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1.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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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갈3장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호소하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율법과 약속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하나님의 아들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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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갈3장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호소하다

1.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이 여러분의 눈 앞에 선한데, 누가 여러분을 홀렸습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을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써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 육체로 끝을 맺으려고 합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참말로 허사였습니까?

5.  여러분이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어서 그러하신 것입니까?

6.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움으로 여겨 주신 것"과 같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아십시오.

8.  또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실 것을 미리 알고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이방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미리 전하였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 있다" 하였습니다.

11.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그러나 율법은 믿음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율법으로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4.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율법과 약속

15.  ○형제자매 여러분, 일상 생활에서 예를 들어서 말하겠습니다. 사람 사이에 한 번 언약을 맺으면,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거기에다가 어떤 것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16.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을 하여 주실 때에,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자손들에게'를 쓰시지 않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너의 자손에게'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그 한 사람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17.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맺으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이를 무효로 하여 그 약속을 폐할 수는 없습니다.

18.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나온 것이면, 그것은 절대로 약속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유업을 거저 주셨습니다.

19.  ○그러면 율법은 무엇 때문에 주셨습니까? 그것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실 때까지 죄를 밝히시려고 덧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은 천사들을 거치고, 중개자의 손을 거쳐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20.  그런데 그 중개자는 한쪽에만 속하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종과 아들

21.  ○그렇다면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반대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율법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의롭게 됨은 분명히 율법에서 생겼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경을 보면 모든 것이 죄 아래 갇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약속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24.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 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25.  그런데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우리는 이제 개인 교사 밑에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28.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으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을 따라 유업을 이을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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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장 (개요)

본장에서 바울은 다음의 사실을 말한다.

Ⅰ. 갈라디아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함. 즉 그들이 복음에 대한 신앙에서 속히 떠난 사실에 대하여 그들을 책망한다.

Ⅱ. 그는 그들이 버렸으므로 그가 그들을 책망했던 가르침 곧 율법의 행위 없이 믿음에 의하여 의롭게 되는 교리를 증명한다.

1. 아브라함의 의롭게 됨을 예로 들어 증명한다.

2. 율법의 본질과 그 의미를 들어 논증한다.

3. 구약에 기록된 증언들을 들어 증명한다.

4.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의 불변성을 들어 증명한다. 그러면 "율법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까하여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1)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다.

(2) 율법은 세상으로 하여금 구세주의 필요성을 확신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3) 그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으로 계획된 것이다. 끝으로 그는 복음 아래서의 기독교인의 특권을 우리에게 제시함으로 본장을 종결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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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의한 의인(義認)(1)(갈 3:1-5)

사도는 본문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이고서도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의롭게 되기를 계속 추구하고 있는 자들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해서 도덕적 계율에 복종함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는 생각에 매여있는 자들을 다룬다. 

이들의 율법은 불완전한 것임에도, 율법에 의한 희생과 정결을 의지하여서 의롭게 되려는 그러한 자들이다. 

그는 먼저 이러한 자들을 날카롭게 책망한다. 그런 다음 진리의 증거를 들어 그들을 확신케 하려고 애를 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실수나 잘못에 대하여 책망하려고 할 때, 무엇이 잘못이며 무엇이 실수인가를 상대방으로 알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그는 그들을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라는 부른다(1절). 기독교인이란 점에 있어서 그들은 지혜의 자녀라고 할 수 있지만 탈선한 기독교인들이란 점에서 볼 때 그들은 어리석은 자녀들이었다. 

그는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묻는다. 이로써 그는 그들을 현혹하는 교사를 술수와 덫에 사로잡힌 자들로서 표현한다. 또한 이렇게 현혹된 것은 그들답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어리석음과 현혹됨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진리에 어리석음과 현혹됨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진리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즉 그들은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왔고 또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고백하였던 칭의의 수단으로써의 복음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진리를 알고 도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또한 우리는 진리에 복종해야만 한다. 우리는 진심으로 진리에 복종해야 하고 견고하게 진리 안에 거해야 한다. 

영적으로 현혹된 자들은 예수 안에 나타난 진리가 그들 앞에 명백히 제시될 때 이같이 그 진리에 복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 갈라디아인들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고 더욱 확실하게 하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그들 앞에 밝히 보였는데"도 그들이 꾀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은 십자가의 교리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었다. 그리고 주의 만찬의 성례가 그들 가운데 집행되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그들 앞에 명백히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같이 거룩한 신비를 알고 이 예식의 귀중함을 인정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발표되었고 그리고 성례전 속에 표시되고 봉인된 진리를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 없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영예와 특권이 우리의 어리석은 변절과 신앙의 퇴보의 의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그는 그들의 영혼이 경험하였던 성령의 역사에 호소하여 저들의 어리석음을 제시한다(2절). 

그는 그들이 기독교인이 되면서 "성령을 받은 사실을" 상기시킨다. 적어도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성별케 하시는 능력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기적적인 은사의 동참자들이 되었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 신앙이 진리라는, 또한 그 신앙의 몇 가지 가르침들, 특별히 그 중에서도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된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 믿음으로 인한 의인은 기독교의 특별하고도 근본적인 원리의 하나인 것이었다. 이 교리에서 떠난 그들의 어리석음을 밝히기 위하여 그는 그들이 어떻게 하여 이러한 은사와 은혜를 받게 되었는가를 알고자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라고 묻는다. 즉 너희가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행위들이 필요하다고 가르침을 받았는가?고 묻는다. 

이 물음에 그들은 답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교리가 그들에게 가르쳐지지도 않았으며 이방인인 그들이 그런 식으로 의롭게 될 수 있는 척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믿음으로냐?"고 묻는다. 즉 의롭게 되는 오직 한 길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뿐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느냐?는 말이다. 이 물음에 대하여 그들이 진실을 말한다면 그들은 후자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들이 그토록 좋은 경험을 갖게 한 가르침을 거절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행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성령이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은 일반적으로 복음의 사역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2) 그들의 영에 유익한 축복이 되는 복음이 사역과 가르침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은 매우 현명치 못한 처사라는 사실이다.

3.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지난 행위와 현재의 행위를 생각해 보고 그들이 현재 매우 믿음이 연약한 상태에 있고 또한 이치에 맞지 않게 행동하고 있지나 않는지를 판단해 보라고 한다(3,4절). 

그는 "그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기를"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복음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하여서 성령을 받게 되었으며 이 안에 의롭다함을 얻는 참된 길이 계시되었던 것이었다. 이같이 그들은 잘 시작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율법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고 의롭다함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다 율법의 준행을 덧붙였고 이것에 의해 보다 높은 완전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수치와 절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율법 준수는 복음의 진보를 이루는 대신에 역현상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외롭다함을 얻기를 바라는 한은 완전한 기독교인이 되기는 커녕 전혀 기독교인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들은 그들의 한 손은 복음을 붙잡고 다른 손은 율법에 잡혀 복음에서 끌려 나오고 있는 중이었고 그들이 지금까지 기독교 안에서 이루어 놓은 것을 해체시키려 하고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마음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하여 괴로움도 받았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만일 지금 그들이 복음을 버린다면 그들의 어리석음은 한결 심화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괴로움을 당한 모든 일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 어리석게도 버려야 할 것을 위하여 고통을 받은 결과가 될 것이었고 그들의 고통은 모두 헛수고로 되고 말 것이요. 그들에게 아무 이익도 없을 것이었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변절자들은 그들이 신앙 안에서 이루어 놓은 모든 업적 또는 신앙을 위하여 고난을 받은 것들을 상실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2) 누구든지 오랫 동안 예배, 수난, 안식일, 설교, 성례의 생활을 헛되어 살았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는 사실이다. 변절의 경우 이전의 의는 기억되지 아니할 것이다.

4. 그는 그들이 그들 가운데 신의 인봉함과 위임을 받은 사역자들(특히 바울 자신을 가리킨다)을 가졌었던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이들 사역자들은 그들 속에 성령의 역사를 불러 일으켰으며 기적이 있게 하였었던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이들 사역자들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인지, 듣고 믿음에 의해서인지"를 묻는다. 

또한 이들 사역자들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또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와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확증된 가르침이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의롭다함을 받은 결과인지 또는 그리스도를 믿음에 의하여 의롭다함을 받은 결과인지를 묻는다. 

이 일이 후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을 그들 자신이 잘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토록 의미있게 소유하였었고 입증을 받은 가르침을 버리고 이러한 업적도 이루어 놓지 못한 것과 복음을 바꾼다는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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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의한 의인(義認)(2)(갈 3:6-18)

갈라디아인들에게 진리에 복종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고 또 이로써 그들이 저지른 어리석음을 깊이 그들에게 인식시키려고 애쓴 사도는 본문이지 그들이 거절하므로 그가 책망한 교훈을 광범위하게 증거한다. 

그것은 주로 율법의 행위없이 믿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의인(義認)에 대한 교훈이었다. 이 사실을 그는 몇 가지 방법으로 증명한다.

Ⅰ. 아브라함의 의인(義認)을 예로 들어 믿음에 의한 의인을 증명한다. 

사도는 이를 증거하는 데 로마서 4장의 것과 같은 논증법을 사용한다. 그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고 말한다(6절). 

즉 다시 말해서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근거를 둔 것이었고, 그리고 그의 이 믿음에 의하여 그는 하나님에게 의인으로 인정되었고 또 용납되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믿는 자들의 조상으로 상징된 것이었다. 

사도는 이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육체를 따라서가 아니요, 약속을 따라서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 것"을 우리에게 말씀한다(7절). 따라서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은 같은 방법에 의하여 그들도 의롭다함을 얻을 것이다. 즉 아브라함이 믿음에 의하여 의롭다 함을 얻었고, 그들 또한 그러한 것이다. 

이 사실을 확증하기 위하여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창 12:3). 그 내용은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는 것이었고 그 내용이 본문에도 성경 또한 하나님이 믿음의 수단을 통하여 이방 세계를 의롭게 하실 것을 예견한 것이라고 말씀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안에서,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또한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난 자만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가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처럼 의롭게 여김을 받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처럼 축복을 받는 것이다. 

이 사실을 가리켜 사도는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 즉 참된 신자들은 그들이 어느 민족 출신인가를 불문하고 "믿음이 있는 자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것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에 의하여 따라서 그가 가진 것 같은 믿음을 가짐으로 믿음의 아버지인 그와 함께 축복을 받는다.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 특권을 얻는 것도 똑같은 방법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Ⅱ. 그는 우리가 복음에 대한 믿음에 의하지 않고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율법의 법정에 서서 그 재판을 받게 된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추방당하고 정죄되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다." 즉 정죄함을 받지 않고 의롭게 되는 방책으로 자신의 행위에 의지하고 이에 근거하여 자신의 의인(義認)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재판 법정은 틀림 없이 그들에게 불리한 선고를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기 때문이었다(10절; 신 27:26). 

율법에 의하면 인간들은 누구나 생활이 완전해야 하며 인격적이어야 하고 영원히 복종해야 한다. 율법의 용어는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든가 또는 12절의 경우처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에 살리라"는 식이다. 

따라서 이것을 행하지 못하는 자에게 율법은 저주를 선언한다. 우리의 복종이 율법책에 쓰여진 모든 것대로 보편적이며 계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또한 영속적으로 되어지지 아니하는 한(만일 어느 때든 한가지 실수라도 범한다던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우리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된다. 

이 저주는 계시되고 경고된 것으로 진노와 파멸을 가져 온다. 저주는 모든 악에 대하여 각각 적용된다. 이 저주는 모든 죄인들, 곧 모든 인간들을 치는 강력한 힘과 권세와 효능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하나님 앞에 죄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율법의 범법자로서 율법의 저주 아래 있다면 율법에 의하여 의롭다함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일인 것이다. 이 의인을 율법으로부터는 기대할 수 없지만 사도는 우리에게 이 저주를 피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길을 알려 준다. 그것은(그가 13절에서 말한 것처럼)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기이한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다. 즉 그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므로" 우리의 구속을 이루신 것이다. 그는 우리 대신 죄를 지시고 우리 대신 저주를 감당하셨다. 

그가 죄를 담당하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신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선물이 되시었다. 즉 그는 모세의 율법이 특별한 낙인을 찍은 것이며 불쾌히 여길 수 밖에 없는 수치스러운 죄를 없이하고자 선물로 자기를 드리신 것이었다(신 21:23). 

예수께서 자기를 드리신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유대인든지 이방인이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상속자가 되고 특히, 복음 시대를 위하여 예비해 준 성령의 놀라운 약속의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약속의 상속자가 된 것은 율법에 자신들을 드림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임이 나타난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죄인으로서 우리가 받았어야 할 비참한 경우를 기억하자. 율법 아래 있었다면 우리는 또한 율법의 저주와 정죄 아래 처해 있었을 것이다.

2. 우리를 향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자. 그는 우리 대신 저주를 담당하시려고 또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복종하셨다.

3. 그를 통하여 우리가 누리게 될 행복한 미래를 전망하도록 하자. 우리는 저주를 피하게 될 뿐만 아니라 축복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4.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Ⅲ.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도는 구약의 특별한 증언들에 대하여 언급한다(11절). 

이러한 말씀이 언급된 것은 하박국 2장 4절로 거기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이 다시 로마서 1장 17절과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인용되고 있다. 

하박국 2장 14절의 말씀의 의도는 참된 삶을 소유하며 죽음과 진노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하나님의 가호를 입어 생명으로 복귀됨을 입을 수 있는 자들은 의로운 자이어야 하며 또 인간이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가능함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에게 용납되고 그를 위하여 살수 있을 때만이 이러한 생명과 행복을 얻게 되며, 이후로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여 영생을 누릴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임을 또한 제시해 주고자 한다. 

그 까닭에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혹 그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떳떳할 지 몰라도 적어도 믿음이 없는 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떳떳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율법은 의롭다함을 얻는데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이 없고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준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율법이 말하는 것은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는 것이었다(레 18:15). 

율법은 삶을 얻는 조건으로 완전한 복종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결코 우리의 의인은 새로운 가르침 아니고 복음시대 이전에 벌써 하나님의 교회에서 세워지고 가르쳐진 것임을 밝히려 한다. 

믿음이야 말로 진정 어느 죄인이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고 또는 의롭게 되는 오직 유일한 길인 것이다.

Ⅳ.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사도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체결하신 계약의 불변성을 주장한다.  이 계약은 모세의 율법의 주어짐에 의하여 취소되거나 폐기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15절 이하). 

아브라함이 믿음에 의하여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믿음이 율법보다 앞선다. 믿음은 아브라함이 약속에 근거하여 세운 것이었고, 또 약속은 믿음의 대상이었다. 하나님의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셨다(8절). 그리고 이 계약은 확고하고 변함없는 것이었다. 

인간의 계약이 폐할 수 없는 것이라면 하나님과 계약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조약이 체결되는가 또는 합의 조항이 인준되면 양편이 다 묶이게 되면 이미 다른 길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그 뒤에 있어진 율법에 의하여 하나님의 계약이 무효화 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디아데케’ - 즉 계약과 유언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그런데 이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계약이라기 보다 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유언이 효력이 있기 위하여서는 유언자가 죽어야 하며 그가 죽은 후에 유언은 변경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유언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은 확고하고 변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난 만일 유언의 권리를 주장할 상속 인물이 없기 때문에 유언이 폐기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16절) 거기에 대하여서는 그런 염려를 안해도 된다고 사도는 말한다. 

아브라함이 죽었고 선지자들도 죽었다. 그러나 계약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체결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구약의 말씀을 매우 놀랍게 해석한다. 우리는 그 계약이 오직 유대 백성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사도는 아니라고 한다. 즉 "자손을 복수로 표현하지 않고 단수로 표시한 것을 보아 그 말씀은 한 인물을 가리키는 것 같고 그 자손이 곧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계약은 아직도 효력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인격으로 영원히 거시하시며, 또한 믿음으로 그의 것이 된 영적 자손들 속에서 영원히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율법이 행위를 너무 강조하기 때문에 모세에 의하여 주어진 그 율법이 계약을 폐할 수 없다면 또한 율법 속에 믿음이나 약속된 메시야에 대한 말씀을 폐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답볍한다(18절). 

그러므로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만일 후에 있어진 한 행위가 약속을 폐기한다면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의롭게 되는 길을 폐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지혜와 신실하심에 불일치 하는 것이 된다. 

만일 약속에 의해서 아브라함에 유업이 주어졌고 이로 인하여 그의 영적 자손에게 물려진 것이라면 하나님이 그 약속을 거두시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처럼 후회할 일을 행하시는 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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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목적(갈 3:19-29)

앞 단원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에 대하여서 말하고 율법이 아니라 그 약속이 우리의 의인(義認)의 규범이 됨을 말한 다음 사도는 그들이 그가 너무 율법을 훼손시키고 율법을 의도와 그 방향에 대하여 강론을 하여 무슨 목적 때문에 율법이 주어졌는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바울이 앞의 사실만 강조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 즉 "구원을 위해 약속만으로 충분하다면 율법은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든가, "그렇다면 어째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게 된다. 이를 예상하고 바울은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Ⅰ.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고 한다(19절). 

율법도 약속을 폐기하고 약속에 의하여 제시된 길 말고 다른 의인(義認)의 길을 제시하려고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은 "약속에 덧붙여진 것"으로 약속을 돕기 위하여 추가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범죄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정되었지만 다른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죄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확실히 알게 하고 이 죄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몹시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있어진 것이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요"(롬 3:20). "율법에 가입(加入)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기 때문이다"(롬 5:20). 

율법은 또한 그들로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켜 그들의 욕망을 자제하게 함으로 본성적으로 격동되기 쉬운 지나친 욕망으로 파멸되지 않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율법은 동시에 죄가 소멸되는 참되고 유일한 길로 그들을 지시해 주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었다. 

율법이 지시해 준 그곳에 도달해야 그들은 죄의 용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이다. 

율법에 제시된 희생과 정결의 제도는 바로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사도는 율법이 "약속하신 자손이 오기까지"를 위하여 주어진 것이라고 덧붙인다. 즉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그는 바울이 앞서 제시한 것처럼 약속 가운데 언급된 근본 자손이다)  또는 복음이 선도되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분별이 없이 믿는 자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때가 올 때까지를 위하여 율법은 주어진 것이었다. 

이 때의 성취 또는 구원의 완전한 분배가 성취될 때까지 그 동안에 있을 범죄 때문에 율법은 덧붙여진 것이었다. 그러나 약속의 자손이 오셨고 약속 가운데 나타났던 신의 은혜가 보다 완전히 나타났으므로 모세에 의하여 주어진 율법은 폐기된 것이었다. 

즉 결점을 지닌 계약은 다른 보다 나은 계약에게 자리를 물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히 9:7, 8). 비록 율법이 자연법으로 생각할 때 인간에게 죄를 확인시켜 주고 그들로 죄를 자제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언제나 효력이 있고 아직 계속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법적 계약의 구속(拘束)과 그것이 주는 공포에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약속에 의하여 계시된 것과는 다른 의인(義認)의 길을 제시해 주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죄의 본 모습도 보여 주고 그리스도에게 안내함으로 오직 그를 통하여 그들이 용서받고 또 의롭다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었다. 

율법이 약속을 폐기하기 위하여 시도된 것이 아님을 더욱 증거하기 위하여 사도는 "율법이 천사들로 말미암아 증보의 손을 빌어 베풀어진 것이라"고 덧붙인다. 

율법은 약속에 따라 특정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법으로 또한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었다. 약속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즉 모든 민족들이 믿는 자들을 포함한 그의 모든 영적 자손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율법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없이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주어진 것이었다. 또한 약속은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주어진 데 비해서 율법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주어진 것이었다. 

이 까닭에 율법이 약속을 폐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여 진다. 왜냐하면(20절) "하나님의 약속은 중재자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 한 분의 생각으로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공동 번역 인용). 

즉 중재자인 천사는 양편의 입장을 다 고려하여 상대적인 입장에서 율법을 기록하였으나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또는 계약은 하나님의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요, 따라서 율법보다 약속이 우수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과 유대 민족 사이에서만 이루어진 협정인 율법에 의하여 그가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포함한 그의 모든 영적 자손에게 주신 약속을 폐기하실 리는 없는 것이다. 그가 율법에 의해 약속을 폐기하신다는 것은 그의 지혜와도 일치되지 않으며 그의 진실과 신실하심에도 일치하지 않는다. 

모세는 다만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중재자일 뿐이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사이에 중재자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의하여 주어진 율법이 영적 자손에게 주어진 약속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더군다나 율법이 약속을 전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Ⅱ. 율법은 사람들에게 구세주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는(21절).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정말 율법과 약속은 서로 상충되고 대등한 입장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는가?  또 너희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계약과 모세의 계약이 서로 모순된다고 보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이에 답하여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당시에는 율법이 하나님이 약속을 거스린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러한 생각을 품으시지도 않았고, 그가 하신 말씀 가운데 그러한 내용을 찾을 수도 없다고 말한다. 율법은 약속에 결코 불일치되는 것이 아니고 약속에 종속된 것으로 율법의 의도는 인간들의 범죄를 들어내고 그들로 하여금 율법의 의보다 나은 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았다는 결론은 하나님이 주신 교훈이라기 보단 그들이 만들어낸 교훈이라고 봄이 옳다. 

왜냐하면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약속은 폐지된 것이 되고 더 이상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말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삶 속에서는 우리는 율법으로 의로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기" 때문에(22절). 또는 성경이 유대인이건 이방이이건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어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서 의를 성취하거나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율법은 죄인들의 상처를 드러내 준다. 그러나 그 상처를 치료해 줄 수는 없다. 율법은 그들이 죄있음을 보여 준다. 그것은 율법이 희생과 순결의 제사를 정한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없이 하기에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율법의 가장 큰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다." 곧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율법이 그들을 위한 의를 성취하는 데  불충분함을 알게 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도록 설득시키고 또한 약속의 혜택을 획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Ⅲ. 율법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도 인도하는 몽학 선생"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24절). 

앞의 구절에서 사도는 "믿음이 오기 전에" 또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사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교리가 완전히 들어나기 이전에 모세의 경륜 아래서의 유대인의 상태를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그때 그들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어 엄격한 책벌 아래 율법의 여러 계명들을 엄수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동시에 그들은 옥에 갇힌 죄수처럼 율법의 공포와 단련 아래 매인 바 되어 있었다. 이들을 이같이 묶어둔 목적은 이로써 그들로 하여금 "후에 계시될 믿음을" 기꺼이 용납할 마음의 자세를 갖게 하고 또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때 그를 영접하고 그가 도입한 보다 좋은 은혜에 애착을 갖게 함으로 그들을 노예의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보다 큰 빛과 자유의 상태로 그들을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 "율법이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몽학 선생이 되어 그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그는 그들에게 말한다. 

율법이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선포하고 동시에 그들의 의무에 대한 오류가 그들에게 있을 때 마다 그들을 치는 저주로써 주어진 동시에 율법은 또한 그들의 상실되고 영락된 상태를 그들에게 알려 주며 그들의 의가 그들을 하나님에게 추천하기에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나약한지를 보여 주기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율법이 온갖 희생의 제사를 그들에게 의무화한 것은 비록 이런 제사들이 그 자체만으로 그들의 죄를 없이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와 또 그가 죄를 사하기 위하여 드린 큰 희생의 유형(그림자)으로써 주어진 것이라고 하겠다. 동시에 율법에(대단히 모호하게 나타났지만) 그들에게 그를 그들의 안신처와 도피처로 삼도록 지시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같이 율법은 미성숙 상태에 있는 그들을 교훈하고 다스리기 위한 몽학 선생 또는 ‘파이다고고스’란 단어의 뜻이 잘 나타내 주듯이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고 인도하는 그들의 종인 것이다(마치 어린 아이들이 그들의 보호를 맡고 있는 하인들에게 이끌리어 학교에 가듯이 말이다). 또한 율법이 그들의 몽학 선생이 되어 그들을 의인과 구원의 참된 길에 대하여 보다 확실히 깨닫게 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이 의인과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며 이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가장 완벽하고 명백한 의인과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시기 위하여 임명되어 오신 것이었다. 

율법이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용도와 목적으로 쓰여지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라면 기독교 시대에서도 계속 율법이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는냐는 질문이 던져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도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25절). 

"믿음이 온 후" 곧 그리스도 아래서 복음의 반포가 시작되고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한 용서와 생명의 길이 가장 밝은 빛 아래 나타났으므로 "우리가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한다"고 말씀한다. 즉 우리가 예전처럼 우리를 그에게로 인도해 주는 율법이 쓰이는 용도와 목적을 알려 준다. 그가 이 문제에 관하여 말씀하신 내용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그의 옛 백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 

이것은 그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사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복음의 시대에 비교할 때 율법을 주신 사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복음의 시대에 비교할 때 율법의 시대는 아직 어둡고 공포에 찬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율법은 그들에게 하나님께 의무를 다하고 그에게 희망을 갖도록 그들을 격려한 면에 있어서 훌륭한 조력자와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였다.

2. 유대인들이 범함 큰 과오와 어리석음. 

그것은 그들이 율법의 의도를 잘못 알고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목적에 남용하였다는 사실에서 들어난다. 

율법은 그들에게 의롭다 함을 주기 위하여 계획된 것은 아니었고 다만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며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는 수단으로써 계획된 것이었고 또한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도 인도하여 그를 믿게 함으로 의인의 특권을 획득하게 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의롭다함을 얻기를 바랐던 것이다(롬 9:31, 31; 10:3, 4 참조).

3. 율법보다 뛰어난 복음의 유익성, 

복음 아래서 우리는 구약의 유대인들이 누렸던 것 이상의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특혜를 즐길 뿐만 아니라 옛 유대인들이 메인 바 되었던 구속(拘束)과 공포의 상태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미성숙한 어린 아이로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성장한 아들로서 대우를 받게 되었고, 옛 유대인들보다 더 큰 자유를 허용받았으며 더 큰 특권에 대하여 우리에게 알려 준다.

(1)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음"을 선언한다(26절).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① 참 기독교인들이 복음 아래서 누릴 크고 놀라운 특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종으로 취급받지 아니하고 "아들들"로 대우를 받는다. 

그들은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과 거리를 둔 상태, 곧 예속된 상태에 거하지 아니한다. 그들은 유대인들보다 더 가까이 그리고 자유롭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들은 그의 자녀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었고 모든 권리가 허용되는 특권을 향유하게 되었다.

② 그들이 이 특권을 얻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이다. 

그를 그들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그만을 의인과 구원을 주시는 분으로 의지함으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복된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로부터 주어지는 특권을 누릴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이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인데) 그들이 세례를 받을 때 고백하였던 것임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고 말씀한다. 세례받을 때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으므로 그들은 그에게 드려진 바 되었고 그의 옷을 입은 것과 같으며 스스로를 그의 종이요, 제자로 선언한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일원이 된 후 그들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었고 그렇게 여김을 받게 된 것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첫째, 할례가 유대인들에게 유대교로 들어가는 예표가 되듯이 세례는 기독교회로 우리를 받아들인다는 엄숙한 의식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그의 사도들에게 세례를 위임하심으로써(마 28:19) 세례를 기독교에 들어오는 예식으로 정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기독교 신앙으로 훈련한 사람들에게 사도들이 세례를 베푸는 것은 관례가 되었다.

 아마 사도는 본문에서 그들의 세례를 의식적으로 강조하고 도 그들이 세례받을 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할례의 유익성을 강조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짓 교사들은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자 하였다.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은 약속된 자손인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기시키려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사도는 "그리스도로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리라"는 답변으로 이 곤란한 문제를 가볍게 처리한다. 즉 복음 아래에서는 세례가 할례를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례에 의하여 그리스도에게 드려지고 또 신실히 그를 믿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세례에 의하여 율법이 베푸는 특혜에 허입되듯이 그들도 기독교의 온갖 특권 속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빌 3:3). 

그러므로 그들이 할례를 계속 사용해야 할 이유는 없어진 것이다. 

둘째,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옷입었다는 사실이다. 

세례받을 때 우리는 그에게 제자됨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그의 신실한 종들로써 행동할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리스도로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의 죽음과 함께 세례받았다는 말이요, 또 그가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실 때 우리도 그와 일치하여 죄에 대하여서는 죽고 새 생명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롬 6:3, 4). 우리가 자주 이 사실을 기억할수록 이 사실을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세례에 의하여 그리스도에게 드려지는 특권은 참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다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율법은 유대인과 희랍인을 구별하였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모든 우선권을 주었다. 또한 율법은 "종과 자유인", 주인과 종, 또 남성에게만 할례를 베풀므로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입장에 있게 되었고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한쪽이 민족적 또는 개인적 편견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을 다른 편에서 누린다든가 반대로 그러한 민족적 개인적 특권이 없다고 해서 다른 민족이 배척된다는 법도 없게 되었다. 

다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은 민족, 성, 빈부의 차이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에게 용납되며 그를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된 것이다.

(3)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하였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음을" 그는 선언한다. 

저희의 유대적인 교사들은 그들도 할례를 받아야만 하며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믿게 하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사도는 "아니다, 할례는 필요없는 것이다. 만일 너희가 약속된 자손이며 그를 통하여 지상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게 되는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는다면, 즉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면 너희가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이 될 것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될것이요, 결과적으로 그의 큰 축복과 특권을 받을 자격을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반적으로 고찰하여 볼 때 의인은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은 일시적인 제도에 불과하고 약속을 폐기하고 대신 있어진 것이 아니라 약속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라 하겠다. 

바울은 아래에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율법의 제도하에서 누린 것보다 더 크고 훌륭한 특권을 누리게 되었으며 따라서 갈라디아인들이 자기들에게 복음의 진리와 자유를 즉시 빼앗아 버리려는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고 현명치 못한 처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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