewed, the anger of the LORD was kindled against the people, and the LORD struck the people with a very severe plague. 34. So the name of that place was called Kibroth-hattaavah, because there they buried the people who had been greedy. 35. From Kibroth-hattaavah the people set out for Hazeroth, and they remained at Hazeroth. =========== 민수기 11장 (개요) 지금까지는 사태가 이스라엘에게 아주 순조로웠다. 저 금송아지 사건 이래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은 거의 끊임없이 내려졌다. 백성들은 훈련을 잘 받아 그 진영을 잘 정리하고 정결하게 하는 듯이 보였고, 그 방백들은 제단에 대한 열의와 헌신이 대단했으며, 머지않아 그들은 가나안에 도달하리라는 아름다운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본 장에 와서는 우울한 장면이 시작된다.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은 그들의 원수가 되어 그들을 대항하여 싸우신다.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바로 죄다. 1. 저들의 불평이 그 진영에 불을 지르게 했고, 그 불은 모세의 기도로 곧 꺼졌다(1-3). 2. 심판의 불길이 꺼지자마자, 또다시 죄악의 불길이 치솟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당신의 자비와 정의를 확실케 하신다. (1) 백성들은 고기가 없다고 소동을 피웠다(4-9). 모세는 도울 길이 없다고 안달이다(10-15). 그러나 ① 하나님은 두 가지 다 충족시켜 주리라고 약속하신다. 즉 모세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가르쳐 주시고(16, 17), 백성들에게는 고기를 주겠다고 하신다(18-23). ② 그리고 이 두 가지 약속을 즉각 이행하신다. a. 하나님의 영이, 치리하는 70인 장로들에게 임한다(24-30). b. 하나님의 권능은 메추라기를 불러들여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푸신다(31, 32). c.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는 저들의 불평에 대해 징벌을 내리신다(33 이하). ========== 여호와의 불(민 11:1-3)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볼 수 있다. Ⅰ.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있다. 그들은 “원망했다”(1절). “말하자면 그들은 원망쟁이였다”(KJV의 난외에는 그렇게 되어 있음). 그들에게는 다소의 은근한 불평과 불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아직은 공공연한 폭동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이 작은 불티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것을 보라!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우수한 율법과 규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의 산을 출발하자마자 하나님께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 속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읽어보자. 1. 죄의 사악성. 이것은 종종 계명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기화로 삼는다. 2. 육을 통해 주어진 율법의 연약성(롬 8:3). 율법은 죄를 발견했다. 그러나 죄를 파괴시킬 수는 없었다. 죄를 견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죄를 정복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원망했다.” 주석가들은 그들의 원망 내용을 연구한다. 즉 고깝게도 그들이 많은 도움을 입고 있는 그 때에, 바로 그런 때에 뭐 원망할 것이 또 있었겠는가 하는 것 때문이다. 물론 원망하는 사람들의 내용이 모두 한 가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자들은 시내 산을 떠나온 것을 원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거기서는 그들이 긴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 또, 어떤 자는 기후에 대해서, 또 어떤 자는 저들이 가는 길에 대해서 원망했을 것이다. 또 어떤 자는 3일간의 여행은 너무 먼 행군이라고 했을 것이고, 또 어떤 자는 그만한 여행으로는 가나안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들의 진영이 어떻게 보호받았으며, 어떻게 인도되었고, 어떤 편의를 제공받았는가를 생각하며, 또 저들이 좋은 음식과 친구를 가질 수 있었고, 그 행군에도 많은 보호를 입어서 저들의 발이 부풀거나 의복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볼 때(신 8:4),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저들을 더 이상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했다. 격렬한 불만의 정신을 품은 자들은 언제나 투덜댈 구실을 찾는 법이며, 저들의 외부적 형편이 그 어느 때보다도 호전되었을 때라도 투덜댄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Ⅱ. 이 죄로 인해 분노를 느끼신 하나님의 정의로운 분개. 그것을 “여호와께서 들으셨다.” 아마 모세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불만과 불평을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 교묘히 숨기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점을 명심하자.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대단히 분노하셨다. 그래서 그 분의 “진노가 불붙었다.” 하나님은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우리에게 불평을 털어놓을 자유를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시 142:2). 그러나 타당한 이유가 없는데도 불평할 때에는, 당연히 분개하시고 그 불평을 악하게 여기신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 밑에 있는 자들이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우리는 분개할 것이다. Ⅲ. 이 죄에 대한 응징을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었다.” 이 불은 구름에서 나와 나답과 아비후를 불살라 죽이던 그런 불꽃이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분노의 불꽃이 그들의 심중에 타오르자(시 39:3), 마땅하게도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그들의 육체를 삼켜 버렸다. 우리는 여러 번 그들의 불평에 대한 기록을 보았다. 그들이 애굽에서 처음 나왔을 때에 그러했다(출 15-17장). 그러나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그들의 불평에 대한 재앙이 내렸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들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크게 체험했으므로, 지금에 와서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을 불신한다는 것은 보다 더 용서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셨다”(시 78:21). 그러나 그 불이 그들을 삼킨 것은 “진 끝에” 있던 자들만이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싸우시기를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보여 주신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점차로 그들에게 임했고, 그들은 경고를 받게 된 것이다. Ⅳ. 그들은 모세에게 부르짖었다. 모세는 노련한 그들의 중재자였다(2절).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였다”(시 78:34). 그리고 비로소 그들은 모세에게, 자기들의 친구가 되어 주기를 간청했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이유 없는 원망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유 있는) 원망거리를 만들어 주신다는 것은 지당한 처사다. 2. 자기들이 번성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친구를 경시하는 자들도, 다시금 곤궁에 처해지면 하나님의 친구가 자기의 친구가 되어 주기를 바라게 된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 주소서”(눅 16:24). Ⅴ. 그들을 위한 모세의 중재는 성공했다.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기 위해서 하나님과 그들의 틈바구니에 설 각오가 항상 되어 있었다) “불이 꺼졌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인간을 징벌하기를 기뻐하시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싸움을 막 시작하신 그 때에, 이미 기꺼이 그 싸움을 취소해 버리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모세는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한”(히 11:34) 유력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Ⅵ. 그 곳에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그것은 원망하는 백성들의 수치와 의로운 하나님의 영예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그 곳은 “다베라”, 곧 불사름이라고 불렸다(3절).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이 지명을 듣고 두려워하여 그들이 범한 죄를 범치 않도록 경고를 받게 됨으로써, 저들과 같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전 10:10). ----------- 만나와 메추라기(민 11:4-15) 여기에는 불행하게 혼란된 사회와 이스라엘의 무질서, 즉 백성과 방백들이 다같이 불안하게 되었던 사건이 언급되었다. Ⅰ. 백성들은 안달하며 하나님께 도전했다(시 78:19 참조).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범죄자들은 누구인가? (1)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시작했다. 그들은 “탐욕을 품었다”(4절).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떠나왔던 그 오합지졸은 오직 그 약속의 땅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던 자들이며, 그 곳에 가는 도중의 시련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자들이었다. 이스라엘 주위에 있던 그들은 식객이었고, 자기들의 고향에서 편히 사는 방도를 모르고 있던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과 동행하려 했던 자들이요, 그래서 (말하자면) 그들은 외국에 나가서 자기의 행운을 찾으려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양떼들에게 감염시키는 전염병을 지니고 있는 양들이요, 온 덩이를 부풀게 하는 누룩이었다. 몇몇 불순하고 불만스러워하고 성질이 나쁜 자들은, 매우 조심하여 그들을 반대하지 않을 경우, 능히 최상의 사회에까지 거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이런 자들이야말로 “패역한 세대”이며,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서 “구원을 받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행 2:40). (2) “이스라엘 자손”까지도 거기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듣는다(4절). 그 거룩한 자손은 자기들을 스스로 이 가증한 백성들과 연합시켰다. 본문을 보면, 혼합된 무리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에 함께 계수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도 중시하지 않는 제쳐진 백성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자기들의 특성과 품위를 망각하고 그들과 한패가 되었고, 그들 진영의 불량배들이 자기들의 추밀 고문관이라도 되는 듯이 그들의 말을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친근하고 많은 특권을 누리는 백성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을 자행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을 알려 주시사 당신을 찬양하도록 했던 그 백성들조차 하나님께 치욕을 돌리니,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받고 있는 영광이란 과연 몇 푼 어치나 되랴! 그러므로 아무도 자기들의 외적 신앙 고백과 신앙인의 특권이 죄에 대한 사탄의 유혹이나 죄 때문에 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 주는 방파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고전 10:1, 2, 12 참조). 2. 그 범죄 내용은 무엇인가? 그들은 탐욕에 빠져 원망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에 같은 죄로 인한 징계를 받았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 죽었지만, 그들은 다시금 같은 죄를 짓게 되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징벌하시어, 그 불길이 채 그들에게서 사라지기도 전에 또다시 죄악으로 돌아간 격이다(잠 27:22 참조). (1) 그들은 그들이 애굽에서 누리던 풍요한 진수성찬을 찬미했다(5절).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기서 끌어내 온 것이 엄청난 잘못이라도 되는 듯이 행했다.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 그들은 노역의 짐이 무거워 한숨을 지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생활은 힘든 노예살이로 점점 고통스러워 가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들이 거기서 모두 방백처럼 지냈다는 듯이 말하면서, 이것이 저들의 현재에 대한 불만의 구실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애굽에서 마음껏 고기를 먹었다고 말할 낯이 있는가? 그들은 거기서 중노동으로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있지 않았던가. 그들은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기억했다(과연 좋은 음식이로다!). 그러나 그들은 벽돌 굽던 일과 공사 감독관, 압제자의 음성과 채찍의 아픔은 기억하지 못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이 백성들은 그 모든 것을 잊었다. (2) 그들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던 맛난 음식에 신물이 났다(6절). 그것은 하늘에서 내린 떡, 곧 천사들의 음식이었다. 저들의 원망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가를 보여 주기 위해 그 음식에 대한 기록이 여기에 삽입된 것이다(7-9절). 그것은 음식으로도 좋았고, 보기에도 즐거웠으니, 그 모양은 마치 동양의 진주와 같았다. 그것은 건강에도 좋은 영양가 있는 음식이었다. 그것은 “마른 떡”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그 맛이 신선한 기름 같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지혜서 16:20), 모든 사람 각자의 입맛에 맞았다고 하며, 자기들이 원하는 맛이 났다고 한다. 그것은 같은 종류였지만, 요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함으로써 다양한 음식이 될 수도 있었다. 그들은 돈을 내지 않았다. 애쓰지도 않았다. 그것은 한밤중에, 그들이 자고 있을 때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것을 모아들이는 수고란 말할 만한 노동이 못 된다. 그들은 마음껏 먹고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서는 값싸게 먹었고, 고기를 마음껏 먹었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보다도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만나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일반 섭리의 산물이 아니라 그들에게 대한 특별 호의로서, 직접 하나님의 권능과 자비에서 나오는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만나는 저들이 먹고살던 음식과는 달리 매일 아침 새로운 것이 주어졌고,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었다. 그들이 만나를 먹고사는 동안은, 죄가 그들에게 초래했던 저주, 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으리라”(창 3:19) 했던 그 저주에서 면제된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만나란 것은 돼지들이 먹기에도 부적합한 좋지 않은 음식이라는 듯이 말했다. “우리 영혼(한글 개역에는 “정력”으로 되어 있음)이 쇠약해졌다”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좋은 음식을 공급해 주시지 않음으로써 자기들을 고생시킨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만나를 보고 경탄했다(출 16:15). “이것이 무엇이냐?”, 즉 “이 무슨 진귀한 것인고!”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우습게 생각했다. 불평을 일삼는 자들은 자기들에게 지나치게 좋을 정도의 형편에서도 잘못된 것을 찾아내려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여 그 일반적 자비에 대해 “그러나”(6절, 한글 개역에는 빠졌음―역주)라고 덧붙이는 것은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나 외에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하는 식이다. 매우 행복할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자들도 때로는 불만 때문에 자신을 아주 비참하게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다. (3) 그들은 자기들이 고기를 먹기 전까지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노라고 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많은 양과 소를 끌고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탐욕이 많아서 자기들의 우양을 잡아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의 가축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그들은 떡을 먹을 때처럼 공짜로 고기를 먹어야 속이 시원했다. 그렇지 않고는 만족하지 못했던 자들이다). 아니면 성미가 너무 까다로워서 쇠고기나 양고기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애굽에서 먹던 고기처럼, 맛있고 진귀한 고기를 꼭 먹고 싶었던 것이다. 음식을 원한 것이 아니라 향연을 베풀기를 원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화목 제사를 드리고는, 그 제물 중에서 얼마를 자기들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식탁은 변변치 않아서, 그들은 제물보다 더 맛있는 진수성찬을 찾았음이 틀림없다. 쾌락의 절정에서야 느낄 수 있는 모든 기쁨과 만족을 누리려고 애쓰는 것은, 육적인 정신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진찬을 탐하지 말라”(잠 23: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식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면, 우리가 기름진 것을 먹지 못하고 달콤한 것을 마시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4)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식량을 대줄 능력과 자비심이 없다고 불신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18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이 질문은 정죄받고 있다(시 78:19, 20). 하나님께서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는 것이다. 아마 하나님께서 이런 고기를 떡과 함께 주셨던 적이 있었으므로, 자기들이 궁핍해지자(출 16:13) 그런 요구를 다시 한 번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원망 대신 기도를 했어야 옳았다. 신앙보다 욕망이 앞서는 것은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5) 저들은 욕심에 뜨거웠다. 그들은 말 그대로 “탐욕을 품었다.” 저들은 얼마나 탐욕스럽게 욕심을 냈던지, 마침내는 성화가 나게까지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렇게 유치했다. 즉 그들은 자기들이 갖고 싶은 것을 다 갖지 못했다고 해서 울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욕심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자에게 신세를 져서 해결하려 했다. 우리가 어떤 욕심에 빠져서, 기도를 드릴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탐욕대로 식물을 구할” 때는 기도를 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다(시 78:18). 이 죄 때문에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컸다”(21절). 이 사실은 우리에게 경고를 주어,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고 기록되었다(고전 10:6). (6) 고기는 좋은 음식이다. 많은 고기가 율법으로 허용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악을 따라 욕심을 부렸다고 쓰여 있다. 그 자체로는 합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데도, 우리의 욕망을 따라 추구하면 나쁜 것이 되고 만다. Ⅱ. 모세는 지극히 온유하고 착한 사람이었지만 이런 사실을 보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했다”(10절). 1. 그런고로 그 일의 죄악상은 지극히 큰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들의 원망은 하나님께 큰 치욕을 돌리는 것이요, 모세는 이러한 치욕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또 모세에게까지도 크게 화를 내었다. 그들은 모세가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가 없이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고 또 할 수도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부당하고 배은망덕한 백성들이 이렇게 계속 시끄럽고 귀찮게 굴게 되면, 결국 모세 자신도 화가 나게 마련이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중시하셨다. 그러므로 모세가 화를 냈다 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책망했다는 기록을 볼 수 없는 것이다. 2. 그러나 모세는 화가 나서 그릇된 길을 취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그들을 훈계해야 할 자기의 의무를 잊게 된 것이다. (1) 하나님은 당신의 권능과 은혜를 베푸시고, 그 특정한 민족의 구원과 인도에 그를 참여시킴으로써 큰 종으로 세우시고 영예를 주셨으며, 그 영예는 능히 그가 맡은 짐을 상쇄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영예를 경시했다. (2) 모세는 너무도 많은 감정적인 원망을 늘어놓았고, 작고 하찮은 소요에 대해서 과민했다. 그가 통치자의 수고―이것은 그저 보병들과 함께 달리는 것이다―를 감당할 수 없었다면, 어떻게 전쟁의 공포―이것은 마병과 싸우는 것이었다―를 견딜 수 있었겠는가? 그는 마땅히 신중히 생각해 봄으로써 그들의 동요를 하찮게 여기고 묵과해 버릴 수도 있었다. (3) 그는 자기의 행적을 찬미했다.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11절). 실상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멍에를 편하게 해 주셨는데 말이다. 모세는 그들을 위해 숙소나 식량을 준비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하셨다. 그리고 만일 어떤 고난이 생기더라도 조금도 모세가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그에게는 언제든지 그가 물을 수 있는 하나님의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처신을 가르쳐 주었고, 하나님의 권위가 그를 지원해 주고 있었고, 전능자의 권능 자체가 상벌을 내리고 있던 때이기 때문이다. (4) 그는 자기의 임무에 충실할 만큼 예민하지 못했다. 그 임무는 하나님의 위임과 명령으로 주어진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백성이 자기 자신이 낳은 자녀들이 아닌 고로 자기가 돌보아주어야 할 의무가 없다고 앙탈 부리고 있었다. 그들을 기쁘게 부르사 고용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그 백성에 대한 어버이 노릇을 하라고 직접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의무를 잊었다. (5)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이것은 자신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주부(housekeeper)가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 자신인 듯이 말한 것이다. 그러나,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다”(요 6:32). 또한 그는 자기가 단지 하나님의 한 도구가 되어서 그들에게 고기를 줄 수 있으리라는 것도 기대하지 못했다. 그가 말한 뜻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고기를 먹이시렵니까?” 한 것이라면,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권능을 과소 평가한 것이다. (6)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14절)....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불신한 말이다. 그 일이 훨씬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모세 자신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훨씬 더 큰 일이었더라도, 하나님께서 힘 주시면 [모세 혼자라도]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7) 그가 당장에 자기의 생활에 다소의 불편이 있다고 하여, 죽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그것도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죽기를 갈망한 것은 가장 나쁜 일이었다(15절). 이게 모세란 말인가? 이 사람이 이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란 말인가? 아무리 훌륭한 자라도 결함이 있으며, 때로는 자기들에게서 가장 탁월한 그 장점을 잃어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때의 모세의 걱정을 너그러이 보아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혹평하려고 애쓰지 말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눅 11:14)라고 기도하자. --------------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민 11:16-23) 여기서 우리는 앞에 나왔던 저들의 원망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응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자비는 인간의 악함을 기회 삼아 그 자비의 광채를 더욱 빛나게 한다. Ⅰ. 모세가 원망한 불평을 시정하기 위한 처방.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통치자의 짐이 너무 무겁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저들의 불평에 지나치게 걱정을 품을 것이 아니라 평안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그가 당장에 통치자의 위치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사실 그래야 마땅했지만― 하나님께서 보조자들을 명령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울 사도의 말과 같이(고전 12:28)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이다(즉 다스리는 일에 도움을 주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그의 명예가 깎이거나 실추된 것이 아니라 그의 일을 더욱 손쉽게 해 주었고, “백성의 짐을 담당하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처방이야말로 모세의 마음에도 맞고 정말로 유익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1. 모세는 그들을 지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16절). 그 백성들은 너무나 성급하고, 무분별하고 흥분되어 있어서, 선거를 시킬 수도 없었다. 모세 자신이 선출해야만 했다. 또 그래야 다시는 그가 불평하지 않게 될 것이다. (주님은 모세를 변함없이 너그럽게 대하고 계신다.)...그를 신뢰하고 계심을 또한 드러내고 계신다...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 그가 뽑을 인원수는 70이니, 애굽으로 내려갔던 사람의 수와 같다. 그는 장로가 될 자들, 곧 지혜롭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뽑아야 했다. “천부장과 백부장”(출 18:25)으로서 자기들의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한 자들이 이제 이 훌륭한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정말로 장로들이 되리라고 네가 알고 있는 자들을 뽑으라. 이름만이 장로가 아니라 자기들의 직임을 다하는 인물을 뽑으라.” 우리는 함께 시내 산에 간 장로들의 수효도 이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출 24:1). 그러나 그 당시 그들은 임시직이었지만, 지금 이들의 수효는 영적이다. 또한 이 입법에 따라서, 유대의 대의회 산헤드린―이것은 후대에 가서 예루살렘에서 열렸다. 또 그들의 대법원이었다―도 70명으로 구성되었다. 우리 구주께서도 열두 사도를 도와준 70인 제자(전도자)를 뽑으신 것은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눅 10장). 2. 하나님은 그 70인에게 자격을 갖추어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들이 그 일에 적합하지 못할 때에는, 그들이 모세에게 더 큰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자질이 갖추어져야 된다(17절). 모세는 하나님께 지나치게 뻔뻔하게 말했지만,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그와의 교통을 단절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귀중히 여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끼리도 서로를 귀중히 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도 더욱 진정될 수 있는 것이다. “네게 임한 신”, 곧 지혜와 사랑과 용기의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라”고 하셨다. 모세가 그들에 비해 더 못한 영을 가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그들이 모세와 동등해지지도 않았다. 여전히 모세를 필적할 자는 없었다(신 34:10).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맡은 지위에 맞는 다스리는 영으로 옷 입혀졌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을 입증할 수 있는 예언의 영을 받았다. 그리하여 하나의 신정(神政)이 수립되었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러 쓰실 때에는, 자질도 주신다. 다소 자질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자들은 자기들을 포함시켜 주심의 영광을 인해 더더욱 감사해야 하고!! (당당히!!...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질을 더 해 주심으로써 일할 수 있게 해 주심이기에!!) 또한, 그 누구도 주 앞에 자격이 온전히 갖춘 자로 인정되었기에 부름 받았다고(착각하여!!!) 자부하지 말라. (2) 모든 자격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 1:17). Ⅱ. 불미스럽던 사람들의 기분까지 만족스럽게 되어, 마침내는 아무 소리도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너희 몸을 거룩히 하라”(18절)는 명령을 받았다. 즉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의 표시로 주어질 하나님의 권능의 증거를 받을 자세를 갖추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 4:12). 1. 하나님은 약속하셨다―차라리 경고하신 것이라 함이 좋을 것이다. 즉 그들은 고기를 실컷 먹게 되리라. 한 달간 계속 나날의 만나 외에, 고기를 먹는 정도가 아니라 고기 잔치를 갖게 될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처럼 저들의 식욕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고기에 신물이 나게 되리라(19, 20절).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 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자. (1) 온갖 감각적 쾌락의 허무함. 그들은 넌더리나게 먹을 것이다. 그러나 만족을 모를 것이다. 영적 쾌락은 그와 반대다. 이 세상이 사라지듯이, 이 세상의 탐욕도 또한 사라진다(요일 2:17). 점차적으로 탐욕이 지나면 머지않아 싫증을 느끼게 된다. (2) 탐식은 얼마나 잔인한 죄악인가. 그들은 본성에 폭력을 가했다. 건강해야 될 자기들의 육체를 병들게 했다. 그들의 죄 자체가 그들의 징벌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최악의 사태가 오지는 않았다. (3) 그들이 무절제하게 추구하던 것이 그들에게 싫증이 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처사는 얼마나 의로우신가! 그들이 만나를 천시하듯이 하나님은 그들이 고기를 천시하도록 만들 수 있으시다. 2. 모세는 그 말씀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했다(21, 22절). 이것은 제자들이 제기한 반대 의견과 같다. 즉 제자들은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라고 했던 것이다(막 8:4). 어떤 사람은 여기서의 모세의 말은, 단지 어떤 방식으로 그만한 고기가 조달될 수 있겠는지를 겸손하게 물은 것뿐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분히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는 고로 결코 변명될 수 없는 일이다. 모세는 그 많은 사람에게 떡을 제공해 주신 그 분이, 이제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 무한한 권능을 동원하여 그들에게 다시 고기를 제공할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의 수효가 너무 많다고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실 고기가 짐승이나 물고기였을 것으로 좁게 생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동물이 덩치가 가장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 고기가 조류의 고기였으리라고 감히 생각도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식으로 보시지 않는다. 그 분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보다 위에 있다. 모세는 백성들의 탐욕 때문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것은 “족하오리이까?” 하는 말 속에서 읽어 낼 수 있다. 때로는 진실로 위대한 신앙인들도 이 세상의 어떤 불리한 조건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어려워지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롬 4:18) 믿음을 지니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주의하자. 모세 자신도 감히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시 78:19) 하는 말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은 누구나 부르짖는 외침이다. 분명 이것은 모세의 연약함 때문이었다. 3. 하나님은 즉시 만족할 만한 응답을 주셨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23절) 모세가 만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시 77:10)를 기억했더라면, 그에게는 아무런 곤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세 자신이 수차에 걸쳐 하나님의 권능의 증인이요, 도구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셨다. 모세가 하나님의 권능이 그 백성을 위해 베푸셨던 기사(奇事)를 잊었는가? 즉 애굽에서의 재앙과 바다가 갈라진 일, 바위를 갈라 물을 내던 일, 하늘에서 떡을 비같이 내리던 일들을 잊었다는 말인가? 그 권능이 없어졌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전보다 약해지셨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은 이제 과거 당신의 행적에 권태를 느끼신 것인가? 우리의 불신앙이 의심으로 어떤 이의를 제기하든 그것은 변함이 없다. 즉, (1) 하나님의 손은 짧지 않다. 하나님의 권능은 어떤 일의 쉽고 어려움에 따라 제약될 수 없으며, 오직 당신 자신의 뜻에 따라서만 제약된다.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바다를 측량하시고 하늘을 펴시며(사 40:12), 바람을 움직이던(잠 30:4) 그 손은 짧지 않다. (2) 하나님의 손은 짧아지지 않았다. 그 분은 전과 같이 여전히 강하시다.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신다”(사 40:28). 또 우리가 절망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의 불신을 능히 씻을 수 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 18:14)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제1원리를 가르쳐 주시고, 그의 교훈을 되돌아보게 하시며, 옛부터 있던 하나님의 이름 곧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의미를 배우게 하시고, 그 일의 결말을 통해 사실 여부를 밝히신다.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하나님의 일은 결코 폐함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찬미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 예언을 한 장로들(민 11:24-30) 모세에게 이스라엘 치리를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이행을 보게 된다. Ⅰ. 70명의 정치 고문관을 뽑은 사례. 모세는 백성들의 동요로 다소 심란해졌지만,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금 온전한 평정을 회복하고, 즉시 자기의 직무로 돌아갔다. 당면한 문제에 따라서, 1. 모세는 자기의 역할을 다했다. 그는 70장로들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장막에 둘러 세웠다(24절).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대기한 것이다.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현현하셨다. 또 백성들은 저들의 엄숙한 숙명에 대한 증인들이 될 수 있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