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10.이방인중첫성령세례자고넬료의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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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0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다..**고넬료에게 Q경외함 알게 한 그 누가 이미 있었다!!.할렐루야**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pm3 :기도시간..am9-12MD-pm3)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Q보좌앞 생명책에 기록되었음!..복음전도자로)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베드로의 경호 위해)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세인들의 낮잠시간..비록 덥지만 홀로 있어 기도하려..12MD)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기도중 환상)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Q의 성품, 경륜-섭리따라 각사람의 성품과 관점의 패러다임을 깨뜨리심...다 내려놓고 주님 따르라...땅끝도 Q나라 영역임.)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Q이 받으심!)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하다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성정을 가진...행14:15]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변화산 기억 떠오르게 하심)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만유=모든 사람...출신성분차이상태:빈부귀천한계,편견-선입관 분쇄 초월)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부활JC만남+경험+거함)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Q이 넣어주시는 말씀, JC만을, JC에 대해 말하며, HS께서 하라시는대로 행함으로써JC를 살아내라. : 고넬료도 JC의 구속-죄사유함의 은총이 필요함..기대하라!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다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듣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오순절날처럼 하늘로부터 직접 부어주심의 성령세례..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근원적, 본질적-경륜적 HS그 자체...방언 그자체는 HS받음의 증거가 아님에 유의하라!..사마리아신자, 다소의 사울, 에베소 신자들에게는 [안수]통해 임했음..한편, 유대신자 3천-5천-이디오피아내시-안디옥성도들에게는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외적 큰능력없이 세례/성령세례 주어졌음 : 조건은 오직 승천하사 보좌에 ㄴ앉으신 JC바로 그분의 영광을 사모함!! ) ..경륜= Q의 [가정사에 대한] 주권적 뜻 이룸 위한 시대적 경영관리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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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사도행전에 새롭고 뚜렷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과 그밖에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발길이 닿았던 곳으로써 거기서 그들은 유대인이나 또는 할례를 받고 유대 종교의 귀의한 헬라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방인에 대한 전도가 시작된다. 

본문에서 그들에 대한 신앙의 문이 열린다. 사도 베드로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 기독교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이방인으로 첫 번 입교한 사람이었고 그와 함께 그의 가족과 친구들도 입교가 허용되었다. 그 내용 구분은 다음과 같다.

Ⅰ. 고넬료가 환상을 통하여 베드로를 청하여 오라는 지시를 받고 그대로 함(1-8).

Ⅱ. 베드로가 환상을 통하여 고넬료에게 가라는 지시를 받음. 그가 이방인이었지만 주저치 말고 가라는 것이었고 그대로 순종하여 감(9-23).

Ⅲ. 베드로와 고넬료가 가이사랴에서 기쁨으로 만남(24-33).

Ⅳ.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서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전한 설교(34-43).

Ⅴ. 먼저 성령으로, 다음에는 물로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이 세례를 받음(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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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다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고넬료에게 일어난 사건(행 10:1-8)

성도들과 같은 시민들과 하나님의 권속들에 대하여는 나그네요, 외국인 같았던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개종되었다는 것은 사도들에게까지 신비로운 일이었다. 

이같이 놀라운 일이므로(엡 3:3, 6) 이 위대한 사업이 시작된 환경을 관심으로 가지고 세심히 살펴 보도록 하자. 

"그리스도가 이방인에게 전파되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신 것은" 큰 경건의 비밀임이 틀림없다(딤전 3:16). 

이방인들 가운데 몇 명은 이전에 유대인의 회당에 출입하였으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거기서 복음이 전하여지는 것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의도적으로 전하여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 아무도 세례받은 사람이 없었다. 

고넬료는 계획적으로 전도되고 복음을 믿은 첫 사람이었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Ⅰ. 고넬료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그가 누구며 직업은 무엇이고 또 이방인으로서 처음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수록되고 있다. 

그는 지체(=품위)있는 사람인 동시에 선한 사람이었는데, 이 두 성품이 함께 만나 조화를 이루게 되면 서로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이 두 가지 특징이 한 사람에게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인데 고넬료는 그러한 인물이었다. 

선함은 위대한 것을 참 가치있는 것이 되게 해 주며 위대함을 갖추면 보다 많은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1. 고넬료는 군대의 장교였다(1절). 

그는 당시 가이사랴 빌립보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 가이사랴 빌립보는 대 헤롯(헤롯1세)때에 개축하여 요새화한 강한 성으로 아구스도 가이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가이사랴라고 명명하였고, 그 영토를 다스리던 빌립이 더 단장하였는데, 지중해 해안가의 가이사랴와 구분하기 위해 빌립보란 이름을 덧붙였다. 

이 성은 메롬호수(현재 훌라호수)와 그 북서쪽에 위치한 헬몬산으로부터 내려오는 풍부한 시내로 연결되는 그 중간에 위치해 있었고, 헬몬산 서북서쪽에 다마스커스가 위치하여 있으므로 로마나 로마의 다른 식민지들과의 교통이 편리하였기에, 로마 총독이 주로 여기에 거하였으며(23:23, 24; 25:6) 로마 보병대 아니면 로마군단이 주둔하였는데 아마 총독의 경호 목적으로 보인다. 

본문에서는 "이달리야대"라 그 명칭이 불리우고 있는 바, 그들이 순수한 로마인의 혈통을 지녔음을 뜻하고자 한 것으로 그들은 모두 로마 본토민 즉 이태리 사람들이었으며, 고넬료는 이 군대의 한 지휘관이었다. 

고넬료라는 이름은 로마인들 가운데 흔한 이름으로 특히 고대의 몇몇 귀족 가문 가운데서 이 이름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상당한 지위에 있는 장교로서 백부장이었다. 

우리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에게 대단히 칭찬을 받은 또 하나의 백부장이 [가버나움에 주둔하여 있었고, <주께서 친히 오시지 않더라도 말씀하시기만 해도 자기의 종이 나을것으로 믿고> 아끼는 종을 위해 주께 <사람들을 보내어서>간구했었다]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마 8:10). 

이제, 비로소 처음으로 이방인이 선택되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는 이방인 철학자도 아니였고 더구나 이방신의 제주(祭主)도 아니였다(이들은 그들의 선입견과 그들의 전통적인 예배로 완고하여져 그리스도 복음을 잘못 판단하였다). 그는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사람인 한 군인이었다. 

기독교의 가르침을 소개받고 그것이 참됨을 알게 되자, 그는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유대인들중에서 첫개종자들은 무식하고 무지한 어부들이었지만, 이방인들의 경우는 달랐다. 

복음이 그 자체로써 상당히 지식을 갖춘 사람들과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이 백부장이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짐작된다. 

군인이나 장교들은 그들의 직업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 받는 억압에서 자기들을 자유롭게 해 준다거나, 또한 군대 생활이 그들에게 폭넓게 살게 해 주며 따라서 신앙이 없는 것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보라, 여기 한 장교가 군대안에서 그의 위치가 바뀌었거나 스스로 그 직을 그만 둔 것도 아니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 이방인들이 교회에 가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처음 믿는 사람이 로마의 장교였다는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수치였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에 다름 없었다.

2. 그는 본래 착한 품성에 따라서 믿는 신앙인이었다. 

본문에 보면 그가 참으로 아름다운 성격을 지녔음을 알게 된다(2절). 

그는 우상 숭배자도 아니었고 또 거짓신들이나 부적을 섬기지도 않았으며 이방인들의 세계의 대부분이 오염된 부도덕에 빠지지도 않았다. 

불신 이방인들은 그들의 우상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1) 그는 참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신 한 하나님을 믿었고 그의 영광과 엄위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으며 죄를 져서 그의 노여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비록 군인이었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감퇴시키지는 못하였다.

(2) 그는 그의 가족과 더불어 신앙을 지켰다. 그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그는 자기 집 사람 중 아무도 우상을 숭배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자기뿐만 아니라 그의 온 가족이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겼다.

(3) 그는 많은 구제를 베푼 사람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의 신앙적인 독선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 

비록 자신이 이방인이었지만 구제할 사람이 있으면 그가 어떤 신앙을 갖고있는가를 개의치 않고 기꺼이 그들을 도와 주었다.

(4) 그는 기도를 많이 하였다. "그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는 기도하는 시간을 정하여 놓고 계속하여 기도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그 마음을 다스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구제와 경건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둘 중 어느 하나만 있어도 안 된다.

Ⅱ. 하늘로부터 천사들을 통하여 가서 베드로를 청하여 오라는 명령이 그에게 주어졌다. 

만일 그가 이러한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그를 초청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1. 이 명령이 그에게 주어진 방법과 경로. 

그는 환상을 보았고 환상 중에 천사가 그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었다. 때는 "제 구시 쯤" 즉 오후 세 시 경이었다. 

대개 하루중 이 때가 가장 분주하고 교제가 많은 시간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때가 성전에서 저녁 희생을 드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경건한 사람들은 이 때를 "기도의 시간"으로 삼았다. 

이 사실은 우리의 모든 기도는 예배에 힘을 입어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고넬료는 기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는 그 자신이 말해 주고 있다(30절). 본문의 내용은 다음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전하여 준다.

(1)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왔다는 것이다. 

그는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그토록 환하게 빛나고 그의 품행이 뛰어난 것을 보고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름 아닌 하늘의 사자인 천사였다.

(2) 그가 그의 육안으로 직접 천사를 "주목하여 보았다."는 것이다. 

즉 그의 상상의 작용을 받은 꿈속에서 본 것이 아니라 그의 눈앞에 나타난 환상 속에서 보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한 증거를 이 사건은 보여 주었다.

(3) 그가 "고넬료야"하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그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뜻하는 것이다.

(4) 이 일은 당장에는 고넬료에게 두려움을 주었다(4절). "그가 그를 바라보고 두려워하였다."

아무리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하늘에서 범상치 않은 사자가 나타날 때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지은 인간은 하늘에서 그에게 좋은 소식이 들여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넬료는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라고 부르짖는다. 

그는 잘못을 저지르고 두려워서, 진리를 알고는 그 두려움에서 놓여나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말한다. 

아니면 여호수아나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바라며 그 뜻에 따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처럼 말한다. 

여호수아는 "나의 주님께서 그의 종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나이까?"라고 말하였고 사무엘은 "말씀하소서. 주의 종의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2. 그에게 전달된 메시지의 내용.

(1) 그는 하나님께서 그가 빛 가운데 생활한 것을 열납하셨음을 확신하게 되었다(4절). 

왜냐하면 그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는 천사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도와 구제는 항상 병존해야 함을 기억하자.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구제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은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사 58:6, 7). 

우리를 성결케하는 데는 기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으로 구제해야만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깨끗하여진다(눅 11:41). 

또 우리는 구제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또 기도를 통하여 도움을 받는 자들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고넬료는 기도도 하고 구제도 하였다. 그러나 오직일절 신실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듯이 하였다. 

본문에는 그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행적은 하늘 나라 생명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 생명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쓰여진 것으로 그들이 기억된 바 되므로 복이 될 것이다. 

"네 기도가 응답받을 것이고 너의 구제가 보상될 것이라"고 천사가 말한다. 

율법 시대의 희생은 기억하신 바 되기 위하여라고 기록되어 있다(레 2:9, 16; 5:12; 6:5 을 참조하라). 

그리고 기도와 구제는 우리의 영적인 제사로서 하나님은 이를 기쁘게 받으시고 또 인정해 주신다. 

신적 계시가 유대인들에게 계시되었고 최소한 이방인들도 그것과 연관이 있었다. 

신적 계시는 빛과 자연의 법칙을 지시하고 개선해 줄 뿐만 아니라 장차 메시야가 오리라는 약속이 되었다. 

고넬료는 이 신적 계시는 믿고 복종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신앙 안에서 행하였고 신앙으로 하나님도 받아들였다. 

모세의 율법 아래서는 이방인도, 마치 그리스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처럼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하지 않았지만 신앙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였다.

(2) 그는 최근에 세상에 알려진 신의 은총을 더 알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5, 6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이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가서 그를 초청하면 그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물은 너의 질문에 답하여 마땅히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너에게 보이리라" 한다. 

본문에는 고찰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놀라운 두 가지 사실이 있다.

①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기도와 구제를 하였고 또 이 신앙을 스스로 지켰고 그의 가족도 신앙대로 살았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상달되었으나 아직 그가 더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베푸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기독교를 믿는 것이 유익하고 받을 만한 것이니 원한다면 개종하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하나님께 용납되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그가 하나님께 용납되려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가 메사야 강림에 대한 약속을 믿었었으므로 이제 그는 약속이 실현된 것을 믿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주신 약속보다 더 많이 그의 아들에 관하여 나타내셨다. 

그리고 그는 이 복음이 임하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신다. 

앞으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한 우리의 기도나 구제도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일은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를 믿는 것이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는 자는 기도와 구제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가르침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인격과 기도와 구제가 용납되려면 그들은 예수를 믿어야 하고 그만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② 이제 고넬료는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렇지만 이 천사는 그리스도 복음도 전해주지 않았고 그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전해 주지 않았다. 

다만 천사가 말한 것은 "베드로를 부르라. 그러면 그가 너에게 말해 주리라"는 것이었다. 

천사의 말이 복음에 큰 영예가 된 것과 같이, 또한 복음 사역의 중요성과 유일무이한 가치, 그 고귀함도 높여 주었다

복음 전파 사명은 가장 높은 천사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비록 보잘 것 없는 성도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려 함이다"(엡 3:8). 

그 능력의 뛰어남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며 그가 그리스도에게 높은 지각을 주셨음을 전하게 하고자 하심이었다.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히 2:5), 인자가 통치하시며 사람들을 인자의 나라의 소수의 작은 통치자-섬김이들로 삼으실 것이다. 

천사의 나타남이 고넬료에게 그러하였듯이 그들의 나타남은 "우리를 두렵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우리에게 멍에를 메우려는 것도 아니었다." 

천사도 할 수 없는 그것을 사도가 전한다는 것은 그에게 명예로운 일이었다. 

또 사도를 초청해 오도록 명령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사자가 파견되었다는 것은 더 큰 명예였다. 

신실한 사역자와 즐거이 순종하는 백성을 한데 결합시키는 일은 천사에게도 가치있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불리움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겨 응해야 한다.

Ⅲ. 고넬료가 이 명령에 즉시 복종함(7, 8절). 

그는 급히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를 청해 오게 하였다. 

이 일에 대단한 관심이 있었으므로 그가 직접 욥바로 가고 싶었겠으나, 돌봐야 할 가족과 수하인들과 친구들 등 적은 무리와 함께 지내야 했으므로 그가 직접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베드로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1. 그가 언제 사람을 보냈는가? 

"말하던 천사가 떠나자" 지체없이 그는 하늘이 보여 준 환상에 복종하였다. 

그는 천사가 말한 것을 통하여 그에게 부과된 막중한 사명이 있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사실에 대하여 빨리 듣고 싶었다. 그러므로 지체없이 이 명령을 서둘러 수행하였다. 

우리의 영혼이 관계되는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다.

2. 그가 누구를 보냈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집안 하인 둘과" 오랫 동안 그의 수종을 들어 주던 자들 중의 한 사람인 "한 경건한 군인을 보냈다." 

믿음이 깊은 백부장에게는 믿음이 깊은 병사가 함께 있었다. 적은 신앙의 본이라도 보이면 그것이 군인들에게는 큰 효과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지휘관들이 이런 신앙을 갖고 있으면 부하들에게 더 큰 감화를 주게 될 것이다. 

복음서에서 가버나움 백부장이 그러하였듯이 군대에서 장교들은 수하 병사들에게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고 이 권력은 부하들의 신앙을 증진시키는데 좋은 요소가 된다(마 8:9). 적어도 그들이 하려고만 한다면 그들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의 죄악과 불의는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백부장이 부하 몇 명을 선택하여 그를 수종들며 항상 그의 옆에 있게 한 것은(그는 아무나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신앙있는 자들을 택하였는데) 이와 같이 그가 경건한 부하들을 더 사랑하는 것을 다른 부하들에게도 보여 주어서 그들로 본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다윗의 행한 규칙 즉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이다"(시 101:6)라는 말씀을 지켜 행하였다.

3. 그가 그들에게 무슨 교훈을 하였는가? (8절) 

"그가 이 모든 일을 다 고하였다." 즉 그가 본 환상과 베드로를 칭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상세히 말해 준 것은 그들이 할 일이 바로 베드로를 모셔오는 일이었고 또 그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베드로를 통하여 영혼이 구원받아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어디 가면 베드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 말한 것이 아니고(실상 이것만 말해 주어도 족한 것이었다 - 즉 종들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몰라도 되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베드로가 무슨 사명 때문에 와야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베드로를 강청하여서라도 오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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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본 환상(행 10:9-18)

고넬료는 하늘로부터 베드로를 초청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베드로에 대한 소문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그가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베드로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다. 그것은 베드로가 초청을 받고 과연 고넬료에게 오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남의 명령을 따라 행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고넬료와 같이 예절있는 사람에게 그가 자기의 교리를 전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가르침이 고넬료의 마음을 상케 하지는 않을까 염려할지도 알 수 없었다. 

고넬료는 매우 품위가 있는 사람이었고 많은 좋은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이요, 할례를 받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하나님은 그의 율법으로 그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민족들과 사귀는 것을 금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기들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교제할 수 없었다. 설사 이방인들이 훌륭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그들과 사귀는 것은 금지되었다. 

유대인들은 이 법을 지나칠 정도로 지켰으므로 이방인들과 접촉하는 것까지 꺼려하였다. 이들과 접촉하는 일은 절기에 대한 모독이 되었다(요 18:28). 

베드로는 자기 동족들의 적대적인, 독선적인 견해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고넬료에게 오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었다. 

이제 이러한 난관이 제거되기 위하여 그에게 환상이 주어진다. 

이 환상은 아나니아에게 나타난 환상이 그를 바울에게 가게 하였듯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서 온 전언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데 의미가 있었다. 

구약 성서는 이방인들도 교회의 일원이 되리라는 것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라"고 명하셨을 때 이런 의도를 명백히 암시하셨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환상을 통하여 "이방인들도 함께 후사가 될 것을"(엡 3:6) 계시받기까지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Ⅰ. 이 환상이 나타난 상황.

1. 이 때는 고넬료가 보낸 사자가 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9절). 

그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베드로는 전혀 알지 못하였고 또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베드로와 그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만남을 준비하셨고 그들의 교통과 협상이 이루어지도록 촉진하시었다. 

모든 하나님의 목적에는 시기 즉 적절한 때가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이 미처 생각도 하지 못하던 것을 그들이 알아야 할 바로 그 순간에 그들에게 알려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2. 그 때는 정오 즈음으로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을 때였다."

(1) 베드로는 공사에 대단히 분주하였지만 기도를 많이 하였다. 특히 그는 은밀한 시간에 기도하였다.

(2) 그는 다윗의 본을 따라서 "제 육시가 되어" 기도하였다. 

그는 아침과 저녁에 기도하였을 뿐 아니라 정오에도 기도하였다. 그는 기도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아뢰었다(시 55:17). 

우리는 식사를 하지 않고 아침에서 밤까지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도 없이는 하루를 지낼 수 없다는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3) 그는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하였다. 

거기서 그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거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의 소리 또한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주의가 산만함으로 방해를 받지 않았고 또 스스로 허식을 부릴 필요도 없었다. 

지붕 위에서 그는 놀라운 하늘나라의 환상을 보았다. 

이 환상이 그가 기도하는 하나님께 경건한 찬양을 올리도록 그에게 힘을 주었고 또한 거기서 모든 성과 지방들을 바라봄으로 그가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건한 동정심을 일게 해 주었다.

(4) 그는 그가 기도한 후 복음을 전하게 하여 달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즉시 이 환상을 보았다. 

기도로써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은 신의 은총과 가호하심을 얻는 최선의 방법이다.

3. 이 때는 그가 "매우 시장하여" 식사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10절). 

그가 아침 나절에도 기도했을 것은 틀림 없는 일이지만 그가 그날 아침 식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제야 그는 식사를 하려고 했다. 

본문대로 하면 그는 끼니만 면하려고 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은 그가 먹는 것을 대단히 절제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매우 시장하였을 때도 그는 적은 양으로 만족하게 여기곤 하였고 먹는 것을 탐하지 않았다. 

이제 이 배고픔이 식사에 관한 환상을 유발시킨 동기가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도 광야에서 시장하실 때에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사단의 시험을 받으셨었다.

Ⅱ. 베드로에게 나타난 환상은 고넬료의 경우처럼 평범한 것이 아니라 더욱 상징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인상을 더욱 깊게 주고자한 것이었다.

1. 그는 "무아지경 또는 황홀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한글 개역과 다소 다름; 역자 주). 

그러나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고 깊은 명상에 잠기어 외계에 대하여는 관심도 없었고 전혀 인식할 수도 없었다. 

그의 마음은 세상을 완전히 떠나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나님과 대화하였다. 

아담이 죄 없을 때에(하와를 창조하시기 위하여) 깊은 잠이 그를 엄습하였을 때와 같았다. 

우리가 세상에서 더욱 확실히 초연할수록 우리는 더욱 하늘 나라에 가까워간다. 

베드로는 지금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우리도 이것을 분별하여 말하기를 어려울 것이다(고후 12:2, 3) (창 15:12 과 행 22:17 을 참조하라).

2. 그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고넬료에게 가라는 지시가 하늘에서 온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나님에게서 비춘 빛이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고 신적인 능력이 그에게 사명을 수여하였다. 

하늘이 열린 것은 감추어 있던 신비가 개방되는 것을 의미하였다(롬 16:25).

3. 그는 "한 그릇이 땅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생물로 가득 차 있었다." 본문에 땅에 드리웠다함은 이것이 지금 그가 있는 지붕 위에까지 내려온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땅의 짐승들뿐 아니라 날 수 있는 공중의 새들과 기는 것이 있었다. 또한 가축들이 있는가 하면 야생동물들도 있었다. 

본문에는 바다의 고기들은 없는데 이는 그것들이 특별히 부정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고기들은 어느 것이든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은 먹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이같이 가득찬 보자기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보자기는 하늘이 열리고 내려온 것으로 내려올 뿐 아니라(계 21:2) 영혼들을 실어 하늘 나라로 올리우기도 한다. 

네 귀퉁이가 매여졌다함은 세계 각처에서 참여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용납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안에 들어온 영혼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존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안에서 우리는 헬라인이나 유대인 구별없이 또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의 차별없이 모든 지방과 민족과 각색 언어를 지닌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골 3:2). 

복음의 그물은 나쁜 것이나 좋은 것이나 전에 깨끗한 것이든 부정한 것이든 모든 것을 포용한다. 이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율법이 금하기 이전에는 사람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권한이 주어졌었다. 이제 그 율법이 취소되므로 우리는 이전의 권한을 다시 돌려받게 되었다. 

이 환상을 통하여 우리들은 하등 생물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을 봄으로 이런 생물들도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이것들을 지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는 이것들을 우리에게 합당하게 지으시고 그것들에 대한 권한을 우리에게 주어 그것들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주께서는 인간이 무엇이관데 저를 영화롭게 하시는가! (시 8:4-8) 우리에게 부과하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위로가 극진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하늘에서 내려보내시어 깨닫게 하셨던 것이다.

4.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에게 보낸 많은 온갖 것들을 먹으라는 하늘에서의 음성을 들었다(13절). 

"일어나 잡아 먹으라. 정한 것, 부정한 것을 가리지 말고 네가 가진 것을 먹으라"는 말씀이었다. 

율법이 음식에 대한 차별을 규정한 것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차별을 두고자하는 의도 때문이었다. 

즉 음식을 제한함으로 그들이 이방인들과 식사를 나누는 것을 막으려는 데 있었다. 그들 앞에 놓인 음식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음식에 대한 제한을 해제하는 것은 이방인들과 대화하며 그들과 자유롭게 사귀라는 명백한 허락이었다. 

이제 유대인들도 이방인들이 먹는대로 먹을 수 있었고 따라서 그들과 같이 식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5.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하던 그대로]그의 원칙을 고수하려 하였다. 

그는 비록 시장하였지만 하늘의 음성을 듣고 동요되지 않았다(14절). 그러므로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거부한다. 

배고픔은 돌담이라도 뚫을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에게 돌담보다 더 강한 울타리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쉽게 깨뜨릴 수는 없다. 

"잡아 먹으라"는 명령이 그가 말씀 즉 율법이 확고히 서 있는지를 시험하고자 주신 명령이라고 생각한 그는 하늘에서 들린 음성이 율법을 폐기한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율법을 고수하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볼 때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는 그의 답변은 훌륭한 것이었다. 

금단의 과실을 먹으라는 유혹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는 단호한 거절에 어리둥절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이유를 제시한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순수성을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를 지킬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지금까지 큰 죄에서 우리를 지키셨다면 "모든 죄악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수단으로 이 사실을 내세워야 한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 문제를 철저히 지켰으므로 안디오커스 치하에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었던 일곱 형제는 율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극형을 당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베드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떤 금지된 음식도 대지 않았고 그의 양심이 이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았으므로 쾌히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6.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의 하늘로부터의 음성을 통하여 율법에서 이 부분이 폐기되었음을 선포하였다(15절).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율법을 만드신 바로 그분이 또 원하신다면 율법을 변경하시거나 원상태로 환원시키실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규약의 제도를 바르게 실현시키시려고 유대인들에게 이러이러한 음식은 먹지 말라고 금하시었다. 

이제 이 제도가 지속되는 동안은 그들은 마음으로 이 제도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그는 신약의 제도에 알맞게 그 체제를 해제하시고 이 문제를 개방하시었다. 그리고 전에는 우리를 부정케하던 것을 정하게 하시고 우리로 이를 이용하게 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자유 위에 견고히 서야 하며" 하나님께서 정하다 하신 것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율법이 제정한 음식의 분별에서 자유함을 받게 된 것을 크신 긍휼로써 환영해야 한다. 

이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물이 선하므로 아무 것도 금지되는 것이 없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돼지고기나 산토끼나 집토끼 또는 우리 몸을 위하여 맛있고 영양도 풍부한 음식을 사용함으로 유익되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양심이 이러한 성질의 것들에 대한 멍애에서 자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움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복음은 자연법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의무들을 제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세의 율법과 같이 죄 아닌 것을 죄라고 하지는 않는다. 

일 년 중 어느 때를 가려 어떤 종류의 고기는 먹지 말라고 금하고 신앙을 그 안에 제한시키려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깨끗게 한 것을 속되다고 부르는 사람들이며 진리에서라기 보다는 이러한 잘못된 점에서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하겠다.

7. "이런 일이 세 번 있었다"(16절). 

보자기가 조금 올라갔다가 두 번째 다시 내려오고 세 번째로 다시 그를 불러 잡아 먹으라는 말과 함께 보자기가 내려왔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 같이 하나님이 깨끗게 한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두 번, 세 번 계속 거절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처음에 그의 거절에 대한 만족한 대답이 주어졌기 때문에 거듭 거절하지 않은 것이 확실한 것 같다. 바로가 두 번 꿈을 꾸었듯이, 베드로에게 세 번 거듭 환상이 나타난 것은 "이 문제가 확실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그가 더욱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케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말씀에 대한 설교를 듣든지 성례전에 참여하든지 이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실들에 대한 지시는 자주 반복될 필요가 있다. 즉 "경계에 경계를 더 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 해야 할 필요가 있다"(사 28:10). 

이제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간다." 이 그릇이 교회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그릇에 정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이 다 포함된 것처럼 교회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다 포함된다고 믿으며 따라서 이 그릇이 올라가는 것은 믿음을 지닌 이방인들이 교회에 허입되며 또 하늘나라, 즉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늘 나라를 여시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서 "이스라엘 모든 족속 중 인친 자들과 함께 각 족속에서 온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계 7:9).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따라]하나님께서 정하게 하신 그러한 무리들이다.

Ⅲ. 하나님은 이 환상을 때맞추어 설명해 주었고 베드로도 그 취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17, 18절)

1. 그때까지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의도하셨는지 알지 못하였다(요 13:7). 지금도 "그는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였다." 

그는 이 환상이 사실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상이었다. 다만 그가 의문시한 것은 환상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자기 자신을 점차로 나타내시지 단번에 보이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는 그들로 잠시동안 의심하게 하신다. 또한 그가 그들에게 사실을 밝히시기 이전에 그들로 이 문제를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하시며 마음으로 갈등을 느끼게 하신다.

2. 그러나 그는 곧 즉시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고 물었고 그리고 그들의 심부름을 통하여 이 환상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가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도움을 받게 될지 또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아신다. 

그러나 우리는 사건에 직면하여서 그 때에 도움을 받고 나서야 그가 우리를 가르치시려는 바 그 의미를 보다 잘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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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고넬료에게 가라는 지시를 받음(행 10:19-33)

이제, 베드로와 백부장 고넬료가 만나는 기사를 보게 된다. 

바울은 이방인들 중에서 알곡을 모으는 사명이 주어졌고, 베드로는 할례받는 자의 사도가 주 역할이었지만 베드로에게도 유대인과 이방인사이의 가로막힌 분단의 빙벽을 깨고 이방인의 첫 결실을 거두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렇게 함으로 이방인들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던 믿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이는 것을 보다 원만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또한 이방인들이 할례자들의 사도요 유대적인 사도에 의하여 처음으로 교회에 가입됨으로써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참생명과 진리의 도가 아닌 외적 경건의 모습으로서의 할례를 강요하려는 자들에게 베드로가 성령의 뜻대로 제지할 수 있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15:7). 

보라, 베드로는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셨다"고 증거한다.

Ⅰ. 베드로가 고넬료의 사자를 따라갈 것을 성령이 지시하였다(19, 20절). 

이 지시는 환상에 대한 해석의 역할을 하였다. 이제 수수께끼는 풀렸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즉 그가 그 문제를 주께 마음드려 집중하면서 명상 통해 곰곰이 음미하고 있을 때 그에게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이 뜻을 또한 명상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성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베드로는 갈피를 못잡았었으나 그 다음에는 그것이 해명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할지 알지 못할 때에 눈을 들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1. 언제 그는 지시를 받았나? 성령께서 그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천사가 그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성령은 마치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하셨듯이 은밀히 그것을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셨다(삼상 9:15). 또 성령이 말함으로 그것은 그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었다. 그렇게 되어서 그는 그것이 약속에 의거한 신적인 영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요 16:13).

2. 지시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1) 하인들이 그에게 와서 말하기 전에 그는 아래층에 세 사람이 와서 그에게 말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성령을 통하여 이미 알았다(19절) (한글 개역에는 두 사람으로 되어있음. 그러나 7절에 하인 둘과 종졸 하나를 보냈다 했으니 세 사람이 타당하다 하겠다:역자 주). 

또한 그는 명상에서 깨어나 환상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그들에게 내려가야 할 것을 알았다(20절). 

물론, 하나님의 말씀과 전능하신 이가 보여 주는 환상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색에 잠겨있거나 기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며, 때로는 밖의 세계를 보고 그들이 주변을 돌아보아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아서 만나야 한다. 성서는 매일 배움을 완성시키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2) 그는 성령으로부터  "사자들과 함께 고넬료에게 가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가 이방인이지만 아무런 의심도 품지 말라고 하신다. 

그는 가되 자발적으로 주저함이 없이 가는 것이며, 율법에 저촉되지나 않나 하는 의구심도 없이 기쁘게 가고 있다. 그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지 의아히 여기지도 않았고 또 그가 가야할 곳에 대하여서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의무였다. 

"그들과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설사 네가 그 일로 인하여 [어떤] 사람들에게 견책을 당할지라도 네가 그들과 가는 것을 내가 증거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어떤 직책에 부름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질 때 이전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하여 생기는 바, 그 부르심의 직무에 대한 의심과 주저로 또는 인간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으로 혼돈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무릇, "각자가 자기의 마음 속에 확실히 거한 바, 자기가 맡은 일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Ⅱ. 그는 사자들과 그들의 메시지를 다 받아들였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내려갔다"(23절).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처럼 같이 가기를 피하거나 대화를 나누기를 거부하지도 않았으며, 고넬료가 보낸 자들이 거기 머무른 지 이미 오랜 자들처럼 그들을 자기 숙소에 유숙케 하였다. 그는 자기가 직접 그들에게 가서 그가 그들이 찾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1. 그는 호의를 가지고 그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마음을 활짝 열고 겸손하게 그는 그들의 용무가 무엇이며 그들이 그에게 말하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그러자 그들이 그들의 온 목적을 말한다(22절). "고넬료의 심부름으로 왔읍니다. 그는 로마 군대의 장교요 매우 정직한 교양인이며 그의 동료들보다 더욱 큰 신앙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느 7:2) 비록 유대인은 아니더라도 신앙을 잘 지키므로 "유대 온 족속이 칭찬을 합니다." 

그들이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은 그가 양심적이며 진실하며 구제를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으며, 베드로가 그를 만나 친구가 되는 것이 아무에게도 부끄러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데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통하여 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모세의 율법도 천사의 배려로 주어진 신탁이었다). 

그들은 계속 말한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직접 지시한 바, 그의 집으로 "베드로를 초빙하라"는 명령을 받았고(지금 그는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며 영접할 준비를 할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어떤 말씀을 하실지 알 수는 없으나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는 "당신에게 들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을 기억하자. 

베드로는 후에 이 사실을 회상하면서 보다 확신있게 이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즉 11장 14절에서 그는 자기가 전할 말씀이 "너와 네 온 집의 구원을 얻을 말씀이었음을" 확신하였다. "그에게 가십시다. 천사가 당신을 청하라고 그에게 명령했습니다. 그에게 갑시다. 그는 당신이 그에게 전해 줄 구원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라고 사자들은 말한다.

2. 그는 사자들을 친절하게 영접하였다(23절). 

"그는 그들을 불러들여 유숙하게 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비용을 들여 여관을 얻어 가서 쉬고 오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그들을 자기 숙소에 영접하였다. 

이제 그를 위하여 준비된 것은(10절) 그들도 같이 나눌 수가 있게 되었다. 그는 그가 식사를 청할 때에 그들이 어떤 동무가 될 것인가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계셨다. 기독교인들이나 주의 사역자들은 능력이 자라는 데까지 자비를 베풀어야 된다. 그리고 "나그네를 영접하는 일"도 이 자비로운 일 가운데 하나이다. 베드로는 그들이 이방인이었지만 그들을 유숙시켰다. 그리고 그는 그가 이방인들과 식사를 같이 하라는 의도를 지녔던 환상을 잘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가 그들과 즉시 식사를 같이 하였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 가운데 둘은 하인이었고 한 명은 사병이었지만 그들을 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체면을 깎이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고넬료와 그의 가족에 관하여 그들과 얘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사도들은 비록 그들이 성령의 지시를 받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다른 정보도 이용하려 했음을 보게 된다.

Ⅲ. 그는 "그들과 함께" 고넬료에게 갔고, 가서 고넬료가 그를 맞을 준비를 갖추고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1.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갈 때에 그가 지금 거하고 있는 욥바에서 몇몇 형제들도 데라고 갔다(23절). 

11장 12절을 보면 그가 그들 중 여섯 명을 데리고 갔다고 하였다. 

베드로가 그들과 동행하기를 원한 것은 그가 이방인들에게 나아간 것이 충분한 고려 끝에 이루어졌다는 것과 그가 간 것은 좋은 동기가 있었던 것을 그들이 증거해 주기를 바라서였다(11:12). 아니면 그들이 간 것은 베드로에게 수종들기를 바라서, 그럼으로써 베드로와 동행하는 명예와 행복을 얻기를 바라서였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초대교인들이 그들의 사역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한 방법이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여행할 때 교인들은 사도들과 동행하였는데, 그럼으로써 그들의 체면을 세워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수호자 역할을 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을 돌보아 주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교역자들을 도울 뿐 아니라 그들과 대화를 나눔으로 그들이 감화를 받기 바랐다. 

대화를 통하여 [그 영과 진리, 생명 나눔 통해] 동행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홀로 여행하려 함은 참으로 안 된 일이다.

2. 고넬료는 베드로를 영접할 준비를 한 후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기다렸다." 

욥바에서 가이사랴빌립보까지는 [도보로] 하루 길이 넘는 거의 이틀 길이 되는 거리였던 것같이 보인다. 

"그들이 가이사랴에 당도한 것은" 그들이 출발한 다음날 오후이었기 때문이다(24, 30)절). 

대체로 사도들은 걸어서 여행하였다. 그들이 고넬료의 집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는 다음 사실을 발견하였다.

(1) 그들이 그를 몹시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에게 힘이 되었다. "고넬료는 그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러한 손님은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만일 고넬료가 천사가 그에게 베드로에게 듣기를 명하였던 것이 얼마나 능력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해도 이를 책할 사람은 없으리라.

(2) 많은 사람이 베드로를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더욱 그의 용기를 촉진시켰다. 

베드로가 자신이 공급할 영적인 선물을 같이 나누어 주려고 몇 사람을 데리고 온 것처럼 고넬료도 자기 자족뿐 아니라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그들이 그가 베드로에게 듣기를 원했던 하늘나라의 교훈에 같이 참여하기를 바랐다. 

이것은 베드로에게는 더욱 선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되었다. 

우리는 영적인 식물을 홀로 먹기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욥 31:7).

신앙적인 행사에 우리의 친척들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참여시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을 권하는 사람은 친절로, 또 권유를 받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해야한다. 

고넬료는 그가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의 친척과 친구들도 마땅히 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그들을 와서 듣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후에 그가 변한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Ⅳ. 본항에서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첫 번째 면담을 고찰하여 보자.

1.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최대의 경의와 찬사를 표시하였다(25절).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그를 맞아" 친구처럼 그를 껴안거나 포옹하는 대신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였다." 

고넬료가 그를 친구로 포옹하였어도 베드로는 고맙게 여겼으리라. 

그를 그렇게 맞아들인데 대하여 여러 이견이 있다.[다만 예를 갖춘 최상의 존경의 인사로 마음을 표한 것이라고 봄이 맞다..지나친 억측은 삼가도록하자]

**어떤 사람은 그가 베드로를 동방의 예를 따라 왕이나 위대한 인물처럼 영접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가 베드로를 육신을 입은 신적 존재 또는 그를 메시야로서 영접한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후자의 의견은 다소 과장된 억측이라고 본다.]

그가 인간에게 경배하였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책망받을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몰랐던 [지극히 귀한 진리를 비로소] 알게 되리라 여기며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용서될 수 있는 일이요 오히려 그의 안에 있는 장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의 경배는 거룩한 것 또는 천상적인 것에 대한 그의 경의를 나타내는 것이라 봄이 타당하다. 물론, 베드로를 청해오라는 명령은 하늘로부터 천사가 전한 것이었다.

고넬료가 전후 사정을 배워 잘 알기까지는 [설령] 그가 베드로를 메시야로 여겼기에, 또는 메시야의 외적인 승계자로 여겨서, 그 자신이 인간일 뿐 아니라 죄인인 베드로를 경배하였다는 것은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경계해야 하는 바는, "온 땅이 짐승에게 경배하게 되리라"(계 13:4)는 경고를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문제가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베드로는 그에게 주어진 영예를 정중하고 경건하게 사양하였다(26절). 

그는 고넬료를 받아 "일으켰다"(그가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또 그들에게 자신이 호의를 베푸는 것이 옳은지 충분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그는 말한다. "일어서라. 나도 [그대들과 똑같이 성정을 지닌...행14:15] 사람이라. 그러니 내게 경배하지 마시오." 

하늘의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지상교회의 천사들인 사역자들도 그들에게 보내지는 적은 영예도 자신이 받지 말고 하나님에게 돌려야 한다. 

천사도 요한에게 말하기를 "삼가 내게 경배하지 말라"고 한다.(계 19:10; 22:9)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는 고넬료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였다. 

바울도 이렇게 말하였다.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였다." 얼마나 그의 태도가 주의 깊었는가(고후 12:6). 

그리스도의 참된 종들은 신처럼 숭앙받기 보다는 차라리 모욕받는 일을 택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그를 경외하면 좀 지나친 점이 있다하더라도 설교의 효율을 높이는 더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배제하였다. 

또 고넬료가 미혹당하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베드로도 [단지 성정이 똑 같은] 사람임을 알게 하려 하였던 바, 가치있는 것은 질그릇이 아니라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이며 따라서 고넬료가 귀하게 여길 것도 베드로 안에 있는 말씀이었다.

Ⅴ. 베드로와 고넬료가 서로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다른 동료들에게도 하늘의 섭리로 그들이 함께 자리를 하였음을 설명해 주었다. 

"베드로는 그와 더불어 말하며 들어갔다"(27절). 

베드로는 고넬료와 다정하게 얘기하며 들어갔다. 즉, 그는 고넬료와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하여 이방인으로서 그에 대하여 가졌던 일종의 혐오감을 벗어버리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안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대하였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같이 많은 사람이 모였으므로 신교의 기회를 폭넓게 주어진 동시에 장내 분위기도 더욱 엄숙하게 하여 주었다.

1.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에게 이들 이방인들에게 가라는 지시를 하였음을 선포한다(28, 29절). 

그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이 함께 하는 이 집회가 유대인들이 일방적으로 꺼리는 바, 유대인들에게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불법적 모임이란 것을 알았다. 

즉 베드로 자신과 같은 순수한 혈통의 유대인들에게는 다른 민족들 즉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사귀는 것은 추악한 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규정은 하나님의 율법으로 제정된 것이 아니라 유대학자들이 정한 규례였지만 그들은 이 법이 율법 못지않은 구속력을 지닌다고 믿었다. 

그들은 거리나 상점에서 또는 거래상 대화하는 것을 금하지는 않았으나 함께 식사하는 것은 금하였다. 

벌써 요셉의 시대에도 애굽인과 히브리인들은 함께 식사할 수 없었다(창 43:32). 

다니엘의 친구 세 명은 "왕의 진미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 하였다"(단 1:8). 

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신앙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간주하였으므로 그리 들어가지 아니하였다. 

이같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경멸조로 대하였던 것처럼, 이방인들도 여러 나전어시에 나타나는 것처럼 유대인들을 경멸하는 데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베드로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하시고 그의 국적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거절하지 말라" 명하셨다고 말한다. 

새로운 개종자들에게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가르친 베드로가(2:40) 이제 경건한 이방인들과 교제를 나누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이었던 형식적, 외적 요소는 폐지되었고 도덕적, 내적(영적) 요소가 더욱 중시되어야 함을 이제 깨달도록 하셨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그가 어떻게 해서 이 문제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였는지 또 그것이 신의 계시에 의한 것임을 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 문제를 경솔히 다루었다는 꾸중을 듣지 않기를 바랐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은 분리의 담을 무너뜨리셨다.

(1) 그는 그의 사명을 최선을 다하여 행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그들에게 확신시킨다. 

그가 그 동안 이방인들에게 말씀의 봉사를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을 개인적으로 혐오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허락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허가를 받았으므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 

"내가 초청을 받았을 때 내가 유대인들에게 가르쳤던 바로 그 복음을 너희에게 전할 준비를 하고 부름을 사양치 않고 왔노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베드로가 지금에 와서 인정한 바, 이 잘못은 다른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아직 수정되지 않고 있었다.

(2) 그는 그들에게 무슨 도움 주기를 원하는가 묻는다.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또는 무슨 용무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하나님의 종들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바른 목적을 제시하고 있는지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뜻을 갖고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드로를 초청해 오라고 지시한 것을 밝힌다. 

그리고 그가 그를 초청한 것은 이 지시에 절대 복종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복음 사역자를 초대하고 또 복음 사역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항상 우리의 근본 동기와 목적이 올바른가, 곧 주께 합당하고 영광이 되는 것인가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규례를 정하시고 그 규례를 지키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지시를 반드시 존중해야만 한다.

(1) 고넬료는 그에게 천사가 나타난 것과 베드로를 초대하라고 그가 지시한 것을 설명한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사건 자체를 자랑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베드로에 대해 하늘에서의 메시지를 듣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를 바라서였다.

① 그는 이 환상이 그에게 일어난 경위를 설명한다(30절). 

"나흘 전 이맘 때까지 금식을 하는데"(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역자 주) 즉 오후 늦은 시간으로서 베드로가 지금 당도한 시간과 같은 때를 말한다. 

이 금식은 보다 진지하고 엄숙하게 기도하기 위한 신앙적인 금식이었고, 이런 금식은 유대인 아닌 경건한 백성들도 행하곤 하였다. 요나 3장 5절에 보면 "니느웨 왕이 금식을 선포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본문을 다른 뜻으로 해석한다. "나흘전부터 바로 지금까지 내가 금식을 해왔습니다"라고 본다. 즉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고기를 먹지 않았다든지 전혀 식사를 안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금식은 환상을 이야기하려는 서론으로 언급된 것이었기에, 후자보다 전자의 뜻이 옳다고 보겠다. 

"그는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였다." 회당에서가 아니라 그는 집에서 기도하였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거하는 곳에서 기도하기를 원한다.) 

그가 집에서 기도하였다고 해서 골방에서의 [혼자 드리는] 은밀한 기도가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거실에서 행한 기도였으며, 아마 이 기도회가 끝난 후 그가 홀로 있을 때 이 환상을 본 것 같다. 

"제 구시"라 함은 오늘날은 오후 세시를 말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중이거나 사업을 하고 있거나 들에서 일을 하든지 친구를 만나고 있든지 오락을 즐기든지 점심 후 낮잠을 잘 그런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고넬료는 예배를 드렸다. 이것만 보아도 신앙을 그의 본분으로 여긴 것을 알 수 있다. 

하늘에서 메시지를 받은 것이 바로 이 때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쉽게 말씀 듣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에게 먼저 많이 구해야 한다.

② 그는 하늘로부터 그에게 이 메시지를 갖고 온 사자에 대하여 묘사한다.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섰다"고 하였다. 

이 모습은 그리스도가 변형되셨을 때의 모습과 같았고 그리스도의 부활 때 나타났던 두 천사들의 모습과도 같았으며(눅 24:4) 또한 그가 제자들에게 빛의 세계와 그들과의 관계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승천하실 때의 모습과도 같았다(1:10).

③ 그는 지금 우리가 보는 바대로 그에게 전달된 메시지를 반복한다(31,32절과 4-6절 비교). 본문에는 다만 "네 기도를 들으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그가 무엇에대해, 어떻게 기도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기도에 응답된 메시지로 보아 다음과 같이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즉 자신의 본성의 완악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어떻게 하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까 고심하는 중에, 그는 더욱 자기의 완악함을 알게 하여 주실 것과 구원의 길을 알려달라고 간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간구에 대하여 "그렇다면 베드로를 청하라. 그가 네게 지시할 것이니라"고 천사가 말하였다.

(2) 그는 자신과 그의 친구들이 베드로가 전할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한다(33절).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우리가 비록 이방인이지만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신실한 종들은 진실로 그들에게 교훈 받기를 기쁘게 바라는 사람들에게 온 것을 다행히 여긴다는 것을 기억하자. 

초청을 받을 때 응낙하여 오는 것은 신실한 주의 종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행이다. 

이제 베드로는 그의 사명을 다하려고 왔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할 일을 마땅히 하였는가? 그들은 마땅한 마음의 준비를 다 하였다. 

"당신이 전할 준비를 하고 왔으니 우리는 들을 준비가 되었나이다"(삼상 3:9, 10).

① 말씀에 대하여 신앙을 가지고 참석함.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우리가 주를 앙망하며 주를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고 예배자의 마음으로 모였나이다"라고 말한다(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진지하고 엄숙한 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당신이 이런 사명을 띠고 우리에게 왔고 또 우리는 전에 결코 가져보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다시는 기회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귀중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여기 예배하는 장소에(비록 개인 집이었으나) 예배하는 마음으로 모인 것이요, 우리가 모두 여기 있나이다(‘파레스멘’,10:33). 우리는 중대한, 생명에 관한 일이 있어서 온 것이요, 소명에 응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경험하게 되면 특별한 사명 의식을 가지고 거기 참여해야 한다.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하였다. 고넬료는 "이제 우리가 모두 모였나이다.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은 빠짐없이 모였나이다"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참석한 것이 틀림 없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 참된 신앙적 참여는 이루어진다. 

우리는 거룩한 법도 안에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보여드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늘 우리를 살피시고 계심을 알고 그 앞에 서야 한다.

② 참석한 목적.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다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것을 우리에게 전할 책임이 있읍니다".

첫째,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에게 명한 모든 것들을 전하러 거기에 왔다. 

왜냐하면 그는 복음을 전할 사명을 남달리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전할 내용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둘째, 그들은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가 하나님에게서 명령을 받은 바로 그것을 듣고자 하였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사도들에게 전수된 것은 사도들 독단적으로 이를 전하든지 말든지 하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것은 그들을 통하여 이 진리를 세계에 전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머물며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들려 주시오. 당신이 전하도록 위탁받은 그 모든 것이 비록 우리의 혈육에는 불쾌함을 준다 하더라도 또 우리의 이전 생각과 현재의 세속적인 이해에 상반된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하나라도 숨김없이 전해 주시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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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함(행 10:34-43)

본문에는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에게 행한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 본문 내용은 전체 설교를 발췌한 것 또는 요약한 것이다. 이 요점을 그들에게 증거하고 교훈하기 위하여 그는 많은 다른 말을 하였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베드로는 장중하고 엄숙하게 말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34절에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라는 말씀을 보면 그가 자유롭게 풍부한 내용을 전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린도 후서 6장 2절에서 바울은 "오! 고린도인들이여 이제 우리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라"고 입을 열었었다(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역자 주). 

"당신들이 듣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전할 것이요"라는 뜻의 말이다. 

지금까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 대해 사도들의 입술은 닫혀 있었고 그러므로 복음을 그들에게 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입을 여신" 것처럼 그들이 입을 여셨는데, 이 아름다운 베드로의 설교는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 놀랍게 적합한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설교였다.

Ⅰ. 그의 설교가 새롭게 들려진 것은 그가 전한 대상들이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방인들이었음에도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심이 큰 것을 베드로는 보여 준다. 

그러므로 그는 이 복음만을 전하였고 그들도 유대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복음의 유익을 얻도록 전하였고 그들도 유대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복음의 유익을 얻도록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였다. 

이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무슨 위로로 그가 전하고 또 그들은 듣겠는가?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불변의 원리로 전제하며 전한다. 

구약에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라" 하였고 이는 재판관들이 행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며(신 1:17; 16:19; 잠 24:23) 그렇게 하면 정죄되었다(시 82:2).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이 자주 기록되고 있다(신 10:17; 대하 19:7; 욥 34:19; 롬 2:11; 골 3:25; 벧전 1:17). 

하나님은 인간의 내적인 가치와는 관계없는 어떤 외적 아름다움 때문에 인간을 차별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미모, 지위, 국적, 부모 친척관계, 사람의 부나 영예로 인하여 인간을 편벽되게 판단하시지 않으시며, 악한 자의 악행에 대하여 호의를 보이시지 않으신다. 자비를 베푸실 때 하나님은 자기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은혜를 베푸신다(신 7:7, 8; 9:5, 마 20:10). 그러나 재판장으로서 그는 그렇게 함부로 다스리시지 않는다. "그는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받으시는 분이시다"(35절). 이 사실은 다음의 경우를 보면 명백히 나타난다.

1.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생을 살다가 죽는 악한 유대인들을 결코 의롭다 하지도 않으셨고 구원하지도 않으셨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가 비록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할례를 받으므로 주어지는 모든 영예와 유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변함이 없으시다. 

그는 "악을 행하는 각 사람들의 영혼에 대하여 분노와 진노를 형벌로 보상하신다." 

이 또한 "먼저 유대인에게 임하는데" 그들의 특권과 고백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해 주는 대신에 그의 죄와 저주를 더욱 분명케 한다. 로마서 2장 3,8,9,10절을 참조하라.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교회의 일원이라는 그들의 특권 때문에 다른 민족들보다 유대인에게 호의를 베푸시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들의 고백과는 반대로 부도덕한 일을 자행한다면 어떤 특별한 개인을 그 특권 때문에 용납하지는 않으신다. 

특히 당시에 가한 복음교회에 대한 박해에 대해서는 더욱 용납될 수 없는바, 이런 점에서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죄는 컸던 것이다.

2. 그는 정직한 이방인 즉 그가 비록 유대인들이 지닌 특권과 이익은 가지지 않았지만 고넬료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를 경배하며 의를 행하며(이는 곧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봉헌할 때나 일상 대화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한 본성에 따라 생활하는 자들을 과거에도 거절하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가 어떠한 민족이든 설사 그가 아브라함과는 혈연관계가 아주 소원하며 또 비열한 민족 출신이며 그 이름이 나쁘게 알려졌다해도 이 때문에 그가 부당하게 취급받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그들의 나라나 조상에 의해 판단치 않으시고 그들의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어디서든 정직한 자가 있으면 그는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에게 발견된다(시 18:25).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의를 행하는 것은" 병행해야만 한다. 

인간들을 향해 의를 행함은 참 신앙의 일부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다른 말로 보편적인 의를 부분적으로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건과 정직도 병행되어야 하며 어느 한 부분이 결여된다면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들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은 틀림 없는 것이다. 

타락한 후에 어떠한 인간도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와 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그에게 경외를 표하지 못했던 자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Q께서 복음을 전하도록 은총을 베푸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는 고넬료에게 행하였듯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역사에 그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 했다. 

이제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베드로가 인식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취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나 진리이다. 

그것은 태초에서부터 정해진 심판의 척도였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또한 죄에 대한 심판이 "문에 엎드리느니라"고 창세기 4장 7절에도 말씀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날에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를 물으시지 않고 그들이 어떠한 사람이며 무엇을 행하였고 하나님과 그들의 이웃들에게 어떻게 대하였는가를 물으신다. 

만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커다란 차이에서부터 오는 외적인 특징이 이익도 해도 안겨주지 않는다면 생각과 행함에 있어서 그 차이가 극소한 기독교인들간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는 로마서 14장에 "날을 중히 여기는 자와 음식을 중히 여기는 자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행하는 의와 평강과 기쁨에 있느니라"는 말씀도 확실하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마다 하나님에게 용납되며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이를 우리가 감히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는다는" 이 전리는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의 특이성 때문에 불분명하였었다. 

그들에게 구별됨의 표가 분명히 있었지만 이제 새롭게 제시된 주님의 경륜이 더욱 분명하고 뚜렷하게 나타났다. 

의식적인 율법은 유대인들과 다른 민족들 사이를 구별하는 담장이었다. 또한 이 율법 안에서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사랑하신 것"도 사실이다(롬 3:1, 2; 9:4). 그러므로 [율법을 주신 바, 그 진정한 의미를 오해하여] 그들 가운데 특정 인물들은 그들이 그들 마음대로 살아도 하나님께서 그들은 받아주시며 이방인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 잘못을 막고 교정하려고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귀를 막고 완악한 고집으로 그 말씀을 부러 거절함으로써 결국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율법을 폐기하고 선민 계약을 폐하시며 범위를 확대시켜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다 하나님 앞에 동등한 위치에 세우시므로 이 잘못을 효과적으로 폐하셨다. 

이제 베드로는 그가 본 환상과 고넬료가 경험하였던 환상을 비교함으로 이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던 바,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갈 5:6; 골 3:11).

Ⅱ. 그들도 이스라엘이라는 제한된 지역내에서 사는 이방인들이었으므로 그는 그들도 잘 알고 있을 사실들 즉 우리 주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 설교와 기적 그의 죽음과 고통을 전하였다. 이 사실들은 이미 그 나라의 구석구석에 전하여진 일이었다(37줄어들). 

이러한 조건은 주의 종들이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문제에 대하여 다소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 이 지식에 근거하여 그들이 호소할 수 있었고 여기를 토대로 그들이 건설할 수 있는 것이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낸 말씀" 즉 복음을 윤곽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내가 말하는 것을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말하였다(37절).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허락되지는 않았지만(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았다") 그들도 복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도시와 마을의 이야기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그가 지상에 계셨을 때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이 온 가나안 땅에 전파되었음을 볼 수 있으며, 또 그가 승천하신 후에는 그의 복음에 대한 소문이 세계 각처에 전파되었다(롬 10:18). 이 말씀, 이 거룩한 능력과 은총의 말씀을 "너희도 알거니와" 이렇게 베드로는 서두를 시작하였다.

(1) 이 말씀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Q은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복음을 전하셨다." 그러므로 본문에는 ‘유앙겔리조메노스 에이레넨’(10:36) 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 당연하였지만 오히려 화평을 선포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셨다. 

그는 인류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과 화평하시고자 하는 것을 알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세상과 자신의 화해를 이루시었다.

(2) 이 말이 전파된 것은 먼저 유대인들을 위해서였다. 

복음이 처음으로 그들에게 제공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웃들도(이방인들을 말함) 이 복음에 대하여 듣고 율법을 부럽게 여겼던 것 이상으로 복음의 유익됨을 부럽게 여기기를 바랐다. 그 때에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고 말한다(시 126:2).

2. 그들은 이 복음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말해 주는 몇 가지 사실들을 알았다.

(1) 그들은 요한이 복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전한 회개의 세례를 알았다. 

여기서 복음은 처음 시작되었던 것이다(막 1:1). 그들은 요한이 얼마나 비범한 인물이냐 하는 것을 알았고 그의 가르침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내용의 것이었음을 알았다. 그들은 많은 무리가 세례를 받으려고 몰려왔고 그가 상당한 세력을 가졌다는 것과 또 그가 행한 것을 알았다.

(2) 또한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있는 직후에 평화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유대 땅에 전파되었고" 이 복음은 갈릴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열두 사도와 70문도와 또 우리 주님 자신이 이 기쁜 소식을 나라 방방곡곡에 전하였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읍이나 촌락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해도 틀림 없을 정도였다.

(3) 그들은 나사렛 예수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두루 좋은 일을 행하셨음을" 알았다. 

그들은 그가 그 민족에게 인간의 영육간에 얼마나 훌륭한 혜택을 베푼 자인가를 알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누구에게도 해를 주지 않으셨다. 

이것이 그가 하신 사업이었다. 그는 게으르시지 않고 계속 일하셨으며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남에게 선을 행하였다. 

또 그는 한 지역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았고 사람들이 그의 도움을 받으러 찾아오기를 기다리지도 않으셨다. 

그는 그들에게 가셨고 이곳 저곳 찾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선행을 하셨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신이 선 자체이시며 또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나타내셨다. 그가 선을 행하실 수 있는 것은 그가 선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세상에서 선을 행하셨으므로 세상에 선을 증거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14:17). 

그러므로 그는 우리와 우리 시대에게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기는 모범을 보여 주셨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할 수 있는 한 세상에 살면서 선을 행하기 위하여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선행에 풍성하고 또 그 안에서 거하여야 한다.

(4) 그들은 또한 그가 특별히 "모든 악귀에 사로잡힌 자들을 고치셨고" 또 사단의 압제 하에 있는 그들을 도우셨음을 알았다. 

이 사실을 통하여 그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에게서 보냄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악마의 역사를 멸하시려고도 보냄을 받은 것이 분명히 나타났다. 이는 그가 악마에게 승리하심으로 그는 더욱 많은 사람을 얻으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5)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인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를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설교할 때 그는 "누구를 너희들이 살해하였는가"에 대하여 말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방인들에게 전하므로 누구를 "그들이 죽였는가에" 대하여 말씀한다. 

유대인들에게 그는 말할 수 없이 선한 일을 행하셨고 또 계획하셨던 것이다. 이 모든 사실들을 그들이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이 사실들을 소문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지 않도록 또 대개 소문이 그런 것같이 사실 이상으로 과장되지 않기를 바라서 베드로는 자기와 다른 사도들의 이름으로 이 사실을 증거하였다(39절).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즉 목격자요 그가 전한 가르침을 직접 귀로 들은 증인이었음을 전한다.

3. 그들은 이 모든 사실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그가 하셨던 대로 전하고 행하실 사명을 하늘로부터 받으셨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었다. 

이 사실을 베드로는 그의 강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이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모든 사건들을 이용하였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이 예수가 "만유의 주시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부수적으로 언급되었지만 그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진 이 예수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라는 사실은 증거해야 할 으뜸가는 전제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을 영구히 넘치게 주신 분일 뿐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의 손에 의탁하신, 또한 모든 재판권이 그에게 허락되어진 중재자였다. 

그는 천사들의 주님이기도 하다.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청종하는 종들이다. 

또한 그는 모든 어둠의 세력들에 대하여 승리하셨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들의 주님이시기도 하다. 

그는 민족들의 임금으로 모든 육체들에 대한 권세를 가지셨으며 또 성도들의 임금으로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그의 생도들이며, 그의 신하들이요, 그의 군병들인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과 권능으로 기름부으셨다"는 사실이다. 

그가 행한 것은 신의 기름부으심을 통하여 할 수 있도록 권위가 주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언제나 "그리스도 - 메시야,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불리워졌다. 그가 세례받을 때에 성령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리고 그는 전파하고 기적을 행함에 있어서 능력이 충만하였다. 이 기적은 그의 거룩한 사명에 대한 인치심의 표시였다.

(3)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이다(38절). 

그의 역사(役事)는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내내 그와 함께 계셨고 모든 그의 섬김과 고통을 함께 수행하셨다.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들에게는 그가 동행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는 그가 그의 성령을 부으신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

Ⅲ. 그들은 이 예수에 관하여 소문으로 들은 것 이상의 것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과 그 증거를 밝힌다. 

이렇게 해서 그가 죽음을 다하심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그들이 생각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그들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고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소문은 유대인들이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그를 훔쳐갔다"는 거짓을 퍼뜨렸으므로 곧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신 평화의 말씀의 중요 근거로써 주장한다.

1. 그를 일으키신 능력은 말할 필요도 없이 신적인 것이었다(40절). 

"그를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다." 

이 사실은 사람들의 그를 향한 모든 비방과 고발을 백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가 십자가의 피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음을 하나님께서 만족히 여기시고 받아들이셨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그는 감옥을 부순 것이 아니라(즉 법을 어기고 기들을 사하심을 말함:역자 주) 합법적으로 보상하시었다.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

2. 그가 부활하신 증거가 말할 수 없이 명백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가 부활하신 것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를 (10:40) 나타내셨다. 즉 명백히 보이셨다. 

그러므로 그는 나타나셨고 이것은 자신과도 아무런 모순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모순이 아닌 것이다. 

이같이 그를 보이셨으므로 그가 부활하신 사실은 더욱 분명한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그를 나타내지는 않으셨다(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공개된 것이라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그는 명백히 자신을 보이셨는데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그는 죽음의 증인이었던 사람들에게만 보이셨다. 

모든 백성들은 그가 그의 신적인 사명을 기적을 통하여 입증하신 온갖 증거에 대해 항거하므로 이 위대한 사실에 목격자가 되는 은총을 상실하였다. 

그의 누워있던 시체가 도난당하였다고 날조하고 조장하였던 자들은 스스로 현혹되어 이 사실을 믿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가 모든 백성들에게 나타나심으로 현혹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셨다. 터툴리안의 변증법 제11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내시지 않은 것은 그들 가운데 경건치 못한 자들이 일순간에 그들의 죄과에서 놓여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난관을 통과하여서 쌓아올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그를 보지 못했지만 그의 부활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인원이 그를 보았다. 유언자(여기서는 그리스도를 가리킴:역자 주)의 마지막 유언과 계약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공개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믿을 수 있는 적정수의 증인들 앞에서 증거됨으로 충분하다. 이런 뜻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충분한 인원 앞에서 입증되었다 하겠다."

(1) 그들은 우연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이 증인이 되기 위하여 주 예수에게 그들은 교육을 받았고 그와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으며 또 미리 이같이 그를 알았으므로 그가 바로 예언되었던 분이었음을 더욱 잘 확신할 수 있었다.

(2) 그들은 그를 갑자기 순간적으로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와 오랫 동안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었다." 

이 사실은 그들이 그가 먹고 마시는 것을 보았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그와 함께 식사한 것을 증언하였으며 그와 함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함께 식사를 하였다. 

이 사실은 그가 참으로 실제의 몸을 가지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를 공포심을 가지고 당황하면서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주 그를 보았고 그와 친숙하게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와 함께 먹고 마셨으므로" 누가 이 사실을 그들 앞에서 증언할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지녔던 생각 즉 "그들이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는 전망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출 24:11).

Ⅳ. 그는 이 모든 사실을 고찰한 후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그러므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고넬료에게 와서 전할 것은 그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문제였고 이것이 그 답변이라고 한다. 

그의 기도와 구제는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거지 결여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 그러면 왜 그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믿음은 증거와 관계가 있는 것이며 기독교 신앙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닦은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따라서 신앙은 그들이 증거한증거 위에 세워져야 한다."

(1) "사도들에 의하여 증거되었다. 수제자로서의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셨다는 것"과 또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백성들에게 전하고 증거하라"는 책임을 주셨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증거는 믿을 만할 뿐 아니라 확실한 것이고 그러기에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신앙하는 것이다. 그들의 증언이 곧 하나님의 증언이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증인들이다. 그들은 이 증언을 새로운 소식으로 전할 뿐만 아니라 기록된 자료로써 그것을 증거한다. 

그리고 이 기록을 통하여 사람들은 심판받게 된다.

(2)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증거 되었다. 

그들의 증거는 벌써 이전부터 있었고 그의 수난뿐만 아니라 그들의 음모와 계획까지 증거하였었다. 

그리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한" 이 증거는 수난에 관한 사도들의 증거를 확증하였다(43절). 

우리는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이 예언자들의 기록을 전혀 몰랐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 말씀이 확립된 것은" 서로 일치하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같은 증언을 통해서였던 것이다.

2. 예수에 관하여 그들은 무엇을 믿어야 했는가?

(1)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재판장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도들은 이 사실을 세상에 증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즉 "Q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 예수인 것을 증거케 하셨다(42절). 

그에게 구원의 한계를 결정하는 권능이 주어졌고 그가 정하신 법에 의하여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되며 "산 자와 죽은 자"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다. 

또한 그는 대심판 날에 모든 인간의 자녀들의 영원한 상태를 결정하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들 중 어떤 자는 살아서 그 날을 맞이할 것이요, 어떤 이들은 죽음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죽는 자 가운데서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할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셨다(17:31). 

그러므로 이 사실을 믿는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우리가 그의 마음에 드는 것과 그를 우리의 친구로 삼는 일이다.

(2) 우리가 그를 믿으면 우리는 그를 통하여 의롭다 인정함을 받게됨을 믿어야 한다(43절). 

예언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언할 때에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누구나 그를 믿는 사람은 그의 이름으로" 또는 그의 공로를 인하여 "죄사유함을 받게 될 것을 증거하였다." 

이것만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부이다. 이것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누구나 죄사유함을 받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세속적인 유대인들은 그들의 제의적인 희생과 성결을 통하여 죄의 용서를 확립하려고 하였고 이방인들 역시 그들의 죄를 보상함으로 용서를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모든 노력이 다 헛것이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 또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요,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죄 사유를 확신하게 되며 죄의 사유는 다른 모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초석이 된다. 

죄사유는 축복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작업과 같은 것이다. 만약 죄가 용서되면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요, 영원한 형통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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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설교의 효과(행 10:44-48)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에게 행한 설교의 요점과 효과를 알 수 있다. 

그가 한 수고는 헛되지 않았다. 이제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Ⅰ.하나님께서 베드로의 말을 주장하셨다. 그의 말씀을 듣는 즉시 성령이 임하였다(44절). 

"베드로가 아직 이 말을 할 때에" 아마도 더 말을 계속하고자 하는데 그는 "성령이" 기적적인 능력을 통하여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게 되었다. 

주목하라, 이 성령의 임함은 11장 15절에서 베드로가 말한 대로 처음 사도들에게 임할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이 성령 임함이 오순절 다락방에서처럼 거친 힘있는 바람과 함께 또 여러 가지 방언으로 임하였다고 생각한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것은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는 동안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베드로가 말한 것을 입증해 주셨고 신적인 권능을 그 말씀에 부여하셨다. 

이같이 하여 고린도 후서 12장 12절에 있는 "사도의 표가 그들 가운데 임하였다." 

베드로 스스로는 결코 성령을 줄 수 없었지만 베드로의 말씀과 함께 성령이 부어지셨다. 이로써 그를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셨음이 분명하여졌다. 

다른 이들에게는 성령이 그들이 먼저 물세례 받은 후에, 즉 확신한 후에 성령이 임하였었는데, 이들 이방인들에게는 세례받기도 전에 성령이 친히 임하셨다. 

아브라함이 아직 할례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방법에 얽매이시지도 않으며 외적인 징표에 제한을 받지도 않으신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령이 할례받지도 또 세례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임하였다. 왜냐하면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무 유익도 없기 때문이다."

2.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사실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그들은 결코 배우지도 않은 방언을 말하였는데 아마 거룩한 언어인 히브리어였던 것 같다. 

설교자들이 듣는 사람들의 사용하는 방안을 말할 수 있어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는 것처럼 듣는 사람들도 즉시 원어를 배워야 설교자들이 본래 구약에서 이끌어낸 증거들을 직접 살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 모두가 주의 사역자들로 택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성령이 처음 그들에게 임함으로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한 자격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야 그들은 말씀을 전하였다. 

이제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그리스도와 구속의 은혜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에게 전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들도 성령을 처음 받는 사람들처럼 행하였다(2:11). 

어떤 은사를 받든지 우리는 이것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특히 입으로 찬양하며 은사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3. 이 사실이 그 자리에 참석한 신앙이 있는 유대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가?(45절)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 사실을 보고 "놀랐다." 베드로와 함께 온 사람들은 여섯 사람이었다. 이 사실은 그들을 대단히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자기 민족들만이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성령의 은사를 이방인들에게도 부어 주심을 인하여" 개운치않은 심정들이었다. 

그들이 이 사실에 대하여 지적해 준 구약 성서를 이해하였다면 이 사실이 그들에게 놀랄 만한 일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같이 흔히 우리의 잘못된 이해 때문에 우리는 신의 섭리와 은총의 방법에 대하여 스스로 장애물을 만드는 것을 알아야 한다.

Ⅱ. 베드로는 성령이 임한 그 사람들에게 세례를 줌으로 하나님의 일을 주관하였다.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1. 비록 그들이 성령은 받았지만 아직 그들에 세례를 받는 것이 필요하였다. 

하나님은 제도화된 규율에 얽매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 규율에 구속을 받는다. 어떤 비범한 은사도 우리로 이 규칙들을 초연케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비범한 은사를 받을수록 이 규칙들을 수행할 책임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 사람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물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수세는 성령의 세례에 비하면 하급에 속한다"고 한다. 천만에! 수세가 결코 하급의 세례가 될 수는 없다. 수세는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규칙으로 보이는 교회에 입교하는 관문이요, 새로운 계약을 인치는 것이다.

2. 그들은 이방인들이었지만 성령을 받았으므로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47절).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즉 아무리 엄격한 유대인일지라도 "능히 물로 세례 묻을 금하리요"라고 베드로는 말한다. 

논쟁의 여지도 없는 문제였다.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징표를 주는 일을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의 계약을 주신 사람들이 계약의 인침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확실히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세례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교제의 대상으로 삼으신 자들을 우리가 받아 사귀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령을 믿음의 자녀들과 그의 후손들에게 부어 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그들에게" 물로 세례 주는 것을 누가 금하겠는가라고 한다. 

이제 그들이 세례 받기 전에 성령을 받은 이유가 분명하여진다. 

베드로가 환상을 통하여 설교할 명을 받지 않았다면 설교를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것, 그 이상으로 이런 일이 없었다면 베드로가 자진하여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 리가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는 "할례받은 신자들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 이방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이기 위한 신의 은혜의 다른 하나의 이례적일 조치가 취하여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선한 사람들의 구제 이상으로 넓게 우리에게 미쳐온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3. 베드로는 자신이 직접 세례를 주지 않고 "명하여 세례를 주게 하였다"(48절). 

아마 그와 함께 온 형제 중 몇 사람이 그의 명령을 따라 세례를 베푼 것 같다. 

그가 세례를 베풀지 않은 것은 바울과 같은 이유로써 그에게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이 때문에 자신을 낫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을지도 모른다"(고전 1:15). 

사도들은 "가서 세례를 주어 모든 민족을 내 제자로 삼으라"는 위탁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념한 일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이었다. 

바울은 그가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르치는 일을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말한다. 가르치는 일이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베푸는 일은 대체로 하위 계열의 사역자들이 행해졌다. 이들은 사도들의 명을 따라 행동하였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를 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을 시킨 것은 자기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Ⅲ. 그들은 베드로의 가르침을 더 받기를 바람으로써 베드로의 말과 하나님의 역사를 같이 자신들의 것으로 삼았다.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그들은 그가 그들과 함께 계속하여 있어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가 다른 곳에도 할 일이 있다는 것과 당장에는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가 즉시 떠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얼마동안 그들과 함께 유할 것을 진지하게 간청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더 많은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였다.

1.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사람들은 더욱 그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기억하자.

2. 또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일지라도 말씀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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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가이사랴는 지중해연안에 있는 팔레스타인지역의 미항으로 두로와 욥바사이에 위치하며 (샤론평야지역에 속하는 갈멜산/하이파 남서쪽 368km.예루살렘북서쪽104Km) 이 도시를 건설한 헤롯궁전 및, 빌라도, 벨릭스등 로마총독들의 관저가 있음.. 두로와 이집트간 해상무역의 본거지여서 헬라인이 많이 거주했음, 관련된 인물로는 빌립, 고넬료-베드로, 바울임

...베드로의 설교도중 고넬료가 하늘로부터 직접 성령세례를 받은, 이방인전도의 새로운 이정표요 신약경륜안에서 전도/선교적 관점의 돌파와 전환을 연 곳

...집사/전도자 빌립의 거주지

...바울은 처음 회심후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보내어졌고, 그후 2차, 3차 선교여행에서 돌아오는 중에 각각 들렀으며, 3차여행에서 복귀 도중 예루살렘을 방문해야 하겠다는  최종 결심도 이곳에서 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에서 성전모독 누명으로 살해당할 위기에서 천부장 루시아의 결정으로 벨릭스총독이 있던 이곳으로 이송되어 2년간 있었다가 로마로 이송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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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빌립보...오늘날 바니아스] 메롬호수(=오늘날 훌레 호수)는 갈릴리호수 북쪽에 위치하는데 헬몬산에서 발원하는 시내로 갈릴리호수와 연결됨...메롬호수  북서쪽에 헬몬산이 위치함....즉, 헬몬산과  메롬호수사이 중간지점즈음에 가이사랴빌립보가 위치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베드로가 고백한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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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 = 타고난 본성과 감정 ...우리나라에서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과 관련된 성정에 대한 논의. 

:::  사단은 『맹자(孟子)』에서 말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본성, 이것의 표현으로는 ‘측은(惻隱..인자), 수오(羞惡..선과의 없음을 악함을 부끄러워함), 사양(辭讓...합당치 않은, 예의에 벗어난 것을 거절함), 시비(是非...의와 정직을 따라 선택함)’의 정(情)이며, 

::: 칠정은 『예기(禮記)』의 「예운(禮運)」에서 말하는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慾)을 말함.

.... 이러한 사단과 칠정에 관해 이황은 ‘사단을 리(理)의 발(發), 칠정을 기(氣)의 발(發)’이라고 하여 리기가 각각 발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은 리기가 각각 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발하며 칠정 중 선한 것이 사단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이이는 기대승의 주장에 동조하여 사단이 칠정 속에 포함되며,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후 학자들은 대체로 남인의 경우 이황의 견해를, 서인의 경우 이이의 견해에 동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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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네가지 근본도리] <측은>仁慈인자=어짐사랑 실행 <수오> 義善의선(=옳고착함) 없음을 부끄럽게 여김 <사양> 禮義예의=예절(禮節)의리(義理)에 어긋나는 것을 정중히 물리침  <시비>智慧지혜=도리슬기, 공의와 정의, 진리를 따라 선택 실행함

::: [세속오계=화랑오계]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 [오상]五常 :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곧 부자 사이의 친애(親愛), 군신 사이의 의리(義理), 부부 사이의 분별(分別), 장유(長幼) 사이의 차서(次序), 붕우(朋友) 사이의 신의(信義).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아버지는 의리로, 어머니는 자애로, 형은 우애로, 아우는 공경(恭敬)으로, 자식은 효도로 각각 대하여야 할 마땅한 길 또는 오륜(五倫 : 父義, 母慈, 兄友, 弟恭, 子孝).....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지키는 다섯 가지 계율[오계]. 곧 죽이지 말 것, 훔치지 말 것, 사음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술 마시지 말 것

::: 三綱五常(삼강오상 =삼강오륜)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으로서 사람이 항상(恒常) 지켜야 할 큰 도리(道理) 

...삼강(三綱)은 군신ㆍ부자ㆍ부부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道理)인 군위신강(君爲臣綱)ㆍ부위자강(父爲子綱)ㆍ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고, 오상(五常)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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