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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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7장 멜기세덱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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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7장 멜기세덱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여러 왕을 무찌르고 돌아올 때에, 그를 만나서 축복해 주었습니다.
2.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란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요, 다음으로, 그는 또한 살렘 왕인데, 그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아서, 언제까지나 제사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4.  ○그가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족장인 아브라함까지도 가장 좋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쳤습니다.
5.  레위 자손 가운데서 제사장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자기네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비록 그 백성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율법을 따라 열의 하나를 받으라는 명이 내려 있습니다.
6.  그러나 멜기세덱은 그들의 족보에 들지도 않았는데, 아브라함에게서 열의 하나를 받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그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7.  두말 할 것 없이 축복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받는 법입니다.
8.  한쪽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십분의 일을 받고, 다른쪽에서는, 살아 계심이 입증되신 분이 그것을 받습니다.
9.  그렇게 말하면,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까지도 아브라함을 시켜서, 십분의 일을 바친 셈이 됩니다.
10.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에는, 레위는 아직 그의 조상 아브라함의 몸 속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11.  ○그런데 이 레위 계통의 제사직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으로 지령을 받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제사직으로 완전한 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아론의 서열이 아닌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다른 제사장이 생겨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12.  제사 직분이 변하면, 율법에도 반드시 변화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13.  이런 말이 가리키는 그는 다른 지파에 속한 분입니다. 그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제단에 종사한 적이 없습니다.
14.  우리 주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나신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지파와 관련해서는, 제사장들에 관해 아무것도 말한 바가 없습니다.
15.  ○멜기세덱과 같은 모양으로 다른 제사장이 생기면, 이 사실은 더욱더 명백합니다.
16.  그는 제사장의 신분을 규정한 율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생명의 힘을 따라 되셨습니다.
17.  그를 두고서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서 영원히 제사장이다" 한 증언이 있습니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무력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게 되었습니다.
19.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20.  ○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레위 계통의 사람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2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주께서 맹세하셨으니, 주께서는 뉘우치지 않으실 것이다. 너는 영원히 제사장이다" 하셨습니다.
22.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는 더 좋은 언약을 보증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23.  ○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그 수가 많아졌습니다.
24.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원히 계시는 분이시므로, 제사장직을 영구히 간직하십니다.
25.  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26.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제사장으로 계시기에 적격이십니다. 그는 거룩하시고, 순박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구별되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입니다.
27.  그는 다른 대제사장들과는 다릅니다. 다른 제사장들은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지만 그는 이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를 바치셔서, 단 한 번에 결정적으로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28.  모세의 율법은 사람들을, 약점이 있어도, 대제사장으로 세우지만, 율법이 생긴 다음에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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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7장
1.  For this Melchizedek, king of Salem, priest of the Most High God, who met Abraham as he was returning from the slaughter of the kings and blessed him,
2.  to whom also Abraham apportioned a tenth part of all [the spoils], was first of all, by the translation [of his name], king of righteousness, and then also king of Salem, which is king of peace.
3.  Without father, without mother, without genealogy, having neither beginning of days nor end of life, but made like the Son of God, he abides a priest perpetually.
4.  Now observe how great this man was to whom Abraham, the patriarch, gave a tenth of the choicest spoils.
5.  And those indeed of the sons of Levi who receive the priest's office have commandment in the Law to collect a tenth from the people, that is, from their brethren, although these are descended from Abraham.
6.  But the one whose genealogy is not traced from them collected a tenth from Abraham, and blessed the one who had the promises.
7.  But without any dispute the lesser is blessed by the greater.
8.  And in this case mortal men receive tithes, but in that case one [receives them], of whom it is witnessed that he lives on.
9.  And, so to speak, through Abraham even Levi, who received tithes, paid tithes,
10.  for he was still in the loins of his father when Melchizedek met him.
11.  Now if perfection was through the Levitical priesthood (for on the basis of it the people received the Law), what further need [was there] for another priest to arise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and not be designated according to the order of Aaron?
12.  For when the priesthood is changed, of necessity there takes place a change of law also.
13.  For the one concerning whom these things are spoken belongs to another tribe, from which no one has officiated at the altar.
14.  For it is evident that our Lord was descended from Judah, a tribe with reference to which Moses spoke nothing concerning priests.
15.  And this is clearer still, if another priest arises according to the likeness of Melchizedek,
16.  who has become [such] not on the basis of a law of physical requirement, but according to the power of an indestructible life.
17.  For it is witnessed [of Him], "THOU ART A PRIEST FOREVER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18.  For, on the one hand, there is a setting aside of a former commandment because of its weakness and uselessness
19.  (for the Law made nothing perfect), and on the other hand there is a bringing in of a better hope, through which we draw near to God.
20.  And inasmuch as [it was] not without an oath
21.  (for they indeed became priests without an oath, but He with an oath through the One who said to Him, "THE LORD HAS SWORN AND WILL NOT CHANGE HIS MIND, 'THOU ART A PRIEST FOREVER'");
22.  so much the more also Jesus has become the guarantee of a better covenant.
23.  And the [former] priests, on the one hand, existed in greater numbers, because they were prevented by death from continuing,
24.  but He, on the other hand, because He abides forever, holds His priesthood permanently.
25.  Hence, also, He is able to save forever those who draw near to God through Him, since He always lives to make intercession for them.
26.  For it was fitting that we should have such a high priest, holy, innocent, undefiled, separated from sinners and exalted above the heavens;
27.  who does not need daily, like those high priests, to offer up sacrifices, first for His own sins, and then for the [sins] of the people, because this He did once for all when He offered up Himself.
28.  For the Law appoints men as high priests who are weak, but the word of the oath, which came after the Law, [appoints] a Son, made perfect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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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개요)
그리스도의 제사직에 대한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필요 불가결한 것이며 그 내용 자체도 탁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즐거이 이 주제를 깊이 있게 상고한다. 유대인들은 제의 제도를 필요 불가결한 요소로 간주하였고 그랬기에 제사장직을 대단히 귀한 것으로 여겼다. 이 제의 제도가 신성하고 뛰어난 제도라는 것은 그들에게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선지자의 다음과 같은 경고 즉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동안 왕도 없고 제사장도 없고 제사도 드리지 못하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리라"(호 3:4)는 경고를 가장 무서운 경고로 여겼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므로 더욱 더 높은 계열을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더욱 훌륭한 분을 대제사장으로 모시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렇게 하면 그들에게 더욱 은혜로운 섭리와 약속이 주어질 것이고 또한 더 좋은 규례가 주어질 것이라고 확언하였다. 바울은 제 7장에서 바로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였다.
Ⅰ. 멜기세덱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1-3).
Ⅱ. 아론의 제사직보다 우월한 멜기세덱의 제사직(4-10).
Ⅲ. 위에서 언급된 모든 내용을 그리스도에게도 귀결시킨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직책과 그의 약속의 뛰어난 우수성을 입증하고자 하였다(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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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의 제사직(히 7:1-10)
전 장은 전에 인용한 시편 110편 4절을 다시 반복 인용함으로 끝나고 있다.  즉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는 말씀으로 전 장은 종결되었다. 
이제 본장은 6장 20절의 내용을 본문으로 한 설교와 같다고 볼 수 있겠다.  본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앞에서 말한 질긴 고기를 히브리인들 앞에 내놓는다.  그는 그들이 더욱 노력함으로 이 고기도 소화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Ⅰ. 첫 번째로 바울은 "멜기세덱이 누구인가?"하는 문제로 다루었다. 
구약에서 멜기세덱에 관해 설명해 준 곳은 창세기 14장 18절 이하와 시편 110편 4절이 전부이다. 
우리는 정말로 멜기세덱에 대해서 모르는 점이 너무 많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멜기세덱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셨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이 멜기세덱이 바로 그리스도에 의하여 보다 생생하게 부각되게 하시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다. 
이같이 구약이 나타내 주고 있는 멜기세덱에 대한 묘사가 불분명하므로 주어진 계시 즉 그리스도에게서 멜기세덱의 참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일까 하는 끊임없는 상상의 미로를 방황하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멜기세덱을 천사라고 상상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성령이라고 상상할 것이다.
1. 이 멜기세덱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냐에 대한 구구한 의견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고찰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1) 유대의 랍비들과 대부분의 유대 저작자들은 멜기세덱을 노아의 아들인 셈이라고 생각한다. 
이 셈은 그들의 선조들의 왕이요 제사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셈을 구태여 멜기세덱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불렀겠느냐 하는 것이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셈이 가나안에 정착해 살았었다는 설명이었기 때문이다(이에 비하면 멜기세덱은 가나안에 정착한 것으로 창세기에 되어 있다).
(2) 많은 그리스도인 저자들은 그를 예수 그리스도라 생각한다. 
이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에 대한 특별한 우호의 표시로 그에게 나타난 것이요, 이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요한 복음 8장 56절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입증된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구구한 견해들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사실 3절에서 언급된 내용을 볼 때 이 멜기세덱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유형으로 나타나셨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3)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멜기세덱이 가나안의 왕이라는 점이다. 
그는 살렘을 다스렸고 참된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신앙을 지켰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한 유형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였고 그러기에 아브라함에 의하여 그런 영광을 받았다는 것이다.
2.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이러한 추측을 벗어나서 바울이 이 멜기세덱에 대하여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 바울이 이 멜기세덱을 통해 그리스도를 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1-3절).
(1) 멜기세덱은 왕이었으며 주 예수 또한 왕이었다. 
즉 하나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신 것이다.  정사(政事)가 그의 어깨 위에 있으며 또한 그는 자기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들을 다스린다.
(2)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었다. 
그의 이름이 "의로운 왕"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의로우시고, 의로운 왕이시다.  그의 이름이 의롭고 또한 그의 다스림이 의로우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의 구세주이시다.  그는 모든 의를 완성하셨고, 영원한 의를 수립하셨으며, 또한 의와 의인을 사랑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신다.
(3)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었다. 
즉 평화의 왕이었다.  그는 의의 왕인 동시에 평화의 왕이시다.  우리의 주 예수 역시 평화의 왕이시다.  그는 그의 의로 인하여 평화를 이룩하셨다.  의의 열매는 평화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평화를 말씀하시고, 평화를 창조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평화의 창조자이신 것이다.
(4) 멜기세덱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제사장"이었으며 이방인의 제사장으로 특별한 자격이 주어졌고 또 특별한 방법으로 기름 부음이 주어졌다. 
주 예수 역시 그러하시다.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주 예수를 통하여서만이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  우리가 죄의 용서와 화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제사장직을 통하여서인 것이다.
(5)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시다"(3절). 
이 구절은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성경은 멜기세덱을 특별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소개하고자 한다는 사실만 인식하면 족하다.  본문에서 멜기세덱을 그렇게 소개한 것은 멜기세덱이 그리스도의 유형으로서 확실히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아버지 없이 태어나셨고 그가 신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는 어머니 없이 태어나셨던 것이다.  그의 제사장직 역시 계승된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에게 상속된 것도 아니도 그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상속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그의 독점물로 영원히 그의 것이다.
(6) 멜기세덱은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였다." 
이 기사는 창세기 14장 18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과 그의 종들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 주어 기운을 회복하게 하여 주었다.  멜기세덱은 왕의 입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며, 제사장의 입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주었다.  이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자기 백성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회복하여 주시며, 그들의 원기를 새롭게 하시고 축복하여 주신다.
(7)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2절)".  즉 그의 전리품 가운데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이 자기를 위하여 행한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준 것이며"라고도 할 수 있겠고 또는 왕이신 멜기세덱에게 복종과 신하의 예절을 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는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한 예물을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통해 하나님께 바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풍부하고 거룩한 은총에 대하여 주 예수께 사랑과 감사로 보답해야 할 것이며, 또한 우리의 왕이신 그에게 충성하고 복종해야 할 것이며, 우리의 모든 예물을 그에게 맡김으로 아버지께 봉헌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8)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으신다." 
멜기세덱은 경건성과 권위에 있어서 하나님과 방불하시었다.  불멸하는 대제사장이었다.  또한 멜기세덱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하신 외아들이시며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고대의 유형인 것이다.
Ⅱ. 이제(사도 바울이 충고하는 대로) 이 멜기세덱이 얼마나 위대하였고, 또 그의 제사직이 아론의 제사직의 계열보다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하여 보기로 하자(4,5절).  바울은 본문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생각하라"고 하였다.  멜기세덱의 인격과 그의 제사장직의 위대성은 다음 사실로 나타난다.
1. 아브라함이 자기의 모든 전리품 가운데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다는 사실을 통해 나타난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으므로 따라서 그의 후손인 레위도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이 되는 것이다(9절). 
레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대제사장직을 부여받아 백성들로부터 십분의 일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욱 높고 위대한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던 것이다.  따라서 멜기세덱의 원형으로써 후에 나타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는 레위대제사장들보다 높은 대제사장인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레위인들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위형인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하여 선조들이 행한 의로움이나 또는 불의로운 일이 다 그 후손에게 물려진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따라서 아담 안에서 우리도 범죄한 것이며 그의 범죄를 통해 우리도 그와 함께 타락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이미 그의 허리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우리에게 물려 준 인간성을 물려받았고 또 그와 함께 죄와 부패를 물려받은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죄와 부패는 본래적으로 주어졌다고 하겠다.  인간들이 모두 그 죄된 특성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이다.  따라서 이런 죄된 특성이 죄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은총의 행위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2.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 축복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나타난다.  이에 대해 본문은 "멜기세덱이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다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6,7절)"고 하였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아브라함이 지닌 놀라운 특권 즉 그는 약속을 받은 자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계약 관계를 맺은 사람이며 하나님은 그에게 대단히 위대하고 귀중한 약속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손수 축복하시고 또 그 축복을 보증해 준 사람은 진정 부자이며 행복한 자이다.  이 하나님의 약속은 현세와 내세에 대한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은 이 약속을 얻게 된다.  예수 안에서 모든 약속은 틀림없이 실현되는 것이다.
(2) 아브라함보다 더 큰 특권을 지닌 멜기세덱. 
그는 아브라함을 축복할 위치에 있었고 또 그런 특권이 그에게 있었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는다"(7절)는 것은 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축복을 주는 사람은 축복을 받는 자보다 위대하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원형이시오 그보다 더 공로가 크시며 인간들에게 모든 축복을 주시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는 아론의 계열에 속한 모든 제사장들보다 위대하심에 틀림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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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과 그리스도(히 7:11-28)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아니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다른 제사장이 일어나야 하는 필요성이 본문에 말씀되고 있다. 
그 이유는 레위 제사직에 의해 인간의 완성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었으므로 이것을 이룰 또다른 제사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Ⅰ. 레위 계통의 제사직분과 율법으로는 완전함을 기할 수 없음이 주장된다. 
레위족 제사장들은 그들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전해 준 아름다운 축복들을 그들로 완전히 누리게 해 줄 수는 없었다.  다만 그들은 그리로 이르는 길을 보여 줄 수 있을 뿐이었다.
Ⅱ.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또다른 제사장이 세워져야만 했다. 
그를 통해 또 그의 믿음의 계율을 통해 그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함이 성취될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따라서 은혜의 언약 가운데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한 거룩성과 완전한 축복을 소유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케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런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도록 하자.
Ⅲ. 제사장직이 변화되어야 하므로 따라서 율법도 변화될 필요성이 있음이 주장되고 있다. 
제사장직과 율법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다른 제사장직 아래서는 다른 계율 아래서 시행되어져야만 하며,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여야 한다.  이 제사장직은 그 제사직의 성격과 계열에 합당한 계율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
Ⅳ. 제사장직과 율법이 바뀌어야만 된다는 것이 주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 입증되고 있다(13,14절). 
그것에 의해 믿는이들의 완전함을 도래케 할 수 없는 바 제사장직과 율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그에 의하여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완전케 되는 것이다.  제사장이 일어나고 다른 계율이 있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제사직의 어떤 변화가 있는가를 살펴 보자.
1. 제사장직이 계승되는 지파가 변하였다. 
이전에는 제사장직은 레위 족속에서 속해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위대한 대제사장은 유다 지파에서 세워지셨는데 모세는 이 지파에게서 제사장이 나리라고 말한 적은 결코 없었다.  이같은 제사장 가문의 계울이 바뀌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2. 제사장을 세우는 순서와 형식이 변하였다. 
이전에 레위 지파가 제사장직을 맡을 때 그들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절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쫓아 제사장이 되셨다. 
레위 제사직에 대한 규례는 아버지가 죽을 때 그 직분을 큰아들에게 계승되도록 정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부모가 없이 또 족보가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따라서 부모 없이 대제사장되는 것은 불가능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 가운데 생명과 불멸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였다.  그들에게는 생명의 시작과 생명의 종말이 있었다.  그래서 육체에 상관된 계명 또는 장자의 상속법을 마치 시민권이나 유산이 상속되는 것처럼 제사직도 상속되도록 규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을 제사장으로 그 계율은 "무궁한 생명을 좇아" 정해진 것이었다.  그리스도 자신이 가지고 계시는 생명과 불멸성이 그에게 제사장의 칭호와 권리를 부여해 주었고 그것은 결코 전의 제사장들에게서 계승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실은 제사장직과 그 제사직의 경륜의 커다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 이런 사실은 그리스도의 그의 복음의 무한한 우수성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레위 지파에서 제사장을 세우도록 정하고 있는 율법은 제사장들이 연약하고 가시적이며 피조물이며 그들 자신의 본래적인 생명을 보존할 수도 없으며 다만 자기들을 계승할 후손이 있는 것으로 만족히 여겨 기뻐해야 하는 존재들임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권세나 능력으로는 자기들에게 오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거나 영적인 생명을 공급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고백의 대상이신 대제사장께서는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지니고 계신다.  즉 그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보존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희생과 중보에 의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이며 영원한 생명을 전달해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신 것이다. 
어떤 주석자는 "육체의 상관된 계명"이라는 말을 형식적인 봉헌 의식과 또한 물질적 제물에 규정된 계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궁한 생명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된 영적이고도 영원한 특권을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3. 제사장직을 통해 주어지는 효능이 변하였다. 
전자는 연약하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아무것도 완전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더 나은 희망과 가져다 주는 것으로 그것에 의해 우리들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18,19절). 
레위인들의 제사장직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은 죄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면케 함으로 인간을 의롭게 하지도 못하며 인간을 죄로 깊이 오염된 상태에서 끄집어내어 거룩하게 할 수도 없다.  또한 그것은  예배자들로 죽음에 이르는 행실을 떠나게 해 주지도 못한다.  그것은 다만 사람들을 그것의 원형인 그리스도에게도 안내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더나은 희망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품고 있는 용서와 구원에 대한 모든 희망의 참된 근거를 보여 준다.  또한 그 제사장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용납 받을 수 있다는 강하고 생명에 넘치는 희망을 지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이 희망을 통하여 우리는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며 하나님과의 계약을 맺게 되며 하나님과 교통하며 친교하는 생활을 살게 되는 것이다.
4.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악한 것을 내어버린 참 마음과 믿음의 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레위 제사장직은 다만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영적인 속박상태에 머물게 하였던 것이다.  이 제사장직을 시행하신 하나님의 방법이 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 대하여 맹세하시었다.  그러나 그는 아론의 반열에서 나온 어떤 제사장에게도 맹세하신 일은 없으셨다.  하나님은 아론의 반열의 제사직이 영원하리라는 것을 확언하지도 않으셨고 그들의 제사장직이 영원할 것이라고 맹세하거나 약속하신 적이 결코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그들의 제사직이 영속하리라는 기대를 지닐 까닭은 없었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일시적인 계율로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서약에 의해 보증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21절)"라고 하였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영원성과 효력의 탁월성 그리고 불변성을 맹세로써 보증하였다.
5. 계약의 내용이 변하였다. 
이제 제사장직은 안전하게 되었고 제사장은 보증인이 되셨다.  율법의 섭리에 비하여 복음의 섭리를 좀더 완전하고 자유로우며 명료하고 영적이며 능력이 있게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는 이 복음의 계약에 의해 하나님께 우리의 보증을 서 주셨고 또 인간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보증이 되시었다.  그는 이 복음의 계약이 양쪽에서 다 유효하게 하시었다.  그는 양쪽의 보증을 다 세시기 위해 그분의 인격안에 신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지니고 계셨으며, 그것으로 화해의 보증이 되신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보증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을 영원한 언약의 끈으로 함께 묶으시었다.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그들의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도록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신 그의 언약을 지키실 것을 탄원하신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권세와 영광이 손상되심이 없이 즉 자신의 중보자로서의 입장을 십분 발휘하여 이 일을 행하신다.
6. 제사장의 수효가 변하였다. 
아론의 반열에는 많은 수의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있었다.  그들은 단번에 대제사장이 된 것은 아니고 계속적으로 제사장직은 후대에게 계승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일회적이며 변함이 없으시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레위인의 제사장들은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직분이 아무리 높고 영예로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죽음으로부터 그들의 직분을 보존할 수도 없다.  제사장이 죽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이 그 뒤를 계승했고 그가 죽으면 또 다른 사람이 계승하였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의 수효는 무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그의 대제사장직은 ‘아파라바톤’(7:24) ─ 즉 갈리지 아니한다.  그것은 레위인 제사장직같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대제사장직은 항상 같은 분의 손 안에 있다.  이 제사장직은 비어 있는 일이 없다.  따라서 그의 백성들은 이 제사장이 없이 하늘나라와 영적 관계를 맺게 되는 법은 결코 없다.  제사장직이 공석으로 있게 된다면 사람들은 대단히 불리하고 위험스러운 지경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그리스도가 제사장직을 맡으신 후에는 이런 제사장직의 공백은 없게 되었다.  즉 항상 살아 계신 이 대제사장께서는 언제나 어느 경우에나 매순간마다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25절).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도 좀더 나은 변화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7. 제사장의 자격 또한 변하였다. 
아론의 반열에 의해 제사장된 사람들은 죽어야 할 존재들일 뿐 아니라 죄된 존재들이었다.  즉 그들의 인간적인 허약성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죄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우선적으로 자기들의 죄를 위하여 속제물을 바치고 그리고 백성들을 위하여 속제물을 드려야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맹세로써 세우신 우리의 대제사장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제물을 드릴 필요는 없고, 오로지 백성들만을 위하여 제물을 드리면 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그분의 직분 자체가 불변적인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인격 또한 변함이 없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러한 대세사장은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26-28절)라고 한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1) 죄인으로서의 우리는 우리를 중보하시고 속죄해 주실 대제사장을 필요로 한다.
(2) 그분의 인격 안에 완전한 의를 가지고 계시는 그리스도 이외에는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기에 충분하거나 또는 적당한 제사장이 없다.  이러한 제사장은 자신이 먼저 의로와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제사장은 우리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의 대변자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3) 주 예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그러한 대제사장이시다.  왜냐하면 주 예수께서는 인격적 거룩성과 절대적인 완전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거룩성이 여러 가지 용어로 표현되고 있음을 유의하자.
① 그리스도는 거룩하시다. 
즉 죄의 습관과 죄의 본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시다.  그리고 그분의 품성 안에는 최소한의 죄에 대한 성향도 있지 아니하시다.  그리스도의 안에는 아무런 죄도 거하지 아니하신다.  비록 가장 선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안에는 죄의 성향이 죄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리스도 안에는 적은 죄된 성향도 찾아 볼 수 없다.
② 그리스도는 악이 없으시다. 
그는 모든 종류의 악행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시다.  그는 죄를 범하신 일이 없으시며 그의 입에는 제사가 없으시며, 하나님과 인간에게 최소한의 잘못도 하지 아니하셨다.
③ 그리스도께는 더러움이 없으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죄를 부추기지도 아니하셨다.  가장 선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다른 사람의 죄를 방관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 죄를 짓도록 간접적인 방법으로 부추기거나 또는 그들이 죄를 짓지 아니하도록 막아주지 못하므로 결국 그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지기가 십상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더러움이 없는 분이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으니, 그분은 결코 우리의 죄와 잘못에 연루되시지는 않으셨다.
④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로부터 떠나 있으시다. 
그는 그의 지위에 있어서 흠이 없으시며(그러므로 그는 더러운 것을 결코 들어 갈 수 없는 지성소에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들어가실 수 있었다) 그의 인격에 있어서도 순수하시다.  그가 죄인들과 합세하신 적은 없으셨다.  그는 본성적으로도 죄가 없으시며 죄인들과 결속하신 일도 없으시다.  원죄는 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아담에게서 태어났고 또 아담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원죄는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는 평범한 아담의 후예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동정녀에게서 나심으로 죄인들로부터 떠나서 존재하시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참 인성을 취하셨으나 기적적인 방법에 의해 수태되심으로서 다른 모든 인류들과는 구별되시는 것이다.
⑤ 그리스도는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시이다. 
대부분의 주석자들은 이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받으신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그가 제사장직의 계획을 완성시키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구드윈(Dr. Goodwin) 박사는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적 거룩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그리스도의 인격적 거룩성은 천사들의 거룩성보다 더 완전하고 위대한 것이다. 
비록 거룩한 천사들은 죄에서 자유로웁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니(욥 4:18)"라고 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의 천사들까지도 연약하다 하시며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신다는 말이다.  이 영적인 존재들인 천군은 한 순간에는 천사 노릇을 하다가 다음 순간에는 악마로 변모될 수도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실상 많은 천군들이 이러한 잘못을 범하였다.  현재 타락되지 않은 거룩한 천사들은 그들의 본성이 흠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천사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천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하는 말씀을 억지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영광 받으심으로 보기보다는 그리스도의 품격의 완전한 거룩성을 말함으로 이해함이 옳은 것이다.  또한 26절의 모든 내용의 레위 제사장들의 죄된 허약함에 비해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거룩함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이 말씀이 그리스도의 인격적으로 완전한 거룩하심을 말하는 것임이 분명한 것이다. 
그는 이같이 완전하셨으므로 자신을 위해 희생 제물을 바치실 필요가 없었다.  그의 중재는 전적으로 남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비를 내려 주실 것을 간구하셨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자비가 있었어야 했다면 그는 인간편에 가까운 속성을 지니셨다고 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는 중보자가 되실 수 없었을 것이었다.  또한 그가 이같은 죄인이었다면 죄인들을 위한 대변자가 되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의 중보가 공평한 것이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당장에만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결코 이러한 자비를 받아야할 위급한 입장에 처하시지도 않을 것임이 규명되어야 한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현재에 자신을 위해 은총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지만 내일이나 미래의 어떤 날 자신을 위해 은총을 필요로 할 것을 알고 계셨다면 그는 자신을 위한 유익을 도모하셨을 것이며 그랬다면 그는 일면 하나님의 영예를 순수한 열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추구했다고 할 수도 없으며 또는 가련한 죄인들에 대한 순수한 동정으로 그가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위의 사실들을 통하여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자신 이외에 누구도 중보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그 누구도 죄의 가능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자신도 그러한 자비와 은총이 필요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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