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05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벧후3:8-15상.주일기도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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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3장 하나님의 날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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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3장

1.  This is now, beloved, the second letter I am writing to you in which I am stirring up your sincere mind by way of reminder,

2.  that you should remember the words spoken beforehand by the holy prophets and the commandment of the Lord and Savior [spoken] by your apostles.

3.  Know this first of all, that in the last days mockers will come with [their] mocking, following after their own lusts,

4.  and saying, "Where is the promise of His coming? For [ever] since the fathers fell asleep, all continues just as it was 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5.  For when they maintain this, it escapes their notice that by the word of God [the] heavens existed long ago and [the] earth was formed out of water and by water,

6.  through which the world at that time was destroyed, being flooded with water. 

7.  But the present heavens and earth by His word are being reserved for fire, kept for the day of judgment and destruction of ungodly men.

8.  But do not let this one [fact] escape your notice, beloved, that with the Lord one day is as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s one day.

9.  The Lord is not slow about His promise, as some count slowness, but is patient toward you, not wishing for any to perish but for all to come to repentance.

10.  Bu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like a thief, in which the heavens will pass away with a roar and the elements will be destroyed with intense heat, and the earth and its works will be burned up.

11.  Since all these things are to be destroyed in this way, what sort of people ought you to be in holy conduct and godliness,

12.  looking for and hastening the coming of the day of God, on account of which the heavens will be destroyed by burning, and the elements will melt with intense heat!

13.  But according to His promise we are looking for new heavens and a new earth, in which righteousness dwells.

13.  But according to His promise we are looking for new heavens and a new earth, in which righteousness dwells.

14.  Therefore, beloved, since you look for these things, be diligent to be found by Him in peace, spotless and blameless,

15.  and regard the patience of our Lord [to be] salvation; just as also our beloved brother Paul, according to the wisdom given him, wrote to you,

16.  as also in all [his] letters, speaking in them of these things, in which are some things hard to understand, which the untaught and unstable distort, as [they do] also the rest of the Scriptures, to their own destruction.

17.  You therefore, beloved, knowing this beforehand, be on your guard lest, being carried away by the error of unprincipled men, you fall from your own steadfastness, 

18.  but grow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To Him [be] the glory, both now and to the day of eternity.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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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ose of This Letter 3 
1.Beloved, I am now writing you this second letter. In this [as in the first one], I am stirring up your untainted mind to remind you, 
2 that you should remember the words spoken in the past [about the future] by the holy prophets and the commandment of the Lord and Savior given by your apostles [His personally chosen representatives].
The Coming Day of the Lord
3 First of all, know [without any doubt] that mockers will come in the last days with their mocking, following after their own human desires 
4 and saying, “Where is the promise of His coming [what has become of it]? For ever since the fathers fell asleep [in death], all things have continued [exactly] as they did 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5 For they willingly forget [the fact] that the heavens existed long ago by the word of God, and the earth was formed [a]out of water and by water, 
6 through which the world at that time was destroyed by being flooded with water. 
7 But by His word the present heavens and earth are being reserved for fire, being kept for the day of judgment and destruction of the ungodly people.

8 Nevertheless, do not let this one fact escape your notice, beloved, that with the Lord one day is like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is like one day. 

9 The Lord does not delay [as though He were unable to act] and is not slow about His promise, as some count slowness, but is [extraordinarily] patient toward you, not wishing for any to perish but for all to come to repentance.

A New Heaven and Earth

10 Bu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like a thief, and then the heavens will vanish with a [mighty and thunderous] roar, and the [material] elements will be destroyed with intense heat, and the earth and the works that are on it will be [b]burned up.

11 Since all these things are to be destroyed in this way, what kind of people ought you to be [in the meantime] in holy behavior [that is, in a pattern of daily life that sets you apart as a believer] and in godliness [displaying profound reverence toward our awesome God], 

12 [while you earnestly] look for and await the coming of the day of God. For on this day the heavens will be destroyed by burning, and the [material] elements will melt with intense heat! 

13 But in accordance with His promise we expectantly await new heavens and a new earth, in which righteousness dwells.

14 So, beloved, since you are looking forward to these things, be diligent and make every effort to be found by Him [at His return] spotless and blameless, in peace [that is, inwardly calm with a sense of spiritual well-being and confidence, having lived a life of obedience to Him]. 

15 And consider the patience of our Lord [His delay in judging and avenging wrongs] as salvation [that is, allowing time for more to be saved]; just as our beloved brother Paul also wrote to you according to the wisdom given to him [by God], 

16 speaking about these things as he does in all of his letters. In which there are some things that are difficult to understand, which the untaught and unstable [who have fallen into error] twist and misinterpret, just as they do the rest of the Scriptures, to their own destruction. 

17 Therefore, [let me warn you] beloved, knowing these things beforehand, be on your guard so that you are not carried away by the error of [c]unprincipled men [who distort doctrine] and fall from your own steadfastness [of mind, knowledge, truth, and faith],  

18 but grow [spiritually mature]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To Him be glory (honor, majesty, splendor), both now and to the day of eternity.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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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그의 두 번째 서신의 결론을 맺으려고 하는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두 번째로 편지를 쓰는 의도와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 있는 것으로 이 마지막 장을 시작하고 있다(1,2).

Ⅱ. 그가 이 편지서를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실, 다시 말해서 그가 말하고 있는 바, 기동하는 자들의 등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3-7).

Ⅲ. 심판을 위해 오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 알려 주고 있다(8-10).

Ⅳ.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처할 준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의 강림에 수반하게 될 사건들의 전모를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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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의도와 목적(벧후 3:1-2)

독자들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고 또 지속적으로 신앙적이며 실제적인 복음의 교훈을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기록한 그의 기록 목적이 잘 수행되기 위해 사도 베드로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그들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일컬음으로써 그들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과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사도는 그가 그들에게 앞서 행하도록 권고한 바와 같이(1:7) 그 자신이 "경건에 형제애를 공급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목회는 생활과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사랑과 애정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

2. 사도 베드로는 말의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의 말을 다시 기록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그의 견실한 사랑과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관심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이것은 매우 성공률이 많고 또한 매우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에게는 같은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쓰고 또 같은 의도를 다시 한 번 추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조금도 수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3. 베드로는 이 문제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권고를 위하여 그들이 기억해야 할 바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그들은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선지자들은 성령에 의하여 거룩한 감동을 받고, 깨우쳐졌으며,, 성화된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이 동일한 성령의 청결케 하는 역사로 말미암아 깨끗게 하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그들은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바를 받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2) 그들은 "주되신 구주께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종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한 것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구약 성서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그리고 신약 성서에서 사도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바를 자주 암기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말씀들을 묵상하는 자들은 그 말씀에서 그를 소생시키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일깨워짐을 받고, 따라서 거룩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 활기와 생기가 넘치게 일할 수 있으며, 천성을 향해 갈때에도 열심을 내며 피곤하지 않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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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들의 획책(벧후 3:3-7)

우리들로 하여금 선지자들과 사도들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 바를 신실하게 믿고, 또한 이에 집착하도록 격려하고, 자극하기 위해 사도 베드로는 "기롱하는 자" 다시 말해서, "죄와 그리고 죄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조롱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날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복음적인 방법을 기롱할 것이다. 

신약 성서가 보여 주고 있는 은혜의 법은 매우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구약 성서가 나타내는 것 보다 훨씬 더 하나님의 본성과 일치하는 것인데도 조소와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영적이며 단순한 신약 성서의 예배는 인간의 육적인 심정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따라서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 날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기롱하는 자가 더 많아질 것이며 그들이 더욱 강퍅해질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시대를 통하여 육에서 낳고, 육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성령에 따라 낳고, 성령에 따라 행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조롱하고 비난해 왔지만, 마지막 날에 가서는 진실한 경건과 복음이 묘사하고 있는 바 신중함과 자기 부정 곧 견고히 지키고 있는 자들을 비난하는 기술과 몰염치함이 더 크게 발전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 언급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놀라거나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그러한 사실을 알아두어야 한다. 

이제 이러한 기롱자들의 공격을 받더라도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아래의 몇 가지 사실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Ⅰ. 기롱자들이란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그들의 마음의 계략과 욕망 그리고 부패된 육체적인 애정을 촉구하는 한편, 올바른 이성과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명령과 지시를 따르지 아니한다. 이러한 일을 그들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행한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싶은 대로 살며, 명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 

모든 중생하지 못한 죄인들의 마음이(롬 8:7)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으며, 그에 대해 무지하며, 또 반역적인 것과 같이, 하나님께 대해 악하고, 반역적인 것은 그들의 내적인 심령만이 아니다. 그들은 아직 육체에 머물러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바를 공개적으로 폭로하리만큼 악의 극치에 도달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혀는 우리의 것이며, 우리의 힘과 우리의 시간도 우리의 것이다. 누가 감히 우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우리를 반대하며 통제할 수 없으며, 누가 우리의 말하고 행동한 바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말을 할 때에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 얽매이는 것에 대해 조롱하듯이, 그들은 그들이 믿는 바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지시 받고 명령받기를 거절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들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그들 자신들의 말로 말하듯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원하며, 그들 나름대로 원칙을 정하기를 원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그들 자신의 탐심"이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과는 자리를 같이 할 수 없다. 그런 방탕자와 자리를 같이 하면 그들을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아서 그들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 좋겠다."

Ⅱ. 우리는 그들이 어느 정도까지 기롱할 것인가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우리의 신앙까지도 흔들어 놓고 혼란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기롱하며 말할 것이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4절). 

만일 재림에 대한 신앙이 없다면 기독교의 다른 모든 신조들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재림의 신앙은 기독교의 다른 모든 신조의 의미를 보충해 주며, 그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해 준다. 약속되었던 메시야는 오셨고 "육체를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신 바와 같은 분이시었으며, 우리에게 전에 일러주신 그대로의 일을 모두 행하신 분이시다. 

이러한 원리를 기독교의 원수들은 오랫동안 뒤엎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이미 지나가 버린 사실을 근거로 했으며, 사도 베드로나 또 다른 사도들이 확실히 증거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신조 가운데 하나의 기본적인 신조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으며, 아직도 약속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세상 끝날까지 이 조항을 걸고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기까지는 그가 재림하신다는 것조차 조롱할 것이며, 실은 그들이 정신 나간 사람이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제우리는 재림을 믿는 자와 그리고 그것을 기롱하는 자들의 편에 서서 각각 그 의미를 살펴보자.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시기를 바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 자신이 약속하셨고, 또 거듭해서 약속하셨으며, 충실한 증인들이 그 약속을 받아서 전해 주었고, 또 확실하게 기록된 약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꼭 재림하신다는 확신을 굳게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기롱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지 않으시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들 자신들과 또 다른 사람들도 그리스도가 결코 재림하시지 않는다고 믿도록 설득하려고 애쓴다. 만일 그러한 약속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거부할 수 없다면, 그들은 그러한 약속까지라도 조소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 약속이 가장 불성실하며 모욕적인 것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 약속이 어디 있느냐"고 그들은 말한다.

Ⅲ. 우리는 그들의 사고 방식에 대해서도 역시 경고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조롱하면서도 논쟁을 하려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가장하기 위해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4절). 이것은 유일한 사고 방식은 아니지만, 매우 교활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약한 마음과 더욱이 악한 심령에는 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왜냐하면 악한 일에 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간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기 때문이다"(전 8:11). 

이와 같이 그들은 자의대로 거짓을 꾸며내어 행동하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하도록 설득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여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다시 말해서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죽었는데, 그들의 살아 있을 때에 그 약속이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실현될 가망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왜 우리가 그것 때문에 근심할 것인가? 너희가 말하고 있는 약속이 진실한 것이며 또 확실한 것이라면, 이 세대가 가기 전에 그 재림의 징조라든가, 그 예비적 단계 같은 것이라도 확실히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오늘까지도 만물이 처음 창조할 대와 같이 아무런 변화가 없이 그냥 있다. 따라서 수천년 동안이 흘렀는데도 이 세상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왜 우리가 이 세상의 종말이 있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렇게 기롱하는 자들은 논쟁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변화를 보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기 때문이다"(시 55:19). 그들은 하나님이나 그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직 행하시지 않은 일은 하나님께서 결코 행하실 수 없으며, 행하시려고도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그들은 짐짓 추측해서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Ⅳ.  여기에 그들의 논쟁의 근본적 오류와 헛점이 있다. 

그들은 "창조때부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단호히 말하고 있는데,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지난날에 있었던 변화를 기억하게 하고 있다. 그것은 노아의 때에 온 세계가 홍수로 인하여 뒤덮어졌던 때와 같이 우리가 기다리며 찾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기롱하는 자들은 무시했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땅히 알 수 있었으며, 또 알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일부러 잊으려고" 하였다(5절). 그들은 그 일에 대해들은 바가 없고 따라서 아는 바도 없는 것처럼 해서 묵묵한 가운데 슬쩍 넘겨 버리려고 하였다.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그들의 지식으로 삼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진실을 찾아내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믿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그들이 일부러 알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무지하며,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모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시가 그들로 하여금 무의식중의 죄에 빠지게 한다는 구실로 삼게 해서는 안 된다.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못박은 자들은 그가 누구이신지를 알지 못했다. "만일 그들이 알았더라면 그들은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이다"(고전 2:8). 

하지만 그들의 무지가 무죄일 수는 없다. 그들의 무지 자체가 하나의 죄이다. 그것은 하나의 의도적이며 고의적인 무지였다. 그리고 하나의 죄가 다른 죄를 위한 구실이 될 수 없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그들이 단번에 사악한 무리들의 세상을 쓸어버리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보복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동반하는 그런 위협에 대해 비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고의적으로 무지하고자" 했으며, 그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옛 세상은 물로 심판 받아 멸망하였고, 현 세계는 최후의 불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묘사한 바에 대해 계속 살펴보자. 

베드로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하나, 즉 물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키며, 설득시키려고 하나님의 행하신 바 한 가지 사실, 즉 물의 심판에 대해 언급하였다.

1. 우리는 일찍이 이 세상에 임했던 파괴에 대한 기사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5,6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인데,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도다. " 

원래 세계는 지금과는 다른 상태로 놓여 있었고, 물도 가장 적절하게 분리되어 우리에게 크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얼마간의 물은 여기에서 하늘이라고 일컬어주고 있는(창 1:9 에서와 같이) 궁창 가운데 적당한 저장소를 가지고 있었고, 또 얼마간은 궁창 아래 한 곳에 모여져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살기에 알맞도록 바다와 육지가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주적인 홍수의 때에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전에 각기 알맞은 저장소에다 둘로 갈라 놓으셨던 물을, 그의 진노로 인해 하나로 합쳐 놓으셨다. "그날에 큰 깊음의 섬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구름)들이 열렸다"(창 7:11). 그리하여 온 세상이 물에 덮였으며, 가장 높은 산봉우리라도 "물에 십오 규빗이나 잠겼다"(창 1:20). 이처럼 하나님은 단번에 그의 무서운 능력과 맹렬한 분노를 나타내셨으며, 온 세상에 종말을 가져다 주셨다.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6절). 여기에 변화하고도 가장 무서운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룩된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그 말씀은 태초에 세계를 그처럼 아름답고도 질서에 넘치도록 창조하신 그 말씀이시기도 하다(히 11:3).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하시기를(창 1:6, 7) "물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고 하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셨다. 그리하여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하셨다(9,10절).  "저가 말씀하시매 (그대로) 이루어졌다"(시 33:9). 

사도 베드로도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 옛적(즉 태초)부터 하는 것과 땅이(처음 물과 물이 구별될 때와 같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졌다는 것은 세상의 처음 구조와 질서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임을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혼돈과 멸망 이후에 그 거주자들에게 내리시는 파멸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룩되는 것임을 말한다. 

"하늘을 펼치고 땅의 기초를 세우신"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방대한 구조를 파괴할 수도, 뒤집어엎을 수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의 약속의 말씀에 의해서 역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인간은 물론 심지어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멸하시겠다고 홍수사건전에 미리 말씀하셨으며, 땅에 홍수를 내림으로 그와 같은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창 6:7, 13, 17). 이것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찍이 이 세상에서 이룩해 놓으신 변화이다. 그런데 기롱하는 자들은 그것을 무시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 베드로가 또 말하고 있는 바는 아직 세상에 임하지 않은 무서운 변화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7절). 

여기에는 우리가 아직도 더 언급하여야 할 세계의 최종적인 붕괴에 관한 무서운 설명이 있다. 비록 홍수로 말미암아 휩쓸림을 당한 사람들은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세상과 그리고 세상에 사는 거민들에게 임했던 홍수에 의한 파멸에 대해서 관심 있게 읽고, 듣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심판은 앞으로 올 것이며, 비록 언제, 어느 특정한  시대와 사람들에게 임할는지는 몰라도, 반드시 임하기는 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심판이 우리의 세대 동안에 임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동일한 심판이기는 하나, 양자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비록 숫자는 적으나, 홍수를 피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앞으로 임할 불의 심판을 피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하나의 심판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또 하나의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가 속하고 있는 이 세계가 일시에 파멸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한 사람도 어느 특정한 한 가족도 그리고(우리가 매우 흥미를 가지고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이지만) 어느 한 민족도 제외 받지 못하고 온 세계가 멸망할 것이다. 방주도 예비되지 못하고, 피할 길도 마련되지 않은 채 온 세계가 일시에 멸망에 빠져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날에 있었던 비참한 현상과 앞으로 임할 심판 사이의 차이이다. 

전자의 물 심판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다시는 우리에게 임하지 않는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창 9:11-17). 그런데 후자 즉 불의 심판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능력이 반드시 이룩하실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이 땅에 임할 것이다. 홍수의 심판은 땅의 거민들을 완전히 휩쓸어가기 전에 40일 간에 걸쳐서 서서히 임했다(창 7:12, 17). 그러나 이 불의 심판은 신속하고도 단번에 임한다(벧후 2:1). 한편, (우리가 이미 말한  바가 있는) 과거의 전복에서는 그것을 피한 몇 사람이 있지만, 이 세계가 아직 기다리고 있는 멸망은 언제 임하든지 간에 완전히 우주적인 멸망이 될 것이다. 어느 한 부분도 남기지 않고 불길은 휩쓸 것이며, 어느 한 사람이라도 피할 만한 피난처도 없을 것이며, 어느 한 사람이라도 안전을 누릴 만한 장소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물의 심판과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불의 심판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앞으로 올 심판이 더욱 무서운 심판이 될 것이란 점이다. 

세계가 우주적인 대홍수로 말미암아 한번 멸망을 당한 바가 있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또 다시 우주적인 불의 심판으로 파멸당하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심판을 위해서 주께서 강림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록하는 자들이 적어도 그러한 강림이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게 하여 주자. 

이에 대한 언급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없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다는 점은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 비웃고는 있을 지라도 우리를 당황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고, 우리는 그의 약속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서와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또한 믿지 못하기 때문에) 과오를 범하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알고 있으며 또 의지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가 말씀하셨고 또 그가 앞으로 확실히 선하게 하실 것은 "현재 보전해 두고 계시는 하늘과 땅이다"(이는 지금 우리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바라고 있는 모든 아름다움과 질서 가운데 존속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존해 주시는 것은 세상적인 마음이 가지고 싶어하는 보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목적에 부합되게 사용하시기 위해 그의 보고에 안전하게 간수하신 것이다. 

이어서 그것들은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되어진 것"이라고 한다. 후에 이룩하실 하나님의 심판은 전에 이룩하셨던 심판보다 더욱 무서운 심판이다. 옛 세계는 물에 의해 파멸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마지막 날에 가서 불법한 자들을 태워버릴 불의 심판을 위해 보전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의 심판이 더딘 것 같이 보이며 그리고 이런 불법한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전되고 있는 것같이 보여 준 그것은 다만 복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복수를 위해 보전하고 있는 것뿐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날에 불경한 세상을 그들의 공적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의 날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멸망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장래의 심판을 기롱하는 자들은 그 날이 보복의 날이요, 완전한 멸망의 날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롱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 주님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힘쓰라. 경건치 아니한 세상에 대해서는 분노와 진노의 날이 될 바로 그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기쁨의 날과 구원의 날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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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강림(벧후 3:8)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강림의 진실성을 가르쳐 주며, 이를 확고히 하여 주고 있다. 여기서 사도는 그들을 향해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칭함으로 그들에 대한 친절과 사랑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믿지 않는 불의한 자들에 대해서조차도 동정어린 관심과 선의의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진실한 신자들에 대해서는 각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게 있는 무지와 약함을 생각할 때 마음이 북받쳐 올라 결국 그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던 것임을 보여 준다.

Ⅰ. 사도 베드로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와 같다"는 진리를 주장한다. 

인간의 계산법에 의하면 하루와 일 년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더욱이 하루와 천 년 사이에는 더욱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법에 의하면,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시기에 그 양자간에는 어떤 연관성도 그리고 차이도 없다. 왜냐하면 그의 앞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언제나 함께 있으며, 그에게 있어서 천 년이란 세월이 지연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하루나 또는 한 시간 정도의 지연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Ⅱ. 이 진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도는 우리들이 반드시 "그 하나의 사실"을 모르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경외심과 두려워하는 심정은 그를 예배하고 영화롭게 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엄청난 거리감은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섬기게 하는 데 있어서 매우 합당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평온하게 하는데 필요한 진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진리가 우리의 눈에 숨겨지기를 원치 않으신다. 원래는 이 말이 "이 한 가지라도 너희 눈에 가리워지지 않게 하라"라고 되어 있다. 

만일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알지 못하고, 이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마치 자기들과 똑 같은 존재로 여기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영원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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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강림의 날(벧후 3:9-10)

"주님의 강림이 더딘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약속하신 시간에서 더 지연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기로 약속하신 그 때를 지키신 것처럼(출 12:41), 주님도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마 하신 약속된 시간을 지키실 것이다. 하나님의 계수와 인간의 계수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가! 경건한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교회를 구원하신다는 약속의 때를 지내놓고 계신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실상은 인간들이 이 때를 그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대해서 하나님은 다른 때를 그때라고 생각하고 계실 따름이다. 그는 결코 그 자신이 정해 놓으신 때를 잊어버리고 지나치지 않으신다. 불명예스럽게도 인간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 때를 지나쳐 버리고 강림하실 생각을 외면하고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그 지연의 책임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전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신시켜 주고자 한다.

Ⅰ.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바가 사실은 "오래 참으심"이며,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계의 기초를 놓으시기 이전에 이미 선택한 사람들" 가운데서 아직 많은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은혜의 자리에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그리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하여, 그들에게 요청되고 있는 지식과 경건 생활과, 그리고 신앙과 인내의 생활의 향상을 도모하며, 선한 일을 행하며 고난도 참고 나가도록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 중에 아무도 멸망받지 않고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1. 회개는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회개가 없으며 우리는 멸망 받는다"(눅 13:3, 5). 믿는 우리는 날마다 오늘이 내가 이 땅에서 사는 마지막날인 것처럼 여겨서 회개하며 전도하도록 하자!

2. 하나님은 죄인들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죄인들을 벌하는 것은 자기의 피조물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비하신 하나님은 죄인들이 벌받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근본 목적이 비록 "심령을 새롭게 하심과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 그가 선택하신 백성들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내하심은 그들이 본성적으로 잘못한 것들에 대해 먼저 회개하도록 요구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회개할 여유를 주시는데도 사람들이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비록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된 자들의 숫자"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을 서둘지 않은 것이기는 해도, 회개치 않은 자들을 더욱 가혹하게 벌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불의의 길로 너희 자신을 내맡김으로 하나님의 인내와 오래 참으심을 만홀히 여기지 말라. 죄인들의 길에 감히 걸어가지도 말며, 주인이 더디 오신다"고 말하는 종과 같이(마 24:48), "회개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대로 앉았다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놀라게 하지 말라."

Ⅱ. "주의 날이 도적같이 밤에 오리라"(10절).

1. 주의 날은 확실히 임한다. 

이 서신이 기록된 지가 벌써 1,6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 날이 비록 오지 않았지만, 그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그 날을 약속하셨다. "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신다. 

"사람이 한 번 죽고, 그후에 심판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히 9:27). "그러므로 주의 날이 확실히 오리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 두라. 그날에 선악간에 육체로 행한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하도록 부르심을 틀림없이 받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코 심판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살아갈 때에라도,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사려, 너 자신을 때때로 판단하며, 장래의 심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라."

2. 그날은 갑자기 임한다. 

그날은 밤에 도적같이 임한다. 그때에 사람들은 평안히 잠들어 있으며 주의 날이 임하리라는 기대를 전혀 가지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날은 마치 그들이 깊이 잠들은 밤에 도적이 드는 것과 같이 임할 것이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마 25:6)라는 소리가 들려 왔는데, 그때 미련한 처녀들은 물론 슬기로운 처녀들까지도 잠들어 있었다. "주께서는 우리가 그를 찾지 않는 날에 임하실 것이며,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시간에 임하실 것이다. " 그러므로 사람들의 생각에 가장 부적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 바로 주께서 재림하시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주의 날이 매우 가깝다고 상상하기보다는 매우 멀리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것은 불신앙적인 세상의 생각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3. 주의 재림은 매우 장엄한 가운데 이루어진다.

(1)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떠나간다". 

보이는 하늘은 주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감히 그 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기에 떠나간다. 하늘은 매우 놀라운 변화를 이루게 될 것이며, 이러한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마치 크나큰 조각의 파괴와 전복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때 생기는 그러한 소리를 내며 급작스럽게 떠나갈 것이다.

(2)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이다. " 

주님의 재림시에는 하늘이 맹렬한 폭풍 속에 떠나가듯이, 주님의 주변에 대단한 폭풍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불이 그 앞을 지나가며," 세상의 모든 만물을 형성하고 있는 "체질을 녹여버릴 것이다. "

(3)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타버릴 것이다. " 

땅과 거기 거하는 사람들과 모든 일들 곧 자연적인 것이거나 인공적인 것들이 모두 파괴될 것이다. 장엄한 궁전이나 정원 그리고 모든 세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또 그들의 행복을 간직해 두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불타버릴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과 그리고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은 이에 굴복해야 하며, 불의 시험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한 불의 시험은 죄가 세상에 몰고 온 모든 것을 완전히 태워서 없애버릴 것이다. 그런데 그 불은 점화시키는 불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모습은 더욱 빛나게 하여 줌으로, 성도들은 더욱 주의 영광을 잘 깨닫게 될 것이다.

자 그러면 그리스도의 첫 번째 강림과 재림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을 일컬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한다(말 4:5). 심판을 위해 오시는 이 재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 될 것인가! 그날을 위해 준비하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주사, 그날이 우리에게 복수와 멸망의 날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불에 타서 없어질 것을 알면서도 이 땅의 것에 우리의 애착심을 두고 그것을 우리의 몫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풀어져 녹아버릴 이 세상 저 너머에 있는 행복을 추구하며, 또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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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권면(벧후 3:11-18)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교리를 지금까지 가르쳐 준 사도 베드로는 이어서 몇 가지 엄숙한 권면을 내리고 있다.

Ⅰ. 베드로는 그들의 모든 행실에 있어서 필요한 정결과 경건을 전념케 할 만한 기회를 포착하였다. 

성서에 나타난 모든 진리는 우리들의 실제 생활에 있어서의 선행에 도움이 되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이 가져다주는 효과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만일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한다면 너희는 복되도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모든 보이는 피조물들을 후패케 함으로 반드시 해체되게 만든 죄를 벗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인가! 인간들을 위해서 만든 것이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죄가 보이는 하늘과 체질과 땅을 풀어지게 만들고 저주 아래 가두게 하였다면 죄란 얼마나 악한 것이며, 가증스러운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풀어짐이 만일 모든 피조물들의 본래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의인들이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순전하며 또 거룩해야만 하는가! 

그가 여기서 권면하고 있는 바는 차원이 낮거나, 평범하게 얻어지는 것 이상의 차원이 높은 경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 자신 안에서 수고하여 얻어지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사람들과 대화하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차원이 높은 경건이다. 

우리들의 모든 행실은 귀한 자나 천한 자, 부한 자나 빈한한 자, 선한 자나 악한 자, 친구나 원수 누구에게든지 경건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과의 교제에서 "세상으로부터 흠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우리는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온전히 거룩함을 지녀야 한다. "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들이 풀려질 때에, 하나님을 섬기도록 우리 자신을 맡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또 그를 기쁘시게 함으로써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경건하게 지켜야 한다. 그때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은 모두 풀려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잠시 후에 사라지고 말며,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계속 남을 것인가를 살펴보자. 그것이 지금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머지 않아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날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모든 면에서 거룩하며 경건하기를 바라고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그날이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또 열심히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날을 바라 보라." 

"하나님의 날의 도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며 또 열심히 기다려야만 하는 날이다. 왜냐하면 그 날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며," 그를 단지 하나의 인간으로 간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의 신성을 증명하실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태로 나타나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강림시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열심히 기다렸으며 또 바라보았다. 그의 오심은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었다(눅 2:25). 

그들은 온전히 구속하는 날이 될 것이며, 그의 가장 귀한 영광을 나타내실 날인만큼 사람들은 얼마나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그의 재림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그는 "성도들로부터 존귀함을 받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부터 영광을 받기 위하여" 오실 것이다. 왜냐하면 보이는 하늘들이 모두 불 속에 휩싸이며, 체질들이 녹아버리는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무서움에 떨겠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지금의 하늘이 녹아버리고 난 뒤에 보다 더 영광스러운 하늘이 임할 것이며, 지금의 모든 보이는 피조물들을 불태워버릴 무서운 불이 또한 점화하는 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에 대해 주목하자.

1.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우리가 지금의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을 분명히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옛 하늘과 옛 땅이 가지고 있던 허망함으로부터 또는 그들을 더럽혔던 죄로부터 벗어난 새 하늘과 새 땅 안에는 오직 의로운 자들만이 거하게 될 것이다. 거기 거하는 사람들은 오직 의를 행하며, 죄의 세력과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모든 악인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입으며, 성령에 의해 성결함을 받은 사람들만이 이 거룩한 곳에 거하도록 허락을 받을 것이다.

2. 이러한 기대와 희망의 근거와 기초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지 않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가 약속에 의한 것이기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나 또는 그것들이 우리에게 이르게 될 시간이나 방법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은 미쁘시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룩되어질 모든 놀라운 일들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 가져라.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는 너희의 펼쳐져 있는 성서의 말씀 가운데서 사도 베드로가 인용한 이사야 65장 17절과 66장 22절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허락하시고 지시하신 것으로 추구하라."

Ⅱ. 11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하늘과 땅이 풀어지리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성도들에게 거룩해지라고 권면하였듯이, 14절에는 하늘과 땅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다시 권면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위엄 중에 나타나시며, 이 하늘과 땅이 풀어지며 녹아지고 나서 정화되고 순화된 뒤에 다시 새로워지고 재결합되는 하나님의 날을 바라보고 너희는 그를 맞을 준비를 하라. 온 세상의 심판자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강림하시고, 그들에게 어떠한 영원한 판결을 내릴까 생각할 때 그 심판자는 너희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고려할 것이다. 여기는 판결에 대해서 상소를 할 수 없는 재판소이다. 여기에 있는 위대한 재판관이 한 번 내린 판결은 번복을 할 수 없는 판결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아갈 준비를 하라. 그리고 이것을 알라."

1. "너희는 주 안에서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다시말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평강하며 화해를 이룩하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자기를 화목하게 하셨다. 그리스도밖에 있는 자들은 원수진 상태에 있는 자이며, 그리고 주님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자들로서 여호와의 현존과 그의 권세의 영광으로부터 영원히 제거되는 영원한 멸망으로 벌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해한 자들은 오직 안전하며 복된 백성이다. 그러므로 너희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되 다음과 같은 모든 면에서 화목하여야 한다. "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라.

(2)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심령 가운데 증거하여 주시는 은혜의 성령 가운데서 우리 자신의 양심과 화목하라.

(3) 우리의 복되신 주님을 본받아 고요하고 평화로운 심령을 가지고 사람들과 화목하라.

2.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기를" 힘쓰라.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룩해지기 위해서도 힘쓰라. 더욱이 점도 없이 온전해지기를 힘쓰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침의 점(이것만은 우리가 믿도록 힘써야 한다)이 아닌 모든 점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뿐만 아니라, 점없이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도록 힘써야 하며, 점이 없는 결백 즉 온전한 상태로 나아가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무 흠이 없도록 "완전한 경건"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선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게을리 하는 자는 결코 성공할 리가 없다. 

"우리에게 맡겨진 과업을 완성해야 할 우리의 날에 우리가 게으르고 태만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날에 평강 가운데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오직 부지런한 그리스도인들만이 여호와의 날에 행복된 그리스도인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주님은 갑자기 우리에게 임하시며, 급히 서둘러 우리를 부르실 것이다. 너는 그때 게으른 모습을 주님께 보여 주시를 원하는가?"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에게 내린 저주의 말씀"(렘 48:10)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수고와 부지런함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일을 위해 우리의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말자. 그가 우리에게 부과시킨 일을 우리가 부지런히 행하면 그는 우리에게 반드시 보상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 위해 우리 주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을 기억하면" 우리는 더욱 부지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공연히 그의 강림을 지체하실까? 그가 지체하시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정욕을 충족하도록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오직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여유를 주기 위한 것이다. 주님의 더디 오심은 고난받는 그의 백성에 대한 관심이나 동정이 결여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며, 또는 불신앙적인 세계를 장려하거나 격려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에 대해 준비하도록 시간 여유를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재림을 지연시키시는 우리 주님의 인내를 선용하기를 배우라. 평강과 거룩함을 추구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의 재림은 무서운 위협이 될 것이다. "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내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매우 어려우며, 또 바른 성장을 도모하게 하는 일이 어려우므로, 사도 베드로는 사도 바울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참으심을 선용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점을 인용하고 있다. 입으로 말하든지 혹은 붓으로 쓰든지 두 사도는 다같이 진리를 확고하게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전에 공개적으로 자기를 거슬려서 신랄하게 공격하던 바울에 대해 베드로가 이처럼 언급하는 일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주의해 보아야 한다. 만일 의로운 사람이 참으로 신앙적인 사람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친절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선한 사람이 혹 실수를 범했을 때 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훌륭한 기름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전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가 복음의 진리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책망한 바가 있는" 사람에 대해 할례받은 자의 사도가 명예로운 언급을 내리고 있는가!

(1) 베드로는 바울에 대해 "형제"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그것을 다만 동료 그리스도인(이런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있다. 살전 5:27)이거나 또는 동료 설교자(이러한 의미로 바울은 전도자 디모데를 일컬어 "형제"라고 부른 일이 있다. 골 1:1)라는 의미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명을 직접 그리스도로부터 받았으며, 복음을 모든 곳에 가서 전파하며, 또 모든 백성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라는 사명을 받은, 동료 사도라고 의미하고 있다. 비록 많은 미혹하는 선생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부정하였지만 베드로는 바울이 사도임을 시인하였다.

(2) 베드로는 바울을 일컬어 "사랑하는 이"라고 하였다. 

베드로와 바울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었고, 같은 주님을 섬기기 위해 연합해 있었으니 만큼, 만일 그들이 서로 상대방의 성공을 기뻐하지 않으며, 서로 굳게 뭉쳐져 있지 않았다면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 이었을 것이다.

(3) 베드로는 바울을 일컬어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복음의 비밀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며, 그러한 면이나 다른 자격의 면에 있어서 결코 다른 사도들보다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같은 복음을 전한 그들이 베드로가 설정한 유형에 따라서 서로를 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목회자의 유익을 방해하는 모든 편견을 정당한 방법으로 방지하거나 또는 제거하는 일과, 목회자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에 대한 존경심과 경애심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품게 하여 주는 일이 그들의 임무라는 것이 확실하다. 여기에서 아래의 몇 가지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① 바울에게 있는 탁월한 지혜는 그가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각과 지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지식을 구하며, 이해력을 얻도록 힘쓰되, 이는 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알고 힘내야 하며, 그것을 얻도록 정당한 방법을 취해서 수고를 다해야만 한다.

② 사도 바울은 그가 하나님으로 받은 것을 사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바울은 그가 복음의 신비한 지식에 이끌려 들어간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 속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힘썼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보지 못했거나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것을 주장하는 무례한 자가 아니었으며, 한편 하나님의 모든 뜻을 조금도 꺼리지 않고 주장하였다(행 20:27).

③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에 의하여 기록되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을 위해 기록된 서신이라 할지라도, 유대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믿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덕성을 함양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비록 바울의 모든 서신에는 본서 2장과 3장에서 취급하고 있는 한 두 개의 주제가 모두 취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바는 주로 로마서가 취급하고 있는 것(2:4)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서신에서 같은 것을 주장한다 해도 조금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사도 바울의 서신 가운데 나타나 있는 내용 중에는 우리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할 점들이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성서 가운데 취급되어 있는 다양한 주제 가운데는 그 주제 자체의 보호성/감취어진 은밀함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있다. 그런 것은 예언과 같은 것이다. 다른 경우에는 신비한 교리와 같이 그 내용이 너무 탁월하고 장엄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곤란할 때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심령이 약하기 때문에 어렵게 취급될 때도 있다. 그런 것은 고린도 전서 2장 14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하나님의 성령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배우지 못하고 안정되지 못한 사람들은 일을 잘못 처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서를 억지로 해석하며 또한 곡해하며 성령께서 하시고자 하지 않은 바를 성서가 말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을 잘 배우지 못하고 따라서 진리 가운데 서 있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악용하기가 쉽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어떤 부분도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 적용하는 일이 없도록 보호를 받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에 굳게 자리 잡게 하여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곳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무지하고 안정되지 못한 사람들이 비록 그들의 잘못 때문이기는 하지만, 빠지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이 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에 대한 잘못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멸망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게 열심히 기도하여, 예수님께서 아셨던 것과 같이 우리도 진리를 배울 수 있도록 하여 주며, 우리의 심령이 은혜로 차고 넘치게 하도록 구하자. 그리하면 교리의 거센 바람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리저리 흔들릴 때에도 우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Ⅲ.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주의를 주고 있다(17,18절).

1. 사도 베드로도 두 가지 위험이 있은 즉, 이러한 지식을 가진 우리는 깨어 경각심을 높이라고 가르치고 있다(17절).

(1) 우리는 미혹에 이끌려 진리로부터 벗어날 위험이 있다. 

무지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은 대체로 숫자가 많은데, 그들은 성서의 말씀을 대체로 곡해한다. 성서를 가지고 그것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더욱이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알며 이해하면서도 그 말씀을 진리라고 확고히 믿지 않는 사람의 숫자는 더욱 많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잘못에 빠지기 쉽다. 겨우 몇 사람만이 기독교의 교리를 알고 이를 터득하고 있다. 그리고 다만 몇 사람만이 좁은 길이 되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인 경건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에게는 먼저 자기 부정과 자기 불신이 있어야 하며, 우리의 위대한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못하면 진리를 거절하기가 쉬운 위험에 놓여 있다.

(2) 우리는 다음과 같은 미혹에 빠질 위험과 직면해 있다.

① 우리가 진리를 떠나 멀리하는 한 우리는 "참된 축복의 길에서 벗어나," 멸망의 길에 빠지게 된다. 

만일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타락시키면, 멸망으로 향하게 된다.

②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할 때, "그들은 사악한 자들" 다시 말해서 법이 없는 자들, 규율을 지키지 않는 자들, 자신에게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는 자들, 일종의 자유 사상가들의 "잘못에 빠져 들어간다." 시편 기자는 그들에 대하여 이렇게 미움을 표시하였다.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시 119:113). 

인간의 의견과 생각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의 법에는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에 의해 경고를 받으며, 선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포기하며 미워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법을 저버린 비 신앙자들의 속임수와 모략일 따름이다. 만일 우리들이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머지 않아 그들의 행실까지도 본받게 될 것이다.

③ 미혹으로 말미암아 꾐에 빠진 사람들은 "굳센 데서 떨어진다." 

그들의 마음은 전적으로 불안에 쌓여 있고, 안정되어 있지 못하다. 어디서 휴식을 취할지 모르며,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파도와 같이 항상 변하기 쉬운 상태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닥쳐 올 위험이 대단히 크기에 우리들이 주의하고 경계하기를 바라고 있다.

2. 우리들이 미혹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사도 베드로는 지시하고 있다(18절).

(1) 우리는 "은혜에서 자라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편지 서두에서 다른 것 위에다 은혜를 더하라고 권면한 바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은혜와 믿음과 덕과 지식에 있어서 성장하여야 한다고 다시 충고하고 있다. 보다 굳건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으면 있을수록 그만큼 우리는 진리 가운데 굳세게 서 있을 수 있다.

(2)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한다. "

주님을 알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라. 그를 좀더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알기 위하여 수고하라. 또한 그리스도께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며, 주님과 같이 되기 위하여, 주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힘쓰라."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얻고자 노력하였던 그리스도께 관한 지식이다(빌 3:10). 

우리를 보다 더 그리스도께 일치시켜 주며, 보다 더 그리스도를 흠모하게 만들어 주는, 그리스도께 대한 그러한 지식은 많은 사람들이 배교하는 때에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타락하는 것을 막아 준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의 효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로부터 은혜를 받고, 그에게 감사를 돌리며, 그를 찬송하며, 사도 베드로처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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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로우신 아버지여, ((만유의 주재, 정사-권세-능력의 영원유일무이한 참근원/기준)).. 
--이 아침에 사랑의 손길따라,  보혈 의지하며, 회개하며, 아픔-떨림-기쁨으로 나아옵니다
온맘다해 주님이름 부릅니다, ((주안에 감추인 새 생명, 하늘 안식과 기쁨, 그 영광.)). 
열어주옵소서..주님의 임재와 재림, 일심으로 앙망하오니, 
안아주옵소서, 하나님을 더 잘 알도록, 마음 눈 밝혀주옵소서.
--연인의 사랑앓이보다 더한 열정으로, 그토록 우릴 원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주 얼굴 대면하며 생생한 알아감, 생각과 심정을 알아드리는 친밀함, 샘솟는 사랑-자원하는 헌신의 삶..,
오직 사랑의 감동따라 행하는 이들마다.. 주님 얻고 그안에서 발견되는 기쁨 열어 주옵소서, 
--지금, 말로는 다 표현 못할, 고난중에 있는 성도들을, 주님 영광안에 친히 붙드시옵소서
고난의 참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또한 주 안에서((거함으로써)), 이미 이긴 이김을 누리게 하옵소서 
일편단심 주님 신뢰하고 잘 참아 견뎌내도록 도우소서
마침내 이루소서, 아버지의 지고지선의 뜻, 아드님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 성숙함 이루소서.
--아버지여, 교회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기쁨과 떨림으로 회개하는, 늘 부드럽고 열린, 성령에 감동된 마음 주옵소서 
일깨우실 때마다 순종하고, 주님이 넣어주시는 감동된 말씀만 말하며, 주님을 말하며 주님에 대해 말함으로써 주님을 살아내게 하여 주옵소서.
더 나아가 믿음으로 산을 옮기며, 주님갈망 그대로, [또하나의 <성육신>과 동일시, 참제자요 증인된 삶] 살아내게 하옵소서.
범사에 성령안에서 기도와 간구, 도고로 앙망할 때, 주님의 뜻 알게 하소서, 
겸손과 온유 - 오래참음, 서로 용납하며 평강의 띠로 하나됨 통해, 열정적인 주님의 사랑 충만 이루소서 , 
서로 돌아보아 함께 짐을 지며, 잘 들어주고 공감하며, 먼저 존대하고 존중하여 섬김안에서 주님의 기쁨 이루소서, 
받은 바 그 모든 풍성을,  드리고 나누며 베풀고 누리는, 주 영광의 통로됨 감사하는 아들들 만드소서 
이로써, 삶터마다 하나님나라의 능력으로 섬기며,  세상을 치유하며 전도하는 교회
영적 후사와 다음 세대를 끊임없이 산출공급하며, 사도행전29장을 사는 <성령행전>교회, 
말씀따라 절대 긍정-절대신뢰하는 믿음으로 살며, 소망의 인내 이루며, 사랑의 그 능력으로 땅끝까지 행하는 교회, 
마침내 주님 열망하시는 사도적 교회- 예언적 교회-선교적 교회를 이루게 하옵소서.,
--오늘의 말씀 예비하사,  목사님을 단에 세우셨사오니 
성령의 감동, 기름부으신 그 입술 통해서, 주님의 심정과 뜻과 그 영광 친히 나타내시옵소서...
--이시간, 듣는이마다 모두, 열어주시는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기쁨으로 반응하는 기경된 단 마음 주사, <영이요 생명> 하늘양식 흡족히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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