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8.빌립의사마리아전도_물세례._베드로와요한파송_성령세례.시몬마구스사건.세례받는에디오피아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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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8장

===사울이 교회를 박해하다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다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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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장 (개요)

본장에서 우리는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와 이로 인한 기독교의 융성에 대한 설명을 대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이 박해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면서도 또한 사실이다.

Ⅰ. 고난에 직면한 교회. 

스데반의 죽음을 계기로 박해의 폭풍우가 일어난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났다(1-3).

Ⅱ. 이 박해로 인하여 흩어진 빌립과 그 외의 사람들의 전도를 통한 교회의 확장.

1. 복음이 사마리아에 전파됨. 복음이 전하여지고(4, 5),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6-8), 

시몬 마구스(Simon Magus)까지 믿게 된다(9-13). 

성령의 은사가 몇몇 믿음이 있는 사마리아인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를 통하여 수여된다(14-17). 

시몬 마구스가 그 은사를 수여하는 권세를 돈을 주고 사려고 하자 베드로가 이를 심히 꾸짖음(18-25).

2. 복음이 에디오피아의 실력자인 한 사람의 내시를 통하여 그 곳에 전파됨. 

그는 마차를 타고 예루살렘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26-28). 

빌립이 그에게 보냄을 받고 그의 병거 안에서 그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29-35)

그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므로 그에게 세례를 주고(36-38) 

거기서 그를 떠나다(39, 40). 

---이같이 여러 방법과 수단을 통하여 복음은 여러 나라에 전파됨. 이것은 어떻게 하든지 "그들이 모두 복음에 대하여 듣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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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교회를 박해하다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교회에 임한 박해(행 8:1-3)

위의 내용에서 우리는 다음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Ⅰ. 스데반과 그의 죽음의 여파. 

사람들은 각각 다른 감수성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이 사건에 대하여 반응을 나타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작별하시면서 말씀하기를(요 16:20)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고 하였다. 이 말이 그대로 본문에 이루어지고 있다.

1. 많은 사람들이 스데반의 죽음을 기뻐하였다. 

특히 후에 바울이라 불리워진 사울이 더욱 기뻐하였다. 사울은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그가 기쁨으로 그것을 승낙하였다. 

그는 이로써 기독교의 성장이 제지되기를 바랐다. 

우리는 바울이 자기에게 수치스러운 사건인 이 사실을 사도행전에 삽입하도록 명령했다고 생각하여 볼 수 있다. 이는 자유로운 은혜에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하여 그들 스데반의 피에 대한 죄의 책임을 졌다. 그리고 이 사실이 기록되게 함으로 그 책임을 더욱 강하게 지고자 하였다. 

그는 마지 못하여 후회하듯이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참여하지 않고 "이런 일을 행하였을 뿐 아니라, 기꺼이 행한 사람들과" 같이 기쁨과 만족한 심정으로 행하였다.

2. 스데반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 즉 "경건한 사람들"에게 큰 슬픔을 주었다. 

어떤 이들은 이 경건한 사람들을 "개종자"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고 스데반도 그들 중의 한사람이라고 여긴다. 또는 이 경건한 사람들을 보다 광범위하게 몇 교회들로 간주할 수도 있다. 다른 교회보다 헌신적이고 열성적인 몇몇 교회들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한 가난한 사람을 거리에서 모아다가 잘 매장하였던 것 같다. 

그 장지는 아마도 "피밭"으로, 이것은 나그네들을 매장하기 위하여 이전에 산 것이었다. 그들은 그를 엄숙하게 장사하였고 그를 위하여 통곡하였다. 

그의 죽음이 스데반 자신에게는 대단히 유익하였고 교회에 헌신하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그의 죽음이 큰 손실이 되었으므로 슬퍼하였다. 

그는 교회 섬김에 적격자였고 감독이나 기독교 변증자로서도 대단히 유익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 사실이 마음에 충격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징조라 하겠다. 이 경건한 사람들은 그의 장래에서 스데반에 대한 마지막 경의를 표하였다.

(1) 그들은 그가 받은 고통을 부끄러이 여기지도 않았으며 복음의 원수된 자들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면 안 되었을 보여 주었다. 

지금은 원수들이 승리하였지만 그 죽임의 원인은 의로운 것이었고 그러기에 마지막에는 승리하겠기 때문이었다.

(2) 그들은 복음을 위한 첫 순교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인 그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였다. 

그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기억은 그들에게 언제나 고귀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영예를 부여한 그에게 어떻게든지 영예를 부여하려고 노력하였다.

(3) 또한 "죽은 자의 부활과 장차 올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희망을 입증하였다.

Ⅱ. 교회 박해에 대한 설명. 

이 박해는 스데반의 순교에서 시작된다. 스데반에 대한 유대인들의 진노가 이 같이 격렬하고 높았으므로 그것은 쉽사리 저지되거나 스러지지 않았다. 

피흘림을 성서는 가끔 "피에 대한 목마름"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한 번 피의 맛을 보면 더욱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혹 스데반이 죽으면서 한 기도와 그의 평안한 임종이 그들을 압도하여 기독교와 기독교 인들에 대하여 그들이 마음이 녹아져 보다 좋게 생각하게 되리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박해는 계속 되었다. 그들은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을 알자 더욱 격분하였고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강퍅해지기를 바라거나 하는 것처럼 단호히 그들의 결심을 따랐다. 또 그들 중 아무도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자리에서 벼락을 맞아 죽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악을 행하는 데 더욱 대담하여졌다. 

반면에 제자들은 스데반이 승리롭게 걸어간 태도를 보고 그가 행한 것처럼 박해자들에게 더욱 담대히 항거하였다. 그들은 하면 할수록 더욱 용기를 얻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1. 박해의 대상. 박해는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향해서였다. 

그 곳에 교회가 뿌리를 내리자 마자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 때문에 "시련과 박해가 일어나리라고 말씀했던 사실과 일치한다.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곳이 될 것임을 예언하셨다. 왜냐하면 이 도시는 선지자들을 죽이며 사명받은 자들을 돌로 치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었다(마 23:37). 

이 박해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것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바울이 당시에 그가 "죽이기까지"(21:4) 또 "죽일 때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26:10)라고 자신이 박해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박해에 주동적인 인물. 

그는 젊은 바리새인 사울로서 열심이나 그 정도에 있어 아무도 그를 따를 수 없었다. 사울에 관하여는(그는 앞서 두 번 그리고 지금 다시 악명 높은 박해자로서 언급되는데)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자였다." 그는 교회를 황폐케 하고 멸하는 일에 온갖 정열을 다 기울였다. 그는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행한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또 언제 그 박해를 감출 수밖에 없게 될지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복음이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축출되기를 바랐을 뿐 아니라, 그 이름조차 더 이상 기억되지 않게 하려고 하였다(시 83:4). 그는 제사장들이 그들의 목적에 가장 알맞은 자로 여길 정도로 최상의 도구였다. 그는 제자들에 대하여 제일가는 밀고자였고 교인들의 모임을 수색하는 데 또 그 방면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혐의가 있는 사람을 체포는 일에 임명된 공회의 사자였다. 

사울은 학자와 교양있는 자로서 자랐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가 그러한 종류의 가장 사악한 일에 임명되었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1) 그는 각 집에 들어갔다. 

그는 밤과 낮을 막론하고 아무런 장애없이 주택을 수색하였고 이 목적을 위하여 군대를 대동하였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집회처로 사용하고 있는 각 집 또는 기독교인이 살고 있는 집, 또 그렇게 여겨지는 집들에 들어갔다. 아무도 자기 집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비록 성곽과 같은 집이라도 예외가 되지 못하였다.

(2) 그는 가장 무자비하고도 경멸하듯이 남녀들을 거리로 끌어냈다. 

그는 연약한 여성에게 보다 상냥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복음의 기미가 있는 자들을 색출하는 데 온갖 저열한 수단을 다 썼다. 그는 대단히 완고한 고집쟁이였다.

(3) 그는 그들을 감옥에 넣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는 한 고문을 당하다가 죽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어떤 아들에게는 모독하는 말을 하도록 강요하였다(26:11).

3. 이 박해의 결과. 

"그들이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1절). 

모든 신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전도자들이 흩어졌고 이들 전도자들이 타격을 제일 많이 받았다. 

그리고 이들에 대하여 그들을 체포해 들이도록 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이 가르친 법칙을 기억하고("그들이 너희를 박해하면 다른 곳으로 가라") 서로 합의하여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고통받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였다(그것은 유대와 사마리아가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거기서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면,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하였지만 박해자들의 손길이 거기에도 곧 뻗치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흩어진 것은 이것이 하나님이 경륜하시는 바였기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사명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그러기에 다른 장소의 필요성을 고려할 시기에 이르렀다. 먼저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증인이 되고 다음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의 증인이 되는 것이" 주님이 그들에게 한 명령이었다(1:8). 

이 방법에 대하여 그들은 생각하였다. 비록 박해가 우리를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어디든지 보내어 일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경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 이외의 모든 전도자들이 흩어졌다. 아마 사도들은 성령의 지시에 의하여 얼마 동안 예루살렘에 계속 머문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하여 박해의 폭우에서 보호함을 받았고 또 하나님이 특별한 은총에 따라 박해에 감연히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빙벽을 깨뜨리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다른 전도자들의 요청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곳에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가려고 계획하셨던 곳들로 그의 제자들을 가라고 명하신 것과 같았다(눅 10:1). 사도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세계 도처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과 위탁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오랫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15장 6절과 갈라디아서 1장 17절을 참고하라. 그러나 그들이 보낸 전도자들이 행한 것은 바로 그들이 행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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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다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빌립의 성공(행 8:4-13)

삼손이 낸 수수께끼, 즉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는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왔느니라"(삿 14:14)는 문제가 본문에서 다시 해답되고 있다. 즉 교회를 잔멸하려고 계획되었던 박해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에 의하여 오히려 그것이 확장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불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박해자들은 불을 다루는 자들을 흩어버림으로 불을 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대신 그들은 불이 더욱 번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Ⅰ. 전도자들의 행적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4절).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은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숨으려 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고통당함을 과시하려고 자신들을 일부러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직 그들은 그들이 흩어진 바로 그곳에서 두루 다니며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전하였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사는 곳과 사마리아의 도시 등 어디든지 갔다. 전에 이러한 곳들은 그들의 가는 것이 금지되었던 곳이었다(마 10:5). 

그들은 함께 모여 있는 것이 강력한 힘이 되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모여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안일하게 살려해서가 아니라 일거리를 발견하려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가서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였고" 복음의 말씀을 가르쳤다. 그들의 심정에 가득 찬 것이 바로 이것이었고 또 이 복음으로 그들은 그 지역을 채우려고 노력하였다. 전도자들은 설교를 통하여 다른 사마들은 일상 대화를 통하여 이 일을 시도하였다. 

그들이 간 지역은 그들에게 결코 낯선 곳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게 유대 지역은 상당히 익숙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기에 그들이 건물을 세울 기초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이제 예수께서 전에 가르치셨던 가르침을 거기 있는 백성들이 깨닫게 하고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요청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믿게 할 수 있는 것이다.

Ⅱ. 바울의 행적에 대한 특별 설명. 

다른 사람들의 행적과 그들의 성공 사례는 후에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11:19). 그러나 이곳에서는 사도 빌립이 아닌, 집사 빌립의 동태를 살펴 보도록 하자. 

그는 섬기는 일에 택함을 받고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의 큰 담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딤전 3:13). 

이 말씀대로 스데반은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갔고 빌립은 전도자의 반열에 이르렀다. 즉 그는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틀림없이 그는 집사의 직을 떠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가 마땅히 그 직책을 감당해야 할 예루살렘에서의 섬기는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따라서 스데반과 빌립 대신에 다른 두 사람이 선택되어졌을 것이다. 이제 아래의 문제들을 생각하여 보자.

1. 빌립이 전도를 통하여 얻은 놀랄 만한 성공과 그의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짐.

(1) 그가 선택한 곳은 사마리아 시(市)로써 그 지방의 대도시였다. 

그곳은 이전의 사마리아 성이 자리하고 있던 곳이었다. 이 성에 대하여는 열왕기 상 16장 24절에 기록되어 있고 요즘은 이곳을 세바스테(Sebaste)라 부른다. 

(어떤 이들은 이곳을 그리스도께서 방문하였던 사마리아 성의 하나인 세겜 또는 싯갈(Sychar)과 동일한 곳으로 생각한다(요 4:5). )

이들 대부분의 성들이 비록 그리스도께서 이 성들에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지면 그 당시 그리스도를 믿었다(39, 41절). 

이제 삼 년 후 빌립이 그 때에 시작되었던 일을 수행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대면도 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모는 적개심, 특히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적개심을 그의 복음을 전함으로 제거하고 그들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가 되게 하려고 하셨다.

(2) 그가 전한 교리는 바로 그리스도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 밖의 것은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이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왕으로 "선포하였다." 이것은 또한 그가 왕 위에 오를 때 m의 전 영토에 선포될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요한복음 4장 25절에 나타난 대로 메시야 임재를 대망하고 있었다. 이제 빌립은 그들에게 그가 오셨음과 사마리아인들이 그를 영접할 것을 가르친다. 

교역자가 할 일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못박히시고 영광 받으심을 전해야 한다.

(3) 그가 그의 가르침을 확실케 하려고 보여 준 증거는 기적이었다(6절). 

그가 하늘로부터 위탁받은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그러므로 그들이 그가 말한 것을 과감히 행하게 할 뿐 아니라 그것에 복종케 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는 복음에 부수하여 일어나는 하늘 나라의 비밀을 그들에게 보여 준다. 

또한 그는 진리의 하나님은 결코 거짓이 없음을 보여 주려 한다. 기적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가 행하는 기적을 듣고 또 보았다. 그들은 그가 명령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 말이 즉시로 놀랄 만한 효과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말한 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기적의 성격은 이와 같이 그의 위탁의 뜻하는 바와 일치하였고 따라서 그 위탁을 빛나게 하고 영광되게 하였다.

① 그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그리고 이 표시로써 주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을 받게 되면 불결한 영들은 "그들이 거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왔다"(7절)(한글 개역과는 다소 다름:역자 주). 

복음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사단은 인간들에 대한 지배를 계속할 수 없게 되고 그들에 대한 그의 이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정상으로 회복되고 다시 올바른 정신을 찾게 된다. 

사단이 그들을 지배하였을 때 그들의 마음은 혼동되어 있었다. 복음이 거하도록 허용되고 그것에 복종하는 어느 곳에서나 악령들은 거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육체의 욕망을 일으키는 "불결한 영들"이 그와 같이 된다. 이들이 거하므로 육체는 영혼과 다투게 된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불결한 것에서 거룩한 것으로 부르신 것이다(살전 4:7).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의 몸에서 악령을 쫓아낸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단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고 기록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마지 못하여 쫓겨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가는 것은 그들의 뜻이 아니었으나 그들 자신이 보다 강한 세력에 의하여 압도당하고 말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막 1:26; 3:11; 9:26).

②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고 혼동된 세상을 바로잡아 건전한 상태가 되게 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이 표시로써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다." 이런 질병들은 일반적 의술로는 치료되기가 극히 어려운 것이라는 특징이 있다(그러므로 더욱 기적적인 치료가 빛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병들은 대부분 죄로 인한 질병과 도덕적 무기력의 병들로써 이들이 인간의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저지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복음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은 영적으로 절름발이 되고 중풍병자가 된 자들을 고쳐 주기 위한 것으로 이들은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롬 5:6).

(4) 빌립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짐. 

이 증거는 사마리아에서 나타났다. 백성들은 처음에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적에 이끌리어 점차로 복음을 승인하게 되어 후에는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쫓게 되었다." 

그가 그들에게 말한 것이 그들의 영혼과 영원에 대한 것임을 깨닫게 되자 사람들에게 소망이 생기게 되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되자 이들은 그 말씀을 듣기 기뻐하였고 말씀을 이해하고 또 잊지 않으려 하였으며 자신들을 복음과 관련시켜 이해하려 하였다. 

낮은 사람에서 높은 사람까지 다 빌립에게 청종하였다. ‘호이 오클로이’(8:6)라고 기록되었는데 이는 "모든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여기 저기서 한 사람씩 믿는 것이 아니라 일심으로 청종하였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었는데 이는 복음이 가르침에 합당한 것으로 바로 복음이 요구하는 것이요, 또 그들은 복음을 바르게 들었던 것이다.

(5) 그들이 빌립의 전도를 받들어 경청하므로 만족을 얻음. 

또한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줌(8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라고 기록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저희가 빌립을 믿고 남녀가 다"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12절).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① 빌립은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또 그 나라의 제도와 법률과 법령 및 그 나라의 자유와 특권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나라의 충성된 신민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에 관하여 가르쳤다. 

또한 그는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였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었다. 그는 강권적인 능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이 사실들을 전하였고 이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되었다.

② 백성들은 그가 말한 것을 청종하였을 뿐 아니라 결국 그것을 믿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사람의 말이 아닌 것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말씀의 지시와 명령에 자신들을 맡기었다. 

그들은 전에 그들의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였고 열렬한 신앙을 그것에 드리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 신앙에 몸을 드렸던 것같이 이제는 그 신앙을 떠나 "신령과 진리로 아버지를 예배하며" 참된 성전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었다(요 4:20-23)(한글 개역과 다소 다름:역주)

③ 그들은(사마리아 인들이었지만) 의심없이 믿었고 주저하지 않고 "세례를 받았고" 공개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였으며 말씀대로 따를 것을 서약하였다. 

그 다음 물로 그들을 씻음으로 기독 교회의 교제 속에 들어왔고 제자들에게 형제로서 용납되었음을 엄숙히 인정하였다. 

사람들이 유대 교회에 가입이 인정될 수 있는 길은 할례를 통해서만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없이 다 하나였다"(갈 3:28). 그에게는 남녀의 구별이 없이 환영되었고 핵심적인 의식은 여자들도 지킬 수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육신을 따르면 이스라엘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영적인 이스라엘로 계수되었기 때문이다(민 1:2). 그러므로 여인들도 쉽게 모여서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가 처음으로 성만찬에 참여하였는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④ 믿음이 큰 기쁨을 야기시켰다. 

그들은 예수님의 비유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처럼" 스스로 기뻐하였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성에 은혜가 임한 것에 대하여 기뻐하였다. 

복음은 아무런 반대없이 이 성에 들어왔다. 그러나 만일 사마리아도 제사장들의 관활권에 속하였었다면 복음이 반대없이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어떤 곳이든지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그 장소에 큰 기쁨이 되는 것을 기억하자. 이 까닭에 복음이 세계에 전파되는 것은 구약에서 민족들에게 무한한 기쁨이 되는 것으로 예언되었다. "열방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라고 시편 기자는 노래한다(시 67:4; 살전 1:6).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들로 우울하게 만들지 아니한다. 오히려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들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만 백성에게 전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기 때문이다(눅 2:10).

2. 그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이 다른 곳에서 보다 놀랍게 성공할 수 있었던 특성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여 보자.

(1) 이 성에서는 시몬 마구스의 활동이 컸고 사람들 가운데 굉장한 인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빌립이 전하는 것을 믿었다." 

악한 것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것을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수없이 입증된다. 이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이 이방인들처럼 우상 숭배자들도 아니었고 또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받은 전통에 의하여 복음을 그릇되게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뒤늦게 시몬을 따르는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시몬은 [그 마구스(Magus)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대로]그들 가운데 대단한 소요를 일으키는 마술쟁이로서 기묘하게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① 사단의 기만이 어찌나 강하였던지 이에 현혹되어 그들은 사단을 통하여 이 대 사기꾼의 이익을 높이는 데 이용당하였다. 그는 아주 오랫 동안 "이 성에서 마술을 행하며" 살아 왔었다. 아마도 그는 악마의 교사를 받고 우리 주님이 그곳을 떠난 직후에 그가 거기서 행하셨던 것을 방해하려고 거기에 온 것 같다. 왜냐하면 선한 사업은 막 봉오리가 피려는 초기에 저지해 버리는 것이 사단의 상투수법이기 때문이다(고후 11:3; 살전 3:5).

첫째, 시몬은 자신을 굉장한 인물로 생각하였다.

 "그는 자칭 큰 자라"하였고 또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존중할 수밖에 없게 하였다. 그 밖의 모든 일은 그들의 마음대로 살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생활을 개척하거나 그들의 예배나 봉헌의 행위를 개선하려 하지도 않았고 오직 그가 팃스 마귀스 - 즉 일종의 신통력 싱는 사람으로 사람들이 여겨 주기를 바랐다.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은 그가 ‘프로톤 데온’ - 즉 으뜸가는 신의로 숭배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칭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 하였고 또 어떤 이는 그를 천사나 예언자로 생각하였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무슨 명예로운 칭호로 불리워야 할지를 몰랐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는 그냥 "큰 자"라 여김을 받았다. 

거만과 야욕과 허세는 세상에게나 교회에게 언제나 무수한 실수의 원인이 되어 왔었다.

둘째, 사람들은 그가 기뻐하는 대로 행하였다.

1. "그들이 다 그에게 청종하였다." 즉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젊은이나 노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통치자나 백성이거나 다 그를 따랐다. 또한 그들은 그를 존경하였다(10, 11절). 

메시야가 오시기로 작정된 때가 다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때쯤 어떤 위대한 자가 나타나리라는 일반적인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마도 그는 그 지방 출신이었던 것 같고 그러기에 그들은 더욱 그를 기쁘게 받아들인 것이다. 즉 그의 영예를 높여 줌으로 자신들에게도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2. 그들은 그를 가리켜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다. (말 뜻 그대로 한다면) 이 능력은 세계를 지은 능력이란 뜻이다. 

사단의 권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겼으니 무지하고 분별없는 백성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가! 이 같이 이방인의 세계에서는 악마가 신으로 간주된다.

 적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줌으로"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한다"(계 13:2-5).

3. 그들이 그에게 청종한 것은 그의 마술에 놀라서였다. 

9절에는 "그가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였다"하였고 11절에도 "오랫 동안 그 마술에 놀랐다" 기록되었다. 즉 그가 다음과 같은 일을 행하였단 말이다.

(1) "그는 그의 마술로써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마술을 보고 놀란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들였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단이 시몬을 따르는 마음으로 그들을 충만케 하였다. 

이러므로 바울도 이렇게 말하였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이 백성들이 시몬에게 매혹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거짓말을 믿을 만치 얼이 빠졌기 때문이다.

(2) 또한 그는 그의 마술을 통하여 "많은 기사와 거짓 표적을 행하였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인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기적이 아니었다. 이들의 기적은 애굽의 술사들의 기적이나 "악한 자"의 기적에 불과하였다(살후 2:9). 

그들은 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이 마술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빌립의 참된 기적에 접하게 되자 어느 것이 진짜이며 어느 것이 가짜인지를 분명히 식별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아론의 지팡이와 술사들의 지팡이처럼 현격한 차이가 있음이 드러났다."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다(렘 23:28).

이같이 시몬 마구스가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본의 아니게 이 잘못 속에 백성들이 깊이 빠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시몬과 빌립의 차이를 알게 되자 그들은 시몬에게 청종하는 것을 멈추고 빌립을 따랐다.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② 즉 하나님의 은총의 능력이 얼마나 강하냐 하는 점이다. 

이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참이시며 거짓이 없으신 그리스도에게 인도되었다. 말씀으로 역사하는 은총을 통하여 사단의 분포가 되었던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무장을 한 장사와 같이 사단이 궁전을 점령하고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그보다 더 강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물리치시고 전리품을 나누며 포로된 자를 그의 본향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한 때 사단이 점령하였던 그들을 그의 승리의 전리품으로 삼으신다. 그러므로 최악의 경우라도 낙심하지 말자. 그 때에는 시몬 마구스에게 현혹되었던 자들일지라도 믿게 하시기 때문이다.

(2)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시몬 마구스 자신이 그리스도 신앙으로 개종하여 한동안 신앙심을 나타내고 그렇게 고백도 하였다는 사실이다. 

"사울도 예언자의 한 사람인가?" 이 말은 "사울이 예언할 수 없는데 예언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이와 같이 "시몬도 또한 믿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13절). 그는 빌립이 참된 도리를 전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참된 기적에 의하여 그것이 틀림 없음을 알았다. 이에 대하여 그는 자신이 가짜 기적의 농간을 부리어 왔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잘 판단할 수 있었다.

① 이러한 확신이 깊어지자 "그는 세례를 받았다." 즉 다른 믿는 자들과 같이 세례를 받음으로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우리는 빌립이 실수로 그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또 그에게 너무 성급하게 세례를 베푼 것도 아니었다. 그는 겨우 악한 사람이었고 마술사였으며 신의 영예를 사칭한 자였지만 그의 죄를 뉘우치고 엄숙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으므로 그가 세례를 받게 된 것이다. 

회개하기 이전에 지은 아무리 사악한 죄라도 그가 참으로 뉘우치면 하나님의 은총의 혜택을 받을 수 있듯이 또한 죄가 크다 해도 회개하면 어떤 사람이든 교회 공동체의 사귐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이다. 탕자라 하더라도 그들이 다시 돌아오면 그가 다시 방황하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기쁨으로 맞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제 비록 그가 위선자에 불과하였고 내내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지만" 또한 그가 시험적으로 시도해본 것이었기 때문에 곧 정체가 들어났지만 그래도 빌립은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권한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그 사역자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비로운 판단만을 내려야하는 것이다. 법률 시행에는 한 격언이 있다.  - 즉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상의 것을 바라야만 한다. 교회의 생활에도 이러한 격언이 있다.  - 즉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의 비밀을 감찰하신다.

② 일시적인 확신은 그가 빌립과 같이 있을 동안은 계속 되었다. 

그후 그는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었지만 그렇게 속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빌립과 사귀기를 원하였다. 한 때는 스스로 큰 자라고 내세우던 그가 이제는 복음 전도자의 발 아래 앉은 것으로 만족하였다. 

아무리 악한 자라 할지라도 때로는 매우 선하여질 수가 있다. 그들의 마음이 아직 욕심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앞에 나아올 때 그도 하나님 앞으로 올 수 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그들과 함께 할 수도 있는 것이다.

③ 일시적인 확신은 기적에 의해서 와지고 또 유지된다. 

그는 기사와 이적이 행하여지는 한에서만이 스스로 의아하게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신의 진리의 증거를 보고 놀라나 그들은 결코 진리의 능력은 경험하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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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시몬 마구스의 행적(행 8:14-25)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사마리아에서 복음 전도자로 그의 사역에 크게 들여 쓰시었다. 

그러나 그는 복음 전도자 이상의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사도들에게 그들의 직책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우리는 본문에서 사마리아에서 이들 중 두 사람 즉 베드로와 요한이 행한 행적이 설명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12명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었는데(1절) 그곳으로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이 전하여졌다. 즉 많은 영혼들이 추수되어 그리스도에게 드려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마리아인들에게 전하여졌을 뿐 아니라 그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말씀을 환영하였고 말씀의 빛을 인정하였으며 말씀의 능력에 복종하였다. 

"사도들이 이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냈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만일 베드로가 사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면 그가 보냄을 받지 않고 사도 중 몇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자신의 결정에 따라 스스로 그곳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사실들과는 상관없이 명령에 순종하였고 한 몸에 속한 종으로서 그들이 보내는 곳으로 갔다. 두 사도들이 사마리아로 보냄을 받았는데 둘이 다 가장 뛰어난 제자들이었다.

첫째, 그들은 빌립에게 용기를 주고 그를 돕고 또 그의 힘을 강건케 하려고 갔다. 

높은 지위에 있으며 은사와 은총에 있어서 뛰어난 사역자들은 어떻게 하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돕고 그들을 위로하며 그들에게 유익을 줄까 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그들은 백성들 가운데 시작된 선한 사업을 추진하고 사도들에게 충만하였던 하늘의 은사를 가지고 사마리아인들에게 영적인 선물을 수여하기 위하여 갔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Ⅰ. 사도들이 신실한 사람들에게 나아가 그들을 바르게 인도함. 

기록되기를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다"(16절)하였다. 

이 비범한 능력들은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함으로 주어진 것들이었다. 그들 중 아무도 방언의 은사도 받지 못하였다. 당시의 방언은 성령의 부음을 받은 가장 일반적이고 또 즉시 나타나는 효과로 여겨졌던 것 같다. 10장 45, 46절을 참조하라. 

방언은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이한 표적으로 여겨졌고 또 믿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힘이 되었다. 그들은 방언이나 또 다른 은사들을 받지 못하였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려만 받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한 예수에게 속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면 그것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방언은 못하였지만 이것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겼다. 

진실로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고 은혜의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감화와 도우심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며 그들이 비록 장신구로써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해 주는 이러한 은사들을 받지 못하였다고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복음에 더 큰 영예를 돌리기 위하여 가서 현재의 은혜를 더 완전케 하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우리는 빌립 자신이 이러한 성령의 은사들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은사를 수여할 능력은 없었다. 사도들은 바로 이 일을 하려고 온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세례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은사를 수여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 중 몇 사람에게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는 교회 내의 특정 직분을 위하여 계획된 것 같고 또 교회에서 뛰어나게 활동적인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 같다. 즉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은사를"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은사"를 준 것 같다. 고린도전서 12장 4, 8절, 14장 26절을 참조하라. 이 은사를 베풀기 위하여 사도들은 어떤 일을 하였나.

1. "사도들이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15절). 

성령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응답으로 주어진다(눅 11:13). "내가 내 신을 너희에게 두리라"(겔 36:27). 그러나 "내가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구하는 자에게 할지라"(37절) 말씀함과 같다. 

우리는 이 실례를 통하여 하나님께 간구할 용기를 얻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그들의 영적인 생활이 풍부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 즉 우리의 자녀들이나 친구나 교역자들을 위하여 성령의 새로운 은혜를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하되 간절히 "그들이 성령받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는 것은 모든 축복이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사마리아인들에게 손을 얹어 안수하였는데 이는 그들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가 저희에게 임한지라"라고 말씀되었다(한글 개역과는 다소 다름:역주) 즉 안수를 행하자 "그들은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였다." 

손을 얹는 일은 고대에서는 권위를 가지고 축복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축복이 이루어질 때에 행한 의식이었다. 이같이 하여 사도들은 새로운 개종자들에게 축복하였고 그 중 얼마는 교직자로 서품하였고 다른 이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을 확실케 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줄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해도 안 된다. 이 사실은 우리가 오직 위하여 기도할 사람이 있을 때 우리 전력을 다 기울여야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이다.

Ⅱ. 사도들이 새로운 개종자들 가운데 위선자를 발견하고 분별해 낸 방법. 

이 위선자는 시몬 마구스였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귀한 것과 악한 것을 분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시몬의 음흉한 계획. 

이 계획 때문에 그의 위선이 발각되었다(18, 19절).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이 사실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그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고 사도들을 더욱 존중할 수 있게 되어야만 했었다) 그는 기독교라는 것이 좀 더 고차원적인 마술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도들과 동등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로 주소서"라고 말하였다(한글 개혁과는 다소 다름-역주). 

그는 사도들이 그에게 안수함으로써 성령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는 안수를 통하여 무엇이든지 주어지는 것을 내다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었던 것처럼 그에게도 능력을 전하여 주기를 바랐다. 

그는 사도직의 영예를 누리려는 욕망은 있었으나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신과 그런 성격을 소유하는 것은 전혀 애쓰지도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자신의 영예를 높이기 위하여 더욱 그것을 바랐다. 이 일을 이루려고 그는 다음과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

(1) 그는 사도들에게 대단한 모욕을 주었다. 

마치 사도들이 상인들처럼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되고 또 자기처럼 돈을 사랑하는 것으로 그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다 버렸다. 이는 그들이 더 많이 벌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도 아니었다.

(2) 그는 기독교를 대단히 모욕하였다. 

복음의 증거로써 유래된 기적을 마치 마술에 의하여 행해지는 것으로 여기고 자신이 전에 행하던 것과 다소 성격이 다르다고 보았던 것이다.

(3) 그는 발람과 같이 예언의 대가를 목적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그가 성령을 받음으로 돈을 벌기를 희망하지 않았다면 이 능력을 받으려고 돈을 바치지는 않았을 터이니 말이다.

(4) 그는 스스로 현혹되어 있음과 또 그의 마음이 참으로 겸손하지도 못하였음을 나타냈다. 

세례 받기 이전의 그와 같이 천한 자는 탕자와 같이 종으로 써달라고 청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는 가족으로 인정받자마자 청지기의 하나로 섬기려고 하지 않고 빌립 자신도 갖지 못하였고 오직 사도들만이 가졌던 능력을 받기를 원하였다.

2. 그의 계획이 거절됨. 베드로가 이에 대하여 그를 신랄하게 반격함(20-23절).

(1) 베드로는 그에게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었다(20절).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산 줄로 생각하였다"라고 책망하였다.

① 그는 이 세상의 부를 과대평가하여 그것이면 무엇이나 다 될 줄 알았다. 

솔로몬이 말한 대로 "그것은 모든 것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현실에 관계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저 세상에 관련된 모든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따라서 죄의 용서와 성령의 은사와 영생도 돈으로 살려고 하였던 것이다.

② 그는 성령의 은사를 과소평가하여 그것을 자연 질서 속에서 주어지는 평범한 은혜와 동일시하였다. 

그는 사도들의 능력이 의사나 변호사의 조언의 경우처럼 상당한 보수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은총의 성령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었다. 

로마 교회에서 면죄부를 사고 판 모든 행위는 이와 같은 악한 생각 즉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산 줄로 생각한 데서" 우러나온 소치이다. 

신의 은총은 특별히 제공되는 것이므로 "돈 없이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2) 베드로는 그의 성격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이 성격은 그의 범죄로 인해 형성된 것이었다. 

우리는 사람이 실수하여 말하거나 행한 것을 보고 그가 고백하는 신앙은 위선이라고 추론할 수 없다. 그러나 시몬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은총과는 아무리 해도 연결될 수 없는 상태였다. 

그가 돈을 내놓은 것은(그것 역시 마술로 법 돈이었지만) 그가 아직도 세상적이며 육적인 세력 아래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는 자연인"이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에게 명백히 말한다.

①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 하였다(21절). 

즉 이러한 말이다. "네가 믿는다 하고 세례도 받았으나 아직 신실치 못하도다." 

우리가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은 겉으로 나타난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면 우리도 잘못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열려 있으므로 그는 마음을 아시고 마음을 판단하시며 그 마음에 따라 우리도 판단하신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으므로 그는 결코 속지 않으신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그가 보시기에 합당치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교묘하게 위장해도 우리의 신앙은 헛 것이요, 우리가 설 자리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고결함이 그에게 절로 입증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속이게 되어 파멸에 떨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제안에 대하여 몇 마디 언급하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그의 요구는 자기를 부정한 것이 되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을 요구하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 또는 그리스도의 영예를 그 일을 통해 바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고 하였다. 구하여도 "얻지 못한 것은 그가 그의 정욕에 따라 잘못 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게는 큰 잘못이 있었다.

② 베드로는 그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다"(23절). 

베드로는 이 문제를 명백히 다룬다. 특히 영혼과 영원에 관하여 우리가 다룰 때는 명백히 취급해야 한다. 시몬은 백성들 가운데 이미 널리 알려졌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그의 검은 성격을 본문에서 폭로한다. 

흔히 사람들은 죄의 세력 가운데 계속 거하면서 선의 형식만 갖추는 경우도 가능함을 기억하자. 

베드로는 "내가 보니"라고 말하였다. 베드로가 이 사실을 밝혀낸 것은 그가 부여받은 분별의 영의 역사라기보다 시몬이 그의 제안을 통하여 스스로 드러낸 것이었다. 

위선자의 위장은 곧 여러 차례에 걸쳐 밝혀짐을 기억하자. 이리가 양의 옷을 입는다 해도 그 본성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본문에서 시몬을 통하여 나타난 성격은 참으로 모든 악한 자들의 성격인 것이다.

첫째, 그들은 "악독이 가득하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추악함으로써 우리에게 담즙이 쓴 것 이상으로 쓴맛을 낸다. 즉 죄는 가증한 것으로 주님이 싫어하는 것이며 죄인은 그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가증하게 만든다. 그들은 그들의 본성으로부터 더러운 것이다. 내재하는 죄는 "악독의 뿌리로써" "독초와 쑥을 생산한다"(신 29:18) (한글 개역과는 다소 다름:역주). 즉 그 생각이 부패하여지고 그 마음은 모든 선한 것을 미워한다(히 12:5). 이 말은 죄의 치명적인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그 끝은 독초와 같이 쓰다."

둘째, 그들은 "불법에 매인 바 되었다." 

즉 죄에 대한 책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 아래 매여 있고 또 죄의 세력으로 인하여 사단의 지배 아래 매여 있는 것이다. 사단은 그의 사로잡힌 자를 마음대로 부린다. 그러므로 불의는 비통한 멍에이다. 그것은 애굽에서의 삶과 같이 생을 더욱 비참하게 한다.

(3) 베드로는 그의 운명에 대하여 두 가지를 예언한다.

① 그가 그렇게 높이 평가한 세상 재물과 함께 멸망하리라고 한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첫째, 베드로는 시몬의 제의를 경멸어린 심정으로 분노하여 거절한다. 

"네가 우리를 돈으로 매수하여 우리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우리에게 위탁된 능력이 더러운 손에 넘어갈 것으로 생각하는도다. 네 은과 함께 사라지라. 우리는 너와 상관할 것이 없도다. 사단아 물러가라." 

우리가 돈 때문에 악행을 저질러야 할 유혹을 받을 때 돈이란 것이 멸절될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로 치우치려는 마음을 꾸짖어야 한다. 뇌물을 받거나 손대는 것을 뿌리치는 것이 정직한 사람의 특징이다(사 33:15).

둘째, 베드로는 시몬에게 그가 계속 이런 마음을 지니면 완전히 멸망하고 말 위험에 직면하여 있음을 경고한다. 

"너의 돈은 멸절되고 너는 그 돈을 잃게 될 것이다. 또한 네가 산 모든 것도 돈과 함께 멸하리라.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고전 6:13) 또 돈은 상품을 위하여 있고 상품은 돈을 위하여 있는 것이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그것들은 모두 소비되어 사라질 것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쁜 것은 네가 은과 함께 망할 것이며 은도 너와 함께 망하리라는 사실이다. 돈이 너의 멸망을 더욱 재촉하리라. 그리고 너의 망할 영혼에 더욱 무거운 짐이 되리라. 네가 가진 돈은 보다 좋은 일에 쓰여져야 했었도다(눅 16:9). 그것은 구제를 위하여 사도들의 발 아래 놓여야 했고 그렇게 수납되는 것이 마땅했도다. 그러나 뇌물로써 주어지므로 거절하는 것이니 자녀여 이것을 기억할지어다."

② 시몬은 그가 과소평가한 영적 축복을 소유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21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라. 네가 성령의 은사에는 아무 상관이 없도다. 너는 성령을 이해치 못하는도다. 너는 성령으로부터 추방되었고 네가 스스로 문에 빗장을 걸어 놓았도다. 너 자신이 성령을 받지 못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을 줄 능력도 없으리라.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라. 만일 네가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사고 파는 것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복음이 말하는 저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에 참여 못하게 될 것이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첫째,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거나"(요 13:8) "하늘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둘째,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른 영혼의 인도로 생기도 얻지 못하고 바른 규칙에 의해 다스림을 받지도 바른 목표를 지향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시몬에게 바른 충고를 한다(27절). 

그는 시몬으로 인하여 격노하였지만 그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경우가 매우 사악하긴 하였지만 그가 아직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이스라엘에 소망이 있느니라"는 말씀과 같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베드로가 시몬에게 충고한 내용. 시몬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 있었다.

첫째, 그는 회개해야만 한다. 

즉 그의 잘못을 보고 잘못을 행하지 말아야 하며 그의 마음과 생활이 변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가 행한 것에 대하여 겸손히 부끄럽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는 특별한 회개를 해야 하였다.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민망히 여기라"고 부탁한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실수라든가 잘못된 열성 때문이라고 변명해서는 아니 된다. 다만 자신의 행위를 추악한 것으로 인정하고 그의 악이 자신의 부패의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말이나 행동으로 실수를 저질렀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한 회개하고 다시는 잘못을 말하지도 또 행하지도 말아야 한다.

둘째, 그는 하나님께 간구해야만 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개하게 하시며 또 회개로 인하여 용서해 주실 것을 구해야 한다. 참회는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칭 큰 자라고 생각하는 시몬 마구스는 사도들과의 사귐을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사도들과 사귀는 것이 명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다만 이 사귐이 가능한 것은 다른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회개와 기도를 통해서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② 베드로가 시몬에게 회개하도록 격려함. 

"혹 마음에 품은 것을" 너의 생각이 이같이 악한 것이지만 "사하여 주시리라"고 격려한다. 다음 사실을기억하자.

첫째, 마음으로 수 많은 악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즉 거짓된 개념, 타락된 정열, 사악한 계획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회개되어야 하며 다시는 행치 말아야 한다.

둘째, 마음에 품은 생각이 비록 악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으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본문에서 "혹시"라는 의구성을 제기한 것은 그의 회개의 진실성에 대한 것이지 그가 참되게 회개하기만 한다면 용서받는다는 사실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진실로 네 마음에 품은 생각이 용서받을 수도 있으리라"는 뜻으로 읽혀져야 한다. 아니면 이 말씀은 복음의 약속을 통하여서는 그가 참으로 회개하면 용서받는 일은 의심의 여지도 없는 것이지만 그의 너무나도 엄청난 죄 때문에 용서받는 것이 의문스러울 수도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라"고 한 말씀과 같다(애 3:29).

③ 시몬이 사도들에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간구함. 시몬은 제안한 것이 쌍수로 환영을 받을 줄 알았는데 뜻밖의 배척을 받게 되자 베드로의 말을 듣고 놀라고 당황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부르짖는다.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겠다.

첫째, 잘된 점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를 향한 책망에 감화를 받았고 그의 성격을 지적하자 공포를 느꼈다. 베드로의 책망은 아무리 지독한 마음도 두렵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그는 그를 위하여 사도들이 기도해 줄 것을 애걸하였다. 그는 하늘의 사랑을 받는 그들에게 그도 은총을 입을 수 있다고 믿었다.

둘째, 그러나 아직도 결여된 것이 있었다. 

그는 사도들에게 그를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스스로 기도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람으로써 그는 그의 타락이 억제되기를 바란 것보다 스스로 마땅히 책임져야할 심판을 받지 않게 되는 데 관심이 있었음을 드러냈다. 그는 그의 마음이 신의 은총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되기를 바랐어야 했다. 

바로가 모세에게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해 주기를 바랐듯이 그는 눈 앞의 죽음만이 제거되기를 바랐지 죄 즉 마음의 강퍅함을 버리려 하지는 않았다(출 8:8; 10:17). 

어떤 이들은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와 같이 시몬에게 특별한 심판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심판이 그가 복종하면서 사도들의 중제를 구하였으므로 보류된 것이라고 본다. 또는 전후 관계를 미루어 보아 그는 하나님의 진노의 징조가 이미 그에게 임하였음을 알았고 그러기에 그는 무서워하며 사유함 받기를 바랐던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본문에는 사도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기사가 있다. 아직 그들이 흩어질 시기가 아니었다. 

그들이 여기에 온 것은 사도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특수 임무 때문이었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들도 다른 모든 복음의 사역자들과 공동 보조를 취해야 했다.

1. 거기 즉 사마리아 성에서 그들은 설교를 하였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였다." 즉 복음의 진리를 엄숙히 입증하였고 다른 사역자들이 전한 것을 확고히 하였다. 그들은 사도였지만 어떤 새로운 것을 전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받은 대로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였다.

2. 그들은 돌아오면서 순회 전도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사마리아인들의 촌락을 지나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거기에는 도시에서처럼 그 숫자나 외관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그들의 영혼들도 귀중한 것이었으므로 사도들은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촌락의 주민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래야 하겠다(사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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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빌립과 에디오피아인(행 8:26-40)

분문에는 한 에디오피아 내시가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내시에 의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그가 살던 지방으로 전파되었으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로써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열국들 가운데 처음으로 신앙을 받아들임)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시 69:31).

Ⅰ. 전도자 빌립은 지시받은 길로 가다가 거기서 이 에디오피아인을 만났다(26절). 

사마리아 교회가 개척되고 또 그들을 위하여 교역자들을 임명하자 사도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빌립은 새로운 전도의 근거지가 마련되어 일하게 될 때까지 그 지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1. 천사가 나타나 그에게 갈 길을 지시해 주었다(밤의 환상이나 꿈을 통하여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어나 남으로 내려가라"는 지시였다. 

천사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5장 19절에서와 같이 주의 종들에게 조언이나 격려를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자주 등용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 같은 안내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틀림 없이 주의 종들이 떠나거나 정착해야 하는 문제에 관한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로 그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이 길 또는 저 길을 지시하시며 그 길에서 그는 그들을 지켜 주신다. "그가 불꽃 같은 눈으로 그들을 지켜 주실 것이다." 

빌립은 "남으로 향하여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즉 유대 사막 또는 광야를 지나가야만 하였다. 그는 사막, 즉 사막을 통과하는 공로(共路)로 지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아니하였다. 거기서 전도할 어떠한 필요성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로 보냄을 받았다. 

마태복음 22장 9절의 주님의 비유에서 "사거리 길로 가라"는 말씀은 이방인을 부르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에게 뜻밖의 곳으로 가서 전도할 기회의 문을 여신다.

2. 지시에 대한 빌립의 복종(27절), 

그는 아무런 반대도 없이 "일어나 갔다." 그는 "거기 가서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됩니까?"라든가, 또는 "거기서 주의 말씀을 전할 만한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라고 묻지도 않았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또는 누구를 만날지도 모르고 나아갔다.

Ⅱ. 내시를 소개함(27절). 

즉 그가 누구며 직업이 무엇이며 그에게 수여된 높은 지위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준다. 그는 외국인으로 "에디오피아 사람"이었다. 

에디오피아는 두 곳에 있다. 하나는 아라비아에 있는 것으로 가나안 동편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본문의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에 있는 에디오피아로써 애굽을 지나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먼 데 있는 자들도 가까운 것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약속에 의하여 "땅 끝이 큰 구원을 보게 되리라" 하였기 때문이다. 

에디오피아인들은 민족들 중에서 가장 천박하고 경멸받는 백성으로 여겨졌었다. 자연이 그들을 저주하기나 한 듯 그들은 피부가 검었다. 그러나 복음이 그들에게도 전파되었다. 신의 은총은 "그들이 검어서 태양이 그들을 구어낸 것 같았지만" 그들도 귀하게 여기신다.

2. 그는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그의 나라에서는 권세있는 자였다. 

"내시"라 함은 직책을 의미하는 것이요, 신체적인 결함을 지녔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왕궁의 수상이나 또는 재산 관리인이었다. 그는 그의 직책의 위엄으로 보거나 그의 개인적 특징으로 볼 때 존경을 받을 만하였고 그는 "큰 권세가 있는" 자였다. 그리고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휘하에서 권세를 누렸다. 이 간다게는 "남방의 여왕"이라고 불리운 시바 여왕의 계승자인 것 같다. 에디오피아는 여왕이 통치를 해온 것 같으며 바로가 애굽 왕들의 공통적인 칭호였던 것같이 간다게도 여왕을 호칭하는 일반적인 이름인 것 같다. 그는 "그녀의 모든 국고를 맡은 자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간다게가 그를 대단히 신임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자가 권세있다 존귀하다 불리우지 아니하며" 적은 사람뿐이라 하였는데 그는 이 적은 무리에 속한 사람이었다.

3. 그는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이었다. 

그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온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가 할례를 받고 절기에도 참석하는 정식 개종자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들은 그가 이방인으로 머물면서 개종한 자로서 다만 우상만을 배격하며 가끔 이방인들이 예배하는 들에서(예루살렘 성전의 이방인들 전용 예배처를 말함:역자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베드로가 자기를 가리켜 말한 대로 그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시바 여왕 시대 이래로 이 나라에는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하여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내시의 조상이 시바 여왕의 수행원 중 한 사람이었고 그가 그의 후손에게 예루살렘에서 배운 것을 물려 준 것같이 보인다.

Ⅲ. 빌립과 내시는 함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빌립은 그가 사막에 보냄을 받은 의미를 알았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그는 한 병거를 만났는데 그 병거가 회당처럼 말씀을 가르치는 곳이 되었고 또 말을 들을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람의 개종은 자싯은 몰랐을지라도 전 민족이 회개하는 결과를 나을 수 있었던 것이다.

1.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고향 가자를 향해 여행하는 이 나그네와 동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 나그네는 그의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가 계획하신 큰 사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그는 몰랐다. 

그는 예루살렘에 거하였었다. 거기서 사도들이 기독교 신앙을 전하였고 많은 무리들이 그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신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알아보고자 하지도 않았다. 이 신앙을 무시하고 등을 돌린 것같이 보인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그를 내버려두시지 않고 광야에서 그를 사로잡아 정복하고 만다. 이같이 하나님은 가끔 그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발견되신다"(사 65:1). 

빌립이 이 명령을 받은 것은 전처럼 천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귀에 속삭이시는 성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29절).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탄 사람이 너를 알아 보도록 가까이 가라"고 성령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노상에서 우연히 만나 길동무가 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의인의 입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먹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나그네들에게 너무 수줍음으로 아무런 감화도 줄 수 없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도 영혼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2. 빌립은 그가 병거에 앉아서 성서를 읽는 것을 발견하였다.(28절).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들었다." 

이 내시는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유익을 위하여 소리내어 읽었다(30절). 이와 같이 독서를 하므로 그는 여행의 지루함을 잊을 뿐 아니라 시간도 귀하게 사용하였다. 

그는 철학이나 역사나 정치학이나 그보다 못한 애정 소설이나 극본을 읽은 것이 아니라 성서를 읽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서"였다. 이사야서는 그리스도께서도 읽으셨으며(눅 4:17), 본문서는 내시도 읽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한 암시가 된다. 

아마도 이 내시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랍비들이 읽고 해석하는 것을 들은 성경 부분을 재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들은 것을 다시 기억해 보고자 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해 두자.

(1) 우리 각자가 성서에 숙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다.

(2) 지위가 있는 사마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경건의 연습에 있어 더욱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본을 보이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며 그러므로인생을 보다 의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3) 사업하는 사람들은 거룩한 임무를 위하여 시간을 쓰는 것이 지혜롭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귀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스러기 시간들을 모은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절약이 되는 것이다. 일분도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매 순간들을 유익한 것으로 채운다는 것은 귀한 것이다.

(4) 우리가 공중 예배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예배에서 타오르게 된 좋은 정열을 유지하고 거기서 받은 좋은 인상을 보존하기 위하여 사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대상 29:18).

(5) 성서를 부지런하게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식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찾는 자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3. 빌립이 그에게 질문한다. 

"읽는 것을 깨닫느뇨?" 

이렇게 물은 것은 비난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도우려는 계획에서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읽고 들은 것 특히 우리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읽고 들은 것은 이해하려고 깊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말씀을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고 읽는지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마 13:51)라고 예수님은 물으셨다. 여러분은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가 성서를 어는 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성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전 14:16, 17).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그는 구원에 필요한 것은 쉽게 이해하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4. 이해하는데 도움의 필요성을 느꼈던 내시는 빌립이 동행해 줄 것을 요청한다(31절).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 청컨대 와서 내 곁에 앉으시요"라고 말한다.

(1) 내시는 자신과 또 자기의 능력과 업적을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는 그가 읽은 것을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 것을 전혀 모독으로 여기지 않았다. 

빌립이 낯선 사람이요, 또 도보로 여행하였고 천한 사람처럼 보였지만(이와 같은 내시는 드물 것이다. 예사 사람이라면 빌립을 건방진 녀석이라고 부르고 네 볼 일이나 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하였는가?) 

그는 친절하게 그 질문을 받아들이고 정중하게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라고 답변하였다. 그가 지식있는 사람이었고 그러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성서의 의미를 잘 알았으리라고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정중하게 스스로의 부족을 고백하였다. 

배우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르침을 받아야할 필요성을 깨달을 줄 알아야 한다. 예언자도 먼저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다음에야 천사가 그에게 말씀하는 것이다(슥 4:13).

(2) 그는 가르침을 받기를 갈망하는 사람처럼 말한다. 

그는 그를 도와 줄 사람이 있기를 원했다. 그는 성서 안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성서를 읽었다. 

성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렇다고 성서를 도외시 말자. 

성서에는 쉬운 내용이 있으므로 연구해야 하고 이것은 점차로 성서의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게 되는 바람직한 길이다. 

왜냐하면 지식과 은총은 점진적으로 증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는 빌립을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고 청하였다. 

그는 예후가 만군의 여호와에 대한 그의 열심을 과시하려고 여호나답에게 병거에 올라타라고 한 것같이 하지 아니하였다(왕하 10:16). 

오히려 자기는 무지하니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그는 빌립이 그에게 읽는 성서의 내용을 바르게 해석해 줄 수 있다면 그를 마차에 태운 것을 명예롭게 생각할 사람이었다. 

우리가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를 지도할 사람이 필수적인 것을 기억하자. 

좋은 서적들도 있고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는 데는 은혜의 성령이 최고이다.

Ⅳ. 내시가 다시 읽은 성서의 부분과 빌립의 지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구약 성서에 정통한 사람들의 해석을 바르게 파악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그들이 본문의 내시처럼 구약 성서를 실제로 연구하려 할 때 이는 더욱 필요하다.

1. 내시가 읽은 곳은 이사야 53장이었다. 

본문에 7절 하반절과 8절 두 절이 인용되고 있다(32, 33절). 이 구절들은 70인 역에서 인용된 것으로 히브리 원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로시우스(Grotius)는 이렇게 생각한다. 즉 내시는 히브리 성경을 읽었지만 누가가 자신이 집필하던 언어로 쉽게 읽으려고 70인 역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내시가 에디오피아에 살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그들의 종교와 언어에 대하여 배웠으리라고 상상한다. (허나 70인 역이 애굽에서 만들어졌고 또 애굽은 에디오피아의 인접 국가로서 에디오피아와 예루살렘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나는 이 내시가 70인 역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사야 20장 4절을 보면 두 국가 즉 애굽과 에디오피아 사이에는 국교 관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 원문과 큰 차이가 나는 곳은 다음의 구절이다. 

히브리 본문에는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왔으니"라고 한 내용인데(이 말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즉 극악한 폭력을 당하며 급속히 이 재판석에서 다른 재판석으로 옮기워졌다. 또는 "폭력과 심문을 당하며 끌려 다녔다." 즉 백성들의 분노에 휩싸여 그들의 계속적인 소동 속에서 빌라도의 심판을 받고 이끌려 갔다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기록되고 있다. 

즉 그가 그들의 눈에는 천하고 보잘 것 없게 보였으므로 그에게 일반 재판도 필요 없다고 부정하였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혜택인 법의 형평의 원칙에 반하여 그들은 그를 무죄하다고 선포하고 사형을 언도하였다. 

그에게는 아무런 범죄의 증거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겸손하였다. 

그렇게 하여 그는 "낮을 때에(즉 겸손한 모습)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다." 이렇게 볼 때 그 뜻은 히브리 원문과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구절들은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이었다.

(1) 그가 죽음을 당하고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 가리라"는 것이다. 

즉 그의 생명이 사람들 가운데서 취하여져 땅에서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별 이유도 없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거침 돌이 되고 있다. 

그의 죽음은 바로 그들 민족의 예언자들에 의하여 명백히 예언되었고 또 이것은 그의 사업의 성취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후로 십자가의 처형은 중지되었다.

(2) 그가 부당하게 죽음을 당하리라는 것과 폭력을 당하여 살해되고 그의 생명을 서둘러서 빼앗으려 할 것이며 "바른 재판도 받지 못하리란 것이다." 

과연 그는 정당한 재판을 받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짤림을 당해야 하였다."

(3) 그는 인내로써 죽음을 맞았다. 

즉 그는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았다." 또한 그는 도살꾼 앞에 있는 어린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주 예수처럼 고통을 당하면서도 참으신 예는 결코 없었다. 그는 고발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여도 잠잠하였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다.

(4) 그렇지만 그는 영원히 살 것이며 그 연수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란 말씀을 나는 위와 같이 이해한다. 

히브리 말에서 한 세대는 "한 생명이 존속하고 있는 기간"을 말한다(전 1:4). 즉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을 당했어도" 그가 일어나 오래 살게 될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사야 53장 10절에 "그의 날은 길 것이며"라고 기록된 것 같이 하늘에서 그는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란 뜻이다.

2. 내시는 "선지가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34절)라고 묻는다. 

그는 빌립이 이 말씀의 단어, 문귀, 숙어에 대하여 비평해 줄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만 예언의 범위와 목적을 알려 줌으로 말씀의 열쇠를 수유하기를 바랐고, 이 열쇠를 사용함으로 이것 저것을 서로 비교해서 이 까다로운 구절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예언은 본문의 경우처럼 그 예언이 성취되어서 설명될 수 있기까지는 대체로 애매할 경우가 많다. 

그의 질문은 중요하고 매우 의미있는 것이었다. 즉 이러한 내용의 질문이다. 

"이 예언자가 이것을 말한 것은 자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다른 예언자들처럼 오해를 당할 것을 예견하고 한 말인가. 아니면 자기 시대 또는 앞으로 올 시대의 어떤 다른 사람을 가리킨 말인가?" 

현대의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유대의 옛 학자들은 이 말을 메시야에 대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아마도 내시는 이 사실을 안 것 같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나마 스스로 이 말씀을 이해한 것 같다. 

다만 여기서 이렇게 질문한 것은 빌립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었었다. 왜냐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우려면 학식있는 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제사장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말 2:3)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사람들은 복음서를 통해 구하되 특히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입을 통하여서 구약이란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훌륭한 교훈을 받으려면 질문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3. 빌립은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하여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에 관한" 복음의 큰 비밀을 전하였다. 

"이 글에서 시작하여" 이 말씀을 토대로(그리스도께서 눅 4:21 에서 같은 예언을 다른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하신 것같이) "그에게 예수를 가르쳤다"(35절). 

우리가 빌립의 설교를 이같이 해석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 

이 설교는 우리가 전에 다루었던 베드로의 설교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 전도자의 사명은 예수를 가르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선행을 권장하는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빌립은 이 때에 그에게 주어진 방언의 은사를 사용하여 이 에디오피아인에게 그 나라 말로써 그리스도를 가르쳤는지도 모른다.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일들을 좋은 취지를 가지고 전하는 아름다운 사례를 본다. 

복음은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규례를 따라 전해야 한다(신 6:7).

Ⅴ. 내시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받음(36-38절). 

아마 내시는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들었을 것이며 따라서 빌립의 전도가 그에게 생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만일 그가 이미 이 진리를 알고 있었다면 무슨 힘으로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에게 쉽게 정복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빌립의 설교로 통하여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셨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점이 비결이었다. 이제 다음의 사실들을 생각하여 보자.

1. 내시가 자기에게 세례 줄 것을 정중하게 제의함(36절). 

"길을 가며" 그리스도에 관하여 토론도 하고 내시는 많은 것을 묻고 또 빌립은 이 물음에 만족한 답변을 하던 중 그들이 "물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것이 우물이었든지 또는 강이나 연못이었든지 간에 그물을 보고 내시는 세례받은 것을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는 우연한 계기를 통하여서 그들의 백성들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알게 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그들은 생각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시는 빌립이 짧은 시간 동안 그와 머물게 되리라는 것도 알지 못하였고 빌립이 어디로 갈 것인가도 묻지 않았었다. 

그는 빌립이 다음의 마을까지라도 같이 갈 수 있을까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빌립이 합당하게 여긴다면 지금과 같이 적절한 때에 세계를 받는 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했다. 

"보라, 물이 있으니 그리고 우리가 언제 다시 물을 보게 될 지 알 수 없으니 지금 내가 세려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내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인정받지 못할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라고 그는 말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생각하여 보자.

(1) 그는 세례받을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여기 물이 있으니 내가 여기서 세례를 받아야겠소"라고 독단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만약 빌립이 반대할 이유라도 있다면 기꺼이 그는 사양하려고 하였다. 만약 빌립이 그가 세례받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또는 세례를 속히 집행할 수 없는 제도적인 관례가 있다면 그는 세례받는 것을 고집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열성적인 열심도 질서와 규칙에는 복종해야만 한다.

(2) 그러나 그는 세례받기를 바란다. 

빌립이 반대의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 한 그는 지금 세례받기를 바랐고 그것을 연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엄숙히 봉헌하거나 헌신하고자 할 때 즉시 하고 지체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현재가 가장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시 119:60). 

이미 세례가 상징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받는 사람들은 외적인 세례 행위를 수납할 것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이 내시는 지금 그의 안에서 역사하는 훌륭한 감화가 식거나 감퇴될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그의 영혼이 세례를 통하여 주님과 결속되기를 바라서 이 문제 제기한 것이다.

2. 빌립이 그가 세례의 특권을 누릴 수 있음을 선언함(37절).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한글 개역에는 37절이 생략되고 난외주에 수록되고 있음. 그러나 KJV에는 정식으로 수록되고 있음. 역자 주). 다시 말하노니 내가 예수에 관하여 너에게 가르친 이 교리를 네가 믿는다면 또 하나님께서 이 예수에 관하여 기록하신 말씀을 네가 받아들인다면 너에게 인을 치는 것이 가하리라"고 말한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하여 믿어야만 한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지 머리만으로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복음 진리를 이해하고 승인할 뿐 아니라 마음으로 복음이 전하는 뜻을 수락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이로써 네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것이요 또 네가 그렇게 하고자 하는 증거를 제시한다면 세례로써 교회와 연합하는 것이 가하니라"고 말한다.

3. 세례를 받기 위하여 내시가 고백한 신앙. 그 고백은 짤막하였지만 그것은 포괄적이고 목적에 부합한 것으로 만족한 것이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노라" (한글 개역 성경의 난외주를 참조:역자 주). 

이제 그는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 앞에 있었고 그러므로 그가 할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었다.

(1)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약속된 참 메시야이시고 "기름부음 받은 자"임을 믿는다.

(2) 그는 그리스도가 예수 즉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속할 단 한 분의 "구세주"이심을 믿는다.

(3) 또한 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들은 아버지와 동등한 본성을 가지므로 그도 신의 본성을 가졌음을 믿는다. 

또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그가 "모든 것의 상속자"되심을 믿는다. 이것이 기독교의 주된 특수한 교리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전심으로 이 사실을 믿고 고백하면 그들과 그들의 후손은 세례받을 수 있는 것이다.

4. 내시가 세례를 받음. 

내시는 마부에게 마차를 세우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이곳은 그가 여행하던 중 만났던 휴식처 중에 제일 훌륭한 것이었다. 

그들은 여행 중에 있었기 때문에 물을 떠올 편리한 그릇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둘 다 물에 내려갔다." 

그들은 벌거벗고 물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관례에 따라서 맨발로 내려갔고 발목 또는 정갱이 절반에 이를 때까지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빌립은 그에게 물을 뿌렸다. 이 물을 뿌린 것은 아마 이 내시가 방금 읽은 예언에 준하여 한 것 같다. 

빌립은 그를 발견하기 전부터 내시는 이사야서를 읽었고 그가 읽은 말씀은 내시에게 적절히 통하는 말씀이었다(사 52:15). 즉 이런 내용이다. 

"그가 열방을 흩을 것이며 열왕과" 위인들이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즉 그에게 복종하며 잠잠히 따르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즉 내시가 세례를 받게 된 것은 방금 그가 읽은 사 52:15 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저자는 중간에 사 52:15 에 없는 위인들이란 용어를 삽입한다. 왜냐하면 이 내시를 위인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다. 역자주).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찾게 된다. 

즉 빌립은 시몬 마구스에게 속아 그에게 세례를 허용하였고 그 결과 시몬은 참 개종자의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하였지만 그렇다고 이 내시가 즉시 신앙 고백을 하였을 때 세례 주기를 주저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간단히 신앙을 점검하였다. 만일 어떤 위선자들이 교회에 들어와 그들이 후에 우리에게 슬픔을 주고 말씀을 일으킨다 해도 그리스도께서 허용하신 것 이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해서는 안 된다. 그들 자신이 변절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요 우리는 그와 관계없는 것이다.

Ⅵ. 빌립과 내시는 즉시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 내용의 다른 부분들처럼 놀라운 것이었다. 

우리는 이 내시가 빌립과 함께 머물든가 그와 함께 빌립을 자기 나라로 데리고 가야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이쪽 지방에는 많은 주의 사역자들이 있으므로 빌립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기 때문이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가자 마자" 내시가 다시 병거에 오르기도 전에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다"(39절). 

그러므로 흔히 세례가 끝난 후에 하듯이 내시에게 교훈을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어쩌면 빌립은 이렇게 교훈하려고 작정했고 내시는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그의 교훈을 대신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일은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으며 따라서 빌립은 내시가 보는 앞에서 공중으로 들리워 시야 밖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빌립에게 일어난 이 기적은 그의 가르침을 확고히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빌립 자신이 기적을 행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빌립이 흔연히 길을 가므로 내시가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이제 내시는 그의 지도자를 잃게 되자 다시 성경 읽는 일로 돌아갔다. 이제 우리는 이 내시가 어떻게 행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 보자.

1. "그는 기뻐하며 갈 길을 갔다." 

즉 그는 계속 여행을 하였다. 고향에서 그가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는 서둘러서 돌아가야만 하였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수도승이 되거나 은둔자가 되므로 거룩하여지거나 온전하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그들이 해야할 이 세상의 문제들을 처리하는 것을 옳게 여긴다. 그러나 그는 기뻐하면서 갔다. 

그의 신앙에 있어서 뜻밖의 변화가 변혁 또는 신앙의 진보를 생각할 때 그는 기뻤고 또 그의 신앙이 일층 진보하였다는 생각이 더욱 넘치는 확신을 주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충만하여서 기쁨으로 갔다." 

그의 일생을 통하여 이렇게 기뻤던 적은 없으리라.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뻐하였다.

(1)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기뻤다.

(2) 또한 이 좋은 소식을 그의 고향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들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으로 그들도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을 바라고 기뻐하였다. 

이제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도자가 되었던 것이다. 

어떤 성서 사본에는 이렇게도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물에서 나올 때 성령이 내시에게 임하고" (사도들의 안수하는 매개 의식도 없이 이루어졌다) "주의 사자가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2. 빌립이 파송을 받은 곳(40절). 빌립은 아소도 또는 아스돗이라고 하는 이전의 블레셋의 도시에 나타났다. 

천사 또는 주의 성령이 거기에 그를 데려다 놓았다. 

이곳은 내시가 그리로 가고 있는 가자로터 약 삼십 마일 떨어진 곳이요, 라이트푸트 박사(Dr. Lightfoot)는 내시가 이곳에서 배를 타고 해로를 이용하여 그의 고향에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빌립도 그가 어느 곳에 있든지 결코 게으르지 않았다. 그는 가이사랴에 이를 때까지 "여러 성을 지니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그 후 가이사랴에 거하였다. 자세히는 나타나지 않으나 그곳은 그 후 그의 주된 저주지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가이사랴에는 그의 집이 있기 때문이다(21:8). 

그리스도를 위하여 신실하게 순회 전도자로서 일하였던 그는 드디어 정착할 곳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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