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2.06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성전인 몸 시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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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6]------개역개정--------

9.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12.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새번역----------------

9.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10.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11.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12."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13."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

14.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의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15.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7.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18.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19.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20.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NASB----

9.Or do you not know that the unrighteous wi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Do not be deceived; neither fornicators, nor idolaters, nor adulterers, nor effeminate, nor homosexuals,

10.nor thieves, nor the covetous, nor drunkards, nor revilers, nor swindlers, will inherit the kingdom of God.

11.Such were some of you; but you were washed, but you were sanctified, but you were justified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in the Spirit of our God.

12.All things are lawful for me, but not all things are profitable. All things are lawful for me, but I will not be mastered by anything.

13.Food is for the stomach and the stomach is for food, but God will do away with both of them Yet the body is not for immorality, but for the Lord, and the Lord is for the body.

14.Now God has not only raised the Lord, but will also raise us up through His power.

15.Do you not know that your bodies are members of Christ? Shall I then take away the members of Christ and make them members of a prostitute? May it never be!

16.Or do you not know that the one who joins himself to a prostitute is one body with her? For He says, "THE TWO SHALL BECOME ONE FLESH."

17.But the one who joins himself to the Lord is one spirit with Him.

18.Flee immorality. Every other sin that a man commits is outside the body, but the immoral man sins against his own body.

19.Or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who is in you, whom you have from God, and that you are not your own?

20.For you have been bought with a price: therefore glorify God in your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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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Do you not know that the unrighteous will not inherit or have any share in the kingdom of God? Do not be deceived; [d]neither the sexually immoral, nor idolaters, nor adulterers, nor effeminate [by perversion], nor [e]those who participate in homosexuality, 

10 nor thieves, nor the greedy, nor drunkards, nor revilers [whose words are used as weapons to abuse, insult, humiliate, intimidate, or slander], nor swindlers will inherit or have any share in the kingdom of God. 

11 And such were some of you [before you believed]. But you were washed [by the atoning sacrifice of Christ], you were sanctified [set apart for God, and made holy], you were justified [declared free of guilt]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in the [Holy] Spirit of our God [the source of the believer’s new life and changed behavior].

12 Everything is permissible for me, but not all things are beneficial. Everything is permissible for me, but I will not be enslaved by anything [and brought under its power, allowing it to control me]. 

13 Food is for the stomach and the stomach for food, but God will do away with both of them. The body is not intended for sexual immorality, but for the Lord, and the Lord is for the body [to save, sanctify, and raise it again because of the sacrifice of the cross]. 

14 And God has not only raised the Lord [to life], but will also raise us up by His power. 15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ies are members of Christ? Am I therefore to take the members of Christ and make them part of a [f]prostitute? Certainly not! 

16 Do you not know that the one who joins himself to a prostitute is one body with her? For He says, “The two shall be one flesh.” 

17 But the one who is united and joined to the Lord is one spirit with Him. 

18 Run away from sexual immorality [in any form, whether thought or behavior, whether visual or written]. Every other sin that a man commits is outside the body, but the one who is sexually immoral sins against his own body.  

19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who is within you, whom you have [received as a gift] from God, and that you are not your own [property]? 20 You were bought with a price [you were actually purchased with the precious blood of Jesus and made His own]. So then, honor and glorify God with your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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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법테두리내에서는 허용되는 일이라 해도 영적 측면에서 볼 때 때로는 유익하지 못하며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신앙과 자격과 관계와 소망을 생각하여 무엇이 가하며, 뿐만 아니라 무엇이 유익한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12절). 

비록 세상에서는 합법적인 일로 여겨지더라도  바울은 세상에 속한 그 어떠한 것도 자신을 통제하도록 허용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음, 바로 그 안에 확고히 서 있어야만 한다. 결코 이 자유를 육체의 소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남용하는 것은 안 된다. 비록 모든 식물이 가하나 바울은 탐식가나 주정뱅이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바울은 비록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죄에서 자유케 된 바 그 자유를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오용하기를 원치 않았다. 특히 음행문제에 있어서 특히 그러한데, 이것은 고린도의 법률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하나님의 자연법에 어긋나는 것이요 원수의 함정에 스스로 다시 걸려드는 것에 다름없는 일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자유를 남용하고 오용하여 무절제하게 먹고 마시며  육욕을 채움으로써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추호도 용납할 수 없었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13절) 비록 배는 식물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져 있고 식물을 배를 채우도록 되어 있으나 그것이 이롭지 못하고 또 나를 속박한다면 나는 삼가하리라. "하나님이 (부활의 몸 입은 후에는) 이것 저것(식물과 배=위장=를) 다 폐하시리라." 

인간의 육체에 음식물 공급이 불필요할 때가 온다... 고대의 학자의 어떤 이들은 이것은 배와 음식의 없어짐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비록 우리의 몸이 부활하더라도 모든 지체가 예전 그대로 부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배는 필요 없어진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인지는 아직은 모르지만 음식이 불필요할 때가 올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장래에 우리의 육체적인 식욕이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기대는 현 생활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지는 식욕의 지배를 상대화 하고 그 지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바울의 뜻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절은 성윤리, 우상숭배, 술취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요, 더 나아가서는 음행등 그리스도와의 전존재적 연합과 거룩함을 손상시키는 모든 것에 대해서 절대 반대하는 주장인 것 같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방인관리 앞에제기하는 소송조차도 반대한다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이들은 가정하기를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가하나 유익한 것이 아니요 불경건한 재판장이나 법관이나 변호인 앞에 서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일면 부끄럽게 여겨지는 일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결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연합에 어긋나는 모든 것들과의 연결이 자연스럽다.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13절). 음식과 배는 서로 위하나 음행과 몸은 그렇지 않다.

Ⅰ. 몸은 음란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주를 위해 있다. 이것이 바울이 주장하는 죄에 대한 경고이다. 이 죄에 대하여 고린도의 이방인들은 너무나 이름이 나 있고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도 지지하는 죄였다. 이것은 그들의 의향을 거슬리는 일이었다. 몸은 음란을 위함이 아니다. 다만 주를 위함이고 하나님의 봉사와 명예를 위함이다. 다른 목적을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않았다. 그것은 거룩함에 이르는 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롬 6:19 참고). 그러므로 불결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야하고 창녀의 지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15절). "주는 몸을 위함이다."즉 그리스도는 몸의 주요 몸을 소유하고 몸을 다스린다. 몸을 입고 우리와 같이 되시고 그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모든 일에 머리가 되신다(히 2:5, 8). 우리는 주민에게 속한 것을 우리의 것인 것처럼 혹은 불명예스럽게 사용하여서는 안 됨을 명심하자.

Ⅱ.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를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주는 몸의 부활과 영화를 위함이다. 14절의 말씀과 같이 명예가 우리 육체에 더하기로 되어 있으니 이 죄를 피하여야 한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날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는 능력으로"(빌 3:21)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14절). 주님이 죽은 자에서 살아나심은 우리의 몸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보존하기만 한다면 모든 부족에도 불구하고 주와 함께 다시 살아날 몸을 나쁘게 사용하지 말자.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소망은 육의 정욕으로 죄를 범하는 것을 막도록 만든다.

Ⅲ. 세번째 주장은 이미 육체에 주어진 명예이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15절). 만약 영혼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면 그 사람 전체가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이것은 얼마나 명예스러운 일인가? 그의 육체가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몸의 한 부분이 된다. 우리가 어떤 명예스러운 관계에서 있는 가와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유익하다.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서 남용한다면 얼마나 나쁜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이런 생각은 혐오스럽다. 그럴 수 없다.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었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16,17절). 그리스도인의 명예로운 관계와 연합에 이 음란의 죄보다 더 큰 방해물은 없다. 그리스도로 연합되어 있고 성령으로 참여한다. 한 성령이 머리와 지체에 호흡하고 움직이고 있다. 그리스도에 충실한 제자들은 한 몸이다(요 17:21, 22).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결혼에 의하여 정하여진 육체의 연합이다. 한 몸이 되도록 그렇게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어찌 한 몸이 되도록 창기와 합할 수가 있을까? 그리스도와 창기를 연합시키는 것이 사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 큰 무례를 행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모순되고 신앙에 어긋날 수 있을까? 음란의 죄는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그와 주와 머리에 있어서 큰 상처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음행을 피하라"(18절)는 권고는 당연하다. 피하고 유혹에서 멀리 떠나며 유혹하는 물건을 멀리해야 한다. 눈과 마음을 다른 생각과 사물로 돌리어야 한다. Alia vitia pugnando, sola libido fugiendo vincitur - 즉 다른 악을 싸워서 정복할 수 있으나 이 음란의 죄는 피하여야 한다고 많은 교부들이 그렇게 말한다.

Ⅳ. 네째 주장은 이 죄는 우리의 몸에 거슬리는 죄악이다.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18절). 밖에서 짓는 모든 죄가 몸 밖에 있다. 이 죄는 술취하는 자만큼 몸을 혹사하지도 않고 탐식가처럼 몸을 괴롭히지도 않으나 특이한 방법으로 몸을 더럽힌다. 이 죄로 그리스도인은 몸을 더럽히고 타락시키고 죄인과 한 몸으로 만든다. 구속자가 최고로 위엄있게 만든 몸에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악한 몸을 죄를 지어 더 악한 몸으로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Ⅴ. 이 죄에 대한 다섯째의 주장은 그리스도인의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19절)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연합한 자는 한 영이다. 그는 하나님께 바쳐졌고 성별되었고 그의 뜻대로 사용되고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사로잡히고 점령되고 거하게 된다. 이것이 성전의 뜻이다. 하나님이 사시는 곳이며 성별되었고 바치는 곳이다. 그러한 성전인 참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바쳐졌으며 그에 의하여 그를 위하여 소유되었다. 하나님께 팔린 몸이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라." 우리의 몸은 하나님을 위하여 만들어주시고 매매되었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가 그의 성전을 더럽히고 창기에게 넘겨 주겠는가? 무서운 신성 모독이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도적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게 유지해야 됨을 명심하자.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거하시기에 적합도록 보존되어야 한다.

Ⅵ. 바울은 "그의 것인 우리의 몸과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의무로써 주장을 세운다. 하나님은 이 둘을 만드시고 사시고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에 의하여 사용되어야 하며 더럽혀지거나 떨어지거나 다른 곳에 갖다 주어서는 안 된다. 아니 우리의 몸은 주님이 사용할 그릇으로 보존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의 것인 우리의 몸과 영혼으로 하나님을 금해야 한다. 육체로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금해야 한다. 주께서 말씀하시었다(마 5:28). 몸과 영이 깨끗이 보존되어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영광을 받아야 한다. 그 둘이 짐승과 같은 죄로써 더럽힐 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 당신의 몸을 창조자이시며 주인 그의 영광과 봉사를 위하여 사용하라.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를 지배할 수가 없다. 우리의 쾌락으로 사용할 수가 없고 그의 영광과 뜻대로 사용하여야 한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를 섬겨야 한다"(행 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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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목자(시 23:1-6)

Psalms 23편 [NASB]--------------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He restores my soul; He guides me in the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have anointed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Surely goodness and lovingkindness wi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NIV]---------------------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he restores my soul. He guides me in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Surely goodness and love wi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개역개정]-------------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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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이 시편에서 세 가지의 매우 위안을 주는 전제로부터 세 가지의 매우 즐거운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우리도 역시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소망에 의해 구원을 얻으며, 그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소망은 굳건한 토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주 하나님 안에서 격려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 관계에 따라 우리가 체험한 그의 선하심 속에서 위로를 얻도록 지시받고 있다.

Ⅰ.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목자이시므로 그에게 유익한 어느 것도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추론하고 있다(1절).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라.

1.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크게 돌보신다. 그는 그들의 목자이시며, 그들은 그를 그렇게 부를 수 있다. 다윗 자신이 목자였던 때가 있었다. 그는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택함을 받았다(78:70-71). 그러므로 선한 목자가 그의 양떼들에게 갖는 자상한 관심과 돌보심을 경험으로써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얼마나 목자가 필요한가 그리고 노련하고 성실한 목자가 그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를 회고한다. 그 목자는 한때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해 그의 생명을 내건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에 의해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돌보심을 예증하고 있다. 우리 구세주께서 “나는 양들의 선한 목자라”(요 10:11) 하고 말씀하심은 이를 언급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의 목자이신(80:1), 보편적으로 온 교회의 목자이신 그는 믿는 자들 개개인의 목자이시다. 그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라도 경히 여기지 않으신다(사 40:11). 그는 그들을 품에 안으시고, 양떼를 지키는 목자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주의 깊고 꾸준하게 돌보시고 보호하시며 공급해 주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목자와 같으시다면 우리는 양들처럼 순종하고 온순해야 한다. 양털 깎는 사람 앞에서처럼 조용해야 하며, 또 도살자 앞에서처럼 유순하고 잘 복종해야 한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를 따라야 한다.

2.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커다란 신뢰를 갖고 있다. “만일 주님이 나의 목자, 나를 먹이시는 자라면, 나는 내게 정말 필요하고 유익한 것은 그 어느 것도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단정할 수 있다.” 만일 다윗이 이 시편을 그가 면류관을 얻기 전에 지었다면, 비록 그것이 그에게 예정되어 있었을지라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족함을 두려워할 만한 이유를 많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한때 그는 나발에게 청하러 그의 사람을 보냈고, 또 어느 때는 그 자신이 직접 아히멜렉에게 가서 요청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목자라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그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를 자기들을 먹이시는 자로 삼는 자들은 굶어죽을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표현에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는 뜻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뜻도 내포되어 있다. “나는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공급받을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그것이 내게 합당치 않거나 유익하지 않다고 또는 합당한 때에 그것을 갖게 되리라고 단정할 수 있다.”

Ⅱ.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선한 목자로서의 직책을 이행하신 것으로부터 그는 그가 당하게 될 큰 위험이나 어려움에 대해 어떤 두려움도 느낄 필요가 없음을 추론하고 있다(2-4절). 그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어 돌보아주시는 이로움을 체험하고 있으므로, 그에게 그 유익이 매우 필요하게 될 때 그것을 또한 얻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1. 살아 있는 성도들이 얻는 위로, 하나님은 그의 목자이시며, 하나님은 모든 의도와 목적을 충족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러하심을 발견했으며, 우리도 그래야 한다. 하나님의 초장에 있는 양들과 같은 성도들의 행복을 보라.

(1) 그들은 좋은 곳에 안치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손으로부터 이 생애의 도움과 위로를 받고, 우리 아버지 되시는 그로부터 매일의 양식을 얻는다. 그 충만함이 악인에게는 메마른 초장에 지나지 않는다. 악인은 오직 관능적인 즐거움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즐거움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비록 세상에 속한 것은 거의 갖고 있지 않을지라도 믿음으로써 그것을 즐기는 자들에게는 푸른 초장이 된다(37:16; 잠 15:16-17). 하나님의 명령은 곧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푸른 초장이다. 생명의 말씀은 새 사람에게 공급되는 영양분이다. 그것은 아기를 위한 젖, 양들을 위한 초장으로서 결코 불모가 되지 않으며, 먹어서도 없어지거나 마르는 법이 없이 항상 믿음을 위해 공급되는 푸른 초장이다.

하나님은 그의 성도들로 하여금 눕게 하신다. 즉 그들의 운명이 어떠하든지간에 그들 마음에 평안함과 만족함을 주신다. 그들의 영혼은 그의 안에서 편히 거하며, 모든 초장을 푸르게 만든다. 우리는 명령의 푸른 초장으로 축복받고 있는가? 그곳을 지나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말고 그 위에 눕고 거기에 거하도록 하자. 이것은 영원한 나의 안식이다. 영혼이 살찌는 것은 꾸준한 은혜에 의한 것이다.

(2) 그들은 잘 안내받고, 인도된다. 이스라엘의 목자는 요셉을 양과 같이 인도하신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들은 그와 같은 인도 아래 있다. “그가 나를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먹고 사는 자들은 그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그는 그들을 그의 섭리로써, 그의 말씀, 그의 성령으로써 인도하신다. 그의 뜻대로 가장 선하게 그들의 일을 처리하시며, 그의 명령대로 그들의 감정과 행동을 주관하시고, 그들의 눈과 길과 마음을 그의 사랑 안에 두도록 지시하신다. 그가 그들을 인도하시는 쉴 만한 물가는 유쾌한 전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목마르고 피곤할 때 풍성한 청량제와 활력제를 준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음식과 휴식뿐만 아니라, 원기 회복과 즐거움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 성령의 기쁨은 곧 이 쉴 만한 물가이며, 성도들은 살아 있는 물의 근원에서 흘러나오고, 우리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만드는 시냇물가로 인도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부패하고 더러운 물이 고여 있는 물가나 사나운 바다, 급히 흐르는 강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잔잔하게 졸졸 흐르는 물가로 인도하신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은 하나님을 향해 조용히 흐르는 그들의 심령과 가장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베풀어진 거룩한 인도하심은 이것에 대한 은유를 벗겨주고 있다(3절). 즉 그가 나를 “의의 길로”, 의무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 속에서 나를 그의 말씀으로 가르치시며, 양심과 섭리로 지시하시는도다. 이 길은 모든 성도들이 인도받고 지키기를 원하며, 결코 거기서 빗나가지 않기를 원하는 길이다. 이렇게 의의 길을 행하는 자만이 위로의 잔잔한 물가로 인도받는다. 의무의 길은 진실로 즐거운 길이다. 화평한 것은 의의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길로, 그리고 이 길에서 인도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행할 수 없다.

(3) 어떤 것이 그들을 괴롭힐 때 그들은 충분히 도움을 받는다. 그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도다.”

① “내가 방황할 때 나를 소생시키신다.” 양처럼 쉽게 한눈을 파는 짐승은 없을 정도로 양들은 길을 잃어버리기 쉽고 또 길을 찾아 되돌아오기가 어렵다. 가장 훌륭한 성도들도 “잃은 양같이 유리하는” 자기들의 성향을 깨닫는다(119:176). 그들은 길을 잃고 샛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보여주시고 회개케 하시고 다시 그들의 의무로 돌아오게 하심으로써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만약 그가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끝없이 유리해 파멸했을 것이다. 한 가지 죄를 범했을 때 다윗의 마음이 그를 징계했고, 또 다른 죄를 범했을 때는 나단이 보내어져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그에게 말해 줌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죄에 빠지게 하실지라도 그들로 하여금 계속 그 속에 누워 있게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② “그는 내가 병들 때 나를 회복시키시고, 내가 기진할 때 활력 있게 해주시며, 내가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그는 우리를 치료하시는 우리 주 하나님이시다(출 15:26). 우리가 믿지 않았다면 여러 번 활기를 잃었을 것이며, 우리를 기절하지 않게 하시는 이는 또한 선한 목자이시다.

2. 죽어가는 성도들의 용기를 보라(4절). 지금까지 여섯 번, 일곱 번 환난을 겪을 때에 “나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했으므로 나는 결코, 마지막 극한상황에서도 그를 불신하지 않으리라. 여지껏 나를 위해 모든 일을 행하신 것은 나의 어떤 업적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고, 단지 그의 이름을 위해 그의 말씀을 준행하고 그의 약속을 이행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의 특성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한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은 계속 나의 강한 성이 될 것이며, 나를 일생 동안 인도하시고 먹이시는 그가 끝까지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확신케 해주실 것이다. 여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절박한 위험이 가정되어 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즉 죽음의 위험 속에 놓일지라도, 골짜기처럼 깊고 그림자처럼 어두우며 죽음 그 자체처럼 두려운 위험 가운데 처할지라도”, 또는 오히려 “내가 죽음에 사로잡히고 나 자신 안에 죽음의 판결을 받으며 모든 면에서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자로 여길 수밖에 없을지라도, 나는 평안하리라.” 병든 자들과 연로한 자들은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여기에 정말 끔찍스럽게 여겨지는 한마디 말이 있다. 그것은 “사망”이라는 말로서,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하는 문제다. “이 전쟁에서 벗어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망에 대한 가정 속에서도 두려움을 약화시키는 네 가지 단어가 있다. 즉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정말로 사망이다. 그러나 그 사망은 다음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

① 사망의 “음침함”(그림자)이다. 그 속에는 본질적인 해는 없다. 뱀의 그림자가 독을 뿜을 수 없으며, 칼의 그림자가 우리를 죽일 수는 없다.

② 정말 깊고 어둡고 더러운, 음침한 “골짜기”다. 그러나 골짜기는 비옥하므로 죽음 자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비옥한 위로가 된다.

③ 이 골짜기를 “다니는” 것에, 한가하고 즐겁게 걷는 것에 불과하다. 악인들은 이 세상에서 쫓겨나며 그들의 영혼은 요구당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처럼 즐겁게 저 세상으로 간다.

④ 골짜기로 통과해(hough) 다니는 것이다. 그들은 이 골짜기에서 잃어버리지 않고 저편에 있는 향기의 산에 안전하게 다다를 것이다.

(2) 이 위험은 훌륭한 근거에 의해 경험하게 될 것이고, 또 극복될 것이다. 사망은 두려움의 왕이나, 그리스도의 양들에게는 그렇지 아니하다. 그들은 도살당할 양이 그런 것처럼 사망에 대해 떨지 않는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이 어느 것도 나를 요동케 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자녀는 마음의 거룩한 안심과 평정을 갖고서 죽음의 사자를 맞이하고, 그 소환에 응할 수 있다. 젖먹는 아이는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할 수 있다.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떠나는 어린아이는 “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는가” 하고 바울처럼 죽음에 거룩한 도전을 하면서 뱀의 굴에 손을 넣을 수 있다. 이런 확신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①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악이 없기 때문이다. 사망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없다. 그것은 몸을 죽이나 영혼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이처럼 해로움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왜 두려워해야 하겠는가?

② 성도들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를 얻기 때문이다. 그때에 그는 그들의 우편에 계신다. 그런데 왜 그들이 요동하겠는가? 선한 목자께서 그의 양들을, 먹이를 노리는 짐승들이나 으르렁거리는 이리들에 의해 공격당할 위험이 있는 이 골짜기에서 지휘하고 호송하신다. 그는 그들을 호위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위로가 매우 필요할 때 그들을 안위하신다.

그의 임재는 그들을 안위해 줄 것이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의 칼과 성령이,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들을 안위하실 것이다. 이것은 목자의 지팡이나 양들을 세기 위해 그 아래로 통과하게 했던 막대기(레 27:32), 양들을 흩어지게 하거나 못살게 구는 개들을 쫓아내기 위해 목자가 썼던 장대를 언급하고 있다. 성도들이 거의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지하시고(“그는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아신다”), 그 원수를 꾸짖으시며, 그들을 그의 막대기로 안내하시고 그의 지팡이로 떠받치시리라는 것은 그들을 안위해 준다. “복음은 주의 권능의 홀”이라 불리고 있으며(110:2), 그 속에는 성도들이 죽게 될 때 그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것들이 있다. 그들 “아래”에는 “영원하신 팔”이 계신 것이다.

Ⅲ. 하나님이 그에게 하사하신 좋은 선물에서 그는 그의 인자하심이 견고하고 영원하다는 사실을 추론해 내고 있다(5-6절).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볼 수 있다.

1.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롭게 베풀어주신 것을 매우 높이 찬양하고 있다(5절). “주께서 내게 상을 베푸시나이다. 주께서 나를 위해 생명과 경건함을 모두 지킬 수 있는 것들을, 현세와 내세에서 육신과 영혼 모두에 필요불가결한 것들을 모두 마련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들에게 관대한 은인이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의 선하심을 크게 표명하도록 만든다. 다윗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1) 하나님은 좋은 음식을 갖고 계셨다. 베풀어진 상과 가득 채워진 잔, 그의 굶주림을 채울 고기, 갈증을 채울 음료를 갖고 계셨다.

(2) 하나님은 그를 위해 그것을 배려 깊게 쾌히 마련해 주셨다. 그의 상이 펼쳐진 후에 어떤 음식이 그 위에 놓인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앞에 베풀어져 있었다.

(3) 그는 절약하거나 궁핍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풍족히 갖고 있었다. “나 자신과 내 친구들에게도 충분할 정도로 내 잔이 넘치나이다.”

(4) 그는 필수품뿐만 아니라 장식과 즐거움을 위한 것도 갖고 있었다. “주께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나이다.” 사무엘이 그를 왕으로 기름부었고, 그것은 더 큰 은총에 대한 확실한 담보였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를 풍족하도록 축복하셨다는 일례이거나 또는 특별한 친구들의 머리에 감람유를 붓는(눅 7:46) 독특한 환대를 언급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그가 아직도 그 자신을 양으로서, 주인의 음식을 먹고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눕는 그런 “가난한 자의 작은 암양”(삼하 12:3)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귀하게뿐만 아니라 이처럼 자상하게 돌보심을 받는다. 그들의 풍족한 양식이 그들의 몸과 영혼을 위해, 현재와 미래의 생명을 위해 마련된다. 만일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자연적인 생명을 위해 이처럼 풍성한 것들을 베풀지 않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영적인 축복으로 보상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의 잘못 때문이다.

2. 그는 하나님의 은총이 계속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6절). 그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말했다(1절). 그러나 이제 그는 더욱 긍정적으로, 더욱 알기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로다.” 시련당함에 따라 그의 소망이 자라나고 그의 믿음이 강해지고 있다. 다음을 주목하라.

(1) 그가 그 자신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 그것은 선하심과 인자하심,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인자하심의 모든 시냇물, 용서하시는 긍휼, 보호하시는 긍휼, 부축해 주시는 긍휼, 마련해 주시는 긍휼이다.

(2) 그것이 전달되는 방법. 그것은 광야를 통과하는 이스라엘 출정군을 따르던 바위의 물처럼 나를 “따를” 것이다. 그것은 어떤 곳이나 상황에도 따라올 것이며, 항상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3) 그것의 지속. 그것은 “나의 평생에”, 마지막 날까지도 나를 따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4) 그것의 불변함. “나의 평생에”, 새날이 오듯이 어김없이 온다. 그것은 매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려진 만나와도 같이 “아침마다 새로울” 것이다(애 3:22-23).

(5) 그것의 확고함. “정녕”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진리의 하나님이 하신 약속처럼 확실하며 우리는 우리가 누구를 믿어왔는지 알고 있다.

(6) 미래의 상태에는 축복의 온전함이 있으리라는 전망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이 세상에서 평생토록 나를 따랐으므로, 내 생명이 끝날 때에도 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기 위해 더 나은 세상으로, 거할 곳이 많은 위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집으로 갈 것이다. 내가 지금 가진 것으로 충만히 기뻐할 것이며, 내가 바라는 것으로 더욱 충만히 즐거워할 것이다.” 이 모든 것, 그리고 또한 천국을 즐거워하리라! 그때 우리는 선한 주인을 섬기게 된다. 

3. 그는 하나님과 그의 의무에 집념하기로 매우 단호하게 결심하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절을 다윗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내가 살아 있는 한) 거하리로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고 있는 한 그를 찬미하리로다.” 우리는 영원히 그를 섬기기 위해 문기둥에 귀를 대고 구멍을 뚫은 종처럼 그의 집에 거해야 한다. 만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이 찬란한 대낮을 위해 점점 더 빛나는 아침 햇살 같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곧 사라질 아침 구름이나 아침 이슬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충족함으로 만족을 얻으려는 자들은 그 의무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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