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1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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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2장 큰 구원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구원의 창시자
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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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2장 귀중한 구원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바를 더욱 굳게 간직하여, 마땅히 우리가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2.  천사들을 시켜 하신 말씀이 효력을 내어, 모든 범죄와 불순종에 공정한 보응이 내렸거든,
3.  우리가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을 소홀히 하고서, 어떻게 그 보응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구원은, 주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것이요,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확증하여 준 것입니다.
4.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표적과 기이한 일과 여러 가지 기적을 보이시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의 선물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함께 증언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창시자
5.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앞으로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에 두신 것이 아닙니다.
6.  어떤 이가 성경 어디에선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기억하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돌보십니까?
7.  주님께서는 그를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셨으나, 영광과 존귀로써 그에게 관을 씌우셨으며,
8.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사람에게 복종시키심으로써,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기로는, 아직도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9.  예수께서 다만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셔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 쓰신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를 영광에 이끌어 들이실 때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으로써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근원에서 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12.  그리하여 그는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자매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주님을 찬미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13.  또 "나는 그를 신뢰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보십시오,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4.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15.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해방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16.  실상 주께서는 천사들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도와주십니다.
17.  그러므로 그는 모든 점에서 그의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18.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당하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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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2장
1.  For this reason we must pay much closer attention to what we have heard, lest we drift away [from it.]
2.  For if the word spoken through angels proved unalterable, and every transgression and disobedience received a just recompense,
3.  how shall we escape if we neglect so great a salvation? After it was at the first spoken through the Lord, it was confirmed to us by those who heard,
4.  God also bearing witness with them, both by signs and wonders and by various miracles and by gifts of the Holy Spirit according to His own will.
5.  For He did not subject to angels the world to come, concerning which we are speaking.
6.  But one has testified somewhere, saying, "WHAT IS MAN, THAT THOU REMEMBEREST HIM? OR THE SON OF MAN, THAT THOU ART CONCERNED ABOUT HIM?
7.  "THOU HAST MADE HIM FOR A LITTLE WHILE LOWER THAN THE ANGELS; THOU HAST 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 AND HAST APPOINTED HIM OVER THE WORKS OF THY HANDS;
8.  THOU HAST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UNDER HIS FEET. "For in subjecting all things to him, He left nothing that is not subject to him. But now we do not yet see all things subjected to him.
9.  But we do see Him who has been made for a little while lower than the angels, [namely,] Jesus, because of the suffering of death crowned with glory and honor, that by the grace of God He might taste death for everyone.
10.  For it was fitting for Him, for whom are all things, and through whom are all things, in bringing many sons to glory, to perfect the author of their salvation through sufferings.
11.  For both He who sanctifies and those who are sanctified are all from one [Father]; for which reason He is not ashamed to call them brethren,
12.  saying, "I WILL PROCLAIM THY NAME TO MY BRETHREN, IN THE MIDST OF THE CONGREGATION I WILL SING THY PRAISE."
13.  And again, "I WILL PUT MY TRUST IN HIM." And again, "BEHOLD, I AND THE CHILDREN WHOM GOD HAS GIVEN ME."
14.  Since then the children share in flesh and blood, He Himself likewise also partook of the same, that through death He might render powerless him who had the power of death, that is, the devil;
15.  and might deliver those who through fear of death were subject to slavery all their lives.
16.  For assuredly He does not give help to angels, but He gives help to the descendant of Abraham.
17.  Therefore, He had to be made like His brethren in all things, that He might become a merciful and faithful high priest in things pertaining to God, to make propitiation for the sins of the people.
18.  For since He Himself was tempted in that which He has suffered, He is able to come to the aid of those who are temp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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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장 (개요)
본장에서 바울은 다음의 것을 설명하였다.
Ⅰ. 전 장에서 논하여진 그리스도의 인격이 뛰어나다는 교리를 권면과 논증의 방법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적용하였다(1-4).
Ⅱ.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뛰어남을 더욱 보충 설명하였다(5,6).
Ⅲ.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논하였다(10-15).
Ⅳ. 그리스도의 화육의 타당성을 주장하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천사들의 본성을 지니고 오시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나신 사실을 말하고 또 그가 그렇게 하신 이유를 설명하였다(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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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증(히 2:1-4)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하여 아주 논리적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즉 교리를 전제하고 그것의 근거를 밝히고 다음 그 용도를 설명한다. 
우리는 본문에서 사도가 앞서서 주장하고 증명한 진리가 적용되어 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진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사용되고 있다.  본장은 바로 이 접속자로 시작되는데 이 접속사는 본장이 전 장과 연결된 것임을 나타내 보여준다. 
전 장에서 바울은 율법을 제정한 천사들보다 그리스도가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했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복음의 섭리가 율법의 섭리보다 더 뛰어남을 주장하였었다.  이제 바울은 위의 교리를 권면과 주장의 두 가지 방법으로 구체적으로 현실에 적용하였다.
Ⅰ. 바울은 권면을 통해 전 장의 교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였다. 
본문에서 그는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삼갈지니"(1절)라고 하였다.  즉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첫 번째 방법을 들은 바를 굳게 간직하는 것임을 나타내 보여 준다. 
복음 시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일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진지하게 복음의 기준으로 삼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열심히 복음대로 행하며 그것을 늘 일고 묵상하며 신앙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하며 기억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복음에 의해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
Ⅱ. 바울이 한 주장의 방법. 
바울은 논증을 통해 전 장의 교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였다.  그는 논증을 통해 그가 준 권면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1. 우리가 들은 복음에 귀를 열심히 기울이지 아니할 경우에 우리는 큰 손해를 입을 것임을 바울은 논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고 하였다.  즉 우리는 복음을 굳게 간직하지 않으면 복음은 우리에게서 빠져나가 우리의 삶으로부터 달아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태만함으로 인해 큰 손해를 입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본문에서 다음의 사실을 배우도록 하자.
(1)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그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늘 따른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마음과 기억은 구멍이 많은 뚫린 배와 같다.  따라서 상당히 주의하지 않으면 한번 들어왔던 것도 쉽게 빠져나가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이 같은 오래 간직할 수 없음의 이유는 우리의 본성이 부패되었고 또 사탄이 간교를 부리고 우리를 대적하며(사탄은 우리에게서 말씀을 훔쳐간다) 세속의 유혹과 혼란 즉 좋은 씨앗을 질식케 하는 가시들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2) 한 번 받아들인 복음의 진리를 상실해 버리는 자들은 치명적인 손실을 당한 것이다. 
그들은 수천량의 금은보다 더 좋은 보물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종자(파종한 씨)도 잃어버리고 듣는데 소요된 시간과 고통도 잃어버리며, 추수할 희망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만약 복음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3)이러한 모든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복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복음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진실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부주의하게 듣는 자들은 들은 것을 곧 잃어버리는 자들이 될 것이다.
2. 만약 우리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율법에 복종치 않고 율법을 무시한 자들이 파멸한 것 보다 더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바울은 논하였다(2,3절).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율법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여기 기록되었다.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주어진 말씀으로 공고한 것이라"고 하였다. 
율법은 천사들에 의해 선포된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 율법은 천사들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팔을 불면서 아마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 말씀을 선포하였을 것이다.  또 심판자로서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천사들에게 두 번째로 나팔을 불게 하셔서, 모든 심판 받을 자를 모으시고, 그들이 율법대로 행하였는지 아니 행하였는지에 따라 그들이 받아야 할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또 "율법은 공고한 것이라"했다. 
율법은 불변의 약속이다.  그것은 진리이고 신실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복종 여부에 따라 그 힘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에 대한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은 공변된 보증을 받았다."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우습게 볼지라도 율법은 인간을 결코 가벼이 다루지 않을 것이다.  율법은 과거에 죄인들을 모두 심판했고 모든 시대의 모든 죄인들을 재판할 것이다. 
공의로우신 주이시며 심판자로서 하나님은 율법을 공포하시면서, 율법을 무시하고 범죄하는 자들을 벌하지 않고 그냥 두시지는 않으시고자 작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율법을 범하는 자들과 계산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불복종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서 응분의 벌을 주셨다. 
하나님이 이제까지 죄인들에게 가하였던 가장 무서운 벌일지라도 그것은 그 죄의 대가로 정당한 것이었고 죄보다 무겁게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 벌은 "공정한 응분의 대가"이다.  벌은 공정한 것이어서 죄에 상응하는 정도로 주어졌다.  복종에 대한 보상도 마찬가지로 공정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상급은 우리의 불완전한 복종에 비하여 넘치게 주어질 것이다.
(2) 복음에 대한 바울의 견해가 기록되고 있다.  복음은 구원이다. 
복음의 구원은 너무도 위대한 구원이므로 어느 구원도 이것과 비교될 수 없다.  복음의 구원은 너무도 위대하여 그 누구도 그것을 완벽하게 묘사할 수 없으며 또 그 위대성은 인식할 수도 없는 것이다. 
복음은 위대한 구원을 보여 준다.  그것은 한 위대하신 구세주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데 그는 바로 인간의 본성과 몸을 입으시고 나타나신 하나님인 것이다. 
복음은 우리의 큰 죄와 비참 가운데서 어떻게 구원될 수 있으며 또 큰 거룩과 큰 축복에로 어떻게 구원될 수 있으며 또 큰 거룩과 큰 축복에로 어떻게 돌아갈 있는가를 보여 준다. 
복음은 우리에게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시는 한 위대한 분을 알려 준다.  그리고 우리로 구원을 얻을 자격을 얻는 방법을 알려 주며 우리로 구세주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복음은 위대하고 뛰어난 은혜의 섭리 즉 새 계약을 보여 준다. 
복음을 통해 구원의 대헌장이 선포되었고 이 헌장은 계약에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약속해 준다.
(3) 복음에 대해 범하는 죄는 무엇인가를 바울은 기록하였다.  이 죄는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경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을 멸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경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인 것이다.  또한 구원에 대한 경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알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복음의 은총의 가치를 고려해 보지도 않고 또는 자신들의 복음이 결여되어 있음과 그것이 없음으로 인해 당하는 바 비참함을 생각지도 않는 것이며 복음의 진리를 깨닫거나 수궁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며, 복음의 유익함을 깨닫고 복음에 접근하고 또 자기에게 복음을 적용해 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태도들이 보여질 때 그 자는 곧 구원을 경시하는 자들인 것이다.  우리들은 복음의 은총을 멸시한 악하고 비참한 죄인들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4) 복음을 무시한 죄인들이 당할 비참성이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처벌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이 선포되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어찌 피하리요(3절)"라고 하였다.
① 위의 말씀은 구원을 멸시하는 자들을 이미 정죄 아래 있음을 뜻한다. 
즉 이미 체포되어 심판의 손길 아래 놓여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담의 죄에 의하여 저주 아래 있으며 또한 그들 스스로의 범죄를 여기에 더하므로 더욱 무거운 저주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고 하였다.
② 이 저주를 받고 나면 복음 안에서 발견되는 큰 구원의 방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빠져 나올 길이 없음을 위의 말씀은 암시해 준다. 
복음의 구원을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분노가 임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없으며,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으며 저주로부터 구제될 수 없다.
③ 위의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더욱 격렬한 저주와 심판이 있을 뿐이고 그들은 이 무서운 저주를 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심판날에 그들은 숨을 수도 없고, 자기가 행한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으며, 심판을 피할 수도 없고, 감옥을 부수고 나올 수도 없다.  그들에게 열려질 자비의 문은 다시는 없다.  또한 그들은 죄를 대속해 줄 어떠한 희생 제물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철저히 버리움을 받을 것이다.  이 같은 비참한 처지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본문은 "어찌 피하리요?"라는 질문의 형식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이 말은 매우 타당성을 띤 말씀으로써 죄인들 자신의 양심에 대한 호소인 것이다. 
이 말씀은 죄인들에게 그들이 그들의 모든 힘과 계략과 결속과 유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에서 달아날 길을 찾아 낼 수 있겠느냐는 도전인 것이다.  위대한 구원을 멸시하는 자들은 심판의 날에는 무력할 뿐 아니라 탄원이나 변명도 할 수 없게 될 것임을 뜻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심판에 대하여 이의가 있으면 말하라고 할 때 유구무언일 것이다.  또한 스스로의 양심에 의해 찔림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의 비참함은 율법의 권위를 무시한 사람들이나 또는 율법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 즉 죄를 지은 이방인들에게 그 주어지는 비참보다 정도가 심할 것이다.
3. 복음을 최초로 말씀하기 시작하신 분의 위엄과 그의 뛰어남은 논하므로 바울은 자기의 권면의 근거를 더욱 뚜렷이 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이 구원의 소식은 주님께서 처음으로 전해 주신것이요"라고 하였다(3절). 
즉 이 말은 구원의 소식은 그가 곧 여호와 이시며, 생명과 영광의 주인이시고 만물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또한 무오의 지혜와 선함과 의심할 수 없는 영원한 진실함과 충실함, 절대적인 위엄과 권위, 강력한 권능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 주셨다는 말씀이다. 
구원의 소식을 맨 처음으로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말씀하신 분은 바로 만물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였다.  그가 오시기 전에 주어진 말씀들은 유형에 불과하거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경외하고 또 인간들이 말하는 식으로는 결코 말씀하지 않는 주님에 의해 말씀되어지기 시작한 복음에 주의를 기울이리라고 기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 그리스도와 복음을 증거한 자들의 인격의 놀라움을 들어 바울은 자기의 주장을 논하였다(3,4절).  그러므로 "이르기를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저희와 함께 증거 하였노라"고 하였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복음의 전파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들은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함"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사도들과 전도자들에 의하여 수행되어지고 확증되었다는 사실이다(행 1:1). 
이 복음의 증거자들은 이같이 그리스도를 섬김으로 어떤 세속적인 생각이나 그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목적은 결코 품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증거의 목적은 오직 구세주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들 자신의 구원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선포한다는 것 뿐이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증거 하느라고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귀중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었고 또 그들 중 수다한 사람들은 이 중거를 하다가 죽기까지 하였다.
(2)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의 증거자들의 보증을 서 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그들로 그리스도와 또한 그에 의한 세상의 구원을 선포하라고 그들에게 위임하사 파송하셨음을 증거 하셨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보증이 되셨는가? 즉 그들의 마음속에 크나큰 평안을 주시고, 모든 고난을 견딜 인내를 주시고, 말로 할 수 없는 용기와 즐거움을(이런 사실은 그 증거자들 자신에게 증거가 되는 것들이었다) 주심으로써 그들의 보증이 되셨다.  또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표징과 놀라운 일과 여러 가지 기적을 나타내시고 또한 당신의 뜻을 따라 성령을 선물로 나누어 주심으로써" 그들의 보증이 되셨던 것이다.
① "표징"이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표징과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그의 능력의 표징을 말하는 것이다.
② "놀라운 일"이란 자연의 법칙과 순리를 초월하여 역사되어지는 말씀의 역사 즉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과 경이로 가득차게 하고, 설교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또 설교 내용을 열심히 탐구하도록 만드는 역사인 것이다.
③ "여러 가지 기적" 또는 능력 있는 역사란 초월적으로 강력하게 역사되어지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④ "성령의 은사"란 복음 증거자들로 그들이 불리움을 받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고 격려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성령께로부터 오는 여러 가지 은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고전 12:4 이하). 
또한 이 모든 은사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어지는 것들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우리를 믿음 위에 확고히 서게하며 우리의 소망을 확고하게 하시려는 뜻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도 표징과 놀라운 일을 행하심으로 율법의 권위와 우수성을 입증하시었었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하실 때는 더 크고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심으로 복음의 섭리가 더욱 뛰어나고 놀라운 것임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큰 이적으로 복음을 증거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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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수난의 목적(히 2:5-9)
사도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천사들보다 뛰어나다는 교리를 실제적인 생활과 연관시켜 권면한 후 다시 먼저 번의 교리 즉 그리스도의 인격이 천사들 보다 뛰어나시다는 교리로 돌아가 그 교리를 더욱 규명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 두시지는 않습니다"(5절)라고 하였다.
Ⅰ. 본문에서 바울은 부정적인 어법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인격의 뛰어나심을 주장한다.  즉 복음에 의해 주어지는 나라, 본문대로 한다면 "장차 올 세상"은 "천사들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구속자 자신의 특별한 보호와 지휘 아래 있음을 말한다.  이 말씀은 현재 교회가 존재하는 이 세상 국가나 또는 장차 올 완성된 세상(이 세상은 이 세상 임금들이 쫓겨나고 이 세상 왕국들이 그리스도와 왕국이 될 때 임하는 세상이다)이 천사들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큰 권세를 가지시고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복음을 주실 때 율법을 주실 때 하셨던 것처럼(율법의 시대는 옛 시대요 지나간 시대인데) 천사들을 심부름꾼으로 삼으시지 않으셨다.  이제 새로운 세계는 그리스도께 위임된 것이며 오직 그에게만 모든 영원하고 영적인 것에 관한 절대적인 권능이 부여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통치하신다.  그가 이같은 통치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에게는 영광이 되며 그의 교회에게는 축복과 안위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최초의 창설과 포교, 치리 또는 교회의 마지막 심판과 완성은 어는 것도 천사에게 위임된 것이 없고 오로지 그리스도에 위임된 것이 확실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천사들에게는 그런 큰 권세를 부여하지 않았고, 그의 천사들은 그런 무거운 책임을 맡기에는 너무나 약했던 것이다.
Ⅱ. 우리는 본문에서 복음의 세계가 축복 받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이 구약 성경을 통해 설명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말씀은 시편 8편 4-6절 즉 "인간이 무엇이기에 주님에게 그를 잊지 않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돌보십니까?……"는 말씀이 인용된 것이다.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에 대한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는 본문의 경우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1. 일반적으로 이 말씀은 전체 인간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겸손과 친절하심에 대하여 감격을 금치 못하게 된다.
(1)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의 사랑의 섭리에 의하여 인간들을 기억하시고 천사 다음에 두셨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격하게 된다. 
모든 인간에 대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 전서부터의 계획과 뜻에서 나온 것이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듯이 말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들을 생각하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잊혀진 바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 그가 인간을 찾아 주심에 대하여 우리는 감격하게 된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마침내 그로  하여금 인간을 찾아오시게 하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거하고 무엇이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위험 속에 우리가 처해 있으며,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자 하셔서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매일 그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자.
(3) 하나님이 인간을 이 낮은 세상에서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심에 대하여 또 그가 인간을 건물의 머릿돌이 되게 하시며, 지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으뜸 되는 존재가 되게 하시며, 육신으로 있는 이 세상에서는 천사보다 조금 낮게 하셨으나, 의로운 자의 부활시에는 천사와 동등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감격하게 한다(눅 20:36).
(4)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광과 존귀로 관씌우심에 대하여 즉 그가 영혼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시고 또 신체에는 신체대로 우수한 지체를 주신데 대하여 우리는 감격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배려로 인하여 인간은 영과 육의 세계에 동시에 속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영과 육의 세계에서 주어지는 행복을 동시에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5) 인간에게 만물을 통치할 권리와 지배권을 주신데 대하여 우리는 감격하게 된다.  즉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께 충실하며 의무를 다하는 한, 다른 동물들을 계속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인간에게 주셨다.
2. 이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으로 생각해 보자.  그리고 특별히 8,9절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그리스도를 인간에게 보내 주심으로 보여 주신 사랑의 주된 동기는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 없는 인간이란 도대체 쓸모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어떤 직책을 부여 하셨는지가 구약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여기 증언되고 있는데 이제 이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권고하셨다는 사실이다.
②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로 보내셨다는 사실이다.  때가 이르면 그리스도가 대 희생물로써 이 세상에 오시기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선약이 이루어져 있었다.
③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인간의 모습으로 지으심으로 그로 고난을 받으시고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게 하심으로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④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존재가 온전히 거룩하게 되도록 그리스도의 인성에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씌우셨다는 사실이다. 
또 헤아릴 수 없는 성령을 그에게 주시고, 삼위의 제 이위로써 거룩함을 주셔서, 신격이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충만하게 하셨다.  그는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또한 모든 인간이 가지는 죽음을 맛보심으로 즉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우며 저주스러운 십자가 처형의 쓰디쓴 순간을 맛보심으로 인간의 속죄를 이루어 주셨고 그같이 하시므로 인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시었다.
⑤ 죽음을 맛보시기까지 낮아지신 그의 겸비에 대한 보상으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씌우시고 하늘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그에게 주시고 만물을 지배하는 절대권을 주시었다. 
이같이 함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 성경의 예언이 모두 성취되게 하셨다.  구약 성경의 말씀이 이같이 온전하게 이루어진 예는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인간에게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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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고난의 목적(히 2:10-13)
그리스도의 죽음을 서술한 후 바울은 계속해서 십자가 사건의 이해되지 않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무슨 이유로 고난을 받게 했는가를 밝힘으로 또한 그의 이러한 고난에 의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받게 되었는가를 보임으로 위의 작업을 진행하였다.
Ⅰ. 하나님이 무슨 이유로 그리스도로 고난을 겪게 하셨는가를 본문은 말해 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만물은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많은 자녀들이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해서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10절).
1. 여기서 하나님이 만물의 최종 목적이요 또 만물의 제일 원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모든 것에서부터 자신이 받으실 영광을 보존하기 위해, 즉 그가 지은 모든 것이 그에게 욕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이 그에게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해 그가 인간의 구속을 이루신 것이다.
2. 본문은 인간 구원의 목적을 정하시고 그 방법을 정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1) 인간 구원을 작정하신 것도 바로 하나님이었다. 
그것은 많은 아들들을 인도하여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즉 복음의 영광된 특권을 누리게 하며 또한 장차 하늘나라에서의 영광까지 누리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었다.  영원한 영광이 될 것이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① 우리가 하늘 나라의 영광으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중생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만 한다. 
하늘나라는 유산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자녀들만이 이 상속을 받을 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② 모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구셨으니(요 1:12)"라고 하였다.
③ 비록 때와 장소에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과 몇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들이 함께 모이면 그들이 많다는 사실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는 많은 형제들 중의 장자이시다.
④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그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또한 아무리 흩트려져 있고 파가 갈라져 있다 하더라도 결국 함께 영광에로 이르게 될 것이다.
(2) 인간 구원의 방법을 정하신 것도 바로 하나님이셨다.
① 구원의 대장이 되는 사람을 정하신 것도 하나님이었다. 
구원받을 자들은 남을 구원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대장과 인도자의 지도하에서 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대장의 깃발 아래 모여야만 한다.  또한 그들은 훌륭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고난을 인내하여야 한다.  그들은 대장을 좇아야 하며, 그렇게 하는 자들만이 멸망으로부터 안전하게 인도되어 위대한 영광과 존귀를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② 우리의 구원의 대장을 고난받게 하심으로 그를 완전케 하신 것도 바로 하나님이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 되도록 하셨다(즉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그 직책에 임명하셨고 그 일을 그리스도에게 위임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완전한 대장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에 넉넉하신 주의 성령에 힘입어 지혜와 용기와 힘이 있어야 온전하시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하여 완전하게 되셨다.  즉 그리스도는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완성하셨고, 또한 그의 이러한 피흘림은 그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심에 아무 결격이 없는 분임을 나타내 주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영광에 이르는 길을 찾아 내셨다.  따라서 그의 백성들 또한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웬(Owen)박사는 고난을 통하여 봉헌되고 또 완전해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고난을 통하여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도 이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하시었다고 갈파하였다.  그러므로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 있어서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이는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  또한 이를 통하여 그들이 존귀해지고 유익을 얻게 된다.
Ⅱ.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얼마나 큰 혜택을 입게 되는가를 보여 주신다는 사실을 본문은 말해준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결코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존귀하심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위에서 고찰되었다.  여기서는 이 고난이 인간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 됨이 말씀되고 있다.  이 고난을 통해 주를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와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1. 그의 고난을 통해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 
본문에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11절)"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는 자신을 대가로 지불하심으로 거룩케 하는 성령을 인간들에게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거룩하게 하는 일의 으뜸이 되신다.  우리를 믿는 자는 거룩하게 하는 성령도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참되게 믿는 자는 거룩하게 된 자들이다.  그들은 거룩한 생활 원리들과 능력을 부여받고 추악함과 못된 생활에서 떠나 거룩하고 높은 목적을 위하여 구별된 자들이다.  왜냐하면 영광으로 이르기 전에 먼저 거룩하게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룩하게 하는 일을 주제하시는 그리스도와 이를 받아들여서 따르는 신자들은 모두 하나에서 난 것이다.  어떻게 왜 그렇게 되었는가?
(1)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모두 한 하늘 아버지 곧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심은 영원 전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경로를 통해서 정해진 것이고 또한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아버지 되심은 양자 선택과 중생의 방법을 통하여서인 것이다.
(2) 또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모두 세상의 아버지인 아담의 자손이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은 다같이 인간의 품성을 가지고 있다.
(3) 이 양자는 다같이 영적인 존재이다. 
즉 다같이 거룩하고 또 하늘나라를 지향하는 같은 영을 소유하고 있다.  비록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마음이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도 있는 것이다.  같은 성령이 그리스도와 모든 성도들은 깨닫게 하고 일하게 하신다.
2. 그의 고난을 통해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서로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된다. 
서로간의 사랑은 그들의 연합의 필연적 결과이다.  저자는 처음에 이 사랑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선포하고 이 관계를 설명하고 증명하게 위해 구약에서 세 구절을 인용한다.
(1) 저자는 이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선언한다. 
위에서 그리스도와 모든 믿는 자들은 다 하나에서 낳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신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그리스도와 믿는 자는 형제이다. 
육체적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형제이다.  또한 혈통으로 볼 때도 서로 형제이다.  지상에서의 관계에서 볼 때 그러하듯이 하늘 나라에서 관계에서 볼 때도 그러한 것이다.
② 그리스도는 이런 관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신다.  사람들의 본래적인 비열함과 죄에 의해 악해진 것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형제로 부르신 사실은 그의 놀라운 선하심과 겸비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자는 누구나 결코 부끄럽게 여기시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를 위하여 부끄러움을 당하고 욕을 먹는 것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2) 저자는 구약 성경에서 세 구절을 예로 들어 위의 사실을 설명한다.
① 저자는 먼저 시편 22장 22절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는 말씀이 인용되고 있다. 
이 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뛰어난 예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편 22장은 또한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의 말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씀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이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예언된다. 
첫째,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의 교회 또는 회중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를 기꺼이 따르는 추종자들은 지니실 것이 예언된다. 
둘째, 이들 추종자들은 서로서로 형제가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도 형제가 될 것이 예언된다. 
셋째,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 즉 그의 품성과 속성과 의지와 마음을 형제들에게 선포할 것이 예언된다.  사실 그리스도는 우리가운데 거하시는 동안, 아버지의 이름을 몸소 전하시었고 그리고 후에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그들로 세상 끝날까지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하셨다. 
넷째,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할 것이 예언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목적하신 것은 바로 아버지의 영광이었다.  그리스도의 심정은 오직 이 사실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이 영광을 위해 자신을 내놓으셨다.  그리고 그는 그의 백성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그와 함께 참여하도록 하시었다.
② 저자는 둘째로 시편 18장 2절의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시 18:2)"는 말씀을 인용하였다. 
이 내용은 그리스도의 유형인 다윗이 당한 역경을 설명하고 어떻게 다윗이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신성을 지니신 이외에 또다른 본성 즉(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성을 지니셨음을 보여 준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의 도움을 필요로 하였다.  주는 우리의 머리요 지휘자로서 고통을 당하시고 또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형제들도 역시 고통을 겪어야 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한다.
③ 저자는 셋째로 이사야 8장 18절의 "볼지어다.  나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사 8:18)"는 말씀을 인용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참 인간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왜냐하면 양친과 그의 자녀들은 같은 천성을 타고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자녀들은 아버지께서 자신의 영원한 사랑의 섭리를 통하여 그에게 주신 사람들인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평화의 계약에 의해 실현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회개하므로 그리스도에게 주어진다. 
그들이 그의 약속을 확신할 때, 그리스도는 그들을 영접하시고 지배하시며 그들을 미쁘게 여기시며 그들의 모든 일을 완전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하늘 나라로 데려가시며, 거기서 하나님께 그들은 대면시키신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에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이 나와 함께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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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육신(히 2:14-18)
위의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계속 주장한다.  즉 그가 천사의 속성을 지니고 오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성육의 이유와 목표를 제시한다.
Ⅰ.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므로 "진실로 그는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셨다"고 하였다(16절)(역주: 한글 개혁과 다소 틀림). 
그리스도는 혈과 육을 지니셨다.  그가 하나님으로서는 영원부터 선재 하셨으나 때가 이르자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에 인간의 본성을 입으시므로 참 인간이 되셨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붙들려 하심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려고 오셨다.  천사들이 타락했을 때 그는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셨고 희망이나 도움도 없이 죄의 지배와 수치와 버림받은 상태를 그대로 지니게 하시었다.  그리스도는 결코 타락한 천사들의 구세주가 되려고 계획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계보가 타락되자 그대로 내버려 두시되 영원히 그대로 남아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본성을 입지는 않으셨다.  왜냐하면 천사들의 본성을 지니셔서는 천사들이 인간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회복하고 타락으로부터 그들을 구해내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인 한 사람으로 나심으로 인성을 입으셨고 또한 죄를 범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그가 이렇게 하심은 인간에게 희망을 던져 주시고 또 그들 모두가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혜택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를 통하여 많은 죄인들에게 희망과 도움이 있게 되었다.  여기서 모든 인간에 대한 충분하고 적절한 대가가 치루어짐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우리를 구원하게 보여 주신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보여 주신 특별한 자비를 활용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Ⅱ.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이유와 계획이 선포되고 있다.
1. 본문에서 보면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하시어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고 하였다(14,15절). 
그가 그렇게 인성을 입으신 이유는 죄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채울 수도 없었고 또 인간들을 희망이 있는 상태로 끌어올리며 또한 믿는 자들을 하나님에게는 자녀로 또 그리스도에게는 형제로 끌어올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는 죽어야 하는 인간이 되었다.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죽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자신이 인간성을 입으므로 당할 고난을 아셨고 또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알았음에도 자진하여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율법에 의한 제사와 제물로 인간의 죄를 속해 주실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몸을 입고 태어나셨고 그랬기에 그리스도에 "주여 내가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왔나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3. 그는 "자신이 죽으심으로써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었다"(14절). 
마귀는 최초의 죄인이며, 죄의 최초의 유혹자였다.  그리고 죄는 죽음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탄은 인간을 죄로 이끌고 또 그 길을 사망의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때로 사망의 두려움으로 인간의 양심을 위협하며 또한 그가 하나님의 공의의 집행자이기 때문이며 또 인간의 인체에서 그들의 영혼을 끌어내어 심판을 받도록 하나님의 재판 자리까지 데려가 거기서 저주를 받게 하며 또한 인간의 유혹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는 죽음의 세력을 잡은 그를 멸하사 다시는 그로 하여금 아무도 영적인 죽음에 처하게 하지 못하게 하셨고, 또한 아무것도(죽음의 치명적 요인인) 죄에로 끌어들이지 못하게 하셨으며 또 사람들의 영혼을 주장치도 못하게 하시었다.  그리고 자진하여 마귀에 노예가 되기를 바라고 하나님께 대적을 고집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형을 집행하지 못하게 하셨다.
4. 그리스도는 인간들이 자주 경험하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셨다. 
여기서 "한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이란 특별히 예속의 영 아래 있었던 구약의 성도들을 두고 한 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생 불멸에 대한 지식이 복음에 의해 제시된 것처럼 그들에게 밝히 제시되지는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는 본문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혹은 그것이 신약이든지 구약이든지를 막론하고 자주 죽음과 영원한 삶에 대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동을 느끼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킨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되고 죽으신 것은 인간들로 죽음은 이미 정복된 적일 뿐만 아니라 두려울 것이 없는 친구와 같은 것임을 알게 하고 또한 죽음이란 영혼에게 해를 입히고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버리기 위해 보내진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그들의 모든 슬픔과 불만을 종식시키고 영생과 축복의 길로 영혼을 이끌기 위해서 보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그들을 영혼의 불안에서 구해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사탄의 지배 아래 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죽음은 사탄의 하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하인이 되었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이에게는 죽음은 사탄의 손길을 따라 지옥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되었다.
5. 그리스도는 형제들과 닮게 지어지셨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공의와 영예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그의 백성들을 지지하시고 위로하시는 두 가지 일을 다 감당하는 자비롭고도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는 충실하시고 인간에게는 자비로우셔야만 했다.
(1)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이루셔야만 했던 일.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명예를 충족시켜 드리는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공의가 손상됨이 없이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사하실 수 있게 하며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그의 인격을 손상시킴이 없이 인간을 원상 회복시키며 하나님과 인간을 온전히 화해하는 일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편에서 감당해야 할 임무였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불화와 투쟁이 있었으나 그러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시고, 죽음으로써 그 갈등을 중단시키고 훨씬 더 관계를 아름답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은혜와 우정으로써 받아들이시게 하였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그가 감당하셔야 했던 일. 
그것은 곧 그의 백성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자기가 시험을 당하여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18절)"고 하였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① 그리스도의 수난. 
본문에 보면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고 하였다.
② 그리스도의 자비. 
"그리스도는 시험받는 자들의 능히 도우실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의 약함을 친히 아셨다.  또한 그는 부드러웁고 기술이 좋고 동정심 많은 의사이셨다.  그리스도는 유혹 아래 있는 영혼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가를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러한 같은 병을 앓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혹과 영혼의 고민을 통해 인간의 아픔을 체험하셨다.  그리스도 자신이 겪은 슬픔과 유혹에 대한 기억이 그로 하여금 그의 백성들이 당하는 시련에 모두 관심을 지니게 하셨고 그들을 도울 수 있게 하였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첫째, 아무리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많은 유혹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유혹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일랑 품지 말도록 하자. 
둘째, 유혹 때문에 우리 영혼은 고민과 위험 속에 처하게 되며 그러기에 우리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셋째, 그리스도는 그러한 유혹 속에 서 있는 사람들로 자신을 따르도록 도와주신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자신이 인간이었고 유혹을 받았었기 때문에 믿는 자들을 여러 가지로 훨씬 잘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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