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9.01.26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긍휼 JC추구 5분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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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진리의 창조주하나님이 각사람을 향한 Original design과 Destiny를 추구하라**오해와 착각(사탄이 기만과  궤휼에 의한)에서 벗어나라

http://www.mytwelv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32 예배에서의 수직적(Vertical) 찬양과 수평적(Horizontal) 찬양

@@긍휼 : 같은 태에서 나온 이들에게 품는 감정....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말하는데 ‘라함’(racham; 자궁)에서 나온 말이다. 

이 단어는 ‘같은 태에서 나온 이들에 대한 감정’이라는 기본적인 의미에서 ‘긍휼’, ‘자비’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젖을 빠는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사 49:15),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가지는 반응(렘 31:20), 형제가 형제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의 상태(암 1:11) 등을 나타내는 데 이 단어가 쓰였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감정 차원보다는 사랑의 표현이나 행위(출 33:19; 왕하 13:23; 시 102:13 등)로 드러났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죄에서 돌이켰을 때 주어지는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표현할 때 쓰이기도 했다(사 14:1; 렘 12:15; 겔 39:25). 

신약에서는 긍휼에 해당되는 헬라어로 ‘엘레오스’(eleos), ‘스프랑크논’(splagchnon) 등이 쓰였다. 

긍휼은 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치유 속에 드러내신 예수님의 사역에서 잘 드러났다. 

또 1만 달란트 빚진 종을 불쌍히 여긴 왕(마 18:23-35), 방탕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아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 아버지(눅 15:11-32), 강도 만났던 자를 불쌍히 여겨 살려낸 사마리아인(눅 10:25-37) 등의 본문에서도 긍휼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또한 예수님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비난하는 바리새인을 향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닌 긍휼이라고 하셨다. 

이렇듯 긍휼은 정신은 외면한 채 형식만 중시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율법의 핵심으로 말씀하셨던 의(크리시스; krisis), 인(엘레오스; eleos), 신(피스티스; pistis) 중의 하나였다(마 23:23). 

바울은 병 치유의 근원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음을 고백했으며(빌 2:27),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관련해서(롬 9:15; 11:30-32) 구원은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엡 2:4; 딛 3:5)과 은혜(엡 2:7-8)로 인해 얻는 것임을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들은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롬 12:8; 약 3:17). 또한 긍휼은 구제와 자선 등으로 나타나며 긍휼 베푸는 일은 심판 날 긍휼을 받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딤후 1:18; 유 21).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에게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롬 1:29-32; 약 2:13). → 자비를 참고하라.

긍휼을 베푼 사람들: 성경에는 긍휼을 베풀었던 사람들이 여럿 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자신을 팔아넘겼던 형들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돕고자 했다(창 50:20-21). 

모세는 양에게 물을 먹이려다가 목자들에게 쫓겨난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도와 주었으며(출 2:17)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룻이 이삭을 줍도록 배려했다(룻 2:16). 

또한 다윗은 왕이 된 후 요나단을 생각하여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다(삼하 9:1-13). 

이 외에도 기적과 회심을 체험한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돌봐 주었으며(행 16:33), 

멜리데 섬의 토인들은 여행 도중 난파당한 바울 일행을 보살펴 주기도 했다(행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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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慈悲,Mercy) : 어려운 이를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자비(Mercy) 

무력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한다. 인자(창 19:19), 은혜(창 20:13), 긍휼(마 9:13)과 같은 말이다.

구약에서 자비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여러 단어이다. 히브리어 ‘라함’(ra?am)은 긍휼의 감정이며, 주로 ‘사랑’(love)으로 번역되었다. 또 ‘하난’(hanan)은 사랑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적극적인 도움이며, 종종 ‘은혜롭다’(to be gracious) 또는 ‘자비를 베풀다’(to show mercy)로 번역되었다. 주로 ‘인애’로 번역된 ‘헤세드’(chesed)도 ‘자비’(대상 16:41)로 번역된 곳이 있다. 

헬라어 ‘엘레오스’(eleos)는 고통에 의해 우러나오는 깊은 정서적 관심을 의미하며, 적극적인 도움을 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성경에서 ‘엘레오스’를 사용하여 묘사되는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에 의해 마음이 깊이 움직이는 분이시며 우리를 그분과 원수 되게 하는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돕기를 선택하신 분이시다(약 5:11). 

자비는 특별히 복음서와 신약의 서신서에 잘 나타난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비를 간청할 때마다(마 9:27; 15:22; 17:15; 막 10:47-48; 눅 18:38-39) 예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그 사람의 필요를 채우셨다. 

예수님께서는 자비가 하나님의 성품의 기본이라고 가르치셨고(마 5:43-48 참조)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라고 선언하셨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과오 중 하나는 구약 율법의 세부사항을 강조하느라 그 뿌리가 되는 “의와 인과 신”(마 23:23; 12:7 참조)을 간과한 것이었다. 

서신서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자비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엡 2:4; 벧전 1:3).  

우리는 영적으로 무력하므로 구원을 얻기 위해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자비를 온전히 의뢰해야 한다(롬9:16).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매일매일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야 하며, 우리에게는 이런 권면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 긍휼, 사랑, 인애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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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엽다 : 가이 없다...가=아내...도울사람이 없다//

---불쌍하다 : 도울 이(짝=쌍)가 없다 또는 상서롭지 못하다(돕는 배필로 인한 토브<지고지선>를 잃어버린 상태)

---가긍하다 :불쌍하고 가엾어 도와주다

---절상하다 : 뼈가 부러지거나 뼈마디가 어긋나 다치다.

---가련하다 : 불쌍히 여겨 동정하며 돕다. 

---측은 : 불쌍히 여겨 간절히 전심으로 슬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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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 번도 생각지 않고 사용하는 말들의 어원들을 살펴보면 재미도 있고 새로운 깨달음들도 있습니다. 

‘얼굴’은 ‘정신’ 혹은 ‘영혼’을 뜻하는 ‘얼’이 들고나는 ‘굴’이랍니다. 

그래서 “나이가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도 있는 가 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정신을 가지고 살았는가가 얼굴에 묻어난다는 거지요.

‘어리석다’는 말의 유래를 누구는 ‘어리다’, ‘어린아이-스럽다’에서 찾기도 하지만 또 누구는 ‘얼이 썩은’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둘 다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느 소설을 읽다 ‘불쌍하다’는 말의 어원이 ‘不雙’ (아닐 부, 쌍 쌍)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불쌍한 상태를 “불쌍하기가 ‘짝이 없다’”고 표현했다고 하네요. ‘불쌍하다’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가엽다’는 말도 ‘가’는 ‘계집’, ‘가시내’ (그래서 가시어머니는 아내의 어머니를 뜻함)를 의미하기에 ‘아내’가 없는, ‘짝’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어떤 분들은 ‘不祥’ (아닐 부, 상서로울 상), 즉 좋지 못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만 ‘쌍’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불쌍한’ 것이라는 말이 어쩐지 저에게는 더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아마도 성경구절 한 구절이 그 순간 떠올라서 그랬을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짝을 이루지 못하고 혼자 사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아니한 것, 즉 ‘악한’ 것이 됩니다. 

아직 시집 장가가지 못한 노처녀, 노총각들이 이 글을 읽으시면 상처가 되고도 남을 만한 말들을 제가 적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성령님과 ‘짝’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동행’없이 ‘솔로’같이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불쌍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 이렇게 장황하게 말의 어원들에 대해 적은 겁니다.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성령님을 ‘보혜사’로 보내주셨습니다. ‘보혜사’는 ‘돕는 배필’이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돕는 배필’이 있음에도 간혹 우리는 ‘홀로서기’를 시도합니다. 그야말로 ‘불쌍’을 자초하는 ‘얼이 썩은’ 짓입니다.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능하신 우리의 배필 되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잘 받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그럴 때야 드디어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다워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지냅니다. 반대로 다른 성도들과 좋은 교제를 잘 나누는 것이 성령 충만의 한 비결인 것도 사실입니다. 순모임, 각 선교회 모임 등에 적극 참여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령님과 좋은 짝이 되고 다른 성도들과도 복된 짝을 이루는 상태를 성경에서는 ‘샬롬’이라 하는 겁니다.

‘샬롬’이 깨지면 참 불쌍한 겁니다. 그것 참 가엽고 불쌍하기가 짝이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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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heart, soul, mind, body] === heart(심령, 마음) in Bible = spirit(사랑과 진리의 하나님과의 교통/누림 위함)+soul(지성<생각자리-mind>정서<감성> 의지<심지>) ==>Livng Soul --->표출 : personality

------Keith Green------------------

Bring my body closer Bring my body home ""

Chliren You must learn to listen Learn to know My will

I will shower out My Spirit 

Learn to let your heart be filled. 

Bring my body closer Bring my body h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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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3:10-17]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 나는 다음의 3가지를 참되게 알기 원합니다, (*1>먼저 예수그리스도 그분자신을 더 완전히 친밀하게 알고 , 그리고  현저히 구별되는 그분의 인성의 놀라운 신비를 더 완벽하게 이해하며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2>그리고 (그분이 주신 바)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안에 넘쳐나며 생동하고 있는, 그분의 부활의 권능을 생생한 경험통해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3>세째로는 그분의 어떠하심안으로 더 (힘써) 나아가 부단없는 일치/하나됨를 통해서 마침내 ((죽음의 바로 그 순간조차도 하나님을 경외함과 믿음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그분의 죽으신 죽음까지 그 고난의 친밀한 교통에 동참함을 알기 원합니다..... 오직 이로써 죽은자로부터의 부활을 얻게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10 And this, so that I may know Him [experientially, becoming more thoroughly acquainted with Him, understanding the remarkable wonders of His Person more completely] and [in that same way experience]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which overflows and is active in believers], and [that I may share]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by being continually conformed [inwardly into His likeness even] to His death [dying as He did]; 11 [d]so that I may attain to the resurrection [that will raise me] from the dead.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 내가 이미 그리스도를 빼어닮고자하는 목표를 온전히 이루었다거나, 죽은자로부터 부활을 이미 얻었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 다만 나는 그리스도예수께서 먼저 나를 붙드사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기에 그것을 능동적으로 힘써 추구하고 있습니다. Not that I have already obtained it [this goal of being Christlike] or have already been made perfect, but I actively press on [e]so that I may take hold of that [perfection] for which Christ Jesus took hold of me and made me His own.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 형제자매여러분 생각컨데, 나는 그 목표가 아직까지는 내것이 되지 않았다고 여깁니다. 다만 지금 제가 힘쓰는 것은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붙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위로부터 불러내신 바,  하늘의 상급을 얻는 그 목표를 향해 힘써 나아갈 따름입니다. 13 [f]Brothers and sisters, I do not consider that I have made it my own yet; but one thing I do: forgetting what lies behind and reaching forward to what lies ahead, 14 I press on toward the goal to win the [heavenly] prize of the upward call of God in Christ Jesus.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 영적완전함을 추구하고 있는 우리, 곧 성숙한 이들 모두는 마땅히 이러한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점에서 어떤 다른 측면이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명백하게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지금 얻었고 서 있는 바로 그것을 참되게 행하도록 하십시다. 형제자매여러분, 모두 함께 나의 선례를 따르도록 하십시요. 또한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보여준 패턴대로 사는 이들을 잘 분별하며 눈여겨 보십시요 15 All of us who are mature [pursuing spiritual perfection] should have this attitude. And if in any respect you have a different attitude, that too God will make clear to you. 16 Only let us stay true to what we have already attained. 17 Brothers and sisters, together follow my example and observe those who live by the pattern we ga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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