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0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33.기름부음의 관유_향단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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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시133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관유...몰약(JC의 대속적죽음) --육계(죽으심의효능 증강/강심제)--창포(JC부활생명)--계피(부활의 효능 증강/방충..뱀제거)==>+감람유((HS) =관유=그영(JC안에서 모든 과정 거치신 복합적인 영)...체험된 JC를 살기 = 관유/복합적감람유 산출(JC를 사는 것..감람유안에 몰약-육계-창포-계피가 녹아듬) + 포도주산출(JC를 위해 죽는것..그리스도의 확대/재생산)
@분향단의 향....소합향(식물생명...눈물방울)--나감향(동물생명..일종의 조개껍질로 이루어져 바스라질때 발향)-풍자향(새생명의 풍성-비옥함...번성번영,창대) --유향(보스웰리아...중보-치유/방충/뱀제거,해독)--소금(영원불변)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야하드) 동거함이(야샤브) 어찌 그리 선하고(토브) 아름다운고(나임)

2.  머리에(로쉬) 있는 보배로운(토브) 기름이(셰멘) 수염(자칸)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야라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베라카) 명령하셨나니(차와) 곧 영생이로다(올람+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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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시133

1.  {A Song of Ascents, of David.} Behold, how good and how pleasant it is For brothers to dwell together in unity!

2.  It is like the precious oil upon the head, Coming down upon the beard, [Even] Aaron's beard, Coming down upon the edge of his robes.

3.  It is like the dew of Hermon, Coming down upon the mountains of Zion; For there the LORD commanded the blessing-- life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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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편은 형제의 연합과 사랑에 대한 간략한 찬사다. 만일 우리가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의 슬픔을 보지 않았다면, 그런 연합과 사랑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을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설득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편을 지파들 간의 연합이 이루어져 만장일치로 다윗을 왕으로 추대했을 때 그가 기록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시편은 크건 작건, 세속적이건 거룩하건간에 모든 사회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노래다.

1. 형제 사랑의 행복에 대한 교리(1).

2. 두 가지 비유로 나타난 그 교리의 설명(2-3).

3. 그것에 대한 좋은 이유가 그 증거로 나타나 있다(3).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할 때에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거룩한 사랑을 일으키도록 적용하는 것을 과제로 하고 있다. 이 시편의 내용은 성경 중에서 짧지만, 매우 적당한 것이다. 그것은 “성도들의 교제의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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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사랑(시 133:1-3)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Ⅰ. 권한 것이 무엇인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다. 서로 투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탐내지 아니하며, 각자 상호 친애로써 즐거워하고, 상호 봉사해 각자의 복지를 촉진하는 것이다. 

때때로 평화를 보존하기 가장 좋은 방편으로써 형제가 떨어져 서로 멀리 사는 것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실로 그것이 반목과 질시를 억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창 13:9). 그러나 선하고 즐거운 것은 “형제가 동거하는 것이요”, (어떤 이들이 해석하는 바에 의하면) “연합하여 함께 거하며, 하나가 되어 동거하는 것”이다. 

한 마음과 한 영혼과 하나의 관심을 갖고서 동거함이 선하며, 아름답다. 다윗은 많은 아내에게서 낳은 많은 아이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이 시편을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일에 참여토록 하기 위해 기록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 가르침을 이행했다면 그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많은 불행은 행복하게 억제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사사들의 통치기간에 오랫동안 서로 관심을 달리 했다. 그것이 자주 나쁜 결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하나의 공동 수뇌를 중심으로 연합되었음과 그것이 얼마나 그들의 이익을 위하는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특히 법궤가 정착되고, 국가적인 예배를 위한 그들의 집결지를 거기에 두며, 그들의 연합의 중심지가 정해진 이후로 그 연합은 이루어졌다. 이제 그들은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Ⅱ. 어떻게 찬양되었는가?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것은 그 자체로 선하며,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며, 하늘과 땅의 해후가 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며, 우리의 영광과 위로에 유익하다. 그것은 하나님과 모든 선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이며, 즐거워함이 된다. 그것은 이와 같이 연합해 살아가는 자들에게 끊임없는 기쁨을 가져다준다. “보라, 어찌 그리 선한고!” 

우리는 그 선함과 아름다움을 생각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드문 일이므로 감탄할 만하다.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 큰 선함과 아름다움, 이땅에 하늘에 속한 것이 있음을 보고 경탄하라! 그것이 우리 마음을 끄는 고운 것임을 보라. 그것이 있는 곳에서, 거룩한 경쟁심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훌륭한 것임을 보라.

Ⅲ. 그 아름다움은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1. 그것은 강하게 향기를 내며, 그 향취를 발산하며, 방관자의 큰 기쁨에 이르는 거룩하게 부은 기름과 같이 우아하다. 그것이 아론의 머리에 흐르고, 그 후손 대제사장에게 흐를 때 그것은 풍부하게 얼굴에 흘러내리고, 옷깃이나 의복의 접합점까지 흘러내린다(2절).

(1) 이 기름은 거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제 사랑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서 난 자”들을 사랑해야 한다(요일 5:1).

(2) 이 기름은 하나님의 처방에 의해 이루어진 합성물이다. 하나님은 그 성분과 양을 정하셨다. 이와 같이 신앙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침 받는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그가 활동하시는 은총이다.

(3) 그것은 매우 진귀하다. 그와 같은 것은 일상의 사용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와 같이 거룩한 사랑은 하나님이 보실 때 높은 가치가 있다. 실로 하나님의 시야에 있는 진귀한 것이다.

(4) 아론 자신과 그를 둘러싼 모든 자에게 고마운 것이었다. 거룩한 사랑도 그러하다. 그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기름과 향기”와 같다.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의 추종자들 위에 부은 기쁨의 기름”과 같다.

(5)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들이 이 기름으로 부음 받지 않을 때까지는 여호와께 성직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더욱이 우리의 예배는 이러한 거룩한 사랑 없이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고전 13:1-2).

2. 그것은 열매를 맺게 한다. 그것은 즐거움과 같이 매우 유익하다. 그것은 “이슬과 같다.” 그것은 이슬방울이 무수함과 같이 풍부한 축복을 수반한다. 그것은 새벽에 내린 이슬이 공기를 시원하게 하고 땅을 신선하게 해줌과 같이 인간 정열의 맹렬한 열기를 식혀준다. 그것은 선한 모든 일에서 우리의 결실에 상당히 큰 공헌을 한다. 그것은 마음을 적셔주며, 부드럽게 해주고, 말씀의 선한 씨앗을 받기에 적합하게 해준다. 그와 반대로 “악독과 궤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우리를 부적합하게 해준다(벧전 2:1). 그것은 평범한 산 “헐몬의 이슬과 같고”(형제의 사랑이 세속사회의 아름다움과 미덕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산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룩한 사회의 결성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헐몬과 시온은 이러한 이슬이 없다면 마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이슬이라고 언급되었다(미 5:7). 우리 형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저희의 사랑이 우리에게 머물러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선술집의 사랑이다). 오히려 그들보다 앞서 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Ⅳ. 형제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증거. 사랑하는 백성들은 축복 받은 백성들이다.

1. 그들은 하나님께 축복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축복 받았다. “거기서”, 형제들이 연합해 함께 거하는 곳에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다.” 즉, 모든 축복을 포함한 복합적인 축복을 주셨다. 복을 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다. 인간은 단지 복을 구할 수밖에 없다. 약속에 따르는 축복은 명령된 축복이다. 왜냐하면 그가 “영원까지 그의 언약을” 명하셨기 때문이다. 결과를 가져오는 축복은 명령된 축복이다. 왜냐하면 “그가 말씀하시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영원까지 축복을 받는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명하신 축복은 “곧 영생이로다.” 그것은 축복 중에서 가장 큰 축복이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 안에 거할 뿐만 아니라, 이미 하늘에 거하는 것이다. 사랑의 성취가 하늘의 축복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진실성은 그러한 축복의 징표이다. 사랑과 평화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을 모시게 되며, 평화의 하나님을 함께 모시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와 함께 영원히 무한한 세계에서 사랑과 평화를 맛보며 살게 될 것이다. 얼마나 선하며, 얼마나 아름다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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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y"(3162, 야하드) 하나됨, 연합됨, 함께, 모두 함께, 모두 동시에
야하드(명남)는 야하드(dj'y:" , 3161)에서 유래했으며, '하나됨, 결합됨, 연합됨'을 의미하며, 주로 부사로 사용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40회 나오며, '연합, 하나', 부사적으로 '함께, 똑같이, 모두 동시에, 모두 함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야하드는 '연합, 하나됨'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형제가 연합하는 것(시 133:1), 백체를 하나로 이루는 것(욥 10:8)을 묘사한다.
(b)  야하드는 '함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어떤 문맥에서는 '행동의 일치'를 나타낸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에게 도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나로 더불어('함께') 싸우게 하라"(삼상 7:10). 때때로는 '장소의 일치'를 강조하기도 한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삼상 11:11). 이 단어는 동시에 동일한 장소에 존재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저희를 기브온 사람의 손에 붙이니 기브온 사람이 저희를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저희 일곱 사람이 함께 죽으니..."(삼하 21:9).
야하드는 '함께, 즉 '동시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나의 분한을 달아 보며 나의 모든 재앙을(나의 재앙을 함께) 저울에 둘 수 있으면"(욥 6:2).
(c)  야하드는 '모두 동시에, 모두 함께, 일제히, 똑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출 19:8, 사 45:21, 사 46:2, 사 48:13, 사 52:8, 슥 10:4, 신 33:5, 시 62:9, 욥 31:38, 사 43:7, 시 49:10 등).(참조: TWOT;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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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v'y:(3427, 야샤브) 앉다,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
야샤브(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앉다,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08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앉다, 내려 앉다'(창 27:19, 욥 2:13, 시 9:5, 창 21:16).
사사나 왕(시 9:5, 사 10:13), 매복한 자(욥 38:40, 렘 3:2), 적(삼상 13:16), 애곡자(욥 2:13, 사 47:5), 게으른 자(사 30:7, 렘 8:14)에 대해 사용되었다.
(b)  '머무르다, 체류하다'(창 24:55, 출 24:14, 삿 19:4, 삼상 16:8 등).
(c)  '거주하다, 살다, 거처를 정하다'(창 4:10, 창 4:20, 시 107:10 등, 분사로, '거주자, 거주민이나 주민' 창 19:25, 삿 1:21).
2. 니팔형에서
'거주하다'(출 16:35, 렘 6:8, 렘 22:6, 겔 12:20, 겔 26:19 등).
3. 피엘형에서
(a)  '두다, 정하다, 치다' (겔 25:4).
4. 히필형에서
(a)  '앉게하다'(왕상 2:24, 대하 23:20, 욥 36:7, 왕상 21:10 등).
(b)  '살게하다'(삼상 30:21),
(c)  '거하게 하다'(창 47:6, 창 47:11, 레 23:43, 삼상 12:8, 왕하 17:6, 호 12:10, 사 54:3, 겔 36:33).
4. 호팔형에서
(a)  '살게되다, 거하게 되다'(사 5:8, 사 44:26, 겔 35:9)(참조: BDB; Gesen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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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2896, 토브) 좋은, 선한, 즐거운, 선, 이익, 번영, 복지
토브(형용사)는 토브(b/f , 2895)에서 유래했으며, 형용사로는 '좋은, 선한, 즐거운, 유쾌한', 명사로는 '좋은 것, 선, 이익, 번영, 복지'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60여회 나온다.
'선한'은 실제적인 혹은 경제적인 이익을 언급하는 것으로 잘 나온다. 좋은 열매(창 2:9)와 바로의 꿈에 나타난 이삭(창 41:5, 창 41:36)은 먹기에 좋은 것이었다.
요셉의 노예상태가 "좋은" 것은 양식과 민족의 생존 같은 실재적인 이익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선하지 못한" 모세의 재판에는 실제의 행정적인 불이익도 포함되었다: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출 18:17).
토브로 전달된 다른 실제적인 선은 아합에게 거부한 승리의 약속(대하 18:7); 환대와 우정(창 26:29); 유익한 충고(삼하 17:7, 삼하 17:14); 일반적인 경제번영(왕상 10:7); 농업 번영(호 10:1, ASV);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암 9:4) 등이다.
그러나 국가의 풍기를 문란케한(느 5:9) 강포한 삶(잠 16:29)과 행동은 "선하지 못하다"고 일컬어 진다.
노동의 "선"은 일에서 얻은 실제적인 이득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 3:13, 참조: RSV '기쁨' pleasure).
"선"은 여러 가지 광범위한 추상적인 관점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선한 이름은 명성이나 평판의 관점에서 볼 때, 후손보다 더 낫다: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사 56:5). 다윗이 제후인 아기스에게 충성한 것은 "선한 것"으로 묘사된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삼상 29:9, RSV '흠이 없는' blameless).
엘리후는 진리나 타당성과 관련 지어볼 때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동료들에게 요구했다: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 보자"(욥 34:4).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있어, 노를 더디 내는 것은 이상적인 용사의 폭력적인 힘보다 더 바람직하였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마찬가지로,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아이는 고집 센 왕보다 "더 나았다"(전 4:13).
이 단어는 심미적이거나 감각적인 선함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비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창 6:2), 리브가의 아리따움(창 24:16), 그리고 밧세바의 아름다움(삼하 11:2)을 묘사한다. 이 단어가 사람을 묘사할 때, 영어의 관용구는 '잘생긴' handsome이란 말을 사용한다(삼상 16:12).
감각적인 기쁨이나 좋은 것은 "단"이라고 묘사하는 데에서(렘 6:20), 그리고 다메섹의 물이 요단의 흙탕물보다 더 "낫다"는 나아만의 판단(왕하 5:12)에서 나타난다.
다른 것보다 더 나은 것으로서의 한 포도를 묘사하는 데에는 감각적인 매력도 포함되어 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삿 8:2).
'선한'은 자주 '행복한' happy을 나타낸다. 이것은 왕이 결혼하는 때를 묘사한다: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도다"(시 45:1). 행복한 축제일은 "좋은 날"로 묘사되기도 한다: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 8:17, RSV '휴일' holiday; 참조: 삼상 25:8).
"좋은 마음"은 행복을 나타낸다(대하 7:10, 잠 15:15).
행복은 술에 의해 야기되기도 하는 것 같다(전 9:7).
토브를 포함하는 관용어로는 선호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어떤 사람의] 눈에 선한"이란 용법이 있다. 이런 용법의 예들로는 도망친 노예가 어떤 곳을 거처로 택함(신 23:16, RSV "그를 기쁘게 하는 곳), 그리고 슬로브핫의 딸들이 남편으로 택함(민 36:6)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이런 식으로 표현될 것이다(삼상 3:18). 이것은 타락하고 죄에 가득찬 욕망을 묘사한다(창 19:8, 삿 19:24). 이런 경우에, 이 관용어는 도덕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토브는 우수한 질이나 상재적인 가치에 대한 개념도 포함한다. 이런 식으로 이 단어는 하윌라의 "정"금(창 2:12)과 고급 향유(아 1:3, RSV "바르는 기름" anointing oils)를 묘사한다.
우수한 장인은 모세가 "준수하다" (즉 고귀하다)고 묘사되는 경우(출 2:2)처럼, 인간의 성품의 특성이나 고귀성과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지칭된다(사 41:7).
토브의 중요한 용법은 도덕적인 선을 가리킨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시 34:14, H15)라는 명령은 분명히 "선"을 도덕적인 악과 대조 시킨다. 하나님께서 다루기 어려운 자기 백성을 가르치실 "선한 길"은 도덕적인 삶을 가리킨다(왕상 8:36). '선한'과 '옳은'을 뜻하는 야샤르는 종종 도덕적인 선을 뜻하는 유사한 말로 나온다(대하 14:1, 대하 31:20).
토브는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어떤 용법들에는 앞에서 논의된 둘 이상의 의미의 영역들이 뒤섞여 있다. 옛 언약의 "좋은 땅"은 실제적이며, 경제적이며 미학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신 1:25, 수 23:13).
마찬가지로, "선한 분"으로서의 하나님 개념도 "선한"이란 단어의 모든 가능한 의미들을 충분히 함축하고 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시 106:1, 대상 16:34), 좋으신 주님이시다(시 52:9).
구약성경에서 선의 개념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님의 개념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적인 것으로서의 선의 개념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선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은사이며, 그렇기 때문에 선은 인간의 힘의 통제권 밖에 존재한다(창 3:5).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단지 '선'이 아니라 선하신 성품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사상이 철두철미하게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이 구약성경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가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더욱 발전하였다.
하나님만이 오로지 선하신 분이시다라는 사실은 구약성경에서 그가 선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것, 율법을 주신 것(신 30:15, 잠 28:10), 그리고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출 18:9, 신 10:29이하)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명백해졌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창조 활동(창 l:1-8)에서건, 그의 말씀에서건(사 39:8), 그의 영에서건(시 l43:10), 심지어 그가 반대자들에게 말하기 위해 나타나셨을 때 조차도(창 50:20) 그에게서 유래되는 모든 것은 선하다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하나님을 오로지 선하신 분으로 찬양하는 새로운 계기로 발전하였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한 그의 사역에서 선(참조: 출 l8:9)을 행하시는 바 그 목적은 구원이며, 율법을 통해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데 있다. 선은 이미 행해져 왔으며, 또한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약속했던 선은 메시야적, 종말론적 구원에서 실제로 성취될 것이다(레 32:39 - 42; 사 52:7). 한편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 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선하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도움,없이 가능할 것인가는 논쟁이 되고 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도움,없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전 7:20).
랍비 유대주의는 하나님의 선함이 구원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선한 것과 성취 가능한 것은 율법에 계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법을 실행할 때 비로소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있고 또 선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선은 오로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동료 인간들 사이의 인격적 관계에서만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논의에 비춰볼 때, 각 개별 용법은 앞의 의미들 중 어느 것이 가능한지를 고찰하기 위해 분명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수많은 문학적인 표현들은 특별한 취급을 필요로 한다. "선과 악"은 보편성에 대한 관용어로 이용된다(민 24:13, 삼하 13:22). 어떤 이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이런 보편성을 뜻하는 관용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시사하였다(창 2:9). 그러나 창세기 앞부분의 문맥은 전체적으로 이 어구의 도덕적 의미에 기초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선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곧 동의나 수용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도덕적 판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왕하 20:19, 참조: 삼상 20:7).
"선한 눈"은 관대함을 나타낸다(잠 22:9, RSV '관대한 눈' bountiful eye ).
전도서에서, "선을 보다" to see good는 좋은 것이나 삶의 기쁨을 경험하다로 번역된다(전 5:18, RSV '기쁨을 발견하다' find enjoyment; 전 6:6, RSV '선을 향유하지 못하다' enjoy no good).(참조: A. BOWLING; E. BEYREU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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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n:(5273, 나임) 즐거운,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노래하는
1. 나임(형용사)은 나엠(![en: , 5276)에서 유래했으며, '즐거운, 유쾌한'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1회 나온다.
(a)  나임은 '즐거운, 유쾌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울과 요단(삼하 1:23), 재물이나 보배(잠 24:4), 말(잠 23:8), 성도의 교제(시 133:1), 여호와 찬양(시 135:3, 시 147:1), 지혜로운 교훈을 지키는 것(잠 22:18), 지상적인 번영이나 형통(욥 36:11), 영적 즐거움(시 16:6, 시 16:11) 등 매력적이며, 기쁨을 주는 것을 묘사한다.
(b)  나임은 '사랑스러운, 아름다운'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아 1:16).
2. 나임(형용사)은 외국어에서 유래했으며, '노래하는, 감미로운 소리 내는, 음악적인'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회 나온다.
시 81:2에서 감미로운 소리내는 수금에 대해 사용되었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찌어다".
삼하 23:1에서 이스라엘의 음악가나 노래 잘 하는 자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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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o(7218, 로쉬) 머리 head, 꼭대기, 우두머리, 총계 시작 처음 등
로쉬(명남)는 기본어근이며, '머리 head'를 의미하며, '머리, 꼭대기, 정상, 우두머리(장), 전체, 총계, 시작, 처음, 첫째, 정선한 것'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00회 나온다.
(a)  로쉬는 몸의 일부분인 '머리'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창 3:15, 창 40:20). 또한 '로쉬'는 베임을 당한 '머리'(삼하 4:8), 짐승의 '머리'(창 3:15)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자기의 머리를 들다'는 표현은 자신의 결백을 선언하는 표이다.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찌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올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니이다"(욥 10:15). 이와 같은 비유적 표현은 자기 주장에 대한 가장 맹렬한 형태인 전쟁을 시작하려는 의도를 지적할 수 있다: "대저 주의 원수가 훤하하며 주를 한하는 자가 머리를 들었나이다"(시 83:2). 이러한 표현은 부정어를 수반하여 다른 권세에 대한 복종을 상징하기도 한다: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삿 8:28). 로쉬는 타동사로 사용될 때(즉 다른 사람의 머리를 들다) 어떤 사람을 전의 위치로 복귀시킴을 의미할 수 있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창 40:13). 이 용법은 또한 어떤 자를 감옥에서 석방시킴을 나타낼 수도 있다".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십 이월 칠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 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왕하 25:27).
'로쉬'는 '룸'(올리다)과 함께 즉위한 왕의 승리와 권세를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 머리를 드시리로다" 또는 그 통치를 펼치시리로다(시 110:7).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머리'를 드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소망과 믿음으로 채우신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니다"(시 3:3).
(b)  로쉬는 '머리'라는 의미에서 확대되어 가족의 '우두머리' chief(출 6:14), 구분한 이스라엘 백성의 '우두머리 관리' chief officer로서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로쉬'는 임명을 받았거나 선출되었거나 또는 스스로 되었거나에 관계 없이 '지도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한 무리의 백성들의 지도자인 족장들(출 18:25), 군대 지휘자들(삼하 23:8)에 대해 사용되었다. 민 1:16에서 족장들이 '두령'이라고 불리어진다(참조: 삿 10:18). 이 단어는 예배에서 백성을 대표하거나 인도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쓰인다(왕하 25:18, 대제사장). 이 어근의 용법의 독특한 히브리적 성격이 분명히 나타나는데, 그것은 이 어근이 구약성경에서 이방 민족들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데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c)  로쉬는 산이나 언덕과 같은 주요 지세의 꼭대기나 정상(출 17:9) 및 건물이나 건축물의 상부(창 11:4, 대하 3:15)에 대해서도 사용되며 이러한 것들에 대한 의인화로 사용되기도 한다(시 24:7, 시 24:9).
로쉬는 침상의 '머리', 사람의 '머리'를 두는 곳(창 47:3), 장대의 끝부분(왕상 8:8)에 대해 사용되었다.
(d)  로쉬는 '시작'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여행을 시작하는 장소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네가 높은 대를 모든 머리에 쌓고..."(겔 16:25). 이 시작의 장소라는 의미는 창 2:10(처음 용례)에도 나온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네 근원)이 되었으니".
(e)  또한 로쉬는 어떤 사물을 공간적으로 한 집단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과 동일시한다. 그것은 정면에 또는 '선두'(head)에 선다(신 20:9, 왕상 21:9).
(f)  로쉬는 '정점, 중요한 위치'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별들 가운데서 '두령'(head)은 하늘의 정점에 위치한 별이다(욥 22:12). '머리돌'(슥 4:7)은 제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모든 기준이 되는 돌이다. 그것은 중요한 모퉁이 돌이다(시 118:22). 이 구절과 이 단어의 이 용례는 신약성경에도 받아들여져서 예수님께서는 그가 유대인들에게 거부 받은 것에 관하여 언급할 때 인용한다(마 21:42, 눅 20:17, 엡 2:20, 벧전 2:7).
(g)  로쉬는 '첫째, 처음'이라는 시간적 의미를 나타낸다(출 12:2, 대상 16:7).
(h)  로쉬는 최상급의 의미, '가장 좋은 것, 정선한 것'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가장 좋은 상품과 향품(출 3:23, 아 4:14)과 제일 즐거워 하는 것(시 137:6)을 묘사한다.
유일무이한 가장 좋은 것만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적합한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의미는 성전 관리들(왕하 25:18)과 가장 훌륭한 음악가(느 11:17)에게도 적용된다.
(i)  로쉬는 '총계' sum 혹은 '총계의' total(잠 8:26)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KJV는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를 언급하는 구절에서 일관되게 '총계의' total '총계' sum라고 번역하며(출 30:12, 민 1:2 등), 아랍어 어형은 꿈의 '개략' sum 혹은 '내용, 요지' substance라는 특이한 의미로 나타난다(단 7:1).(참조: NEDOT; W. WHITE;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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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8081, 셰멘) 기름짐, 기름
셰멘(명남)은 샤만(@m'v; , 8080: 살찌다)에서 유래했으며, '기름짐(기) fate, 기름 oil'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93회 나온다.
(a)  셰멘은 '기름짐, 기름기가 많음 fate, fateness'을 의미한다.
① 비옥한 비탈(사 5:1, 사 28:1, 사 28:4)에 대해 사용되었다.
② 기름진 음식(비유적)에 대해 사용되었다(사 25:6, 시 109:24).
(b)  셰멘은 '기름 oil'을 의미한다.
이 단어가 기름을 가리킬 때는 대체로 감람유인데(에 2:12, "몰약 기름"은 액상의 몰약이거나 기름과 혼합된 몰약일 것이다), 이것은 고대의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① 셰멘은 요리할 때 쇼트닝으로 사용되었다(왕상 17:12-16), 즉 빵을 구울 때 밀가루와 올리브유를 섞는다(민 11:18). 기름은 좋은 음식의 상징으로서 고운 가루와 꿀과 함께 언급되었다(겔 16:13, 겔 16:19).
② 셰멘은 화장품 및 향수(신 28:40, 에 2:12, 전 9:8, 민 6:15, 암 6:6, 아 1:3, 삼하 14:2, 시 104:15)로 사용했다.
③ 셰멘은 의약용으로 사용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6). 신약성경에 보면 제자들은 그들이 행한 기적적인 병고침에서 그 상징으로 기름을 사용했다(막 6:13, 참조: 약 5:14).
④ 셰멘은 등유로 사용되었다(출 25:6, 출 27:20, 레 24:2). 기름은 성막에서와 같이 등불을 켜는데 사용되었다.
⑤ 셰멘은 의식용으로 사용되었다. 기름은 매일 제사, 또는 계속 드리는 번제(출 29:40), 소제(레 2:1-10), 나실인 예물(민 6:15), 위임제(민 7:13), 정해진 문둥병자의 속건죄(레 14:10-32)에서 고운 가루와 함께 섞었다. 기름은 또한 첫 열매 예물 중의 하나였고(레 2:14-16), 속죄제(레 5:11), 의심의 소제(민 5:15)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기름이 기쁨과 반가움을 상징했기 때문이다(시 45:7).
야곱의 원시적 예배에서 돌기둥에 기름을 부었다(창 28:18, 창 28:19). 우상 예배를 위해 기름을 사용했다(겔 23:41).
⑥ 셰멘은 왕을 세울 때 사용되었다. 사무엘이 사울(삼상 10:1), 다윗(삼상 16:1, 삼상 16:13)에 기름을 부었다. 제사장 사독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왕상 1:39).
⑦ 셰멘은 기름병의 기름이 계속된 기적(왕상 17:8-16)과 기름병의 기름을 많게 한 기적(왕하 4:1-7)을 묘사한다.
⑧ 셰멘은 비유 및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
기름은 번영을 상징한다. 모세는 아셀에게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신 33:24)라고 축복한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신 32:13에 주어져 있는데, 심지어 바위까지도 꿀과 기름을 생산한다고 한다. 즉 불모지이고 생산이 안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는 풍성한 수확을 내게 될 것이다(욥 29:6).
기름은 기쁨과 즐거움을 상징한다(사 61:3, 시 45:7). 여기서 기쁨의 기름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아래 거하는 자의 복된 상태이다.
그리고 셰멘(기름)은 형제우애(시 133:2), 사치(잠 21:17), 음녀의 호리는 입(잠 5:3), 감언이설(시 55:21), 제어하기 어려운 것(잠 27:16)을 비유적으로 묘사한다.
(참조: BDB; TBT; TWOT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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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z:(2206, 자칸) 수염, 턱
자칸(명남)은 자켄(@qez: , 2204: 늙다)에서 유래했으며, '수염 heard, 턱 chin'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9회 나온다.
(a)  자칸은 '턱 chin'을 의미한다. 레 13:19, 레 13:30에서 문둥병의 진단에서 턱의 환처에 관해 언급한다. 문둥병자가 정결케 되려면 턱 수염을 깎아야만 한다(레 14:9).
요압은 아마사의 턱을 잡고 그 입을 맞추려 하는체 하였다(삼하 20:9).
겔 5:1에서, 에스겔은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의 상징으로서 머리와 턱의 털을 깎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삼상 21:13에서도 다윗이 미친체하며, 침을 턱에 흘리었다(삼상 21:14).
시 133:2에서는 '턱이나 턱수염'을 가리킨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삼상 17:35에서 사자의 '턱 즉 아래턱'을 가리킨다: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b)  자칸은 '수염'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염'을 잘 간직하는 것은 성인의 영예의 표시였다. 적에 의해 수염이 깎이고 뽑히는 것은 최대의 멸시를 당하는 것이었다(삼하 10:4, 삼하 10:5, 대하 19:5, 사 7:20).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은 수염의 모서리(양끝)를 깎는 것이 금지되었다(레 19:27, 레 21:5).
절망의 때나 깊은 슬픔의 때에는 수염을 뜯거나(스 9:3) 깎았다(사 15:2, 렘 41:5, 렘 48:37). 이것은 깊은 슬픔과 겸비의 표시였다.(참조: BDB;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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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a"(175, 아하론) 아론
아하론은 '총명한'을 의미한다. 한글개역은 '아론'이라 번역하였다.
(a)   아론의 가계. 아론은 레위의 자손으로, 아므람과 요게벳의 아들(출6:16,18,20;6:16-20; 민26:59),모세의 형(출7:17), 미리암의 남동생(출15:20),엘리세바의 남편(출6:23),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의 아버지이다(출6:23).
(b)   아론의 지위. 모세의 조력자(출4:13-31)요 모세의 대언자(출7:1,2).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출12:1) 모세와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위임받았다(출6:13,26,27).
(c)   아론의 특권. 모세와 함께 바로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출5:1-4), 이적을 행하고(출7:9,10,19,20; 출8:5-7; 출8:16-19). 훌과 더불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림으로 아말렉에 대한 승리를 쟁취했다(출17:10-12), 시내산에 올라가 여호와를 경배하고(출19:24),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며(출24:9,10), 모세의 부재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출24:14), 회막 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아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는 직무를 행했다(레16:17 ). 아론은 백성을 축복하고(레9:22; 민6:23), 미리암을 위해 중보하였다(민12:10-12).
(d)   아론의 죄. 우상 숭배를 묵인 내지 관여하고(출32:1-4; 신9:20,21).  백성의 방자함을 허락하였다(출32:21-25).
아론은 미리암과 더불어 모세를 비방하고(민12:1,2,8), 므리바에서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말을 거역하였다(민20:8,10,11,12,25;20:1-13).(f) 아론의 성격. 아론은 성도로 불리워졌으며(시106:16), 능변가였으며(출4:14), 순종적이었다(레10:3,7;10:1-7).
그는 위기 때에 믿음이 약하였으며(출32:1,2,23,24;32:1-24), 질투심이 있고(민12:1,2), 죄의식을 가지었다(민12:11).
(e)   아론의 제사장직. 아론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제사장이 되어(출28:1), 평생 그 직무를 수행했으며, 세습되었다(출28:40-43; 출29:9; 대상23:13).
(f)   아론의 죽음. 아론은 123세에 호르산에서 죽었으며(민33:39),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를 계승하여 그의 제사장의 직임을 행하였다(신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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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y:(3381, 야라드) 내려오다, 내려가다, 내리다
야라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내려오다, 내려가다, 내리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80회 나오며, 칼,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팔레스틴의 고원지대는 서쪽으로는 지중해에, 그리고 동쪽으로는 해면보다 훨씬 낮은 깊은 열곡, 아라바하(Arabah)에 면해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위로 가거나 아래로 가게 된다. 예루살렘이 지리상의 중심지이므로, 여행자는 "올라가거나"(알라) "내려간다".
몇 구절들에서 야라드는 목적지가 실제적으로 언덕 위에 있을 때 사용된다. 게다가 이 단어는 남쪽 방향이나 아래 지역, 혹은 그밖에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사 15:3).
또한 중요한 곳에서 보다 덜 중요한 곳, 즉 성전이나 궁궐에서 개인의 집으로 옮기는 것의 느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 주의 신복들로 더불어 잔지라"(삼하 11:9이하).
더구나 내려온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명성의 신분을 떠나는 것, 자신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사 47:1, 렘 48:18).
이 단어는 종종 전쟁시에 적과 교전하기 위해 행하는 '군사 기동 연습'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군인, 도시, 성벽들은 모두 무너지고 만다(학 2:22, 신 20:20, 신 28:52). 그리고 넘어뜨린 사람은 누구든지 이런 식으로 패하게 된다(렘 51:40, 호 7:12).
다른 용례들은 '어떤 것을 분리하는 것, 짐승이나 전차, 옥좌나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 물건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것, 비나 눈물이 내리는 것' 그리고 '선원들이 바다로 내려가는 것'(사 42:10)을 포함한다.
'애굽으로 내려가다'는 언약을 맺지 않은 백성들 사이에서 거주하기 위해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야곱의 아들들이 맨처음 애굽에 정착하러 가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그들을 애굽으로 보내는 목적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창 46:2 이하). 그 후 그들이 팔레스틴의 지배권을 획득한 후에, "애굽으로 내려가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실패할 인간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사 30:2, 사 31:1).
스올은 땅 아래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죽는 사람은 누구든지 스올로 내려간다: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줄을 너희가 알리라"(민 16:30).
스올의 욕구는 커서, 내려간 모든 사람들을 다 삼킬 것이다: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사 5:14).
잠언은 간음한 여자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녀의 집이 "음부의 길이며,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잠 7:27).
신현현은 하나님이 내려오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자기의 거처를 떠나 직접적으로 말로써 혹은 간접적으로 어떤 도구를 매개로 하여 인간과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 오신다. 하나님은 시내산에 불로 내려오셨다(출 19:18, 대하 7:1 이하).
그리고 장막에서 그는 구름 기둥에서 나타나셨다(출 40:34이하, 민 12:5).
모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하나님은 장로들 사이에 내려오셔서 그의 신중 어떤 것을 모세에게서 취하여 장로들에게 나눠주셨다(민 11:17).
더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내려오신다. 예를 들면, 그는 자기 백성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하기 위해 나타나셨다(출 3:8).
다른 한편, 또한 하나님은 심판하러 내려오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악함의 실상을 조사하신다(예: 바벨탑에서 창 11:5,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창 18:20이하). 죄악이 관영하였음을 확인하고서 강림하사 높은 곳을 짓밟으신다(미 1:3). 즉 그는 우상숭배의 중심지를 파괴하심으로써 심판을 시작하신다.
게다가 그는 패역한 국가들을 쳐부수기 시작하신다: "옵 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찌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옵 1:4).
(참조: J. E. HARTLEY;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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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y:(3381, 야라드) 내려오다, 내려가다, 내리다
야라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내려오다, 내려가다, 내리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80회 나오며, 칼,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팔레스틴의 고원지대는 서쪽으로는 지중해에, 그리고 동쪽으로는 해면보다 훨씬 낮은 깊은 열곡, 아라바하(Arabah)에 면해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위로 가거나 아래로 가게 된다. 예루살렘이 지리상의 중심지이므로, 여행자는 "올라가거나"(알라) "내려간다".
몇 구절들에서 야라드는 목적지가 실제적으로 언덕 위에 있을 때 사용된다. 게다가 이 단어는 남쪽 방향이나 아래 지역, 혹은 그밖에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사 15:3).
또한 중요한 곳에서 보다 덜 중요한 곳, 즉 성전이나 궁궐에서 개인의 집으로 옮기는 것의 느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 주의 신복들로 더불어 잔지라"(삼하 11:9이하).
더구나 내려온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명성의 신분을 떠나는 것, 자신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사 47:1, 렘 48:18).
이 단어는 종종 전쟁시에 적과 교전하기 위해 행하는 '군사 기동 연습'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군인, 도시, 성벽들은 모두 무너지고 만다(학 2:22, 신 20:20, 신 28:52). 그리고 넘어뜨린 사람은 누구든지 이런 식으로 패하게 된다(렘 51:40, 호 7:12).
다른 용례들은 '어떤 것을 분리하는 것, 짐승이나 전차, 옥좌나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 물건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것, 비나 눈물이 내리는 것' 그리고 '선원들이 바다로 내려가는 것'(사 42:10)을 포함한다.
'애굽으로 내려가다'는 언약을 맺지 않은 백성들 사이에서 거주하기 위해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야곱의 아들들이 맨처음 애굽에 정착하러 가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그들을 애굽으로 보내는 목적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창 46:2 이하). 그 후 그들이 팔레스틴의 지배권을 획득한 후에, "애굽으로 내려가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실패할 인간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사 30:2, 사 31:1).
스올은 땅 아래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죽는 사람은 누구든지 스올로 내려간다: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줄을 너희가 알리라"(민 16:30).
스올의 욕구는 커서, 내려간 모든 사람들을 다 삼킬 것이다: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사 5:14).
잠언은 간음한 여자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녀의 집이 "음부의 길이며,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잠 7:27).
신현현은 하나님이 내려오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자기의 거처를 떠나 직접적으로 말로써 혹은 간접적으로 어떤 도구를 매개로 하여 인간과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 오신다. 하나님은 시내산에 불로 내려오셨다(출 19:18, 대하 7:1 이하).
그리고 장막에서 그는 구름 기둥에서 나타나셨다(출 40:34이하, 민 12:5).
모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하나님은 장로들 사이에 내려오셔서 그의 신중 어떤 것을 모세에게서 취하여 장로들에게 나눠주셨다(민 11:17).
더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내려오신다. 예를 들면, 그는 자기 백성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하기 위해 나타나셨다(출 3:8).
다른 한편, 또한 하나님은 심판하러 내려오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악함의 실상을 조사하신다(예: 바벨탑에서 창 11:5,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창 18:20이하). 죄악이 관영하였음을 확인하고서 강림하사 높은 곳을 짓밟으신다(미 1:3). 즉 그는 우상숭배의 중심지를 파괴하심으로써 심판을 시작하신다.
게다가 그는 패역한 국가들을 쳐부수기 시작하신다: "옵 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찌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옵 1:4).
(참조: J. E. HARTLEY;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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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f'(2919, 탈) 이슬 dew
탈(명남)은 탈랄(ll''f; , 2926)에서 유래했으며, '밤안개 night-mist, 이슬 dew'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0회 나온다.
팔레스틴의 밤과 낮의 극심한 온도차로 인하여 많은 이슬이 내렸으며, 여름의 가뭄기에는 이것이 초목을 살아 남게 해 주었다. 그 양은 지역마다 달랐지만 가자(Gaza)에는 한해 250일의 밤에 이슬이 내렸다. 성경은 종종 이런 특색을 언급하곤 한다.
문 밖에서 밤을 지내는 사람은 "이슬로 젖었다":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아 5:2).
하늘에서 내린 선물로 여겨진(신 33:28, 잠 3:20) 이슬은 하나님에 의해 불순종한 사람들에게는 그쳐졌으며(학 1:10) 엘리야의 기도에 의해 비와 함께 그쳐졌다(왕상 17:1).
그러나 이슬은 하나님의 은혜의 시기에는 주어졌다: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슥 8:12). 그러므로 이슬은 축복으로 간주되었고(창 27:28) 이슬의 부족은 고난(창 27:39)이나 저주(삼하 1:21)였다. 욥은 이슬을 누가 낳았는지 대답하지 못했다: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욥 38:28).
광야에서 아침 이슬은 만나를 동반하여 이 이슬이 증발한 다음에 만나를 남겨 놓았다(출 16:13, 출 16:14, 민 11:9).
기드온에게 보여준 표적, 주변의 땅에는 이슬이 없고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는 표적은 그 후 바뀌어져서 땅은 젖어있고 양털은 말라 있었다(삿 6:37-40).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비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왕의 은혜(잠 19:12), 인간의 언변(신 32:2), 그리고 형제 단합의 축복(시 133:3)은 이슬이 내리는 것에 비유된다.
하나님은 이슬 구름처럼 조용히 감찰하신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사 18:4).
욥이 이전에 지닌 번영은 가지 위에 내린 이슬에 비유된다: "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내 가지는 밤이 맟도록 이슬에 젖으며"(욥 29:19).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삼하 17:12), 열방들 사이에서의 야곱의 세력(미 5:7, H6), 그리고 청년의 활력(시 110:3), 이 모든 것들도 이슬에 비유된다. 믿음이 없을 때, 이스라엘은 일찍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았다(호 6:4, 호 13:3).(참조: J. P. LEWIS;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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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r;B](1293, 베라카) 축복, 복을 주는 것
베라카(명여)는 바라크(&r'B; , 1288)에서 유래했으며, '축복, 복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70회 나온다.
(a)  베라카는 '축복, 복 주심 blessing'에 대해 사용되었다.
① 부모의 축복(창 27:12-41, 창 49:28), 모세의 축복(신 33:1).
② 하나님의 복 주심(출 32:29, 레 25:21, 신 11:26, 신 11:27, 신 11:29, 신 23:6(= 느 13:2), 신 28:2, 신 28:8, 신 30:1, 신 30:19, 수 8:34, 삼하 7:29, 시 3:8, 시 21:3, 시 133:3, 사 44:3, 스 34:26, 스 44:30, 욜 2:14, 말 3:10, 창 39:5, 신 12:15, 신 16:17, 신 33:23, 시 129:8, 잠 10:22, 시 24:5, 창 28:4).
③ 사람의 축복(시 109:17, 잠 10:6, 잠 11:25, 잠 28:20).
④ 가난한 자의 축복(욥 29:13,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하였었느니라").
(b)  베라카는 복의 근원 즉 복을 주는 한 복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브라함(창 12:2), 이스라엘(사 19:21, 겔 34:26, 슥 8:13), 의인의 씨(시 37:26), 왕(시 21:6), 의인의 기념(잠 10:7), 새로운 포도즙(시 65:8)은 세계나 인류 사회에 한 복이 되는 것이다.
(c)  베라카는 '복, 번영'에 대해 사용되었다. 정직한 자의 축원이나 번영(잠 11:11), 이른 비의 은택(시 84:6), 하늘의 복, 원천의 복, 태의 복(창 49:25), 아비의 복(번영)(창 49:26), 너의 복(번영)(말 2:2).
(d)  베라카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에 대해 사용되었다. '축복'이 하나님께 돌려질 때, 그것은 찬양과 감사의 표현이었다: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느 9:5).
(e)  베라카는 '선물, 선사'에 대해 사용되었다(창 33:11, 수 15:19, 삿 1:15, 삼상 25:27, 삼상 30:26, 왕하 5:15).
잠 11:25에서 베라카는 '활수한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f)  베라카는 '평화 협정'에 대해 사용되었다: 왕하 18:21(= 사 36:16):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찌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참조: BDB;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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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x;(6680, 차와) 명령하다, 부과하다, 부탁하다
차와(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명령하다, 요구하다, 부과하다, 부탁하다, 지명하다, 정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0회 나온다.
명령은 아비가 자식에게(삼상 17:20), 농부가 일군에게(룻 2:9), 왕이 신하에게(삼하 21:14) 지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것은 확고하게 틀이 잡힌 조직사회라는 점을 반영해 주는데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지배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었다(참조: 삼하 7:7, 왕상 1:35). 그러므로 지도자는 백성에게 명령하고 그들의 복종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수 1:9, 수 1:16).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승계하도록 그 직에 임명하였다(민 27:18이하, 신 31:14이하).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택했을 때 그가 "그를 군주로 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즉 그를 군주[나기드]로 임명하였다, 삼상 13:14).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것만을 모두 선포하기 때문에 그의 말은 권위를 지닌다(렘 1:7, 참조: 신 18:18).
하나님은 세상으로 하여금 존재하도록 "명하셨다"(시 33:9, 사 45:12).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과 자연이 그의 명령에 복종한다(참조: 왕상 17:4, 욥 37:12, 시 78:23). 하나님은 또한 중대한 사건들을 명함으로써 역사의 과정을 이끌어 가신다. 참으로 그 어떤 결정적 사건이라도 하나님의 정하심이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다(애 3:37). 또한 그는 자기 백성이 승리하도록 명하신다(시 44:4, H5).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명하실 때 그는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신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제사 기구와 건물 축조에 관해 모세에게 지시하실 때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지혜의 신을 부어 줌으로써 그 사역을 완수할 수 있게 하셨다(출 31:2-6, 출 35:30-35, 출 36:1). 이러한 물건들을 만듦에 있어서 본문은 먼저 지시 사항을 상술하고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주의 깊게 수행한 사항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출 25-30장, 출 36-39장, 레 8장, 참조: 출 39:5, 출 39:7, 출 39:32, 출 39:42이하).
하나님은 말씀으로 명하심으로써 그 말씀의 진실성을 보증하신다. 이와 같이 그는 언약을 명하셨으며(시 105:8, 시 111:9) 그 언약에 충실한 자들에게 축복을 명하실 것이다(신 28:8, 시 133:3). 하나님은 자기가 명령한 것을 기억하시며 선포된 명령과 관련하여 자기 편에서 행해야 할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이행하신다(대상 16:15).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에는 축복이 수반된다. 그러나 거역은 저주를 가져온다(신11:26이하).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였으므로 저주를 받았다(창 3:16-19).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했을 때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준행했으므로 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창 6:22, 창 7:5). 이스라엘은 출애굽시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했으며 특히 유월절과 관련하여 그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예상태에서 도피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참조: 출 12:28, 출 12:50).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서 떠나는 경향이 있었다(참조: 신 31:29). 그의 계명에 순종하게 되면 행복한 삶과 장수의 결과를 가져온다(신 5:33).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명한 것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했다(신 5:32).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순종하는 자의 의가 된다(신 6:25).
하나님께서는 죽을 병에 걸려 있는 히스기야에게, 그의 '집에 명을 내리라'(한글개역: "집을 처치하라")고 지시했다. 다시 말해 히스기야는 자기의 모든 책임이 이행되도록, 즉 그 책임이 자기의 후계자들에게 적절히 맡겨지도록 확실한 조처를 취해야 했던 것이다(왕하 20:1). 야곱도 자기의 장례 문제에 관해 아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창 49:29, 창 49:33).(참조: J. E. HARTLEY;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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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5769, 올람) 영원, 긴 기간, 고대, 옛날, 미래
올람(명남)은 '영원, 긴 시대(기간), 고대, (먼) 과거, (먼) 미래, 세상'이란 의미를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40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올람은 일정 기간의 범위를 나타낸다.
종의 고용 기간(신 15:17, 출 21:6), 사무엘의 성전 봉사를 위한 헌신 기간(삼상 1:22), 아론의 자손들의 제사장 복무 기간(출 29:9)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모든 경우에 그 기간은 사람의 전 생애에 걸치며, 또한 그 생애 내에만 국한된다. 이것은 평생 왕직의 약속의 경우(삼상 13:13), 모세가 생존하는 한 백성들이 그를 신뢰함의 경우(출 19:9) 혹은 평생 가신 관계의 경우(삼상 27:1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것이 그 관련자의 죽음과 더불어 종결됨은 물론이다.
(b)  올람은 '긴 기간'을 나타낸다.
① 올람은 개인 뿐만 아니라 세대나(예: 출 40:15, 출 32:13, 시 18[17]:51) 혹은 전 민족(수 4:7, 삿 2:1)에 대해 사용될 경우에도 역시 위의 (a)와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이러한 실체들의 쇠퇴와 더불어 그들의 시간도 종식된다.
이것은 '영원'이나 '영원'이라는 말들로 표현되는 관용구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신뢰할만한 단서를 제공한다. 대상 16:36에서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하리로다"고 하였다. 찬양의 계속은 이처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민족의 영속과 연관된다. 사실상 대상 16:15에서 "영원히"와 "천대에"가 병행한다. 그러므로 관용구 "영원부터 영원까지"는 다른 문구 "대대로"(출 40:15, 사 13:20)에서 유래하였음이 아주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관용구는, 여기에서도 추상적이고 무한정적인 관점에서 생각되는 영원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결부된 인간의 생애와 찬양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되찾는다. 삼상 2:30과 삼상 3:13 이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은 추상적 불변성이 아니라, 인간과의 상호적 관계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고스란히 보존되는 한, 영원하지만 부서질 수 있다.
② 영원히 세워진 큰 약속이라도 단지 초시간적, 불변적으로 유효한 것이 아니다. 이 약속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는 관련점에 결속되어 있다. 성전의 영원성이 하나님의 임재에 달려있으며(왕상 9장), 왕권의 영원성도 그러하다(삼하 7장).
(c)  올람는 완전한 의미에서 '영원'을 의미한다. 인간의 생명은 제한되었으므로(창 6:3), 그 수명이 끝없는 지속의 바탕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완전한 의미에서 아이온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멸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영원히 살아계시고(신 32:40, 참조: 창 21:33)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며(참조: 사 40:28)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신다(시 90:2)라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은 무궁한 시간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므로 말씀은 영원하며(사 40:8), 그의 구원은 영원하다(사 45:17)(참조: Arndt).
(d)  올람은 미래의 시간(출 14:13, 신 13:16, 신 23:3, 신 23:6, 신 29:29, 수 8:28, 미 4:7) 뿐만 아니라, 먼 고대의 시간도 의미할 수 있는 그 까닭을 설명해 준다(창 6:4, 신 32:7).
신 32:7과 욥 22:15에서 올람은 선조들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 같다. 잠 22:28, 잠 23:10, 렘 6:16, 렘 18:15, 렘 28:8에서 이 단어는 다소 먼 과거를 지칭한다. 사 58:12, 사 61:4, 미 7:14, 말 3:4과 스 4:15, 스 4:19의 아람어 본문에서 이 단어는 바로 이전 시대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삼상 27:8, 사 51:9과 사 63:9, 사 63:11, 그리고 아마도 겔 36:2에서 이 단어는 출애굽 사건을 언급한다. 창 6:4에서 이 단어는 노아 홍수 직전의 때를 가리킨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언급들 중에서 끝없음이나 무한의 개념을 지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각각의 언급은 살아있는 자들이 직접적으로 아는 시대 이전의 오랜 때를 가리킨다(CA. A. M).
여호와의 미래의 날과 관련하여 암 9:11, 미 5:2에 나타난다.
(e)  우리가 또 주목할 것은 서력 기원 전환기의 랍비 유대주의와 A.D.1세기의 묵시 문학에서(예: 에스드라스 하) 시간적 의미와 공간적 의미를 아울러 나타내는 올람의 아주 새로운 용법이다. 분명히 페르시아 사상의 영향 하에서 최초의 시간과 최후의 시간에 관한 구약의 진술들(사 24-27, 욜 2장)은 두 세계(aeons) 교리로 체계화되었다. 이 교리에서 유일한 공통 요소는, 하나님은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주이시며, 이 시대와 저 시대의 주이시라는 점이다. 이 시대는 불의와 죄, 고통의 시대이므로 이 두 세계는 대조적으로 관련된다. 장차 올 시대가 이 시대를 밀어내고 대신 들어서게 될 때 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니, 그 때에는 의인이 살 새 땅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용어 아이온(aion: 영원)과 코스모스(kosmos: 세계)의 신약적 유사성도 이 사상에 근거한다. 대망되는 메시야가 미래 시대에 친히 오시거나 혹은 "메시야의 날"이 새 시대가 뒤따를 과도기로서 생각된다. 이것은 "이 시대"(헬, 호 아이온 후토스/ 히, 하올람 핫제), "장차올 시대"(헬, 호 멜론 아이온/ 히, 하올람 합바)라는 용어에 반영되어 있다.
사 64:3에서 KJV는 이 단어를 '세상의 시작'으로 번역한다. 시 73:12("항상")와 전 3:11("영원")에서 이 단어는 '세상'(world)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앞에 언급한 것과 같은 새로운 용법의 영향일 것이다.(참조: Arndt.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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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2416, 하이) 살아있는, 생존하여 있는
하이(형용사)는 하야(hy:j; , 2421: 살다)에서 유래했으며, '살아있는, 생존하여 있는 living, alive'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0회 나온다.
이 형용사는 종종 하나님에 대한 수식 형용사로 사용되고 있으며(수 3:10, 호 2:1, 시 42:3, 등), 또한 죽었거나 말라버린 것에 대조되는 사람, 동물, 채소에 대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복수어형은 흐르는 물 혹은 신선한 물을 묘사하고 있다(창 26:19, 레 14:5, 레 14:6, 민 19:17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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