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히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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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11장 믿음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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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11장 믿음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실상 옛 조상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좋은 증언을 받았습니다.
3.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 곧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생기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훌륭한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런 제물을 바침으로 말미암아 그는 의인이라는 증언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두고 증언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 믿음을 매개로 해서,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옮겨 가셨으므로, 우리는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옮겨 가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다는 증언을 받은 것입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7.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을 지시하셨을 때에, 경외심을 가지고 방주를 지어서,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른 의를 유업으로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차 분깃으로 받을 땅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 그는, 마치 타국에서와 같이 약속의 땅에서 거류하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10.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11.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약속해 주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12.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또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자손들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을 멀리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으며, 땅 위에서는 손과 나그네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네가 본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15.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좋은 것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았을 때에, 이삭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그가 그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18.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삭에게서 너의 자손이라 불릴 자손이 태어날 것이다" 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비유하건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입니다.
20.  믿음으로 이삭은, 또한 장래의 일을 두고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였습니다.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아들들을 하나하나 축복하고, 그의 지팡이를 짚고 서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22.  믿음으로 요셉은, 죽으면서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갈 일을 말하고, 자기 뼈를 어떻게 할지를 지시하였습니다.
23.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믿음으로 그 부모는, 석 달 동안 아기를 숨겼습니다. 그들은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25.  오히려 그는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26.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27.  믿음으로 그는,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 냈습니다.
28.  믿음으로 모세는, 유월절과 피뿌리는 의식을 행하여, 맏아들을 멸하시는 이가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였습니다.
29.  믿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넜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그렇게 해 보다가 빠져 죽었습니다.
30.  믿음으로 이레 동안 여리고 성을 도니,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31.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호의로 영접해서,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망하지 않았습니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을 두고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터이니 말입니다.
33.  믿음으로 그들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34.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여자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만났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 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37.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39.  ○이 모든 사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좋은 증언을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40.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 두셨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없이는 완성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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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1장
1.  Now faith is the assurance of [things] hoped for, the conviction of things not seen.
2.  For by it the men of old gained approval.
3.  By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worlds were prepared by the word of God, so that what is seen was not made out of things which are visible.
4.  By faith Abel offered to God a better sacrifice than Cain, through which he obtained the testimony that he was righteous, God testifying about his gifts, and through faith, though he is dead, he still speaks.
5.  By faith Enoch was taken up so that he should not see death; AND HE WAS NOT FOUND BECAUSE GOD TOOK HIM UP; for he obtained the witness that before his being taken up he was pleasing to God.
6.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he who comes to God must believe that He is, and [that] He is a rewarder of those who seek Him.
7.  By faith Noah, being warned [by God] about things not yet seen, in reverence prepared an ark for the salvation of his household, by which he condemned the world, and became an heir of the righteousness which is according to faith.
8.  By faith Abraham, when he was called, obeyed by going out to a place which he was to receive for an inheritance; and he went out, not knowing where he was going.
9.  By faith he lived as an alien in the land of promise, as in a foreign [land], dwelling in tents with Isaac and Jacob, fellow heirs of the same promise;
10.  for he was looking for the city which has foundations, whose architect and builder is God.
11.  By faith even Sarah herself received ability to conceive, even beyond the proper time of life, since she considered Him faithful who had promised;
12.  therefore, also, there was born of one man, and him as good as dead at that, [as many descendants] AS THE STARS OF HEAVEN IN NUMBER, AND INNUMERABLE AS THE SAND WHICH IS BY THE SEASHORE.
13.  All these died in faith, without receiving the promises, but having seen them and having welcomed them from a distance, and having confessed that they were strangers and exiles on the earth.
14.  For those who say such things make it clear that they are seeking a country of their own.
15.  And indeed if they had been thinking of that [country] from which they went out, they would have had opportunity to return.
16.  But as it is, they desire a better [country], that is a heavenly one. Therefore God is not ashamed to be called their God; for He has prepared a city for them.
17.  By faith Abraham, when he was tested, offered up Isaac; and he who had received the promises was offering up his only begotten [son];
18.  [it was he] to whom it was said, "IN ISAAC YOUR DESCENDANTS SHALL BE CALLED."
19.  He considered that God is able to raise [men] even from the dead; from which he also received him back as a type.
20.  By faith Isaac blessed Jacob and Esau, even regarding things to come.
21.  By faith Jacob, as he was dying, blessed each of the sons of Joseph, and worshiped, [leaning] on the top of his staff.
22.  By faith Joseph, when he was dying, made mention of the exodus of the sons of Israel, and gave orders concerning his bones.
23.  By faith Moses, when he was born, was hidden for three months by his parents, because they saw he was a beautiful child; and they were not afraid of the king's edict.
24.  By faith Moses, when he had grown up, refused to be called the son of Pharaoh's daughter;
25.  choosing rather to endure ill-treatment with the people of God, than to enjoy the passing pleasures of sin;
26.  considering the reproach of Christ greater riches than the treasures of Egypt; for he was looking to the reward.
27.  By faith he left Egypt, not fearing the wrath of the king; for he endured, as seeing Him who is unseen.
28.  By faith he kept the Passover and the sprinkling of the blood, so that he who destroyed the first-born might not touch them.
29.  By faith they passed through the Red Sea as though [they were passing] through dry land; and the Egyptians, when they attempted it, were drowned.
30.  By faith the walls of Jericho fell down, after they had been encircled for seven days.
31.  By faith Rahab the harlot did not perish along with those who were disobedient, after she had welcomed the spies in peace.
32.  And what more shall I say? For time will fail me if I tell of Gideon, Barak, Samson, Jephthah, of David and Samuel and the prophets,
33.  who by faith conquered kingdoms, performed [acts of] righteousness, obtained promises, shut the mouths of lions,
34.  quenched the power of fire, escaped the edge of the sword, from weakness were made strong, became mighty in war, put foreign armies to flight.
35.  Women received [back] their dead by resurrection; and others were tortured, not accepting their release, in order that they might obtain a better resurrection;
36.  and others experienced mockings and scourgings, yes, also chains and imprisonment.
37.  They were stoned, they were sawn in two, they were tempted, they were put to death with the sword; they went about in sheepskins, in goatskins, being destitute, afflicted, ill-treated
38.  ([men] of whom the world was not worthy), wandering in deserts and mountains and caves and holes in the ground.
39.  And all these, having gained approval through their faith, did not receive what was promised,
40.  because God had provided something better for us, so that apart from us they should not be made 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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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개요)
바울은 전 장의 끝 부분에서 배교를 방지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써 믿음의 은혜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권고한 후 이제 본장에서는 뛰어난 은혜인 믿음의 본질과 그 열매를 상세히 논급하였다.
Ⅰ. 믿음의 본질과 그 믿음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이 받는 영예(1-3).
Ⅱ. 구약에서 볼 수 있는 믿음으로 살았고 또 이러한 믿음이 강하였으므로 비범한 일들을 경험한 사람들의 위대한 실례(4-38).
Ⅲ. 구약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보다 더 탁월한 믿음의 역사를 복음 안에서 갖게 된 우리의 유익함(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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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본질(히 11:1-3)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Ⅰ. 믿음의 은혜가 두 가지로 정의 또는 묘사되고 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1절)." 
믿음과 희망은 언제나 병행한다.  우리 희망의 목적과 우리 믿음의 목적은 똑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수행하실 것이라는 같은 사실을 우리는 믿고 또한 바란다. 
이 믿음이 강력할 때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이 세상에서 부분적으로 맛보고 또 소유하게 된다.  이 강력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바라는 것들의 첫 열매를 미리 맛보므로 영혼의 계속적인 유지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역사 안에 사는 믿는 자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게 된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영혼 안에 거하시며 그의 영혼은(하나님의 현존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는 믿음의 대상에 대해 그 본질적인 실재를 이 세상에서 이미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2.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1절)." 
믿음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실재를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여 준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와 그 계시의 각 부분에 대한 우리 영혼의 확고한 동의이며,  또 이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참되시다고 인봉하는 것이 곧 믿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거룩함과 의와 선하심으로 계시하신 모든 것에 대한 전적인 시인이다.  또한 믿음은 우리 영혼으로 하여금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게 하며 또 그의 뜻을 사랑하게 해 준다. 
또한 믿음은 믿는 자들에게 영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육신에서 여러 가지 감관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영혼에게도 이러한 감관이 필요한데 믿음은 바로 이러한 영혼의 감관인 것이다. 
또한 믿음이란 무슨 환상이나 생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해 주며 또 우리의 영혼으로 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고무시켜 주는 실질적인 것이다.
Ⅱ. 믿음을 실천하면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받은 영예에 대한 설명. 
이에 대하여 본문은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2절)고 하였다.  선전들이란 옛 시대 곧 이 세계가 시작된 초창기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1. 참된 믿음의 역사는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므로 옛 믿음의 역사를 통하여 믿음을 증거한다는 것을 최상의 좋은 방법이다. 
참 믿음은 새로운 발명품이 아니며 현대에 생긴 환상도 아니다.  이 믿음은 은혜의 언약이 이 세상에 발표된 이후로 인간의 영혼 가운데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던 은혜인 것이다.  믿음은 계시가 시작될때부터 역사되어져 왔다.  이 세상에 살았던 선진들과 가장 훌륭한 위인들은 바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2. 그들이 지녔던 믿음은 그들에게 영예가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영예롭게 하였다.  이 믿음이 선진들에게 역사하였으므로 그들은 전해져 오던 하나님의 계시의 사실들을 실천할 수가 있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선조들이 강력한 믿음으로 행하였던 뛰어난 일을 기록하게 하사 그들로 하나님의 증거가 되도록 배려하셨다.  믿음으로 행한 순수한 행위는 기록으로 남겨져 증거될 가치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기록은 참 믿는 자들에게 영예가 될 것이다.
Ⅲ.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규례의 첫 항목을 대하게 된다. 
이 첫 항목은 모든 다른 믿음의 규례의 항목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기본 항목이다.  또한 이 첫 항목은 모든 시대에 걸쳐 세계 구석구석에 거하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공통적으로 고백되어야 할 내용인 것이다.  이 첫 항목의 내용은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고" 또한 선재해 있던 물질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요 무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3절).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앞을 내다볼 뿐 아니라 과거도 믿음으로 회고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내다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태초의 시기에 대해서도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믿음을 지니게 되면 이세상의 창조에 대해서 믿음 없는 이지(理智)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믿음은 이해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이해하도록 돕는 조력자요 친구이다.  믿음을 통하여 이 세계에 관하여 즉 하늘과 땅 밑에 관하여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가를 생각하여 보자.
1.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 또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누구인가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2. 이 세상을 만드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는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3. 하나님께서 대단히 정밀하게 세상을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창조는 "만드는 일"이었다.  즉 지어지는 모든 것들을 창조의 목적에 일치되어야 했고 또 창조자의 완전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했다.
4.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즉 그는 자신의 온전하신 지혜와, 영원하신 아들과 그의 능동적인 의지로 세상을 지으셨다.  그는 "모든 것이 있으라 하셨고 또 모든 것은 그대로 되었다"(시 23:9).
5. 이 세상은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미리 있었던 물질로부터 재조성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는 유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인간의 상식을 뒤엎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피조물들 중의 그 어느 것도 없던 것들을 마치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칭하셨고 또 그것들은 존재하도록 명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차지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이런 사실들을 이해하게 된다. 
믿는 자에게는 또한 더 깊고 정확한 지식을 주시며 또한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믿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창조에 대한 성서의 내용을 왜곡하거나 무시하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성경의 창조기사는 인간의 환상적인 가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어느 정도 있으나 현혹되기 잘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러한 환상적인 가설에 도취하여 결국 불신을 향해 첫 걸음 딛게 되고 결국 더욱 큰 불신에로 빠져드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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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구자들(1)(히 11:4-31)
1. 앞에서 우리에게 믿음의 은혜에 관하여 일반적인 관점에서 설명하였던 바울은 구약 시대에 믿음에 있어서 뛰어난 선구자들을 본문에 소개되는 사람들을 다음의 두 가지 유형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이름이 기록되는 동시 그 사람 개인의 믿음의 역사도 함께 기록된 부류의 사람들.
2. 이름만이 기록되거나 또 거의 이름도 기록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믿음의 공적도 일괄적으로 처리된 부류의 사람들(역주: 4-31절까지에는 1번 부류의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고 32-40절까지는 2번 부류의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다).  후자의 경우는 독자들이 구약 성경을 읽고 거기서 얻은 지식을 통하여 자신들이 믿음의 선진들과 그들의 공적을 연결하게 하기 위해 그대로 일괄하여 기록한 것이었다.  본문에서 우리는 그 이름이 언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의 행동과 특별한 시련에 관하여도 기록된 부류의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Ⅰ. 본문에 기록된 믿음의 주된 본보기인 아벨의 믿음이다.  ((차별없이 선대하시는 하나님, 모든이들이 구원얻기 바라시기에 [생명-빛이신 구주하나님 자신, 곧 말씀]을 주시나 단지 듣고 지나침이 아닌, 즉 [자신의 어떠함에 대한 고민과 돌아봄 통해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고 구주JC안으로 믿어들어가서 죄사함받고 부어주사 내주하시는 구주의 HS과 하나되어 동행함의 살아 생동하는 믿음을 발휘하며 주님 뜻 행함이 참구원안에서 진보하는 믿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의 첫 번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믿음을 여기에 기록하기에는 합당하지 않다고 여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회개케 하시고 또 그들에게 약속된 자손(역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셨고 또 그가 아담과 하와에게 제사 제도를 알려 주셨고 또 그들은 자기들의 자손에게 이 제도를 전해 주었고 그렇게 하므로 그들이 죄를 지어 자신들과 자기들의 후예를 파멸케 하였으나 그 이후에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기초를 만들었다는 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본장의 믿음의 사람들의 복된 명부에 기재하지 않으셨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여기에 기록할만큼의 그렇게 큰 믿음이 있는 것으로는 보시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겠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아무리 많은 달란트를 받고 또 자신만만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간주되리라는 자만은 결코 품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를 발견하게 된다. 
본문은 최초의 신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요 또한 아담의 여러 아들들 가운데서 유일한 순교자였던 신앙의 인물의 첫 사람으로 제시한다.  그는 믿음에 의해 살았고 또 믿음을 위해 죽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히브리인들이 본받을 만한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하겠다.
1. 아벨이 믿음으로 행한 행위.  

....[창4] *2...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그는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4절)."  ‘플레이오나 뒤시안’ - 즉 그는 가인보다 좀더 풍부하고 완전한 제사를 드렸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손들이 믿음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사실이다. 
아벨의 제사는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기록 가운데서 첫 번 본보기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통이 인간의 타락으로  완전히 두절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자비이다.
(2) 인간이 타락한 후에 희생 제사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가능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죄를 고백하며 또 인간의 영혼들에 대한 속전이신 구원자에 대해 신앙을 고백하므로 하나님 예배가 가능하였다는 말이다.
(3) 태초부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두드러진 차이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갔던 두 사람 형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대단한 차이가 있었다.  본문에 보면 가인의 장남이었으나 하나님이 기쁘시게 여기신 것은 아벨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게 참으로 명예로운 것은 먼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입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두 사람간에 그 인격[=사람의 됨됨이...사람은 살다에서 나온 살음, 삶, 살아있는 자, 사는 자 곧 주님의 영, 루아흐를 들이쉬고 내쉼으로 행하는자란 의미가 있음..인격은 품성/성품으로서 사람의 어떠함의 특성을 이루는 근본 원천..이것은 주님알기, 주임재의식앞에서 행함의 여부 + 자신의 선택, 곧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을 닮아감의)바라봄의 원칙이 적용됨]에 있어서 이미 차이가 있었다. 

...아벨은 정직한 사람이며 의인이고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인은 형식주의자였으며 특별은총, 곧 중심되는 은혜인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special grace, 특별은총인 믿음도 하나님은 차별없이 베푸셨으나 그것을 붙들고 자기의 것으로 시인하여 받아들이며 그로 인해 사는 것은 본인들의 선택에 맡겨진 것임에 주의하라!!)
#또한 이 두 사람에게는 생활 원칙[여기에서 참된 삶에 대한 이해 여하, 그에 따라 결정되는  태도/방식/자세의 패러다임의 일관성과 사람됨의 어떠함이 드러난다]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다. 

...아벨은 믿음의 능력아래에서 행하였으나 가인의 생활능력의 원천은 교육의 힘으로부터 또는 자연적인 양심에 따라 행하였을 뿐이다. 
#또한 이 두 사람간에는 그들이 드린 제물에서도 차이점을 관찰해 볼 수 있다. ((무엇을 무엇에따라 어떤의미로 어떻게 누구에게 드리는가??!!))

...아벨은 속죄의 희생 제물 즉 "양떼 중에 첫 번 새끼를 드림으로" 즉 자신은 죽음에 이르러야 할 죄인이기 때문에 오직 "희생 제물"을 드림으로써만이 자비를 바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가인은  인정의 희생, 단순한 감사제 즉 "땅의 첫 소산"만을 제물로 바쳤다.  ((이 감사제는 전혀 죄없음의 상태에서 또는 사실상 속죄제를 드리고 죄없다고 인정함을 받은 후에야 드려질 수 있는 것이었다. )) 즉 가인의 이 감사제에는 죄에 대한 고백도 또한 죄 처리를 위한 속제예물이 결여되어 있었는데  그점이 가인의 제사 가운데서의 근본적이요 치명적인 흠결이었다. 
참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항상 차이점이 있게 마련이다.  거짓으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 성도들과 함께 성도답게 신실하게 예배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바래새인과 같이 자기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예배자도 있을 것이요, 또 세리와 같이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2. 아벨이 그의 믿음을 통하여 얻은 것. 
이것에 대한 원래의 기록은 창세기 4장 4절에서 볼 수 있는데, 거기에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다...God had respect to Abel, and to his offering"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전인격을(his person) 아름다운 것으로(as gracious) 받으셨고 그 다음 그의 제물을 믿음에 의해, 특별히 믿음의 은혜로부터 진보함으로 의해 드려진 것으로 열납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아벨이 그의 믿음에 의해 특별한 유익을 얻은 사실을 대하게 된다.
(1) 아벨은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  
"'의롭다"", 즉 아벨은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당하다]고 인정되고(justified, 정당하다) 성결하게 되었으며(sanctified), 용납받은(accepted) 사람(person)임이 증명되었다.  그가 의로운 자였다는 증거는(tesifying his acceptance of his gift, 그 자신을, 곧 그자신의 어떠함(=인격, 속성/성품)을 대신하여 드린 바 그의 드린 예물 열납하심의 증거)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그의 제물을 살라 버렸다는 사실을 통해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물을 자신이 받으셨음을 증표로 보증(=증언하다/증거하다...give withess to = testify)하심으로 아벨의 인격이(person:사람됨) 의로움을 증거하셨다.  하나님의 의(정의)의 상징인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물을 태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희생 제사를 보시고 [그리스도의 비교할 수 없는 희생제사안에서 열납하사] 그 예배자를 받으셨다는 자비의 증표인 것이다.
(3)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오히려 후세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가 얻은 유익의 하나이다.  그는 후세에 길이 기억될 만한 교훈이 되는 영예를 얻었다.  이 일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우리는 이 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① 타락한 인간도 하나님께서 그를 용납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② 만약 우리의 인격과 제물이 열납된다면 그것은 오직 메시야(그리스도)에 대한 믿음(faith..신앙, 신뢰 +의지+앙망)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③ 하나님께 열납된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특별하고도 귀한 은총(peculisar and distinguishable favor)이라는 사실이다.
④ 하나님께 주시는 이러한 은총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의 질시와 모함을(envy and malice) 받을 것을 각오해야(expect) 한다는 사실이다.
⑤ 체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또한 친히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나서서 직접 원수갚지 말라..오직 선으로 악을 이겨라. ((최상의 방법으로)) 보응함, 곧 원수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게 맡겨라]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해한 자들을 벌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거나 그의 백성들이 당한 고난을 보상하지 않고 방관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위의 사실에 아벨의 제물이 [살아계신 하나님 보시기에 자신의 죄인됨,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요 오직 주의 긍휼의 용납하시는 사랑, 그 사죄의 은총없이는 살 수 없음을 시인하고 고백함의 속전예물 드림이]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뿌려진 the blood of sprinkling spoke better things than that of Abel]피는 아벨의 제사보다 더 귀중한 것임이 말씀되고 있다."
⑥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믿음이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다.  그는 아벨과 같은 귀중한 믿음을 지닌 또 다른 사람들을 일으키셨다.
Ⅱ. 에녹의 믿음이 다음으로 소개된다(5절).  그는 믿음을 통하여 좋은 기록을 남긴 두 번째의 믿음의 선구자였다.

...[창5장]*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유1장]*14.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 에녹에 대하여 전하여지는 내용 본문과 창세기 5장 22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즉 에녹은 주와 온전한 하나됨(conformity)-교통(communion)-완전한 신뢰로 요동없이 주안에 거함(complacency), 곧 주와 동행함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분명하게(드러나도록), 살아생동하는 능동성을 발휘하며(활발함), 날마다 한걸음씩 더 진보를 나타냄으로(자원함+헌신적으로), 중도포기없이 끝까지 참아냄(독실함)으로 주와 동행하였다. 
(2)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다" 즉 지상의 어느 곳에서도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영혼과 몸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셨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의 재림때 살아있는 채로 데리고 오실 성도들도 이와 같을 것이다!!)) 
(3) "에녹은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받았다." 에녹은 자기 자신의 양심 가운데 그러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고 또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의 영혼에 친히 증거하셨다.  이 죄된 세상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총의 표시를 주시며 또 그들을 영예롭게 하실 것이다.
2. 에녹의 믿음.  히11:6본문에 보면 (바로 에녹의 믿음처럼),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이 말씀되었다.  즉 하나님안으로 믿어 들어가서 참주인이신 그분과 연합한 하나됨으로 동행하도록 우리를 돕는 믿음 즉, 능동적인 살아 생동하는 믿음(=발휘되는 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한 본문은 우리가 "그가 계신 것을 믿는데서 더 나아가서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부지런히 열심히 보배를 찾아 구하듯, 아니 목말라 죽어가는 자가 샘물을 찾듯 추구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고 추구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음을 말하였다.  그러면 에녹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었는가를 생각해 보자.
(1) 그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자신을 계시하신 대로 절대적으로 무한완전하신 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위의 인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산 경험이여!!)) .....하나님의 실존에 대하여 말씀에 계시된 그대로 믿는 믿음은 우리 영혼 위에 강력한 경외감을 일으키며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지 못하게 억제하는 굴레가 되며 우리를 사랑과 기쁨에 겨워 모든 복음의 말씀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하는 박차 역할을 한다.
(2)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만나주시고 발견되어지시고)) 상 주시는 이심을 믿었다." ((아브라함아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여기서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① 타락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주님의 빛-생명-사랑, 하나님을 빼어닮은 형상, 그와의 사귐을 상실하였다.
② 하나님이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재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③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찾을 수 있는 수단에 방법들을 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계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그의 법도를 청종하며, 사역자들은 그들의 직책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그의 회중들과 한 마음이 되며 하나님의 섭리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모든 일에 있어서 겸손하게 그의 은혜로운 임재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④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자는 그를 부지런히 끈기있게 찾아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일찍부터 또한 진지하고 끈기있게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만약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을 찾아서 만나게 될 것이다."는 약속의 신실함을 경험하고는 기뻐 외치리라!! 그리고 그들이 일단 하나님을 뵈옵고 그의 용서를 얻게 된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찾는데 소비하였던 수고를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Ⅲ. 노아의 믿음(7절).  다음을 살펴 보자.

...[창6]*9.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22.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7]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5.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8]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15.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20.○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9] *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7.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11....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1. 노아의 믿음의 근거. 

노아의 믿음의 근거는 그가 아직도 보지 못한 일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경고였다.  노아는  거룩한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가 음성을 통해 주어졌는지 또는 환상을 통해 주어졌는지는 본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이같이 그는 아직 한번도 세상과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계시를 받은데 불과했으나 그러나 그는 그 일을 확실한 것으로 믿고 수행하였다. 

본문에 보면 그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하는 일에 대해 (사전)경고를 받았다"고 하였다.  즉 그는 세상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크고도 혹독한 심판을 겪게 되리라는 경고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노아가 이런 경고를 은밀히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을 때는 (심판의 두번째 원인이 한창 행해지고 있는동안) 세상을 두루 살펴 보아도 주께서 말씀하신  이런 심판의 징조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은밀한 경고를 받은 노아는 (그와 그의 경고를 비웃을 것이 틀림 없는) 세상을 향하여 망설임없이 주님의 그 경고를 그대로 전파-상호소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대체로 죄인을 벌하시기 전에 미리 경고를 주신다.  그리고 그는 그의 경고를 가벼이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무거운 진노를 내리신다.
2. 노아의 믿음의 행위와 그리고 그의 믿음과 행실에 미친 영향력.
(1) 그의 믿음이 그의 마음 가운데 준 영향. 

노아의 (엄위하신 주와 함께 하나됨의 동행으로 인해 살아 생동하는) 믿음은 그의 혼의 중심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각인시켰고 주님의 심판에 대한 경건한 그의 두려움은 그의 온존재를 움직였다. 

믿음은 먼저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다음에는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준다.  믿음은 우리의 마음을 계시의 내용에 따라 적절히 적응하게 하신다.  만약 그 계시가 좋은 것이라면, 믿음은 우리의 마음에 사랑과 사모하는 심정을 품게 해준다.  그리고 그 계시가 불길한 것이라면 믿음은 우리의 마음에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준다.
(2) 노아의 믿음은 그의 행실에도 영향을 주었다. 

참이신 하나님의 경고를 그대로 믿는 믿음에 의하여 더욱 분발되는 참된 경외함(두렵고 떨림)은 노아로 하여금 주께서 준비하라신 바로그대로 방주를 준비하게 하였다( 틀림없이 이 사악한세대의 조롱과 비난을 맞닥뜨리겠지만)  노아는 자기가 왜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하나님에게 따지지도 않았고 또 그가 방주에 넣으라고 하신 그 많은 것을 어떻게 그 배가 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따지거나 또 이 정도의 배로 그렇게 큰 폭풍우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가를 따지지도 않았다.  주님을 신뢰하며 그 지시하신 바 그대로 순종하는 그의 믿음은 모든 의심을 사라지게 하였다.
3. 노아의 믿음의 축복된 결과와 보상.[복된 열매들과 그 상급]
(1) 이로 인하여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죄인들이 그들 주변에서 멸망당하고 있을 때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인하여 그의 가정을 구원하셨다.  이런 점에서 그 가족구성원들이 노아의 아들과 딸들로 태어났다는 것은 그들에게 다행한 일이었다.  또한 아들들의 배필된 여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노아의 가족과 결혼하였다는 것은 그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마도 그 여인들은 지위가 높은 다른 가정과 결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그들은 틀림 없이 물에 빠져 익사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지체 높은 가정과 인척관계를 맺는 것은 유익하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진실로 유익한 것은 약속을 지닌 자와 인척관계를 맺는 일인 것이다.
(2) 이 믿음으로 노아는 이 세상을 심판하고 정죄하였다. 

노아의 거룩한 경외함은 인간들의 안일(육적 안정감)과 헛된 신념을 정죄하였다.  또한 그의 믿음은 인간들의 불신을 정죄하였다.  그리고 그의 순종은 인간들의 하나님에 대한 멸시와 반역을 정죄하였다. 

좋은 본보기란 다름아니라  죄인들을 개심(회개-회심)시키거나 아니면 그들을 정죄하는 바로 그것의 실례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경외함과 엄격한 거룩함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매우 강력하게 확신토록 하는 무엇인가 강력한 영향력=성령의 임재능력이 반드시 그 중심에 있게 된다. 하나님의 빛 안에서 사는 그런 삶은 그것을 지켜보는 각사람의 양심에 바로 그런 삶을 강권하게 되고 그것을 감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마다 자신을 돌아보아 판단-정죄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친어조로 꼬치꼬치 따지는 검열관의 언어로가 아니라 성령따라 말없이 상호소통하는 온유한 모범을 보임으로써 간악한 자들을 정죄하는 가장 강력한 최상의 방법이다. 바로 이렇게 사람을 무장해제시키고 설득하는 힘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닌 힘은 모든 사람들로 그들의 양심을 하나님의 빛앞에 드러내 놓게 하신다.  그리하여 의인들은 죄인들로 스스로 양심에 의해 판단을 받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악한 자들을 정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인들을 거칠고 책망하는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룩한 본이 되는 생활을 그들에게 보이도록 스스로 정죄함을 받게 해야 한다.
(3) "노아는 그 일로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7절)."
① 노아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참된 의를 소유하게 되었다.  노아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
② 이러한 노아의 상속권은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주어진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지체요 하나님의 자녀였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의 자녀라면 상속자가 됨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하나님의 의 ((= 그분의 어떠하심과 속성 바로 그대로, 곧 JC))에 비추어 볼 때 노아의 의(義)는 또한 상대적인 것으로서 그가 약속된 자손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었다. 

우리가 "주께서 심판하실 무서운 날"에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받을 것을 소망한다면 지금 거하는 바 참된 방주(참되게 그리스도안으로 믿어들어가 하나됨 이루고 그 안에 거함-누림-기업-소유됨의 동행을 실행)누림을 확고히 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은총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  또한 이 방주를 준비하고 그 안에 들어가 거하는 일을 문이 닫혀지기전에 신속히 행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다른 길로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Ⅳ. 하나님의 친구이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의 믿음. 

....[행7장]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6.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7.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8.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이 아브라함은 히브리인들은 자랑으로 여겼고, 또 그들은 그들의 혈통과 특권들을 그로부터 물려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는 히브리인들을 즐겁게 하고 또 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다른 어떤 선진들의 믿음보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업적이 위대함을 상론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하는 중에 사라의 믿음에 대하여서도 얘기하므로 그녀의 후예들인 히브리 여인들이 계속 잘 해줄 것을 암시하였다.  다음을 유의하자.
Ⅰ. 아브라함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이었다(8절).
(1) 아브라함에 대한 부르심은 시련이 예상되는 부르심이었지만 그 부르심은 그럼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그 부름을 믿고 복종해야 한다는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 2,3절에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에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셨다"고 말하였다.  이 부르심은 능력의 부름이었다.  이 부름을 받고 아브라함은 회개하고 자기 부친이 지켜오던 우상 숭배를 떠났던 것이다(창 12:1).  이 부르심은 그의 부친이 하란에서 운명한 후 아브라함에게 재차로 임명하였었다.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적으로 자유하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악한 사람을 취하시어 가장 선한 사람으로 만드시기로 하시는 것이다.
②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도 오신다는 사실이다.
③ 죄인을 부르시고 회개하도록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며 인간의 영혼 가운데 영광스러운 일을 수행하신다는 사실이다.
④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떠나라고 하실 뿐만 아니라, 죄된 동료를 떠나라고 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기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기서 떠나도록 명하신다.
⑤ 우리는 잘 시작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계속 잘 진행하기 위하여서도 부르심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⑥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하늘나라의 가나안에 다다를 때까지 쉴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2)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가라고 명하신 그 땅을 아브라함이 유업으로 물려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즉 잠시 후 그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는 하늘나라의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고, 다른 한편 현세에서는 그의 후손들이 지상의 가나안을 유업으로 물려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그들이 받게 될 유업에로 불러내신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의 부르심을 통해 그가 부르신 자들을 자녀로 삼으시고 상속자로 삼으신다.
② 이 유업은 그들이 즉시 소유하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그 땅을 소유할 때까지 확실한 것으로 때가 오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었다.
③ 조상의 믿음이 그의 자손들에게 축복이 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2.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절대적으로 복종하였다.  그러므로,
(1)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8절)"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곳으로 자기를 이끌어 가시도록 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혜야말로 그를 이끄는 가장 훌륭한 인도자라고 믿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하나님의 뜻이야말로 자기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우선적인 것임을 믿었다.  절대적인 믿음과 복종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드려야 하는 것이며 그분만이 받으셔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뜻과 지혜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과 지혜에 우선권을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지혜이다.  비록 그들이 자기가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안내자만은 안다면 충분히 안심하여도 좋은 것이다.
(2) "믿음으로 저는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였다(9절)." 이러한 행위도 그의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① 가나안이 약속의 땅으로 불리우게 된 이유.  그 까닭은 그 땅이 오직 약속되었을 뿐 아직 약속 받은 자가 소유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②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거주한 태도.  그는 상속자나 소유자처럼 그곳에 거한 것이 아니라 나그네처럼 살았다.  아브라함은 그 땅의 옛 거민들을 쫓아내지도 않았으며 또 그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그들에게 전쟁을 도발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나그네처럼 사는 것으로 만족해하였고 옛 주민들이 불친절할 때는 참고 또 그들이 호의를 베풀때는 감사함으로 그 호의를 받았으며 오직 그의 마음을 그의 고향인 하늘의 가나안에만 향하며 살았다.
③ 아브라함은 자기와 마찬가지로 같은 약속의 후사인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  그는 이동식 주택인 장막에서 살았다.  그리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지냈다.  우리 모두도 이 세상을 살 때 이와 같은 태도로 살아야 한다.  아브라함에게는 또한 좋은 반려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그네 상태의 생을 사는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칠십 오세, 야곱이 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또 이삭과 야곱은 같은 약속의 후사들이었다.  왜냐하면 그 약속은 이삭에서 갱신되었고(창 26:3) 또 야곱에게도 갱신되었기 때문이다(창 28:13).  모든 성도들은 같은 약속의 상속자들이다.  그 약속은 믿는 자들과 그들의 자녀들, 그리고 주 하나님께서 부리실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부모나 자녀가 다같이 하늘의 유업의 후사로서 함께 나그네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3. 아브라함의 믿음을 지탱시켜 준 것은 그가 하늘나라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다(10절)"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1)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하늘나라의 모습, 하늘나라는 도성이다.  그것은 잘 건설되고 또 방어되며 물자가 풍부한 정상적인 사회인 것이다.  또한 그곳은 기초가 든든한 도성이다.  그곳은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목적을 따라 지어졌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공적과 중보가 거하며 또한 영원하신 계약에 의해 약속된 곳으로 순전하며 그 주민들은 완전한 그러한 도성이다.  또한 이 성을 지으신 이와 다스리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그 모델을 고안하시고, 또 그가 그 모델에 따라 그 성을 지으셨다.  그는 또한 그 성으로 들어가는 새롭고 살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는 그 길을 자기 백성들을 위해 열어 놓으셨다.  그는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그 성을 소유하게 하시고, 그 안에 살도록 하시며, 스스로 그 성의 본체가 되시며 축복이 되셨다.
(2)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늘나라의 도성에 대해 응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도성을 기대하였다.  또한 그는 그러한 하늘의 성이 있을 것을 믿었다.  그는 그곳을 기다렸고 또 기다리는 동안도 믿음에 의해 그 성과 친숙하여졌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가 되면 그가 정하신 방법에 의해 자기가 그곳에 안전하게 도달하리라는 즐거운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3) 이러한 희망이 아브라함의 현재에 생활에 미친 영향.  그 희망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나그네 상태에서 당하는 모든 시련을 견딜 수 있게 하였고 나그네 생활의 모든 불편을 참을 수 있게 해주었다.  또 이 소망은 그로 현재 생활 속에서의 모든 의무를 열심히 수행하게 하였고 끝까지 그 의무를 감당할 수 있게 해주었다.
Ⅴ.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서 바울은 사라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삽입하였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사라의 믿음이 통과해야 했던 여러 가지 시련.  그 시련은 매우 큰 것이었다.
(1) 잠깐동안 불신앙이 그녀를 지배했었다.  사라는 약속에 대해 그것을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고 비웃었다.
(2) 사라는 불신앙 때문에 자기의 의무를 저버렸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갈과 동침하게 하였다.  이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후손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라의 이러한 죄는 그녀로 하여금 후에 믿음 안에서 행동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였다.
(3) 사라가 나이먹어 출산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주어진 그녀가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약속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었다.
2. 사라의 믿음의 행위.  그녀의 불신은 용서되고 잊혀졌다.  그녀의 믿음이 결국은 승리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녀가 "약속해 주신 분을 진실한 분으로 믿었다"고 하였다(11절).  사라는 약속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였다.  또 그 약속을 그녀가 확신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하실 수 있으며 또 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불신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일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믿음으로 그것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그가 그의 백성들을 버리시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3. 사라의 믿음에 대한 보상과 열매.
(1) 그녀는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11절).  은혜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섭리로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모의 영혼에게 열매를 맺도록 하실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는 불모의 자궁에 수태를 가능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
(2) "사라는 어린 아이를 얻었다."  그 아이는 약속의 자녀로서 노년기에 접어든 양친에게 위로가 되었으며 미래의 희망이었다.
(3)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아이를 통하여 셀 수 없이 많은 뛰어난 자손들을 "하늘의 별과 같이"(12절) 얻었다.  즉 주의에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뛰어난 크고도 강력하며 유명하게 될 민족을 얻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이 아이들을 통해 선별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얻었다.  그러나 모든 보상 중에서도 가장 영예롭고 뛰어난 보상은 이들 가운데서 "육을 따라 모든 사람보다 뛰어나시며 하나님께서 영원히 축복하신 분이신 메시야가 오셨다"는 점이었다.
Ⅵ. 바울은 다른 족장들 즉 이삭과 야곱 및 이 복된 가족에 속한 다른 사람들의 믿음도 언급되었다(13절).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그들은 현재 생활의 불안정은 그들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약속된 것들을 아직 받지 못하였다.  즉 그들은 약속된 내용의 것들을 받지 못하였고, 아직 가나안을 소유하지도 못하였으며, 많은 자녀들도 아직 가지지 못하였으며,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아직 만나지도 못하였다.  다음을 유의하자.
(1) 많은 사람들이 약속은 얻었어도 그들에게 약속된 것을 즉시로는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2) 지상에 사는 성도들의 현재 상태의 불완전은 그들의 행복이 현세의 쾌락과 많은 제물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장래 저 세상에서 실현되는 것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복음 시대에 삶은 족장시대보다 좀더 완전하다.  왜냐하면 그때의 언약의 여러 가지가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의 삶은 가장 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약속이 그곳에서 성취되고 완성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2. 불안정한 세상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계속된 저희 믿음의 행위.  비록 그들이 아직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지만 다음의 것들을 행하였다.
(1) 그들은 약속을 멀리서 보았다.  믿음은 맑고 강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자는 아직 멀리 있는 약속된 자비를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날이 아직 멀리 있을 때 그날을 보고 기뻐하였다(요 8:56).
(2) 그들은 그 언약들이 참되며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었다.  믿음은 하나님은 참되시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안정되게 해 준다.
(3) 그들은 그 언약된 것을 부분적으로 누렸다.  그들의 믿음은 승낙의 믿음이었다.  믿음은 긴 팔을 가지고 있으므로 멀리 떨어진 축복을 끌어안아서 현재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그것들을 사랑하고 그것을 누림으로 기쁨을 맛본다.  이와 같이 그들은 그들의 즐거움을 앞당기어서 맛보았다.
(4) 그들은 자신들이 "땅에서는 타향사람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다"(13절).  다음을 생각해 보자.
① 그들의 처지.  그들의 처지는 "타향 사람과 나그네"의 처지였다.  그들은 하늘나라가 고향인 나그네였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집을 향하여 여행하는 순례자들이었다.  그들의 여정이 때때로 초라하고 더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집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② 자기들이 처한 처지에 대한 그들의 태도.  그들의 생활을 부끄러움 없이 말하고 삶의 태도 역시 떳떳하였다.  그들은 세상에서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짐이 될 만한 것은 가급적 떨어 버리려고 노력하였으며, 마음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기 길을 가는데 전념하며, 동료 여행자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고자 하였다.  그들은 어려움을 예상하고 그것들을 견뎠으며 또 집에 다다를 것을 소망하였다.
(5) 그들은 다른 나라 즉 그들의 본향인 하늘나라를 목적 삼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하늘나라를 그들의 고향이라고 한 이유는 그곳이 그들의 영적인 출생지요 그곳이 그들의 유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로 이 나라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삶이 지향하는 바는 이 나라에 있었고 그들의 소망도 이 나라에 있었다.  또한 그들의 대화의 주제는 이 나라에 관해서였다.  그들은 그 나라에 합당한 자격을 얻기 위해 또한 그 나라에 알맞는 성품을 지니며 그 나라에게 즐거움을 누리며 거기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위하여 부지런히 노력하였다.
(6) 그들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함으로써 그들의 신실성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① 그들은 자기들이 떠나온 나라를 생각하지 않았음을 고백하였다(15절).  그들은 떠나온 나라의 풍요함과 안락함을 동경하지도 않았으며, 그곳을 떠난 것을 후회하거나 언짢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결코 그리로 되돌아가려고 바라지 않았다.  구원의 능력이 깃든 부르심을 받아 죄된 처지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함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더 좋은 것들을 받았기 때문이다.
② 그들은 자기들이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들은 그런 기회를 만들려면 만들 수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정도의 시간을 충분히 있었다.  또한 돌아갈 수 있는 힘도 있었다.  또한 그들은 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여행하던 사람들도 그들을 기꺼이 보내 줄 것이었다.  그리고 옛날 친지들은 그들을 다시 기쁘게 맞아 주었을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는 경비도 충분히 있었다.  또한 사람을 타락케 하는 악한 상담자인 혈육은 그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라고 때때로 눈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낙망과 또 하나님을 거스르게 하려는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과 그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따라갔다.  우리도 모든 일을 그렇게 행하여야 한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원치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끝날까지 하나님을 꾸준히 따름으로써 우리의 믿음과 고백의 참됨을 보여야만 한다.  그들의 신실성은 떠나온 나라로 돌아가지 않는 데서 나타나야 함은 물론이고 더 좋은 나라 즉 하늘에 있는 나라를 소망함으로써 나타나야 한다.  다음을 살펴 보자.  첫째, 하늘나라는 지상에 있는 어떤 나라보다도 더 좋다는 사실이다.  그곳은 더 좋은 곳에 위치하여 있으며 또 아름다운 물건이 무엇이든지 있으며 악한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된 안정된 곳이었다.  고용주나 기쁨 사회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지상에 있는 가장 좋은 것보다 탁월하다.  둘째, 참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모두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나라를 소망한다.  참된 믿음은 신실하고 열렬한 소망을 가져다 준다.  믿음이 강할수록 그러한 소망 또한 더욱 강렬하여진다.
(7) 그들은 그러한 약속들을 믿으면서 죽었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서 모든 약속이 성취된다는 것을 충분히 믿는 가운데 죽었다(13절).  그들은 죽는 날까지 믿음을 지켰다.  그리고 죽을 때 그들은 믿음으로 속죄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였다.  그들은 모든 사탄의 격렬한 창을 꺾어 버렸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였으며, 죽음의 가시를 무력케 하였고,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안락과 십자가를 즐거이 하직하였다.  그들의 믿음의 행위는 이러하였던 것이다.  이제 다음의 것을 살펴 보자.
3. 그들의 믿음에 대한 은혜롭고 큰 보상.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6절)"고 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하나님은 모든 참된 믿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다.  믿음은 그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충만함에 대한 관심을 준다.
(2)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그렇게 부르신다.  그러므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그는 말씀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도록 내버려 두셨다.  또한 그는 그들에게 양자의 영을 주사 그들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3)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본성이 천박함과 죄로 인해 악해진 성품과 그들의 외적인 조건 상태의 빈곤에도 불고하고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우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겸손이며, 또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이와 같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어떤 멸시를 당하든지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께 비난과 부끄러움을 돌리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또 그들은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하므로 그로 하여금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시게 해서도 안 된다.  다만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행하고 그에게 찬양과 영광을 돌리도록 하여야 한다.
(4)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그 백성들을 위하여 한 도성 즉 그의 백성에게 울리는 행복의 장소를 예비하셨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낼 만한 적당한 장소가 도무지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지 못하거나 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자기가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실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과 그런 관계를 맺게 하셨다면 또한 그 관계에 부끄럽지 않는 것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취하셨다면 그 이름에 합당한 만큼 충분한 응답을 주시고 이에 합당한 행동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명칭에 부끄럽지 않을 나라를 그들을 위해 하늘에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한 백성으로 자기의 양자들로 삼으시고 그러나 그들에게 적절한 대우는 해 주시지 않았노라는 비난을 받으실 일은 결코 하시지 않았음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숙고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도성을 향한 사랑을 불태우고 소망을 넓히며, 부지런한 노력으로 열심을 내야만 할 것이다.
Ⅶ. 바울은 지금까지 다른 여러 사람들의 믿음에 대하여 설명한 후에 아브라함에게로 다시 돌아가서 아브라함의 선조들이나 또는 그의 영적 자손 중 그 누구에게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최대의 시험과 믿음의 행위로 본보기로 우리에게 설명한다.  바로 이것은 그가 이삭을 제물로 드린 행위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려고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기꺼이 바쳤다.  이삭은 외아들이었고 그를 두고 하나님께서 약속까지 해 주신 아들이었지만 그를 기꺼이 바치려고 했던 것이다"(17절)라고 하였다.  여기서 위대한 신앙의 본보기를 통해 다음을 살펴 보자.
1.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시험과 그의 믿음의 행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라고 하였다(창 22:1).  그러나 이 시험은 아브라함으로 죄를 짓게 하시려는 시험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올무에 걸리게 하시고자 시험하는 분은 아니시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과 복종을 더욱 온전케 하시기 위해 그를 시험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있기 전에도 아브라함을 여러 번 시험하셨다.  그 첫 번째 시험은 그를 그의 고향과 부친의 집으로부터 불러내신 것이었고 다음은 그가 기근 때문에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떠날 수밖에 없을 때였고 또 한 번은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하기 위하여 다섯 왕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때였고 또한 경우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서 사라를 빼앗았을 때였다.  그외에도 아브라함이 시험받은 경우는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시험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더욱 큰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창세기 22장 2절을 읽어보라.  우리는 22장 2절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뼈에 맺히는 말씀들임을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너의 가축이나 노예 중의 하나가 아니라 네 아들을 드리라.  그것도 사라에게서 난 아들 곧 네게 웃음을 주며 네 기쁨과 즐거움의 아들이며 네가 네 영혼과 같이 떨어진 멀고 먼 모리아 땅으로 데리고 가라.  그리고 그를 거기다 두고 올 뿐만 아니라 번제로 드리라." 이 보다 더 큰 시험은 어떤 인간에게도 주어진 일이 없었으리라.  바울은 여기서 이 시험이 대단히 큰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 몇 가지 사실을 덧붙여 말하였다.
(1) 아브라함은 언약을 받은 후에 이 시험을 받았다. 즉 아브라함은 이 이삭이 그의 가문을 이을 것이요 또 이 이삭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칭하여질 것이라는 것과 (18절) 또 이 이삭이 메시야의 조상의 한 사람이 될 것이고 또 이삭의 후에 나는 메시야를 통해 모든 민족이 축복받을 것임을 약속받은 후에 이러한 시험을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은 그에게 있어서는 곧 그의 가문을 멸망시키고 끊으시겠다는 명령으로 들렸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파기하시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막으시며, 온 세상을 파괴하시고, 아브라함의 영혼과 구원의 희망을 잘라버리시며 일격에 하나님의 교회를 송두리째 잘라버리시겠다는 명령으로 들리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시험이었다.
(2) 또한 이 이삭은 아브라함에 아내 사라에게서 난 그의 독자이며, 사라에게서 얻은 유일한 소생이며, 약속의 자녀요 후사가될 유일한 씨였다.  이스마엘은 지상의 축복에서 제외되었다.  따라서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메시야에 대한 약속은 이 아들에게서 성취되든지 아니면 전혀 성취되지 못하고 말든지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이 같이 아브라함의 모든 사랑이 이 아들에게 쏟아진 이외에도 그의 모든 기대 또한 이삭에게 걸려 있었다.  그리고 만약 이삭이 없어진다면 그와 함께 아브라함도 멸망하는 것이었다.  만약 아브라함이 많은 아들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오직 이 아들이 모든 민족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아들이었다.  이 아들이야말로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들이었으며, 또 특별한 은총으로 받은 아들이었다.  그의 온 마음은 아들에게 온통 쏠려 있었다.  그런데 이 아들은 희생 제물로 드려야만 하였다.  그것도 자기 손으로 직접 아들을 죽여야 했다.  이 시험이야말로 아무리 감심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넘어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시험이었다.
2. 그렇게 큰 시험 가운데서 굽히지 않았던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  그는 순종하였다.  그는 이삭을 제물로 드렸다.  벌써 오래 전부터 그는 그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려놓고 있었다.  이 사실은 그의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그 일을 실제로 수행하려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만약 하나님께서 그를 저지하지 아니하였다면 그 일을 행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여 모든 일을 진행하였다.  우리는 이 아브라함의 시련 중에서 이삭의 "아버지, 여기 나무가 있고 불도 있는데 제물로 드릴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말에 마음의 뭉클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삭은 자기가 어린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조금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일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위대한 계획을 그대로 진행하였던 것이다.
3. 아브라함의 믿음을 버티어 준 받침들.  이 받침돌은 시험이 큰 만큼 큰 것이어야만 했었다.  본문은 이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19절)"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었다.  이러한 확신이 있었으므로 그는 그의 모든 의심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주지시키시고 그의 아들을 바치지 말라는 명령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만일 그가 이런 것을 알았다면 시험이 성립될 수도 없었을 것이요 또한 그의 믿음의 승리도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음을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삭에게 거대한 사명이 주어져 있는데 만일 이삭이 죽는다면 그를 통해 이루어질 거대한 사업도 실패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는 않을 것을 그는 믿었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다.  죽은자의 몸도 살필 수 있으며 죽은 영혼도 일으킬 수 있으시다.
(2)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당하는 어떤 어려움과 시련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이 될 것이다.
(3)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생각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4. 이러한 시험을 극복해 낸 그의 믿음에 대한 보상(19절).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을 돌려 받았다.  그것은 마치 죽은 아들을 되찾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1) 아브라함은 아들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와 이별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을 그에게로 다시 돌려 주셨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는 가장 최선의 길은 우리의 행복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그것들을 우리에게 돌려 주실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는 호의로 다른 행복을 주실 것이다.
(2)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음으로부터 되돌려 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삭을 죽음에게 내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이삭은 죽은 아들과 다름없었으므로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부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3) 위의 내용은 앞으로 있을 것의 비유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에 대한 상징이었다.  그리고 이삭은 그리스도의 유형이었다.  그것은 또한 모든 참 믿은 자들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한 전조요 상징이다.  믿는 자의 생명은 이처럼 유실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지는 것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름이 언급되고 또 그들의 특별한 시련과 행위가 기록되고 있는 다른 규약의 신앙인들의 믿음에 대한 내용을 대하게 된다.
Ⅷ. 이삭의 믿음(20절).  앞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서 이삭에 대한 약간의 내용을 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삭에게만 특이한 신앙의 면모를 살펴 보자.  즉 이삭은 "앞으로 올 일에 대하여" 믿음으로 자기의 두 아들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던 것이다.  다음의 것을 살펴 보자.
1. 이삭의 믿음의 행위.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관하여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였다."  이삭은 그들을 축복하였다.  즉 이삭은 그들을 계약의 하나님께서 양도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과 믿음을 소개하였다.  또 그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그들의 어떤 상황에 처할 것이며 그들의 자손들이 어떤 상황이 될 것인가를 그들에게 예언해 주었다.  우리는 이에 관한 이야기를 창세기 27장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야곱과 에서는 이삭의 아들로서 축복을 받았다.  적어도 세상적인 좋은 것들에 대하여는 그들은 다같이 축복을 받았다.  좋은 부모의 자손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큰 특권이다.  흔히 악한 자식이라도 신한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의 덕으로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일은 언약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일시적인 것들의 최선의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것들을 많이 소유했다고 해서 신의 은총을 많이 받은 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2) 야곱은 에서보다 우월하고 또 축복다운 축복을 받았다.  야곱이 받은 축복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 사람의 품위를 그 동료들보다 높여 주고 또 최상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중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하나님이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자유로우신 사람을 택하시고 다른 한 사람을 남겨두며, 한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한 사람을 미워하신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자기 몫을 허락해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더 좋은 세상에서의 분깃을 할당해 주신다.  이같은 차별을 두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에 의해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어떠한 처사에 대해서도 인간은 불평할 권리가 없으며 또 인간이 현재 누리고 있는 생이한 그들이 응당 받아야 하는 진노에 비하면 보다 놀라운 위로의 축복인 것이다.
2. 이삭의 믿음이 극복해야 했던 어려운 문제들.
(1) 이삭은 그의 아들들이 출생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행하시고자 하는 뜻을 정하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창 25:23)(역주: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이삭이 잊고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이삭에게 두 아들을 주실 때 정해 놓으셨던 뜻을 일생 동안 간직하고 그대로 행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인 사랑에 휩쓸리어, 또한 세상의 관계에 따라 장자인 에서를 야곱보다 배나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으며 또한 그에게 특혜를 주었던 것이다.
(2) 이삭은 자기의 의사와는 전혀 상반되는 타의에 의해서 우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그는 에서에게 축복한다고 한 것이 야곱이 축복하고 말았다).  그는 잘못하여 야곱을 축복한 사실을 알게 되자 "크게 떨었다"(창 27:33).  그리고 그는 야곱에게 그가 교활하게 에서의 축복을 빼앗았음을 책망하였다(33,35절).  그러나 결국 이삭은 자기의 잘못됨을 깨닫고 믿음을 되찾아 야곱에 대한 축복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야곱을 위하여 축복을 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창 27:33). 리브가와 야곱은 이 축복을 얻는데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한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절대적인 주권적 통치에 의해 인간의 죄일지라도 의롭다 하시고 그것을 그의 영광된 목적을 위하여 쓰신다. 이같이 하여 이삭은 그의 불신을 극복하고 믿음을 되찾았다.  또한 이삭이 이처럼 믿음이 연약한 상태를 거쳐 신실한 믿음을 지니게 된 것을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를 "믿음으로 증거를 얻은" 선진들의 한 사람으로 여기셨다.
Ⅸ. 야곱의 믿음(21절).  본문에 보면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다(21절)"고 하였다.  야곱의 믿음에 대한 기록은 대단히 많다.  그의 생활이 믿음의 생활이었고 또한 그의 믿음은 그의 생활에 크게 역사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족장의 많은 믿음 가운데서 오직 두 가지만 선택하셔서 본문에 기록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해 설명하면서 언급하였던 믿음의 내용들을 야곱에 대한 기록에서는 제외하시므로 중복됨을 피하고자 하셨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살펴보자.
1. 야곱의 믿음의 행위.  본문에는 그 행위 중 다음의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1)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즉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였다."  야곱은 그들이 손자였지만 자기의 아들들과 같은 계열로 그들을 승격시켰다(역주: 직역하면 야곱이 그들을 자기의 양아들로 삼았다는 말이다).  또한 이같이 하므로 그들의 애굽에서 태어났지만 이스라엘의 회중의 하나로 맞아들였다.  이같이 하나님의 보이는 교회에 허입되어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 허입되어 그화 영적인 교제를 하고 진리를 맛보는 것은 더욱 놀라운 축복이다.
① 야곱은 마치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자기의 아들들인 것과 같이 그들로 각각 지파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여 주었다.
② 야곱은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가 되게 해달라고 위하여 기도하였다.
③ 야곱은 그들이 축복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이삭이 전에 그의 맏아들을 더 사랑한 데 비해 야곱은 므낫세보다는 그의 동생인 에브라임을 더 좋아하였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오른손이 형인 므낫세에게 얹어질 수 있도록 그들을 앉혔으나 야곱은 의도적으로 그의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었다.  사실 이미 야곱은 연노하여 실명상태에 있어 그들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가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은 것은 신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통하여 동생격인 후에 태어난 이방의 교회가 형격인 유대 교회보다 더욱 풍성한 축복을 받을 것을 보여 주셨다.
(2) "야곱은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다."  즉 야곱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그에게 행하신 일에 대하여 또 하나님께서 앞으로 자기에게 행하실 축복을 내다보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야곱은 자기가 떠나도 그의 집안에서 믿음이 계속 살게 되기를 그의 두고 떠나는 자손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는 이르기를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서" 하였다.  그가 지팡이에 기대어 기도한 것은 구교도들이 생각하듯이 야곱이 지팡이 머리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에 경배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지팡이에 기댔다는 것은 그의 힘이 쇠진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그는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는 침상에 단정한 자세로 앉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태만히 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 몸이나 정신이 지탱될 수 있는 한에는 예배를 드리려고 하였다.  비록 그가 자신이 원하는 것처럼은 예배할 수 없었더라도 그는 그렇게 하려고 하였다.  이것으로 야곱은 자기의 하나님에 대한 의존을 나타냈다.  또한 이 세상에서의 그의 삶이란 지팡이를 의지하여 나아가는 순례자의 삶과 같은 것임을 이로써 증거하셨다.  또한 이러한 그의 자세는 세상에서의 그의 곤고함과 안식을 바라는 그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2. 야곱이 이러한 믿음을 행한 시기.  그것은 그의 임종시였다.  야곱은 믿음으로 살고 믿음에 의해 믿음 안에서 죽었다.  믿음의 은혜는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언제나 유용한 것이지만 임종시에 특별히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믿음은 임종의 때에 가장 위대하게 역사 한다.  이 믿음은 믿는 자들로 그의 생애를 잘 마무리하게 해 주며, 주를 위하여 죽도록 하여 준다.  즉 믿음은 믿는 자들로 임종을 인내와 소망과 기쁨으로 맞게 하므로 주님을 영예롭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참됨과 그의 법도의 뛰어남을 믿는 자들로 임종시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게 해 준다.  그래서 인내와 소망과 기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생애를 끝마칠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와 하나님의 길의 탁월성을 그들에게 증거로 보여 줄 수 있으며, 자기의 임종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확신과 굳건함을 줄 수 있다.  부모가 자기의 생애를 가장 잘 마무리짓는 길은 자기 가족을 축복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이다.
Ⅹ. 요셉의 믿음(22절).
1. 요셉에 믿음으로 행한 행위의 내용.  본문에 보면 "요셉도 죽을 때 믿음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빠져나갈 일을 말하고 자기 뼈의 처리를 일러 주었다"고 하였다.  이 구절은 창세기 50장 24,25절에서 인용된 것이다.  요셉은 믿음이 탁월한 인물이었다.  그는 애굽으로 팔려갔다.  그는 또한 유혹과 죄와 박해를 통해 시험을 받았으나 그의 순수성을 지켜 나갔다.  또한 그는 바로의 궁에서 고귀하게 되고 권력을 지니게 되므로 믿음에 태만할 수 있는 그런 시험을 받았으나 그의 믿음은 끝까지 변함이 없었다.
(1) 요셉은 믿음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떠나야 한다는 사실 즉 그의 자손들이 애굽을 떠날 때가 오리라는 것을 예언하였다.  그가 이같은 말을 한 것은 그들에게 지금은 지내기가 편하고 풍요한 애굽 땅에서 머물 생각을 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자신이 예견하고 있던 고난과 재난이 그들에게 닥칠 때 그들로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요셉은 앞을 미리 내다볼 수 있었으므로 자신 또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는 비록 살아서 자손들이 고향으로 돌아감을 볼 수도 없었으나 반드시 떠날 것이라는 믿음 가운데서 죽을 수 있었다.
(2) 요셉은 또 자기의 뼈를 애굽에 묻지 말고 보존하여 두었다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속박의 집에서 이끌어내실 때 그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가지고 가서 가나안에 묻도록 부탁하였다.  육신의 믿는 자들은 주로 자기들의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그들의 육신의 몸에 대해서도 전혀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이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요 또한 인간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써 마침내는 부활하여 영광을 받은 영혼과 하나로 합하여져 영원한 복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요셉이 그러한 명령을 한 것은 자기의 뼈를 애굽에 묻으면 자기 영혼이 훼손되거나 몸의 부활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 아니라 다음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어떤 랍비들은 가나안이 아닌 곳에 매장된 유대인의 시체는 그들이 다시 부활하려면 가나안으로 옮겨 이장되어야 한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① 비록 자기가 애굽에서 살다가 실상은 애굽인으로 살고 애굽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인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② 자기가 애굽에서의 훌륭한 장례보다는 가나안에서의 의미 깊은 장례를 더 원한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③ 자기가 자기 백성 가는 곳은 어디나 따라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갈 수 있게 데까지는 그의 동족들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④ 자기가 몸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과 또 자기 영혼이 죽자마자 즉시 먼저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할 수 있듯이, 그의 몸 또한 죽은 믿음의 조상들의 몸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⑤ 그들에게 하나님은 애굽에서도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며 또 때가 오면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내실 것이라는 확증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2. 요셉이 믿음으로 위와 같은 예언을 하였던 시기.  그것은 야곱의 경우와 같이 자신이 죽을 때였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자기의 백성들의 임종시에 그들에게 생생한 위로를 주신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위로로 임하실 때 임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믿음이 영광되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형제와 친지들의 유익을 위하여 이러한 위로들에 대하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XI. 모세의 부모들의 믿음.  이 이야기는 출애굽기 2장 3절 이하에서 인용된 것이다.  여기서 다음을 살펴 보자.
1. 모세의 부모들의 믿음의 행위.  그들은 석달 동안이나 자기의 아들을 숨겨 놓았다.  비록 구약에는 모세의 어머니가 이 모든 일을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문의 내용으로 보건대 모세의 아버지도 이 모든 일을 허락하고, 뿐만 아니라 이 일에 관하여 같이 협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부부가 하나님의 은혜의 후사로 서로 도와 믿음의 멍에를 함께 메고 갈 수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더구나 그들이 자녀들의 신앙의 문제를 위해서 즉 자녀들을 보호하고 위하여 그들이 함께 노력하는 것은 복된 모습이다.  모세가 태어날 때부터 박해를 받고 숨겨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실을 명심하자.  이 점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유형이었다.  그리스도 역시 태어나 쉬자마자 박해를 받았으며, 그의 부모들은 그의 안전을 위하여 애굽으로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었던 것이다.  악한 법률과 칙령의 구속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은 큰 은혜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는 우리는 우리의 안정을 위하여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모세의 부모들의 이러한 믿음 가운데는 불신앙의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그 사실을 묵인하였다.
2. 모세의 부모들의 이러한 행위의 이유.  물론 본능적인 사랑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작용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좀더 큰 이유가 있었다.  본문에 보면 그들이 "그 아이가 아름다움을 보고"라고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7장 20절에서는 이르기를 ‘아스테이오스 토 데오’ -venustus Deo ─ 즉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리라고 하였다.  모세에게는 이런 범상치 않은 점이 있었다.  그가 위대한 일을 이루기 위하여 태어났다는 전조로써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그를 덮고 있었다.  또한 그가 하나님과 사귐으로 그의 얼굴이 빛날 것이며(출 34:29).  그가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빛나고 뛰어난 일을 하리라는 것과 그의 이름이 성서에 기록되어 빛날 것이라는 전조로써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그를 덮고 있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흔히 인간의 용모는 그 마음을 나타내 준다.
3. 모세의 부모들의 믿음은 그들의 두려움을 극복하였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출 1:22).  모든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여서 이스라엘의 이름이 이 땅 위에서 없애 버리려는 법령은 악하고도 잔인한 법령이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들은 자기의 아이를 당장에 포기할 정도로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만약에 모든 사내아이가 다 죽음을 당한다면 하나님의 교회가 참된 종교가 종래에는 사라질 것이라는 것과 또 현재와 같은 속박과 압제의 상태에서는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누구나 여길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보존하시고 때가 오면 이스라엘을 생명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할 수 있으면 아이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자기의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내거는 모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들의 왕의 명령 자체가 악한 것이며 하나님의 법도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순종하지도 않았다.  믿음은 인간의 죄된 굴종적인 두려움을 막아 주는 방부제이다.  믿음은 인간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게 하며 또 피조물의 무상함과 그리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권세와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은 다음의 것을 언급하였다.
XII. 모세 자신의 믿음(24,25).  여기서 다음을 알 수 있다.
1. 세계의 정복한 모세의 믿음.
(1)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거절하였다."  바로의 공주는 모세를 주워다 길렀고 또 몹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모세를 자기 양아들로 삼았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거절하였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① 모세가 처하였던 크나큰 유혹.  바로의 딸은 바로의 무남독녀였다.  또한 공주 또한 자녀가 없었다.  그런 형편에 모세를 발견하여 구원한 그녀는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키우려고 결심하였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집트의 왕이 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서 있었다.  또 그렇게 되었다면 그는 좀더 이스라엘 백성에게 봉사할 수 있었을 수도 있겠다.  모세는 이 공주 덕분에 살아났었다.  따라서 모세가 공주의 호의를 거절한다는 것은 그녀에 대한 배은망덕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그를 높이고 또 그의 백성들에게 유익을 주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섭리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었다.
② 그렇게 큰 시험 가운데서도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둔 모세의 믿음.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가 이같이 한 것은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그의 보다 참된 명예를 자신이 낮게 평가하게 될까 보아서였다.  또 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그의 믿음까지 저버린 것처럼 여겨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만약 모세가 공주의 아들의 명예를 받아들였다면, 그는 불가불 그의 신앙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절해야 했었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것을 점잖게 거절하였다.
(2) "모세는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25절).  모세는 비록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하였으며 잠시 뿐이요 그 후에는 영원한 파멸만이 있는 바로 궁전에서의 관능적이고 죄된 즐거움을 즐기기보다는 그 백성들과 함께 장차 있을 유업을 받고자 하였다.  이같이 모세는 신앙에 따라 행동하였을 뿐 아니라 합리적으로 행동하였다.  그는 세상적인 권력에의 유혹을 극복하였듯이 또한 세상적 쾌락에의 유혹도 극복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① 죄된 쾌락은 잠시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런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속히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속히 멸망하게 된다.
② 이 세상의 즐거움은 특별히 궁전 안의 쾌락은 종종 죄된 쾌락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또 그의 백성의 자격을 상실하지 않고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쾌락을 언제나 즐긴다.  참된 믿음을 지닌 자는 그러한 제안을 받았을 때 이러한 쾌락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③ 죄보다는 차라리 고난을 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크나큰 죄보다도 차라리 고난을 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크나큰 고통보다 최소한의 죄의 결과가 무서운 법이다.
④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을 때 또 그들과 같은 관심사를 지니고 같은 성령에 의해 생기를 얻게 될 때 고난에서 오는 아픔은 훨씬 감소된다.
(3)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더 큰 재물로 여겼다"(26절).  모세는 이 두 가지를 각각 저울에 달았다.  그는 저울 한편 쪽에는 신앙을 가질 때 각오해야 할 최악의 사태 즉 "그리스도를 위해 받아야 할 능욕"을 올려놓고 저울 반대편에는 이 세상에서 으뜸으로 여길 만한 "애굽의 모든 보화"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의 믿음의 눈에는 저울추가 신앙으로 인해 받는 고난이 세상에서의 최상의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무서운 것으로 보였다.  하나님의 교회가 받는 능욕은 현재의 교회의 머리이시며 언제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로 인해 받는 능욕"인 것이다.  모세는 이전에 이 세상의 쾌락과 명예를 이긴 것처럼 세상에서의 부유함 또한 이겼다.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능욕을 받는 백성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는 능욕을 자신이 받는 능욕으로 생각하신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들이 받는 비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시므로 그들은 이 세상에 있는 가장 부유한 왕국에 있는 보화보다도 더욱 많은 보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결코 소멸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으로 보상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이러한 것을 식별해 낸다.  또한 그러한 분별에 의해 뜻을 정하고 행동하게 한다.
2. 모세가 그의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겼던 시기에 대하여 본문은 언급하였다.  즉 그가 이 세상의 명예와 쾌락과 보화의 유혹을 극복하였던 시기가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장성하였을" 때였다(24절).  즉 그가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험도 쌓은 나이 사십세가 되었을 때 즉 그가 위대해졌을 때 또는 성인이 되었을 때 그렇게 결단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가 이같은 선택을 보다 일찍 결단하지 않고 너무 늦게 내렸다고 보아 40세에 그런 결단을 내렸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의 가치를 손상시킨다고 본다.  그러나 모세가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이며 왜 그 일을 하는지 판단하고 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성숙한 때에 이러한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오히려 그의 자기 부정과 세상에 대한 승리를 훨씬 돋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모세의 결정은 미숙한 어린 인간이 세상적인 사업과 쾌락 가운데서 있으면서도 진지한 믿음을 지키고 또 세상의 환락을 즐기고 맛볼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주어져 있는데도 그것들을 경멸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고귀한 행위이다.
3. 이 세상을 이기고 그러한 승리를 얻도록 모세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지지해 준 받침대.  이에 대하여 본문은 그가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26절)"고 하였다.  어떤 이는 여기서 말하는 상을 애굽에서의 해방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의심해 볼 여지없이 그것은 더욱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즉 믿음과 성실성에 대한 또 다른 영광스러운 보상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을 살펴보자.
(1) 하늘나라는 위대한 보상이다.  그것이 우리의 분수를 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보상이다.  하늘나라는 그것을 얻기 위해 치르신 값,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합당한 보상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 대한 충분한 응답인 것이다.  하늘나라의 보상은 당연한 보상이다.  왜냐하면 의의 재판장이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의로운 백성들에게 의로운 은혜의 계약의 법칙을 따라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믿는 자들은 이러한 보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하늘나라에 익숙하여지고, 그 나라를 찬양하면서 그 나라를 기대하고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할 때 하늘나라는 그들의 길을 인도해 주는 등대요 그들의 마음을 이끄는 자석이요 그들의 적을 쳐부수는 검이요 그들로 자기의 의무를 행하도록 촉고해주는 박차가 되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수행하도록 새 힘을 불어넣어 주는 강심제임이 입증될 것이다.
4. 우리는 모세의 믿음의 또다른 예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애굽을 떠났다는 점이다.  본문에 이에 대하여 "모세는 믿음으로 왕의 분노도 무서워하지 않고 애굽을 떠났다"고 하였다(27절).  다음을 살펴 보자.
(1) 모세의 믿음에 의한 결단.  그는 "애굽을 떠났다."  또한 애굽의 모든 권세와 쾌락을 버리고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여 내는 일을 착수하였다.  모세는 두 번 애굽을 떠났다.
① 범인의 누명을 쓰고 애굽 떠났었다.  왕은 그가 애굽인을 죽였다고 하여 그에게 대단히 격노하였다(출 2:14, 15).  출애굽기에 보면 그가 두려워했고 하였는데, 이는 자포자기적인 데서온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구하려는 신중함에서 비롯된 두려움이었다.
② 모세는 의로운 소수의 백성 이스라엘의 지휘관과 통치자로서 애굽을 떠났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서 바로를 낮추셨고 또 바로로 이스라엘을 보낼 수밖에 없게끔 하시었다.
(2) 그의 믿음의 승리.  믿음으로 모세는 왕의 노함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  모세는 왕의 분노는 자기를 일격에 없이할 수가 있는 것이라는 것과 또 그 왕이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그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출 14:13)고 말하였다.  애굽을 버리는 사람들은 인간들의 그들에 대한 격노를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의 격노를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바꿀 수 있으며, 격노하는 인간들을 제어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3) 이러한 믿음의 행위를 가능하게 한 동기.  이에 대한 이 본문에는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다"(27절)고 하였다.  모세는 모든 위험을 불굴의 용기로 극복하였고 감당하기 어려운 자신의 사명에서 오는 피곤을 견뎌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본 듯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의 지각 즉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신다.  이 사실은 사람들이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려는 인간들의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으냐 하는 것을 알려준다.
② 믿음에 의해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실존과,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와 더불어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롭고 능력 있는 현존을 확신할 수 있다.
③ 하나님을 볼 수 있음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도중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목적을 향하여 인내할 수 있도록 하여 준다.
5. 본문에는 모세의 믿음의 또 다른 예가 수록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를 지켰다는 점이다(28절).  이 일에 대한 기록은 출애굽기 12장 13절에는 23절까지는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유월절 절기를 지키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이 유월절 제도를 반포하신 것은 바로 모세를 통해서였다.  유월절은 깨닫기 어려운 제도였지만 모세는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법을 선포하고 또 그 자신도 그날 밤 그가 거하던 집에서 이 유월절을 지켰다.  유월절은 구약의 절기 가운데 가장 엄숙한 것 중의 하나이며 매우 의미 깊은 그리스도의 유형이다.  첫 번 유월절에 일어났던 일은 대단히 특수한 일이었다.  바로 유월절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첫 번 태생을 모두 죽이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인들 가운데 거하고 있었지만 파괴의 천사는 그들의 집을 건드리지 않았고 그들과 그들의 모든 것들을 다 건드리지 아니하였다.  이 놀라운 분별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을 따기 위하여 또 자신들이 그 재앙에서 제외되었다는 표시로써 그들은 어린양을 잡아서 그 양의 피를 박하단을 묶은 것으로(우슬초단으로) 문설주와 두 문기둥 위에 뿌려야 했다.  또 양의 고기는 반드시 불에 구워서 전부 쓴 약초와 함께 먹어야 했다.  또한 여행할 자세로서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손에 들고, 바로 그날 밤 그들은 이러한 절차를 수행하였고 따라서 죽음의 천사는 그들을 건너뛰고 애굽의 장자들은 죽였던 것이다.  이로써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되었다.  이 유형을 원형이신 그리스도에 대비시킬 때 우리는 양자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1) 그리스도는 어린양이시오 우리의 유월절이시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셨다.
(2) 그리스도의 피는 모두에게 뿌려져야 한다.  그 피는 구원의 은혜를 입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3) 그리스도의 피는 이스라엘 족속 즉 하나님의 선민에게만이 효력을 나타낸다.
(4)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본래적인 의나 또는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고 다만 그리스도의 보혈과 모든 죄를 맡으신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서이다.  만약 이스라엘 족속 중 어느 누구라도 어린양의 피를 문 앞에 바르는 일을 태만히 하였다면 그들이 밤새도록 기도하였다 해도 죽음의 천사는 그 집에 들어가 그들의 첫 번 태생을 죽였을 것이다.
(5)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는 영원한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를 통째로 소유하게 되며 그에 의해 살게 된다.
(6) 이러한 참된 믿음이 있을 때 영혼은 죄에 대하여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비록 그 죄가 용서될 수 있고 또 구속받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된다.
(7)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여러 가지 영적인 특권들은 우리로 하여금 일찍 속된 것을 버리고, 하늘나라로 가는 길로 나아가도록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8) 구별된 사람들은 언제나 자유롭고도 선택해 주시는 은사를 기억하고 깨달아야 한다.
XIII. 다음 번의 믿음의 보기로는 지도자 모세의 지휘에 따라 홍해를 통과한 이스라엘 족속들이 신앙이 소개되고 있다(29절).  이 이야기는 출애굽기 14장에 수록되어 있다.  다음을 유의하자.
1. 이스라엘인들의 홍해 통과.  당시 바로와 그의 군대들은 그들을 바싹 추격하고 있었고 또 바로 칼날을 피할 다른 방도가 없는 처지에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볼 수 있다.
(1) 이스라엘의 위험은 대단히 큰 것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전차와 기병이 추격하고 있었다.  또 가파른 바위산이 그를 양쪽에 가로막고 있었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었다.
(2) 그들의 탈출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믿음으로 그 백성들은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널 수 있었다.  믿음은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 준다.
2. 애굽인들의 파멸.  애굽인들은 어리석게도 홍해를 건너 이스라엘을 추격하려고 하였다.  이같이 그들은 자기들의 앞에 놓인 파멸을 보지 못하였고 또한 완악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이 경솔했던 만큼 그들의 파멸은 또한 더욱 비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패배가 없으시다.  죄인들은 자기들의 파멸을 스스로 자초한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XIV. 다음번의 믿음의 보기로는 그들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여리고의 성벽 앞에서 보여준 이스라엘인들의 믿음이 제시되었다.  이 이야기는 여호수아 6장 5절 이하에 있다.  여기서 다음을 살펴 보자.
1.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법.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루에 한번씩 일주일 동안 매일 성벽의 주위를 돌며, 마지막 날에는 일곱 번을 돌도록 명령하셨다.  또한 제사장들은 성벽을 따라 돌 때 언약궤를 가지고 돌며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되 평상시보다도 더욱 길게 불며, 마지막 날에 그 백성들은 함께 소리 지르라고 명하셨다.  그러면 여리고 성벽은 그들의 앞에서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믿음에 대한 크나큰 시험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령하신 방법은 여리고 성을 함락하려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으며, 적의 면적에서 매일 조롱을 당할 짓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하나님의 법궤도 위험 앞에 노출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바로 이러한 전략을 명하시었다.  하나님은 작고 하찮은 방법으로 위대한 일을 행하시기를 즐기신다.  그는 이같이 하시므로 자신의 참 모습을 은폐하신다.
2. 명령하신 방법에 순종할 때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놀라운 승리.  여리고의 성벽은 그들의 앞에서 무너졌다.  여리고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으로 이스라엘을 가로막는 첫 번 적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비범한 방법을 통해 여리고 성의 위엄이 보잘 것 없는 것임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는 이로써 자신의 위엄을 나타내셨고, 가나안 인으로 두렵게 하셨으며 이스라엘의 믿음을 강하게 하셨고 이스라엘로 자랑할 수 없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유익과 영광을 파괴하려는 모든 반대 세력을 자신이 정하신 시간이 그의 방법에 따라서 물리치시고 또 물리치실 것이다.  또는 그는 강한 요새를 무너뜨리시므로 사람들의 믿음을 강력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믿음을 보시고 바벨론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또 그가 그 백성들을 위하여 어떤 위대한 일을 수행하실 때는 그들에게 크고 강한 믿음을 부어 주신다.
XV. 라합의 믿음(31절).  사도는 많은 고귀한 믿음의 용사들을 열거한 후 끝으로 라합을 제시하였다.  그가 이같이 한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라합의 인물됨
(1) 라합은 가나안 인으로 "이스라엘의 분깃에 대하여서는 이방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믿음에 대하여 거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였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신앙인이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일상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 역사할 때 그것은 강력하게 역사하는 법이다.
(2) 라합은 기생이었으며 죄된 방법으로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라합은 술집의 주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을의 매춘부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무리 큰 죄라도 만약 참으로 뉘우친다면 하나님의 용서의 자비가 오리라는 것을 믿었다.  그리스도는 죄인 중의 괴수라도 용서하셨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는 더욱 풍성한 것이다."
2. 믿음으로 라합이 행한 행위.  "라합은 정탐꾼을 맞아들였다."  즉 그녀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기 위해 보낸 사람들을 맞아 들였다(수 2:6, 7).  그녀는 그들을 맞아들였을 뿐 아니라 정탐꾼을 단칼에 베이려고 찾으러 온 그들의 적들로부터 그들을 숨겨주고 자기의 믿음을 고백하였다(9-11절).  그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실 때 그녀와 자기의 가족에게 이스라엘이 은총을 베풀겠다는 계약을 그들로 하여금 맺게 하였고 또 그들이 그녀를 식별할 수 있도록 표지를 정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그들은 그녀에게 붉은 천을 창가에 매달라고 정해 주었다.  라합은 그 후 그들을 신중하고도 우정어린 길 안내를 하여 돌려보냈다.  여기에서 다음의 것을 배울 수 있다.
(1)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선행으로 나타난다.
(2) 믿음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선행을 행한다.  참된 믿음을 지닌 자는 하나님의 이익과 그의 백성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위험에 처하는 길을 택한다.
(3)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열심히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것을 바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과 사귀는 것을 열망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 편에 기꺼이 제비를 던지고 그들이 분깃을 나눌 때 거기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3. 믿음에 의하여 라합이 얻은 것은?  라합은 불신앙하는 자들과 함께 당할 파멸에서 놓여났다.
(1) 라합의 이웃과 친구와 시민들의 대부분은 다 멸절되었다.  여리고에 임한 파멸은 철저한 것이었다.  사람과 짐승이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2) 여리고 멸망의 이유.  그것은 불신앙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란 사실과 또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을(그들은 위의 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보았음에도) 믿지 않았다.
(3) 표지를 통해 실현된 라합의 구원.  여호수아는 자기의 군대에게 엄격히 명령하여 아무도 라합과 그의 집을 해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라합은 잊지 않고 주홍색 천조각을 그녀의 집 창문에 매달아 놓음으로써 자기의 집이 자비를 얻어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였다.  대부분의 무리들이 불신자들이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신앙인을 미워하는 와중에 한 명의 신앙인이 처하여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시고 파멸의 때에 그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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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구자(2)(히 11:32-40)
앞에서 바울은 많은 뛰어난 신앙들의 무리를 우리에게 소개하였었다.  그런데 앞의 신앙인들을 소개할 때, 바울은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또 그들 각자의 믿음의 시련과 믿음의 행위를 그들의 이름에 따라 각각 소개하였었다.  이제 본문에서 바울은 다른 부류의 신앙인들을 요약 형태로 소개하므로 본장을 끝맺는다.  여기서 바울은 각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고 그 사람의 독특한 믿음의 행위를 각각 소개한 것이 아니라 한 묶음으로 처리하였다.  그가 이같이 한 것은 구약 성서를 잘 알고 있는 자기의 편지의 수신인들이 스스로 신앙인들에 따른 신앙의 행적을 각각 적용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답게 세련된 서두를 꺼냄으로 본문을 전개하고 있다.  즉 그는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이 모든 일을 다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라(32절)"고 하였다.  이 말을 다음과 같은 뜻이다.  "이런 사실을 일일이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내가 계속 이런 문제를 말하려 한다면 서신이라는 한정된 지면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조금만 설명할 것이니 너희 각자가 나름대로 그외의 사실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다음을 살펴보자.
1. 성경을 마무리 연구하여도 거기에는 배워야 할 것이 여전히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사실에 대하여 말할 때 미리 우리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내에 그 사실을 말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3. 우리는 구약 가운데 많은 신앙인들이 있었으며, 또 그들의 믿음이 강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즐거워해야 한다.  비록 당신에는 그들의 믿음의 목적들이 뚜렷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4. 우리는 믿음의 법도가 더욱 명확하고 더욱 완전해진 복음의 시대에, 이에 비해 믿는 자들의 수효가 너무 적고 그들의 믿음 또한 너무나도 약한 것을 슬프게 여겨야 한다.
Ⅰ. 바울이 요약형태로 언급한 인물들.
1. 기드온, 기드온의 이야기는 사사기 6장 11절에 있다.  그는 미디안 족속의 압제로부터 그의 백성을 구해내시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훌륭한 도구였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지파와 가문의 출신이었으며 직업도 비천하였다(그는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니 너는 힘센 용기가 될 것이라"는 놀라운 말을 전해 주었다.  기드온은 처음에는 그러한 영예를 사양하였다.  그는 겸손하게 천사에게 자신의 가문이 낮고 비천함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천사는 기드온에게 그의 사명을 전달하고 승리를 보장하고, 바위로부터 줄이 나오게 하므로 그를 확신시켰다.  기드온은 제물을 드리도록 지시 받고 그의 의무에 대하여 교훈 받았으며, 삼만 이천의 군사가 삼백으로 줄었을 때 미디안을 향해 진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등불과 항아리를 지닌 이 300명의 군사를 가지고 미디안의 모든 군대를 혼란과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  또한 기드온에게 이같이 큰 용기와 영예를 안겨 주었던 믿음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그의 형제들에게는 겸손하고 정중하게 행동하도록 하여 주었다.  믿음의 은혜는 이같이 놀라운 것이어서 그것을 인간들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동시에 그들로 자신에 대하여 자마네 빠지지 않도록 지켜 준다.
2. 바락 그는 가나안의 왕 야반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세워진 또다른 하나님의 도구였다(삿 4장).
(1) 그는 군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선지자" 드보라의 지시와 위탁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가 적을 토벌할 때 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행하였다.
(2) 바락은 믿음으로 시스라의 모든 용사들을 물리치고 위대한 승리를 얻었다.
(3) 바락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찬양과 영광을 되돌려 드렸다.  이것이 믿음의 참된 모습이다.  믿음은 모든 위험과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의뢰하게 하고 또 모든 자비와 구원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감사로 보답하게 한다.
3. 삼손 그는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또다른 도구였다.  그의 이야기는 사사기 13장-16장에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은혜는 우리의 영혼을 강건케 하며 위대한 봉사를 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배운다.  만약 삼손이 강한 힘 못지 않게 강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그는 결코 그러한 공을 세우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종들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2) 참된 믿음은 많은 실패에 부딪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3)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은 죽음에 처하여 죽음을 극복하며 또 그들에게 결사적으로 도전하는 원수들도 극복한다.  신앙인의 가장 위대한 정벌은 그의 죽을 때에 이룩된다.
4. 입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삼손의 이야기보다 앞인 사사기 11장에 기록되어 있다.  입다는 암몬 족속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구출하기 위해 세움을 받았다.  여러 가지의 새로운 적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여 일어나는데 비례하여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여러 해방자들을 세우신다.  입다의 이야기에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의 은혜는 가장 가치가 없고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또 그런 인간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수행하도록 하신다.  입다는 매춘부의 아들이었다.
(2) 믿음의 은혜는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깨닫도록 해 준다(11:11).  그러므로 "입다는 자기의 말을 다 고하였다(삿 11:11)."
(3) 믿음의 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선한 사업을 위해 담대하고 과감하게 해 준다.
(4) 믿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시원하게 할뿐만 아니라 긍휼을 입은 후에 주어진 자비에 대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게 한다.  입다와 그의 딸의 경우와 같이 비록 서원한 내용이 자기들에게는 손실과 슬픔을 주더라도 그 서원을 지키게 해 주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위대한 인물 다윗과 같이 큰 시험을 당하고도 생명에 넘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는 처음 나타날 때부터 믿음의 위대한 힘을 과시하였다.  그의 믿음은 젊었을 때 그로 하여금 "사자와 곰을 죽일 수 있게"하였고 또 그로 하여금 장사 골리앗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또 다윗으로 골리앗을 무찌르게 해 주었다.  같은 믿음이 그로 하여금 사울과 그의 추종자들의 자신에 대한 부당한 박해도 견디게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권세와 위엄을 주실 때까지 인내하게 하였다.  똑같은 믿음이 다윗으로 하여금 언제나 성공적이고 승리하는 왕이 되게 하였다.  즉 그는 건강과 영광의 삶을 오래 산후에 하나님께 자기와 자기 후손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언약을 의지하면서 죽을 수 있었다(하지만 물론 그에게도 죄의 더러운 얼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는 자기가 당한 시련과 믿음의 행위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시편에 수록하여 후세에 전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유익을 주기도 하였다.
6. 사무엘,  그는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치리자인 동시에 이스라엘 중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어린 아이였을 때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고 또 그가 죽는 날까지 그에게 계속 나타나셨다.  그의 생활에서 다음의 내용을 생각해 보자.
(1) 일찍부터 믿음 가운데서 자라란 사람들은 흔히 장성하여 뛰어난 믿음을 지니게 된다.
(2)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계시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믿음이 확고하여야 한다.
7. 사무엘을 말한 후 바울은 구약교회의 특별한 성직자였던 선지자들에게 대하여 말하였다.  이들은 어느 때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기 위하여 때로는 하나님의 자비를 약속하기 위해 또는 오직 하나만이 아시는 놀라운 사건을 미리 예언하기 위해 하나님께고용된 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주된 임무나 메시야를 예고하는 것 즉 그의 오야가 율법뿐 아니라 모든 예언자들이 중심이셨기 때문이었다.  선지자직 같은 직분을 바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참되고도 강한 믿음이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
Ⅱ. 특별한 인물들의 이름을 열거한 후에, 바울은 그들이 믿음으로 행한 일을 우리들에게 말하였다.  그가 말한 내용들 가운데 어떤 것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쉽게 식별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내용은 여기 기록된 인물들에게는 적용이 곤란한 것들도 있었다.
1. 이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였다"(33절).  그들은 다윗과 여호수아와 많은 사사들이 그러하였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배울 수 있다.
(1) 이 세상의 왕들과 나라들이 추구하는 이익과 그 권세는 흔히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 상반된다는 점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대적하는 왕과 왕국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3) 믿음은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지닐 가장 뛰어나고 적절한 조건인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롭고 담대하고 지혜롭게 만든다.
2. 그들은 "의를 행하였다." 즉 그들은 공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가능한 한 의를 행하였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우상 섬김으로부터 의로운 길로 돌아오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이 믿음은 그들로 의로운 행동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하여 의롭게 살았다.  기적을 행한 것보다는 이를 행한 것이 더욱 더 큰 영예이며 복된 일이다.  믿음은 으뜸가는 의로운 행위이다.
3. "그들은 약속을 받기도 하였다." 즉 그들은 일반적이거나 또는 특별한 약속을 받았다.  우리로 약속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믿음이다.  우리가 약속의 위로를 소유하는 것은 이 믿음에 의해서이다.  또한 우리가 약속을 기다리도록 해 주며 또 때가 되면 약속을 얻게 해 주는 것도 믿음이다.
4. "그들은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였다."  삼손이 그러하였으며(삿 14:5, 6) 다윗과(삼상 17:34, 35) 다나엘이 그러하였다(단 6:22).  여기서 우리는 다음을 배울 수 있다.
(1) 하나님의 능력은 피조물의 능력을 초월하신다는 점이다.
(2) 믿음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에 참여하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야만적인 짐승과 야만적 인간을 이기도록 하여 주신다.
5. "그들은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였다"(34절).  모세가 믿음의 기도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는 적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껐다(민 11:12).  또 세 연약한 젊은이들 아니 그보다는 강한 투사들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또한 불을 극복하였다(단 3:17-27).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금신상에게 절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느부갓네살이 준비해 놓은 용광로에 던져지게 되었다.  그들의 믿음은 용광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 하심을 나타내게 하였다.  그 하나님의 능력은 맹렬한 불이 그들을 다치지 못하게 하여 그들에게 그들은 냄새조차 나지 않게 하셨다.  사실 이들이 당한 믿음의 시련은 누구도 겪지 못한 가장 극심한 것이었고 동시에 그 믿음 또한 놀라운 것이었으며 그들의 믿음에 대한 보상 또한 지극한 것이었다.
6. "그들은 칼날을 피하기도 하였다(34절)." 다윗의 골리앗과 사울의 검을 피하였다.  또한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하만의 검을 피하였다.  인간들의 검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그는 칼날을 무디게 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서 칼날을 옮기시어 적에게 향하도록 하실 수도 있다.  믿음은 인간의 검을 쥐고 있는 하나님의 손을 잡은 것과 같다.  또한 하나님은 흔히 자기 백성들의 믿음에 의하여 설득당하시곤 하신다.
7.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되기도 하였다(34절)." 이 말씀은 민족적인 취약성에서 강하게 된다는 말씀으로 볼 수 있다.  불신앙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자주 약함에 떨어졌었다.  그들이 다시 믿음을 회복하였을 때, 그들의 국내 사정은 활기를 되찾았다.  또한 이 말씀은 육신의 연약함에서 강해진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치명적인 독창에서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권능과 약속에 의해 자신이 회복되었노라고 고백하였다(사 38:15, 16).  그러므로 그는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친히 이루였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거기에 있사옵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이 말씀은 인간이 믿음의 은총에 의해 영혼의 연약함에서 깨어나 그들의 힘을 되찾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한다.
8. 그들은 "전쟁에 용맹하였다"(34절).  여호수아와 사사들과 다윗이 그러하였다.  참된 믿음은 참된 용기와 인내를 준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 있으심을 깨닫게 해 주며 또한 그의 모든 원수들의 연약함을 깨닫게 해 준다.  이러한 신앙인들은 용맹할 뿐만 아니라 승리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또 그들의 믿음을 격려하고자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게 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축복에 낯선 무리들과 참 믿음에 대한 원소들을 물리치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방의 진지를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서 흩으신다.  신앙과 기도를 쉬지 않는 지도자는 신앙과 기도를 하는 군대의 사령관으로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영예를 높이므로 그들 앞에 아무 것도 설 수 없게 한다.
9.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였다"(35절).  사르밧의 과부가 그러하였고(왕상 17:23).  수넴 여인이 그랬다(왕하 4:36).
(1) "그리스도 안에서는 여자도 남자도 없다."  오히려 나약한 많은 여성들이 오히려 믿음을 강하였다.
(2) 은혜의 계약이 믿음의 자녀들에게 주어졌지만 자연적인 죽음의 지배에서 그들이 제외될 수도 없었다.
(3) 자녀들이 죽었을 때 가련한 어머니들은 그래도 자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법이다.
(4) 하나님은 가끔 슬퍼하는 여인들을 불쌍히 보시고 그의 자녀를 죽음에서 다시 소생하게 하셨다.  이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다(눅 7:12).
(5) 전에 있었던 몇 번의 부활들은 모든 사람의 부활하리라는 우리의 신앙을 확고하게 해 준다.
Ⅲ. 바울은 우리에게 이를 믿는 자들이 믿음에 의해 어떤 것들을 인내하였는가를 말해 준다.
1. "그들은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려 하지 아니하였다"(35절).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과 구세주와 신앙을 포기하도록 하려는 자들로부터 고문을 당하였다.  그럴 때 그들은 악형을 견디고 비굴하게 그들이 내거는 조건을 수락하여 석방되고자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같은 악형을 견딜 수 있게 한 것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는" 또한 더 명예로운 조건하에 석방되려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마카비 후서 7장 이하에 있는 내용에 대한 말씀인 것으로 보인다.
2. "그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만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견뎌냈다"(36절).  그들은 조롱을 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롱은 순수한 심령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잔인한 형벌이었다.  또 어떤 이들은 노예에게 가해지는 형벌인 채찍을 맞았다.  또 어떤 이들은 "결박과 옥에 갇히는 일을 당하였다.  의인을 향한 악인들의 악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자.  그 잔인함은 끝이 없고 또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죄밖에는 다른 죄가 없는 사람들에게 행하는 형벌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도 생각하여 보자.
3. 그들은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어떤 이들은 스가랴와 같이 "돌로 침을 당하였고"(대하 24:21), 므낫세가 이사야에 행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톱으로 켬을 당하였다." 또한 그들은 "시험을 당하였다." 어떤 이는 "시험을 당하였다"는 말을 "화형을 당하였다"는 말로 번역한다.  또 그들은 "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온갖 종류의 죽음이 그들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의 적들은 그들을 가장 끔찍하고도 잔인하게 죽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또 견뎌냈다.
4. 죽음으로부터 피한 사람들은 너무나 악한 대우를 받았으므로 차라리 그런 삶보다는 죽음이 더욱 나은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적들이 그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그들의 비참한 고통을 연장시키고 그리하여 그들의 인내심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게 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하는 것과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게 하는" 형벌이 모두가 그들로 인내심을 지치게 하기 위한 것들이었다(37,38절).  그들은 삶의 편의를 다 빼앗겼고 집과 거주처로부터 쫓겨났다.  그들은 입을 옷이 없어서 다만 짐승의 가죽으로 몸을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모든 인간 사회에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암혈과 토굴 속으로 몸을 숨기며 그들의 적들보다 완악하지 않은 바위나 강물에게 하소연 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하였다.  그들은 믿음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믿음으로 받았고 또 믿음의 은총의 능력을 통해서 이런 고통을 견디어 내었다.  우리가 동료에 대해 잔인한 짓을 감행하는 인간의 잔악성과 믿는 자로 그러한 고통 밑에서도 믿음으로 견디도록 능력을 주시고 이 모든 고통을 무사히 통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탁월하신 은총 중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할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Ⅳ. 그들이 믿음에 의해 얻은 것.
1. 그들은 진정한 심판자이시며 모든 영예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명예로운 명칭을 부여받았다.  즉 "세상은 이런 사람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이러한 축복을 감당치를 못한다.  사악한 사람들은 이러한 축복들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또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인간의 완악함이여! 한편 본문은 공의로운 사람을 이 세상은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은 그들이 거할 곳이 아니라고 선언하신다.  악인들의 의로운 자들에게 다른 형을 가한다.  그러나 이 악인들이 일치하는 점이 이는데 그것은 의인들을 이 세상에서 몰아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내사 그들에게 적합한 세상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그들이 가게 될 세상은 그들의 봉사와 고통당한 것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는 그러한 귀한 세상이다.
2. "이 사람들은 다 증거를 받았다"(39절).  즉 그들은 선한 자와 진리 자체에 의해 보증을 받았다.  또한 그들은 본문의 하나님의 증인들의 명부에 오르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원수에 앞에서 조금의 양심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실상 그들의 적들은 그들을 핍박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것은 자기들이 자신들보다 의로운 사람들을 박해하였다.
3. 그들은 약속된 것들을 아직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약속에 대한 보증은 받았다.  그들은 약속된 위대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약속에 대한 참여권은 부여받았다.  여기서 말씀된 "약속된 것"은 하늘나라의 축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의 축복은 그들이 죽었을 때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씀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하늘나라의 축복이 아니라 복음에 시대 도래의 축복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형은 지니고 있었으나 원형은 가지고 있지 못하였었다.  그들은 그림자가 지니고 있었으나 본체는 보지 못했다.  이러한 불확실한 섭리에서도 옛 성도들은 이같이 귀중한 믿음을 지켰던 것이다.  이같이 불확실한 섭리 아래서 그들이 이러한 믿음을 지녔다는 것을 말하므로 바울은 그들의 믿음이 이로써 더욱 빛나는 것임을 보이려고 했었다.  또한 이 사실을 말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선의의 경쟁과 열심을 가지도록 자극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을 위한 도움과 혜택을 그들보다 훨씬 누리지 못한 자들이 지녔던 믿음보다 뒤지는 믿음을 지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고 히브리인들에게 말했다(40절).  또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선한 일을 바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바울은 복음은 구약의 완성이고 마감이며, 구약은 다만 그리스도와 복음을 예고해 준다는 것 이외에는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복음을 지닌 그들은 구약의 성도들의 믿음보다 더욱 완전해야 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바라신다는 것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복음의 섭리는 이전의 구약의 섭리보다 더욱 완전하며 또 그것은 구약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복음 교회가 없다면, 유대의 교회는 불완전하고 온전치 못한 상태로써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강력한 말씀을 대하는 우리 또한 이 말씀에 깊이 설득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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