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9.06.0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기도.시2편.하나님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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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랑하올 아버지여,

이 아침, 자애로운 그 손길로 이끄심따라,  보혈 의지하여, 기쁨과 떨림으로 나아옵니다

--우리를 완전히 아시는 하나님, 의식보다 호흡보다 더 가까우신 사랑의 아버지여, 

주안에 감추인 새 생명, 하늘 안식과 기쁨, 그 영광 열어주소서 우릴 안으소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마음 눈 밝히사 친히 기업되신 하나님 , 참되게 알게 하옵소서. ((참생명 창조주Q, 나와 동행하시는  내 반석.. 그 거룩함, 그 선하심, 그진실하심과 인자하심...그 사랑과 열심으로 나를 안아주심이여!!...나를 보내신 아버지 그 뜻 이루소서))

--연인의 사랑앓이보다 더한 열정으로, 그토록 간절히 우릴 원하시는 하나님, ((오직 주음성은  우리의 극락의 기쁨이니!!))

아버지와 아드님안에 흐르는 그 극진하고 친밀한 사랑, 그 열정과 헌신-섬김을, 우리의 두팔과 심장에도 인쳐 주사 순전-온전케 하옵소서,

날마다 얼굴 대하며 생각과 심정을 알아드리는 친밀함, 늘 새로운 생생한 알아감, 매료되어 이끌림, 샘솟는 사랑과 헌신으로 하나되어 행함, 

지극히 사소한 일 하나조차 그 사랑의 감동따라  행하도록 일깨우소서..((Q의 모든말씀, 십자가복음을 살아내는 복음전도자, 생활선교사로 이땅에 파송하신Q))

--비록 고난중에 있을찌라도 휘둘림없이 주이름 부르며 드리는, 눈물과 애통, 사랑과 감사의 제사를 흠향하옵소서.

베푸시는 성찬을 통해 주와 하나됨의 생생한 신비, 그 무궁한 능력을 경험케 하소서, 

일편단심 주님 신뢰하며 맡겨드리며 잘 참고 견딤 통해 믿음으로 이미 이긴 이김. 그 누림을 영안에서 기대합니다

마침내 이루실 지고지선의 뜻, 아드님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 그 거룩함 빼어닮게 하옵소서.

--아버지여, 주님의 교회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 말씀으로 적셔지며 점유되고 충만케 하소서

말씀 앞에 참되게 회개하는, 부드럽고 열린 감동된 마음 주소서 

주님이 원하시는 참사랑, 바로 그대로 섬기게 하시며, 상호 거함과 누림, 온전케 하옵소서

성령안에서 기도와 간구, 도고로, 범사에 주님의 뜻 구하며, 

이끄심따라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주님 가시는 곳 그 어디든지 동행하며

일깨우실 때마다 순종하고, 감동된 말씀을 말하며, 주님을, 주님에 대해 말하며, 주님을 살아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모두 겸손과 온유 - 오래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며 평강의 띠로  하나되고,

서로 돌아보아 함께 짐을 지며, 경청하고 공감하며, 서로 먼저 존대하고 존중하여 섬기는 자녀들, 

받은 바 그 모든 풍성을, 드리고 나누며 베풀고 공급하는, 성숙한 아들들 만드소서 

주님갈망 그대로, [또하나의 <성육신>과 동일시, 참제자요 증인된 삶] 이루시옵소서

이로써, 삶터마다 하나님나라의 능력으로 섬기며,  치유하며 전도하는 교회

영적 후사와 다음 세대를 끊임없이 산출공급하며, 사도행전29장을 사는 <성령행전>교회, 

말씀따라 절대 긍정-절대신뢰하는 믿음으로 살며, 소망의 인내 이루며, 사랑의 그 능력으로 행하는 교회, 

마침내 주님 열망하시는 신부, 사도적 교회- 예언적 교회-선교적 교회를 살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예비하셔서,  목사님을 단에 세우셨사오니 

성령의 감동, 기름바르신 그 입술 통해, 주님의 심정과 뜻과 그 영광 친히 나타내시옵소서...

--이시간, 듣는이 모두, 열어주시는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기쁨으로 반응하는 기경된 단 마음 주셔서, <영과 생명>의 하늘양식, 흡족히 누리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지전능하신 분, 영존하시는 하나님, 

십자가로 부르신 그분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반응하여 그 분의 무궁한 사랑, 안아주심 그 안에 믿음으로 하나되어 거하며 안식하는 자, 

한량없이 아낌없이 전존재를 주시는 그 사랑의 임재안에 잠겨, 적셔지고 점유되고 충만케 되고..오!! 하나님을 하나님 그대로 참되게 알아가며 경외하며 사랑함...

너무 사랑하기에... 자연스레 그의 기뻐하시는 것을 자원하여 행하며.. 바라시는 뜻 이뤄드림을 전심으로 추구하며... 행하시는 그길에 동행하는 자의 기쁨이여!!

[렘(9:23-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나 주가 말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아라.  Thus saith the LORD, Let not the wise man glory in his wisdom, neither let the mighty man glory in his might, let not the rich man glory in his riches:....Thus says the Lord, “Let not the one who is wise and skillful boast in his insight; let not the one who is mighty and powerful boast in his strength; let not the one who is rich boast in his [temporal satisfactions and earthly] abundance;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직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여라. 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만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 But let him that glorieth glory in this, that he understandeth and knoweth me, that I am the LORD which exercise lovingkindness, judgment, and righteousness, i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saith the LORD.....but let the one who boasts boast in this, that he understands and knows Me [and acknowledges Me and honors Me as God and recognizes without any doubt], that I am the Lord who practices lovingkindness, justice and righteousness o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says the Lord.

[[호2:19-20]]

*19.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그 때에 내가 너를 영원히 아내로 맞아들이고, 너에게 정의와 공평으로 대하고, 너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긍휼을 보여 주고, 너를 아내로 삼겠다....And I will betroth thee unto me for ever; yea, I will betroth thee unto me in righteousness, and in judgment, and in lovingkindness, and in mercies...And I will betroth you (Israel) to Me forever; Yes, I will betroth you to Me in righteousness and in justice, In lovingkindness and loyalty, and in compassion.

*20.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내가 너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너와 결혼하겠다. 그러면 너는 나 주를 바로 알 것이다....I will even betroth thee unto me in faithfulness: and thou shalt know the LORD....I will betroth you to Me in stability and in faithfulness. Then you will know (recognize, appreciate) the Lord [and respond with loving faithfulness].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그 날에 내가 응답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And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I will hear, saith the LORD, I will hear the heavens, and they shall hear the earth;....“It will come about in that day that I will respond,” says the Lord. “I will respond to the heavens [which ask for rain to pour on the earth], and they will respond to the earth [which begs for the rain],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에 응답하고, 이 먹거리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할 것이다....And the earth shall hear the corn, and the wine, and the oil; and they shall hear Jezreel...And the earth shall respond to the grain and the new wine and the oil [which beg it to bring them forth], And they will respond to Jezreel [My Israel, who will now be restored] 

*23.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을 이 땅에 심어서 나의 백성으로 키우고, 로루하마를 사랑하여 루하마가 되게 할 것이다. 로암미에게 '이제 너는 암미다!' 하고 내가 말하면, 그가 나에게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And I will sow her unto me in the earth; and I will have mercy upon her that had not obtained mercy; and I will say to them which were not my people, Thou art my people; and they shall say, Thou art my God...“I will sow her for Myself in the land. I will also have mercy on her who had not obtained mercy; And I will say to those who were not My people, ‘You are My people,’ And they will say, ‘You are my God!’”...(마11:19, 27(26-30)..아버지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또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영원히 사랑하올 아바 아버지여, *구원: 주의 선하심-인자하심-신실하심( 미쁘심) 의지, 사랑의 일치로 하나된 주안에, 그분을 앙망하며, 그분과 함께 사는 것.**[앎의 비밀]이름/존재존중-이웃, 색깔/취향/감성-친구, 모양/형상/성품[자세히, 오래 보기]사랑-연인 **비전 : 죄로 인해 잃어버린 바된 하나님 자녀의 모양/형상(성품과 능력)-온전한 회복-돕는 자.....나의 의미-가치-전부, 부활생명 성령님, 날마다 오소서, 오늘도 새롭게 보혈로 나를 만지소서, 그 감격으로 나를 사로잡으소서. 주 임재의 충만, 친밀함, 그 감동으로. 주님 뜻하신 바 그대로 내게 이루소서

날마다 자행자제함으로 주님 마음 찢어 놓는 연약한 우리, [십자가를 의지하여 나아오라]하심따라, 보혈 의지하여, 기쁨과 떨림으로 주 앞에 나아옵니다

--우리를 완전히 아시는 하나님, 우리의 의식보다 호흡보다 더 가까우신 사랑의 아버지여, 

온맘다해 주이름 부르오니, 하늘 안식과 기쁨, 은총, 그 영광 열어주소서

성령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마음 눈 밝히사 친히 기업되신 하나님 , 참되게 알고 따르도록 이끄소서 

--연인의 사랑앓이보다 더한 열정으로, 그토록 간절히 우릴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드님을 향한, 주예수님의 아버지를 향한 그 극진하고 친밀한 사랑, 그 열정과 헌신을, 두팔과 심장에 인쳐 주소서,

날마다 얼굴 대면하며, 생각과 심정을 알아드림의 친밀함, 

늘 새로운 생생한 알아감, 매료되어 이끌림, 샘솟는 사랑-자원함의 헌신으로 하나되어 행함, 

지극히 사소한 일 하나라도 오직 사랑의 감동따라 행하는 자녀들..

주님을 얻고 그안에서 발견되는 친밀한 기쁨 열어 주옵소서, 

--고난중에 있는 성도들을 주님 영광안에 친히 붙드소서. 주여, 

예수님 생각 통해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주 안에 거하며, 산믿음을 발휘함으로 이미 이긴 이김을 누리게 하소서 

일편단심으로 주님 신뢰하고 잘 참아 인내하며, 마침내 이루실  지고지선의 뜻, 아드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그 성숙함 이루게 하소서.

--아버지여, 교회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 말씀으로 적셔지며 점유되고 충만케 하소서

말씀 앞에 기쁨과 떨림으로 회개하는, 부드럽고 열린 감동된 마음 주소서 주님 기뻐하시는 참사랑, 상호 거함과 누림 온전케 하옵소서

일깨우실 때마다 순종하고, 주께서 넣어주시는 감동된 말씀을 말하며, 주님을 말하며 주님에 대해 말함으로 주님을 살아내게 하여 주옵소서.

더 나아가 믿음으로 산을 옮기며, 주님갈망 그대로, [또하나의 <성육신>과 동일시, 참제자요 증인된 삶] 살아내게 하소서.

서 있는 곳 어디서나 성령안에서 기도와 간구, 도고로, 범사에 주님의 뜻 구하며, 

내가 먼저 겸손과 온유 - 오래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며 평강의 띠로 하나되고,

서로 돌아보아 함께 짐을 지며, 경청하고 공감하며, 서로 먼저 존대하고 존중하여 섬기는 자녀들, 

받은 바 그 모든 풍성을,  드리고 나누며 베풀고 공급하는, 주 영광의 통로됨 기뻐하는 성숙한 아들들 만드소서 

이로써, 삶터마다 하나님나라의 능력으로 섬기며,  세상을 치유하며 전도하는 교회

영적 후사와 다음 세대를 끊임없이 산출공급하며, 사도행전29장을 사는 <성령행전>교회, 

말씀따라 절대 긍정-절대신뢰하는 믿음으로 살며, 소망의 인내 이루며, 사랑의 그 능력으로 행하는 교회, 

마침내 주님 열망하시는 사도적 교회- 예언적 교회-선교적 교회를 살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예비하사,  목사님을 단에 세우셨사오니 

성령의 감동, 기름바르신 그 입술 통해, 주님의 심정과 뜻과 그 영광 친히 나타내시옵소서...

--이시간, 듣는이마다 모두 열어주시는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기쁨으로 반응하는 기경된 단 마음 주사, <영과 생명> 하늘양식 흡족히 누리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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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거룩함의 궁극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겨운 순종....하나님의 모든 말씀이시며, 내주하시며 친히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전지전능의 창조주, 예수그리스도...외적 조건/환경/상황이 어떠하든지 어떻게 변하든지 상관없이 범사에 하나님의 아버지요 주되심 인정, 그분을 참되게 알고 사랑하며 섬기는 삶이 자녀된 나자신과 그분에게 지고지선(토브)임을 인정하고 의뢰하기.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은혜, 곧 아버지가 아드님을 사랑하심처럼 나를 보배롭고 존귀히 여기심으로써 아드님의 거룩함의 장성함의 분량의 충만으로 이끄심 인정하고 신뢰하며, 나를 부인하고 내려놓고 내어 비워드려 초월적 소통/교통안에서 완전하신 주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새로이 경험하며 구원경륜, 초월적 사랑과 열심을 알아드리며, 이 땅을 거니신 아드님과 아버지의 성령님 통한 초월적 연합/일치를 배워 그대로 믿고 실행하며 그분의 영광의 풍성-부요-충만으로 공급-보호-인도-동행하며, 주님의 명령과 부탁하신 모든 것을 주님의 마음과 심정으로 절실히 동감하며 사랑겨운 순종과 자원함의 헌신으로 따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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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편]===============

앞의 시편1편이 도덕적이며 우리에게 우리의 의무를 제시해 주었던 반면에 이 시편은 복음적이며 우리에게 우리 구세주를 보여주고 있다. 

다윗 왕국의 모형 아래(거룩한 약속에 의한 것으로서 많은 도전을 받았으나, 결국은 이긴 왕국이다) 다윗의 아들인 메시야의 왕국이 예언되어 있는데, 이것이 시편의 주된 의도며, 그 범위가 되고 있다. 

나는 여기에는 어떤 복음적인 시편에서보다는 그 모형이 적고 오히려 원형이 더 많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그리스도께 적용되는 것만이 있고, 어떤 것들은 다윗에게 전혀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6-7). “너는 내 아들이라”(8), “내가 네게 땅 끝까지 주리라”, 그리고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12), 이런 구절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행 4:27, 13:33; 히 1:5).

성령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예시하고 있다.

1. 메시야의 왕국에 있을 도전(1-3).

2. 그 도전에 대한 좌절과 징계(4-5)

3. 그 도전에도 불구하고 이룩될 그리스도의 왕국(6).

4. 그것의 확립과 설립(7).

5. 그것이 확대되고 성공하리라는 약속(8-9).

6. 왕과 방백들이 그들 스스로를 기꺼이 이 왕국에 복종하라고 하는 요구와 권고(10-12).

또는, 이것을 이렇게 볼 수 있다.

1. 그리스도 왕국의 적대자들에게 선포된 위협들(1-6).

2. 그 왕국의 우두머리인 그리스도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7-9).

3. 이 왕국의 세력을 지지하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진 권고(10-12).

이 시편은 앞의 것과 같이 이 믿음의 책 앞부분에 매우 합당하게 붙여져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분의 율법의 계율에 복종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복음의 은혜에 복종해야 하고, 중재자의 이름을 통해 그분에게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다.


메시야의 대적과 그의 승리(시 2:1-6)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Why are the nations in an uproar And the peoples devising a vain thing?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The kings of the earth take their stand And the rulers take counsel together Against the LORD and against His Anointed, saying,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Let us tear their fetters apart And cast away their cords from us!"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He who sits in the heavens laughs, The Lord scoffs at them.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Then He will speak to them in His anger And terrify them in His fury, saying,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But as for Me, I have installed My King Upon Zion, My holy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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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 왕국을 둘러싼 매우 큰 투쟁, 그것을 얻기 위한 지옥과 천국의 투쟁을 볼 수 있다. 그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이 땅이다. 이곳에서 사단은 오랫동안 왕국을 찬탈해 왔으며, 그는 우리가 호흡하는 그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이 땅을 강하게 지배해 왔다. 그 사단도 메시야의 왕국이 일어나 자리잡을 때는 그가 몰락하고 땅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 왕국은 분명히 세워질 것이며, 절대로 나약하게 세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Ⅰ. 메시야와 그분의 나라에, 그분의 거룩한 종교와 그 모든 유익에 대한 강한 도전이 있을 것이다(1-3절).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부여되는 그처럼 큰 축복이 보편적으로 환영받고 받아들여질 것이며, 각 단마다 메시야의 축복에 즉시 고개를 숙이고 땅 위의 모든 면류관과 왕홀은 그분의 발 아래 바쳐질 것을 기대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반대로 나타난다. 어떤 부류에 속한 철학자들의 견해가 아무리 어리석다 해도, 또한 어떤 왕이나 국가의 권력이 아무리 포악하다 해도, 그리스도의 교리와 그 통치권처럼 강력히 도전당한 적은 결코 없었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의 교리와 그 통치권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는 신호다. 왜냐하면 그 도전은 근본적으로 지옥으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 우리는 여기에서 누가 그리스도의 적대자로 나타나며, 누가 마귀의 도구가 되어 그분의 나라에 도전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왕과 백성들, 궁궐과 나라가 때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 분리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해 다시 연합한다. 강대한 자들만이 아니라, 군중들, “열방”, “민족들”의 무리들과 단체들도 연합한다. 그들이 일반적으로 자유를 좋아할지라도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선포하고 마련하신 자유를 싫어한다. 군중들뿐만 아니라, 유력한 자들(우리는 이들 중 어느 누가 좀더 신중히 생각하고 잘 판단해 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까지도 그리스도를 대적해 폭동을 일으킨다. 그분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의도가 조금도 없고, 만일 그들이 원한다면 매우 원만하게 그것을 강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즉시 무장을 하고 일어선다. 여자의 후손에 대해 뱀의 후손이 지니고 있는 옛 적대감의 결과를 보고, 인류의 타락이 얼마나 보편적이며 해로운 것인가를 보라. 교회의 대적들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보라. 그들은 무수하고 그들은 유력하다. 여기에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열방”이라 칭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들 조상의 믿음과 거룩함을 버리고 매우 비참하게 타락해 버렸다. 그들은 크리스천들을 박해하도록 열방, 즉 이방인들을 선동한다. 블레셋 사람들과 그 방백들, 사울과 그 신하들, 그리고 불만을 품고 있는 무리들과 그 주동자들이 면류관을 향해 오는 다윗에게 도전한 것과 같이, 헤롯과 빌라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사람들 속에 자리잡은 그분의 세력을 대적하기 위해 그들의 온갖 힘을 기울였다(행 4:27).

2. 그들은 누구와 싸우기 위해 온힘을 모으는가?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려는, 즉 일반적인 모든 믿음과 특별한 크리스천의 믿음을 대적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아무리 가장할지라도 하나님 자신을 대적하는 자임이 확실하다.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요 15:24). 다윗에게 기름부어 왕이 되게 한 우리의 거룩한 믿음의 주인공을 가리켜 여기에서 “여호와의 기름받은 자”, “메시야”, 또는 “그리스도”라 일컫고 있다. 그분은 교회의 우두머리와 왕이 될 권한과 자격을 모두 갖추셨고, 모든 면에서 합당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분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 아니,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을 대적하고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참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승진을 시기하고 있고, 거룩한 성령에 대해 깊이 뿌리박고 있는 적대감을 갖고 있다.

3. 그들이 행한 도전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1) 그것은 매우 악의에 찬 해로운 도전이다. 그들은 “분노”하며 불평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지는 것에 노하며 이를 간다. 그것은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불만을 안겨다주며, 그들을 온통 분노로 가득 채운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 즐거움을 갖지 못한다(눅 13:14; 요 11:47; 행 5:17, 5:33, 19:28 참조).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 자신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고는 분노했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영광이 소멸되고, 그들이 빼앗은 통치권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분노했다. 악을 행한 자들은 빛에 분노한다.

(2) 그것은 고의적이고 정책적인 도전이다. 그들은 “꾀하고” 계획한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 왕국의 세력이 일어나는 것을 억압할 방법을 고안해 내며, 그들의 계략이 성공하리라고 크게 확신한다. 그들은 믿음을 전멸시키고 낮을 정복하게 되리라고 그들 자신에게 약속한다.

(3) 그것은 단호하고 완전한 도전이다. 그들은 이성과 양심, 그리고 주님의 모든 두려움에 도전해 “나서며”, 안색을 돌같이 굳히고 마음을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한다. 그들은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처럼 교만하고 대담하며, 무엇이 다가오든 단호하게 저항한다.

(4) 그것은 연합되고 공모된 도전이다. 그들은 이 도전을 하도록 “서로 꾀하며”, 서로 돕고 격려한다. 그들은 온힘을 기울여 메시야를 대적하는 거룩하지 못한 전쟁을 밀고 나갈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서로 꾀하고 음모를 꾸미며, 그리스도 왕국이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그들의 모든 기지를 동원해 낸다(83:5).

4.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이 화내는 것은 무엇이며, 이 도전 속에서 노리는 목표는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3절). “우리가 그 맨 것을 끊자.” 그들은 어떤 지배 아래 있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벨리알의 자손으로서 속박을 견디지 못하며, 여호와와 그의 기름받은 자의 속박마저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메시야 왕국이 그들의 논쟁거리가 되어줄 것이며, 그것이 그들 자신의 통치권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만일 여호와와 그의 기름받은 자가 자기들을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위대하게 만들어준다면 그들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와 그의 기름받은 자가 그들의 타락한 욕구와 감정을 제재하고 그들의 마음과 생활을 단속하고 개혁하려 한다면, 진실로 “그들은 이 사람이 그들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할 것이다”(눅 19:14).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맨 것과 결박”을 갖고 계신다. 그분에 의해 구원받으려는 자들은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올바른 이성에 합당한 “인간의 결박”이며, 우리의 참된 유익을 위한 “사랑의 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대적하는 싸움이 있다. 왜 사람들은 단지 그들이 그 제재와 의무를 견뎌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믿음에 도전하는가? 그들은 그들을 제어하고 있는 양심의 줄을 끊을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모든 죄에서 떠나 모든 의무를 행하도록 그들을 결속시킨 하나님 계명의 결박을 끊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멀리 벗어버리려 한다.

5. 그들은 그것에 관해 여기에서 논박당하고 있다(1절). 어찌하여 그들이 이렇게 행하는가?

(1) 그들은 이처럼 의롭고 거룩하며 은혜로운 다스림에 도전하는 데에 정당한 이유를 댈 수도 없다. 그것은 세속적인 권세를 방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왕이나 그 나라에 해가 되는 어떤 위험한 훈계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다스림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땅 위에는 천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2) 그들은 이처럼 강대한 왕국에 도전해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없다. 그들은 그 왕국과 겨루기에는 아주 무능력하다. 그런 도전은 “헛된 일”이다. 그들이 최악의 일을 행했을 때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교회를 갖게 될 것이며, 그 교회는 영광스럽게 되고 개가를 올릴 것이다. 교회는 “반석 위에 세워지며, 그곳에는 지옥의 권세가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달을 향해 개가 짖을지라도 달은 찬란히 빛난다.

Ⅱ. 그 강력한 정복자는 위협하는 이 모든 도전을 이기신다. 만일 하늘과 땅이 격투한다면 어느 것이 승자가 될 것인가를 예언하기는 쉽다. 이 강한 투쟁을 벌이는 자들은 땅의 백성들이며, 세상의 군왕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땅에서 났으므로 세속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겨루고 있는 분은 “하늘에 계신 자”다(4절). 그분은 하늘에 계시며, 그곳은 매우 광대한 전망을 가진 곳이기 때문에 그들 모두와 그들의 모든 계획을 내려다보실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의 이런 능력으로 그들과 그들의 모든 공격을 누르실 수 있다. 그분은 그들의 모든 무력한 위협과 공격이 미치지 않는 곳에 앉아 편히 쉬고 계신다. 그분은 사람의 자손들의 모든 일들을 판단하시는 재판장으로서 그곳에 앉아 계시며, 모든 대적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계획과 목표를 안전한 가운데서 완전하게 이행하신다(29:10). 영원한 심령(Eternal Mind)의 온전한 휴식은 우리 마음의 불안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땅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시달림을 당한다. 그러나 그분은 하늘에 앉아 계시며, 그곳에 심판을 위한 그분의 보좌를 마련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일이 가능하다.

1. 그리스도 대적들의 공격은 쉽사리 조롱당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리석은 무리로 여기시어 “웃으신다.” 그분은 그들과 그 모든 사도들을 “비웃으신다.” 그러므로 “처녀딸 시온이 그들을 멸시하였다”(사 37:22). 죄인들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에 비해 하나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단 왕국의 이런 계략들이 우리의 눈에는 매우 거대하게 보이나, 하나님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하나님은 당신의 대적들을 소멸하시기 위해 “깨어나시고 일어나시며 스스로 격동하신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분이 “가만히 계시어” 그들을 격파하신다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전능에서 나온 큰 힘에는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야기되지 않으며, 그분의 영원한 휴식은 조금도 방해받지 않는다.

2. 그들은 마땅히 처형당한다(5절). 비록 하나님은 그들을 무력한 자로 비웃으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죄를 간과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무례함과 불경건함으로 인해 당연히 그들을 불쾌히 여기시고, 그분은 가장 무엄한 죄인들로 하여금 그분의 진노를 알게 하고 그 앞에서 떨도록 만드실 것이다.

(1) 그들의 죄는 그를 격노케 한다. 그는 노하시며, 그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우리와 화해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리라 함을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은 그의 기름받은 자 안에서, 그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모욕하고 거절하면 구원을 대적하는 죄를 범하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재에서 오는 유익을 박탈당하게 된다.

(2) 하나님의 분노는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그의 진노를 말하시기만 한다면 그 입술의 기운만으로라도 그들을 혼비백산시키며 죽일 수 있다(사 11:4; 살후 2:8). 그가 말씀하시면 그것은 이루어진다. 그가 진노를 발하시면 죄인들은 파멸한다. 한마디의 말씀이 우리를 만드신 것처럼 한마디의 말씀이 우리를 다시 멸망시킬 수도 있다. “누가 그의 진노의 힘을 알리요?” 대적들은 분노하나 하나님을 괴롭힐 수는 없다. 하나님은 가만히 앉아 계실지라도 그들을 괴롭히고 놀라게 하시며, (글자 그대로) 그들의 기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다. 그들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의 아들의 왕국을 세우시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큰 괴로움이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선한 종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그들이 괴로움으로 보상받을 날은 오고 있다.

3. 그들은 분명 패하며, 그들의 모든 계략은 허사가 된다(6절).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다윗은 그의 왕국을 방해하는 반항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소경과 절뚝발이, 그리고 불구인 병사들의 이야기로 그를 조롱한 시온의 주둔병들로부터 모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삼하 5:6), 그는 보좌를 획득했고 시온 요새의 주인이 되었다. 주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으로 높이 들리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갖고 계신다. 그리고 대적들이 그의 진보를 방해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모든 일을 지휘하신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며, 섭리와 은총의 왕국을 다스리시는 권세와 위엄을 갖고 계시고, 능력의 근원이신 자로부터 감독을 받는다.

(2) 하나님은 그를 “나의 왕”이라고 부르기를 기뻐하신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셨고 최고의 통치와 심판을 위임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왕이시다. 그는 성부(聖父)의 사랑받는 자이며, 그가 기뻐하시는 자이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는 이 영광을 그 자신이 취하지 않으시고, 그를 부르신 자에게 돌려드렸다. “내가 그를 세웠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그의 계명, 그의 명령을 받은 것이다.

(4) 이런 영광의 자리에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자리는 확고했다. 높은 지위는 미끄러지기 쉬운 자리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들어올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자리가 확고하다. “내가 그를 세웠다. 내가 그를 견고케 하였다.”

(5) 그는 “시온” 즉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세움받았다. 이것은 복음교회의 한 모형이다. 온 산이 “거룩한 산”으로 불리기 위해, 그 위에 성전이 세워졌다. 그리스도의 보좌는 그의 교회에, 즉 모든 믿는 자의 마음과 그들이 형성한 사회 속에 세워진다. 그리스도의 복음적인 율법은 “시온산에 오르는”(사 2:3; 미 4:2) 것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곳은 이 총회의 집결지, 곧 사람의 자녀들이 즐거워할 왕실로 일컬어진다.

우리는 그리스도 왕국의 모든 대적들에 대해 승전가를 부르고(그들은 모두가 곧 그의 발등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고), 능력의 위대한 보관인인 그리스도 안에서 개가를 올리면서 거룩한 환희를 품고 이 구절들을 노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의 나라가임하옵시며, 아들의 왕국이 오게 하소서” 하고 굳은 확신 속에서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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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대적에 대한 경고(시 2:7-9)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I will surely tell of the decree of the LORD: He said to Me, 'You are My Son, Today I have begotten You.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Ask of Me, and I will surely give the nations as Your inheritance, And the very ends of the earth as Your possession.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You shall break them with a rod of iron, You shall shatter them like earthen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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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군왕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적해 말하는 것을 들었고, 하늘에 계신 자에 의해 그것이 반박당하는 것도 들었다. 이제 우리는 메시야 자신이 그의 왕국을 위해 말해야 하고, 선포해야 할 것을 들어보기로 하자. 그것은 땅 위의 어떤 권능도 반박할 수 없는 것이다.

Ⅰ. 메시아의 왕국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율, 영원한 계율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는 갑자기 결정된 것이 아니고 시험적인 것도 아니며, 모든 세상에 대한, 거룩한 지혜에 의한 계획과 거룩한 뜻에 의한 결정의 결과다. 그러므로 그 어느 것도 변경될 수 없다. 즉, 그것은(어떤 사람의 풀이대로) “계율”이나 “법령” (또 다른 사람들의 풀이대로) “언약”이나 “계약”, 그리고 인간의 구속에 관한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사이의 연합적인 계약인데, 이것은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주어진 왕실에 관한 언약으로써 제시되어 있다(89:3). 우리 주 예수도 그의 모든 행함 속에서 그가 그 언약에 지배되고 있다 함을 자주 언급하셨다. “이것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이라”(요 6:40).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 10:18, 14:31).

Ⅱ. 될 수 있는 한, 이 왕에게 스스로 복종하도록 부름받고 명령받은 자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그리고 그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변명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이 계율이 선포되었다. 그 계율은 은밀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태초에 일하시기 전, 아들을 가지셨을 때에 그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충성된 증인에 의해 선포되었다. 그는 영원으로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에 있었고, 그를 나타내기 위해 교회의 선지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요 1:18). 모든 존재의 근원은 의심할 것 없이 모든 힘의 근원이다. 그리고 메시야가 주장하는 것은 그에 의한 것이며, 그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의 아래 있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가 그에게 말씀하셨던 것에 의해 다스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고, 다스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그의 나라에 이중적인 직위를 부여하고 있다.

1. 기업(基業)에 의한 직위(7절).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히브리서 1장 5절에서 한 사도는 그리스도가 천사들보다 더 뛰어난 이름을 갖고 있으며, 그가 그것을 “기업으로 얻으셨다”(4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양아들이 아니라 그가 낳은 아들이요, 아버지의 유일한 독생자다(요 1:14). 그리고 아버지는 그를 소유하고 계시며, 이 사실은 그가 왜 거룩한 시온산에 왕을 세우셨는가 하는 이유로서 세상에 나타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위대한 위탁을 부여받았고, 또 그에 대한 완전한 자격을 얻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아버지와 동등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신 안에 충만한 신성과 무한한 지혜, 능력과 거룩함을 갖고 계신다. 교회의 절대적 통치는 단순한 피조물에게는 너무 높은 영광이며, 힘에 겨운 일이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며, “영원부터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었고(잠 8:30), 또 완전히 그의 뜻을 알고 있는 자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것에 합당할 수가 없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의 귀하고도 사랑하는 아들이며, 그가 기뻐하시는 자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왕으로 모셔야 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기” 때문이다(요 3:35, 5:20).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의 상속자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를 통해 세상을 만드셨으므로 또한 아버지가 그를 통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추론하기는 쉽다. 그는 영원한 지혜며, 영원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 각자도 그에게 “당신은 나의 주님이며 통치자이십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 나아가서 우리로 하여금 그의 나라가 부자관계 위에 잘 세워져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의 부자관계는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가 나타나 있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는 그의 영원한 출생 자체를 언급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그의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인용되었기 때문이다(5절). 또한 그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실을 나타내고 확증하기 위해 언급되고 있다. 한 사도는 그것을 사도행전 13장 33절에서 특별히 적용시키고 있다.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다.” 선지자 요나의 표적이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확실한 것이 된 것, 즉 그가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것은(롬 1:4)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다(계 1:5; 골 1:18). 그는 부활하신 즉시 그의 중재적인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그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도다”고 말씀하셨고, 그의 제자들에게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고 기도드리도록 가르쳤을 때도 그는 특별히 이 말씀에 주목했다.

2. 언약에 의한 직위(8, 9절). 그 언약은 간단히 말해서 이런 것이다. 아들은 중재자의 직책을 맡아 그 조건으로 온 우주적인 왕권의 영광과 권능을 갖게 될 것이다. 이사야 53장 12절을 보라. “그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리니, 이는 그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니라.” “그가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눅 6:13).

(1) 아들은 물어봐야만 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같은 그가 능력과 영광에서 아버지와 동등해 아무것도 물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인간의 본성을 취하시어 아버지보다 못한 상태를 자발적으로 취하셨다는 사실을 가정케 한다. 이런 사실은 그의 중재의 힘에 의해서만이 만족을 얻을 수 있고, 이 거대한 요청이 근거해야 할 값비싼 지불을 가정한다(요 17:4-5 참조). 아들은 열방을 자기의 기업으로 요구함에 그 자신의 영예뿐만 아니라, 자기 안에서 가질 그들의 행복도 목표로 삼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위해 중재하시며 언제나 그렇게 행하신다. 따라서 그는 최대한으로 구원하실 수 있다.

(2) 하나님 아버지는 그 왕국의 절반 이상을, 심지어 왕국 자체까지도 양도하실 것이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약속되어 있다.

① 그는 만인을 다스릴 것이다. 그는 “열방”을 그의 유업으로 얻을 것이다. 즉, 오랫동안 감금되어 있던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그의 유업으로 얻을 것이다. “땅 끝”에 있는 자들까지(우리의 이 민족과 마찬가지로) 그의 “소유”가 될 것이며, 그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꺼이 충성된 종이 되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얻을 것이다. 세례받은 크리스천들은 주 예수의 소유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게 명예와 찬사가 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성령과 은혜로써 그들의 목이 주 예수의 굴레에 순종하도록 역사하실 그때에 그들을 아들에게 주신다. 이 일은 어느 정도 이행되었다. 이방인 세계의 많은 무리가 복음이 처음 전파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였고, 오랫동안 사단의 자리가 있었던 곳에 그리스도의 보좌가 세워졌다. 그러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려면(계 11:15) 아직 더 행해져야 한다. “하나님이 이것을 행하실 때에 누가 살겠는가?”

② 그 왕국은 승리를 거둘 것이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그들 가운데 네 나라를 대적하는 자들을) 깨뜨리리로다”(9절). 이것은 유대 민족 중 그리스도의 복음을 완강히 불신하고 대적한 자들이 로마 사람의 힘에 의해 멸망당했을 때 어느 정도 수행되었는데, 로마 사람의 힘이 여기에서는 철장으로 나타나 있으나, 다니엘에서는 철의 발(단 2:40-41)로 되어 있다. 이 말씀은 크리스천의 믿음이 이룩되어 우상 숭배자들의 힘이 파괴되었을 때 더 이룩되었다. 그러나 대적하는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이 최종적으로 전멸되기 전에는 완전히 수행되지는 않을 것이다(110:5-6, 고전 15:24 참조) 그리스도는 얼마나 강하시며, 그 앞에 있는 그의 나라의 대적들은 얼마나 약한가를 보라. 그는 철장을 갖고 계시며, 그것으로 그의 황금홀에 복종하려 하지 않는 자들을 짓이기실 것이다. 그들은 그 앞에서는 옹기장이에 의해 갑자기 쉽게 그리고 돌이킬 수 없도록 산산조각이 나는 질그릇에 불과하다(계 2:27 참조). “네가 그것을 행하도록 하리라. 즉 네가 그것을 행하도록 허락하리라.” 복음교회가 세워지지 못하게 되느니보다는 차라리 백성들이 멸하게 되는 것이 낫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사람들을 주어 너로 바꾸리라”(사 43:4). “네게 그것을 행할 능력을 주리라. 아무도 네 앞에 서지 못하게 할 것이고, 너로 그것을 훌륭히 행하게 하리라.” 굽히지 않으려는 자들은 부러질 것이다.

이 구절을 노래하고, 거듭 간구함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며, 우리의 합당한 주인인 그리스도께 영광 돌려야 하며, 이 약속에서 위로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확대되고 견고해져서 모든 대적자들을 물리쳐 이기게 되도록 하나님께 탄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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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의 대적들에게 주는 경고(시 2:10-12)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now therefore, O kings, show discernment; Take warning, O judges of the earth.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Worship the LORD with reverence And rejoice with trembling.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Do homage to the Son, that He not become angry, and you perish in the way, For His wrath may soon be kindled How blessed are all who take refuge in Him!

메시야 왕국에 관한 복음의 교훈이 여기에서 세상의 왕들과 재판장들에게 주는 권고의 방식으로 적용되어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대적하는 것은 헛된 일임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명하게 그것에 복종해야 한다. 그들을 멸할 능력을 가지신 그는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행복한 길로 이끌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10절). 지혜로워지고자 하는 자는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교훈을 받는 자들은 진실로 지혜롭다.

왕과 재판관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른 평민과 같은 위치에 서야 한다.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법도를 알리고 판단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법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지혜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알리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되며,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요구된다. 그런데 단지 왕들과 관원들에게만 명해진 것은 그들의 본보기가 아랫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 왕국의 건설을 대적하는 능력과 지위를 갖추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2절).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훈계한다.

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두려워해야 한다(11절). 이것은 자연종교의 큰 의무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우리보다 무한히 위에 계시다. 그리고 의롭고 거룩하시며, 우리에게 진노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떨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우리 주님이시며 주인이시므로, 우리는 그를 우리의 친구이며 은인으로서 섬기고, 그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서로 매우 잘 연관되어 있다.

1. 우리는 모든 예배의식에서 그리고 경건한 대화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되 거룩한 두려움과 우리 자신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그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섬겨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섬김을 받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왕들 자신까지도 하나님을 섬기고 두려워해야 한다. 왕들과 가장 천한 종들 사이에 있는 것과 같은 무한한 간격이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있다.

2.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하며, 그에게 복종해 다른 것들 안에서도 즐거워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질투심이 강한 하나님인가를 아는 자로서, 또한 그의 눈이 항상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아는 자로서, 그 즐거움과 함께 계속 거룩한 떨림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빌 2:12).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룩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거룩한 두려움이 모자라지 않도록 그에 대한 거룩한 경외감을 갖고, 또 그의 복음과 왕국에서 재생을 얻는 많은 귀한 영혼들에 대한 자상한 관심을 갖고 “떨며 즐거워”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즐거워하든지간에 거기엔 항상 떨림이 있어서 우리가 허탄한 즐거움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들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즐거움이 사라지게 되는 불확실하고 생기 없는 일에 몰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떨며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는 것이다”(고전 7:30).

Ⅱ.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12절). 이것은 크리스천 신앙의 큰 의무다. 즉, 그것은 모두에게, 심지어 왕이나 관리들에게까지 요구되는 일이며, 그 의무를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고 지혜로운 일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1. 이 목적에 의해 주어진 명령.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리스도는 “너는 내 아들이라”(7절)고 선포된 분이므로 “아들”이라 불리고 있다. 그는 영원한 세대까지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 때문에 우리로부터 숭배받아야 한다. 또한 그는 “인자”(즉 중재자. 요 5:27)이므로 우리는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가 “아들”이라 불리는 것은 다음 두 가지 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흔히 “아버지”라고 강조되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또한 그의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가지 면에서 그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여기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 입맞춤은 유다가 키스한 것처럼, 그리고 그를 영예롭게 하는 척했으나 실제로는 그를 모욕한 위선자들처럼 배반의 입맞춤이 아닌 믿음의 입맞춤이어야 한다.

(1) 허락과 화해의 입맞춤으로써. 야곱과 에서처럼 입맞춤으로 친구가 되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다툼을 종결시키고, 거만한 행위를 그치고, 우리의 화평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2) 숭배와 경건한 경배의 입맞춤으로써. 우상을 숭배한 자들은 우상에 입맞추었다(왕상 19:18; 호 13:2). 그러나 우리는 주 예수를 영화롭게 하고,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45:11). 우리는 보좌에 앉으신 그는 물론 “어린 양”도 경배해야 한다(5:9-13).

(3) 호의와 진실된 사랑의 입맞춤으로써.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와 함께 우정의 언약을 맺고, 그로 하여금 너의 사랑하는 귀하신 분이 되게 하라. 무엇보다도 그를 사랑하라. 많은 죄를 사함받은 증거로 그의 발에 입맞춘 그 여자처럼(눅 7:38)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많이 사랑하라.”

(4) 충성과 성실의 입맞춤으로써. 사무엘이 사울에게 했던 것처럼(삼상 10:1) 그에게 충성과 경의를 맹세하고, 그의 다스리심에 복종해야 한다. 그의 굴레를 네게 씌우고, 네 자신을 그의 법의 다스림을 받도록 하고, 그의 섭리에 맡겨 그의 유익을 위해 완전히 전념해야 한다.

2. 이 명령을 강력히 주장하는 이유. 이는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은 그의 복음에서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계시다. 이제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격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파멸하고 만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않으면 네게 화가 돌아올 것이다.”

① 그것은 그리스도를 크게 노하게 할 것이다. “그것을 행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시리라.” 그 아버지는 이미 노하셨고, 그 아들은 화해를 시도하기 위한 중재자다. 만일 우리가 그 아들을 경시한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위에 머물리라”(요 3:36). 뿐만 아니라 거기엔 그 아들의 진노가 또한 가중된다. 그의 은총을 받는 자가 멸시를 당하고, 계획이 좌절되는 것보다 그를 더 화내게 하는 것은 없다. 그 아들은 어린 양일지라도 노하실 수 있다. 그는 유다 지파의 사자다. 왕들 중의 왕이신 이 왕의 진노는 포효하는 사자와도 같은 것이며, 강한 자나 장교들까지도 바위나 산속에 있는 피난처를 헛되게 찾도록 만드실 것이다(계 6:16). 그 아들마저 진노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위해 중재하겠는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제물은 그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불신앙은 치료를 거역하는 죄다.

② 그것은 너희 스스로에게 완전한 멸망이 될 것이다. “너희가 길로부터, 또는 너의 죄악의 길에서, 그리고 너희 헛된 소망의 길로부터 망하지 않도록 하라”(1편 6절에서와 같이). “너희 길이 망하지 않도록”, 그 길이 행복에서 빗나간 길임이 증명되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는 길이다. 너희가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인 그로부터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그 길에 있었거나 적어도 그들 스스로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무시함으로써 그 길로부터 탈락되고 자신의 파멸을 재촉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늘 가는 길 도중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라도 결코 그곳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2)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굴복시킨다면 그때는 틀림없이 행복할 것이다. 그의 진노가 “급하시므로”(비록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진노의 가장 작은 불꽃이라도 교만한 죄인의 양심에 당겨지기만 한다면, 그 죄인을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가장 낮은 지옥까지도 태울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진노가 불붙여졌을 때에, 그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시편 저자는 그런 생각에 놀라며 그 무서운 저주를 면하기를 바라고, 그것을 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를 의지하고, 따라서 그에게 입맞추는 자들은 진실로 행복하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태도는 그리스도의 진노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붙여졌을 때 더욱 뚜렷이 부각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써 그를 그들의 피난처와 보호자로 삼는 자들은 진노의 날에 복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낙심하고 있을 때 그들은 기쁨으로 그들의 머리를 치켜들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을 멸시하는 자들은 그때에는 매우 당황하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를 의지하는 자, 그들만이, 다 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노래하고 간구함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과 동시에, 그리스도에 대한 즐거운 확신으로 우리 가슴을 채워야 한다. 그의 중재 가운데서 우리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며, 우리 스스로와 서로를 격려할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기쁨을 얻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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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 빛과 어둠의 영적 대쟁투]]엡6장....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마귀와 사탄의 세력,,현재 공중권세 잡은 자>..어두움의 세상 주관자<하나님의 소유인 세상사람들을 기만, 하나님에 대해 오해-착각-반역하도록 하며, 사람들을 하나님께 고소하며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아 자기에게 복종케 함으로써 점유-결박하여 결국 미치고 망하게 하고 죽이는 악령들>-통치자들(군왕들을 기만-호도), 권세(관원들을 기만-호도..)

10.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Finally, be strong in the Lord and in the strength of His might.

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will be able to stand firm against the schemes of the devil.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powers, against the world forces of this darkness,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wickedness in the heavenly places. ::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Therefore, take up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will be able to resist in the evil day, and having done everything, to stand firm.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Stand firm therefore, HAVING GIRDED YOUR LOINS WITH TRUTH, and HAVING PUT ON 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

15.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and having shod YOUR FEET WITH THE PREPARATION OF THE GOSPEL OF PEACE;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n addition to all, taking up the shield of faith with which you will be able to extinguish all the flaming arrows of the evil one.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And take THE HELMET OF SALVATION, and 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With all prayer and petition pray at all times in the Spirit, and with this in view, be on the alert with all perseverance and petition for all the saints,

19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and pray on my behalf, that utterance may be given to me in the opening of my mouth, to make known with boldness the mystery of the gospel, 

20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or which I am an ambassador in chains; that in proclaiming it I may speak boldly, as I ought to speak.


[[정사]] ajrchv(746, 아르케) 태초, 시작 beginning, 원인origin..원질primary element.((과거의 시작점과 근본동기, 근본원리, 근본질료  -->발전 : 피조계를 설명하려는 근원적 법칙, 이념/사상이나 이데올로기...어떤 시대의 주류적 통치사상..통치권, 통치/다스림...JC의 아르케[=지고지선의 섬김의 사랑과 은혜, 변치않는 유일무이의 참 진리]는 모든 피조계에 두루 적용되는 유일무이, 절대적 지고지선의 유익이 그 특징이지만 세상적 아르케는 그 뿌리가 마귀적이며,드러남은 상대적-세상적-이기적-편향적인 비진리일 수 밖에 없으며, 유일무이한 진리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성품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서 그분아닌 다른 것으로 대치하여 서로 혼란-오해-착각-분쟁을 일삼게 하여 근본의도는 망하게 하려함이며,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안에서 섬기며 다스리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배척하도록 하고 피조세계를 착취하고 망가뜨리며 마귀의 소유로 전락하게 하려 함))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아르케(Homer 이래)는 호머 이래로 헬라 철학에서 중요한 용어이다.

(a)  아르케는 '시작, 출발'을 의미한다. 시간에 있어서 아르케는 시간의 연속에서 새로운 시작의 시점(기점)을 나타낸다. 시작(아르케)에 대해 말할 때 그 종말(텔로스)도 고려되었다. 시작부터 그 일의 종말을 볼 수 있다. 시작은 무한(the infinite)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 종말도 무한 안에 존재할 것이다.

(b)  아르케는 출발점, 원인, 모든 존재의 제일 원인, 모든 것의 기본 원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탈레스(Tales)에게 있어서 이것은 물(water)이며, 아낙시만데르(Anaximander)에게 있어서는 무한대(infinity)이며, 아낙시메네스(Anaximenes)에게 있어서는 공기(air)였다. 점차적으로 아르케(arche)는 근원적인 원인으로부터 근원적 법칙들로 그 의미가 발전되었다. 이 근원적 법칙들이란 우주의 발전과 진보를 결정하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신(데오스)과 질료(質料)(휠레)가 아르카이(archai)였다.

(c)  아르케는 그 지위에 있어서 ① '통치권', ② '통치 영역', ③ '권세, 통치'를 의미한다(참조: D.Muller; G.Oelling)...결국 통치자의 이념적 바탕!!

2. 70인역본의 용법 

(a)  아르케는 70인역본에서 약 230회 이상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로쉬 어군의 역어로, '명령, 부대 명령'(삿 9:34; 삼상 11:11), '꼭대기'(렘 22:6), 명수(민 1:2), 근원(창 2:10), 열국 중 '우수함'(암 6:1), (달의) '시작'(왕상 21:9, 왕상 21:11)을 나타낸다.

(b)  아르케는 올람(먼 시간), 또는 케뎀(고대, 옛날의; 예를 들어 합 1:12; 시74:2; 미 5:2)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이렇게 사용될 때 시간에 있어서 먼 과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태, 민족, 또는 세계의 시초까지도 의미한다. 이런 의미로 사용될 때 아르케의 의미는, 원초적 상태를 넘어, 기억될 수 있는 그 이전의 상태로부터, 시간 이전의 과거에까지 이르른다(사 37:26).

(c)  아르케는 단 9:21, 단 9:23 등에서 과정의 시작(히브리어 테힐라)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d)  아르케는 멤샬라(지배, 통치)의 역어로 사용되어 '다스림'이라는 요소가 특별히 명백하게 나타난다(창 1:16; 렘 34:1; 미 4:8).

(e)  아르케는 비교적 자주 '통치권, 권세, 권세의 위치'에 대해 사용되었다(창 40:13, 창 40:20이하; 대상 26:10; 마카베오사서 4:17; 느 9:17; 단 7장 등).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아르케는 신약성경에서 55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를 나타낸다.

(a)  아르케는 '시작, 개시'를 의미한다.

① 막 1:1에서 복음의 시작, 막 13:8에서 말세의 재난의 시작, 히 3:14에서 확신, 또는 믿음의 시작, 행 10:11에서 보자기의 시작 즉 귀퉁이를 나타낸다.

② 그리스도는 시간을 초월하여 계신다. 따라서 시작도 끝도 없다. 그리스도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히 1:10).

③ 아르케는 전치사(아프, 에스)와 함께 시간에 있어서 첫 시점을 나타내는데, 문맥으로 결정된다: 아르케는 예수님의 활동의 "처음"(눅 1:2; 요 15:27; 요 16:4)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믿음의 여부를 알고 계셨다(요 6:64); "처음부터" 바울의 생활은 그 자신의 민족 중에서 영위되었다(행 26:4). 요한은 교회가 "처음부터" 소유하였던 것, 곧 동일한 복음, 하나님의 동일한 말씀을 지적하며 그것이 새 계명이 아님을 지적한다(요일 2:7). 처음부터 들은 것을 그들 안에 거하게 하라고 했다(요일 2:24); 이것은 사랑의 메시지이며(요일 3:11; 요이 1:5)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함으로써 유효하게 되는 것이다(요이 1:6).

④ 일부일처제는 창조 시초부터 정해진 것이다(마 19:4, 마 19:8; 막 10:6; 참조: 창 1:27). 막 13:19("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과 벧후 3:4("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에서는 세상의 시초를 뒤돌아보고 있다.

행 11:15에서 '처음'은 예루살렘에서의 교회가 시작된 초기 시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빌 4:15에서 '시초에'는 바울의 선교 활동의 초기를 말하고 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⑤ 살후 2:13의 해석은 상당히 불확실하다. 이 구절은 독자들의 선택이 그들의 탄생 순간부터였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영원부터였다는 의미일까?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거짓말장이였으며 진리와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마귀의 자녀는 단지 그 아비의 욕망만을 실행할 수 밖에 없다(요 8:44) 요일 3:8에 의하면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하였다.

(b)  아르케는 절대적 시초를 의미한다. 요 1:1은 시간 이전의 어떤 것을 암시한다. 곧 시간 내에서의 시작이 아닌 절대적 시작으로서, 하나님과 결부시켜서만이 언급될 수 있는 시작이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떠한 시간적 범주로도 진술할 수 없는 까닭이다. 로고스(Logos)는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 이전에 선재하신 분이다. 따라서 세상과 함께 시작한 시간보다 먼저 존재하셨다.

요한일서에는 '태초(처음)부터 있는 것'(요일 1:1), '태초(처음)부터 계신 이'(요일 2:13 - 요일 2:14)라는 어구가 나오는데, 이는 영원토록 선재하시고 제자들이 지각할 수 있는 로고스(Logos)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기에서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c)  그리스도 자신은 그밖의 모든 것 '이전에' 나신 모든 창조물의 장자이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아르케이다(골 1:18). 아르케이신 그는 만물의 기준으로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지음받았다(참조: 골 1:16b). 그는 또한 죽은 자로부터 맨 먼저 부활한 아르케이다.

계 3:14은 이와 매우 비슷한 의미로 그리스도를 아르케라고 칭한다(계 21:6; 계 22:13). 역사를 상대화시키는 종말론은 철학적인 용법과 어느 정도 관계를 가진다: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는 시간 이전과 이후에 존재하신다.

(d)  아르케 '권세, 지배력'에 대해 사용되었다.

① 눅 12:11에서 아르케는 세속적 또는 영적인 권세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눅 20:20에서 아르케는 로마의 행정 관리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딛 3:1에서 아르케, 곧 세속적 능력과 일반적 권세들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② 아르케는 초지상적 세력을 나타낸다. 엡 1:21에서 이들은 하나님께 대적하고, 최고 주권자를 가지고 있으며(참조: 엡 2:2), 다른 영역들, 예를들면, 종교적(참조: 고전 8:5), 성적(참조: 고전 6:15이하), 생명(참조: 고전 15:26), 사회적인 영역(엡 6:12; 참조: 엡 6장)을 지배하고, 천사들과 관련되어 있다(롬 8:38).

골 1:16은 이 절에 있어서 중요한 구절이다. 초자연적인 하늘의 존재들과 권능들(그중 일부는 아르카이[archai]이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화해의 행위는 전 우주를 포괄한다(골 1:20). 현재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아르케와 엑수시아(exousia)의 머리이시다(골 2:10; 참조: 빌 2:10이하). 그리스도께서는 자연과 역사 모두를 포함하는 세계의 통치자이시며 전 우주의 주님이시며 머리이시다. 이 관원들과 권세들은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전 2:8).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권세들의 무장을 해제시켰고 그들에게서 힘을 뺏으셨다(골 2:14이하). 그리스도는 부활로 말미암아 만주(萬主)와 정사들(아르카이, archai)과 권세들과, 지칭될 수 있는 모든 이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승귀하셨다.

이방인을 기독교 신앙으로 부름의 비밀이, 교회를 통하여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에게 알려진 것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인 사상이다(엡 3:10). 

이방인의 부름의 비밀은 영적 세계까지 뻗어나가는 우주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교회의 선포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엡 6:12에서 아르카이(archai)는 기독교인들이 싸워야 하는, 마귀에 의해 지배되는 악령 세계의 일부이다. 롬 8:38에서 천사와 능력과 함께 나오는 아르카이(복수; 한글 개역에 권세들)는 현재 역사하고 있으나 신자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하늘의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특별한 부류를 뜻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립을 가져오는 말세의 사건이 일어날 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아르케와 뒤나미스와 엑수시아(ejxousiva, 1849)를 멸하실 것이다(고전 15:24).

아르케는 유 1:6을 제외하고는 항상 엑수시아(ejxousiva, 1849)와 함께 사용되었다.

(참조: Walter Bauer; J.H.Thayer; G.Oelling; H.Bietenhard). 


[[권세]] ejxousiva(1849, 엑수시아) ....선택의 자유, 권리, 통치력, 권력자. (권세의 근원자이신 하나님을 배제한 세상 통치자들의 권위나 권세는 본질상 마귀적임).....법률, 정치, 사회, 혹은 도덕적 사건들의 영역 안에서<즉, 일정한 틀 안에서만> 발휘될 수 있는 힘.....공동체적 선/유익 위해 (복종하기로) 공인되고 승인된 (통치자/권위자의) 관계/계약적 권위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Soph., Thu. 이래)는 엑세스티(e[xesti, 1832: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용인이나 허용되어 왔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a)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어떤 행동을 행할 수 있는 '능력' ability을 의미한다.

(b)  그 다음 이 단어는 보다 높은 사법기관이 허락한 '권리' right, '권세' authority, '승인' permission.

① 정부가 허용해 준 가능성.  [[권세]]

② 여러 가지 사회 관계에서의 권리를 의미한다.

(c)  엑수시아는 어떤 잠재적 힘이 타고난 육체적, 정신적, 혹은 자연적인 힘들에 의거하며, 무의식적 행동들, 강한 행위들 그리고 자연 현상들 안에서 드러나는 뒤나미스라는 말과는 대조적으로, 법률, 정치, 사회, 혹은 도덕적 사건들의 영역 안에서 발휘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Plato, Definitiones 415b). 예를 들면 이 말은 늘 특별한 지위나 명령과 함께 사용되므로, 그 말은 마음대로 처분하는 왕권이나 부권 혹은 소작권(P. Qxy. 11, 273)이나, 관리들 혹은 사자들의 권한을 의미한다(Diod. Sic. 13, 36, 2; 14, 81, 6). 그 외에도 그 말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받아들이거나 행하는데 필요한 도덕적 자유를 의미한다(Plato, Definitiones 412d). 따라서 그 말은 사람에게만 적용될 뿐이지, 자연적인 힘이라는 의미로는 사용될 수 없다.

(d)  또한 이 단어는 율법에 맞서는 주제넘은 자유나 변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경우 그 문맥은 대개 법적인 명령이다.

(e)  이 단어는 파생된 의미들로 '권력있는 지위', 복수로 '집권자들이나 권력자들, 공무원, 찬미의 말, 군중' crowd, 그리고 '화려한 것' pomp을 뜻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메스샬라, 살레탄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엑수시아는 70인역본에서 법적인 의미에서 '권리, 권력'을 나타내며, 율법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다니엘과 마카베오서에서 이 단어는 왕이나 하나님의 힘을 가리킨다. 70인역본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엑수시아를 사용함으로써, 이 용어를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주권의 개념과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능력인 하나님의 개념을 우수하게 표현해주는 용어로 소개하고 있다(참조: 단 4:14).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는 신약성경에서 108회 나오며, 요한계시록, 누가복음, 고린도전서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엑수시아는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명령권' the power to give orders(마 8:9, 병행구 눅 7:8; 눅 19:17; 눅 20:20)을, 그리고 실제적인 의미에서는 '재판권' jurisdiction(눅 23:7)을, 그리고 복수로서는 '공직자' officials, '당국자' authorities(눅 12:11; 딛 3:1)를 의미한다. 롬 13:3의 "관원들(아르콘테스[archontes])"와 마찬가지로 1절의 "위에 있는 권세들(엑수시아이스 히페레쿠사이스)"은 (누군가 언급한 것처럼) 천사의 권세들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국가의 공직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블랙의 저술(M. Black)을 참조하라.

신약성경 기자들이 엑수시아와 뒤나미스(duvnami", 1411)를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 우주적인 힘의 구조에 따르는 새로운 질서, 그리고 신자들에게 부여된 권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눅 9:1에는 두 단어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엑수시아는 성령의 은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뒤나미스(duvnami", 1411)는 기름부음 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의 엑수시아는 파송/보냄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는 것이다. (1) 하나님 자신에게; (2) 마지막 날의 위임자에게; (3)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기독교인에게 속해있는 능력, 권세 그리고 행동의 자유가 바로 엑수시아이다.

(a)  하나님의 엑수시아.

① 하나님의 종말론적 권위는 세계사의 지배자이자 세계의 심판자로서의 그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권위로 마지막 날과 때를 결정하며, 역사의 종말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계신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 1:7). 하나님은 인간들을 영원한 파멸로 이끌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자유한 분이심을 그의 예정 속에서 실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을 흙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토기장이에 비유한다(롬 9:1; 참조: 사 29:16; 사 45:9; 렘 18:6; 지혜서 15:7; 집회서 36[33]:12이하).

② 하나님은 종말론적 권세를 위임하실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사들에게는 심판날에 처벌할 권세가 위임될 수 있고(계 6:8); 다른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을 수 있다(계 9:3, 계 9:10, 계 9:19). 이와는 대조적으로, 천상의 권세(엑수시아이)들은 이러한 종말론적 사건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천상의 권능들이란 말은 아르카이라는 말과 함께 언급되었고, 그 말은 뒤나메이스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엡 1:21; 엡 3:10; 골 1:16; 골 2:10). 그리스도의 높아 지심은 그 권세들이 그에게 복종함을 의미한다(엡 1:21; 벧전 3:22). 그러나 아직 적대 세력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즉 이 말은 메시야의 통치가 당분간 계속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쿰란 문서들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자연인은 흑암의 권세와 악마의 주권하에 있다(골 1:13; 참조: 행 16:18). 그 반대편에 빛의 영역과 성자의 왕국과 하나님 자신이 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악마도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에게 세상의 통치권을 위임할 수 있다(계 13:2, 계 13:4, 계 13:12). 심지어 악마는 세상 지배권을 주겠다는 말로 예수님을 유혹하였다: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그러나 이것을 이원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악마의 권세도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것이며 그의 활동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며, 따라서 그의 활동 범위는 제한된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눅 22:53). 악마의 권세에 관한 언급은 세상에 관한 비관적인 견해에서 부여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대한 기쁜 소식에서 부여된 것이다. 악마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른 바로 그 대목에서 예수님은 악마의 파멸을 선언하신다.

(b)  예수님의 엑수시아.

①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은 악마와 귀신들이 그들이 권세를 박탈 당했다는 것을 선언한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 분은 악마의 활동을 파괴하고 악마의 지배로부터 인간들을 구해낼 권세를 갖고 계신다. 따라서 귀신 축출은 예수님의 권능에 의거한 것이며(눅 4:36),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제자들도 그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마 10:1, 병행구 막 3:15; 눅 9:1; 막 6:7; 눅 10:19).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고, 자신의 말씀에 권능이 있음을 확증하셨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따라 행하신 것이다(마 9:2-8, 병행구 막 2:3-12; 눅 5:18-26; 참조: 시 103:3). 예수님은 자신의 종말론적 사명,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려는 목적 때문에 결국 → 바리새인들 Pharisees이 이해한 것으로서의 → 율법 Law과 충돌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주장하였던 랍비 할라카(Halachah)의 주장에 의거하여 율법의 축자적인 이해를 거부하였다(참조: 마 12:10, 마 12:12; 막 3:4; 눅 14;3; 요 5:10). 예수님의 권위는 뭇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이 가르침에서 드러날 수 있었다(막 1:22, 막 1:27; 마 7:29; 눅 4:32). 왜냐하면 그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이다.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그들의 전통에 따른 것이었는데 반해(마 7:29), 예수님, 즉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은 모세나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 아버지 Father를 아시고 그분을 드러내실 수 있는 아들의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다(마 28:18; 참조: 마 11:27; 눅 10:22; 요 3:35; 요 13:3; 요 10:15; 요 17:25). 성전 정화에도(참조: 마 21:12이하; 막 11:11-17; 눅 19:45이하; 요 2:13-17; 출 30:13; 레 1:14; 사 56:7; 렘 7:11) 메시야적 권위에 대한 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②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위는 예수님께서 아들이시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 17:2). 그는 마지막 날의 심판권도 부여받았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 5:27). 그러나 공관복음에서과 마찬가지로 요한의 기록에서 예수님은 인간들을 심판하고자 하는 분이라기보다는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의 능력은 강제적인 지배에 있지 않고 세상을 위해 종이 되신 절대적인 자유에 있다. 예수님은 목숨을 버릴 엑수시아도 갖고 계시며 그것을 다시 취할 권세도 갖고 계신다(요 10:18). 그를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엑수시아를 부여받았다(요 1:12). 

③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권위의 표상은 부활 사건을 예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부활절 이후 들어 올리우심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예수님은 인자가 나라의 보좌에 오를 것이며 그에게 권능이 부여되리라는 다니엘의 환상을 성취하셨다(참조: 단 7:14).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도들"과 함께 계신다. 게다가 하나님의 권능은 강압적으로 국가들을 정복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 복음 Gospel 전파로,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세상을 정복함으로써 실현된다. 외견상 지상에서의 메시야 통치로 여겨지는 것은 교회이지, → 이스라엘 Israel의 주권적인 통치가 아니다(행 1:6-8). 왜냐하면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높이 올리우심은 악한 자의 멸망과 심판과 시대의 전환점에 대한 전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따라서 승귀하신 주님은 사자들을 파송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권세를 부여하신다(마 28:18-20). 지상에서 행해진 예수님의 사역과 비슷한 임무를 띠고 있으며, 부활절 메시지의 취지에 따라 활약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성령을 수여할 권세를 부여 받았는데(행 8:19; 행 2:38; 행 19:6; 행 10:44-48), 그 권세는 인간을 파하는 권세가 아니라 오히려 세우는 권세이다(고후 10:8; 고후 13:10). 사도는 교회에서 종으로서의 영적인 사역을 행하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육신의 양식을 구할 권리가 있다(고전 9:4-6; 살후 3:9). 이 성구들에서 엑수시아는 '권리'나 '특권'을 의미한다. (참조: O. Betz; W. Foerster; Walter Bauer; J. H. Thayer). 

[눅4] 31.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And He came down to Capernaum, a city of Galilee, and He was teaching them on the Sabbath;

32.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and they were amazed at His teaching, for His message was with authority.

33.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In the synagogue there was a man possessed by the spirit of an unclean demon, and he cried out with a loud voice,

34.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Let us alone! What business do we have with each other, Jesus of Nazareth? Have You come to destroy us? I know who You are--the Holy One of God!" 

35.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But Jesus rebuked him, saying, "Be quiet and come out of him!" And when the demon had thrown him down in the midst of the people, he came out of him without doing him any harm.

36.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권세..=엑수시아)와 능력(=뒤나미스)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And amazement came upon them all, and they began talking with one another saying, "What is this message? For with authority and power He commands the unclean spirits and they com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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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06, 2016 존 파이퍼 "우리를 향한 사탄의 10가지 전략 "

존 파이퍼 목사는 4일  자신이 운영 중인 '하나님을향한갈망'(DesiringofGod.org) 블로그에 '여러분을 향한 사탄의 10가지 전략'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칼럼에서 파이퍼 목사는 "삶에 있어서 우리를 가장 각성시키는 사실은 모든 인류에게 초자연적인 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의 목적은 고통과 기쁨을 이용하여 영원히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우리를 어리석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경은 그를 '마귀 그리고 사탄, 전 세계를 속이는 자, 참소자(12:9~10), 세상의 주관자(요 12:31),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라고 표현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파이퍼 목사는 "그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우리의 대적(벧전 5:8)이다. 그러나 가장 끔찍하고 원치않는 구속 가운데, 이 세상은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엡 2:2)을 따르고 있다. 사탄의 길은 분명히 파멸이며, 사탄은 가능한 많은 이들을 자신의 길로 끌고가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깨어 전쟁에 임하라'는 제목으로 기록한 '선한 싸움'(딤 1:18)에는 날마다 이 원수를 대적하고(벧전 5:9, 약 4:7), 날마다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엡 4:27), 날마다 그의 계략에 대항하는(엡 6:11) 것들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파이퍼 목사가 소개한 사탄의 전략 10가지이다.

1. 사탄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니니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사탄은 자신의 속성에 따라 거짓을 말한다. 그는 거짓말쟁이고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창세기 3장에 처음 등장한다. 그의 입술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진리에 대한 의심이었다("하나님께서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리고 두 번째 나온 말은 교묘한 거짓말이었다("네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진리에 서지 못하고 진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거짓과 속임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2. 사탄은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리운다.

이 세상의 신은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리우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후 4:4). 그는 거짓을 말할 뿐 아니라 참된 것을 숨긴다. 그는 복음의 귀함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는 우리가 사실과 증거들을 보면서도, 그 귀한 가치는 알지 못하도록 가리운다.

3. 사탄은 빛과 의로움의 옷으로 자신을 가장한다.

고린도후서 11장 13~15절에서 바울은 어떤 이들은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인체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와 같이 사탄도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말씀한다. 따라서 사탄의 종들이 스스로를 의의 종으로 가장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즉, 겉으로는 교회에 참여하기에 충분한 지식을 말하지만 안으로는 바울 사도가 '귀신의 가르침(딤전 4:1)'이라고 언급한 내용들을 가르치는 이들은 사탄의 종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마7:15)와 같다고 하셨다. 사도행전 20장 30절 말씀은 이들이 무리들을 끌어내어 멸망으로 이끈다고 기록돼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분별의 은사(빌1:9)가 없다면, 우리의 사랑은 우둔함에 빠질 수 있다.

4. 사탄은 기적을 행한다.

데로니가후서 2장 9절은 마지막 날이 이와 같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사탄은 마치 이러한 기적들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한다. 사실, 일부 사람들은 사탄이 거짓된 기적들만 행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있다. 설령 이것이 진리라고 해도, 사탄의 거짓은 거의 모든 이들에게 충분히 진짜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5. 사탄은 사람들을 유혹해 죄짓게 한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계실 때, 그분을 유혹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사탄은 예수님이 고통과 순종의 길을 포기하길 바랬다(마4:1~11). 그러나 예수님의 마지막 삶에서 유다를 유혹하는데는 성공했다(눅22:3~6). 고린도후서 11장 3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모든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을 전한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6.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뽑아내고, 신앙을 죽인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4장 1~9절에 나타난 4가지 밭 비유를 말씀해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의 땅에 뿌려지는데 일부 씨앗은 길 가에 뿌려져서 새들이 재빨리 먹어버린다. 주님은 15절에서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것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은 말씀을 빼앗아간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해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미워하기 때문이다(롬 10:17).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염려의 말씀을 전했다.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의 신앙을 죽이려는 사탄의 계획을 잘 알고 있었다.

7. 사탄은 때로는 아픔과 질병을 일으킨다. 

예수님은 허리가 굽어져서 스스로 펼 수 없는 한 여인을 치유해주셨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이 안식일에 이같은 일을 행한다며 예수님을 비난했다. 이에 예수님은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 13:16)"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같은 질병의 원인이 사탄에게 있음을 아신 것이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증거한다. 즉, 사탄이 병으로 사람들을 누른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그의 계획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모든 질병이 마귀의 역사라고 말하는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 분명 '육체의 가시'가 우리의 성화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일지라도, 사탄의 사자가 될 수 있다(고후 12:7). 그러나 질병이 온전히 하나님의 계획인 경우도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그가 예수님의 자비로운 계획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탄을 데려올 필요를 못 느끼셨다.

8. 사탄은 살인자이다. 

예수님은 그를 죽이려고 계획한 이들에게 "너희는 마귀의 아비로부터 나왔고, 그 아비의 일을 행하려 한다.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요8:44)"고 말씀하셨다. 요한 사도는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라고 전했다. 예수님은 흠이 없는 서머나 교회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계 2:10)"고 말씀하셨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탄은 피에 굶주려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를 충만케 하려고(요10:10) 이 땅에 오셨다. 그러나 사탄은 할 수 있는대로 생명을 빼앗고, 결국 영원히 불행하게 만들고자 한다.

9. 사탄은 사역자들의 계획을 대적한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 2장 17~18절에서 자신의 선교 계획이 어떻게 죄절되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사탄은 전도와 제자도를 싫어한다. 그는 선교사들을 비롯해 전도에 열정이 있는 이들의 길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해물들을 던져 놓는다.

10.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을 고소한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나고"라고 말씀하신다. 사탄은 반드시 패배한다. 그러나 그의 고소는 그치지 않고 있다.

사탄은 욥에게 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를 대한다. 사탄은 하나님께 우리에 대해 "그들은 정말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당신이 주시는 이익만 바라본다"고 참소한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1:11)." "그들의 신앙은 진짜가 아니라"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를 고소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항상 살아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는 분(히 7:25)'이 계시다는 사실이 매우 영광스럽다.

사탄은 결국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앞에서 사탄의 계획을 소개했지만,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은 이미 결정적인 승리를 하신 그리스도를 굳건히 붙드는 것이다.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골로새서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마가복음 3: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요한계시록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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