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0.16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히스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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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왕하 제19장 왕이 이사야의 충고를 듣고자 하다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4.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5.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7.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앗수르가 또 위협하다

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9.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10.  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11.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12.  내 조상들이 멸하신 여러 민족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

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이사야가 왕에게 보낸 여호와의 말씀

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23.  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25.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26.  그러므로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7.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산헤립이 죽다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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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iah Encourages Hezekiah 19 

1 When king Hezekiah heard it, he tore his clothes and he covered himself with sackcloth and went into the house (temple) of the Lord. 

2 Then he sent Eliakim who was in charge of his household, Shebna the scribe, and the elders of the priests, covered with sackcloth, to Isaiah the prophet the son of Amoz. 

3 They said to him, “Thus says Hezekiah, ‘This is a day of distress and anxiety, of punishment and humiliation; for children have come to [the time of their] birth and there is no strength to rescue them. 

4 It may be that the Lord your God will hear all the words of the Rabshakeh, whom his master the king of Assyria has sent to taunt and defy the living God, and will rebuke the words which the Lord your God has heard. So offer a prayer for the remnant [of His people] that is left [in Judah].’” 

5 So the servants of King Hezekiah came to Isaiah. 

6 Isaiah said to them, “Say this to your master: ‘Thus says the Lord, “Do not be afraid because of the words that you have heard, with which the servants of the king of Assyria have reviled (blasphemed) Me. 

7 Behold, I will put a spirit in him so that he will hear a rumor and return to his own land. And I will make him fall by the sword in his own land.”’”

Sennacherib Defies God

8 So the Rabshakeh returned and found the king of Assyria fighting against Libnah [a fortified city of Judah]; for he had heard that the king had left Lachish. 

9 When the king heard them say concerning Tirhakah king of [a]Ethiopia, “Behold, he has come out to make war against you,” he sent messengers again to Hezekiah, saying, 

10 “Say this to Hezekiah king of Judah, ‘Do not let your God on whom you rely deceive you by saying, “Jerusalem shall not be handed over to the king of Assyria.” 

11 Listen, you have heard what the Assyrian kings have done to all the lands, destroying them completely. So will you be spared? 

12 Did the gods of the nations whom my forefathers destroyed rescue them—Gozan and Haran [of Mesopotamia] and Rezeph and the people of Eden who were in Telassar? 

13 Where is the king of Hamath, the king of Arpad [of northern Syria], the king of the city of Sepharvaim, and of Hena and Ivvah?’”

Hezekiah’s Prayer

14 Hezekiah received the letter from the hand of the messengers and read it. Then he went up to the house (temple) of the Lord and spread it out before the Lord. 

15 Hezekiah prayed before the Lord and said, “O Lord, the God of Israel, who is enthroned above the cherubim [of the [b]ark in the temple], You are the God, You alone, of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You have made the heavens and the earth. 

16 O Lord, bend down Your ear and hear; Lord, open Your eyes and see; hear the [taunting] words of Sennacherib, which he has sent to taunt and defy the living God. 

17 It is true, Lord, that the Assyrian kings have devastated the nations and their lands 

18 and have thrown their gods into the fire, for they were not [real] gods but [only] the work of men’s hands, wood and stone. So they [could destroy them and] have destroyed them. 

19 Now, O Lord our God, please, save us from his hand so that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may know [without any doubt] that You alone, O Lord, are God.”

God’s Answer through Isaiah

20 Then Isaiah the son of Amoz sent word to Hezekiah, saying, “Thus says the Lord, the God of Israel: ‘I have heard your prayer to Me regarding Sennacherib king of Assyria.’ 

21 This is the word that the Lord has spoken against him:

‘The virgin daughter of Zion Has despised you and mocked you; The daughter of Jerusalem Has shaken her head behind you!

22 ‘Whom have you taunted and blasphemed? Against whom have you raised your voice, And haughtily lifted up your eyes? Against the Holy One of Israel!

23 ‘Through your messengers you have taunted and defied the Lord, And have said [boastfully], “With my many chariots I came up to the heights of the mountains, To the remotest parts of Lebanon; I cut down its tall cedar trees and its choicest cypress trees. I entered its most distant lodging, its densest forest.

24 “I dug wells and drank foreign waters, And with the sole of my feet I dried up All the rivers of [the Lower Nile of] Egypt.” 

25 ‘Have you not heard [asks the God of Israel]? Long ago I did it; From ancient times I planned it. Now I have brought it to pass, That you [king of Assyria] should [be My instrument to] turn fortified cities into ruinous heaps.

26 ‘Therefore their inhabitants were powerless, They were shattered [in spirit] and put to shame; They were like plants of the field, the green herb, As grass on the housetops is scorched before it is grown up.

27 ‘But I [the Lord] know your sitting down [O Sennacherib], Your going out, your coming in, And your raging against Me.

28 ‘Because of your raging against Me, And because your arrogance and complacency have come up to My ears, I will put My hook in your nose, And My bridle in your lips, And I will turn you back [to Assyria] by the way that you came. 

29 ‘Then this shall be the sign [of these things] to you [Hezekiah]: this year you will eat what grows of itself, in the second year what springs up voluntarily, and in the third year sow and reap, plant vineyards, and eat their fruit. 

30 The survivors who remain of the house of Judah will again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31 For a remnant will go forth from Jerusalem, and [a band of] survivors from Mount Zion. 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shall perform this.

32 ‘Therefore thus says the Lord concerning the king of Assyria: “He will not come to this city [Jerusalem] nor shoot an arrow there; nor will he come before it with a shield nor throw up a siege ramp against it. 

33 By the way that he came, by the same way he will return, and he will not come into this city,”’ declares the Lord. 

34 ‘For I will protect this city to save it, for My own sake and for My servant David’s sake.’”

35 Then it came to pass that night, that the [c]angel of the Lord went forth and struck down 185,000 [men] in the camp of the Assyrians; when the survivors got up early in the morning, behold, all [185,000] of them were dead. 

36 So Sennacherib king of Assyria [d]left and returned home, and lived at [e]Nineveh. 

37 It came about as he was worshiping in the house of Nisroch his god, that his sons Adrammelech and Sharezer killed him with a sword; and they escaped to the land of Ararat. And Esarhaddon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Footnotes

2 Kings 19:9 Heb Cush.

2 Kings 19:15 I.e. God’s symbolic throne.

2 Kings 19:35 See note Gen 16:7.

2 Kings 19:36 An account of his military campaign against Judah in 701 b.c. was recorded by Sennacherib on a hexagonal baked clay prism found in the ruins of his palace in Nineveh, in northern Iraq.

2 Kings 19:36 I.e. the capital city of Assy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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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에서 예루살렘의 큰 곤경을 읽었다. 예루살렘은 포위되고, 모욕과 위협을 받고, 놀라게 되고, 마침내는 앗수르 군대에게 막 넘어갈 참이었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예루살렘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맞이하는 기록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칼과 활로써가 아니라, 기도와 예언, 그리고 천사의 손에 의한 구원이었다.

1. 큰 근심 중에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냈다. 그의 기도를 바랐기 때문이다(1-5). 그리고 그에게서 평화의 대답을 받았다(6-7).

2.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항복하라는 경고를 편지로 써보냈다(8-13).

3. 그러자 히스기야는 매우 진실한 기도로써, 그 사정을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빌었다(14-19).

4.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구원을 보장한다(20-34).

5. 앗수르의 군대는 모두 천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산헤립은 자기 아들에게 살해된다(35-37). 그래서 하나님 자신은 영광을 받게 되었고 그 백성들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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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를 찾아간 히스기야(왕하 19:1-7)

랍사게의 말의 내용이 히스기야에게 전해지자, 그가 다음과 같이 했으리라고 기대할 것이다(랍사게도 그랬을 것이다). 즉 히스기야가 전쟁 자문회의를 소집하고, 조건부 항복을 하는 것이 최선의 일인지 아닌지를 논의했을 것이라고. 성이 포위되기 전에 그는 “방백들과 용사들로 더불어 의논하였다”(대하 32:3).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의 최대의 위로는, 자기가 그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이 있다는 점이다. 이때에 히스기야와 그의 하나님 사이에 일어난 일의 기록이 있다.

Ⅰ. 히스기야는 랍사게의 모독적인 언사가 하나님께 가한 치욕을 깊이 우려했다. 그가 그 말을 들었을 때―간접적으로 전해들었지만―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었다”고 했다(1절). 훌륭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어떤 불명예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위대한 하나님의 명예에 침해되는 일에 동조하더라도 그것이 자기들에게는 아무런 비방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왕의 옷이 너무 훌륭해서 찢어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욕을 당하고 자기의 예루살렘성이 존폐의 위기에 당했을 때에라도, 왕의 육체는 너무 훌륭해서 굴욕적인 굵은 베옷을 입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 바로 그런 것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감동을 받지 않은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셨다(사 22:12-14).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상(異像)의 골짜기에 분요와 환난이 있던 날이었다”(사 22:5). 이 말씀은 바로 이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왕은 굵은 베옷을 입었지만, 많은 그의 신하들은 부드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Ⅱ. 그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갔다.” 그것은 시편 저자의 본을 따른 것이다. 시편 저자는 그가 악한 자의 번성과 높아짐으로 탄식할 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고”, 그리고 거기서 “그들의 마지막을 보았다”(시 73:17).

그도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묵상하고 기도하였다. 그래서 그 동요는 지나가고 그의 정신의 안정은 돌아왔다. 그는 무슨 답변을 랍사게에게 할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에게 그 사실을 아뢰었을 뿐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대신하여 대답하소서”―허버트(Herbert). 여호와의 전에서 그는 휴식처와 피난처를 찾았다. 또 보물창고, 화약고, 회의실, 그리고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었다. 교회의 원수들이 매우 대담하고 위협적일 때, 교회의 친구들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호소하며 그들의 주장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요 또 의무이다.

Ⅲ. 그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품위 있는 사절을 보냈다. 그것은 그가 이사야를 크게 존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그의 기도를 요구했다(2-4절). 엘리야김과 셉나는 랍사게의 말을 들었던 자들 중의 두 사람으로서, 누구보다도 이사야에게 사건을 더 잘 알리고 감동시킬 수 있었다. 제사장들 중 연로한 자들은 환난의 때에 그 백성들을 위해 스스로 기도해야 한다(욜 2:17). 그러나 그들은 이사야의 기도를 받으러 가야 했다. 왜냐하면 이사야는 그 누구보다 더 잘 기도할 수 있었고, 하늘과 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절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갔다. 그것은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은 왕을 대표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1. 그들이 이사야에게 간 목적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4절). 즉 유다를 위해서였다. 열 지파(이스라엘)가 멸망한 지금, 유다는 야곱의 유일한 자손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위해서였다. 성벽이 있는 유다의 모든 성읍이 빼앗긴 지금으로서는, 예루살렘은 유일한 잔존 도성이었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우리가 환난을 당하고 있을 때에는, 우리의 친구들의 기도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것은 또한 마땅히 바라야 한다. 기도를 받기 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며, 기도를 영광되게 하고, 우리의 형제들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다.

(2) 우리가 타인에게 기도를 바라는 동안은 우리 자신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사람을 보내고 나서, 그 자신도 기도하려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갔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자에게,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특별히 부탁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선지자라.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창 20:7). 위대한 선지자는 위대한 중재자이다.

(4)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자, 즉 마음을 다 바쳐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을 이길 것이다.

(5) 하나님의 교회의 세력이 낮아져서, 소수의 친구들과 악한 자들만이 남았을 때는, “그 남은 자들을 위하여 우리가 기도를 드려야” 할 때이다.

2. 이사야는 두 가지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 받았다.

(1) 그들이 원수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3절). “그는 거만하고 건방지다. 지금은 책벌과 능욕의 날이다. 우리는 멸시를 받고 있다. 하나님도 수치를 당하고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은 환난의 날이다. 우리는 결코 그러한 왕과 왕국의 지배와 압제를 받은 적이 없다. 우리의 영혼은 오만한 자의 경멸로 차고 넘친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비난하는 것을 듣는 것은 우리의 뼈 속의 칼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하고 말한다. 또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구제할 방도와 이 치욕에서 벗어날 방도를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의 명분은 훌륭하다. 그리고 우리의 백성들은 신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수적으로 적에게 압도된다. 어린 아기가 출생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구원되어야 할 그 결정적인 시기이다. 원수에게 성공적으로 일격이 가해진다면, 우리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도다. 해산할 힘이 없도다. 여인이 진통으로 완전히 힘을 소비하면 해산할 기력을 잃어버리듯이, 우리의 처지가 바로 그런 슬픈 지경이다. 신속한 도움이 필요하도다(이것과 호세아 18장 13절을 비교해 보라). 우리는 멸망 직전에 있다. 만일 너희가 어떤 일이든 할 수 없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우리를 도우라.”

(2) 그들은 하나님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를 의지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나타나 주시기를 기다린다. 하나님께서 한 마디만 말씀하시면, 전세를 역전시킬 것이고, 쓰러져 가는 남은 자를 구원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꾸짖어만 준다면(즉 그들을 반증하기만 한다면. 4절)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 모독자가 죄를 깨닫도록 해 주시고 그를 당혹케 하신다면 만사는 잘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이 일을 하시리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랍사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난했으며”, 하나님을 귀먹고 벙어리인 우상들과 같은 수준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고 능히 생각할 수 있었다. 그 까닭은, 이 문제가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오, 하나님이여! 일어나서 주의 원통을 푸소서”(시 74:22).

그들은 이사야에게 말한다. “그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다. 그는 너의 것이다. 너는 그의 영광에 관여되어 있다. 그리고 너는 그의 은총에 관계되어 있다. 그는 랍사게의 망령된 말을 듣고 아신다. 그러므로 그 말을 듣고 꾸짖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그렇게 하길 바란다. 그의 앞에 그 사정을 아뢰는 너의 기도로 우리를 도우라.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만족할 것이다.”

Ⅳ.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전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멸망시켜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신다는 점을 알리려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많은 사람들이 하듯이(“내가 회복된 것인가?” 등등) 그 사건에 관해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무를 다하려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려고 사람을 이사야에게 보냈다. 그가 바랐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의무를 행하려는 그의 뜻에 보상하여 그 사건의 결과도 그에게 알려 주셨다(6-7절).

1. 하나님 자신이 그 사건과 관련되어 있었다. “너희는 나를 망령되게 하였다.”

2. 하나님은 대단히 낙심한 히스기야를 격려했다. “너희가 들은 말들로 인하여 두려워 말라.” 그 말들은 단순히 말에 지나지 않는다(비록 과장되고 신랄한 말들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말들은 바람에 불과하다.

3. 하나님은 랍사게가 히스기야를 놀라게 한 것보다 더 앗수르 왕을 놀라게 하리라고 약속했다. “나는 그에게 한 줄기 바람을 보내었다(그것은 앗수르의 군사를 살해할 역병을 내는 바람이다). 그리고 공포가 그를 사로잡아 그를 자기 나라로 몰아갈 것이며, 거기에서 죽음이 그를 맞을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이 짤막한 위협은 실행될 것이며, 그때에는 랍사게의 입에서 나온 무력한 모든 협박들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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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립의 2차 사절단(왕하 19:8-19)

랍사게는 메시지를 보내고, 아무 답변을 받지 못했다(그가 이 침묵을 승인으로 간주했는지 혹은 무시해 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앞에 있는 그의 군대들을 다른 장군들의 지휘에 맡기고, 자신은 또 다른 명령을 받고자 그의 왕을 만나러 갔다. 그는 앗수르 왕이 립나를 포위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립나는 유다를 배반한 성읍이었다(8:22). 그가 라기스를 탈취했는지 않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떤 이는 그가 라기스를 취하는 일이 실행 불가능함을 알고 떠나갔다고 생각한다(8절). 그러나 그도 아랍 사람들과 변경을 접하고 있는 구스 왕이 대군을 이끌고 그를 대항하여 나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놀랐다(9절). 이리하여 그는 아주 신속히 예루살렘을 얻고자 애썼다.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탈취하는 데는 필요 이상의 시간과 인원을 많이 희생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히스기야에게 순순히 예루살렘을 포기하라고 새로이 종용했다. 산헤립은 이전에 히스기야가 “당신이 내게 지우는 것을 내가 감당하리이다”라고 말했을 때에는 그를 퍽 다루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18:14). 그래서 그는 다시 히스기야가 놀라 항복하기를 바랐으나 헛일이었다.

Ⅰ. 산헤립은 히스기야로 예루살렘을 포기하도록 권고하기 위해, 그를 조롱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스런 편지를 보냈다. 그로서는 그들이 끝까지 버티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편지는 랍사게의 말과 동일한 취지였다. 그 안에는 새로운 것이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랍사게는 백성들에게 말했다.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18:29).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너희는 네 하나님에게 속지 말라”(10절). 그들의 도움을 구할 야곱의 하나님을 모신 사람들과 그의 희망이 여호와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에게 속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신에게 속을까 두려워한다.

산헤립은 히스기야를 놀라게 하며, 그의 닻에서 그를 몰아내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공적을 과장한다. 그가 무엇을 거만하게 뽐내는지 살펴보자.

1. 그는 땅을 정복했다고 했다(11절). “온 땅이 완전히 파괴되었도다. 그가 정복한 작은 언덕들이 큰 산에 이르기까지 부풀었도다.” 당시의 그는 구스의 온 땅도 정복하지 못했고, 구스의 왕 디르하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우리는 오만한 사람들이 자찬하는 가운데서는 으레 엄청난 과장법을 보게 된다.

2. 그는 신들을 정복했다고 했다. “정복된 각 민족에게는 저마다 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신들은 결코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다. 그 신들은 그들과 함께 넘어졌다. 그런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겠느냐?”

3. 그는 왕들을 정복했다고 했다(13절). 곧 “하맛 왕과 아르밧 왕”을 정복했다. 그가 군왕에 대해서 말하든 우상에 대해서 말하든, 그는 자기가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는 가공할 만한 인물이란 것이다. 그리고 “산 자들의 땅에 있는 용사들의 두려움”이었다는 것이다.

Ⅱ.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다른 한 편지, 곧 기도와 신앙의 편지 속에다 동봉했다. 그리고 그것을 왕 중의 왕에게 보냈다. 그는 곧 신들의 심판자이시다. 히스기야는 비록 그 편지의 수신인 성명이 자기에게 합당한 칭호를 붙이지 않았을 것이 뻔하지만, 그 편지를 거절할 정도로 오만하지는 않았다. 또 그가 그 편지를 받았을 때는, 그것을 읽지 않을 만큼 부주의하지도 않았다. 그가 그것을 읽고 났을 때는 똑같은 자극적인 말로 답장을 쓸 만큼 열정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성전에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 그 편지를 폈다”(14절). 그 편지를 하나님께 나타내 보이는 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하나님은 히스기야가 편지를 보이기 전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신다), 그로써 그가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원수가 입힌 상처를 악화시키기를 원치 않았고, 그것을 보다 더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내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오직 그러한 피해가 참 빛 안에 드러나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그의 의로운 심판에 의뢰했다. 또한 그리하여 그는 성전에 가 기도에 전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의무로 우리를 자극해 줄 온갖 도움이 필요하다.

히스기야가 이 편지에 대해서 했던 기도에 관하여 다음의 사실들을 생각할 수 있다.

1.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망령되이 했던(15절) 그 하나님을 경모하고, 그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그의 선택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를 “그룹들 사이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지상에 그의 영광이 거하는 선택된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헤립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스라엘만의 하나님”, 그리고 성전에 유폐된 하나님이 아니라, “온 땅의 하나님”이라고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하소서. 주는 절대이신 여호와시니이다. 땅의 모든 나라의 보편적 주시요, 공의로운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의 창조자이시니, 주는 만물의 절대적 소유주요, 지배자이십니다.”

2. 그는 산헤립의 오만과 불경성에 관하여 하나님께 호소한다(16절). “여호와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보소서. 여기에 그의 편지가 있나이다.” 히스기야는 자기만 욕을 먹었다면, 그것을 간과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체면이 손상된 분은 바로 살아 계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큰 이름을 위하여 무엇을 하시렵니까?”

3. 그는 산헤립이 이교도의 신들을 이긴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런 신들과 이스라엘 하나님을 구분한다(17-18절). 산헤립은 과연 “그 신들을 불에 던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신들은 그들 자신과 그 예배자들을 도울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산헤립이 그것들을 파괴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산헤립 자신은 몰랐지만 그가 그들을 파괴한 것은, 사실상 이스라엘 하나님의 공의와 질투심에 봉사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의 모든 신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 신들이 너무 강하여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속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이 손으로 만든 어떠한 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친히 만물을 지으셨다(시 115:3-4).

4.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산헤립을 격파하고, 그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한다(19절). “그러므로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만일 우리가 정복당하면, 다른 나라와 같이, 그들은 주를 정복당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께서 스스로 구별되듯이, 우리를 구별하소서. 그리하여 주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자존하시고 지고하신 하나님이시요, 그리고 주만이 유일하신 분임을 온 세상이 알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을 가장하는 모든 것은 헛되고 거짓됨을 알게 하소서.” 기도 중의 최고의 탄원 제목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드리는 탄원임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로 시작해서 “영광이 주께 있사옵나이다”로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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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된 산헤립의 몰락(왕하 19:20-34)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은혜롭고 풍부한 답변이 나와 있다. 히스기야가 보냈던 바로 그 사람의 손으로(6-7절) 다시 전달돼 온 메시지는 그의 기도에 충분한 응답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의 불변하는 사실로 그가 격려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으시다”는 사실 때문이다(히 6:18).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산헤립에 대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그에게 확인해 주셨다(20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고소하는 기도의 대상자들은 비참한 것이다. 왜냐하면 압박 당하는 자들이 압제자를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기 때문이다(출 22:23).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들으신다(시 20:6).

이 메시지는 두 가지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Ⅰ. 산헤립과 그의 군사는 혼란과 수치를 당한다. 그가 낮아지고 꺾여지리라고 예언되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산헤립의 말씨처럼 그에게 고상하게 말한다(사 10:5). “오, 앗수르인이여, 나의 진노의 막대기로다!” 이 메시지는 산헤립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의 결과로 인해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섭리자 하나님은 증인과 더불어 그에게 그것을 말하셨다. 아마 산헤립 자신의 마음이 이 사실을 자신에게 속삭여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당신의 분노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를 발하며 진노하시기도” 하신다(시 2:5).

산헤립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자로 표현되어 있다.

1. 예루살렘이 그를 경멸한다(21절). 그는 자기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처녀인 시온의 딸들의 두려움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고, 위협으로 그녀를 강제로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 있어서 그의 보호를 받는 처녀는 너를 대항하고, 너를 멸시하고, 너를 비웃어 경멸한다. 너의 무력한 협박은 조소거리에 지니지 않는다. 하늘에 앉으신 그가 너를 비웃으신다. 그러므로 그의 그늘에 거하는 자도 그같이 하느니라.”

하나님은 이 말로써 히스기야와 백성의 두려움을 진정시키려고 하였다. 육의 눈에는 원수가 방대하게 보였지만, 신앙의 눈에는 그들이 보잘것없이 보였다.

2. 하나님의 원수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비참하게 될 충분한 조건이 된다. 히스기야는 이 점을 역설했다. “여호와여! 그가 주를 비방하였나이다”(16절).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는 실로 그리했느니라. 나도 그것을 내 자신에 항거하는 것으로 생각했도다(22절): 네가 누구를 꾸짖었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아니냐? 그의 명예는 그에게 귀중한 것이요, 그는 그의 명예를 변호할 힘을 가졌느니라. 그러나 이교도의 신들은 그럴 능력이 없느니라.” “나를 노하게 하는 자는 반드시 벌을 받으리라”(Meno me impune lacesset).

3. 거만하고 자만심 강한 바보라고 표현되었다. 그는 크게 과장된 공허한 말을 지껄이고, 위협과 허세로써 여호와를 비방하며, 거짓 재능을 과시했다.

(1) 그는 자기의 공적을 분수 이상으로, 실제 이상으로 과장했다(23-24절). “너는 이런 저런 것을 말했다.” 이 사실은 그가 쓴 편지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거기에 쓰여진 내용을 알고 계시며, 다른 곳에서, 아마 그의 회의나 군사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말한 것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히스기야에게 알려 주셨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의 자랑을 주목하시고, 그것들을 언젠가는 헤아리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발견하여 낮출 것이다”(욥 40:11). 산헤립은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장수라고 생각했던가! 그는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전차를 몰아 가고, 숲과 강을 뚫고 달리며,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자기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그의 앞에서 견딜 수 없으며,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언덕도 높아서 오르지 못할 리 없겠고, 어떠한 나무도 그가 쓰러뜨릴 수 없을 만큼 강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강물도 말릴 수 없을 만큼 깊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치 하나의 신적인 권능을 가진 자처럼 행동했다.

(2) 그는 그 위대한 일을 한 영광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다(25-26절). 산헤립은, 그의 편지에서, 히스기야도 그 사실을 들었다는 점을 역설했다(11절). “너희가 앗수르 왕이 행한 일을 들었도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회신은 하나님이 옛날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 즉 홍해를 말리고,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가나안에 정착시킨 일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이것을 위하여 너희가 행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그리고 너희가 땅, 특히 유다 땅을 황량하게 한 일에 대하여는 너희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 즉 단순한 연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을 이룬 자는 바로 나다. 내가 너희에게 힘을 주었고, 너희에게 성공을 주었고, 현재의 너희가 되게 하였고, 너희를 일으켜 견고한 성읍을 황폐케 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악을 벌하였고 “그로 인하여 그 거민은 약세에 몰렸도다.” 그가 행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아래 된 일인데, 그가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과 대적하다니,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일인가! 산헤립의 허풍은 이사야 10장 13-14절에 상세히 설명되었다. “나의 손의 힘으로 내가 그것을 행했다. 그리고 나의 지혜로……”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느냐?” 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대답이다. 수레바퀴 위의 파리가, “내가 먼지를 피우는구나!” 하고 말하는 것과 손에 들린 칼이 “내가 하는 것을 보라!” 하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불합당한 말이다. 행해진 모든 일의 중심 동인(動因)이 하나님이시라면, 자랑이란 일체 부당한 것이다.

4. 그가 망령되게 말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견제와 견책을 받고 있다.

(1) 그의 모든 동작은 하나님의 인지(認知) 아래 있다(27절). “나는 너의 주거(住居)를 안다. 네가 비밀히 계획하고 도모하는 것, 들어오고 나가는 것, 전진과 후퇴, 나와 나의 백성에게 대한 너의 분노, 너의 열정의 동요, 네가 일으키는 잡음과 소요, 이 모든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적의 동태를 알기 원했던 히스기야가 알고 있는 사항 이상의 것이다. 하나님의 눈이 그를 끊임없이 감찰하신다면, 이것에 대하여 무슨 부족이 있을까?(대하 16:9)

(2) 그의 모든 동작은 하나님의 관할 아래 있다(28절). “거대한 바다 짐승 같은 너의 코에다 내가 갈고리를 꿰고 거대한 악어 같은 너희 입에다 재갈을 먹이겠다. 나는 너를 제어하고, 너를 다스리고, 내가 원하는 길로 돌이키고, 너를 바보와 같은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겠고 너의 목적을 좌절시키겠다(re infecta).”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원수들의 코에다 갈고리를 꿰고, 그 입에 재갈을 먹이고, 그들의 노(怒)를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봉사가 되게 하시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은,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이리하여 그 도도한 물결은 조용해질 것이다.”

Ⅱ.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에게 구원과 기쁨이 있을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표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과 화해하셨다는 표시이다. 또 그의 노(怒)가 사라졌다는 표시이다(사 12:1). 그것은 그들의 눈에 놀라움(표적이란 때로 이것을 의미한다)이요, 선의 표지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간직하셨던 보다 큰 자비의 보증이며, 모든 면에서 그들의 고통이 좋을 결말을 가져오리라는 증거였다.

1. 식량은 귀해지고 비쌌다. 그리고 식량 조달을 위해 그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땅의 소산은 앗수르 군대가 다 먹어버렸다(사 32:9-10 이하). 이유는 그들이 그땅에 거하며, 실제로 “양식을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신다면, 그들을 굶어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근으로 죽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그들은 칼을 피할 것이다. “너희는 이 해에 절로 자란 것을 먹으라. 그러면 너희는 그것을 풍족히 얻을 것이다. 앗수르 사람들이 너희가 뿌린 것을 수확했느냐? 너희는 뿌리지 않은 것을 수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해는 안식년이었다. 그때는 그땅이 쉼을 얻는다. 그래서 경작을 할 수 없다. 그러면 그들은 그 해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공급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씨와 노동을 절약할 것이며, 그 해에는 또 땅이 절로 내는 소출이 그들을 부양하며, 기경하는 사람이 있기 전 땅이 소출을 내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창 1:11).

2. 그 나라는 황폐되었고, 가정은 붕괴되고, 산산이 흩어졌고, 그리고 모든 것은 혼란되었다. 그러한 군대의 침략이 전국에 밀어닥쳤을 때는 달리 또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에 대해, “유다의 집을 피한 남은 자는” 다시 자기의 집에, 즉 본토에 정착되어,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고, 번영하리라는 약속을 받는다(30절).

그들의 번성함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라. 그것은 뿌리를 내리고 과실을 맺고, 정주하여, 자신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며, 그리고 손님을 대접한다고 했다. 영혼의 번성함도 그렇다. 그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다.

3. 성읍이 폐쇄되고, 아무도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시온과 이스라엘에는 남은 자들이 자유로이 나다닐 것이며 그들을 막거나 위협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31절). 도시나 시골 어디에나 큰 파괴가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도피한 남은 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받은 남은 자를 대표했다(로마서 9장 27-28절과 바로 이 사건을 말하는 이사야 10장 22-23절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스런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4. 앗수르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은 잠깐 사이에 포위되어 그들의 수중에 떨어질 초미지급(焦眉之急)의 위험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했던 그 포위에서 보호되리라고 약속되었다. 적군이 그 성읍 앞에 진을 쳤다 할지라도 결코 “그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그곳에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할 것이다(32-33절). 원수들은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서, 수없이 자기 일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 자신이 그 성을 보호하는 일을 맡으셨다(34절). 그러니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그 사람들과 장소가 안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명예와 진리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는 데 개입된다. 이것은 과연 위대한 일들이지만, 어떻게 실행될 것인가?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31절). 만군의 여호와이신 그는 모든 피조물을 그의 손짓으로 좌우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하실 수 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신다”고 했다(슥 1:14). 정숙한 처녀와 결혼한 남편이, 그 여자가 학대받는 것을 보면 참고 견디겠는가?(21절) “너희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런 큰 일들을 너희를 위하여 할 만큼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열심이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

(1) 그의 열심은 자기 명예를 위한 것이다(34절). “내가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할 터인데, 이는 내 이름을 영원히 빛내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는 그 이유들은 그 자신 안에서 나온다.

(2) 그의 열심은 자기의 진리를 위해서이다. “나는 내 종 다윗을 위하여 그 일을 행한다. 이것은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와 맺은 약속과 그와 맺은 언약, 즉 다윗에게 보장한 자비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구원은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때문에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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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 군대의 파멸(왕하 19:35-37)

때때로 예언이 성취되고 약속이 실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말이 나오자마자 곧 시행되었다.

Ⅰ. 앗수르의 군대는 완전히 패주했다. 히스기야에게 이 메시지를 보낸 다음날 밤에, 적들은 곧 그 성읍 앞에 진을 치고, 참호를 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밤에 적군의 주력 부대가 그 장소에서 천사에 의해서 살육되었다(35절). 히스기야는 그들을 역습하고 그들의 진영을 공격할 만한 병력을 유지하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칼과 활로 그들을 살육하지 않으셨다. 그는 그의 천사 곧 파멸시키는 천사를 한밤중에 보내어 그들을 강습케 했다. 그리고 그 파수병들은 그 천사를 볼 수도 저항할 수도 없었다. 앗수르의 군대가 엎어진 것은 “용사의 칼이나 어떤 평범한 인간의 칼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즉 전혀 어떤 인간의 칼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애굽의 처음 난 자들을 살해했던 그러한 천사의 칼에 의해서였다(사 31:8). 조세푸스(Josephus)는 그것이 역병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그 역병은 그들을 즉사케 했다. 살해된 숫자는 엄청나서 18만 5천 명이었다. 아마도 랍사게는 잔존자들 중에 끼었던 것 같다. 포위되었던 자들이 아침 새벽에 “일어났을 때는, 그들이 모두 죽은 시체들이 되었다.” 그들 중에 생존자는 거의 한 사람도 없었다. 어떤 이는 시편 76편이 이때에 씌어졌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보면, “마음이 강한 자는 탈취를 당하여, 자기의 잠” 즉 최후의 긴 잠을 “잤도다”라는 구절이 나온다(시 75:5).

거룩한 천사들의 힘과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라. 한 천사가 하룻밤에 그렇게 큰 살육을 할 수가 있었다. 인간들 중에서는 최대로 강한 자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연약한가를 보라. 그 누가 하나님에게 대항하여 완악하게 행하고도 성공하였는가?

왕의 교만과 망령됨은 그의 군대의 파멸로 징벌된다. 이 모든 생명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시온의 안전을 위해 희생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큰 집결이 이루어지기를 즉 “그들이 곡식단과 같이 타작 마당에 모아지기”를 기다리셨다고 미가 선지자는 말한다(미 4:12-13).

Ⅱ. 앗수르 왕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그가 아무리 교만스럽게 자랑했지만, 그후에는 자신을 대하기가 부끄럽게 되었고, 전쟁에 패하였고, 정복을 추구할 수도 없게 되었고, 자기의 병력(아마 이때가 최강성기였을 것이다)도 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자신이 그러한 타격을 받을까봐 두려워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니라”고 했다(36절). 즉 이 표현 방식은 그의 마음이 혼란에 빠져 심란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산헤립)의 두 친아들”의 손을 통하여 그를 살해하게 한 것은 그후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이었다.

1. 마땅히 보호할 의무가 있는 아들들이 자기들의 친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은 매우 악한 짓이다. 얼마나 극악한 무리들인가!

2.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셨다. 아버지가 자기를 지은 하나님께 거역할 때, 그 자식들이 또한 그 아버지를 거역하도록 허용되는 것은 정당한 귀결이다. 자기 자녀들이 불효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당신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것과, 그러므로 당신은 마땅히 예배되어야 할 분이심을 산헤립에게 충분히 보여주셨다. 그러나 그는 우상 섬기는 일을 계속 고집했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하나님께 대항하여 자기의 거짓 우상에게서 보호받기를 구했다. 그는 우상숭배가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하고 값비싼 대가를 치른 증거를 보고도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정당하게도 그의 피가 희생 제물의 피에 혼합된 것이다. 그를 살해한 아들들은 도피했고 아무도 그들을 추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그의 신하들도 그러한 오만한 자의 통치에 싫증을 느끼고, 그들 자신도 그를 제거하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패트릭(Patrick) 주교가 제의하는 바와 같이, 산헤립 왕이 자기 신에게 그 아들들을 산 제물로 바칠 것을 맹세했었음이 사실이라면, 그의 자식들의 행위는 그래도 변명의 여지가 있다. 그들이 아버지를 희생시킨 것은 그들 자신의 보존을 위해서였다.

산헤립의 계승자는 다른 한 아들 에살하돈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아버지와 같이 자기의 정복지를 확장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정복지들을 잘 활용할 생각을 가졌다.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17:24), 그가 제일 처음 한 일은, 앗수르의 식민들을 사마리에 이주하도록 한 것이었다. 에스라 4장 2절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을 그리로 데려온 자는 에살하돈이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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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왕하 제20장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바벨론에서 온 사자들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히스기야가 죽다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1.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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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zekiah’s Illness and Recovery 20 

1 In those days [when Sennacherib first invaded Judah] Hezekiah became deathly ill. The prophet Isaiah the son of Amoz came and said to him, “Thus says the Lord, ‘Set your house in order, for you shall die and not recover.’” 

2 Then Hezekiah turned his face to the wall and prayed to the Lord, saying, 

3 “Please, O Lord, remember now [with compassion] how I have walked before You in faithfulness and truth and with a whole heart [entirely devoted to You], and have done what is good in Your sight.” And Hezekiah wept bitterly. 

4 Before Isaiah had gone out of the middle courtyard,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saying, 

5 “Go back and tell Hezekiah the leader of My people, ‘Thus says the Lord, the God of David your father (ancestor): “I have heard your prayer, I have seen your tears. Behold, I am healing you; on the third day you shall go up to the house of the Lord. 

6 I will add fifteen years to your life and save you and this city [Jerusalem] from the hand of the king of Assyria; and I will protect this city for My own sake and for My servant David’s sake.”’” 

7 Then Isaiah said, “Bring a cake of figs. And they brought it and placed it on the [painful] inflammation, and he recovered.”

8 Hezekiah said to Isaiah, “What will be the sign that the Lord will [completely] heal me, and that I shall go up to the house of the Lord on the third day?” 

9 Isaiah said, “This will be the sign to you from the Lord, that He will do the thing that He has spoken: shall the shadow [indicating the time of day] go forward ten steps, or go backward ten steps?” 

10 Hezekiah answered, “It is easy for the shadow to go forward ten steps; no, but let the shadow turn backward ten steps.” 

11 So Isaiah the prophet called out to the Lord, and He brought the shadow on the steps ten steps backward by which it had gone down on the [a]sundial of Ahaz.

Hezekiah Shows Babylon His Treasures

12 At that time [b]Berodach-baladan a son of Baladan, king of Babylon, sent letters and a gift to Hezekiah, for he had heard that Hezekiah had been sick. 

13 Hezekiah listened to and welcomed them and [[c]foolishly] showed them all his treasure house—the silver and gold and spices and precious oil and his armory and everything that was found in his treasuries. There was nothing in his house (palace) nor in all his realm that Hezekiah did not show them. 

14 Then Isaiah the prophet came to King Hezekiah and said to him, “What did these men say [that would cause you to do this for them]? From where have they come to you?” Hezekiah said, “They have come from a far country, from Babylon.” 15 Isaiah said, “What have they seen in your house?” Hezekiah answered, “They have seen everything that is in my house (palace). There is nothing in my treasuries that I have not shown them.”

16 Then Isaiah said to Hezekiah, “Hear the word of the Lord. 

17 ‘Behold, the time is coming when everything that is in your house, and that your fathers have stored up until this day, will be carried to Babylon; nothing will be left,’ says the Lord. 

18 ‘And some of your sons (descendants) who will be born to you will be [d]taken away [as captives]; and they will become eunuchs in the palace of the king of Babylon.’” 

19 Then Hezekiah said to Isaiah, “The word of the Lord which you have spoken is good.” For he thought, “Is it not good, if [at least] there will be peace and security in my lifetime?”

20 The rest of the acts of Hezekiah and all his might, and how he made the [Siloam] pool and the aqueduct and brought water into the city,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Judah? 

21 Hezekiah slept with his fathers [in death], and Manasseh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Footnotes

2 Kings 20:11 Or stairway; lit steps.

2 Kings 20:12 Many mss and ancient versions read Merodach-baladan; cf Is 39:1.

2 Kings 20:13 Hezekiah was showing off his wealth to the Babylonians, in disregard of the mercy God had just granted him.

 

2 Kings 20:18 Isaiah predicted the Babylonian captivity about a hundred and fifteen years before it occur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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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스기야의 병. 그 병에서의 회복. 이것은 그의 기도의 응답이요, 약속의 이행이다. 건강 회복을 위한 한 방편이 사용되고, 하나의 표징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확증된다(1-11).

2. 히스기야의 죄와 그것으로부터의 회복(12-19).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이사야는 그에게 보내어진 하나님의 사자(使者)였다.

3. 그의 통치의 종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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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기도(왕하 20:1-11)

열왕기를 쓴 역사가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산헤립이 삶의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파멸되는 사건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가운데서 기도한 히스기야가 구원받은 사건을 보여준다. 산헤립의 생애는 단축되었고, 히스기야의 생애는 연장되었다.

Ⅰ.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 “그날에” 즉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바로 그 해에 있었던 일이다. 왜냐하면 히스기야는 모두 29년을 재위했는데, 15년을 더 살았으므로, 이 해는 그의 재위 14년째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18:13). 어떤 이는, 앗수르 군대가 그 성읍을 포위하고 있거나 혹은 포위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6절) “내가 그 성읍을 보호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후에 반복되었다. 즉 위험이 극도로 임박하게 되었을 때 그 약속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19:34). 다른 이들은 생각하기를, 산헤립의 패망 직후의 일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평안은 불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원수의 군대를 이기고 한창 승리하는 중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고, 죽음의 굴레 아래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떨리는 마음으로 기뻐해야 한다.

종기 혹은 역병에 대해 읽을 수 있기 때문에(7절), 히스기야는 역병에 걸렸던 것 같다. 앗수르 사람들을 죽이던 바로 그 질병이 그에게 침입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서 역병을 취하셔서 그의 원수들에게 주셨다. 위대함이나 선함도 쓰리고 치명적인 질병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줄 수는 없다. 어느 누구보다 하늘의 은혜를 입은 히스기야도 병들어 죽게 된다. 그것도 40세 이하의 한창 때에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까지도 그만한 나이 또는 2-3년 어렸을 적에 죽었기 때문에, 이 병이 자기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히스기야는 더욱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 죽음이 있도다.”

Ⅱ. 그에게는 자기의 죽음에 대해 준비하라는 경고가 주어졌다. 그 경고는 이사야를 통해 전달되었다. 앞장에서는 이사야가 두 번씩이나 히스기야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로 언급되었다. 우리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 외에 다른 것을 전해 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만족하든 혹은 불만족하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선지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그의 병은 죽을 병이다. 그리고 그가 자비의 기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면 분명히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고 말했다.

2. 그러므로 그는 아주 신속히 죽음을 맞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너는 집을 처치하라”고 말씀했다. 이런 일은 우리가 건강할 때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우리가 병들었을 때에 재촉을 받는다. 참회하는 새로운 행위와 신앙과 또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써 마음을 안정시키라. 그리고 이 세상과 즐거이 작별하고 다른 세상을 맞이하라. 그리고 만일 미리 해놓지 못했다면(이것이 최선의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너의 집을 정리하라. 너의 뜻을 정하라. 너의 재산을 정리하라.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로 너의 일들을 정리하라. 이는 너희 뒤에 올 자들의 편안함을 위해서이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그의 왕국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다만 그의 집에 대해서만 말한다. 다윗도, 선지자의 자격을 가지고, 자기를 이어 다스릴 자를 지명할 권위를 가졌지만, 다른 왕들은 자기 왕관을 그들의 소유물이나 재산처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었다.

Ⅲ. 이때 그는 기도하였다. “그는 여호와께 기도하였다”고 했다(2절). 병든 자가 있는가? 기도하게 하라. 그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또 그 자신도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하라. 히스기야는 앞장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지 않으며 신앙의 기도는 평안의 응답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을 찾을” 것이다. 기도가 응답되는 행복한 경험을 하면, 기도를 계속할 수 있는 약속과 용기를 얻게 된다. 그는 마음속으로 죽음의 선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운명이 역전될 수 있다면, 그것은 기도로써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려고 하시면, 그는 “이 일을 위해서, 간구하게 할 것이다”(겔 36:37). 우리가 만일 구하지 않거나 혹은 잘못 구한다면 얻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 선고가 역전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기도는 역시 죽음에 대한 최선의 준비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로써 하나님의 은총과 힘을 얻어 우리의 생을 잘 마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할 수 있다.

1. 이 기도자의 주위 형편을 살펴보자.

(1) 그는 침상에 누워서 “벽으로 얼굴을 향했다.” 아마 은밀히 기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자기 골방으로 물러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 그의 주위에 있는 무리들을 최대한으로 피했다. 우리는 우리가 은밀히 기도하거나 경의와 엄숙한 형식을 갖추어 예배하고 싶은데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그렇다고 기도나 예배를 빠뜨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서 기도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 법이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는 성전을 향해 얼굴을 돌렸고, 그것은 그가 기도를 하려고 성전에 올라가기를 얼마나 원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19:1, 14). 그는 할 수 있다면 성전 안에서나 그곳을 향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언제나 그를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리고 어떤 예배도 “그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2) 그는 “심히 울었다.” 이 사실을 어떤 이는 그가 죽기 싫어한 것이라고 추단한다. 영과 육의 분리를 다소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나 신약성서의 성도들과는 달리, 구약성서의 성도들에게는 저 세상이 음울하게만 보였다. 그러므로 이 세상 떠나기를 원치 않았다 할지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경우에는 독특한 사정이 있었다. 즉 그는 한창 활동하고 있었고, 훌륭한 개혁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죽는다면 그 사업이 실패로 끝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또 어떤 이의 생각과 같이, 만일 이 사건이 앗수르 군의 격퇴에 앞서 있었다면, 그는 죽기를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왕국이 멸망 받을 위험의 직전에 있었고, 그때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를 이은 므낫세는 그후 3년이 지나서 태어났다. 만일 그가 자식 없이 죽었다면 그의 왕국의 평화와 다윗과의 언약은 위태롭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그것은 그의 안타까움을 표하는 눈물이며, 그의 기도 속에 나타난 간절한 애착의 표현에 불과했던 것 같다. 야곱도 눈물로 간구했다. 우리의 복되신 구주께서도 기꺼이 죽으려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그리스도)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물로 크게 부르짖었다(히 5:7).

히스기야의 기도로 그의 눈물을 해석하자. “그” 기도 속에는, 속박이나 고통을 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란 일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2. 기도의 내용을 생각해 보자. “여호와여! 내가 진실로 주 앞에 행한 것을 기억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생명을 보존하여 나로 그 사업을 계속하게 하시든가, 혹은 나의 일이 마치면 주께서 이와 같이 행한 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그 영광스런 곳으로 나를 영접하소서.” 여기에서는 다음 사실들을 살펴 볼 수 있다.

(1) 히스기야의 경건이 표현되어 있다. 그는 세상에서 정직한 의도를 가지고(“나는 주 앞에서, 마치 주의 눈 아래에서, 그리고 언제나 주를 바라보고 행하였나이다”), 올바른 원리에 입각하여(“진실로 그리고 진심으로”), 그리고 의로운 법칙에 따라 생활했다― “나는 주 보시기에 선한 것을 행하였나이다.”

(2)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었다. 그 사실이 그의 병상을 편케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성실하게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사실을 우리의 양심이 증거해 준다면, 그것은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용기와 기쁨을 줄 것이다(고후 1:12).

(3) 그는 그 사실을 하나님께 겸손히 아뢰었다. “여호와여! 이제 그것을 기억하소서.”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상기시켜 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며, 만물을 알고 계신다). 혹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 줄 책임이 하나님께 있어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요구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한 것도 아니다(자비와 은총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 인해서만 바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언약의 조건으로서의 성실을 내세울 수 있다. 즉 “그것은 주의 손으로 친히 하신 역사이옵니다. 여호와여! 그것을 인정하소서”라고. 히스기야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지 않았다. “여호와여! 나를 용서하소서. 혹은 여호와여! 나를 취하소서. 그리하여 주의 뜻을 이루소서.” 오히려 그는 “여호와여! 나를 기억하소서.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나를 주의 것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Ⅳ.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이 기도에 즉시 응답하셨다. 그 선지자가 궁정 가운데에도 이르기 전에, 히스기야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가지고 가라는 전갈을 받았다(4-5절). 즉 그가 회복될 것을 알릴 메시지였다. 하나님께는 “예” 해 놓고 “아니오” 하는 것이 없다. 즉 그가 말한 것을 다시 취소하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해서는―그 기도는 하나님이 예지했던 바요, 하나님 자신의 영이 그로 하여금 그럴 마음을 주셨던 기도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때에는 하려 하지 않으셨을 일을 히스기야를 위해 하셨다. 하나님은 여기서 히스기야를 “내 백성의 주권자”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잠시 동안 연장시킨다는 사실을 뜻한다. 왜냐하면, 전시에는 백성들이 그러한 주권자를 살려둘 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셨다. 이것은, 그가 다윗과 맺은 언약 관계 때문에, 그리고 그가 항상 다윗을 위하여 한 등불을 임명하겠다고 한 약속 때문에 그를 살리고자 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이 응답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생각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주시하셨고, 그 메시지에다가 그 기도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영광스럽게 하신 것이다. 그는 메시지에서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고, 내가 너의 눈물을 보았도다”라고 하셨다. 기도 생활을 많이 하고, 기도를 특별히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특별히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다.

2. 하나님은 그가 기도한 것 이상을 들어주셨다. 그는 다만 하나님이 자기의 성실을 기억해 주시기를 빌었지만, 하나님은 다음의 것들을 약속하셨다.

(1) 그를 병에서 일으키시겠다는 약속이다. “내가 너를 낫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질병도 하나님이 부리는 종이다. 그들은 그가 보내는 곳으로 가며, 또 그가 소환할 때 온다(마 8:8-9). “너를 치료한 자는 나 여호와니라”(출 15:26).

(2) 그가 감사 기도를 드리기 위해 “3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만큼 급속히 건강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마음을 아시되, 그가 얼마나 열렬히 하나님의 전에 거하기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영예가 머물렀던 그곳을 얼마나 간절히 사모하는지를 아신다. 그리고 그가 회복되면, 즉시 공적 규례에 참여하러 가기 원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병들었을 때는 자기 얼굴을 성전 쪽으로 돌렸고, 그가 회복되었을 때는 성전으로 발걸음을 향하기 원했던 것이다. 다른 아무것도 그를 그보다 더 즐겁게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영혼을 소생케 하소서. 그러면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리이다”라고 하나님께 약속한다. 그리스도께서 고쳐 주신 그 사람도 그후 곧 “성전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요 5:14).

(3) 그의 생명을 15년을 더 연장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렇다고 그가 노인이 되기까지 살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14년 혹은 15년이 연장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살려고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그의 차용기간이 갱신되었다. 그는 그 기간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가 얼마나 오래 살리라는 것을 미리 예고 받는 사람은 일찍이 아무도 없었다. 틀림없이 이 선한 사람은 그 예고를 잘 선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롭게도 우리에게 우리의 생애 기간을 모르게 하셨으니, 그것은 우리로 언제나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4)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에게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신다(6절). 히스기야의 마음은 자신의 건강 회복에만 집중되었으므로, 그 약속이 여기서 반복된다. 만일 이 사건이 포위 공격이 중지된 후에 있었던 일이라면, 산헤립의 재규합을 두려워하는 공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 내가 이 성을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신다.

Ⅴ. 그의 회복을 위해 사용되었던 처방을 보자(7절). 이사야는 그의 의사였다. 그는 외과적 처방을 지시했다. 매우 값싸고 쉬운 일을 시켰다. 즉 “그 종처에 무화과 반죽을 놓으라. 그리하면 그 종처가 곪아 머리까지 퍼졌다가, 그 길로 사라지게 되리라”고 했다. 이것은 그 치료에 무엇인가를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질병이 절정에 달했다가 갑작스레 멈추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치료는 하나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여기서 다음 사실들을 주의하자.

1. 우리가 병들었을 때, 우리 몸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시험하는 것이 된다.

2. 평범하고 일상적인 치료약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시어, 은혜롭게도 그러한 많은 것들이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은 축복이 되며 또 효력이 있다.

Ⅵ. 그의 신앙을 격려하는 표적이 주어졌다.

1. 히스기야는 한 표적을 요구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대한 어떤 불신에서거나 반신반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약속된 내용이 지극히 위대한 일이므로 어떤 확인이 필요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며, 또한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일은 하나님께 늘 있어 왔던 일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께 표적 구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얼마나 노했었던가를 기억하고 있었다(사 8:10-12). 히스기야는, 그가 심판의 보좌에나 성문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될 그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고 물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는 “시온의 딸의 문들에서” 자기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건강이 회복되기를 원했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 산다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

2. 해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혹은 뒤로 물러갈 것인가 하는 것은 그가 선택해야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보여주는 표적이었다. 그가 그 두 가지 중에서 더 힘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했다 할지라도, 역시 그 표적은 그의 신앙을 더욱 확고히 해 주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선지자의 말은 아마 이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사 45:11). 태양의 변경 각도는 10도였고, 그 제안이 있었던 때는 정오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해가 아침 7시에 그 자리에서 뒤로 물러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저녁 5시에 그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였다.

3. 그는 태양이 10도 뒤로 물러가기를 겸손히 원했다. 왜냐하면 어느 것이든, 큰 기적일지라도 태양이 앞으로 나가는 것은 자연스런 방향이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더 기이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또 히스기야가 “소년 때를 회복”하고(욥 33:25), 그의 생명의 날이 연장되는 것이 더 의미 있기 때문이었다. 그 표적은 이사야의 기도에 따라서 이루어졌다(11절). 이사야는 하나님의 특별한 허락과 명령을 받아 “여호와께 간구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태양을 10도 물러가게 하셨다. 그리고 그 사건은 아하스의 일영표 위의 그림자가 뒤로 물러감으로써 히스기야에게도(그 표적이 그를 위해 의도되었으므로) 보였다. 아마 침실 창문으로 그가 이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현상이 다른 모든 일영표 위에서도, 심지어 바벨론에서도(대하 32:31) 관찰되었다. 이 태양의 역행 운동이 점진적으로 있었는지 혹은 급작스레 일어났는지, 또 앞으로 나아갈 때와 똑같은 속도로 뒤로 물러가서 하루를 평소보다 열 시간이나 더 길게 했는지, 혹은 그것이 갑자기 뒤로 물러갔다가 잠깐 동안 계속된 뒤에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게 되어서 천체의 상태에는 전혀 변경이 없었는지(박식한 학자 패트릭 주교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경이로운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을 땅에서는 물론 하늘에서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대해 가지는 관심과, 자기의 선택받은 백성들에 대해 품고 계신 큰사랑을 나타낸 것이다. 이교도들의 가장 그럴 듯한 우상은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로써 그것은 가장 터무니없는 허위요 모순이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왜냐하면 이로써 그들의 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약을 받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도수의 노래”(Songs of degrees: KJV에는 이렇게 표제가 붙어 있다―역주) 열다섯 편은(시 120편 이하) 태양이 뒤로 물러갈 때의 일영표 위에 변경된 도수와 히스기야의 생명이 15년 간 연장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수금으로(사 38:20) 노래하도록 히스기야가 선정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이트푸트는 이들 시편들 중의 많은 부분이 이스라엘의 고통과 구원, 그리고 히스기야의 질병과 회복을 의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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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경건과 죽음(왕하 20:12-21)

여기에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Ⅰ. 바벨론 왕의 한 신이 히스기야에게 와서 그의 회복을 축하했다(12절). 이때까지 바벨론의 왕들은 앗수르 왕들의 부속국의 대리자들에 불과했고, 니느웨가 그 왕성이었다. 우리는 바벨론이 앗수르 왕에게 예속된 사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17:24). 그러나 바벨론 왕은 자립하기 시작했고, 점점 사태가 바뀌면서 앗수르가 바벨론 왕에게 예속되기까지 되었다. 이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를 칭송하고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사신을 보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 첫째는 종교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바벨론 사람들은 태양을 섬겼다. 그런데 그들의 신이 히스기야를 위해 뒤로 물러가 줌으로써 히스기야에게 어떤 명예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도 또한 그를 명예롭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늘의 총애를 입은 자들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2. 둘째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만일 바벨론 왕이 앗수르 왕에 대한 반란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히스기야를 자기편으로 끌어넣는 것이 정책상 유리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하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여, 그리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앗수르 왕에게 치명상을 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앗수르 군대가 약화된 것은, 히스기야와 그의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과 그렇게 특별한 관계를 가진 자보다 더 유력하고 가치 있는 동맹자를 만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사신과 편지와 예물을 가지고 최대의 존경을 표하여 히스기야를 알현했다.

Ⅱ. 히스기야는 그 사절단을 친절히 환대했다(13절). 그들에게 정중하고 또 사절들에게 마땅한 경의로써 영접하는 것은 히스기야가 해야 할 의무였다. 그러나 그는 도에 지나쳤고, 너무 정중하여 실수를 범했다.

1. 그는 그들에게 지나친 호의를 보였다. 그는 “그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이었지만, 그는 그들과 친밀하게 되었고, 그들의 주인인 왕과 동맹을 맺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을 모두 들어주었다. 그는 정도 이상으로 개방적이고 후대했다.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그가 이방의 군주와 동맹을 맺으려, 혹은 그의 호평을 받으려고 그렇게 열성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렇게 고귀한 은혜를 베풀어주었고, 본인은 그것으로 그렇게 즐거워했었는데, 이 사절이 무슨 영예를 그에게 더해 주겠는가?

2. 그는 지나치게 호의를 보여 그들에게 자기 궁전과 국고와 무기고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서 그들의 임금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즉 히스기야가 실제로 얼마나 위대한 왕이며 그들의 임금이 그에게 어떤 명예를 보내야 하는지를 보고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들에게 성전과 율법책과 예배의식을 보여주었다는 말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는 그들을 참 종교로 개종시켰을지도 모르며, 그때야말로 그가 그런 행위를 할 가장 적절한 기회였었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는 그들을 모욕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저택의 값진 가구와 귀중품이 든 곳간과 앗수르 왕이 금고를 비운 이래로 그가 축적한 부, 곧 그의 “금은과 향품”을 보여주었다. 그는 직접 관리들을 시켜서 자기가 가진 모든 값나가는 것들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이야 무슨 해가 있겠는가? 한 나라의 부와 보물들을 손님에게 보여주는 것, 즉 우리의 친구에게 우리의 집과 가구와 정원과 마구간과 그리고 도서관들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후하고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박수갈채를 받기 위해서 하거나,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의 교만으로 그런 짓을 한다면, 그것은 히스기야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죄가 된다.

Ⅲ. 이 문제로 히스기야는 문책을 받게 된다(14-15절). 종종 위안자였던 이사야가 지금은 그의 견책자가 되었다. 복되신 성령께서도 두 가지 일을 하신다(요 16:7-8). 경우에 따라서는 사역자들에게도 양면이 있어야 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다. 그러므로 그가 권위를 가진 자로 여겨 줄 것을 히스기야에게 요구했다. 그는 “이들은 누군가?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들의 직업은 무엇인가?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히스기야는(왜 당신이 관여하여 이 일에 대하여 내게 묻느냐고 말하지 않고) 그 심문에 응했을 뿐만 아니라, 솔직한 고백을 했다. “나의 내탕고(內帑庫)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16절)라고 대답했다. 왜 그는 그때 그들을 이사야에게 데려오지 않았는가? 왜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가장 귀중한 보물인 이사야를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바로 그의 기도와 예언으로 그 모든 경이가 일어났으니, 그 사절단은 그러한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느냐고 묻게 되었을 것이 아닌가? 아마 히스기야는 자기가 곤경에 처해 있었을 때와 똑같은 가치를 지금도 이사야에게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일 먼저 이들 사절들을 이사야에게 데려옴으로써, 자기가 이사야를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더라면, 잘못된 처사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Ⅳ. 그의 교만과 허영, 그리고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 그가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던 사실 때문에 그에게는 선고가 내려졌다. 그것도 그가 거룩한 일을 깊이 체험한지 불과 얼마 안 되는 때에 속된 일에 빠졌던 것이다. 그 선고는 다음과 같다(17-18절).

1. 즉 그가 그렇게 자랑한 보물은 앞으로 약탈물이 될 것이며, 그의 가정도 모두 약탈당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믿고, 우리의 자랑거리로 삼는 것을 앗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처사이다.

2. 그가 동맹을 맺고자 그토록 호의를 보였던 그 바벨론 왕이 그들을 포로로 잡아가는 원수가 되리라고 했다. 히스기야가 이러한 심판을 초래하게 된 것은 이 죄 때문만은 아니다. 므낫세의 죄, 그의 우상숭배, 그리고 살인이 이 재앙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에서야 히스기야에게 예언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교만과 그가 바벨론 왕에 대해 가졌던 가치는 어리석다는 것을 알려주고, 또 그러한 자기를 부끄러워하게 만든 것이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의 왕성을 도와 앗수르 왕의 엄청난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에 기꺼이 협력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가슴에 품고 있는 뱀이 머지 않아 자기의 가슴을 쏠 것이며, 그의 왕손들이 바벨론 왕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그 예언은 성취되었다. 단 1:1 이하).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히스기야에게 가장 큰 굴욕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다. 바벨론을 좋아하는 자들은 바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에게서 떠나오는” 자들이 지혜롭고 복되다(계 8:4).

Ⅴ. 이 선고에 대한 히스기야의 겸손하고 참을성 있는 복종을 보자(19절). 그가 어떻게 이 선고에 스스로 복종하는지 살펴보라.

1. 그는 이러한 진리를 말하면서 그것을 수긍한다. “여호와의 말씀은 선하시다. 심지어 이 위협적인 말조차 선하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말씀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씀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그는 선한 사람들에게 아무 피해도 의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하다. 즉 그는 그것에서 선을 가져오며, 그것을 미리 말씀해 주심으로써 나에게 선을 베풀었다.” 우리는 모든 섭리에 대해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즉 모든 섭리는 선하고, 선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이다.

2. 그는 그 말씀 속에 선한 것이 있음을 알았다. 즉 그가 그러한 재앙이 올 때까지 살아서 거기에 참여하게 되지 않을뿐더러, 그 재앙을 목격할 때까지 살지도 않으리라는 점이었다. 그는 악을 가장 선용한 자이다. 즉 “그것은 선하지 않은가?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선하다. 그리고 내가 받기에는 분에 넘치도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주의하자.

(1)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질책을 받을 때, 그 질책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선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들의 불의에 대한 징계를 인정한다. 히스기야가 그랬다. 그리고 이것으로써 “그가 진정으로 자기 마음의 교만에 대하여 겸손하게” 되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2) 우리가 불행한 섭리 아래 있거나 혹은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어두운 전망을 예상하고 있을 때에도 언제든지, 우리는 우리에게 “불리한” 것은 물론 “유리한” 것도 식별해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을 영예롭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인내로써 우리의 평온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3) 공적인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시대에 진리와 평화가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요, 또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①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만일 우리에게 평화와 진리가 있다면, 즉 우리가 참된 신앙을 고백하고 있고, 그 신앙을 간직하고 있고, 또 우리에게 성경과 사역자들이 있고, 또 그들을 평화로이 향유할 수 있고, 전쟁이나 핍박의 경보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만 않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② 우리가 죽은 다음 어떤 곤경이 닥치더라도, 우리 시대에라도 만사가 잘 된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후손들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즉 재앙을 예견한다는 것은 하나의 고통이다. 그러나 심판의 연기는 일반적으로 큰 은혜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가 평안히 죽을 때까지 심판이 연기되는 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다. 왜냐하면 자비는 집안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그 심판을 견딜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심판이 오기 전에 안전히 하늘로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좋게 생각해야 한다.

Ⅵ. 마지막으로, 히스기야의 생애와 그에 대한 이야기의 결말이 나와 있다(20-21절). 역대하 29-32장에는 열왕기하에서보다 히스기야의 개혁 사업에 대해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일반 연대기에는, 그의 세력과 그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한 훌륭한 공적들, 특히 그가 파이프를 통해 그 도시에 물을 끌어들인 사업에 대한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물이 풍부하여 물을 얻으려고 싸우지 않으며, 물을 길을 때에 궁수들의 소란으로 위협을 받지 않으며, 우리 주변에서 편안히 물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물의 부족은 큰 재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역사가(성경 저자)는 그를 “그의 열조와 함께 잠들게” 하고, 아주 고약한 아들을 그의 왕좌에 대신 들어서게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은총을 물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악한 아하스는 경건한 아비의 아들이고, 경건한 아들의 아비였다. 선한 통치자―분명 그랬다―가 있는 동안에도 개혁되지 않던 그 나라는 마침내 황폐해지고, 악한 통치자에 의해 멸망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선한 통치자가 개혁을 시도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멸절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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