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1.0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사62.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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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사62장...HS인도따라 기도하는 기도자

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8.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9.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10.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11.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12.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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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사62장

1.  시온의 공의가 빛처럼 드러나고,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처럼 나타날 때까지, 시온을 격려해야 하므로, 내가 잠잠하지 않겠고, 예루살렘이 구원받기까지 내가 쉬지 않겠다.

2.  이방 나라들이 네게서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다. 뭇 왕이 네가 받은 영광을 볼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부를 때에, 주께서 네게 지어 주신 새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3.  또한 너는 주의 손에 들려 있는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

4.  다시는 어느 누구도 너를 두고 '버림받은 자'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너의 땅을 일컬어 '버림받은 아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이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주께서 너를 좋아하시며, 네 땅을 아내로 맞아 주는 신랑과 같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이, 너의 아들들이 너와 결혼하며,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이, 네 하나님께서 너를 반기실 것이다.

6.  예루살렘아,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들을 세웠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늘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하신 약속을 늘 주께 상기시켜 드려야 할 너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늘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

7.  주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실 때까지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예루살렘이 세상에서 칭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주께서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8.  주께서 그의 오른손, 곧 그의 능력 있는 팔을 들어 맹세하셨다.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의 식량으로 내주지 않겠다. 다시는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 사람들이 마시도록 내주지 않겠다."

9.  곡식을 거둔 사람이, 곡식을 빼앗기지 않고 자기가 거둔 것을 먹고, 주님을 찬송할 것이다. "거둔 사람이 자기가 거둔 것을 내 성소 뜰에서 마실 것이다."

10.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

11.  보아라, 주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 세우고 오신다.

12.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분의 백성'이라 부르며 '주께서 속량하신 백성'이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도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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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사제62장

1.  For Zion's sake I will not keep silent, And for Jerusalem's sake I will not keep quiet, Until her righteousness goes forth like brightness, And her salvation like a torch that is burning.

2.  And the nations will see your righteousness, And all kings your glory; And you will be called by a new name, Which the mouth of the LORD will designate.

3.  You will also be a crown of beauty in the hand of the LORD, And a royal diadem in the hand of your God.

4.  It will no longer be said to you, "Forsaken," Nor to your land will it any longer be said, "Desolate"; But you will be called, "My delight is in her," And your land, "Married"; For the LORD delights in you, And [to Him] your land will be married.

5.  For [as] a young man marries a virgin, [So] your sons will marry you; And [as] the bridegroom rejoices over the bride, [So] your God will rejoice over you.

6.  On your walls, O Jerusalem, I have appointed watchmen; All day and all night they will never keep silent. You who remind the LORD, take no rest for yourselves;

7.  And give Him no rest until He establishes And makes Jerusalem a praise in the earth.

8.  The LORD has sworn by His right hand and by His strong arm, "I will never again give your grain [as] food for your enemies; Nor will foreigners drink your new wine, for which you have labored."

9.  But those who garner it will eat it, and praise the LORD; And those who gather it will drink it in the courts of My sanctuary.

10.  Go through, go through the gates; Clear the way for the people; Build up, build up the highway; Remove the stones, lift up a standard over the peoples.

11.  Behold, the LORD has proclaimed to the end of the earth, Say to the daughter of Zion, "Lo, your salvation comes; Behold His reward is with Him, and His recompense before Him."

12.  And they will call them, "The holy people, The redeemed of the LORD"; And you will be called, "Sought out, a city not forsa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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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2장 (개요)

선지자의 업무는 설교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었다. 본장에서,

1. 선지자는 이 업무를 보다 세밀하고, 꾸준하게 실행할 것을 결심하고 있다(1).

2.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선지자들을 지명하셔서 백성들이 기다리는 구원의 날이 지체되고 있을 때 꾸준히 그들을 격려해 주도록 하고 있다(6, 7).

3. 약속들이 여기서 반복되며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위해 하려고 하시는 위대한 일들이 확증되고 있다. 즉 그 일들은 포로 귀환 뒤의 유대인과 세상에 세워질 기독 교회를 위한 것이다.

   1.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영광스러운 곳으로 드러날 것이다(2).

   2.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고 존귀하여 매우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3-5).

   3. 교회는 풍요함을 즐길 것이다(8, 9).

   4. 교회는 포로에서 해방되어 다시 유력한 존재가 될 것이며 특히 하늘의 은총과 인정을 받을 것이다(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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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번성 (3)(사 62:1-5)

여기서 선지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Ⅰ. 선지자가 교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선지자는 앞 일을 내다보는 선견자인 동시에 대변자다. 이 선지자는 그 일을 충실하게 이행할 것을 결심한다. 그는 잠자코 있지 않을 것이며 쉬지 아니할 것이다(1절). 그는 자기의 업무를 마음에 두고 있을 것이며, 수고할 것이다. 결코 편안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리스도는 예언자의 직책을 실행하는데 불굴의 사람이었고 자기 역사를 완성하실 때까지 그 일을 자기의 음식으로 삼으셨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선지자의 결심은 어떠한가? 

---그는 잠잠하지 아니할 것이다(1절). 그는 전파하는 일을 순간순간 계속할 것이다. 그는 "여호와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신실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자주 반복할 것이다. 사람들이 우선 그 교훈과 약속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는 몇 번이고 그들을 설득하여 가르칠 것이며 훈계에 훈계를 더 할 것이다. 

---그는 기도를 계속할 것이다. 그는 약속된 자비를 위해 하나님을 설득할 때까지 은혜의 보좌에서 결코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할 것이다" (행 6:4). 

---그는 그 일을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처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이 두 가지 일을 빈번히 해야만 하며, 이것을 하는데 결코 싫증을 내서도 안 된다. 성직자들의 업무는 하나님께로서 받은 말씀을 자기 백성들에게 전하며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적고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들 중의 어느 것에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

2. 이러한 결심의 원리는 무엇인가? 

---"시온을 위해서, 그리고 예루살렘을 위해서다." 선지자 자신의 어떤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결심을 하는 것이다. 그는 늘 시온에 대하여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온은 항상 그의 마음 가까이에 있다. 그 자신의 집과 가족은 어떻게 되든 간에 그는 예루살렘의 선을 보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그의 전생애에 걸쳐 예루살렘의 선을 찾고자 결심한다(시 122:8, 9; 128:5). 그것은 하나님의 시온이며 그의 예루살렘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소중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시온의 번영에 걸려 있으므로 그것은 그에게도 소중하다.

3. 선지자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끈질긴 요구를 계속하겠다고 결심하는가? 

---그는(앞 장에 나온) 교회의 의와 구원의 약속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요구할 것이다.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들이 해방되는 것을 보기까지 살지는 못할 것이다. 하물며 은혜가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생명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 시대의 도래 때까지는 더 더욱 살지 못할 것이다(롬 5:21 참조). 그럼에도 이사야는 이들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예언은 이런 것들에 대하여 계속 말할 것이며, 시대마다 남은 자가 있어 이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그의 후속자로서 기도를 계속할 것이며 그 기도가 응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 교회의 공의는 빛깔이 교회의 구원은 횃불같이 나타날 것이며 그것은 너무나 명명백백하여 그 증거를 휴대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것은 교회에 영광과 위로를 가져올 것이다. 교회는 그것으로 인해 기쁘게 보이며, 훌륭하게 보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이 세계에 교훈과 방향을 설정해 줄 것이다. 그것은 눈의 빛 뿐만 아니라 발의 빛도 될 것이며 전에는 어둠 속에 앉아 있고,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길에도 빛이 될 것이다.

Ⅱ.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실 일은 무엇인가? 

---선지자는 기도와 설교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확증할 수 있고 그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다.

1. 교회는 "크게 찬양을 받게 될 것" 이다. 

---교회의 구원과 찬양과 영광이 되는 의가 드러날 때, "열방들은 그것을 볼 것이다" (2절). 교회의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전해져, 그들은 그 복음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것이 그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면 그들은 이 의를 볼 것이다. "열왕이 네 의의 영광" 을 볼 것이며, 사랑하게 될 것이다(2절). 그리고 그들은 자기 궁전과 왕국의 영광을 놔두고 보다 뛰어난 교회의 영적 영광을 보고 찾게 될 것이다.

2. 교회는 "진실로" 찬양을 받을 것이다. 

---위명(偉名)은 세상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다. 우리는 honor est in honoreant ---- 즉 명예의 가치는 그 명예를 수여하는 자의 위엄에서 나온다는 말에 공감한다. 하나님께서는 존귀의 원천이시며 교회의 영광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너는 새로운 이름, 즐거운 이름으로 불리워질 것이다" (2절). 너는 전에 그런 이름으로 불리운 적이 없으며 극히 번영하던 날에도 그렇게 불리우지 않았다. 반대로 너의 고통의 날에도 그렇게 불려지지 않았다. 너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워질 것이며, 새로운 위엄을 가지고 전진할 것이며 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너를 다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흰돌" 의 약속(계 2:17)을 암시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할 것이다" (계 3:12). "나의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2). 그 이름은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이다(2절). 

---우리가 확신컨대 그는 이름을 잘못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가 교회에 주었던 이름으로 부르게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진리를 따라 심판하실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조만간에 그 심판에 동의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실 이름은 다음 두 가지이다.

(1)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면류관이라 일컬을 것이다. 

---"너는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이다" (3절). 그 왕관은 머리 위에 씌워지지 않고(왕관을 쓰는 자기에게 영예나 권세가 주어지지만 여기서는 그와 달리) 그 손에 들려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의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간주하시고 기뻐하시며 자랑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그들로 자신의 이름과 영예와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렘 13:11). 

---너는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이며, 네 하나님의 손을 통해 왕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그렇게 만드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네 영광의 면류관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28:5). 너는 그의 수중에서 즉 그의 보호하심 아래서 왕관이 될 것이다. 네게 영광을 주시는 분은 그 모든 영광을 지키실 것이어서 네 면류관의 꽃들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며, 그 보석들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자신의 배우자라 부를 것이다(4,5절). 

---그러나 이 말은 특히 교회가 얼마나 고독한 처지에 있었던가를 생각해 볼 때 보다 큰 영광이 된다.

① 교회의 처지는 매우 우울했었다. 

---교회는 버리운 자라 칭해지며 포로 기간 중에는 황폐한 곳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수치스럽게 이혼당한 여인과 같았으며 위로받지 못하는 과부와 같았다. 복음을 전파하기 전 세상에 있는 종교의 상태가 바로 그러했다. 교회는 얼마동안 버려져 있었으며 비참한 상태에 있었다. 돌보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고, 어떤 실제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② 교회의 처지는 이제 아주 즐거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비로이 교회를 향해 돌아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수치스러운 두 가지 이름 대신에 두 가지의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질 것이다.

첫째, 교회는 "헵시바" (4절)이라고 불려질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나의 기쁨이 그녀(교회)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므낫세의 어머니 곧 히스기야의 왕비의 이름이었다(왕하 21:1). 

---이 이름은 아내에게 적절한 이름이다. 아내는 남편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잠 5:19). 여기에서 교회의 남편이 되시는 분은 교회의 창설자이시다.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다" (4절).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기쁨이 되도록 역사해 오셨다. 교회는 정화되었으며 개혁되었고 하나님을 명심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교회는 그의 기쁨이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선히 행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둘째, 교회는 "쁄라라 불리울 것이다". 

---이 말은 결혼한 여자를 의미한다. 전에는 교회가 황폐하여 쓸쓸한 상태에 있었다. 그 교회는 결혼한 여자의 상태와는 정반대의 처지에 있었다(54:1). "너의 땅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즉 교회는 다시 열매를 맺어 가득 채워질 것이다. 비록 교회가 오랫동안 불모의 땅으로 있었지만, 앞으로는 다시 사람이 살 것이며, 집을 지을 것이며 자녀들에게는 기쁨에 찬 어머니가 될 것이다(시 113:9). "교회는 결혼할 것이다" (4절). 그 이유를 살펴보자.

1. 교회의 자녀들은 진심으로 그들의 고향 땅과 결합하고 있으며 그 땅의 이익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것을 소홀히 해왔다. 그들은 그 땅을 편안히 향유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네 아들들이 너와 결혼할 것이다" (5절). 즉 그들은 너와 함께 살며, 너를 기뻐할 것이다. ::: 그들이 바벨론에 있었을 때, 그들은 그 땅과 결혼한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기에 정착해서 그 땅의 평화를 추구하도록 권고받은 때문이다(렘 29:5-7). 

---그러나 이제는 그들 자신의 땅과 다시 결혼할 것이다. 그것은 "청년이 처녀와 결혼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5절). 청년은 처녀를 무척 기뻐하고 너무나도 좋아하며 그에게서 수많은 자녀들을 가질 것이다. 그 땅의 원주민들과 거주자들이 그 땅을 보고 기뻐하며, 그 땅의 군주가 그들의 나라와 결혼하고 그 땅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 땅에 길조가 된다.

2. (훨씬 더 훌륭한) 교회의 하나님이 "의로 교회와 결혼할" 것이기 때문이다(호 2:19, 20).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를 기뻐하실 것이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5절) 꼭 신부에 대한 신랑의 관계와 신랑에 대한 신부의 사랑으로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너를 기뻐하시리라(5절). 그분께서는 너를 그의 사랑 가운데 편히 쉬게 할 것이다(습 3:17). 그분께서는 너를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시 147:1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령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렘 32:41). ::: 이것은 교회에 대해 품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만족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솔로몬의 아가에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며 그것은 하늘 나라에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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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번성 (4)(사 62:6-9)

여기에 예루살렘에 대한 두 가지 약속이 나온다.

Ⅰ. 풍성한 은혜의 수단, 

---선한 설교와 선한 기도가 풍성할 것이라고 약속되고 있다(6, 7절).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려고 계획하실 때 취하시는 방법을 나타낸다. ::: 하나님께서는 우선 그들에게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를 주시고, 기도의 영을 부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구원을 주신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이 예비된다.

1. 사역자들은 파수꾼으로서 그들의 의무를 다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선을 위한 표시와 자비를 향한 첫 단계와 또한 그 자비의 전조로서 약속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계획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 "그들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 잠잠치 않게 하셨다" (6절).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1) 사역자들은 교회의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교회는 포위된 도시와 같아서 그들의 관심사는 그 성벽을 지키며 적의 동향을 주시하고 알려 주는 것이다. 파수꾼들이 끼어 있고, 신실하며 기꺼이 모든 어려움을 참는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2) 파수꾼들은 주야로 경계하는 것이 그 임무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위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결코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3) 파수꾼들은 결코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어느 때든지 죄인들에게 경고를 할 모든 기회를 포착해야만 한다. 또한 불신하거나 비겁한 침묵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목적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은혜의 보좌에서 결코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된다. 그들은 마치 이스라엘이 아멜렉과 전쟁하여 승리를 얻었을 때까지 모세가 손을 들고 내리지 않은 것처럼 항상 기도해야만 하고 낙망치 말아야 한다(출 17:10, 12).

2. 그 백성들은 그들의 의무를 다할 것이다.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 답게 그들은 침묵하지 말아야 하며 파수꾼의 기도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의식으로써는 자비에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것을 주의하라.

(1) 그 땅이 버려져서 황무지라고 칭해지는 시기에도 하나님으로 기억하시게 하며 계속해서 그렇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이 된다. ::: 그들은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이다" (6절). 그들은 스스로 여호와를 기억하며 서로가 하나님을 유의하게 한다.

(2)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기도하는 백성이 되어야 하며, 특히 기도시에 공중 의식이 있어야만 한다. 그들은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을 해야하며 그 씨름을 계속해야만 한다. "잠잠하지 말며 기도의 의무에 태만하지 말고 지겨워하지도 말라. 그로 기도의 의무를 쉬지 못하게 하라. 애걸복통하는 거지와 재판관이 귀찮은 정도까지 계속 찾아와서 간청하여 허락받는 과부처럼 그를 쉬지 못하시게 하라."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나대로 하게 가만 두라" (출 32:10)고 말씀하신다. 야곱은 하나님께 "당신께서 나를 축복하시지 않으시면 당신을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6)라고 말했던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는 달리 우리가 끈질기게 조르는 것을 결코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권유하시고 격려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분께 외치라고 명령하신다. 그분은 간청자를 일축해 버린 제자들과 같지 않으시다(마 15:23). ::: 그분은 우리들로 하여금 은혜의 보좌에서 간청을 하도록 명령하신다. 또한 "자기에게 어떠한 쉼도 주지 말라고" 하신다(눅 11:5, 8). 그분은 자신에게 대한 설득과 씨름을 스스로 허용하시는 분이시다.

(4) 하나님의 예루살렘의 공공 복리와 번영은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서 가장 끈질기게 간청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교회의 이익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① 교회가 안전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며 교회의 세력이 확고히 정착되어 후손들에게 안전히 상속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② 교회가 커지고 세상에서 찬송을 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교회가 칭찬을 받으므로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실 수 있게 된다. 복음의 진리가 명백하게 되고, 정당함이 입증될 때, 복음의 의식들이 순수함과 능력 속에서 정당하게 집행될 때, 교회가 거룩함과 사랑으로 두드러질 때 예루살렘은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되며 교회는 명성을 누리게 된다.

(5) 우리는 자비가 임하기까지 교회에 대한 자비를 끈기있게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의 사환이 약속된 구름이 나타날 때까지 일곱 번이나 갔던 것처럼 행해야 한다(왕상 18:44).

(6) 하나님께서 기도의 영을 부어 주셔서 그들은 열렬하고도 끊임없는 간구를 하게 분기시키실 때는 하나님이 자비의 길로 백성들을 향해 오고 있다는 길조이다.

Ⅱ. 많은 또 다른 좋은 것들이 풍성히 있다(8절). 

---이것은 앞 구절에 뒤따르는 말씀이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찬송을 할 때, 다시 말해서 "모든 백성들이 그분께 찬양을 돌릴 때, 그때 땅의 소출은 증가할 것이다" (시 67:5, 6). 외면적 번영과 내면적 경건은 예루살렘이 이 세상에서 찬송을 받도록 기여할 것이다. 다음을 살펴보자.

1. 그들은 과거에 커다란 고통에 처해 있었으며, 손실을 당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과 식구들의 양식이 되기를 바라던 곡식은 이 대적들의 식물이 되었었다. 여기에 이중적인 괴로움이 있었다. 그들은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곡식이 부족했고 식량의 부족으로 아사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원수들은 그들에게서 빼앗은 곡식으로 더욱 강해졌고 그 식량으로 자기들의 군대를 배불렸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피해를 보다 잘 끼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에게 그들의 곡식을 주신다고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명령하기도 하신 때문이다. 이것은 풍요의 남용과 이방인과의 야합에 대한 응징이었다(1:7). 과거에 그들이 수고해서 얻었던 포도주는 그들이 고통 중에 있어 마음이 우울할 때 서로서로 위로를 주기 위하여 준비해 둔 것인데 원수들은 그것을 마셨다. 이 가슴 아픈 심판은 죄의 대가였다(레 26:16; 신 28:33). :::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위로물이 얼마나 불확실한 가를 보게 된다. 결코 강탈당하지 않을 식물을 위해 수고하는 우리의 지혜는 얼마나 대단한가!

2. 그들은 이제 커다란 충만함과 만족함으로 회복될 것이다.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다" (9절).

(1) 풍성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평화로운 향락을 살펴보자. 

---땅은 소산을 증가할 것이며, 그것을 거두어 들일 일손도 있고, 그들은 재앙이나 병으로 취해감을 입거나 전쟁에 끌려들어 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방인과 원수들이 와서 그것을 거두지 못하며, 우리가 거둔 것을 빼앗아가지도 못한다. 우리는 손으로 수고한 것을 먹으며 우리 입 외에 그것을 먹을 자는 없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와 마음을 갖게 된다. 더욱이 그의 성소는 우리에게 열려 있어 구분에게 나아오는 것을 막지 않는다.

(2) 이 자비를 누리는 데에는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근면하게 거두어 들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후히 베푸시는 선물을 땅에 파묻을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용하며 자유롭고 유쾌하게 먹어야만 한다. 우리가 먹고 충족되었을 때, "여호와를 찬양하고" 그의 관대함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해야만 한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풍성함으로써 그를 섬겨야 하며 그것을 경건하고 자비로운 일에 사용해야만 한다. 

---또한 그것을 "그분의 성소에서 먹고 마셔야만 한다" (9절). 성소에서는 제단과 제사장과 가난한 자들이 각각 제 몫을 받아야만 한다. 선한 사람이 음식물에서 얻는 최대의 위안은 그 음식물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소제와 전제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욜 2:14). 그가 토지에서 얻는 최대의 위안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선을 행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포도주는 하나님의 성소 뜰에서 마셔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여호와 앞에서 마시듯 알맞게 절제하여 마셔야 한다.

3. 이 약속에 대한 엄숙한 확증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8절)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이 약속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자기의 말씀을 신뢰하는 백성들에게 "큰 위안" 을 줄 것을 맹세로써 확고하게 한다(히 6:17, 18). 그는 더 큰 맹세를 할 수 없으시기 때문에 그분 자신을 들어 맹세를 하신다. 어느 때는 그의 전 존재로(겔 33:11), 때로는 거룩함으로(시 89:35) 맹세를 하신다. 여기서는 그분의 오른 팔인 능력으로 맹세를 하신다(맹세할 때는 오른 손을 들어올렸다. 신 32:40). 즉 그는 능력의 팔로 맹세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만족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가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룰 수 있으실 것으로 확신한다(롬 4:21). 

---그는 이것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자신의 소문난 전지전능하심을 보증삼아 자기 힘으로 맹세하셨다. 만약 그분이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면, "그가 그렇게 할 능력이 없었음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민 14:16).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며 다른 어떤 백성도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분의 능력이 그들에게 약속되었으며,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으시는 우(右)편 손으로 약속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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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출현(사 62:10-12)

전에 많은 구절에서 보여 준 것처럼 이것은 유대인의 바벨론으로 부터의 구원을 언급하며 이를 모형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큰 구원과 그를 통해 선포될 복음의 은혜와 자유를 시사하고 있다.

Ⅰ. 이 구원을 위해 길이 예비될 것이다. 

---모든 어려움들이 제거될 것이며, 그 길을 막는 어떤 방해물이라도 치워질 것이다(10절). 바벨론의 성문은 그들이 자유롭게 통과하도록 하기 위하여 활짝 열려질 것이다.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땅까지 이르는 길은 예비 될 것이다. 인도들도 잘 예비될 것이다. 질고 진 흙수렁이가 된 곳은 돋우어질 것이며, 돌들은 울퉁불퉁하고 바위가 많은 곳으로부터 한데 모아질 것이다. 그들은 보다 큰 안전을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편리한 장소에 다가 그들의 집결지를 정해 놓고 기들을 세워 그들의 방향을 정하여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마 3:3).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위해 그의 은혜와 위로로 어떤 자에게 오시기 전에 그에게는 회개가 예비되어 있어서 이것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불리운다(엡 6:15). 그 길은 회개로 평탄하게 된다. 발들은 모두가 화평의 복음을 신고 한 곳으로 오게 되며 질서있게 오고 간다.

Ⅱ. 이 구원은 고시될 것이다(11, 12절). 

---그들은 자유로이 해방받을 것이며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이 포로된 자들에게 선포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온의 의로운 피해자를 신원해 주신다는 것이 그들의 인방과 주위 모든 민족 심지어 세상 끝까지 선포될 것이다. 시온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온에게 "보라, 너의 구원이 임하느니라" (11절)고 하신다. 다시 말해서 구원을 가져오시는 분이신 구주께서 임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이 구원과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상을 가져 올 것이며 그것은 그와 함께 받을 평강과 위로의 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고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하여 그 앞에서 겸비케 하며 회개하게 하신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룩한 백성" 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 라 부를 것이다(12절). 

---보응은 그 앞에 있다. 보응은 그들 안에서, 그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며,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명명할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고쳐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급은 그에게 있다. 그들에게 이루어진 구원은 그들을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 라 일컬을 것이다. 하나님만이 그들을 속죄할 수 있다. 그들의 속박은 풀리고 그들은 여호와의 종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은 그 때 "찾은 바된 자요,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12절)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묻는 상인들도 없었고 예배자들도 없었다. 옛날에는 상인들이나 예배드리는 자들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번잡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무시 할 수 없는 유력한 곳으로 만들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옛날과 같이 예루살렘을 찾아 방문하고, 예루살렘의 성소에서 기도를 드릴 것이다.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읍" 이라 일컬어질 때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찾은 바된 자" 라고 할 것이다(12절). 왜냐하면 거룩함은 어떤 장소나 어떤 인물이든지 영광과 아름다움을 주기 때문이다. 거룩함은 존경의 대상이 되며 그들로 하여금 찬양을 돌리게 하며 사랑을 받게 하고 찾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이것이 세상의 끝날까지 선포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만 한다. 그 복음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파되어져야만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1) 그리스도의 영광. 그것은 교회에 즉시 알려졌고 거기서 모든 민족에게 울려 퍼졌다.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11절). 

---그리스도는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구원 자체이시다. 믿는 자들의 행복은 그분에게서 나올 뿐만 아니라, 그분 안에 있다(12:2). 그분의 구원은 구분이 가져오는 상급과 보응 속에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 속한 자들은 게으르지 않을 것이며 자기 수고를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교회의 아름다움. 기독교인들은 "성도들" 이라 불리울 것이다(고전 1:2). 또한 "거룩한 백성들" 이라 불리울 것이다(12절). 

---왜냐하면 그들은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얻도록 선택함 받고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살후 2:13). 그들은 "여호와의 구속자(구속을 받은 자)" 라 불리울 것이다(12절). 그들이 자유하게 된 것은 그분 덕택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그분에게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 그들은 이 두 가지를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거룩한 백성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여호와의 구속자" 라 불리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신 백성들은 거룩한 민족이다. 그들은 "찾은 바 된자" 라 불리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내어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흩어지고 은폐되더라도 발견하실 것이며, 무리 속에 파묻혀 있더라도 찾아내실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찾아내어 버리지 않고 자기들에게 가담시킬 것이다. 거룩한 백성과 연합하는 것은 그들의 길을 배울 수 있어 유익하고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와 결합하는 것은 구속의 축복에 참예할 수 있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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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사63장.....HS과 구주JC, 선포하며 기도하는 중보자

여호와의 승리

1.  에돔에서 오는 이는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3.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총

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11.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2.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13.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4.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자비와 사랑을 구하는 기도

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17.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18.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19.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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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사63장

주의 승리

1.  에돔에서 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붉게 물든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화려한 옷차림으로 권세 당당하게 걸어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그는 바로 나다.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의 권능을 가진 자다.

2.  어찌하여 네 옷이 붉으며, 어찌하여 포도주 틀을 밟는 사람의 옷과 같으냐?

3.  나는 혼자서 포도주 틀을 밟듯이 민족들을 짓밟았다. 민족들 가운데서 나를 도와 함께 일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분내어 민족들을 짓밟았고, 내가 격하여 그들을 짓밟았다.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 내 옷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4.  복수할 날이 다가왔고, 구원의 해가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5.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를 도와서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이 없었다. 나를 거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분노가 나를 강하게 하였고, 나 혼자서 승리를 쟁취하였다.

6.  내가 분노하여 민족들을 짓밟았으며, 내가 진노하여 그들이 취하여 비틀거리게 하였고, 그들의 피가 땅에 쏟아지게 하였다.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주의 선하심

7.  나는 주께서 베풀어 주신 변함없는 사랑을 말하고, 주께서 우리에게 하여 주신 일로 주를 찬양하였습니다.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베푸신 은혜, 그의 긍휼과 그의 풍성한 자비를 따라서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크신 은총을 내가 전하렵니다.

8.  주께서 이르시기를 "그들은 나의 백성이며, 그들은 나를 속이지 않는 자녀들이다"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9.  주께서는,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사자나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하게 하시지 않고 주께서 친히 사랑과 긍휼로 그들을 구하여 주시고, 옛적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치켜들고 안아 주셨습니다.

10.  그러나 그들은 반역하고, 그의 거룩하신 영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도리어 그들의 대적이 되셔서, 친히 그들과 싸우셨습니다.

11.  그들은, 지난날 곧 주의 종 모세의 날을 생각하며 물었습니다. "그의 백성 곧 양 떼의 목자들을 바다로부터 올라오게 하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그들에게 그의 거룩한 영을 넣어 주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12.  그의 영광스러운 팔로, 모세를 시켜서, 오른손으로 그들을 이끌게 하시며,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셔서, 그의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하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13.  말이 광야에서 달리듯이, 그들을 깊은 바다로 걸어가게 하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14.  주의 영이 그들을, 마치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떼처럼, 편히 쉬게 하시지 않았던가?" 주께서 이렇게 주의 백성을 인도하셔서, 주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자비와 도움을 구하는 기도

15.  하늘로부터 굽어 살펴 주십시오. 주님이 계시는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곳에서 굽어보아 주십시오. 주의 열성과 권능은 이제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나에게는 주의 자비와 긍휼이 그쳤습니다.

16.  주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도, 오직 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옛적부터 주의 이름은 '우리의 속량자'이십니다.

17.  주님, 어찌하여 우리를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셔서, 주님을 경외하지 않게 하십니까? 주의 종들 곧 주의 유산인 이 지파들을 보셔서라도 돌아와 주십시오.

18.  주의 거룩한 백성이 주의 성소를 잠시 차지하였으나, 이제는 우리의 원수들이 주의 성소를 짓밟습니다.

19.  우리는 오래 전부터 주의 다스림을 전혀 받지 못하는 자같이 되었으며, 주의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는 자같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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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사63장

1.  Who is this who comes from Edom, With garments of glowing colors from Bozrah, This One who is majestic in His apparel, Marching in the greatness of His strength? "It is I who speak in righteousness, mighty to save."

2.  Why is Your apparel red, And Your garments like the one who treads in the wine press?

3.  "I have trodden the wine trough alone, And from the peoples there was no man with Me. I also trod them in My anger, And trampled them in My wrath; And their lifeblood is sprinkled on My garments, And I stained all My raiment.

4.  "For the day of vengeance was in My heart, And My year of redemption has come.

5.  "And I looked, and there was no one to help, And I was astonished and there was no one to uphold; So My own arm brought salvation to Me; And My wrath upheld Me.

6.  "And I trod down the peoples in My anger, And made them drunk in My wrath, And I poured out their lifeblood on the earth."

7.  I shall make mention of the lovingkindnesses of the LORD, the praises of the LORD, According to all that the LORD has granted us, And the great goodness toward the house of Israel, Which He has granted them according to His compassion, And according to the multitude of His lovingkindnesses.

8.  For He said, "Surely, they are My people, Sons who will not deal falsely." So He became their Savior.

9.  In all their affliction He was afflicted, And the angel of His presence saved them; In His love and in His mercy He redeemed them; And He lifted them and carried them all the days of old.

10.  But they rebelled And grieved His Holy Spirit; Therefore, He turned Himself to become their enemy, He fought against them.

11.  Then His people remembered the days of old, of Moses. Where is He who brought them up out of the sea with the shepherds of His flock? Where is He who put His Holy Spirit in the midst of them,

12.  Who caused His glorious arm to go at the right hand of Moses, Who divided the waters before them to make for Himself an everlasting name,

13.  Who led them through the depths? Like the horse in the wilderness, they did not stumble;

14.  As the cattle which go down into the valley, The Spirit of the LORD gave them rest. So didst Thou lead Thy people, To make for Thyself a glorious name.

15.  Look down from heaven, and see from Thy holy and glorious habitation; Where are Thy zeal and Thy mighty deeds? The stirrings of Thy heart and Thy compassion are restrained toward me.

16.  For Thou art our Father, though Abraham does not know us, And Israel does not recognize us. Thou, O LORD, art our Father, Our Redeemer from of old is Thy name.

17.  Why, O LORD, dost Thou cause us to stray from Thy ways, And harden our heart from fearing Thee? Return for the sake of Thy servants, the tribes of Thy heritage.

18.  Thy holy people possessed Thy sanctuary for a little while, Our adversaries have trodden [it] down.

19.  We have become [like] those over whom Thou hast never ruled, [Like] those who were not called by Thy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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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3장 (개요)

본장은 다음과 같이 분류되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구원의 길로 백성들에게 오신다. 이것은 앞 장의 종결 부분과 연결된다. 다시 말해서 앞 장에서는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62:11)고 말했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구원이 임하는지를 보여 준다(1-6).

2.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심을 다하여 그와 만나고 적절한 애정의 말을 그에게 한다. 본장의 이 부분은 다음 장의 종결 부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이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은총에 대해 그들은 감사의 치사를 돌린다(7).

   (2) 선지자는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려함으로써 이들 은총을 찬양하고 있다(8).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열렬한 관심을 말하며, (9) 그들의 무가치를 말해 준다(10). 또한 그는 그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전에 자비를 베푸신 것을 기억한다(11-14).

   (3) 고통 중에 처해있는 그들에게 자비로이 나타나 주시도록 간청하는 아주 겸손하고, 진지한 기도(15).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16). 그 분에게 드리는 그들의 간절한 소원(17), 그리고 그들의 원수들의 오만함(18,19)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행동적인 신앙으로서 맞이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럴 때, 그 약속들은 진전되고, 기도와 찬송 속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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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승리(사 63:1-6)

여기서 먼저 물은 다음 설명하고 있는 주제는 영광스러운 개선이다.

첫째. 그것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서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얻어진 승리다. 

---혹자는 이것이 바벨론 사람에게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고레스는 바벨론 사람들을 정복했고 이것은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라는 것이다. 에돔에서 고레스의 개선 장면을 처음으로 발견한 이는 선지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인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바벨론 제국은 항상 북방 나라로 언급되는데 반해 에돔은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복자 고레스는 그 나라를 통하여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에돔족에 대한 승리이다. 에돔인들은 갈데아 사람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될 때(시 137:7) 승리감에 도취하였고 대적에게서 에돔으로 도망쳐 오는 유대인들을 멸절시켰었다(욥 12,13). 따라서 바벨론이 멸망될 때 그들도 셈을 치르게 된 것이다. 비록 우리가 역사 속에서 예언의 성취를 확인할 수가 없지만 이 예언이 성취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렘 49:13 참조). 

---그러나 에돔에 대한 이 승리는 이스라엘의 기타 적대국에 대한 유사한 승리를 표본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승리는 야곱에 대한 에서의 구원(仇怨)을 위해 명명된 것이다(창 27:41). 이것은 아마도 애돔족에 대한 다윗의 영광의 승리를 암시해 주는 것일 것이다. 그가 승리할 때마다 명예를 얻었다(시편 60편 제목 ; 삼하 8:13, 14).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둘째.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적인 원수들을 지배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진 승리다.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계 19:13). 

---그는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권세자와 왕들의 정복자 이상이 된 것은 십자가에서 그런 자들을 늑탈하시고 승리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승리에 대한 설명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한가지의 찬양하는 질문이 이 정복자에게 던져지고 있다(1, 2절). 질문을 던진 주체는 교회 또는 교회의 이름으로 질문하는 선지자이다. 그는 혈투에서 승리하여 돌아오는 위대한 영웅을 보면서 정복자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질문을 대답하게 된다.

1. 그 정복자는 누구인가? 

---그는 에돔에서 오는 영웅을 응시하고 있다. 그 영웅은 군인으로서는 영광스러운 의복을 입고 있다. 그러나 그 정복자의 옷은 훈장으로 장식되지도 않았고 레이스가 달린 옷도 아니었다. 그것은 피와 얼룩으로 더렵혀져 있었다. 그는 그 정복자가 겁에 질리거나 지쳐서 오는 게 아니라 큰 능력으로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있다(1절). "의기양양함과 승리가 그에게 보이는구나. 그의 외모와 복장은 영광으로 옷 입혀졌도다. 그는 얼마나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시는가! 그분은 얼마나 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디디시는가! 성대하고 엄숙한은 그의 평화로다. 그의 얼굴은 위엄으로 충만하도다. 이 힘센 영웅은 누구냐 도대체 누굴까?" "이 자가 누구뇨?" 라는 질문은 아마도 여호수아가 칼을 손에 빼어들고 있는 자에게 나아가 물은 똑 같은 질문을 의미할 것이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수 5:13) 또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드릴 때, "당신과 같으신 하나님의 누구이니이까" (출 15:11)라는 질문을 의미할 것이다.

2. 또 다른 질문이 나오고 있다.

---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뇨?(2절) 이 수고와 위험의 표식을 보건대 너는 얼마나 어려운 봉사를 해왔는가?" 그 용모 속에 위엄과 공포를 가진 분이 "포도즙 틀을 밟는 비천한 노예의 일을 하도록 고용되었다는 것은 가능할까? 확실히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는 구속자의 영광이 되는 일이 처음에는 그에게 불명예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강대한 군주가 포도즙들을 밟고 농부의 일을 한다면 체면이 여간 손상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종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신 때문이다.

Ⅱ. 그가 하시는 놀라운 대답이 여기에 나온다.

1.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말한다. 

---"의를 말하는 나는 구원을 베풀기에 능한 자니라" (1절). 그분은 구원을 베푸시는 자이시다. 하나님은 압제자들의 손아귀에서 이스라엘을 건지신 구주셨다. 주 예수는 우리의 구주이시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세주" 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기 백성들을 저희들의 죄에서 건지실 자이시기 때문이다. 구원의 역사 속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은 것을 주지시키신다.

(1) 그의 약속의 진실성. 구원은 이로써 이루어졌다. 

---그는" 의를 말하는 자이시다" (1절).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모든 말을 이행하실 것이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 말과 행위를 비교하고 대조하게 하시며 자기의 말을 자기 행위로 확증시키고 정당화시키실 것이다.

(2) 그의 능력의 효능. 

---"그는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분이시다" (1절). 난관의 방해가 아무리 그것을 가로막는다고 할지라도 그는 약속된 구원을 가져오실 수 있다. "약속한 것을 충실히 지키는 자는 바로 나다. 죽음이나 지옥이나 무덤의 권세를 가진 자도 나다. 모든 정복하는 손을 좌절시키는 자도 나다. 구원할 준비가 잘되어 있고, 또한 구원할 힘이 있는 자도 바로 나인 것이다" 노리스(Norris).

2. 그는 자기가 어떻게 이런 피빛으로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다" (3절). 포도즙 틀을 밟는 자로 비유되면서 이 비유를 멸시치 않으시고 용납하시며 그 비유를 계속들으실 정도로 그는 자신의 승리 속에서도 겸손하시다. 그는 참으로 포도즙 틀을 밟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즙 틀이며 (계 14:19) 우리는 그 포도즙 틀로 던지워 마땅한 죄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원수들을 거기에 던지시기를 원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망 권세를 가진 자를 멸하시기를 바라셨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의 원수들에게 종종 행하시고 여기서 예언되고 있는 유혈극은 바로 그런 일의 예표요 상징이다. 이 정복자가 자기 승리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관찰해 보자.

(1) 그는 순전히 자기 힘으로 승리를 얻으신다.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다" (3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대적을 멸망시키실 때 도구를 사용하셨다면 함께 할 자가 필요없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이 베풀어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아무런 원조도 제공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연약하고 무력했으며 도와 줄 자도 없었고 자기 구원을 도모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낙담하고 불안하여 어떤 일을 할 마음도 없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극히 작은 투쟁을 할 마음도 갖지 못했다. 포로들 자신이나 그들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었다" (5절). 기대와는 달리 그들에게는 대담하고 활동적인 정신이 부재하였다. 인도할만한 지도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붙들어 주는 자" 조차 없었다는 것은 더욱 이상했다. 그들의 압제자를 대항하여 고레스와 합세할 용기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그러므로 내 팔이 구원하였다." 이 구원은 피조물의 힘이나 권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의 팔" 곧 만군의 여호와의 영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돕는 자들이 실패할 때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하라. 아니 그런 때가 바로 하나님이 도우시는 때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능을 보다 더 영광스럽게 베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영적 원수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는 홀로 싸우심으로써 이 승리를 얻었다. 그는 홀로 아버지의 진노의 포도즙을 틀을 밟았다. 마침내 그는 혼자 십자가로써 정사와 권세자에게 승리하셨다(골 2:15). 만인 중에 그와 함께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흑암 권세와 결전하러 가셨을 때, "그의 제자들은 모두가 그분을 버리고 도망쳤다. "도와 주는 자도 도울 수 있는 자도 또 감히 도우려고 하는 자도 없었다." 그의 관심은 인간에게 쏠려 있는데 정작 그 인간들 중에는 붙들어 줄 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대적하고 훼방하려는 자들뿐이었다. 그는 이것을 이상히 여길 만도 하셨다.

(2) 그는 순전히 자신의 열심에서 이 전쟁을 시작하신다. 

---그가 원수들을 짓밟으시는 것은 그의 진노에서이다(3절). 또한 "분이 그를 붙들어" 이 일을 수행하게 한다(5절). 하나님께서는 억눌림을 받는 유대인들에게 구원을 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압제하는 바벨론 사람들을 보고 화가 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우상 숭배와 마술과 교만과 잔인과 자기 백성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 매우 노하셨고 그들의 가증함이 증가함에 따라 하나님의 노여우심도 격분으로 변하였던 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인류의 행복을 위해 거룩한 열정으로 우리의 구속 사업을 이루셨다. 또 그는 이 양자에 대한 사탄의 대담한 공격을 보고 거룩한 분개를 느끼셨다. 이러한 열정과 분개는 그의 전체적인 일을 위해 철저하게 그를 붙들고 있었다. 그를 활동시키는 이 열정에는 두 가지 성질의 열정이 있었다.

① 그는 자신의 원수와 자기 백성으로 원수들에게 대해 열심을 품으셨다.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다" (4절). 원수 갚는 날은 영원하신 계획 속에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잊을 수 없었고 놓칠 리도 없었다. 그의 마음은 복수로 차 있었고 원수 갚는 일은 그에게 하나의 추처럼, 책임처럼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매우 활기있게 이 거룩한 전쟁을 밀고 나가게 하였다. 하나님께는 원수 갚는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주목하자. 그날은 오랫동안 지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날은 올 것이며 우리는 복수의 날을 기다린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구속자 자신이 이 일을 행하시며 원수 갚는 날이 그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② 그는 자기 백성들과 구원에 동참하도록 예정된 모든 자에 대해 열정을 품고 계셨다. 

---"내 구속할 해가 왔도다." 그 해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정해진 해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정해진 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날까지 시간을 지키셨다(출 12:41). 또한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시킬 날도 정해져 있었다(단 9:2).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오시는 날은 악마의 간계가 파괴되는 날이었다. 그날은 교회의 모든 구원을 위해 있으며 구원자는 그날을 지켜보고 계신다. 다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그는 어떤 기쁨을 가지고 자기 백성들에 대해 말하는가? 그들은 그가 구원을 베풀 대상자들이며 바로 그 자신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게 소중한 자들이다. 비록 그들의 구원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는 그들을 "구원받을 자" 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앞으로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어떤 기쁨을 가지고 자기 백성들의 구원에 대하여 말하는가? 비록 아주 통열한 만남이 되겠지만 "그때가 왔다" 는 것을 그는 몹시도 기뻐한다. "이제 나의 구원의 때가 왔도다. 자, 보라." 더 이상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내가 일어나리라. 이제 너는 내가 일어나리라. 이제 너는 내가 바로에게 행하는 일을 보게 되리라" 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약속된 구원은 정해진 때가 올 때까지 인내로써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을 주의하자. 그러나 우리는 기도로써 그 약속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겠다" 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정말로 그럴지어다" 라고 마음으로 화답하자. "구속할 해가 오게 하소서."

(3) 그는 그 모두에게 안전한 승리를 거두실 것이다.

① 이미 많은 것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붉은 의복을 입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복자의 의복이 피로 물들여질 정도로 많은 피가 흐른 것이다. 이것은 오래 전 야곱의 임종시에 실로(즉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에서 언급되었다.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곱 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라는 말씀은 아마 이것을 암시할 것이다(창 49:11). "나는 늘어뜨린 고리로 장식하였고, 나의 승리를 나의 원수들의 피로써 기록하였다" 고 노리스(Norris)는 노래했다. 우리는 적 그리스도 세력의 파멸시에 굉장한 유혈이 있다는 것을 읽게 된다(계 14:20, 19; 13). 그러나 그것은 예언의 방언에 따라 영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여기에 나오는 말씀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② 그러나 아직도 더욱 더 많은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내게 대항하는 자를 분함을 인하여 짓밟을 것이다(6절). "구속할 해는 올 것이다." 그 때 승리의 구속자가 계속해서 이기며 또 계속 이기려고 하실 것이다(계 6:2). 그는 시작하시면 끝을 보실 것이다. 그가 자기 교회의 원수들에게 어떻게 승리하시는가 보라.

첫째, 그는 그들을 얼빠지게 만드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술취하게 만들어서 그들의 계획을 두서도 일관성도 없게 만드실 것이다. 그들은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실 것이며, 그로 인하여 취할 것이다. 또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피로 취하게 할 것이다" (계 17:6). 소요의 잔을 마시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진노의 잔" 즉 떨림의 잔으로 취하게 하시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

둘째, 그는 그들을 약하게 할 것이다. 그는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실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전능자를 당해낼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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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감사(사 63:7-14)

여기서 선지자는 교회의 이름으로 지금까지의 하나님 처사를 음미하며 또 감사하고 있다. 선지자는 본장의 맨 마지막과 다음 장에서 성벽 위의 파수꾼처럼 비참한 상태에 있는 교회를 불쌍히 여기시도록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한다. 기도로 이와 같이 회고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Ⅰ.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일반적 치하가 나온다(7절). 대체로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 (62:2)라고 일컬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특히 하나님의 주의를 끌고 싶어하는데 그 의지하는 바 근거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다. 선지자는 여기서 자기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무리 말해도 모자란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의 인자하심을 입에 올리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 이때 인류를 향한 그의 사랑은 너무도 분명하고 뚜렷한 자비를 타나내었다(딛 3:4). 그는 자비와 긍휼과 그 찬송도 언급하고 있다. 이런 것은 소중한 모든 것에서 나타난다. 아니 하나님의 자비의 샘은 너무나 풍성하고 그 물줄기는 너무나 다양하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복수형으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그의 사랑과 친절의 열매들에 대해 계산한다면 그것들은 "그 수가 모래보다도 더 많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사랑과 친절로써 그의 찬송을 말하고 있다. 즉 그것은 성도와 천사들이 그의 사랑과 친절에 대해 고백하는 감사이다. 그의 사랑과 친절을 생각하고 다른 모든 피조물이 드리는 찬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언급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얼마나 풍부하게 말하는지 살펴보자.

1.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하는 선하심과 그의 자비의 선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를 세부적으로 언급하며 우리의 개인적 가족적 생명과 경건을 말하고 있다. (우리각자는 자기가 자비를 얻은 대로 스스로 말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관대함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아주 많은 것을 보았다는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에 베푸신 은총 곧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도 말해야 한다. 우리가 누린 자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누린 자비를 인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송축해야만 한다.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의 집" 에 베풀어진 것을 우리 자신에게 부여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해야 한다.

2. 그는 하나님 안에 있는 선하심에 대하여 언급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선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신 이유가 무엇인지 그 기원을 추적해 보자. 그것은 우리의 공로대로가 아니라 긍휼과 많은 자비를 따라 베푸신 은총이다. 그의 많은 자비를 결코 다함이 없을 만큼 무진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귀하게 말해야 한다. 탄원할 때 뿐만 아니라(다윗과 같이, 시 51:1)찬미할 때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영광스럽게 말해야 한다.

Ⅱ.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 형성된 이래 하나님의 자비로운 조치가 어떠했는지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 그들에 관하여 가진 기대는 그들이 스스로 잘 행동하리라는 것이었다(8절).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그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라" 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들을 나의 백성으로 간주할 것이며 그들이 거짓을 행치 않는 자녀로 나타나기를 기꺼이 바라노라" (8절).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모르는 체하지 않을 것이다. 부러진 화살처럼 비켜나서 그를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 24:7)라고 말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자기의 특별한 백성으로 인정하시면서 "실로 그들은 거짓을 행치 않는 자녀" 라고 말씀하셨다(8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신실하고도 공평하게 다루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도 자기에게 신실하고 공정해 주기를 기대하신다. 그들은 "언약의 자녀들" 이다(행 3:25). 또 그들은 여호와께 고착된 자들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조상들의 변함없는 발자취를 따를 것으로 기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짓을 행하지 않는 자녀들" 이라는 데 주목하자. 거짓을 행하는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악마의 자녀인 까닭이다.

2. 하나님께서 이런 기대를 하시면서 베푸신 은총.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건지신 구원이셨다. 그는 광야 상태의 모든 재난에서도 그들을 건지시고 그 뒤에도 적지 않게 구원하셨다. 특히 하나님께서 구원자로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보기로 하자(9절).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을 베푼 것은 "사랑과 긍휼 =체휼하시는 사랑"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들을 위한 단순한 동정과 애정에서였다. 그것은 그 분이 그들을 필요로 하거나, 그들에 의해 이익을 얻고자 함이 아니었다. 이것은 이상하게도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그가 ((동시에 함께)) 괴로움을 당하셨다" (한글개혁:환난에 동참하셨다). 이것은 영원하신 마음이 슬퍼할 수 있다거나 하나님의 무한히 복된 고난은 극히 작은 손실이나 피해도 입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당하실 수가 없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괴로움 속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을 위해 사랑과 관심을 쏟기를 기뻐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피해를 자신의 피해로 간주하시고 그에 따라 그 가해자와 계산하실 정도로 그들을 동정하신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그 분의 마음을 움직인다(출 3:2). 그는 그들이 고통 중에서 아파하고 있을 때에 마치 그분 자신이 아픔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단호히 그들에게 나타나신다. :::  "사울아, 사울아, 어찌 하여 너는 나를 핍박하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커다란 위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홀로 고생하고 근심하며 지내도록 하시지 않으신다(애 3:33).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손길 아래서 스스로를 낮춘다면 그는 그들의 환난에 동참하실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애로운 부모가 심한 수술을 요하는 자식의 병에 동참(동감+동정+동고동락)하는 것과 같다. 원래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읽을 수도 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는 괴로움이 없었다." 비록 그들이 큰 환난에 처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그 고통을 성별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유익으로 전환되고 고통이 경감됨으로써 사실상 아무런 괴로움도 없었다. 고통은 아주 누그러지고 자비로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주 놀랄 정도로 다시 힘을 얻게 되었으며, 위로를 받게 되었다. 고통은 아주 잠간이었고 끝도 잘 마치었기 때문에 사실상 어떠한 괴로움도 없었다. 성도들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괴로움이 아니라 의약품이다. 성도들은 괴로움들을 "잠시 동안만 비치는 빛" 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늘에 전적으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그런 괴로움을 하찮게 여긴다.

(2) 그들의 구원에 발탁된 자는 하나님 앞의 사자이다. 

---혹자는 그를 창조된 천사로 이해한다. 하늘에서 가장 높은 천사, 심지어 하나님 존전 곧 그 영광의 보좌의 천사 앞에서 시중드는 천사라할지라도 이 심부름을 위해 보냄을 받기에는 적합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소자의 천사들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는" 자들이라 했다(마 18:10).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영원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언급하신 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그의 말씀을 따라야만 한다" (출 23:20, 21). 그는 "여호와" 라 불리운다(출 13:21; 14:21, 24). 그분은 언약의 천사이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자다(말 3:1). 그는 하나님 앞의 사자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을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히 1:3).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친다. 영원한 구원을 이루실 분은 그 증거와 징표로써 현세적 구원을 이루셨다.

(3) 이 은총의 발전과 인내. 

---그는 그들을 속박으로부터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옛적 모든 날에 드시며 안으셨다." 그들은 연약했지만 그는 그들을 자기 권능으로 지지했고 관대함으로 그들을 떠받쳐 주었다. 그들이 중한 짐으로 막 가라 앉게 됐을 때, 그는 그들을 드셨다. 그들이 열국과 전쟁을 할 때도 그는 그들을 편에 서셨고 후원해 주셨다. 그들이 투정꾼이었지만 그는 그들과 함께 해주었으며 "그들의 소행을 참으셨다" (행 13:18). 비록 그들은 누구의 팔이든 피곤케 했지만 그는 마치 아버지가 자녀를 돌보듯 그들을 안으셨다. 그는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새끼를 날개 아래 주듯이 그들을 데리고 다니셨다(신 32:11). 그가 그들에게서 고통을 받으신 것은 오랜 동안이었다. 말하자면 "옛적 모든 날" 이었다(10절). 그들에 대한 그분의 관심은 그들이 성장해서 가나안에 정착될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은 "그의 사랑과 긍휼에서" 나온 것이며 그의 자비와 선한 의지로부터 유래하였다(9절). 그는 그의 말대로 그들을 사랑하시려 원하셨기에 그들을 기뻐하시고 택하셨다(신 7:7, 8).

3. 그에게 대한 그들의 불성실한 행동과 그로써 자초한 고통(10절).

--- "그러나 그들은 반역했다" (10절). 모든 것들은 아주 희망에 차있고 전도가 유망한 것같이 보였다. 그들이 하나님께 신실한 자녀로 계속 남아 있었다면 하나님도 그들의 자애로운 아버지 역할을 계속하셨을 것이었다. 그러나 쌍방에게는 슬픈 변화가 일어나며 언약을 어긴 것은 그들이었다.

(1) 그들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그에게 대항하여 무기를 들었다. 

---"그들은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다." 금송아지 숭배의 죄 외에 불신앙과 불평으로 성신을 근심케 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뒤로 그들의 버릇과 습성이 되었다. 그는 그들이 거짓을 행하지 않는 자녀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들을 위해 그토록 많은 일을 하셨으며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지만 그들은 우매무지한 백성처럼 그에게 이처럼 악하게 보답하였다(신 32:6). 이것은 그를 슬프게 했다(시 95:10). 하나님의 자녀들의 배은망덕과 반역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다.

(2)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들의 보호를 취소하실 뿐만 아니라 마치 군주가 반역자들에게 응징하듯 그들을 치셨다. 

---그토록 우호적이셨던 그분께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다" (10절). 광야에서나 가나안 땅의 정착 후에도 잇달은 심판으로 그들을 치셨다. 죄의 악성과 해독을 보라. 죄는 하나님이 위해서 좋은 친구의 역할을 해왔던 사람들까지도 원수가 되도록 만든다. 죄는 사랑과 긍휼이 충만하신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든다. 죄인들의 어리석음을 보라. 그들은 가장 바람직한 친구를 기꺼이 버리고 그를 가장 무서운 원수로 만든다. 이것은 특히 나중 우상 숭배와 기타 죄악으로 자초한 바벨론 포수라는 재난을 시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대적이 되셨다는 것은 그들의 환난을 크게 악화시키는 것이었고 원초적 환난이기도 했다.

4. 여기에는 특별한 회고가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이스라엘을 민족으로 형성시키셨을 때 그들에게 베푸신 일의 회상이다(11절).

(1) 이것은 백성의 회상 또는 하나님의 회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① 먼저 우리는 백성들 편에서 그것을 이해해 보자. 

---그때 이스라엘은 "옛적 모든 날들을 기억했다" (11절). 이스라엘은 성서를 보고 하나님이 애굽으로부터 그들의 조상들을 이끌러 낸 기사를 읽었다. 그들은 마치 기드온이 생각했던 것처럼(삿 6:13) 그렇게 추론했다.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말한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애굽으로부터 그들을 건지신 분은 누구인가? 바로 그분께서 우리를 바벨론으로부터 건질 수 있지 않는가? 엘리야의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그들은 이와 같은 물음을 회개와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권유와 격려로 생각한다.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알았다. 

---그러므로 만약 그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선다면 어찌 용서를 얻지 못하겠는가? 그들은 포로 상태를 환원시키기 위한 기도에서 그것을 하나님께 대한 탄원으로써 이용한다(51:9, 10). 현재의 상태가 어둡고 구름이 낄 때 "옛적 모든 날들" 에 대해서 기억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모으고 그것들을 이용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 "지존자의 오른 손의 해" (시 77:5, 10)에 대해 획고해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시며 변치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②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 편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옛적의 모든 날들에 대해 기억하신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시는 것이다(레 26:42).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을 바다에서 올라오게 한 자는 지금 어디 계시뇨?" 바로 그분 자신이 물을 헤쳐 오도록 하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내가 현재보다 더 가치가 없고 벌을 받아 마땅한 그들의 조상들에게도 나타났는데 어찌하여 지금 이들에게는 나타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멀리 미치며 얼마나 멀리 회고하는지 보라. 그의 백성들에게서 선을 행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막막한가를 보라. 현재의 생각으로는 그들을 반대할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아니 그 반대로 그의 자비는 그들을 영영 버릴 수 있는 이유를 그들을 구원할 이유로 바꾸어 버린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수도 있었다. "나는 이전에 그들을 건져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그들 스스로 고통을 자초했다(잠 19:19).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더 이상 구원하지 않을것이다" (삿 10:13).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셨다. 자비가 심판을 이기고 기뻐한다. 그래서 그 심판을 다른 길로 변화시킨다. "나는 이전에 그들을 구원했고, 따라서 앞으로도 구원할 것이다."

(2) 하나님께 탄원하는 백성의 말로 해석하든 하나님 자신의 변론으로 해석하든 상세하게 살펴보면 이것은 포로기의 자녀들이 금식일에 행한 기도나 고백과 무척 상통하는 데가 많다(느 9:5 이하). 이 금식의 날 기도문은 모세와 그의 백성들을 상기시키는 구절의 강해에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서 이 양자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자기 백성에게 행하신 일 특히 홍해를 건너 인도해 내신 일이다. 여기서 아주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것이다. 그것은 그가 크게 자랑한 일이었고 그의 백성이 기억하고 특별히 용기를 얻은 일이기도 하다.

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오른 손을 통해 그들을 인도했다" (12절). 

---그의 손에는 기적을 행하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주의 백성들을 우리 양같이 모세의 손으로 인도하셨도다" (시 77:20). 그들을 인도한 것은 모세가 아니었다. 또한 그들을 먹인 것도 모세가 아니었다(요 6:32). 오직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했을 뿐이다. 그러나 모세에게 자격을 부여하신 자는 그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이 큰 임무를 맡기시고 도왔다. 형통하게 하신 분도 그였다. 여기서 모세는 "양 무리의 목자" 라고 호칭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양의 주인이었으며, 이스라엘의 목자장이었다(시 80:1). 모세는 그 아래있는 목자였다. 모세는 노력과 인내로 단련을 받았다. 모세는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을 지키는데"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에 그는 양을 돌보는데 적합한 목자가 되었다. 이 점에서 그는 "양을 위해 생명을 다 받치는"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었다. 그러나 비록 모세가 자기 백성들을 위해 큰 일을 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행하신 일은 모세 이상이었다.

② 하나님께서는 성신을 그에게 두시고 "성신은 그들 가운데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 뿐만 아니라 은혜로도 그들을 위해 역사하셨다. "주께서는 주의 선한 신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셨다" (느 9:20). 예언의 영뿐만 아니라 지혜와 용기의 영도 모세에게 부어 주어 부름받은 일에 적합하게 하셨다. 그의 영 중 일부는 칠십 명의 장로들에게도 임했다(민 11:16). 이스라엘에게 영감받은 책뿐만 아니라 영감받은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③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무사하게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하시고 바로의 손에서 그들을 구하셨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셨다" (12절). 그래서 홍해 바다는 그들을 통행시켰을 뿐만 아니라 보호를 해주었고, 그들에게 길을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양쪽으로 벽을 세워 주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말이 광야 또는 평지에서 행함과 같이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셨다" (13절). 그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자식들은 모두 잠을 든 채 바다의 밑을 편리하고 쉽게 통과했다. 비록 바다 밑은 질퍽거리고 돌이 많았더라도 말이 평평한 땅을 따라 가듯이 그들은 쉽게 통과했던 것이다. 비록 그 길은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들은 실족하지 않았다. 그 길은 다른 어떤 사람들도 걸어 보지 않은 길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면 그는 그 길을 평탄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길을 열어 주실 것이며 인도하실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그들을 바다에서 올라오게 할 것이다" (11절). 

---비록 그 오르막길이 매우 가파르고 더럽고, 미끄러지고 정복할 수 없을지라도(여자들과 자녀들 그리고 남자들이 매우 많은 짐을 지고 피곤했다는 것을 고려하여, 출 12:34), 하나님께서는 그의 권능으로 그들을 질퍽한 땅에서 올라오게 하셨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부활과 같았다. 그것은 "죽음으로부터 올라오는 삶" 이었다.

④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안전하게 편안한 곳으로 인도했다. 

---"여호와의 영이 그들로 골짜기로 내려가 편히 쉬는 가축처럼 조심스럽게 그리고 점차적으로 그들을 편히 쉬게 하셨다(14절). 광야의 행진에서 그들은 모세가 여호와의 영의 지시에 따라 안식처를 제공해 주는 일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11절).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가나안에서 쉬게 되었다. 여호와의 영은 약속대로 그들에게 안식을 주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 안에서 휴식하게 되는 것은 바로 여호와의 영에 의해서다.

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권능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찬양을 위하여 하셨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권능으로 된 일이다. 그는 자연의 하나님이시며 자연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의 보유자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광의 팔로써 행하셨다. 그 팔은 "용감하고 힘센 팔이었다" (영광의 팔이란 말은 원래 그런 뜻이다). 그것을 행한 것은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팔이었다.

둘째, 그렇게 행하신 것은 그분 자신의 찬양을 위해서다. 즉 "그 이름을 영영케 하기 위해서다" (12절). 오직 "영광스러운 이름을 위해서인 것이다" (14절). 그분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원히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의 팔로써 세상에 하고 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만들고 있으며 이것은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위대한 인물들 중에 가장 유명한 이름들일지라도 티끌 속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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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도(사 63:15-19)

앞에 나오는 찬양들은 이 기도에 대한 서론으로써 의도되었다. 이것은 다음 장의 끝까지 계속된다. 이것은 사랑에 넘치며 끈질기게 졸라대는 간청의 기도다. 이 시기는 포로 시대로 추정되었다. 그들에게는 약속이 있었듯 기도도 있었다. 그들은 궁핍한 때에 대비하여 준비를 했다. 

---그들은 여호와께 돌아옴으로써 말씀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분 자신은 그들이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가르치셨다. 즉 하나님 자신이 쓰신 말씀을 가르쳤다. 일부 훌륭한 해석자들은 이 기도가 더욱 먼 장래를 겨냥한 것으로 하나님의 최종적 배척한 받고 로마인에게 멸망된 유대인들의 호소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복음의 은혜에 적용된 구절이 한 나오며(사 64:4) 그 복음의 은혜는 배척당한 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2:9). 이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그들은 하나님께서 탄원을 한다.

1.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처지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모를 인식하시도록 탄원하고 있다. "하늘에서 굽어 살피소서" (15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신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신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주시하도록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은혜를 베푸시고 동정과 관심의 시선으로 보시도록 간청한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보셨을 때 즉시 구원하려고 하셨듯이 이제 자기들을 살피시라는 간청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기들을 굽어보시기만 하라고 간청하지만 사실상 이것은 그들의 대적에게 대한 심판을 호소하는 것이며, 기도하는 것이다.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우리 하나님이시여 어찌하여 저희를 징벌하지 않나이까(대하 20:11, 12). 그들은 자기들의 구원에 대해 암암리에 하나님의 자비와 지혜를 신뢰하고 있다(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소서. 시 25:18).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15절).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바로 그의 영광이다. 하늘은 그의 거주지이며 그의 영광의 보좌이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자기 영광을 나타내시며 거기서 이 땅을 내려다 보신다고 한다(시 33:14). 그의 거룩하심은 거기서 특별한 방식으로 복된 천사에게 축하를 받는다(6:3; 계 4:8). 거룩한 자들은 거기서 그에게 시중들고 끊임없이 그 주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그곳은 "그의 거룩한 처소" 인 것이다(15절). 하나님께서 거룩한 곳에 사신다는 것은 그가 거룩하듯 거룩해지려고 염원하는 모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된다.

2.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구원을 위하여 어떤 방침을 취하시도록 간청한다. "돌아오시옵소서. 당신의 길을 바꾸셔서 우리를 향하소서. 당신께서는 우리와 더 이상 다투지 마옵소서. 자비로 돌아오소서. 우리를 향한 은혜의 시선뿐만 아니라, 당신의 은총을 우리에게 나타내소서" (17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떠나시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돌아오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Ⅱ.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평은 다음 두 가지가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스스로 버려 두시며 은혜로써 자기들을 회복시키지 않으신다고 불평한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의 마음을 강퍅케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17절)라고 불평할 이유를 가진다. 후자는 이 말을 그들 중의 불경건한 자들이 한 말로 이해한다. 선지자들이 그들의 잘못된 길과 강퍅한 마음과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멸시를 책망했을 때 그들은 대담하고 뻔뻔스럽게 자기들의 죄를 하나님께 뒤집어 씌우며 하나님을 죄의 창조자로 만들고는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롬 9:19)라고 반문했다. 자기들의 사악함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정말로 악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러나 나는 이것을 백성들의 불신앙과 불회개를 한탄하는 자의 말로 해석하고 싶다. 그들은 자기들의 사악함의 저작자를 하나님이라고 배반한 것이 아니라 그 사악함을 하나님께 호소한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길에서 떠났고" 마음은 강퍅해져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되었으며 따라서 마음의 감동도 받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모든 탈선의 원인이었다. 

---주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예배를 의미할 수도 있다. 짝할 이 없을 만큼 크고 선하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마음은 참으로 강퍅한 마음이다. 그들이 여기서 큰 불행과 무거운 부담으로 불평하고 있는 일은 곧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죄 중에 버려두시며 주의 길을 떠나도록 허용하시고 그의 은혜를 거두어 들이심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강퍅케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찌하여 주께서 이렇게 하셨나이까?" 하고 묻는 것은 잘못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쓰라린 심판을 한탄하며 울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슬프게 했고 괴롭혔고 억눌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영을 그들에게서 감추심으로써 그리고 정당한 판결과 섭리로써 그들을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10절). "가서 이 백성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라" (6:9, 10). 이것은 하나님을 떠났을 때의 슬픈 처지를 입증해 준다. 다윗은 자기의 추방에 대하여 불평을 한다. 왜냐하면 사실상 그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삼상 26:19). 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또한 고통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방해하였다.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의인으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한다(시 125:3). 이것이 그들의 불평이었다. 괴로움은 그들에게 시험이 되었으며 대개는 극복할 수 없는 시험이었다. 자각하는 양심이라면 많은 영적 심판들을 호소하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의무로부터 이탈하게 하는 괴로움을 두려워한다는 데 주목하자.

2. 그들은 원수들에게 정복을 당했으나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을 보호해 주지도 않았으며, 구원해 주지도 않으셨다. 

---"우리의 대적이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나이다" (18절). 포로 시대에 그들 중 대부분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을 잃어버렸었고 그들의 마음이 환난 때문에 더 강퍅해졌던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슬픔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엄숙한 회중 속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회가 상실되었다는 것은 더욱 더 큰 슬픔이었다. 그들은 대적이 자기들의 집과 성을 유린한 것을 불평하기보다 하나님의 성소를 짓밟는 자들에 대하여 비판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 인해 직접 모욕을 당하신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은 극히 귀중히 여기고 극히 즐거워하던 위로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Ⅲ. 자비와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촉구하던 그들의 탄원.

1.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보여 주셨던 긍휼과 능력과 자진성을 이제도 보여달라고 탄원했다(15절). 

---기도에 있어서 가장 설득력 있는 논증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취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영광과 자기 백성들의 위로를 위해 열성을 가지고 계신다. 그의 이름은 질투한다는 뜻이다. 그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분 자신의 영광과 자기 백성들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지금 이것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들은 지금 나타나지 않는가? 무한히 현명하고 공정하신 하나님의 열성이 식어질 리기 없으며, 무한한 하나님의 힘이 약화될 리가 없다. 아니, 그의 백성들은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간곡한 긍휼을 경험했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리워했으며, 그것은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서 동요와 흥분을 자아낼 정도의 동정심이었다. "나의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하도다" (호 11:8).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렘 31:20).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사랑을 베푸시며 그들을 위해 많은 자비를 나타내곤 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사랑과 자비는 어디 있는가?"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막아졌는가" (시 77:9) 과거에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자주 기억되었는데, 이제는 은혜 베푸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노여움으로 인해 그의 온유하신 자비를 닫아버렸다는 말인가?" 그것은 결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에 베풀어주신 자비를 근거로 자비의 계속적 시여를 기대할 수 있다.

2.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기들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탄원했다(16절). 

---"당신의 온유하신 자비는 억제되지 않사오니 그것은 아버지의 부드러운 자비인 까닭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 그의 자녀를 노여워하실지 모르나 천륜의 애정의 힘을 통하여 곧 화해를 받으실 것입니다. 의심할 바 없이 주는 우리 아버지, 즉 당신의 긍휼은 우리를 향해 그리워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이런 훌륭한 생각들을 항상 간직해야만 한다. "아무리 무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만약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스스로 고아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에게 투신하여 마침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는다" (호 14:3).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가진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광이었다(마 3:9).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였으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왕자였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모시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는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은 우리를 도울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지시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들은 죽은 지 오래다. 그들은 우리를 모르고,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은 우리의 처지가 어떠한지를 모르며,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하더라도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만약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이 우리와 같이 살아 있다면 우리를 변호해 주고 충고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다른 세계로 가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계와 어떤 교통을 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자손으로 불리우는 영광밖에 어떤 친절도 얻을 수가 없다. 그 아버지가 죽으면 "그의 아들이 영광으로 오고 있으나,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욥 14:21).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16절). 우리의 육의 아버지들은 "영원토록 사랑할" 것 같지만 그들은 영원토록 사랑하지 못한다. 오직 죽지 않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항상 알고 계시며 우리에게서부터 먼 거리에 있지 않으시고 항상 가까이 계신다. 그러므로 "상고로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고 하였다" (16절). 그것은 옛날부터 우리에게 알려졌던 이름이다. 백성들은 항상 그를 하나님으로 생각했다. 그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슬픔을 제거해 주실 것이며 그들의 목적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아니,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이 도울 수 없고 돕지도 않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도와 주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지신 긍휼을 가지지 못했다. 우리는 아주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은 우리를 그들의 자녀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스라엘을 버렸다. 야곱은 그의 아들 르우벤에게서 상속권을 박탈했고, 시몬과 레위를 저주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아니시다" (호 11:9).

3.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주, 즉 그들의 소유자이었으며, 경영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에게 있는 하나님의 이권을 들어 간청했다.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 당신께서는 우리가 섬기는 일에 대해 권리를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 왕들이나 이방신들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런 즉 당신의 종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17절). 마치 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 종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 명예상 자기 도리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장 고귀한 사랑은 물론 가장 튼튼한 약속으로써도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의 지배를 담당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당신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시고 당신 자신의 권리를 유지하소서. 이는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당신 말고 어디로 가서 시정되고 보호를 받으오리까? 우리는 주의 것이오니 우리를 구원하소서(시 119:94). 우리는 당신 자신의 것입니다. 우리를 인정하소서. 우리는 주의 산업인 지파들 입니다. 우리는 주의 종들이 아니라 주의 소작인 들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것이므로 당신을 위해 일할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세도 지불합니다. 이 산업은 하나님이 하계에서 받는 조그만 찬송과 예배가 나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당신의 종이자 소작인인 이스라엘을 이렇게 능욕받게 하시렵니까?"

4. 그들은 약속의 땅의 즐거움과 성소의 특권을 잠시 동안밖에 향유하지 못했다는 것을 호소했다. 

---"주의 거룩한 백성들이 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되지 아니하여서" (18절)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에 이르기까지 단지 열 네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대 뿐이었다(마 1:17). 그것은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한다" 는 약속과 비교해 볼 때, 단지 잠깐에 지나지 않았다(창 17:8). 또한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나타난 권능과 비교해 볼 때, 더욱 그렇다. "비록 우리가 다른 민족과 구별되어 주께 바쳐진 주의 거룩한 백성들이지만 우리들은 곧 있을 곳이 없어지나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자기들 탓으로 돌려야 했다. 그들은 "주의 거룩한 백성들" 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땅의 소유권을 잃게 된 것은 바로 그들의 사악함 때문이었던 것이다.

5. 그들의 땅을 차지하고 소유하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도 예배도 드리지 않은 자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탄원했다. 

---"주께서는 그들을 결코 다스리지 않으셨으며, 또한 그들은 주께 어떤 순종도 하지 않으셨나이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칭함을 받지 못하는 자였나이다" (19절). 그들은 다른 신들에게 신앙을 고백하고 그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행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실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우리는 주께서 영원히 다스리지 않아 주의 이름으로 칭함을 받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도다(19절)." 우리는 거절당했고, 포기되었고, 멸시를 당했고, 짓밟힘을 당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주께 예배를 드리지 않았고, 우리에게 일컬어진 주의 이름을 가지지 못한 것처럼 짓밟힘을 당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사울의 방패도 마치 그가 기를 부음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헛되이 배척을 당했다. "그러나 잊혀졌던 것처럼 보였던 언약은 장차 다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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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사64장  주앙망하는 탄원기도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3.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라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11.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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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사64장

1.  주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내려오시면,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 것입니다.

2.  마치 불이 섶을 사르듯, 불이 물을 끓이듯 할 것입니다. 주의 대적들에게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떨게 하여 주십시오.

3.  주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우리들이 예측하지도 못한 놀라운 일을 하셨을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떨었습니다.

4.  이런 일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 말고 어느 신이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5.  주께서는,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주의 길을 따르는 사람과, 주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 보십시오. 주께서 진노하신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 구원을 받겠습니까?

6.  우리는 모두 부정한 자와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었으니, 우리의 죄악이 바람처럼 우리를 휘몰아 갑니다.

7.  아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주를 굳게 의지하려고 분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셨으며, 우리의 죄악 탓으로 우리를 소멸시키셨습니다.

8.  그러나 주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님은 우리를 빚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9.  주님,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 보십시오. 우리는 다 주님의 백성입니다.

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습니다. 시온은 광야가 되었고, 예루살렘은 황폐해졌습니다.

11.  우리의 조상이 주님을 찬송하던 성전, 우리의 거룩하고 영광스럽던 성전이 불에 탔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던 곳들이 모두 황폐해졌습니다.

12.  주님, 형편이 이러한 데도, 주님께서는 그저 가만히 계십니까? 그렇게 잠잠히 계셔서, 우리가 극심한 고통을 받도록 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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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사64장

1.  Oh, that Thou wouldst rend the heavens [and] come down, That the mountains might quake at Thy presence--

2.  As fire kindles the brushwood, [as] fire causes water to boil-- To make Thy name known to Thine adversaries, [That] the nations may tremble at Thy presence!

3.  When Thou didst awesome things which we did not expect, Thou didst come down, the mountains quaked at Thy presence.

4.  For from of old they have not heard nor perceived by ear, Neither has the eye seen a God besides Thee, Who acts in behalf of the one who waits for Him.

5.  Thou dost meet him who rejoices in doing righteousness, Who remembers Thee in Thy ways. Behold, Thou wast angry, for we sinned, [We continued] in them a long time; And shall we be saved?

6.  For all of us have become like one who is unclean, And all our righteous deeds are like a filthy garment; And all of us wither like a leaf, And our iniquities, like the wind, take us away.

7.  And there is no one who calls on Thy name, Who arouses himself to take hold of Thee; For Thou hast hidden Thy face from us, And hast delivered us into the power of our iniquities.

8.  But now, O LORD, Thou art our Father, We are the clay, and Thou our potter; And all of us are the work of Thy hand.

9.  Do not be angry beyond measure, O LORD, Neither remember iniquity forever; Behold, look now, all of us are Thy people.

10.  Thy holy cities have become a wilderness, Zion has become a wilderness, Jerusalem a desolation.

11.  Our holy and beautiful house, Where our fathers praised Thee, Has been burned [by] fire; And all our precious things have become a ruin.

12.  Wilt Thou restrain Thyself at these things, O LORD? Wilt Thou keep silent and afflict us beyond m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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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4장 (개요)

이 장은 앞 장의 후반부에서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그 애처롭고 간곡한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그리고 적들에 대적하여 어떤 두드러지고 놀라운 방법으로 나타나시기를 기도한다(1, 2).

2.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이전에 이미 행하셨고, 또 항상하려고 예비하고 계신 일을 위해 기도했다(3-5).

3. 그들은 자기들이 죄가 많고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심판 아래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고백한다(6, 7).

4.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의 주권에 자기들을 복종시킨다(8).

5. 그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매우 처참한 조건을 아뢴다. 그리고 죄를 용서받는 것과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피하기 위해서 진정으로 기도한다(9-12).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고 하나님께 어떻게 간청해야 하는가 하는 이러한 문제는 유대 포로민들을 위해서 의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시대에 핍박를 당할 교회를 위해서 사용될 수 있게 위기 위한 것이다. 어느 시대든간에 하나님의 백성은 혼난에 처해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기도를 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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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고백(사 64:1-5)

여기서는 다음 사실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이 탄원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경이적으로 나타나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1, 2절). 

---그들의 사정은 앞 장(章)의 끝에 매우 슬프고 처참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경우에는 "여호와여, 도우소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과 힘을 나타내시옵소서!"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다(63:15). 여기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장 8절에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려오시기를 기도한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섭리 안에서 자기들에게 그리고 자기들을 위해서 자신을 나타내 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떤 특별한 일을 하실 때는, "빛을 발하시사" 자신의 힘을 나타내신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기를......" 하고 기도한다(1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실 때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는" 것 같다(시 18:9). 이러한 것은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의 권능과 의와 선하심을 표현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일들을 주의 깊게 보고 알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그것을 기도한 것이다. 즉 자신들이 바다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을 통해서 그를 확실히 보았듯이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구름 위에서 행동하심을 통해 그를 알게 되기를 원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적용될 수 있다. "주님께서는 환호성을 받으며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다. 오소서, 주 예수여 속히 오소서."

2. 주께서 모든 대적들을 무찌르고, 주의 앞에 길을 예비하시기를 원한다. 

---"모든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케 하소서" (3절)하는 것은, 주의 진노의 불길이 바위산들을 용해시키듯이 대적들을 사르실 것이며, 용광로에 있는 금속과 같이 그들을 주 앞에서 녹게할 것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바위가 액체로 되고, 조작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모양을 부어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는 2절에서 "불이 섶을 사르도록 하신다."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2절)함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웅장한 개혁을 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들끓게 하신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이것은 "화산들" 이나 불타는 산들에 대한 언급이라고 한다. 화산이 어떤 때에는 근방에 있는 강이나 바다를 끓이는 유황을 내보내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경고의 능력을 현저하게 나타낼 것이다.

3.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매우 잘 드러내고, "주의 이름을 알게 하며" (2절), 그의 친구들(이들은 전부터 그것을 알고 주의 권능을 믿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대적들까지도 이것을 알게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앞에서 떨며 (사 64:2) 벧세메스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이렇게 말하게 하려는 것이다. "누가 이 거룩한 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으리요?" "누가 주의 진노하시는 능력을 알리요?" 조만간 하나님께서는 주의 앞에 오려고 하지 않고 섬기지 않는 대적들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알게 하고, 그 앞에서 떨게 하실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가 거기에 달려들어가 안전하게 되는 우리의 요새가 아니라면 그때에는 우리를 대항하는 요새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거기로 달려들어가도 안전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아무리 백성들의 수가 많고 강하다 하더라도,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의 앞에서 떨게 될 때가 올 것이다.

Ⅱ. 그 탄원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위하여 이전처럼 경이적으로 나타나 주기를 간청하는 것이다. 

---"주는 능력" 을 가지신 분이므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은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하는 훌륭한 주장이다(시 10:17).

1. 그들은 주께서 자기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실 때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셨던 일을 위해 탄원한다(3절). 

---주는 애굽 사람들에게 전염병으로 "두려운 일을 행하셨다" (3절). 그것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이적과 기사를 이루신 여호와를 추구하여  알고 사랑함으로써 경외하기를 힘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높은 손과 편 팔로 구원을 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기는커녕 ((거꾸로 오히려))여호와의 구원에 대해 실망하였다. 그러자 여호와는 무서운 모습으로 시내산에 강림하셨고, "주의 앞에서 진동하고 양처럼 뛰게 하셨다" (시 114:4). 그리고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무너진다 함을 절절하게 실감했다(합 3:6). 

---참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많은 훌륭한 구원 사건들을 통해서 그는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은 두려운 일을 행하시며" 산처럼 당당하고 강하다 할지라고 위인들도 그 앞에서 무릎을 끓게 하시고, 많은 적대자들이 항복을 하게 한다(삿 4,5장 ; 시 68:7, 8).....어떤 사람은 이것을 산헤립의 강력한 군대가 패배한 사실에 관계시킨다. 이 군대는 흡사 바위와 산을 녹일 수 있을 정도의 놀랄 만한 막강한 군사력의 위력을 실증했었다.

2.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셨던 일, 하고자 하시는 은혜로운 목적을 선포하신 것을 일반적으로 탄원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안전과 행복을 위하여 행하신 준비는 매우 풍부하고 잘되어 있으므로 실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충분하고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1) 그 준비는 매우 풍성하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계셨다" 는 말을 들어 본 적도 목도한 바도 없다(고전2:9...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특징을 관찰해 보자. 그들은 마땅한 의무를 이해하고 행하면서 주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 자기들을 위하여 약속하고 예비하신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이러한 백성의 행복은 어디에 매여있는지 세심하게 주의해서 살펴보자.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것" , 그들을 위해서 그분의 깊으신 뜻안에서 안배했던 바요, 그의 공급하심(섭리)와 은혜 가운데서 그들을 위해서 준비하고, 그들로 하여금 준비하게 하신 바 (즉, 기록하여 읽도록 해 주신 바) 그것은 그가 "하셨고 앞으로 하실" 것들이다(위의 구절이 이와 같이 읽혀질 수도 있다).

.....어떤 유대 학자들은 이 구절을 메시야의 시대를 위하여 보존된 축복으로 이해하였다. 사도들도 그렇게 해석하였다.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것들을 도래할 세상의 영광을 말하는 것으로까지 확장 해석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비하셨고,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신 것" 은 모든 축복을 나타낸다(시 31:19).

이것에 대해서는 "세상의 시초로부터" 지금까지 가장 자세히 살피고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도 보는 것으로나 듣는 것으로도 이것을 완전히 깨달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 하나님 자신 외에는 아직도 현재와 내새를 위해 예비하신 신령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고, 또 이해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① 그 대부분이 이전 시대에는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고" "지혜있고 총명한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그것들은 복음에 의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사도들은 바로 그렇게 적용한다(고전 2: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우리에게 계시하셨다" 는 말씀이 뒤따라 오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2:10). 그리고 로마서 16장 25,26절과 에베소서 3장 9절을 비교해 보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태초 이래로" 듣지 못했던 것을 마지막 날 이전에는 보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성소휘장이 찢어져서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영광이 마침내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 자신은 그가 믿는 자를 위하여 무엇을 쌓아 두었는지 안다. 그러나 다른 자는 아무도 모른다.

② 그것은 인간의 총명에 의하여는 완전히 파악될 수 없다. 

---그것이 계시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영적이고, 우리의 마음이 이 감각 세계에서 흔히 받아들이기 쉬운 그러한 사상들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위대한 것이요, 우리의 최고최상의 기대를 훨씬 능가할 것이다. ....진실로, 믿는 자들의 현재의 화평과 미래의 축복은 모든 개념과 표현을 능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빌 4:7). 하나님 자신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아무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이해력은 무한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드러난 어떤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의 원저작자에로 돌리면서 이런 식으로도 해석한다. "당신 외에는 어떤 신(神)도 그런 눈을 가진 자가 없나이다.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며) 기다리는 모든 자를 위해서 이렇게 행하시나이다" (혹은 행하실 수 있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이로운 능력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의 경이로운 은혜의 역사에서도, 그리고 위대한 일들에서 뿐만 아니라, 그가 하시는 친절한 일들에서까지도 "그와 같은 다른 신이 없다" 는 사실, 그와 견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조차도 없다는 사실을 당연히 추론해 낼 수 있다.

(2) 그것은 매우 준비가 잘 되어 있다(5절). 

---"주께서는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신다. 즉 자기를 위해 예비하고 있는 자들에게 자비로 응하신다(4절)." 여기서는 은혜로운 하나님과 은혜스러운 인간 사이에 있는 교제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자.

①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사귐을 가지는 것이다.

첫째,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의 의무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의를 이루어야" 한다. 즉 선한 것, 우리 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하되 잘 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며, 그 일을 "기쁘게 하며 의를 행해야 한다." .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기뻐해야 하며, 즐거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해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즐겁게 헌신하는 자와 즐겁게 섬기는 자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기꺼이 주를 섬겨야" 한다.

셋째,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모든 방법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좋은 감명을 받아서 "그의 행하심 속에서 그를 기억해야" 한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즉 우리를 향해서 오든지, 우리와는 반대쪽으로 가든지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모든 행하심이 자비롭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할 때에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억해야 하며, 우리와 갈등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인내와 순종으로 그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 주의 심판 속에서 주를 기다려 왔습니다." 왜냐하면 "재난의 날에는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전 7:14).

② 만약 우리가 그에게 의무를 다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를 보자. 

---"주께서는 그를 만나주신다" (선대하신다....선대하심의 교통!!!).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허락하신 우정과 교제와 친밀성을 암시한다. 그는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며, 그들의 말을 받아들인다(출 20:24; 29:43). 

---이와 마찬가지로, 그 말은 그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데 있어서 자유롭고 민첩함을 암시한다. 

.....그는 "그들에게도 선을 베풂(=자비)을 기대하실"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의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이 선을 베푸실" 것이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한 은혜롭게 기다려 주실 것이다. 탕자의 아버지가 그의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맞아들인 것과 같이, 그는 호개한 자기 백성들을 용서로써 만나신다(눅 15:20). 그는 사람들이 아직 말하고 있을 동안, 기도하는 백성을 평화로운 응답으로써 만나신다(55:24).

3.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불변성(unchangeableness0과 그의 약속의 확정성(stability)을 탄원한다. 

---이것은 백성들의 죄와 그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다. "보소서, 우리들로 인하여 주께서 여러 번 격분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지은 바 주의 진노의 표적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현상으로 인해 (오히려) 이제 우리가 주를 기억하며 그 중단없이 계속되는 자비하심의 길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진노하셨고,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이것은 하나님의 계약의 취지와도 일치한다.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치 아니하며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시 89:30-32). 그리고 이로 인하여 백성들이 파멸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에도 여러 번 그 파멸로부터 구원을 행하셨다(시 87:38 을 보라). ..

....이렇게 계약의 계속성에 의해서 우리는 구원받을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약은 모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 때문에 우리에게 진노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유한함과 무력함을 아시기에) 그의 분노는 잠깐에 그칠뿐, 친히 체휼하심의 사랑때문에 아파하시며 곧 분노를 거두사 잠잠하게 하신다. "그의 은혜 안에 생명이 있나니"  바로 "그 안에서 은혜로 말미암는 생명의 회복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그의 은혜의 방법으로써 계속해 나가시고 보존하시며, 주님의 자비, 바로 그것으로 인해 믿는 우리의 구원과 회복을 이끌어 내신다(54:7, 8 참조). 따라서, 우리의 구원에 대한 희망이 우리 자신의 어떤 공적이나 충분성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약속에 세워졌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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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애가(사 64:6-12)

예레미야의 애가가 있듯이, 여기에는 이사야의 애가가 있다. 그 둘의 주제는 같다. 즉 예루살렘의 파괴와 또 그 원인이 된 죄이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다. 이사야는 이 파괴를 멀리 떨어져서, 예언의 영에 의하여((내다 보고  예상하며)) 슬퍼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것을 육안으로 직접 ((경험적으로 실존적으로 생생하게 겪으며))보았다.

Ⅰ. 고생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슬퍼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고 그들 자신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무가치한 것으로 고백하고, 나아가서 자기들의 고난을 선용하면서 구원에 대비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믿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자비가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들 자신 중에는 도와 줄 사람도 없고 격려해 줄 사람도 없으며, 그 간격을 메우거나 중재시킬 사람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되어서 중재할 만한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의무에 부주의했고, 태만하였다. 그러므로 아무도 중재를 할 수가 없었다.

1. 일반적으로 도덕이 타락되었다(6절).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혹은 사람 같다." 

---마치 문둥병은 사람들을 그 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사람들의 몸은 의식적(儀式的)으로 타락한 사람과 같다. 이러한 사람은 회막 뜰에 들어갈 수 없다. 또한 사람들의 몸이 "머리 끝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이그러진 상처뿐인 어떤 지긋지긋한 병에 걸린 사람같이 되었다(1:6). 우리는 모두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의에 대해 불쾌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혐오스런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죄는 "주께서 싫어하는 가증한 것" 이고, 쳐다볼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6절).

(1) "우리 중 제일 선한 자도 그러하다. 우리는 모두 타락하고 퇴쇄되어 있으므로, 우리들 중의 어느 누구도 기쁘게 의를 행했던 우리의 선조들과 비교해 볼 때 더러운 옷에 불과하며 쓰레기통에 내던져져도 할 말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 중에 제일 잘났다고 하는 사람이 엉겅퀴와 같다."

(2) "우리가 아무리 최선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해도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도덕이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예배를 행함에 있어서도 역시 잘못이 많았다. 의에 희생된 자들로 통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개 분열된 자, 불구자, 병든 자들이어서 하나님을 격분시키고 더러운 옷처럼 보기 싫은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무엇인가를 이룩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러운 옷에 불과하다. 그 옷으로는 우리를 가릴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를 더럽힐 뿐이다. 진정한 참회자들은 자기들의 우상을 더러운 옷처럼 내팽겨쳤다(30:22). 우리의 최선의 의무는 너무나 불완전하고, 육체를 잘 지키지 못해서 그들은 더러운 옷과 같고 죄와 타락으로 가득찼다.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도 악이 우리와 함께 나타난다.

2. 그들 중의 대부분은 신앙이 냉담하다(7절). 사람들의 많은 죄악으로 그 한도가 다 찼고, 그 그릇을 비울 어떤 방도 취해지지 않았다.

(1) 기도는 어느 면에서 보면 소홀히 되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우리를 바로 잡고 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주께 은총을 구하는 자도 없고,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의 죄로 인하여 당하게 되는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자비를 구하는 자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악했다. 즉 그들이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시 14:3, 4 를 비교하라). "그들이 주를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타락하게 되었다." ......기도가 없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이다.

(2) 기도는 매우 소홀히 수행되었다. 

---만약 여기 저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다면, 그것은 매우 무관심한 탓이다.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다" 고 했다. 다음을 명심하자.

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선한 의지를 우리에게 하신 약속과 선포를 붙잡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함께 그들을 변호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떠나려는 자기를 붙잡는 것이요, 또 이미 떠난 자를 돌아오도록 간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곱의 자손이 그와 투쟁하여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을" 때, 그것은 바닷가에서 낚시줄을 당기는 자가 마치 해변을 끌어당기는 듯이 하지만 실상은 자기가 해변으로 다가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의 마음에 다가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② 자기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기도하는 사람은 스스로 그렇게 하도록 분발하여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역량을 의무이행에 투여해야 하며, 우리의 사상은 흔들리지 말며 우리의 사랑은 불타올라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 봉사를 위해 투여되고 발휘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실제로 숙고를 하고 그 일에 대해 정확하게 적용을 함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은사를 분발시켜야" 한다. 이런 것을 행하는 사람이 없고, 화해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간섭하는 사람에 불과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비하신 태도로 다가오시기를 기대할 수 없다.

Ⅱ. 그들은 자기들의 고난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소산이요,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하는 것을 시인했다.

1. 그들의 고통은 그들의 어리석음에서 왔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6절). 

.....우리의 아름다움은 시들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지옥에 떨어져 사라지고 만다(문자적 의미는 그런 것이다). 

.....우리의 신앙 고백도 가을의 낙엽처럼 시들고 우리는 마르고 시들게 된다. 

.....우리의 재산도 사라지고, 아무 것도 없게 된다. 우리는 밑바닥에 떨어져서 경멸을 하고 불평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간다." 그리하여 우리를 사로잡고 가을에 바람이 불면 몰려가서 잎이 시들어 버리고 만다(시 1:3, 4). 죄악으로 인한 해롭고 격렬한 바람에 의하여 죄인들은 쇠퇴하고 결국 없어져 버린다. 죄는 사람들을 시들게 하고 파멸로 이끈다.

2.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진노로 사람들에게 고난을 가져다준다(7절).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셨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를 미워하시고 우리에게 어떤 원조도 하지 않으신다." 그들이 모두 더러운 옷 같아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얼굴을 숨기시고 그들을 몹시 잃어하신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를 소멸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110편 7,8절에 있는 것과 똑 같은 불평이다. "우리는 주의 진노를 인하여 소멸되었도다." 주께서 우리를 녹이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광로에 넣은 것은 우리가 쇠찌꺼기로 소멸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금으로 정련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정제되고 새롭게 탄생된다.

Ⅲ.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자기들의 관계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겸손하게 그에게 이 주장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깊이 생각한 후에 쾌히 자신들을 하나님에게로 관계시킨다(8절).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매우 황송하게도 우리 마음대로 행동하고 주 앞에 감사하는 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주를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주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시기는 하셨지만 우리를 완전히 버리시지는 않으셨나이다. 우리가 어리석고 부주의하며, 가난하고 저주스러우며, 적들에 의하여 짓밟혀졌다 하더라도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탕한 아들이 회개하고 자기 아버지에게로 오는 것과 같이 회개함으로 주께로 돌아가나이다. 또한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주께로 돌아가나이다. 우리의 아버지 외에 누구에게서 구원과 도움을 기대할 것이옵니까? 우리는 지금 아버지의 진노 아래 있나이다. 그러나 주는 화해하실 것이고 분노를 영원히 유지하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이시다.

1. 창조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존재를 허락하시고, 사람으로 만드셨으며, 자기 좋으신 대로 형성하셨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자기가 좋을 대로 취급했다고 하여 다툴 필요가 없나이다(렘 18:6). 아니 우리는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선대하시며, 우리를 만드신 주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새로운 형상으로 만드시기를 바라나이다. 비록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더러운 옷과 같으나 우리 모두는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우리의 더러움을 없애셔서 우리가 주께서 사용하시기에 적당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버리지 마옵소서(시 138:8)."

2. 계약에 의해서 그렇다. 이렇게 청원되었다(9절).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주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세상 사람들 전부입니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라고 불리웁니다. 우리의 이웃들도 우리를 그렇게 간주하고 그러므로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주를 생각하게 하며, 우리의 처지에서 필요로 하는 구원은 주로부터만 기대할 수 있나이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옵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겠나이까?(8;19)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 119:94).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섭리에 의해 견책을 받을 때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계약 관계를 굳건히 붙잡는 것이 좋다.

Ⅳ. 그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돌이키고 그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매우 귀찮게 하였다(9절). 

"우리는 자격이 없지만, 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지 마옵시며, 죄악을 하여금 영영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처하고 있는 심판이 제거되기를 노골적으로 기도하지는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1.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해해 주시기를 위해서는 기도했다. 

---그렇게 되면 고난이 계속되거나 제거되거든 그들은 편할 수 있었다. "끝까지 노하지는 마소서. 아버지의 인자하심과 연민에 의하여 주의 붑노를 누그러뜨리소서." 

---그들은 "주여, 우리를 질책하지 마옵소서"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요 없는 말이었으리라. 단지 "진노하심으로써, 격한 분노로써 질책하지 마소서"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얼굴을 숨기시는" 것은 단지 "작은 진노로" 되는 일이다.

2. 그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에 대해 응분의 처분을 받지 않기를 위해 기도한다. 

"영영히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마옵소서." 그들의 죄악은 사실상 영원히 기억될 만하다. 이것이 그들이 애원하는 바이며, 영원한 죄의 결과이다. 어떤 심판보다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공포와 그들 자신의 죄에 대한 치명적인 결과를 더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손 아래 있는 참으로 보잘것 없는 존재들임을 명백히 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사망의 쏘는 가시로 여겼다.

Ⅴ. 그들은 하늘의 법정에서 그들이 처한 비통한 환경과 그들이 슬퍼하는 황폐에 대해서 매우 우울한 표현을 한다.

1. 그들 자신의 집들은 폐허가 되었다(10절). 

---유다의 성읍들은 바벨론에 의해서 파괴되고, 거기에 살던 사람들은 끌려갔으므로 그 성읍들을 회복시키려 하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하여 그 성읍들은 몇 년이 가지 않아서 완전히 사막처럼 될 것이다. "주의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도다." 유다의 성읍들은 "거룩한 도성" 이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는 제사장들의 나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각 도성에는 회당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예배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성읍들이 황폐하게 된 것을 슬퍼하였고,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 탄원을 하였다. 성읍들은 당당한 도성들일 뿐만 아니라 거룩한 도성이었고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알려지고, 고백되며, 불리워졌었다. "이러한 도성들이 광야가 되었도다. 성읍의 아름다움도 더렵혀졌도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전처럼 거주하지도 않고 찾아오지도 않는도다. 그들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시 74:8). 인적이 드분 보다 작은 도성들이 광야처럼 버려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시온도 광야가 되었다. 다윗의 성전도 황폐하게 되었도다. 우리 열조가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루살렘도 이제는 파괴되어 비웃음거리가 되고, 온 땅의 치욕이 되었도다. 거룩한 성읍이 파괴되어 쓰레기더미가 되었도다." .....사람들이 죄를 지음으로 인하여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 내리는가를 보라. 신성에 대한 외적인 고백은 그러한 재앙을 막을 수가 없다. 거룩한 성들도 사악한 도시가 되면, 들은 곧 광야로 변하게 되리라(암 3:2).

2. 하나님의 전이 황폐하게 되었다(11절).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장 슬퍼하는 것은 "성전이 불에 탔다" 는 사실이다. 그러나 성전이 세워진 직후에 이미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성전이 그렇게 되리라는 말을 들었었다. "이 전이 비록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랄 것이다" (대하 7:21).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것이 그들을 얼마나 애처롭고 슬퍼하게 하는가를 보라.

(1) 성전은 그들의 "거룩하고 아름다움 집" 이었다. ....그것은 가장 화려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보기에는, 성전의 성결함이 그 성전의 아름다움이었다. 따라서 성전의 신성 모독은 가장 비참한 부면이었다.

(2) 성전은 "그들의 조상들이" 희생과 찬송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던" 곳이다. .....오랫동안 존속되었던 그들의 국가와 영광이 재로 변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들의 조상들이 종종 하나님을 찬양했던 시온의 노래를 현재는 부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을 더욱 괴롭혔다. 그들은 성전이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아왔던 집이라는 점을 탄원하면서 그와 같은 이유로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 봄으로써 하나님과 그의 선조들과의 계약을 인식했다.

(3) "우리의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무하였나이다." .

.....그들은 모든 욕망과 기쁨,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그들이 참여했던 모든 일들에서, 그들은 무한한 기쁨을 가졌었다. 성전의 장식들, 제단과 탁자 특히 안식일과 월삭, 그리고 그들의 모든 종교적인 축제들을 기쁘게 지켜왔었고, 그들의 제사장들과 엄숙한 집회 등과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들이 황무하게 되었다. .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들의 가장 성스러운 것들을 자기들의 가장 큰 기쁨으로 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들로부터 거룩한 의식과 은혜의 수단들을 뺐으라. 그러면 너희는 그들의 "즐거워하는 것들을 모두 황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그 이상 무엇을 더 가졌는가? 여기에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이해 관계가 서로 얼마나 깊이 뒤엉켜 있는가를 깨닫자.

.....그들은 자기들이 거주했던 성읍에 대해서 말할 때 그것은 "거룩한 도성" 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 성읍들은 하나님께 바쳐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은 그것을 우리의 "아름다운 전" 이라고 말하였고, 그 장식들을 "우리의 즐거운 것들" 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을 진정으로 신봉하고, 그것의 모든 혜택을 누렸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는 우리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 예배에 기울인다면, 우리는 만족스럽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것이다. 그분은 완전하시기 때문이다.

Ⅵ. 그들은 현재당하고 있는 황폐에 대해서 겸손하게 하나님과 논쟁을 하면서 사랑이 넘치는 충고로 결론을 맺고 있다(12절).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시거늘, 주께서 오히려 스스로 억제하시리이까. 곧 주께서 이런 것에 만족할 수 있나이까? 그래서 우리로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리이까?

주께서는 당신의 전이 황폐하게 된 것을 보지 않습니까? 그것에 분노하시지도 않고 복수하지도 않으시렵니까?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질투를 잊으셨습니까? "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주의 원통을 푸시옵소서(시 74:22). 주여 당신께서는 모욕을 당하시고 비난을 받았나이다. 그래도 주께서는 침묵을 지키시고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시렵니까? 하늘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모욕을 질책하지 않고 지나가시렵니까?" 

---우리는 욕설을 들을 때도 복수가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고 우리의 논리보다 하나님을 더 생각하기 때문에 침묵을 지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존엄에 손상을 당할 때 그것을 설욕하셔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시 83:1). 나의 찬송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시 109:1). 주의 대적들의 확신에 대해서 말하소서. 주의 백성의 편안과 구원에 대해서 말하소서. 주께서는 매우 슬프게도 우리를 곤궁에 넣으시고 영영히 우리를 고난에 처하게 하시렵니까?" 

---하나님의 전이 황무하게 되고 그 폐망으로부터 아무 것도 다시 일으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한 백성들이 보기에는 매우 쓰라린 고통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만족하시지는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백성은 그들의 고난이 극한에 이르지도 않을 것이고, 영원히 갈 것도 아니며 가볍게 잠깐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을 믿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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