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0.15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96.말씀에합당하고 신실한, 회개와 결단, 완전한 순복의 예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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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96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3.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4.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5.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6.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7.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10.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11.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12.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13.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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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V]  Psalm 96 

1  Sing to the LORD a new song; sing to the LORD, all the earth.

2.  Sing to the LORD, praise his name; proclaim his salvation day after day.

3.  Declare his glory among the nations, his marvelous deeds among all peoples.

4.  For great is the LORD and most worthy of praise; he is to be feared above all gods.

5.  For all the gods of the nations are idols, but the LORD made the heavens.

6.  Splendor and majesty are before him; strength and glory are in his sanctuary.

7.  Ascribe to the LORD, O families of nations, ascribe to the LORD glory and strength.

8.  Ascribe to the LORD the glory due his name; bring an offering and come into his courts.

9.  Worship the LORD in the splendor of his holiness; tremble before him, all the earth.

10.  Say among the nations, "The LORD reigns." The world is firmly established, it cannot be moved; he will judge the peoples with equity.

11.  Let the heavens rejoice, let the earth be glad; let the sea resound, and all that is in it;

12.  let the fields be jubilant, and everything in them. Then all the trees of the forest will sing for joy;

13.  they will sing before the LORD, for he comes, he comes to judge the earth. He will judge the world in righteousness and the peoples in his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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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all to Worship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96 

1  O sing to the Lord a new song; Sing to the Lord, all the earth!

2 Sing to the Lord, bless His name; Proclaim good news of His salvation from day to day.

3 Declare His glory among the nations, His marvelous works and wonderful deeds among all the peoples.

4 For great is the Lord and greatly to be praised; He is to be feared above all gods.

5 For all the gods of the peoples are [worthless, lifeless] idols, But the Lord made the heavens.

6 Splendor and majesty are before Him; Strength and beauty are in His sanctuary.

7 [a]Ascribe to the Lord, O families of the peoples, Ascribe to the Lord glory and strength.

8 Ascribe to the Lord the glory of His name; Bring an offering and come into His courts.

9 Worship the Lord in the splendor of holiness; Tremble [in submissive wonder] before Him, all the earth.

10 Say among the nations, “The Lord reigns; Indeed, the world is firmly and securely established, it shall not be moved; He will judge and rule the people with fairness.”

11 Let the heavens be glad, and let the earth rejoice; Let the sea roar, and all the things it contains;

12 Let the field be exultant, and all that is in it. Then all the trees of the forest will sing for joy

13 Before the Lord, for He is coming, For He is coming to judge the earth. He will judge the world with righteousness And the peoples in His faithfu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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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삽과 그 형제에게 전달된 시가의 일부분으로(대상 16:7), 다윗이 이 시편의 필자였고 다윗성에 언약궤를 둔 사실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 있다. 역대상 16장 8-36절에 나타난 긴 시가가 먼저 형성된 후에 이 96편을 발췌했는지, 또는 이 시편이 먼저 형성되고 후에 역대기에 차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하다. 즉, 이 시편이 언약궤 이전에 불렸지만, 보다 멀리 그리스도의 왕국을 바라며, 왕국의 영광, 특히 그 나라에의 이방인들의 가입을 축하하기 위한 의도로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1. 모든 백성에게 위대하고 영광된 하나님이신 그를 찬양하고 예배하며, 그에게 영광 돌리라는 부름이 내려졌다(1-9).

2. 하나님의 우주적인 지배와 심판이 모든 백성에게 주어짐을 알린다. 그것은 우주적인 기쁨의 일이 되어야 한다(10-13).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은총에 대한 위대하고 높은 생각들로 가득 채워야 하고, 그리스도 주권의 지배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한 기대에서 완전한 만족으로 넘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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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 돌리라(시 96:1-9)

이 대목은 하나님의 위엄과 초월적인 탁월성에 대한 높은 경배와 더불어, 하나님께 대한, 우리 영혼 안에서 활동하는 거룩하고 신실한 사랑에 의해 가장 잘 해석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우리를 부름은 매우 생동적이며, 그 표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감사의 응답을 불러일으키고 화답하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Ⅰ.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1. 노래로써(1-2절). 우리는 여기에서 세 번이나 “여호와께 찬양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태초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할 때와 같이 지금 투쟁하고 있는 교회에서, 또 장차 승리하는 교회에서 영원히 노래해야 하는 바와 같이, 성부, 성자, 성령에게 노래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우리는 자주 노래 불러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고, 또한 그것을 우리에게 자주 상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께 노래하라.” 즉,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를 찬양하라.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귀하게 여기도록 전하라.”

(1) 새로운 표현들로 옷 입은 제일 좋은 노래, 새로운 감정의 소산인 “새 노래로 부르라.”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낡은 노래처럼 비천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새 노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거기에서 놀라운 것을 기대하고 있다. 새 노래는 새로운 은혜를 위한 시요, 매일 아침 새로워지는 은혜를 받고자 하는 자들을 위한 노래다. 새 노래는 “신약”의 노래, 새 언약에 대한 찬양의 노래며, 새 언약의 고귀한 특권이다. 새 노래는 영원히 새롭게 될 노래이며, 결코 낡거나 사라져버릴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결코 골동품이 되거나 구식이 될 수 없는, 영원히 지속될 노래다.

(2) 온 땅으로 하여금 이 노래를 부르게 하라. 지금까지는 “이방 세계가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는 없었고”, 부르려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전유해왔던 유대인뿐만 아니라, “온 땅의 구속받은 모든 사람들과 온 땅으로 하여금 이 새 노래를 배워 부르게 하라”(계 14:3). 이것은 이방인들의 부르심에 관한 예언이다. 온 땅은 이 새 노래를 부르도록 부름을 받는다.

(3) 이 노래의 주제는 주 예수에 의해 역사되는 위대한 구원이다. 이것이 기쁨과 찬양의 동기로서 제시되어야 한다.

(4) 이 노래는 장엄한 절기를 위해 지정된 시간에만 아니라, 날마다 불려야 한다. 그것은 결코 없어질 주제가 아니다. 우리가 날마다 복음적인 기도에 힘입어서 이 말을 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복음의 언어를 예증할 수 있다.

2. 설교로써(3절).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라고 했다.

(1) 여기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기이한 행적이라고 말하며,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매우 찬란하게 빛난다고 했다. 그 구원을 증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빛남을 선포하는 셈이다.

(2) 구약시대에는 이러한 구원이 지금 계시된 하늘 행복의 영광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때가 차면 구원이 선포되며, 여러 예언자들과 왕들이 보기를 갈망하고 원했으나 보지 못했던 것이 어린이에게조차 완전히 드러나게 된다.

(3) 당시에는 비밀이 유대인들 가운데만 선포되었으나, 이제는 “이방 중에, 만민 중에” 선포된다. 어두움 속에 오래 거하던 열방들이 지금 이 위대한 빛을 보고 있다. 만민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들의 사명이 여기에서 강조된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선포할지어다.”

3. 신앙적인 예배로써(7-9절). 지금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한 모든 나라들이 그를 영접했지만, 제도적인 종교의식은 유대 종교에 속한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예배에 초대되었고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들도 이전의 유대인처럼 환영되었다. 이방의 궁정은 더 이상 외국의 궁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궁정과 똑같이 되었다.

여기에서 온 땅을,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고 그의 허락에 따라 그를 예배하라고 불러모으고 있다. “각처에서 그의 이름을 위하여 분향이 드려질 것이다”(말 1:11; 슥 14:17; 사 66:23). 이것은 실제로 유대인에게 국한된 말이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행복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망을 준다.

이제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행위가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관찰해 보자.

(1) 우리는 “여호와께 돌려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나 어떤 피조물로부터 어떤 것도 요구하거나 받으실 수 없다면, 우리가 드리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최선의 사랑과 경배와 예배로써 그에게 되돌려야 하며, 아낌없이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드리는 것은 빚이요, 빌린 것이요, 감사의 선물이요, 지불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거룩한 사랑에서 나왔다면 그것을 하나님은 선물처럼 기쁘게 받으신다.

(2) 우리는 하나님이 권능의 주 되심을 시인해야 한다. 따라서 그에게 존경을 돌려야 한다.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7절). 왕으로서의 하나님은 영광의 예복을 입고 권능의 띠를 두르셨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즉, “나라가 당신의 것이며, 따라서 권능과 영광이 당신의 것입니다” 하는 것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그것을 네 자신이 취하거나 어떤 다른 피조물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3) 우리는 그에게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는 그러한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다. 모든 경건한 예배는, 모든 최선의 것과 우리 존재의 근원이신 그에게 우리가 빚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를 존경하고 영광 돌리려는 것이 목적이다.

(4) 우리는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제일 먼저 우리 자신, 즉 “이방인을 제물로”(롬 15:16) 가져와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찬양의 제사”(히 13:15)를 드려야 하고, 공적인 예배에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 그러나 결코 빈손으로 그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5) 우리는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그를 예배해야 한다. 거룩한 제도가 경건하게 집행되고, 그 거룩함의 아름다움(성경의 미)이 수반되는 집회에서 경배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성화된, 하나님의 영광에 바쳐진, 그리고 죄의 타락으로부터 깨끗해진 거룩한 심령으로 그에게 경배해야 한다.

(6) 우리는 그 앞에서 두려워해야 한다. 모든 예배의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의 원리와 거룩한 경외와 존경으로써 수행되어야 한다.

Ⅱ.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 돌리라는 부름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동기와 소재로써 영광스러운 것들을 말하고 있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이라”(4절). 그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위대하고 영예로우며, 그의 대적에게는 광대하고 무섭다. 새 노래는 하나님을 선하게 선포하는 것은 물론 위대하게 선포한다. 그의 선하심이 곧 그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복음이 가르쳐질 때, 그것은 이러한 말씀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계 14:6-7).

1. 그는 신으로 가장하는 모든 권세자들보다 위대하다. 아무도 감히 그와 대적하지 못한다. 그는 죽은 후에 신성하게 되며, 살았을 때 “작은 신들”(petty gods)로 숭배 받는 왕들 또는 우상들, 모든 나라의 신들, 즉 이러한 “모든 신보다 경외할” 분이다(5절). 새 노래를 부르도록 부름 받은 만방의 족속들은 그들이 영광 돌려야 할 주 여호와가 모든 적대자들과 왕인 체하는 자들 위에 서신 유일하게 살아 계시고 신실한 하나님이심을 확신해야 한다. 여호와는 위대하나 그들은 작다. 그는 모든 것이며,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상들에게 사용된 말은, 우리가 알 듯이,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다”(고전 8:4)라는 것이다.

2. 여호와는 그의 정의에서, 심지어는 피조물 중 가장 고귀한 부분에 대해서도 위대하다. 그것들은 그 자신의 업적이며, 그에게서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으며”, 그 모든 주인들을 지으셨다. 그들은 “그의 손가락의 작품”(8:3)이다. 그들은 매우 아름답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만방의 신은 모두 조작되었으며, 인간의 헛된 환상의 피조물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저들이 신들이라 상상하고 그렇게 숭배하는 해와 달과 별들과 하늘의 빛나는 것들의 창조자이시다.

3. 그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땅 위 성도들 가운데서, 즉 위의 세계나 아래 세계에서나 똑같이 자기 영광을 위대하게 나타낸다(6절).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거기서는 천사들이 얼굴을 가리고, 그의 영광의 빛나는 광채는 감당할 수 없다. 저 하늘과 이땅에 똑같이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하나님께 경외할 만한 모든 것과 찬양할 만한 모든 것이 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성소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그의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우리의 반석”이기 때문에 그의 권능을 경험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권능 앞에 나아가야 하며, 그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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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시 96:10-13)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을 열방 중에 선포하려는 자들, 또는 복음을 이웃에 전파하고 “열방 중에서 이르려는” 자들에게 주어진 교훈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귀의 나라의 파멸 위에 건설될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현저한 예언으로, 그의 승천 이후 즉시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의 신비한 뜻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해 이루어질 것이다.

Ⅰ.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성 시온에 두기로 결정한 왕이신 주 그리스도가 통치한다고 말하라. 이것이 베드로에 의해 어떻게 최초로 이방인에게 들려졌는가를 보라(행 10:42). 어떤 고대인들은 여기에 주석을 붙이기를,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붙여둔 십자가를 의미하는 “나무로부터 주께서 통치하신다”고 했다(저스틴 마터, 오스틴 등등의 사람들이 인용했다). 하나님이 그를 높이고, 모든 이름들 위에 뛰어난 이름을, 모든 보좌 위에 있는 보좌를 준 것은 그가 죽기까지 복종,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복종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그를 이렇게 경배하러 왔다(마 2:2). 이제 그들로 하여금 그가 오셨고, 그의 나라가 건설되었음을 알게 해야 한다.

Ⅱ. 그리스도의 통치가 세계의 행복한 안정이 될 것임을 말하라.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자연 세계가 굳게 서게 될 것이다. 세계의 안정과 그 견고성은 그리스도의 중보의 기도에 힘입고 있다. 죄는 세계에 충격을 주며, 위협한다. 구속자로서 그리스도는 만물을 유지하며, 자연의 진로를 보존하신다. 인류 세계는, 죄악을 불러일으킬지라도, 은총의 선택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이 초청될 때까지 굳게 서고 보존된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한, 나라들을 굳게 할 것이며 사람들 가운데 좋은 질서를 유지할 것이다. 또 이와 같이 세상에서 교회도 “움직일 수 없도록” 굳게 설 것이다. 그것은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지옥의 문(권세)들이 결코 교회를 이길 수 없다.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다.”

Ⅲ. 그리스도의 통치는 공평하고 의롭다고 말하라. “저는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며(10절), 의와 진실하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시리로다(13절)”. 여기에서 심판은 통치와 진실을 위해 주어진다. 비록 이것이 “공의로”(행 17:31) 심판하는 말세의 보편적 심판을 의미한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의 최초의 오심에 대해, 곧 복음에 의해 세상에 세워지는 그의 나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요 9:39, 12:31)고 말하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요 5:22, 27)고 선언했다. 의와 진리로 하는 그의 통치와 심판은 다음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그의 나라의 모든 법률과 조례는 영원한 진실과 공평의 규칙과 원리에 일치하며, 하나님의 본성과 그 뜻의 정직과 순결에 부합된다.

2. 그의 정부의 모든 내각은 그가 말씀하신 바에 따라 공평하고 신실하다.

3. 그는 진실로 지휘하는 권세와 의인(義認)과 성화(聖化)의 성령에 의해 인간의 마음과 양심 속에서 다스릴 것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것을 위해 났으며, 이것을 위해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해 증거하려 함이로다”(요 13:37). 그는 진리로 다스리며, 바르게 심판하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인간의 의지를 다스리신다.

Ⅳ. 그들에게 그의 오심이 가까워짐과 이 왕과 심판자가 “문밖에 서 있고”, “오셨다”는 것을 말하라. 아담의 7대손인 에녹이 바로 이렇게 말했다. “보라, 주께서 임하셨다”(유 14). 이때와 그의 첫 번째 오심 사이에 여러 세대의 개혁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적절한 때에 임하며, 확실히 그의 재림은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오랫동안 말로 선포되었지만, “보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계 1:7). 그러나 아직 그는 오시지 않았다(벧후 3:4 등 참조).

Ⅴ. 메시아에게 주어진 영광과 그의 손에 맡겨진 위대한 진리를 그들로 하여금 기뻐하도록 하라(11-12절). “하늘과 땅이 즐거워하며, 바다와 들과 삼림의 모든 나무들로 기뻐하게 하라.” 그 어법은 시적이며,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메시야의 날은, 그의 은총과 통치권이 일임되는 한, 기쁜 날들이 될 것이며 그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처소와 영혼을 기뻐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 사마리아가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 8:8)고 했다. 또 내시가 세례를 받았을 때, 그는 기뻐하며 길을 갔다(행 8:39).

2. 다른 사람들도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환영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의무다. 그는 정복하면서, 또 정복하기 위해서 오지만 평화롭게 오신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막 11:9-10). “시온의 딸에게 왕의 오심을 기뻐하게” 할 뿐만 아니라(슥 9:9), 모두에게 기뻐하게 하라.

3. 모든 피조물, 바다와 들조차도 그리스도 나라의 건설을 기뻐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전 피조물은 “허무한 데 굴복했지만”, 둘째 아담의 은총에 의해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었다(롬 8:20-21).

4. 첫 번째로 “하늘에 기쁨이 있으며,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 기쁨이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난 자가 세상에 왔을 때 그들은 찬미로 찬양했다(눅 2:14).

5. 하나님은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그리스도 왕국을 진심으로 바라는 자들의 거룩한 기쁨과 찬양을 은혜롭게 받으신다. “바다가 외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삼림의 나무들도” 자기들이 기뻐함을 나타낸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무엇이 성령의 마음인지를 아신다.” 그리고 가장 약한 자들의 언어, 즉 비탄에 잠긴 언어를 이해하신다.

=====히스기야를 기억함===
hY:qiz]ji(2396, 히즈키야) 
히즈키야(명남)는 하자크(qz"j; , 2388)와 야흐(Hy: , 3050)에서 유래했으며, '여호와는 강하시다, 여호와의 힘셈)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87회 나오며, 여러 이스라엘 사람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1. 유다왕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유다의 14대 왕이며(B.C. 715-687년)이며, 아하스와 아비야 사이의 아들이다(왕하 16:20; 대상 3:13).
그는 25세에 즉위하였으며(대하 29:1),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왕하 18:3 이하; 대하 29:2 이하; 대하 31:20 이하; 대하 32:32; 렘 26:19).
그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개역을 단행하고(대하 29:6-36; 대하 31:1; 대하 33:3; 왕하 18:3 이하), 유월절 의식을 회복하고(대하 30:1 이하), 참된 예배 형식을 회복시키었다(대하 31:2-21).
그는 앗수르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다가 그들의 침략에 패하여 조공을 드리게 되었다(왕하 18:7; 왕하 18:9 이하). 산헤립이 유다로 쳐들어 온다. 산헤립은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50㎞ 떨어져 있는 중요한 요새 라기스에 사령불 설치했다. 이 침략의 상황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에 반영되어 있다(사 1:1-9), 애굽의 도움에 기대를 걸면서 앗수르의 종주권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히스기야(7절 하반절)는 앗수르에게 굴복하고 엄청난 조공을 바치므로 뮈기를 모면한다.
그는 예루살렘 성중으로 수로를 만들고 물을 성중으로 끌어 들였다(왕하 18:17; 왕하 20:20; 대하 32:4, 30; 대하 33:14; 사 36:2).
그는 앗수르의 장수 랍사게의 조롱을 받고 하나님께 충심으로 기도함으로,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격려를 받았다(왕하 19:8-37).
그는 죽을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15년간의 생명을 연장 받았으며(왕하 20:1-11), 생명의 연장을 감사하는 글을 남기었다(사 38:9-20).
그는 바벨론 사신들에게 유다의 모든 보물을 보여 주며 자랑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으며, 유다의 멸망과 징벌을 선고받았다(왕하 20:12-18).
히스기야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 1:9-10에 사용되었다. 히스기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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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선정(善政)(왕하 18:1-8)
우리는 여기에서 히스기야의 통치에 대한 일반적인 기록을 보게 된다. 그의 아버지의 나이와 그의 나이를 비교해 보면, 그의 아버지가 11살 내지 12살에 그를 낳았던 것 같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그가 나이가 차게 되어 직무를 감당하기에 적합하게 된 때에는, 이미 그의 아버지의 죄악이 한도에 다다랐다.
Ⅰ. 그의 위대한 경건심.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열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의 하나였고, 매우 악하고 타락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빛나게 되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가장 선한 임금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 사실을 말해 준다. 즉 사람에게 있는 선한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고 은총, 절대 은총, 최상의 은총에 속한 것이요, 그 은총은 천성과는 달리 천성적으로 악한 감람나무를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는 일을 한다는 것(롬 11:24), 그리고 또 그 은총은 아무리 큰 곤란이나 약점도 극복한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자식에게 나쁜 모범은 물론 나쁜 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그의 제사장 우리야가 아마 그를 교육시켰을 것이다. 생각건대, 그의 시종자들과 친구들은 우상숭배를 고수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뛰어나게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역사하면, 그 무엇이 방해할 수 있으랴!
1. 그는 참으로 다윗의 아들이었다. 다윗에게는 타락한 자식들이 매우 많이 있었다(3절).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하나님은 바로 다윗과 언약을 맺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에게는 그 언약의 은혜를 입을 권리가 있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행하기는 했지만, “다윗과 같지는 않았던” 자들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14:3). 그들은, 다윗이 행했던 바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것들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제2의 다윗으로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집을 사랑했다. 세월과 사람이 악할수록 덕은 더욱 필요하지만 오히려 계속하여 더욱 덕이 없어지는 것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자. 히스기야는 많은 악한 왕들을 따르지 않았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왕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2. 그는 열렬한 왕국 개혁자였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대하 29:3) 알맞은 시기에 그 개혁을 시작했다. 즉 그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착수했다. 조금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나라가 매우 부패해 있고 그 백성이 만사에 지나치게 미신적임을 알아냈다. 그들은 언제나 그러했었다. 그러나 지난 왕대(王代)에 있어서는 이전보다 더욱 심했다. 히스기야의 악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우상숭배가 그땅을 대홍수와 같이 뒤덮었다. 그의 마음은 이 우상숭배로 인해 분기되었다. 그것은 아덴에서의 바울의 분개와 같았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실권을 잡게 되자마자 그는 곧 우상을 훼파하는 일을 시작했다(4절). 물론 그 백성이 우상숭배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일에 반대가 있으리라는 것은 각오했을 것이다.
(1) 주상들과 아세라 목상들은 완전히 우상숭배적이고 이교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는 그것을 부수고 파괴했다. 비록 그의 아버지는 그것들을 세우고 그것들에 대해 애착을 표시했지만, 그는 그 우상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육친의 부모들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2) 산당들은 특별한 절기 때에는 선지자들에 의해서 사용되어 왔고, 선한 왕들도 묵인해 왔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성전에 대한 모욕이며, 다만 성전에서만 예배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감독하에 있으므로 산당들은 우상숭배적인 예배법을 끌어들이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배들의 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법으로 삼은 히스기야는 산당을 제거했다. 산당을 제거하는 법을 제정하고, 거기에 세워진 예배당과 장막과 제단들을 파괴하는 법을 만들었고, 그러한 것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 법은 엄격히 지켜졌다. 그리고 아마도 이스라엘 왕국이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에 받아야 했던 그 무서운 심판들을 보고, 히스기야는 더욱 열렬한 개혁자가 되었고, 그 백성들도 더욱 자진해서 그와 합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이웃의 해를 보고 경고를 삼는 일은 좋은 일이다.
(3) [[은혜로 주신 그 모든 표징들조차, 기억하며 주께 경배하며 감사하되, 결코 우상 삼지는 말라 !!]]....오직 그분의 어떠하심과 동일한 파장으로 주와 합하여 존중하고 사랑하라...하나님과 기록된 바 성경말씀으로부터 HS께서 직접 깨닫게 해 주시는 영생의 생명말씀을 즉각 순종함외에는 그 어느것도 절대화시켜서는 안된다!! 놋뱀은 원래 하나님의 명령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상숭배로 악용됨으로 인해, 그는 놋뱀을 부수어 버렸다. 그 놋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어디에다가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광야에서의 그들 조상에게 베풀어졌던 하나님의 선하심의 기념과 그 이야기의 사실을 전통적으로 입증하는 증거물로서 조심스럽게 보존되었었다(민 21:9). 이것은 환자에게는 하나님께 그 치유를 의뢰하게 해 주고,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하나님께 자비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들은 창조주보다도 피조물을 더 숭배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 이웃의 어떤 민족들이 행했던 바와 같은 이교도의 주상 숭배를 싫어하던 자들은 놋뱀에게 분향하도록 하는 사단의 유혹을 받았다. 놋뱀은 하나님의 직접 명령에 따라 만들어졌고, 그들에게는 자비의 도구가 되어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경건한 열심을 지닌 히스기야는, 그 백성들에게 그것을 예배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놋뱀이 “느후스단” 곧 “한 조각의 놋”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므로 그것에 분향하는 것은 어리석고 악한 일이라는 것을 그 백성들에게 알리려 한 것이다. 패트릭(Patrick) 주교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그때 그는 놋뱀을 파괴하여 가루로 갈아서 공중에 흩어버렸고, 조각조차도 남지 않게 했다. 이리하여 놋뱀의 정당한 영예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그 영예가 다시금 훌륭하게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즉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우리의 구주께서는 놋뱀을 자신의 모형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그것이 우상화될 때에는 보존되기보다는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
3.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누구라도 비길 수 없는 사람이다.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했다(5절). 그의 개혁에 있어서 뛰어난 점은 두 가지다.
(1) 용기와 하나님을 믿은 신앙이다. 그가 우상을 제거하는 것은, 신하들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므로 그들로 반역하도록 자극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다.” 즉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며 자기를 해 받지 않게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상 주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확고하게 믿는 일은, 우리의 의무를 행할 때에 히스기야와 같이, 우리를 담대하게, 신실하게, 활기 넘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의 왕국의 원수들에 둘러싸인 것을 발견했지만, 그는 그의 아버지가 했던 바와 같이 외국에 지원을 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보호자이심을 믿었다.
(2) 의무 수행에 있어서의 참을성과 견실성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 즉 그는 확고한 결의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의지했다. 그리고 “그를 좇는 데서 결코 떠나지 않았다”(6절). 처음에는 잘 시작했던 그의 선조들 중의 어떤 이는, 중도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는 갈렙과 같이 여호와를 전적으로 따랐다. 그는 모든 우상숭배적인 관례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고, 또한 모든 일에서 자기의 의무를 의식했다.
Ⅱ. 그의 개혁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7-8절). 그는 하나님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다.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가 그와 함께 했을 때, “그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하였고”(7절), 그의 모든 사업에서 즉 전쟁, 건축, 그리고 특히 개혁에 있어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왜냐하면, 그 선한 사업은 그가 예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쉽게 수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힘을 믿고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은, 그것에서 성공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진리는 위대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는 자기의 성공을 보고 나서,
1. 아버지가 굴종했던 앗수르 왕의 멍에를 벗어버렸다. 이 사건은 “그를 반역한”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앗수르 왕이 그 사건을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히스기야가 자기의 왕위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었으나, 아하스의 힘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이 대담한 투쟁을 즉각적으로 시작한 것이 신중하지 못한 일일지도 모르나―어떤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부정하지는 않다. 그가 열방의 우상숭배를 떨쳐 버리고 났다면, 곧 그들의 억압의 멍에도 벗어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자유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2. 그는 블레셋 사람들을 맹렬히 공격했고, 그들은 가사에 이르기까지 그 촌락들과 성곽이 둘린 성읍들을 쳤다. 그러므로 그가 친 것은 “망대와 견고한 성”이었다. 그것은 자기 아버지 시대에 그들이 쳐들어와 스스로 주인이 되어버렸던 곳들이나(대하 28:18), 그는 그것을 탈환했다. 그의 아버지 시대에 아버지가 끌어들여 왔던 부패를 그가 일소하고 났을 때 그 아버지가 잃었던 소유물들을 그가 회복했다는 것은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블레셋에 대한 히스기야의 승리에 대해서는 이사야가 예언했었다(사 14:28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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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18장 유다 왕 히스기야
1.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9.  ○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10.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11.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12.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앗수르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위협하다
13.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14.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Q께 묻지않고 행함!!...주께로 향하는 바 말씀에 비추어 해로와 보이는 죄만 아니라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죄까지라도 경계하며 버리는 바, 일사각오로 마음중심의 완전한 개혁을 통해 일편단심, 전심으로 주와 동행하는 친밀감 누림의 차원가운데로 들어가서...이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려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신 주께 여쭙고 의뢰하고 순복했었더라면!!))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18.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
19.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22.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23.  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 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지라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27.  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28.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소리 질러 불러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29.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32.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33.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35.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36.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37.  이에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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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선지자가 에브라임의 거짓말과 궤휼을 견책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기를, 유다는 “아직 하나님과 더불어 다스리며, 지극히 거룩하신 자에게 신실하다”고 했었다(호 11:12). 앞장은 이스라엘의 황량함에 대해 매우 우울한 모습을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나 본장은 그의 처참한 모습과 동시에 유다의 아름다운 정황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롬 11:1). 이때 히스기야가 왕좌에 오른다. 그래서,
1. 그의 왕국을 개혁한다(1-6).
2. 그의 모든 사업이 번창한다(7-8). 그리고 이와 동시에 열 지파(이스라엘)는 포로로 끌려간다(9-12).
3. 그러나 앗수르의 왕, 산헤립의 침입을 받는다(13).
   (1) 그의 나라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쳐야 되는 상태에 놓여진다(14-16).
   (2) 예루살렘이 포위된다(17).
   (3) 하나님이 모독과 수욕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백성은 악의에 찬 랍사게의 말로 인해 반란을 일으키도록 충동받는다(18-37). 그러나 그 일들이 얼마나 잘 끝나게 되며, 또 저 위대한 개혁자의 위안과 명예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다음 장에 가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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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립의 유다 침입(왕하 18:9-16)
우리는 앗수르의 마지막 왕대의 일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현재로서는 앗수르 왕국는 이제 상당히 성장했다. 민족과 가정문제에 있어서도 그러한 변화들이 있다. 즉 열등했었던 자들은 방대하게 되고, 반대로 소란을 떨고 두각을 나타냈던 자들은 영락(零落)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여기에 다음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된다.
Ⅰ.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이스라엘 침입에 성공하여 사마리아를 포위하고(9절), 탈취하고(10절), 그 백성을 포로로 데려가는 기사이다(11절). 또 하나님이 그들에게 왜 이러한 심판을 가져왔는지 그 이유가 나타나 있다. 즉 “그들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12절). 이것은 앞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언급되었지만, 여기서 반복된다.
1. 그것은 그것을 보고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들이 각성하여 큰 열심으로 우상숭배를 일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유다 백성들은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왕국에 가져온 멸망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자기들의 이웃집에 불이 나서 자기들의 집도 위태한 가운데 있을 때는, 저주받은 일을 떨쳐 버릴 때이다.
2. 히스기야는 크게 탄식했지만, 방어할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의 왕대에도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열 지파가 비록 다윗의 집을 반역하고, 자주 자기들을 괴롭혔지만,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왕국의 재난을 기뻐할 수 없었다.
3. 그 사건은 히스기야와 그의 왕국을 앗수르 왕에게 개방시켰고, 앗수르 왕이 그땅을 침입하는 것을 더욱 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듣지” 않고 “행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열 지파에 관한 것으로 말하여진다(12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만족한다(겔 28:31).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았다.((대적의 모든 침입은 말씀의 준행에 대한 중심의 회개와 결단의 완전한 개혁을 촉구하며 일깨운다!!....오직 말씀하신바 성령의 인도따라 분별하고 결단하여 떠나되, 가장 깊이 남아있는 바,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화함, 곧 육을따라 타협하며 자행자제함의 산당제사를 버리라...일상에서 손해를 끼치는 해로운 죄를 버렸는가? 그렇다면 일시적 유익을 얻게하는 사소한 죄까지 날마다 철저히 분별하여 회개하고 토설함으로써 제거해 버리고 있는가??  그렇지 못했다면 자신의 중심을 찢어 회개하고 결단하여 제거하라....내주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지전능하심 기억하고 전심으로 의뢰하라..조그마한 불의도 남기지 않는 것을 원하시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인식하라))
Ⅱ. 앗수르의 대를 이은 왕, 산헤립의 유다 침입의 시도에 대한 기사가 있다. 산헤립은 그의 선조들이 이스라엘 침입에 성공한 전례에서 힘을 얻어 이 일을 벌였다. 그는 그들의 영예와 다투어 이기기를 원했고, 그들의 승리를 능가하고자 했다. 그가 유다에게 가한 습격은 유다 왕국에는 큰 재난이었다. 그것으로써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신앙을 시험하셨고, “위선의 민족”(사 10:6)이라고 불리는 그 백성을 징벌하고자 하셨다. 왜냐하면 비록 산당은 제거되었지만, 그들은 히스기야의 개혁에 응하지 않았고 우상을 기꺼이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마음속에, 혹은 집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개혁을 반대하는 자들이 있어서, 개혁의 시기는 곤경의 시기가 되었고, 또 개혁자들이 재난을 받기까지 했다. 이 재난은 히스기야에게 매우 중대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1. 그는 나라의 상당한 지역을 잃었다(13절). 앗수르 왕은 요새화되어 있는 거의 모든 성읍, 곧 변경 지역과 주둔지를 점령했다. 그러자 나머지 모든 성읍들도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 침입으로 인해 그 나라가 당한 혼란 상태는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서 묘사되어 있다(사 10:28-32).
2. 그는 평화를 위해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다. 그는 사마리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예루살렘 자체가 원수의 손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자, 예루살렘의 안전을 얻고자 대가를 치르기에 서슴지 않았다.
(1) 비열한 굴복을 했다. 즉 “평소의 조공을 거부했으므로,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이제 나는 요구되는 바를 기꺼이 배상하겠나이다”(14절)라고 했다. 히스기야의 용기는 어디로 갔는가? 하나님을 신뢰하던 그의 신앙은 어디로 갔는가? 그는 이 굴욕적인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왜 이사야와 의논하지 않았는가?
(2) 막대한 액수의 금액을 치렀다. 이것은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20만 파운드 이상이다)였다. 그것도 연차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배상금이었다. 이 금액을 조달하기 위해, 그는 할 수 없이 국고를 비웠을 뿐만 아니라(15절), 성전 문과 그 기둥에서 금 조각을 벗기지 않을 수 없었다(16절). 
그가 바친 “금은 성전이 성별시켰”지만, 필요성이 절박해지자 자기도 다윗처럼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다윗의 본을 땄는데, 바로 그의 조상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체의 보존을 위해서 부분을 내어주는 것은 불경하지도 않고 경솔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성전을 경멸하여 성전의 물품을 약탈했다(대하 28:24). 그러나 그는 그의 아버지가 취했던 물품의 이자까지 반환했었다. 그리고 이제 아주 당당하게, 그는 긴급한 일을 당했고 또 보다 큰 이익을 위하여 성전의 물품을 다시 빌려만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능력이 생기면 곧 그것을 완전히 갚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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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사게의 모독적인 발언(왕하 18:17-37)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Ⅰ. 산헤립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17절). 그는 예루살렘을 치려고 그의 세 장군에게 대군(大軍)을 주어 보냈다. 이것이 앗수르의 대왕인가? 아니다. 결코 그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는 천하고, 거짓되고, 불충한 자였고, 모든 세대에 악명을 떨쳐야 할 자였다. 이와 같이 불명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그를 명예롭게 명명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히스기야의 돈을 취했는데, 그것은 그의 군대를 철수할 조건으로 받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협약대로 유다 나라를 포기하는 대신에 수도로 쳐들어갔고, 돈도 다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앗수르 군대야말로 정말로 악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전과 같이 위대하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부를 것이다. 그들은 약속을 지킬 줄 모르며, 오직 자기들의 이익을 알 뿐이다. 이제 히스기야는 산헤립과의 조약을 후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조약은 히스기야를 더욱 가난한 자로 만들었지 결코 더욱 안전한 자로 만들지는 않았다.
Ⅱ. 히스기야와 그의 왕족들, 그리고 백성들이 랍사게의 조롱을 받았다. 랍사게는 세 장군들 중의 수석 대변자이며 빈정대는 재질을 가장 많이 가진 자이었다. 그는 히스기야와 새로운 다툼을 일으키라는 산헤립의 지시를 받았음이 틀림없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돈을 받고 자기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므로 부끄러워서도 즉시 예루살렘에 강한 공격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산헤립은 랍사게를 보내서 히스기야더러 예루살렘을 포기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만일 거절한다면, 그 거절은(매우 빈약한 이유이지만) 그에게 예루살렘을 포위할 핑계를 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예루살렘을 끝까지 고집하면, 그때는 그것을 강습하여 빼앗을 구실이 되는 것이다. 랍사게는 너무나 뻔뻔하여 성벽도 없는 윗 연못의 도랑에서 왕을 직접 접견하겠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신중했으므로 그 개인적인 조약을 거절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사절들(국가의 수뇌들)을 보내어, 그가 말하는 것을 듣게 했다. 그러나 “그의 어리석음에 따라”(36절) 어리석은 대답을 하지 말라고 명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랍사게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그를 화나게 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이 자기는 “귀먹은 자가 듣지 않음같이”(시 38:13-15) 듣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들으신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랍사게의 말을 도중에 방해했는데, 그것은 단지 그가 아람 방언으로 말해 주기를 바랐던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말한 것을 생각해 보고 왕에게 보고하고자 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랍사게에게 만족한 대답을 주지 않았을 때에는, 다시 “유대 방언으로” 백성들에게 직접 호소하라고 간청했다(26절). 이것은 타당한 요구이다. 또 어떤 일이 공개되기 전에 전권 대사들이 그들 사이에서 사건들을 결정해야만 하는 협정의 관례에 일치하는 것이었다. 힐기야는 자기가 아주 부조리한 사람과 대담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이런 요구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요청은 다만 랍사게를 격분케 했고, 그를 더욱 거칠고 난폭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27절). 모든 예의범절과 정중한 태도로 그 사절들과 협약하는 대신에, 그는 그 군인들을 위협하여 탈주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라고 권하였다. 즉 만일 그들이 끝까지 저항하면, 극단의 기아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자기의 주장을 폈다. 그가 말하는 요지는, 히스기야와 그의 왕족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투항을 종용하는 것이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살펴보자.
1. 그는 자기의 주인인 앗수르 왕을 과대평가한다. 몇 번이고 그는 그를 “그 위대한 왕 앗수르의 왕”(19, 28절)이라고 부른다. 그는 피조물인 군왕을 정말 하나의 우상으로 삼았다! 하나님은 위대한 왕이시지만 산헤립의 눈에는 하나의 작은 신에 불과했다. 그리고 랍사게는 산헤립에 대하여 그들도 자기와 같은 존경을 표하게 하고 싶었고, 그들을 협박하여 자기 왕에게 굴복하게 하고자 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왕 중의 왕이신 분의 권세와 영광을 보는 자들에게는 앗수르의 왕도 천하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아무리 위대한 자라도 그들이 하나님과 비교될 때, 혹은 하나님이 그들과 경쟁하게 된다면, 도대체 그들의 꼴이 어떻게 될 것인가?(시 82:6-7)
2. 그는 항복하는 것이 유다의 이익에 좋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고 애쓴다. 만일 그들이 끝까지 버틴다면 그들은 자신의 대변을 먹는 것 이외는 다른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식량 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는 자들이 식량 공급을 완전히 단절시킬 것이기 때문에 오는 현상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조건부 항복을 하고, 선물을 바치면서 앗수르 왕의 호의를 구하고, 그의 처분에 자신을 맡긴다면, 그는 그들을 매우 선대할 것이라고 했다(31절). 히스기야가 그 커다란 선물을 주고 맺은 협약(14절)도 그의 왕은 최근에 여지없이 깨뜨려 버렸는데, 랍사게는 무슨 얼굴로 다시 선물을 가지고 협약을 맺으라고 운운하는지 의아스럽다. 그렇게도 철저히 배반을 잘하는 자들에게서 무슨 신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직 “쇠사슬을 금으로 도금하라. 그러면 민중은 너희들에게 자기들의 결박을 허락할 것이다”(Ad populum phaleras). 랍사게는 만일 그들이 신중히 생각하여 투항하면―비록 그들이 죄수들과 포로들이 된다고 예상해야 되겠지만― 그들에게 실제로 행복되리라는 것을 약속함으로써 모든 것을 무마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야비한 제안이 성사되리라고 이전에 한 번이라도 그가 생각해 보았는지 의문스럽다. 그러나 마귀는 이렇게 죄인들에게 매일 매일 그러한 제안을 하라고 유혹한다. 랍사게는 다음과 같이 설득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1) 즉 그들이 감금되더라도 오히려 유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자 자기 소유의 포도를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31절). 즉 피정복자의 재산은 정복자에게 귀속되겠지만, 여전히 유다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의 재산을 자유로이 누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후에 그가 원하는 바는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복자가 얼마 동안이든 자기 마음대로 포로 된 자들을 처분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2) 그들이 포로가 되면 그들의 보다 큰 이익이 된다고, “내가 너희 본토와 꼭 같은 지방으로 너희를 옮기겠다”고 했다(32절). 그렇다면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데, 그땅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3) 그가 특히 목적하는 것은, 그들이 끝까지 버티는 것은 아주 헛되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키려는 것이다. 즉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그래서 그는 히스기야를 모욕한다(19절). 그 백성들에게 그는 말한다(29절).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아 너희를 멸망케 하지 말라. 그는 너희를 건져내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굴복하거나 멸망해야 한다.” 죄인들이 이 주장의 힘에 굴복하는 것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이라면 다행스런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대결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굴복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다. 그에게 대항하여 끝까지 버티는 자들이 의뢰하는 것은 무슨 확신인가? “우리가 그(하나님)보다 더 강한가?” 혹은 우리는 삼키는 불 앞에 찔레와 가시넝쿨을 둠으로써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러나 랍사게가 말하고 있는 대로 히스기야가 그렇게 절망적이고 무방비 상태로 있지는 않았다. 그는 히스기야가 의뢰하는 바를 세 가지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것들이 아무 효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1) 히스기야가 거느리고 있는 군사적 준비 태세. “네가 싸울 만한 계교(計巧)와 용력(勇力)이 있다고 말하도다”(20절). 그리고 우리는 그가 실제로 그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대하 22:3). 그러나 랍사게는 이 사실을 일소에 붙인다. 즉 “그 말들은 다만 공허할 뿐이로다. 너희는 우리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20절). 말할 수 없이 큰 거만과 멸시의 태도를 가지고서, 그는 말을 다룰 줄 아는 2,000명의 장정이 있으면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만일 히스기야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자기는 2,000마리의 말을 주겠다고 도전했다. 그러나 그는, 히스기야에게는 전혀 장정들이 없으며, 있더라도 군사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23절). 그래서 그는 확신과 도전으로 히스기야를 넘어뜨리려고 생각하며, 자기 왕의 가장 작은 부하 장수도 히스기야와 그의 온 군사를 좌절시킬 수 있다는 어떤 내기를 걸려는 것이다.
(2) 히스기야가 애굽과의 맺은 동맹의 헛됨을 말했다. 그는 히스기야가 애굽의 병거와 마명을 의뢰한다고 생각했다(24절). 왜냐하면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그렇게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확신에 대해 말하기를 “그것은 부러진 갈대다(21절). 그것은 자기를 의지하고 그 무게를 지탱하리라고 기대하는 자를 실패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의 손을 찔러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찢을 것이로다”라고 했다. 이는 선지자가 이 비유를 애굽에 적용하여 더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은 말이다(겔 29:6-7). 그가 말한 대로 애굽 왕은 그렇다. 그리고 실제로 앗수르 왕을 의뢰했던 아하스 왕에게 대해서 앗수르 왕도 그러했었다. 나아가 그는 “그를 괴롭혔고, 그를 강하게 하지 못했다”(대하 28:20). 육신의 팔(인생)을 의뢰하는 자들은 그것이 부러진 갈대만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3) 하나님과의 관계도 헛되다고 했다. 이것이 정말로 히스기야가 의뢰했던 확신이었다(22절).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의지함으로써 스스로 버티었다. 즉 이 약속으로 그는 스스로 용기를 내었고, 그의 백성을 격려했다(30절). “여호와가 우리를 건지시리라”는 약속이다(32절). 랍사게는 이것이 그들의 커다란 지주였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것을 동요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다 강구했다. 마치 다윗의 원수들이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신뢰를 좌절시키려고 모든 술책을 다 썼던 것(시 3:2, 11:1)과, 또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그러했던 것과 같았다(마 27:43). 랍사게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뢰를 낙담케 하려고 제시한 세 가지 사실들은 모두가 거짓되었다.
① 히스기야가 “산당들과 제단들을 파괴했으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했다(22절). 여기에서 그는 수많은 제단과 성전을 기뻐하던 이방의 우상 신들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평가한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하나의 제단에만 예배하게 제한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일찍이 히스기야 생의 최선의 행위들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며 또 알기를 원치 않는 자에 의해서 불경스럽고 속된 것으로 오해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훌륭한 일이, 무지하고 악의에 찬 자들에 의해서 악한 짓이요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짓이라고 표현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것이 그런 오해가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히스기야는 그렇게 되는 것을 감수했을 것이다.
② 그래서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파괴를 명령하셨다는 것이다(25절).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서야 내가 올라왔겠느냐?” 이것은 모두 희롱이요 도전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위임을 받았다(그가 누구의 위임을 받았겠는가?)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성 위에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두렵게 하기 위해 이런 구실을 붙인 것이다. 만일 그의 말한 것에 조그마한 구실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선지자들의 글에서 열 지파의 파멸은 하나님의 파멸에 의한 것임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을 점령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체해 왔다.
③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앗수르 왕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일을 맡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모독적 언사로 자기 말을 끝맺었다(33-35). 즉 그는 자기가 정복했던 민족들의 신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비교하고, 그를 그들과 같은 수준에 놓았다. 그리고 그 이방 신들이 자기들의 예배자들을 보호하고 구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하나님도 자기의 예배자들을 보호하고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첫째로, 이것은 그의 교만이다. 그가 한 성읍을 정복하면, 그 성읍의 신들을 정복했다고 생각했고, 자기가 그 신들보다 강하다고 자부했다. 우상들에 대한 그의 높은 평가는 그로 하여금 우상들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높은 자가 바로 자기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둘째로, 그의 불경성이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지역에 국한되는 신이 아니다. 그는 온 땅의 하나님, 유일하시고 살아 계신 참 하나님, 상제(上帝)이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모든 신들 위에 있음을 스스로 증거하셨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아르밧과 하맛의 가상적인 신들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부당하게도(당시에는 어떤 제사장들도 이렇게 말했다) 모든 종교의 신들은 동일하고, 그들 모두 위에 자기 자신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랍사게는 배교한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유대 언어로 그렇게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그의 무지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으며, 그의 적의는 더 이상 이상할게 없다. 왜냐하면 배교자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잔악하고 적의에 찬 원수들이기 때문이다.
랍사게의 이 말 속에는 많은 가책과 술책도 있으나, 거기에는 많은 자존심과 악의, 거짓, 신성 모독도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실한 한 알곡은 이 모든 기지와 웅변에 상당하는 값어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히스기야 편의 사절이 말한 것을 들어보자.
1.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히스기야를 위해서 말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쉽사리 랍사게의 왕의 반역과 불신을 들어 그를 비난하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너희로 하여금 그러한 행위가 성공하리라고 기대하게 하는 종교는 무엇이냐고. 적어도 그들은, 벤하닷의 거만한 요구에 대해서 아합 왕이 답변했던 저 불운한 운명을 그에게도 암시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다”라고(왕상 20:11).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그들에게 명령하기를, 그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지시를 따랐다. 말할 때가 있는 것과 같이 침묵을 지켜야 할 때도 있다. 신앙적이거나 혹은 이성적(理性的)인 어떤 것을 제공하는 일이,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는 격이 되고 마는 사람들도 있다. 미친 자에게 무슨 말이 들리겠는가? 그들의 침묵이 랍사게로 하여금 더욱 거만하고 방심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더욱 높아지고 결국 그의 파멸에 이르게까지 완악해져 갔다.
2. 그들은 그의 불경스런 언사를 증오하면서, 그리고 멸시받고 상처받은 예루살렘의 가엾은 상태에 비통한 나머지 자기들의 옷을 찢었다. 그러한 치욕은 그들에게는 무거운 짐이었다.
3. 그들은 신실하게 그 사실을 왕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랍사게의 말들을 그에게 전한다.” 그래서 왕은 무슨 일이 행해졌으며, 그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그들은 랍사게의 요청에 대해 무슨 대답을 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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