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6.28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레1.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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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막은 이땅에서 Q의 거하시는 처소요, 또한 하나님과 그의 구속함 받은 백성이 함께 서로 만나서 교제/교통하는 곳...오늘날의 교회의 모형이다... 회막, 그 속죄소위에서부터 잠잠히 부드러운 음성으로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또한 경배-교제 위해 나아올 때 가지고 나오게 하시고 주께 드린바 JC를 표상하는 그 예물(희생제물과 헌물) 통해 상호안식-기업-소유-누림-거함 이루심은 오늘날도 그러하다....이땅의 가시적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오늘도 여전히 이 땅에서 Q의 거소요, 모세의 때에도 그러하였지만 (바로 JC를 믿는 믿음으로) Q그분을 뵈러 나아오는 모든 믿는이들마다에게 하나님이 몸소 계시로 나타내시며 말씀하시는 유일독특한 장소요,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주께 드린 바 성도각자의 몸 또한 성령의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그러하다.....그때도 그러하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모든 희생제물이면서 동시에 감사예물의 전형이신 JC는 하나님과 교회의 공동누림과 상호안식-상호거함-상호기업의 교통을 가능케 하는 길-진리-생명이심을 명심하자.

---***[성도가 드리는 예배+헌물은...매일의 대속의 구주 주심 감사+ 부어주신 말씀과 HS으로 사는 평강안에서 일상생활 영위케 하심 감사의 헌물!!] 아버지께서 오늘의 일용양식 주시고 HS따라 참생명JC로, 내안에 사시는 JC를 살아내게 하심을 기억하고 발휘하는 산믿음으로써 감사함의 고백과 함께 드릴 때 주께 합당한 드림과 감사가 될 것

“[빌4:4-7]*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 Always be full of joy in the Lord. I say it again—rejoice! 

5 Let everyone see that you are considerate in all you do. Remember, the Lord is coming soon.[c]

6 Don’t worry about anything;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 

7 Then you will experience God’s peace, which exceeds anything we can understand. His peace will guard your hearts and minds as you live in Christ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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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joice in the Lord alway: and again I say, Rejoice.

Let your moderation be known unto all men. The Lord is at hand.

Be careful for nothing; but in every thing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let your requests be made known unto God.

And the peace of God, which passeth all understanding, shall keep your hearts and minds through Christ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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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joice in the Lord always; again I will say, rejoice!

Let your gentle spirit be known to all men. The Lord is near.(JC재림시기도래의 긴박성+호흡보다 의식보다 더 가까이 HS으로 함께하심)

Be anxious for nothing,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let your requests be made known to God.

And the peace of God, which surpasses all comprehension,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1.여호와께서 회막에서(출애굽은 이땅에서 하나님의 처소인 회막을 일으키심으로써 완결됨...백성과 하나님이 교통/교제 위해 만나는 장소요 그문은 개폐 가능한 출입문, 마음을 시사) 모세를 부르시고(카라...교제/교통 위해[~의 이름을]부르다/소환하다)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속죄소위에 셰키나의 영광으로 좌정하신 하나님이 그분의 모든 친밀함-부드러움-사랑스러움과 다정다감함으로써 일러주심))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감사-자원함의]예물을(코르반..제물/헌물/예물...본래적 의미에서는 대속-화해의 희생제물을 뜻하지는 않고, 그리스도 주심에 대한 감사, 좋은 땅 주셔서 풍성한 산물 주심, 곧 하나님과 그 나라에 대한 모든 경험-누림-맛봄에 대한 감사의 예물이요, 믿는 이와 하나님사이에 친밀한 교제를 위한 드림..모든 의미가 되신 주님의 돌보심과 사랑에 중심으로 감사함의 표현예물드림과 고백.. 이땅의 처소인 회막에 계신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믿는 이-자녀-백성을 누리신다. ) 드리려거든(카라브...드리다, 헌납/봉헌하다..주께 합당한 드림은 JC를 누림-맛봄의 열락의 선순환을 가져다 줌!!)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하나님앞에서 그분의 만족이요 점-흠-티-주름없고 무죄하신 JC표상!!)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교통위해 나아오신 Q얼굴, 영광의 임재를 의식하며 마음문 열라!!) 기쁘게 받으시도록 (이렇게)드릴지니라

*4.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라차...열납하다...모든 믿는 이 개개인을 위함!!)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카파르...죄를 덮고/가리고 용서/진정/화해하여 하나되게 하다)

*5.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0.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11.그가 제단 북쪽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것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12.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것의 머리와 그것의 기름을 베어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 벌여 놓을 것이며

*13.그 내장과 그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4.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15.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 끊고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피는 제단 곁에 흘릴 것이며

*16.그것의 모이주머니와 그 더러운 것은 제거하여 제단 동쪽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17.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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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너희 가운데서 짐승을 잡아서 나 주에게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소나 양을 제물로 바쳐라.

바치는 제물이 소를 번제물로 바치는 것이면, 흠 없는 수컷을 골라서 회막 어귀에서 바치되, 나 주가 그것을 기꺼이 받게 하여라.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은 번제물의 머리 위에 자기의 손을 얹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속죄하는 제물로 받으실 것이다.

그런 다음에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은 거기 주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아야 하고,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은 그 피를 받아다가 회막 어귀에 있는 제단 둘레에 그 피를 뿌려야 한다.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저며 놓으면,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불을 피우고, 그 불 위에 장작을 지피고,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고기 저민 것과 그 머리와 기름기를 제단에서 불타는 장작 위에 벌여 놓아야 한다.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내장과 다리를 물에 씻어 주면, 제사장은 그것을 모두 제단 위에다 놓고 불살라야 한다. 이것이 번제인데, 이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나 주를 기쁘게 하는, 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바치는 제물이 가축 떼 곧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골라서 번제로 바치는 것이면, 흠 없는 수컷을 골라 제물로 바쳐야 한다.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은 그 제물을 주 앞 곧 제단 북쪽에서 잡아야 하고,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은 제단 둘레에 그 피를 뿌려야 한다.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고기를 저미고 그 머리와 기름기를 베어 놓으면, 제사장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그것들을 제단에서 불타는 장작 위에 벌여 놓아야 한다.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내장과 다리를 물에 씻어 주면,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다가 모두 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한다. 이것이 번제인데, 이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나 주를 기쁘게 하는, 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나 주에게 바치는 제물이 날짐승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이면, 그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가운데서 골라 제물로 바쳐야 한다.

제사장은 그 날짐승을 받아서 제단으로 가져 가고, 그 목을 비틀어서 머리를 자르고, 그 머리는 제단에 불사르고, 피는 제단 곁으로 흘려야 한다.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은 제물의 멱통과 그 안에 있는 오물을 떼어 내서, 제단 동쪽에 있는 잿더미에 버려야 한다.

그가 두 날개를 잡고, 그 새의 몸을 찢어서, 두 동강이 나지 않을 정도로 벌려 놓으면, 제사장은 그것을 가져다가, 제단에서 불타는 장작 위에 얹어서 불살라야 한다. 이것이 번제인데, 이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나 주를 기쁘게 하는, 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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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레 1:1-2)

Ⅰ.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예물을 드려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를 지으신 조물주에게 영광을 돌리고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되어 있다. 

계시 종교는 자연 종교보다 먼저 생겼으며 처음부터 있던 제도로 추정된다. 자연 종교는 인간이 타락하자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이후에 생겨났다. 그것은 인간이 피조물로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았지만, 죄를 지음으로써 모든 것을 하나님께 빼앗기고 말았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인정하는 것이다. 의존성과 죄책성을 철저히 깨닫는 양심이라면, “천천의 숫양”(미 6:6, 7)도 기꺼이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려 할 것이다.

Ⅱ. 그러므로 결코 공상에 빠지거나 헛된 망상을 좇거나 스스로 고안해 낸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그들이 마음대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체하면서 사실은 모욕을 돌리며 그 분께 합당치 않은 행동을 저지르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에 관한 모든 일은 지시된 대로,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 때가 차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린 그 위대한 속죄제와 또한 믿는 자들이 매일 드리는 감사제가 지극히 중요함을 시사할 수 있게 된다.

Ⅲ.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1, 2절)라는 말이 자주 반복된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실 때처럼 친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실 수도 있었으나 모세를 통해 율법을 전달하는 길을 택하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더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것을 원치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언자 중에서도 특히 모세가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도록 계획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과 같다(히 1:2).

하나님께서는 다른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셨으나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심판의 권세를 맡기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에 모세가 적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라는 보물은 언제나 질그릇 속에 있는 법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의 신앙은 연단을 받고 하나님의 탁월한 권능이 찬란히 드러난다.

Ⅳ. 하나님께서는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회막이 건립되자, 그 회막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셨다는 표시로 쉐키나(shechinah: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가 새로운 거처에 임하시게 되었고, 그 속죄소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 그 때 모세는 회막의 휘장 밖에 대기했거나 회막 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잊거나 오류를 막을 수 있도록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즉시 기록했을 것이다. 회막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교제하는 장소로 건립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회막에 가서 하나님께 의식을 거행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한다(행 6:4).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을 드릴 때에는 그 분의 말씀도 들으려 해야 하며,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은혜로 여겨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가까이 오지 말고 단지 들리는 말씀만 듣고 명심하라고 명하셨다. 구약 시대에는 모세조차도 하나님과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명하셨다”라는 히브리 문자는 일반 문자보다 더 작은데, 유대 비평가들은 이것은 하나님이 고요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는 뜻이라고 한다. 도덕적 율법(십계명)은 번개와 천둥이 치는 가운데서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주어졌으나 제사에 관련된 치료의(remedial) 율법은 속죄소위에서부터 더 부드럽게 잔잔하고 고요한 음성으로 주어졌다. 이것은 복음의 은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복음의 은총은 생명과 평화를 주는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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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번제법(레 1:3-9)

어떤 사람이 부유하게 되어 능력이 생기면, 하나님께 번제의 예물을 바치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게 되어 있다. 번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자기가 가진 많은 가축 중에서 하나를 택해 드리는 제사다.

하나님께서 최상의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최상의 것을 골라서 하나님께 드리려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집안 식구나 친구들이 먹고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소를 잡는다면, 다음의 율법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Ⅰ. 번제물은 수컷이어야 하고, 흠이 없어야 하며, 목장에서 가장 좋은 품종이어야 한다. 

완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으로 소를 잡는다면, 당연히 소로서 가장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드린 제사의 완전한 순결함을 뜻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성실한 마음과 생활의 순결함을 뜻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늘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차별이 없다. 또한 선천적으로 몸에 결함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죄 때문에 그 영혼에 도덕적 결함이 생기고 불구가 되었을 때에만 우리의 제사는 열납되지 못한다.

Ⅱ. 드리는 사람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신앙으로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사랑 외에는 아무런 제약도 받으면 안 된다. 

에인즈워드(Ainsworth)와 몇몇 학자들은 이 율법을 예물의 원리가 아니라 목적으로 해석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원하여 드리는 자와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는 자를 기뻐 받으신다는 것이다.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예물을 바치라. 바로 이것이 제사 드리는 목적임을 알라. 그리고 이 목적을 늘 염두에 두어야 여호와께 열납되리라.”

모든 신앙의 예식 속에서 이런 목적을 성실히 갈망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침내 자기가 하나님께 열납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고후 5:9).

Ⅲ. 회막 문에서 드려야 한다. 

거기에 번제를 위한 놋 제단이 놓여 있었는데, 그 제단은 예물을 거룩하게 만들어 준다. 만일 다른 곳에서 예물을 드린다면, 그 예물이 거룩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다.

또한 그는 회막 안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서, 죄인은 오직 희생 제물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회막 문에서 번제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개인적인 예식을 통해서도 이스라엘 전체의 교회와 교제를 나누게 된다는 표시로 회막에서 번제를 드려야 한다.

Ⅳ. 제물을 드리려는 자는 그 제물의 머리에 자기의 손을 얹어 안수해야 한다(4절). 

유대 학자들은 “양손을 모두, 있는 힘을 다해 그 짐승의 뿔 사이에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다.

1. 자기의 모든 권한과 유익을 그 짐승에게 전가하는 것이요, 그렇게 안수함으로써 실제로 자기의 모든 권한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다.

2. 자신은 죽어 마땅한 자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3. 그 제사에 대한 자신의 의존성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 제사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위대한 희생 제물 JC를 나타내는 제도적 모형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사도 바울이 언급한 “안수”(히 6:2)의 교리는 바로 이 의식의 심오한 의의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그것은 곧 복음의 신앙을 상징한다.

제물을 가져오는 자가 제물에 안수하는 것은,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4절)을 갈망하고 희망한다는 뜻이다. 

번제는 속죄제처럼 어떤 특정 범죄를 염두에 두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자신이 마땅이 해야 하는 것은 행하지 않았으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행했다”고 고백하는 것이요, 마땅히 죽음에 처해야 할 자신 대신 제물이 죽음으로써 죄책이 사면되어 자신이 열납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Ⅴ. 그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들과 여호와 앞에서 제물을 자기손으로 죽여야 한다. 

즉 경건하고 신앙적인 태도로, 하나님과 그 분의 영광을 기억하면서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 곧 생명을 속죄물로 바쳐야 함을 뜻한다. 우리의 왕이신 메시아는 희생 제물처럼 처형당하셨지만, 아무도 그 분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단 9:26). 

이것은 또한 산 제사를 드려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를 그 부패한 정욕과 동물적인 생활을 좇으려는 온갖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갈 5:24).

Ⅵ.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려야” 한다(5절). 

피는 생명이므로 영혼을 속할 수 있다. 영혼을 속할 수 있는 것은 피뿐이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아버지의 정의를 만족케 하고, 훼손된 아버지의 영광을 회복하신 바로 그 사실을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는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분이다(히 9:14). 또한 제단에 피를 뿌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믿음으로 우리의 양심에 뿌려짐으로써 우리의 양심이 평안을 얻고 정결케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벧전 1:2; 히 10:22).

Ⅶ. 그는 제물이 된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정교하게 각을 떠야 한다. 

그런 다음 나눈 모든 각과 머리와 기름, 또 먼저 씻어 놓은 다리와 내장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한다(6-9절).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면 굶주린 식구들에게 한동안 좋은 음식이 될 이런 훌륭한 고기를 왜 일시에 재로 만들어 버리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잘못이 있다고 항의할 수 없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물이 불살라지는 것이며, 그것이 곧 영적 축복을 의미한다면, 그 제물로서는 인간의 음식이 되는 것보다 그렇게 불살라지는 것이 사실상 훨씬 더 복된 일이요, 창조된 목적을 십분 수행한 셈이다. 하나님께 드린 것을 손실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또 제물이 불에 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격렬한 고난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영과 혼과 몸을 완전히 드릴 때에 함께 바쳐야 하는 사랑, 곧 거룩한 불같은 경건한 사랑을 나타낸다.

Ⅷ. 이것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 곧 안식의 향기가 되는 예물이다(9절). 

고기를 불태우는 것 자체로는 결코 좋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행위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번제를 매우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예물을 바친 사람과 화해하셨고, 친히 그런 화해에 만족하셨다. 창조의 역사를 마치신 후 안식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나타내는 이런 제도에서 새롭게 안식을 취하셨으며(출 31:17), 그것을 즐거워하셨다(시 104:31).

자기 몸을 하나님께 바친 그리스도의 제사는 “향기로운 제물”(엡 5:2)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벧전 2:5) 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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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와 새의 번제법(레 1:10-17)

여기에는 양이나 염소를, 그리고 새를 제물로 번제를 드릴 때 지킬 율법을 기록했다. 

중류계급인 사람들은 소를 바칠 능력은 없어도 양이나 염소쯤은 바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열납하셨다. 하나님은 섭리하심에 있어서도 그렇듯이, 율법에서나 복음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특별히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사실은,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온순하고 남에게 해를 끼칠 줄 모르며 악의가 없는 짐승들이 제물로 선택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지닌 순결함과 온유함을 상징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인들도 순결하고 온유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Ⅰ. 떼(양이나 염소)를 번제로 드리는 경우(10절). 

이 경우는 소를 번제로 드릴 때와 매우 비슷하다. 단지 “단 북편에서” 잡으라는 명령이 추가되는데, 소를 잡을 때나 기타 다른 제물을 잡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마 번제단 북쪽에 넓은 공터가 있었으며, 따라서 제사장들이 제물을 끌어가기에 좋았던 것 같다. “북방에서는 금빛이 나온다”(욥 37:22)거나 “북풍은 비를 일으킨다”(잠 25:23)는 옛말도 있다.

이런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진노의 폭풍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얼굴의 광채가 되살아난다. 그러므로 그것은 맑은 날씨보다도 더욱 기분 좋은 일이다.

Ⅱ. 새를 번제로 드리는 경우(14절). 그 종류로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라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말에 의하면, 산비둘기는 다 큰 비둘기라야 하고 집비둘기는 새끼라야 한다. 인간의 식탁에서 가장 환영받는 것을 하나님의 제단에도 바쳐야 하는 법이다.

비둘기를 번제물로 삼을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제사장이 전부 하도록 하셨다.

1. 머리를 비틀어 꺾어 버려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단지 새를 잡을 때처럼 목을 조이되 머리는 그 몸집에 그대로 붙여 두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머리는 완전히 잘라낸 것 같다. 왜냐하면 머리 부분을 먼저 불살랐기 때문이다.

2. 피는 “단 곁에 흘렸다.”

3. 깃털과 찌꺼기는 (제단동쪽) 재 버리는 곳에 버렸다.

4. 몸통은 가슴을 열고 소금을 뿌린 다음 제단 위에서 불살랐다.

유대인들에 의하면, 새를 드리는 제사는 제사장들에게는 가장 힘이 많이 드는 예식이었다. 

이 사실은, 거룩한 일을 맡은 사역자는 부자들의 구원만큼 가난한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과, 가난한 이들의 예물도 정직한 마음으로 드리기만 하면 부자들의 예물과 똑같이 열납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2).

가난한 자들이 드린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도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기록되어 있다(17절). 이런 예물로 드리는 제사도 뿔이나 굽이 달린 소나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와 똑같다.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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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o(5930, 올라) 번제(물), 오르막길, 계단

올라(명여)는 알라(hl;[; , 5927)에서 유래했으며, (a) '올라가는 것, 번제물, 번제', (b) '오르막 길, 계단'을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90회 나온다.

(a)  명사 올라를 흔히 '번제물'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그 제물에서 나오는 연기가 하나님께로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일반적으로 설명되어진다. 그러나 태우는 다른 제사도 있기 때문에 이 제사를 기술하는 데에 사용된 올라에는 그 이상의 어떤 개념이 연루되어 있을 듯 하다.

이스라엘의 제사 가운데서 오직 올라만이 완전히 태워졌으며, 올라를 부분적으로 태워서 예배자들이나 제사장들이 먹거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해결의 열쇠가 될 것 같다. 따라서 동물 전체가 제단으로 올리워져 전부가 야훼에 대한 존경의 선물(민하)로 바쳐진다.

올라의 신학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제사(물)' whole offering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올라가 태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태운다는 것은 야훼에게 전체 피조물을 바친다는 사실에 본질상 부수하는 것이다(참조: N. Snaith, VT 7:309).

레 1장에 의하면 수소, 수양, 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가 올라가 될 수 있다. 번제로 바쳐지는 동물은 흠 없는 완전한 수컷이어야 하며 새들에게는 특별한 성별 규정이 없다. 제사 방법은 다소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지만, 제사의 여러 단계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대부분 주어져 있지 않다.

올라는 맨 먼저 여호와께 대한 예물(고르반)이기 때문에 바쳐진다(레 1:2, 레 1:10, 레 1:14). 제물이 수소이면 (그리고 비록 이것이 레 1:10과 레 1:14에서 특별히 진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양이거나 염소일 경우에도 역시) 예배자는 그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음(안수)으로 자기 자신과 동물을 동일시하였다. 이것은 제물이 예배자를 대신하여 희생당하는 것을 상징하며 죄가 희생 동물에게 전이됨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러나 드보(de vaux)가 지적한 대로 이러한 상징적 안수 행위가 행해지는 유일한 다른 예는 레 16:21에서 민족의 죄를 속죄 염소에게 전이시켜서 광야로 내보내는 경우이다. 그 염소는 '부정'하기 때문에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지 않고 광야로 내쫓긴다. 제단은 거룩한 것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일한 안수 행동(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행동)은 제사장들의 속죄제와 번제와 위임식 수양과 같은 중요한 제사(레 8:14, 레 8:18, 레 8:22)와 다른 제사에서도 행해진다. 이러한 안수 행위는 대속을 암시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속죄를 나타내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죄의 제거를 상징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할 것 같다. 이 안수 행동은 예배자와 올라와의 밀접한 동일성을 암시함이 분명하다. 희생 동물은 사실상 예배자의 소유이다. 따라서 예배자는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로서 그것을 바치는 것이다.

제사 절차에서 세 번째 단계는 제물을 실제로 죽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사 행위는 제사장에 의해 수행되었으나 올라의 경우에는 오직 새 만이 제사장에 의해 죽여졌다 - 이는 아마도 새의 크기가 작고 따라서 피의 양이 적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었다. 수소, 양, 혹은 염소는 예배자 자신에 의하여 제단 곁에서 죽임을 당했으며(레 1:5, 레 1:11, 레 1:15), 그 다음에 제사장은 그 피를 제단을 향하여 혹은 제단에 부었다. 예배자는 희생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자르고 물로 자른 부분들을 씻은 후, 모두 제사장에게 가져 갔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것들을 취하여 제단 위에 놓고 거기에서 완전히 태웠다.

대하 29:20-24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나타난다. 그 시기는 히스기야왕 하에서 개혁 운동이 시작될 때이다. 여기에서 제사장은 희생 동물들을 실제로 죽이는 일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 상황은 야훼에 대한 재헌신과 이들 개인들의 편에서의 참된 봉사를 반영해주는 것 같으며,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올로트는 이들 개개인들의 제물들임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이 사건은 에스겔이 올로트를 바치는 권리를 레위인에게로 옮기운 일이 그 배경이 되는 것 같다(겔 44:11).

비록 올라 자체가 속죄 효과를 지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올라는 다른 제물(예: 민하)과 함께 드려졌다(레 1:4, 참조: 레 16:24).

올라는 특수한 이유 때문에 드려졌다. 기쁠 때와 절기에 올라는 그 기쁨을 표현하고, 여호와를 예배하는 예물이었다(창 8:20이하, 삼상 6:14). 이 제사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연관이 없다.

맥카시(McCarthy)는 피를 제사에 사용하는 구약성경의 관습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사한 참된 실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결론 맺는다.

올라는 또한 필요의 때에 하나님의 간섭을 바라는 기도를 수반하기도 한다(삿 21:4, 렘 14:12). 이러한 부류의 올로트에 공통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존경과 충성을 드려야 한다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인식이다.

올로트와 연루된 두 가지 특별히 난해한 사건은 삼상 13장에 있는 사울에 대한 기사와 삿 11장에 있는 입다에 대한 기사이다. 사울의 죄는 블레셋인과의 성전(holy war)에 대비하여 올라를 드렸다는 것이다. 예배자 자신이 희생 동물을 죽였기 때문에 이것은 사울의 죄가 아니었다. 문제는 희생 동물과 그 피를 취하여 제단으로 가져갈 제사장이 없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동물은 예배자가 죽였지만 그것을 제단에 가져가는 일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사울은 사무엘이 와서 희생제사를 드리고 그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줄 때 까지 길갈에서 7일간 기다리라고 한 사무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께 불순종했다(삼상 10:8).

입다의 올라는 이와 성질이 다르다. 임박한 패배에 대한 긴장 하에 취해진 서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만 하는 서원이었으며 입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결과로 그는 자기의 유일한 자식을 여호와께 올라로 바쳤다. 어떤 학자들은 이 논쟁적인 기사를 입다가 그의 딸을 종신 처녀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바쳤으며 따라서 그의 형통의 끊어짐을 초래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참조: G. L. Archer SOTI, pp. 273이하). 혹자는 입다의 딸이 인신제물로 바쳐졌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에 이 행위가 입다와 이스라엘 민족 둘 다를 전율케 했다는 사실(삿 11:29-40)은 인신제물이 이스라엘에서 통상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충분히 입증한다. 또한 왕하 3:27에 나오는 메사의 아들을 제물로 바친 기사를 참조하라. 드보(De Vaux)는 이 사건이 이스라엘인을 경악하게 했으며 그들이 도망하였다고 주장한다(studies in OT Sacrifice, p. 62, n. 49). 미가(미 6:6-8)는 후대의 선지자의 전승을 반영하여 인간(몸의 열매)은 올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이러한 견해와 완전히 일치한다. 요구되는 것은 정의, 사랑, 복종으로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울브라이트는 이렇게 결론 맺는다. "페니키아에서 인신제물에 대한 반대를 고무시키는데 이스라엘이 그 실례를 제공함으로 기여하였다고 간주해야 하는 것이다"(YGC, p. 244).

전번제(whole burnt offerings)는 메소포타미아인의 제의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가나안인 가운데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인신제사는 가나안에서도 만연하지 않았다(참조: Roland de Vaux, Sacrifice., pp. 42이하, 66). 구약성경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우가릿 자료에서 나온 증거와 구약성경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페니키아 본문에서 나온 증거는 히브리의 올라와 유사한 의식이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이 모든 제사 의식에는 히브리인의 제사 구조에서 한 가지 필수적인 요소, 즉 피를 제물로 바치는 것과 제단에 피를 붓는 것이 없다. 생명의 하나님께 생명의 제물을 드리는 것(참조: 레 17:11, 피는 생명이다)은 단순한 도살과 열납될 수 있는 희생제사적 예물 사이에 차이를 낳는다.

(b)  올라는 '오르막 길, 계단'에 대해 사용되었다.

겔 40:26에서 1회 나온다: "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편, 저편 문 벽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참조: G. L. CARR;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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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q;(7133, 코르반) 제물, 헌물, 예물

1. 코르반(명남)은 카라브(br'q; , 7126: 가까이 오다, 접근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가까이 가져오는 것, 즉 드려진 것, 특별히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희생으로 드려질" 것이라는 의미에서나(이 경우 이 단어는 모든 제의적 희생제사와 제물에 사용된다) 또는 단순히 성소에서 사용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신에게 '바치는 제물, 헌물, 예물'을 의미한다(민 7:13이하, 참조: KD, Pentateuch, Ⅱ, p. 271; Vos, BT, p. 175).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82회 나온다.

명사 코르반은 여기에서 주어질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깊이 주목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제사 예물의 주 요소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첫째 헌물자가 행해야 할 점이 있다. 그의 예물 선택은 자아 희생을 반영해야 하며 자기의 생계 수단과 소산물로 이루어져야 한다(Vos BT, p. 175). 그 헌물은 흠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이 하나님께 속하기 때문이다. 헌물자의 사랑과 헌신은 응당 그로 하여금 가장 좋은 것을 드리게 해야 하며(창 4:4) 오직 이것만이, 필수적이고 완벽한 희생제사의 도덕적 순수성을 반영할 수 있었다(벧전 1:19).

...예물은 하나님에 의해 지정되며(레 1-7장) 하나님이 지정한 장소로 가져왔다(KD, Pentateuch, Ⅱ, p. 279). 예배의 열납은 하나님의 표준에 부합하는가에 달려 있다. 희생 제사용으로 구별해 놓은 산 제물에 안수하여(KD, ibid) 헌물자의 의향 뿐만 아니라 죄까지 그 제물에 전가시킨다(Vos, BT, p. 180).

...그 다음 자아 고백적 죽음의 형벌이 대속적으로 그 짐승에게 가해졌다(Vos, ibid). 이와 같이하여 피는(q, v.) 덮는 것으로 사용되며(히 13:15) 고기는 불사르고(KD, op. Cit., p. 280) 인간의 생명은 상징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지게 되었다.

제사장은 피와 살(혹은 "곡물")을 받아 예정된 의식의 세부 사항에 따라 그것을 바친다. 하나님의 열납의 지시에 의해 이 모든 것은 불살라졌다.

여기서 한가지 크게 주의해야 할 것은 이교도의 희생제사 관념과는 달리 성경의 가르침에는 하나님께로의 하등의 가치 전달 개념이 없다는 점이다(Vos, BT, p. 176). 이스라엘 제사의 핵심적 의미는 영적인 것이었다(출 19:4-8, 렘 7:21 이하, 호 14:3).(참조: L. J. COPPES).

우리는 후기 유대교에서 동일한 일반적인 용법을 발견하지만, 이 때 이 용어는 어떤 것이 하나님께 드려질 때 - 희생제물로 드리거나 용도를 바꿈, 즉 세속적인 사용과 관리를 중지함으로써 - 하는 맹세 용어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들에는 물건들, 음식들 따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개인이나 집단, 또는 전 국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사람이나 물건이 성전에 넘겨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것들의 관리의 주체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르반은 개인의 포기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의 종이나 소유를 사용하는 것을(압력을 가하는 것, 복수하는 것, 상해를 입히는 것) 거부하는 한 방법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혼이나 가족 관계 내에서조차 관계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랍비는 순수한 관점에서, 그러나 그 과정의 철저한 결과를 고려하고 그 맹세를 변경하려 하거나 그 결과를 경감시킬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신약 시대에 코르반은 하나의 맹세를 가리키게 되었는데, 이 맹세로써 자기의 소유물이 관념상 성전에 바쳐지게 되며(실제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음), 따라서 타인에게 주어질 수 없었다.

코르반은 신약성경에서 막 7:11에 한번 나온다: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부모님께) 드려(봉양함으로써)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코르반은 막 7:10이하의 서기관 및 바리새인과의 논쟁에서만 나타난다. 마 15:3이하에서는 '재물'(한글개역, "드림")이라는 의미로 드림(고르반, 코르반)을 사용한다(참조: 마 5:23 - 마 5:24; 마 8:4등; 또한 히 5:1; 히 8:3 - 히 8:4; 히 9:9; 히 11:4). 

예수님의 논지는 비록 그 아들이 (고르반의) 서원으로 인하여 부모에 대한 (봉양의) 모든 의무로부터 자기를 자유롭게 하고 있는데도 서기관들이 그 서원(코르반)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기관의 논지(민 30:2 - 민 30:3에 기초함)는, 하나님께 한 서원이 언제나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논지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은 사 29:13을 인용하신다.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일치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부모공경함으로 인한)의 안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의 성취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올바르게 나타낼 수 없었다.(즉, 하나님 말씀의 본 뜻에서 빗나갔다) 예수님은 성경의 유효성을 약화시키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의 유효성을 성경의 온전한 문맥(본래 취지)에 두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 목적은 성화일 것이지만, 성화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자비로 이끈다. 제 4계명은 이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코르반에 대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방어적인 개념따른 실행은 그 4계명을 회피하는 수단이 된다.

초대교회의 석의는 눅 21:4(여기에는 타 도라가 쓰임)의 노선을 따라서만 이 말씀을 해석한다. 라틴어 코르반(corban)은 (일종의) 자선 상자이며, 자선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로 간주된다. 후대에 이 용법은 사라졌다.(참조: Walter Bauer; K.H.Rengstorf; C.Brown).

----하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는 자연 법에 이하여 자녀들은 부모를 마땅히 공경하라고 하셨으며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막7:10절). 그러므로, 그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미루어 볼 때,  만일 그들의 부모가 빈곤하게 되었을 때에 힘이 미치는 대로 정성껏 잘 봉양해야 하며, 그리고 만일 자녀들중 누구든지 그 부모를 저주하거나 부모를 굶어 죽게 하였다면 그 자녀는 죽어 마땅하다는 추론을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철저하게 장로의 유전들을 따르기만 하면 부모에 대한 이런 의무는 준행치 않아도 된다는 구실을 그들은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11절). 

그런데, 서기관들의 논지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만일 부모가 어려운 가운데 있고, 자녀가 도와드릴 여유도 있는데, 그렇게 봉양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고르반"의 선언, 곧 "성전의 금"과 "제단 위에 있는 예물"로  자기소유를 드릴 것을 맹세함으로써 그 부모들은 마땅한 봉양과 섬김-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며 결국 그는 그 부모를 섬기는 의무가 면해지는 셈이 되는 것---그 부모들이 자식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에, [자식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부모에게 그렇게 말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마치 이 악한 맹세로 말미암아 자식이 준행해야 할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에 대한 의무에서 해방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2. 쿠르반(명남)은 카라브(br'q; , 7126: 가까이오다, 접근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제물, 헌물'을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느헤미야에서 2회 나온다(느 10:34, 느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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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q;(7126, 카라브) 가까이 오다, 접근하다, 들어가다, 가까이 당기다 [드리다]

카라브(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가까이 오다 come near, 접근하다 approach, 들어가다 enter into, 가까이 끌어당기다 draw near'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객체(또는 주체)가 매우 가깝고 친밀하게 근접해 있거나 접근해 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차적 의미로는 객체와의 실제적 접촉 개념이 있다(겔 37:7, 겔 37:17의 피엘 명령형; GKC, 52n, 64h; 또한 아마 출 14:20, 삿 19:13 도).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8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a)  카라브는 일반적으로 서로간의 친밀성의 개념도 없이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가까이 오다, 접근하다'를 의미한다. 창 12:11에서 이 단어는 공간적 근접성, 즉 공간적으로 어떤 것에 가까이 밀착된 상태를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즉 이 동사는 주제가 객체, 곧 문제의 대상이나 사람을 볼 수 있고(출 32:29), 객체와 말할 수 있고(민 9:6) 혹은 객체를 만질 수도 있을 정도로(레 10:4, 출 36:2) 주체가 그 객체에 충분히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b)  카라브는 어떤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에서 시간적인 근접성을 묘사한다. '카라브'는 종교적인 축제와 같은 즐거운 행사가 임박했음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웠다 하고..."(신 15:9). 이 단어는 불길한 사건이 임박함에 대해 사용되었다: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창 27:4).

(c)  카라브는 다양한 전문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의미의 용례에는 인격적 관계라는 개념이 있다. 즉 단순히 어떤 것(어떤 사람)에 근접해 있음이 아니라, 그것이나 그 사람에게 능동적이고도 인격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전투를 묘사하는 문맥에서는 '무장투쟁'을 나타낸다. 신 2:37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암몬 족속의 땅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명하셨다. 그러나 신 2:19에서는 그 땅에 가까이 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게 말라". 난해하게 보이는 이 내용은, 신 2:37이 전문적으로 싸우러 가까이 접근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신 2:19은 일반적 접근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때 선명해진다. 이 군사적 의미는 신 25:11과 수 8:5에서도 분명하다.

어떤 구절에서는 이같은 군사적 의미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부주의한 독자들은 이를 간과하기 쉬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미는 존재한다.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시 27:2). 시 27:3의 용례("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찌라도...")는 이 동사의 의미가 '접전하다'임을 입증해 준다. 시 91:10, 시 119:150도 보라.

(d)  카라브는 또한 전문적 용법으로 '성적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비멜렉은 사라에 관한 자기의 순결을 확언하는 이 단어를 사용했다: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창 20:4).

또한 신 22:14에서는 신랑이 신부에게 '가까이 나아가'("동침할 때에") 처녀성의 표적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를 언급하였고, 사 8:3에서는 선지자가 자기 아내에게 '가까이 나아가'("동침하매") 그녀가 잉태했다고 기록되었다.

(e)  카라브의 전문적 용법에는 제의적인 용법이 있다. 이 경우 사람이 하나님께 헌물을 드림에 있어서 수행하는 각각의 모든 단계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모세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함께 발전하기 시작한다(출 3:5). 후에 시내산에서 백성들이 그의 거룩한 산에 접근하면서 그와 동일하게 주의하였다(레 4:11, 신 5:23). 그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가까이 모여서 모세에게 하나님과 만나(가까이 나아가)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요청하여 그 일을 위탁하였다(신 5:27).

그 후부터 그들은 하나님이 지정한 장소에서 그와 만났다. 그들은 성막을 지을 재료를 가져와 하나님 앞에 헌물(고르반)로 드렸다.

레위인들은 성막의 관리인들로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가까이 나아가는) 헌물로 드려졌다(민 16:9, 민 18:4, 참조: 수 3:4).

한편 아론과 그의 후손들은 거룩한 희생제사의 유일한 제사장들로 바쳐졌다(참조: 레 10:3, 민 18:3, 민 18:22). 이러한 직무적 의미의 가까이 나아감에는 하나님에 의한 특별한 선택과 이스라엘에 의해 바쳐진다는 개념이 수반된다(출 29:4).

제사장들은 분부에 따라 몸을 씻고 의복을 갈아 입으며 자신들을 위해 희생제사를 드림으로 순결(자신들을 범인들과 구별함)을 유지시켜야 했다(레 9:4, 레 9:8, 레 9:10).

흥미롭게도 히필 어간은 백성들에 의해(레 1:14), 제사장들을 통하여(레 1:5) 여호와께 희생제물을 드린다는 뜻으로 가장 빈도 높게 사용되었다(레 1:13). 이와 같이 제사장들에게 바쳐지는 것은 무엇이나 다 거룩하며 희생제사에서 불타지 않은(또는 파괴되지 않은) 모든 부분은 제의와 공적으로 관련된 자들에게 속한다(레 3:7).

이러한 공적 의미가 가장 의의 깊게 적용되는 곳은 렘 30:21이다. 여기에서는 장차 하나님의 왕(왕족?)이 제단에서 직무를 수행하리라고 기록하고 있다(보통 배교적 행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주정치에서 어떤 왕도 이를 행하지 않았다, 참조: 왕하 16:12)!

어려운 소송에서는 하나님이 재판관이 되었으며 그들은 그 앞에 나아왔다(성막에서, 레 9:5, 삼상 10:20이하).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비교해 보라. 제비 뽑기에 의한 재판으로 아간을 찾아낸 경우(수 7:14), 전쟁 수행 여부에 관한 결정(삼상 14:36),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재판을 방청하기 위한 백성들의 종말론적(그리고 영적) 회합(사 41:1, 사 48:16, 기타 등등).

이러한 제의적 의미가 카라브의 기타 용례들과도 관련된다. 예를 들면 애 3:57에서 탄원자가 부를 때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 즉 흔쾌히 도와준다고 언급한 경우이다(참조: 신 4:7, 시 34:18). 하나님의 여러 속성들이 신실한 자들의 편으로 묘사된다(느 13:4, 창 45:10). 예를 들면 그의 이름(시 75:1, 시 119:151), 그의 구원(시 85:9), 그의 의(사 51:5) 등이다. 여기의 개념은 수동적(즉 가까움)이 아니라 능동적이다(즉 돕는 자, 자기편). 또한 인식론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가깝다(신 30:14).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이 그들의 입에서는 가까우나 마음으로부터는 멀다고 말한 내용도 아마 이러한 의미(그리고 제의적 의미)를 시사하고 있을 것이다(렘 12:2). 그리고 솔로몬의 경우도 아마 자기의 말을 계속적인 희생 제사로서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일 것이다(왕상 8:59).

 

(참조: NEDOT; L. J. COP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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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5564, 사마크) 의지하다, 기대다, 두다, 얹다, 지탱하다, 지지(지원)하다 [안수하다]

사마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기대다, 의지하다 lean, 놓다, 두다, 얹다 lay, 쉬다 rest, 지탱하다, 떠받치다, 지지(지원)하다 support'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8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형(1회)으로 사용되었다.

사마크의 가장 잘 알려진 용법은 손을 얹는 것, 즉 안수를 뜻하는데 사용된 것이다. 제물에 관한 레위기의 규례에서 제물을 드리는 자는 자기에게 해당하는 생축을 몸소 가지고 와서 자기 손을 그 생축의 머리에 얹었으며, 이렇게 하여 제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나타내며, 유죄의 경우에는 그 죄를 동물에게 전가하는 것을 나타낸다(특별히 레 16:21).

생축에 손을 얹는, 즉 안수 행위는 제사장의 위임식에 관한 규례(레 8장, 참조: 출 29장), 곧 그리스도의 사역(참조: 히 10:19-23)과 그의 사역자로 부름 받은 자들의 사역에 영적 적용과 관련된 많은 의식(딤전 4:14, 딤후 1:6)에 관한 규례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사마크는 '지탱하다, 떠받치다, 지지(지원)하다, 의지하다' support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암 5:19). 이스라엘 백성은 사람이나 국가를 신뢰하지 말며(왕하 18:21, 겔 30:6), 그 힘으로(시 37:24)와 말씀으로(시 119:116) 의인을 붙들어 주시는(시 37:17)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신자도 이렇게 넘어지는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시 145:14) 전생애를(시 71:6) 안전과 확신에서 살 것이다(시 3:5, H6).

왕하 18:21에서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지하면 해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참조: R. D. PATTERSON;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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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7522, 라촌) 호의, 은총, 기꺼이 받아들임, 뜻, 의향 [열납하심]

라촌(명남)은 라차(hx;r; , 7521)에서 유래했으며, '호의, 은총, 기꺼이 받아들임, 뜻, 의향'을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6회 나온다.

라촌은 세 가지의 주요한 의미를 나타낸다.

(a)  첫번째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은총' 혹은 '호의'(신 33:16, 사 60:10, 시 5:12, 시 30:6, 시 30:8 등). 또한 왕들(잠언에만 나옴, 잠 14:35, 잠 16:13, 잠 16:15) 및 모든 사람들(잠 10:32, 잠 11:27 등)의 호의나 은총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b)  둘째로 이 단어는 '기뻐함' 혹은 '받아들임'(출 28:38)이며, 항상 종교적 혹은 제의적 의미로 사용된다.

라촌은 선물이나 희생 제물의 '허용할 수 있음' 혹은 '받아들임(열납)'을 묘사한다(레 1:3, 레 22:20, 사 56:7 등).

(c)  세번째 이 단어는 하나님 '뜻'과 같이 '뜻'이라는 특수한 의미에서의 '소원' desire, '기쁨' pleasure이다(스 10:11, 시 40:9 등). 더 많은 본문들이 사람의 '소원' desire 혹은 '뜻' will을 묘사한다(대하 15:15, 단 8:4 등).

 

야곱이 임종시에 한 축복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창 49:6에서 한가지 모호하고 난해한 용법이 나온다. 역본들은 독특한 독법으로 서로 다르게 번역을 하였다. KJV는 "자기네들 뜻대로 그들은 성벽을 파내려 갔다" in their selfwill they digged down a wall, AV는 "그들은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 they hocked an ox, RSV는 "그들은 제멋대로 소들의 오금을 잘라 절름발이를 만든다" in their wantonness they hamstring oxen, JPS는 '그들은 그들의 뜻대로 소들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 in their self will they houghed oxen이라고 번역한다(한글개역,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KJV가 히브리 논문을 가장 정확히 따르는 것 같다.(W. White) 


hx;r;(7521, 라차) 기뻐하다, 호의를 보이다, 받아들이다 [열납하다]

라차(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호의를 보이다, 받아들이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5회 이상 나온다.

이 단어는 인사말에서(삼하 24:23) 사용된다.

라차는 빈번히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 특히 메시야를 기뻐하시는 것을 묘사한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사 42:1).

라차는 시 147:10의 아름다운 병행어구에서 두 번째 단어로 나온다. 전반절에 사용된 첫 단어는 동의어인 하페스이다.

라차는 또한 사람에 대한 호의(말 1:18)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지는 호의(잠 3:12)를 다루는 구절에서 사용된다. 이 동사는 왕의 호의(삼상 29:4)나 그들의 왕에게 백성들에 대한 호의(대하 10:7)를 구하는 문맥에서 사용된다.

라차는 속죄(미 6:7)와 제의적 요구의 이행(대하 36:21)이라는 의미에서 빚의 지불에 대해 사용된다.

라차는 모호하고 난해한 구절(욥 14:6)에서 주의깊게 번역하지 않으면 언뜻 보기에 부적절한 것같이 보인다. 욥은 인간의 덧없음을 한탄한다: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로 쉬게 하사 품군같이 날을 마치게 하옵소서(향유케하소서)".(참조: W.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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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K;(3722, 카파르) 덮다, 진정시키다, 화해하다, 속죄하다, 역청으로 위에 칠하다 [속죄하다]

카파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a) '덮다, 가리다 cover, 진정시키다, 달래다 pacify, 화해하다 make reconciliation', (b) '역청으로 위에 칠하다 cover over with pitch'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나오며, 주로 피엘형으로 사용되었으며, 칼 1회, 푸알 5회, 니팔 1회, 히트파엘 5회 사용되었다.

1. 피엘형에서

(a)  '덮다, 가리다, 진정시키다, 달래다, 화해하다'(창 32:21, 사 47:11, 잠 16:14).

(b)  '덮다, 가리다', 따라서 하나님을 진정시키고 '속죄하다'(BDB)(출 32:30, 민 17:11-12, 민 25:13, 신 32:43, 겔 16:63 등).

2. 푸알형에서

'덮어지다, 가리워지다, 속죄되다'(사 6:7, 사 22:14, 사 27:9, 잠 16:6, 민 35:33).

3. 히트파엘형에서

(a)  '덮어지다, 가리워지다', 삼상 3:14에서 엘리 집의 죄악이 제물이나 예물로 덮어질(속죄될) 수 없다고 한다.

4. 니팔형에서

(a)  '덮어지다, 가리워지다'. 신 21:8에서 '피가 덮어질' 것이라고 한다.

참조 - 코페르('속량, 속전')의 의미에서부터 카파르의 의미가 보다 더 잘 해설된다. 이 단어의 의미는 '대용물을 드림으로 속죄하다'라는 뜻이다. 이 용법의 대부분은 제사장이 희생제물의 피를 뿌리는 의식과 관련되며, 이때 이 단어들은 경배하는 자를 "속량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레위기에서 49회의 실례는 이런 의미로 쓰이며 다른 의미는 입증되지 않는다. 이 동사는 '선물로 달래다'라는 관련 의미가 나타나는 창 32:20, 잠 16:14, 사 28:18을 제외하고는 항상 죄 혹은 불경한 것의 제거와 관련하여 사용된다. 이 단어가 구약성경에서 화해의 신학을 적절하게 예증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특별히 피로 상징화되는 희생 동물의 생명은 예배자의 생명의 대용에서 요구된다. 구약성경의 신학에서 동물의 희생 제사는 목축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죄없는 생명이 죄있는 생물을 대신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 상징은 예물을 드리는 자가 자기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 동물에 대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참조: 레 16:21, 레 1:4, 레 4:4 등). 그런 후 그 동물을 죽이거나 혹은 속죄의 염소로 내보내는 행위에 의하여 명백하게 드러난다.(R. L. Hartley).

5. 칼형에서(1회)에서 '역청으로 위에 칠하다'.

창 6:14에서 방주의 방수에 대해 사용되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참조: BDB;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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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j'v;(7819, 샤하트) 죽이다, 도살(륙)하다 [잡다]

샤하트(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죽이다, 살해하다 kill, 도살(륙)하다 slaughter, 치다 beat'를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0여회 나온다.

1. 칼형에서, '죽이다, 살해하다'를 의미한다.

(a)  샤하트는 먹기 위해 짐승을 죽이는 것(삼상 14:32, 삼상 14:34, 사 22:13, 레 17:3), 피를 얻기 위해 짐승을 죽이는 것(창 37:31)을 묘사한다.

(b)  샤하트는 희생제사에서 살해하는 것을 묘사한다. 샤하트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희생제 의식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이 샤하트가 가장 빈도 높게 등장하는 곳이 레기위이다. 하나님의 존전에 나올 때 결코 빈 손으로는 오지 않았다. "내 손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는다"라는 것은 이스라엘과 거리가 먼 개념이었을 것이다. 예배하는 자는 동물을 가져오되 집에서 사육하는 가축이어야 했으며, 결코 야생 동물을 가져오면 안되었다("나에게 아무런 손실도 되지 않는 것을 나는 여호와께 드리지 않겠다"). 일정한 상황에 준하여, 예배 드리는 자가 동물의 머리에 안수한 후 그 개인 스스로나 대제사장 또는 레위인들이 그 동물을 죽이고 그 다음 피를 뿌렸다.

성경은 사실상 동물이 어떤 방식으로 도살되었는지 결코 설명하지 않는다. 랍비 자료는, 간단 없이 움직이는 목을 수평으로 가로질러 자름으로써 가능한 한 가장 신속하고 고통이 없는 방법으로 동물을 죽였다고 진술하고 있다(V. P. Hamilton).

희생제사를 위해 동물을 잡는 것(삼상 1:25, 출 29:11, 레 1:5, 레 1:11, 레 4:24, 레 9:8, 민 19:3, 대하 29:22, 대하 29:24, 겔 40:41), 새를 잡는 것(레 14:5, 레 14:6, 레 14:50, 레 14:51), 불의한 희생제사에서 짐승을 잡는 것(사 66:3), 유월절 양을 살해하는 것(출 12:6, 출 12:21, 대하 30:15, 대하 35:1, 대하 35:6, 대하 35:11, 스 6:20)을 묘사한다.

겔 40:39, 겔 40:42, 겔 44:11, 레 4:24, 레 7:2, 레 14:13에서도 희생제물의 살해와 관련하여 언급되었다.

(c)  샤하트는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묘사한다. 샤하트는 인간을 죽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 그러한 살인은 제의적, 종교적 동기를 지닌 살해와 일반적인 살인과 암살에 속한다. 전자의 범주에 우리는 창 22:10에서 "아브라함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한 것과 사 57:5, 겔 16:21에서 가나안 종교에서 행하던 인신 제사에 의한 어린이 희생제사를 포함시킬 수 있다.

그리고 후자의 범주에는 하나님 자신이 살인 행위의 가해자가 되고 자기 백성이 그 희생자가 되는 하나의 가설적 상황이 포함되어 있다(민 14:16).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에 따라 그의 아들들이 처형되었다(왕하 25:7, 렘 39:6, 렘 52:10). 유다의 지도자들도 사형에 처해졌다: 렘 39:6, 렘 52:10(참조: 렘 41:7도). 바알 선지자들(왕하 18:40)과, 왕족(왕하 10:7, 왕하 10:14) 그리고 "십볼렛"이라고 발음하지 못하였던 에브라임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도륙을 당하였다(삿 12:6)(V. P. Hamilton).

2. 니팔형에서 '살해하다'를 의미한다. 민 11:22에서 먹기 위해 살해된 것을 묘사한다. 레 6:18에서 희생제물을 위해 살해된 것을 묘사한다.(참조: BDB;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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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z:(2236, 자라크) 흩뿌리다, 뿌리다, 던지다 [흩뿌리다]

자라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흩뿌리다, 붓다 a caller, 뿌리다 sprinkle, (내)던지다 toss'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5회 나오며, 칼형과 푸알형으로만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자라크는 '던지다, 흩뿌리다, 뿌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자라크는 재를 하늘을 향하여 던져 뿌리는 것(출 9:8, 출 9:9, 출 9:10), 씨를 흩뿌리는 것(사 28:25), 우상을 빻은 가루를 무덤에 버리는 것(대하 34:4), 욥의 친구들이 욥을 보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던지는 것(욥 2:12), 숯불을 성읍 위에 흩어버리는 것(겔 10:2)에 대해 사용되었다.

(b)  자라크는 '뿌리다, 붓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자라크는 희생제물의 피를 붓거나 뿌리는 것을 묘사하며, 두 가지 특별한 목적을 위한 종교적 의식에서 사용되었다.

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신성한 결속 의식을 행할 때에 뿌린다(T. Lewis). 백성과 제단에 피를 뿌림은(출 24:6-8) 제단이 피뿌림을 받은 자, 즉 언약의 백성들이 사랑 많고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열려진 길임을 확증하는 것이었다(참조: 왕하 16:15).

② 뿌리는 것은 정결 의식의 절대 필요한 일이었다. 피는 성화를 가리키거나 확증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출 29:20, 레 1:5) 명확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 위생상의 목적을 위하여도 뿌려졌다(레 17:6).

(c)  자라크는 물을 '뿌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에스겔은 자라크를 하나님의 갱생의 역사와 관련하여 포로된 언약의 백성의 마음에 맑은 물을 뿌리는 것을 묘사한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겔 36:25).

(d)  자라크는 호 7:9에서 사람의 머리카락이 희게 얼룩얼룩 한 것을 묘사한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찌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2. 푸알형에서 '뿌려지거나 뿌리움을 받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체로 더러워진 자는 정결케 하는 물로 뿌림을 받거나 부음을 받아야 한다(민 19:13, 민 19:20).

(참조: BDB;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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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v'P;(6584, 파샤트) 벗기다, 침입하다, 급습하다 [벗기다]

파샤트(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벗기다 strip, 돌진하다 dash, 침입하다, 급습하다 raid'를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2회 나오며, 칼, 피엘, 히필,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칼 어간에서 파샤트는 기본적인 두 가지 역어를 지닌다. 하나는 (옷을) '벗기다'이며, 둘째는 '침입하다'이다. '벗기다'라는 의미는 칼 어간에만 유일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피엘 어간(이 경우 동사의 목적어는 쓰러진 무사의 '무기'이다)과 히필 어간(목적어는 주로 '옷'이지만 '무기'[삼상 31:9]나 '가죽'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경우는 '가죽을 벗기다' to flay, '해체하다' to dismember라는 의미가 된다[레 1:6, 대하 29:34, 대하 35:11, 미 3:3])에서도 발견된다.

파샤트의 52회 용례 중 23회의 의미가 '벗기다' to strip, remove, '발가벗기다' to make naked이다.

이러한 문맥에서 파샤트는 격렬하거나 심판적인 행위를 나타내며(무기를 벗겨내는 것에 대해 언급한 구절들)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방 세력에 의해 짓밟힘을 당할 때는 옷을 벗겨낸다는 의미를 보이기도 한다(겔 16:39, 겔 23:26, 수 2:3). 미 2:8에서는 유다가 남의 겉옷을 '벗긴다' 즉 '훔친다'고 서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요셉도 자기 형들에 의해 겉옷이 '벗겨졌다'(창 37:23). 아론은 이스라엘의 과거 죄로 인해 죽기 전에 의복이 '벗겨져야' 했다(민 20:26, 민 20:28).

그 외 어떤 경우에는 옷을 '벗긴다'는 말이 단순히 옷을 갈아 입다 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였다. 예컨대 종교 행사시나(레 6:11, 레 16:23), 하루 일과를 마칠 때(느 4:23), 또는 죄에 대한 회개와 애통의 표시로서(사 32:11), 그리고 무아경의 예언 행위시에(삼상 19:24) 그러하였다.

(참조: V. P. Hamilton;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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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n:(5408, 나타흐) 조각조각으로 자르다, 각을 뜨다

나타흐(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자르다, 베어내다, 조각조각으로 자르다, 마디(관절)로 나누다, 각을 뜨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9회 나온다.

나타흐는 동물(삼상 11:7), 여인의 시체(삿 20:6, 삿 19:29), 희생제물(왕상 18:23, 왕상 18:33, 출 29:19, 레 1:6, 레 1:12, 레 8:20)을 조각조각으로 자르거나 각을 뜨는 것을 묘사한다.(참조: BDB).

「참고 - 나타흐는 주로 동물(한 경우에 사람)의 시체에 대해 사용되며 손발을 자르는 것을 나타냄이 분명하다. 예컨대 어떤 레위인이 능욕당한 자기 첩의 시체를 각 지파에게 통고하기 위해 열 두 조각으로 나누었다(삿 19:29). 이 단어의 보다 일반적인 용법은 제사 과정과 관련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의 제사 준비(왕상 18:33)와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몇몇 언급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또한 사울은 각 지파들에게 살해된 한 쌍의 소를 나눈 조각들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M. C. Fi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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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6186, 아라크) 정돈하다, 배열(치)하다, 값을 정하다 [배열하다, 늘여 놓다]

아라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a) '정렬시키다, 정돈하다, 배열(치)하다', (b) '평가하다, 값을 정하다, 과세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5회 나오며, 칼, 니팔,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아라크는 준비, 배열(이 단어는 페니키아 동족어도 그러함), 정돈을 나타내는 동사이며 종종 군사 문맥에서 '전투 대형을 정렬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동사의 군사적인 어감은 '(전투에서) 싸우다'를 의미하는 아랍어 아라카 및 '전장'을 뜻하는 아랍어 명사들인 마라크, 마라카흐와 비교될 수 있다.

동사 아라크는 구약성경에서 두 가지 기본적인 어감을 지닌다. 첫째로, 종종 발견되는 것으로 '정돈하다, 배열하다'를 의미하며, 다양하게 사용된다. 둘째로, BDB가 제시하는 의미로서, (비교의 목적어로) 배열하는 결과를 가리키는 '비교하다'를 뜻한다. 이 동사의 후자의 용법은 이사야서에서 여호와의 비길데 없음을 찬양하는 장엄한 전승가에서 발견된다. 사 40:18은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라고 한다(또한 시 40:5, H6, 시 89:6, H7, 욥 20:17, 욥 20:19). 여호와의 비길데 없음은 구약성경 신학의 장엄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이따금 무시되는 것이다.

매우 종종 아라크는 '정돈하다, 배열하다'를 의미한다. 이 동사는 많은 목적어와 함께 사용된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 불을 지피려고 배열하는 장작 조각(창 22:9 - 구약성경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배열한 희생 제물인 수소 조각(레 1:8), 금으로 만든 상 위에 여섯 조각을 두 줄로 배열해 놓은 진설병(레 24:8), 이방 선지자 발람이 만든 일곱개의 단(민 23:4), 라합이 정탐군을 숨기기 위해 배열한 아마대(수 2:6), 식사하도록 마련해 놓은 상(시 23:5, 사 21:5), 말하기 위해 낸 말들(욥 32:14), 진술된 법정 소송(주장)(욥 13:18) 등 삼하 23:5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주신 언약을 몹시 기뻐한다: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아라크는 전투를 시작하기 위하여 전투 대형을 정렬하는 것을 묘사하는 군사 용어이다. 이 동사는 밀하마(싸우다, 창 14:8, 삿 20:22, 삼상 17:8 등)와 리크라트(교전하다, 예: 삼상 4:2, 삼하 10:9-10 등)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구약성경의 기자들은 또한 싸울 무기를 준비하는 것을 언급한다(렘 46:3, 대상 12:9). 한번, 욥은 그의 고통스런 고난의 상태를 전투 대형을 갖추고 그에게 대항하여 선 하나님의 가공할만한 군대의 군사 공격의 고통스런 상태로 묘사한다(욥 6:4).

아라크는 히필형에서 '평가하다, 값을 정하다'(레 27:8, 레 27:12, 레 27:14), '과세하다'(왕하 23:35)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BDB는 이 단어를 명사 에레크(평가)에서 유래한 동사로 열거한다.

KB와 같은 몇몇 권위 있는 사전은 아라크의 이 용법을 별개의 낱말로 구별하지 않고 단순히 위에 열거한 동사의 히필형으로 본다.(참조: R. B. ALLEN;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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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7364, 라하츠) 씻다, 목욕하다 [씻기다, 씻어내다]

라하츠(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씻다, 씻어내다, 목욕하다'를 의미한다.

이 어근은 제의적인 씻음을 가리키며, 어의학상으로는 아니지만 언어학상으로 아카드어 라하추(범람하다 to overflow, 넘쳐 흐르다 to flood)와 동족어이다. 이 단어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 이집트어 라하츠 및 우가릿어 라하츠와 동족어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75회 나오며, 칼, 푸알,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최초의 용례는 창 18:4에 나온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신체의 부분들 중에서 의식적으로 씻어야 하는 곳들로 얼굴(창 43:31), 손(출 30:19, 출 30:21), 몸(레 17:16), 발(창 18:4 이하)이 있다. 레위기의 제사에서 희생 동물의 살도 씻었다(레 1:9 등). 이러한 씻음에는 일반적으로 많은 양의 물이 필요했다. 이러한 사실은 솔로몬의 커다란 청동 바다가 다른 의식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러한 물을 저장하는 통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것 같다.

이 단어의 몇몇 흥미로운 용법이 이스라엘의 미용술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려주는 아가서에서 나온다. 어근 라하츠는 의식적으로 발 씻음(아 5:3)과 젖으로 눈을 씻는 것(아 5:12)을 묘사한다. 낭만적인 씻음을 가리키는 유사한 용법이 룻 3:3에도 나온다: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러나 이 어근 라하츠의 훨씬 더 중대한 용법은 죄로부터 깨끗케 하는 것을 나타내는 개념 속에 담겨 있다(사 1:16, 사 4:4). 이러한 의미는 에스겔 전체에 걸쳐 나타나며(겔 16:4, 겔 16:9, 겔 23:40), 계속하여 신약성경에서 요한의 세례(침례)와 예수님의 세례(침례)에서 나타난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씻는 관습에 대하여 많이 언급한다(요 2:6, 마 15:2, 히 9:10 등).(W. White)

이러한 물로 자주 씻는 행위는 틀림없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일반적인 청결을 증진시켜 주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죄로부터 께끗케 됨을 뜻하는 것이 있다. 침례의 물이 특별히 깨끗하게 하는 자인 성령을 상징한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일련의 흥미로운 구절들도 있다. 막 1:8, 성령 세례(침례)가 예언됨; 행 1:5, 성령 세례(침례)를 그리스도께서 다시 언급하심; 행 10:47, 내적 의식의 표시로서의 외적 의식의 수행; 행 11:16, 행 1:5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언급하신다.(R. L. Ha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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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q;(6999, 카타르) 희생제물을 불사르다, 연기로 그것을 올려보내다 [남김없이 불살라 연기로 만들다]

카타르(동사)는 케토레트(tr,foq] , 7004: 연기, 타는 희생제물의 냄새, 향 냄새)에서 유래했으며, '희생제물을 불사르거나 연기 나게 하다, 그것을 연기(향기)로 올려보내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16회 나오며, 피엘, 히필, 푸알,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카타르는 일반적으로 제의적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1회는 비제의적으로 사용되었다(아 3:6).

카타르는 향을 사르는 것뿐만 아니라 기타 모든 제물을 태우는 것을 의미하는 전문적 표현이다(KD, Jeremiah, p. 46). 이 단어는 자바흐(jb'z: , 2076)와 병행을 이루는 경우가 있으며(호 4:13, 호 11:2 등등) 또는 번제물과 향을 태운다(바친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대하 13:11). 이와 같이 태우는 목적은 제물을 연기로 화하게 하여, 향기로운 냄새로서 신에게 올라가게 하기 위함이다(그 제물의 천적 요소로서(KD, Pentateuch, Ⅱ, p. 228). 이러한 희생제사의 대부분은 통상적인 음식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자체가 하나님께 생명(참조: !D; , 1818: 피 blood), 자기의 천직, 그리고 생명의 소산물(즉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바치는 역할을 하였다(OTOT, p. 262, 참조: 렘 44:15). 그 까닭에 가장 좋은 부분(기름, 레 4:10)과 희생 제사용 동물의 초태생(가장 좋은 것과 전체를 바친다는 의미, 민 18:17)은 항상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다. 제물을 드리는 행위는, 바쳐지는 그 제물을 하나님께 양도한다는 의미는 물론 그 제물이 헌물자를 대속(죽음의 형벌)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Vos, BT, p. 186이하). 이 사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요 17:19, 엡 5:2).

히필어간은 진정한(또는 최소한 참되다고 여겨지는) 희생 제사를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인간은 피조성과 타락에 의해 한계 지워진 피조물이기 때문에 은혜로운 주권자 여호와께서는 희생제사의 세목들을 상세히 지정하셨다. 거의 모든 세목이 일찍이 깨뜨려진 바 있으며 파기자들은 참람하게도 하나님 앞에 열납되기를 요구했다(또는 되리라 추측했다). 엘리의 아들들은 특선된 가장 좋은 부분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함으로써 그를 욕되게 하였다(삼상 2:16, 레 7:31, 레 4:10). 이스라엘의 왕들은 그 방법과 장소를 모두 변경하였는데 이는 분명히 그 결과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게 할 의도였을 것이다(왕상 12:33, 대하 28:4, 왕하 16:13, 참조: 출 9장). 하나님께서는 단지 외적 부합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인간들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지자들은 영적인 것이 진정한 희생 제사의 본질임을 거듭 강조하였다(참조: BT, p. 286의 암 4:4-5에 관한 Vos의 설명). 사랑은 실제로 순종을 의미한다(신 6:4-6).

피엘 어간은 모세 5경 이후에 비로소 나타나며 이것 역시 예배 의식의 전체 행위를 의미하는 수가 있다. 이 단어의 용례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을 통한 내리막길의 역사를 따르고 있다. 의식적으로(제사 드리는 자 편에서) 또는 심판의 뜻으로(기자 편에서) 이 어간에 의해 묘사된 그러한 행위들은 분명히 진정한 예배와 상반되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 점을 아모스의 풍자적 진술이 확실히 강조하고 있다(암 4:5). 가나안 족속의 예배를 모방한 이 잘못된 제사는(AI, p. 438) 하나님을 능욕하는 행위요(사 65:7), 수치스러운 일(렘 11:17)이었으며 하나님을 잊어버리고(렘 18:15) 저버렸다는(렘 19:4) 증거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 우상 숭배자에게 아무런 소망과 도움도 주지 못하였다(렘 11:12).

말세에 하나님은 한 영원하고(렘 33:18, 히 7:23이하) 우주적인(말 1:11, 참조: 벧후 2:9) 제사장직을 만들 것을 약속하신다.

구약성경의 의식에는 분향이 가득하다(사 6:4).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의 휘장 앞에 금을 입힌 특수 재단("금단")을 설치하라고 명하신다(그러므로, 출 30:10). 매년의 대속죄제는 물론 매일의 조석 번제에도 분향이 수반되었다(출 30장). 하나님께서 규정하지 않은 제조향은 열납될 수 없으며(출 30:34) 한편 하나님이 규정한 제조향을 비제의적 목적에 사용하면 안되었다. 이 거룩한 향은, 희생제물의 피를 뿌린 분향단의 숯으로써만 오직 불을 지피게 되어 있었다(사 6:6). 다른(이상한) 불을 사용하면 죽음의 형벌을 받는 수가 있었다(레 10:1-2). 향연기는 기도를 상징한다(참조: 시 141:2, OTOT, p. 273, 참조: 눅 1:10, 계 5:8, 계 8:3 이하).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기도조차도 대속이 필요하다(출 30:10). 마지막으로 무의식적인 죄는 향단 뿔에 피를 바름으로써 속죄되었다(레 4:7).

이것들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의식 중 제단 뿔에 피를 바르는 단 두 가지 의식이다. 각각의 의식에서 피를 바르는 장소를 비교해 보면 피를 뿌리는 일과 바르는 일이 뒤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대속죄 의식(레 16:18)은 바르는 것을 첫째로 놓는다. 나아가서 두 의식은 그 피가 적용되어야 할 재단(들)이나 기타 등등에 관하여 피를 바르는 각기 상이한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무의식적 범죄를 위한 의식은(레 4:7) 상징적으로 그 범죄자를, 그의 고유한 언약적 역할로써 다시 섬기도록 복귀시켜 줌을 뜻한다. 대속죄 의식에서 뿌리는 행위는 각각의 제단들을 정결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그러므로 그 제단들이 예표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정결하게 해 준다는 뜻이 있다. 이 제단들의 불결은 국가의 어떤 행동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그 자체의 특성에 달려 있다. 즉 그 불결은 인간성의 집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마 피를 바르는 이 의식들은 원죄와 무의식적인 죄의 밀접한 관련성 및 그 반면의 뚜렷한 차이점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는데 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참조: L. J. COPPES;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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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ynI(5207, 니호아흐) 진정시킴, 달램, 기쁘게함, 평온케함의[향기] (안돈/만족/화해/안식시키다, 향기롭게 여기다, 향기가 되게 하다)

니호아흐(명남)는 누아흐(j'Wn , 5117: 휴식하다, 쉬다)에서 유래했으며, '진정시킴, 달램, 기쁘게함, 평온케 함'을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3회 나온다.

니호아흐는 대부분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와 관련하여(출 29:18, 레 23:18, 민 15:10, 민 15:13 등), 여호와께서 주어 먹게한 음식(겔 16:19)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우상에게 바치는 향(겔 6:13, 겔 20:28), 음식(겔 16:19)에 대해 사용되었다. 

겔 20:41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서 모을 때에 그들을 니호아흐로 받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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