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13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살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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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2장 데살로니가에서 벌인 바울의 사역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다시 가기를 원하다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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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2장 데살로니가에서 벌인 바울의 사역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여러분 스스로가 알고 있습니다.
2.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을 받고 모욕을 당하였으나, 심한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3.  우리의 권면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서, 맡은 그대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5.  여러분이 아는 대로, 우리는 어느 때든지 아첨하는 말을 한 일이 없고, 구실을 꾸며서 탐욕을 부린 일도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6.  우리는 또한, 여러분에게서나 다른 사람에게서나,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한 일이 없습니다.
7.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서, 마치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돌보는 것과 같이, 유순하게 처신하였습니다.
8.  우리는 이와 같이 여러분을 사모하여,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만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 생각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9.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파하였습니다.
10.  또 신도 여러분을 대할 때에,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잡힐 데가 없이 처신하였는지는, 여러분이 증언하고, 또 하나님께서도 증언하십니다.
11.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이,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합니다.
12.  우리는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유대 사람에게서 고난을 받은 것과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의 동족에게서 꼭 같은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5.  유대 사람은 주 예수와 예언자를 죽이고, 우리를 내쫓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습니다.
16.  그들은, 우리가 이방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여, 구원을 얻게 하려는 일까지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죄의 분량을 채웁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이르렀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시 방문하다
17.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잠시 여러분을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여러분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18.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에게로 가려고 하였고, 특히 나 바울은 한두 번 가려고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방해하였습니다.
19.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20.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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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V]제2장
1.  You know, brothers, that our visit to you was not a failure.
2.  We had previously suffered and been insulted in Philippi, as you know, but with the help of our God we dared to tell you his gospel in spite of strong opposition.
3.  For the appeal we make does not spring from error or impure motives, nor are we trying to trick you.
4.  On the contrary, we speak as men approved by God to be entrusted with the gospel. We are not trying to please men but God, who tests our hearts.
5.  You know we never used flattery, nor did we put on a mask to cover up greed -- God is our witness.
6.  We were not looking for praise from men, not from you or anyone else. As apostles of Christ we could have been a burden to you,
7.  but we were gentle among you, like a mother caring for her little children.
8.  We loved you so much that we were delighted to share with you not only the gospel of God but our lives as well, because you had become so dear to us.
9.  Surely you remember, brothers, our toil and hardship; we worked night and day in order not to be a burden to anyone while we preached the gospel of God to you.
10.  You are witnesses, and so is God, of how holy, righteous and blameless we were among you who believed.
11.  For you know that we dealt with each of you as a father deals with his own children,
12.  encouraging, comforting and urging you to live lives worthy of God, who calls you into his kingdom and glory.
13.  And we also thank God continually because, when you received the word of God, which you heard from us, you accepted it not as the word of men, but as it actually is, the word of God, which is at work in you who believe.
14.  For you, brothers, became imitators of God's churches in Judea, which are in Christ Jesus: You suffered from your own countrymen the same things those churches suffered from the Jews,
15.  who killed the Lord Jesus and the prophets and also drove us out. They displease God and are hostile to all men
16.  in their effort to keep us from speaking to the Gentiles so that they may be saved. In this way they always heap up their sins to the limit. The wrath of God has come upon them at last.
17.  But, brothers, when we were torn away from you for a short time (in person, not in thought), out of our intense longing we made every effort to see you.
18.  For we wanted to come to you -- certainly I, Paul, did, again and again -- but Satan stopped us.
19.  For what is our hope, our joy, or the crown in which we will glory in the presence of our Lord Jesus when he comes? Is it not you?
20.  Indeed, you are our glory and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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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2장 (개요)
본문의 내용을 살펴 보자.
Ⅰ. 본장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그가 복음을 전하던 태도를 상기시킨다(1-6).
Ⅱ. 그 다음 자신의 생활 태도에 대하여 그들에게 상기시킨다(7-12).
Ⅲ. 그의 사역의 성공으로 바울 자신과 그들에게 준 영향을 상기시킨다(13-16).
Ⅳ. 그리고는 그가 그들에게 가지 못하게 된 사실에 대하여 변명하였다(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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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전도자의 상(살전 2:1-6)
여기서 우리는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그가 끼쳤던 만족할 만한 결과에 대한 바울의 만족스러운 회고와 또한 그의 설교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찾아 볼 수 있다.
바울은 자기의 성실함을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증거하고 또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그와 실리와 디모데 그리고 주의 일에 참여한 동역자들이 얼마나 신실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였는가를 호소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라고 하였다.
사역자 자신의 양심이나 다른 사람들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움이 없이 그가 좋은 목적과 원칙을 갖고 잘 출발하였으며 "그의 가르침도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그것은 그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미 바울은 다음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인해 위로를 받는다. 즉 그의 사역이 성공하여 열매없이 헛되게 끝나지 않은 사실로 위로를 받는다(이것은 번역 성경에 의거한 우리의 해석이다). 아니면 그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의 설교의 신실함을 인하여 즉 그것이, 헛된 것도 텅 빈 것도 사기적인 것이나 불실한 것도 아니였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았다.
바울의 설교의 주제는 쓸 데 없는 의문이나 어리석은 질문에 관한 게으르고 공허한 사색에 대한 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건전하고도 확고한 진리에 대한 말씀이었다. 이것은 모든 복음의 증거자들이 본받아야 할 좋은 본이다. 사도의 설교에는 쓸 데 없이 속이는 요소가 거의 없었다.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하였던 말씀, 곧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은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혼잡게 하지 아니하였다"(고후 4:2)는 말씀을, 데살로니가인들에게도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의 설교에 세상적인 생각이나 궤휼을 내포시키지 아니하였다.
Ⅰ. 그는 용기와 결단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중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2절)고 말한다.
바울은 거룩한 담대함에 사로잡히어 그의 앞에 닥치는 고난이나 자기를 향한 반대와 대적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아니하였다. 그는 데살로니가인들도 잘 아는 대로 빌립보에서 고난을 당하였었다. 거기서 바울과 실라는 부끄러움을 당하였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로와 지자마자 데살로니가로 가서 거기서 전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도하였다.
선한 동기로 받은 고난을 거룩한 결심의 날을 무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날카롭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스도의 복음이 처음 세상에 전해졌을 때 많은 반대에 부딪쳤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며 과감하게 그것을 전하였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였다. 이제 바울에게는 그가 이로써 기세가 꺽이어 복음을 전하는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Ⅱ.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 대단히 쉽고 경건성을 띤 신실함으로 복음을 전하였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3절). 자신의 복음 전함이 신실하였다는 사실이 바울에게는 감사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가 그들에게 믿고 복종하도록 전하고 권면한 것은 이러한 진실하고 부패되지 않은 복음이었던 것이다.
그의 목적은 어떤 파를 만들거나 또 사람들을 분열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순수한 믿음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의 순결"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그가 전한 복음은 거짓이 없었다. 그것은 진실하고 신실하였다. 또한 그것은 교묘하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것은 불결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전한 복음은 그 복음을 주관하신 거룩한 주님에게 합당하게 순수하고 거룩하였으며 모든 불순한 태도들을 지양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하다."  거기에는 어떠한 불순물도 섞일 수가 없다. 바울이 권고한 내용이 이같이 진실하고 순수하였듯이 그가 말하는 태도에도 꾸밈이 없었다. 그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믿는 것을 그대로 말하였다."  그는 사악하고 세속적인 목적이나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 그대로 실제 생활을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같이 자기의 신실함을 주장할 뿐 아니라 자기의 신실함의 이유와 증거로 추가한다. 그 이유는 4절에 나타나 있다.
Ⅲ. 그들은 복음을 위탁받은 청지기였다.
그리고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함이다. 바울이 설교한 복음은 그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었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큰 은총을 입은 자요, 영광과 신임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들은 하나님의 허락하시고 명령하신 대로 그들에게 위탁된 것을 부지런히 활용하여야 한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 더 이상 청지기의 일을 할 수 없게 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앞에서 자신들의 일을 보고해야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1.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는 내면적인 진리(신실함)를 요구하신다. 신실함이 없이는 우리가 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공허한 환상이나 인간의 욕망과 짝이 되어 그들의 욕망이나 열정을 채워 주는 그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복음은 그들의 부패한 열정을 극복하게 하며 환상의 세력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줌으로 그들로 믿음의 권능 아래 거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고 말하였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전지하심 즉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분의 눈길을 늘 의식하면서 행동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보실 뿐 아니라 멀리서도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아시고 마음까지도 감찰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신실함의 커다란 동기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목적과 계획도 잘 아신다. 그리고 우리가 그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되는 분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 하나님이신 것이다. 바울의 신실함의 증거가 뒤이어 계속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아첨을 피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아무때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의 증거하시느니라"(5절)고 말한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달리심에 대하여 전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을 빈 말로 칭찬하고 감언이설로 꼬이어서 그들로 자기들을 섬기게 하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그는 그들에게 자기편이 되기만 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고 말하지도 아니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헛된 소망을 붙어 넣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영생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나쁜 일이나 또는 길에 끌어들이려 하지도 않았다.
(2) 그는 탐욕을 피하였다.
그는 "탐욕의 탈을 쓰고" 사역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대하여서 그는 "하나님이 그 증인이시라"고 말한다(5절). 그의 목적은 복음을 전함으로써 자신을 유익하게 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의 양식을 대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우지도 아니하였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과는 달랐다.
이들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는다"고 하였다(벧후 2:3).
(3) 그는 야망이나 헛된 영광을 피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한다"(6절)고 말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돈 지갑이나 칭송을 기대하지 않았고, 인간에 의해 사랑받거나 그들로 인해 풍부해지기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또한 사람들에 의해 랍비라 불리워지며 칭송 받기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헛된 영광을 바라지 말라"(갈 5:26)고 권고할 수 있었다.
그의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예를"(요 5:44) 얻는 것이었다. 그는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그와 동료 사역자들이 사도로서 그들에게 위엄을 부릴 수도 있었고 그들에게 더 큰 경의를 표할 것을 요구한다거나 생활비를 요구할 수도 있었음을 말한다. 본문에 "폐를 끼칠 터이나"(난외주 참조)라는 말이 바로 이러한 뜻을 지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한 것은 혹 그들 중에 하나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과중한 부담이 된다고 생각할까 염려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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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자의 태도(살전 2:7-12)
이 말씀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그들 가운데서 그가 생활하던 태도가 어떠하였는지를 상기시킨다.
Ⅰ. 바울은 그와 동역자들의 태도가 부드러웠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7절)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있게 행세할 수도 있었으나 온유하고 부드럽게 그들을 대하였었다. 이러한 태도는 신앙을 전파하는데 유익하며 또한 하나님이 복음 안에서 또 복음에 의하여 죄인은 아첨을 싫어하고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 위대한 사도는 비록 자신은 아첨을 싫어하고 증오하였지만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는 (복음을 위하여) 대단히 겸손하였다. 심지어 그는 사람들의 어떠한 태도라도 다 수용(용납)하였으며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와 같이 사람들에게 친절과 따뜻함을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끌어 들이는 길은 존엄하게 다스린 것보다 바로 이렇게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 능력이 있으시다. 그것은 때때로 인간의 마음 속에 무시무시한 권능으로 임하시며 모든 공정한 심판의 타당성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한편 복음의 사역자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람들로부터 사랑(온유함)을 받을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부드러운 힘으로 임하신다.
아기를 키우는 어머니가 아기의 이유없는 보챔은 참고 무엇이든지 다 아기에게 양보하며 칭얼거릴 때 오히려 그를 가슴에 안고 젖을 물리듯이 복음의 사역자들도 사람들을 향하여 그렇게 행동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아야 한다"(딤후 2:24)고 말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온유함과 인자함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였다.
1. 그의 부모와 같은 부드러움은 그가 그들이 잘 하기를 간절히 바란 사실에 의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8절)라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다.
바울은 그들 자체를 간절히 사모하였다. 그는 그 사람들 자신을 구하였고, 그들의 가진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얻으므로, 그들에 의해서 유익을 얻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들과 무슨 흥정을 하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간절히 사모한 것은 그들의 영적인 영원한 행복과 구원이었다.
2. 그의 부드러움은 그들에게 좋은 것은 기꺼이 나누어 주려고 한 태도를 통하여 또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한다"(8절)고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바울의 설교한 태도를 보라.
그는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기꺼이 모험을 감행하였고 자기 생명과 영혼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내놓았고, 또 그 일에 쓰여지기를 바랐다.
자비의 정신에 입각하여 배고픈 자에게 양식을 준 사람들을 표현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주는 것을 "주린 자에게 영혼을 준"것이라고 하였듯이(사 58:10) 사도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인들은 바울 사도를 귀중하게 여겼고 또한 그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도 극진하였던 것이다.
3. 그의 부드러움은 그가 육체 노동을 하여 자신의 생활을 감당함으로 그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한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자기의 사역이 그들에게 부담이 되고 또 경제적 손실을 안겨 주게 되기를 바라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9절)고 말하였다.
그는 교회들로부터 급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부인하였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한편 먹을 것을 벌기 위하여 본래의 자기의 직업인 천막 만드는 수고까지 하였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자신의 육신에 필요한 것을 공급받기 위해 육체적인 노동으로 밤낮을 가림없이 일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전도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이 일을 위하여 낮이나 밤 시간의 일부를 사용하였다.
그는 낮 동안에는 사람들의 영혼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일하고 밤에는 천막을 수선함으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점이 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근면해야 할 복음의 사역자들이 그들의 생필수품을 얻기 위하여 직접일을 해서는 안 된다든지 또는 그들은 언제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일반적인 원칙을 정할 수는 없다.
4. 그의 부모와 같은 부드러움은 그와 그의 동역자들이 보여준 생활의 거룩함을 통하여 또한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거룩한 생활에 관하여 그들만 증인일 뿐 아니라 하나님도 증인이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그는 이에 대하여는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10절)고 말하였다. 그들은 사도와 그 동역자들의 외적 생활은 보았으므로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해 증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하나님은 그들이 은밀한 중에서 행한 행동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이 행동은 모든 인간에 대해서와 하나님을 향하여서 거룩하였다.
그들은 책잡힐 일을 하지 않았고,  무슨 말썽을 일으키거나 사람들을 격분시키지 아니하였다. 또한 사역자들은 외부에 있는 자에게나 믿는 자에게 나쁜 본이 되지 아니하려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설교나, 생활이 일치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고(행 24:16)말하였던 것이다.
Ⅱ. 그는 복음의 사역을 그와 그의 동역자들이 충실히 수행하였음을 말한다(11,12절).
이 사실에 관하여 바로 그들이 증인이라고 그는 말한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좋은 그리스도인일 뿐 아니라 충실한 사역자들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일반적인 소명 뿐 아니라 특수한 사명에 대하여서도 충실하여야 할 것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훈계한 것은, 그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알리려는 것 뿐 아니라, 적절한 동기와 근거를 제시함으로 그들로 그 의무를 이행하도록 환기시키고, 촉구하려는 데 있었다.
또한 바울은 그들을 위로함으로 그들의 직면하게 될 여러가지 어려움과 실망되는 일들을 앞에 놓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고 안정된 자세를 갖게 하려고 하였다.
바울은 그런 일들을 공중을 대상으로 하였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가가호호를 대상으로 그렇게 하였으며(행 20:20) 또한 한 사람씩 직접 붙잡고 그렇게 권고하였다. 혹자는 아버지가 자기 아이들을 경계하는 태도로 그가 사람들을 권고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바울의 사랑이 넘치는 열정적인 인간 관계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의 영적인 아버지였다. 마치 그는 아기를 기르는 어머니처럼 그들을 사랑하였다. 또한 그는 아버지와 같이 그들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권위있는 아버지로서 보다는 오히려 자애로운 아버지로서 그들을 경고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같이 너희를 권하려 하는 것이라"(고전 4:14)고 말하였다.
바울의 권고하는 자세는 사역자들이 특히 본으로 삼을 만한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사역자나 그 누구도 존경해야 할 그러한 자세인 것이다. 또한 그의 권고의 의도는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12절)는 말씀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을 고찰하여 보자.
1.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복음은 현재에는 우리를 은혜의 나라로 초대하고 장차 있을 영광의 나라로 우리를 초대한다. 복음은 우리의 목적인 하늘 나라와 행복에로 우리를 초대하여 또한 우리의 목적을 이루게 하는 길인 거룩함에로 우리를 초대한다.
2.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한 복음의 의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합당하게 여기시는 생을 사는 것이요. 또한 우리의 성품이나 생활태도를 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고 또한 이 특권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복음이 의도하는 바와 계획에 적응시켜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특권과 임무에 알맞게 또한 우리의 소망과 바람에 알맞게 살아야 한다. 이같이 우리는 높고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 다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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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선교 성과(살전 2:13-16)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Ⅰ.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서 그의 선교가 좋은 열매를 맺은 것에 대하여 언급한다(13절).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결과로 나타났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태도에서 그의 선교의 성과가 나타났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자 속에서 역사하시느니라"고 하였다. 다음을 유의하자.
(1) 복음의 말씀은 우리 자신과 같은 인간, 즉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감정적이며 약점을 지닌 인간에 의해 전하여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보물은 흙으로 빚은 그릇에 담아 두었다"고 말씀된 곳이 있다. 데살로니가인들이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사도들로부터 들은 것이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안에 거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말씀은 사도들이 영감을 받아 전한 것이요 또 영감에 의해 성서 속에 기록되어지게 된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 시대까지 전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거룩한 계시에 명백히 근거한 것이거나 또는 그 계시를 요약시킨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환상이나 생각을 가미하여 그것을 변형시키는 자는 최대의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변형시킨 것을 전하는 사람을 사람들에게 가장 큰 악을 행하는 것이요, 사람들은 가장 불신실하게 대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인간의 전도나 인간의 말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비난받아야 한다.
그리고 설교를 들으면서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미려함이나 설교 구성의 아름다움 또는 설교자의 목소리나 태도 등으로 기쁨을 삼으려 하고 그러한 것을 유익으로 여기는 자들도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룩하고, 지혜, 순결, 선을 갖추고 대해야 한다. 인간의 말은 그것을 말하는 인간들 자신과 같이 덧없이 멸망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거짓되고 어리석으며 변덕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고 지혜로우며 옳고 신실하시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신 분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받아드리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2. 그들이 받아들인 말씀으로 인한 놀라운 역사가 그의 선교가 성공한 증거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13절)고 말한다.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것이 유익함을 발견할 것이다. "복음은 바르게 행하는 자들에게 유익한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놀라운 효과는 복음의 하나님의 말씀임을 스스로 증거한다.
이 복음은 그들의 영혼을 회개시키며 마음을 밝히며 그들의 심령으로 기뻐하게 한다(시 19:). 성서의 진리는 이같이 그 자신의 증거가 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심령 속에서 놀랍게 역사함으로 그들 스스로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유래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방인과 같은 사람들을 확신시키기에는 충분치는 못한 것이다.
Ⅱ. 바울은 자기의 성공적이 전도의 좋은 효과에 대해 언급한다.
1. 그의 전도가 자신과 그의 동역자에게 끼친 좋은 효과.
그것이 바울이 끊임없이 감사를 드리는 좋은 이유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한다"(13절)고 말한다.
바울이 이 일에 대하여 그렇게 자주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을 보아 하나님께서 그를 신실하게 여기시고 그를 사역자로 삼으셨으며 또한 그의 사역으로 성공적이 되게 하신 사실에 대하여는 그가 늘 감사를 드려도 부족하다는 심정을 지녔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있다.
2. 그의 전도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끼친 좋은 효과.
말씀은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역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이나 선한 일에 있어서(바울이 전에 언급하였듯이)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위한 고난과 시련을 참고 견디는 데도 본이 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잇는 하나님의 교회를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14절)고 말한다.
그들은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지닌 것과 같은 용기와 인내로 또한 끈기와 소망으로 고난을 받았다.
십자가가 그리스도인들의 표시임을 명심하자. 우리가 고통에 부르심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교회를 본받도록 부르심 받은 것으로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2)고 하였다.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고통을 참을 수 있을 때 임하는 복음의 역사는 놀라운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먼저 복음을 들었다고 말한. 그리고 그들은 먼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부딪쳤던 적 가운데 가장 혹독한 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자기 동족에 대하여 특별히 분노하였다. 같은 동족 가운데서도 열심있는 신앙인도 있을 수 있고 무서운 박해자도 나올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이 둘 사이에는 신앙의 문제뿐 아니라, 혈연에 의한 유대도 깨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려 한 모든 도시에서 유대인들은 주민들을 선동하여 사도들에게 대항하게 하였다. 그들은 곳곳에서 박해를 주도한 주모자들이었다. 그런 박해는 데살로니가에서 더욱 극심하였다. 사도행전 17장 5절에 그 사실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거기에 " 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였다"고 하였다. 이 사건을 근거로 하여 바울은 불신의 유대인들의 행위를 본문에 기록하였다(15절).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그들이 복음을 절대 거부하고 있다는 표시가 되었으며 또한 그들의 사는 곳과 교회와 나라에 파멸을 자초하는 행위로써 충분한 것이었다.
(1) 그들은 "주 예수를 죽였다." 그리고 그들은 경솔하고 오만하게도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과 자기 자손들에게로 돌렸다.
(2) 그들은 "자기들의 선지자를 죽였다." 그들은 원래가 처음부터 그러하였다. 그들의 조상들도 그랬었다. 그들은 박해로 뛰어난 만족이었다.
(3) 그들은 사도들을 미워하고 할 수 있는 온갖 악행을 그들에게 가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을 박해하였고 그들을 추적하여 이곳 저곳으로 흩어지게 하였다. 그들이 주 예수를 죽였다면, 그들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였다는 것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4)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앙에 대한 감각이 전혀 마비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바른 의무를 행하는 것도 등한히 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종들을
죽임으로 하나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한 것은 그들의 가장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살인과 박해는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것으로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그것은 합리화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믿음의 본질에 이렇게 거슬리는 짓을 하였으므로 설사 그들이 어떤 신앙적인 제도 - 그것이 참 제도이든 거짓 제도이든 간에 - 에 열심을 낸다고 해도 그들은 용서될 수가 없었다.
(5)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대적이 되었다."
그들에게 있었던 박해하는 영은 사악한 영혼이었다. 그들은 참 빛을 대적하고 인간성을 거스리고 모든 인간의 행복에 대하여 대적하였고 고집불통인 악마의 세력 아래 있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에 대하여 대적하였다.
(6)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앙심 깊은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전해지는 것을 시기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얻게 함은 저희가 금하였다"고 사도는 말하였다.
구원은 길은 오랜 동안 유대인에게만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서 구원이 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시기하였고 그들이 구원길에 참여하게 된 것에 대하여 화를 냈다. 주님께서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 말할 대, 그들은 가장 격분해 하곤 하였다.
그리고 바울이 자기를 변호하여 "자기는 이방인들을 위해 보내졌다"고 말 했을 때,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은 분을 발하였다(행 22:21). 그들은 바울이 이 말씀을 하기 전까지는 참고 들었으나 이 말을 한 후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소릴 질러서 말하기를 이러한 자는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와 그것 같이 유대인들은 그들 안에 죄를 가득 채웠다. 복음에 반대하며 진보를 가로막고 귀중한 영혼의 구원을 방해하여 개인이나 한 민족의 죄의 분량을 채우는 것보다 큰 죄는 없다. 예루살렘이 파괴된 것은 이 일이 있은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유대 나라는 로마에 의해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고 그의 불의의 양이 가득 차고 그가 극도에 달할 정도로 죄를 질 때 하늘의 진노가 극렬하게 내림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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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바울의 사모(살전 2:17-20)
이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그들에게 갈 수 없게 된 것을 해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1. 바울은 그와 그의 동역자들이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이 아니라"(17절)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떠나가게 한 것은 그를 박해하는 자들의 발광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실라를 도와 베뢰아로 떠났던 것이다(행 17:10).
2. 비록 그는 몸으로 떠나 있어도 그의 마음은 그곳에 있었다. 바울은 아직도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었다.
3. 그의 몸이 떠나 있는 것은 잠시뿐이며 한동안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이 짧다. 우리의 지상에 머무는 모든 시간은 짧고, 불확실한 것이다. 우리가 친구들과 함께 있든 혹은 그들로부터 멀리 있든지 간에 인생의 시간이란 너무도 짧다.
이 세상은 우리가 함께 영원히 머물 장소가 아니다. 거룩한 영혼들이 함께 만나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곳이 있게 될 터인데 그곳은 바로 하늘 나라이다.
4. 그는 그들은 다시 만나 볼 것을 열렬하게 소망하고 노력하였다. "너희 얼굴을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17절).
바울은 잠시 동안만 그들과 헤어져 있다가 곧 다시 합류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는 데살로니가로 곧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을 바라고 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일이 어찌 마음대로 될 수 있으랴. 바울은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18절).
5. 바울은 사탄이 자기의 돌아감을 막았다고 말한다(18절).
이 사탄이란 그의 적수들 가운데 어떤 자를 말한 것이 아니면 인류의 대적 사탄을 말하는 말이리라. 그들은 바울이 그곳에 다시 돌아가려고 작정하자  그가 데살로니가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활동을 하였고 또한 그를 필요로 해서 그가 가게 된 곳마다 좇아다니며, 충동질하고 문제를 일으켰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것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6.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비록 자기의 원대로 그곳에 갈 수는 없지만 그들은 향한 자기의 사랑과 존경은 여전함을 확언한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바울의 "영광이요, 기쁨이었다." 이것은 위대한 사모하는 정과 높은 존경을 뜻하는 말이다.
사역자와 성도가 서로 상호간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를 귀히 여길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특히 만약 그들이 이와 같이 즐거워하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앞에서" 씨를 뿌린 자와 거둔 자가 함께 기뻐할 때 가장 행복할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자기가 비록 그곳에 갈 수 없을지라도 또 결코 그들에게 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들의 만남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상기시킨다.
사도는 더 나아가서 그가 오시게 될 때 모든 것이 그분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사역자와 성도들이 모드 그분 앞에 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실한 성도들은 그 위대한 영광의 날에 신실한 사역자들의 영광과 기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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