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6.2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2.참된친구이신구주안에거함..참고견딤.혼전순결
첨부파일 :

Psalm 12.[[칠전팔기..백전불굴의 용기와 담대함과 끈기로 참음과 견딤...주님 뜻 이루도록!!]]

...나는 믿음으로 주얼굴보리니..facetoface..내눈여소서..어지러운세상중에340.내주님지신십자가339.내주를 가까이하게함은338.십자가를내가지고341.

For the choir director: A psalm of David, to be accompanied by an eight-stringed instrument.[a]

1 Help, O Lord, for the godly are fast disappearing!    The faithful have vanished from the earth!

2 Neighbors lie to each other,    speaking with flattering lips and deceitful hearts.

3 May the Lord cut off their flattering lips    and silence their boastful tongues.

4 They say, “We will lie to our hearts’ content.    Our lips are our own—who can stop us?”

5 The Lord replies, “I have seen violence done to the helpless,    and I have heard the groans of the poor.

Now I will rise up to rescue them,    as they have longed for me to do.

6 The Lord’s promises are pure,  like silver refined in a furnace,  purified seven times over.

7 Therefore, Lord, we know you will protect the oppressed,    preserving them forever from this lying generation,

8 even though the wicked strut about,(으스대고 뽐내며 돌아다니다) and evil is praised throughout the land.

--------시편 12편 [개역개정]-------------

1.여호와여 도우소서(야샤경건한 자가(하시드...하사드/성도) 끊어지며(가마르) 충실한(아만)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파사스)

2.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아마르)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가바르)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5.여호와의 말씀에(이므라) 가련한(아니...가난한-비천한-억압받는-압제당하는) 자들의 눌림과(쇼드..분쇄-압살-파멸)궁핍한 자들의 탄식(아나카...신음-울부짖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쉬트) 하시도다

6.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타호르...순수한-정결한-깨끗한) 흙 도가니에(알릴...도가니-용광로) 일곱 번 단련한(자카크..정련하다--깨끗케 하다) 은 같도다

7.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나차르)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샤마르)

8.비열함이(줄루트..비열함-무가치함-쓸모없음)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라샤...죄, 악, 불법) 곳곳에서 날뛰는도다(할라크)

-------

주님, 도와주십시오. 신실한 사람도 끊어지고, 진실한 사람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거짓말을 해대며, 아첨하는 입술로 두 마음을 품고서 말합니다.

주님은, 간사한 모든 입술과 큰소리 치는 모든 혀를 끊으실 것이다.

비록 그들이 말하기를 "혀는 우리의 힘, 입술은 우리의 재산, 누가 우리를 이기리요" 하여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가련한 사람이 짓밟히고, 가난한 사람이 부르짖으니, 이제 내가 일어나서 그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베풀겠다."

주님의 말씀은 순결한 말씀, 도가니에서 단련한 은이요, 일곱 번 걸러 낸 순은이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리고, 비열한 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습니다.

----------

Help, LORD, for the godly man ceases to be, For the faithful disappear from among the sons of men.

They speak falsehood to one another; With flattering lips and with a double heart they speak.

May the LORD cut off all flattering lips, The tongue that speaks great things;

Who have said, "With our tongue we will prevail; Our lips are our own; who is lord over us?"

"Because of the devastation of the afflicted, because of the groaning of the needy, Now I will arise," says the LORD; "I will set him in the safety for which he longs."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n the earth, refined seven times.

You, O LORD, will keep them; You will preserve him from this generation forever.

The wicked strut about on every side When vileness is exalted among the sons of men.

===========

사울의 정권 때에 조정과 나라 모두에서 정직과 경건이 일반적으로 타락해 있었는데,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매우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친구들의 배신과 숙적들의 무례함에 의해 고통당했기 때문이다.

1.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있다. 사람들 가운데서는 [어쩌면 주하나님외에는...다윗을 사랑하기에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축복해 주며 알아준 유일한 참 친구 요나단처럼] 그가 진실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1-2).

2. 다윗의 주위에 있는 이들의 이율배반적인 간악함을 살펴보자면, 마치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이중적인 마음으로 계략을 꾸미며, [요나단외에는] 그들에게는 서로를 참되게 위하며 축복하는 진실한 친구의 신실함이 전혀 없었다..., 비록 다윗의 면전에서는 아주 충성스럽고 신실한 친구처럼 번지르르한 말로 아첨하나, 뒤에서는 사울왕이 오해하여 어찌하던지 다윗을 죽이도록 -다윗이 사울왕을 살해하거나 반란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식의-거짓말로 다윗을 파멸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교언영색 +구밀복검) 있는바, 바로 그런 자들의 교만한 교활함에 대해, 또한 거짓말로 모함하며 위협하는 대적들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의 파멸을 예언하고 있다(3-4).

3. 지금 상황이 이처럼 악하더라도(8) 하나님은 그 자신의 백성들을 보존하시고 안전케 해주실 것이며(5, 7), 그들에 대한 그의 약속을 분명히 유익하게 이루어주시리라는 것을 다윗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해 주고 있다(6)..

....사울 정권 때에 지어졌든 아니든 분명 악한 세력 아래 있었던 시대로 추정된다. 아마도 여기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악한 세대를 맞게 될 자들이 있으리라는 점을 영으로 예견하고, 그때에 교회가 사용하도록 이 시편을 비장해 두었을 것이다. “오, 시대여, 이런 풍파여!”

---------------------

악한 세대에 대한 원망(시 12:1-8)

악한 세대에 사는 믿는 이들의 취할 바 마땅한 기도의 전형... 그런 때에는 한마디의 말이 남의 감정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신중한 자는 오히려 잠잠히 있다(암 5:13). 그러나 그런 때에도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주어진 합당한 명상과 기도로써 우리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Ⅰ. 무엇이 세대를 악하게 만드는가...우리는 여기서 무엇이 세대를 악하게 만들며, 언제 사람들이 악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세상사람들에게 세대를 악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라. 그들은 여러분에게 돈이 없고, 사업이 망하고, 전쟁으로 인해 비참해지는 것이 세대를 악하게 만든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세대가 악해지는 이유를 다른 면에서 보고 있다. “고통하는 때가 이르고”(딤후 3:1) 그때에는 죄악이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여기에서 다윗이 원망하고 있는 일이다.

1. 사람들 가운데 일반적인 경건과 정직이 소멸될 때, 그 세대는 정말로 악하다(1절).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없어지도소이다.” 경건과 충실이라는 이 두 가지 특성이 여기에 어떻게 배합되어 있는가를 주목하라. 정직함이 없이는 참된 수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된 경건도 없다. 경건한 자는 충실한 자, “변함이 없는” 자로서, 그들은 때로 그렇게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들의 말은 증서에 계약을 맺은 것같이 확고하다.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참된 양심을 지킨다.

그들은 죽음이나 황폐함 또는 이 두 가지에 의해 끊어지며 없어진다고 여기에 적혀 있다. 경건하고 충실한 자는 제거되었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도 슬프게 몰락했으며, 예전 상태와는 다른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날 수 있었던 선한 사람들은 거의 없거나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그는 이로써 사울의 신하들 가운데에는 경건하고 충실한 자가 없었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이스라엘에는 경건한 사람이 거의 없거나 또는 아무도 없음을 의미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서 결백함을 지킨 자들 7천을 두셨을 때 오직 자기 혼자만이 남겨졌다고 생각했던 엘리야(롬 11:3)와 똑같은 오류에 빠지지나 않았을까 하고 의심할 수 있다. 또는 비교적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믿음과 덕이 타락한 때(그런 때는 악한, 매우 악한 세대다)가 있었는데, 그때에는 한 사람도 공의를 행하는 자가 없었다(렘 5:1).

2. 모든 대화가 거짓과 아첨으로 인해 타락하고 더럽혀졌을 때 그 세대는 매우 악한 세대다(2절). 

그때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매우 방탕해 거짓을 거리낌없이 행하고, 이웃을 해치기 위해 가장 극악한 계획을 품을 정도로 악의에 차 있고, 또한 가장 그럴 듯하게 우정을 가장하고 고백함으로써 그 계획을 숨길 정도로 비열하다. 이처럼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그들은(다윗 시대의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에게 했던 것처럼) 입맞추고는 죽일 것이며, 너희 얼굴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는 너희 목을 자를 것이다. 이것이 악의와 거짓이 혼합된 완전한 마귀의 형상이다. 이처럼 신실한 것을 전혀 볼 수 없을 때, 정직한 자들이 누구를 믿어야 하고 의지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할 때, 뿐만 아니라 친구나 길잡이를 감히 신뢰할 수 없을 때(미 7:5-6; 렘 9:4-5), 그 세대는 정말로 악하다. 이처럼 세대를 위험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화 있을 것이다.

3. 하나님의 대적들, 그리고 믿음과 믿음의 백성들에 대한 대적들이 무례하고 대담하여 의롭고 거룩한 자들을 모두 파멸시키려고 위협할 때, 그 세대는 매우 악하다. 

그때에는 교만한 죄인들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극도의 불경건에 이른다. “우리의 혀로 덕에 관한 송사를 이길지라. 우리의 입술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말할 수 있으니, 규제하거나 문책하여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4절)

(1) 이것은 그들 자신의 교만한 자부심과 그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나타내고 있다. 

마치 금지된 과일을 먹음으로써 정말 그 목적이 획득된 것같이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신들처럼 독립적이며 스스로 충만하고, 선과 악에 대한 자신의 지식에 오류가 없으므로 신탁이 되기에 적합한 자들인 것같이, 또한 그들의 능력이 불가항력적이어서 법도를 지시하는 자가 되기에 합당하고 그들의 혀로써 이길 수 있는 것같이, 그리고 하나님 자신처럼 말하면 그대로 행해지는 것같이 그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도 같다.

(2)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오만한 경멸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리실 타당성이 없는 것처럼 여기고─“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다”(이것은 부당한 주장이다. 누가 사람의 입을 만들었고, 누구의 손으로 그에게 생기를 넣었으며, 그가 숨쉬는 것은 누구의 공기인가?) 하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명하거나 심판하실 권한이 없다는 듯이 바로가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겠느냐?”(출 5:2)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을 한다. 이것은 전자의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고 불합리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그의 안에서 살도록 하시고 우리를 움직이시며 우리의 존재를 부여하신 하나님은 명백한 권리에 의해 우리를 주관하시는 주님이 되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4. 가련하고 궁핍한 자가 눌리고 학대당하며 멸시당할 때, 그 세대는 매우 악하다. 

하나님께서 친히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주시하신다는 구절 속에 이것이 암시되어 있다(5절). 그들은 가련하기 때문에 눌림을 당하며, 그들이 해를 당하는 모든 이유는 단지 그들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눌림을 당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옹호하는 것이 압제자를 불쾌하게 할 것을 두려워해 감히 자기 자신을 위한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불운을 몰래 슬퍼하면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영혼의 한숨을 쏟아놓으면서 탄식한다. 만일 그들을 압제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힘이 되어주기를 요청한다면, 그 압제자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또 자기 자신의 죄악과 가련한 자들의 비참함을 경시하며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을 것이다(10:5 참조).

5. 압제자들의 권위로 가련한 자들을 보호하고 지지한다는 구실 아래 사악함이 가득 차고 몰염치하게 될 때, 그 세대는 매우 악하다(8절). 

그때에는 “비루한 인생들이” 책임 있고 권력 있는 자리로 “높아지며”(이들은 악과 불의를 처벌하는 법도를 수행하지 않으며 그들의 업적에 따라 악인들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지지하고 보호하며 그들을 후원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그런 일을 행함으로써 악인들에 대한 평판을 지속시킨다), “악인이 도처에 횡행하게” 된다. 그들은 모든 곳에 들끓고 있으며, 타인을 속이고 타락시키고 파멸시킬 기회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에 대해 깨닫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소돔처럼 그들의 죄를 선포하고 그들을 저지하고 제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악인은 야비하며 가장 비루한 자들이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높아진다 하더라도 그들은 역시 그런 악인이다. 성서에서는 유명한 안티오커스를 “비천한 사람”(단 11:21)이라 부르고 있다. 따라서 이런 자들이 발탁되면 그 나라에 해롭다. 그때에 사악함이 경솔하고 무례함으로 성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Ⅱ. 우리가 여기에서 이와 같이 악한 세대에 관해 얼마나 훌륭한 생각들을 얻을 수 있는가를 살펴보자. 우리는 우리가 어떤 세대를 맞이할 것인가를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세대가 이처럼 악할 때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위로가 된다.

1. 우리는 우리가 가서 우리의 모든 슬픔을 시정해 주기를 요청하고 기대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갖고 있다. 

그는 이 시편을 이런 말로 시작하고 있다(1절).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도소이다. 다른 모든 도움과 돕는 자들은 끊어졌나이다. 심지어 믿음이 소멸되어 가는 것을 제지하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빌려주어야 할 경건하고 충실한 자들까지도 없어졌습니다. 그러하오니 우리가 주님 이외에 그 누구에게서 그것을 구하겠나이까?”

경건하고 충실한 백성들이 끊어지고 없어질 때가 바로 “여호와여, 도우소서” 하고 부르짖어야 할 때다. 죄악이 넘치는 곳에는 대홍수의 위협이 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고결한 자를 도우소서. 결백을 지키려는 자들은 거의 없으며, 틈 사이에 서려는 자 거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쓰러져가는 주의 세력을 구원하도록 도우소서. 여호와여, 주를 위해 역사하실 때가 되었나이다.”

2. 하나님은 분명히 거짓되고 교만한 자들은 헤아리실 것이며, 오만무례함을 벌하시고 제어하실 것이다. 

그들은 인간들이 지배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으며, 사람들을 무시한다. 사람들은 아첨하는 자들의 그릇됨을 발견할 수 없고, 뿐만 아니라 교만하게 말하는 자들의 오만을 꺾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의로우신 하나님은 배반자의 입술, 즉 입맞춤하고 마음에 적의를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름보다 더 부드럽게 말하는 “모든 아첨하는 입술”을 끊으실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믿음에 대적해 “자랑하는 혀”를 잡아 빼실 것이다(3절).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거짓되고 악한 입술을 끊어주옵소서”라는 기도로 풀이한다. “입술을 닫아 잠잠케 하소서.”

3. 하나님은 합당한 때에 그의 눌린 백성들을 위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이며,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의 사악한 계획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이다(5절). 

“여호와 말씀에, 내가 이제 일어나리라 하시도다.” 여기에서 다윗이 예언의 영으로 전한 하나님의 이 약속은, 그가 기도의 영으로써 하나님께 올렸던 그 청원에 대한 대답이다. 그는 “여호와여, 도우소서” 하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러마, 내가 여기 있다. 적절한 때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내가 도우리라” 하고 말씀하신다.

(1) 그것은 합당한 때에, 적절히 이루어진다.

① 압제자들이 극도로 교만하고 무례할 때─그들이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하고 말할 때─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혼냄으로써 자신이 그들 위에 계시다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때다.

② 압제받는 자들이 깊은 고통과 낙담 속에 있을 때, 그들이 잔인한 속박으로 인해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처럼 탄식할 때, 그때가 바로 이스라엘이 매우 낙심하고 바로가 매우 높아졌을 때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나타나실 때다. “내가 이제 일어나리라.” 박해를 당하는 무고한 자들을 구할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때는 반드시 올 것이며, 우리는 그때가 가장 적합한 때임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102:13).

(2) 그것은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저를 안전지대에” 또는 구원의 자리에 “두리라.” 하나님은 그를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전의 형통함을 회복시켜 주시며, “그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실” 것이다(66:12).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그는 그 고난으로 인해 손실당함이 전혀 없을 것이다.

4. 비록 사람들은 거짓되더라도 하나님은 성실하시다. 

비록 그들을 신뢰할 수 없더라도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다. 그들은 거짓과 아첨을 말하나,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하도다”(6절). 그것은 흙아궁이나 용광로에서 제련한 은같이 모두 진실일 뿐만 아니라 매우 순수하다.

(1) 이것은 하나님 말씀의 신실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 모든 말씀은 여기에 묘사된 것처럼 다른 것과는 달리 정말 신실하다. 그것은 우리를 조롱하지 않으며 우리를 속이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이외에 다른 어떤 의도도 지니고 있지 않다.

(2) 하나님 말씀의 고귀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고도로 정련된 은같이 매우 훌륭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책잡힐 만한 것도 전혀 없다.

(3) 이 구절은 또한 하나님 말씀의 능력과 참됨을 증거한 많은 일들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흔히 시험되어 왔으며, 모든 세대의 모든 성도들이 그것을 믿고 따라서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결코 속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대를 꺾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시험해 본 것을 믿음”(Experto crede)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가련하고 눌린 자들을 구조하고 위로하는 이런 약속들을 특히 언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친구들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리라는 기대를 그들이 갖게 했으나, 그것은 부러진 갈대임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들의 말을 신뢰할 수 없을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도록 해야 한다.

5. 하나님은 아무리 세대가 악하더라도 그가 택하신 남은 자들을 안전케 하실 것이다(7절).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이것은 세상이 계속되는 한 거기에는 교만하고 사악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이 비열한 수단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함으로써(단 7:25) 믿음을 파괴하려고 위협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홀로 그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시도록 하고, 그 자신의 백성들을 보존하시도록 하라. 그는 이 세대로부터 그들을 지키실 것이다.

(1) 교만하고 악한 자들에 의해 타락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그들과 함께 섞이거나 그들의 일을 배우지 않게 그들을 지키실 것이다. 

배신이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시대에도 주님은 그의 백성들을 알고 계시며, 그들은 그들의 결백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을 것이다.

(2) 교만하고 악한 자들에 의해 파멸당하거나 근절되지 않도록 그들을 지키실 것이다. 

교회는 반석 위에 지어졌다. 그리고 매우 잘 요새화되어 있기 때문에 음부의 문도 그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가장 악한 세대에도 하나님은 그의 남은 자들을 갖고 계신다. 그리고 모든 세대마다 거룩한 후손을 보유하실 것이며, 그들을 그의 천국에 간직하실 것이다.

이 시편을 노래하고 그것을 간구함에 우리는 세대가 전반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탄식해야 하며, 한편 그보다 더욱 악하게 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는 이 세대가 더욱 나아질 것을 간구하고 바라야 한다.

============

[v'y:(3467, 야샤) 구원하다, 구출하다, 구조하다

야샤(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구원하다, 구출하다, 구조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00회 나오며, 니팔형과 히필형으로만 사용되었다. 야샤와 그 파생어들은 약 350회 나온다.

아랍어 어근의 의미는 '넓게 만들다'나 '충분하게 하다'이다. 이 어근은 '제한되다'나 '고통을 야기시키다'를 의미하는 차라르(좁은 narrow)와 대조된다. 넓은 것은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자기 자신의 목표물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고통에서 벗어나서 안전을 얻기 위해서는 구출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구출은 압제 당하는 사람들의 편 이외의 어떤 곳에서부터 행해져야 한다. 구약성경에서, 국가적인 것이든 개인적인 것이든, 고통의 종류에는 원수들, 전염병이나 기근 같은 자연 재해들도 포함되어 있다. 구원을 가져오시는 분은 "구세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 말은 신학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모세는 우물에서, 르우엘의 딸들이 목동들에 의해 쫓겨나는 것에서부터 구해주었다(출 2:17). 그러나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서 이 말은 종교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닌다. 왜냐하면 구원을 행하신 이는 여호와이셨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그는 "우리 구원의 하나님"으로 알려졌다(시 68:19이하, H20이하). 비록 구원이 인간 대리자를 통해서 행해지기도 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대리자에게 권한을 주셨다는, 오직 그 이유 때문이었다. 신약성경에서 구원의 개념은 주로 죄의 용서, 죄의 권능으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사탄의 패배를 의미한다. 비록 구약성경이 이런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하긴 했지만 구원에 관한 대부분의 언급들은 여호와께서 실재적인 원수와 실재적인 재해로부터 구출해주신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a)  구원의 종류: 여러 번, 다른 나라들의 압제를 당한 이스라엘은 자유를 얻고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 싸우러 나가야 했다. 이 전쟁들에서, 이 민족은 도움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섰다. 그들은 전쟁의 결과가 여호와께 속한다고 믿었다(삼상 17:47). 그래서 그들은 감히 승리의 결과를 확신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초점은 애굽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이 구원 받는 것이었다(출 14:30).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받은 백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신 33:29). 이런 구원 행위는 미래 세대들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도 여호와의 주권을 나타내주는 증거가 되었다(참조: 시 106:8, 삼상 4:6이하). 후에 이스라엘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을 기대했을 때, 모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라고 말했다(신 20:4).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 약속을 성취하셨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소유하도록 백성들을 인도하였다. 후에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들 중의 한 국가에 의해 압제 당했을 때, 하나님은 사사를 통해서 그들을 구출하셨다(삿 2:16). 일반적인 형태는 하나님께서 사사에게 자기의 영을 부여하여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쳐부수게 하는 것이었다. 후에, 왕정 하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도움을 받은 의로운 왕에 의해 원수들을 쳐부쉈다(삼상 9:16, 시 20:6, H7). 진실한 믿음을 가진 지도자는 요나단의 말,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라는 정신으로 감히 전진해 나갔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구원은 왕의 영광이었으며 백성들에 대한 그의 권세를 확고하게 세워주었다(시 21:5, H6). 이 민족의 힘이 강해지고 명성을 떨칠 때, 왕과 백성들이, 구원은 강한 군사들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시 44:1-8, H2-9). 비록 하나님께서 구원을 행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인간 대리자를 사용하시긴 하지만, 장애물 정복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 자신의 특별한 도우심이 있어야 할만큼 매우 극적인 것이었다(참조: 잠 21:31). 여기에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면서도 그의 백성들의 특성을 세우는, 하나님의 행동과 인간의 반응 사이의 창조적인 긴장이 있다. 때로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이 일을 행하시므로,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의 강한 행동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일을 해야 한다(대하 20:17, 참조: 호 1:7).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라고 하는 이런 역사적인 형태를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왕의 역할을 성취하실 미래의 구세주 개념이 생겨났다(참조: 렘 23:5이하).

구원은 공격적일 뿐만 아니라, 방어적이기도 하다. 적대적인 것이 다가올 때, 사람들은 안전한 피난처로 물러서기도 한다. 하나님은 자주 그의 백성들을 위한 이런 피난처로 간주되곤 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 62:7, H8).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내적 근심으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가 적대 세력을 견뎌내야 할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은 그의 대적들이 그를 파멸시키지 못할 것을 보증하실 것이다. 구원의 보호적 성격은 다른 개념들로 나타난다. 즉 "구원의 방패"(시 18:35, H36), "구원의 투구"(사 59:17, 엡 6:17), "구원의 옷"(사 61:10). 이처럼 구원은 단순히 전장에서의 순간적인 승리가 아니다. 이것은 또한 수많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안전과 방위 수단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도성을 기대할 때, 구약성경은 그 도성의 벽이 '구원'이라고 불리워질 것으로 예상한다(사 60:18). 이 도시는 오직 의인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며, 이 도시는 구원을 수반하는 모든 안전을 제공해준다(사 26:1).

(b)  영적인 의미: "구원하다"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시고 개인의 성품을 변화시키심으로써 구원하신다는 점에서, 신학적인 의미를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겔 37:23). 다윗은 이점을 깨닫고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시 51:14, H16, 참조: 시 79:9)라고 기도하였다. 렘 17:14에서 "구원하다" save는 "치유하다" heal와 병행된다. 즉 구원은 정서적이며 신체적인 안녕을 가져오는 역동적인 힘이 된다.

(c)  구원과 의: 여호와의 모든 구원 행위는 의에 의거하고 있으며, 이것은 "의"와 "구원"이 종종 병행되어 나오곤 한다는 사실에 나타나있다(예: 사 51:8). 비록 모든 구원 행위에 심판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심판을 받는 사람들은 죄인이며 따라서 이런 재판을 받아 마땅하다(참조: 시 76:8, H9이하). 다른 한편,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며, 그리고 인간의 원초적인 불순종으로부터의 구원의 수단을 인간에게 제공해주심으로써, 자기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피조물인 인간에게 신실하시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구세주를 통하여, 구원자로서의 그의 책임을 이행하신다. 이리하여 여호와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으로 알려진다(사 45:21).

(d)  계시된 하나님의 특성: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은 그의 우주적인 통치를 드러낸다(참조: 사 33:22). 그의 왕국이 온 세상 위에 펼쳐질 것이므로 그는 그가 원하는 누구에게든지 구원을 가져다 주신다. 더구나 구원행위는 종종 바다와 해룡으로 의인화되곤 하는 악의 권세의 목적을 파괴한다(시 74:12이하). 따라서 모든 승리는 그의 모든 백성들을 위한 마지막 구원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에게 그를 예배할 근거를 마련해준다. 즉 구원해줄 수 있는 신만이 예배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자주 대두되는 우상숭배에 대한 논쟁은 다른 신들에게 그들의 압제 받는 추종자들을 구원해보라고 도전하는 것이다(사 46:7, 삿 6:31). 그들이 응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신들이 헛되며 여호와 외에는 구세주가 없다고 고백하게 만든다는 점을 입증해준다(사 43:11, 호 13:4). 확실한 것은 구원행동이 단순한 역사와 우연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호와는 구원행동을 하시기 전에 그가 행하려고 했던 것을 계시하신다(사 43:12). 뿐만 아니라, 그는 그 일을 행하셨다는 점에서 볼 때, 자기의 말에 신실하시다. 나중에 이 행동은 해석되고 선포되었다. 게다가 구원 행동은 각 세대들이 여호와와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며, 그 행위에 대한 선포는 이 관계를 수립하고 계속 유지시키도록 신앙을 불러일으킨다(참조: 사 52:7).

더구나 구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된다. 구원은 그의 사랑에서부터 흘러나온다(참조: 신 7:7 이하). 신실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려울 때, 구원을 받기 위해 그에게로 돌아선다(시 6:4, H5, 시 109:26). 이처럼 구원은 행동으로 표시된 하나님의 사랑이다.

구원은 또한 그의 백성 사이에 계시는, 그리고 그의 지도자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임재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일을 위임 받은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그의 임재를 약속 받았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렘 1:8, 렘 1:19, 참조: 마 28:20)고 약속하셨다. 예레미야는 후에 감옥에 갇혔으며 여러 번 그의 생명이 위협을 받았으나 그의 적대자들은 결코 그를 파멸시키지 못했다. 모세도 이 약속으로 인하여 성공하였다(출 3:12). 이처럼 그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써, 그들은 적과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e)  백성들의 준비와 반응: 회개와 믿음: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해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고통 중에 있을 때, 인간은 기도로 하나님을 구해야 한다(예: 삿 3:9, 시 69:1, H2). 즉 그는 자기의 위급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심정으로 낮아져야 한다(참조: 욥 22:29, 시 34:18, H19).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에는 죄를 내버리는 것이 포함된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께서 곤궁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사 59:1 이하).

인간이 일단 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섰다면, 그는 구원을 기다림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그의 확신을 표현해야 한다(사 30:15). 하나님은 행동하실 시기를 선택하신다. 인간은 소망 가운데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가 구원을 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를 선택할 것이므로, 백성들이 믿음으로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 주기를 바라신다. 사람들이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는 적극적으로 의를 추구하며 사랑을 표현하신다(사 56:1, 호 10:12, 호 12:6).

찬양의 노래. 실제적이든, 예기적이든,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인간의 즉각적인 반응은 찬양의 노래에 있다. 홍해 구원에 바로 뒤이어 바다의 노래가 작곡되어 불리워졌다(출 15:1-8). 장차 오실 메시야에 의한 구원에 관한 이사야의 기술 다음에는 사 12장에 노래가 나오며, 세편의 종의 노래는 노래하는 것으로 끝난다. 사 42:10이하, 사 49:13이하, 사 54:1이하. 노래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기쁨을 나타내준다. 기쁨은 자주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인간의 내적 반응으로 언급되곤 한다(예: 시 13:5, H6). 더구나 여호와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느낀다: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시 40:10, H11).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생을 의미와 기쁨으로 가득채운다.

(e)  미래의 구원: 이스라엘이 포로지에서 돌아온다는 사실은 구원의 언어로 예기되었다. 여호와는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리라"(렘 30:10, 슥 8:7)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자기의 양떼로 생각하시므로, 그는 "내가 내 양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한다(겔 34:22).

여호와 외에는 구원이 없으므로, 그는 초대를 확장하여,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 45:22, 참조: 시 67:2, H3)고 말씀하신다. 선지자들은 구원이 만방에 효력을 미쳐 영원히 지속될 날을 고대한다. 이사야는 이 구원이 고통 당하는 종을 통해서 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 종이 고난을 참는데 까지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고 약속하신다. 바꿔 말하면, 구약성경에서의 구원 행동들은 모든 백성들을 구원의 가능한 축복아래에 포함시킬 마지막 구원 행동을 위해 이룩된 것이다(사 52:10).(참조: J. E. HARTLEY; BDB). 

dysij;(2623, 하시드) 친절한, 경견한(자)

하시드(형용사)는 하사드(ds'j; , 2616)에서 유래했으며, '친절한, 충실한, 경건한'을 의미하며, 실명사로 '경건한 자' 즉 '성도'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2회 나온다.

(a)  하사드는 '경건한 자, 성도'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시드라고 불리어진 것은, 그들이 헤셋으로 특징지어졌기 때문이거나(그럴듯하게 그렇게 보임) 아니면 그들이 하나님의 헤셋의 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b)  하시드는 시 16:10에서 단 한번 장차올 거룩하신 분을 가리킨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참조: R. L. HARRIS; BDB). 

---------

@m'a;(539, 아만) 확실하게 하다, 지지하다, 충실하다, 믿다

아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확실하게 하다, comfirm, 지지하다, 기르다 support, 충실하다, 신실하다, 성실하다 be faithful, 믿다, 신뢰하다 believe, trust'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10회 나오며, 칼, 니팔,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성경 교리에서 매우 중요한 이 단어의 개념은, 이 단어에 대한 많은 대중적 개념과 대조 구별되는 '믿음'(faith)의 성경적 의미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제공해 준다. 이 어근의 의미는 핵심에는 '확실성'(certainty)의 개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히 11:1 나타나 있는 신약성경의 믿음에 대한 정의에 의해서 확증된다.

이 어근의 기본적인 개념은 '확고함'(firmness)이나 '확실성'(certainty)이다.

1. 칼형에서 이 단어는 '지지하다, 기르다'를 의미한다.

왕하 18:16에서 이 단어는 '버팀 기둥'을 묘사한다. 에 2:7에서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자기 딸같이 양육했다. 민 11:12에서 "양육하는 아비", 룻4:16에서 아기의 "양육자"를 묘사한다.

2. 히필형에서 이 단어는 '확실하게 하다' 혹은 '~에 대해 확신하다', '보증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히필 동사 변화에서의 이 단어는 '믿다'를 의미하며, 성경에서의 믿음은 '보증' assurance, '확실성' certainty으로서, 이는 믿음을 있음직하고, 아마도 참되긴 하지만 확실치 않은 어떤 것으로 보는 현대의 개념과 대조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로부터 이 단어는 '확립된 사람' 혹은 '굳혀진 사람' 즉 '충성된 자'(삼하 20:19, 시 12:1, 시 31:23)라는 수동적인 의미로 사용된 칼의 수동 분사형으로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3. 니팔형에서 '확립(확정)되다'를 의미한다(삼하 7:16, 대상 17:2, 대상 17:3, 대하 6:17, 사 7:9).

'신실하다, 충실하다, 확실하다, 신뢰할만 하다'를 의미하며, 분사형에서 신자들을 나타낸다(민 12:7, 삼상 2:35, 느 9:8). 이 어형은 또한 모든 확실성의 근거가 되는 것, 즉 하나님 자신(신 7:9), 그리고 그의 언약(시 89:28)을 묘사하는데도 사용된다.

'믿음'과 '견고한 것' 사이의 관게에 관한 흥미있는 한 가지 실례는 사 7:9에서 발견된다: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 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아하스는 만일 그가 믿지(히필형) 않는다면, 그가 견고히 서지(니팔형) 못한다. 즉 믿음이 없이는 그가 안정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파생어들도 확실성과 신빙성에 대한 똑같은 개념을 반영해 준다. 파생어 아멘(진실로 verily)은 신약성경에서 아멘이란 말로 받아들여져서 오늘날의 영어 단어 'amen'이 되었다. 예수님은 어떤 문제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다(마 5:18, 마 5:26 등). 이 히브리어 어형과 헬라어 어형은 기도와 찬양송의 끝에 온다(시 41:13, 시 106:48, 딤후 4:18, 계 20:20 등). 이것은 우리의 기도에서 이렇게 사용된 이 용어가 우리가 기도드리는 주님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참조: J. B. Scott; BDB). 

--------

rm'G;(1584, 가마르) 끝나다, 끝마치다, 완성하다

가마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끝내다, 마치다 end, 끝나다 come to an end, 완성하다, 끝마치다 complet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회 나오며, 칼형으로만 사용되었다.

(a)  '끝나다, 더 이상 없다' (시 7:10, 시 12:1, 시 77:8).

(b)  '끝마치다, 완성하다' (시 57:3, 시 138:8).(참조: BDB; HELOT). 

--------

ss'P;(6461, 파사스) 사라지다, 없어지다

파사스(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사라지다, 없어지다, 자취를 감추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시 12:1에 한번 나오며, 사라지는 것을 나타낸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참조: HELOT). 

------

rb'G;(1396, 가바르) 강하다, 이기다, 우세하다, 굳게하다

가바르(동사)는 기본동사이며, '강하다 be strong, 강력하다 be mighty'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5회 나오며, 다음 의미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강하다, 강력하다'. 가바르는 세력이 강한 것(욥 21:7), 사자보다(민) 강한 것(삼하 1:23), 나보다(민) 강한 것(사 65:3, 죄악), 형제들 중에서(베) 강한 것(대상 5:2)을 나타낸다.

(b)  '이기다, 압도하다, 우세하다 prevail'. 가바르는 원수들을 이기는 것(출 17:11, 삼상 2:9, 애 1:16), 물이 압도하거나 우세하는 것(창 7:18, 창 7:19, 창 7:20, 창 7:24), 악한 세력이 우세하는 것(렘 9:3), 원수가 우리를 이기는 것(삼하 11:23), 축복이 ~보다 우세하는 것(창 49:26), 하나님의 인자가 실현되는 것(보급) (시 103:11, 시 117:2)을 묘사한다.

2. 피엘형에서,

'강하게 하다' (전 10:10).

3. 히필형에서,

'굳게 하다 confirm'. 단 9:27에서 언약을 굳게 하는 것을 나타낸다. 시 12:4에서 혀로 굳게, 또는 강화하는 것을 나타낸다.

4. 히트파엘형에서,

'자신의 힘을 보이다(나타내다)'. 가바르는 대적자에 대항하여(사 42:13), 하나님을 향하여(욥 15:25, 하나님을 향해 교만하게 행하는 것), 잘못된 행위에 대해(욥 36:9) 사용되었다.(참조: BDB; TWOT). 

-----

rm'a:(559, 아마르) 말하다 say

아마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말하다'를 의미하며 여기서 '이야기하다, 생각하다(마음으로 말하는 것), 의도(기도)하다, 선언하다, 명령하다, 약속하다' 등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300회 나온다.

아마르의 가장 일반적인 용법은 직접적인 대화에서 나온다. 이때 주체는 하나님(창 1:3), 에덴동산의 뱀(창 3:1), 두려워서 하나님에게로부터 숨고자 한 아담(창 3:10), 완고한 선지자를 전환시키려고 한 발람의 당나귀(민 22:28), 전쟁을 하고 싶어하는 군마(욥 39:25), 바다 속에 있는 지혜의 거처를 부인하는 바다(욥 28:14), 왕을 찾는 숲의 나무들(삿 9:8)이다. 이 동사가 문자적인 문맥들, 의인법우의, 그리고 엄격한 설화에서 이용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단어의 대다수의 용례들은 영어의 say와 같이 '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아마르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말씀에 대해 사용되었다. 7일간의 창조사에서 10번 나타난다(창 1:6, 창 1:9, 창 1:11, 창 1:14, 창 1:20, 창 1:24, 창 1:26, 창 1:28, 창 1:29). 여기서 이 단어는 통상적인 것보다 더 함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그것이 표현하는 것을 존재케 하는 신적 명령의 말씀, 곧 '창조적 말씀의 전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 33:9에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굳게 섰도다'(롬 4:17)라는 말이 증명한다. 더 깊은 의미의 창조적 말씀에 대하여는 시 33:6; 사 40:26; 요 1:1-3; 히 1:2; 히 11:3; 골 1:16등이 증언한다. 하나님의 이런 창조적 말씀은 모든 인간적인 말과 다르다. 그 말씀은 공허하지 않고 (신 32:47; 사 55:11) 강력하며, 전능하며, 최고의 창조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미래를 선포하고 그 미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예언적 말씀이기도 하다. 이 창조 기사에서 이러한 신적 말씀의 특성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참조, Lange, Von Rad).

(b)  아마르는 때로 '약속하다 promise'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사용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왕하 8:19),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소유하도록 하신 약속(느 9:15), 혹은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멸할 기회를 얻으리라고 한 하만의 약속(에 4:7)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에서 이 동사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c)  아마르는 '명령하다 command'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이 단어가 하나님이나 유능한 어떤 권위 있는 사람에 의해 언급되어지는 경우에 그렇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라고 명령하셨다(창 12:1).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고, 여호수아는 그 말씀을 명령(차와)으로 실행하였다(수 11:9).

그리고 아마르는 성전 정화 이후의 제물에 관한 히스기야의 명령(대하 29:24), 하만과 그의 아들들을 매닮으로써 유대인을 도살하라는 포고를 번복시키라고 한 아하수에로의 서신 명령(에 9:25)에서 발견된다.

(d)  아마르는 몇몇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 8:17, 시 14:1에서 '마음에 이르다'라는 표현은 '생각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흥미 있는 용법은 '공언하다, 말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이다. 모세는 연설을 끝내면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기로 맹세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신 26:17-18).

아마르는 '당당하게 행동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저희가 지꺼리며 오만히 말을 하오며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자긍하나이다"(시 94:4).

사 61:6에서 이 의미는 좋은 의미의 '자랑하다' boast인 것 같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참조: T. E. Mccomiskey; BDB; KB). 

-------

hr:m]aI(565, 이므라) 말, 발언, 연설

이므라(명여)와 에므라(명여)는 '말, 발언, 연설'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6회 나오며, 그 대부분이 시에서(시 119에 19회, 다른 시편에 7회) 단수 집합명사로 나온다.

그리고 창 4:23, 신 32:2, 33:9, 삼하 22:31, 애 2:17에서도 나온다.

(참조: Gesenius; C. L. Feinberg). 

------

!Wq(6965, 쿰) 일어나다, 일어서다, 세우다

쿰(동사)은 기본어근이며, '일어서다, 일어나다, 일으키다, 세우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30회 나온다.

이 어근은 본질적으로 '일어선다'는 신체적 행위를 가리킨다. 파생어의 의미들에는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내포된다. 즉 '서 있다'는 뜻이 된다. 또한 이 어근은 상징적으로 일어나거나 서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이와 동일한 용법들이 우가릿어에서 등장한다(참조: UT19: no. 2214). 본 어근은 1,085회 출현한다.

동사 쿰은 여러 그리고 다양한 문맥에서 나타난다. 근본적으로 이 단어는 엎드린 위치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예: 수 3:16). 수많은 용례에서 이 단어는 예비적 행위를 가리키며 특히(예외 없이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음) 여행에 따른 준비 행위를 가리킨다(신 17:8 등등). 그러므로 창 27:19의 "일어나 앉아서(!)"는 단순히 "자 앉으세요"를 의미한다. 본 어근은 존경을 보이는 행위를 내포할 수도 있다. 발람은 발락에게 "일어나" 하나님의 말을 받으라고 말한다(민 23:18).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노인들 앞에서 "일어서라"고 명한다(즉 노인을 공경하라, 레 19:32). 이러한 강조 사항이 종교 의식에까지 이르고 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 모든 사람이 자기 장막 문에 "서서" 경배하였는데(출 33:10) 이는 하나님께 합당한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 열왕들조차도 일어설 것이다(경배한다는 말과 대구를 이룸, 사 49:7). 나아가서 종교 의식적 용법에는 거룩한 물건들과 성역들을 세우고 바치는 행위가 포함된다(신 27:4). 하나님은 우상들을 세우지 말라고 명하신다(레 26:1). 진정 종말에 그는 이 계명이 성취되게 하실 것이다(사 27:9). 이 동사는 또한 직무적 용법을 가지고 있다. 즉 이 동사가 특정 직무수임에 적용된다. 예를 들면 종족의 종교적 우두머리(창 37:7), 선지자(신 34:10), 사사(삿 10:1) 등이다. 이러한 직무들은 세습적으로 계승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와 구별된다(이 단어가 제사장 직무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 단어가 법적 용법으로 쓰일 때 재판에서의 증언의 유효성을 내포한다(신 19:15). 이와 관련된 한 용법에서는 소유권 이양의 유효성을 의미한다(창 23:17). 하나님의 말씀이 설 것이라는 표현도 아마 이러한 법적 개념을 반향할 것이다(민 23:19, 시 40:8, 기타). 이 용법은 계약과 관련된 문맥에서, 그리고 특히 하나님의 언약을 다룬 문맥에서 종종 등장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언약을 인간에게 알리시며(창 9:11) 그가 친히 그것이 성취되게 만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창 17:19). 그는 자기의 언약을 세운(종종 '쿰'의 히필형) 여러 역사적 순간들을 기억하신다(출 6:4). 언약적 축복이 인간의 순종에 달려 있음을 그들이 기억해야 된다고 하나님은 확언하신다(신 28:9). 그러나 그 축복이 인간의 공로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결코 망각해서는 안된다(신 9:5). 베리크(언약 covenant)와 결합시켜, 카라트(자르다 cut)와 헤킴을 상호 대용한 것은 각기 상이한 자료 J/E와 P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양자 간의 어의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하나는 언약을 '개시하다' initiating 또는 '체결하다' making(tr'K; , 3772)를 뜻하며 또 하나는 언약을 '확정하다, 확립하다' confirming or establishing(!yqije)를 뜻한다. 이스라엘 역사 전체에 걸쳐 이러한 상호 관련 주제들이 등장하며 경건한 사람들은 언약 수행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신실성을 증언하고 있다(예: 왕상 8:20). 궁극적으로 인간의 모든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으나 하나님의 언약은 설 것이다. 하나님의 일시적 언약들은 그의 영원한 언약을 계시하는 단계들이며 이 영원한 언약은 파기할 수 없는 그의 계획(사 46:10)과 목표(사 14:24)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뜻(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완전하게 표현되었다(예: 갈 3장, 히 9장).

마지막으로 이 단어는 군사적 문맥에서 자주 사용된다. 이것은 전쟁을 위한 준비(삿 7:15), 전쟁 수행(출 2:17), 전쟁의 승리(또는 분투노력의 성공, 수 7:2)를 가리킨다.

때로 쿰이 예상되는 또는 실현된 승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전투에 참가하실 때 승리는 확실하다. 따라서 이 단어는 그의 창조적 행위, 구원 행위, 심판하는 행위를 뜻한다. 경건한 사람들은 자주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일어나실 것을 간구하였다(민 16:35). 이점은, 이러한 승리 개념이 직접 표출되지 않은 수많은 시편 본문들을 밝혀준다(시 3:7, H8, 시 76:9, H10, 시 35:2). 하나님이 어느 편에 서게 될 때 그는 대적에게 승리한다.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들은 즉각적(시 89:43, H44), 궁극적(시 1:5) 패배를 당하리라는 경고가 주어진다. 

------

tyvi(7896, 쉬트) 놓다, 두다

쉬트(동사)는 기본 어근이며 '놓다, 두다, 배치하다, 자리잡다, 지명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85회 나온다.

출 21:30에서 호팔 어간으로 2회 출현한다. 이 어근은 시편에서 31회로 가장 많이 나타나며 상이한 여러 상황과 문맥에 나온다.

적어도 하나의 고유 명사에 대해 이 동사가 어원을 제공하고 있다. 즉 아담과 하와의 셋째 아들 셋의 어원이다: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다른 씨를 주셨다(지정하셨다) 함이며"(창 4:25). 이 내용은 본래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쉬트를 '주다'(to give)로 번역한 점은 예외적 현상으로 확실히 성경 히브리어에서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그 외 쉬트의 단 두 용례만이 '주다' to give라는 번역을 지지해 주는 구절로 인증될 수 있을 것이다. 두 구절은 다음과 같다: 시 12:5, "내가 탄식하며 안전을 찾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리라' grant"(KJV와 RSV, 한글개역: "두리라"); 시 21:6, "당신은 그에게 영영토록 복을 '베푸신다' confer"(한글개역: "받게 하시며").

빈도가 가장 높은 쉬트의 목적어는 '마음'이라는 단어이다. '마음을 두다'라는 문구가 10회 사용된다. 이 문구는 하나님을 주체로 1회 사용된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욥 7:17). 부정적인 면에서 이 문구는 '무시하다, 잊어버리다, 주의하지 않다'를 의미한다. 예컨대 첫번째 재앙에 대한 바로의 반응이 그러하였다(출 7:23). 참조: 삼상 4:20, 삼하 13:20. 긍정적인 면에서 이 단어는 '숙고하다, 고찰하다'를 의미한다(시 48:13, 잠 22:17, 잠 24:32, 잠 27:23). 

시편의 31개 구절을 견본으로 삼아 고찰해보면 이 어근이 사용된 다방면의 어떤 개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배경이 적대적인 구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시 3:6, "나를 대항하여 '놓아진' 천만인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참조: 시 140:5. 때로는 형세가 뒤바뀌어 시편 기자가 자기 원수들에게 보복적 공의를 내려달라고 기도한다: 시 9:20, "여호와여 저희를 두려움 속에 '놓으시며', 참조: 시 21:9, 시 21:12, 시 73:18, 시 83:11, 시 83:13. 둘째로 수차에 걸쳐 이 동사는 왕을 다루는 군왕시(royal psalms)에 등장한다: 시 110:1,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참조: 시 21:3, 시 21:6, 시 132:11. 셋째로 동일한 시편에서조차도 쉬트가 꽤 상이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자기가 신뢰를 여호와께 '두었다'고 말한다(시 73:28). 그러나 불신자들은 혐오스럽게도 자기들의 입을, 하늘을 대적하며 거기에 '둔다'(시 73:9). 

----------

r/hf;(2889, 타호르) 순수한 pure, 깨끗한 clean

타호르(형용사)는 타헤르(rhef; , 2891: 깨끗하다, 순수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순수한 pure, 깨끗한, 정결한 clean'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94회 나온다.

'정'금의 경우처럼 물질적인 의미로, 의식적인 의미로, 그리고 윤리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더러움, 부정함, 불결, 결함이 없는 것을 나타내며, 구체적으로는 영적 혹은 의식상의 깨끗한 상태를 묘사할 뿐 아니라 순수한 물질을 묘사하는 데에 사용된다.

금은 흔히 불순물이 없는 물질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므로 언약궤, 분향단, 성전 입구는 정금으로 싸여졌다(출 25:11, 출 37:11-26, 대하 3:4). 성전의 어떤 비품들과 기구들 - 속죄소, 등대, 대접, 숟가락, 붓는 병, 쟁반 - 은 '정금'으로 만들어졌다(출 37:6, 출 37:16-24). 대제사장의 의복에는 '정금으로 만든 두 사슬'과 '정금띠'가 포함되어 있다(출 28:14, 출 28:22, 출 28:36).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죄로 더럽혀지지 않은 영적 도덕적 순결을 지닐 것을 요구하신다. 죄에 대해 깨끗지 못한 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거부와 형벌을 받게 된다. 이 더럽혀짐은 결코 제거되거나 극복되지 못한다. 죄는 자손들을 대대로 더럽힌다. 이리하여 욥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욥 14:4)라고 묻는다. 이와 반대로 겉으로 보이는 모든 외관에 대해서는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결국이 일반이니"(전 9:2)라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죄인의 우두머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인류의 더럽혀진 본성과 행위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 하시다(시 12:6). 여호와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신다(합 1:13).

'정결한'이란 말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거나 동물을 먹는 것을 삼가거나 의식적으로 정결하다고 선언된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유지되는 순결을 묘사한다. 반대로, 더러움의 제거를 상징하는 의식 절차가 준수되면 정결하게 된다.

언약의 백성들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을 부정하리니"(민 19:11)라는 말을 들었다. 제사장은 '골육지친'을 제외한 그의 백성 가운데 죽은 자로 인하여 스스로를 더럽혀서는 안 되었다(레 21: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민 6:6-7) 대제사장 및 나실인 조차도 이 규례를 완화 시킬 수 없었다.

정결의식은 사람이 죄 가운데서 잉태되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비록 임신 및 출산이 비도덕적인 것으로 낙인 찍히지는 않았지만(죽음 그 자체가 죄가 아니듯이), 자식을 낳은 여인은 적절한 정결의식을 행할 때 까지 부정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레 12장). 레 15장은 월경중인 여자와 설정하는 남자, 그리고 동침하여 설정한 남자와 여자(레 15:18)에 대한 정결의식을 규정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정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또한 어떤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과 심지어 그것을 만지는 것 조차도 삼가야 했다(레 11장, 신 14:3-21).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정착한 후에 이 규례들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다(신 12:15, 신 12:22, 신 15:22).

정결의식에는 주로 물의 사용이 수반되었다. 정결케 되어야 할 사람은 자신의 몸과 의복을 씻도록 요구 받았다(레 15:27). 물은 사람과 그의 장막과 장막의 모든 비품들에 뿌려졌다. "정한 자가 우슬초를 취하여 그 물을 찍어서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민 19:18), 때때로 정결케 된 자는 옷을 갈아 입어야 했다(레 6:11).

그러나 의식은 하나님의 은총과 용서를 얻는데 있어서 공적 있는 행위는 아니었다. 또한 의식들이 기계적으로 행해지는 경우, 그들의 의도된 목적에 이바지하지 못했다. 의식들이 죄악의 더럽힘으로부터 정결케 되기 위한 어떤 사람의 회개와 진실한 바람을 표현하지 않는 한 그 의식들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 되며 오직 그 사람의 죄를 더할 뿐이었다. 피가 가득한 손으로(사 1:15) 의식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의 범죄의 정결을 위해 간구하지 않는 자는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만큼이나 사악한 자로 판단 받았다. 시온의 소망은 예물을 통한 이러한 정결에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사 66:20).(참조: E. YAMAUCHI; BDB). 

------

qq'z:(2212, 자카크) 정련(정제)하다, 깨끗케 하다

자카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정련(정제)하다 refine, 깨끗하게 하다 purify'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회 나오며, 칼형, 피엘형, 푸알형으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자카크는 '정련(정제)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욥 28:1에서 금을 정련하는 곳을 묘사한다: "은은 나는 광이 있고 연단하는 금은 나는 곳이 있으며".

욥 36:27의 언급은 난해하다. 포프(AB에서의 욥기)는 '홍수로부터 비를 증류하다' distill rain from the flood로 번역한다. 여기에서 증발의 과정이 비유적으로 '정련'의 과정으로 묘사될 수 있지 않을까?

2. 피엘형에서 자카크는 '깨끗이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말 3:3에서 하나님은 금과 은과 같이 레위인 자손을 깨끗이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3. 푸알형에서 자카크는 항상 분사형으로 '정련한'이란 의미를 지닌다.

다윗이 성전을 짖는데 사용하려고 모은 금은 '정련한' 금(대상 28:18, '정금')으로 묘사된다. 두 경우를 제외한 모든 용례는 금속의 정련 - 물론 불에 의한 금속의 정련을 언급한다.

사 25:6에 언급된 포도주의 정제는 여과(KB가 이렇게 주장한다)에 의해서가 아닌 웃물을 따라 냄으로 정제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참조: 렘 48:11).

시 12:6에서 여호와의 말씀은 그 순결함이 흙 도가니에 일곱번[정련한] 은과 같다고 한다.(참조: BDB; TWOT). 

-------

rm'v;(8104, 샤마르) 지키다, 준수하다, 보존하다, 감시하다, 주의하다

샤마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지키다, 준수하다, 보존(간수)하다, 감시하다, 주의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7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a)  샤마르의 기본적인 개념은 '큰 주의를 하여 행한다'를 의미한다.

이 기본적인 개념은 이 동사의 변형된 다양한 의미들 저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동사가 다른 동사들과 결합되면 그 의미는 '면밀하게 혹은 부지런히 행하다'가 된다. 예컨대 잠 19:8에서 "명철에 주의하다"(한글개역 "명철을 지키는"), 신 11:32에서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행하도록 주의하라 즉 주의 깊게 수행하라(한글개역 "지켜 행할찌니라")", 그리고 민 23:12에서는 주의 깊게 말하다 혹은 충실하게 말하다.

(b)  샤마르는 언약 의무, 율법, 법규, 등에 '면밀하게 주의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창 18:19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그의 자식들에게 여호와의 도를 지키도록 즉 하나님의 도에 조심스럽게 유의하도록 명령해야 한다(출 20:6, 레 18:26, 신 26:16, 겔 11:20).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은 단지 이론 만의 문제나 마지 못해 추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들을 행하라'는 표현이 자주 첨가되는데, 겔 37:24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잠 4:21은 그것들을 마음에 지키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 표현은 율법 등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제사장 직분과 같은 성직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된다(민 18:7).

(c)  샤마르는 '돌보다, 보호하다'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정원(창 2:15), 양떼(창 30:31), 집(삼하 15:16) 등과 같은 것들을 지키거나 돌보는 것이 포함된다. 또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는 그룹(창 3:24)이나 문지기(사 21:11)나 파숫꾼(아 5:7)과 같이 침입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도 이 의미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람에 대해서도 이러한 의미가 적용될 수 있다.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라고 묻는다.

다윗은 시 34:20, 시 86:2, 시 121:3-4, 시 121:7 및 기타 구절들에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에 대해 자주 말한다. 욥 2:6에서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의 생명을 건드리지 말라고 명할 때 샤마르를 사용하신다.

또한 다윗은 요압이 압살롬과 싸우러 가기 전에 그에게 비장하게 타이르기를 "나를 위하여 압살롬을 지키라"(한글개역 "해하지 말라", 삼하 18:12)고 했다.

흔히 이 동사는 인격의 훈련, 즉 개인의 생활과 행동 면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에 대해 사용된다. 시 39:1에서 자기 행위를 조심하는 것, 잠 13:3에서 입을 조심하거나 지키는 것을 묘사한다.

(d)  샤마르는 '중시하다', '...에 유의하거나 주의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사람이 하나님이나 기타 다른 것들에게 주의하거나 경의를 표하는 태도를 기술한다. 예컨대 호 4:10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유의하기를 그만두었다(한글개역 "여호와 좇기를 그쳤다")고 한다. 시 31:6은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언급한다. 또 다른 관련 용법에서 시 130:3에서 기자는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진실로 주의하실진대) 누가 서리이까?"라고 한다(욥 13:27). 이 단어는 삼하 11:16에서처럼 적대한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고 슥 11:11과 시 59:9에서처럼 기대한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e)  샤마르는 '보존하다' preserve, '축적하다' store up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에돔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분노를 계속하여 품고 있는 것(암 1:11)이나 지식을 축적하는 것(말 2:7). 이 단어가 창 41:35과 삼상 9:24에서는 음식에 대하여, 출 22:7에서는 귀중한 어떤 물건에 대해 사용되어 있다.(참조: J. E. Hartley; BDB). 

-------

rx'n:(5341, 나차르) 지키다, 보호하다, 망보다

나차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지키다, 보호하다, 망을 보다, 경계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0회 나오며, 칼형으로만 사용되었다.

보호 받는 대상들을 검토해보면 이 동사의 적절한 의미의 범위를 설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첫째 농업시설이나 군사시설 같은 유형적인 것들(예: 포도원, 욥 27:18, 무화과 나무, 잠 27:18, 요새, 나 2:2)이 보호된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자들은 경비원이라고 불리운다(칼능동 복수분사 노체림, 렘 31:6, 왕하 17:9, 왕하 18:8). 하나님 자신도 그의 포도원인 이스라엘과 일반적인 모든 사람을 지키는 자나 경비원으로 간주된다(사 27:3, 욥 7:20).

둘째로, 윤리적인 의미에서 입(잠 13:3, 시 141:3), 인간의 삶의 길(잠 16:17), 마음(잠 4:23), 및 혀(시 34:13)를 지켜야 한다.

셋째, '충실하게 지킨다'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이나 율법을 지킨다는 것에 모아진다. 하나님은 성실한 사랑을 천대까지 베푸시는 분이시다(출 34:7). 그러나 필멸의 인간도 언약(신 33:9, 시 25:10)과 하나님의 가르침이나 율법(시 78:7, 시 105:45, 시 119:2, 시 119:22, 시 119:33, 시 119:34, 시 119:56, 시 119:69, 시 119:100, 시 119:115, 시 119:129, 시 119:145)을 지킬 책임이 있다. 심지어 부모의 명령(잠 6:20, 잠 28:7)과 지혜의 훈계(잠 3:1, 잠 3:21, 잠 4:13, 잠 5:2)도 마찬가지로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

하나님은 위험에서 지켜주시는 분으로 언급되며, 인간의 생명(시 25:20, 시 40:12, 잠 24:12), 왕(시 61:8), 평화(사 26:3), 이스라엘(신 32:10, 사 42:6, 사 49:8), 성실한 자들과 성실한 자들의 생명(시 31:23, 잠 2:8), 지식(잠 22:12)을 보호하시는 분으로 언급된다. 하나님은 또한 이 세대(시 12:8), 환난(시 32:7), 악인의 비밀한 꾀(음모)(시 64:2), 강포한 자들(시 140:2, 시 140:5)로부터 의인들을 보호하신다.

지혜는 지혜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자들을 지켜준다(잠 4:6). 이와 같이 근신(discretion)이 자녀를 지키며(잠 2:11) 의가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해준다(잠 13:6).

나차르는 3회 '비밀을 지키다'라는 의미에서 경계하는 것에 대해 사용된다.

사 48:6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전에 계시된 적이 없는 숨겨진 일들을 언급한다. 다른 두 구절들에서 그 의미는 부정적이다. 즉 패역한 이스라엘이 일을 꾸미면서(즉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 위해 우상들과 잠 자면서) 밤을 보내는 죄의 "은밀한 처소"(사 65:4)와 창녀의 은밀함이나 간교함(잠 7:10)을 언급한다.

이 단어의 또 다른 의미는 공격 받고 있는 폐쇄되거나 봉쇄된 성읍을 지킨다는 것이다. 렘 4:16에서 칼 복수 능동 분사형이 봉쇄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은 한편 겔 6:12(?)과 사 1:8에서는 포위되거나 봉쇄된 성읍을 가리킨다.

요컨대 이사야가 그 종말론적 시기에 이스라엘의 회복한 지파들을 이스라엘의 보전된 자들로 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사 49:6). 왜냐하면 그들은 확실히 하나님의 부단한 보호와 보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참조: W. C. KAISER; BDB). 

------

tWLzU(2149, 줄루트) 무가치함, 쓸모없음, 비열함

줄루트(명여)는 잘랄(ll'z: , 2151: 무가치하다, 쓸모없다, 비열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무가치함, 무익함, 쓸모없음, 비열함'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시 12:8에 한번 나온다: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여기서 줄루트는 '비열한'을 가리킨다.(참조: HELOT; IHET). 

-------

&l'h;(1980, 할라크) 가다, 오다, 걷다

할라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가다, 오다, 걷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0회 나오며, 다양한 문맥에서 그 문맥에 따라 '가다, 오다, 걷다, 떠나다, 나아가다, 계속하다, 지나가다, 행하다, 생활하다, 여행하다, (물이) 흐르다, 추방하다, 파괴시키다, 돌아다니다, 함께 가다, 교제하다' 등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할라크는 특히 다음과 같은 용법들, 즉 명령적인 외침의 용법(창 37:13, 창 37:20, 창 19:32, 창 31:44), 다른 동사의 역할을 확대시키는 부정사로서의 용법(창 8:3, 창 8:5), 다른 동사의 역할을 구체화시키는 한정사로서의 용법(창 27:14, 창 50:18, 왕하 3:7, 사 2:3)에 주목해야 한다.

(b)  여러 종류의 '가는 행위'에 대한 구체적 적용은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뱀의 '기어 다님' creeping(창 3:14), 여우의 '노님' prowling(애 5:18), 배의 '항해' sailing(창 7:18), 물의 '흐름' flowing(창 2:14), 나팔 소리의 '커져 감' laying(출 19:19), 사람의 '걸어감' walking(출 14:29) 등이다. 다른 특별한 용법에서, 이 동사는 어떤 것의 끝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면, 비(아 2:11), 이슬(호 6:4), 바람(시 78:39), 슬픔(욥 16:6), 인간의 생명(창 15:2, 수 23:14) 등의 '끝'을 의미한다.

(c)  이 단어는 가상적인 신(시 115:7)에 대해 사용되기도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적용되기도 한다. 비록 신현현에 대한 기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동사들이 사용되지만 신현현의 문맥에서 분명하게 할라크가 사용된 경우가 적어도 한번은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창 18:33). 아마도 창 3:8도 역시 신현현의 문맥일 수 있지만 그 분사는 '여호와 하나님' 보다는 콜(음성)에 연결되는 것 같으며, 이때 그 번역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날 바람결에 동산 전역에 퍼져 가던(going)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 신인동형론적으로 이해할 때, 하나님은 구름 위를 걸으시거나(시 104:3) 하늘에서 걸으신다(욥 22:14). 보다 더 흔하고 더욱 중요한 것으로서, 할라크는 심판이나 축복(삼하 7:23, 시 80:2), 특히 광야 방황 동안에(예. 출 33:14, 출 13:21) 그의 백성에게 오시는 여호와께 사용된다. 후자의 문맥과 관련하여 새로운 출애굽(사 45:2)을 기억하라. 광야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궤를 뒤따랐듯이 그들은 의식에서 그 뒤를 따른다(드물게 할라크로 표현됨; 참조: 수 3:6, 민 10:32-36).

(d)  배교는 그들이 다른 신이나 거짓 신을 '좇는다'(출 32:1, 렘 5:23)거나, 자기 자신의 악한 꾀(렘 7:24, 시 1:1)나 악한 마음(렘 11:8)을 추구하거나 어둠 속에 행하는 것으로(사 9:2 [H1]) 표현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레 26:24). 진실로 경건한 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즉,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 왕상 3:14, 시 119:1 이하). 이 개념은 할라크 만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체다코트, 사 33:15 등과 같이 단어 아하레와 함께 쓸 필요가 없다).

 

히트파엘형은 이와 관련하여 동작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산 사람들의 좋은 예로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이 있다(창 5:22, 창 6:9, 창 17:1).(참조: L. J. Coppes; BDB). 

------------------

------------------

혼전순결이란 무엇인가....최경화 카도쉬아카데미 공동대표
어느 교회 청년 수련회에서 성경적 성교육을 강의하며 동거와 스킨십에 대해 청년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서로 교제하는 사이에 스킨십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의 문제는 크리스천 청년들 사이에서 매우 힘든 주제이다. 사랑하면 서로 함께 있고 싶고, 어루만져 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을 절제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수의 청년들이 임신이 될 수 있는 성관계만 하지 않는다면 스킨십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 문제를 두고 청년들과 많은 시간 함께 나눈 후 결론은, '성적인 순결이 무엇인지부터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결혼 전 성관계를 맺지 않는 것을 넘어,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신실함으로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성적인 순결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교제중인 사람과 지나친 스킨십을 할 때,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은 어떤 생각들로 채워지는지 살펴봐야 한다. 또 반복되는 행동들로 인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아갈 수 없다면, 그런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오직 임신을 피하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자기중심적 관점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결혼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교육을 마친 후 청년회장이 조용히 다가와서 자신이 바로 이런 식의 [순결에서 벗어난]교제를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해 주었다. 
여자 친구와 점점 더 지나친 스킨십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점점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몇 년 후 결혼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필자는 청년회장에게 결혼을 할 예정이지만 아직 부부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감에 걸림돌이 된다면 바로 돌이켜야 한다고 전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몇 단계를 제시해주었다.
1) 여자 친구와 솔직하게 나누기
2) 앞으로 데이트를 할 때 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장소나 시간을 피하기
3) 서로 노력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아가기
그럼에도 상대방이 이를 거부할 때는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스킨십 문제로 마음이 버겁고, 결혼 전까지 서로 음욕을 불러 일으킬만한 행동을 멈추자고 제안하는데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사랑이라 말하면서 사랑은 서로 존중하면서 믿음으로 섬기는 것임을 부인한다면 그 관계는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안 청년들도 세상이 주는 문화에 점점 익숙해져서 사랑의 확인을 육체적인 관계형성으로만 여기고 있다. 
청년들은 먼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을 알아야 한다. 나의 욕구만을 채워지길 바라면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참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순간의 달콤함을 속삭이는 사단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화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최경화(카도쉬아카데미 공동대표, 다음세대교육연구소 소장)
이전글 : 시11.주님품에
다음글 : 레1.번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