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0.15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95.성도의정체성과생명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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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95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3.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4.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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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T]Psalm 95

1 Come, let us sing to the Lord!  Let us shout joyfully to the Rock of our salvation.

2 Let us come to him with thanksgiving.  Let us sing psalms of praise to him.

3 For the Lord is a great God,  a great King above all gods.

4 He holds in his hands the depths of the earth  and the mightiest mountains.

5 The sea belongs to him, for he made it.  His hands formed the dry land, too.

6 Come, let us worship and bow down. Let us kneel before the Lord our maker,

7 for he is our God. We are the people he watches over,  the flock under his care. If only you would listen to his voice today!

8 The Lord says, “Don’t harden your hearts as Israel did at Meribah,  as they did at Massah in the wilderness.

9 For there your ancestors tested and tried my patience,  even though they saw everything I did.

10 For forty years I was angry with them, and I said, ‘They are a people whose hearts turn away from me. They refuse to do what I tell them.’

11 So in my anger I took an oath: ‘They will never enter my place of 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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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JV]A Call to Worship and Obedience 95 

1 Oh come, let us sing to the Lord! Let us shout joyfully to the Rock of our salvation.

2 Let us come before His presence with thanksgiving; Let us shout joyfully to Him with psalms.

3 For the Lord is the great God, And the great King above all gods.

4 [a]In His hand are the deep places of the earth; The heights of the hills are His also.

5 The sea is His, for He made it; And His hands formed the dry land.

6 Oh come, let us worship and bow down; Let us kneel before the Lord our Maker.

7 For He is our God, And we are the people of His pasture, And the sheep [b]of His hand. Today, if you will hear His voice:

8 “Do not harden your hearts, as in the [c]rebellion, As in the day of [d]trial in the wilderness,

9 When your fathers tested Me; They tried Me, though they saw My work.

10 For forty years I was [e]grieved with that generation, And said, ‘It is a people who go astray in their hearts, And they do not know My ways.’

11 So I swore in My wrath, ‘They shall not enter My r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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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3-4장을 많이 인용하는 것이 좋다. 거기서 이 시편은 다윗이 지었으며, 메시야 시대를 가리킨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히브리서 4장 7절에 보면, 이 시편이 말하는 날은 복음의 시대를 가리킨다고 분명하게 나와 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며, 또 가나안의 안식 외에 다른 한 안식을 우리에게 제안하고 계신다. 이 시편을 노래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도에서다.

1. 우리 자신이 “여호와께 노래가 되기” 위해서다(1-2). 그는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이요(3-5),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자이기 때문이다(6-7).

2. 우리 자신과 아울러 남들을 가르치고 충고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서 듣고 배워야 한다는 것(7),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인들처럼(8-9)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그들처럼 하나님의 진노에 떨어져서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된다(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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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반석(시 95:1-7)

시편 저자는 다른 어느 시편에 못지 않게 여기서도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고취한다. 찬양은 극히 활기 있게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수행해야 할 의무다. 우리는 흔히 찬양에 소극적이고 냉담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에 대한 자극을 받을 필요성이 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Ⅰ. 하나님은 어떻게 찬양을 받으셔야 하는가?

1. 거룩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송은 “즐거운” 노래가 되어야 한다(1-2절). 신령한 영적 즐거움은 감사와 찬미의 요체다. 우리가 무한히 온전하시고 복되신 분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왕 되시는, 그리고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분으로서 그를 기뻐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그의 겸손하신 은혜, 그분은 그토록 자신을 낮추신다).

2.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존경심과 거룩한 경외감으로(6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무한한 거리감과 그의 진노 아래서는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의 자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아는 자답게 굽혀 경배하며, 그 앞에 무릎을 꿇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육체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신앙적 예배의 의무 속에서 우리는 외면적으로 경외와 진실과 겸손을 표현해야 한다.

3. 우리의 음성으로. 우리는 사랑과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찬 풍성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찬미를 발해야 하며, 노래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심과 인자하심에 크게 감동된 자답게 여호와께 즐거이 노래하며 찬미하자. 우리는 기꺼이 하나님의 크심과 인자하심을 인정해야 하며, 거기에 더욱더 감동되어 남들에게 경건한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즐겨 이바지해야 한다. 우리는 엄숙한 집회에서 일제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오라, 우리 여호와께 노래하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나 혼자만 아니라, 남도 나와 같이 찬미하자. 우리 함께 그 앞에 나아가자. 그의 백성이 예배드리고 계시를 기대하는 그의 집 뜰로 나아가자.”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때면, 언제든지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런 은총을 허락 받고 있는 것이다. 감사할 일이 있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며, 그가 지정하신 규례대로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Ⅱ. 하나님은 왜 찬양 받아야 하며, 우리가 찬송할 소재는 무엇인가? 찬송할 소재는 우리에게 언제든지 있다. 문제는 우리에게 찬송할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만유의 주이신 까닭이다(3절). 그는 크시다. 그러므로 크게 찬양 받으셔야 마땅하다. 그는 무한하시고도 무한하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완전하다.

(1) 그는 큰 권세를 소유하신다. “그는 모든 신 위에 크신 하나님이시로다.” 그는 모든 대리 신들, 즉 그가 “너희는 신들이라”고 말한 모든 통치자들보다 뛰어나시다. 모든 거짓 신들, 곧 신을 가장하고 신의 권리를 횡령하는 모든 자보다 위에 계신다. 그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는 그들 모두를 굶주리게 하실 수 있으며, 정복하실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실 것이다.

(2) 그의 소유는 크다. 여기에는 한계가 구체적으로 열거되고 있다. 우리는 광대한 영토를 지닌 이들을 위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자기 영토를 온 세상과 비견해 말하지만, 그것은 우주 전체로 볼 때 극히 미미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을 다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가!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지배권을 소유하신다. 온 땅이 그의 발 밑에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모든 것을 지시하고 처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온 땅은 그의 손안에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땅의 깊은 곳”, 즉 지하의 샘과 광산이 “그의 손”(한글 개역에서는 “그 위”)에 있다. 우리가 미치지 못하는 “산들의 높은 것”, 즉 무엇이 그 산들을 먹고 자라든지간에 그 역시 “그의 것”이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들 중에 가장 비천한 자는 곧 땅의 낮은 곳과 같은데, 그런 자들조차 하나님의 인식 아래 있으며, 높은 산들 같은 위인도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피조물에게 어떤 강한 힘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하며, 하나님을 위해 사용된다(5절). “바다는 그의 것이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도 하나님의 것이다”(물결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킨다). 바다가 하나님의 것임은 그가 만드셨고, 물을 모으셨으며, 해안을 정하신 때문이다. 비록 인간들에게 주시기는 하셨지만, 육지도 그의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 소유권을 그분 자신이 가지고 계신다. 육지도 그의 것임은, 그의 말씀이 육지를 나타나게 하셨을 때 그것을 지으신 때문이다. 그가 만물의 창조주임은 그가 만유의 소유주라는 데 이의 없게 한다. 이 복음의 시편에서 우리는 찬미하라고 가르치는 대상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크신 하나님”이시다. 능하신 하나님이란 그의 칭호 중 하나다. 그는 “모든 것 위에 영원히 복되신 하나님”이시다. 중재자로서 그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다. 왕들은 그에 의해 다스려진다. 천사나 주권자나 권세자가 다 그에게 복종한다. “만물이” 영원한 말씀이신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요 1:3). 그러므로 만물의 창조자이신 분이 만물의 회복자와 화해자가 되시기에 마땅하다(골 1:16, 20).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모든 권리가 그에게 주어졌고, 만물은 그의 손에 주어진 바 되었다. 그는 바다와 땅의 최고의 주로서 한 발은 바다를, 다른 한 발은 육지를 밟고 계신다(계 10:2).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 찬미의 노래를 불러야 하고, 그 앞에 “굽혀 경배하며 무릎을 꿇어야” 한다.

2.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만물을 지배하듯 우리도 지배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특별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7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찬양이 기대된다. 우리가 찬양하지 않으면 누가 찬양할 것인가? 우리가 “그의 이름과 칭예가 되지”(렘 13:11) 않는다면, 그가 우리를 무엇 때문에 지으셨겠는가?

(1) 그는 우리의 창조주시며, 우리의 존재를 지으신 분이다.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6절). 우상 숭배자들은 자기들이 만든 우상 신 앞에 무릎 꿇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다. 그는 우리와 온 세상을 지으셨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합법적 소유주이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2) 그는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복을 지으시는 분이다. 그는 “우리 구원의 반석”이라고 불린다(1절). 그는 놀라운 역사의 창시자일 뿐 아니라, 그 역사가 기초하고 있는 토대다. 그 반석은 그리스도다. 우리는 그에게 찬미의 노래를 불러야 하며,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양을 돌려야 한다.

(3) 우리는 온갖 가능한 의무 아래 그에게 속해 있다. “우리는 그의 초장의 백성이며, 그의 손의 양이다”(KJV). 무릇 인간은 다 그러하다.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양육되고 인도 받는다. 섭리는 목자가 양떼에게 그러하듯 인간들을 보살피며 이끌어간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보존해 주시며, 부양하신다. 우리의 생명과 영혼은 다 그의 손에 있다. 우리는 그를 찬양해야 한다. 특히 교회의 자녀들은 다 그렇다. 이스라엘은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요, 그 손의 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특히 그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신다. 복음 교회는 하나님의 양떼이다. 그리스도는 선하고 크신 목자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손에 이끌려 푸른 초장으로 인도되고, 그의 보호를 받으며 좋은 부양을 받는다. 이것은 그의 명예와 봉사를 위해서다. 우리는 특수한 백성으로서 그의 명예와 봉사를 위해 전적으로 바쳐진 존재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든 아니든) 교회 안에서 영광이 그리스도께 대대로 영원해야 한다(엡 3: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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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퍅한 마음에 대한 경고(시 95:8-11)

이 시편의 후반부는 복음의 시편을 노래하는 자들에 대한 권면으로 되어 있다. 그들은 복음적 삶을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자들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기도와 찬송이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음을 관찰하자.

Ⅰ. 그 모든 자들에게 요구되는 의무. 그들은 그리스도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다. 그는 그들이 자기 음성을 들을 것으로 기대하신다(요 10:27). 그들은 “우리가 그의 백성이라”고 말한다. 여러분도 그의 백성인가? 그렇다면 “그의 음성을 들으라.” 만일 여러분이 그를 주님이라고 부른다면, “그가 이르시는 일을 행하며”, 즐겨 그의 순종하는 백성이 되라. 그의 교훈과 율법의 음성을 들으며, 이 두 가지에서 성령의 음성을 들으라. 듣고 주의하라. 듣고 순종하라. “낯선 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의 음성을 들으라.” “너희가 그의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들으면 좋으련만!” 너희가 그토록 지혜롭고 자신을 위해 그토록 착하게 행동하면 좋으련만! 이런 표현은 주님의 말씀에도 나온다(“네가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으련만!”, 눅 19:42). 그리스도의 음성은 오늘 들어야 한다. 사도는 복음시대를 가리키면서 이것을 강조한다(히 3:13, 15). 그가 말씀하시는 동안 우리는 그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기회의 오늘은 결코 계속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늘이라고 일컫는 동안에” 그 기회를 활용하라.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과 동일하다. 만일 여러분이 “오늘” 믿음으로써 복음의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여간 복되지 않다. 그러나 내일이면 너무 늦다. 그토록 중대한 일에 지체하는 것보다 위험한 일은 없다.

Ⅱ. 그들은 죄악에 대해 경고 받는다. 즉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순종하고 믿는 귀와 모순된다. “너희가 그 음성을 듣고 그로써 이익을 얻으려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완전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그 마음이 강퍅했으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죄와 죄악의 위험을 깨닫지 못했고, 따라서 구원의 제안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멍에에 굽히려 들지 않았고, 그의 요구에 복종하지 않았다. 죄인의 마음이 강퍅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행위이며(그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강퍅케 하기에), 그 혼자 그 책임을 영원히 져야 한다.

Ⅲ. 그들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인의 선례가 곧 그러하다.

1. “광야의 이스라엘인은 범죄로 인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너희도 영원한 안식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그들이 지었던 죄를 조심하라. 너희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한 세대같이 되지 말라(78: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므리바는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과 다투고 모세와 언쟁하던 곳. 출 17:2-7) 광야 시험(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그들은 불신과 불평으로 하나님을 너무 자주 노엽게 했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머물던 전 기간은 시험의 날이라 할 만했다. 맛사는 그 장소에 주어진 별칭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가 우리 중에 계시지 않는가?”(출 17:7) 하는 말로 하나님을 시험한 때문이다. 이것은 광야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광야는 그들 스스로 어떻게 해볼 도리 없이 하나님의 자비에만 매달려 있던 곳이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들을 놀라운 이적으로 도우셨고, 자기 능력에 대한 확증과 자기 은총에 대한 표적을 그들에게 제시하셨다. 그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다음 네 가지 사실을 주목하자.

(1) 시험의 날은 노엽게 하는 날이다. 도중에 다소 어려움이 보인다고 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그 약속의 이행에 절망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없다.

(2) 하나님의 능력과 인자에 대한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불신할 때의 죄는 더욱더 크다. 하나님께만 의존해 생활하던 광야에서 그를 시험하다니, 이 얼마나 불합리하며 배은망덕한 일인가!

(3)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와 다투는 근저에는 강퍅한 마음이 있다. 신적 계시에 감명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마음은, 강퍅하게 녹지도 굽지도 않으려 한다.

(4)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경고로 삼아 그 전례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인의 불평은 우리의 경계를 위해 기록되었다(고전 10:11).

2. 여기서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믿지 않는 이스라엘인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책망이 주어지고 있다(9-10절). 하나님은 오래 전 이스라엘인들의 비행을 몹시 분개하시는 투로 말씀하신다.

그들의 죄는 불신앙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도 좋은지 어떤지 물어보았고, 가나안으로 나아가기 전에 정탐꾼을 내보냄으로써 보다 안전할 것을 주장했다. 정탐꾼들의 보고에 실망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에 대해 회의를 표시하고, 우두머리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민 14:3-4). 이것은 거역이라고 칭해진다(신 1:26, 32).

② 그들이 “하나님의 행사를 본” 것은 그들의 죄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들은 출애굽 사건에서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 하신 일을 보았다. 아니, 그들은 하나님이 날마다 자기들을 위해 행하시는 일을 보았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떡을 비오듯 내리셨고,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다. 하나님의 임재를 이보다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바로가 마음을 강퍅하게 함으로써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눈으로 보면서도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

③ 그들 죄의 원인.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무엇 때문으로 규정하시는지 살펴보자.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불신뢰와 불평, 그리고 하나님과의 다툼은 그들의 무지와 실수의 소치였다.

a. 그들의 무지에 대해서. “저희는 내 도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고(9절), 하나님은 자기 행위를 그들에게 알리셨다(103:7). 그럼에도 그들은 그의 도(원의는 “길”―역주)를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자기 섭리의 길로 그들을 향해 행동하셨다. 또 하나님은 자기 계명의 길로 그들이 자기에게 행동하기를 원하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를 알지 못했고, 올바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며, 시인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길을 무시하고 저버리는 것은 그들이 그 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임을 주목하자.

b. 그들의 실수에 대해서.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길에서 벗어나 방황한다. 그들은 마음으로(먼저 마음중심에서부터) 등을 돌린다. 죄는 실수, 의도적/선택의지적/실천적 실수이며 [부활생명능력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영으로 하나님말씀따라 사는 새로운 인류가 되었는데, 성령의 새롭게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가치-관점-패러다임으로 JC이름으로 살며 여쭈어 선택함이 아니라 그냥 육적감각 곧 피상적으로 육안으로 보고 피부에 느껴지고 소문으로 듣는 그대로 이 세대 곧 세상의 가치-관점-판단을 더 우선시하는 이중적, 교만한, 부패의 근원인 죄성, 그 습관따라 오도되고 미혹된]마음의 실수라는 데 주목하자. 마음의 실수는 머리의 실수만큼 치명적이다. 부패한 애착심이 판단을 왜곡할 때, 영혼을 의무와 순종의 길에서 그릇 인도할 때, 마음의 실수가 있음을 명심하자.

④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개. “40년을 이 세대로 인하여 내가 근심하였다.”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백성의 죄는 하나님을 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근심하시게도 한다. 특히 하나님을 불신하고 신뢰하지 않는 죄가 그러하다. 하나님은 그들이 몇 번이나 그리고 얼마나 오래 자기를 근심하게 했는지 계산해 두신다(민 14:22). 패역한 죄인들에 대해 하나님이 얼마나 인내하시는지 주목하라. 그는 그들로 인해 40년간이나 근심했다. 그 근심의 세월은 다음 세대가 가나안으로 승리의 진입을 함으로써 끝이 났다. 만일 우리 죄가 하나님을 근심하시게 했다면, 우리도 마땅히 죄로 인해 근심해야 한다. 죄의 어느 요소도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만큼 우리를 근심하게 하지는 않는다.

(2) 그들의 죄로 인해 내려진 선고(11절).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했도다. 만일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온다면 나를 변덕이 심하고 진실치 못한 자라고 말하라”(민 14:21 이하 참조). 다음을 관찰하자.

① 이 판결은 어디서 오는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나왔다. 그는 노해 엄숙히 맹세하셨다. 그의 분노는 공정하고 거룩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화가 난 상태에서 함부로 맹세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분노는 죄스럽고 야만적인 까닭이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그는 죄와 죄인에 대해 노하신다고, 아니 매우 노하신다고 한다. 이는 죄의 악함과 하나님의 공정한 통치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것은 확실히 그런 보상을 받을 만큼 악한 상황에, 진노한 하나님에게서 기대할 수밖에 없는 판결이다.

② 그 판결은 무엇이었는가?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 안식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비하고 예정하신 것이었다. 그 안식은 그들과 그들의 소유를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출애굽 때에 등록된 자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것이 그 판결이었다.

③ 그 판결은 어떻게 인준되었는가? “내가 맹세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사였을 뿐만 아니라, 명령이었다. 맹세는 하나님의 계획의 불변성을 나타낸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않으신다”(110:4; 히 7:21).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예비되어 있다는 그 어떤 생각도 부인한 맹세였다. 하나님의 위협은 그의 약속만큼 확실하다.

이제 이스라엘의 이 경우는 이 시편이 저작된 다윗 시대의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했고, 그들의 조상들처럼 마음을 강퍅하게 갖지 말아야 했다. 그들이 만일 조상들처럼 목이 곧다면 하나님이 진노해 예루살렘 성전 예배의 특권을 금지시키실 터였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이는 나의 쉴 곳이라”(132:14)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도가 그렇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는 신령하고도 영원한 안식이 제시되고 약속되었으니, 가나안은 그 안식의 예표였다. 우리는 모두 이 안식을 향해 가고 있다(적어도 신앙인은 모두). 그렇지만 일견 그 안식에 거의 도달한 듯이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들어가지 못할 자가 많다. 그들의 눈에 빗장을 거는 방해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죄요 불신앙이다. 죄는 치료를 거부하며, 우리의 호소를 대적한다.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과 그의 능력과 인자를 신뢰하지 않고, 가나안의 젖과 꿀보다 애굽의 마늘과 양파를 더 좋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안식에서 차단되어 마땅하다. 그들의 운명도 그러하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자”(히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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